오뇌의 무도/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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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뇌의 무도』의 머리에[편집]

삶은 죽음을 위하여 났다.
누가 알았으랴, 불같은 오뇌의 속에
울음 우는 목숨의 부르짖음을……
춤추라, 노래하라, 또한 그리워하라.
오직 생명의 그윽한 고통의 선 위에서
애달픈 찰나의 열락의 점을 구하라.
붉은 입술, 붉은 술, 붉은 구름은
오뇌의 춤추는 온갖의 생명 위에
향기로운 남국의 꽃다운 ‘빛’,
‘선율(旋律)’, ‘해조(諧調)’, 몽환(夢幻)의 ‘리듬’을……
오직 취하여, 잠 들으라,
유향(乳香) 높은 어린이의 행복의 꿈같이-
오직 전설의 세계에서,
신화의 나라에서……


1921년 1월 유방(惟邦)

서(序)[편집]

여(余)는 시인이 아니라 어찌 시를 알리오. 그러나 시의 좋음은 알며 시의 필요함은 아노라. 이제 그 이유를 말하리라.

무릇 사람은 정(情)이 대사니 아무리 좋은 의지(意志)와 지교(智巧)라도 정을 떠나고는 현실이 되기 어려우니라. 곧 정으로 발표함에 그 발표하는 바가 더욱 진지하여지고 정으로 감화함에 그 감화하는 바가 더욱 절실하여 지는 것이라. 그러므로 고래 어떤 인민이든지 이 정의 발표 및 감화를 많이 이용하였으니 그 방법 중의 일대방법은 곧 시(詩)라. 시(試)하여 보라. 셰익스피어가 어떠하며 단테가 어떠하며 지나(支那)의 비경(萉經)이 어떠하며 유태의 시편이 어떠하며 우리 역대의 시조가 어떠하뇨. 개인으로 개인의 성정, 의미와 사회는 사회의 성정, 사업 등을 표현 또 계발함이 크도다.

우리 문학사를 고(考)하건대 우리의 시로는 확실한 것은 고구려 유리왕(琉璃王)의 황조시(黃鳥詩)가 처음 저명하였으니 그는 곧 거금(去今) 약 이천년 전의 작이라. 이후로 삼국, 남북국, 고려, 조선시대에 한시 및 국시(國詩)(시조)가 많이 발흥하였더라. 그러나 근대 우리 시는 한시 및 국시를 물론하고 모두 자연적(自然的), 자아적(自我的)이 아니오 견강적(牽强的), 타인적(他人的)이니 곧 억지로 한사(漢士)의 자료로 시의 자료를 삼고 한사의 식으로 시의 식을 삼은지라. 조선인은 조선인의 자연한 정(情)과 성(聲)과 언어(言語) 문자(文字)가 있거니 이제 억지로 타인의 정과 성과 언어 문자를 가져 시를 지으려면 그 어찌 잘 될 수 있으리오. 반드시 자아의 정, 성, 언어 문자로 하여야 이에 자유자재로 시를 짓게 되어 비로소 대시인이 날 수 있나니라.

지금 우리는 많이 국시를 요구할 때라. 이로써 우리의 일체를 발표할 수 있으며 흥분할 수 있으며 도야할 수 있나니 그 어찌 심사(深思)할 바 아니리오. 그 한 방법은 서양시인의 작품을 많이 참고하여 시의 작법을 알고 겸하여 그네들의 사상작용을 알아서 우리 조선시를 지음에 응용함이 매우 필요하니라.

이제 안서(岸曙) 김형(金兄)이 서양 명가의 시집을 우리말로 역출(譯出)하여 한 서(書)를 이루었으니 서양 시집이 우리말로 출세(出世)되기는 아마 효시라. 이 저자의 고애(苦哀)를 해(解)하는 여러분은 아마 이 시집에서 소득이 많을 줄로 아노라


신유(辛酉) 원월(元月) 하한(下澣) 장도빈(張道斌) 근식(謹識)

『오뇌의 무도』를 위하여[편집]

곤비(困憊)한 영(靈)에 끊임없이 새 생명을 부어 넣으며, 오뇌에 타는 젊은 가슴에 따뜻한 포옹을 보냄은 오직 한 편의 시밖에 무엇이 또 있으랴. 만일 우리에게 시가 곧 없었으면 우리의 영은 졸음에 쓰러졌을 것이며 우리의 고뇌는 영원히 그 호소할 바를 잊어버렸을 것이 아닌가.

이제 군(君)이 반생의 사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먼저 남구의 여러 아리따운 시인의 심금에 다 치여 울려 퍼진 주구옥운(珠句玉韻)을 모아, 여기에 이름하여 『오뇌의 무도』라 하니, 이 어찌 한갓 우리 문단의 경사일 따름이랴. 우리의 영은 이로 말미암아 그윽한 위무를 받으리로다.

『오뇌의 무도』! 끝없는 오뇌에 찢기는 가슴을 안고 춤추는 그 정형(情形)이야말로 이미 한 편의 시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하다, 근대의 생을 누리는 이로 번뇌, 고환(苦患)의 춤을 추지 아니하는 이 그 누구냐. 쓴 눈물에 축인 붉은 입술을 복면 아래에 감추고, 아직도 오히려, 무곡의 화해(和諧) 속에 자아를 위질(委質) 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검은 운명의 손에 끌리어 가는 것이 근대인이 아니고 무엇이랴. 검고도 밝은 세계, 검고도 밝은 흉리(胸裏)는 이 근대인의 심정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인생을 희롱하며 자기를 자기(自欺)함이 아닌 것을 깨달아라. 대개 이는 삶을 위함이며, 생을 광열적(狂熱的)으로 사랑함으로써니라.

『오뇌의 무도』! 이 한 권은 실로 그 복면한 무희의 환락에 쌓인 애수의 엉클임이며, 같은 때에 우리 위안은 오직 영원히 감추었으리로다.

아! 군이여, 나는 군의 건확(建確)한 역필(譯筆)로 끼워 맺은 이 한 줄기의 주옥이 무도장에 외로이 서 있는 나의 가슴에 느리울 때의 행복을 간절히 기다리며, 또한 황막한 폐허 위에 한 뿌리의 푸르름의 넓고 깊은 생명을 비노라.


신유(辛酉) 일월 오산우거(五山寓居)에서
염상섭(廉尙燮)
친애하는
김억 형에게.

『오뇌의 무도』의 머리에[편집]

건조하고 적료(寂廖)한 우리 문단―특별히 시단에 안서(岸曙) 군의 이 처녀시집이(역시(譯詩)일망정) 남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아 군의 처녀시집―아니 우리 문단의 처녀시집!(단행본으로 출판되기는 처음) 참으로 범연한 일이 아니다. 군의 이 시집이야말로 우리 문단이 부르짖는 처음 소리요 우리 문단이 걷는 처음 발자국이며, 장래 우리 시단의 대심포니[諧樂]를 이룰 Prelude(서곡)이다. 이제 우리는 그 첫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요, 그 첫걸음 걸이를 살필 것이며, 그 의미(意味) 있는 서곡(序曲)을 삼가 들을 것이다.

군이 이 시집 가운데 취집(聚集)한 시의 대부분은 샤를 보들레르와 폴 베를렌과 알베르 싸멘과 루미 드 꾸르몽 등 근대 불란서 시의 번역을 모아 『오뇌의 무도』라 이름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잠간 근대 불란서 시란 어떠한 것인가 써 보겠다.

두말할 것 없이 근대문학 중 불란서 시가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주옥같다. 영롱하고 몽롱하며 애잔하여 ‘방향(芳香)’이나 ‘꿈’같이 포착할 수 없는 묘미가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어디까지든지 조자(調子)가 신랄하고 침통하고 저력이 있는 반항적인 것이다. 좀 자세하게 말하면 근대시가―특히 불란서의 것은 과거 반만년 동안 집적한 ‘문화문명’의 중하(重荷)에 눌려 곤피(困疲)한 인생―즉 모든 도덕, 윤리, 의식, 종교, 과학의 영위와 질곡을 벗어나서 ‘정서(情緖)’와 ‘관능(官能)’을 통하여 추지(推知)한 어떠한 새 자유천지에 ‘탐색’과 ‘동경’과 ‘사랑’과 ‘꿈’의 고운 깃[羽]을 펴고 비상하려 하는 근대시인―의 흉오에서 흘러나오는 가는 힘없는 반향이다. 그렇게 근대시인 ‘영의 비약’은 모든 질곡을 벗어나 ‘향’과 ‘색’과 ‘리듬’의 별세계에 소요하나, 그들의 육은 여전히 이 고해에서 모든 모순, 환멸, 갈등, 쟁탈, 분노, 비애, 빈핍 등의 ‘두려운 현실의 도가니[坩堝] 속에서 끓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육의 오뇌’를 찰나 간이라도 잊기 위하여 할 일 없이 피 빛 같은 포도주와 앵속정(嬰粟精)과 Hashish(인도에서 산(産)하는 일종 최면약)을 마시는 것이다. 아! 어떠한 두려운 모순이냐? 아 어떠한 가슴 쓰린 생의 아이러니냐? 이러한 부단한 영과 육, 몽(夢)과 현실, 미와 추와의 저어반발(齟齬反撥)하는 경애(境涯)에서 그들의 시는 흘러나오는 것이다. 어찌 큰 의미가 없으며, 어찌 큰 암시가 없으랴! 이제 나의 애우(愛友) 억(億) 군이 그러한 근대 불란서 시가―기중(其中)에서도 특히 명편가작만 선발하여 역함에 당(當)하여 나는 만곡찬사(萬斛竄死)를 아끼지 아니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군의 사상과 감정과 필치가 그러한 것을 번역함에는 제일의 적임자라 함을 단언하여 둔다.


1921.1.14 야(夜)
변영로(卞榮魯)

역자의 인사 한마디[편집]

이 가난한 역시집 한 권에 대한 역자의 생각은 말하려고 하지 아니합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출세될 만한 값이 있고 없는 것에 대하여는 역자의 생각하려고도 하지 아니하며, 그 같은 때에 알려고도 하지 아니합니다. 더욱 새 시가가 우리의 아직 눈을 뜨기 시작하는 문단에서 오해나 받지 아니하면 하는 것이 역자의 간절한 열망이며, 또한 애원하는 바입니다. 자전과 씨름하여 말을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역시집 한 권입니다. 오역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역자의 잘못이며, 어찌하여 고운 역문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역자의 광영입니다. 시가의 역문(譯文)에는 축자(逐字), 직역(直譯)보다도 의역(意譯) 또는 창작적 무드를 가지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자의 가난한 생각에 주장입니다. 어찌하였으나 이 한 권을 만들어 놓고 생각할 때에는 설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것은 역자의 속임 없는 고백입니다.

이 역시집에 대하여 선배 어른, 또는 여러 우인의 아름답고도 높은 서문, 또는 우의를 표하는 글을[友誼文] 얻어, 이 보잘것없는 책 첫머리에 고운 꾸밈을 하게 됨에 대하여는 역자는 감히 맘 가득한 고마운 뜻을, 선배 어른, 또는 여러 우인에게 드립니다.

그리하고 이 역시집에 모아 놓은 대부분의 시편은 여러 잡지에 한 번씩은 발표하였던 것임을 말하여 둡니다. 또 이 역시집의 원고를 청서(淸書)하여 준 권태술(權泰述) 군의 다사한 맘에 고마움을 드립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역자는 이 역자로 하여금 이 역시집의 출세를 빠르게 하여주고, 또는 발행까지 즐겁게 하여주신 광익서관(廣益書舘) 주인, 나의 지기(知己) 고경상(高敬相) 군의 부드러운 맘에 다사한 생각을 부어드립니다.


1921.1.30
서울 청진동(淸進洞)에서 억생(億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