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제펄 대 호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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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대법원 호. 14-556, 14-562, 14-571 및 14-574 제임스 오베르제펄, 등., 청원 14-556 V. 리처드 호지스 감독, 건강의 오하이오 부서, 등; 발레 TANCO, 등., 청원 14-562 V. 빌 HASLAM, 테네시 주지사, 등; 월 DEBOER, 등., 청원 14-571 V. 릭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 등; 과 그레고리 버크, 등., 청원 14-574 V. 스티브 BESHEAR, 켄터키 주지사 여섯 번째 순회 항소 미국 법원에 상고를의 영장 ON [2015년 6월 26일]

케네디 대법관은 법원의 판결문을 발표했다.

헌법은 법의 테두리안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를 약속한다. 이 자유는 그들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허용되는 특정한 권리를 포함한다. 이 경우에 청원자는 동성과 결혼의 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그들의 결혼을 이성간의 결혼과 합법적으로 같은 형태와 조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탄원들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간의 결합'이라고 정의하는 미시간주, 켄터키주, 오하이오주, 테네시주에서 발생하고 있다. 신청인은 14쌍의 동성 커플거나 동성의 파트너가 사망한 두명의 남성이다. 피신청인은 이렇게 문제가 되고 있는 법을 집행하는 해당 주의 공무원들이다.

청원자들은 피고들이 결혼할 그들의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미국 수정 헌법 14조를 위반했고 다른 주에서는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그들의 결혼이 완전히 인정되기를 주장했다. 청원자들은 그들주의 지방법원에서 이 소송을 제기했다. 각주는 각 지방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소송은 부록A에 인용되어 있다.

피고는 미국 여섯 번째 항소 법원에 결정이 그들에 반하는 결정에 항의했다. 그것은 사건들을 통합하였고 지방법원의 판결을 바꾸었다. 항소법원은 각 주는 동성결혼을 허가하거나 동성결혼의 시행을 인정할 헌법적인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청원인들은 사건이송을 신청했다. 이 법정은 두 가지 항목으로 제한해 재고를 승인하였다.

첫 째, 미시간주과 컨터키주에서 제시된것은 미국헌법 수정 14조에서 동성간의 결혼의 허용을 주에 요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이다. 두번째, 오하이오, 테네시, 그리고 또 한번 켄터키주에서 제시된 것은 미국헌법 수정 14조가 이런 권리를 승인하는 주에서 동성간의 결혼의 허용과 시행을 인정하는것을 주에 요구하는지 하지 않는지이다.

이러한 사건을 관리한 원칙과 선례들을 다루기 전에, 법원 이전 현재의 이 주제의 역사에 주목해 보는 것이 적절하다.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 역사의 연대기는 초월적인 결혼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남자와 여자의 긴 인생의 결합은 그들의 신분과 관계없이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고귀함과 위엄을 약속했다.

결혼은 그들의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신성한 것이고 세속적인 영역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성취감을 제공한다. 결혼은 단지 두 사람 보다 더 큰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의 역학은 사람들에게 혼자였다면 발견할 수 없었을 삶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에서 출현해, 결혼은 우리의 가장 깊은 희망과 열망에 필수적인 것이다.

수천년간 혼인이 여러 문명들을 통해 존재해왔다는 것을 보면 인간 생활에서 혼인의 중요성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역사의 시작부터 결혼은 관계 증진, 가문의 결합, 그리고 사회의 융합을 불러왔다. 공자는 결혼이 정부의 기초에 놓여있다고 가르쳤다.

이 교훈은 이 후 수백년간 지속되었고 사회의 첫번째 유대는 결혼이고 다음은 아이 그리고 다음은 가족이라고 말한 키케로에 의해 지구 반대편까지 이어졌다. 모든 형식의 예술과 문학 뿐만아니라 긴 시간, 문화 그리고 신념속에서 종교와 철학 문서에서 결혼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러한 언급이 결혼이 반대성을 가진 두 사람의 결혼이라는 것의 이해하는데 기초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고 필수적이다.

이러한 역사는 이 소송들의 시작이다. 피고들은 그것 또한 끝나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결혼의 개념과 합법적인 조건이 동성의 사람들에게 까지 넓어 진다면 그들에게 이러한 것들은 시간을 초월한 제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결혼은 성이 다른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여기와 전세계의 이성적이고 진실한 사람들의 좋은 신념에 의해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청원인들은 이러한 역사를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소송의 논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경건한 생각과 결혼의 현실의 품위를 손상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 청원인들의 주장은 다른 이치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목적도 아니고 신청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청원 '주장의 기초가 결혼의 지속적인 중요성이다. 이것은, 그들이 말하는, 자신의 전체 지점입니다. 지금까지 결혼을 평가 절하하고자에서, 청원 때문에 그들의 존경 및 그 권한과 책임이 필요-용으로 스스로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불변의 본질은 동성 결혼이 깊은 헌신에 자신의 유일한 경로라고 지시한다.

이러한 세가지 소송의 상황을 열거하는 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청원인들의 소송 원인의 절박함을 설명한다. Ohio소송의 원고인 청원인 James Obergefell는 20년전 John Arthur를 만났다. 그들은 사람에 빠졌고 함께하는 삶을 시작했고, 굳건한 관계를 지속했고, 서로에 헌신했다. 그러나 2011년 Arthur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또는 ALS진단을 받았다.

이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질환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데다가 치료법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2년전, 오베르게펠과 아서는 아서가 죽기 전에 결혼하기로 하였고 서로에게 충실하였다. 그들은 결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하이오에서 메릴랜드로 여행을 했다. 메릴랜드는 동성결혼이 합법이라는 점이 이유였다. 아서에게 다른 주로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커플은 볼티모어의 타맥으로 포장된 도로에 착륙한 의료용 비행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3개월 후, 아서가 사망했다.

오하이오주는 아서의 사망진단서에 생존 배우자로 있어야 할 오베르게펠을 법적 배우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법령에 의해 부부가 아닌 관계가 되어버렸고, 사망 후의 여생동안 오베르게펠은 법적으로 아서와 남남으로 있어야 했다. 이에 그는 아서의 사망진단서에 배우자로 남아있기 위해서 소송을 제기했다. 4월, 더 부르와 제인 로우즈는 미시간에서 공동원고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2007년, 그들은 영원한 관계를 축복하기 위해 약혼식을 거행했다.

그들은 둘 다 비상 단위 간호사, 신생아 단위 DeBoer와 Rowse으로 근무했다. 2009 년 DeBoer 및 Rowse는 육성하고 아기를 채택했다. 이후 같은 해, 그들은 그들의 가족으로 또 다른 아들을 환영했다. 새로운 아기, 너무 빨리 태어 났으며, 그의 생모에게 버림은 연중 무휴주의를 요구했다. 다음 해, 특별한 요구와 여자 아기는 가족에 합류했다.

그러나 미시간주는 오직 이성결혼부부나 독신자들에게만 입양을 허가한다. 그래서 각각의 아이들은 오직 한명의 여자만 그나 그녀의 법적인 부모로 가질 수 있었다. 만약 긴급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학교나 병원들은 세명의 아이들을 각각 한 명의 부모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 취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DeBoer나 Rowse에게 비극이 닥친다면, 다른 한 명은 입양을 불허받은 아이에 대한 법적권리를 전혀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이 부부는 미혼이라는 점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발생되는 불확실성으로부터 안정을 추구한다. 테네시 사건의 공동원고이자 육군 예비군 중사 에제이프 드코와 그의 배우자 토마스 카스토라는 사랑에 빠졌다. 2011년 에제이프 드코가 아프가니스탄 전출 명령을 이행하기 전에 에제이프와 카스토라는 뉴욕에서 결혼했다. 일주일 후, 에제이프는 거의 1년가량 지속적인 해외파견근무를 해야 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둘은 DeKoe가 육군예비군으로 풀타임으로 일하던 테네시에 정착하였다. 그들의 합법적인 결혼은 테네시에 돌아오거나 살 때 등 주경계를 넘일 때 빼앗기고 사라졌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군복무를 하는 DeKoe 상당한 부담을 안아야 하였다. 법원에 계류중인 사건들은 다른 청구인이 있으며 각각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결혼의 의미를 모욕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고 함께할 배우자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결혼은 고대를 기원으로 하지만 법률과 사회 발전에서 고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결혼의 역사는 연속성과 변화 모두에 해당됩니다. 이성관계에 국한된 결혼 제도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 한 제도로서 이 커플의 부모님, 종교 그리고 정치 경제 우려에 따라서; 그러나 국가 수립즈음에 그 일을 이해했었다고 보았다. 여성들의 역할과 위상을 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자발적인 계약과 제도가 더 진화했다. 유부녀의 신분의 수백년 된 교리에 따라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국가가 단일의 남성 위주의법적 단체로 치료를 받았다.

여성이 법적, 정치적, 재산적 권리를 얻고 사회에서 구성원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처럼 기혼녀의 신분으로서 그 법률은 거의 포기되다시피 했습니다. 지난 몇세기에 걸쳐서 결혼제도는 표면적인 변화 그 이상의 발전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결혼이 필수적인 요소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도록 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관점들은 결혼제도를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강화시켰다. 실제로 결혼에 대한 변화된 시선은, 새로운 세대에게 자유의 새로운 차원이 분명해지는 국가에서 특징적인 점이다. 이 관점들은 종종 청원이나 시위로 시작되고 나중에는 정치권과 사법 과정에서 다루어진다.

  • * *

결혼보다 심오한 결합은 없다. 결혼은 가장 높은 이상의 사랑, 충실, 헌신, 희생, 가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결혼 관계를 맺기 위해, 두 사람은 그들이 이전의 그들을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몇몇 청구인이 밝히듯, 결혼은 죽음을 초월한 이어지는 사랑을 상징한다. 그들이 결혼의 개념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존중한다고 호소한다. 너무 깊이 존중한 나머지 그들 역시 그들의 관계를 결혼을 통해 완성하고 싶어 한다. 그들의 희망은 우리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인 결혼에서 격리되어, 외로움 속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성을 확인받길 원한다. 헌법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허용하고 있다.

고로 제6 순회연방 고등법원의 판정을 파기한다.

아래와 같이 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