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의 낙조
상
[편집]자시(子時).
축시(丑時).
인시(寅時)도 거의 되었다.
송악(松嶽)을 넘어서 내리부는 2월의 혹독한 바람은 솔가지에서 처참한 노래를 부르고 있고, 온 천하가 추위에 오그라들고 있는 겨울 밤중이었다.
이 추위에 위압되어 한길에는 개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고, 개경(開京) 10만 인구는 두터운 이불 속에서 겨울의 긴 꿈을 꾸고 있을 때다.
그러나 대궐에는 이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고관에서부터 말직까지 모두 입직해 있고, 방방이 경계하는 듯한 촛불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왕후궁 노국 대장공주전(魯國大長公主殿)의 앞에서 내시며 궁액들이 몸을 웅크리고 추위에 떨며 심부름을 기다리고 있었고. 침전의 밖에도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침전. 정침에는 아무도 없는 대신에 그 협실에 두 사람이 있었다.
협실에 안치(安置)한 불상(佛像) 앞에 중 편조(遍照)가 합장을 하고 꿇어앉아 있고, 그 곁에는 고려 국왕 공민(恭愍)이 단아히 역시 불상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난산(難産) 후에 환후 위독한 왕후 대장공주의 쾌차를 불전에 빌기 위하여, 왕은 비밀히 중, 편조를 침전(寢殿)까지 불러들여 여기서 기원을 드리게 한 것이었다.
부처에 매우 귀의해 있는 왕이 이전 원나라에 있을 때에 구해 두었던 영하다는 불상 앞에 지성으로 꿇어엎드려 있는 왕과 편조.
어지럽고 불길한 일이 박두해 있는 가운데서도 고요히 고요히 깊어가는 겨울밤을 왕과 편조는 불상 앞에 엎드려서 공주의 쾌차를 빌고 있었다. 궁중에 비밀히 불러들인 편조라, 큰소리로 기원을 외지도 못하고, 입 속으로 드리는 그 기원에 왕은 연하여 합장을 예배하였다.
이때 복도를 좇아서 공주부(숙옹)에서 침전으로 달려오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소리나 또한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였다.
왕은 빨리일어나서 협실에서 정침으로 나왔다. 협실과 정침을 가로막는 장지무을 겨우 닫을 때쯤, 공주부에서 달려온 궁녀가 침전 밖에서 시직하는 내시에게 무엇을 소곤소곤 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왕이 자리를 잡을 때에,
"환관 최만생(崔萬生) 아뢰옵니다."
하는 내시의 말이 들렸다.
"음, 무에냐?"
"잠간 내전까지 입어하십사는 후전(後殿) 마마의 전탁이 계시오니다."
"음, 가마."
황황히 일어나서 내시의 부액도 받을 겨를이 없이 공주부로 발을 옮길 동안, 왕의 가슴은 놀랍게도 방망이질했다.
공주부에서 입시해 있는 전의(典醫)의 표정을 보고 왕은 벌써 사태가 그른 것을 직각했다.
진맥을 하기 위해 뚫은 병풍의 구멍 틈으로 은어와 같은 공주 손의 맥을 짚고 있던 전의는, 왕의 임어에 허리를 굽히기는 굽혔지만 얼굴로서는 절망의 뜻을 나타내었다.
병풍을 돌아서 공주에게로 내려가매, 머리맡에는 왕의 어머님 명덕 태후가 앉아 있고. 발치에는 혜씨 이씨(惠氏李氏)가 앉아 있었으며, 그 뒤로는 몇몇 지밀 궁녀들이 지며 있다가. 왕의 임어에 조금씩 자리를 움직이기는 했지만, 말 한 마디도 없이 공주의 누워 있는 얼굴로 눈들을 향하고 있다.
왕은 공주의 침두에 가서 고요히 앉았다.
몽고인(蒙古人) 특유의 기다란 속눈썹이 반달 모양으로 굳게 닫혀 있고, 좀 짧은 듯한 윗입술이 방싯이 열려서, 기운 없는 호흡이 그 틈으로 드나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교적 넓고 균형 잘된 백옥 같은 이마에는 머리칼이 두어 올 걸려 있었으며, 그 사이 10개월 간의 태중과 이번 난산 때문에 여위고 여윈 뺨에는, 따로 만들어 붙인 듯이 광대뼈가 솟아 보였다.
왕은 손을 들어서 고요히 공주의 이마에 얹었다. 선뜻한 왕의 손이 이마에 앉히매, 공주는 눈을 번쩍 떴다.
번쩍 뜬 눈은 잠시 허공에서 방황했다. 허공에서 희번덕이던 눈이 왕에게서 돌아와서 잠시 머무를 동안, 겁에 들뜬 듯하던 눈은 차차 사람다운 표정을 갖기 시작했다. 왕을 알아본 것이었다.
"상감마마!"
비로소 입에서 나온 말이다.
왕은 곁에 놓인 붓으로 공주의 마른 입술을 추겨 주려고 손을 움직이려 할 때에, 공주의 손이 벼락같이 왕의 손을 와서 잡았다.
단지 사람다운 표정이 나타나 있는 데 지나지 못하던 공주의 눈이, 순간 변하여 타는 듯한 정열이 넘쳐흐른다.
"상감마마, 상감마마!"
"공주, 좀……."
"상감마마, 신을 안아 주세요."
움직일 기운이 없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는 그 고민! 왕은 양팔을 공주의 허리 아래로 넣어서 공주의 몸을 안았다.
상반신을 왕의 무릎에 올려 놓은 공주는, 최후의 정열 때문에 창백하던 얼굴이 붉게 변하고, 그 눈에는 광채가 났다.
"상감마마, 좀더 힘있게 안아 주세요. 힘껏, 신의 허리가 끊어지도록……."
왕의 팔에 힘이 차차 더해감에 따라서, 머리를 좀더 들어 보려는 공주의 최후 노력.
"상감마마, 신은 기쁘옵니다. 더 힘껏…… 신은, 신은 다만 마마께 후사 없으신 것이 죄송……."
숨이 찬 듯이 말을 끊었다. 온 정열을 모아서 왕을 우러러보던 공주의 눈도 힘이 어느덧 풀렸다. 걸근걸근 힘없는 숨소리.
그 숨이 문득 끊어졌다. 왕의 마음이 철썩 내려앉는 순간, 아직껏 좀 가볍던 공주의 몸이 천근같이 무거워졌다.
"공주! 공주!"
예기는 했었지만, 이 의외의 사변에 왕은 공주의 몸을 안은 채 어쩔 줄을 모르고 공주만 연하여 찾았다.
이 동안 국모 대장공주의 승하를 조상하는 애곡성이 태후며 혜비 이씨들에게서 터져나왔다.
이튿날 국상은 정식으로 반포되었다.
공민왕 14년 2월, 아직도 매운 바람이 몸을 에는 겨울이었다.
긴 듯하고도 짧은 생애, 짧은 듯하고도 긴 생애.
왕이 아직 한낱 고려 종실로서 백안첩목아(伯顔帖木兒)라는 몽고의 이름으로 원(元)나라 서울에 잠저(潛邸)해 있을 때, 원나라 황제의 어명으로 원나라 종실 위왕(魏王)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즉 이번에 승하한 대장공주였다. 후에 본국 고려로 돌아와서 충정왕(忠定王)의 뒤를 이어 고려 국왕이 된 이래 14년 간을 변함없이 사랑하던 왕비였다.
즉위 이래 14년 간 어지러운 고려의 정파(政派)에 올라앉아서 파란 많은 생애를 보낼 동안, 사랑하는 공주의 내조가 없었다면, 왕은 왕위를 내던지고 공주와 함께 어느 조용한 곳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으러 떠났을 것이다.
동과 서와 남쪽의 해변으로는 왜적의 난이 끊이지 않는 일면에, 또한 북쪽으로는 홍건적(紅巾賊)의 난이 있어서, 그 편 역시 한때도 평안한 날이 없어, 어떤 때는 왕이 멀리 상주까지 몽진을 한 일까지 있었다.
이렇듯 동, 남, 서, 북으로 외구의 환이 끊일 날이 없으면서, 또한 안으로는 내란이 끊이지를 않았다.
즉위 원년에 최유, 김원지의 무리가 원나라의 힘을 빌어서 본국인 고려를 침범하려던 일을 비롯하여, 조일신, 김용 등의 난이라, 무엇이라, 한때도 베개를 편안히 하고 잠잘 날이 없었다.
신임하는 신하와 대할 때에도, 저 사람의 마음 배포가 어떤가를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왕의 입장이었다. 신임하는 신하가 연하여 당신을 배반할 때에, 왕의 눈에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믿을 사람이 없이만 보였다.
이렇듯 얽히고 설킨 어지러운 국정에, 또한 재상가끼리의 세력 다툼이며, 사병(私兵)을 양성하는 장상끼리의 싸움이 끊이는 날이 없었다. 어지러운 정국이었다.
이런 어지러운 정국 안에서 왕후 노국 공주의 따뜻한 사랑이 없었다면, 왕은 1년도 왕위에서 배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어지러운 정국에서, 과거 14년 간의 치적을 돌아보건대 과연 용하였다.
먼저 원나라의 세력이 왕의 손으로 얼마만치 꺾이었다.
이전에는 무슨 소소한 일을 행할지라도 반드시 먼저 원나라에 품하여 허가를 얻던 것을, 이 왕의 대에서는 선참 후주의 방침으로 나아갔다. 먼저 행하고 후에 아뢰었다.
아직껏은 각 재상 분권이던 정치를 중앙 집권으로 꾀하여, 재상끼리의 세력 다툼을 얼마만치 완화시키고 모든 권세를 국왕인 당신이 잡았다.
그 밖에도 집안 문벌이나 학벌만 자랑하고 아무 실능력이 없는 대상들은 차차 경원해 버리고, 실능력을 가진 장상을 좌우에 모아들였다.
풍속에 있어서도 원나라 풍속과 고려의 풍속을 다 잘 알고 있느니만치 세밀한 주의로써 개량하였다.
각 산에 솔을 심어서 사태를 방비하고, 재상들의 매 사냥을 금하여 공연한 살육을 막고, 아울러 이 때문에 밟히는 전토를 보호하고, 돈을 만들어서 일용에 편케 하고, 수차를 만들어 농사에 편리하게 하고, 흔히 민간에 미행하여 백성의 고초를 살피고 세세한 일까지 모두 살피고 살펴서 국운을 융성케 하여. 피폐했던 고려의 국정이 바야흐로 이 왕의 대에서 중흥이 되나 보다 누구든 믿었다.
이 왕의 위업 뒤에 숨은 공주의 내조에 힘이 얼마나 컸던고! 첩첩이 쌓인 어지러운 문제에 골머리 쓰여서, 에라 왕이고 무에고 내던지고 말까 할 때마다. 공주의 부드러운 손은 왕의 어깨에 얹히었다.
"상감마마, 마마께서 내던지시면 고려의 백성은 누구를 믿고 살리까?"
격려하는 공주의 말은 피곤한 왕으로 하여금 다시 용기를 내게 했다.
빈전(殯殿) 재궁(梓宮)을 지키는 왕. 수없이 피운 향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왕은 고요히 앉아 있었다.
"상감마마, 수라를 어쩌리까?"
환관 신소봉(申小鳳)이 이렇게 아뢸 때도, 왕은 아무 대답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공주 승하한 지 벌써 초 7일이 지난 이때까지, 왕은 여태껏 수라를 받아 보지 않았다. 몇 번 냉수를 찾고 몇 번 태후의 강권에 못이겨 술 몇 잔과 돈육 몇 점을 입에 넣어본 뿐, 수라반은 대하지 않았다.
여전히 끼니때라고 환관은 예에 의지해서 수라를 채근하지만, 왕은 또한 여전히 예에 의지해서 대답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상감마마, 수라를 어쩌리까?"
신소봉은 한번 더 채근해 보았다. 그런 뒤에 잠시 기다려 보고 이젠 자기의 직책은 다했다는 듯이 왕과 재궁께 절하고 고요히 물러갔다.
"대사!"
신소봉이 밖으로 나간 뒤에, 비로소 왕은 눈을 조금 떴다. 그리고 편조를 찾았다.
가득이나 어두운 빈전에 향 연기가지 자욱하여 똑똑히 보이지는 않으나, 중 편조가 재궁 앞에 합장 명목하고 염불을 외고 있었다.
"대사!"
"불러계시오니까?"
"다시 공주를 안 돌아올까?"
"생자 필멸이올시다."
말이 끊어졌다.
또다시 왕은 눈을 감고 편조는 염불을 외었다.
잠시 정숙한 가운데서 시간이 흘렀다. 잠시 뒤에 이번은 편조가 염불을 중지하고 왕 쪽으로 돌아앉았다.
"생자 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이것이 사람의 세상이올시다. 여기 이르러서는 왕후 장상이라도 필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이미 돌아가셨거니와, 전하께서는 전하를 아버지로 알고 있는 천만의 생령을 위해서라도 좀더 보중하시지 않으면 안 될까 하옵니다."
마디마디마다 똑똑히 끊어서 아뢰는 편조의 말. 그러나 왕은 여전히 응치 않았다.
"전하! 다른 점은 그만두고라도 공주전 재세시에 공주전께서 그렇듯 사랑하시던 이 창생을 위하셔서라도 옥체를 보중하옵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애통해 하시는 마음은 어리석은 빈도도 짐작 못하는 바가 아니옵니다마는, 이 창생을 위해서보다도 전하를 위해서보다도, 전하께서 이 창생을 버리시면 승하하신 공주전의 영이 가장 슬퍼하실 점을 생각하셔서라도, 좀더 보중하시지 않으면 안 될까 하옵니다."
무슨 말을 할지라도 여전히 눈을 감고 부처 같이 가만히 앉아 있는 왕. 좌우 눈에서는 눈물만 흘러서 침침한 촛불에 눈물이 번쩍거리고 있다.
편조는 딱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왕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마음을 돌려서 수라를 진어케 하나!
공주 상하한 뒤에는 마치 산송장으로 자처하는 이 왕을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인간다운 감정과 감각을 회복하도록 하게 하나?
본시부터 공주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다른 여인을 거들떠보지 않던 왕이라, 공주 승하한 뒤부터는 여인이란 여인은 모두 악마로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번 공주 승하한 뒤로는, 왕은 모든 아리따운 후궁들까지도 악마 같이 보였다. 공주 없는 이 세상에, 다른 계집들은 어째서 존재하느냐? 저런 계집들은 왜 살아 있고, 공주는 왜 없어졌느냐? 이러함 마음으로서 여인들을 빈전 가까이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공주 승하하였는지라, 당연한 순서로 이젠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 혜비 이씨가 빈전에 들어오다가 왕에게 쫓겨난 이래로, 빈전에는 여인이라고는 왕의 모후되는 명덕 태후 한 사람이 들어올 뿐, 다른 여인은 얼씬하지 못했다.
지금에 있어서 가장 근심되는 것은 왕의 건강이었다.
벌써 8, 9일 간을 수라를 진어치 않았으매, 어떻게 해서든 수라반을 대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급무였다.
수라를 권키 위하여, 왕께 생자 필멸의 이치를 강론하던 편조, 이 돌부처와 같은 왕을 우러러보며 잠시 가만히 있다가 한 걸음 무릎으로 나아가서 왕의 딱 맞은편에 앉았다.
"전하!"
대답이 없었다.
"전하!"
"……."
"전하!"
편조는 왕의 양손(무릎 위에 합장하고 있는)을 꽉 잡았다.
"전하, 전하!"
"대사."
왕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은 폭발하려는 통곡의 서곡이었다. 대사. 한 마디 부를 뿐, 왕은 체면을 내던지고 당신의 손을 뽑아서 얼굴을 덮고 울었다.
"대사, 반혼법(返魂法)은 불가(佛家)던가? 도가(道家)전가?"
울음에 섞어서 하는 왕의 하소연에 기지 있는 편조는 매달렸다.
"전하, 빈도가 마침 그 말씀을 올리려 했습니다. 공주전에 가셨다 할지라도 반혼술로 다시 전하를 뵐 날이 있을까 하옵니다. 보중하소서. 전하, 보중하소서."
편조는 왕의 손을 다시 끌어잡고 장삼 소매로써 왕의 눈물을 닦아 드렸다.
"만약 그런 술(術)이 있다 하면, 여기 공주의 혼을 다시 불러주오."
"아니올시다. 입토(入土)키 전에 혼은 공주전 속체에 그냥 계셔서 출현하실 수가 없사옵니다. 보중하소서. 보중하소서. 공주전 입토하신 뒤에는 빈도가 반드시 공주전의 혼으로 전하를 모시게 하오리다. 그때 돌아오신 공주전의 혼께서 전하의 너무도 수척하신 용안을 대하오면 얼마나 심통하오리까? 보중하소서. 수라를 부릅소서. 공주전을 위하셔서옵니다."
그날 왕은 비로소 수라를 진어하였다.
적적한 수라!
이전에는 반드시 공주가 함께 앉아서 서로 권하며 서로 받으며 하던 수라반을 혼자서 받을 때에, 왕은 너무도 적적하여 편조에게 배식을 명하였다.
한 개 옥천사(玉川寺) 사비(寺婢)의 자식으로 그 아비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중 편조는, 이리하여 왕의 총애와 신임을 차차 높여 갔다.
2월에서 3, 4월 공주의 영해를 정릉(正陵)에 안장하기까지 왕은 빈전에서 난 적이 없었다.
왕은 이제 공주 입토한 뒤에 편조의 반혼법으로 공주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이 단 한 가지 희망으로 쓸쓸한 삶을 그냥 계속하였다.
2월에서 3, 4월 날이 차차 따스해감에 따라서 공주의 재궁에서도 차차 냄새가 괘악해 갔다. 밖에서 갑자기 빈전에 들어오는 사람은 한순간 숨이 딱 막힐 만치 냄새가 괴악했다. 냄새를 감추기 위하여 눈이 쓰라리도록 향을 피웠지만, 인위적 향내가 그 냄새를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 방에 젖은 왕의 코도 이 냄새는 맡았다. 그러나 이 냄새조차 왕에게는 눈물을 자아는 향내였다. 이것이 공주의 몸이 썩느라고 나는 냄새거니 하면, 이 냄새가 밖으로 나가서 대공에 헤어지는 것이 아까웠다.
많은 물재를 들여 삼화서 가져온 오석(烏石)으로 명공이 깍은 석관에서도 틈틈으로는 붉은 물이 바닥에 새어 내렸다.
다른 사람이면 이 빈전에 들어오기조차 싫어할 것이나, 왕은 빈전에서 한 번도 밖에 나가 보지를 않았다.
찬 바람이 살을 에고 산야에는 아직 두터운 눈이 쌓여 있는 2월에 승하하여, 백화가 난만한 5월에 안장을 할 동안 눈이 녹고 땅의 얼음이 풀리고, 흙이 트고 풀이 나고 자라고,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남국 갔던 새들이 모두 돌아오고 할 동안 왕은 세월 가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어둠침침한 빈전 촛불과 향 연기와 향내와 악취가 뒤서리는 가운데, 끔과 같이 생시와 같이 만 3개월나마를 보냈다.
그것은 다만 뒤숭숭하고 순서 없고 갈피를 차릴 수가 없는 날이 가고 오고 하는 것뿐이었다. 그 가운데는 아무 합리된 일도 없고 명료한 일도 없고, 어벙벙한 꿈과 같은 세월이었다.
때때로 재상들이 와서 무엇이 어떻다 하고는 돌아가고, 태후도 간간 와서 이렇다 저렇다 하다가는 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섞바뀌고 혼돈되어 돌아갈 뿐, 왕은 모두 알지도 못했거니와 알려 하지도 않았다.
공주는 이젠 돌아올 길이 없는 사람이라는 일념뿐이, 지금의 왕을 지배하는 단 한 가지의 생각이었다. 그 밖의 것은 왕의 감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이리하여 5월 공주를 정릉에 안장한 뒤 왕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 건장하고 원만하던 체격이며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도록 여위고 약해진 것은 두말 할 것 없거니와, 성격과 감정에 있어서도 본시의 왕과는 딴사람이 되었다.
그 세밀한 관찰력과, 치밀하고, 밝던 정치안이며, 인자하고 관대하던 성질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멍하니 얼혼 빠진 사람같이 되어 버렸다. 무한한 창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나절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앉아 있기 일쑤며, 신하들이 무슨 말을 할지라도 듣는 둥 마는 둥, 몇 번을 찾아도 대답도 않고, 대답이 있댔자 헛대답이 많았다.
말하자면 인간으로서의 온갖 감정이며 감동을 잃은, 한 개의 움직이는 허수아비였다.
공주를 정릉에 안장한 지 한10여 일 지난 어떤 날 밤이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왕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므로, 침전 밖에 입직해 있던 환관 최만생이 침전 툇마루로 돌아가려 할 때 왕이 침전에서 나왔다. 보매 뜻밖에(미복이나마) 두면까지 쓰고 어디 밖으로 거돌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만생과 동료 환관 한 명이 달려와서 부액을 하려 하매, 왕은 손짓으로 그만두란 뜻과 조용하라는 뜻을 나타내었다.
만생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디 거동을 하시옵니까?"
"음, 편조의 집까지!"
작은 소리로 왕은 대답했다. 그리고 더욱 작은 소리로,
"미행이다. 너희만 따라라."
하고 보태었다.
이리하여 왕은 환관 두 명만 데리고 몰래 대궐을 빠져나왔다.
대궐 담을 넘어 한길까지 뻗어 우거져 있는 꽃을 우러러보며, 말없이 걷는 왕의 뒤를 환관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만일을 경계하며 따랐다.
현월(弦月)은 벌써 서산에 걸리고, 상쾌한 바람이 옷깃을 날리는 여름 저녁이었다. 아직 초저녁이라, 한길에는 오고가는 사람도 꽤 많았다. 이러한 가운데를 왕은 왕으로서 따로이 근심을 갖고, 환관들은 직무상의 근심을 갖고, 묵묵히 행인의 눈을 피하며 갔다.
"반혼법(返魂法)을……."
왕이 편조를 밤에 찾은 것은, 편조의 반혼술로 그리운 공주의 면영이나마 다시 한 번 보고자 함이었다.
호반(胡盤)에 주안을 배포하고자 왕과 편조는 마중앉아 있었다.
"전하, 아직 시간이 이르옵니다. 대개 혼백은 자정이 지나지 않으면 출유치 않으옵니다."
왕께 공손히 술을 부어드리며 편조는 이렇게 말했다. 좀하면 도로 펴려는 얼굴을 정신 차려 근엄히 꾸미며 편조는 연하여 왕께 술을 권했다. 왕은 편조가 드리는 술은 받아서는 들이켜고 받어서는 들이켜고 했다. 한 번도 사양하거나 주저함이 없었다.
편조는, 드리는 대로 술을 받아 들이켜는 왕을 보면서 속으로 탄식하였다. 일국의 국왕, 그가 한 번 호령하면 천백의 미희(美嬉)라도 당장에 구할 수 있겠거늘 잃은 공주에 대한 지극한 사모의 염이, 이 금지옥엽으로 하여금 보행으로 천승(賤承)의 집까지 오게 하였구나!
"전하!"
상에 벌인 많은 음식 중에, 공주에게 소하는 뜻으로 채소만을 안주로 하는 이 정열의 중년 남자! 여위고 여윈 얼굴은 어느덧 술 때문에 검붉게 되고, 툭 두드러진 광대뼈 위에 번득이는 두 눈은 눈물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충혈이 되었다. 떨리는 그의 손. 술 때문에 중심을 잡기 힘들어 연하여 팔꿈치로 호반을 짚어 쓰러지기를 면하는 쇠약한 몸.
이 가련한 왕의 심경을 생각할 때는 편조의 눈에도 눈물이 괴려 하였다.
"전하, 오늘 반혼술로 공주전의 혼백을 어전에 부르기는 하겠습니다마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한 뒤에 편조는 그 말끝을 맺었다.
"전하께서 공주전의 혼백을 한 번 보시면, 다시 이전과 같으신 인군(仁君)이 되시겠사오니까?"
왕은 눈을 들었다. 바야흐로 들이켜려던 잔을 중도에 멈추었다.
"적적하구려, 적적해! 오늘 보면 내일 또 보고 싶고, 내일 보면 또 모레 보고 싶고……."
"아니옵니다. 혼백은 자유롭지 못한 것. 한 달에 한 번쯤이나 헌신케 하올까, 매일은 힘들 것 같사옵니다."
"한 달에 한 번. 한 달, 삼십 일, 서른날……."
혼잣말 같이 이렇게 뇌던 왕은 아직 들고 있던 잔을 딱 하니 상에 놓았다.
"대사, 한 닿에 한 번씩이라도 제발……."
"그 대신 빈도의 아뢴 말씀을 잊지말아 주시옵시오. 이전과 같은 인군이 됩소서. 전하 한 분을 우러러보는 창생을 살피소서."
다시 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밤은 차차 깊어갔다.
자정. 반혼법을 베풀어서 대장공주의 혼백을 왕 앞에 다시 불러낸다는 시각이었다. 이때 왕은 편조의 권하는 술 때문에 꽤 취한 때였다. 취하기는 꽤 취했지만, 일단 정신을 박은 일이라, 연하여 아직 자정이 안 되었느냐고 채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자정. 편조는 일어나서 왕을 부액하였다. 연하여 쓰러지려는 왕을 단단히 부액하고, 반혼실로 천천히 걷는 동안, 편조는 왕의 귀에 입을 갖다대고 한 마디 한 마디씩 똑똑한 말로 이렇게 말했다.
"혼백은 형태는 있으나 소리는 없습니다. 첫째로 말씀을 거시지 말 것이며 혼백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오니, 밝기 전에 놓아 돌려보내셔서 후일 기약에 편리토록 하시옵소서."
반혼실은 복도를 통하여 뒤에 따로이 달린 이 집 후당이었다.
편조가 앞서서 문을 열어 잡고 왕을 인도하여 반혼실 안으로 들어갓다. 방 머리맡에는 금불 한 체가 안치되어 있고, 아래칸은 오색이 찬란한 비단으로 담벽을 삼고 그 앞에는 향로에 향불이 피워 있으며, 머리맡 불전에 놓인 방석은 편조의 자리인 듯하고, 웃간 담벽에 기대어 금병풍이 둘리고, 그 앞에 용을 수놓은 방석이 왕의 앉을 자리인 모양이었다.
편조는 먼저 왕을 인도하여 불전에 서서 함께 합장 예배하였다. 그리고는 왕을 왕의 자리로 가게 하고, 자기는 반혼 향가루 한 줌을 내어다가 행로에 뿌린 뒤 불전에 가서 명목하고 꿇어앉았다.
불전에 명멸하는 촛불 두 대와 향로 좌우편에 켜 있는 두개의 촛불을 광원으로 한 이 방은 비교적 밝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용석에 앉아 기다리는 왕. 엄숙한 태도로 불전에 축문을 외는 편조.
행로에서는 편조가 뿌린 향가루 때문에 자욱이 연기가 피어오른다.
엄숙하고 정숙한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고. 왕은 너무도 경건한 찰나에, 어느덧 몹시 취했던 술조차 얼마간 깨었다.
편조의 축문은 차차 차차 템포가 빨라갔다. 방 안의 향기는 더욱이 자욱했다.
향로에서는 마치 산화(山火)와 같이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향가루도 거의 탔는지 연기가 점점 엷어졌다.
그때 그 엷어지는 연기의 틈으로 왕은 보았다.
틀림없는 대장공주였다. 너무도 엄숙한 기분이기 때문에 취기도 거의 깬 왕의 눈이 그릇 보앗을 까닭이 없었다.
연기가 차차 엷어가는 뒤로, 오색 비단을 바른 담벼락을 등지고 단아히 서 있는 한 개의 이국 부인(異局婦人).
희고도 좀 넓은 이마며, 좀 짧은 듯한 윗입술이며, 길고 꼬리가 위로 향한 듯한 눈하고 시꺼먼 속눈썹이며, 아로새긴 듯한 코도, 또는 그 자태도, 옷(원나라 황실 복장이었다)까지 어느 곳이든 일호도 틀림없는 공주의 현신이었다. 너무도 기이한 일에, 한순간 눈이 아득해졌다가 다시 왕이 시력을 회복했을 때에, 아래칸 공주는 얼굴에 미소를 나타냈다.
이젠 연기도 사라진 때라, 방긋이 웃느라고 열린 입틈에서, 왕은 공주의 이빨까지 보았다. 좌우편 송곳니가 덧니이기 때문에, 웃을 때는 더욱 고혹적으로 보이던 공주의 그 덧니까지 틀림이 없었다. 단지 승하 직전의 공주와 조금 다른 점은, 공주가 제 아무리 늙지 않는 북극 태생으로서 승하할 때까지 청춘미를 그냥 보전하고 있었다 하나, 그래도 나이가 서른이 넘은 완숙한 맛은, 그 얼굴에서든 자태에서든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지금 왕 앞에 나타난 이 공주는, 왕이 일찍이 백안첩목아로서 원경에 있어서 처음 공주를 알고 처음 공주와 사랑을 속삭일 그때의 공주였다.
"아, 공주!"
그것은 애무와 반가움의 고리라기보다, 오히려 맹호의 신음성과 같았다. 이런 신음성을 나며 왕이 공주에게로 달려 내려가려 할 때, 왕의 옷깃을 붙든 사람이 있었다.
펄떡 보니 편조였다.
편조의 만명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편조는 왕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전하, 아까 아뢴 말씀을 잊지 마시도록. 그리고 저 문을 열면 협실이 있사옵고, 그 방에는 금침 준비도 있사옵니다. 그럼 빈도는 밝는 날 다시 배알하겠사오니, 오래 막히셨던 정회를 푸시옵소서."
"공주!"
왕은 편조의 말은 듣는 듯 마는 듯, 편조가 방 밖으로 나가는 동안 두 팔을 벌리고 허둥지둥 공주에게로 내려갔다.
공주는 얼굴에 부끄럼과 미소를 띠고, 역시 왕을 맞으려 한 걸음 두 걸음…….
왕을 반혼실에 남겨 두고, 편조는 홀로 나왔다.
왕과 함께 있기 때문에 저린 팔다리 허리를 몇 번의 기지개로 써 풀면서 정침으로 향했다. 왕을 모시느라고 얼굴에 지었던 근엄한 표정도 사라졌다.
재미들 보시오.
후당을 돌아보며 한번 씩 웃은 뒤에 걸음을 빨리하여 제 방으로 돌아왔다.
편조의 방에는 금침이 벌써 준비되어 있고, 편조의 베개에 엎드려 한 계집이 자고 있다.
편조는 내려갔다. 가만가만 내려가서 계집의 좌우 엉덩이의 틈을 발로 쿡 찔렀다. 거기 깜짝 놀라서 일어나는 계집을 붙안아 윗목으로 떼구루루 굴려 버리고 덤썩 제 자리에 누웠다.
굴러간 계집은 일어나 앉았다. 아직 졸음에 취한 눈으로 편조를 내려다보았다. 그 계집을 편조는 쳐다보면서, 눈을 부릅떠 보였다.
"요망스럽게 잠은 웬 잠이야?"
계집도 마주 흘겨보았다.
"중, 중, 까까중!"
"예끼, 여우 같으니!"
편조는 계집을 꾸짖었다.
"내가 여우 같으면 대사는 뭐 같으오?"
"멧돼지 같이. 그래 속이 시원하니?"
마주보는 계집의 흘기는 눈이 가늘어졌다. 서로 가느다란 눈으로 한참을 흘겼다.
"내가 멧돼지면 임자는 암퇘지 되련?"
"싫어!"
"싫어? 잘도 싫겠다."
"싫구나! 싫으면 임자는 나가구 주씨(朱氏)나 보내게."
"것두 싫구나!"
"이두 싫구 저두 싫구. 에라, 임자 오늘 밤은 암퇘지 되게."
편조는 벌떡 일어났다.
한 소리 계명성으로 짧은 밤이 밝았다. 절에서 부처를 섬길 때부터 일찍 깨는 습관이 든 편조는, 거의 밤이 다 가서 겨우 잠깐 잠이 들었지만 날이 밝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편조는, 편조가 일어나는 기수에 벌써 툇마루에 준비된 세숫물에 밤 사이 기름때를 활활 씻어 버리고,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등대된 옷을 바꿔입고 후당으로 돌아가 보았다.
왕도 벌써 일어난 모양이었다. 공주의 혼백을 밝기 전에 돌려 보내고는 이내 잠이 못들어 일어난 모양이었다. 협실 밖에서 잠시 방 안의 기수를 살핀 뒤에, 편조는 헴 헴 두어 번 기침을 했다. 얼굴에는 근엄한 표정을 붙였다.
"헴! 헴!"
안에서는 여전히 동정이 없었다.
"헴! 헴!"
또다시 기쳐 보고 그냥 동정이 없으므로, 문을 방싯이 열어 보았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왕. 누구에게 혼을 빼앗긴 사람 모양으로 눈이 퀭하니 이물 위에 까치다리로 앉아서 한 군데만 주시하고 있다. 곁에서 대포를 놓을지라도 모를 모양이었다.
편조는 이 모양을 보고 문을 좀더 넓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왕 앞에 나갈 때마다 우그러지는 어깨는 또 우그러졌다.
"빈도올시다."
궁중 예절을 모르는 편조는, 왕의 맞은 편에 가서 정면으로 왕께 절하였다. 그러나 왕은 여전히 한 군데만 주시하고 있을 뿐, 편조의 인사를 의식치 못하는 모양이었다.
절을 해도 인식치 못하므로 편조는 한 번 큰소리로 기침을 했다.
왕이 비로소 알았다. 깜짝 놀라며 몸까지 소스라쳤다.
"이게!"
"빈도올시다."
왕은 잠시 멍하니 편조를 마주보았다.
"오! 대사, 밝기 전에 갔구려."
"혼배은 광명한 곳을 싫어하옵니다. 전하, 초조반을 진어합셔야지……."
"혼백은 형(形)아 있으나 체(體)는 없다는데, 공주의 혼백은 체까지 있었구려."
체, 더욱이 10수 년 전의 탄력 있는 처녀로서의 공주의 체를 지난밤 다시 본 왕은 차마 잊지 못하겠다는 모양이었다.
"네, 전하의 지극하신 정성에 부처가 감동하셔서 특별히 체까지 보낸 모양이옵니다."
"체까지, 체까지. 아직 방 안에 향내가 남고 몇 올 머리털이 남고. 대사, 오늘 밤 또 볼까?"
"전하, 얼른 초조반을 진어합식 황궁합셔야지, 대궐에서 알면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날까 하옵니다."
"대사, 나는 대궐에 안 돌아가겠소."
공주를 만나본 이 방을 차마 못 떠나겠다는 뜻이었다.
편조는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께서 황궁 안합시면 빈도의 목이 그냥 남비 못하리이다."
왕은 의아한 듯이 편조를 굽어 보았다.
"지금 세신 대족 권당 유림 사문(世臣大族權黨儒林士門)이 클클한 가운데서, 전하께서 한 개 천승(賤僧)의 집에 미행하셨다는 소문만 날지라도 빈도의 목은 달려잇지 못하리오다."
"그래도……."
"아니옵니다. 오늘은 환궁합소서. 내월 말에 다시 미행합시면 공주전의 혼백을 다시 어전에 현출케 하리이다. 공주전도 그날을 얼마나 기다리시리까? 오늘은 어서 초조반을 진어합시고 환궁합소서."
문득 왕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두르르 흘렀다. 그러나 초조반을 부르는 뜻으로 고즈넉이 눈을 감았다.
여름은 무르익었다.
교외에서 빛을 자랑하던 하록(夏綠)은 어느덧 개경 안에까지 스며들어서, 길가 담 틈 뜰 구석마다 푸른빛은 한창을 자랑하고 있다.
수령궁 향각(壽寧宮香閣) 앞의 작약(芍藥)도 제철이라고 만개하여, 하늘을 나는 나비들을 부르고 있다.
"이전에는 공주와 함께 따던 이 꽃을……."
지금 혼자서 바라보는 왕의 심사는 형용하기 어렵도록 적적했다.
향각 난간에 의지하여 한참 꽃을 굽어보고 있다가 왕은 탄식하며 자리에 돌아왔다.
자리에는 비단 한 폭, 붓 몇 자루, 단청 물 등이 준비되어 있고, 내시 몇 사람이 부채를 들고 묵묵히 분부를 기다리고 있다.
왕은 자리에 앉아서 붓을 잡고 눈을 감았다.
한 번 눈을 감은 뒤 뜰 줄 모르는 왕은, 여기서도 눈 뜰 것을 잊은 듯이 잠자코 있었다. 공주의 영(影)을 그려 보려고 이곳에 자리잡은 왕이었다. 이전 원나라에 있을 때부터 서(書)며 화(畵)에 있어서 입신의 기(入神之技)라는 찬사를 받아 오던 왕은, 몸소 공주의 진영을 그려서 이와 매일 대하고자, 여름의 작약 냄새 우거진 이 향각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공주의 모습을 생각하고자 일단 눈을 감자, 왕의 눈은 뜨이지 않았다. 해마다 공주와 함께 여름에는 작약을 따던 이 동산, 또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한 겨울을 공주와 함께 말타기 연습하던 연마장으로 쓴 일이 있는 이 동산에 자리를 잡자마자, 공주의 모습보다도 지난 16년 간의 공주와의 부부 생활이 주마등과 같이 왕의 머리에 어른거려서 붓을 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국의 군왕이나 또한 어지러운 정국의 통어자로서 왕의 과거는 기구한 생애였다. 연년 다달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우 외환.
이 고달프고 어지러운 생애를 보내는 동안, 물건의 그림자와 같이 왕의 곁에서 고초를 같이 겪어 드리고 간난을 나누어 맛보는 공주가 있었거늘…….
왕의 재위 14년 간 그냥 계속적으로 있은 어지럽고도 괴로운 과거를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하면서 겨우 지탱해 왔거늘, 이제는 이런 어지러운 일이 생기면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를 믿고 누구와 어려움을 나누랴?
낮이 되기도 전에 향각에 자리잡은 왕은, 화견을 앞한 채 해가 서산에 기울 때까지 그냥 망연히 있었다. 붓은 물에 적셔 보지도 않았다.
해가 서산에 넘고 들에 나갔던 새들이 제 깃을 찾을 때야, 왕은 비로소 눈을 떴다.
"마음이 산란해서 여기서는 안 됐다. 환궁하자."
여기서는 붓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일심을 다해 왕이 공주의 진영을 완성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신기(神技)라는 일컬음을 듣던 왕의 필력이요, 일심을 다해 가장 사랑하는 이를 그린 것이라, 과연 혼이 든 듯한 진영이었다.
진영이 완성된 뒤부터, 왕은 끼니때마다 진영의 앞에도 수라반을 갖다바치게 하여 산사람 대하듯 하였다. 그 애무와 대접에 있어서 공주 생존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하였다.
이렇게 공주에게 마음을 향하기 때문에 왕은 온갖 세상사가 귀찮았다.
이렇다 저렇다 대신들이 문제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귀찮고 시끄럽기만 했다. 이 모든 세상 잡무에서 피해 공주만 생각하며 그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이리하여 세상 잡무를 피하기 위해, 왕은 중 편조를 사부(師傅)로 삼고, 청한거사(淸閑居士)라는 호를 내리고 국정을 자순케 하였다.
과거 14년 간의 경험으로 보아서, 소위 세신 거족(世臣巨族)들은 서로 틀고 서로 물로 서로 짜고, 이리하여 삐억삐억 좋지 못한 꾀만 꾀하고, 도당(徒黨)이 짜지고 무어지면 자연히 세력이 생기고, 세력이 생기면 자연히 다른 세력과 다투고, 다틀 세력이 없으면 왕에 대하여 불쾌한 생각까지 품게 되고, 고려 5백 년 간을 쌓아 내려온 이 세력이 지금은 너무도 뿌리가 크게 뻗어서, 이들에게는 도저히 한 나라의 정사(政事)를 맡길 수가 없었다.
초야(草野)의 신진에서 유능한 인물을 추려낼 수 없는 바가 아니지만, 이들도 차차 올라가서 명망이 생기고 귀하게 되며, 어느덧 자기의 초라한 근본을 부끄러이 여겨서, 거족들과 혼인을 하고 그 틈으로 잠겨 버리니까, 이것도 또 한길만 있는 이이 아니었다.
유생(儒生)은 또한 나약하여 굳센 맛이 없고, 그 위에 학벌(學閥)의 뿌리로써 얼기설기 연락되어 강직한 정치를 하지 못할 것이다.
과거 14년 간을 고려의 국왕으로 있으면서 지나본 바, 통절히 느낀 바가 있어, 언제든 고립(孤立)하고 강직(强直)한 인물만 골라 오던 왕이라, 이번에 고려의 정치 대행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중 편조를 부른 것이었다.
득도(得道)한 불도(佛徒)이매 욕심 적고, 천한 태생이매 얽히는 연줄이 없고, 홀몸이매 역모할 근심이 없는, 이 편조야 말로 오래 왕이 구해오던 이상적 인물이었다.
이리하여 편조는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름도 어느덧 가고, 성했던 모기들도 송악으로 그림자를 감춘 어떤 가을날이었다.
왕도 이제는 얼마만치는 안돈이 된 때였다. 만날 고주의 진영과 음식 거처를 같이하며, 한 달에 한 번씩쯤은 반혼법으로 공주의 몸을 어루만질 수가 있는지라, 처음 한동안과 같이는 비통해 하지 않았다. 공주 잃은 뒤에 눈물이 잦아진 왕이라, 지금도 공주의 말만 나오면 두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했지만, 여느 때는 담소(談笑)도 예사로이 하도록 안돈되었다.
그 어떤 날 왕은 편조와 함께 강안전에서 한담을 하고 있었다.
편조의 말,
"빈도, 아니 소신은, 본이 불도 출신이라 귀현(貴顯)의 예의에 통치 못하옵니다. 이런 점은 관대히 용서해 주셔야 하겠사옵니다."
사실 편조는 어전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펴고 까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장식하는 것과, 어깨를 좀 우그리는 것이 편조에게 있어서는 최대 유일의 존경법이었다.
"전하의 관후하신 처분으로 사부라는 직책을 맡았사옵지만, 소신은……."
왕도 웃었다. 편조도 웃었다.
"네. 신, 신이 무엇을 알리까? 성의 대로만 행하옵지만 소 아니, 신 본시 미천하와 명문 거족들을 어(御)키 힘든 것이 걱정이옵니다."
" 그게야 무슨 근심이 되리까? 사부의 뒤에는 국왕이 있으니, 국왕의 명예와 명문 거족인들 거역하리까?"
"그야 그러하옵니다만, 신이 전하께 추천하와 시환한 사람들도 일단 높은 지위에만 오르면 신을 무식한 천승이라 수모하오니 이것이 신에게는 억울합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얼굴에 검은 찌를 한순간에 보였다.
그럴 듯한 말이었다. 천승(賤僧)명족?천승?명족. 왕이 이점에 대해 좀 생각하고 있을 동안, 편조는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다가 갑자기,
"전하, 내밀히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근시들을 물리기를 간청하였다.
왕이 근시들을 물린 뒤에 편조는 넙적 왕 앞에 엎드렸다. 때때로는 이렇듯 연락 없은 일을 예사로이 하는 편조임을 잘 아는 왕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묏더미 같은 편조의 등판을 멍하니 굽어보고 있을 때에, 편조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다.
"전하, 소신. 아니, 신을 죽여 주십사."
왕은 쿡하니 웃었다. 어두운 데 주먹으로 넙적하게 엎드린 것도 우스웠고, 그 묏더미만한 몸집에서 떨리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우스웠거니와, 떨리는 소신 아니 신이라고 정정하는 것이 더욱이 우스웠다. 왕은 고소(苦笑) 가운데서 이렇게 물었다.
"사부는 대체 무슨 일이오"
"죽여 주십사."
"글쎄 무슨 일이오?"
"신이 전하를 기망하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신이 전하를 기망하왔습니다. 신자로서 군왕을 속인다는 것은 마땅히 죽을 죈 줄 모르는 바가 아닙지만 기망하왔습니다."
"글쎄, 무슨 일이오?"
너무도 수다스럽게 구는 바람에, 왕도 눈을 크게하고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하, 오늘 밤 누옥까지 미행합시면, 신이 천람에 바칠 것이 있습니다. 죽여주십사."
"사부, 죽이기는 저녁 뒤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일어나서 이야기나 합시다."
"광은을 무엇으로 보답하리까?"
편조는 일어나 앉았다. 방금까지도 죽여 달라고 목소리를 떨던 그가, 천연히 일어나서 어깨를 우그리고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나타내고 마주앉은 이 꼴을 왕은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날 밤 편조의 집, 공주 반혼전 협실에서는 세 사람이 솔발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금병풍 앞 용석 위에 앉은 사람은 왕이였다.
그 곁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는 젊은 여인은 대장공주였다.
그 맞은편에 엉거주춤 꿇어앉아 있는 사람은 편조였다.
"전하, 반야(般若)라는 북국 여인이옵니다. 전하를 기망한 죄는 일백 번 죽어도 마땅하오니 처분하옵소서. 그러나 이는 신 스스로를 위함이 아니옵고, 위로는 전하를 위함이옵고 아래로는 전하를 잃으며 광명이 끊기는 고려의 창생을 위해서옵니다. 공주전 승하 후에 전하를 몇 달간 빈전에 모실 때에, 전하의 심경을 살피옵고, 신이 몰래 사람을 놓아서 전국에서 구해 온 여인 백여 명 중에서 골라낸 사람이 이 반야이옵니다. 공주전의 면영을 닮았다고 구해 온 백여명 여인 중에서 가장 흡사한 자로 택한 여인이 이 반야이옵니다. 전비(田卑)의 천생이 어찌 감히 용종(龍種)에야 비기리까마는, 그래도 얼른 보기에는 외람되이도 공주전의 면영을 닮았삽기, 행여 전하의 부르심을 불까 하고 시이 꾸몄던 한막의 연극이로소이다. 군왕을 기망한 죄 일백 번 일천 번 도륙을 당하와도 한이 없소이다. 죽여 주십사."
왕은 대답이 없었다. 눈을 딱 감은 채 묵묵히 있었다. 방심한 듯, 그 밖에 다른 표정은 없었다.
아직껏 공주의 혼으로 알고 애무하던 것이, 사실인즉 한 개 실물 여인에 지나지 못하였으니, 거기 대한 낙망 때문에 이렇듯 방심 상태가 되었나?
반혼술이라 무엇이라 해서 군왕을 이렇듯 농락한 편조의 행동을 괘씸히 보기 때문에 그 노염으로 이렇듯 묵묵히 있나?
이런 무리들에게 속아서 줄줄 따라다니던 당신의 행동을 스스로 부끄러이 여기기 때문에 대답이 없나?
혹은 대장공주 아니 이 반야라는 여인에게 애정이 품어지므로 그것을 꺼려서 가만히 있나?
왕은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반야도 또한 전하를 모신 지 수삭에, 외람되이도 전하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는지, 이젠 공주전의 혼백으로가 아니요, 반야 자신으로 모셔 보고 싶어하는 듯한 양을 보면, 그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심사가 가증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가련도 하옵니다. 성의(聖意)는 어떠하시온지……."
잠깐 말을 끊고 왕과 반야를 본 뒤에 편조는 또 말을 계속했다.
"또 한 가지, 반야는 전하를 처음 모신 뒤부터, 태기가 있는 모양이옵니다(왕은 이 말에는 흠칫하였다). 벌써 5, 6삭. 밭은 천비의 천종이나마 씨는 용종. 이 뒤라도 혜비전마마께서 왕자를 탄생합시면 다른 일이 없겠거니와, 그렇지 못하오면, 이 아기가 유일의 천하의 혈자가 아니오니까? 지금 나라의 정국이 어지러운 때에 하루바삐 혈사가 없으시면 고려의 사직이 위태롭사옵니다. 신의 죄는 일백 번 죽어도 마땅하옵기 어전에 죽음을 빌기와, 전하의 후를 생각하셔서 반야에게는 관대하신 처분이 계시기를 바라옵니다."
왕의 앞이라고 억지로 지으려던 근엄한 표정은 어느덧 자연적 위엄까지 띠었다. 눈에는 눈물 흔적까지 보였다.
왕은 그냥 침묵을 지켰다. 고요한 방에 세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잠자코 있었다. 한참 뒤에 왕이 일어섰다.
"전하 어디로……?"
편조가 펄떡 놀라서 뒤따라 일어섰으나, 왕은 따라오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두어 번 설레설레 젓고는, 머리를 푹 수그린 채 방 밖으로 나갔다. 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했다.
반야는 왕이 임어할 때부터 지금껏 머리를 가슴에 묻고 깎아놓은 듯이 앉아 있었다.
좀 뒤에 편조가 나가 알아보니, 왕은 아까 벌써 환궁하였다 한다.
그로부터 두 달, 편조는 대죄하는 뜻으로 집에 박혀 있어서 입궐치 않았다.
반야도 자기의 거실인 별당에서 근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죄를 준다는 뜻도 입궐하라는 분부도 없었다. 편조도 이번 일은 왕과 반야와 자기 세 사람만이 아는 사건이라, 어떻다 말을 낼 수도 없고, 단지 침묵중에서 왕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는데 뜻밖에도 섣달에 들면서 왕은 편조를,
수정이순 논도섭리 보세공신 벽상 삼한 삼중대광 영도첨의사사사 판중방 감찰사사 취성부원군 제조 승록사사겸 판서운관사(守正履順 論道燮理 保世功臣 壁上 三韓 三重大匡 領都僉議使司事 判重房 監察司事 鷲城府院君 提調 僧綠司事兼 判書雲觀事).
로 봉하고, 겸하여 환속(還俗)하기를 명하고 속명까지 신돈(辛旽)이라고 내렸다.
하
[편집]편조. 변하여 신돈은 이 너무도 황송하고 놀라운 성은에 울었다.
"첨의(신돈의 벼슬 이름), 나를 위해서 국정을 도와주오. 그사이 안 부른 것은 첨의를 밉게 봄이 아니라, 내 좀 생각하는 일이 있어서 그리하였소."
왕이 신돈은 대궐에 불러서 이렇게 말할 때, 신돈은 어린애 같이 엉엉 울었다.
"전화, 무에라 말씀 올리리까? 다만 전하께서 간사한 무리의 참소에만 귀를 기울이시지 않으시면, 신은 미련하오나 신의 힘이 미치는껏 신의 생각이 자라는껏은, 전하와 고려 생령의 복리를 위해서 이 노구를 아끼지 않으오리다."
이리하여 왕은 친필로써,
'사구아 아구사 생사이지 무혹인언 불천명(師救我 我救師 生死以之 無惑人言 佛天明).'
이라는 맹세문을 써서 신돈을 주고, 신돈은 고려 섭정의 지위에 서게 되었다.
반야는 잊어버린 존재 같이 되었다. 왕도 반야에 관한 일을 다시 신돈에게 묻지 않았다. 신돈도 이 열적은 말을 다시 왕 앞에 꺼내지 않았다.
태중이기 때문도 하겠지만, 나날이 아색이 창백해가는 반야를 신돈은 간간 별당까지 가서 위로 했다.
성욕이 강하기 때문에, 젊은 여인이 가까이 가기만 해도 어지러운 생각을 금하기 어려운 신돈은, 반야의 방에 가면 반야의 이부자리 쪽으로 눈이 갈 기회를 피하고, 반야의 아랫몸에 눈 줄 기회를 피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엄숙한 기분과 경건한 태도로 반야를 대했다.
자기의 방에서는 젊은 계집들과 음란한 장난을 기타없이 하는 신돈이로되, 바야에게 들어가 볼 때에는 언제든 어깨를 우그리고 근엄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내실과 별당과의 사이를 엄중히 경계하게 하여, 내실 여인들이 별당에 가는 것을 엄금하고, 하인들도 반야의 하인을 따로 두어서, 반야 하인의 내실 출입을 금하고, 내실 하인들의 별당 출입을 금하였다.
"장래를 기다리오. 상감마마의 부르시는 날을 기다리오. 태중의 아기가 나오시는 날은 상감께서 부르시겠지."
어깨를 우그리고 외면을 하고 반야에게 이렇게 말하는 신돈의 태도는 마치 재상가 소저에게 시종드는 늙은 충복 같았다.
신돈의 보호 아래서 복중의 왕자는 차차 세상에 고함칠 날을 고요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해도 어느덧 과거장에 말려 들어가고 새해가 이르렀다. 왕의 재위 15년이요, 원나라 지정(至正) 26년이었다.
그해 2월 신돈의 집 별당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첫 울음 소리를 쳤다.
사내였다. 대장공주에게 혈사가 없고, 다른 연인은 가까이하지 않은 왕에게는 유일한 왕자였다.
그러나 아기의 아버님되는 왕은, 아기의 탄생을 알지도 못했다. 신돈은 장차 좋은 기회를 기다리기 위해서 아직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아기는 탄생 후 며칠을 지나지 못해, 연령 두 살이라 부르게 되었다. 입춘(立春) 전에 탄생했는지라 입춘은 지나서는 두 살로 세었다.
그러나 두 살로 세게 되기까지, 아직 아버지의 축복을 못 받은 가련한 아기였다. 아버지의 복을 못 받았는지라, 이름도 아직 못지었다.
별당 하인들만이 '아기마마'라 불렀다. 신돈이 이렇게 시킨 것이다. 그러나 왜 '마마'라고 부르는지는 신돈과 반야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공주를 정릉에 안장한 지도 1면이 지났다.
공주의 1주기까지는 감히 이럼 말을 어전에 꺼내지 못했지만, 1주기가 지나면서부터 대신들은 왕께 왕비 간택하기를 졸랐다.
그리고 안극인(安克人)의 따님을 후보자로 들었다. 왕에게 원자가 없는지라, 어서 원자를 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왕은 마음에 없는 일이었다. 현재 있는 혜비 이씨며 그 밖의 궁년들도 돌보지 않거늘, 어찌 또 무슨 여인은 맞아들이랴? 그러나 너무도 귀찮게 하므로, 어떤 날 이 문제를 신돈에게 의논하였다.
"납비하옵시오."
신돈의 의견은 간단하였다.
"그러니 지금 혜비도 혼자 공방을 지키는데, 또 한 과부를 만들면 무얼 하오?"
적적한 듯이 왕이 이렇게 말하매 신돈은,
"그렇지만 전하께서 거절하오시면 연달아 상계가 들어올 테니, 귀찮지 않사옵니까?"
하여 무사주의를 취하기를 주장하였다.
왕은 신돈의 이 의견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반, 무어? 반……."
거북한 모양이었다. 신돈은 알아들었다. 신돈은 씩 웃었다.
"전하, 축하드리옵니다. 거 2월에 왕자가 탄생하였습니다. 전하 이하로 고려 천만 창생의 행복이로소이다."
왕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기쁜 듯한 그러면서도 더 적적한 기괴한 심경이었다.
왕자가 공주에게서 났으면 얼마나 기쁘랴?
공주 생존시에 늘 왕자를 보고 싶어하더니. 공주 자신의 몸에서 못 낳으면 다른 여인의 몸에서라도 왕의 혈사가 생기기를 그렇게도 기다리더니…….
지금 난 왕자가 하다못해 공주 생존시에라도 났다면, 공주도 마음을 놓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공주 임종의 마지막말,
'마마께 후사 없으신 것이 죄송하옵니다.'
왕은 문득 물었다.
"언제요?"
"네? 네, 2월 ××일이옵니다. 원자께서도 건강하오시고 반야도 산후 평안하옵니다."
왕은 눈을 굴려서 벽의 건 공주의 진영을 쳐다보았다. 산 듯, 바야흐로 입을 움직일는 듯 왕을 굽어보는 공지의 진영.
신돈이 퇴궐할 때에, 왕은 원자를 축복하는 뜻으로,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에 옥대를 주었다. 이름은 무니노(無尼奴)라 지었다.
드디어 안극인의 따님을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비극의 주인공인 이 정비(正妃) 안씨도, 첫날부터 별궁에 거처하고 그의 청춘을 외로이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가련한 여성이었다.
어젯까지도 일개 중에 지나지 못하던 신돈이, 놀라운 세도 자리에 올라가면서 고려의 조정은 물끓듯 하였다.
왕의 뜻을 받아 신돈의 행한 첫 번 정사가 세신 권족들의 그 얽히고 설킨 뿌리들을 죄다 잘라 버리는 것이었다.
한미한 곳에서 자란 신돈이라, 나라의 정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이런 복잡한 문제는 잘 처리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열(熱)과 성(誠)으로써 여기데 대신하려 하였다.
세세로 내려온 조상의 위력을 방패삼아 아무 훈공도 없이 높은 자리에서 평안히 지내는 무리, 소위 대국이라는 원나라에 결탁해 원나라의 세력을 빌어서 제 고국에서 세도를 하려는 무리, 왕에게 아첨하여 권력을 얻어 가지고 아래를 누르는 무리, 사병(私兵)을 양성하여 이로써 국방(國防)에 당하지 않고 도리어 개인 세력을 높이려는 무리.
중 출신의 신돈에게는 꺼릴 만한 아무 인연도 없었다.
공자 맹자가 인연이 없으니 그의 후배 되는 유림도 꺼릴 것이 없었다.
세족(世族)에게 연분이 없으니 권문도 무서운 바가 없었다. 역사를 안 배웠으니 원나라도 무서운 줄 몰랐다.
고려에서 높일 사람은 왕 한 분밖에는 없다.
고려 왕은 공자에게 구속될 것이 아니요, 원나라에 구속될 것이 아니요, 권문 세족에게 구속될 것이 아니요, 유림에게 구속될것이아니요, 만약 구속될 것이 있다면, 단지 고려 백성에게만 구속되어야 할 것이다.
세태에 무식하기 때문에 이런 용감한 단안을 내린 신돈은, 왕이 맡긴 자기의 권한을 높이 들고 재추에 일어섰다.
신돈이 이렇게 아무 배경도 없는 한 개의 중으로서 고려 조정에일어서매, 고려 조정에서는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자기네들끼리 맡아볼 때에는 자기내끼리 서로 깎고 싸우고 했지만, 상대편으로 신돈이라는 중이 나타나매, 그들은 자기네의 쟁투를 중지하고 일제히 신돈과 맞서게 되었다. 자기네들은 그래도 재상가라 유림이라 서로 얽힌 곳이 있지만, 조상 때에 아무 훈공도 없는 일개 중이 일어서매, 일제히 그리로 싸움의 예봉을 돌렸다.
좌사의대부 정추(左司誼大夫 鄭樞)와 우정언 이존오(右正言 李存吾) 두 언관의 상소가 그 첫 시합이다. 상소문은 대략 이런 뜻이었다..
그 어떤 날 문수회(文殊會)에서 보매,
"영도첨의 신돈은 신하의 자리에 서지 않고 전하와 나란히 하여 구경했으며, 영도 첨의의 하명이 내리는 날도 조복(朝服)을 입지 않았으며, 반달이 지나지 못해 대궐에서도 곧추서서 다니며, 말을 탄 채로 홍문(紅門)을 출입하며, 늘 전하와 나란히 하여 호상(胡床)에 앉으며, 자기 집에서도 재상들이 뜰 아래에서 절하는 것을 자기는 방에 않아서 받으니, 이런 외람된 자는 벌하셔야 합니다."
이 상소문을 왕은 예에 의지하여 신돈과 호상에 나란히 앉아 받았다. 그러나 상소문을 보고 신돈은 안색이 변하여 상 아래 내려 꿇어앉았다.
"전하, 신이 예절을 모르기 때문이옵니다. 죄하십시오."
그러나 왕은 내려앉은 신돈을 몸소 도로 붙들어 상에 오르게 하였다.
"섭정, 내 왕과 나란히 한다는 것은 결코 예절에 어그러지지 않은 일이외다. 오늘 첨의가 세신(世臣)의 일게 상소문에 이렇듯 굴하면 장래 어떻게 국정을 마음놓고 맡기리까?"
그리고 도리어 정추와 이존오를 불러서 꾸짖었다.
"첨의는 야생(野生)이라 예절에 서투른 것은 나도 알고 맡긴 바여니와, 그래 몸이 언관(言官)에 있으면서 민정과 와도에 관해서는 진언할 일이 없어서 겨우 이것이란 말인가? 연변에는 도적이 왕성하고 나라는 가물어서 백성이 농사짓기를 곤란해하는 이때에, 그래 예의의 말절이나 이렇다저렇다 할 밖에는 다른 말은 할 것이 없단 말인가? 그래서 넉넉히 언관의 직책을 다할 수가 있을까?"
이리하여 정추를 동래 현령으로, 이존오를 장사 감무로 좌천시켰다.
권족들이 벌(閥)을 짜고 돌아가던 것을 미워하던 왕은, 이리하여 아무 벌력(閥力)이 없는 신돈을 높여 주어서 고려조 대대의 비정을 깨뜨리려 했다.
서울서 놀고 있는 장신(將臣)들을 차례차례로 변방으로 쫓았다. 이것은 첫째로 변방을 침범하는 도적을 막기 위함이요, 둘째로 장신들을 서울에 그냥 두면 서로 할퀴고 흐리고 뜯고 h함하고 하므로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무능한 세족(世族)들의 벼슬을 용서 없이 깎았다. 아직껏은 무능한 줄 알지만, 혹은 학벌로 혹은 족벌로 얽히는 곳이 있어서, 그냥 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무능한 명문들을 없이하기 위함이었다.
'정민추정도감'을 두고 신돈 자기가 판사가 되어서, 민원(民?)을 직접 듣기로 했다. 고려의 정사가 흐리고 권문이 너무 높기 때문에 횡포가 심해서, 백성들은 권문에게 재산을 빼앗기되 호소할 곳도 없어서 참던 것은, 신돈은 호소할 길을 터서 권문들의 횡포를 금하였다.
아직 정치를 모르고 자란 신돈이 갑자기 대권을 맡게 되었으므로, 어떻게 하면 좋은 정치를 백성에게 베풀게 되는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면서 노력하는 것을 왕은 가만히 방관하였다.
권세를 따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이었다. 신돈의 권세가 이렇게 되매, 차차 신돈에게 부회하는 무리가 많아갔다. 이 가운데서 신돈은, 소인은 추려서 자기의 좌우에 두어 몸을 장식하게 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추려서 상당한 관직을 맡겨서 갈충보국케 했다.
유림의 반대성, 권문들의 아우성 가운데서도 신돈의 권세는 나날이 높아갔다.
공자밖에는 존경할 줄을 모르고, 원나라 사람밖에는 숭배할 줄을 모르는 유림이며, 권문들은, 이 중 앞에 차마 머리를 숙일 수도 없고, 머리를 안 숙이자니 벼슬을 할 수가 없고 하여, 신돈을 떨구어 버리려고 별 야단을 다 하였다. 그러나 신돈의 세력은 이제는 튼튼해져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유림은 주둥이만 까졌지 신돈을 대할 만한 실세력이 없고, 권문들은 자기네들의 내홍 때문에 실력을 단합할 수가 없고, 장수들은 벌써 변경에 쫓겨가서 외구(外寇) 막기에 겨를이 없고, 이리하여 신돈을 거꾸러뜨릴 힘을 합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신돈은 왕의 고적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공주의 영전(影殿)을 설계하여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해 12월, 종실 덕풍군(德豊君)의 따님을 맞아서 익비(益妃)로 봉하고(성을 한씨라 고침) 왕비 책립의 잔치가 대궐에 크게 있는 날이었다.
신돈은 외연(外宴)이 끝나고 내연(內宴)으로 들어서게 될 때에, 백관을 거느리고 왕께 축하하는 절을 드린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예쁜 여인, 왕께 바쳐서 외따로이 별궁에서 청춘을 보내라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익비 한씨의 얼굴이 연하여 눈앞에 보이므로, 이것을 힘있게 떨구며 내실로 들어와서 신돈을 그의 비대한 몸집을 보료 위에 커다랗게 내던졌다.
뒤따라 신돈의 심복인 기현의 아내가 들어와서, 먼저 찌 앉은 촛불을 다스려서 밝혀 놓은 뒤에 좀 어색한 듯이 말했다.
"아까부터 누가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돈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기현의 아내를 쳐야보았다. 한쪽만 촛불을 받은 여인의 완숙한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물었다.
"누구야?"
"여인이올시다."
좀 질투하는 음성이었다.
"여인? 물론 젊은이겠지?"
"네."
"예쁜가? 임자와 어떤가?"
"소인보다 예쁘구말구요."
신돈은 눈으로 미소하였다.
"어디 불러들이게."
기현의 아내가 나가고 잠시 뒤에 문이 다시 열리며 젊은 여인 하나가 들어왔다.
여인은 문 안에 읍하고 섰다. 신돈은 여인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불이 약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자, 이리 와 앉지."
여인은 대답이 없었다.
"여기로 오지 않았다가는 내가 일어설테야."
계집은 앉았다.
"좀더 가까이……."
계집은 더 가까이 왔다. 신돈은 계집의 얼굴에 비치도록 불을 돌려 놓았다. 서민은 아니었다. 스물서넛 났을까? 꽤 예뻤다.
"무슨 일로?"
대답이 없었다.
"무슨일로? 나를 찾아온 이상에는 무슨 곡절이 있겠지? 대답 안하면 도로 내보낼 테야!"
"소인 지아비의 구실 자리를 좀 높여 달래러……."
"지아비의 구실 자리라? 그럼 왜 지아비가 안 오고 임자가 와? 병중(病中)인가?"
계집은 대답이 없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될 뿐이었다. 신돈은 거듭 물었다.
"병중이 아니면 절름발인가?"
"……."
"절름발이가 아니면 천친가?"
신돈은 불쾌해졌다. 말이 거칠었다.
"그래, 서방의 주소 성명은?"
선부의랑 이 모의 아내라고 계집은 대답했다. 신돈은 그것을 적었다.
"음, 알았다. 네 서방은 밝은 아침 잡아다가 곤장을 쳐서 경외에 내쫓고, 너는 내 집에 있거라. 벼슬을 얻고자 계집을 보내는 놈은, 벼슬도 못하고 계집까지 앍을 것이고, 너는 이미 내게 허락할 생각으로 온 이상에는 여기 있거라."
신돈이 계집을 좋아하여 집에 많은 계집을 둔 것을 알고, 신돈의 권력을 시기하는 권문들은 고약한 풍설을 많이 퍼뜨렸다.
신돈은 황음무도하여 계집을 즐기므로, 신돈에게 제 마누라를 바치고 그 덕으로 벼슬들을 얻으려는 무리가 많다. 지금 신돈의 신임을 받고 있는 무리들은 다 제 마누라를 빈 자들이다. 마누라만 바치면 어떤 벼슬이라도 할 수 있다.
이런 소문이 퍼져서 신돈의 집을 찾아 오는 젊은 여인들이 차차 생기게 되었다. 벼슬에 눈면 사람들의 행사였다.
본래 색을 즐기는 신돈은 처음 몇 명은 벼슬도 시켜 주었다. 그러나 차차 이런 무리가 너무도 많아지므로, 이런 도리어 너무도 해이된 풍속에 싫증이 생겨서, 그 비루한 행동을 벌하는 뜻으로 계집만 거두고 사내는 벌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집들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다. 신돈에게서 뜻밖의 선고를 들은 계집의 얼굴은 순간 창백하게 되었다. 몸을 흠쳤다.
한 각경 뒤, 캄캄한 신돈의 침실 밖에 계집 하인 하나가 어쩔줄 모르고 망설이고 있었다.
신돈이 알아차리고 누구냐고 물었다. 하인의 대답은 왕이 미행했다 하는 것이었다.
신돈은 깜짝 놀랐다. 처음은 거짓말인 줄 알았다. 반야의 정체를 안 이래, 다시 왕이 와 본적이 없었다. 더구나 오늘 대궐에서는 왕비 영립의 잔치가 없어서, 왕이 미행할 까닭이 없으므로 재차 물어보았는데 여전히 왕이 거동하셨다는 것이다.
신돈은 하릴없이 일어났다. 계집은 버려두고.
신돈은 나와서 얼른 소세를 하고 사랑으로 갔다. 과연 왕은 내시 두명을 데리고 와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거동하셨습니까?"
신돈이 절하매 왕은 적적히 웃을 뿐이다.
"오늘 잔치는 어찌하시고 이렇듯……?"
"또 가련한 과부가 하나 생긴 것 뿐이오."
왕은 또 미소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는 듯한 미소였다.
순간 전까지의 음락에서 갑자기 왕의 적적한 심경에 직면한 신돈은, 왕을 위로 코자 얼굴에 미소를 나타내려 했다. 그러나 잘 나타나지 않았다.
왕이 환관을 돌아보며 손을 내밀매, 환관은 무슨 작다란 보퉁이를 하나 왕께 드렸다.
"아기……."
"?"
"무니노에게……."
신돈은 가슴이 덜컥하였다. 왕이 갑자기 미행한 것은 아기를 보기 위함이었던가? 새 왕비를 맞기 위하여 대궐에서는 울적댈동안, 왕의 적적한 심사는 문득 당신의 유일한 혈육인 무니노 아기를 생각나게 했던가? 얼마나 고적하면 대궐을 벗어나서 이곳까지 미행하셨을까?
"이리로 모셔오리까?"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신돈이 바야흐로 일어나서 나가려 할 때에,
"잠깐 내가 들어갑시다. 겨울 바람이 찬데……."
하면서 몸소 일어났다.
환관이 왕을 부액하려 했다. 그것을 왕은 손짓으로 말리고 신돈과 함께 나섰다.
별당에서, 뜻하지 않은 왕의 임어에 방과 몸을 정제할 동안, 왕은 몸소 손에 보퉁이를 들고, 찬바람에 덜덜 떨며 기다렸다.
생후 처음 부자의 대면 방이 정제되기를 기다려서 들어가매, 남향하여 왕의 자리가 깔리고, 그 앞에는 강보에 싸인 아기라 분을 뜨고 주먹을 빨고 있으며, 반야가 윗목에 국궁하고 서 있었다.
왕과 신돈은 들어갔다. 왕은 남향으로 앉고, 신돈은 마주 꿇어 앉고, 반야는 영외에 엎드렸다.
왕은 힐끗 반야를 보았다. 보았을 뿐, 곧 도로 아기에게로 눈을 돌리고 잠시 굽어보았다. 신돈이 촛불을 정면으로 비친 아래 누운 강보의 왕자는, 주먹을 빨며 무엇이라 둥러둥얼하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 모양을 굽어볼 동안, 왕의 얼굴에는 차차 차차 미소가 나타났다. 음울한 기분이 식어 갔다. 왕은 손을 들어서 강보의 자락을 들었다. 그런 뒤에 당신 손이 찬 것을 근심하는 듯이 몇 번 손을 비빈 뒤에, 아기의 왼편 옆구리를 들치고 들여다 보았다.
"첨의!"
만면의 웃음.
"왕씨의 자손은 반드시 왼편 옆구리에 커단 사마귀 세 개가 있소이다. 자, 이것 보시오."
굽어보매 거기는 큼직큼직한 사마귀 세 개가 분명히 있었다.
왕은 그것을 본 뒤에 만족한 듯이 아기를 두손으로 조심이 쳐들었다. 얼굴 맞은편에 높이 쳐들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을 동안, 만족한 듯이 미소가 나타났던 얼굴에 미소가 없어지고, 차차 적적해졌다가 그 뒤에는 차차 우울해지고, 마지막에는 뺨으로 눈물이 흘렀다.
"전하, 왜 앙앙해하시옵니까?"
왕은 덜컥 아기를 놓았다. 흑 하니 느꼈다.
"전하!"
"공주가 살아서……."
"전하, 이미 가신 이는 가신 이올시다. 돌아오시지 못할 분을 생각하시면 무얼 하리까? 전하, 유일의 혈사가 장성하시기까지……."
"아니, 이 아기의 장성은 보지 못할 것 같구려."
"그런 말씀이……."
"아니, 연전(影殿)이나 낙성한 뒤에는 나도 머리를 깎고 공주의 명복이나 빌면서 여생을 보낼까 하지만, 그때까지도 살지 못할 것 같구려."
"아니올시다, 전하, 전하께서는……."
"첨의도 모르시지, 내 마음은. 이즈음 강간히 살아는 가지만, 속으로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드러눕기만 하면 방금이라도 죽을 것 같구려."
신돈은 대답할 바를 몰랐다. 하릴없이 손으로 아기의 볼을 쓸어 보았다.
"나 천추만세 후에 이 아기는 첨의께밖에는 부탁할 곳이 없소이다."
왕은 눈물을 씻었다. 그리고 가져온 보퉁이를 아기의 강보 곁에 가만히 같다 놓았다. 자식에게 어버이로서의 선사.
신돈은 그냥 허리를 굽히고 아기의 볼만 쓸고 있다가, 힐끗 영외에 엎드려 있는 반야를 보았다. 행여 왕의 눈이 한 번이라도 돌아올까 하여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 측은하였다.
신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왕도 손을 펴서 아기의 머리만 쓸어주고 있었다.
한참을 이렇게 말없이 지난 뒤에 신돈이 문득 몸을 조금 흠쳤다.
"신은 차차 늙어서 그러하온지, 밤엔 요통이 심하오니 먼저 물러가기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니, 나도 환궁하겠소."
신돈은 뜻하지 않고 반야를 힐끗 보았다. 반야의 몸이 약간 움직였다. 감정의 격동이 있는 모양이었다.
신돈의 눈을 따라 왕도 반야를 보았다. 그러나 한순간 뿐이요, 곧 눈을 돌렸다.
신돈은 왕을 모시고 별당에서 나왔다. 별당 밖에 국궁한 반야, 비록 쇠는 안 내지만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 밖까지 왕의 보련을 보낸 신돈은, 내실로 들어가지 않고 사랑에 자리하게 했다.
승하한 지 만 2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공주를 잊지 못해 앙앙불락하는 왕.
왕의 돌아봄을 못 받아 적적해 하는 반야.
두 개의 적적한 혼을 생각할 때에, 신돈은 오래간만에 느끼는 승도(僧徒)로서의 감정, 인간 무상에 얽힌 고적감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실에서는 한 여인이 그의 돌아오기를 기다릴 동안, 신돈은 사랑에서 인간 무상과 가지가지의 인간의 상태를 탄식하고 있었다.
신돈의 정치적 업적의 제 1년도 지났다. 각 장령들은 변방으로 보냈기 때문에 외구의 침범이 적었고, 관리의 탐욕을 요서 없이 벌하기 때문에 백성의 기운이 얼마간 펴지고, 얽히고 설킨 권문들의 거미줄을 되는대로 끓어 놓기 때문에 떼를 지어 음모 하는 일이 없어지고, 공맹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선비드르이 잔소리가 적어지고, 첫 솜씨로서는 성공한 편이었다.
세족과 선비들의 아우성은 꽤 심했지만, 이것은 모두 자기네의 개인적 원한을 토로함이었지 서민들은,
"성인(聖人)이 출현했다."
고까지 찬송했다.
이런 1년이 지나고 그 이듬해 여름, 작년 봄에 기공한 공주 영전이 거의 낙성되어 갈 때에, 왕은 영전을 몸소 가서 보고, 다시 헐어버리라는 엄명을 내렸다. 영전의 작고 좁아서, 중 3천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왕에게 불만이었다.
그리하여 짓던 영전은 그냥 버려두고 마암(馬岩)에다가 굉장히 큰 설계로써 새로이 짓기 시작했다. 왕이 공주를 생각하는 지극한 정성은 영전이나마 전무후무한 것을 짓고 싶었다.
신돈의 딱하였다. 왕의 심경을 동정하자면 얼마든 광대한 영전이라도 지어드리고 싶었으나, 지금 농번기에 많은 인력을 들여서 또 새로이 영전을 기공한다 하는 것은, 목민자(牧民者)의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 아닌게아니라, 벌써부터 민원성이 차차 들렸다.
새 영전 역사를 시작한 것이 6월. 6월에서 7월, 8월 한창 농번기에 농민들을 사역하는 공사라, 말썽이 차차 높아갔다.
이리하여 8월 어느 날, 도첨의 시중 유탁(柳濯)과 첨서밀적 정사도(鄭思道)와 정비 안씨의 친정 아버지 극인이 서로 의논한 결과, 왕께 영전 역사를 중지하기를 상소하였다.
그날도 마침 영전 도본을 상의 놓고, 어떻게 하면 전무후무한 영전이 될까 하고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할 때에 이 상소가 들어왔다.
왕은 처음에 무심히 이 글을 보았다. 보다가 얼굴이 검붉게 되었다. 왕은 글을 찢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둘러보고,
"삼사사(三司使) 입직 안했느냐?"
고 호령하였다.
어명에 삼사좌사 이색(李穡)이 달려와서 미처 대령한다는 말도 올리기 전에,
"도첨의 시중 유탁과 첨서밀적 정사도를 당장 순군에 내리와. 동지밀직 안극인은 집에 가서 대령할 것이고, 정비(定妃)는 아비의 죄로 제 친정으로 돌려보내오."
하여 영이 추상 같았다.
왕의 천명이며 또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는 이색은 명령대로 시행하려 나갈 때, 왕은 소매를 떨치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왕의 노염이 너무도 컸는지라, 재상들은 노염을 풀고자 연하여 아뢰었으나, 왕은 침전에서 나지 않고 침전에는 누구든 들이지 않았다.
정비 안씨를 쫓아 돌려보내기 때문에, 안문제까지 되므로, 태후도 근심하여 시신을 보냈지만, 태후의 시신까지도 왕을 보지 못했다.
그 밤 앙은 통분하여 한잠을 못 잤다. 공주의 신성함을 유린당한 것 같아서, 속이 불붙듯 하는 가운데서 왕은 그 사이 잊었던 3년 전의 일까지 회상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공주 승하한 뒤 처음은 사흘 동안 제사를 안 드렸다. 공주의 장례를 영화공주(仁宗의딸)의 의식에 좇아서 했다. 이 두 가지의 일이었다.
서민도 죽으면 그 첫날부터 제사를 지내거늘, 일국의 국모되는 공주는 사흘 동안 제사를 못 받았다. 또한 장례에 있어서도 영화 공주는 일개 왕녀에 지나지 못하는 신위(臣位)요, 대장공주는 일국의 국모임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장례를 영화의 의식에 따라서 행한 것이었다.
그때에도 이것을 도맡아 본 사람을 유탁이었다. 그때의 유탁이 이번에 또한 영전 역사를 중지하라는 상소를 한 것이다.
유탁에 대한 괘씸한 생각 때문에, 왕은 밤새도록 한잠을 못 이루고, 밝는 날 새벽에 신돈과 몇 재상들을 불러들이고, 삼사좌사 이색에게 명해 유탁을 국문케 했다.
이때 이색의 지혜만 없었다면 유탁은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색을 유탁을 국문한 뒤에 어전에 엎드려 복계하였다.
"유탁의 말을 듣사옵건대, 국모 승하하신 뒤에 신자로서 국모를 잃은 애통 때문에 순서를 잃고 부지중 궐제를 한 것이옵고, 장레의 절차는 신축년 난리에 고례문(古禮文)을 죄 잃어서 빙거할 바를 알지 못하옵고, 단지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공주 장의의 절차로 행하였다 하옵니다. 신자의 도리로서 아무리 애통 총망 중이기로 궐제를 했다는 일은 용서치 못할 죄옵지만, 국모상을 당한 망극 중이었사오니 관대한 처분이 계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런 말로 면하려고? 내 마음이 굽지 않으니 할 수 없소."
냉혹한 태도로 왕은 간신히 유탁을 죽일 것이라는 뜻을 나타내었다.
신도도 왕의 곁에 묵묵히 않아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맹렬히 노한 것을 처음 보므로, 어떻다 말을 끼울 수가 없었다.
무서운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군신은 잠시 묵묵히 있었다. 그 뒤에 왕이 또 입을 열었다.
"유시중의 죄로 말하자면, 첫째로 오래 수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불의한 일을 해서 하늘이 가무니 이것이 죄요, 둘째는 연복사의 밭을 빼앗았으니 이것이 죄요, 공주 승하 후에 삼일 궐제가 그 셋째요, 장례에 영화공주의 예를 좇은 것이 넷째요. 이렇듯 부르이 불충한 신하니 알아 하오."
이색이 또 응하였다.
"그러나 전하, 그것은 모두 기왕지사요……."
그냥 말을 계속하는 것을 왕이 빼앗았다.
"여러말 말고, 그러면 유시중이 옳고 내가 그르단 말이지?"
비교적 낮은 음성이나, 장차 폭발할 노염을 감춘 음성이었다.
한 찰나 두 찰나. 왕의 입이 드디어 폭발하려 할 때에 이색은,
"뿐만 아니오라, 이 일은 영도 첨의(신도)도 아실 일이옵니다."
고 신돈에게 밀어 버렸다.
왕은 신돈의 편으로 눈을 돌렸다. 힐문하는 눈이었다. 신돈은 즉시 받았다.
"신도 아옵니다."
"그럼, 첨의의 의견도 역사를 중지하라는 편이오?"
이 힐난에 신돈은 머리를 푹 방바닥에 묻었다. 눈물이 그의 늙은 눈에서 떨어졌다.
"전하, 성지(聖志)야 거역하리까마는, 민원이 약간 있사옵니다."
왕은 잠시 뚫어져라 신돈을 보았다. 신돈까지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너무도 억울했다. 그래도 신돈만은 공주의 편을 들어 주리라고 믿었는데 그러면 세상이 모두 공주를 배반하고 나를 배반하는가?
왕은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이색을 불렀다.
"이시중, 이국새(國璽)를 봉하오."
순간 모든 사람의 등골에 소름이 일제히 돋았다. 모두 푹 엎드린 채 숨까지 죽여사. 지적받은 이색은 몸만 와들와들 떨 뿐 움쭉도 못했다. 왕은 잠깐 기다리다가,
"그것까지도 복종할 신하가 없소?"
신돈이 할 수 없이 이색에게 눈짓하였다. 이색은 얼굴이 차액해지며, 손을 와들와들 떨면서 옥새를 봉하고, '신 이색 근봉' 이라 썼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덕이 없다고 내 말을 좇지 않으니, 마음대로 유덕한 자를 구해서 국새를 맡기오. 왕손은 별 종자며 서민은 별 종잘까? 고약한!"
최후의 말을 탁 내던지고 휙 들어가 버렸다.
왕이 들어간 뒤에도, 모두 잠시는 죽은 듯한 고요하였다.
신하들이 정신을 수습하고 왕을 찾을 때는, 왕은 환관 네 명을 데리고 대궐에서 종적이 사라진 때였다.
왕을 잃은 대궐은 물끓듯 하였다. 대궐에서 왕을 찾느라고 야단일 동안, 왕은 환관네명을 데리고 정비 안씨궁(정비는 어제 친정으로 쫓았다)으로 공주의 진영 하나만 모시고 가서, 그 앞에서 노무도 통분하여 통곡을 하고 있었다.
왕의 행방을 알고, 재상들이 옥새를 받들고 행궁으로 갔지만, 댓돌 위에도 올라서지 못하게 해 그냥 돌아왔다. 수라반도 못 들이게 한다고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돌아갈 뿐이었다.
대신들은 모두 어쩔 줄을 모르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수군거리고 있을 동안, 신돈은 혼자서 널따란 정청을 지키고 묵묵히 앉아있었다.
'딱한 일이 생겼군!'
물론 유탁, 이색 이하 몇몇 사람을 죽여 버리면, 왕의 마음도 풀릴 것이다.
그러나 신돈의 마음은, 이 재상들은 결코 죽이고 싶지 않았다.
유탁의 용맹과 과단성, 정사도의 곧은 마음, 이색의 지식과 슬기로움. 모두 일국의 재상으로 그 자리를 더럽히지 않는 인물들로서, 이런 변변치 않은 일과는 차마 모궁을 바꿀 수 없는 인물이었다.
신돈 자기의 몸을 호화롭게 하기 위해 좌우에 모은 소인배의 무리와 달라서, 이 인물들은 국가 동량의 재로 아껴 오는 인물들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목숨을 해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시켜야겠다.
두런거리는 대궐에 외따로이 홀로 앉아 있던 신돈은, 저녁이 거의 되어, 왕이 사랑하여 기르는 비둘기들이 모두 제 깃으로 들어갈 때쯤 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순군에 명하여 이색을 옥에 내렸다.
그날 밤도 꽤 어두워서, 신돈은 혼자서 왕이 있는 정비궁으로갔다. 너무도 당돌히 올라오므로 수직하던 내관들도 혹은 어명으로 오나 하고 망설일 동안, 신돈은 어느덧 왕의 침전 안으로 들어 갔다.
"첨의 신돈 아뢰옵니다. 삼사좌사 이색을 어명에 거역한 죄로 하옥하왔습니다. 신돈 마땅히 대죄할 처지에 있사오나, 지금 이색의 일을 끝내고는 대명하겠사옵니다."
왕은 신돈이 이렇게 아뢰어도 아무 대답 없이 신돈을 보았다.
신돈은 거기 꿇어 엎드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색의 아까 행동은 오로지 전하를 위함이지, 자기를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설명하고, 이색이든 유탁이든, 모두 추호라도 승하한 공주를 소홀히함이 아니라, 모두 전하와 전하의 백성을 위하여 자기 몸이 죽기를 무르쓰고 간한다는 말을 해 이 본시 어진 왕으로 하여금 종내 머리를 끄덕이게 했다.
이튿날 환궁한 왕은 하옥했던 신하들을 모두 어전에 부르고 술을 주며,
"내가 너무도 가볍게 노해서 재상들을 욕보게 한 것을 너무 탓하지 말고 이 뒤에도 늘 충성을 다해 주시오."
하고 간곡히 말했다. 일단 친정으로 쫓았던 정비 안씨도 도로 불렀다.
그러나 왕의 마음에는 유탁의 과실만은 장래 영구히 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이번 사변 때문에 그 뒤로는 다시 영전 역사에 대해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으며, 왕은 또 왕으로서 역사를 처음같이 쳐몰지 않고 천천히 진행시켰다.
왕의 18년, 19년도 주마등 같이 지나갔다.
왕의 신돈에게 대한 신임은 그 끝이 없는 듯했다.
왕은 무니노 아기를 보기 위해, 자주 신돈의 집에 미행하였다.
신돈의 집은 이 전에 있던 곳이 아니요, 대궐 서남 쪽에 빈터가 있는 것을 신돈에게 주어서 거기 짓게 한 것이다.
아기에 대한 애정이 나날이 자람에 따라서, 반야를 긍휼히 여기는 생각도 차차 들었다. 공주 이외에는 여인을 보지 않으려는 왕이매, 다시는 반야를 모시게 하지는 않았지만, 쌀을 한 달에 30석(碩)씩 하사하여 용에 쓰게까지 했다.
때때로 영전 조영하는 데 거동을 하고, 밤에 신돈의 집에 미행하고, 굉장하게 문수회(文殊會)를 차리고, 공주의 혼전에 제사하고, 이런 사사로운 일 이외에는 국정을 온통 신돈에게 일임하고 왕은 간섭지 않았다.
한 번 왕의 18년 섣달 납일에 공주의 능에 제사치 않았다고(본시부터 유탁을 좋지 않게 보던나마에) 이것도 유탁의 행한 일이라고 유탁을 옥에 가두고 그 집을 적몰했다가, 재추에서'납제'하고는 없다는 석명을 해, 도로 놓아 준 일이 있었다.
이렇게 전 책임과 전 권세를 한몸에 지고 나라를 꾸려나가는 동안, 이제는 웬만치 자신도 생기고 눈도 떠지기 때문에, 신돈의 정치는 처음의 과도기를 지나서 차차 완숙해져갔다.
그때에 아직껏 고려를 지배하던 원나라가 얼마만치 세력이 꺾이고, 주원장(朱元璋)이 이룩한 명나라가 커가는 것을 기회로 원나라와의 인연을 끊어 버렸다.
원나라에 맡겼던 제주도도 다시 찾았다. 각 연변을 침략하던 왜구도 뜨음했다.
정부도 이젠 안돈되어, 적재 적소에 배치된 정부는, 장차 대고려제국을 건설할 실력을 차차 갖추었다.
중의 아래 들기를 꺼리던(문벌을 자랑하는) 고려의 세족이며 유림들 가운데서도, 좀 현명한 사람들은 신돈 아래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이러한 가운데, 왕의 19년 4월에는 관음전(觀音殿)을 임시 영전으로 쓰게 하고, 그 6월에는 다시 왕께 간해서, 옛날 짓다가 내버린 왕륜사의 영전을 다시 수리하고, 마암의 대규모 영전은 중지하도록 했다.
19년 섣달. 신돈이 집정한 지 만 4년 뒤 어떤 날, 왕이 입시한사관(史官) 두 명에게,
"민간의 이병은 다 내 득실이니 감춤 없이 아뢰라."
고 할 때에, 사관들은 천하가 배를 두드리며 성대를 축하하옵니다고 아뢸만치 안정 되었다.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있음인지, 이날 왕은 유난히도 바둑이 서툴렀다. 횡수가 많았다.
한참을 두다가 왕은 한 점을 딱 놓으며, 무심히(인 듯이) 이렇게 말했다.
"다시 영전 역사를 시작할까 보오."
"안 됩니다. 아직 안됩니다."
바둑에 정신이 팔린 신돈은 마주 돌을 놓으며 애고 없이 응하였다.
"그래도 이제는 민심도 좀 안돈되고……."
"아직 안 됩니다. 왕륜사에 영전이 있는데……."
"그건 너무 협소해서……."
"그만하면 넉넉하옵지……."
왕은 번떡 머리를 들었다. 허덕였다.
"첨의까지 공주를 멸시……."
"멸시함이 아니오라, 공주전보다도 백성이 더 중하옵니다."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왕은 벌떡 일어섰다. 바둑에 정신이 팔려서 무심히 마음에 있는 대로 대답을 하다가 펄떡 정신을 차리고 우러러보니, 왕은 얼굴이 종잇장 같이 희게 되고, 입술·몸·사지 할 것 없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전하!"
깜짝 놀라서 신돈이 엎드릴 때에 왕은 홱 돌아섰다.
"괘씸한!"
"전화!"
신돈은 왕의 옷깃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왕은 뿌리치고 침전으로 돌아갔다. 침전까지 쫓아갔으나, 왕은 내시에게 엄명하여 신돈을 보지 않았다.
신돈은 밤새도록 집에 돌아와서 근심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밝자 입궐해 왕께 뵙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왕은 허락지 않았다.
노염이 극도에 달한 것이다.
신돈은 하릴없이 집에 돌아와서 대죄하는 뜻으로 문을 닫고 근신하였다. 근신하면서도 걱정하였다. 자기밖에는 왕이 신임하는 사람이 없는지라, 지금 자기가 노염을 샀으매, 왕의 마음을 풀어드릴 사람이 없었다.
근신하는 가운데 한 달이 지났다. 6, 7월 더위에 신돈은 문을 굳이 닫고, 죄인으로 자처하고 즐기던 계지도 모두 멀리하고 지냈다.
어느 날 신돈은 어명으로 드디어 결박되어 대궐로 가게 되었다. 신돈에게는 특별히 친국을 하겠다 하여, 이전에는 말을 타고 출입하던 홍문을 결박되어 들어갔다.
친국소 앞 뜰에 꿇어앉을 동안, 얼핏 왕을 쳐야보니 그 사이 월여에 무척이도 상했다.
신돈은 가슴이 송구하였다. 그날 밤 바둑에만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면 좀더 달리 대답할 말도 있었거늘, 정신없이 대답을 했기 때문에 이렇듯 여윈 왕을 보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죄로는 너무도 어마어마한 경계였다. 죄한대야 과즉견책에 지나지 않을 것을,
"대역 신돈, 네 죄를 알겠느냐?"
벽두에 대사성 임박의 호령에 신돈을 깜짝 놀랐다. 대역이란?
"황공하옵니다."
신돈은 머리를 흙어 비볐다. 뒤따라 추상 같은 호령이 다시 내렸다.
"상께서 너를 그만치 우우하사, 네게 과한 직책을 맡기시고 부귀를 주셨거늘, 너는 무엇이 부족해서 기현 최사원(寄顯 崔思遠) 따위와 역적을 도모했느냐?"
신돈은 가슴이 철썩 내려않았다. 한순간 온천지가 아득하였다.
"네 도당은 모두 토사를 했으니, 너도 이실고지하고 성은이나 바라거라!"
'어서 아뢰어라'의 소리가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가운데, 신돈은 너무 억하여 숨이 딱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만 비오듯 하였다.
역적 도모라 한다. 도당은 벌써 토사했다 한다. 그 사이 다년간 고려 정사를 맡아본 신돈은 다 알아챘다. 자기가 왕과 불화된 이 기회를 타고, 누가 참소를 한 것이다. 누구라고 그것을 캘 것도 없다. 자기가 왕에게 신임을 받거니, 이 고려의 권문 세가들이 모두 할 수없이 자기에게 붙어 있었다. 그 신임만 없다치면 모두 저편이 되고 중 출신인 자기는 홀로 될 것이다.
언관은 자기를 극도로 참소할 것이다. 사관(史官)은 자기를 그도로 곡필을 할 것이다. 재상은 자기를 대역자로 몰 것이다.
어서 아뢰라는 호령과 함께 등으로 빗발치듯 내리는 곤장을 한참 받다가, 신돈은 머리를 조금 들었다.
"전하께 직소하겠습니다."
"무에냐?"
대사정이 대신 물었다.
"전하, 신은 6년 전 전하께 죽을 죄를 짓삽고, 그때 전하께 바친 목숨이매 어제 거두실지라도 어의에 달렸을 뿐, 그사이의 연명을 사례할 따름이옵니다마는, 오늘 친국의 취지만은 신이 도무지 모르는 바로소이다."
"네 도당이……."
임박이 대신 호령하는 것을 신돈이 받았다.
"전하도 총찰하시는 바, 신의 지위가 인신의 극이오매 무엇이 부족하와 불궤를 도모하옵고, 신이 이미 연로하옵고 신에게 후사가 없으매, 누구를 위해 외람되이 보위를 엿보리까? 이……."
"그것으로 미루어볼지라도, 너는 자초지종으로 사언(詐言)이 아니냐? 네게는 자식이 있다는……."
"아니옵니다. 신……."
"있다!"
"아니옵니다. 신 본시 유병하와 자식을 못 보옵니다. 무엄한 말씀이오나 신이 7, 8년간에 사(私)한 계집의 수효도 적지 않거늘, 한 계집도 유신하여 보지 못하고 오직 한 계집이 작년에 사내애를 낳았삽는데, 그것은 그 계집의 본 남편의 자식인 것은 그 계집도 알고 신도 잘 아오나, 신이 노래에 너무 적적하와 그냥 신의 아들이라 불러 둔 것이 있사옵지만 그 밖에는 후사가 없사옵니다. 남의 자식을 위하여 성은을 배반하올 신이 아니옵니다. 통축합소서."
"네 일찍 내게 한 말이 있지 않으냐? 젊은 계집을 많이 가까이 함은 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기를 기르기 위해서라고 그런데 사했단 말이 또 웬말인고? 그것도 사언이 아니랄까?"
여기는 할말이 없었다. 눈물만 비오듯 쏟아질 뿐이었다.
신돈은 왕의 특별히 관후한 처분으로 수원에 유배(流配) 되었다. 그러나 소위 도당들은 모두 죽었다.
유배되는 길에, 신돈이 이번의 참소자가 누구인지를 비로소 알았다. 선부의랑 이인(李靭)이었다. 몇 해 전에 자기에게 아내를 보내서 벼슬 높여 주기를 청하였거늘, 신돈은 이것을 괘씸히 보고 계집만 빼앗고 청은 안 들어 주었더니, 그 결과가 오느르이 이것이었다.
배소로 때날 때, 신돈은 기회를 타서 재상 이인임에게, 왕께 아기마마의 뒤를 거두어 달라는 부탁을 단단히 했다.
그 귀에, 대간은 다시 상소하여 신돈의 가산을 적몰하고 신돈을 주(誅)하기를 청하였다.
이리하여 신돈은 수원 배소에서 목 자르고, 그 목을 같다가 서울에 걸어서 구경을 시켰다.
신돈이 죽은 뒤에 왕은 신돈의 집에서 기르던 무니노를 대궐로 불러서 태후께 알현시켰다.
동시에 신돈이 죽은 이제는, 다시 간할 사람이 없는 영전 역사를 시작했다.
왕자 무니노의 생모 반야는, 신돈의 집이 적몰될 때에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신돈 죽은 지 한 달, 두 달 간 왕은 무심히 지냈다. 그러나 석달, 넉 달. 날이 갈수록 통절한 고적감을 느꼈다.
정부에서는, 그 사이 신돈이 세웠던 시설을 모두 없앨동안, 왕의 마음에는 신돈을 그리는 생각이 나날이 간절해갔다. 어떤 대는 공주를 사모하는 마음이나 거의 같을이만치 애타도록 그리운 때도 있었다. 마음의 괴로움을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 알아 줄 사람도 없었다.
그 사이 신돈에게 맡겼던, 정사는, 신돈이 죽기 때문에 다시 왕에게로 돌아왔다. 그 번거로움!
정 애탈 때에는, 신돈을 부르면 그래도 신돈에게서는 좀 시원한 말이라도 있었거늘, 이 막히고 빽빽하고 답답한 재상들과 대하려면 정 진저리가 났다. 사사에 공맹을 들고 나오고 송당을 들고 나오고 선왕을 들고 나오고. 이런 가운데서, 왕의 성격을 차차 괴벽해 갔다.
신돈이 죽은지 1년 뒤, 마암 영전의 종루(鐘樓)가 낙성되었다.가 헐리고(높이가 얕다고) 영전의 취두(鷲頭, 금 6백 50냥, 은은 백냥을 들인)가 된 때쯤, 왕은 온전히 다른 사람 같이 되었다. 대수롭잖은 일엔 성을 내고, 성을 내면 포학성을 띠는 것쯤은 그래도 인간미가 있는 편이요. 때때로는 이틀 사흘 말 한마디도 없이 음침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는, 생각나면 엉뚱한 일을 시켜서, 사람들을 놀랬켰다.
21년 10월에 왕은 '자제위(子弟衛)'라는 것을 두기로 했다. 그것은 김흥경(金興慶)으로서 두목을 삼은 미소년들의 무리였다.
홍륜(洪倫), 한안(韓安), 권진(權瑨), 홍관(洪寬), 노선(盧瑄)등 왕의 사랑을 받는 소년들이었다.
그러는 한편 계집들에게 대한 잔학 본능이 강해져서 계집, 그 가운데서도 젊고 예쁜 계집이 괴로워하는 양을 보는 것을 통쾌히 여겼다. 대궐에서 계집들은 차차 이 괴벽한 왕을 무서워하고 꺼렸다. 어떤 날 왕은 홍륜을 익비 한씨의 방에 몰아넣은 일까지 있었다. 한씨는 반항을 했지만 왕까지 칼을 뽑아 들고 종내 꺽고야 말았다. 그것을 엿보며 기뻐하는 왕.
왕의 마음은 나날이 어지러워갔다.
일찍이 어떤 날 청년 시절 개가 몹시 짖는 것을 보고, 저 개가 아마 배가 아픈 모양이라고 약방에 명하여 약을 주게 한 일이 있느니만치, 착하고 인자하던 본성은 어디로 가고 없어졌는지, 지금은 그냥 음침한 가운데서 날을 보내고 날을 맞고, 무슨 잔혹한 일을 본 뒤에야 비로소 약간 음산한 웃음을 얼굴에 띠어 보느니 만치 왕은 격변했다.
어떤 때 심히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당신의 목이라도 잘라 보고 싶은 기괴한 충동조차 일어났다. 왕 앞에서 술상이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술이 매우 취해서 가까스로 잠이 들면 그래도 좀 나았지만, 깨어 있기만 하면 가슴이 설레고 강박 관념에 눌려, 자시도 마음이 펴지는 순간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연달아 생각나는 것은, 하나는 과거 16년 간을 도고 동락한 대장공주의 추억이요, 또 하나는 과거 6년 간을 당신과 나라를 위하여 애쓰다가 도리어 당신께 죽인 바 된 신돈 생각이었다.
공주만 살아 있었어도 오늘날 이런 미칠 듯한 고경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며, 공주 잃은 뒤 신돈이라도 그냥 살았다면 어떻게든 당신을 위로해서 이렇듯 괴로운 rd지에까지 빠지게는 안할 것이다.
나날이 체력이 쇠약해감을 느끼고, 나날이 늙어감(마흔네 살이었다)을 느끼고, 나날이 마음이 더 어지러워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더 산대야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이요, 오래 산다 해도 그것은 괴로운 시간을 더 오래 누리는 데 지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날 왕은 태후궁에 태후를 뵈러 갔다. 인사 몇 마디 왕래된 뒤에 왕은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신의수도 이젠 다하고 얼마 더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태후전마마! 무니노를 당부하옵니다. 아직 아무 철 모르는 어린애옵니다만……."
"전하는 그게 무슨 말씀이오?"
"신의 망령이 아니옵니다. 지금 후사를 세우지 않으면 한을 천추에 남길 듯하옵니다. 이 사직도 부탁하려니와 공주 영전의 역사를 뉘 맡아서 승계하리까?"
태후는 아드님의 초췌한 양을 민망한 듯이 한참을 보았다.
"영전의 굉장 활한 것이 천하에 무비라고 원성이 많은 위에, 전하는 또 농번기에도 비만 오면 영전 역사에 방해된다고 기청제(祇晴祭)를 드리고 하니, 이것은 임금된 도리에 어그러진 일로 아오. 또 이즈음 들으니, 김흥경 등 소년들을 일야 대궐에 머물러 둔다 하니, 이것도 또한 인자의 효도를 막는 것으로 임금의 취하지 않을 일이오. 전하! 늘 밤이 깊도록 깨어 계시다니 밤이 늦으면 아침도 늦는 법이라, 정사에 게으르게 될 터이니 역시 임금의 피할 일인데 좀 삼가시오."
왕은 침울한 얼굴로 듣고 있다가, 모후의 말이 끝나자 일어서려 했다. 태후는 왕의 옷깃을 붙들었다.
"전하! 내 말에 대답을 하고 나가시오."
"네!"
명료치 않은 대담을 하고 몸을 돌이키려는 왕을, 태후는 그냥 안 놓아 주었다.
"들으시오? 안 들으시오.?"
"명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또 비빈(妃嬪)들은 왜 보지 않으시오?"
왕은 머리를 끄떡하였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공주만한 자 없습니다."
주루루 눈물이 흘렀다.
마흔네 살 난 아드님의 눈물을 보고, 태후는 그만 웃었다.
"사람은 한 번 죽는 것, 전하도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왕은 눈을 멍하니 뜨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음산한 왕과 남륜의 궁실과 어지러운 정국. 이런 가운데 그해도 또 넘어갔다.
정치의 중심이던 신돈이 없어지고, 왕 또한 정치를 돌보지 않으므로, 재상들이 제각기 당파를 짜 가지고 제멋대로 놀아나는 고려의 정국은, 다시 수습하기 어렵도록 어지러워갔다.
이런 어지러운 가운데서, 24년 봄도 가고 여름도 또한 가고 가을이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음산한 가을 8월 어떤 날, 왕은 꺼질 듯한 음침한 기분으로 환관 최만생의 부액을 받아 후원을 거닐고 있었다.
후원의 어느 곳이라 이전 한때 공주와 손을 마주잡고 안 다녀 본 곳이 있을까? 봄에는 꽃을 따러, 여름에는 녹음을 찾아, 가을에는 낙엽을 주우러, 겨울에는 눈을 보러, 늘 함께 다니던 공주의 생각 때문에, 왕의 푹 숙이고 있는 얼굴에서는 연하여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이렇게 거닐다가 문득 변의(便意)가 생긴 왕은, 만생을 데리고 내전으로 돌아왔다.
매화틀(便器)에 앉아서 왕이 침울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있을 때, 곁에 부축하던 화관 최만생이 허리를 굽혀서 제 임을 왕의 귀에 가져야 대고 소곤거렸다.
"상감마마, 익비께서 유신(有神―― 中) 합신 듯이 들었습니다."
"뭐! 익비가?"
"네, 벌써 다섯 달이라고 들었습니다."
왕은 한순간 기괴한 표정을 했다. 그뒤에 물었다.
"누구라더냐, 사내는? 들었느냐?"
"비의 말씀이 홍륜이라 하옵디다."
"홍륜?"
황은 잠시 침울한 얼굴을 계속했다.
"응! 공주 생전에 늘 원자(元子) 없는 것을 근심하더니, 이젠 돼다."
왕은 일을 끝내고 일어났다.
"홍륜의 입을 막아야 소문이 안 나지. 내일 청릉에 알(謁) 할 때 독주를 먹일까?"
그리고는 휙하니 얼굴을 최만생에게로 향했다.
"너도 내막을 알았으니 살지 못할 줄 알아라."
만생은 왕의 너무도 침울한 얼굴에 몸서리쳤다.
여전히 그날 저녁 왕은 술을 몹시 먹고 대취해서 자리에 들면서는 정신 모르고 잠이 들었다.
그 밤도 어지간히 깊은 때에, 왕이 침전을 향해 발소리를 감추고 가까이 오는 몇 몇의 괴한이 있었다. 최만생, 홍륜, 권진, 한안, 노선 등이었다. 밝는 날 왕께 죄받기 전에 왕을 시하여 자기네의 생명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대취하여 업어갈지라도 모를 만치 된 왕의 이불을 벗어던진 가슴에는, 흉한들의 칼이 내리박혔다.
"도적이야!"
"역도야!"
좀 뒤에 침전에서 울리는 아우성. 이것은 역도들이 일을 끝내고 스스로 피하려고 지른 함성이었다.
그러나 위사(衛士) 한 명도 이 소란한 침전으로 달려오는 자가 없었다. 침전에서 고함지르는 소리에 내전 궁인들도 모두 깨어 일어났지만, 무서워서 나오지 못하고 내전에서 야단들만 하고 있었다.
이런 소란의 대궐에, 제일 먼저 달려 온 것이 왕의 모후되는 명덕 태후였다.
모후가 달려왔을 때는 흉도들은 아닌 체하고 왕 앞에서 통곡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태후궁에서 단숨에 여기까지 달려온 태후는 숨이 딱딱 막혔다.
태후 침전에 뛰어들면서,
"아이고 이게 웬일이오? 전하! 전하!"
피가 펑 괸 방에 주저앉아, 아드님의 머리를 흔들며 울었다.
"전하, 전하! 내가왔소. 전하! 너희들은 빨리 가서 대신들을 지급 입내하래라."
태후의 명으로(아닌 체하고 있던) 흉도들이 몰려간 뒤에 침전에는 태후 혼자서 아드님의 옥체를 흔들며 통곡하였다.
"전하! 정신을 차리오. 전하!"
문득 왕의 입술이 조금 떨렸다. 눈이 힘없이나마 조금 움직이는 듯했다.
태후는 얼굴을 아드님의 눈에 마주 갖다댔다.
"전하! 내요, 내야!"
"무……우……우……."
무슨 말이 나왔다.
"무어요? 물요?"
"무……우……니……노!"
"무니노 말씀이오?"
왕은 그렇다는 뜻으로 눈을 감았다.
태후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나갔다. 왕의 최후소원. 무니노를 보고 싶다는 그 소원을 들어주자니 태후궁까지 갈 사람이 없었다. 임종의 아드님을 두고 태후는 떠날 수가 없었다. 궁인을 부르자니 실낱 같은 아드님 앞에서 고함지르기가 무서웠다. 마음으로만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나 방도가 없었다.
"전하! 무니노는 안심하시오. 전하의 뒤는 무니노로 반드시 잇게 할 게."
이렇게 아드님의 귀에 입을 대고 불어넣은 태후의 심장은, 바야흐로 갈라질 듯 했다.
"무……우……우……무……."
"아이구 전하! 이게 웬일이오?"
보기가 무섭도록 초췌한 아드님의 얼굴에, 태후는 자기의 얼굴을 비벼댔다.
왕은 드디어 승하하였다.
"무……우……무……."
무니노를 보고싶다는 뜻을 몇 번 나타내고는, 보고싶은 무니노를 보지도 못하고 그냥 떠났다. 10년 전에 공주가 간 나라, 또는 4년 전에 신돈이 간 나라, 옛날 친구들이 있는 나라로.
왕이 운명한 뒤에야, 재상들을 부르러 나갔던 흉도들이 돌아왔다. 부르러 갔던 사람들이 왔으나 재상은 이인임(李仁任) 한 사람 밖에는 오지 않았다.
태후는 태후궁의 무니노를 불러왔다.
"자, 절해라. 아버님이시다. 아버님이시다."
태후가 무니노를 붙잡고 울음 절반 말 절반으로 이렇게 말하매, 이때 10살 난 소년은 난생 처음으로 아버님으로서의 왕의 영해에 절하였다.
최만생 등의 악계는 날이 밝기 전에 발각되었다. 만생의 옷자락에 튄 핏방울이 날카로운 이인임의 눈에 벗어나지 못해 국문을 당한 결과, 죄상이 명백하게 되어 옥에 내렸다.
"태후전마마, 신 일찍이 대행 전하께서 강녕대군(江寧大君, 무니노)에 관한 부탁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임종까지도 전하는 무니노를 부르셨소."
"유지까지 그러하온 이상은 물론 강녕대군으로 입사를 하셔야 겠습지요?'"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대행왕께 혈사가 있었다는 걸 다른 재상이 믿을까?"
"거기 대해서는 상장군 이미층(李美沖)도 알리이다. 대행께서 이전에 금전을 만드셔서 이 장군을 시켜 신돈의 집에 무니노 아기께 보내오신 일도 있었삽고, 또 시중 이성계에게도 이런 하교가 계신 것을 신도 아옵니다."
"대행전하 유일의 후사니, 무니노를 두고 딴 사람을 어디서 구하겠소."
이리하여 대행왕의 영해를 앞에 두고, 태후와 이인임은 강녕대군 우(禑, 무니노)를 제32대 고려왕으로 세우기로 내정되었다.
이튿날 국상은 반포되고, 또 그 이튿날 11살 소년 왕자는 태후의 축복과 이인임의 알선으로써 고려국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선왕 일대의 정과 온 고려의 수(粹)를 다하여 축조하던 공주 영전은, 낙성 임박하여 축조자를 잃었기 때문에, 마지막 한 획을 더하지 못해, 미완성품대로 다시 황폐해갔다. 그러나 영전이나 두고 만나보려던 두 혼은, 지금 사실로 만나게 되었으니 영전의 황폐를 애석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후궁에 갇혀서 나비의 돌보기를 고대하고 있던 명화 네 떨기, 혜비 이씨, 정비 안씨, 신비 염씨, 익비 한씨.
익비 한씨는, 뜻 안한 고약한 소나기에 밟혀 스러져 버리고, 나머지 세 떨기는 그냥 봉오리 채로 끝까지 나비의 발자국을 맞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연년이 가을에는 가지런히 현릉(玄陵, 선왕릉)에 가서 자기네들을 돌보지 않고 가버린 나비의 외로운 혼을 곡하며 그들의 적적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