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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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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이렇게 난폭한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몹시 화가 났지만 지저분한 골목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여 참았습니다.

한참 동안 짖궂은 장난꾼들의 놀림을 받다가 겨우 혼자 남은 왕자는 조용히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여기는 어딜까?'

어딘지 알 턱이 없었습니다. 그 곳이 런던 시내인 것밖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왕자는 무턱대고 걸었습니다. 차차 집들이 드물어지고, 길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왕자는 냇가에 다다라 패가 맺힌 발을 씻고, 잠시 쉰 다음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커다란 교회가 서 있는 광장에 다다랐습니다. 이 큰 교회는 언젠가 본 듯한 건물인데, 거창하게 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와 본 일이 있어!'

왕자는 훨씬 용기가 났습니다. '이제 됐어'하고 고통스러움도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 오래 된 교회를 사들여, 올데갈데없는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 보육원을 만들어 주신 거야. 아마 '그리스도 보육원'이란 새 이름이 붙어 있겠지.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왕자인 나를 반가이 맞아 줄 거야."

왕자는 넓은 마당에서 떠들썩하게 뛰어다니며 공던지기와 말타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로 가까이 갔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놀이를 그치고 왕자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왕자는 타고난 위엄을 보이며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의 원장에게 에드워드 왕자가 급히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해 주지 않겠느냐?"

"아하하하하……."

소년들은 일제히 웃어 댔습니다. 그 가운데 골목 대장인 듯한 아이가 놀리듯이 말했습니다.

"네가 왕자님의 심부름을 왔단 말이지? 헤헤, 이 거지 녀석아……."

왕자는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손을 허리로 가져갔으나, 허리에는 아무것도 찬 것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또 '와와' 하고 웃어 댔습니다.

"너희들 지금 하는 짓 보았지? 허리에 칼이라도 찼다는 흉내야. 진짜 왕자님인지도 모르겠는걸."

이렇게 농담을 하고 아이들은 또 한바탕 웃었습니다.

왕자는 가슴을 떡 벌리고 자세를 단정히 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왕자다. 내 아버님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너희들이 왕자인 나에게 이런 무례한 짓을 하다니. 도데체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소년들은 이 말에 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골목 대장인 듯한 그 소년이 또다시 여러 아이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여봐라! 너희 종 놈들은 이 왕자님의 아버지 은덕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하는 건 도데체 무슨 까닭이냐? 너희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이 거지 왕자님께 절을 하는 거다!"

아이들은 킥킥 웃으면서 일제히 무릎을 꿇더니 꾸벅 절을 했습니다.

왕자는 앞에 있는 아이를 탁 치며 거칠게 외쳤습니다.

"알겠느냐? 내일은 교수대로 보낸다!"

이 한 마디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었습니다. 이건 농담으로만 들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새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소년들의 얼굴에는 노여움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소리쳤습니다.

"자. 모두 이 놈을 끌고 가서 말 씻는 못에 던져 버려라. 개는 어디 갔지? 라이온, 팽스, 어서 와 저 놈을 물어라!"

이 소리를 듣고 두 마리의 개가 컹컹대며 덤벼들었습니다.

영국의 왕자로서 귀한 몸이, 이렇게 보육원 아이들에게 몹시 얻어맞고, 게다가 개한테까지 여러 군데를 물리고 나서야 간신히 도망쳐 나왔습니다.

땅거미가 깔릴 무렵, 왕자는 런던의 한 변두리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살펴보니 여러 군데 상처를 입었습니다.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누더기 옷은 진흙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왕자는 정처 없이 헤매다가 점점 방향을 잃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몸은 피로할 대로 피로하여 간신히 발을 옮길 정도였습니다.

이젠 아무에게도 길을 물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여러 사람에게 길을 물었지만, 누구 하나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가르쳐 주기는커녕 오히려 놀리기만 했습니다.

왕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더러운 골목이라고 했것다. 기운이 다해 쓰러지기 전에 그 더러운 골목만 발견하면 그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 거지 아이들의 가족들이 나를 대궐로 데려다 줄 거야. 그리고 내가 자기 아들이 아니고 진짜 왕자라는 걸 말해 주겠지."

길을 가면서 그는 '그리스도 보육원'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임금이 되는 날, 그 애들에게는 밥과 집을 주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책을 읽어서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해야겠다. 마음이 바로잡히기 전에는 아무리 배부르게 해 주어도 소용 없어. 나는 오늘 일을 절대로 잊지 않을 테다. 오늘 얻은 교훈을 깊이 명심하여 앞으로 백성들이 괴로움을 받지 않도록 해 주겠다. 학문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착한 마음을 길러 주는 것이다.'

집집마다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생전 처음 맛보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괴롭고 외로운 밤이 찾아왔습니다.

집 잃은 왕자-영국의 황태자는 저녁녘의 으스스한 기온에 목을 움츠리며 아직도 걷고 있었습니다.

좁고 지저분한 골목에서 골목으로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가 몸집이 큰 술주정뱅이가 왕자의 멱살을 꽉 움켜쥐고 소리쳤습니다.

"또 늦도록 나돌아다녀? 이 녀석아, 오늘 밤에도 동전 한 닢 못 얻었겠지? 오냐! 나중에 네 앙상한 뼈다귀를 모조리 부러뜨려 놓을 테니 두고 봐라! 내가 그것도 못한다면 나를 존 캔티가 아니라 바보라고 해도 좋다!"

왕자는 재빨리 몸을 빼고 어깨를 털며 점잖게 말했습니다.

"아 그대가 그 거지 아이의 아버지인가? 마침 잘 됐다. 자, 어서 그 아이를 데리러 가자. 그리고 나를 대궐로 다시 데려다 달라."

"그 아이의 아버지? 흥, 이 놈이 무슨 잠꼬대를 하는 거야? 이 어른은 네놈의 아비임에 틀림없어. 모르겠다면 알게 해 주지."

"여봐라! 농담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피곤하다. 또 몸을 다쳤다. 인제 더 참고 있을 수가 없다. 자, 어서 나를 아버님께로 데려다 달라! 아버님 국왕 폐하께서 돈도 넉넉히 주실 거다.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진정으로 하는 얘기야. 나를 도와 줘. 나는 황태자야."

캔티는 어이가 없어 왕자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몇 번 저으며 말했습니다.

"이 놈이 머리가 돌았구나!"

그러고는 다시 왕자의 멱살을 잡고 괴상한 웃음을 띠며,

"병신이 되든 말든, 네 할미와 내가 뼈를 부러뜨려 줄 테니 두고 봐!"

라고 말하고, 톰의 아버지 존 캔티는 왕자를 질질 끌고 갔습니다. 그 뒤를 부랑자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떠들어대며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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