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14장
十四
[편집]『국구―ㅇ(鞠躬)
바―이―(拜)
흐―ㅇ(興)
평시―ㄴ(平身).』
작년(庚申年) 구월에 경희궁으로 이어하였던 상감은, 모든 궁인들을 인솔하고 금년 사월에야 다시 창덕궁으로 환어하였다. 환어한 뒤의 첫 번 숙배(肅拜)였다. 월대(月臺) 위에는 인의(引儀)가 높이 올라서 있다. 그 아래는 정일품부터 종구품까지의 열 여덟 개의 표석(表石)이 서 있고, 열 여덟 계단의 조신들은 각기 그 품반 품서에 서 있다.
『국구―ㅇ』
기다랗게 뽑은 인의의 호령에 백관들은 모두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바―이―』
두 번째의 호령에 뱍관들은 북향하여 절하였다.
『흐―ㅇ』
세 번째의 호령에 몸을 절반만큼 일으켰다.
『평시―ㄴ』
몸을 고쳐 일으켰다.
다시 국궁, 바이, 흥, 평신―이리하여 사배는 끝이 났다.
승후관(承候官)의 한 사람으로서 조 성하도 이 숙배에 참례하였다.
숙배를 받은 뒤에 상감은 내관들에게 부액을 받고 편전(便殿)으로 들었다.
성하는 승후청으로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관복을 편복으로 바꾸어 입고 잠시 더 머뭇거리다가, 금호문(金虎門)으로 하여 대궐 밖으로 나왔다. 이 날은 비번이므로 숙배만 끝낸 뒤에는 나와 버려도 괜찮은 날이었다.
궐 밖으로 나오기는 하였지만, 갑자기 갈 데가 없었다. 유난히도 마음이 어지러워서 집으로도 돌아가기가 싫었다. 성하는 하인과 가마만 먼저 돌려 보내고, 잠시 돈화문 밖으로 돌아와서 머뭇거리다가 발을 서쪽으로 돌렸다. 며칠 만에 흥선 댁이라도 한 번 찾아보고자 함이었다.
며칠 전 흥선을 모시고 대비를 가서 뵈온 이래, 성하는 그 뒤 아직 흥선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날의 인상은 성하에게 있어서는 꽤 컸다.
자기의 눈이 결코 잘못 보지 않았음을 성하는 그 날 확연히 알았다. 주착 없는 인물, 상갓집 개―이런 칭호를 들으면서도 탓하지 않는 흥선을, 성하는 아직껏 의심의 눈으로 보고, 흥선의 그런 인격의 배후에는 무슨 커다란 책략이 있지나 않은가고 늘 유심히 보았지만, 너무도 감쪽같이 속이므로 성하로서도 마지막에는 반신반의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날 확실히 성하는 흥선의 진면목과 진인격을 보았다. 표면 어리석은 듯이 꾸미는 그 가면을 벗는 날―그 속에서 나온 흥선은 결코 주착 없는 술망나니가 아니었다. 염치 모르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 응대, 태도, 언어, 행동, 어느 점에 있어서도 대궐 안에서 생장한 대군왕자에게 지지 않는 단아한 귀인이었다.
이런 일면을 가진 그가 항간에 돌아다니며 하는 행동은 너무도 어지러운 행동이었다. 만약 그것이 김씨 일문을 속이는 가면이라면, 흥선이야말로 고금에 다시 없는 훌륭한 배우였다.
「이 놈, 네가 그 모퉁에서 필주―하니 나오니 이름이 필주로구나.」
흰 옷을 입은 인물(당시에 있어서는 양반은 옥색 기타 물들인 옷이며 평민은 흰 옷) 관속배와 상투를 맞잡고 중인 환시의 대로상에서 희롱을 하는 흥선―이 흥선과 그 날의 흥선과는 너무도 차이가 있었을 뿐더러, 그런 주착없는 일을 한 지 단 두세 시간 뒤에 흥선은 그렇듯 변한 것이었다.
그 기괴한 인물에 대한 위포와 경모의 정이 젊은 성하의 마음에 무럭무럭 일어났다. 이 사람에게 몸을 의탁하면 장래 반드시 한 때 그 덕을 볼 것을 성하는 분명히 직각하였다.
『대감 계신가?』
댓돌에 선뜻 올라서는 성하를 흥선 댁 청지기가 맞았다.
『출타하셨읍니다.』
『어디 가셨나?』
이런 질문은 어리석을 질문이었다. 주착 없이 돌아 다니는 흥선인지라, 청지기가 알 까닭이 없었다. 물어보았지만 성하도 스스로 고소하고 다시 내려섰다.
안사랑에서 웃음소리가 나므로 귀를 기울여 들으니, 흥선의 맏아들 재면이가 그 외삼촌 민 승호와 무슨 담소를 하고 있었다.
성하는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흥선댁을 나갔다.
거기서 나선 성하는 갈 곳이 없었다.
―자, 어디로 가나?
이렇게 되면 더욱 집으로는 돌아가기가 싫었다. 성하는 어디로 가겠다는 계획이 없이 발을 옮겼다.
종로에까지 이르렀다. 공랑(公廊)이며 육주비전(六矣廛)의 흥성스러운 흥정을 곁눈으로 보면서, 성하는 지향없는 길을 남대문 쪽으로 향하였다.
『성하! 성하 아닌가?』
누가 자기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인가 하고 그냥 가다가, 서너 번째 불리고야 성하는 돌아보았다.
성하는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아이구 이게 뉘십니까?』
그것은 성하의 외가로 아저씨뻘 되는 이 학사라 하는 늙은 선비였다.
『그렇게 들리지를 않던가?』
성하의 절을 받으며 이 학사는 이렇게 물었다.
성하는 의아한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가난하고 또 가난하여 도포 한 벌도 없어서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던 이 학사였다.
삼순구식이 아니라 구순삼식이라고 형용하고 싶도록 가난하던 이 학사였다. 정월에 성하가 문안을 갔을 때오 정월 초승부터 굶고 앉았던 이 학사였다.
그런데 이 날은 그의 머리에서는 통영갓이 어른거렸고 깨끗한 도포에 수띠는 분명히 생활이 넉넉한 선비의 차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학사의 뒤에는 하인까지 하나 어려 있었다. 하인도 깨끗이 차렸으며, 그 하인은 무슨 귀중한 물건인 듯한 네모난 상자를 공단 보에 싸서 들고 있었다.
『아저씨, 아직 그 댁에 계십니까?』
그 오막살이랄 수가 없어서 댁이란 명사를 붙이면서 성하는 속으로 고소하였다.
『아니라네. 이사했네. 나하고 집에 같이 가 보지 않겠나?』
『어디오니까?』
이 학사는 대답 대신으로 입을 삐죽하게 하고 그 입으로 하인의 들고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성하는 학사의 입을 따라 보기는 하였지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彫)라네.』
『네?』
『사충사(四忠祠) 조라네. 내게도 운 틀 날이 굴러 오노라고, 이번에 사충사의 일유사를 하게 되었네그려.』
성하는 겨우 알아들었다.
이 가난한 노선비가 가난에 굴고 또 굴다가, 어떻게 사충사의 유일사를 얻어 하게 된 모양이었다. 하인이 받들고 있는 그 상자는 「조」를 넣은 상자인 모양이었다.
사충사(뿐만 아니라 조선 안 모든 서원)의 조─그것은 이 나라에 있어서는 옥새(玉璽)의 다음 가는 권위 있는 「도장」으로서, 각 지방의 방백의 관인(官印)보다 훨씬 세력이 높은 것이었다.
옥새며 지방관의 관인은 흔히 본 일이 있으되, 조를 처음 보는 성하는 그 공단보에 싸인 네모난 상자를 흥미 깊은 눈으로 굽어 보았다. 그 「조」의 놀라운 권위는 이미 익히 듣고 있었으므로―
노돌 나루를 건너서면, 장청류의 한수를 굽어 보는, 경개 좋은 바위 위에 한 사당이 서 있으니 그것이 사충사이다.
당쟁 때문에 참화를 본 김 창집, 조 태채, 이 의명, 이 건명의 네 유신(儒臣)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서, 그 때 함께 결련되었던 유신들의 후손 가운데서 일유사를 뽑는 것이었다. 이 학사도 그의 오대조가 그 때 그 사건에 원배를 갔던 덕으로, 어떻게 운동을 하여 일유사 자리를 구한 것이다.
『그러면 아저씨도 인젠 생활이 좀 펴셨겠읍니다그려?』
『생활? 암 폈지. 석 달 내에 내 몫으로도 개똥밭이며 수원 논이며가 약간 생겼네그려. 이제 일년 안으로 당대 먹을 게야 생기겠지.』
『호오! 많이 벌으셨읍니다. 그 때 그―심? 석?』
『석 경원이란 놈 말인가?』
『네, 석 이방(石吏房)말씀이외다.』
『암, 그놈도 벌써 잡아다가 가두기를 네 번 했네그려. 내 재산 홀짝 빨아 먹었던 그 놈, 인젠 다시 나한테 홀짝 빼앗기구 거지가 돼서 어디로 떠나 갔다지.』
『시원하시겠읍니다.』
『시원쿠 말구! 좌우간 우리 새 집에 가 보세.』
『그러십시다.』
성하는 이 쾌활한 늙은 선비의 인도로 선비의 집을 찾기로 하였다.
사충사에서 발행하는 서독(書牘)―일유사의 「조」가 찍힌 그 서독은 놀라운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지방관의 관인(官印)이 찍힌 영장은 그 관할 구역 이내에서밖에는 통용이 못 된다. 영변 부사의 영장이 안주 땅에서 통용 못 되고, 전라감사의 영장이 경상도에서 통용 못 되고―각각 그 관원의 관할하는 구역 안에서밖에는 통용이 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원 유사의 도장이 찍힌 서독은, 남으로는 제주에서부터 북으로는 백두산까지 통용 안 되는 곳이 없다. 가령 용산 건너 노돌에 있는 사충사에서 「동래 땅에 사는 아무를 잡아 오라」는 서독이 날 것 같으면, 그것을 가진 하인은 동래 땅에 가서 그 지정한 인물을 잡아 올 권한이 있다. 그 곳의 지방관도 이를 금지하지를 못한다.
잡아 오는 데 무슨 명목이나 까닭이 없다. 그저 잡아올 따름이다.
그 잡아 온 죄인을 일유사는 다시 이조(吏曹)나 한성판윤(漢城判尹)에게 곱게 가두어 두기를 촉탁한다. 그러면 이조에서나 한성부에서는 이를 거절하지를 못한다. 일유사에게서 다시 놓아 주라는 부탁이 오기까지는 까닭을 모르는 그 죄인을 곱게 가두어 둘 뿐이다.
본시는, 서원이라하는 것은 옛날의 성현들을 존경하기 위하여, 유인(儒人)들이 모여서 옛날의 성현들의 끼친 학문을 토구하며 성현들의 영을 제사하기 위하여 시작된 것이었다.
그 예절을 장려하기 위하여 서원을 유지할 만한 전장(田庄)을 기부받는 것을 허락하고, 그 서원의 서독의 어떤 정도까지의 권한을 인정하여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수백 년 내려오는 동안 본의는 잃고 말의(末意)만 남아서, 조선의 온갖 더럽고 추한 일은 모두 거기서 생겨나게까지 되었다.
이 서원의 횡포 때문에 당시의 백성들은 얼마나 괴로움을 받았다? 서원에 부속된 많고 많은 유의 유식의 선비들은, 모두 그 근처의 백성들의 고혈을 자기네의 당연히 먹을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의 사원은 서원이라기보다 오히려 악도청이었다.
본(本)을 모르고 말(末)만 아는 선비들이 그 서원을 근거삼아 가지고 행하는 폐단은 여간이 아니었다.
서원에서는 자기의 가진 권한을 이용하여, 시골 돈냥이나 있는 사람을 잡아다 가둔다. 명목은 아무것이라도 좋았다. 성현을 몰라본 죄라든가, 조상께 제사를 정성되게 못한 죄라든가, 하는 막연한 명목으로 잡아다가 가둔다.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러노라면 그 집의 아들이라든가 친척이 찾아와서 흥정을 한다. 서원에 얼마의 장전을 기부할 테니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하여 주십사고 애걸복걸한다. 그러면 그 죄인의 재산에 상당한 기부를 받은 뒤에 그 죄인을 특별히 용서를 하여 준다.
그렇지 않으면 그 근처에 돈냥이나 있어서 선비 노릇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장의를 판다. 사지 않으려면 강제로라도 판다. 이 강제 판매에 응치 않았다는 큰 코를 다치므로, 한 번 서원이 겨눈 이상에는 피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후일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면서, 그의 대 영단으로 전국의 서원을 모두 부수고, 서원에 모셨던 위패들을 모두 없이할 때에, 그 수효 천여 개, 거기 도의도식하던 무리가 수만 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서원을 근거삼아 가지고, 거기 모신 옛날 성현의 옷 소매를 방패삼아 가지고 온갖 더럽고 추한 일을 다하다가, 일이 불여의하게 되면 곧 옛날 성현을 앞장 세워서 이 사대성(事大性)이 많은 국민을 위협하던 것이었다.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지만 잡아 가둘 권리는 있는 그들에게, 단지 포금죄(抱金罪) 밖에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경옥이며 향옥에 갇혀서 신고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사충사 서독―
화양서원(華陽書院―충청도 청산에 있다)의 화약묵패(華陽墨牌)―
당시의 서원 가운데서도 가장 권위 있는 이런 몇 곳의 서독은 세력이 당당한 곳으로서, 옥새가 찍힌 왕령에 거의 지지 않을 만한 권세를 가졌던 것이다. 이조판서 한성판윤도, 일개 유생이 발행한 이 서독의 영을 거역지 못하였다.
그런지라, 사충사의 일유사 자리를 얻은 이 학사는 의기가 양양하였다. 학자는 권세를 초개같이 여기고 금전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권세를 싫어하고 금전을 싫어하는 사람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교적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의 주인인 이 학사도 역시 권세와 금전을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이 학사의 집은 목멱산 아래 깨끗이 새로 지은 집이었다. 넉 달 전에 거처하던 단간방에 비기건대, 설초운향, 그 차이를 형용할 말이 없었다. 선비의 집이라기보다 오히려 재상가의 산당에 가까운 집이었다.
『경치 좋고 공기 맑고 아주 좋습니다.』
성하의 이런 치사를 들으면서, 학사는 도포와 갓을 훌훌 벗어 버리고 관을 바꾸어 썼다.
『자, 흠 있겠나. 자네도 도포 벗게.』
하는 것을 성하는 벗지 않았다. 선비와 달라, 도포를 벗으면 창의라도 반드시 입어야 하는 벼슬아치의 집에 태어난 성하는, 동저고리 바람은 거북하기 때문이었다. 학사는 성하를 데리고 산 정자로 돌아갔다.
『인젠 날이 꽤 더워졌네. 정자에서 이야기나 좀 하고 가게.』
정자를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목멱산 기슭―장안이 굽어 보이는 언덕에 팔각으로 지은 얌전한 정자였다. 과시 앉아서 시나 읊고 토론이나 하기에는 적당하게 생겼다. 하인은 마치 학사의 꽁무니에 다린 사람인 듯이 「조」를 들고 따라 왔다.
『유사님, 아까 참 손님이 오셨다가 가셨읍니다.』
성하와 학사가 마주 앉을 때에 하인은 생각난 듯이 말하였다.
『응? 누구더냐?』
『어제도 오셨던 분이올씨다.』
『어제도? 어제도 여러 사람이 왔었는데……』
『―그 육주비전에서 지전(紙廛)을 보시는 분이올씨다.』
『응! 그래 아무 말도 없이 갔냐?』
『저녁에 또 다시 오겠읍니다고요.』
『그 뿐이야?』
『네!』
학사는 성하를 돌아보았다.
『자네는 승후관이니 혹은 종친 중에 흥선군 이하응이라는 사람을 아나?』
『네, 짐작이나 합니다.』
『주책 없는 인물!』
그리고 하인에게 향하여,
『주안이나 좀 내어 오너라.』
하여 돌려 보냈다.
『왜 흥선군이 어떻게 하셨읍니까?』
『글쎄 말일세. 종친으로 태어나서 그게 무슨 주책 없는 짓이람.』
『왜요?』
『사연이 이러네그려. 흥선군이란 인물이 안 필주라나 하는 관속과 부동을 해 가지고, 지전 보는 홍모를 쇡임 투전에 걸어 넣어 가지고 육백 냥을 빼앗았다나?』
『찾아온다는 사람이 그 홍모랍니까?』
『그렇지! 그 홍모가 매일 찾아와서, 흥선군은 잡아 가두지 못하되 안모라는 사람을 좀 잡아 가두어 달라는구면.』
『그래 어떡허시기로 했읍니까?』
『자네에게니 말이지, 장사아치는 참 더럽데. 지전 주인이 그게 무슨 꼴이람. 처음에는 열 냥 가져왔지. 그 담에 또 열 냥 가져왔지. 쉰 냥도 못 되고야 누가 그걸 잡아 가두어 주겠나? 오늘은 얼마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너덧 번 더 헛걸음 해야 될걸. 하하하하!』
『그러면 홍모는 부러 돈을 삭여 가면서 안모를 잡아 가두면 뭘 한답디까?』
『내가 그게야 알겠나. 아마 안모는 흥선군의 막역지우니깐, 흥선군한테 좀 떼내려는 셈이겠지.』
성하는 머리를 수그렸다. 무슨 매우 더러운 물건에 직면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불쾌하였다.
『홍모뿐이 아닐세그려. 이 놈을 잡아 가두어 주오, 저 놈을 가두어 주오, 매일 청 대러 오는 인물들이 부지기술세그려.』
『다 돈냥을 가지고 옵니까?』
『그럼! 거저야 가두어 주나. 그런 것은 내 수입―큰 장전은 사당 재산―그렇게 되는 것일세그려.』
『아저씨, 그 안모라는 관속을 쉰 냥이 차기만 하면 가두어 주시겠읍니까?』
『그럼, 내게 손해나지 않는 일……』
성하는 머리를 수그렸다. 수그리고 잠시 있다가 머리를 들 적에는 그는 자기의 얼굴의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저씨, 제가 고 쉰 냥을 아저씨께 드릴게, 홍모에게 받으신 금전을 도로 내어 주시고 안모는 모를 체해 주십시오.』
『?』
학사는 성하를 보았다. 의아한 듯이 머리를 기울여 보았다.
『자네도 그 안모를 아나? 자네도 아는 사람이라면……』
말을 계속하는 것을 성하는 가로채었다.
『모릅니다. 모르지만 옛날 어느 성현께서 돈 받고 남을 잡아 가두라고 하셨습니까?』
학사는 즉시 대답지 못하였다. 잠시 뒤에 머리를 돌리며 대답하였다.
『그거야, 그런 말씀은 안 하지만, 서원 치고 안 하는 곳이 어디 있나? 서원뿐인가?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내가 시골서는 본시 벼 천 석이나 하던 사람이야. 그게 왜 중년에 그렇게 가난하게 지냈나? 내가 외도를 해서 썼나, 역적 도모를 하다가 관가에 적몰을 당했나, 내 논 밭 삼백 석지기를 향교에 들어가고, 칠백 석지기는 석 경원이란 놈이 앗아 먹고……그래서 중년 삼십 년 간을 삼순구식을 하면서 겨우 연명만 해 오지 않았나?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이라네. 자네는 아직 젊어서 그런 일을 모르니깐 그렇게 생각하나보이마는, 사충사 일유사라는 것은 그만한 일을 하라고 나라에서도 권한을 주신 것이 아닌가?』
나라에서 매관 매작―
서울에서도 매첩 매직―
나라에서도 뇌물과 강탈―
서원에서도 뇌물과 강탈―
이 아래 끼운 세력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성하는 다변(多辯)한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더욱 불쾌하였다.
『그럼, 아저씨께서는 그 새 몇 사람이나 가두어 보셨읍니까?』
『나야 일유사가 된 지 석달 밖에 못되니깐 몇 사람 안되지―자, 평양 김모, 해주 최 서방, 또……』
누구누구 잠시 꼽아 본 뒤에,
『일곱 사람 밖에는 못 되네.』
하고 수효가 적은 것을 부끄러이 여기었다.
『일곱 사람에 합해서 얼마나 거두셨읍니까?』
『내야 나 먹자고 거두는 게 아니니깐 얼마 되겠나? 큰 것은 사당으로 보내야 되고, 부스러기나 내게 돌아오는 것일세 그려, 아까 말한 것같이 장토 약간, 돈 얼마, 이집, 그것뿐일세. 한 십 년만 하면 나도 착실해지기는 하겠구면.』
이 선량한 노인은 십 년 간을 조를 맡아 두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여보게 성하!』
『?』
『다른 놈 잡아 가둔 건 그다지 별다르지 않지만, 석 경원이란 놈 잡아 가둔 일을 생각하면 십 년 체기가 한꺼번에 내려가는 듯하네. 이 놈이 십 년 전에 내게 대해서 행한 행사를 생각하면 그런 시원한 일이 없데. 이 놈의 아들놈 손자놈 할 것 없이 모두 집으로 몰려 와서, 손이 발이 되도록 애걸하던 꼴은 지금도 눈에 서언하네. 내 그놈을 한 푼 없이 알겨 냈지. 지금 거지가 돼서 떠돌아 다닌다네.』
『어떻게 잡아 오셨읍니까?』
『듣고 싶은가? 내 이야기할께 들어 보게. 가만, 주안 나오나베. 천천히 먹어 가면서 이야기하세.』
내어 온 주안을 가운데놓고 학사는 성하에게 자기가 철천지한을 품고 있던 석 경원이에게 원수를 갚던 일장 이야기를 꺼내었다. 성하는 안주도 집지 않고 술도 들지 않고, 잠자코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 학사의 집안은 시골서 벼 천 석이나 하던 집안이니까 부자 소리도 듣는 집안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어디 명색 없는 부자나 없는가고 탐지하는 두 가지의 세력(하나의 관력, 하나는 벌력)이 이 이학사의 집안을 거저 넘기지를 않았다.
먼저 향교에서 이 학사에게 장의(掌議)라는 명색을 주고 삼백 석을 앗아갔다. 천 석 추수에서 삼백 석은 꽤 큰 상처는 상처지만 치명상까지는 안 되었다. 학사는 장의라는 직함을 얻어 가지고 이것이 도리어 행세하는 근거가 된 것으로 여기고, 그다지 애석히 생각지는 않았다. 아직 칠백 석지기가 남았으니 그것을 가졌으면 넉넉한 생활은 할 수가 있으므로―
그러나 당시에 있어서 시골 장의 따위의 칠백 석이 또한 그냥 보전될 수가 없었다. 관력(官力)이라 하는 것이 학사의 칠백 석을 엿보기 시작하였다.
석 경원이라는 인물은 영문 이방(吏房)이었다. 마음이 곱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 때의 그 곳의 장관인 감사도 또한 마음이 좀 검은 사람이었다. 학사―이 장의는 연하여 감찰부에 잡혀 갔다.
『감영 삼문에 사또님을 훼방하는 방을 붙인 것이 너지?』
혹은―
『결전(結錢)을 속였지?』
별의별 명색을 다 붙여서, 이 장의를 옥에 가두고 하였다. 그리고 그 매번을 자손들이 석 경원이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고야 놓여 나오고 하였다. 이리하여, 갇혔다가는 뇌물로써 벗어나고, 또 같은 일이 번복되고 하여, 몇 해 후에는 이 장의네 집은 고생은 할이만큼 다 하고도 재산은 홀짝 다 빼앗겼다.
그 때 감사도 먹기는 좀 먹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석 경원이가 먹은 것이었다. 좌우간 겨우 삼백 냥이란 돈을 마련하여 이방 자리를 산 석 경원은, 이방 십 오년 간에 삼천 석이라 하는 거대한 재산을 움켜 잡은 것이었다.
재산 전부를 석 경원한테 앗기운 이 장의 집안은, 그 뒤 십 년 간을 이리저리 굴러 다니면서 숱한 고생을 다 겪었다. 그러다가 금년 봄에 어떻게 어떻게 하여, 집안 오대조를 팔아서 사충사 일유사를 얻어 하게 되었다. 일유사가 되면서, 학사가 제일 첫 번 조를 찍은 것은 철천지 원수 석 경원 압래장이었다. 석 경원은 이 위대한 권세를 가진 종이 조각 때문에 한성부에 갇히게 되었다.
흥정은 시작되었다. 백 석지기를 사총사에 비치리다, 이백 석 바치리다, 삼백 석 바치리다. 석의 아들이 찾아와서 호소호소하는 것을 학사는 대번 고개를 가로 저어서 돌려 보냈다. 드디어 석은 학사의 만족할 만한 토지를 제하고야 백방이 되었다.
그러나 석의 재산을 홀짝 다 빨아서 거지를 만들기 전에는 학사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학사는 비밀리에 이 석을 천주 만동묘(萬東廟)로 넘겼다. 사충사에서 초벌 벗기운 석은 다시 만동묘에 또 한 벌 벗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동묘에도 만족할 만한 뇌물을 바치고 겨우 백방이 된 때는, 학사의 비밀 활동으로 또한 다른 서원이 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하여 몇 군데 넘어가는 동안, 이방 십 오 년 간에 번 적지 않던 재산은, 모두 이 서원이며 저 서원으로 넘어가고, 하잘것없는 거지가 되어 버렸다.
이리하여 십여 년에 겪은 원혐을 학사는 사충사의 일유사가 되어 가지고 고대로 갚은 것이었다.
조―
한 개의 뿔 조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 이 학사의 십 년 전 원수를 갚아 준 것이었다.
『어떤가? 내가 못할 일을 했나? 다들 하는 노릇이고, 하게 마련된 노릇을 나 혼자 안 하면 어리석은 짓이라네.』
학사는 성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하는 머리를 조금 들어서 학사의 오른편 옆에 놓여 있는 조를 보았다. 정목으로 만든 위에 명주 끈을 달고 주석으로 장식을 한 그 상자는, 옥새를 간직하는 그릇보다는 약간 손색이 있었으나, 지방 장관(長官)의 관인을 넣는 상자보다는 훨씬 더 치레를 하였다.
『조는 인주로 찍습니까?』
『먹으로 찍는다네.』
『아저씨 말씀은 알아들었읍니다. 그렇지만 제 소견을 말씀드리겠읍니다. 세상이 아무리 모두 좋지 못한 일을 하더라도, 남들이 한다고 그것이 좋은 일이 될 까닭이 없읍니다. 옛날 재상은 죽은 뒤에 장례지낼 비용이 없는 것을 자랑했다 하지 않습니까? 그 마음을 아저씨께서는 본받으실 수가 없습니까? 제 소견으로는 높은 선비는 금전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합니다.』
노인은 청년을 굽어 보았다. 못 알아 듣겠다는 모양이었다. 사충사의 일유사가 된 이상에는 자기도 큰 선비일 것이다. 역대의 일유사도 물론 모두 높은 선비였을 것이다. 그 모든 높은 선비들이 아직껏 예사로이 행한 일을,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성하 따위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아니꼽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자네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런 말을 하지, 남 듣는 데서는 아예 그런 말 다시 말게. 명유(名儒)들의 하신 일을 외람되이 말할 것이 아닐세.』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행한 일이니 즉 옳은 일이라고 단정하는 이 단순한 노인을 성하는 결코 악의(惡意)로 볼 수는 없었다.
뿐 아니라, 이 노인의 마음에도 결코 악의가 없는 것은 성하도 잘 아는 바였다. 양기롭고 쾌활하고 단순한 이 노인은, 자기의 행하는 일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지를 못할 따름이었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잘난 사람들이었고, 그 잘난 사람들이 행하던 일이니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행하는 뿐이지, 마음에 악의가 있어서 행하는 일이 아닌 것은 성하고 짐작하였다.
이 단순하고도 지나친 시대의 사람을 절대로 존경하는 노인에게 대하여, 그 일이 그릇된 일임을 이해시키는 것은 지난한 일일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이 잘못하였다고 지적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뿐더러, 잘못하다가는 순한 노인의 감정난 사기가 십중 팔구일 것이다.
『아저씨, 그럼 그 말씀을 다시 하지 않겠읍니다. 그 대신 제 부탁 하나는 들어 주십시오.』
『무엔가?』
『아까 말씀하시던 그 안모―안 필주는 그대로 넘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부탁하면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자네는 그 안모와 면분이라도 있다.』
『안모가 아니라 흥선군과 면분이 있읍니다.』
『흥선군? 흠! 자네는 명문 거족에 태어나서 왜 그런 주책 없는 인물과 교제를 하나?』
『할 수 있습니까? 이미 한 노릇을 도로 없이할 수도 없고……』
『그럼 내일 홍모가 오면 받았던 것은 도로 내어 줘야겠군.』
「투전해서 돈 땄네, 하하하」 하고 너털거리던 흥선의 모양이 획 성하의 머리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때 함께 가던 인물이 안 필주였다. 그것을 생각하고 홍모의 호소를 연상할 때에, 성하는 스스로 입가에 떠오르는 고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흥선군은 홍모와 사화할 돈도 없읍니다.』
성하가 이렇게 보태었다. 성하가 이 학사의 집에서 나온 것은 거의 황혼 때나 되어서였다.
『간간 오게. 자네 즐기는 평양 감홍로도 마련해 둘게, 심심하면 놀러 오게.』
학사는 동저고리 바람으로 대문까지 따라 나와서 성하를 보냈다. 쾌활하고 양기로운 노인과 하루 진일을 보낸 성하인지라, 당연히 그의 마음은 가벼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노인의 집을 나온 성하의 마음은 여간 무겁고 불쾌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 천진하고 단순하고 유쾌한 노인으로 하여금 의에 벗어난 일을 예사로이 하고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게 하는가?
―첫째로 제도였다. 그런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에 물들기 때문에 그렇듯 유쾌한 노인으로 그렇듯 불쾌스런 행동을 예사로이 하게 하는 것이었다.
둘째로 그릇된 사대 사상(事大思想)이었다. 사원을 신성시(神聖視)하고, 서원에서 하는 노릇은 불가침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나라에 퍼지고 또 퍼진 사대 사상의 산물이었다. 군권과 관권보다도 삼고의 예의를 더욱 존중히 여기기 때문에 이런 불례(不禮)의 일이 산출된 것이었다.
세째로 위정자의 타락이었다. 자기네들도 매나가 매작과 토색과 뇌물을 가장 당연한 일로 여기고 행하는지라, 서원의 횡포를 금할 면목이 없을 것이었다.
「붉은 문의 안에서는 마부(馬夫)가 대추와 밤을 밟으며, 단청한 누각의 아래에서는 나귀가 약식(藥食)을 먹어서 가축이 인식을 먹되 금할 줄을 모르나, 이 나라는 풍년되고 따스한 겨울에도, 전하의 적자는 오히려 굶고 얼어 죽는 사람이 있소이다.」
얼마 전에 간관(諫官) 모의 상소와 같이 고관 거족들의 쓰레기 가운데도 고기 덩이가 그냥 섞여 있는 반면에는, 또한 물고기 먹으라고 강에 뿌리는 밥을 훔쳐 먹으러 위험을 무릅쓰고 물 속에 숨바꼭질하여 들어가는 가난한 백성이 부지기수이니 너무도 모순된 세상이었다.
이러한 모순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그것은 여간한 과단성과 힘과 패기를 가지고서는 하지 못할 것이었다. 천년에 한 번 날까말까 하는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손이 아니면 도저히 행하지 못할 노릇이었다.
누구―그런 힘센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지금 성하 자기가 머리를 수그리고 길을 걷는 동안에도, 많고 많은 재물들이 혹은 마바리로 혹은 소바리로 권문들의 집 창고로 몰려 들어갈 것이다. 권문들의 창고로 하루에 몰려 들어가는 재물이라 하는 것은, 또한 시골의 몇 집안이 몇 대를 내려오면서 근검저축을 하여 쌓아 온 노력의 결정일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에 이 너무도 어지럽고 혼란된 상태는, 어떤 위인이 생겨날지라도 도저히 펼 수가 없을 듯이까지 보였다.
―흥선 대감! 시생이 본 바의 당신은 분명히 비범한 인물이올씨다. 다른 사람이 감히 손도 못 댈 일을 넉넉히 감당할 분으로 보았읍니다.
―그러나 이렇듯 어지러운 국면을 당신은 능히 개척할 만한 능력을 가지셨습니까? 당신의 힘을 의심함이 아니라, 세태가 너무도 어렵게 됨을 근심함이로소이다. 시기를 놓치면 명의(名醫)라도 병을 고치지 못한다 하지 않습니까?
―대감! 일어서십시오. 만약 당신이 명의의 수완을 가지신 분이라면 하루 바삐 일어서십시오. 시기가 너무 늦어서 대사를 그르치기 전에 어서 일어서십시오.
저녁때라도 제 집으로 돌아들 가는 어지러운 무리의 사이에 섞여서, 성하는 머리를 푹 가슴에 묻고, 마치 술취한 사람 모양으로 고르지 못한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맨 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