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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제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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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七

[편집]

일찍이 성하와 동반하여 대비께 들어가 뵈옵고 나온 이래, 흥선의 몸가짐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집에 있는 날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여 집에 돌아오더라도 있는 시간이 극히 적었다. 곧 다시 밖으로 나가고 하였다.

흥선의 난행은 과시 놀랄 만하였다. 천 희연, 하 정일, 장 순규, 안 필주―소위 후일의 「운현궁의 천하장안」이라는 일컬음을 들은 이 네 사람의 관속은, 흥선의 난행에 가장 좋은 짝패였다. 이 네 사람의 오입장이를 앞장 세우고, 흥선은 투전판이라 기생집이라 술집이라를 마구 돌아다녔다. 당시의 마음 있는 사람들은 이 흥선의 너무도 과한 난행에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영락되었기로서니 몸이 왕가의 친척으로 태어나고, 그 위에 그다지 먼 친척도 아닌 이상에는 왕가의 체면으로라도 좀 몸을 삼갈 것이지, 기생집을 공공연히 다니는 것조차 과한 일이거늘, 「천하장안」과 짜 가지고 기생집으로 몰려 오는 시골 오입장이를 알겨 먹기가 일쑤이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투전을 하여 그 사람의 돈을 속여 먹기가 또한 예상사였다.

그런지라, 좀 결기 있는 몇몇 사람이 부러 흥선의 흔히 다니는 기생집에 지켰다가, 트집을 잡아 가지고 흥선을 두들겨 준 일까지 여러 번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것도 흥선은 탓하지 않았다. 매를 실컷 얻어 맞고 코통이 모두 터져서 코피를 쿨쿨 쏟으며, 그의 작다란 몸집을 팔팔 날뛰며 결이 나서 그러는 양을 보면, 다시는 기생집에 발길도 안 할 듯하지만, 그 집에서 매맞고 쫓겨나서는 얼굴의 코피를 씻고 또 다른 기생집으로 찾아가는 흥선이었다.

경패라 하는 약방 기생의 집에 흥선이 자주 다닐 때의 일이었다. 경기 감영의 호방으로 있는 박모라 하는 사람이 그 경패의 집에서 흥선을 만났다. 본시 흥선의 인물이 덜 났다는 소문을 들은 일이 있는 박모는 흥선에게 향하여,

『대감이 소인께 곡배를 한 번 하면 수석(首席)자리를 대감께 내어 드리리다.』

고 제의를 하여 보았다. 그러매 흥선은 서슴지 않고 일어나서 곡배를 하였다. 그러나 곡배를 할 동안 박모는 일어서면서 흥선의 옆구리를 발길로 찼다.

『이 더러운 자식!』

임금에게밖에는 못하는 곡배를, 왕가의 친척이 한 천리(賤吏)에게 하는 무슨 일이냐? 박모는 그 절을 받지를 못하고 황황히 일어서서 흥선을 발길로 차고, 흥선의 엎드린 등에 침을 뱉고, 소매를 떨치고 기생의 집에서 나갔다.

박모의 발길에 채어서 굴렀던 흥선은, 박모가 나나 뒤에 일어나서 발에 채인 옆구리를 두어 번 쓸어 보고, 도포를 벗어서 박모의 침을 더러운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씻어 버린 뒤에 예사로이 경패의 곁으로 내려갔다. 경패도 이 꼴을 좋지 못하게 보았던 모양이었다. 경패도 소피를 보러 간다고 나갈 뿐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을 경패의 방에서 혼자 담배만 빨고 앉았다가, 그래도 경패가 돌아오지 않으매, 흥선은 하릴없이 그 집에서 나왔다.

『에익, 헛 절을 했군!』

절을 했지만 그 절의 효력을 보지 못했다는 불평이었다. 이렇듯 흥선은 끝 없는 난행을 거듭하였다. 담뱃대를 가로 문 채 술에 취하여 길모퉁이에 구겨 박혀서 잠을 자다가, 통행인의 발길에도 흔히 채였다. 얼굴이 반반한 계집종이라도 지나가면, 뒤를 따라가면서 무엇을 달라고 조르기가 또한 예상사였다.

「무뢰한」이라는 이름조차 이 때의 흥선에게는 도리어 너무 거룩한 이름이었다.

포교들은 차차 흥선의 일행을 알아보고 그 일행을 피하게쯤 되었다. 아무리 난행을 거듭한다고 할지라도, 정일품 현록대부 흥선군 이 하응을 체포할 권한을 갖지 못한 포교들은, 차차 흥선을 알아보고 흥선을 피하였다.

흥선은 몇 번 붙들려서 포청까지 잡혀 간 일이 있었다. 만약 흥선으로서 체포당하는 그 때에 정신이 있었다면 호통을 하며,

『나는 흥선군인데, 어떤 놈이 나를 붙드느냐?』

고 호령을 하였을 것이로되, 에 과취하여 정신을 잃고 행패를 하다가, 몇 번 포교들에게 붙들리어 포청까지 잡혀 갔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젠 포도청까지 그 얼굴이 알리운 흥선은 더욱 자유로이 횡행하였다.

천, 하, 장, 안―이 네 사람의 참모는 흥선의 곁을 떠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이 장난꾸러기의 무뢰한 일패는 때때로 월장을 하여 남의 집 내청까지 들어가서, 문창을 침 발라 뚫고, 그 안에서 여름날의 저녁의 서늘함에 취하는 미녀들의 교태를 도규(盜竅)하는 취미까지 느꼈다.

누구인지 모르고 잡으러 따라오는 포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남의 집 뒷간에 몰아 넣고 달아나기가 일쑤였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계집 하인들의 옆구리를 간지럼시키기가 일쑤였다.

술이 취한 뒤의 그들이 하는 장난은 끝이 없었다. 마치 어린애들과 같았다. 어깨를 겨루고 큰 길을 좁히며 돌아 다니는 꼴―침을 뱉지 않고는 보지 못할 꼴이었다.

관가에는 연하여 이 네 사람에 대한 소장이 들어왔다. 내정 돌입을 하였읍네, 투전을 하여 돈을 빼았읍네, 술먹고 돈을 안 냈읍네, 성군작당하여 공연한 사람을 두들겼읍네, 별의별 소장이 다 들어왔다. 그러나 관가에서 처분할 수 없는 흥선이었다. 돈 없고 세력 없고―그러나 정일품 현록대부라 하는 명색을 가진 흥선은 처치하기 귀찮은 존재였다. 직접 관가에 손해나는 일은 하지 않는지라, 관가에서는 눈 감아 버리는 것으로 최상책을 삼았다.

『에쿠, 흥선 대감 행차하신다.』

『어디? 참, 얼씨구, 얼씨구! 이건 갈지(之)자 걸음이 아니구, 머뭇거릴착(?)자 걸음일세. 호이호이, 어이구 죽겠다. 꼴 좋다! 저게 군(君)이 다 뭐야?』

『우리 집 개 황귀(黃耳)도 황귀군(黃貴君)이라고 붙일까?』

『흥선군이라고 붙이고 말우.』

거리의 시민(市民)들의 이런 조소를 받으면서 흥선은, 천 이방, 하 영찰 등과 어깨를 겨루고 나날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여보게 원!』

『여보게 형!』

『여보게 이!』

『여보게 정!』

천, 하, 장 안을 흥선군은 원, 형, 이, 정으로 불렀다. 천 희연은 「원」이라, 하 정일은 「형」이라 불렀다. 장 순규는 「이」라 불렀다 안 필주는 「정」이라 불렀다. 이 천하장안의 원형이정과 흥선의 일행이 밤의 거리를 횡행할 때는, 맨 하류 부랑자들도 도리어 피하고 하였다. 맨 하류 무뢰한이 기세를 뽑는 연유는, 저 편 쪽에서 자기네의 체면을 지킨다는 핸디캡이 있기 때문이어늘, 흥선군이며 천하장안은 자기네의 체면을 돌아볼 만한 고급 무뢰한이 아니었다. 삯군들과도 상투를 마주 잡고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무리였다. 여기는 맨 하류 무뢰한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백강(白江)의 후손, 참판이 용은(參判 李容殷)은 괄괄하고 억세고 성미 급한 사람이었다. 이 용은이 어떤 때 하인들을 시켜 어떤 부민(富民)을 하나 잡으러 보냈다. 하인들이 주인의 명으로 그 부민을 잡으러 부민의 집에 이르러 보니, 자기네보다 먼저 판서 윤 정구(判書 尹正求) 댁 하인들이 그 부민을 잡으러 와 있었다. 거기서 하인들끼리 충돌이 되었다.

이 용은의 하인들은 주인을 닮아서 괄괄한 무리들이었다. 그 괄괄한 세로서 부민을 자기네가 잡아 가려 하였다.

그러나 선착권(先着權)을 가진 윤 판서 댁 하인들이 손쉽게 내어 줄 까닭이 없었다. 그 부민을 잡아 가기만 하면 주인도 한 몫 잘 보려니와, 하인들에게도 얼마만큼의 여경(餘慶)이 돌아오는지라, 하인들은 제각기 부민이라는 고기를 자기네가 잡으려고, 마지막에는 윤 판서 댁 하인과 이 참판 댁 하인의 사이의 격투까지 일어났다.

기운으로 이 참판 댁 하인들이 세었던 모양이었다. 이 참판 댁 하인들은 격투에 승리를 한 뒤에 부민만 잡아 가지 않고 「정당한 전리품(戰利品)」으로서 윤 판서 댁 하인들까지 잡아 가지고 위세 등등히 개선을 하였다.

『이 놈들아! 우리를 누구로 알고 잡아 가느냐? 우리는 윤 장작 댁 하인이로다.』

가련한 전패자들은 잡혀 가면서도 연하여 뽐내고 호통하였다.

사실에 있어서 당시 「윤 장작 댁」이라 하면, 「윤 판서」라기보다는 「윤 정구」라기보다는 더욱 유명하고, 온 근린의 부민들의 공포의 적(的)이었다. 윤 판서는 부민들을 잡아다 장작으로 두들겨 주고 하기 때문에 「윤 장작」이라는 별명을 듣던 것이다. 그리고 윤 장작 댁 하인이로라고 호통을 하면, 다른 재상가들은 슬며시 놓아 주던 것이었다.

그러나 주인이 이 참판을 본받아서 괄괄하기 짝이 없는 이 댁 하인들은 「윤 장작」쯤에 놀랄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민과 아울러 잡아 온 이 포로들을 주인 참판 영감께 바쳤다. 그 포로들을 받으면서 주인 참판의 호령이 이러하였다.

『그 놈들 윤 장작 댁 하인이라느냐? 그 놈들을 모두 묶어서 도끼 자루로 웅덩이 살이 해지도록 쳐라. 제가 장작이면 나는 장작을 패는 도끼로다.』

이 일 때문에 이 용은은 그 뒤부터 「이 도끼」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다.

이 이 도끼와 어떤 날 어떤 집 제사에서 흥선을 만났다. 본시 흥선의 행사를 아니꼽게 보던 이 도끼는, 처음에는 흥선과 대하기조차 귀찮아서 외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좌석에서 먹기에 급급하여 염치를 돌아볼 줄을 모르는 흥선은,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조각 끊임없이 먹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먹기에 급급하였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의 옷에 장이며 술을 마구 뿌렸다. 이 도끼는 처음 한동안은 차차 옴쳐 들어가며 그것을 피하고 있으나, 정 참을 수가 없어서 드디어 고함을 질렀다.

『대감, 며칠 굶으셨소?』

한참 먹기에 정신이 팔렸던 흥선은 도끼 영감의 말에 눈이 퀭하여, 어리석은 웃음을 띄고 도끼를 바라보았다.

『대감! 속 좀 차리오. 대감 댁 할아버님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속 좀 차리오. 그렇게 시장하거든 이따가 우리 집으로 오시오. 그러구 대감 댁에 모신 위패는 모두 묶어서 다른 데로 가져다 모시시오.』

잠시 어리석은 미소로써 도끼를 바라보면 흥선은 겨우 입을 열었다.

『다른 데 모시려두 누가 받아 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영감 드리리까?』

『에이! 사람 같지 않은 것!』

도끼는 뒷발로 방바닥을 차면서 일어나서 자리를 피하였다.

이렇듯 더욱 난행을 거듭하는 동안, 흥선의 성격이 이전과 다르게된 또 한 가지의 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전엔 예사로이 받던 일도 지금은 성을 잘 내는 것이었다. 대관 댁을 기신기신 찾아다닐 때에, 이전에도 많고 많은 수모를 받았지만, 한 번도 얼굴에 나타내어 성내어 본 적이 없는 흥선이었다. 그런데 이즈음은 차차 노여워하는 일이 많아졌다.

작다란 몸집, 뾰족한 얼굴을 새파랗게 하여 가지고, 노여운 듯이 중얼거리고 돌아가는 양이, 도리어 권문들에게는 재미스러워서, 그들은 일부러 전보다 더 많이 흥선을 놀렸다.

어떤 날 흥선은 김 병기의 내종사촌 되는 남 병철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남 병철은 역시 그의 외숙을 배경으로 삼고 당당한 세력을 잡고 있는 권문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 맏아들 재면이를 종친부(宗親府)의 무슨 관직이라도 하나 부탁하고자 왔읍니다.』

이 날은 흥선은 술도 안 먹은 모양이었다.

병철은 잠시 흥선의 얼굴을 보다가,

『대감 댁 맏도령은 대감과 달아서 좀 어릿어릿하답디다 그려?』

하였다. 「대감과 달라서」라 하는 말은 「대감과 같이」라는 반어(反語)였다.

『네, 좀 어리석기는 하지만 다 큰 녀석이 뻔뻔히 놀고 있는 꼴이 보기에 민망해서……』

『게다가 대감, 대감께 은밀히 충고하거니와, 이즈음 대감 좀 주의하시오. 이번 이 하전이 역모에 대감도 한 몫 끼었다는 세평입니다. 그러니까 대감 댁 도령을 어떻게 주선을 하겠소?』

흥선은 이 말을 들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다.

『에익! 그게 무슨말이람……』

흥선은 벌떡 일어섰다.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가지고 흥선은 입술을 떨었다.

병철은 여기서 큰 소리로 웃었다.

『무얼, 대감도 참예했지? 나도 짐작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아직껏……』

흥선은 그 뒷말을 듣지를 않았다. 그리고 발로 방을 차고 중얼중얼 무슨 저주의 말을 퍼부으면서 작별도 고하지 않고 나갔다.

『대감! 대감!』

말 없이 돌아가는 흥선의 등을 향하여 병철은 몇 번 고함쳐 보았다. 그런 뒤에 그 성나서 돌아가는 꼴이 우스워서 하하하! 웃었다.

이전 같으면 이런 일에 성낼 흥선이 아니었다. 이보다도 더 크고 역한 수모를 받고도, 정 참을 수가 없으면 돌아 앉아서 한참을 참아 가지고는, 도로 얼굴에 비굴스런 미소를 띄고 바로 앉고 하던 흥선이었다. 이 급작스러운 「성격의 변화」를 권문들은 재미있게 여기었다. 그리고 흥선이 오기만 하면 성낼 소리를 부러 하고, 성나서 투덜거리며 돌아가는 흥선은 웃으며 보고 하였다.

『차차 늙어 가면 노염도 많은 법이야. 흥선도 올해 벌써 마흔 둘이지? 분명히 경신생이지? 노염도 차차 많아 갈 나이야.』

『철을 팔아서 노염을 바꾼 셈인가? 노염을 알기 전에 철을 좀 알지. 이젠 들 나이도 됐는데……』

『철은 연년이 줄고, 노염은 연년이 는다. 주책 없는 인물!』

중인은 중인대로, 상놈은 상놈대로, 양반은 양반대로 모두 한결같이 흥선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연년이, 다달이, 지각이 줄어 가는 흥선을, 권문 거족들은 한 때의 심심풀이를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어릿광대로 여기었다. 흥선이 가는 곳마다 웃음의 꽃이 피고 하였다.

밖에서도 이전과 달라진 것과 같이, 가정 안에서도 흥선도 또한 이전과 달라졌다. 흥선이 가정에 돌아오는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그 셋은 시간 사이에는 아주 엄하고 규율 있는 가장이었다. 본시부터도 가정에서는 비교적 엄격한 가장이었지만, 난행의 돗수가 더하여 가면서 그 엄격함도 더하였다. 사랑에서는 천하장안의 네 사람의 친구를 모아 놓고 집이 무너질 듯 떠들다가라도, 발이 내실에만 들어서게 되면 얼굴에 나타났던 경한 표정은 씻은 듯이 없어지고, 순식간에 엄하고 규칙 있는 가장으로 변하고 하는 것이었다.

『재황아!』

『네?』

흥선이 불러서 작은아들이 이렇게 대답하면, 흥선은 그의 눈을 힐책하는 듯이 굴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소년은 황급히 자기의 말을 정정하는 것이었다.

『불러 계시오니까?』

『오냐! 두멘 묘 오너라.』

그러면 소년의 의장에 가서 갓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옷벌 의대도 갈아 입으십니까?』

『아니로다. 입는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옷도 잡수신다고 해야 한다.』

이 무뢰한 이 하응이 무슨 필요로 제 작은아들에게 대궐에서 밖에는 통용되는 곳이 없는 궁화(宮話)를 가르치나?

『수건(手巾)이 아니라 수긴이로다. 바지는 봉지라야 한다. 저고리는 등의대라 한다. 머리는 마리, 눈은 안정, 코는 비중, 손은 수장, 발은 족장, 어깨는 견부, 허리는 요부, 상투는 치, 이빨은 어치, 혀는 설상, 귀는 이부, 젖은 유도―진지는 수라, 차는 다탕, 약은 탕제……』

소년은 까닭을 몰랐다. 자기의 지금 아버지에게 배우는 기괴한 언어가, 어느 나라에서 혹은 어떤 속에서 사용되는 말인지 그것조차 몰랐다. 그리고 단지 아버지가 가르쳐 주니 배울 따름이었다.

그 언어, 동작, 마음―모든 점에 대하여 작은아들에게 대해서는 감독과 감시가 여간 심하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서 동리 허튼 애들과 돈치기를 하며 노는 것은 괜찮으되, 가정 안에서 하인을 부린다든가 다른 가인들에게 대하여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사소한 일까지도 감독하고 주의하였다.

어질고 현명한 부인은 지아버니의 하는 일을 간섭하지 않았다. 만약 가정에서도 흥선이 밖에서와 마찬가지의 난행을 한다 하면, 부인은 당장 어린아들의 훈육을 아버지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별별 망칙한 소문을 다 내는 흥선이로되, 가정에 들기만 하면 엄격하고 규율 있는 가장이 되는지라, 부인도 흥선의 훈육을 방임하였다.

부인은 아들이 지금 배우는 언어며, 행동이 어디서 통용되는 것인지 그 점은 짐작이 갔다. 그러나 자기네의 아들이 그것을 배울 필요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배움으로써 손해는 없는 일이며, 더욱 이 왕가의 근친으로 태어난 집안인지라 상식상 가르치는 것이어니, 이만큼 짐작하고 부드러운 미소로써 이 가르치고 배우는 부자를 보고 하였다.

이 나라의 양반 집안의 전형적 현부(賢婦)인 흥선 부인은, 지아버니 흥선이 밖에서 부리는 난행을 책하지 않았다. 밖에서 아무리 난행을 할지라도, 일단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엄숙한 태도로 자손을 훈육하는 그 지아버니를 존경하고 사랑할 따름이었다.

가내는 평온하였다. 단지 가난하여 생활상 부자유가 많은 것뿐이 이 집안의 흉점이지, 그 밖에는 나무랄 데가 없는, 안온하고 점잖은 가정이었다. 이 가운데서 소년은 몸과 영이 무럭무럭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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