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7장
七
[편집]토굴과 같은 집―
몇 해나 된 집인지 새까맣게 덜미고 또 덜미어서, 벽과 기둥의 경계선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된 그 위에는, 수증기와 기름때가 번지르하니 발리어 있다.
문에는 팔각등이 어렴풋한 빛을 겨우 비치고 있고, (키가 작은 사람이라도 허리를 잔뜩 굽히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낮은 문 밖에는 베 장이 늘이어 있으며, 그 틈으로는 김이 무럭무럭 문이 메게 나온다. 허리가 꺾어지도록 구부리고 그 안에 들어서 보면, 누린내와 고린내가 코를 쏘게 나는 그 안, 왼편에는 지금도 피가 뚝뚝 흐르는 쇠대가리가 눈을 부릅뜨고 걸려 있고, 그 아래 걸린 커다란 솥 안에는 전골탕이 우글우글 끓고 있다.
막걸리 냄새, 쇠대가리 삶는 냄새, 김치 냄새, 안주굽는 냄새, 사람의 땀 냄새, 저 편에서 몰려 오는 지린내―이런 가운데 흐리멍텅한 등잔 아래는 평민들이 모여서 그 날 하루 진일의 피로를 한 잔의 막걸리로 잊어버리려는―서울 명물의 막걸리집―
서서 술을 먹고, 서서 마음대로 안주를 집어먹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 원칙에 반하여 방의 한 모퉁이를 점령하고, 가운데 술상을 놓고 주전자로 술을 따라먹는 몇 사람의 손이 있었다.
모두들 벌써 반감은 지난 모양이었다. 어두운 등잔 아래 기름때가 내밴 그들의 얼굴은 검붉게 번들번들 광이 났다. 나이가 모두 사십 내외쯤, 계급으로 보아서 의관은 할 자격이 없는 상인들인 듯―
『이자식! 어서 먹고 잔 내라.』
남향을 하고 앉았던 사람이 자기 맞은편에 앉은 친구에게 이렇게 역정을 내었다.
『자식두! 서울서 매맞고 송도서 주먹질한다고 웬 짜증이냐?』
『후레자식! 내가 짜증이냐? 술잔을 내지 않기에 말이지. 네놈하고 술 먹다가는 모두 안달 나 죽겠다.』
『○○할 자식! 그럼 바리깨를 달래서 바리깨로 퍼부으려무나. 저자식 할애비가 술 못 먹어 죽었나베.』
『이자식! 우리끼리 다투면 다투지 조상은 왜 들추느냐? 그래도 우린 당당한 청풍 이가로다. 너 같은 상놈과는 다르다.』
『흥! 청풍은 도둑놈 많이 난다더라.』
싸움도 아니요 농도 아닌 말을 입에 거품을 물어 가지고 주고 받을 때에, 아직껏 잠자코 있던 다른 친구가 나섰다.
『자식들아! 나이 사십에 철따구니 없이 이게 쌈이냐 농이냐? 쌈을 할라거든 주먹이 왔다 갔다 하게 하거나……어린애들같이……』
『내야 누구 쌈을 하쟀나? 저자식이 술 타박만 연방하기에 말이지. 야, 이 어리석은 자식아! 이 철없는 자식아! 그래 조(趙)가 놈이 원님이 됐건 감사가 됐건, 네가 그렇게 샘을 할 게 뭐냐 말이다? 너도 원님 한 자리 벌려무나.』
즉, 아직껏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우던 「청풍 이가」는 풀 없이 머리를 푹 수그려 버렸다.
『글쎄 놈들아! 사나흘 전까지도 상투를 맞잡고 놀던 조가 놈이, 갑자기 원님이 웬 원님이냐 말이다.』
『그게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너의 누이를 무당이나 내리게 해서……』
그는 사면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합(羅閤) 댁에 들여보내려무나.』
『쉬! 남이 들었다는 목 달아날라.』
『걱정 말게. 내 소리는 쥐도 새도 못 듣네.』
『하하하하.』
그는 유쾌한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장상이 동석(將相同席)이면 아들도 거기 들어가지 못한다.
이리하여 옛날에는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같이 존중하였다. 뿐더러 그 부름에 있어서 「장상」이라 하여, 장을 먼저 놓고 상을 아래 놓아서 무관을 도리어 더 존중하였다.
이씨 조선 대흥(大興)의 명군인 세조(世祖) 때에 이르러서, 나라에서는 더욱 무를 숭상하였다.
이씨 오대 문종(文宗)이 승하하고 그 뒤를 이은 단종(端宗)은 아직 어린 임금이었다. 문종은 당시 재상 황보 인(皇甫仁), 남지(南智), 김 종서(金宗瑞) 및 집현전 학사 성 상문(成三問), 박 팽년(朴彭年), 신 숙주(申叔舟) 등에게 어린 세자를 부탁하였다. 문종 승하한 뒤에 보위에 오른 어린 상감(단종)에게 선왕의 유신들은 선왕의 유탁을 받잡고 충성을 다하여 섬겼다.
어린 상감이었다. 그 어린 상감을 보좌하는 신하들은 모두 선왕의 유탁을 받잡은 노신들로서, 상감 한 분뿐만 경지모지하고, 상감의 아래 널려 있는 이 나라의 백성을 돌볼 줄을 몰랐다. 이리하여 자를 가지지 못한 삼천리의 강토는 저 될 대로 의로 벋었다.
문종의 아우요 단종의 삼촌되는 수양 대군(首陽大君)은, 활달하고 명천한 머리의 주인이었다. 그는 조선이라는 강토가 차차 병들어 시들어 가는 모양을 보았다. 이대로 버려 두었다가는 그 병은 가까운 장래에 불치의 역(不治疫)에까지 이를 것을 보았다. 그래서 노신들에게 제삼 국가를 돌보기를 주의하였다.
그러나 선왕의 유탁으로 상감 보좌의 지위에 있는 노신들은, 불행히 나라를 돌아볼 활달한 눈을 가지지 못하였다. 어린 상감 한 분뿐을 기쁘게 하는 것이 즉 상감께 충성된 것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선왕께 대한 충성이거니, 이렇게 굳게 믿는 노신들은, 수양 대군의 충언을 무시하고 오로지 상감 한 분뿐을 기쁘게 하노라고 자기네의 늙은 머리의 지혜를 다 짜내었다.
「무사히!」
「평안히!」
이것이셔서 이 노신들의 유일의 모토였다. 상감 스스로 정치를 잡기까지의 기간을 무사히 평안히 지나는 것―이것이 노신들의 목표였다. 그런지라, 그들은(섣불리 하다가는 문젯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수양 대군의 충언을 묵살하여 버리고 말았다.
이 나라를 통솔할 분은 너무 어리고, 그 분을 도와서 일을 할 노신들은 위만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하는 동안, 위를 잃은 이 나라는 차차 병집이 커졌다. 그냥 버려 두었다가 다시 수습지 못할 만큼 병은 더하여 갔다.
여기서 수양 대군은 최후의 결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나라를 굳센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굳센 지배자가 필요하였다. 지금의 어린 상감과 무능한 노신들에게 그냥 맡겨 두었다가는, 가까운 장래에 나라가 망하겠다. 그 위태로운 지경에서 나라를 구해 내기 위하여 수양 대군은 스스로 서서 이씨 조선의 제 칠대의 임금이 되었다.
굳센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몸소 역모 멸친의 악명을 쓰고서 세조는, 이 문약(文弱)한 나라를 강한 나라고 만들기 위하여 무(武)에 치중하였다. 방방곡곡에서 무관을 뽑아 올렸다. 구 사람의 지벌의 여하를 막론하고, 힘깨나 쓰는 사람, 활깨나 쏘는 사람은 모두 등용하였다. 무인 전성의 찬란한 황금 시대가 세조의 무관 존중의 제도로 말미암아 한 때 벌어졌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겉이 있으면 반드시 속이 있는 법이다.
세조의 무관 존중 정책 때문에 무인(武人) 전성 시대는 현출되었다.
그러나, 그 폐해가 없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그 전성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엉터리 무인들이 사면에서 생겨났다. 말 못 타는 대장, 활 못 쏘는 활량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문과에 급제하기는 힘들되, 무관에는 웬만만 하면 급제가 되므로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이리로 모여 들었다. 어젯밤의 A읍 아전 향리가, 오늘은 당하관이나마 당당한 무관으로서, 어제의 상관이던 사람과 동석을 하게 되는 예가 여기저기 생겼다. 어제의 B진사 댁 하인이 무과에 급제를 하여 오늘의 어제의 상전을 동무삼는 일이 드문드문 있었다.
엉터리 무 갑, 을, 병, 정, 누구, 누구 몇몇 사람의 선비(혹은 급제)가 모여서 한담들을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집의 하인을 부른다.
『여봐라 아무개야? 아무개야―』
몇 번 불러 보아도 대답 소리가 없으면,
『음, 그 놈 과거보러 간 게로군!』
이렇듯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무과 과거로 몰려들고, 몰려든 무리들은 대개는 급제를 하게 되었으므로 무인의 품질이 차차 떨어졌다. 군노, 향리, 종, 머슴 할 것 없이, 신수 좋은 사람은 다 급제를 하기 때문에, 무인들의 품질은 매우 낮게 되었다.
품이 떨어지면 따라서 존경도 받지 못하게 된다.
―장상이 동석이면……
이리하여 장과 상을 동급으로 쳤지만, 무인들의 품질이 차차 떨어짐을 따라서, 무인은 차차 문인에게 수모를 받게 되었다. 종이품(從二品)인 문참판(文參判)이 도리금 도리옥의 무판서(武判書)나 무판윤(武判尹)을 눈 아래로 깔아보고 인사도 변변히 안 할 뿐더러, 도리어 무장들을 건방지다 말썽을 부리는 일이 흔히 있었다.
무를 존중하자고 시작한 이 법은 차차 무를 멸시받게 하였다.
그렇게 된지라, 소위 양반의 자손들은 무과에 급제를 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알았다. 어느 보국 댁 어느 숭록(崇祿) 댁 몇째 아들이 무과에 급제를 하였다 하면(애당초에 가지도 않거니와) 그들은 피하고 머리를 돌리고 하였다. 여기 따라서 문과에 급제를 한 사람들의 긍지는 차차 높아 갔다.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 말은 본시는 문무를 구별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차차 어느덧 문과에 급제를 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되게 되었다. 무과 같은 것은 양반의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상놈들의 등용문이었다.
이렇듯 문과에 급제하는 것을 존중히 여기는 시대가 오래 계속되었다. 문과에 급제를 한다는 것은 온 백성의 바라고 희망하는 바였다.
문과에 급제한다는 일이 그렇듯 명예스러우니만큼 그 전형에 있어서 첫째도 지벌이요 둘째도 지벌이요 세째도 지벌이요, 무엇보다도 지벌이었다. 지벌이 나쁘면 제 아무리 재간이 비상하다 하더라도 절대로 급제를 하지 못하였다. 지벌이 나쁘기 때문에 무관이 하대를 받느니만큼 문관 등용에 있어서는 첫째도 둘째도 지벌이었다. 지벌이 급제의 제일 요소였다. 그리고 그것이 제일 요소인지라, 급제한 사람의 코는 더욱 높았다. 문과에 급제를 한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지벌이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였다.
그 자랑스러운 「문관」이라는 열매도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차차 따기가 쉽게 되었다. 어중이떠중이도 「문관」이라는 열매를 능히 딸 수가 있게 되었다.
영의정 하옥 김 좌근(領議政荷屋金左根)
하옥 김좌근은 현 왕비의 아저씨였다. 세도 김 병기는 하옥의 양아들이었다. 대제학 영초 김 병학(大提學穎樵金炳學)이며, 훈련 대장(訓練大將) 영어 김 병국(穎漁金炳國)은 모두 그의 조카였다. 영흥 부원군(永興府院君) 김 문근(金汶根)(현 왕비의 친정 아버지)이며 김 현근(金賢根), 김 흥근(金興根) 등이 모두 그의 일족이었다. 하옥은 이 당당한 일족의 그 어른 격이었다. 몸이 영의정이며 그의 아들이 세도인지라, 다른 일족이 없을지라도 그 세력은 무서울 것이다.
하옥에게는 앙씨라 하는 애첩이 있었다. 본시 나주 기생으로서, 출신이 기생이니만큼 간교하고 요염하여, 늙은 하옥을 마음대로 놀렸다.
하옥이 양씨를 위하여 집을 수리할 때의 일이다. 안방에서 긴 담뱃대를 피우고 있던 양씨는 갑자기 하옥을 안방으로 청하였다. 양씨의 명령에 의하여 하옥은 호인다운 미소를 얼굴에 띄워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나주 합하(羅州閤下)께옵서 왜 또 불러겝시나?』
벙글벙글 웃으면서 마루에 와 걸터앉은 하옥에게 향한 양씨의 눈찌는 그다지 곱지 못하였다.
『대감!』
『왜 그래?』
『대감, 대체 어쩌자는 셈이세요?』
『어두운데 주먹이라, 갑자기 왜 이리 노하셨나?』
양씨는 입에 물었던 기다란 담뱃대를 오른손으로 들고, 지금 한창 세우는 중인 사랑 용마루를 가리켰다.
『저것 보서요. 사랑 지붕에 가리워서 목멱산이 보이지를 않으니, 나 같은 천비는 남산도 보지 말고 살라는 셈이구료? 너무도 심하시외다.』
하옥은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허어! 남산이 보이지를 않는구면. 남산이 안 보여서야 되나. 당장에 이놈들을 꾸짖어야지.』
여기서 나온 하옥은 직접으로 목수를 호령하여 사랑 기둥을 잘라서 안방 마루에 앉아서도 남산이 우러러보이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양씨의 세력은 당당하였다. 하옥은 그의 손으로 나라를 주무를 권력을 잡았다. 양씨는 그의 손으로 하옥을 주무를 권력을 잡은 것이었다.
그런지라, 양씨는 하옥을 통하여 간접으로 나라를 주무를 권력을 잡은 것이었다. 세상이 양씨를 가리켜 나주합하(羅州閤下)라 하고 나합(羅閤)이라 함은 이 때문에 나온 이름이었다.
본시 기생인 양씨는 무당 복술을 몹시 섬겼다. 본시 천비인 양씨는 금전을 여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지라, 금전을 뇌물하거나 무당 복술의 손을 빌면, 시정의 상놈이며 시골 머슴군이라도 넉넉히 나주 합하 양씨에게 접근을 할 수가 있었으며, 양씨에게 접근하여 양씨의 총애만 얻으면 벼슬 같은 것은 마음대로 얻어 할 수가 있었다.
이 양씨의 손을 통하여 조선 각도에 퍼져 나간 수령의 수가 꽤 많았다. 그리고 이 수많은 수령들을 일변 만들어 보내고 일변 갈아 들이는 동안 양씨의 손 안에 들어온 금은 보화가 누백만이었다.
상놈으로 태어나면 절대로 얻어 할 수 없던 문관이 양씨의 덕택으로 상놈도 얻어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양씨에게 귀염받는 무당이나 복술을 자기의 친척 가운데 가지고 있으면, 그가 비록 상놈일지라도 넉넉히 벽지의 수령쯤은 얻어 할 수가 있었다.
『나합(羅閤)!』
비웃음과 경멸과 위포가 함께 섞여 이 이름은 서슬이 푸르르기 짝이 없었다.
조(趙)성 쓰는 상놈이 하나 있었다.
성애라고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정업은 투전이었다. 투전을 하여 요행 돈냥이라도 생기면 그것으로 술을 먹었다.
투전판도 알맞은 것이 없을 때는 길목을 지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생트집을 잡아서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 거기서 몇 잔의 술이라도 따 내고 하였다.
포도청 포교들이며 금부며 옥졸들도 이 조가는 꺼리었다. 조가는 옥에 갇히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예상사로 알았다. 나오기만 하면 당일로 또 다시 못된 일을 하였다. 뿐더러 자기를 잡아 가둔 포교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았다.
옥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맞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인지라 모두들 이 조가를 꺼리었다. 포교들이 밤중에 알지 못하고 조가를 붙들었다가도 조가인 줄 알기만 하면,
『이번에는 용서해 주거니와 이 다음 다시 잡히는 날은 용서하지 않는다.』
고 위협한 뒤에는 자기 편에서 슬며시 피하고 하였다.
이 조가에게는 고모가 하나 있었다. 그 고모는 무당이었다. 무당 가운데도 그다지 불리지 못하는 재짜 무당이었다. 그것이 어찌어찌하다가 우연히 하옥 애첩 양씨에게 불리게 되었다. 사람의 연분이란 기괴한 것으로서, 이 말째 무당이 한 번 두 번 양씨에게 드나드는 동안, 양씨의 신임과 총애를 얻었다. 그 무당이 양씨에게 신임을 받게 뇐 얼마 뒤에, 거리의 부랑자 시빗군 조가는 변방이나마 함경도 어떤 고을의 성주로 임명이 되었다.
―토굴과 같은 안국동 어떤 막걸리집 누린내와 지린내와 막걸릿내가 뒤섞인 마굴에서 술군 세 사람이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는 이 조가에 관한 말이었다.
『좌우간 좋은 세월일세. 조가 놈이 원님이 다 되어 간다니―그러면 우리도 원님 되지 말라는 법이야 없겠지.』
두 사람의 다툼을 말리던 친구가 탄식 섞인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청풍 이가」는 그래도 자기의 샘을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따윗 놈이 원님? 흥! 그 놈이 원님 노릇을 제대로 한다면 내×도 선달―흥! 선달? 판서를 하겠다. 판서? 정승이라두 하겠다. 원님이 다 뭐냐? 아니꼽게.』
『이 청풍 이가야, 양반아, 도둑놈아! 글쎄, 내가 조가를 원을 시켰단 말이냐? 왜 내게 시비냐? 내가 원을 시킬 수만 있다면 네 말마따나 네×도 정승을 시켜 주마. 공연히 떠들지 말고 잔이나 어서 내서 이리 내보게.』
불평객은 겨우 잔을 들었다. 꿀꺼덕! 목젖 소리를 내며 단숨에 막걸리를 들이키고 잔을 맞은편에 앉은 친구에게 던져 주었다.
『자 따라 주게. 그렇게 응얼응얼 할 게 아니라. 그 놈이 원님이 됐으면 우리는 술값이나 따 내러 놈을 찾아가구 함세나. 놈이 아무리 원님이 됐단들 우리야 괄시하겠나? 술값 떨어지면 찾아가구 함세나.』
호기로운 친구는 여전히 하하하 웃으면서 술잔을 들이켰다. 떠오르는 김, 몰려 오는 지린내, 누린내―이러한 가운데서 어두컴컴한 등잔 아래 이른 봄의 밤은 차차 깊어간다. 자기네의 그루우프 가운데서 한 사람의 원님을 낸 동지들은 이 값싼 향락처인 막걸릿집에서 그들의 종일 시달린 피로와 울분을 텁텁한 몇 잔의 막걸리로써 푸는 것이었다.
야반(夜半)을 알리는 종 소리가 꺼지는 듯한 무거운 여음을 남기면서 울었다. 그 종 소리의 여음을 기다리던 듯이 「수리어!」하는 장님의 웨치는 소리가 가까운 어느 곳에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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