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9장
九
[편집]『석파(石坡)가 올 터인데……』
『글쎄, 모르나?』
『석파의 코는 십 리 밖에서도 술 냄새는 맡는데 모를 까닭이 있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필운대(弼雲臺)의 답청―
훈련 대장(訓練大將) 영어 김 병국(潁漁金炳國)을 비롯하여 서너 대관들의 탐춘 놀이였다. 서로 너나들이하는 가까운 벗끼리, 이 봄의 하루를 즐기려고 필운대에 모인 것이었다. 놀이, 제사, 잔치를 무론하고 대관 집 음식 차림이 있을 때는 어떻게 아는지 반드시 찾아 오는 흥선이 아직 오지 않으므로, 그들의 이야기는 자연히 석파 흥선군에게 미친 것이었다.
필운대의 명물인 만개된 살구꽃은 그윽히 그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직 성 안에는 봄 풍경이 그다지 명료히 오지 않았지만, 필운대며 그 근방에는 봄도 이미 무르익었다. 아리따운 기생 몇 명이 시중을 들었다. 좀 떨어진 곳에는 공인(工人)들이 한 상 받고 앉아서 서로 한담을 하고 있었다.
『대감! 자네는 흥선군과 흠 없이 지내는 처지이니 말이지, 한 번 말 좀 톡톡히 하게. 우리 보기에도 창피스럽데. 그렇게 먹을 데 바치는 사람은 쉽지 않아.』
숭정(崇政) 갑(甲)이 영어 김 병국에게 권고 비슷이 이렇게 말하였다. 영어는 미소하였다.
『그게야 자네는 지내 보지 못해서 경험이 없기에 하는 말이지. 시재 배고픈데 염치를 어떻게 차리겠나?』
『염치를 안 차린대도 분수가 있지, 그런 변이 어디 있겠나? 일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네 그려―』
일전 그 갑(甲)이 어떤 집안 어른을 모시고 봄 구경을 홍인문 밖으로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마침 그 근처를 배회하던 흥선에게 들킨 바가 되었다. 흥선은 얼굴에 굶주린 미소를 띄고 이 패에 섞이어 들어왔다. 갑이 모시고 갔던 어른은 이것이 너무 역하여, 그만 일어서서 저 편으로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러매 흥선은 빈 자리에 들어앉아서 마음대로 음식을 다 버르져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글쎄, 그런 변이 어디 있겠나? 내가 망신을 했네 그려.』
갑은 이렇게 술회하였다.
영어는 자기의 왼편 귀 아래 맺은 호박 갓끈을 어루만지면서 그냥 미소할 따름이었다. 지금의 권문 전부가 흥선 따위는 사람으로 보지도 않고 수모가 막심하였지만, 영어는 흥선을 수모로 하면서도 일종의 동정심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흥선의 무염치를 수모는 하면서도, 또한 남들과 같이 내놓고 멸시는 못하는 것이었다.
『석파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여기어 두어야 하네. 어느 어른을 모시고 갔었는지는 모르지만, 석파가 온다고 자리를 피하신 그 어른이 실수시지. 그래 자네 음식상 받았을 때 주린 짐승이나 새 버러지가 온다고 자리를 피하겠나? 그 어른의 실술세.』
『자네는 흥선군을 늘 두둔하데 그려?』
『불쌍하지 않나?』
『십상 팔구는 좀 있다가 여기로 올걸. 오면 내 한 번 망신을 시켜 주지.』
『그건 마음대로 하게.』
『자네 간섭했다는 안 되네.』
『내가 왜 간섭을 하겠나? 내가 석파의 조카인가 삼촌인가? 간섭할 까닭이 있나?』
갑은 기생을 돌아보았다.
『너희도 잠자코 보기만 해야 된다.』
그 기생들 틈에는 흥선과 가까이 지내는 계월이도 있었다. 계월이는 억지의 미소로써 대답하였다.
『대감의 코는 사냥개 이상이야. 허허허허!』
『?』
이 청년 재상들의 예상과 같이 낮 좀 기울어서 흥선은 옷자락을 날리면서 땀을 벌벌 흘리며 이리로 찾아왔다.
『갑갑해서 행화 구경을 왔더니……』
스스로 변명하는 듯이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인사를 하며 오는 흥선에게, 갑은 대짜로 사냥개의 코라 조롱하였다.
영어 김 병국은 호인다운 미소를 얼굴에 띄고 흥선을 보았다. 미리부터 흥선이 오면 망신을 시키겠노라고 벼르고 는 갑의 잔혹성을 잘 아는 영어는, 이제 갑의 일시적 희롱물이 될 흥선이 가엷었다. 희롱을 한다손 치더라도 흠 없는 희롱으로 그치면 좋으나, 갑의 잔혹성으로 미루어 한 때 웃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매, 영어는 그것이 속으로 얼마만큼 꺼리었다. 할 수 있는껏 불쾌한 희롱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갑이 다른 말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일으키면서 흥선을 맞았다.
『자, 어서 오시오. 대감 가야금을 들은지도 오래니 한번 들어 봅시다.』
『아들이 이렇듯 올라오라니 좀 올라가 볼까?』
『에익!』
흥선과 영어는 서로 흠이 없니 농담도 하는 처지였다. 비굴한 웃음 아래서 한 마디의 농담을 던지면서 흥선은 올라왔다. 올라온 흥선을 갑이 맞았다.
『땀을 벌벌 흘리며 예까지 온 이상에야, 대감 거저야 가시겠소? 계월이 너 대감께 한 잔 따라 드려라.』
계월이는 돌아왔다. 잔에 술을 부어 가지고 흥선에게 드릴 때에, 계월이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다분히 나타나 있었다. 땀을 벌벌 흘리며 무얼 찾아 잡수러 오셨소 하는 표정이었다. 나무라는 듯이 계월이가 술을 따라서 부어 주는 것을 흥선은 받아 채어서 먹었다. 권주가도 쓸데없이, 목마른 듯이―
갑이 잔포한 웃음을 띄고 영어를 찾았다.
『영어!』
『오?』
『자네는 언제 흥선군 댁에 양 들었나?』
『예끼 망할……』
『효잘세, 효자야! 물려 먹을 것 많으리. 깨진 항아리, 떨어진 도포, 투전목―하하하하! 또 뭐 있을까?』
이 자기에게 대한 모멸적 비웃음을 아는 모르는지 도리어 흥선이 갑의 말의 뒤를 받았다.
『또 있지요. 영어는 무엇보다도 내 낡은……』
말을 계속하려는 흥선에게 영어가 손을 탁 내밀었다. 그 손을 피하여 흥선은 한 자리 뛰었다.
『하하하하, 내 낡은……』
『예익!』
영어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흥선을 잡으러 한 걸음 달려 갔다.
영어를 피하여 흥선은 일어서서 상 맞은편으로 뛰어갔다. 영어와 흥선은 상을 가운데 놓고 서로 으르고 있었다.
『내 낡은……』
『저런, 버릇 없이! 아비에게 향해서!』
『오자(吾子) 영어야!』
『오손(吾孫) 석파!』
마주 서서 서로 아들이라 손자라 어르는 틈에 갑이 또 끼어들었다.
『대감도 왜 하던 말을 채 못 하시오?』
『그래 낡은 무엇을?』
『내 낡은 후랄 두 쪽을 자기 자당께 드……』
말을 채 맺지를 못하였다. 영어가 상을 건너뛰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몸집으로 흥선을 붙잡았다. 다음 순간은 흥선의 작다란 몸집은 영어의 양 다리 틈에 끼었다.
『자, 호부(呼父)허오, 호부해!』
『오자(吾子)!』
영어의 다리 틈에 끼인 흥선은 작은 소리로 응하였다.
『자, 호부 못 하겠소?』
영어의 다리 틈으로 겨우 좀 나온 흥선의 얼굴은 힘없게 영어의 다리에 끼웠기 때문에 검붉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냥 굴하지 않았다.
『오자 오손!』
『그냥?』
영어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영어가 다리에 힘을 줌에 따라서, 그 틈에 끼인 흥선의 입에서는 낑낑 하고 괴로운 소리가 났다.
『아이 답답해, 답답해!』
『호부하면 놔 주지.』
『아―버―님!』
흥선은 드디어 굴하였다.
『다시 한 번!』
『아버님!』
『그러면 그렇지!』
그러나 영어가 겨우 다리의 힘을 좀 늦추자, 거기서 뛰어 나온 흥선은 도망하여 계월이의 뒤로 피하였다. 그리고 계월이를 방패삼아 가지고 계월이에게 말하였다.
『자 계월아, 그래 누가 아비냐? 네가 판단을 해라.』
계월이의 얼굴에는 억지의 미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흥선을 가리키며,
『대감이 아버님이시지요.』
『요년! 무얼?』
『아니올씨다. 오늘 일기가 좋다고 여쭈었읍니다.』
한 토막의 희롱은 끝이 났다.
그 내막이 어떤 것을 모르는 흥선은, 농담이 끝난 뒤에 여전히 만족한 듯이 다시 상 앞에 와 앉았다. 그러나 영어는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흥선을 오는 참으로 망신시키려는 것을 자기가 가로 맡아 가지고, 아비라 아들이라 하여 슬며시 그 문제를 삭여 놓기는 하였다. 그러나 갑의 눈치로 보아서 어떤 망신을 흥선에게 줄 것은 분명하였다.
그것이 영어에게는 싫었다. 이 다음에 따로이 같이 흥선에게 망신을 준다는 것은 관여할 바가 아니로되 오늘 이 자리에서만은 망신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 고약한 년이로군!』
흥선과 희롱을 하기 때문에 구겨진 옷을 툭툭 털면서 영어도 도로 바로 앉았다. 상을 받고 술을 먹으려다가 영어 때문에 못 먹은 흥선은, 농이 끝나기가 바쁘게 다시 먹을 것에 달려들었다.
『나만 먹기 미안하외다 그려. 판서도 좀 드시지요. 오자는 안 먹겠소?』
혼자 상 앞에 마주 앉은 것이 미안스러운지 이런 말을 하였다. 흥선의 말마다 독한 대답으로 응하던 갑은 여기도 또 같이 응하였다.
『혼자 잡수시오. 대감 혼자서도 부족해 맞을 걸……』
『이걸 나 혼자야 어떻게 다 먹겠소.』
『뿐더러 대감 잡숫던 걸 누가 먹겠소?』
어성(語聲)은 예사롭지만 이 지독한 독설에 흥선은 들려던 젓가락을 멈추었다. 한 순간 눈과 귀가 움찔하였다. 그것을 폭발시킬지 삭여 버릴지 판단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이 가운데를 영어가 뚫고 들어왔다.
『농을 한바탕 했더니 목이 마르군. 갑 판서 을 판서는 많이 잡수셨으니깐 우리 부자끼리 몇 잔씩 더 합시다.』
『참 영어는 효자야! 우리 가문의 행복일걸.』
갑에게 대하여 폭발하려던 노염을 감추어 버리면서 흥선은 영어에게 미소를 던졌다. 이 미소―흥선의 마음이 불쾌하든가 어색하든가 싱겁든가 할 때에는 반드시 나타나는 이 미소는, 흥선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호신장(護身裝)인 모양이었다.
『호부(呼父)한 뒤에 인제 말을 고치면 대감 자당을 욕하는 게 된다오. 그런 불효의 짓은 하지 마시오.』
『오자―오손―에이 아들로 승격을 시켜주어라.』
이리하여 영어는 흥선과 상에 마주 앉았다. 갑 판서는 그 뒤에도 기회 생길 때마다 흥선에게 망신을 주려고 독한 입을 놀리고 하였다.
그러나 웬만한 망신은 흥선의 망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신경이 없는 사람이 아닌 이 이상에는 반드시 찔릴 만한 독설을 퍼부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흥선은 이것을 알아들었는지 혹은 못 알아들었는지 거저 넘기고 하였다. 이러한 흥선으로서도 거저 넘기지 못할 최극단의 독설이 나올 때는 영어가 어름어름 넘겨 버려서 그 독설 이 직접 홍선에게 및지 않도록 하였다. 하루를 유쾌히 놀려던 이 답청은 흥선 때문에 이상한 기분으로 종시되었다.
저녁때가 거의 되면서, 하루 종일 수많던 일기가 차차 이상하여 가기 시작하였다. 저녁 하늘에 한 점 거멓게 생겨난 구름 덩이가, 갑자기 퍼지기 시작하다가 순식간에 하늘의 절반을 덮었다. 원뢰(遠雷)의 소리까지 한 두 번 났다. 이 불쾌한 답청을 어서 끝내려고 기회만 보고 있던 영어가, 이 일기의 급변을 보고 즉시로 귀가를 재촉하였다.
『어, 날씨가 갑자기 변한다. 한 소내기 오실 모양이군! 비 오시기 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시다.』
이리하여 저편 딴 데서 놀던 하인들을 불러서 일변 걷어 치우며 일변 교군의 준비를 하며 하였다. 이리하여 흥선과 갑 판서의 사이에 생겨나려던 불상사는 무사히 패스가 되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인위로서 만들려는 불상사는 이 최후의 순간에 이르되 그만 폭발되고 말았다. 하인들이 남은 음식들을, 버릴 것은 버리고 그릇을 간수하며 하노라고 돌아갈 동안 흥선은 음식 치우는 그릇에서 한 조각의 포육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이 편에서 남녀의 준비를 기다리고 있던 갑 판서가 걸핏 그것을 보았다. 흥선을 망신을 시키려고 벼르기만 하면서 아직껏 진정한 망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적이 불만하던 그의 눈에 이 꼴이 띄었는지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보는 순간 그는 그 편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하인을 불렀다.
『여봐라!』
하인이 대령하였다.
『깜박 잊었다. 그 남은 음식들을 모두 종이에 싸서 흥선 대감께 드려라. 내버려야 새 짐승의 살이나 할 것이나, 잘 싸서 대감께 드려라. 한동안 반찬은 되리라.』
그리고 흥선을 향하여 말을 계속 하였다.
『대감, 사양하지 마시고 가져가시오. 신발 삭이고 이런데 찾아 다니시기보다, 저것을 가져가면 한동안은 댁에서도 넉넉히 자시리다. 근처에 개 짐승이라도 보이면 주고 말겠건만, 불행히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내버리자니 대감이 아수해 하시겠고……』
포육 한 조각을 집어 씹고 던 흥선은, 획 갑 판서를 등지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뒷덜미가 들먹거리는 것으로 보아서, 떠오르는 격분을 누르려고 노력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상전의 부름에 등대는 하였지만, 하인도 이 너무도 심한 영은 그대로 거행할 수도 없는지 허리만 굽히고 그냥 서 있었다. 이런 불쾌한 장면을 조정함에는 다시 영어가 들어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 판서의 영 때문에 그릇을 치우던 하인들이 손을 멈추고 있는 것을 보고 영어는,
『금방 비가 쏟아지려는데 왜들 꿈질거리느냐?』
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이 영어의 말에 갑 판서는 다시 매달렸다.
『얼른 종이에 싸서 드리지 않고 왜들 꿈질거리고만 있느냐?』
그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호령하였다.
『여보게 갑 판서, 그것 뭘 그러나? 농담은 인제 그만 두게나.』
영어는 하릴없이 갑 판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농담? 자네는 불효잘세 그려! 효성이 있으면 아버님 안주를 어떡허든 마련해 보려고 애쓸 터인데 생기는 안주까지 버리려는가?』
『예익 이 사람! 행차 준비 됐네. 어서 가기나 하세.』
『응, 가지. 자 썩 싸서 드려라. 한 점이라도 버렸다가는 용서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갑 판서가 발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그 모양을 아니꼬운 듯이 보고 있던 계월이가 갑 판서에게 농담을 한 마디 던졌다.
『대감, 그게 그렇게 아까우세요?』
이 계월이의 말이 드디어 불집이 되었다. 발을 옮기려던 갑 판서는, 천천히 몸을 도로 계월이의 편으로 돌렸다. 오늘 흥선을 감싸는 태도를 보인 것부터 아니꼽게 여기던 터이라, 몸을 돌려서 계월이의 위에 부은 갑 판서의 눈자위는 놀랍게 충혈이 되었다.
『무어 어쩌구 어째?』
이것을 그냥 농담으로 여긴 계월이는 한 마디의 희롱을 더 던졌다.
『그렇게 아까우시면 소인이 대감 댁까지 가져다 드리리다.』
『요년! 너 그게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 기생년의 행실이 그러냐?』
『여보게 판서, 취했네. 가세 가.』
『가만 있게! 기생년이 양반에게……요년! 너 그게 어디서 배운 행실이냐?』
농담으로 알고 한 마디 던졌다가 막찔리운 계월이는 눈이 둥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둥그렇게 되었던 눈은 순간에 미소로 변하였다. 명기 현기라는 이름을 듣는 계월이의 혼은, 이 엉터리 트집 아래 머리를 든 모양이었다.
『대감, 소인이 대감께 그런 말씀을 드린 게 행실이 글렀다면 아무런 것을 해서라도 사죄를 하오리다. 그렇지만 대감께 거슬리는 말씀을 대감께서는 왜 다른 분께 하셨읍니까? 대감께서……』
말을 맺지를 못하였다. 갑 판서의 억센 손이 계월이의 뺨으로 날아 온 것이다.
『요 망할 계집 같으니! 이놈들! 썩 싸서 흥선 대감께 드리지 못하겠느냐?』
계월이는 고꾸라졌다. 그의 코에는 피가 쏟아졌다. 이 갑 판서의 호령에 아직 주저하던 하인들은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인들은 남은 음식을 되는 대로 종이에 쌌다.
『이 사람, 점잖지 못하게 이게 뭐인가? 어서 가세! 행차 얼른 등대해라.』
무안하고 거북하여 영어는 어쩔 줄을 모르고 돌아갔다. 아까 몸을 등칠 뿐 흥선은 죽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든지 어떤 표정을 하였는지, 다만 그의 등만 약간 떨리고 있었다. 갑 판서의 엄명을 거역지 못하여 한 사람의 하인이 음식 싼 종이를 흥선에게 가지고 갔다. 그리고 그것을 받으라는 듯이 그의 소매 아래로 들이밀었다.
흥선의 몸이 비로소 움직였다. 천천히 하인의 편으로 돌아섰다.
『요놈!』
놀라운 음성이었다. 산천이 드르렁 울리었다. 작다란 몸집의 어디서 그런 우렁찬 소리가 나왔나? 이 너무도 우렁찬 소리에 영어는 눈을 흥선에게 던졌다.
그 때 흥선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 그것은 왕자(王者)나 고승(高僧)의 얼굴이고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온화하고도 엄격하고 위엄성 있는 얼굴이었다. 영어가 흥선을 안 이래 삼십 년―아니 영어가 세상에 난 이래 처음 보는 위엄 있는 얼굴이었다. 영어는 그 얼굴에 위압되어 머리를 딴 데 돌리고 말았다. 갑 판서는 흥선의 호령에 얼굴을 흥선에게로 돌렸다. 돌렸던 얼굴을 황급히 다른 데로 구을리며 남녀로 향하여 발을 뗀 것은, 그도 이 위엄에 압도된 때문인 모양이었다.
영어, 갑 판서, 을 판서의 일행은 벽제 소리 요란히 구종별배를 달고 이 필운대를 떠났다. 계월이 외의 다른 기생들도 떠났다. 뒷설겆이를 하고 하인들도 돌아갔다. 그 뒤에 남은 것은 흥선과 계월과 좀 아랫쪽에 계월이의 교군군뿐이었다.
흥선은 묵연히 서 있었다. 그 곁에 계월이도 쫑그리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하늘은 새까맣게되었다. 금시로 소나기가 쏟아질듯 하였다. 와르르 와르르 천둥소리가 연하여 났다. 하늘을 날던 새 새끼들도 이 무서운 날씨를 피하여 각기 제깃으로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이런 날씨의 변화도 모르는 듯이 흥선과 계월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댁으로 모시랍쇼?』
교군군이 보다 못하여 채근할 때에도 계월이는 모르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드디어 계월이가 먼저 머리를 들었다.
『대감!』
흥선은 대답지 않았다. 못 들은 듯이 그냥 있었다.
『대감!』
『……』
『대감!』
『어, 날씨 고약하군! 비가 곳 올 모양이군. 계월이 너 왜 어서 가지 않느냐?』
『대감!』
『자, 어서 가거라. 여봐라, 교군군. 어서 모셔라.』
아아. 이 공자는 벌써 그 모욕을 잊었나? 계월이로서도 아직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거늘, 당자 흥선 대감은 벌써 잊었는가? 계월이가 너무도 억울하기 때문에, 눈물 머금은 눈을 쳐들고 흥선의 얼굴을 바라보매, 흥선의 얼굴에 아까 하인을 호령할 때에 나타났던 표정은 씻은 듯이 없어지고, 예사로운 얼굴로 자기를 쳐다보는 계월이를 마주 굽어 보았다.
그러나 계월이가 자세히 보매. 흥선의 얼굴에도 눈물 흘린 자취가 남아 있었다. 아까 묵연히 돌아서 있을 때에 남에게 감춘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 것이었다.
『대감, 내려가셔요.』
『먼저 가라. 나야 걸어갈 사람―비가 오실 터인데……』
우덕덕 커다란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이 군호였다. 한 방울의 비를 앞잡이삼아 소나기는 드디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우덕덕 뚝덕 좌―좌! 한 방울로 시작된 비는 한 순간 뒤에는 무서운 소나기로 변하였다.
『아이구, 이 비! 대감 어서 가세요.』
『내 걱정은 말고 먼저 가거라. 비라도 좀 맞아야겠다.』
속이 너무 탄다는 뜻으로 계월이는 들었다. 이 소나기에, 기다리던 계월이의 교군군은 또 달려왔다. 그것을 기회 삼아서 계월이는 흥선에게는 특별히 인사도 하지 않고 사인교에 몸을 실었다.
소나기 가운데로 달음질쳐서 사라져 들어가는 계월이의 사인교를, 흥선은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면서 그냥 묵연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지도 않았다. 퍼붓는 소나기를 피하려지도 않았다.
흥선의 얼굴에서 줄줄 흘러서 땅으로 떨어지는 물―그것은 소나기뿐일까? 흥선의 비분의 눈물이 소나기에 감추어져서 함께 흐르는 것이 아닐까?
무서운 천둥 소리, 무서운 빗소리, 좔좔 골짜기를 흐르는 개울물 소리―이 가운데 흥선은 비를 겹다 하지 않고 죽은 듯이 서 있었다. 흥선이 겨우 그 곳서 발을 뗀 것은 계월이가 내려간 뒤에도 한참 지나서, 흥선의 초라한 옷은 속속들이 비에 젖어서 몸에 착 붙게 된 때였다.
필운대에서 내려오던 흥선은 도중에서 교군을 만났다. 계월이가 먼저 내려가서 흥선을 모시러 보낸 교군이었다. 비에 함빡 젖은 흥선은 계월이가 보낸 교군에 몸을 의탁하였다.
『대감! 자, 이 약주는 마음 놓고 잡수세요.』
계월이의 일가 친척 되는 집 아랫방이었다.
『어느 술은 마음 안 놓고 먹는다디?』
『대감 분하시지 않으서요?』
『흥! 그래야 난 손해 본 게 없다.』
계월이는 눈을 들었다. 원망스러운 눈찌로 흥선을 쳐다보았다. 아아! 이 공자는 왜 이다지도 속이 없나?
『대감!』
『그래서?』
『외람하다고 책망하시지 마세요.』
『무얼?』
『대감께서 놀고 싶으신 생각이 계신 때는 반드시 이 계월이를 찾아 주세요. 아예 다른 대감 댁에는 가시지 마세요. 이전에도 그만치 말씀드렸는데 왜 또 가셨읍니까?』
『야, 나보고 기부(妓夫) 노릇을 하란 말이로구나? 반가운 소식일세! 그럼 오늘부터라도 잘 벌어다 먹여 주게.』
계월이는 눈을 감았다. 성나고 싶은 감정 때문에 눈을 떴다는 곱지 못한 눈찌가 나타날지도 모르겠으므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대감!』
『불러 계시오?』
계월이는 눈을 천천히 떴다. 윤기 많은 커다란 눈을 정면으로 들어서 흥선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보는 동안 계월이의 광채 많은 눈에는 눈물이 한 껍질 씌어졌다.
『대감! 대감은 분해하실 줄은 모르십니까? 계월이는 분하외다. 특별히 계월이에게 관계되는 일은 아니지만 계월이는 분하외다. 왜 대감은 분해하실 줄도 모르십니까?』
흥선도 마주 계월을 굽어 보았다. 흥선의 눈에도 적적한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적적한 표정에 어울리는 적적한 말도 나올 듯하였다. 그러나 즉시로 그것을 도로 삼켜 버렸다.
『뭐이 분하단 말이냐? 계집들이란 별별 일을 다 분하다더라. 양반이 양반 자세하는데, 나 같은 상놈이야 수모받았지 할 수 있나?』
상놈? 너무도 심한 자가비하(自家卑下)였다. 수년 전 이(사도세자의 증손되는) 흥선의 집안과 (사도세자의 신하되는) 홍 국영의 후손과 혼인을 맺게 되었을 때, 홍씨 측에서 도리어 혼인을 꺼릴 만큼 영락된 흥선의 집안인지라, 이 한 마디는 과연 눈물겨운 자가비하였다.
『네, 상놈 대감! 이 양반 기생이 드리는 약주, 마음에 안 드시겠지만 한 잔 받아 주세요.』
『자, 기부 노릇을 할까? 네가 잘 벌지를 못하면 나는 내 재간껏 또 서투른 난촛장이나 그려서 팔지. 살 만한 고객이나 좀 지금부터 물색해 두어라.』
흥선은 잔을 받아서 마셨다.
『음! 여편네가 벌어다 주는 걸 먹으려니까 잘 목구멍을 넘지 않는다.』
『안주도 드세요.』
『들랄 것 없이 먹여 주려무나.』
흥선은 입을 쩍 벌렸다. 계월이가 젓가락으로 집어 주는 안주를, 혀를 기다랗게 뽑아서 받아 먹는 흥선―계월이는 마땅치 않은 듯한 표정으로 흥선에게 안주를 집어 주었다.
『어, 맛나군! 기부 노릇도 할 만한데!』
마치 아까 필운대에서 받은 수모를 계월이에게 갚으려는 듯이 하하하하! 웃어 가면서 흥선은 계월이의 비위에 그슬리게 굴었다.
그러나 계월이는 쓰다 하지 않고 흥선의 비웃음을 정면으로 받았다. 일찍이 마음을 바친 이 공자―한 때 불만한 젖이 있다고 박차 버릴 만큼 부박한 계월이가 아니었다. 흥선은 이 계집의 진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조소적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봄날의 새 움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한바탕 내린 소나기는 어느덧 개었다. 추녀 끝에서 똑똑 때때로 떨어지는 낙수 소리가 지나간 소나기를 추억할 따름이었다. 낙수 소리에 한참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계월이가 적적한 소리로 흥선을 찾았다.
『대감!』
『그래서?』
계월이의 진실한 부름을 흥선은 여전히 농담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옛날 한 신(韓信)이가요!』
『그래서?』
『상놈의 샅으로 기어 들어갈 때 어땠을까요?』
『냄세났겠지.』
『대감!』
계월이는 못마땅한 듯이 흥선을 우러러보았다. 우러러보다가 갑자기 그의 상반신을 흥선의 무릎 위에 던졌다.
『대감! 왜 분해하실 줄 모르세요? 왜 모르세요?』
몸을 흥선의 무릎에 던진 계월이는 몸부림하듯 그의 두 어깨를 흔들면서 비비어 대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그의 눈에서 쏟아졌다.
『허! 기생이 울 때는 기부는 어떻게 위로해야 되나?』
『대감! 대감은 속도 다 썩으셨구료? 우리 같은 천비도 참기 힘든 수모를 어떻게 참으서요? 분하외다. 분해요.』
『허! 왜 갑자기 이 지랄인가? 의원 불러야겠네.』
그러나 입으로는 농담을 하는 흥선이었지만, 이 고마운 동정이 그의 마음에 찔리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왜 이러느냐고 농담으로 넘기려는 그의 눈에도 그득히 눈물이 괴었다. 남에게 몰래 흘려 본 눈물은 적지 않았지만, 남의 보는 앞에서는 철이 든 이래로 처음 내어 본 눈물이었다. 입으로는 농담, 눈에는 눈물―이런 가운데서 흥선은 손을 고요히 들어서 계월이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계월아!』
『?』
『한 신이도 잠자코 더러운 데로 기어 나갔느니라.』
계월이는 머리를 들었다. 눈물 괸 눈으로 흥선을 쳐다보았다. 그 계월이의 눈을 받으면서 흥선은 오른손을 들어서 무릎을 한 번 툭 치며 그가 즐겨서 부르는 시조 한 마디를 읊기 시작하였다.
『이러한들 어이하리, 저러한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까지 하리라.』
옛날 그의 조상 태종 대왕이 고려의 충신 정 몽주의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부른 시조―그리고 또한 가슴이 울울하고 불평할 때마다 흥선이 자기를 위로하기 위하여 부르는 시조였다.
『야! 가야금이나 내어 오너라. 울울하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져도 할 수 없지. 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우리는 한송정 소나무로 배나 무어 가지고 한강에 띄워 놓고 술이나 먹자. 계월이는 붓고 석파는 먹고―이렇게 한 백 년 살자꾸나. 하늘이 주시지 않는 복을 따려도 따질 것도 아니고, 따지지 않는 것을 따려는 것은 헛수고나 하는 것이고―자, 너도 한 잔 받아라. 그리고 가야금을 내어 오너라. 먹고 놀고 놀고 먹고. 한 백 년을 이렇게 지내면 그 이상 팔자가 어디 있느냐?』
흥선은 적적한 미소를 띄어 한숨을 내어 쉬면서 이렇게 술회하였다.
비 갠 봄 하늘에는 커다랗고 부연 달이 솟아올랐다. 문을 방싯이 열고 그 달을 우러러볼 때에 흥선의 눈물 괴었던 눈에는 또 다시 새로운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하늘을 나는 밤새의 기괴한 소리가 몇 마디 봄 하늘에 퍼져 나갔다.
『적적한 밤이로다.』
흥선은 혼잣말을 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봄밤―
가야금을 가운데 놓고 흥선과 계월이는 우두커니 마주앉아 있었다. 흥선은 안석에 가댄 채로 팔을 기다랗게 뻗어서 둥둥 두어 번 가야금의 줄을 튀겨 보았다. 그러나 곡조도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둥둥 두어 번 의미 없는 소리가 나므로 계월이는 힐끗 흥선을 보았다. 그러나 곧 도로 눈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고요하고 정숙하고 쓸쓸한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흥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계월아!』
『네?』
『너는 불러라, 나는 뜯으마.』
계월이도 비로소 머리를 들었다.
『무얼 부르리까?』
『탁문군의 상부련(想夫憐)―』
『네, 그럼 부르리다. 뜯어 주세요.』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의 입에서는 애음 끊어지는 듯한 「상부련」 한 곡조가 울려 나왔다.
흥선은 계월이의 노래를 따라서 가야금을 뜯었다. 혹은 성낸 물결과 같이 우렁차게―혹은 수풀의 벌레 소리와 같이 끊어지는 듯―가야금에 얼리어서 높고 낮은 음파는 부드러운 밤 공기를 헤치고 멀리까지 울리어 나갔다. 길을 가던 사람이며 밤 잠을 들지 못하여 혼자서 전전하던 젊은 과부들은, 이 너무도 절실한 음파에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였으리라. 한 곡조 끝이 났다. 그것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흥선은 계월이에게,
『또 불러라! 또 뜯으마.』
하였다.
『이번은 무엇을 부르리까?』
『네 장기대로, 네 마음대로 아무것이나―』
계월이는 다시 불렀다. 흥선은 다시 뜯었다.
그뇌스러운 봄밤을 계월이는 부르고 흥선은 뜯어서 새웠다. 한 마디가 끝나면 다시 새로운 것―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것―이리하여 동리의 젊은 과부로 하여금 한 잠도 못 자게 흥선과 계월이는 꼬박 밤을 세웠다.
자기네들의 온 정열을 부은 노래, 자기네들의 온 불평을 담은 노래, 자기네들의 온 희망을 실은 노래―이 절절한 노래는 동리의 젊은 과부뿐 아니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뉘 집에서 누가 불렀으며 누가 뜯었는지, 동리로 물으러 다닐 만큼 진실미를 띤 것이었다. 마음에 적지 않은 불평을 가지고 그 불평을 하소연할 곳이 없는 두 사람은 하루의 고뇌스러운 봄밤을 이리하여 너는 부르고 나는 뜯어서 세웠다.
『대감!』
『왜?』
『대감께 꽃 필 날이 언제 이르리까?』
『모른다. 고요히 기다려 볼 뿐이로다. 기다릴 줄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옛날 성현이 가르쳤느니라.』
엄숙한 구조로 이렇게 말하는 흥선을 계월이는 고뇌와 환희로 찬 마음으로 우러러보고 하였다. 거리의 술망나니, 주착 없는 치인의 일컬음을 듣는 흥선의 그런 양자는 씻은 듯이 없어지고, 당당한 왕실 공자다운 고아(高雅)하고도 경건할 이 밤의 모양에, 계월이는 자기의 눈이 결코 사람을 그릇 보지 않았음을 기뻐하였다.
동녘 하늘에 새벽 놀이 비치고, 참새들이 추녀 끝에 와서 노래를 할 때에야, 흥선과 계월이는 피곤한 몸을 금침 속으로―
봄날 새벽에 꾸는 계월이의 꿈은 매우 즐거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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