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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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는 나의 팔자라면 남이 듣기에 가엾기도 할 것이오, 또 어떻게 생각하면 부럽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잠을 어디 가서 자거나 밥을 뉘집 가서 먹거나 그까짓 것이야 형편 되는대로 할 것이지마는 나에게 정말 불행이 있고 정말 슬픔이 있다면 내가 음악가된 불행이오, 조선이 음악국이 아닌 슬픔밖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조선이 음악국이었던들 나 같은 사이비 음악가가 제법 음악가 행세를 하지도 못 했겠지마는 어차피 음악가가 될 바에에는 십류, 이십류 이하의 음악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음악이 있는 세계에 태어나고 싶다.

'큐벨릭'은 세계 일류의 대 제금가요, 그의 소유한 악기야말로 세계 제일의 명기다. 그런 것만도 그의 두뇌나 기술이 '크라이슬러' '엘만'만 못한 탓으로 세인들은 만일 크라이슬러나 엘만에게 큐벨릭의 명기를 주었던들 명기의 명기된 값을 충분히 했을 것을…… 하고 불평이랄지 불만이랄지 토하는 자들이 있다. 이것이 사실일는지 몰라도 여하간 '큐벨릭'에게는 더할 수 없는 큰 모욕이라 안 할 수 없다. '큐벨릭'은 음악국에 태어난 탓으로 명기의 소유자인 탓으로 이같은 슬픔을 맛보게 된다.

나에게는 이러한 명기가 없으니 어느 누가 여타부타 할 자가 있겠고 나에게는 그만한 재조가 없으니 명기를 갖고 싶어하지도 않지마는, 그러나 '양깡깽이' 20년에 제법 '깡깽이'같은 '깡깽이'한번도 만져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한이요,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매양 이것을 생각할 때면 감불생의(敢不生意)인 줄은 알면서도 슬프기 짝이 없다.

부형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학자(學資)까지 대여 주며 공부시키는 것을 다소곳하고 달게 받았던들 연회 전문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을 것이오, 세브란스를 그대로 꾹 참고 계속만 했더라도 지금쯤은 의박(醫博) 한 개는 갈 데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처럼 들어갔던 동경 음악학교만 하더라도 만세통에 튀어나오지만 않았던들 관립 학교란 큼직한 간판 밑에서 대도(大道)를 횡보(橫步)했을 것이요, 일본 대학 문과를 2년만 나녔더라면 문학사란 훌륭한 미서(眉書)를 명함 꼭대기에 박아 가지고 다녔을 지도 모른다. 신문기자 생활을 그대로 계속만 했던들 지금쯤은 편집국장 되었을지 뉘 알며 소설(小說) 개(個)나 쓰던 것을 한꺼번에 불살러 버리고 일어서지만 안 했더라도 그동안에 세계적 작품까지는 몰라도 조선적 작품 한 편쯤이야 쓰지 못 했으리라고 뉘 감히 단언할까보냐. 그러나 사람이란게 각기 좋아하는 것이 있고 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으며, 또 취미나 기호성 같은 것은 때때로 변환되는 것이다. 황금 방석일지라도 내가 올라 앉기 싫다면야 누가 이것을 이꼴이라면 진소(眞所) 자작지격(自作之擊)이라. 수원수구(誰怨誰咎) 하랴마는 원체 이 판국이 음악과는 담쌓은 세계라. 어느 누구를 붙잡고도 말마디 할 길 없고 종일 소리쳐야 귀도 들썩하는 이 없는 음맹(音盲) 환자의 병원같으니 이 속에서 꾸물거리는 내 팔자야말로 몹시 불행하고 몹시 슬프다 안 할수 없다.

하루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음악 전문은 아니면서도 반 이상 음악을 전문하다시피 하는 보육학교 학생들에게 음악사(音樂史)도 들려주고 화성법도 강의할 때에는 먹지 않은 비인 배도 봉긋해 오는 것 같지마는 그나마 알 듯 모를 듯하고 자미붙일 듯 말 듯 해지는 판에 졸업이란 무거운 짐을 지여 교문을 내쫓아 보내게 되니 섭섭하기도 하고 안타까웁기도 하다. 새로 진급하는 학생들을 맞아서 또 다시 전년분을 되풀이할 생각을 하면 구생산수(口生酸水)의 지경이다. 생전 한 글방 선생 모양으로 이 짓만 하다 늙을 것을 생각하면 또다시 자신의 불행을 느끼고 슬픔을 깨닫게 된다.

가끔가끔 음악회에 출연하게 될 때만은 그 긴장되고 흥분되는 품이 몰핀주사 이상의 자극을 주어서 피로한 신경을 잔광(殘光)과 깊은 충동을 주기는 하지마는 이것도 한두때 말이지 무슨 회니, 무슨 단체를 막론하고 돈 생각이 나면 언필칭 음악회 음악회하고 짓졸라대니 견디는 장사가 어데 있단 말인가. 근래와서는 도매금으로 프로그램 전부와 회장(會場)교섭 내지 경찰서 허가까지도 통틀어 맡기려드니 대관절 내가 음악회 뚜쟁이 영업한다는 말을 어데서 들었을까. 이런줄 알았더라면 애당초에 '컨써트 매니저'학교에나 다녔다면…… 하는 후회조차 날 때가 있다.

음악회 말이 났으니 말이지 연주를 마치고 나서 극도로 신경이 흥분된 때에 위스키 한 잔쯤은 사약(死藥)이 아니라 활명수(活命水)다. 그런것만도 나는 다소 느낀 바 있어서 한 잔 술도 흔연히 끊어버리고 보니 싱겁기란 짝이 없다. 꿩 대신 닭이란 격으로 위스키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인제는 커피만성 중독환자가 되어서 근일에는 홍차로 바꾸었다. 음악을 연습하고 나서나, 혹 연주회에 출연하고 나서는 주초차간(酒草茶間)에 군것질을 해야만 견디는 것을 보면 음악이란 아편과 같이 나의 수명을 줄이는 것도 같다. 장수를 한댔자 신통한 꼴 못 볼 팔자 건마는 그래도 일찍 죽기는 원통한 것만 같다.

뒷산에 쌓였던 눈(雪)이 녹아 사라진 것을 보니 봄이 온 줄 알겠다. 세월은 빠르다.……'프레스티시모'의 템포보다 빠르다. 금년 봄에는 몇 사람이나 되는 신진 악가가 이 강산에 선물을 가져다 주려는가. 이 귀한 선물을 고맙게, 반갑게 받아줄 사람이 몇몇이란 말인가. 아서라 내게 노자(路資)가 있다면 중로(中路)까지 좇아 가서라도 그네들의 귀여운 선물 봇짐을 다시 지워 돌려 보내고 싶다. 반겨하는 사람없고 맞아 주는 사람 없는 이 음맹의 세계에 무엇하러 끼여들꼬? 세기 말이 되면 우리가 상상치도 못하는 일종의 '하이칼라' 병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세기말병이라고 한다던가?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병은 하필 세기 말에만 있는 것도 같지 않다. 줄여서 생각하면 연말 병도 있을 것이요, 한층 더 에누리한다면 월말 병도 있을상 싶다. 특별히 학생들이나 교육자들에게는 학년말 병도 있음직하다. 오늘이 섣달 그믐날이요, 요새가 학년의 마감이고 보니 까닭없이 싱숭생숭한 광상곡이 머리 속에 떠돈다. 그러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여하간 센치멘탈한 정서가 깃들 때에는 유달리 전에 듣던 악곡의 '쓰베니아'도 일어나고 음악이 그리웁다는 생각도 난다. 알코올 중독자의 술생각나듯이 깨어진 거울 조각 같은 옛날 연인의 생각나듯이 ─독일 악성 슈베르트는 이러한 때에 붓을 들어서 'Moment Musical'을 작곡했는지 모르지마는 나는 이러한 때에 붓을 들어서 'Humo-resque'를 쓴다는 것이 '기상곡'이 되어 버렸다.(경오년 마지막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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