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렬전
상권
[편집]각설(却說)이라 대명국 영종황제 즉위 초에 황실(皇室)이 미약하고 법령이 불행한 중에 남만 북적과 서역이 강성하여 모반할 뜻을 둠에, 이런고로 천자 남경에 있을 뜻이 없어 다른 데로 도읍을 옮기고자 하시더니, 이때 마침 창혜국(고대,중국 동방에 있었던 나라이름) 사신이 왔음에 성은 임이오 명은 경천이라 하는 사람이 왔거늘 천자 반겨 인견(引見)하시고 접대한 후에 도읍 옮김을 의논하시니 임경천이 주왈,
"소신이 옥루에서 육대산천을 망기하오니 금황지지가 마땅하옵고 천하명산 오악지중에 남악 형산이 가장 신령한 산이요, 일국 주룡이 되었고 창오산 구리봉은 변화하여 외청룡되었고 소상강 동정호는 수세가 광활하여 내청룡되어 있어 내수구를 막았으니 제왕주가 장구 할 것이요, 또한 소신이 수 년 전에 본국에서 망기하온즉 북두칠성 정기가 남경에 하강하고 삼태성 채색이 황성에 비쳤으며 자미원 대장성이 남방에 떨어졌으며 미구에 신기한 영웅이 날 것 이니 황상은 어찌 조그마한 일로 이러한 금성지지를 놓으시며, 선황제 마마 구방지지를 어찌 일조에 놓으시리까."
천자 이 말을 들으시고 마음이 쇄락하여 도읍 옮기심을 파하시고 국사를 다스리니 시절이 태평하고 인심이 조안(큰 탈이 없이 편안함) 하더라.
이때 조정에 한 신하 있으되 성은 유요, 명은 심이니 전일 선조황제 개국공신 유기의 십 삼대 손이요 전병부상서 유현의 손자라, 세대명가 후예로 공후 작록(爵祿)이 떠나지 아니하더니 유심의 벼슬이 정언 주부에 있는지라, 위인이 정직하고 성정이 민첩하며 일심이 충성하여 국록(國祿)이 중중하니 가산이 요부하고 작법이 화평하니 세상 공명은 일대에 제일이요, 인간 부귀는 만민이 칭송하되 다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매일로 한탄하여 일년 일도에 선영(先塋) 제사 당하면 홀로 앉아 우는 말이,
"슬프다! 나의 몸이 무슨 죄 있어 국록(國祿)을 먹거니와 자식이 없으니 세상이 좋다한들 좋은 줄 어찌 알며 부귀가 영화롭되 영화된 줄 어찌 알리. 나 죽어 청산에 묻힌 백골 뉘라서 거두오며, 선영향화(조상에 제사 지냄)를 뉘라서 주장하리."
하염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지라.
이렇듯 설워하니 부인 장씨는 이부상서 장윤의 장녀라. 주부 곁에 앉았다가 일심이 비감하여 왈,
"상공의 무후(자녀가 없음)함은 소첩의 박복함이라 첩의 죄를 논지컨데 벌써 버릴 것이로되 상공의 음덕으로 지금까지 부지하오니 부끄러운 말씀을 어찌 다 하오리까. 듣사오니 천하에 절승한 산이 남악형 산이라 하오니 수고를 생각지 말고 산신께 발원하여 정성이나 드려보사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대왈,
"하늘이 점지하사 팔자에 없었으니, 빌어 자식을 낳을진대 세상에 무자한 사람이 있으리오."
장부인이 여쭈오되,
"대체를 생각하면 그 말씀도 당연하되 만고 성현 공부자도 이구산에 빌어 났고 정나라 정자산도 우성산에 빌어 보사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삼칠일 재계를 정히 하고 소복을 정제하여 제물을 갖추고 축문을 별노이 지어 가지고 부인과 함께 남악산을 찾아가니, 산세 웅장하여 봉봉이 높은 곳에 청송은 울울하여 태고시를 띄고 있고, 강수는 잔잔하여 탄금성을 도도웠다. 칠천 십이 봉은 구름밖에 솟아 있고 층암 절벽 상에 각색 백화 다 피었고, 소상강 아침안개 동정호로 돌아가고 창오산 저문 구름 호산대로 돌아들며 강수성을 바라보며, 수양가지 부여잡고 육칠 리를 들어가니 연화봉이 중계로다. 상대에 올라서서 사방을 살펴보니, 옛날 하우씨가 구년지수 다스리고 층암절벽 파던 터가 어제 하듯 완연하고 산천이 심히 엄숙한 곳에 천제당을 높이 묻고 백마를 잡던 곳이 완연하였고, 추연(웅덩이)을 돌아보니, 옛날 위부인이 선동 오륙 인을 거느리고 도학 하던 일층 단이 무너졌다.
일층단 별로 모아 노구밥(산천의 신령에게 제사하기 위하여 노구솥에 지은 밥)을 정결히 담아 놓고 부인은 단하에 궤좌( 坐: 꿇어앉음)하고 주부는 단상에 궤좌( 坐)하여 분향 후 축문을 내어 옥성으로 축수할 제, 그 축문(祝文)에 하였으되,
"유세차갑자년 갑자월 갑자일에 대명국 동성문 내에 거하는 유심은 형산 신령 전에 비나이다. 오호라 대명 태조 창국공신지손이라 선대의 공덕으로 부귀를 겸전하고 일신이 무양하나 연광(年光 : 나이)이 반이 넘도록 일점 혈육이 없었으니 사후 백골인들 뉘라서 엄토하며 선영 행화를 뉘라서 봉사하리오. 인간에 죄인이요, 지하에 악귀로다. 이러한 일을 생각하니 원한이 만심이라 이러한 고로 더러운 정성을 신령 전에 발원하오니 황천은 감동하와 자식 하나 점지하옵소서."
빌기를 다함에 지성이면 감천이라 황천인들 무심할까. 단상의 오색 구름이 사면에 옹위하고 산중에 백발 신령이 일절히 하강하여 정결케 지은 제물 모두 다 흠향한다. 길조가 여차하니 귀자(貴子)가 없을쏘냐.
빌기를 다한 후에 만심 고대하던 차에 일일은 한 꿈을 얻으니, 천상으로서 오운이 영롱하고, 일원 선관이 청룡을 타고 내려와 말하되,
"나는 청룡을 차지한 선관(仙官)이더니 익성이 무도한 고로 상제께 아뢰되 익성을 치죄(治罪)하야 다른 방으로 귀양을 보냈더니 익성이 이 길로 합심하여 백옥루 잔치 시에 익성과 대전한 후로 상제 전에 득죄하여 인간에 내치심에 갈 바를 모르더니 남악산 신령들이 부인 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부인은 애휼(사랑하고 불쌍히 여김)하옵소서."
하고 타고 온 청룡을 오운간에 방송하며 왈,
"일후 풍진(전쟁) 중에 너를 다시 찾으리라."
하고 부인 품에 달려들거늘 놀라 깨달으니 일장춘몽(一場春夢) 황홀하다.
정신을 진정하여 주부를 청입하여 몽사를 설화하되 주부 즐거운 마음 비할 데 없어 부인을 위로하여 춘정을 부쳐두고 생남하기를 만심 고대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이 찬 연후에 옥동자를 탄생할 제, 방안에 향취 있고 문밖에 서기가 뻗질러 생광은 만지하고 서채는 충천한 중에 일원 선녀 오운 중에 내려와 부인 앞에 궤좌하여 백옥 상에 놓인 과실을 부인께 주며 하는 말이,
"소녀는 천상 선녀옵더니 금일 상제 분부하시되 자미원 장성이 남경 유심의 집에 환생하였으니 네 바삐 내려가 산모를 구완하고 유아를 잘 거두라 하시기로 백옥병의 향탕수를 부어 동자를 씻기시면 백병이 소멸하고 유리대(유리로 만든 주머니)에 있는 과실 산모가 잡수시면 명이 장생불사(長生不死)하오리다."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유리대에 있는 과실 세 개를 모두 쥐니 선녀 여쭈오되.
" 이 과실 세 개 중에는 부인이 잡수시고 또 하나는 공자를 먹일 것이요, 또 한 개는 일후에 주부가 잡수실 것이니 다 각기 임자를 옥황께옵서 점지하신 과일을 다 어찌 잡수시리까?"
향탕수를 부어 한 개를 잡순 후에 옥동자를 채금 속에 뉘여 놓고 부인께 하직하고 오운 속에 싸여 가니 반공에 어렸던 서기(瑞氣) 떠나지 아니하더라.
부인이 선녀(仙女)를 보낸 후에 일어나 앉으니 정신이 상쾌하고 청수한 기운이 전일보다 배나 더하더라.
주부를 청입하여 아기를 보이며 선녀의 하던 말을 낱낱이 고하니 주부 공중을 향하여 옥황께 사례하고 아기를 살펴보니 웅장하고 기이하다. 천정(天庭 : 양미간)이 광활하고 지각(얼굴의 바탕)이 방원하여 초상(초생달)같은 두 눈썹은 강산 정기 쏘였고 명월 같은 앞가슴은 천지 조화 품었으며, 단산의 봉의 눈은 두 귀밑을 돌아보고 칠성에 쌓인 종학 용준용안(잘생긴 얼굴) 번듯하다. 북두칠성 맑은 별은 두 팔뚝에 박혀있고 뚜렷한 대장성이 앞가슴에 박혔으며, 삼태성 정신별이 배상에 떠 있는데, 주홍으로 새겼으되 '대명국 대사마 대원수'라 은은히 박혔으니 웅장하고 기이함은 만고에 제일이요, 천추에 하나로다.
주부 기운이 쇄락하여 부인을 돌아 보아 왈,
" 이 아해 상을 보니 천인적강(천상의 사람이 인간계에 귀양옴) 적실하고 만고 영웅 분명하며 전일 황상께옵서 도읍을 옮기고자 하여 창해국 사신 임경천더러 물으시니 임경천이 아뢰기를 북두정기는 남경에 하강하고 자미원 대장성이 황성에 떨어졌으니 미구에 신기한 영웅이 나리라 하더니 이 아해가 적실하니 어찌 아니 즐거우리까 오래지 아니하여 대장 절월을 요하에 횡대하고 상장군 인수를 금낭에 넌짓 넣고 부귀영화는 선영에 빛내고 맹기영풍은 사해에 진동할 제 뉘 아니 칭찬하리오. 산신은 깊은 은덕 사후에도 난망이요 백골인들 잊을쏘냐."
이름은 충렬이라 하고 자는 성학이라 하다.
세월이 여류하여 칠 세에 당함에 골격은 청수하고 청명은 발췌하여 필법은 왕희지요, 문장은 이태백이며 무예장략은 손오에게 지내더라. 천문지리는 흉중에 갈마두고(모아 두다) 국가 흥망은 장중에 매였으니 말달리기와 용검지술은 천신도 당치 못할레라
오호라 시운이 불행하고 조물이 시기한지, 유주부 세대 부귀 지극하더니 사람이 흥진비래가 미쳤으니 어찌 피할 가망이 있을쏘냐.
유주부는 조참적소하고
장부인은 피화봉수적하다.
각설 이때에 조정에 두 신하 있으되 하나는 도총대장 정한담이요, 또 하나는 병부상서 최일귀라. 본대 천상익성으로 자미원 대장성과 백옥루 잔치에서 대전한 죄로 상제께 득죄하여 인간에 적강하여 대명국 황제의 신하되었는지라. 본시 천상지인으로 지략이 유여하고 술법이 신묘한 중에 금산사 옥관도사를 데려다가 별당에 거처하고 술법을 배웠으니 만부부당지용이 있고 백만 군중 대장지재라, 벼슬이 일품이요 포악이 무쌍이라. 만민의 생사는 장중에 매여 있고, 일국의 권세는 손끝에 달려 있으니, 초회왕의 항적이요, 당명황의 안녹산이라. 일생 마음이 천자를 도모코자 하되 다만 정언 주부의 직간을 꺼려하고 또한 퇴재상 강희주의 상소를 꺼려 중지한지 오래더니 영종황제 즉위초에 열국제왕들이 각각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치되 오직 토번과 가달(오랑캐족)이 강포만 믿고 천자를 능멸해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거늘 한담과 일귀 두 사람이 이 때를 타서 천자께 여쭈오되,
"폐하 즉위하신 후에 덕피만민하고 위진사해하며 열국제신이 다 조공을 바치되 오직 토번과 가달이 강포만 믿고 천명을 거슬리니 신 등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남적을 항복 받아 충신으로 돌아오면 폐하의 위엄에 남방에 가득하고 소신의 공명은 후세에 전하리니 복원 황상은 깊이 생각하옵소서."
천자 매일 남적이 강성함을 근심하더니 이 말을 듣고 대희 왈,
"경의 마음대로 기병하라."
하시니라.
이때 유주부 조회하고 나오다가 이 말을 듣고 탑전(임금의 자리 앞)에 들어가 복지 주 왈,
"듣사오니 폐하께옵서 남적을 치라 하시기로 기병하신단 말씀이 옳으니이까?"
천자 왈,
"한담의 말이 여차여차 하기로 그런 일이 있노라."
주부 여쭈오되,
"폐하 어찌 망령되게 허락하였습니까? 왕실은 미약하고 외적은 강성하니 이는 자는 범을 찌름과 같고 드는 토끼를 놓침이라. 한 낱 새알이 천근지중을 견디리까? 가련한 백성 목숨 백리사장 고혼되면 근들 아니 적악이오. 복원 황상은 기병치 마옵소서."
천자 그 말을 들으시고 호의만단하던 차에 한담과 일귀 일시에 합주하되,
"유심의 말을 듣사오니 살지무석이요, 오국 간신 동류로소이다. 대국을 저버리고 도적놈만 칭찬하여 개미 무리를 대국에 비하고 한 낱 새알을 폐하에게 비하니 일대에 간신이요, 만고에 역적이라. 신등은 저어하건대 유심의 말이 가달을 못 치게 하니 가달과 동심하여 내응이 된 듯 하니 유심을 선참하고 가달을 치사이다."
천자가 허락하니,
한림학사 왕공열이 유심 죽인단 말을 듣고 복지 주왈,
"주부 유심은 선황제 개국공신 유기의 손이라, 위인이 정직하고 일심이 충전하오니 남적을 치지 말자는 말이 사리 당연하옵거늘 그 말을 죄라 하와 충신을 죽이시면 태조 황제 사당 안에 유상 무슨 면목으로 뵈오며 유심을 죽이면 직간할 신하 없사올 것이니 황상은 생각하와 죄를 용서하옵소서."
천자 이 말 듣고 한담을 돌아보니 한담이 여쭈오되,
"유심을 죄하실진대 만사무석이오나 공신의 후예오니 죄목대로 다 못하오나 정배나 하사이다."
천자 "옳다"하시고
"황성 밖에 원찬하라"
하시니 한담이 청령하고 승상부 높이 앉아 유심을 잡아내어 수죄하는 말이,
"너의 죄를 논지컨대 선참후계 당연하나 국은이 망극하사 네 목숨을 살려주니 일후는 그런 말을 말라."
하고 연북으로 정배하여,
"어서 바삐 발행하라, 만일 잔말하다가는 능지처참하리라."
주부 이 말을 들음에 분심이 창천하여 양구(얼마 있다가 한참 후)에 하는 말이
"내 무슨 죄 있건대 연북으로 간단말인가. 왕망이 섭정함에 한실이 미약하고 동탁이 장난하니 충신이 다 죽것다. 나 죽은 후에 내 눈을 빼어 동문에 높이 달아 가달국 적장 손에 네 머리 떨어지는 줄 완연히 보리라, 지하에 돌아가되 오자서의 충혼이 부끄럽게 말라."
한담이 이 말을 듣고 분심이 창천하여 왈,
"어명이 이러하니 무슨 발명한다?"
하고 궐문에 들어가며 금부도사 재촉하여 유심을 채질하여 연북으로 가라 하는 소리 성화같이 재촉하니 유주부 하릴없어 적소(귀양가는 곳)로 가려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일가가 망극하여 곡성이 진동하더라.
주부 충렬의 손을 잡고 부인더러 하는 말이,
"우리 연광이 반이 넘도록 일개 잔 없었더니 황천이 감동하사 이 아들을 점지하여 봉황의 짝을 얻어 영화를 보고자 하였더니 가운이 소체(막힌다는 뜻)하고 조물이 시기하여 간신의 참소를 보아 만리 적소로 떠나가니 생사를 알지 못하니라. 어느 날 다시 볼까. 날 같은 인생은 조금도 생각말고 이 자식을 길러내어 후사를 받들게 하면 황천에 돌아가도 눈을 감고 갈 것이요, 부인의 깊은 은덕 후세에 갚으리다."
하고 충렬을 붙들고 슬피 울며 하는 말이.
"네 아비 무슨 죄로 만리 연경에 간단 말인가 너를 두고 가는 설움 단산에 나는 봉황 알을 두고 가는 듯,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버리고 가는 듯, 통박하고 섧은 원정 일구로 난설이라, 생각하니 기가 막혀 말할 길이 전혀 없고 일시나 잊자하니 가슴에 맺힌 한이 죽은들 잊을쏘냐, 너의 아비 생각말고 너의 모친을 모셔 무사히 지내며, 봄풀이 푸르거든 부자 상면한 줄 알고 있어라."
하며 방성통곡하며 죽도를 끌러 충렬을 채우면서,
"구천에 상봉한들 부자 신표 없을쏘냐. 이 칼을 잃지 말고 부디 간수하여 두라."
처자를 이별하고 행장을 바삐 차려 문 밖에 나오니 정신이 아득하고 한 번 걷고 두 번 걸어 열 걸음 백 결음에 구곡간장 다 녹으며, 일편단심 다 녹겠다. 성중에 보는 사람 뉘 아니 낙루하며 강산 초목이 다 슬퍼한다.
동성문 나서면서 연경을 바라보며 영거사를 따라 갈제, 삼일을 행한 후에 청송령을 지나 옥해관을 당도하니 이 때는 추팔월 망간이라 한풍을 소슬하고 낙목은 소소한데 정전에 국화꽃은 추구수심 띠여 있고 벽공에 걸린 달은 삼경야회 돋우는데 객창 한등 깊은 밤에 촛불로 벗을 삼아 책침 베고 누웠으니 타향의 가을소리 손의 수심 다 녹인다. 공산에 우는 두견성은 귀촉도 불여귀를 일삼고 청천에 뜬 기러기는 한창 밖에 슬피 울제, 행역이 곤한들 잠 잘 가망 전혀 없어 그 밤을 지낸 후에, 이튿날 길을 떠나 소상강을 바삐 건너 멱라수를 다다르니 이 땅은 초회황제 만고 충신 굴삼려 간신의 패를 보고 택반에 장사하니 후인이 비감하여 회사정을 높이 짓고 조문지어 쓰되.
"일월같이 빛난 충혼 만고에 빛나 있고 금석같이 굳은 절개 천추에 밝았으니 이 땅에 지나는 사람 뉘 아니 감심하리."
이렇듯이 슬픈 일을 현판에 붙였거늘 유주부 글을 보니 충심이 적발하여 행장에 필묵을 내여들고 회사정 독벽상에 대자로 쓰기를,
"대명국 유심은 간신 정한담과 최일귀 참소를 만나 연경으로 적거하더니 일월같이 밝은 마음 변백할 길 전혀 없고 빙설같이 맑은 절개 뵈일 곳이 바이없어 멱라수에 지내다가 굴삼려의 충혼 만나 물에 빠져 죽느니라."
쓰기를 다한 후에 물가에 내려가서 하늘께 축수하고, 일성통곡에 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 망경창파 깊은 물에 훨썩 뛰어드니, 이 때에 영거하던 사신이 이를 보고 전지도지 달려들어 손을 잡고 말려 왈,
"충성은 천신도 알 것이라. 그대의 죄안은 천자에게 매였으니, 명을 받아 적소로 가옵다가 이곳에 죽사오면 나도 또한 죽을 것이요, 그대 적소를 버리고 죽사오면 무죄함은 천하의 아는 바라, 천행으로 천자 감심하사 쉬이 방송할 줄 모르고 죽어서 충혼이 될지라도 삶만 같을 소냐."
한사하고 만류하여 백사장에 들어내니 유주부 하릴없이 회사정을 지나 황주를 다다르니 서호가 여기로다. 송나라 망국시에 일품 대신들이 국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풍악만 일삼아 일일장취하는 고로 서호의 고운 태도 서시에게 비하였으니 어찌 아니 망극하랴. 그 땅을 지나 이삼삭만에 연경에 당한지라. 유주부 자사에게 예사하되 자사 본후에 주부를 인도하여 객실로 전송하니 주부 물러 나와 적소로 들어가니, 이때는 동절이라 연경은 본디 극한지지라 삼장백설 쌓여 있고, 퇴락한 객실 방에 냉풍은 소슬하고 백설을 분분하여 인적이 끊어지니 불쌍하고 고상함을 측량치 못할레라.
각설이라, 이때에 정한담 최일귀가 유주부를 참소하여 적소로 보낸 후에 마음이 교만하여 별당으로 들어가 옥관도사를 보고 천자를 도보할 묘책을 물은대, 도사 문밖에 나와 천기를 자세히 보고 들어와 하는 말이,
"요사이 밤마다 살피온즉 두려운 일이 황성에 있나이다."
하되, 한 놈이 문왈,
"두려운 일이라 하오니 무슨 일이 있나이까?"
도사 왈,
"천상에 삼태성이 황성에 비웠으되 그 중에 유심의 집에 비췄으니, 유심은 비록 연경에 갔으나 신기한 영웅이 황성 내에 살았으니 그대 도모할 일이 어려울 듯 하노라."
한담이 이 말을 듣고 외당에 나와 도사 하던 말을 일귀더러 하니 일귀 대왈,
"도사의 신기함은 천신에게 지내나니 신기한 영웅이 황성내에 있다하니 진실로 마음에 황망하여이다."
한담이 왈,
"내 생각하니 유심이 연만하되 자식이 없는고로 수년전에 형산에 산제하여 자식을 얻었다 하더니, 도사의 말씀이 황성에 있다하니 의심하건데 유심의 아들인가 하노라."
일귀 왈,
"적실히 그리하면 유심의 집을 함몰하여 후환이 없게 함이 옳을까 하노라."
하되 한담이 "옳다"하고 그 날 삼경에 가만히 승상부에 나와 나졸 십여명을 차출하여 유심의 집을 둘러싸고 화약 염초를 갖추어 그 집 사방에 묻어 놓고 화심에 불붙여 일시에 불을 놓으라고 약속을 정하니라.
이때에 장부인이 유주부를 이별하고 충렬을 데리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더니 이날 밤 삼경에 홀연히 곤하여 침석에 졸더니 어떠한 노인이 홍선일병(붉은 부채 한 자루)을 가지고 와서 부인을 주며 왈,
"이날 밤 삼경에 대변이 있을 것이니 이 부채를 가졌다가 화광이 일어나거든 부채를 흔들면서 후원 담장 밑에 은신하였다가 충렬만 데리고 인적이 그친 후에 남천을 바라보고 가없이 도망하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옥황께서 주신 아들 화광 중에 고혼이 되리라."
하고 문득 간데 없거늘 놀라 깨어보니 남가일몽이라. 충렬이 잠이 깊이 들어 있고 과연 혼선 한 자루 금침 위에 놓였거늘 부채를 손에 들고 충렬을 깨워 앉히고 경경불매(근심이 되어 잠을 자지 못함)하던 차에, 삼경이 당함에 일지광풍이 일어나며 난데없는 천불이 사면으로 일어나니 웅장한 고루거각(高樓巨閣)이 홍로점설(紅爐點雪)되어있고 전후에 쌓인 세간 추풍낙엽 되었도다.
부인이 창황 중에 충렬의 손을 잡고 홍선을 흔들면서 담장 밑에 은신하니 화광이 충천하고 회신만지하니 구산(丘山)같이 쌓인 기물 화광에 소멸하였으니 어찌 아니 망극하랴.
사경이 당함에 인적이 고요하고 다만 중문 밖에 두 군사 지키거늘 문으로 못 가고 담장 밑에 배회하더니, 창난(창연히 빛나는)한 달 빛속으로 두루 살펴보니 중중한 담장 안에 나갈 길이 없었으니, 다만 물 가는 수채 구멍이 보이거늘, 충렬의 옷을 잡고 구멍에다가 머리를 넣고 복지 하여 나올 제, 겹겹이 쌓인 담장 수채로 다 지내어 중문 밖에 나섰으니 충렬이며 부인의 몸이 모진 돌에 긁히어서 백옥 같은 몸에 유혈이 낭자하고 윌색같이 고운 얼굴 진흙 빛이 되었으니 불쌍하고 가련함은 천지도 슬퍼하고 강산도 비감한다.
충렬을 앞에 안고 사잇길로 나오며 남천을 바라고 가없이 도망할 제, 한 곳에 다다르니, 옆에 큰 뫼가 있으되 높기는 만장이나 하고 봉우리 오색 구름 사면에 어리었거늘 자세히 보니 이 뫼는 천제하던 남악형산이라. 전일 보던 얼굴이 부인을 보고 반기듯, 뚜렷한 천제당이 완연히 뫼이거늘, 부인이 비회를 금치 못하여 충렬을 붙들고 방성통곡(放聲痛哭)하는 말이.
"너 이 뫼를 아느냐? 칠년 전에 이 산에 와서 산제하고 너를 낳았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니 너의 부친은 어데 가고 이런 변을 모르는고. 이 산을 보니 네 부친 본 듯하다. 통곡하고 싶은 마음 어찌 다 측량하리."
충렬이 그 말 듣고 부인의 손을 잡고 울며 왈,
"이 산에 산제라고 나를 낳았단 말인가? 적실히 그러하면 산신은 이러한 연유를 알건마는 산신도 무정하네."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목이 메여 말을 못하거늘 충렬이 위로하되 이윽고 진정하여 충렬을 앞세우고 변양수를 건너 회수가에 다다르니 날이 이미 서산에 걸려있고 원춘에 저녁내 나고 청강에 놀던 물새는 양유 속에 날아들고 청천에 뜬 까마귀 석운 간에 울어들 제, 해상을 바라보니 원포에 가는 돛대 저문 안개 끼어있고 강촌에 어적(漁笛)소리 세우(細雨)중에 흩날렸다.
슬픈 마음 진정하고 충렬의 손을 잡고 물가에 배회하되 건너갈 배 전혀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마지아니 하더라.
이 때에, 정한담 최일귀 유심의 집에다가 불을 놓고 사이로 엿보더니 일진광풍에 화광이 일어나며 웅장한 고루거각에 일편 재물 없었으니 그 안에 든 사람 씨도 없이 다 죽겠다 하고 별당에 들어가 도사를 보고 다시 물어 가로되,
"전일에 우리 등이 대사를 이루고자 하더니 선생의 말씀이 영웅이 있다 하고 근심하더니 이제도 그러한지 다시 망기하옵소서."
도사 밖에 나와 천기를 살펴보고 방으로 들어와 하는 말이.
"이제는 삼태성이 황성을 떠나 변양 회수에 비췄으니 그 일이 수상한지라 내 생각하니 유심의 가권(家眷)이 적소를 찾으랴 하고 회수가에 갔는가 싶으노라."
한담이 이 말 듣고 안마음에 생각하되 화광이 그렇게 엄장하니 일정 소명하여 죽었다 하였더니 일정 영웅이면 벗어남 괴이치 아니하다 하고 외당에 나와 날랜 군사 다섯명을 속출하여 분부하되,
"너희 등이 바삐 이 밤에 변양 회수가에 다달아 나의 전갈로 분부하되 금명일간 어떠한 여인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물을 건너랴 하거든 즉시 결박하여 물에 넣어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회수의 사공과 너희 등을 낱낱이 죽이리라."
하되 나졸이 대경하여 회수에 나는 듯이 달려오니 과연 물가에 인적이 있어 여인의 울음소리 들리거늘 사공을 불러내러 한담의 하던 말을 낱낱이 고하니 사공이 대경하여 대왈,
"감히 태감의 영을 죽사온들 피하오리까."
하고 소선 일척을 대이고 고대하더라
부인이 충렬을 데리고 건널 배 없이 물가에 주저하던 차에 난데없는 일척 소선이 떠오며 부인이 청하거늘 그 간계를 모르고 충렬을 이끌고 배에 올라 중류(中流)에 당함에 일진광풍이 일어나며 양돛대 선창에 자빠지고 난데없는 적선이 달려들어 부인을 잡아매고 무수한 적군들이 사면으로 달려들어 부인을 결박하여 직선에 추켜 달고 충렬을 물 가운데 내던지니, 가련하다 유주부 천금귀자 백사장 세우중에 무주고혼(無主孤魂) 되겠구나. 만경창파(萬頃蒼波) 깊은 물에 풍랑(風浪)이 일어나니 일점 혈육(血肉) 충렬의 백골인들 찾을쏘냐. 육신인들 건질쏘냐. 윌색은 창망하고 수운은 적막하여 명명한 구름 속에 강신이 우는 소리 강산도 슬퍼하고 천신도 비감커든 하물며 사람이야 일러 무엇하랴.
이때에 장부인이 도적에게 결박하여 배 안에 거꾸러져 충렬을 찾은들 수중에 빠졌거든 대답할 수 있을쏘냐. 한 번 불러 대답 않고 두 번 불러 소리 없으니 천만 번을 남 부른들 소리 점점 없어지고 사면에 있는 것이 흉악한 도적놈이 또한 노를 바삐 저어 부인을 재촉하여 소리말고 가자 하니 부인이 망극하여 물에 빠져 죽고만 한들 큼직한 배닻줄로 연약한 가는 몸을 사면으로 얽었으니 빠질 길이 전혀 없고 결항(結項)하여 죽자한들 섬섬한 수족을 빈틈없이 결박하였으니 결항할 길 전혀 없어 도적의 배에 실려 하릴없이 잡혀가니 동방이 밝아오며 또 한 곳에 배를 매고 부인을 잡아내어 마상(馬上)에 앉히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가니 세상에 불쌍한들 이에서 더할쏘냐.
이 때 회수 사공 마용이라 하는 놈이 삼자를 두었으되 다 용맹이 과일하고 검술이 신묘한 지라. 장자 이름은 마철이요 일찍 상처하고 아직 취처(娶妻)지 못하였으니 마침 이 때를 당하여 장부인의 얼굴을 보고 월태(月態)는 감추었으나 화용(花容)은 늙지 않고 수색이 만면하여 골격이 수려하나 아직은 춘색이 그저 있는지라. 대체 장부인이 충렬을 낳을 때에 옥황이 선녀로 하여금 천도 한 개 먹였으니 연광(年光)은 반이나 춘색은 불변이라 그런고로 회수 사공 놈이 충렬을 물에 널고 부인은 데려다가 아내로 삼고자하여 이런 변을 짓더라.
이 때에, 장부인이 하릴없이 도적의 말에 실려 한 곳에 다다르니 태산준령 암석을 의지하여 수삼가(數三家)마을이 있는지라. 석경(石經) 아래 밝은 날에 초옥 속에 들어가니, 큰 굴방이 있으되 사면에 주석으로 싸고 출입하는 문은 철편으로 지어 달고 그 방에 부인을 가두오니 가련하다 장부인이여! 팔자도 무쌍(無雙)하고 신세도 망측하다. 수대장상서 규중 여자로 유씨에게 출가하여 연광이 반이 넘도록 무자녀하다가 천행으로 자식 하나 두었더니 만 리 연경에 가군 잃고 천리 해상에 자식을 잃었으되, 모진 목숨 죽지 못하고 도적놈에게 잡혀와 이 지경이 되었도다. 분벽사창 어디 두고 도적놈의 토굴 방에 앉았으며, 천금같은 자식 잃고 만금 같은 가군 이별하고 나 혼자 살아나서 구천에 돌아간들 유부주부들 어찌 보며, 인간에 살아 있은들 도적놈을 어찌 볼고, 무수히 통곡하니 기운이 진하여 토굴 속에 누었더니, 비자 한 년이 석반을 차려 왔거늘 기진하여 먹지 못하고 도로 보내니 또한 미음을 가지고 와서 먹기를 권하니 부인 속마음에 생각하되, 내 아들 충렬은 천신이 감동하고 신령이 도운 바라, 일후에 응당 귀히 될 것이니 내 이제 연경으로 가서 주부를 데리고 충렬를 볼진대 인제 죽으면 후회가 있으리라 하고, 강작하여 일어나 앉아 미음을 마시니 비자 반겨 적장에게 고하되, 도적이 대희(大喜)하여 그날 밤에 토굴방에 들어가 예하고 앉으며 왈,
"부인은 이러한 누지에 와 나같은 이를 섬기고자 하니 진실로 감격하오이다."
부인이 그 말을 들음에 분심히 탱천(분한 마음이 가슴속에 꽉참)하나 신세를 생각하니 연연 약질이 함정에 든 범같은 고로 하릴없어 거짓답 왈,
"팔자 기박하여 수중에 죽게 되었더니 그대 나 같은 잔명을 구완하여 백년 동거하고자 하니 감격하온 말씀 다 측량하리오마는 다만 미안한 일이 있으니 금월 초삼일은 나의 부친 기일이라 아무리 여자라도 부친의 제삿날 당하여 어찌 길례를 지내오며 또한 백년을 해로할진대 어찌 기일을 가리지 아니하리오."
도적이 그 말을 듣고 즐거운 마음 측량치 못하여 정답게 하는 말이,
"진실로 그러할진대 장인의 제삿날에 사윈들 어찌 아니 정성을 하리오."
하고,
"제물을 극진히 장만할 것이니 부디 염려말고 안심하옵소서."
부인이 치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아니하고 반겨하니 도적이 감사하여 단무타의(아무 다른 뜻이 없음) 하고 안으로 들어가며 비자를 보내어 부인을 모시라 하니, 비자 들어와 곁에 누워 잠이 깊이 들어 인적이 고요하거늘, 부인이 그 날 밤 삼경에 도망하여 나오더니 방에 자는 비자년이 문득 잠을 깨어 만져보니 부인이 간 데 없고 중문이 열렸거늘 부인을 부르며 쫓아오거늘 부인이 대경하여 거짓 앉아 뒤보는 체하고 비자를 꾸짖어 왈,
"연일 고생하여 목이 마르기로 냉수를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불안하여 나와 뒤를 보거늘 네 이런 잔말을 하여 집안을 놀래느냐."
비자 무료하여 방으로 들어가고 부인도 속절없이 방으로 들어가 자더니, 그 밤을 지냄에 이튿날 적한이 부인의 말에 속아 노속을 데리고 제물을 장만하거늘 부인이 목욕하고 방으로 들어와 사면을 살펴보니 동벽상 위에 무엇이 놓였거늘 떼어보니 기묘한 것이로다. 비목비석이요, 비옥비금이라 광채 찬란하여 일광을 가리우고 운색이 휘황하여 안채에 쏘이는 중의 천지조화를 모모이 갈마있고 강산정기는 복판마다 새겼으니 고금에 못 보던 옥함이라 용궁 조화 아니면 천신의 수품이라 전면을 살펴보니 황금대자로 뚜렷이 새겼으되 대명국도원수 유충렬은 개탁이라 하였거늘 부인이 옥함보고 대경실색하여 마음에 생각하되,
"세상의 동성 동명이 또 있단 말인가. 진실로 내 아들 충렬의 기물일진대 어찌 이곳에 있는고?" 하며,
"충렬아 너의 옥함은 여기 있다마는 너는 어디 가고 너의 기물을 모르느냐?"
옥함을 고쳐 싸서 그 곳에 놓고 밤들기를 기다리더니, 밤에 당함에 적한이 제물을 많이 장만하여 부인의 방에 들려왔거늘 부인이 받아 차차로 진설하였다가 자야반을 지냄에 제사를 파하고 음복한 후에 각각 잠을 자므로, 적한이며 노속이며 종일토록 곤하기로 가권이 다 잠이 들었거늘 부인이 옥함을 내어 행장에 깊이 싸가지고 밖에 나와 북두칠성을 바라고 가없이 도망할 제, 한 곳에 다다르니 날이 이미 밝으며 큰 길이 내닫거늘 행인더러 물은즉 영롱관 대로라 하거늘 주점에 들어가 조반을 걸식하고 종일토록 가되 몇 리를 온지 모를러라.
한 곳에 당도하니 앞에 큰물이 있고 또한 풍랑은 도천하며 창파는 만경이라 사고무인적한데, 청산만 푸르러 있고 십리 장강 빈 물가에 궂은 비는 무슨 일이고, 무신한 저 백구는 사람보고 놀래는 듯 이리저리 날아 갈 제, 슬픈 마음 긴 한숨에 피같은 저 눈물 뚝뚝 떨어져 백사장에 나려지니 모래 위에 붉은 점이 만점도화 핀 듯하고 무정한 저 물새는 춘국이낙 날아들고 유의한 청강성은 속절없이 목이 맺히니 어찌 아니 한심하리.
부인이 종일토록 행역에 기운이 곤하여 인가를 찾아가 밤을 지내고자 하나 배 없어 물가에 주저하더니 이 때에 서산에 일모하고 한수에 명생하니 진퇴유곡이라 하릴없이 물가에 찾아가니 그 길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산곡 사이로 연하여 있거늘 길을 잃지 아니하고 점점 들어가니 무인적막한데 다만 들리나니 두견 접동 울음소리와 슬픈 원숭이 소리뿐이로다. 청림을 더위 잡아 간수(골짜기에 흐르는 물)를 밟아 가니 창망한 달빛 속에 수간 초옥이 보이거늘 반겨 급히 들어가니 시문에 개 짖으며 한 노구 문 밖에 나오거늘, 노구보고 예를 하되, 노구 답례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하니 부인이 들어가 앉으며 살펴보니 사면에 여복이 없고 남복만 걸려있고 또한 곁에 방에서 남정소리 나거늘 심신이 불안하여 좌불안석이라. 석반을 먹은 후에 노구할미 문왈,
"그대는 뉘집 부인이관대 어찌 혼자 이곳에 왔나이까?"
부인이 대왈,
"나는 본디 황성 사람으로 친정에 갔다가 해상에서 수적을 만나 명을 도망하여 이곳에 왔나이다."
노구 이 말을 듣고 곁방으로 들어가 자식더러 일러 왈,
"저 여인의 말을 들으니 가이 고이하도다. 수 일 전에 들으니 석장동 당질놈이 회수 사공하다가 금월 초에 해상에서 한 부인을 얻어 백년 동거코자 한다더니 저 여인의 말을 들으니 수적을 만나 도망하여 왔다 하니 정녕코 당질놈이 얻은 계집이라, 바삐 이 밤 삼경에 석장동을 득달하여 마철을 보고 데려다가 이 계집 잃지 말라."
하되 노구 자식이 이 말을 듣고 급히 후원에 들어가 말 한 필 내어 타고 바삐 채찍질하여 나서니 본디 이 말은 천리마라 순식간에 석장동에 당도하였는지라.
이 때에, 장부인이 행역이 곤하여 노구 방에 잠이 깊이 들었더니 비몽간에 한 노옹이 언연(偃然)히 들어와 부인 곁에 앉으며 왈,
"금야에 대변(大變)이 날 것이니 부인은 무슨 잠을 자시나이까? 급히 일어나 동산에 올라가 은신하였다가 변이 일어나거든 바삐 물가에 내려가면 일엽표주(하나의 표주박으로 만든 작은 배) 물가에 있을 것이니 그 배를 타고 급히 환을 면하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천금귀체를 안보하기 어려울지라."
하고 간데 없거늘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급히 일어나 보니 노구도 간데 없거늘 행장을 옆에 끼고 동산에 올라가 은신하고 동정을 살펴보니 과연 남으로서 일성방포 소리나며 화광이 충천한 중에 무수한 도적이 사면으로 에워싸고 한 도적이 함성 왈,
"그 계집이 여기 있느냐?"
하는 소리 산곡이 진동하니 부인이 대경하여 지척을 분별치 못하고 전지도지 동산을 넘어 물가에 다다르니 사고무인적이 적막한데 난데없는 일엽표주 물에 매였으며, 배 가운데 일개 선녀 선창밖에 나가며 부인을 재촉하여 배 안에 들라하니, 부인이 창황중에 올라 선녀를 보니, 머리 위에 옥련화를 꽂고 손에는 봉미선(鳳尾扇)을 들고 청의홍상(靑衣紅裳)에 백옥패(白玉佩)를 찼으니 짐짓 선녀요, 인간 사람 아니로다. 부인이 황송하여 국궁배례(鞠躬拜禮 ;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혀 절함) 왈,
"박명한 천첩을 이다지 구완하니 선녀의 깊은 은덕 어찌 다 갚으리까?"
선녀 대왈,
"소녀는 남해 용왕(南海龍王) 장녀옵더니 금일에 부왕이 분부하시기를, 대명국 유충렬의 모(母) 장부인이 금야에 도적의 변을 볼 것이니 네 바삐가 구완하라 하시기로 왔사오니 부인의 명은 상제도 아는 바라 소녀같은 계집이야 무슨 은혜 있다 하리까."
부인이 상제께 치하할 제 마지못하여 도적이 벌써 물가에 다달아. 방포일성에 난데없는 화광은 강수가 끓는 듯 하고 일척 소선에 양 돛을 높이 달아 살같이 달려드니 부인이 탄 배에서 두어발 남은지라. 적선 중 일원(一員)도적이 창검을 높이 들고 선창을 두드리며 함성하는 말이,
"네 이년 어디로 갈 것이냐? 천신이 아니거든 물 속으로 들어갈까. 가지말고 게 있거라. 나의 호통 한 소리에 나는 새라도 떨어지고 닫는 짐승도 못 가거든 요망한 계집이 어디로 가려 하는다?"
이렇듯이 소리하니 배 가운데 있는 부인의 혼백이 있을쏘냐. 창황 중에 돌아보니 도적의 배, 선창으로 달려드니 부인이 하릴없이 통곡하며 하는 말이,
"무지한 도적놈아. 나는 남경 유주부의 아내로 간신의 참소를 만나 이 지경이 되었은들 너의 아내 될 수 있느냐 차라리 물에 빠져 청백고혼 되리라."
도적이 이 말 듣고 분심이 탱천하여 창검으로 냅다 칠 제, 부인의 탄 배 거의 잡게 되었더니 난데없는 광풍이 동남으로 일어나며 백사장 쌓인 돌이 풍편(風便)에 흩날려 비 온 듯이 떨어지니, 만경창파 깊은 물이 풍랑이 도도(滔滔)하여 벽력같이 내려치니 강산이 두렵거든 도적놈의 일엽주가 제 어이 견딜쏘냐. 풍랑 소리 천지가 진동하며 적선의 양 돛 내가 부러져 물 가운데 내려지니 천하 항장사(項壯士)라도 해상에서 배를 타고 가자 한들 돛대가 없으니 어디로 가리오. 적선은 하릴없이 빈배만 둥둥 뜨고 부인의 일엽주는 용왕의 표주라 바람 분들 파선할쏘냐. 범범(汎汎) 중류(中流)에서 높이 떠 살같이 따라갈 제 그 배 앞은 고요하여 창파는 잔잔하고 월색은 은은한데 옥황이 분부하여 용왕이 주신 배거든 염려가 있을쏘냐
순식간에 배를 언덕에 대이고 부인을 인도하여 암상에 내린 후, 부인이 정신을 진정하여 무수히 치사하고 행장을 간수하여 물가로 올라갈 제 기운이 진하여 촌보(寸步)를 못 갈러라.
종일토록 가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산천은 수려하고 지형은 단정하니 이 땅은 천덕산 한림동이라. 그 곳을 당도함에 날이 또한 저물거늘 부인이 노곤하여 물가에 쉬어 앉아 잠깐 졸더니, 전일 현몽하던 노옹이 부인을 깨워 왈,
"부인은 악이 다 진(盡)하였으니 이 산곡으로 들어가면 자연 구할 사람이 있을 것이니 바삐 가라."
하거늘 놀라 깨어보니 청산은 울울하고 시내는 잔잔한지라. 일어나 차차 들어갈 제, 백옥 같은 고운 수족으로 악한 산곡 길을 발 벗고 들어가니 모진 돌에 채이며, 모진 나무에도 채이며 열 발가락이 하나도 성한데 없어 유혈이 낭자하고 일신이 흉측하니 세상이 귀찮은지라. 월태화용(月態花容) 고운 얼굴 수심이 만면하여 피골이 상련하여 살 마음이 전혀 없어 죽을 마음만 간절하다. 슬피 앉아 우는 말이,
"만리 연경을 가자하니 연경이 사만 오천 육백 리라. 여자의 일신이 천산만수를 어찌 가며, 몇 날이 못하여서 이러한 변을 당한데 연경으로 가다가는 내 절개 훼절하고 내 목숨 살 수 없겠다. 차라리 이곳에서 죽어 백골이나 고향으로 흘러갈거나, 남은 혼백이라도 황성을 다시 보리라."
행장을 끌러 옥함을 내어놓고 비단수건으로 주홍 글자를 새겨 쓰되,
"모년 모월 모일에 대명국 동성문 내에 사는 유충렬 모 장씨는 옥함을 내 아들 충렬에게 전하노라. 죽은 혼백이라도 받아보라."
자자(字字)이 새겨 수건으로 옥함을 매어 물 속에 넣고 대성통곡하며 치마를 무릅쓰고 물에 빠져 죽으려 할 제, 산곡 사이로 어떠한 여인이 동이를 곁에 끼고 금간수에서 물을 긷다가 부인을 보고 급히 내려와 만류하여 암상에 앉히고 문왈,
"부인은 무슨 일로 이러하신고? 내 집으로 가자."
하거늘 부인이 문득 노인이 현몽하던 말을 생각하고 따라가니 암상 석경 새에 수간모옥(數間茅屋)이 정묘한데 채운이 어리었으니 군자 사는데요, 신선 있는 곳이로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갈건야복(葛巾野服)은 벽상에 걸려있고 만 권 서책은 안상에 놓였으니, 부인의 마음이 반갑고 안정하여 고생하던 전후 말과 연경을 찾아 가다가 중로에서 봉변하던 말을 낱낱이 고하되, 주인도 낙루(落淚)하고 손도 슬피 우니 그 아니 가련한가.
원래 이 집은 대명국 성종황제 때에 벼슬하던 이인학의 아들 이처사의 집이니 인학의 모친은 유주부의 종숙모(從叔母)라. 이별한지 적년이라 처사는 마음이 청백하고 행실이 표치(標致)하여 벼슬로 있더니 하직하고 산중에 들어와 농업을 힘쓰며 학업을 일삼으니 심양강 오륜촌의 도처사의 행실이요, 부춘산(富春山) 칠리탄(七里灘)에 엄자릉(嚴子陵)의 절개로다. 세상 공명은 장자방(張子房)이 벽곡하고 인간 부귀는 소태부(疏太傅)가 산금(散金)하니 만고의 일인이요, 일대의 하나이라. 뜻밖에 부인의 말을 듣고 대경하여 중당에 마저 예필 후에 전후수말(前後首末)을 다 못하고 낙루(落淚)하여 왈,
"주부 처숙(妻叔)을 이별한지 적년(積年)이라, 그다지 인사 변하여 이 지경이 될 줄 어찌 알리오."
서로 울며 마음을 위로하여 음식 거처를 편히 고양하니 부인의 일신은 무양(無恙)하나 다만 흉중에 맺힌 한이 종시 떠나지 아니하여 세월을 보내더라.
회사정에 행봉대인(幸逢大人)하고
옥문관에 적거노재상(謫居老宰相)하다.
각설 이 때에 충렬은 모친을 잃고 물에 빠져 살길이 없었더니 문득 두 발이 닿거늘 자세히 보고 살피어 보니 물 속에 큰 바위라. 그 위에 올라앉아 하늘을 우러러 어미를 찾더니 간 데 없고 사면을 돌아보니 청산은 은은하고 다만 들리느니 물소리뿐이로다. 강천에 낭자한 원숭이 소리 삼경에 슬피 우니 충렬이 통곡하며 섰더니, 이 때에 남경 장사들이 재물을 많이 싣고 북경으로 떠나갈 제 회수에 배를 놓아 범범중류 내려가더니 처량한 울음소리 풍편에 들리거늘 선인 등이 괴이하여 배를 바삐 저어 우는 곳을 찾아가니 과연 일동자(一童子) 물에서 슬피 울거늘 급히 건져 주중(舟中)에 놓고 연고(然故)를 물은즉,
"해상에서 수적을 만나 어미를 잃고 우나이다."
선인 등이 비감하여 물가에 내려놓고 갈 데로 가라 하며 배를 띄워 북경으로 행하더라.
충렬이 선인을 이별하고 정처 없이 다니다가 촌촌이 걸식하며 곳곳에 차숙(借宿 ; 잠자리를 빌음)할 제, 조동모서(朝東暮西)하니 추풍낙엽이요, 거래무종적(去來無 迹)하니 청천에 부운이라. 얼굴이 치폐하고 행색이 가련하다. 흉중에 대장성은 때 속에 묻혀있고, 배상에 삼태성(三太星)은 헌 옷 속에 묻혔으니 활달한 기남자(奇男子)가 도리어 걸인(乞人)이라. 다만 쌓던 부열(傅說)이도 무정(武丁)을 만나 있고, 밭만 갈던 이윤(伊尹)이도 은왕(殷王) 성탕(成湯) 만나 있고, 위수(渭水)에 여상이도 주문왕 만났건만 유수(流水)같이 가는 광음 훌훌히 흘러가니 충렬의 고운 연광십사 세에 당한지라.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에 밥을 부쳐 도로에 개걸( 乞)타가 한 곳에 다다르니 이 땅은 초국이라. 영릉을 지나다가 장사를 바라보고 한 물가에 다다르니 창망한 빈 물가에 슬픈 원숭이 소리로다. 백사장 세우중에 백구는 비거비래뿐이로다. 후면을 돌아보니 녹죽(綠竹) 창송(蒼松)우거지고 적막한 옛 정자 풍랑 속에 보이거늘 그 곳에 올라가니, 이 물은 멱라수요, 이 정자는 회사정이라 하는 정자라. 유주부가 글을 쓰고 물에 빠져 죽고자 하던 곳이라. 마음이 절로 비감하여 정자에 올라가 사면을 살펴보니, 제일은 굴삼려의 행장을 써 붙이고 노정기를 사면에 붙였더라.
동벽상에 새로 두 줄 글이 있거늘 그 글을 보니 모년 모월 모일에 삼경 유주부는 간신의 패를 보고 연경으로 적거하다가 멱라수에 빠져 죽노라 하였거늘 충렬이 그 글을 보고 정상에 거꾸러져 방성통곡 왈, "우리 부친이 연경으로 갔는 줄만 알았더니 이 물에 빠졌도다. 나 혼자 살아나서 세상에 무엇하리. 회수에 모친 잃고 멱라수에 부친 잃었으니 하면목(何面目)으로 세상에 살아날고. 나도 함께 빠지리라." 하고 물가에 내려가니 충렬이 울음소리 용궁(龍宮)에 사무쳤는지라. 천신이 무심할까.
이 때에 영릉 땅에서 사는 강희주라 하는 재상이 있으되 소년 등과(登科)하여 승상 벼슬하더니 간신의 참소(讒訴)를 만나 퇴사(退仕)하여 고향에 돌아왔으나, 일단 충심이 국가를 잊지 못하여 매양 천자 오결(誤決)하는 일이 있으면 상소하여 구완하니 조정이 그 직간(直諫)을 꺼려하되 그 중에 정한담과 최일귀가 가장 미워하더니 마침 본부에 갔다가 회로에 우편 주점(酒店)에서 자더니 비몽간에 오색 구름이 멱라수에 어리었는데 청룡이 물 속에 빠지려 하며, 하늘을 향하여 무수히 통곡하며. 백사장에 배회하거늘 내렴에 괴이하여 날 새기를 기다리더니 계명성(鷄鳴聲)이 나며 날이 장차 밝거늘 멱라수에 바삐 오니 과연 어떠한 동자 물가에 앉아 울거늘 급히 달려들어 그 아이 손을 잡고 회사정에 올라와 자세히 물어 왈, "너는 어떠한 아이로서 어디로 가며 무슨 연고로 이곳에 와 우는가?" 충렬이 울음을 그치고 대왈, "소자는 남경 동성문 내에 사는 정언 주부 유공의 아들이옵더니 부친께옵서 간신의 참소를 만나 연경으로 적거하시다가 이 물에 빠져 죽은 종적이 회사정에 있는고로 소자도 이 물에 빠져 죽고자 하옵니다." 강승상이 이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여 왈, "이것이 웬말이냐 근년에 노병(老病)으로 황성을 못 갔더니 그다지 인사 변하여 이런 변이 있단 말인가. 유주부는 일국에 충신이라 동조에 벼슬하다가 나는 연만(年晩)하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더니 유주부 이런 줄을 몽중에나 생각하였으랴. 의외(意外)라 왕사는 물론하고 나를 따라 가자." 하니 충렬이 왈. "대인은 소자를 생각하와 가자 하옵시나 소자는 천지간 불효자라 살아서 무엇하며 또한 모친이 변양 회수 중에 죽삽고, 부친은 이 물가에 죽었사오니 소자 혼자 살 마음이 없나이다." 승상이 달래여 왈, "부모가 구몰(함께 죽음)한데 너조차 죽는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 자식 나 좋다하는 것이 후사를 끊지 아니함이라. 너조차 죽게 되면 유주부 사당에 일점향화 있을소냐. 잔말 말고 따라가자." 하시니 충렬이 하릴없어 강승상을 따라가니 영릉땅 월계촌이라, 인가가 즐비한데 벽제( 除) 소리 요란하고 고루거각(高樓巨閣)이 반공에 솟았는데 수호 문창이 있고 주륜취개(지위가 높은 사람이 타는 고급 수레) 왕래하되 인물이 준수하더라. 승상이 충렬을 외당에 두고 안으로 들어가 부인 소씨 더러 충렬의 말을 낱낱이 하니 소씨 이 말을 듣고 충렬을 청하여 손을 잡고 낙루하며 왈, "네가 동성문 내 사는 장부인의 아들이냐? 부인이 연만토록 자식이 없음에 날과 같이 매일 한탄하더니 장부인은 어찌하여 저러한 아들을 두었다가 영화를 다 못보고 황천객이 되었으니 세상사 허망하다. 간신의 해를 입어 충신이 다 죽으니 나라인들 무사하랴. 다른 데 가지 말고 내 집에 있으라." 하시니 충렬이 배사(拜謝)하고 외당으로 나오니라. 이때 강승상이 아들은 없고 다만 일녀를 두었는지라. 부인 소씨 여아를 낳을 적에 일원 선녀오운을 타고 내려와 소씨를 대하여 왈, "소녀는 옥황 선녀옵더니 연분이 자미원 대장성과 한 가지로 있다가 소녀를 강문(講問)에 보냄에 왔사오니 부인은 애휼하옵소서." 하거늘 부인이 흔미중에 여아를 탄생하니 용모 비범하고 거동이 단정하여 시서 음률(音律)을 무불통지(無不通知)하니 여중군자요 총명 지혜 무쌍이라. 부모 사랑하여 택서하기를 염려하더니 천행으로 충렬을 데려다가 외당에 거처하고 자식같이 길러낼 제 충렬의 상을 보니, 구불가연이로다. 부귀 작녹은 인간에 무쌍이요, 영웅준걸은 만고 제일이라. 승상이 대희하여 내당에 들어가 부인더러 혼사를 의논하니 부인 대희하여 왈, "내 마음도 충렬을 사랑하더니 승상의 말이 또한 그러할진대 불수다언하고 혼사를 지내옵소서." 승상이 밖에 나와 충렬의 손을 잡고, "내게 대사를 진탁(眞託)할 말이 있다. 노부 말년에 무남독녀를 두었더니 금일로 볼진대 너와 천장(天定)이 적실하니 이제 백년고락을 네게 부치노라." 하신데 충렬이 궤좌하여 낙루하며 여쭈오되, "소자같은 잔명을 구원하여 슬하에 두고자 하옵시니 감사무지(感謝無地)로되, 다만 통박(痛迫)하온 일이 흉즁에 사무쳤나이다. 소자 박복하와 양친이 죽은 줄도 모르고 취처(娶妻)하오면 인간에 죄인이라 글로 한이로소이다." 승상이 그 말 듣고 비감하여 충렬의 손을 잡고 왈, "그도 일시권도라 너의 집 시조공도 조실부모하고 장문이 취처하였다가 성군을 만나 개국공신 되었으니 조금도 서러워 말라." 하시고 즉시 택일하여 길례를 행하니 신랑 신부의 아름다운 것이 선인 적강(謫降) 적실하다. 예를 파하고 방으로 들어가 사면을 살펴보니 빛나고 빛난 것이 일구난설이요, 일필난기로다. 동방 화촉 깊은 밤에 신랑 신부 평생 연분 맺었으니 그 사랑한 말을 어찌다 측량하며 어찌 다 기록하리. 밤을 지낸 후에 이튿날 승상 양주(兩主)께 뵈오되 승상 부부 즐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도라. 이러구러 세월이 여류하여 유생의 나이 십오 세라, 이 때에 승상이 현서(賢壻)를 얻고 말년에 근심이 없으나 다만 유주부 간신의 해를 보아 멱라수에 죽음을 생각하니 분심이 직발하여 나라에 글을 올려 유주부를 설원코자 하여 즉시 황성을 가려 하거늘 유생이 만류하여 왈, "대인의 말씀은 감격하오나 간신이 만조하와 국권을 앗었으니 천자상소를 듣지 아니할까 하나이다." 승상이 불청하고 급히 행장을 차려 황성에 올라가, 퇴재상 권공달의 집에 사처를 정하고 상소를 지어 승지를 불러 천자께 올리라 하더라. 그 상소에 하였으되, "전승상 강희주는 근돈수백배 하옵고 상소우폐하전하나이다. 황송하오나 충신은 국가지본심이요, 간신을 물리치고 충신을 데려와 인정을 행하시고 덕을 베푸사 창생을 살피시면 소신같은 병골이라도 태고순풍 다시 만나 청산백골이나 좋은 땅에 묻힐까 하였더니 간신의 말을 듣삽고 주부유심을 연경으로 원찬하시니 선인의 하신 말씀 인군과 신하 보기를 초개같이 하여 밖으로 충신의 입을 막고 간신의 악을 받아 국권을 앗았으니 어찌 아니 한심 하오리까. 왕망이 섭정함에 왕실이 미약하고 희왕이 위태함에 항적이 죽었으니 복원 황상은 깊이 생각하옵서소. 신이 비록 죽는 날이라도 사은(임금의 은혜) 해(바다) 같사오니 복원황상은 충신 유심을 즉시 방송하와 폐하를 돕게 하옵소서. 주달하올 말씀 무궁하오나 황송하와 그치나이다."
하였거늘 천자 상소를 보시고 대노하여 조정에 내리여 보라 하신다. 이때 정한담 최일귀, 강희주의 상소를 보고 대분하여 즉시 궐내에 들어가 여쭈오되,
"퇴신 강희주의 상소를 보오니 대역부도라. 충신을 왕망에게 비하여 폐하를 죽인다 하오니 이 놈을 역률로 다스리어 능지처참 하옵고 일변 저의 삼족을 멸하여지이다."
천자 허락하되, 한담이 즉시 승상부에 나와 나졸을 재촉하여 강희주를 나입하라 하니 나졸이 청령하고 권공달의 집에 가 강희주를 철망으로 결박하여 잡아갈 제, 이 때 강희주 삼족을 멸하라 하는 말을 듣고 유생이 또한 연좌할까 하여 급히 편지를 만들어 집으로 보내고 철망에 쌓여 금부로 들어갈 제, 백발이 소소하니 피눈물이 반반하여,
"충신을 구완타가 장안 시상에 무주고혼 된단 말인가. 죽은 혼백이라도 용봉 비간을 벗하여 천추에 영화될 것이요, 간신 정한담은 찬역하려 하고 충신을 무함하여 원혼이 되게 하니 살아도 부끄럽지 아니하랴."
무수히 호원하고 금부로 돌아가니, 이 때 정한담이 승상부 높이 앉아 승상을 나입하여 계하에 꿇리고 수죄하는 말이,
"네 전일에 자칭 충신이라 하더니 충신도 역적이 된단 말인가?"
승상이 눈을 부릅뜨고 한담을 보며 왈,
"관숙 채숙이 주공더러 역적이라 아니 하였으냐.
한때 양화가 공자더러 소인이라 함이 어제 들은 듯 하노라."
하니, 한담이 대노하여 좌우 나졸을 재촉하여 수레 위에 높이 싣고 장안 시상에 나올 제, 이때에 천자 황태후는 강승상의 고모라, 승상 죽인단 말을 듣고 급히 천자께 들어가 낙루하여 왈, "들으니 강희주 뿐이라 설사 죽일 죄가 있다 하여도 날로 보아 죽이지 말고 원방에 유찬하기를 바라노라."
천자 애연하여 즉시 한담을 불러,
"죽이지 말고 유심 일체로 옥문관에 원찬하라."
하시니 한담이 청명하고 마지못하여 옥문관에 원찬하고, 강희주의 일족을 다 잡아다가 궁노비를 공입하라 하고, 일변 나졸을 명초하여 영릉으로 간지라.
이 때 유생이 강희주 승상이 황성 가신 후로 주야 염려하더니 뜻밖에 강승상의 서간이 왔거늘 급히 개착하니 하였으되,
"오호라 노부는 전생에 죄 중하여 슬하에 자식 없고 다만 일녀를 두었더니 천행으로 그대를 만나 부귀영화를 보려 하고 여아의 평생을 그대에게 부쳤더니 가운이 그러한지 조물이 시기한지 충신을 구완타가 만리 변방에 생사를 모르나니 이러한 변이 또 있느냐. 노부는 연만하여 풀 끝에 짐나고 여년이 불원하여 이제 죽어도 섧지 아니하거니와 여아의 일생을 생각하니 가련하고 불쌍한지라. 천생연분으로 그대를 만나 신정이 미흡하여 이 지경이 되었으니 형용이 어찌 될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하나 노부는 역률로 잡히어 철망을 씌워 옥문관으로 원찬하고 나의 일족은 잡아다가 궁비 속공하라 하고 나졸이 내려가니 그대 급히 집을 떠나 환을 면하라. 만일 신정을 못 잊어 도망치 아니하면 우리 두 집의 일점 혈육이 청춘고혼이 될 것이니 부디 도망하였다가 일후에 귀히 되거든 내 자식을 찾아 버리지 말고 백년해로하여 나 죽은 날에 박주 일배라도 향화를 피운 후에 승상은 일생 기르던 충렬의 손에 많이 흠향하고 가라하면 구천의 여혼이라도 일배주를 만반주육으로 먹고 청산에 썩은 뼈도 춘풍을 다시 만나 그 은혜를 갚으리라."
하였거늘 충렬이 보기를 다함에 낭자 방에 들어가 편지를 뵈이며,
"전생에 명이 기박하여 조실부모하고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밥을 부쳐 부은 같이 다니더니 천행으로 대인을 만나 낭자와 백년언약을 맺었더니 일년이 다 못하여 이런 변이 있으니 어찌 아니 망극하리오."
입었던 고의 한삼을 벗어 글 두 구를 써 주며,
"타일에 보사이다."
낭자 이 말을 듣고 대경질색하여 유생의 옷을 잡고 방성대곡하여 왈,
"노부 무슨 죄로 만리 호지에 간다 하며, 청춘 소첩 무슨 죄로 박명한고, 날 같은 여자는 생각 말고 급히 환을 면하소서."
홍상한 폭을 떼어 글 두 구를 지어주며,
"급히 나가소서"
하거늘 유생이 글을 받아 금낭속에 넌짓 넣고 곡성으로 해를 지내리라.
낭자 울며 왈.
"가군이 이제 가면 어느 날 다시 보며 어명이 지중하여 궁비 속공하게 되면 황천에 가 다시 볼까 하나이다."
충렬이 슬피 울며 하직하고 가는 정이 해하성 추야월에 우미인을 이별한 듯 하더라.
행장을 급히 차려 서천을 바라고 정처 없이 가더니 신세를 생각함에 속절없는 눈물이 비 오는 듯이 떨어지며 장장천지 길고 긴 길에 앞이 막혀 못 가겠다. 서천 구름을 바라보고 한없이 가더라.
소부인은 청수에 투사하고
강낭자는 창가에 수절하다.
각설 이때, 부인과 낭자는 유생을 이별하고 일가가 망극하여 울음소리 떠나지 아니하더라. 부로가 사오일내에 금부도사 내려와 월계촌에 달려들어 소부인과 낭자를 잡아내어 수레 위에 싣고 군사를 재촉하여 황성으로 올라가며 일변 집을 헐어 못을 파고 가니, 가련하다 강승상이 세대로 있던 집을 일조에 못을 파니 집오리만 둥둥 떴다.
소씨와 낭자 속절없이 잡혀 올라갈 제 청수에 다다르니 일모서산이라. 객실에 들어 갈 제, 이때 금부 나졸 중에 장한이라 하는 군사 전일 강승상 벼슬할 때에 장산의 부친이 승상부 서리로서 득죄하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강승상이 구하여 살린고로 장한의 부자 그 은혜를 주야 생각하더니 이 때를 당함에 불쌍함을 이기지 못하여 다른 군사 모르게 슬피 울더니, 그날 밤 삼경에 다른 군사 다 잠이 깊이 들었거늘 가만히 부인 자는 방문 앞에 기침하고 부인을 부르되, 부인이 놀래어 문을 열고 보니 장한이 복지하여 가만히 여쭈오되,
"소인은 금부 나장이옵더니 전일 대감 벼슬할 때에 소인의 아비 나라에 득죄하여 죽게 되었삽더니 대감이 살리시기로 그 은혜 골수에 사무치어 갚기를 바라더니 이 때를 당하여 소인이 어찌 무심 하오리까. 바라옵건데 부인은 너무 염려 마옵소서, 이날 밤에 명을 도망하오시면 그 뒤는 소인이 당할 것이니 조금도 염려 마옵시고 도망하여 살기를 바라소서."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풀리어 낭자를 데리고 장한을 따라 주점 밖에 나서니 밤이 이미 삼경이라 인적이 고요하거늘 동산을 넘어 십 리를 가지 청수에 다다라 장한이 하직하고 왈,
"부인과 낭자는 이 물가에 빠져 죽은 표를 하고 가옵시면 후환이 없을 것이니 부디 살아나 후사를 보사이다."
하고 가거늘 이 때 부인이 낭자의 신세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여 이제 비록 도망하여 왔으나 청춘 여자를 데리고 어디로 가 살며 혹 살아난들 승상과 현서를 이별하고 살아서 무엇하리 차라리 이 물에 빠져 죽으리라 하고, 낭자를 속여 뒤보는 체하고 급히 청수에 가 신을 벗어 물가에 놓고 청강록수 깊은 물에 뛰어드니 가련하다 강승상의 부인 백옥같은 고운 몸이 어복 중에 장사하니 어찌 아니 가련하랴. 이때 낭자 모친을 기다리더니 종시 오지 아니 하거늘 급히 나서 살펴보니 사면에 인적이 없는지라 마음이 답답하여 모친을 부르며 청수가에 나와보니 모친이 신을 벗어 물가에 놓고 간데 없거늘 발을 구르며 또한 신을 벗어 물가에 놓고 빠져 죽으려 하더니 이 때는 밤 오경이라 동방이 차차 밝아오며 마침 영릉골 관비 한 년이 외촌에 가다가 회로에 청수가에 다다르니 어떠한 여자 물가에서 통곡하며 물에 빠져 죽고자 하거늘 급히 쫓아와 낭자를 붙들어 물가에 앉히고 연고를 물은 후에 제집으로 가자 하니 낭자 한사하고 죽으려 하거늘 관비 만단개유(여러 가지로 타이름)하여 데리고 와서 수양딸을 정한 후에 자색과 태도를 살펴보니 천상선녀 같은지라. 이 고을 동리마다 수청을 드렸으면 천금재산을 부러워하며 안량태수를 원할쏘냐, 만 가지로 달래어 다른 데로 못 가게 하더라.
각설이라 이 때에 유생이 강승상의 집을 떠나서 서천을 바라보고 정처 없이 가면 신세를 생각하니 속절없고 하릴없다. 이제는 무가내하(어떻게 할 수 없다)로다. 산중에 들어가 삭발위승하여 훗길이나 닦으리라하고 청산을 바라고 종일토록 가더니 한곳에 다다르니 앞에 큰산이 있으되 청봉만학이 중천한 중에 오색 구름이 구리봉에 떠있고 각색 화초 만발한 지라 장차 신령한 산이라 하고 찾아 들어가니 경개 절승하고 풍경이 쇄락하다. 산행 육칠 리에 들리나니 물소리 잔잔하고 보이나니 청산만 울울한데 청림을 더우잡고 석양에 올라가니 수양천만사는 춘풍을 못 이기어 동구에 흐늘거려 늘어지며 녹죽, 청송은 우거진 가지에 백조 춘정 다투었다. 층층한 화계 상에는 앵무 공작 넘노는데 창천에 걸린 폭포 층암절벽 치는 소리 한산사 쇠북 소리 객선에 이르는 듯 반공에 솟은 암석 청송 속에 있는 거동산수 그림 팔간병풍 둘렀는듯 산중에 있는 경개 어찌 다 기록하리.
춘풍이 언 듯하며 경쇠(작은 종)소리 들리거늘 차츰차츰 들어가니 오색 구름 속에 단청하고 휘황한 고루 거각이 즐비하여 일주문을 바라보니 황금대자로 '서해 광덕산 백용사'라 뚜렷이 붙혔거늘 산문으로 들어가니 일원 대승이 나오거늘 그 중의 거동을 보니 소소한 두 눈썹을 두 눈을 덮여있고 백변같이 뚜렷한 귀는 두 어깨에 늘어졌으니 청수한 골격과 은은한 정신은 범승이 아닐러라.
백팔염주 육환장을 짚고 흑포장삼의 떨어진 송낙 쓰고 나오며 유생을 보고 왈
"소승이 연마하기로 유상공 오시는 행차에 동구 밖에 나가 맞지 못하니 소승의 무례함을 용사하옵소서"
유생이 대경 왈.
"천생에 팔자 기박하여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정처 없이 다니다가 우연히 이곳에 와 대사를 만나오니 그다지 관대하시며 소생의 성을 어찌 아나이까?"
노승이 답왈
"어제 남악형산 화선관이 소승의 절에 왔삽다가 소승더러 부탁하기를 '명일 오시에 남경 동성문 내에 사는 유심의 아들 충렬이가 올 것이니 축객 말고 대접하라'하시기로 소승이 찾아 나옵더니 상공의 복색을 보오니 남경 사람인고로 알았나이다."
유생이 그 말을 듣고 일희일비하여 노승을 따라 들어가니 제승들이 합장배례하며 반겨하는 지라. 노승의 방에 들어가 석반을 먹은 후에 그 밤을 편히 쉬니 이 곳은 선경이라 세상을 모두 잊고 일신이 무양한지라. 이후로는 노승과 한 가지로 병서도 잠심하고 불경도 학논하니라. 이때에 대명천지무가객이요 과덕산중유발승이라, 본신이 천상 사람으로 생불을 만났으니 기이한 술법을 가르치고 천지 일월성신이며 천하 명산 신령들이 모두 다 협력하니 그 재주와 영민함을 뉘라서 당하리오. 주야로 공부하더라.
천자는 기병쌍궐하하고
간신을 투창적진중하다.
각설 이때에 남경조신 중에 도총대장 정한담과 병부상서 최일귀, 일상 꺼리던 유심과 강희주를 만 리 밖에 원찬하고, 조정 백관을 처결하여 천자를 도모코자 하여 신기한 병법과 둔갑장신지술과 승천입지지책과 변화위신지법이며 악화두수지술을 통달하게 배웠으니, 이놈도 본신이 천상 익성으로 인간 사람은 당할 이 없더라.
일국 만민지상이라, 소장지변이 있었으니 나라가 어찌 무사하랴.
이 때는 영종황제 즉위 삼년 춘정월이라. 국운이 불행하며 남흉노 선우며 북적과 도심하여 천자를 도모하려 하고 서천 삼십육도 군장과 남만 가달이며, 토번 오국이 합세하여 장사 팔천여원과 정병 오백만으로 주야 행군하여 진남관에 웅거한지라.
이 때에 백성들이 난리를 보지 못하였다가 뜻밖에 난을 만나니 농상낙약하여 산지사방 피란하니 적연도 탕진하고 창곡도 진갈한지라, 하늘이 정한 운수 그리 않고 어이하리.
이 때 천자 정월 망일에 호산대에 올라 망월하고 환궁하여 대연을 배설하고 상하동락 즐기더니, 뜻밖에 진남과 수문장이 장개를 올렸거늘 급히 개탁하니 하였으되,
"남적이 강성하여 오국과 합력하여 진남관 평사뜰 백리 내에 가득하옵고 백성을 노략하며 황성을 치려하오니 바삐 군병을 보내어 도적을 막으소서."
하였거늘 천자 대경하사 제신을 모아 의논한 새 정한담과 최일귀 이 말을 듣고 대희하여 급히 별당에 들어가 도사를 보고 밖에 도적이 일어났단 말을 하고 대사를 부르니, 도사 문에 나서 천기를 살핀 후에,
"시재시재로다. 신기한 영웅이 황성에 있는가 하였더니 이제 죽었으며, 때 맞춰 도적이 일어났으니 이는 그대 천자할 수라, 급격물실하라."
하니 한담이 대희하여 일귀와 더불어 갑주를 갖추고 궐문으로 들어가는지라.
이 때 천자 제신과 방적 할 꾀를 의논하더니 장안에 바람이 일어나며 일원대장이 계하에 복지 주왈, "소장 등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한번 나가 남적을 함몰하여 황상의 근심을 덜고 소장의 공을 세워지이다."
하거늘 모두 보니 신장이 십여척이요 면목이 웅장한데, 황금투구에 녹운포를 입은 것은 도총대장 정한담이요, 면상이 숯먹 같고 안채가 황홀하며 백금투구에 홍운포를 입은 것은 병부상서 최일귀라.
천자 대희하사 양장의 손을 잡고 왈,
"경 등의 충성 지략은 짐이 이미 아는지라 남적을 함몰하여 짐의 근심을 덜게 하라."
양장이 청영하고 각각 물러나와 정병 오천씩 거느려 행군하여 진남관에 유진하고 그날 밤에 군사 한 명만 잠을 깨워 가만히 항서(降書)를 써 주며 또한 편지를 써서 적진 중에 보내고 회답을 기다리는지라
그 군사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보고 항서를 올린 후에, 또 편지를 드리거늘 적장이 대희하여 즉시 개탁하니 하였으되,
"남경 장사 정한담 최일귀는 일장서간을 남진 대장소에 올리나이다. 우리 양인 등이 갈충 진심하여 천자를 도와 국가에 유공하고 백성에게 덕이 있어 지성으로 봉공하되 지기하는 인군을 못만나 항시 앙앙한 마음이 있는지라 대장부 세상에 나서 어찌 남의 신하 오래 되리오. 남아유방백세할진대 역당유취만년이라 하였으니 이 때를 당하여 어찌 묘계 없으리오. 우리 양인을 선봉을 삼으시면 항복할 것이니 그대 뜻이 어떠하뇨? 회답을 보내라."
하였거늘 적장이 그 글을 보고 대희하여 왈,
"우리 등이 남경으로 나올 때 도사 근시하기를 정한담 최일귀를 염려하더니 이제 저희 등이 먼저 항복코자 하니 이는 천우신조함이라."
하고 즉시 회답을 써주되, 군사 급히 본진으로 돌아와 답서를 올리거늘 떼어 보니 하였으되,
"그대의 마음이 우리 마음 같은지라 선봉을 원대로 맡길 것이니 금야에 반가히 보사이다."
하였거늘, 정, 최 양장이 갑주를 갖추고 적진에 들어가는지라.
이적에 중군장이 급히 황성에 올라가 전후수말을 천자에게 고하되, 천자 이 말을 듣고 용상밑에 떨어져 발을 구르며 정한담 최일귀 적장에게 항복하였으니 적진은 범이 날개를 얻은 듯 하고 짐은 용이 물을 잃었으니 이제는 할 일 없다. 성중에 있는 군사 낱낱이 총독하고 각도 각읍에 행관하여 군사와 군량을 준비하고 우승상 조정만으로 도성을 지키고 태자로 중군을 정하시고 상이 친히 후군이 되어 행군을 재촉하니 군사 십여만이요 장수 백여원이라.
행군고를 재촉할 제, 전일 길주자사 갔던 이행이 원문밖에 복지 주왈,
"소신이 재주 없사오나 이 때를 당하여 신자 도리에 어찌 사직을 돕지 아니 하오리까? 소신으로 선봉을 정하옵소서."
천자 대희하사 즉시 이행으로 선봉을 삼아 도적을 막을 새, 이 때 정한담 최일귀 적진에 항복하여 한담이 선봉이 되고 일귀는 중군대장이 되어 급히 황성을 거쳐 들어오며 의기양양하고 호령이 엄숙한데 기치창검은 팔공산 나무같이 벌려있고, 투구 갑옷은 한천에 일광같이 안채가 쐬이는 듯, 금고함성은 천지 진동하고 목탁 나팔은 강산이 뒤눕는 듯, 순식간에 들어와 금산성 백리 뜰에 빈틈없이 벌려 서서 내외음양진을 치고 도사 진중에 망기하며 싸움을 재촉하니, 적진 중에서 방포일성에 한 장수 내달아 외며 왈,
"명진 중에 천극한 적수 있거든 바삐 나와 대적하라."
하니 명진중에서 응포하고 좌익장 주선우 응성하고 달려들어 싸울 새, 양진 군사 처음으로 구경하니 항오를 차리지 못하여 승부를 구경하더니 수합이 못하여 극한의 칼이 번듯하며 주선우 머리 마하(말아래)에 떨어지니, 명진중으로 좌익장 죽음을 보고 또 한 장수 내달아 원문 밖에 고성 왈,
"극한은 가지 말고 최상정의 칼을 받으라."
하니 극한이 달려들어 함성이 그치고 그 칼이 번듯하며 최상정의 머리 떨어지니 명진중에서 우익장 죽음을 보고 왕공열이 응성하고 달려들어 극한과 싸울 새 일합이 못하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명진중에서 팔대장군이 일시에 달려들어 나옴을 보고 한진이 극한과 합력하여 팔장으로 더불어 싸우더니, 한진은 서편을 치고 극한은 동을 치니 촉처(접촉하는 곳)에 죽는 군사 그 수를 모를네라. 사합이 못하여 극한의 창검 끝에 팔장이 다 죽으니, 이 때 태자 중군에 있다가 팔장 죽음을 보고 불승분심하여 말을 타고 진문 밖에 나서며 외워 왈,
"무도한 남적놈아. 천명을 거역하니 죄사무석이로다. 너의 진중에 정한담 최일귀 머리를 버혀 명진중에 보내는자 있으면 옥새를 전하리라."
하고 극한을 맞아 싸우더니, 선봉장 이행이 이 말을 듣고 달려오며,
"태자는 아직 분을 참으소서. 소장이 잡으리다."
하고 나는 듯이 들어가 좌수에 칼을 들고 극한의 머리를 베이고, 장창을 들고 한진의 머리를 베어, 두 손에 갈라들고 좌우로 충돌하여 본진으로 돌아오니 적진 중에서 한담이 장막 밖에 나서며 청사마를 채쳐 구척장검 높이 들고 바로 명진을 대칼에 함몰코져하니, 이때에 먼저 만적 선봉으로 왔던 정문걸이 내달아 한담을 불러 왈,
"대장은 분을 참으소서, 소장이 이행을 잡으리다."
하고 번창출마하여 싸우더니 일합이 못하여 문걸의 칼이 진중에 빛나며 이행의 머리 마하에 내려지는 지라. 문걸이 칼 끝에 꿰어 들고 본진으로 행하다가 다시 명진 선봉을 지쳐 들어오며,
"명진은 불쌍한 인생을 죽이지 말고 바삐 항복하라."
하며 순식간에 선봉을 다 베이고 달려들어 중군으로 들어오거늘, 태자 중군을 지키다가 당치 못할 중 알고 후군과 천자를 모시고 금산성으로 도망한지라.
이 때에 문걸이 명진 장사를 씨도 없이 다 죽이고 명제를 찾은즉 도망하고 없는지라. 군장 복색을 모두 다 탈취하고 본진으로 돌아오며, 정한담이 바로 달려들어가니 천자 망극하여 옥새를 땅에 놓고 앙천 통곡 왈,
"짐이 불명하여 선황제 사백 년 왕업을 일조에 정한담에게 잃게되니 이는 양호유환이다. 뉘를 원망하리오. 모두 다 짐의 불찰이라 황천에 돌아간들 선황제를 어찌 보며 인간에 살았은들 되놈에게 무릎을 어찌 꿇겠는가."
하며 금산성이 떠나가게 통곡이 진동하더라.
수문장이 보하되, "해남 정도사 군병을 거느려 왔나이다."
천자 대희하여 바삐 입시하라 하되, 정도사 군사 십만 병을 거느려 성중에 들어가 천자께 뵈이거늘,
'즉시 정도사로 선봉을 삼아 도적을 막으라."
하니 절도사 청령하고 성하에 유진하였더니, 이 때 한담이 도성으로 들어가 용상에 높이 앉아 백관을 호령하니 만조백관이 일조에 항복하더라, 만성인민이 도적에 밤이 되어 물끓듯 하더라.
이 날 한담이 삼군을 재촉하여 금산성을 쳐 파하고 옥새를 앗고자 하여 성하에 다다르니 명진 군사 길을 막거늘 정문걸이 필마단창으로 명진을 지쳐 좌우로 충돌하니 일신이 검광되어 닫는 앞에 장졸의 머리 추풍낙엽이요, 호전주퇴(병을 기울임에 술이 쏟아지는 듯이)같더라. 순식간에 죽이고 산성 문밖에 달려들어 성문을 두드리며,
"명제야 옥새를 드리라!"
하는 소리 금산성이 무너지며 강산이 뒤넘는 듯 하니 성중에 있는 군사 혼백이 없었으니 그 아니 가련한가.
천자와 조정만이 황황급급하여 북문을 열고 도망하여 암석간에 은신하였더니, 이 때, 태자 황후와 태후를 모시고 도망하랴 하더니 문걸이 성중에 들어와 천자를 찾다가 도망하고 없음에 황후 태자를 잡아 본진으로 보내고 돌아오니, 정한담이 황후를 결박하여 진앞에 꿇리고 천자간 곳을 가르치라 하되, 황후 망극하여 대답지 아니 하거늘, 좌우군사 창검을 갈라들고 옥체를 겨누면서 바른대로 가르치라 하니 황후 황망중에 대답하되,
"이 몸은 계집이라 성중에 묻혀 있다가 불의에 난을 당하여 천자는 밖에 있는 고로 생사존망을 모르노라."
한담이 분노하여 황후 태자를 진중에 두어 주려 죽게 하고 용상에 높이 앉아 천자의 일을 행하며 군사를 호령하되,
"명제를 사로잡는 자 있으면 천금 상에 만호후를 봉하리라."
하니 군사 청령하고 각진으로 돌아오니라.
이 때 천자 금산성에서 도망하여 조정만으로 더불어 산곡 사이에 은신하고 있더니 황태후 적진에 잡혀가 죽이려 하는 말을 듣고 통곡하여 암하에 떨어져 죽고자 하거늘 조정만이 붙들어 구완하여 천자를 업고 명성원으로 도망하여 갈 제, 천자께 여쭈오되,
"남경이 진탕하였으니 도적 정한담 잡기는 새로이 정문걸 잡을 장수 없으니 이제 상동 육국에 청병하여 싸우다가 사불여의(일이 뜻과 같지 않음)하거든 옥새를 가지고 소신과 함께 용동수에 빠져 죽사이다."
천자 옳게 여겨 조서를 써 산동 육군에 주야로 가 구원병을 청하니, 이때 육군 왕이 이 말을 듣고 각각 군사 십만 병과 장수 천여원을 조발하여 급히 남경 명성원으로 보내니라.
이 때 육국이 합세하여 호산대 넓은 뜰에 빈틈없이 행군하여 들어오니 천자 대희하여 군중에 들어가 위로하고 적진 형세와 수차 패함을 낱낱이 말하고 적응으로 선봉을 삼고 조정만으로 중군을 삼아 황성으로 들어올 제 그 웅장한 거동은 추상같은지라. 백사장 백 리에 군사 늘어서서 들어오니 남경이 비록 진탕하였으나 무서운 것이 천자의 기굴(살림살이가 갖추어져 있던 터진)러라. 금산성 하에 유진하고 싸움을 도도니 이때 정문걸이 선봉에 있다가 청병이 옴을 보고 필마단창으로 나오거늘 한담이 문걸을 불러 왈,
"적병이 저다지 엄장한데 장군은 어찌 경솔히 가려하오."
문걸이 답왈,
"폐하 어찌 소장의 재주를 수히 알으시나이까? 장편(많은 군사) 군졸 사십 만과 백기(말탄 군사)를 한 칼에 다 죽였으니 남경이 비록 육군에 청병하여 억만 병이 왔거니와 소장의 한 칼 끝에 죽는 구경 앉아서 보옵소서."
한담이 대희하여 장대에 높이 앉아 싸움을 구경할 새, 문걸이 창검을 좌우에 갈라 잡고 마상에 높이 앉아 나는 듯이 들어가며 호통일성에,
"명제야 옥새를 가져 왔느냐? 너를 잡으려 하였더니 이제 왔음에 진소위 춘치자명이라. 바삐 항복하여 잔명을 보존하라."
하고 억만 군중에 무인지경같이 횡행하여 동장을 치는 듯 남장을 베이고, 북장을 베이는 듯 서장이 쓰러지니, 죽는 군사 여산하고 유혈이 성천되었도다. 서초패왕이 강동 건너 함곡관을 부수는 듯, 상산 조자룡이 산양수 건너 삼국 청병 지치는 듯, 문걸이 닫는 곳마다 싸울 군사 없었으니 그 아니 망극할까. 이때 천자 고정만과 옥새를 갖고 용동수에 빠지고자 하나
또한 도망할 길이 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마지 아니 하더라.
백용사에 득갑주청검하고
송림촌에 득천사마하다.
각설이라 이 때 유충렬이 서해 광덕산 배용사에 있어 노승과 한 가지로 지음(知音)이 되어 세월을 보내더니, 이 때는 부흥 십삼년 추칠월 망간이라 한풍은 소소하고 낙목은 분분한데 고향을 생각하며 신세를 생각할 제 월경야삼경에 홀로 앉아 비감하더니, 노승이 일어나 밖에 갔다 들어오며 충렬을 불러 왈,
"상공이 금일 천문을 보았나이까?"
충렬이 놀래어 급히 나와 보니 천자의 자미성이 떨어져 명성원에 잠겨 있고, 남경에 살기 가득하였거늘 방으로 들어와 한숨짓고 낙루 하니 노승이 왈,
"남경에 병난은 났거니와 산중에 피난하는 사람이 무슨 근심이 있으리까?"
충렬이 울며 왈,
"소생은 남경 세록지신이라 국변이 이러하니 어찌 근심이 없으리오마는 적수단신이 만 리 밖에 있사오니 한탄한들 어찌하리오."
노승이 웃고 벽장을 열고 옥함을 내어놓으며 왈,
"옥함은 용궁조화거니와 옥함 짬맨(잡아 맨) 수건은 어떠한 사람의 수건인지 자세히 보라."
유생이 의심하여 옥함을 살펴보니, '남경 도원수 유충렬은 개탁이라.'
금자로 새겨있고 짬맨 수건을 끌러보니,
"모년 모월 모일에 남경 동성문 내에 사는 충렬의 모친 장부인은 내 아들 충렬에게 부치노라."
하였거늘 충렬이 수건과 옥함을 붙들고 방성통곡(放聲痛哭)하거늘, 소승이 위로 왈,
"소승이 수년 전에 절 중창 하로 변양 회수에 다다르니 기이한 오색 구름이 수건에 덮였거늘 바삐 가서 보니 옥함이 물가에 놓였거늘 임자를 주려 하고 갖다가 간수하였더니 금일로 볼진대 상공의 전쟁 기계가 옥함 속에 있는가 하나이다."
대체 이 옥함은 회수 사공 마철이가 물 속에 잠수질하다가 큰 거북이 옥함을 지고 나오거늘 마철이 거북을 죽이고 옥함을 가져다가 제 집에 두었더니 전일 장부인이 도적에게 잡히어 석장동 마철의 집에 가서 옥함을 갖다가 수건에 글을 쓰고 회수에 넣었더니 백용사 부처중이 가져다가 이 날 충렬을 주었는지라.
이 때 충렬이 옥함을 안고 왈,
"이것이 일정 충렬의 기물일진대 옥함이 열릴지라."
하고 위짝을 열어 놓으니 빈틈없이 들었거늘 보니, 갑주 한 벌과 장검
하나, 책 한 권이 들었거늘, 투구를 보니 비금비옥이라 광채 찬란하여 안채를 쏘이는 중에 속을 살펴보니 금자로 '일광주'라 새겨 있고, 갑옷을 보니 용궁조화 적실하다. 무엇으로 만든 줄 모를러라. 옷깃 밑에 금자로 새겨 있고, 장검은 놓였으되 두미가 없는지라 신화경을 펴놓고 칼 쓰는 법을 보니 갑주를 입은 후에 신화경(술법에 사용되는 경문)일 편을 보고 천상 대장성을 세 번 보게 되면 사린 칼이 절로 펴져 변화무궁 할지라 하였거늘 즉시 시험하니 십척 장검이 번듯하며 사람을 놀래거늘, 한가운데 대장성이 샛별같이 박혀 있고 금자로 새기기를 '장성검'이라 하였거늘, 모두 다 행장에 간수하고 노승더라 왈,
"옥황께옵서 장군을 대명국에 보낼 제, 사해용왕이 모를 손가. 수년 전에 소승이 서역에 갈 제, 백용암에 다다르니 어미 잃은 망아지 누웠거늘 그 말을 데려왔으나, 상승에게 부당이라 송임촌동 장자(마을에서 덕망이 있는 유지)에게 맡기고 왔으니 그 곳에 찾아가 그 말을 얻은 후에 중로에 지체말고 급히 황성에 득달하와 지금 천자의 목숨이 경각에 있사오니 급히 가서 구원하라."
유생이 이 말을 듣고 송임촌을 바삐 찾아가 동장자를 만난 후에 말을 구경하자 하니, 이 때 천사마 제 임자를 만났으니 벽력같은 소리하며 백여장 토굴을 넘어 뛰어나서 충렬에게 달려들어 옷도 물며 몸도 대어보니 웅장한 거동은 일필로 난기로다. 심산 맹호 냅다 선 듯, 북해 흑룡이 벽공에 오르는 듯, 강산정기는 안채에 갈마있고 비룡조화는 네 굽에 번듯한데, 턱 밑에 일점 용인이 새겼으되 '사송 천사마'라 하였거늘 유생이 대희하여 장자더러 말을 사자 하니 장자 웃어 왈,
"수년 전에 백용사 부처중이 이 말을 맡기며 왈 '이 말을 길러내어 임자를 찾아 주라'하기로 맡아 길렀더니 이 말이 장성함에 잡을 길이 없어 토굴에 가두었으나 천만인이 구경하되 하나도 가까이 못 가더니 오늘날 그대를 보고 제 스스로 찾아오니 부처중이 이르던 임자 그대가 적실하니 하늘이 주신 보배니 어찌 판단 말인가, 물각유주 오니 가져가옵소서."
유생이 대희하여 안장을 갖추어 동장자를 하직하고 송임촌을 지나 광덕산을 행하여 노승에게 치하하고 적년 정희를 하직할 제 제사중의 제승들의 별회지담을 어찌 다 설화하고 기록하리.
하직하고 그 말 위에 높이 앉아 남경을 바라보며 구름을 가르쳐 말더러 경계왈,
"하늘은 나를 내시고 용왕은 너를 낼 제 그 뜻이 모두 다 남경을 돕게 함이라 이제 남적이 황성에 강성하여 천자의 목숨이 경각에 있다 하니 대장부 급한 마음 일각이 여삼추라 너는 힘을 다하여 남경을 순식에 득달하라."
그 말이 그 말을 듣고 청천을 바라보며 벽력같은 소리하고 백운을 헤쳐 나는 듯이 들어가니, 사람은 천신이요, 말은 비룡이라. 남경을 바람같이 달려오니 금산성 넓은 뜰에 살기가 충천하고 황성 문안에 곡성이 진동하더라.
이 때 천자 중군 조정만으로 더불어 옥새를 가지고 도망하여 용동수에 빠져죽고자 하되 적진을 벗어날 길이 없어 황황망극 하던 차에 문득 북편으로 천병만마 들어오며 천자를 부르거늘 천자 대명 군사 오는가 반겨 바래더니, 남적과 동심하여 마룡이 진공이라 하는 도사를 데리고 천자를 치려하여 억만 군병을 총독하여 일시에 들어오니 이 때에 정한담이 천자되어 백관을 거느리고 최일귀는 대장되어 삼군을 경계할 제, 또한 북적이 합세하여 그 형세 웅장함이 만고에 으뜸이라.
선봉장 정무걸이 의기양양하여 명진 육국 청병 다 죽어있고 또한 북적이 합세하였으니 네 어이 당할소냐. 바삐 나와 항복하여 너의 모자를 찾아가라."
하고 지쳐 들어오니 이제 천자 하릴없이 옥새를 목에 걸고 항서를 손에 들고 항복하여 하고 나올 적에 중군 조정만과 명진에 남은 군사어찌 아니 한심하고 슬프리오. 천자의 울음소리 명성원이 떠나가게 방성통곡하며 항복하려 나오더라.
하권
[편집]권지하
각설 이 때 유충렬이 금산성 하에서 망기하다가 형세 위급함을 보고 일광주 용인갑에 장성검을 높이 들고 천사마를 채질하여 바삐 중군소에 들어가 조정만을 보고 설명을 올려 싸우기를 청하되, 중군이 바삐 나와 손을 잡고 울며 왈,
"그대 충성은 지극하나 지금 황상이 항복하려 하시고 또한 적진 형세 저러하니 그대 청춘이 전장 백골 될 것이니 원통하고 망극하다."
충렬이 불승분기 하여 전문 밖에 나서면서 벽력같이 소리하여 적장을 불러 왈,
"이 봐, 역적 정한담아! 남경 동성문 내에 사는 유충렬을 아는다 모르는다. 바삐 나와 목을 드리라."
하는 소리 양진이 뛰놀며 천지 강산이 진동하니, 문걸이 대경하여 돌아보니 일광투구에 안채 쏘이고 용인갑은 혼신을 감추고 천사마는 비룡 되어 운무 중에 싸여, 공중에 소리만 나고 제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니 창검만 높이 들고 주저주저 하던 차에 벽력같은 소리 끝에 장성검이 번듯하며 정문걸의 머리 공중에 베어들고 중군으로 달려드니, 조정만이 엎어지며 문밖에 급히 나와 손을 잡고 들어갈 제, 이 때 천자는 옥새를 목에 걸고 항서를 손에 들고 진문 밖에 나오다가 뜻밖에 호통 소리 나며 일원대장이 문걸의 머리를 베어 들고 중군으로 들어가거늘, 대경 대희 하여 중군을 급히 부러 왈,
"적장 베던 장수 성명이 뉘냐. 바삐 입시하라."
충렬이 말에서 내려 천자 전에 복지하되, 천자 급히 문왈,
"그대는 뉘신지 죽을 사람을 살리는가?"
충렬이 저의 부친과 강희주 죽음을 절분히 여겨 통곡하며 여쭈오되,
"소장은 동성문 내 거하던 정언 주부 유심의 아들 충렬이옵더니 주류개걸 하여 만리 밖에 있삽다가 아비 원수 갚으려고 여기 잠깐 왔삽거니와 폐하 정한담에게 곤핍하심은 몽중(꿈속)이로소이다. 전일에 정한담을 충신이라 하시더니 충신도 역적 되나이까? 그 놈의 말을 듣고 충신을 원찬하여 다 죽이고 이런 환을 만나시니 천지 아득하고 일월이 무광하옵니다."
슬피 통곡하며 머리를 땅에 두드리니 산천초목도 슬퍼하며 만진중에 낙루 아니할 이 없더라.
천자 이 말을 들으시고 후회막급 할 말 없어 우두커니 앉았더니, 태자 적진에 잡혀 갔다가 본진에서 문걸 베임을 보고 탈신 도주 급히 와서 충렬의 손을 붙잡고 왈,
"경이 이게 웬말인가. 옛날 주성왕도 관채의 말을 듣고 주공을 의심터니 회과자책 하여 성군이 되었으니 충신이 다 죽기는 막비천운이라. 그런 말을 하지 말고 진충갈력하여 황상을 도우시면 태산같은 그 공로는 천하를 반분하고 하해같은 그 은혜는 풀을 맺어 갚으리라."
충렬이 울음을 그치고 태자 상을 보니 천자 기상 적실하고 일대성군 될듯하여 투구 벗어 땅에 놓고 천자 전에 사죄 왈,
"소장이 아비 죽음을 한탄하여 분심이 있는고로 격절한 말씀을 폐하 전에 아뢰었으니 죄사무석이라. 소장이 죽사온들 폐하를 돕지 아니하오리까?"
천자 충렬의 말을 듣고 친히 계하에 내려와서 투구를 씌면서 손을 잡고 하는 말이,
"과인은 보지 말고 그대 선조 창건하던 일을 생각하여 나라를 도와주면 태자 하던 말대로 그대 공을 갚으리라."
충렬이 청명하고 물러 나와 장대에 높이 앉아 군사를 총독하니 피병장졸이 불과 일이백 명이라. 천자 삼층 단에 높이 앉아 하늘에게 제사하고 인검을 끌러내어 충렬을 주신 후에 대장 사명기에 친필로 쓰시기를 '대명국 대사마 도원수 유충렬'이라 뚜렷이 써 내주니 원수 사은하고 진법을 시험할 제, 장사일자진을 쳐 두미를 상합케 하고 군중에 호령하되,
"남북적병이 비록 억만 병이라도 내 혼자 당하려니와 너희 등은 행오를 잃지 마라."
약속할 제, 이적에 적진중에 문걸 죽음을 보고 일진이 진동하여 서로 나와 싸우려 할새 삼군대장 최일귀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녹포운갑에 백금투구를 쓰고 장창대검을 좌우에 갈라 들고 적제마를 채질하여 나는 듯이 달려들며 외어왈,
"적장 유충렬아! 네 아직 미거하여 남북강병 억만군을 능멸히 생각하니 바삐 나와 죽어 보라."
원수 장대에 있다가 최일귀란 말을 듣고 바삐 나와 응성하되,
"정한담은 어디 가고 너만 어찌 나왔느냐. 너희 두 놈의 간을 내어 우리 부모 영위전에 재배하고 드리리라."
함성하고 달려들어 장성검이 번듯하며 일귀 가진 장창대검이 편편파쇄 부서지니, 최일귀 대경하여 철퇴로 치자한들 원수 일신이 보이지 아니하니 치자 한들 어이하리, 적진중에서 옥관도사 싸움을 구경타가 대경하여 급히 쟁(군사를 물리치는 꽹과리)을 쳐 거두오니, 일귀 겨우 본전에 돌아와 정신을 잃었는지라.
이 때 북적 선봉 마룡은 천하에 명장이라. 충렬을 잡지 못하고 돌아옴을 분히 여겨 진문을 헤쳐 왈,
"대장은 어찌 조그마한 아이를 살려두고 오니이까? 소장이 잡아 오리이다."
하면 나는 듯이 들어올 제, 북적 진중에서 또한 도사 진진이 나와 마룡의 말머리를 잡고 왈,
"대장은 가지 마옵소서, 적장의 갑주창검을 보니 용궁의 조화라. 수년 전에 대장성이 남경에 떨어지더니, 이제 검술을 보니 북두성 대장성 이 칼 빛을 응하며, 일광주 용인갑은 일신을 가리었으니 사람은 천신이요, 말은 비룡이라 뉘 능히 당하리오."
마룡이 분노하여 도사를 꾸짖어 왈,
"대장부 앞에 요망한 도사놈이 무슨 잔말을 하느냐, 바삐 물러서라."
진진이 생각하되 미구에 대환이 있을지라 진중에 들지않고 소로로 도망하여 싸움을 구경터라.
이때에 마룡이 좌수에 삼 천근 철퇴를 들고 우수에 창검을 들고 호통을 지르며 나와 원수를 맞아 싸우더니, 일광주에 쏘여 두 눈이 컴컴하여 정신이 없는지라. 운무 중에 소리나며 검광이 빛나며 원수를 치려하니 장성검이 번듯하며 마룡의 손을 치니, 철퇴 든 팔이 마저 땅에 떨어지니 마룡이 대경하여 우수에 잡은 칼로 공중에 솟아 번개를 냅다 치니 구척장검 길고 긴칼이 낱낱이 파쇄하여 빈 자루만 남은지라. 제아무리 명자인들 적수로 당할쏘냐. 본진으로 도망코자 할 즈음에 벽력같은 소리 진동하며 장성검이 번듯하며 마룡의 머리 안개 속에 내려지니 목은 잘라 본진에 던지고 몸은 적진에 던지며 왈,
"이봐 정한담아 바삐 나와 죽기를 재촉하라. 네놈도 이같이 죽이리라."
하며 좌우로 횡행하되 공중에 소리만 나고 일신은 아니 보이니 적진이 대경하여 혼불부신 하더라.
한담이 대노하여 용상을 치며 왈,
"억만 군중에 충렬이 잡을 자 없느냐?"
천사마 비껴 타고 십 척 장검 빼어 들며 진문 밖에 썩 나서며 최일귀 응성하고 나와 왈,
"대장은 아직 참으소서. 소장이 당하리다."
하며 나는 듯이 들어가며 외어 왈,
"적장 유충렬은 어제 미결한 싸움을 결단하자."
원수 응성하고 천사마상 번 듯 올라 좌수의 신화경은 신장을 호령하고 우수의 장성검은 일원을 희롱하는지라. 적진을 바라보고 나는 듯이 들어가 혼신이 일광되어 가는 줄을 모를러라. 일귀를 맞아 싸워 반합이 못하여서 장성검이 번듯하며 일귀의 머리를 베어 칼끝에 꿰어들고 본진으로 돌아와서 천자 전에 바쳐 왈,
"이것이 최일귀 머리 적실하오니까?"
천자 일귀의 목을 보고 대분하사 도마 위에 올려놓고 점점이 오리면서 원수를 치사 왈,
"짐이 불명하여 이놈의 말을 듣고 경의 부친을 문외출송하였더니 이놈이 나를 속여 만 리 연경에 보냈으니 이제는 설치하고 경의 은혜 논지컨대 할부봉양(살을 베어 봉양함) 부족이라 백골이 진토되어도 그 은혜를 다 갚으리. 황태후는 어디 가고 이놈 고기 맛볼 줄을 모르는가."
원수의 손을 잡고 백 번이나 치사하니 원수 더욱 감축하여 고두사례하고 군중으로 물러나오니 중군 조정만이 즐거움을 측량치 못하여 대하에 내려 백배치사하며 즐기더라.
이 때 한담이 일귀 죽음을 보고 분심이 충장하여 벽력같은 소리를 천둥같이 지르고 장창대검 다잡아 쥐고 전장 오백 보를 솟아 뛰어서며 육정육갑을 베풀어 좌우 신장 옹위하고 둔갑장신하여 변화를 부쳐두고 호통을 크게 질러 원수를 불러 왈,
"충렬아 가지 말고 네 목을 바삐 납상하라."
원수 한담이 나옴을 보고 대희하여 응성하고 나올 제 천자 원수를 당부 왈,
"한담은 일귀 마룡의 유아니라 천선의 법을 배워 만부부당지력이 있고 변화불측하니 각별히 조심하라."
원수 크게 웃고 진전에 나서 한담을 망견하니, 신장이 십여척이요 면목이 웅장하여, 황금투구의 녹포운갑에 조화를 붙였는데 천상 익성정신을 흉중에 갈무었으니 일대명장이요 역적 될만한지라, 원수 기운을 가다듬고 신화경을 잠깐 펴 익성정신을 쇠진케하고 장성검을 다시 닦아 성채 찬란케 하고 변화의 은신하고 호통을 크게 하며 한담을 불러 왈,
"네놈은 명나라 정종옥의 자식 정한담이 아니냐. 세대로 명나라 녹을 먹고 그 인군을 섬기다가 무엇이 부족하여 충신을 다 죽이고 부모국을 치려하니 비단 천하 사람 뿐 아니라 치하 귀신들도 너를 잡아 황제전에 드리고자 할 것이니 너 같은 만고역적이 살기를 바랄소냐. 네놈을 생금하여 전후 죄목을 물은 후에 너의 살은 포육을 떠서 종묘에 제사하고 그 남은 고기는 받아다가 우리 부친 충혼당에 석전제를 지내리라, 바삐 나와 나를 보라."
한담이 분노하여 응성출마 나오거늘 원수 한담을 맞아 싸울 제 칼로 치게 되면 반합에 죽을 것이로되 살리고 잡고자 하여 장성검 높이 들어 한담을 치려더니 한담은 간 데 없고 편편채운이 일어나며 원수의 장성검의 검광이 없어지고 펴있던 칼이 도로 사리거늘 원수 대경하여 급히 물러와 신화경을 바삐 펴 일편을 왼 후에 장성검을 세 번 치며 풍백을 바삐 불러 채운을 쓸어버리고 안순풍이 지조화를 부쳐 적진을 살펴보니 한담이 변신하여 채운에 싸이여 십여척 장검 번뜩이며 원수를 따르거늘, 원수 그제야 깨닫고 왈,
"한담은 천신이라 산채로 잡으려 하다가는 도리어 환을 당하리라."
하고 싸우러 나갈 제, 진전에 안개 자욱하며 장성검 번개되어 공중에 빛나며 한담을 치려 하되 한담의 몸에는 종시 칼이 가까이 가질 못하거늘 적진을 향하여 뒤로 들어 진중을 해칠 듯 하니 한담이 원수를 따라 잡으려 하고 급히 회마차의 번개 언뜻 하며 한담의 탄 말이 땅에 거꾸러지거늘 급히 칼을 들어 한담의 목을 치니 목은 맞지 아니하고 투구만 깨어지니 적진에서 한담의 투구 깨어짐을 보고 대경하여 급히 징을 쳐 거둠에 한담의 기운이 쇠진하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쟁을 쳐 거둠에 본진에 돌아와 정신을 놓고 기운을 수습하지 못하거늘 좌우 구하니 겨우 정신을 차려 앉으며 왈,
"선생은 어찌 알고 소장을 불렀나이까?"
도사 왈, "적장의 칼 끝에 장군의 투구 깨어지기로 만분 위태하여 불렀노라."
한담이 대경하여 머리를 만져보니 투구 없는지라 더욱 놀라 왈, "적장은 일정 천신이요, 사람은 아니로다. 십년을 공부하여 사람은 커니와 귀신도 측량치 못하는 법이 많았더니 마룡과 최일귀 죽음을 조심하여 십 년 배운 법을 오늘날 모두 다 베풀어 적장을 잡으려 하더니 잡기는 새로이 기운이 쇠진하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천행으로 선생의 힘을 입어 목숨이 살았으나 천만 가지로 생각하되 힘으로는 잡을 수 없으니 선생은 깊이 생각하옵소서."
도사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여 이윽히 생각하다가 군중에 전령하여 진문을 굳이 닫고 한담을 불러 왈,
"적장을 잡으려 할진대 인력으로는 잡지 못할 것이니 군장기계를 모아 여차여차하였다가 적장을 유인하여 진중에 들게 되면 제 비록 천신이라도 피할 길이 없으리라."
한담이 대희하여 도사의 말대로 약속을 정제하고 수일을 지낸 후에 갑주를 갖추고 진문에 나서며 원수를 불러 왈,
"네 한갓 혈기만 믿고 우리를 대적하니 후생이 가외로다. 빨리 나와 자웅을 결단하라."
이 때에 원수 의기양양하여 진전에 횡행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웅성출마하여 일합이 못하여 거의 잡게 되었더니 적진이 또한 쟁을 쳐 거두거늘 승승축부(勝勝逐赴 : 이긴 김에 계속 쫓아감)하여 바로 적진 선봉을 헤쳐 달려들 제 장대에서 북소리 나며 난데없는 안개 사면에 가득 하고 적장이 간데 없고 음풍이 소소하며, 한설이 분분한데 지척을 모를레라. 가련하다 유충렬이 적장 꾀에 빠져 함정에 들었으니 명재경각이라. 원수 대경하여 신화경을 펴 놓고 둔갑장신하여 일신을 감추고 안순법을 베풀어 진중을 살펴보니 토굴을 깊이 파고 그 가운데 장창검극은 삼대같이 벌였으며 사해신장이 나열하여 독한 안개, 모진 사석 사면으로 뿌리면서 함성소리 크게 질러 "항복하라!"하는 소리 천지진동 하는지라. 원수 그제야 간계에 빠진 줄 알고 신화경을 다시 펼쳐 육정육갑을 베풀어 신장을 호령하며 풍백을 바삐 불러 운무를 쓸어 버리니, 명랑한 청천백일 일광주를 희롱하고 장성검은 번개되어 적진중이 요란할 제, 적진을 살펴보니 무수한 군졸이며 진중에 모든 복병 둘러싸서 백만겹을 에웠는데, 장대에서 북을 치며, 군사를 재촉커늘, 원수 분노하여 일광주를 다시 만져 용인갑을 다스리고 천사마를 채질하여 좌우진중 호통하며 좌충우돌 횡행할 제 호통 소리 지나는 곳에 번갯불이 일어나며 번갯불 일어나는 곳에 뇌성벽력이 진동하니 군사 장수 넋을 잃고 모든 장수 귀가 먹고 눈이 어두워 제 군사를 제 모른다. 서로 밝혀 분주할 제, 변화좋다 장성검은 동천에 번듯하며 호적이 쓰러지고 서천에 번듯하여 전후 군사 다 죽으니 추풍낙엽 볼 만하며, 무릉도원 홍류수는 흐르나니 핏물이라. 선봉 중군 다 헤치고 적진 장대 달려드니 정한담이 칼을 들고 대상에 섰거늘 호통소리 크게 하고 장성검을 높이 들어 대칼에 베어 들고 후군에 달려드니, 이 때 황후 태후 적진에 잡혔다가 토굴 속에서 소리하여 하는 말이,
"저기 가는 저 장수는 행여 명나라 장수거든 우리 고부 살려주소."
원수 분기 등등하여 적진에 횡행타가 슬픈 소리나며, 천사마 그 곳을 행하거늘, 급히 가 보고 말에서 내려 왈,
"소장은 동성문 내 거하던 유주부 아들 충렬이옵더니 아비 원수 갚으려고 불원천리 달려와서 정문걸을 한 칼에 베이고 이곳에 왔사오니 소장과 함께 본진으로 가사이다."
황후 태후 이 말을 듣고 토굴 밖에 나와 원수의 손을 잡고 치사하여 왈,
"그대 일정 유주부의 아들인가, 어디가 장성하여 저런 명장 되었는가? 그대 부친은 어디 있느뇨? 장군의 힘을 입어 우리 고부 살려내어 소소백발 이내 몸이 천자 아들 다시 보고, 연연홍안(姸姸紅顔 : 곱고 고운 젊은 얼굴)내 며느리 황제 낭군 다시 보게 하니 그 공로 그 은혜는 태산이 무너져서 평지가 되어도 잊을 수 없고 천지가 변하여 벽해가 될 지라도 잊을 가망 전혀 없네. 머리를 베어 신을 삼고 혀를 빼어 창을 받아 백년 삼만 육천 일에 날마다 이고서도 그 공로를 다 갚을까. 본진에 돌아가서 내 아들 어서 보세."
원수 배사하고 황태후를 바삐 모셔 본진에 돌아와 정한담의 목을 내어 천자 전에 바치려고 칼 끝에 빼어보니 참놈은 간 데 없고 허수아비 목을 베어 왔는지라. 원수 분노하여 다시 싸움을 도도더라.
이 때 천자 양진 싸움을 구경터니 원수 적진에 달려들며 사면에 안개 가득하고 적진 복병이 벌 일 듯 하여 빈틈없이 둘러싸고 고각함성은 천지 진동하고 원수의 검광이 뵈이지 아니하거늘 천자 대경실색하여 발을 구르며 땅에 엎어져 통곡 왈,
"이제는 죽었구나. 천행으로 충렬을 얻었더니 이제는 죽었으니 불칙한 이 내 팔자 살아 무엇하리, 신령하신 황천후토는 이런 경상을 살피사 유충렬을 살려주소서."
이렇듯이 슬피 울더니 뜻밖에 적진 중에 안개 없어지며 벽력같은 소리나며 장성검 번개되어 적진 억만 병을 순식간에 쓰러 쳐 무인지경 되었는데 일원대장이 진문 밖에 나서며 황후 태후를 모시고 본진으로 돌아오거늘, 천자와 태자 버선발로 달려들어 천자는 원수 손을 잡고, 태자는 태후의 손을 잡고 한데 어우러져 즐거운 마음 측량 없어, 울음 절반, 웃음 절반 두 가지 섞이어서, 천자는 옥새를 목에 걸고 항서는 손에 들고 항복하려 나오다가 뜻밖에 충렬을 얻어 살아난 말씀을 하고 황태후는 적진에 잡혀가 토굴 속에 갇히었다가 뜻밖에 원수 만나 살아 온 말씀을 하고 군사들도 즐거워 치하 분분하더라.
이 때 정한담이 도사의 꾀를 듣고 적장을 유인하여 함정에 넣었더니 죽기는 고사하고 삼군 억만 병을 한 칼에 무찌르고 장대에 달려들어 한담의 혼백 붙인 위인을 베이고 후군을 지치다가 황태후를 데려가는 양을 보고 넋을 잃어 도사에게 들어가 여쭈오되,
"충렬은 일정 천신이라 이제는 백계무책이오니 선생은 어찌 하오리까?"
도사 대경망극하여 아무리 할 줄을 모르다가 한 꾀를 생각하고 한담을 불러 왈,
"적장 유충렬은 거거년전에 연경으로 귀양간 유심의 아들이라 하니 이제 군사를 급히 재촉하여 유심을 잡아다가 진중에 가두고 죽이려 하면 제 아무리 충신이나 인군만 생각하고 제 아비를 생각지 아니하랴."
한담이 이 말을 듣고 대희하여 군중에 전령하되 날랜 군사 십여 명을 조발하여 유주부를 빨리 나입하라. 분부하니라.
각설 이 때 유주부가 북방 극한지지에 누년 고생함에 위인이 보잘 것이 없고, 남경에 난리 났단 말을 듣고 주야 근심하며, 행여 천자 죽을까 염려하여 동지장야 길고 긴 밤에 촛불만 도도켜고 축수 왈,
"명천이 감동하사 우리 천자 살릴진대, 내 아들 충렬이 살았거든 남경을 구원하고 제 아비 원수를 갚게 하소서."
이렇듯 정성을 드리더니 뜻밖에 한떼 군사 달려들어 유주부를 잡아 내어 수레 위에 높이 싣고 불원천리 재촉커늘 유주부 정신 없이 인사를 놓았다가 겨우 인사를 차려 생각하되,
"이제는 하릴없이 죽는도다. 우리 천자 승전하였으면 날 잡아오라기 만무하다. 일정 정한담이 역적 되어 천자를 죽이고 나도 또한 죽이려고 이 지경이 되었구나. 청천일월도 무심하고 형산신령도 못 믿겠다. 내 아들 충렬이도 정녕 죽었구나. 살았으면 어디 가서 아비 원수 못 갚는가."
이렇듯이 슬피 울 제 군사들도 낙루하더라.
여러 날만에 적진중에 득달하니 이 때 정한담이 용상에 높이 앉아 곤룡포를 정히 입고 백관이 시위하여 유심을 잡아다가 계하에 엎지르고 달래어 하는 말이,
그대 마음이 하 고집하기로 만 리 연경에 수년을 고생하니 내 마음이 불안한지라, 이제는 짐이 천자되어 백관을 거느렸더니 그대 아들이 아직 미거하여 천위를 모르고 죽은 명제를 살리려고 우리 군사를 침노하니 죄상을 논지컨대 진작 죽일 것이로되 그대를 생각하여 아직 살려 두었더니 종시 항복지 아니하기로 그대를 데려다가 자식에게 편지나 하여 부자 함께 만나, 나를 도우면 고관대작은 원대로 할 것이니 부디 사양치 말라."
유주부 이 말을 듣고 분심이 탱천하여 눈을 부릅뜨고 쪽골쳐(쪼그려) 앉으며 왈,
"네 이놈 정한담아. 천지도 무섭잖고 일월도 두렵지 아니하냐. 나는 자식도 없고, 자식이 설혹 있은들 우리 천자를 모시고 너같은 역적놈을 죽이려 하는데 그 아비 무슨 일로 성군을 저 버리고 역적을 도우라 하며, 내 자식은 새로이 광대한 천지간이 삼 척 동자도 네 고기를 먹고자 하느니, 하물며 내 아들이 옥황이 점지하사 남경을 도우라 하였으니 만고역적 너같은 놈을 섬길 듯 하냐."
(중략)
천자 원수를 붙들고 대성통곡 왈,
"이 몸이 하늘께 득죄하여 나라가 망케되었다가 충신 그대를 얻어 회복되게 되었으나 부모 처자를 되놈에게 보내고 나 혼자 살아 무엇하리. 천하를 그대에게 전하나니 그리 알라. 과인은 이제 죽어 혼백이나 호국에 들어가 모친을 만나보면 구천에 들어가도 여한이 없으리라."
하고 궐내 백화담에 빠져 죽고자 하거늘 원수 붙들어 용상에 앉히고 여쭈오되,
"소신이 충성이 부족하여 이 지경이 되었으나 이때를 당하여 신자 도리에 호국을 그저 두오리까. 소신이 재주 없사오나 호국에 들어가 호종을 함몰하고 황태후를 편히 모셔 돌아오리이다."
천자 원수 손을 잡고 낙루하며 부탁하되,
"경이 충성을 다하고 호국을 쳐 멸하고 과인의 노모와 처자를 다시 보게 하면 살을 베어도 아깝지 아니하리오."
원수 배사하고 나와 정한담을 끌러 계하에 엎지르고 좌우 나졸 호령하여 온갖 형벌 갖추고 전후죄목을 낱낱이 물어 왈,
"이놈 들으라. 네 자칭 신황제라 하고 날더러 천의를 모른다 하더니 어찌 두 팔이 없어 내게 잡혀 왔느냐?"
한담이 참괴무언이라.
"네 자칭 십년 공부하여 천자를 도모한다 하더니 어떠한 놈에게 공부하여 역적이 역적이되었느냐?"
한담이 여쭈오되,
"소인이 불행하여 도사놈의 말을 듣고 이 지경이 되었으니 아뢸 말씀없나이다."
"도사놈이 어디 갔는고?"
"소인이 변수가에 갔을 때에 호국에 들어갔을 듯 하나이다."
원수 왈,
"네놈은 날과 불공대천지수(함께 하늘 밑에 살수 없는 원수)라 진작 죽일 것일 것이로되, 내 부친의 존망을 알고자 하느니 바른대로 아뢰라."
한담이 다시 여쭈오되,
"소인의 죄 중하여 도사의 말을 듣고 정언 주부를 무함(거짓사실을 꾸며 남을 곤경에 빠뜨림)하여 연경에 귀양 갔삽더니 수일 전에 다시 잡아다가 항복을 받고자 하되 종시 듣지 아니하는 고로 다시 호국 포판이라 하는 데로 귀양 갔사오니 그간 생사는 모르나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통곡 왈,
"강희주는 죽었느냐 살았느냐?"
한담이 여쭈오되,
"강승상도 무함하여 옥문관으로 귀양하고, 그 집 가솔을 다 잡아 오더니 중로에 야간도주하여 영릉땅 청수에 빠져 죽었다 하나이다."
원수 모친이 회수의 봉변한 일이 한담의 소위인 줄 모르고 강낭자 죽은 일만 절분하여 한담을 대칼에 베고자 하되 부친을 만난 후에 죽이리라하고 삼목을 갖추어 결박하여 전옥에 가두고 갑주장검을 갖추어 천자께 하직하고 나오려 하니 천자 계하에 내려 손을 잡고 낙루왈,
"짐의 수족을 만리 타국에 보내고 마음이 어떠할꼬. 부디 충성을 다하여 모친과 자식을 살려 수히 돌아오소, 만일 그간에 환이 있으면 뉘로하여 살아날까."
십리 밖에 전송하며 만 번 당부하니 원수 총명하고 필마단창으로 만리 타국에 들어갈 제, 이때 호왕이 들어가며 후환이 있을까하여 각도각관에 행관(동등한 관아 사이에 공문을 보냄)하여 호국 들어오는 길에 인가를 없애고 물마다 배를 없애 인적을 통치 못하게 하였는지라. 원수 전장에 고생하며 음식을 전폐한 날이 많은 중에 부친의 소식을 알고자 하여 침식이 불안하던 차에 호국 수 만리를 주점 없이 지나오니 가운이 반감하였는지라. 행역이 노곤하여 유주에 득달하여 자사를 잡아내어 문죄 왈,
"네 이놈 세대로 국녹지신으로 국가 불안하되 네 몸만 생각하고 국사를 돌보지 아니하며, 또한 정한담의 말을 듣고 유주부를 네 고을로 귀향하였다 하더니 어디 계시뇨?"
자사 황겁하여 사죄 왈,
"소인도 국녹지신으로 어찌 무심하리까마는 호병이 남경에 가는 길에 소인 고을에 달려들어 군사와 양식을 탈취하고 소인을 죽이려 하기로 소인이 도망하여 목숨만 살아났으나 본디 재주없고 적수단신이라 할 바를 몰라 다만 국가 어찌 된 줄을 모르더니 수일 전에 소식을 들어본즉 호병이 승전하여 황후 태후 태자를 사로잡아 가노라 하기 황황망극 하던 차에 장군이 와 계시니 황송하오나 성명은 뉘시며 무슨 일로 유주부를 찾나이까?"
원수 비감하여 왈,
"나는 이 고을에 적거하신 유주부의 아들일러니 부모 원수 갚으려고 적진에 들어가 천자를 구완하고 정한담 최일귀를 한 칼에 베고 오국정병을 일시에 무찌르고 천자를 모셔 환궁하였더니 뜻밖에 오국왕이 들어와 나를 속여 도성을 엄살하고 황후를 사로잡아 갔는 고로 북적을 함몰하고 황후를 모셔 오려고 가는 길에 들렸노라."
자사 이 말을 듣고 계하에 내려 백배 치사하고 주육을 많이 내어 대접하고 십 리 밖에 전송하니라.
원수 유주를 떠나 호국에 다다르니 풍설은 분분하고 도로는 험악하여 인적이 없는지라.
각설 이때 호왕이 십만병을 거느려 남경에 갔다가 한담이 사로잡혔단 말을 듣고 도성에 들어가 황후 태후 태자를 사로잡고, 성중 보화와 일등미색을 탈취하여 본국으로 돌아와 승전곡을 울리며 잔치를 배설하고 수일 즐긴 후에 황후 태후 태자를 잡아내어 계하에 엎지르고 나졸이 좌우에 늘어서서 검극을 벌렸는데 호왕이 인검으로 난간을 치며 태자를 호령하여 왈,
"네 이놈 전일은 네 아비 힘을 믿고 범람히 동궁이라 하였거니와 이제는 과인이 하늘께 명을 받아 천자를 항복받고 네 조모를 사로잡아 왔으니 만승천자가 나밖에 또 있느냐. 네 바삐 항복하여 나를 도우면 죽이지 아니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모자를 북해상에 던지리라."
이렇듯 호령하니 국사의 엄장함은 염왕국이 가까운 듯, 호왕의 엄한 위풍 단산맹호 장을 치는 듯, 황후 태후 정신이 아득하여 삼인이 서로 목을 안고 계하에 엎어져서 어찌 할 줄 모르더니, 이 때 태자의 년이 십삼 세라 호왕을 호령하여 하는 말이,
"네 이놈 역적 놈아. 한갓 강포만 믿고 외람히 남경을 침노하여 이 지경이 되었으나 언감생심에 황제를 질욕하며 나를 항복 받아 네 신하를 삼을쏘냐. 군신지분의를 논지컨대 황제는 만민지부요, 황후는 만민지모라. 너는 만고 역적 놈이라."
하니 호왕이 분노하여 나졸을 재촉하니, 일시에 달려들어 황후 태후 태자를 잡아내어 온갖 형벌 다 갖추고 수레 위에 높이 싣고 동문 대로상에 나올 적에 기치검극을 삼대같이 세웠는데, 총융대장 높이 앉아 자객을 상급하고 검술을 희롱할 제, 황후 태후 태자 수레에서 내려 황후는 태후의 목을 안고 태자는 황후의 목을 안고 삼 인이 한 몸 되어 백사장 넓은 들에 없어져 땅을 치며 방성통곡하는 말이,
"전생에 무슨 죄로 백발노구 홍안소부 어린 손자 앞세우고 되놈에게 잡혀와서 한 칼 끝에 다 죽으니 북방천리 멀고 먼길에 무주고혼 되단 말인가. 피골상연 이내 몸은 되놈에게 자식 잃고 청춘소부 내 며느리 되놈에게 낭군 잃고 혈혈단신 내 손자 되놈에게 아비 잃어 만리호국 험한 땅에 뉘 보려고 예 왔다가 세 몸이 한 몸 되어 자객 손에 죽게 되니 천만년이 지나간들 이런 변을 다시 볼까. 광대한 천지간에 흉악하고 불칙한 게 우리 셋의 팔자로세. 도적에게 황성 잃고 우리 아들, 정한담을 피하여 북문으로 도망 터니 죽었는가 살았는가 혼백이나 떠서 둥둥 떠서 늙은 어미 죽는 줄을 귀신이나 알련마는 창망한 구름 속에 사람 소리뿐이로다. 유충렬은 어디 가고 날 살릴 줄 모르는가. 한심하다 형산 신령 인선한 내 아들을 남경에 점지하여 용상 위에 앉힐 것에 그 어미는 무슨 죄로 이지경이 되게 하며, 만고영웅 유충렬을 대명국에 점지할 제 어떤 인군 섬기려고 나의 손자 죽는 줄을 모르느냐.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산신령은 대명국 황성에 급히 가 우리 유원수을 찾아 내 말을 전하되 대명국 황태후 불쌍한 며느리와 어린 손자 목 안고 기치창검 나열하며 백포장(白布帳) 장막 안에 자객이 벌렸는데 세 몸을 한데 놓고 금일 오시만 지나면 무죄한 세 목숨이 창검 끝에 달렸으니 한때 속히 전해 주오. 이렇듯이 통곡하니 피같은 저 눈물은 소상강 저문 비가 반죽에 뿌리는 듯, 가련하다 만승황후 시년이 이십팔 세라 옥빈(玉 )홍안(紅顔) 고운 얼굴 월태화용(月態花容) 귀한 몸이 여러 날 잠 못 자고 굶었으니 형용이 초췌한 중에 호왕이 잡아낼 제 흉악한 군사 놈이 억지로 끌어내니 유혈이 만면하고 의상이 남루하니 청천에 밝은 달이 흑운 속에 잠겼는 듯, 녹수의 홍연화가 흑비를 머금은 듯 가련하고 슬픈 형상 차마 보지 못할러라.
이 때에 총융대장 군사를 재촉하여 죄인을 잡아다가 깃대밑에 엎지르고 자객을 호령하여, "일시에 처참하라!" 하니 자객들이 청명하고 홍포 남대 허리에 띠고 비수검을 번뜩이며 좌우에 갈라서서,
"행형한다!"
고함소리 청천에 진동하니 천지 어찌 무심할까.
이 때 유원수 호국지경에 득달하여 상남 뜰에 바삐 가니 호국 선우대가 구름 속에 보이거늘
창강 백설갈대 밑에 천사마를 물먹이고 강수 쥐어 낯 씻더니 사고무인 적막한데 난데없는
일엽표주 강상에 떠오더니 일원선녀 선창 밖에 나와서 원수에게 예하고 금낭을 끌러 과실
두개를 주며 왈,
"행역이 곤고하오니 이 과실 한 개를 자시고 한 개는 두었다가 일후에 쓰려니와 지금 황후
태후 태자 호국에 잡혀가서 동문 대도상에 온갖 형벌 갖추 오고 자객을 재촉하여 검술을 희롱하니 황후의 귀한 명이 경각에 있는지라, 어찌 급함을 모르고 바삐 가지 아니하나이까?"
두어 말 이르더니 범범중유 가는지라, 원수 대경하여 그 과실 한 개 먹고 천기를 살펴보니 태자의 장성이 떨어질듯 하고 자미성이 칼 끝에 달렸거늘 대경하여 황용수를 거스리고 봉의눈을 부릅뜨고 일광주 용인갑을 단단히 졸라매고 장성검을 펴 들고 천사마를 채질하여 나는 듯이 들어가니 동문밖 십 리 사장에 군사 가득하였거늘 말 다리를 급히 열어 조총을 잠깐 내어 대한고를 한번 놓으니 우레 같은 함성소리 청천 백일 진동한 듯, 호왕을 불러 외는 말이, "여봐라 호왕 놈아 황후 태후 해치지 말라!" 이 때 자객이 비수를 번뜩이며 태자 목을 치려할 제 난데없는 벽력소리 청천에 떨어지며 일원대장이 제비같이 들어오니 일진이 황겁하여 주저주저 하던 차에 천사마 눈 한번 깜짝이며 동문 대로상에 장성검이 불빛 되어 십 리 사장 넓은 들에 오마대로 사인 군사 씨없이 다 베고 성중에 달려들어 궐문을 깨치고 문안에 만조백관 대칼에 무찌르고 용상을 쳐부수며 화왕의 머리 풀어 손에 감아쥐고 동문 대로에 급히 오니 이 때 황후 태후 태자 자객의 검광 끝에 혼백이 흩어져서 기절하여 업어졌는지라 원수 급히 달려들어 태자를 붙들어 앉히고 황후 태후를 흔들어 앉히니 한식경(한차례 음식을 먹을만한 동안)이 지난 후에 겨우 인사를 차리거늘 원수 복지 하여 여쭈오되, "정신을 차리옵소서. 대명국 도원수 유충렬이 호왕을 사로잡고 자객과 군사를 한 칼에 다 죽이고 이 곳에 왔나이다." 태자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황후의 목을 안고 "남경 유충렬이 왔네. 정신을 진정하여 충렬을 다시 보소." 이렇듯이 부르짖으니 황후 태후 기절하였다가 유충렬이 왔단 말을 듣고, 가슴을 두드리며 벌떡 일어나 앉아 사면을 바라보니 군사는 하나도 없고 일원대장이 앞에 복지하였거늘, 다시 여쭈오되, "소장은 남경 유충렬이옵더니 호왕을 사로잡아 이곳에 왔나이다." 황후 이 말을 듣고 칵 달려들어 손을 잡고 하는 말이, "그대 일정 유원수냐, 종천강하며 종지출한가? 북방 호지 수만 리를 어찌 알고 왔는가? 그대 은덕 갚을진대 백골난망이 라 어찌 다 갚으리오," 태자도 만단 치사하고 천자 존위를 바삐 묻는데 원수 여쭈오되, "소장이 도적에게 속아 금산성에 들어가온즉 적장 천극한이 십만 병을 거느려 왔거늘 한 칼에 다 베고 급히 돌아오다가 천기를 본즉 황상이 변수에 죽게 되었거늘 급히 달려가니 황상은 백사장에 엎어지고 정한담은 칼을 들어 황상은 편히 모셔 환궁하신 후에 소장은 대비 대군을 모신 후에 아비를 찾으려 하고 왔나이다." 삼인이 백배치사 왈, "북망산에 있는 부모 희생하여 다시 본들 에에 더 반가우며 강동에 떠 난 형제 야중(나중에)에 만나본들 이도곤(이보다) 더할쏘냐. 이제 돌아가 우리 천자와 원수로 더불어 결의형제(結義兄弟)하여 만세 유전토록 떠나 살지 아니하며 천하를 반분하여 동락태평할까 하노라." 태자 호왕 잡아옴을 보고 원수의 칼을 갖고 호왕을 엎지르고 왈,
"네 이놈아 황후를 질욕하며 나를 황복받아 네 신하를 삼고자 하더니 청천 일월이 밝았거든 언감생심인들 하늘을 욕할쏘냐." 분심을 참지 못하여 장성검을 높이 들어 호왕의 머리를 베어 칼끝에 꿰어들고 호왕의 간을 내어 낱낱이 씹은 후에 성중에 들어가 약간 남은 군사 다 죽이고 그 중에 군사 오명을 잡아내어 준마 세 필을 구하고 교자를 갖추어 황후 태자를 모시고 호국 옥새와 지도서(땅모양을 그린 책)을 가지고 행군할새, 도로장을 불러 왈 포판을 묻고 길을 재촉하며 부친을 생각하여 눈물이 비 오듯이 하니 슬픈 마음 억제치 못하여 방성통곡 우는 말이, "천자는 나 같은 신하를 두었다가 만리 호국에 죽게 된 부모처자 다시 만나 조거니와 나는 포판에 있는 부친 죽었는가 살았는가 회수정에 모친 잃고 만리 북방에 부친 잃고 영릉 천수에 아내 잃었느니 살아서 무엇하며 죽어도 아깝잖고 도리어 악귀가 될지라 포판을 어서 가면 우리 부친의 생사를 알아볼까." 하며 슬피 우니, 태후와 태자 원수의 손을 잡고 만단 위로하여 길을 재촉 터니 여러 날만에 포판을 득달 하되, 이 땅을 북해상 무언지지라 사무인적하고 다만 들리느니 해상 풍랑 소리 사람의 간장을 격동하고, 소슬한풍 원숭이는 슬피 울어 객의 수심을 돕는구나, 귀신이 난잡한데 유주부의 혈혈단신 살 가망이 전혀 없다. 이 때 유주부 도적에게 잡혀갔다가 항복치 아니한다 하고 피골상연 약한 몸에 형장을 많이 맞고 북해상 무언지에 음식이 없었으니 기갈(배고프고 목마름)을 어이하리. 미구에 운명하게 되였더니, 이 때 원수 순식간에 달려들어 보니 토굴을 깊이 파고 험한 수목으로 사면을 둘러싸고 짚자리 한 닢 위에 문밖에 수직한 군사 한 명만 두어 삼순구식(三旬九食 : 30일에 아홉번 먹이는 밥)으로 구먹밥(구멍으로 들이밀어 주는 밥)을 주는지라. 이 거동을 보고 엎어지며, 투구 벗어 땅에 놓고 사면 수목을 헤치고 토굴문 밖에 복지하여 여쭈오되.
"대명국 남경 동성문 내 사는 충렬은 도적을 잡아 평난하고 황후 태후 태자를 모셔 이리 왔나이다."
이 때 유주부 기운이 쇠진하여 인사를 버리고 잠이 깊이 들었더니 몽중에 얼핏이 들으니 충렬이란 말을 들음에 천리 밖에서 나는 듯하여 꿈을 깨어 앉으며 왈,
"네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충렬이 살아 왔나이다."
주부 귀신인가 의심하여 충렬이 찾아오기는 천만 의사 밖이라 진언을 외우며 왈,
"내 아들 충렬은 회수에 죽었으니 네가 일정 혼신이냐, 혼백이라도 반갑고 반갑다."
충렬이 울며 왈,
"소자 회수에 죽게 되었더니 천행으로 살아나서 도적을 함몰하고 천자를 모셔 황궁하옵고, 지금 호국에 가 황후 태후 태자를 모셔 문밖에 왔나이다."
유주부 이 말을 듣고,
"이게 웬말이냐."
토굴을 두드리며,
"네가 일정 충렬이냐. 충렬이 적실커든 십년 전에 연경을 귀양 올 적에 주던 죽장도 어디 보자."
원수 옷을 급히 벗고 한삼에 차인 죽도를 끌러내어,
"두 손에 받들어 올리나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토굴문에 엎드려서 손을 내어 받아보니 소상반죽 다섯 마디 황강죽루를 화침(불에 달군 쇠고장이)으로 새겼으니 권에 돌아간들 부자 시표(서로 표가 되기 위하여 주고 받은 물건) 모를쏘냐. 벌떡 일어나 앉아 왈,
"이게 웬말이냐, 충렬이 왔구나! 죽도는 보았으나 내 아들 충렬은 가슴에 대장성이 박히고, 등에는 삼태성이 있느니라."
원수 옷을 벗어 땅에 놓고 주부 곁에 앉으니, 주부 가슴과 등을 살펴보니 샛별 같은 삼태성과 대장성이 뚜렷이 박혔는데 금자로 '대명국 도원수'라 번듯하게 새겼거늘 왈칵 뛰어 달려들어 충렬의 목을 안고 왈, "어디 갔다 이제 오냐? 하늘로 떨어졌느냐? 땅으로 솟았느냐? 우리 천자 살아 계시며, 너의 모친 어떠하며 만고역적 정한담이 우리 집에 불을 놓아 너의 모자 죽이려 한다더니 어찌 살아나서 저다지 장성하였느냐. 네가 일정 충렬이냐, 네가 일정 성학이냐, 죽도 보고 표적 보니 충렬일시 분명하되 정한담의 화환(禍患) 만나 회수중에 죽었거든 만경창해 너른 물에 칠세동(七歲童)이 어찌 살아 부자상봉 한단 말인가."
이렇듯이 상곡(슬피 통곡함)하다가 기절하니 원수 대경하여 행장을 급히 끌러 선녀 주던 실과를 내어 주부를 먹인 후에, 수족을 만져 정신을 회생케 하니 식경이 지나 일어나 앉으며 정신을 수습하니 난데없는 맑은 기운이 청천일월 같은지라. 충렬의 손을 잡고 왈,
"네 무슨 약을 얻어 이렇듯 나를 구하느냐?"
이 때 황후 태후, 주부 회생함을 보고 급히 들어가 주부의 손을 잡고 왈,
"어찌 저리 귀한 아들을 두어 만리 타국에 그대와 우리를 살려내어 이곳에 서로 만나 보게 하는고."
주부 복지 주왈(奏曰),
"이게 다 황상의 덕택이로소이다."
이 때, 원수 황후 태후 태자를 모시고 호국을 떠나 양자강을 건너갈 제, 남경이 장차 사만 오천육백 리라 황주에 달려들어 요기(療飢)하고 나올 제 멱라수 회사정에 붙인 글을 떼버리고 황성에 들어올 제, 이때, 천자 원수를 만리 타국에 보내고 주야 한탄하며 천행으로 황후 태후 태자를 찾아올까 하여 축수하더니 뜻밖에 유원수 장계를 올렸거늘 급히 개탁하여 보니,
"도원수 유충렬은 호국에 들어가 호적을 함몰하고 황후 태후 태자를 모시고 오는 길에 포판에 가 주부를 살려내어 함께 본국에 들어오나이다."
하였거늘 천자 대희하사 십 리 밖에 나와 영접할 제 황후 태후 달려들어 일변 반기며 일변 슬피우니 그 정상은 차마 보지 못할레라.
태자 복지하여 여쭈오되, 호국에 들어가 호왕에게 견패(見敗)하고 동문 대도상에 거의 죽게 되었더니 천행으로 원수를 만나 살아난 말을 아뢰며, 포판에 들어가 주부 살려온 말씀을 낱낱이 주달하니, 천자 이 말을 듣고 충렬의 등을 만지며 왈,
"옛날 삼국시절에 유․관․장(劉關張) 삼인의 도원결의(桃園結義)하였더니 과인도 경으로 더불어 결의형제 하리라."
하고 백 번 치사하시니, 이때 주부 복지 주왈,
"소신은 연경에 귀양갔던 유심이옵더니, 자식의 힘을 입어 잔명을 살아나서 폐하를 다시 뵈오니 만행이오나 폐하 이렇듯 국사에 곤고하시되 소신의 충성이 부족하여 호국에 갇히었삽기로 고도(돌보아 줌)치 못하오니 죄사무석이로소이다."
천자 유주부란 말을 듣고 버선발로 뛰어내려 주부의 손을 잡고 왈,
"이게 웬말인가! 회사정에 죽은 줄만 알았더니 어찌하여 살아온가? 과인이 불명하여 역적놈의 말을 듣고 무죄한 우리 주부를 만리 연경에 보내었으니 뉘를 원망할까. 모두다 과인이 불명한 탓이로세, 그대의 얼굴을 보니 죄 중한 이내 몸이 무슨 면목으로 사죄할까 그대에게 한 공덕을 갚을진대 살을 베어 봉양하고 천하를 반분한들 어찌 다 갚을까."
이렇듯이 치사하고 도성에 들어오니 이 때 장안 만민이며, 중국 조정만이며 군사 일시에 들어와 원수전에 낱낱이 배사하고 남녀노소 없이 원수의 말을 잡고 뉘 아니 송덕하며 뉘 아니 축수할손가
또 한 백발 노인이 죽장을 잡고 떨어진 감투를 쓰고 어린 아이 앞세우고 동편 골목에 나오면서 술 한 잔 받아 들고 안주는 낙엽에 싸서 손자에게 들리고 기염기염 기어나와 원수전에 백 배 치사하며 만만세를 불러 왈,
"소인이 동성문 내 사옵더니 삼대 독신으로 소인에게 미쳐 삼자일녀(三子一女)를 낳아 귀히 길러 제 몸이 장성터니 만고역적 정한담이 도성을 파하고 용상에 높이 앉아 자칭 천자하고 생민을 도탄할 제, 소인의 자식 둘을 군사에 충수하여 전장에 싸우다가 자식 하나를 죽였더니, 옥황이 남경을 도우사 장군님을 남경에 점지하여 도적을 치려하고 진중에 달려들어 적장 정문걸을 반합에 베어 들고 처자를 구완하시거늘, 소인의 끝에 자식을 성중에 두었다가는 정한담에게 죽일 듯 하여 중군 조정만에게 야간 도망하여 장군님 진중에 보내고 북두치성 전에 이년 삼백 육십 일에 밤마다 축수하며, '우리나라 장수님이 승전(勝戰)하게 하옵소서.' 이렇듯이 축수하옵더니 장군님의 힘을 입어 명진 군사는 하나도 상치 않고 왔기로 소인의 끝에 자식이 살아나서 이 손자를 두었으니 이놈은 장군님 자식과 다름이 없는지라, 이제는 소인이 죽어도 백골 엄토할 자식이 있고 선영향화(先塋香火) 받들 손자 있사오니 이는 모두다 장군님의 덕이옴에 소인이 죽을 날이 머지 아니하온지라 다만 술 한 잔을 장군님 전에 올리나니 만세무량 하옵소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까 하여 손자를 이끌고 왔나이다.'
이 때 원수며 주부와 황후 태후 태자며 제장이 말을 듣고 일심이 비감하여 낙루(落淚)하며 왈, "이는 모두다 노인의 축수한 공이요, 천자의 은덕이라 나같은 사람이야 무슨 공이라 하리오, 돌아가 편히 살라."
노인이 드리는 술을 받아 천자에게 드리고 행군을 재촉하니, 천자노인의 말을 듣고 조정만을 바삐 불러,
"그 노인의 아들 이름을 알아 입시하라."
하시니 이 때 한 군사 떨어지니 전립(군인들이 쓰던 벙거지)쓰고 환도하나 손에 들고 원수 앞에 복지 하였거늘, 성명을 물은 후에 칭찬하고 천국문 호위장을 삼아 백종록을 부쳐 늙은 아비를 섬기라 하고, 말을 재촉하여 도성에 들어 궐내에 들어가니 약간 있는 충신들이 고두백배 치사하고 물러나니 삼군이 원수를 송덕하더라.
이 때 천자와 원수며 황후 태후 일석에 앉아 달야(밤이 다 가도록)토록 전후 고생하던 말을 설화하고 이튿날 전옥관을 불러 한담을 잡아다가 구정뜰에 엎지르고 유주부 천자 곁에 앉아 나졸을 호령하여 온갖 형벌 갖추고 수죄왈,
네 이놈 정한담아! 전상을 쳐다보라. 나를 아느냐 모르느냐. 네 자칭 천자라 하더니 만승천자도 두 팔이 없느냐, 조그마한 유심의 아래 복지하기는 무슨 일인고. 네 죄를 아느냐?
한담이 복지 주왈,
소신의 털을 빼어 죄를 논지하여도 털이 모자라오니 죽여주옵소서.
주부 대로 왈,죄목이 열 가지니 자세히 들어라. 네 놈이 천상에 익성으로 명국에 적강하여 용맹이 절인함에 도사를 데려다가 놓고 항상 천자를 도모코자 하니 만고에 큰 죄 하나요, 조정에 직신을 꺼려 무죄한 신하를 무함하여 나를 연경에 귀양 보내니 죄 둘이요, 도사놈의 말을 듣고 신기한 영웅이 황성에 있다 함에 내 자식을 죽이려고 내 집에 불을 놓았다가, 살아 회수에 당함에 군사를 보내어 나의 자식을 결박하여 물 속에 던져 죽이려 한 것이 죄 셋이요, 퇴계상 강희주를 역적으로 몰아 옥문관에 보내었으니 죄 넷이요, 강승상의 가솔을 잡아다가 중로에 죽은 것이 죄 다섯이요, 충신을 다 죽이고 천자를 속여 도적을 막으려 하다가 도적에게 항복함이 죄 일곱이요, 자칭 천자라 하여 생민을 도탄하고 충신을 잡아 항복하고자 함이 죄 여덟이요, 호국에 청병하여 황후 태후 태자를 호왕에게 보내고 장안 미색 보화를 모두다 탈취하여 남적에게 보낸 것이 죄 아홉이요, 천자를 번수가에 죽이려 함이 죄 열 가지라. 세상에 인신이 되어 만고에 없는 열 죄목을 가졌으니 이러하고 살기를 바랄쏘냐. 우리 황상께옵서 이렇듯이 상한 일과 대비 대군께옵서 여러 번 죽을 뻔한 일과 만성 인민이며 육군 군사 죽은 일과 강승상 유주부 타국에 죽게된 일과 천하 진동하여 종묘 사직이 위태하고 백성들이 황겁하여 산지사방에 도망하니 이게 도시 네 놈이 소위 아니냐?
한담이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부답이라. 나졸을 재촉하여,
한담의 목을 장안시에 베이라!
하니 나졸이 달려들어 한담의 목을 매어 수레 위에 높이 싣고 장안 대로상에 재촉하여 나오며 외여 왈, 이봐 백성들아 만고역적 정한담을 오늘날로 베이려 가니 백성들도 구경하라.하며 소리하고 나올 적에 성중 성외 백성들이 한담 죽이러 간단 말을 듣고 남녀노소 상하없이 그 놈의 간을 내어 먹고자 하여 동편 사람은 서편을 부르고 남촌 사람은 북촌사람을 불러 서로 찾아 골목을 골목이 빈틈없이 나오며,
이봐 벗님네야 가세 어서 가세 만고 역적 정한담을 우리 원수 장군님이 사로잡아 두 팔 끊고 전후 죄목물은 후에 백성들을 뵈이려고 장안시에 베인다니 바삐 바삐 어서 가서 그 놈의 살을 베어 부모 잃은 사람은 부모 원수 갚아주고 자식 잃은 사람은 자식원수 갚아주세.
백발노구 손자 엎고 홍안소부 자식 품고 전후좌우 나열하여 어떤 사람은 달려들어 한담을 호령하고 어떠한 여인들은 한담의 상투를 잡고 신짝을 벗어 양귀 밑을 찰딱찰딱 치며,
네 이놈 정한담아! 너 아니면 내 가장이 죽었으며, 내 자식이 죽을 소냐, 덕택이 하해 같은 우리 원수네 놈 목을 진중에서 베었더면 네 놈 고기를 맛보지 못할 것을, 백성들은 뵈이려고 산채로 잡아내어 오늘날 베힌고로 네 고기를 나누어다가 우리 가장 혼백이나 여한없이 갚으리라.
수레소를 재촉하여 사지를 나눠 놓으니, 장안 만민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점점이 오려 놓고 간도 내어 씹어 보고 살도 베어먹어 보며, 유원수의 높은 덕을 뉘 아니 칭송하리.
각도 각판에 회시하고 최일귀 정한담의 삼족을 가 멸하고, 천자 삼층단에 올라 천제하고 주부 유심의 직첩을 돋우어 금자광녹태부 대승상 연국공에 연왕을 봉하시고, 옥새, 용포에 통천관을 상급하시고 만종녹을 접지하시고 도원결의하여 충무후를 봉하시고, 그 남은 장수와 군사를 차례로 벼슬을 주어 상사하시니 모두 즐기는 소리 태평천지 요지일월 순지건곤에 강구동요 즐기는 듯, 천자를 축수하며 원수를 송덕하는 소리 천지 진동하더라.
연왕 부자 천자 은덕을 축사하니 천자 위로 왈,
그대의 숙소를 우선 정하여 약간의 공을 쓰거니와 그 은혜를 갚을 진대 살을 깎아 봉양하고 천만 번이라도 승상의 공은 갚을 길이 없다.
천은이 망극하와 부자는 만났거니와 모친은 어디 가고 이런 줄을 모르는가. 옥문관에 적거한 강승상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련하다 강낭자는 청수풍에 주었으니 어디 가서 만나볼까. 낭자의 부탁대로 옥문관을 찾아가서 강승상의 뼈나 거두어다가 묻어주고 회수에 모친을 제시하고 청수에 지내오며 강남자의 혼백이나 위로하고 다른데 취저하여 부친에게 영화를 뵈일까 하나이다.
하되, 상이 이 말씀을 들으시고 비감하여 태후 전에 그 말씀을 고하니 태후는 강승상의 고모라 이 말을 듣고 슬퍼 낙루하시며 원수를 입시하여 손을 잡고 울며 왈,
강승상은 나의 조카라 지금까지 살았는지, 그대의 힘을 입어 내 몸은 살아있으나 친정 일가는 구 하나뿐이라 살았거든 데려오고 죽었거든 백골이나 주워 오소.
원수 주왈,
그 사위 되었나이다.
태후 듣고 대희하여,
이게 웬말인가 만고영웅 유충렬이 충신인 줄만 알았더니 나의 송녀서가 되었구나. 어서가서 생사를 알고 그대의 모친과 나의 손녀를 위로하여 제사고 급히 돌아오게 하소.
원수 천자와 부왕께 하직하고 대군을 거느려 바로 서번국을 행하여 양관을 넘어서 평관을 득달하여 격서를 바삐 써서 서번국에 보내고 행군을 재촉하여 들어가니, 서천 삼십 육도 군장들이 충렬의 재주를 알고 황겁하여 금은보화를 많이 싣고 옥새와 지도서를 손에 들고 항서를 써 원수 전에 바치고 인끈을 목에 걸고 낱낱이 항복하거늘, 원수장대에 높이 앉아 군왕을 잡아내어 일일이 수죄하고 항서 삼십육장을 연폭하여 장계를 급히 써서 남경으로 보낸 후에, 번왕을 불러 옥문관 소식을 묻고 즉시 행군하여 옥문관을 찾아갈 제, 슬픈 마음 진정하고 성중에 달려들어 수문장을 불러 천자의 공문을 뵈이며,
적거한 강승성이 어디 있느냐?
수문장이 여쭈오되,
강승상이 성중에 있삽더니 십여일 전에 남적이 달려들어 강승상을 잡아내어 호국으로 갔나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분심이 새로 나서 노기 등등하여 군사를 옥문관에 두고 수문장에게 신칙(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함)하여,
군사를 착실히 호군 하여 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고 필마단검으로 남천은 바라보고 구름을 헤쳐 나가듯이 달려들어갈 제, 호국지경에 다다르니 분기 더욱 탱천(분함을 참지 못함)하여 격서를 보내니라.
이 때 가달왕이 남경에서 데려간 일등미색 좌우에 앉히고 갖은 풍악으로 날마다 즐기더니 데려간 도사 마음이 산란하여 천기를 살펴보니 남경 도원수 지경에 들어오거늘 대경하여 왕께 고하되,
"남경 도원수 지경에 들면 어찌하리오."
문무 제신을 모아 방적을 의논할 새, 장하에 삼원대장이 백금투구에 흑운포를 입고 삼천근 철퇴를 들고 구척장검을 좌우에 들고 계하에 복지 주왈,
"소장 삼형제는 번양 석장동 사는 마철 등이옵더니 남경 유충렬이 들어온단 말을 듣고 불원천리 왔사오니, 소장을 선봉을 주시면 충렬의 목을 베어 오리이다."
모두 보니 신장이 십척이요, 기골이 엄장한지라. 가달왕이 대희하여 마철로 선봉을 삼고, 마응으로 중군을 삼고, 마학으로 후군을 삼아 정병 팔십 만을 조발하여 석대산하에 유진하고 도사와 문부백관을 거느리고 산에 올라 구경하더라.
이 때 강승상이 되놈에게 잡혀가서 험악이 극심하되, 종시 항복지 아니하고 질욕을 무수히 하니 호왕이 대노하여 미구에 죽이려 하더니 뜻밖에 유원수 들어옴에 죽이지 못하고 전옥에 가두고 주려 죽게 하는지라.
호왕이 남경에서 데려간 계집 하나가 되놈에게 종시 훼절치 아니하고, 일생 강승상을 붙들고 떠나지 아니하고 불피풍우하고 밤마다 축원하여 왈,
"우리나라 유원수 어서 와서 남적을 함몰하고 본국 사람을 살려내어 부모 얼굴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이렇듯이 축수하더니 뜻밖에 강승상을 옥중에 가두니 한 가지로 따라가서 주야 한탄하는지라.
이 때 원수 필마단창으로 호국에 달려드니 석대산하에 천병만마 유진하였으며 검술을 회롱하고 의기양양하거늘 원수 순식간에 달려들어 적진을 바라보며 벽력같은 소리를 천둥같이 지르며, "네 이놈 가달왕아 강승상을 해치지 말라!"
하며 적진 선봉을 헤쳐 가니 대장 마철이 응성출마하여 원수를 맞아 싸워 반합이 못하여 철퇴 맞아 부셔지며 창검 맞아떨어지는 지라. 마응마학이 제 형이 당치 못할 줄 알고 일시에 달려들어 좌우로 쫓아오며 달려드나 일광주 용인갑은 천신의 수적이요, 용궁의 조화라, 살 한 개 범하며 철환 하나 맞을 손가. 장성검 번개 되어 동천에 번듯하며 마철의 머리를 베이고 남천에 번듯하며 마응을 베이고 중앙에 번듯하며 마학의 머리를 베어 들고 적진 백만대병을 순식간에 함몰하고 천사마를 재촉하여 석대산하에 다다르니 호왕과 도사 대경하여 도망하되, 천사마 닫는 앞에 나는 제비도 가지 못하거든 하물며 사람이야 어찌 가리오. 경각에 달려들어 호왕을 치니 통천관이 깨어지고 상투마저 없는지라 호왕이 여쭈오되.
"이는 내 죄 아니라 모두다 옥관도사의 죄로소이다. "
원수 분한 중에 옥관도사란 말을 듣고 왈,
"도사는 어디 있느냐?"
호왕이 일어나 앉아 가르치거늘 도사를 잡아내어 전후 죄목을 물은 후에,
"너를 이곳에 죽여 분을 풀 것이로되, 남경으로 잡아다가 천자와 우리 부친 전에 바쳐 죽이리라."하며 두 손목을 끊고 두 발을 끊어 수레에 싣고 성중에 들어가 호왕을 수죄하고 강승상을 물은즉, "옥중에 가두었다."
하거늘 옥문을 깨치고 승상을 부르니 승상과 조낭자 호왕이 죽이려고 찾는가 대경하여 기절하는지라. 원수 바삐 들어가 승상 전에 여쭈오되,
"정신을 진정하옵소서. 소자는 회사정에 만나던 유충렬이옵더니 대명국 동원수 되어 남적을 함몰하고 호왕을 잡고 도사를 사로잡아 이곳에 왔나이다."
승상이 혼몽 중에 충렬이란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앉아보니 과연 충렬이 분명하다. 왈칵 달려들어 손을 잡고 통곡하며 하는 말이야 어찌다 측량할까. 조낭자 곁에 앉았다가 원수란 말을 듣고 앞에 달려들어 왈,
"장군님이 어찌 알고 와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어 고국 산천 다시 보고 부모 동생 다시 보게 하니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천자님도 살아 계십니까?"
원수 대답하고 승상 전에 여쭈오되, 집을 떠나 백용사 부처중을 만나 전장기계 얻은 후에 남적을 함몰하고 오는 말씀을 낱낱이 고하니 승상이 대희하여 칭찬불이하더라.
원수 조낭자 전후수말을 물은 후에 치사하고 함께 궐문에 들어가 격서를 써서 토번국에 보내니 번왕이 원수 온단 말을 듣고 황겁하여 항서쓰고 채단을 갖추어 사신을 부려 가달로 보내거늘 사신을 수죄하여 달왕의 항서와 번왕의 항서와 도사를 사로잡아 보내는 연유를 천자께 장계하고 전일 가달왕이 남경에서 데려간 미색을 낱낱이 찾아,
"본국으로 가자."하니 이때 미색들이 고국을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하여 주야 한탄하더니 원수를 만남에 전지도지하여 나오며 전후 좌우 나열하여 원수전에 백배치사하고 승상을 모시고 원수를 따라올 제, 준마 삼백 필에 낱낱이 다 태우고 조낭자는 옥교를 타고 강승상 곁에 앉아 행군을 재촉하여 돌아올 제, 여러 날만에 회수에 다다르니 소연 한심 절로 난다. 전에 듣던 풍랑소리 사람의 간장 다 녹이고 전에 보던 좌우청산 장부 한심 도두운다.
원수 모친을 생각하여 백사장에 내려앉아 가슴을 두드리며 세세원정 기록하여 제물을 장만하여 제사하려 하고 번양 회수 들어갈 제, 남만 오국에서 받은 금은 채단이며, 옥문관에 두고 갔던 군사며, 데려오는 미색들이며, 강승상은 멀리 모셔 조낭자는 옥교 타고 오마대로 행군하여 번양성중 들어오니 그 영화 그 거동은 옛날 소진이 육군 정승인을 차고 거기치중 나열하여 낙양성중 들어가는 듯, 각도의 백성들은 전후에 옹위하고 열읍 수령들은 좌우에 나열하여 권마성하는 소리 반공에 높이 뜨고, 좌기초하는 소리 원근에 진동한다.
객사에 좌기(관청의 우두머리가 사진하여 일을 봄)하고 번양 태수 바삐 불러 천금을 내어주며 제물을 장만할 제, 온갖 어육 갖추고 온갖 채소 등대하여 각읍 관장 시위하고 갖은 제물 봉진할 제, 백사장 십리 뜰에 백포청장 둘러치고 원수는 백의 입고 백건 백대에 흰갓 쓰고 축문 일장 슬피 지어 회수가에 나오니, 이 때 조낭자는 목욕재계 정히 하고 소복으로 단장하여 향로 들고 원수를 배행하여 물가에 나올 제, 고금이 다를쏘냐. 남경 도원수 회수에 빠져 죽은 모친을 위하여 제사한단 말을 듣고 남녀노소 없이 원수 공덕을 치사하며 그 얼굴을 보려 하고 쌍쌍작반하여 회수가 십 리 뜰에 빈틈없이 둘러서서 구경할 제, 원수 제소에 들어와 삼층단 높이 무어(만들어)단상에 제물을 진설하고 조낭자는 향로 들어 단상에 올려 놓고 낭자가 집사(절차를 맡아 진행시키는 사람)되여 분향하고 나오니 원수 통곡하고 궤좌하여 독축하니,
그 축문에 하였으되,
"유세차 부경 십칠 년 갑자 이월 갑인삭 이십팔일 산사에 남경 동성문 내서 사는 불효자 유충렬은 모친 장씨 전에 예를 갖추어 지전으로 해상고혼을 위로하오니 혼백이나 받으소서.
오호라! 우리 부모 연광이 반이 넘어 일점 혈육이 없었기로 복중에 서룬 마음 남악산에 정성드려 천행으로 충렬을 낳아 놓고 애지중지 키워 내어 영화를 보렸더니 간신의 해를 보아 부친이 만 리 연경에 간 후에 모친만 모시고 있다가 피화하여 달아날 제 이 물가에 다달으니 난데없는 해상수적 사면으로 달려들어 우리 모친 결박하여 풍랑중에 내쳐놓으니, 모친님은 간데없고 천행으로 모진 목숨 충렬이만 살아나서 모친 주시던 옥함을 얻어 전장기계 갖추어서 도적을 함몰하고 정한담과 최일귀를 베인 후에 천자를 구완하고 만 리 연경에 적거하신 부친님을 모셔다가 천은을 입어 연왕이 되어 만종녹을 받게 하고 남적을 소멸한 후에 강승상을 살려내어 이 길로 오옵더니 모친을 생각하여 이 곳에 왔사오나 모친은 어디 가고 충렬을 모르는가, 호국에 잡혀갔던 고국 사람들도 살아오고 호아후 태후 중한 옥체 번국에 잡혀갔다 충렬이가 살려왔네, 모친은 어디 가고 살아올 줄 모르는가. 이번에 부친님이 소자를 보내실 제 부탁하시기를 번양땅에 가 네 어머님을 찾아오라 하시더니 만경창과 깊은 물에 백골인들 찾으리까. 모친님이 옥함을 주실제 수건에 쓴 글씨를 가져 왔으니 혼백이나 와서 충렬을 만져 보시오. 충렬은 명나라 대사마 도원수 겸 승상 위국공이 되고 부친님은 금자광녹대부 겸 대승상 연국공의 연왕이 되었으니 이같은 영화를 어디가고 모르는가. 우리 집에 불을 놓은 정한담을 사로잡아 전옥에 가두었다가 부친을 모신 후에 부친 앞에 엎지르고 전후 죄목을 물은 후에 그놈의 간을 내어 모친님 전에 제세하였더니 그런 줄을 알았는가. 충렬이 귀히 된 줄 혼령은 알련마는 언제 다시 만나볼까. 세상에 귀한 영화 나같은 이 없건마는 피 같은 이 내 눈물 어찌하여 솟아난가. 모친님을 편히 모셔 연만하여 돌아가면 이다지 통박할까. 만 리 연경에 가장 잃고 무변대해에 자식 잃고 도적에게 결박하여 수중고혼이 되었으니 천만세를 지나간들 모친같이 통박할까. 혼령이 나오셨거든 이렇듯이 만반진수를 흠향하고 돌아가서 후생에 다시 만나 세세상봉 모자되어 다하지 못한 자모지정을 자시 풀까 바라나이다. 하올 말씀 무궁하오나 눈물이 흘러 옷이 젖고 흉증이 답답하여 그만 그치나이다. 상향."
하며 우는 소리 용궁에 사무치고 산천이 함루(含淚 : 눈물을 머금음)하니, 용신도 낙루하고 산신령도 비감한다. 이 때 백포장 내외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원수의 축문 외우며 우는 소리를 들으니 철석간장 아니거든 누가 아니 낙루하며 초목금수 아니거든 어느 누가 아니 울리오. 좌우 방백 수령들은 뿌리느니 눈물이요, 각읍 군수 현령들은 서로 보고 슬피 우니 그중에 환과도록(鰥寡孤獨 : 늙은 홀아비, 늙은 홀어미, 부모없는 아이, 자식없는 늙은이) 설운 사람은 방성통곡 하는 소리 강천이 창망하여 일월이 무광하고 운무 자욱하여 천지 나직하다. 제를 파한 후에 온갖 음식을 많이 싸서 해상에 들이치고 성중에 들어와 군사를 호군하고 길을 떠나갈 새 각읍에 선문(先文 : 소문을 미리내는 것) 놓고 금룡성중에 득달하여 숙소하고 군사를 쉬는지라.
각설 이때 장부인이 활인동 이처사집에 있어 세월을 보내다가 일일은 남경에 난리났던 말을 듣고 탄식 왈. "세상에 기이하고 의심난 일이 있는다. 마침 오늘날 번양에 갔삽다가 오압더니 남대로서 천병만마 들어오며 회숫가에 둔취(여러사람이 한곳에 모임)하였거늘 물은즉 남경 도원수 유충렬이 모친을 위하여 회수에 제사한다 하기로 백성과 함께 구경하더니 원수 소의소관으로 제물을 진설하고 독축하며 통곡하는 소리를 들은 즉 적실히 부인의 아들이라 부인이 항상 하시던 말씀을 낱낱이 하더이다."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하부며 땅을 두드리며 왈,
"이게 웬말이냐, 원수의 하던 말을 다시 하라."
이처사 대왈.
"전후수말이 약차약차(若此若此 : 이러저러 하다)하더이다."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왈칵 냅다 서며 왈,
"어서 가세. 내 아들 충렬이 살아왔네, 옥함을 받았단 말이 웬말인가."
통곡하며 가고자 하거늘 처사 만류 왈,
"적실히 그러할진대 내게 먼저 그 진위를 알고 오리이다."
하고 나서거늘, 대왈,
"나이는 이십이요, 외가는 이부상서 장윤이라 하더이다."
부인 왈,
"적실히 그러하구나 내 아들 아니면 어찌 나의 부친 존휘(어른의 이름)를 알랴. 바삐 가서 알아오소."
이처사 전지도지 바삐 가서 금릉성중 달려들어 군사를 불러 통자(通字 : 이름을 통하는 것)하되,
"만수산 활인동 사는 이처사 원수전에 뵙고자 하나이다."
원수 "들랴"하니 이처사 들어가 배사하고 앉은 후에 공덕을 칭송하니 원수 사양하되,
"막비 천자의 덕이라 무슨 공이 있사오며, 무슨 허물이 있어 누지에 욕임하시니까?"
처사 왈,
"적실히 알고자 하는 일이 있어 왔사오니, 어제날 회숫가에 사공 독촉하는 말씀이 정녕 그러하오니까?"
원수 이 말을 들음에 마음이 자연 비감하여 슬피 낙루 대왈
"귀인은 어찌 묻나이까 적실히 그러하오이다."
"적실히 그러할진대 만고의 드문 일이라, 유주부를 모셔왔다 하니, 유주부는 나의 처숙이라 전일에 그런 말씀하더니까?"
원수 대경 왈,
"선인의 존호를 부르기 미안하나 전일 한림학사 이인학과 어찌 되나이까?"
처사 왈,
"나의 부친이로소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처사의 손을 잡고 왈,
"존형을 이곳에 와서 만나볼 줄 몽중이나 생각하오리까?"
처사도 그제야 단무타의라 원수를 붙들고 비감하여 왈,
"모친을 지척에 두고 어찌 찾을 줄을 모르는가?"
원수 이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하여 겨우 진정하며 처사를 붙들고 왈,
"이게 웬말인가. 나의 모친 장부인이 근처에 있단 말이 어인 말인가."
처사 원수를 위로하여 정신을 차린 후에 왈,
"이런 일이 천만고에 또 있을까. 나를 따라 가면 모친을 만나리라."
원수 마음이 건공에 떠서 처사를 따라갈 제 전지도지하여 순식간에 처사 집을 당도하니, 처사 급히 들어가며 장부인을 불러 왈,
"처숙모는 어디 가 계신가. 충렬이 데려 왔나이다."
이 때 부인이 처사를 보내고 소식을 알아 올까 만심고대하던 차에 뜻밖에 충렬이 데려 왔단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여 기절하는지라. 충렬이 달려들어 문 앞에 복지하니 처사 구완하여 정신을 차린 후에 부인이 여광여취하여 하는 말이,
"네가 귀신이냐 내 아들 충렬이냐. 내아들 충렬은 회수에 일정 죽었거든 어찌 살아 육신 오는가. 내 아들 충렬은 등에 삼태성이 표적으로 박혔느니라."
원수 급히 옷을 벗고 곁에 앉으니 과연 삼태성이 뚜렷이 박혀 있고 금자로 새긴 것이 어제 본 듯 완연하니 서로 붙들고 방성통곡 하는 정이 만리 호국에 부친 만날 때와 배나 더한지라. 뜻밖에 모자상봉하였으니 인지상정이라 고금이 다를소냐. 죽은 부모 다시 만나 영화 보게 되었으니 반갑고 슬픈 정은 일구난설이라 부인이 말하면 충렬이 옳고 부인이 우니 청천일월이 무광하고 산천초목도 슬퍼하는 듯,
이때 강승상이 조낭자 이 말을 듣고 옥교를 갖추어 활인동에 들어 올 제, 언비천리(言飛千里: 말이 천리에 퍼짐)라. 회수에 제사하던 유충렬이 활인동 이처사집에서 모친을 만났다 하니 각읍 관장과 구경하는 사람 긍릉성중에 들어 서로 보고 칭찬하는 말이.
"이런 말은 만고에 처음이라 어떤 부인은 팔자가 좋아 저런 아들 두었는고."
하며 구경하더라.
이때 강승상이 옥교(옥으로 꾸민 가마)를 가지고 활인동에 들어가 부인 전에 예하고 부인을 모셔 성중에 들어 올 제 구경하는 여인들이 옥교를 잡고 부인전에 백 배 치하하고 송덕하는 소리 산신령도 춤을 추고 강산도 우즐기니(춤추듯 즐거워함) 하물며 사람이야 무엇할까. 부인이 낱낱이 위로하고 성중에 들어와 수일 즐기더니 길을 떠남에 이처사 가권을 모두 거느리고 황성에 올라갈 제, 활인동 어구에 삼장 석비를 세워 전후수말을 기록하고 서천 삼십육도 사신이며 남만 오국 금은 채단 만여필을 앞세우고 남경 인물이며 군사 좌우에 나열하고 각도 간고나 방백 수령 전후에 옹위한데 구경하는 사람조차 백 리에 연속하니 낭자한 거동은 천고에 처음이라.
원수 모친과 승상을 모시고 길을 떠나 영릉을 바라보고 행군하여 올라갈 제 일희일비 슬픈 마음 소연한 심 절로 난다. 수중에 죽은 부모 다시 만나 강낭자를 어디 가서 만나볼까. 모친 보고 승상 보니 남궁가북궁수(남쪽 집에서는 노래하고 북쪽 집에서는 근심함)라 모친은 옥교 중에 희색이 만면하여 천만 근심 때를 벗어 있고 승상은 수레 위에 일희일비 슬픈 마음 처자를 생각하며 수심이 면면하더라.
영릉으로 들어올 제 이때는 춘삼월이라 천지기운이 배합하여 만산의 홍록들은 일년일도 다시 만나 백초춘경 다툴 제, 연자는 남남(제비가 지저귀는 소리) 인가를 찾아들고 호접(호랑나비)은 편편화간에 날아들 제 나무 나무 성림하고 가지가지 봄빛이라. 태평성대 만난 백성 청춘 소년 홍안미색 쌍쌍이 작반하고 삼삼오오 답청(봄에 교외를 산책하며 봄을 즐기는 사람들)네는 이화 도화 꺾어들고 행산곡 돌아들어 화전하며 즐겨할 제 춘심을 못 이기어 쌍쌍 대무하며 노래하며 유원수를 송덕하니 그 노래 즐겁도다.
"천운이 순환하여 대명이 밝았으니 만고에 어진 영웅 뉘집에 났단말가. 동성문 다리 안에 유상공의 집이로다. 역적이 때 모르고 뽕나무 활(남자가 큰 뜻을 품고 성공하려는 것)을 매니 원수의 가진 칼이 사해에 밝았도다. 승전곡 한 소리에 함몰 도적하여 천하가 태평하니 호국에 죽은 군친 고향에 살아오고 여염에 있는 처자 보모 함께 동락하니, 우리 인군 덕이 높아 일도춘광호시절에 백화만발 피었으니 화전하는 백성들이 뉘 아니 송덕하리. 우리 유원수 부모 만나 다남(多男)다녀하옵소서."
이렇듯이 즐겨하니 원수는 강낭자를 생각하여 영릉성중에 들어오니 이 땅은 승상의 고토라 슬픈 마음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객사에 숙소하고 월계촌 소식을 알고자 하여 사오일을 유련(계속해서 머무름)하는 지라.
각설 이때 강낭자 목숨을 도망하여 청숫가에 오다가 모친은 청수에 빠져 죽고, 영릉 고을 관비에게 잡혀와 머무나 천비는 행사가 고금에 다를쏘냐. 낭자를 만단 개유하여 태수의 수청을 드리고자 하여 수양딸을 삼은 후에 무수히 훼절코자 한들 빙설 같은 맑은 절개 일시를 변하며 일월같이 밝은 마음 궁곤타고 변할쏘냐. 이 꾀로 모피하고 저 꾀로 모피하니 관장에게 욕도 보고 관비에게 매도 많이 맞으니 가련한 그 정상은 참아 보지 못할레라.
이때에 관비 딸 하나가 있으되 제몸은 미천하나 마음은 어질어 매일 강낭자를 불쌍히 여겨 그 절개를 칭찬하여 제 모를 만류하고 낭자를 구완하며 매양 몸을 바꾸어 제가 수청하고 낭자는 구완하여 살리는지라.
이때, 유원수 동헌에 좌기하고 사오일 유련할 제 관비 생각하되,
'원수는 호걸이요, 낭자는 미색이라 이런 때를 당하여 수청을 드렸으면 원수의 혹한 마음 천 만냥을 아낄쏘냐.'
급히 들어가 행수(여러 사람들의 우두머리) 현신(높은 분들에게 들어가 뵘)하고 이날 밤에 낭자를 보내고자 하더니 그의 딸 연심이 또 이 기미를 알고 낭자더러 왈,
"이제는 염려말고 나가라, 원수의 수청이야 사양을 어찌하리오."
관비 대희하여 왈,
"네 몸이 과히 높으도다. 이 고을 관장은 무수히 지나되 종시 허락지 아니하더니 남경 대사마 도원수겸 승상 위국공의 수청은 사양치 아니하니 인물이 잘 나고 볼 것이다. 마음도 높으고 소원도 높도다. 우리 삼 백 여명 중에 나 혼자 수청들어 금은보화를 많이 받았더니 세월이 원수로다."
하며 이렇듯이 비양(빈정거림)하고 나가는지라.
이때 연심이 제 어미 나감을 보고 낭자를 내 보내고 제가 들어가니 원수 등촉을 밝히고 낭자를 생각하여 금낭을 끌러 낭자의 글을 볼 제 일자일체(한 글자에 한번씩 눈물을 흘리다.) 하니 슬픈 한심 절로 난다. 삼경야월은 꽃가지에 비추는 듯, 공산 두견 울지 말라. 너는 뉘를 생각하여 장부 간장 다 녹이냐, 낭자는 어디 가고 속절없는 글 두 구만 금낭 속에 들었느냐. 여고나한등독불면하니 객심하사로 전처연은 날로 두고 이름이라, 일락장사추색원하니 부지하처조상군은 낭자 볼 길 없음이라, 옛날 사마장경은 초년에 곤궁타가 문장 부귀 겸전하여 고향에 돌아오니 그 아내 탁문군이 문밖에 바삐 나와 손을 잡고 들어가고 낙양땅에 소진이는 현순배결 몸이 되어 곤곤히 지내더니 육국정승인을 차고 고향에 돌아오니 그 아내 전지도지 나와 인도하여 들어가되, 대명국 유충렬은 초년에 부모 잃고 십생구사 살아나서 도원수 대승상에 만리 타국에 승전하고 죽은 부모 살려내어 고향에 돌아온들 청수에 죽은 낭자 어찌 와서 맞아가며 소소백발 강승상을 무엇이라 위로할까.
이렇듯이 한탄하고 그 밤을 지내더니
이때 낭자 연심을 대로 보내고 침실에 돌아와 원수를 생각하여 자탄하고 잠 못들어 생각하되.
"원수의 성명을 들으니 나의 낭군과 동성동명이라. 낭군이 적실하게 되면 응당 월계촌에 들어가 우리 집 소식을 물으련만 월계촌을 아니 가니 답답하고 원통하다. 연심이 어서 나오면 진위를 알아보리라."
하고 낭군이 주던 글을 보며 자자이 낙루하며,
"구천에 만나자고 말씀이 있었더니 모진 목숨 살아나고 낭군은 죽었도다. 살기 곧 살았으면 대명국 도원수를 나의 낭군 밖에 할 이 없건마는 몰라보니 답답하다."
이튿날 연심이 나오다가 제 어미를 만나 관비 그 기미를 알고 대노하여 원수 전에 아뢰고 낭자와 연심을 죽이고자 하여 급히 돌아가 문양하고 여쭈오되,
" 소인의 딸이 얼굴이 절색이요, 태도 있는 고로 상공 전에 수청을 보냈더니 제 몸은 피하고 다른 년이 대로 들어갔사오니 두 년을 치죄하옵소서."
원수 대노하여,
"대로 온 년을 나입하라!"
연심이 잡혀들어 계하에 복지하니 원수 문왈,
"너는 무슨 욕심으로 대신을 잘 다니느냐? 죽을 제도 대로 갈까?"
연심이 여쭈오되,
"소녀 비록 천하오나 일생에 수절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옵더니 수 년 전에 어미 외촌에 갔다가 어떠한 여자를 데려다가 수양딸을 삼아 동네마다 수청을 드리고자 하되, 그 여자 굳은 절개 청천에 일월같고 삼동에 촛불같이 변할 길이 없는고로 소녀 매양 구제하옵더니 마침내 상공이 행차하옵심에 그 여자를 구완하여 대로 왔사오니 죄를 주옵소서."
원수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절로 비감하여 의심이 나는지라, 다시 왈,
"그 여자의 성명이 무엇이며 절개있다 하니 뉘 집 여자냐 ?"
연심이 대왈,
"그 여자 소녀와 사오 년을 동거하되 종시 성명을 모른다. 하고 뉘집이란 말을 아니하더이다." 원수 괴이여겨 왈,
"적실하게 그러할진대 바삐 입시하라."
이 때 낭자 연심이 잡혀갔단 말을 듣고 신세를 자탄하더니 뜻밖의 관비 십여명이 나와 잡아다가 계하에 복지하니, 원수 창문을 열고 낭자의 상을 보니 숙면인 듯하고 심신이 비감하여 자세히 보니 의상은 남루하나 기생되기 생심 밖이요, 천인 자식 아깝도다. 원수 소리를 나직이 하여 낭자더러 왈, "거동을 보니 천인 자식이 아니요, 여자의 말을 들었거니와 수절을 한다 하니 뉘집 자손이며 낭자는 누구건대 청춘 소년의 수절을 하며 무슨 일로 저리 되어 관비 양여자가 되었는지 진정을 은휘(숨기어 꺼림)치 말고 날더러 이르면 알 일이 있으리라. 말을 자상히 하라." 하니 이때 낭자 계하에 복지하여 원수의 말을 들음에 낭군과 이별할 때 하직하고 가던 말이 두 귀에 쟁쟁하여 일분도 다름이 없는지라. 안자 전일은 도망하여 왔기로 성명 거주를 속였더니 마음이 자연 비감하여 진정으로 여쭈오되,
" 소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골 월계촌 사는 강승상의 무남독녀옵더니 부친이 만리 연경에 귀양간 유주부를 위하여 상소하였더니 만고역적 정한담이 충신을 모함하여 승상을 옥문관에 귀양하고 소녀의 모녀를 잡아 궁비 속공하려 하고 금부조사 와 잡아갈 제, 청수에 야간도주하여 모친은 물에 빠져 죽고 소녀도 죽으려 하더니 영릉 관비 외촌에 갔다 오는 길에 데리고 제 집에 와 험악이 무수하되 연심의 힘을 입어 이 때까지 살았으나 하늘은 이 말을 원수 전에 고하고 하릴없이 자결코자 하나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당에 뛰어 내여 서며,
"이게 웬말인가."
영릉 태수 바삐 불러 상승상을 오시라 하니라.
이 때 강승상이 처자를 생각하여 잠을 못자니, 몸이 곤하여 좁더니 뜻밖에 원수 오시란 말에 놀래어 들어오니, 원수 왈,
" 이게 강낭자 아니오니까, 강낭자 살아왔나니다, "
승상이 이 말을 듣더니 정신이 아득하여 천지가 캄캄한지라. 원수 이별할 때 내어 주던 표를 내어놓고 상고하니 일호도 의심이 없는지라. 승상이 낭자의 목을 안고 궁글며 왈,
" 내 딸 경화야, 청수에 죽었다더니 혼백이 살아왔냐 꿈이냐 생시냐 너의 낭군 유충렬이 왔으니 소식 듣고 찾아왔냐 우리집이 소가 되어 양유청청 푸른 가지 빈 터만 남았으니 슬픈 마음 어찌 다 진정하리."
이 때 장부인이 내동현에 있다가 이 기별을 듣고 급히 나와 보니 낭자 고부지례로 문안하고 살아난 말씀을 자상히 하니 장부인이 손을 잡고 왈,
" 세상 사람이 고생이 많다 하나 우리 고부 같을쏘냐, "
이 때 낭자 데려간 관비 혼백이 상천하고 간장이 녹는 듯, 원수 동헌에 높이 앉아 관비를 잡아들여 수죄 왈,
"너를 죽일 것이로되 너 같은 천기년이 사람을 알아볼쏘냐, 청수에 가 낭자 구한 일로 방송하나니 덕인 줄 알라."
연심을 불러 무수히 치사하고 보내려하니 낭자 곁에 앉았다가 왈,
"연심은 날과 백년 은인이니 일시 치사뿐 아니라 평생을 한 가지로 지내고자 하니 황성으로 데려가사이다."
원수 그 말을 옳게 여겨 연심을 불러,
" 부인 착실히 모시라."
연심이 황공하여 하더라.
원수 전후 사연을 낱낱이 기록하여 나라에 장계하고 길을 떠나올 새 장부인은 금덩을 타고 강낭자와 조낭자는 옥교를 타고 좌우로 모시고 강승상은 수레 타고 오국 사신이 오셨는데, 원수는 일광주 용인갑에 정성검을 높이 들고 대완마상 높이 앉아 오마대로 행군하여 완완이 나오니 그 거동과 그 영화는 천고에 처음이라.
게양역을 지나 청순가에 다다르니 소부인 죽던 곳이라. 원수 승상을 위하여 영릉 태수 바삐 불러 제물을 장만하여 승상을 주인 삼고 조낭자는 집사되어 원수는 축관되어 독축하며 통곡하는 말이 회수에 모친 제사할 때와 다름이 없더라.
제를 파한 후에 행군하여 나올 제 이때 천지와 황태후며 연왕과 조정에서 충렬을 가달국에 보내고 주야 생각하며 장부인을 찾아오는가 하여 일야 한탄하더니 뜻밖에 원수의 장계를 보고 즐거운 마음 측량 없으며 장안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 각각 자식을 보려 하고 다투어 나오더라. 천자와 태후와 연왕이 백 리 밖에 나와 맞을 새 원수의 위엄을 보니 서천 삼십 육도며 남만 오국이며 금은 예단과 일등 미색들이 차례로 말을 타고 오국이며 사신이 선봉되어 낭자하게 들어오고 그 가운데 금정옥교 떠오는데 강낭자는 좌편이요, 조낭자는 우편이라 좌우 청정 고였는데 금수단 양산대는 반공에 솟았도다.
강승상이 수레 위에 높이 앉아오며 군사 전후에 나열하고 그 뒤에 따르는 이 십장홍모 사명기는 한가운데 세워 오고 용전(용의 그림을 그린 기)대장기며 기치창검 삼천병마 천후에 작대하고 승전고와 행군고는 원근산천에 진동하며, 도원수는 일광주 용인갑에 장성검 높이 들고 천사마 비껴 타고 황용수를 거스리고 봉의눈을 반만 떠서 군사를 재촉하니 웅장한 거동은 일대 장관이요, 천추에 표문(나타나서 여러 사람에게 들려 알려짐)이라.
이 때 장안 만민이 남적에게 잡혀갔던 며느리며 딸이며 동생들이 본국에 돌아온단 말을 듣고 호산대 십리 뜰에 빈틈없이 마주 나와 각각 만나 옥수 나삼 부여잡고 그리던 그 정곡 못내 즐겨하여 울음소리 웃음소리 반공에 뒤섞이어 호산대가 떠나 갈 듯 원수를 치사하고 장부인을 치사하는 소리 낭자하여 요란하고, 금산성하 다다르니 천자와 황태후 옥연에 바삐 내려 장막 밖에 나서니 원수 갑주를 갖추고 군례로 현신하니 천자와 황태후 원수의 손을 잡고 못내 치사 왈,
"과인의 수족을 만리 타국에 보내고 주야 염려하더니 이렇듯이 무사히 돌아오니 즐거운 마음 어찌 다 칭찬하며 회수에 죽은 모친 데려온다하니 만고에 없는 일이며 옥문관에 강승상과 청수에 죽은 강낭자를 살려오니 천추에 드문 일이라, 그대의 은혜는 백골난망이라 그말이야 어찌 다하리오."
황태후 원수를 치사한 후에 강승상을 부르시니 승상이 바삐 들어와 복지하니, 천자 내려와 승상의 손을 잡고 위로 왈,
"과인이 불명하여 역적의 말을 듣고 충신을 원방에 보냈으니 무슨 면목으로 경을 대면하리오. 그러하나 왕사는 물론하오."
이때 황태후 승상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야 어찌 다 성언하리.
이때 연왕이 다른 사처에 있다가 장부인이 금덩을 타고 옴을 보고 마음이 건공에 떠서 충렬이 나오기를 고대하더니 원수 천자께 물러나와 부왕전에 복지 주왈,
"불효자 충렬이 남적을 소멸하고 오는 길에 회수에 와 제사하옵다가 천행으로 모친 만나 왔나이다. "
연왕이 반가움을 측량치 못하여 왈,
"너의 모친이 어디 오느냐?"
이 때 장부인이 모장(장막) 밖에 있다가 주부의 말소리를 듣고 반가운 마음 어떻다 할 수 없어 여광여취 들어가니 연왕이 부인을 붙들고 왈,
"그대 일정 장상서의 따님인가, 멀고 먼 황천길에 죽은 사람도 살아오는 법이 있는가, 회수 만경창파 중에 백골이 되었을 제 어떤 사람이 살려왔나, 뉘 집 자손이 모셔왔나, 충렬아 네가 일정 살려왔나."
북방 천리 만리 호국에 잡혀 죽게 된 유주부와 만경창파 회수 중에 십년 전에 잃은 장씨 다시 만나 즐길 줄 칠 세 자식 환란 중에 잃었더니 다시 만나 영화 볼 줄 몽중이나 생각할까.
장부인이 석장동 마철의 집에 잡혀 갔던 말이며 옥함을 가지고 야간 도망하여 노구 집에서 환 만났던 말이며 옥함을 물에 넣고 죽으려 하다가 활인동 이처사집에 살아난 말을 낱낱이 설화하며 즐기니 그 정곡은 측량치 못할러라.
원수 곁에 앉았다가 왈,"소자 가달국에 갔을 제 적진 선봉이 마철의 삼형제라 한 칼에 베어 원수를 갚았나이다." 연왕과 부인이 못내 즐기더라. 천자를 모시고 성중에 들어올 새 자식 만나 치하하는 소리며, 만조제신 하례하는 말을 어찌 다 기록하리.
이때 황후 태후 강낭자를 입시하여 전후 왕사를 낱낱이 물을 제 부인의 고생한 말을 낱낱이 하고 서로 울며 장부인이 치하하기를 마지 아니하더라.
이때 원수가 천자와 부왕을 모셔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오국사신 예를 받아 문목수죄한 연후에 옥관도사를 잡아들여 계하에 엎지르고 수죄 왈,
"간사한 도사놈아 네 천지조화지술을 배워 정한담을 가르쳐 신기한 영웅이 황성 내에 있는 줄은 알고 광덕산에 살아나서 너 죽일 줄은 모르느냐. 네 전일에 정한담더러 하기를 천재일시라 급격물실하라더니 어찌 조그마한 유충렬을 못 잡아서 너희 놈들이 먼저 다 죽느냐?"
도사 여쭈오되,
"패군지장은 불가이어용이라 하니 차막비천명이라 무슨 말씀하오리까마는 소인이 신기한 술법을 배워 전장에 나올 제 사해신장이며, 대명국 강산신령과 천귀만신과 이매망량(도깨비의 정령들) 어두귀면지졸과 천지개벽 후에 신장 귀졸을 모두 다 불러내어지위간에 넣어두고 승천입지하며 성산성해하며 변화무궁터니 그중에 유독 서해 광덕산 백룡사에 있는 노승과 남해 형산 화선관이 소인 영을 쪼지 아니하기로 고일 알았삽더니 전일 원수 접전하시는 법을 보오니 갑주창검도 천신의 조화거니와 백룡사 노승은 원수 우편에 옹위하고 남악형산 화선관은 좌편에 시위하였으나 소인인들 어찌하오리까. 주판지세로 이리 될 줄을 알았으나 죽사온들 무슨 한이 있사오리까."
원수 마음에 그놈의 재주를 탄복하고 군사를 재촉하여 장안시에 처참한 후에 오국사신을 각각 돌려 보내고 황성 동문 밖인가를 다 헐어 별궁을 지은 후에 직첩을 돋을 새, 산동육국에서 들어오는 결총은 모두다 연왕에게 부치고 원수로 남평 여원 양국 옥새를 주어 남만 오국을 차지하여 녹을 부쳤으되 대사마 대장군 겸 승상 인수를 주어 국중만사를 모두다 맡겨 슬하에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장부인으로 정열부인 겸 동궁야후(어머니의 존칭) 연국 왕후를 봉하여 경양궁에 거처하게 하고 강승상으로 달왕 직첩을 주어 빈사지위(손님으로 대접하는 지위)에 있게 하고 강부인으로 정숙부인 겸 동궁후 언성왕후를 봉하여 시녀 삼백에 강승상의 위장(호위하는 장수) 삼아 봉황궁에 거처하고 활인동 이처사로 간의 태부 도훈관에 이부상서를 겸하여 육조를 다스리게 하고 영릉 관비 연심으로 남평왕의 후궁을 봉하여 인성왕후 직첩을 주어 봉황궁에 강부인을 모시고 그 남은 제장은 차례로 벼슬을 돋우니라.
이때 남국에 잡혀가 강승상을 부모같이 섬기던 여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술 한 잔 받아들고 원수전에 자례하던 노인의 딸이라 그 노인을 불러 상면한 후에 조낭자로 남평왕의 우부인을 봉하고 그 오라비로 총융대장을 삼아 그 아비를 봉양하게 하니 상하 만민이 송덕하는 소리 천지 진동하니 그 아니 태평인가 하노라.
(완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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