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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백동화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인력거꾼 김첨지가 동구 모퉁이 술집으로 웅숭그리고 들어가기는 아직 새벽 전기불이 꺼지기 전이었다.

동지달에 얼어붙은 얼음장이 사람 다니는 한길 면을 번지르르하게 하여 놓고 서리바람은 불어 가슬가슬한 회색 지면을 핥고 지나간다.

옆의 반찬가게 주인이 채롱을 둘러메고 아침 장을 보러 가는지 기다란 수염에 입김이 어리어 고드름이 달린 입을 두어 번 쓰다듬으며 으스스 떨면서 나온다.

모퉁이 담배가게에서는 빈지 떼는 소리가 덜그럭덜그럭 나고 학교 갈 도련님의 아침먹을 팥죽을 사러가는 행주치마 입은 큰대문집 어멈은 시 뻘건 팔뚝을 하나는 겨드랑이에 팔짱 찌르고 한 손에는 주발을 들고 동리 죽집으로 간다. 저편 양복점과 자전거포는 여태까지 곤하게 자는지 회색칠한 빈지가 쓸쓸히 닫히었다. 선술집에는 노동자 두엇이 막걸리잔을 들고 서서 무슨 이야기인지 흥치있게 떠들고 있다. 국자를 든 더부살이 하나는 새까만 바지 저고리를 툭툭 털면서 더 자고 싶은 잠을 쫓아보내느라고 긴 하품을 두서너번 하였다.

떠오는 햇빛은 켜놓은 전기불을 희미하게도 무색하게 한다. 회고 푸르던 탄소선은 웬일인지 유난히 붉다.

눈에 눈꼽이 붙고 씻지 않은 얼굴에 앙괭이를 그린 술집 아들이 막걸리 잔을 새까만 행주로 씻어놓고 술항아리 뚜껑을 붙잡은 채 멀거니 앉아 있다.

김 첨지는 생선토막 하나를 갓 피어놓은 숯붙 위 석쇠에다 올려놓았다. 같이 간 동간 인력거꾼은 젓가락으로 김치만 뒤적거리고 있다.

김 첨지가,

『막걸리 두 잔만 노--』할 때이었다. 떨어진 남루에 부대조각을 두른 거지 하나가 힘없이 들어오더니 때묻은 두 손을 벌리고 화로불 가에 가 서서 덜덜덜덜 떤다. 아편중독이 되어 노랗다 못해 푸른 얼굴에는 인생의 비참한 말로의 축도를 여지없이 그려놓았다.

노출된 종아리는 추위에 얼고 상하여 시퍼런 피가 어리고 맺혔다.

손을 다 녹인 그 거지는 정거장에 나가려는지 가죽가방을 든 젊은 상인에게 가까이 가며 관성에서 나오는 죽어가는 듯한 소리로,

『나으리, 한푼만 적선합쇼.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큰일났읍니다』하며 허리를 굴실굽실하고 신음하는 소리를 한다.

그 사람은 구운 안주를 썰려고 거지의 소리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저쪽으로 가버린다. 옆에 서 있는 김 첨지가 이것을 보고는,

『흥 요새도 찌르나? 찌르지를 말지』하며 아편침 맞는 그 거지를 조소하는 것이 무슨 취미나 깨닫는 듯이 혼자 떠든다.

거지는 하는 수 없는 듯이 술파는 그 아이에게로 갔다. 다른 때 같으면 술청 앞에도 가까이 가지 못할 것이지만 나이어린 아이주인이 앉아 있으니까 만만한 듯이 쳐다보며,

『여보셔요』

하였다. 술국이를 들고 술을 붓던 어린 주인은,

『무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거지는 으례 들을 꾸지람으로 아는 듯이 꼼짝도 아니하고서,

『저-- 안주 하나만 주시구려』

하며 안주 채판을 돌아다보았다. 어린 주인은,

『무어야 번번이!』

하며 흘겨본다. 거지는 굽실하며,

『언제 제가 번번이 그랬읍니까?』

『일전에도 주었지.』

『언제요?』

『그저께 말이야.』

거지는 그제야 하는 수 없는 듯이,

『그저께요? 네. 그때 한번밖에 더 달랬읍니까.』

『몰라 저리가』

하며 어린 주인이 소리를 지를 때 다른 손님이 술청으로 가까이 서며,

『술 석 잔만 내우』

하였다. 어린 주인은,

『네』

하고 술을 담는 양푼을 끓는 물 위에다 빙그르르 돌리면서,

『주인어른 나오시면 큰일나』

하며 의미있는 웃음을 빙그레 웃었다. 옆에 물러섰던 그 거지도 따라서 웃었다. 그 가고오는 웃음 속에는 무슨 승락과 긍정이 있었다.

주인은 산적 꼬치에 끼어놓은 떡 한 개를 집어 주었다. 거지는 기뻐서 그것을 받아들고 화로불에 갖다놓고 춤을 추는 듯이 부채질을 하였다. 김 첨지는 어느 틈에 막걸리 석 잔을 먹었다. 주머니 속에 착착 접어넣은 50전짜리 지화 한장이 있나없나 만져 보았다.

그리고 동간하고 저하고 먹은 것을 계산하여 보고는 20전이 남는구나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따가 느지막해서 나 혼자 와서 꼭 석 잔만 더 --먹고 남은 것은 5전짜리 담배를 사먹으리라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자기 주머니 속이 빈탕이 될 것이 어쩐지 아까워 못견디었다. 그러나 오늘 하루 또 인력거를 끌면 또 돈이 생길 터이니까 걱정없다 하였다.

그때였다. 자다 일어난 머리를 빗지도 못하고 꾀죄죄 흐른 행주치마에 다--떨어진 짚세기를 신은 주인 마누라쟁이가 나왔다. 무엇이 그리 열이 나든지 나오던 맡에,

『에 화나』

하며 방정스럽게 두 손을 톡톡 턴다. 옆에 섰던 더부살이 한 놈이,

『안주 다 익었읍니다』

하고 소리를 크게 질르고는 주인 마누라를 향하여 무슨 동정이나 하는 듯이,

『무슨 화가 그렇게 나셔요?』

하며 혼자 빙그레 웃는다. 마누라는,

『그것을 알아 무엇해』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더부살이는 하려는 말이 쑥 들어가며 혓바닥을 내밀었다. 다시 잡아다니며 아무 소리 없다.

주인 마누라가 나온 뒤에 술집의 공기는 웬일인지 근신하듯이 조용하다. 그리고 우글우글 끓어오르는 국솥의 물김까지 입을 딱 담은 듯이 아무 소리가 없다.

옆에서 떡을 굴던 거지는 얼른 떡을 집어먹고 아무 소리 업이 밖으로 나갔다. 이것을 본 주인노파는,

『저것 봐라. 거지가 안주 도적질 해먹고 달아난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쫓아나간다.

술청에 앉은 어린 주인은 이 꼴을 보고서,

『아녜요. 내가 준 것이예요』

하며 따라나가는 자기 어머니를 불렀다. 이 소리를 들은 주인 마누라는 나가던 걸음을 멈추며 기가 막힌 듯이 자기 아들을 바라보고,

『무어야?』

하며 눈을 흘긴다. 아들은 아무 소리가 없다.

『그것은 왜 주었니?』

『달라는 것을 어떻게 해요.』

『무어야 달란다고 아무 소리도 없이 주어.』

『그럼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라니? 달래는 대도 자꾸 주었다가는 장사 거덜나겠다. 너 요새 돈이 어떻게 귀한지 아니? 떡 한 꼬챙이도 2전 5리야.』

어린 주인은 얼굴이 불그레하여 아무 소리 없이 앉아 있다. 나 어린 마음속에도 어린 주인은 거지에게 떡 한 꼬챙이 준 것이 잘못이 아닌 줄은 알았으나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굳고 굳은 자신을 주지는 못하였다. 불쌍한 거지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나서 주었다는 것보다도 거지의 졸라대고 떠드는 것이 귀찮아서 떡 한 꼬챙이를 준 나 어린 마음은 지금 자기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기 시작할 때 공연히 가슴이 불안하고 달아난 그 거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떠드는 소리는 무슨 도덕의 설교나 듣는 듯이 조금 옳은 말이 아니요 참으로 진리 있는 말 같이 들린다. 한번 듣는 설교가 아니지마는 나 어리고 마음 약한 어린 주인의 머리로 어머니의 설교가 옳고 옳은 줄 알기는 알면서도 거지가 와 서서 무엇을 구할 때마다 어쩐지 마음이 불안한 가운데에도 아니 줄 수 없는 충동을 깨달았다.

『애 너 같아서는 집안 망하겠다. 그래 어린 녀석이 무엇을 아까운 줄을 알아야지. 그리고 어른이 장만해 놓고 영업하는 것을 네 마음대로 해. 글쎄 그게 무슨 철없는 짓이냐. 무엇을 물어나 보지. 너 거지에게 좋은 일 해서 네게 무엇이 이로우냐. 엥, 참 기가 막혀 사람이 못살겠네, 내 그놈의 깍쟁이 녀석 또다시 오거든 주둥이를 훑어서 내쫓을 터이야』

하며 떠들어대는 자기 어머니의 불쾌한 책망을 여러 사람 앞에서 듣는 것이 아주 부끄럽고 가슴이 불안한 가운데 분한 생각이 났다. 그래서 붉은 피가 얼굴에 오르고 정신이 흐리어 잡은 술국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이때였다. 김 첨지는 주인 마누라의 이 떠드는 꼴을 보고서,

『아따, 고만두십쇼. 그까짓 것을 왁자하실 게 무엇이야요. 고만두셔요』

하며 얼큰한 얼굴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 손을 흔들어댄다. 그리고 돈을 꺼내 어린 주인을 주며,

『여보 돈이나 받으시우』

하였다. 어린 주인은 아무 소리 없이 그 돈을 받았다. 그의 얼굴은 이때까지 불그레하다. 그는 돈 둥금이를 집었다. 그리고 되는 대로 하얀 10전짜리 두개를 집어 주었다. 인력거꾼은 10전짜리 두 개를 받으면서 혹 적게 거슬러 주지나 않나 하고 받은 돈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손 위에는 20전짜리 은화 한 개와 10전짜리 백동화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김 첨지는 얼른 그 돈 놓여 있는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바깥으로 나오며 혼자 속으로,

『싸움도 할 것이야. 그 덕분에 내가 횡재를 하였네그려』

하며 10전 백동화 하나 더 받은 것이 그날 재수를 점치는 것 같이 기뻤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그의 마음은 웬일인지 기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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