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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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초[편집]

백만을 자랑하는 동방의 큰 서울로 자타가 허하는 대고구려 장안(長安) 서울의 성문이 고요히 열렸다.

성 밖에서 성문 열리기를 기다리던 적잖은 소민(小民)들은, 성문이 열리자 모두 성 안으로 빨리 몰려 들어갔다.

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만성(萬姓)들과는 외톨이로 한 중년 길손이 역시 천천히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길손에게는 의외인 것은, 번창을 자랑하던 이 ‘장안’서울의 모든 집 모든 가게가 모두 아직 굳게 문이 잠겨 있고,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며, 마치 죽음의 도시인 듯 고요하기 짝이 없는 점이었다.

길손은 내심 적잖이 의아한 마음을 품고 무연하게 넓은 장안 서울의 큰 길을 성 안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갔다.

들어가다가 어떤 반만치 문이 열린 가게 하나를 발견하고, 그 가게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성큼 가게에 들어섰다.

“말씀 좀 물읍시다.”

“뭐요?”

“오늘은 이 나라에 무슨 날입니까?”

그 이 나라라는 말이 수상쩍어서인지 주인은 비로소 이 길손에게 주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오, 당신은 한인(漢人)이구료! 그렇지요?”

“네 그렇습니다.”

“한인, 한인- 그리고 오늘은 당신 나라 사람에게는 경축일이요, 우리 고구려 만성에게는 다시 없는 슬픈 날이외다.”

네 나라에는 경축일이요, 내 나라에는 슬픈 날이라는 이 간단한 한 마디의 말로, 길손은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짐작이 간 모양이었다.

“그럼 을지(乙支) 승장께서 무슨 ….”

“네, 승상께서 우리 만성을 남기시고 세상 떠나셨소.”

길손은 이 대답에 뜻하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을 입 속으로 외며,

“고구려 백성은….”

“백성이 아니라 만성이라오.”

“고구려 만성은 어버이를 잃고 얼마나 아득하리. 여보소 주인, 내 비록 한인의 자손이요, 수(隋) 때 양제(煬帝)를 따라 이 나라에 침입했던 한 병졸이지만, 그때 이 나라에 떨어져서 이 나라 조〔粟[속]〕를 먹기 십여 년, 을지 승상의 헤아림을 한없이 받았고, 그 덕을 마음에 아로새긴 사람이외다.

지금도 이당(李唐)이 고구려를 엿보는 이때, 을지 승상을 데려가시단 하늘 도 너무 야속하시오.”

“이당이 역시 고구려를 엿볼 것 같소?”

“그럼요! 고구려가 서 있는 동안은, 그리고 우리 민족의 힘이 있는 동안은 고구려가 넘어지든 한족이 넘어지든 둘 중의 하나는 끝장이 나야 할 게요.”

“고구려를 위해서는 걱정 마오. 을지 승상 가셨을지라도 을지 승상이 뿌려 두신고구려 혼은 그냥 남아 있소. 한병(漢兵)이 올 때는 말 타고 왔다가 갈 때는 업혀 가지 않을 수 없도록 그 준비는 고구려에 넉넉히 있읍니다.”

“좋은 임금님에 충성된 승상님에 효용한 백성-만성에 과연 고구려나라는 훌륭합니다.

그래서 나도 살수(薩水)에서 떨어져 이 나라에 투화(投化)하고 말았소이다.”

“잘했소. 우리나라에 투화하면 죽은 뒤에라도 나는 고구려 사람이어니 하 는 자랑이라도 남지만, 당신네 나라는 대체 한(漢)이요, 수(隋)요, 당(唐)이요? 죽은 뒤에도 돌아갈 나라가 없구료. 팔백 년 면면히 누려 온 고구려에 비하건대, 오 년, 십 년씩 누리다가는 딴 나라가 되고 하는 당신네 나라는 그것도 나라랄 수 있소? 그….”

“아이, 듣기 부끄럽소이다. 말씀 말아 주십쇼. 그러기에 내 나라 배반하고 고구려에 투화하지 않았읍니까? 내 옛 나라 소식은 듣기조차 부끄럽습니 다.”

×

그 전날, 나이 여든 몇 살로 세상 떠난 이 나라 대신 을지문덕을 사모하고 조상하는 뜻으로, 이 나라의 만성은 모두가 자기네의 할 일을 걷어 치우고, 조용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근신하고 있었다. 시골 농부의 집에 태어나서, 어려서는 집 근처에 있는 석다산(石多山) 토굴에 들어가서 학문과 무술을 닦았다 하며, 자라서 평원왕(平原王)과 영양왕(嬰陽王)의 지의를 받아 나라를 요리하기 오십여 년, 평원왕과 영양왕의 두 대에 걸쳐 그때 중국 천지를 통일한 수나라의 큰 세력에 대항하여, 동방 소이(東方小夷) 고구려로서 능히 그 수나라와 마주 싸워서 수나라를 꺾어서, 소이(小夷) 고구려의 만성으 로 하여금 여전히 베개를 높이 하고 지낼 수 있게 만든, 인류 역사 있은 이래 가장 큰 영웅이요, 성인(聖人)인 을지문덕공이 그의 사랑하는 만성을 버리고 고요히 눈을 감은 것이다.

서쪽에는 수나라를 물려받은 이씨(李氏)의 당나라가 역시 호시탐탐히 ‘동 방 소이’고구려를 넘겨다보며 있고, 남방에는 백제와 신라의 두 작은 나라 가 동족인 고구려를 원수로 잡고, 수나라 당나라에 아첨하여 그 힘을 빌어서 고구려를 둘러엎으려는 온갖 꾀를 피우고 있는 이 위급하고 긴한 세상에 서 을지문덕이 차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을까?

시조 고주몽(高朱蒙)이 북부여(北夫餘)땅에서 일으킨 조그만 나라 고구려를, 뒤이은 명군 명자들이 늘이고 늘여서, 서북방의 웅국(雄國) 한족의 나라와 우연히 대립하여 동방인의 자랑을 천하에 자랑하는 대고구려국을 튼튼히 지켜서, 수 양제의 이백만 대군을 살수에 함몰시키고, 그것을 빌미로 수 나라까지 둘러엎은 동방의 수호신 을지문덕-.

그의 부보가 세상에 전하매, 그의 일생의 적이던 당나라 고조와 태종이 목을 놓아 울어서 위대한 영웅의 서거를 조상하였다 한다.

불행히 그의 일대는 사가(史家)의 놓친 바 되어 이제 살수(薩水)의 전기(戰記)하나 밖에는 전하는 것이 없다.

작자는 토막 모음으로 전하는 그의 일대를 소설화하여 이 아래 전하여 보려 한다.

산삼[편집]

“오늘도 신발 한 켤레만 밑졌군!”

제 발을 들어 보았다.

지푸라기가 모두 해어져서 사면으로 수염을 보이는 짚신-.

“신발 서른 뭇을 허비했으니 벌써 그럼 삼백 날인가? 그동안의 소득은 단 두 뿌리뿐….”

산삼을 구하고자 편답하는 삼백여 일 간에 간신히 두 뿌리만 얻고는 그냥 헛애만 쓰는 자기였다.

문득 눈을 들어 맞은편을 건너다보았다. 계곡 하나를 건너서 맞은편에 보이는―역시 깎아 세운 듯한 벼랑에는 나무가 부접할 흙도 없는 양하여, 겨우 잔솔 몇 포기와 지금 바야흐로 단풍들어 가는 낙엽수 몇 그루가 석양볕 아래서 잎을 풍기고 있다.

지난 여름에 팥죽지만한 산삼 한 뿌리를 얻은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건너다보았다. 건너다보다가 눈을 들어 아래로 떨어뜨렸다.

굽어보이는 계곡- 거기는 까마득한 저 아래 골짜기에 무엇인가 아물거리는 것 같다.

“?”

눈을 주어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주어 보니, 거기는 웬 사람이 하나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유람객일까?

인가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외딴 이 심산에 유람도 괴이하였다.

그렇다고 초부나 목동도 아니었다. 의관까지는 한 점잖은 사람인 모양인데, 그런 사람이 이 심산에 단 혼자서 방황하는 것은 웬일일까?

연파대(淵巴大)는 잠시 굽어보다가 그리로 내려가 보기로 하였다.

흙과 돌을 파기 위하여 가지고 다니던 연장을 구럭에 수습하고 그 자리에서 떠났다.

벼랑과 바위를 평로(平路) 다니듯 다니는 파대는, 교묘히 몸의 중심을 잡아 가면서 깎아 세운 듯한 바위와 낭떠러지를 아래를 향하여 더듬었다.

아래까지 이르렀다. 이르러 보매, 아래의 사람은 파대가 내려오는 것을 본 모양으로, 바위에 기대어 파대가 다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는 사십- 혹은 오십- 육십- 대중잡기 힘들었다.

탄력 있는 피부와 빛나는 안광과 굵은 수염 아래 꾹 닫혀 있는 입 등으로 보아서는 사십 안팎의 장년이라고 볼 수도 있는 한편, 그 침착하고 인생에 피곤한 듯한 표정은 오십, 육십의 노인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여보소 젊은이, 어디로 가시오?”

파대가 물으려던 말을 도리어 묻기었다. 파대는 공손히 대답하였다.

“저는 이 근처의 사람입지만 대인(大人)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니까?”

“이 근처 사람이면 잘 알겠군. 이 근처에 소리골이라는 데가 어느 편에 있소?”

“소리골은 여기서 백여 리 남습니다. 그 소리골은 누구를 찾아가십니까?”

“방향은 어느 방향이요?”

“남쪽으로….”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려는 쪽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벼랑이 마주서 있 어서 가리킬 수가 없었다.

“방향은 남쪽입지만 가시자면 이 골짜기로 이렇게- 그러나 요리 굽고 조 기 굽고, 그 위에 사면에 지류(支流)가 얽힌 이 골짜기로서 또한 어떻게 가리켜 드리나? 참 대인, 이렇게 하세요. 무턱허구 한참 남쪽으로 가시다가 사람을- 초부든가 약초(藥草)꾼이든가 만나기만 하시거든 그이한테 을지 승 상 동네가 어디냐고 물을시면 다 알리다. 소리골이라면 모를 이도 있겠지만, 승상 동네라면 모르는 이가 없읍니다. 그렇게 물어 가시는 편이 가장 첩경이리다.”

“내가 그 소리골서 온 사람이외다. 하도 심심하기로 어제 점심을 싸 가지고 집을 나서서, 이리저리 구경에 정신이 팔려서 길을 잃고- 어젯밤에는 어느 토굴에서 한밤을 지내고 오늘도 지금껏….”

“아니?”

파대는 깜짝 놀랐다. 어제 점심을 싸 가지고 떠난 이라니 그러면 어젯 저녁은? 오늘 조반은?

“얼마나 시장하시오? 어제부터!”

“시장도 약간 하오.”

“그럼 저의 집으로 잠깐 가시지요. 그 바위 지나서 막을 하나 틀고 살고 있읍니다. 얼마나 시장하시고 고단하실까?”

그 사람은 천천히 눈을 굴려 파대를 보았다.

“젊은이 마음씨 곱기도 해라.”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파대는 손님을 모시고 제 토막으로 올라왔다.

“들어가 쉬세요. 제가 저녁 마련을 하오리다. 더러운 방입지만….”

파대는 손님을 방(방이래야 나무를 찍어다가 얼커리한 단간방이었다)으로 들여 모시고 자기는 끼니 준비를 하였다.

손님 시장할 것도 시장하겠거니와 어서 손님께 끼니를 드리고 손님께 여쭈어 보고 싶은 말이 있다. 손님이 스스로 소리골서 왔다 하니, 그러면 소리 골을지 승상의 동정, 건강 등을 알 것이다. 그것을 듣고 싶었다.

마음은 조급하지만 정성을 다하여 지은 저녁과 산채 등을 도마에 받쳐 들 고 방 안으로 들어오니, 손님은 피곤을 못이겨 벌써 잠들어 있었다.

파대는 소리 안 나도록 조심히 들고 들어온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 조그만 소리에도 손님은 벌떡 깨었다.

“대인! 대인!”

“어? 음-.”

“저녁 진지올시다.”

“어느덧 잠이 들었군. 젊은이 참 고맙소.”

파대는 손님께 저녁을 드리고, 자기는 뜰에서 따로이 저녁을 먹었다.

얼른 저녁을 끝내고 방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도 저녁을 어느덧 끝내고 또 잠이 들어 있었다.

이튿날 조반도 끝낸 뒤에야 파대는 비로소 손님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었다.

“대인께서는 을지 승상을 조석으로 늘 뵙겠읍니다그려?”

멀리서 먼눈으로 잠깐만 뵐 수 있어도 그런 기쁨이 없겠거늘, 이 손님은 조석으로 뵐 수 있을 것이 파대에게는 부러웠다.

손님은 어제부터 스스로 묻는 말은 많았지만 파대가 묻는 말에 대답은 그 리 안 하였다. 이번도 역시 대답은 피하고 스스로 파대에게 물었다.

“젊은이는 약초(藥草)를 캐시는 모양이구료?”

“대인, 오냐를 해주세요. 보잘것없는 소동(小童)이올시다.”

“약초를- 보아하니 약초 장수도 아닌 듯한데 약초는 무엇 때문에….”

“대인, 제가 한 가지 꼭 여쭈어 볼 일이 있읍니다. 이것만은 꼭 대답해주세요.”

대답마다 피해 버리는 손님이라 물어 보기가 좀 떨떨했다. 그러나 하도 답답하던 일이나 종내 물어 본 것이다.

“다른 게 아니라, 산삼은 정성을 드리고 산신께 제사를 드려야 눈에 뜨인 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산삼을 구하고자 일 년 가까이 전부터 이 산간을 편답하는데 처음에는 물론 산신께 제사를 드렸읍니다. 드린 그 날 신명의 도우심으로 손가락만한 삼 한 뿌리를 얻었읍니다. 그 다음 지난 여름엔 그때 제사도 안 드렸는데 팔뚝만한 것을 또 하나 만났읍니다. 그 뒤로는 다시는 삼을 만나지를 못했읍니다. 아무리 지성껏 큰 제사를 몇 번 드려도, 드려도 또 드려도 다시는 눈에 안 띕니다. 이 향산(香山)의 봉우리란 봉우리, 골짜기란 골짜기, 제 눈에 벗어난 데란 한 군데도 없읍니다. 편답하고 살피고 들추어도 다시는 눈에 안 뜨입니다. 이것이 정성이 부족한 탓일까요? 혹은 이 향산엔 이젠 삼이 없는 탓일까요?”

손님은 역시 대답 대신 질문이었다.

“허어! 기특도 해라! 그래 두 뿌리씩이나 얻고도 그래도 부족이오? 하늘 도 과한 욕심엔 응하지 않으시겠지.”

“본시부터 세 뿌리를 캐낼 예정이었읍니다. 제 사사로운 욕심은 아니올시다.”

“고집도….”

역시 대답은 피해 버린다.

“대인, 제 정성이 역시 부족한 탓일까요? 혹은 이제 이곳엔 삼이 없는 탓일까요?”

“왜 하필 세 뿌리요? 산삼 장수도 아닌 듯한데 혹은 양친 봉양에 쓰시려…?”

“아니올시다.”

“그럼?”

“대인 댁이웃에 사시는 을지 승상께 바치려고….”

“허어, 을지에게! 을지와 어떤 친척 관계라도 되시오?”

“아니옵니다마는….”

“그럼?”

“승상께서 정무에 골똘하셔서 몸이 고달프시어 소리골로 내려오셔서 쉬신다고 듣자왔기, 승상게 바치려고- 아무 연분도 없읍니다마는….”

이 대답에 손님은 적지 않게 감심한 모양이었다.

“그저 그런 뜻으로?”

“네, 고구려 만성 된 자 누구 승상의 은공을 모르리까? 그 은공의 만분의 일이나마 갚아 올리고자….”

“기특도 하지! 여보소 젊은이, 그 정성에 삼이 있기만 하면 왜 눈에 안 띄리. 내 어제 오다가 정녕 산삼잎 같은 거을 본 일이 있는데, 나는 욕심도 안 나는 것이길래 그냥 지났지만 정녕 산삼 잎이야.”

파대는 벌떡 일어났다. 숨이 놀랍게 씨근거렸다. 숨차게 물었다.

“그게 어디쯤이오니까?”

“어제 내가 서서 젊은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그 앞 바위 틈에….”

“대인! 가십시다. 제가 업어 모시리다.”

“그럼 가 봅시다. 피곤은 이젠 다 풀렸소. 잎을 보아 있으면 꽤 큰 것이 있을 모양이야.”

파대는 손님을 모시고 토막을 나섰다. 손님이 지시하는 곳까지 이르러서 파대는 정신이 아득하도록 놀랐다. 자기가 과거 일 년간을 이 앞을 지나기 무릇 몇 천 번이거늘, 바위 틈에 뚜렷이 잎을 내밀고 있는 이 삼을 넘긴 것은 웬일이었던가?

또 이 손님은 어떤 손님이기에 이런 삼잎을 보고도 그저 무심히 지나 버리는가? 꽤 크고 굵은 것이 있으리라고 보고도 그저 지나는 이 손님은 대체 무슨 사람인가?

파대는 거기서 진시황이 보았더면 몇 개 나라와도 바꿀 만한 희대의 동자 삼을 캐내었다.

“클 줄은 짐작했지만 이렇게 클 줄은 나도 예상 외요.”

손님이 미소로써 이렇게 감탄할 때에야 파대는 비로소 펄떡 제 정신을 차렸다. 너무 감격되어 파대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대인,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세요. 이젠 목적했던 세 뿌리- 더우기 마지막에는 동자만한 삼까지 얻었으니, 이걸 가지고 곧 소리골로 가겠읍니다.

대인도 소리골로 가시려면 저하고 같이 가십시다.”

손님은 거기 멈추어 두고 혼자 움막으로 달려왔다.

산삼을 캐고 찾기 위하여 준비했던 모든 연장은 이젠 쓸데없는 물건이었다. 연장들을 호기 있게 동댕이치고, 그동안 연여(年餘)의 소득인 두 뿌리 의 삼(손가락만한 것과 팔뚝만한 것)을 지금 캔 바의 동자만한 것과 함께 잘 싸서 간수하고 손님을 세워 두었던 곳으로 달려나왔다.

“대인, 자 가십시다. 곤하시면 업어 모시오리다.”

“곤하긴- 자 갑시다.”

할 수 있는 대로 평탄한 시냇가를 잡아 그들은 길을 더듬었다.

시냇가 정갈한 곳을 찾아 점심을 먹고 또 길을 더듬었다.

한참 가다가 문득 보니, 저편 맞은편에 웬 한 떼거리의 인마가 보인다. 길 없는 산곡에 한 떼의 인마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 인마의 모양을 알아 볼 수 있을 만한 곳까지 이르러 보니, 인마의 중심에는 꽤 높은 관원(官員) 도 있는 듯하며, 또한 그맨 중심에는 빈 수레(매우 고귀한 사람이 탈 만한)까지 한 대가, 그 빈 수레를 사람 여섯이서 끌고 모시고 온다.

“날 찾아온 모양이군. 무슨 일일까?”

손님은 이마에 손을 대고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나를 찾아? 파대는 눈을 들어 손님을 보았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그러나 거기는 어딘지 모를 자애와 위의(威儀)가 역연히 흐르는 얼굴이었다.

“대인!”

“대인께서는 혹은- (숨을 허덕이었다) 황공하옵니다마는 을지승상이 아니시오니까?”

“내가 을지요.”

“아!”

기가 막혔다. 넓적 엎드렸다. 엎드린 파대의 눈앞에 이 나라 승상 을지문덕의 먼지 덮인 신발이 있었다. 파대는 승상의 신발을 쓸어안았다. 제 얼굴을 함부로 승상의 신발에 비볐다. 감격과 감사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쁜 감정에 눈물만 쏟아졌다.

이 분이 을지 승상이었던가?

평생 사모하고 존경하고 숭배하던 어른을 모신 줄 모르고, 자기는 혹은 무슨 창피스러운 일 망신스러운 일이라도 하지 않았던가? 지난 저녁 그 더럽고 좁은 방에서, 반찬도 없는 음식에, 게다가 그 곁에서 자기까지 하고- 코 나 요란스럽게 굴지 않았는지, 땀내 나는 등에 업어까지 드리고- 무슨 일인 이 가슴이 치받쳐 앞뒤를 가릴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보매, 인마는 꽤 가까이 이르렀다. 파대는 그 인마를 향하여 손을 저으며 고함지르면서 마주 나갔다.

“승상님 여기 계십니다. 여기 계십니다.”

조정에서 칙사(勅使)가 칙명을 받들고 내려온 것이었다. 긴급한 국사가 생겼으니 승상을지문덕은 곧 상락(上洛)하라고―.

을지 승상은 고요히 눈을 들어 칙사를 보았다.

“성체 무양하오시다니 듣잡기 기쁘지만 갑자기 나를 부르시게 된 연유는?”

머리를 숙여 생각하였다.

“진나라와 수나라는 그냥 다투오?”

“진이 수에게 망했읍니다.”

승상은 소스라쳐 놀랐다. 침착한 그의 안색까지 한순간 변하였다.

“아! 그럼 수가 혼자 남았다? 양광(揚廣)이가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게 됐읍니다.”

“아뿔사! 그럼 내 곧 상락해야겠군. 우리 성상도 그 일로 부르시는군!”

×

때는 고구려 평원왕(平原王) 삼십이년 가을이었다.

자라는 칠백 년[편집]

성조(聖祖) 단군 왕검이 태백산록에 자리잡고, 온 동방의 만성을 산하에 넣고 나라를 이룩한 지 일천 수백 년, 단군 해모수(解慕漱)때에 해모수의 아드님 고주몽이 북부여땅에 고구려나라를 이룩했다.

고주몽은 그의 이룩하나 고구려나라에서 그의 효용한 만성들을 구사하여 동정서벌, 그의 국토를 넓히어 나갔다.

이리하여 단군 족속의 원갈래는 북부여에서 시작하여 그의 영토는 사면으로 넓어 갔다.

-이 족속을 뒷날 사가(史家)는 ‘부여족(扶餘族)’이라 한다.

그런데 그때 이 인간 세계는 부여족과 대립하여 ‘한족(漢族)이라는 인종 이 있었다.

소위 요순의 후예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족속으로서, 그 족속에는 요행 큰 학자가 몇 사람 나서 학문이라는 것을 숭상하고, 그 나라의 임금을 ‘천자(天子)’라 경앙하고- 이러한 세월이 얼마 흐르는 동안에, 그 나라는 인간 세계에 중원이라 일컫게 되고, 인간에서는 그 나라를 천자의 나라라 우러러 보게 되었다.

그렇게 되매, 그 나라 백성도 자연 자기네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자긍심이 생겨, 자기네는 화(華)요 다른 나라는 오랑캐〔夷狄[이적]〕라 여기게 되었다.

고구려도 이 중화인의 눈에는 한 개 동이(東夷)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로서는 그런데 개의하지 않았다. 자기네는 성인 단군의 후예로라는 굳은 신념으로써, 중화인이 요순의 후예면 고구려인은 단군 성인의 후예라 하여 굽히지 않았다.

이것이 중국의 눈에는 여간 거슬리지 않았다. 고구려를 한 번 두들겨 주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 중국에는 외국을 정복할 만한 힘이 모자랐다. 중국이란 나라는 그 나라 백성은 모두가 저 잘난 맛에 사는 민족이라, 제각기 제가 천자가 되어 보려고 들먹거리는 판이라, 한 개의 나라 한 개의 왕실이 오래 계속되어 보는 일이 없이 일이십 년 가다가는 새 천자가 생기고 일이 십 년 내지 수삼십 년 가다가는 꺾어지고, 동쪽에 한 천자가 생기면 서쪽에도 다른 천자가 생기고, 이렇듯 쓸데없는 국가들이 천자놀이를 반복하느라고 나라가 한 뭉치가 되어 보지 못하였다.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이렇게 어지러운 세월을 거듭하노라니, 동방의 가시〔荆[형]〕 고구려에게는 손 댈 겨를이 없었다.

그 동방의 고구려는 고주몽이 나라를 이룩한 이래 단일 민족으로 나날이 크고 자라니, 지금의 중국으로서는 어디 감히 넘볼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밖으로는 고구려 원정을 벼르기만 하면서 국내 통일에 힘쓰던 중국 종족은, 후한(後漢) 영제(靈帝)때 비로소 국내를 통일하고 곧 고구려 원정의 길을 떠났다. 벼르고 벼르던 터이라, 국내 통일이 되자마자 곧 떠난 것이었다.

고구려 신대왕(新大王) 사년이요, 후한 영제 가평(嘉平) 원년, 한족은 한족 건국 이래 눈의 가시이던 고구려를 치러 대군을 몰아 고구려로 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이 ‘한’의 대군의 내구(來寇)를 맞아 싸우지 않았다.

‘한’에 그다지 못하지 않도록 광대한 지역을 가진 고구려는 변방군을 엄칙하여 ‘한군’이 국내에 깊이 들어오도록, 다만 유격군으로 한군을 시달리는 뿐 큰 회전은 피하였다.

한군은 아무리 쫓아와야 누구 마주 싸워 주지 않고 고구려 깊이 들어오매, 식량 수송도 곤란한 위에 날씨도 매운 겨울철로 들게 되므로, 할 수 없이 도로 회군하기로 하였다.

무력전보다 식량전 수송전에 패하여 돌아가는 ‘한’군에게 고구려는 지금껏 깊이 감추어 두었던 온 병력을 들어 엄살하였다. 역사상에 이 싸움이 기록되기를, ‘한군 대패하여 필마도 돌아가지 못하였다(漢軍大敗匹馬不返[한군대패필 마불반])’ 이라 하였다. 즉 건국 이래의 국시를 한 번 펴 보러 왔다가 필마도 못 돌아 갔다는 참패를 본 것이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 뒤, 고구려 고국천왕(故國川王) 때 후한 영제(靈帝) 중 평(中平) 원년에, 헌제는 이 철천의 원수 고구려를 어떻게든 멸하여 보려고, 요동 태수(遼東太守) 공손씨를 명하여 또 고구려를 원정하여 보았다.

참수 산적(斬首山積) ‘목 벤 것이 산과 같았다.’ 역시 한군의 참패였다.

그로부터 오 년 뒤 요동의 공손씨(한족 계통이 아니다)는 한의 실력을 저 울질하였으므로, 한의 굴레를 벗고 스스로 따로 섰다.

이런 것도 한 가지의 원인이 되겠지만 본시부터 국가놀이〔國家遊戱[국가 유희]〕, 천자 경쟁을 즐겨하는 ‘한인’들은 ‘후한’도 선 지 이미 백 사 오십 년 되어서는, 사면에서 ‘천자’가 되려는 무리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고국천왕 말년경부터 산상왕(山上王) 초년경에는, 수만의 ‘한인’들이 국가놀이에 분요한 제 나라 한토를 피해서 낙원 고구려를 찾아와 투신하였다.

과연 한실은 조조(曹操)에게 망하고 조씨의 위(魏)가 일어나고, 촉에서는 유현덕(劉玄德)이 일어서 촉한(蜀漢)을 이룩하고, 강남에는 손권(孫權)이 일어서 오(吳)를 세워서, 천하에 하나밖에는 없어야 할 ‘천자’가 셋씩이나 생겼다.

여기서 ‘천자’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위’에서는 자기네가 한실(漢室)의 뒤를 받았으니 자기네가 정통 천자라 하였다.

천하의 부고(富庫) 천하의 중원 ‘강남’을 차지한 ‘오’는 자기네야말로 중국 천자로라 하였다.

‘촉’은, 한실은 유씨의 것이니 촉의 유현덕이야말로 한실의 정통 주인이라, 따라서 자기네야말로 진정한 중원의 주인이라 하였다. 여기서 동이(東夷) 고구려의 무게는 차차 올라갔다.

한때는 동방의 오랑캐라 하여 우습게 보고 멸시하던 고구려지만 지금 세 천자 정립한 이때, 그래도 호(胡)가 아니요 만(蠻)이 아닌 의과의 나라〔衣冠之國[의관지국]〕 고구려를 자기네 편에 끌어 넣으려는 공작과 경쟁이 시작되었다.

동천왕(東川王) 사년, ‘위’의 둘째 임금 명제(明帝) 청룡(靑龍) 이년에, ‘위’에서 친선사가 많은 예물을 받들고 고구려로 찾아왔다. 이리하여 동 방 웅국 고구려와 서방 신흥국 ‘위’는 서로 친선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자 다음해에 ‘오’에서도 고구려로 친선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위’와 이미 친선 관계를 맺은 고구려로서는, ‘오’와 친선 관계를 맺는 것은 고구려 덕의에 용납되지 않는 바였다. 그래서 ‘오’에서 온 바의 사 신을 목 베어 그 목을 ‘위’에 보냈다.

‘위’는 고구려와 친선 관계를 맺기는 맺었다. 그러나 ‘위’와 고구려는 국경선(國境線)이 서로 맞닿은 관계로 끊임없이 작은 충돌이 있었다. 연해 연방 국토를 확장해 나아가는 고구려라, 자연 국경선 가까이서는 딴나라와 충돌이 생기는 것이었다. 요(遼)땅으로 늘 진출해 나가는 고구려라, ‘요’ 땅의 종주권을 가졌노라고 자임하는 ‘위’와는 자연 국경선상의 충돌이 없 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한토에서는 또 ‘국가놀이’가 진행되었다. ‘위’, ‘촉’, ‘오’ 의 삼국도 선 지가 한 사십 년 되었으니 시작될 만도 하였다. ‘진(晋)’이 새로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위’와 ‘촉’을 멸하고, 십오륙 년 뒤에는 ‘오’까지 없애고 한토를 또 통일하였다.

그 통일이 한 사십 년 계속된 뒤에는 북방 오랑캐 족속〔匈奴[흉노]〕이 일어나 ‘한〔前趙[전조]〕’을 세우자, ‘진’은 남방으로 쫓겨 내려가고, 소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를 현출하였다. 흉노(匈奴), 선비(鮮卑), 갈(羯), 저(低), 강(羌)의 북방과 서방의 다섯 오랑캐가 북중국 지방에 일 고 자라서, 혹은 오륙 년 혹은 삼사십 년씩 국가 노릇을 하였다. 오호가 전후하여 세운 나라가 합계 열세 나라였다.

동시에 흉노에게 쫓긴 한족의 ‘진(晋)’은 남쪽에서 도망하여 소위‘동진 (東晋)’이 되었다. 한족의 세운 나라도 합계 셋으로 갈라졌다. 이렇듯 한 토의 무수한 민족이 ‘국가놀이’,‘천자놀이’에 골몰할 동안은 고구려는 태평 무사하였다. 눈의 가시같이 ‘요’지방 통일에 방해가 되던 ‘연(燕)’을 ‘북위’를 시켜 멸하고, 혹은 동과 남으로 더욱 국토를 넓히어, 광개토왕(廣開土王)과 장수왕(長壽王)의 두 명주의 재위 일백여 년 간에는, 이제는 누구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동방의 대제국으로 약진하였다.

서쪽 나라들은 여전히 국가놀이 -국가 도태 작용- 가 계속될 때에, 그때 갓 송(宋)을 멸하고 생긴 남제(南齊)에서 건국한 첫 해, 많은 예물과 함께 고구려 임금 장수왕께 ‘표기대 장군(驃騎大將軍)’의 벼슬을 보냈다. 표기 대장군의 직함을 남제의 천자에게서 받은 장수왕(육십칠년이었다)은 거기 대하여 고맙다는 사례사를 보냈다. 그런데 불행 고구려의 그 사례사는 남제로 가는 길에 ‘북위’군사에게 잡혔다. 길이 고구려에서 중국 영토 어디를 가려 해도, 북위를 거치지 않고는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금 고구려와 친선 관계를 갖고 있노라고 자신하던 북위의 천자는 크게 노염을 냈다.

“너희는 남제에 서방질을 하느냐?”

질투의 사신이 고구려로 왔다.

그러나 고구려 장수왕은 일소에 붙이고 말았다.

“버려 두어라! 경쟁이다. 이제 북위에서도 남제에 질소냐 하고, 짐께 벼슬을 보내리라.”

과연 이 임금 승하하자 북위에서는 허둥지둥, 차기대 장군(車騎大將軍) 대부(大傅)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의 벼슬을 보내어 왔다. 그리고 새 임금 문자왕(文咨王)께도 바삐 그만한 벼슬을 보내어 왔다.

새 임금 제삼년에 이번은 남제에서 합계 스물한 자의 엄엄하고 위엄성 있는 기다란 직함이 왔다.

왕의 제 십 칠년에는 ‘양’나라에서도 그만한 벼슬이 왔다.

드디어 노골적으로 봉왕 경쟁(封王競爭)이 시작되었다.

안장왕(安藏王)이년-.

‘양’이 안장왕께 기다랗고 놓은 벼슬을 보냈다. 그런데 그 사신은 불행 오늘 길에 중로에서 ‘북위’에 잡혔다.

‘북위’는 낭패하였다. ‘양’에게 졌다는 큰 일이라 하여 ‘양’에게 지지 않을 기다랗고 높은 벼슬을 급급히 안장왕께 보내어 왔다.

기성 국가는 무론이요, 한토에 생기는 무수한 새 나라는 생기기가 무섭게- 아니 오히려 생기려는 수속 공작으로- 고구려왕께 높은 벼슬을 보냈다. 이 것이 그들의 최급 최대의 정사였다. 말하자면 국가 창립 계출(屆出)이었다.

좀 더 똑똑히 따지자면, ‘국가 승인 신청’이었다.

비 뒤의 죽순(竹筍)처럼, 일변으로 생겨서 한편으로 소멸되는 한토의 뭇 작은 나라들, 혹은 이삼 년 혹은 이십 년, 잘하면 사오십 년 가다가는 쓰러지는 군소 국가들은, 자기네가 스스로 한 국가를 이룩하고도 이것이 과연 국가인지 국가의 자격을 가졌는지, 스스로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럽고 위태롭다. 남이 국가로 인정해 주기 전에는, 스스로 믿기 힘든 미약한 존재다.

동린(東隣)에도 서린(西隣)에도 하도 수두룩한 집단들- 현재 앞 집 김서방도 뒷집 이서방도 부하 몇 명씩 모아 가지고, 장차 세월 좋으면 칭제(稱帝)를 하여보려고 대기하고들 있다. 어느 누가 정말 제(帝)가 되고 국(國) 이 될지, 도깨비판 같아서 예측할 수 없다.

이렁저렁 제 부하 몇 백이고 몇 천이고를 모아 가지고 칭제를 한다 할지라도, 남이 인정해 주기 전에는 너무도 믿기 힘든 존재다.

그리고 그 인정을 받는데도 이웃 나라(다 마찬가지인 얼치기 국가다)에게는 승인을 받으나마나다.

여기 고구려국의 인정이라 하는 것이 천 근의 무게를 갖는 것이다.

건국 육칠백 년, 단일 왕실 밑에서 단일 민족으로 순조롭고 건실하게 자라 기 오늘날에 이른 고구려국의 지위는 진실로 뭇 닭 가운데 한학(鶴)이었다.

한편으로 생겨서 한편으로 사라지는 무수한 국가들이, 내가 천자다, 아니 네가 천자다, 이건 내 땅이다 네 땅이다 야단들 할 때에, 동방에 묵연히 웅 립하여 단군의 후손이요 고주몽의 나라이라는 단 한 가지의 구호를 자랑삼아, 작은 나라들의 아우성을 묵연히 굽어보면, 한 번 휘두르면 천하를 뒤엎을 실력을 가지고도, 오직 내 옛터밖에는 눈거들떠보지도 않는 무시무시하고도 점잖은 나라 고구려―.

이 고구려에게 인정받는 국가라면, 넉넉히 나는 국가이라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강구하다 못해 마지막에 안출해 낸 것이 봉왕(封王) 수단이었다.

다른 인정과 달라서 천자 승인은 좀 예가 다르다.

태수나 제후(諸侯)는 천자가 내려주는 벼슬이니, 어느 ‘천자 욕망자’가 고구려 왕께 이 천자 존속의 권력 행사인 봉왕을 하거나, 장군 혹은 제후로 봉하여서 고구려 왕이 거절하지 않고 잠자코 이를 받으면 즉 고구려 왕은 나를 천자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고구려 왕이 거절하지 않고 잠자코 받게 하기 위해서는, 욕심날 만한 많은 예물과 함께 고구려 왕께는 천자 승인 신청의 후보자인 뭇 제왕(諸王)들이 보낸‘왕’호며 ‘장군’호가 많은 예물과 함께 소나기로 쏟아졌다.

뭇 제왕 후보자들은 고구려 왕께 많은 예물을 보내면서도 내심 전전긍긍하였다.

“퇴하지나 않을까?”

“거절하지나 않을까?”

“모(某)가 보낸 것은 받은 모양인데, 내가 보낸 것은퇴하지나 않으려나?”

그러나 인심 후한 고구려 왕은 누가 보낸 것이든 턱턱 받았다. 거절하거나 사양하는 절차가 귀찮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가운데서 자라는 칠백년에, 고구려는 더욱 커지고 더욱 가멸어졌다. 백성을 자랑하는 저 나라에 비기어서 만성을 자랑하는 고구려, 오호 부스러기인 저 나라에 비기어 사족(예맥, 숙신, 부여, 한)이 한데 뭉친 고구려, 자라고 완숙하였다는 것과 속이 아울러 겉이 그만치 자라니만큼 속(문화)도 찬란히 꽃이 피었다.

북방에는 부여의 웅대한 대자연을 배경삼은 북방 문화가 자랐다. 남방에는 - 국가놀이의 소란한 한 본토를 망명하여, 낙토(樂土)고구려를 찾아 모여든 한인들이 가지고 온 한 문화를 토대삼아, 예술 소질이 풍부한 이곳 토민들 이 만들어 낸 남방 문화(이른바 낙랑 문화며 고구려 문화)가 찬란하게 빛났다.

한토에서는 천자놀이, 국가놀이에 골몰하기 때문에 한 가지의 문화가 계속적으로 자라고 발달되지 못하고, 자라다가는 부러지고, 피다가는 시들어, 온갖 문화의 초생품(初生品)만 잡연하게 널려 있어, 마치 문화 발생 간색 마당〔見本市[견본시]〕인 듯한 느낌이 있는 반대로, 여기 고구려에는 칠백 년간 단일 민족의 손으로 자라고 핀 문화는 온 동방을 찬란한 꽃동산으로 화하였다.

요컨대 한토의 부단(不斷)한 국가놀이 천자놀이의 분요는 고구려로 하여금 외우(外憂)의 근심이 없이 마음 놓고 국가 키우기에 몰두할 수 있게 하였다. 동남방의 소국 백제며 신라(서라벌이 신라라 이름을 고쳤다) 등이 갉작갉작 변방을 긁기는 하였지만, 이런 것은 같은 단군의 후손이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문제삼지 않았다.

서쪽에서 보내는 뭇 왕호(王號)나 턱턱 받아 두고 친선 사절이나 어름어름 교환해서, 저들은 마치 시앗의 경염(競艶) 같아, 서로 곱게 보이기에만 급급하여, 고구려는 언제까지든 베개를 높이 하고 땅이나 두드리며〔擊壤 [격양]〕나라 기르기에나 몰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요(遼) 역내의 옛터도 이제 다 회수하였다. 이제부터는 이 가멸고 기름진 강역을 곱다랗게 유지나 해나가면 그만이다. 더 욕심 나는 것도 없었다.

이러한 때에, 저 한토에는 또 한 개의 새 나라가 생겨났다. 양광이라는 새 장수가 생겨서 한동안 휩쓸더니, 종내 주(周)를 없애고 수(隋)를 세웠다.

“또 하나 생겼구나.”

하고 평범한 일이라 고구려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었다. 고구려 평원왕 이십사년이었다. 북제는 그보다 삼 년 전에 주에게 망하였다. 그 주가 수에게 망한 것이었다.

이제는 한토에서는 진과 수가 남았을 뿐이라, 고구려는 좀 경계하는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족이 수없이 갈라졌기에 자기네끼리의 경쟁으로 다른 데를 돌볼 경황이 없었지만, 그 사이 육칠백 년을 꾸준히 한족에게 무언(無言)의 위협을 가하여, 한족이란 자존심까지 내어던지고 고구려에게 굴해 지내 오던 한족이다.

고구려에게 대한 절치부심하는 심사는 그들의 전통적 사상이다.

중원이라 하고 중국이라 하던 한족의 자존심과 자긍자만심은, 그 사이 육 칠백 년간 동이(東夷) 고구려에게 여지없이 짓밟히어 온 것이다.

한족의 힘이 나뉘어 있기에 그만그만했지 한족이 한데 뭉치기만 하면 그 첫 창끝을 고구려로 견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한족이 넘어지느냐, 부여족이 넘어지느냐, 단군 후손이 망하느냐, 요순의 후손이 망하느냐 하는 단판 싸움은 반드시 벌어질 것이다.

오호십육국으로 갈라졌던 한토가 지금 진과 수의 단 두 나라로 대립되어 남았다 한다.

그들이 동이 고구려에게 설욕(雪辱)하기에 혹은 진과 수가 합세가 될는지도 알 수 없다.

만약 진과 수가 합세가 되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지금 형세로 보아서) 반드시 한 국가가 먹히고 한 국가가 먹어서 단일 국가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때야말로 개벽 이래 억울한 욕(한족이 다른 국가에게 굴해 살았다하는) 에 대한 설욕전이 시작이 될 것이다. 여름에도 두터운 옷을 입고야 살 수 있다는 북국에서, 겨울에도 온갖 과일이며 채소가 때를 자랑하는 남쪽 끝가지- 얼마나 넓은 땅인지 잘 이해하기조차 힘든다. 이렇듯 무변 광대의 영토와 무수한 인구를 가진 한이, 제 나라 온 힘을 한데 뭉칠 수가 있다면 놀랄 만큼 무서운 힘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무심히 보고, 그 나라의 관례에 따라서, 이제 또 어디서 새 사람이 나타나려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보았다.

그러나 새 사람의 출현은 예상 밖으로 더디었다. 뿐더러, 지금 현재 남아 있는 진과 수는 각각 제 힘만 기르고 있는 것이었다. 예전 같은 가벼운 행동은 스스로 삼가는 기색이 분명하였다. 여기서 고구려는 이 형편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위대한 국가 고구려의 사활은 실로 지금 대책을 바로 세우고 잘못 세우는 데 달렸다.

그때의 고구려 대신 을지문덕은 이 별다른 데가 없는 근일 형세에서 여상 한 비상성을 발견하였다.

그 사이 몇 십 년 국가 정무 에너무 골몰하여서 등한시했던 건강을 좀 돌볼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국가의 운명과 국가의 긍지가 걸려 있는 중대한 판국이다.

“급한 일 생기와 급사(急使) 보내오시면 곧 궐하에 달려오리다.”

임금(평원왕)께 하직하고 소리골로 내려와서 산장에 몸을 잠갔다.

경개 아름답고 물 맑고 공기 좋은 소리골에 몸을 잠그고, 유유한 날을 보내고 있는 대재상 을지문덕-.

드디어 그 날이 이르렀다.

진이 수에게 망하였다.

수가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벌써 고구려에 대하여 수상한 말썽을 부리려는 눈치다. 칙사는 곧 소리골을지 대신에게로-. 칙사 따라 올라온 대신은 곧 어전에 달려가 엎드렸다.

“자라기 전- 힘 기르기 전에 부수어 주오리다.”

“오호십육국이 아니라, 오십호십육만국으로 아주 가루를 만들어 주오리 다. 내 나라 고구려 건드릴 딴 생각 품기만 했다가는….”

“저들에게 한족이란 자랑이 있으면 우리에겐 단민(檀民)의 자랑이 있읍니 다.”

고구려 만성을 대표하여 성조(聖祖) 동명(東明)께 굳게 맹세하였다.

효용키로 이름 높은 고구려의 만성은, 자기네의 튼튼한 수령을 맞아 힘을 다해서 수적(隋賊)을 때려 부수기를 하늘과 선조에게 맹세하였다.

평원(平原)-영양(嬰陽)[편집]

여름은 가고 가을도 차차 짙었다.

정무에 고달픈 몸을 산 곱고 물 맑은 소리골서 한동안 쉬어, 다시 예전의 몸을 회복해 가지고 장안(長安) 서울로 돌아온 을지 정승-.

돌아와 보니, 국제 정세는 매우 미묘하게 되어 있었다.

천자는 별 종자며 나는 별 종자랴 하여 내 힘이 남보다 약간만 우월해보이 면 나도 천자가 되어 보려고 덤벼드는 한인이라, 한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허다한 천자가 생겼다가는 없어지고 생겼다가는 없어지고 하여, 한의 역사는 민족의 역사라기보다 오히려 천자 야심가의 연극사라고 하는 편이 옳을- 이러한 역사를 지으면서 내려오다가, 수(隋)나라의 문제(文帝)에 이르러 드디어 뭇 천자 야심가를 토평하고 중국 천지를 통일하였다.

이 사실은 고구려로서는 대안의 불〔對岸의 火〕처럼 무심히 볼 수가 없었다.

한인이 고구려를 밉게 보는 것은 태고적부터였다.

그러나 영주의 통치 아래 통일된 단일 민족으로 개벽 이래 오직 민족 실력만 길러 온 고구려와, 제각기 천자가 되어 보려는 산산이 부스러진 한(漢)민족과는, 그 실제의 힘이 서로 비길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한토에 새로 나라를 이룩한 새 천자는 고구려라는 튼튼하게 자리잡힌 기성 국가의 승인을 받고서야 비로소 국가행세를 할 수 있는 관계상 고구려를 괄시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부득이 고구려에게 머리 숙이고 굴하여 오기는 하였지만, 한민족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동이 고구려에게 여지없이 유린당한 그만큼, 한 인들의 마음에는 고구려에 대한 원심이 자랄 대로 자랐다.

과거 전한(前漢), 후한(後漢) 등 임시로나마 한토가 한 천자 아래 통일되기만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고구려 원정에 손을 대는 그들이었다.

그런지라, 지금 수의 문제(隋文帝)가 한토를 통일하였으매, 통일 사업이 안돈되기만 하면 곧 고구려에게 손을 뻗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소리골서 몸을 정양하고 있다가 수의 한토 통일이라는 비보에 허덕허덕 서울로 달려온 을지문덕-.

그 사이 중국인의 외우(外憂)가 없었으니만큼, 내치(內治)에만 오로지 힘 쓰느라고 국방 관계에는 약간의 결함이 보이기는 하였지만, 워낙 효용한 종족인 위에 민족적 전통과 긍지가 있으니만큼, 그리 힘들이지 않고 천하 무적의 대고구려군을 쌓아 놓았다.

“장차 수적(隋賊)이 내구(來寇)하면 어떡하려느냐?”

“쪽 발가벗겨서 돌려 보내겠읍니다.”

오오, 장하다 고구려 혼아! 동명(東明)성제에서부터 우금 딴 나라 군화(軍靴)에 밟혀 보지 않은 이 거룩한 땅을 지킬 자는 너희 젊은이들이니라.

승상은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고요히 머리를 조아서 그들의 마음을 북돋아 주었다.

임금은 옥체 약간 미령하였다.

재위 삼십이 년간, 저 한토에 일고 잦는 여러 나라에서 아첨의 선물인 대장군호며 왕호를 무수히 받고, 명재상의 좋은 보필을 받으면서 빛나는 대고구려국의 왕위를 누리기 삼십이 년, 안온하고 무사하던 고구려국에 약간의 풍파가 보이려는 듯한 무렵에 옥체에 이상이 보인 것이었다.

“이걸로써 속세를 하직하는가 보구료.”

가을의 석양볕을 영창으로 가득히 받아서 꽤 명랑한 침전에, 을지 승상의 시칙으로 고요히 병상에 누워 있는 왕은 눈을 감은 채 이렇게 말하였다.

“태자도 장성하오셨으니 뒤는 튼튼하옵니다.”

“태자도 장성했거니와 노련한 대신들이 꽉 지키고 있으니 뒷 근심은 추호 없지만 세상 되어 가는 형편을 이 내 눈으로 좀 더 보고 싶구료!”

왕은 눈을 고즈너기 떴다. 늙기 때문에 피부에는 탄력이 없고 눈 정기도 약간 흐릿하지만, 그 아래 감추어져 있는 패기며 영기는 능히 젊은이를 누를 만하였다.

시조(始祖) 동명성제부터 이 왕실에 전통적으로 흘러내린 만만한 투심을, 그것도 또한 유난히 많이 타고난 왕은 재위 삼십이 년간을 평온하게 안온하게 보낸 것이 퍽 미흡하였다. 한토의 뭇 군소 제국들이 오직 고구려에게 아첨하고 환심 사기 위하여 요만한 분규도 없이 안온하게 보낸 왕의 생애(生涯) 삼십이 년간이, 그의 성격에 비추어 보아서 몹시 미흡하였다. 안온한 생애를 다 보내고 임종이 눈앞에 보이는 지금에 한 개의 분규가 생길 눈치였다.

이 운명의 작희에 왕의 눈가에는 적적한 미소의 그림자가 흘렀다.

“하늘은 왜 짐(朕)의 마음을 모르시는고?”

“나랏님도! 온 천하의 천자들을 호령하시며 일생을 보내시고도 아직 부족 하시오니까?”

군신은 서로 마주 보고 미소하였다.

“광(廣-隋帝[수제])에게서 온 편지를 어디 한 번 또 읽어 주시오.”

을지 승상은 왕의 머리맡에 놓인 문갑에서 일전 수제에게서 온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왕의 요구에 응하여 그것을 읽었다.

(略[략]) 雖稱藩附[수칭번부] 誠節未盡[성절미진] 且曰彼之一方[차왈 피지 일방] 雖地狹人少[수지협인소] 今若黜王[금약출왕]不可虛置[불가 허치] 終順更撰官屬[종순경찬관 속] 就彼安撫 [취피안무]王若酒心易行[왕약주심 역행] 率由憲章 [솔유헌장] 即[즉] 是朕之良臣[시 짐지량신] 何勞別遺才彥 [하로 별유재언] 王謂遼水之廣[왕위료수 지광] 何如長江[하여 장강] 高句麗之人[고구려지인] 多少陳國 [다소진국] 朕若不存含育責王前愆[짐약불존함육책왕전건] 命 一將軍[명일 장군] 何待多力云 [하대다력운] 이것이 유명한 개황(開皇) 십년의 문제(文帝)의 새서였다. 요컨대 문제가 천하를 통일은 하였는데, 통일한 체면상 우내(宇內)의 뭇 나라에서 마땅히 조공사(朝貢使)가 와야 할 것이고 수제는 거기대하여 가납(嘉納)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꿈쩍 소리가 없다.

고구려 측으로 보자면, 도리어 전례에 의지하여 한 토의 천자로 즉위한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고구려 왕께 상당한 예물과 벼슬을 보내 와야 할 것이다.

수나라가 한토를 통일하였다 하니, 예전처럼 아첨 경쟁은 안 할지 모르나, 그래도 무슨 인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수나라 측에서 보자면 대국(大國)의 면목이 있다. 한토의 천자면 즉 천하의 주인이다. 천하가 내게 와서 꿇어 절해야 할 것이다. 안 하는 자가 있으 면 대국으로서의 면목상 꾸짖어 절하도록 시키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천하의 주인이 된 수나라, 동이의 나라 고구려에게 절을 받지 못하면 대국으로서의 면목이 없어진다. 고구려로서 절하지 않으면 정토(征討)의 벌을 마땅히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갖은 힘 다 써서 간신히 한토를 통일하나 수는 이제는 동방의 웅국 고구려를 칠 힘이 없었다. 고구려를 건드리려다가는 아직 튼튼히 자리잡히지 못한 내 나라 수가 도리어 부서질 염려가 있다.

대국의 면목상 치기는 해야겠고, 칠 힘은 부족하고- 이 양난(兩難)의 입장에 선 수는, 국내의 지자(智者)들을 다 모아 연구한 결과, 한 장의 새서를 고구려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천하의 주인인 수의 면목도 상하지 않을 겸, 고구려의 노염도 사지 않을 겸- 이런 어려운 역할을 해야 할 새서다. 꽤 신중히 의논하여 꾸민 글이다.

-고구려 너희가 건방지고 괘씸하여 마땅히 너희를 벌할 것이지만, 그리고 너희를 벌하려면 무슨 큰 힘까지 들일 것 없이 아주 손쉬운 일이지만, 너희 가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기만 하면, 너희도 짐의 양신(良臣)이라 구태여 벌해서 무얼 하랴. 그러니 이제부터는 마음 다시 먹고 짐의 헌장(憲章)을 잘 지켜라.

문면(文面)에 나타난 뜻으로는 꾸중에 가깝지만, 이면의 의의는 우리는 너희를 건드리지 않을 터이니, 너희도 제발 잠자코 있어만 다오. 짐의 면목도 있고 하니 남이 보는 데는 제발 너희도 수나라의 번방(藩邦)인 체하여 다오 하는 것이었다.

을지 승상이 읽어 바치는 수제의 새서를 잠잠히 듣고 난 왕은 눈을 승상에게로 굴렸다.

“편지 회답을 하잡니까?”

“회답까지 해 뭘 하리까? 저희네도 회답이 있으리라고는 기다리지 않으리 다.”

“수사(隋使)는 그냥 객관(客館)에 묵어 있소?”

“그럴 줄 아옵니다.”

“그걸 조롱이나 해서 돌려 보냅시다그려.”

“신이 알아 하오리다.”

왕의 환후가 무슨 증세인지는 국내의 이름있는 의원 아무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어디가 특별히 쏜다든가 아프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맥- 기력이 없었다. 사람이란 하루의 피곤은 밤잠으로 쉬고 나면 이튿날 아침에는 다시 새 기운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은 그렇지 못하였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귀찮고, 마음으로는 늘 일종의 강박관념에 위협받 았다.

왕은 이 증세를 곧 당신의 승하할 징조라 보았다. 세상에서 할 사업은 다 끝마쳤고, 태자도 장성하여 뒷근심도 없이 되었으니, 즉 이 세상에는 더 생존할 아무 의의도 없으니 하늘이 부르시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였다.

이 나라의 국민성의 일부를 이룩한 숙명사상의 지배를 받는 왕은, 이번 병상에서는 다시 일어 보지 못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이 지휘하시는 일이라,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안달할 것도 없었다. 너무도 곱게 안온하게 일생을 보낸 것이 그냥 불만일 뿐이었다. 그 밖에는 이 임금 재위 기간 중에 한토에 생겼던 북제(北齊), 진, 주, 통일전의 수 등의 뭇 천자가, 고구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다투어 보낸 예물이며 벼슬을 받으며, 국가적으로 아무 위협도 받지 않고 가멸고 굳센 국가의 광휘 있는 임금으로, 좋은 재상을 좌우에 거느리고 영특한 태자를 아래 데리고, 진실로 왕 자로서도 수월하고 훌륭한 일생을 보낸 것이다.

“좀 분규를 겪어 보았으면….”

이것이 왕의 유일한 유한이었다 하면, 그 일대가 어떠하였는지 넉넉히 짐작할 것이다.

지난날 연파대가 을지 승상을 위하여 향산에서 구해 낸 산삼은 모두 왕의 병상에 바쳤다.

왕은 그 산삼을 쓰면서도 고소하였다.

“하늘이 부르시는데 이런 게 무슨 효험이 있겠소?”

승상이 정성들여 바치는 것이매, 물리치지 못하고 받기는 받으나, 약효는 애당초 생각치도 않았다.

입에 발린 아첨의 말을 할 줄 모르는 고구려인의 천성을 타고난을지 승상은 역시 고소하였다.

“그래도 산촌의 소동이 정성으로 캐어 온 것이옵기 신도 감사히 받아두었 던 것이옵니다.”

“진시황께나 보냈으면 좋아할걸, 짐이야 하늘이 부르시는데… 아까운 신 품을 헛되이 쓰는구료.”

과연 왕은 그 가을 시월에 승하하였다. 재위 삼십이 년간의 부강한 국가의 영특한 임금으로서, 다만 수나라의 거만한 코를 두들겨 주지 못한 것을 한 가지의 한(恨)으로 남기고서 그의 조상의 나라로 떠난 것이었다.

평원왕이라 호하였다.

이십여 년 간을 이 왕을 모시고 협조하여 국가 대성에 큰 공을 남긴 승상 을지문덕은, 이 왕을 보내고 그의 맏아드님인 신왕을 모셨다.

선왕 재위 이십오 년간을 태자로 부왕을 모신 신왕은, 나이로 보나 관록으로 보나, 당당한 대고구려 사직을 물려받기에 아무 부족이 없는 이였다. 게다가 명승상 을지문덕이 선왕의 유명으로 신왕을 보좌하고, 더우기 을지 승 상과는 함께 신왕을 모신 우의(友誼)도 있는 관계상, 군신지간 이상의 의와 친분이 있었다.

진희(陳姬) ‘국향(菊香)’[편집]

일찌기 을지 대신께 바치려고 산삼을 향산서 캐다가 을지 대신을 만나서, 그 길로 정승을 따라온 연파대는 이내 승상 댁 한 방에 우거해 있었다.

천하의 형편이 좀 이상야릇해 가므로, 서울로 돌아와서는 아침 일찌기 입궐하고 저녁 늦게야 귀택하며, 며칠 지나서 임금의 옥체 미령하여 승상이 집에 들어앉을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파대는 승상께 뵈올 기회가 태무하였다.

승상 댁에 비치해 있는 책을 보며 소일하였다. 그 책은 대개가 한적(漢籍) 이었다. 한토에서 한인이 저술하여 발간된 책이었지만, 한토라는 데는 끊임 없는 역왕 난리(易王亂離)와 혁명 소동에, 저술의 본고장인 한토에 전하는 자 쉽지 않고, 동방 낙원 고구려에 도리어 곱다랗게 보존되어 있어서, 본고 향 한토에서는 이름까지 잃은 희귀서(稀貴書)가 을지 승상댁 서고(書庫)에 가득히 들어 있었다.

심심하기 때문에 소일로 읽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거기 빠졌다. 빠져서 탐독하노라면 책이란 것은 또한 읽느니만큼 소득이 컸다.

이십 미만의 한창 총명한 나이의 파대였다. 한 번 읽으면 좀체 잊히지 않았다. 부쩍부쩍 늘어가는 자기의 지식에 스스로 경이의 눈을 던지면서, 파 대는 욕심 사납게도 읽고 또 읽었다.

서고와 제 방에 왕복하는 이외에는, 일체로밖에 나다니지 않고 독서에 미쳤다.

승상의 존재까지 잊었다. 승상도 파대의 존재를 잊었는지, 집에 데려다 둔 뿐 아무 참견이 없었다.

파대가 소리골서 을지 승상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지 거의 반 년이나 지나서 이듬해(영양왕 제이년) 정월이었다.

글읽기에 피곤한 허리를 좀 펴느라고 파대는 뜰에 나섰다.

하늘을 우러르니 북국 특유의 맑게 갠 하늘에는 바람 한 점 없는 양하여, 움직임 없는 고요하고 찬 공기는 도리어 일종의 쾌감을 준다.

파대는 머리를 젖혀 하늘을 향하고 상쾌한 한기(寒氣)를 즐기며 한참을 그 자세대로 서 있었다. 문득 두런두런 하는 소리에 머리를 들고 보니, 지금 막 대궐에서 돌아오는 을지 승상의 수레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모양이었다. 승상 댁에 우거해 있으면서도 승상을 뵈옵기 진실로 오래간만이었다.

그렇게도 사모하고 존경하는 승상을 오래간만에 뵈오매 참으로 반가왔다.

좀 비켜 서서 수레가 가까이 들어와 승상이 수레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수레가 파대의 앞을 지나서 청방 뜰 아래까지 이르러, 승상이 바야흐로 수레에서 내릴 때에, 파대는 빨리 그 앞에 가서 국궁하였다.

“승상님, 오래간만에 뵈옵습니다.”

을지 승상은 고개를 돌려 파대를 보았다. 낯익은 젊은이지만 언뜻 누군지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눈치에 파대가 앞질러 스스로 자기가 누구임을 아뢰었다.

“아! 이게 누구요? 언제 올라왔소?”

“저는 상년에 승상을 따라 올라와서 지금껏 승상 댁에 숙식하고 있었읍니 다.”

“그렇소? 한 뜰안에서 살면서도 모르고 지냈군! 좌우간 들어오오.”

파대는 승상을 따라 청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하도 바쁜 몸이라, 내 집에 객을 두고도 전연 무관심했군. 과히 나쁘게 생각 마오.”

“아이, 대인은… 대인, 보잘것 없는 소동이올시다. 해라를 하세요. 그렇 지 않으면 저는- 당초에….”

마치 소녀처럼 얼굴이 다홍빛이 되었다.

“허허- 남의 사람을 해라야 할 수 있나? 그렇게 어렵다면 허게를 하지.”

“네, 제발….”

평생을 두고 사모하던 어른을 이렇게 가까이 모시고 직접 그이와 수작을 하니 파대는 다만 황공할 따름이었다.

“동무도 없이, 게다가 내가 주인 구실을 못했으니, 그동안 퍽 갑갑했겠군?”

“네, 대인 댁 많은 책을 여쭈어 보지도 않고 꺼내다 읽느라고 적적한 줄은 모르고 지냈읍니다.”

“거 기특하지! 젊은이가 놀든가 장난할 생각을 않고 공부를 한단- 책이란 무슨 책이든 해롭지 않은 게니….”

“하도 읽을 욕심에 급하와 대인께 여쭈어 보지도 않고…”

“천만에! 책이란 읽으라고 생긴 게지 서고에 잠재우라고 생긴 건 아니니까, 읽을 사람이 있으면 읽을 게지. 한창 놀고 싶을 나이에 공부에 빠진담!

기특하지. 참, 젊은이가 그 정성으로 구한 산삼, 나랏님의….”

왕의 일을 말할 때는 으례 승상은 머리를 깊이 숙이는 것이었다.

“탈이 중하시어 나랏님께 바쳤네. 내가 먹은 것보다 더 흡족하겠지?”

“삼의 효험은 보셨읍니까?”

“하늘이 부르시는데 삼 따위가 무슨 보람을 내겠나? 삼의 보람은 못 보셨지만 마음으로 흡족해 하셨지.”

파대는 머리가 수그러졌다. 국왕의 승하고 모르고 지낸 불충의 꾸지람이 가슴을 눌렀다. 아무리 공부에 열중했다기로 이 나라 신자된 도리로 나랏님의 승하도 모르고 지내단, 이런 불충이 어디에 있으랴? 승상은 고요히 말을 계속하였다.

“적자 된 우리로서야 애통망극한 일이지만, 우리 전 나랏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천하 만방을 눈 아래 굽어보시며 일생을 지내셨네. 보수가 고희(古稀)를 지내시어 명민하신 태자께 위를 부탁하시고, 유감없이 떠나셨으니 한 되는 일은 조금도 없네.”

물론 승상으로서는 그 임금을 임종 때까지 모시고 그 뒤 고이고이 안장(安葬)까지 해 모셨으니 한 되는 일이 없지만, 파대는 이 나라 만성으로, 더우기 같은 서울 안에 있으면서, 독서에 혹하여 임금의 승하까지 몰랐다는 불충에 대한 가책 때문에, 충성의 덩어리인 승상의 앞에 감히 머리도 들 수 없었다.

이치로 따지자면 대살림 댁 한편 방에 있는 자기에게 국상 같은 중대한 일도 알려 주지 않은 승상을 나무람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지만, 파대에게 있어서는 을지 승상은 다만 신성한 존재일 따름이지 원망이나 나무람의 대상이 아니었다.

가까이 모시어 본 일은 없었다. 용안조차 우러른 일이 없었다. 따라서 정 으로는 관심되는 바 없었지만, 이 나라 만성에게 전통적으로 새겨져 있는 임금께 대한 충성의 탓으로, 파대는 무거운 자책감을 느낀 것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자기 방에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망연히 앉아 있었다.

돌아와서 망연히 앉아 있는 파대의 귀에, 문득 이상한 음률이 들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저녁을 끝낸 방금 뒤였다. 귀를 기울이니 거문고소리- 무엇을 사뢰는 듯 조르는 듯, 밤하늘에 울리어 나가는 그 음향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마음에 커다란 오뇌를 품은 사람이 몇 가닥 줄로써 가슴의 오뇌를 하소연하는 애끊는 음조에 틀림이 없었다.

자기의 오뇌를 따로 가지고 있는 파대는 처음에는 무심히 들었다. 그러나 무심히 듣고 있는 동안 부득부득 가슴에 사무쳤다. 그 음조는 ‘이런 것이라’는 격식과 틀에 맞는 종류의 것이 아니고, 탄자(彈者) 스스로가 자기의 가슴에 사무친 호소를 거문고를 통하여 사뢰는 진실한 음조였다. 매한가지로 가슴에 큰 수심을 가지고 있는 파대에게는 절절이 심현에 울리는 음조였다. 무심히 귀를 기울이다가 어느덧 공명하였다. 자기로도 무슨 때문인지 모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서서 뜰로 내려섰다. 얼굴과 온몸에 끼얹는 밤의 냉기에 뜻하지 않고 몸서리치면서, 파대는 그 음률의 날아오는 방향을 타진해 보고 그쪽으로 차차 발을 옮겼다.

캄캄한 그믐이었다. 백만을 자랑하는 대고구려 서울 장안경(長安京)도 겨울의 밤은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국상 중의 장안경은 이 나라 만성의 왕실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무한한 정숙이 이을 따름이었다.

파대는 그냥 들려오는 음률을 향도삼아 차차 뒤로 돌아갔다.

이 댁에 몸을 붙인 지 반 년이 넘었지만 지리를 전연 모르는 파대는, 오직 그 음률만을 향도삼아 어딘지도 모르는 모퉁이를 몇 개 돌았다. 그리고 이 댁 후당 쪽으로 들어섰다.

또 한 모퉁이를 돌아서니 비로소 불빛이 보였다. 캄캄한 가운데를 뚫고 오던 파대는, 맞은편에 홀연히 나타난 광명에 한순간 멈칫 섰다.

맞은편에는 별당 한 채가 있었다. 꼭꼭 닫힌 창 안에 휘황하게 켠 불이 창을 통하여 이 근처 일대를 환하게 비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문고의 음률은 그 방에서 울리는 것이 분명하였다.

음률의 유혹에 끌려서 여기까지 무심히 오기는 하였지만, 무슨 목적이나 목표가 없는 파대는 거기 우두커니 서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는 것과 동시에 파대의 머리에는 여러 가지의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음조는 ‘이런 곡조는 이렇게 뜯는다’는 능한 솜씨뿐 아니라, 탄주자 의 마음속 깊이 박혀 있는 오뇌를 진정으로 사뢰는 하소연이니, 그도 정녕 무슨 오뇌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탄주자는 사내일까, 여인일까?

그 섬세한 솜씨로 보아 탄주자는 분명 여인으로 보았다. 여인일진댄 젊은 일까? 노파일까? 또는 중년일까?

그 음조의 박력과 탄력으로 보아서, 세상 만사에 피곤한 노파로 보기보다 중년이나 젊은이로 보는 것이 지당하다. ‘어떤’‘젊은’‘여인’일까? 의문과 함께 일어나는 그 호기심은, 파대로 하여금 그냥 못박은 듯이 그 자리에 서 있게 하였다.

언제부터 시작된 거문고인지 언제까지 계속될 거문고인지, 방 안의 거문고 는 그냥 계속되었다.

그 방 밖에도 몇 채 후당이 우뚝우뚝 서 있는 모양이지만, 다른 방에는 불빛도 인기척도 없고, 오직 그 한 방에서 거문고 소리만이 울려 나오는 것이었다.

그 타는 곡조가 무슨 곡조인지는 파대는 모른다. 그러나 그 곡조는 탄주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곡조다. 젊은 파대의 마음에 푹푹 들어박히는 호소다.

이로써 탄주자는 가슴에 무슨 큰 오뇌를 품은 자일시 분명하였다. 가슴에 오뇌를 품은 ‘젊은 아낙’-.

누구일까? 대신 댁 누구일까?

문득 다른 음률이 한 가지 더 섞이었다. 사람의 육성(肉聲)으로서의 노래였다.

지금껏 거무고로만 하소연하던 음률의 주인은 육성까지 섞어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성(女聲)이었다. 그리고 탄력 많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런데 여기 파대의 호기심과 의혹을 더 크게 한 것은, 그 육성으로 부르는 노래의 가사(歌詞)가 부여 계통의 말이 아니고 한어인 듯싶은 것이다.

한어를 모르는 파대라 분명한어라고 단정키는 힘들었지만, 그 노래의 악센트나 발음이나 청이 분명한어 계통이었다.

(한어? 한녀-漢女?) 알지 못하는 방언이라 가사의 뜻은 알아들을 바이 없지만, 거문고와 어울 려서 들려 오는 그 육성은 오장을 끊는 듯한 무슨 호소일시 분명하였다.

(공녀-貢女일까? 을지 승상의 애첩일까?) 파대는 머리를 기울였다.

한토에 생기는 뭇 제왕들이 고구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고구려 왕께 무슨 높은 벼슬과 함께 값나가는 보물을 보내는 전례가 있는 것은 파대도 아는 바였다.

그러면 저 노래부르는 한녀는 저곳의 어느 천자가 고구려 대신 을지공에게 그 환심을 사고자 보낸 한희(漢姬)일까?

저 여인은 을지 승상의 한 애첩일까? 외국 여인을 애첩으로 두었다는 일종의 분개심이 을지 대신께 일어나려는 것을 파대는 힘있게 눌렀다.

을지문덕은 파대에게 있어서는 다만 신성한 존재였다. 그 신성한 존재에 대하여 신성치 못한 현실이 보이려 할 때에, 파대는 마음에 저절로 일어나려는 불쾌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눈앞의 현재한 외국의 젊은 여인을 보매, 그런 것이 있는 이상은 을지 승 상의 신성이 얼마간 깎일 것이로되, 그래도 승상만은 절대로 신성시하고 싶은 파대는, 이 불쾌한 현실에 직면하여, 자기가 여기까지 나왔던 것을 후회하였다. 그리고 내 방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발을 떼려 하였다.

그때 후당 안에서 들려 오던 거문고소리가 문득 그쳤다. 그리고 거문고를 약간 밀어 놓은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아!”

그것은 노래부르던 음성의 탄식성이었다.

“이젠 다 뜯으셨어요?”

후당 안에는 두 명 이상의 여인이 있는 양하여, 노래부르던 음성과는 다른 음성이 하는 말이었다.

“아유 곤하다! 이젠 자련다.”

분명 고구려 발음이 약간 서투른 외국 여인의 말이었다.

“곤하시구말구요! 언제부터 시라구-금침하리까?”

“승상도 주무시는지?”

“승상께서는 자정이 지나서야 주무시니까 아직 안 주무실걸요.”

“그럼 나도 더 앉아 있으련다. 승상께서도 그냥 기침해 계신데, 나 같은 것이 벌써 다리 뻗고 자서야 되겠니?”

그 뒤에는 기다란 한숨- 적적하고도 진실미를 띤 한숨이었다.

그 한숨소리에 동정이 간 듯한 시녀의 소리가 뒤를 이어났다.

“참 아씨도 적적하시겠어요. 젊으신 신세로 부모님 슬하를 떠나 만리 밖 타국에- 쇤네 같으면 가슴 답답해 탁 죽겠는걸요.”

“답답하거든 장지문이나 좀 열어라.”

“창문 연다고 가슴 답답한 것이 좀 나으리까?”

“하여간 좀 열어라.”

그 소리에 응하여 밖으로 향한 장지문이 더르륵 열렸다.

안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을 피해서 약간 비켜서며 파대는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광명한 촛불 화광 아래 드러난 방 안의 광경은 파대의 앞에 전개되었다.

시녀와 마주 거문고를 약간 밀어 놓고 앉아 있는 색시는 분명한녀였다.

나이는 십 칠팔-.

세도를 자랑하는 한 토의 어느 천자가 고구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고르고 골라서 보낸 선물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희대의 미녀였다. 그 눈초리, 입매, 눈매, 코 모양, 추호나무랄 데가 없는 희대의 인품이었다. 불쾌한 감정으로 그 여인을 보려 했고 또 보아야 할 파대였지만, 열어 젖힌 창 안에 나타난 한녀의 자태에 눈을 던질 때, 파대는 황홀하여 눈이 아득하였다.

문창이 열리기 때문에 파대는 황홀히 어두운 쪽으로 비켜 섰지만, 안에서 의 이야기는 그냥 계속된다.

“고국 만리….”

“가시고 싶으시겠어요.”

“아니 추호도 가기 싫다. 승상께서 두어 주시기만 하시면 한 백 년이 나라에 살고 싶다.”

“아씨, 창을 열면 아직 몹시 서늘한걸요. 도로 닫읍시다.”

“좋도록 하려무나.”

다시 창이 더르륵 닫혔다.

창이 열렸던 시간은 진실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닫겼다.

짧은 시간이니만큼 파대가 그 한녀를 본 것도 잠깐 사이였다. 그러나 창이 도로 닫힌 뒤에는, 파대는 마치 그 창에 넋을 앗긴 사람처럼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을 파대는 분명 공녀요 승상의 애첩으로 보았다. 저런 미녀를 차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시기와 부러움에 가까운 감정 이 일어남과 함께 욕심까지 무럭무럭 일어났다. 숭배하여 마지않는 승상 을 지문덕과, 미인 한녀의 주인을지 승상과는 분리되어, 을지 승상에게 대한 엷은 시기까지 일어났다.

예전 같으면 을지 승상께 대한 불쾌한 감정은 죄악으로 여겨서 스스로 크게 꾸짖을 파대였지만, 평소 경건함을 자랑하던 파대의 마음에도 그런 더럽고 불쾌한 감정이 연해 일어나는 것은 금할 수가 없었다.

방 안에서 불을 끄고 자리에 드는 소리를 듣고야, 파대는 무슨 큰 보물을 떨어뜨린 듯한 애석한 느낌을 가슴 부듯이 느끼면서 제 방으로 돌아왔다.

×

그 젊은 미녀는 과연 공녀였다. 진(陳) 천자가, 진이 수에게 망하기 직전에, 무슨 보람이라도 볼까 하여 고구려 대시니 을지문덕에게 보낸 황실지친(皇室至親) 가운데서 고르고 고른 특선 미녀였다.

이름은 국향(菊香)이라 하였다.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사람의 나이 열일곱이라 하면 아직 소꿉질이나 할 철없는 나이지만, 궁녀 삼천이 염( 艶)을 다투는 진나라 제실에서 자라난 국향이는 본시 오된 천성이라, 인간사의 얽히어 나가는 데 대강 짐작이 가는 계집애였다. 당시 어지 러운 판국에서 한때는 제후국(諸侯國) 천여 개로까지 갈라졌던 중국땅이 차례로 다 없어지고 진과 수만이 남게 될 때에 국향이는 장차 반드시 진은 수 나라에 먹힐 것을 알았다.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은 중국 계집애의 생각하는 바 아니다. 산 사람에게 거미줄 치는 법 없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라 믿었다. 그의 생활 환경이 그에게 가르친 바와 같이, 자기는 얼굴이 예쁜 계집애니 누가 거두어 줄 것으로 알았다. 자기를 끔찍이 귀애하던 어버이의 슬하를 떠나는 것은 마음 에 걸렸지만, 계집이란 필경에 부모 슬하는 떠나서 지아비의 품으로 가는 것이라, 이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라, 다만 하늘이 시키는 대로 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어떤 날 부왕(父王)은 국향이에게 편지 한 장을 맡기며, 이것을 가 지고 고구려고 가라고 분부하였다.

고구려? 동이?

이 나를 동이의 나라로?

고구려로 시집을 보내?

몇 가지의 의문이 그의 머리에 끓었다.

“고구려는 누구를 찾아가랍니까?”

“응, 그도 그럴듯한 말이다. 고구려의 승상 을지문덕을 찾아가서 내 글월을 전해라.”

“그 나라에도 승상이 있읍니까?”

“승상 벼슬은 짐이 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 나라에서는 저희끼리 주고 받고 하는 모양이더라.”

“그럼 오랑캐 나라이외다그려?”

“그럼 오랑캐지- 아아! 짐도 불운해서 오랑캐에게 딸을 부탁하는구나!”

그로부터 국향이는 고구려로 갈 준비로 우선 고구려 말을 익혔다.

그러는 동안 수 문제의 이끈 친위대가 홀연 이 진나라 도성으로 달려들었다.

이 소란스러운 찰나에 국향이는 미리부터 준비해 두었던 남복으로 바꾸어 입고 부왕 앞에 하직의 인사를 드리러 갔다.

“폐하! 소녀는 을지 공께로 가겠읍니다.”

“오오, 잘 가거라! 을지가 너를 용남만 하거든 평생을 두고 잘 섬겨라.”

적병이 벌써 궁정 안까지 들어온 듯 소란스러운 가운데서, 총총히 부왕께 하직하고 국향이는 대궐을 빠져 나왔다.

그로부터 국향이는 망명의 길이었다.

여자의 발걸음이라 세지도 못한 발걸음으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여 진나라 서울을 빠져 나왔다.

그가 산동(山東)의 어떤 바닷가에 다다랐을 때에 비로소 부왕의 부보를 들었다. 부왕은 수 문제에게 욕보는 것을 피하여, 궁정 안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국향이에게 그리 큰 충격을 주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다만 ‘망명’‘피신’이라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서 이 소란한 진나라를 피해서 소문에 듣던 낙원 나라 고구려로 가자. 그리고 고구려의 승상 을지문덕이라는 사람에게 이 내 운명을 내어 맡기자.

이 한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은 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우물에 몸을 던져서 죽고 어머니가 난 군중에 참혹한 욕을 보고 드디어 죽기까지 하고, 그의 형제가 모두 비슷비슷한 화를 입고 목숨까지 잃는 가운데서, 재빨리 몸을 피해서 신상 아무 피해도 입지 않고 망명의 길을 가는 것은, 부모며 형제에게 비기어 훨씬 다복한 것이었지만 국향은 다만 이 피곤한 다리와 몸이 괴롭고 쑤실 뿐이지, 세상 다른 일은 거들떠 보기도 싫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만리 길을 가는 국향이었다. 더우기 부모 형제를 한꺼번에 잃은 천하에 외로운 몸이었다. 명랑한 천성이요 티 없는 마음씨건만, 때때로 폭풍우같이 그를 엄습하는 공포와 적막감이 있었다.

제실에 태어난 존귀한 몸이라는 자긍심이 있기에 아무 겁 없이 이 고단한 길을 가지, 세상 보통의 계집애였더면, 한 걸읆을 옮기기에 힘들고 무겁고 도 어려운 입장이었다.

아버지 황제에게서 고구려 승상을지 공께 부치는 글월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열일곱 살의 어린 몸으로 만리 길을 가는 국향이는, 비록 남복은 하였다 하나 그래도 열일곱 살 무르익은 처녀로서의 체격이었다.

스스로도 이를 짐작하는 국향이는 전전긍긍 유심한 눈을 피해 가면서 고구려나라로 길을 채었다.

한 열흘 지나서 어떤 곳을 가노라는데, 길가의 어떤 집에서 무슨 시비가 생긴 듯 무엇이 왁자그르 하더니, 웬 여편네가 뛰어나오며, ‘고구려의 아낙은 그런 짓은 안 한다’고 고함을 꽥 지르고 저편으로 달려간다.

고구려와의 국경이 차차 가까와 오는 모양으로 ‘고구려 아낙’‘부여의 젊은이’ 등등의 소리가 차차 자주 들린다.

소란의 진나라를 망명하여 고구려를 찾아가는 국향이로서는, 그 고구려라는 말에 아주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더우기 ‘고구려 아낙’‘부여 젊은이’라는 그 말들은 모두가 나는 당당한 고구려 사람이로라는 자랑으로서 내던이는 경우에 쓰이는 것이었다.

‘진나라 아낙’‘진나라 젊은이’- 국향이는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어울리지 않고 쑥스러웠다.

아아! 고구려 사람은 이렇듯 자기가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는가? 이 중국땅 안에서도 고구려 사람이로란 것을 탕탕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느니만큼, 고구려 사람은 제 신분을 자랑스러이 생각하는가?

국향이는 여기서 제 국적의 자랑이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었다. 내가 진나 가 제실의 딸은커녕 이 고구려나라의 한 농군의 딸로라도 태어났더면, 나는 천하에 고구려 사람이라고 외칠 수가 있겠거늘-.

태고적부터 고구려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세하며 내려온 이 고구려인들은, 언제까지나 그것을 자랑하며 지내려는가?

“하늘의 아들 하백(河伯)의 사위, 고주몽의 나라의 만성-.”

이라고 외치는 것이 고구려의 행세다.

그리고 그것을 구호로 삼느니만큼 고구려인은 떳떳하고 버젓하게 살았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백제인이며 신라인은 자기가 백제인(혹은 신라인) 이란 것을 자랑치 못하며 지내는 동안, 고구려인은 그 첫마디에 벌써 ‘하 백의 사위 나라 만성이로라’고 호통을 하고, 이 호통만 한 번 내리면 다른 인종들은 꿈쩍 못하고 잠잠하여 버린다.

차차 자주 들리는,

“부여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는 호통을 들을 때마다 가슴에 흠칫흠칫 울리는 것을 느끼며, 장차 나도 을지 공이 이 내 몸 용납만 해준다면, 그때는 남에게 향하여 ‘부여의 아낙’ 소리를 크게 외쳐 보리라 새삼스레 결심하며, 더욱 동쪽으로 동쪽으로 발을 옮겼다.

고구려의 국경이 차차 가까와 오자, 기이한 현상으로는 흰 옷 입은 사람이 가속도로 늘어 가는 것이었다. 국향이 아버지의 나라를 망명할 때는 구월 중순으로서 지금이 한창 섣달이나 정월일 터인데 흰 옷 입은 사람이 많은 것이었다.

고구려는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일찍부터 들었지만, 겨울 흰 눈에 덮인 세상에 흰 옷 입은 사람의 움직임은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검은 옷 무색 옷 입은 사람의 무리가 몇 백 명 혹은 몇 천 명씩 집단이 되어 고구려로 고구려로 가는 무리가 부지기수였다. 이는 모두가 소란한 한토를 망명하여, 동방 낙원이라는 고구려를 사모하여 그리로 밀려 가는 한족 무리들이었다.

관(關)을 넘어서면서 국향이로 하여금 처음 눈을 크게 한 것은, 백 리, 천 리를 한 일자로 금그은 듯 곧추 뻗은 포도였다. 이게 길이냐고 놀랄 만큼 넓고 긴 길이 몇 백 리 몇 천 리를 그냥 뻗은 것이었다. 뒤에 안 바이지만, 고구려 서울 평양 근처의 양회를 캐내어 길에 바르면 이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 넓은 길에는 고구려 젊은이들이 마치 전쟁인 듯 말을 이리저리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큰 길을 한인 망명인들이 끝 닿은 데까지 그냥 연이어 있고, 고구려의 관원은 곳곳이 지켜 서서 망명인들을 검문하고 있다.

과연 동방의 웅국이요, 수나라와 천하를 다투려는 고구려의 기백은 온갖 곳에 사무쳐 있었다.

홑몸인 관계상 고구려의 관원의 검문을 곱게 피해 오던 국향이도 한 관문에서는 드디어 걸렸다.

“여보! 젊은 양반 어디까지 가오?”

“네, 장안 서울까지 갑니다.”

“어디서부터?”

“네, 저는 강남 사는 상인이온데….”

미리 준비하였던 변명을 하려는데 관원은 국향이를 의심쩍다 보았는지,

“이리로 좀 비켜서 주시오.”

하여 한편으로 치워 놓았다. 그 다음 사람은 오십쯤 난 점잖은 사람과 그의 가족으로서, 소란의 곳을 피하여 고구려로 가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왜, 못 살겠읍니까?”

“나라가 하두 자주 변하니 누구를 믿고 삽니까? 그래서 단군 선인(仙人) 의 나라로 살러 옵니다.”

“잘 생각했소. 고구려에 오시면 탁 마음 놓고 지내시오.”

이 검문이라는 것은 목표가 백제인이나 신라인에 있는 것이다.

백제인이나 신라인이 연해 진나라 수나라에 잠입하여 고구려와의 사이를 이간 붙이고 나쁘게 되도록 공작을 한다.

그 악질적 간첩들을 예방하기 위하여 국경선 근처에는 방첩 감시가 꽤 엄중하다. 그 사이 곱게 피해 오던 국향이가 드디어 고구려 방첩 관원의 눈에 수상타 여겨 억류를 당한 것이었다.

국향이는 관원에게 끌리어 인도하는 데로 따라갔다.

조금 가다가 큰 홍살문 하나를 지나서 좀 더 가노라니, 방적 제일관(防狄 第一關)이라 큰 간판이 달린 아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각곳에서 억류된 수많은 사람이 두룩거리고 있다. 맨 끝에 자리 잡고 앉아서 보노라니, 대국 고구려의 기품은 이런 곳에서도 넉넉히 볼 수가 있었다. 한 사람씩 끌어 내어서 한두 마디 물어 보고는 그냥 돌려 보내는데, 만약 시장한 기색이 보이면 배불리 먹이기까지 하고 노자가 없으면 노잣냥도 주기까지 해서 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국향이는 거기 앉아서 고요히 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노라는데 웬 소년 하나가 국향이 곁으로 오더니, 국향이를 손짓하여 데리고 안으로 앞서서 들어간다.

이 나라 사람의 체통이 본시 굵직굵직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문의 청사들도 모두 넓고 컸다. 큼직한 방 몇 개를 지나서는 내정인 듯싶은 곳에 이르렀다. 그러자 내정에 시종드는 듯한 계집 하인이 인도를 한다.

좀 유다른 신분이요, 유다른 체질을 가진 국향이는 이렇듯 색채 다른 대우 를 당하니 가슴이 선뜻하였다.

(어쩌려는 셈인가?) 좌우간 당하는 대로 겪을 밖에는 없는 국향이는, 다만 공손히 따를밖에는 없었다.

몇 뜰을 지나서 몇 방을 건너서 어떤 큰 집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는 그 밖에 있는 하인에게 또 국향이를 맡겼다.

새로 국향이를 맡은 계집하인은 국향이와 연갑세나 될 아름다운 소녀였다.

“아이, 곤하시겠어요. 이리 올라와 쉬세요.”

하면서 국향이를 위로 오르라 청하였다.

관청에 간 촌닭이라 하지만, 사실 시키는 대로 할 외에는 딴 도리 없는 국향이는 서슴지 않고 거기 댓돌에 앉아 감발을 풀고 주저치 않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계집 하인은 국향이를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쇤네가 문밖에 꼭 지킬 터이니 마음 놓고 다리 뻗고 쉬세요.”

감발을 벗노라니 발에서는 고린내가 물컥 났다. 그 사이 만리길을 자고 깨면 걷고 또 걸을 피곤이 감발을 푸는 순간 한꺼번에 올랐다.

“나 좀 쉬겠어요. 어이 참 곤해 죽겠군….”

하며 국향이는 염치 불고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다리 기다랗게 뻗으며 자빠졌다.

-사람의 세상이란 이처럼도 살기 고단하고 어려운 것인가?

누구 다리를 좀 쳐 주는 고마운 사람은 없는가?

몽롱하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는 스스로 펄떡 놀라 깨고 하였다.

“서방님! 서방님!”

두세 번 부르는 소리에 국향이는 펄떡 깨었다. 어느덧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깨어 보니 아까의 계집 하인이 문밖에서 국향이를 깨우는 것이었다.

“어! 뭐야?”

“주무세요? 이 밀수 한 잔 잡숫구 또 목욕물이 더웠는데 목욕하시구, 아주 편히 주무세요.”

계집 하인은 밀수가 든 큰 은그릇을 국향이의 앞에 공손히 바쳤다.

국향이는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아유! 아유….”

뜻하지 않고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를 막지 못하며, 일어나서 한 대접이 되 는 밀수를 받아서 단숨에 마시었다.

“자! 목욕탕으로 가세요.”

그러나 국향이는 일어설 자신이 없었다. 그 사이 악에 받쳐서 쉬지도 않고 여기까지 걸어오기는 하였지만, 한 번 다리를 뻗고 나니 다리 쓸 자신이 없 었다.

“목욕은 싫으이, 하두 발이 더러우니….”

“더러우셨기 목욕을 하셔야지. 자, 일어나세요.”

“그럼 날 좀 업어다 주게.”

여자 된 몸으로 남복으로 예까지 온 국향이에게는 이 목욕이라는 것은 여 간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의 제실의 공주로 몸에 때라는 것을 모르고 자란 국향이가, 이번에 비로소 서너 달을 만리길을 걸으며 오노라니, 몸에는 때 투성이요, 먼지 투성이로서, 목욕은 못하나마 하다못해 세수라도 하고 싶은 욕망은 여간이 아니지만, 사내 행색이라는 한 가지의 일 때문에 세수 한 번도 못하고, 몸이 끈적끈적한 것을 간신히 참아 가면서 오는 길이다.

“자! 어서 그럼 쇤네께 업히셔요.”

국향이는 몽치같이 된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몸을 계집 하인에게 돌리면서,

“난 철든 이래 남 보는 데서 몸 벗은 일이 없는 사람인데….”

하며 중얼거렸다.

“아이구, 서방님두! 서방님이 아니구 아주 도련님이셔! 이 고구려 사람은 남의 벗은 몸 보라 해도 보지 않습니다. 자 업히셔요.”

국향이는 계집 하인의 등에 몸을 실으면서 요것이 능히 나를 업을까 의심하였는데, 계집 하인은 국향이를 가볍게 업고 일어서서 통통걸음으로 얼마를 가더니 내려놓는다.

“자! 이 안이 목욕탕입니다. 또 여기 이 열쇠를 드릴 테니 안에 들어가셔서 마음 놓고 문을 잠그시고 그 사이 석 달 쌓인 때를 죄닦으세요. 쇤네는 물러가겠읍니다. 쇤네를 부르시려면 여기의 징을 서너 번 두드려주세요. 그러면 쇤네 곧 대령하겠읍니다.”

그런 뒤에는 국향이에게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저편으로 물러갔다.

제일관에서 검문하는데 억류를 당했으면 자기는 으례히 수인(囚人)일 것인 데, 수인답지 않은 이런 모든 융숭한 대접에 국향이는 적지 않게 의아하여, 거기 내려놓인 채 잠시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계집하인이 물러간 뒤에도, 국향이는 한 손가락도 움직이기 싫어서 그냥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일단 물러갔던 계집 하인이 또 통통 이리로 달려온다. 무엇을 한아름 안고서-.

“아이머니! 아직 목욕탕에 안 들어가셨어요? 물 다 식겠네!”

수선을 떨더니 가슴에 붙안고 온 물건을 거기 내려놓는다.

“목욕하시고 이 옷 갈아입으시라구 마님께서 내어주셔요.”

고구려 비단으로 꾸민 위아래 옷 한 벌이었다.

“나! 어서 목욕탕에 들어가세요.”

“들어가지.”

무릎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다리가 몽치같이 뻣뻣하게 되어서 마음대로 놀릴 수가 없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다가 그냥 모로 쓰러졌다.

다시 계집하인에게 몸을 의지하고 겨우 목욕탕 문 안까지 들어섰다.

문에 쇠를 잠그고 국향이가 제 낡은 옷까지 다 벗을 때는 꽤 한참 되었다.

몇 번을 두루 살펴서 바늘 구멍만한 틈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비로소 몸을 홀랑 벗었다. 발에서 비롯하여 종다리까지 새까맣게 때로 덮인 것이 우선 눈에 띄었다.

거기는 열일곱 살의 무르익은 처녀로서의 살결은 엿볼 수가 없는 대신에, 부왕의 심려로 닦달한, 승마와 비수로 단련된 야문 근육이 그 사이 몇 달 동안 고된 길거리의 때에 덜 민 까무퇴퇴하고 얼룩진 몸뚱아리가 아래로 뻗어 있었다.

하인이 준비해 준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물에까지 내려섰다.

내려서기는 했지만 이때로 덜 민 몸을 염치에 수정같이 맑은 물에 잠그기가 부끄러웠다.

국향이는 거기 있는 바가지로 물을 떠서 몸에 발라서 우선 가장자리에 쫑그리고 앉아서 초벌 멱을 감았다. 한 번 손으로 밀면 국수처럼 몽기몽기 밀리는 때를 한 번 통 밖에서 벗긴 뒤에 그것을 온통 아래로 흘려 보내고야 비로소 몸을 목욕물에 잠갔다.

덥도 차도 않은 꼭 알맞은 물이었다. 문을 꼭 잠그고 때를 씻을 때에도 누가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혹은 물에 비친 제 그림자에 스스로 깜짝깜짝 놀라고 하였지만, 물 속에 드러앉으니 마음이 쭉 펴진다. 국향이는 물 속에서 팔과 다리를 힘껏 펴 보았다.

꽤 오랜 시간을 물에 잠겨 있었다. 온몸이 쑤시는 것이 거의 풀린쯤하여 서 국향이는 일어섰다. 이마에까지 땀이 훈훈히 내배었다.

물 속에서 나와 몸을 말리고 준비된 옷을 갈아입었다. 벗어 놓은 낡은 옷에 다른 소지품은 없지만, 부왕의 을지 승상에게의 편지가 하나 있으므로 낡은 옷을 뒤적여 그 편지를 얻어 내어 간직하였다.

그런데 낡은 옷을 뒤질 때에 시꺼먼 보리알 같은 이를 몇 마리 발견하였다. 그 이도 내 몸에서 떨어진 것이겠지만, 국향이는 몸서리치며 옷을 집어 던졌다.

준비되어 있는 고구려 옷을 갈아입고 아래를 굽어보니 정녕 한 얌전한 고구려 젊은이였다.

한데 자기는 무엇인가? 포로인가, 수인인가, 손님인가? 여기서 자기에 대 한 대접이 너무도 융숭하므로 자기의 입장을 얼른 알 수가 없었다.

낡은 옷을 가지고 갈까 어쩔까고 잠깐 주저하였다. 서너 달을 만리길을 몸에 걸쳤었던 정의는 잊을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더러운 품이 차마 몸에 걸칠 수 없어서, 얼른 손끝만 대어 보고 그냥 내어버리고 문을 열고 문밖에 나섰다. 문밖에는 계집 하인이 다소곳이 국향이의 목욕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다 하셨어요? 이리 오세요.”

하며 국향이를 인도한다.

이번 인도된 방은 장대(帳臺)가 둘린 것으로 보아 침실인 모양이다. 아직 채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 방에는 벌써 촛불이 켜 있었다.

“저녁 진지 내어올께요.”

“아아, 저녁이구 뭐구 하도 오래간만에 목욕을 했더니 그저 어서 자기나 했으면 좋겠다.”

“곧 내어올께요.”

계집 하인은 저녁을 가지러 저쪽으로 간다.

국향이는 장대 안에 들어가 다리를 펴며 누웠다. 두툼한 보료며 이부자리 가 준비되어 있었다.

진나라 대궐을 망명한 지 겨우 서너 달이 지나지 않지만, 그 사이 겪은 숱한 고난과 고생은 인간 백 년에 겪고 또 겪고도 다 못 겪을 만한 분량이었다. 그런 고생 뒤끝에 또 이 뜻안한 융숭한 대접은, 비록 뒤에 큰 욕이 예약된 것이라 할지라도 국향이에게는 고맙고 달가운 일이었다.

수라반에 지지 않을 훌륭한 저녁상을 대강 받는 것처럼 하고는 물리고 국향이는 어서 자기로 하였다.

“이 방에는 쇠 없는가? 나는 꼭 쇠 잠그고야 자는데….”

“서방님두, 꼭 색시같이 무슨 내우를 그렇게 하세요?”

“좌우간 쇠 없는가?”

“고구려 집은 쇠 없는 방이 없답니다. 갖다 드릴까요?”

“응, 그래.”

하인이 가져온 쇠를 문에 굳게 잡그고 국향이는 마음의 다리까지 쭉 뻗고 장대 안에 드러누웠다.

(나는 지금 무엇인가? 죄수인가 손님인가?) 자기는 분명 통관(通關)에 걸려 억류된 인물- 말하자면 이 나라의 한 죄수 다. 문초를 아직 안 받았으니 결정된 죄목은 없겠지만, 방적관 관원에게 억류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억류된 피의자이면, 우선 그 신분을 밝힐 문 초가 있어야 할 터인데, 아무 문초도 없이 억류된 이때껏 무슨 귀한 손님이 나 대접하듯 공손하고 극진한 대접으로 아직껏 지냈으니, 대체 이 고구려라는 나라는 죄수의 대접을 이렇게 하는 나라일까?

이런 생각을 막연히 하면서 촛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집 모퉁이 낟가리 틈 어디든 몸 눕힐 곳만 있으면 거기 구겨박혀 하룻밤을 지내고- 이렇듯 고된 삼사 삭을 겪고 나서 여기서 비로소 장대에 들어서 팔 다리 마음대로 뻗고 편히 한 밤을 지낸 국향이는, 아침은 꽤 늦게야 눈을 비비며 깨었다.

처음에는 여기가 어딘지 분간이 안 났다.

장대의 장을 약간 걷고 내다보았다. 어제 시중들던 계집하인이 있는 것을 보고야 어디인지 이해가 갔다. 국향이는 옷 앞자락을 여미며 장대에서 내렸다. 등대되는 세숫물에 활활 얼굴을 씻고 나자 곧 조반상이 들어왔다.

‘메유파즈’라는 중국인의 커다란 철학 가운데서 자란 국향이로서는, 이 모든 알 수 없는 사물 가운데서 그저 겪고 지냈다.

국향이가 조반을 끝내자, 계집 하인은 이번엔 국향이를 또 다른 방으로 인도하였다.

“이게 서방님 방이온데 마음 놓고 들어가 쓰세요.”

그것은 얌전한 책실이었다. 그런데 국향이로 하여금 의외의 느낌을 가지게 한 것은 그 책실은 사내의 것이 아니요 여자의 책실이었다. 고구려 자기로 만든 가지각색의 크고 작은 그릇이며 화장품 등이 정비되어 있고, 책상이며 가구들이 모두 값진 물건들이었다. 천하의 조공(朝貢)을 받는 진나라 황실에서 자란 국향이로서도 다만 입을 딱 벌릴 밖에는 없을 정도의 한 책실이었다.

국향이는 잠시 멍하니 섰다가 책상머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 펴기를 기다리는 듯이 준비되어 있는 책을 한 권 꺼내어 폈다.

유기(留記)였다. 몇 줄 내려 읽어 보니 고구려나라 건국의 위대한 사실을 엮어 쓴 기록이었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며 하백의 딸 유화의 이야기를 한창 재미나게 읽는 데, 밖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이 책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는 계집하인이 통통 들어왔다.

“영감마님이 오십니다.”

“?”

동시에 한 사십 살 되어 보이는 한 장년 사내가 이 방으로 들어왔다.

국향이는 황급히 일어서서 그를 맞는 뜻으로 허리를 굽혔다.

그는 들어와서 되는 대로 자리잡으며,

“너희들은 부를 때까지 물러가거라. 좀 멀찍이-.”

하고 하인들에게 분부하였다.

하인들을 다 멀찍이 물린 뒤에

“나는 이곳 태수-관지기입니다. 손님은 어디서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니까?”

하고 물었다.

“저는 강남 장사치온데 고구려 서울 장안으로 가는 길이옵니다.”

“증단(證單)은?”

“미처 못 준비했읍니다.”

태수는 눈을 들어 국향이의 얼굴을 한참 건너다보았다.

“수제 견(隋帝 堅)이에게서 이런 조회가 있읍니다. 이게 아마 손님께 관계되는 일인 듯싶은데….”

태수는 품에서 무슨 꽤 큼직한 첩지를 꺼내어 손으로 툭툭 튀기고 있다.

국향이는 ‘수제 견’이라는 말에 담이 터지는 듯 정신이 아득하였다.

그러면 이곳 태수는 내가 누구임을 벌써 짐작하였던가? 그 모든 융숭한 대접은 진나라 공주에게 대한 대접이던가?

수제 양견이는 부왕과 모후를 비롯하여 여러 동기까지 잔멸하고도, 아직도 부족하여 그의 마수를 멀리 고구려로까지 뻗쳤던가? 만리길 도망해 와서 여기서 그의 마수에 걸리게 되단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다.

수나라 문제에게서의 글월을 태수에게서 받아 보니, 거기는 첫머리에 국향 자기의 화상을 그리고, 이 계집을 붙들어 집에게 보내면 후한 녹작과 상이 있으리라는 뜻이 적히어 있다.

국향이는 몸에 한 조각이 쇠 부스러기가 없는 것이 한이었다. 계집이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비수가 으뜸이라 하여 스승을 따로 고빙하여 비수 쓰기를 연습한국향이는, 지금 이 위급한 찰나에 한 조각의 쇠만 있으면 어떻게든 무슨 수단이든 강구할 수가 있을 듯하였다.

국향이는 딱 마주 앉아 태수를 쳐다보았다.

“네, 과연 제가 국향 공주올시다. 태수님께서는 국향 공주를 양견이에게 잡아 보내셔서 후한 녹작을 받으시렵니까?”

“고구려의 사람은 품에 날아드는 궁조를 결코 해치지 않습니다. 태수 모(某)도 고구려 사람이외다. 부왕께서 어떻게 되셨는지 아십니까?”

“산동을 지나가다가 소문으로 안 바인데, 양견이에게 몰려 피할 길 없어서 우물에 몸을 던져 자진하셨다구요-.”

진나라 오 제 삼십삼 년간의 길지 못한 역사의 마지막 잔물이 모진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이 고구려나라로 망명해 오는가?

태수도 잠깐 묵연히 이 사실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공주께서 장안으로 가시면 누구를 찾으시겠읍니까?”

“승상을지 공께 몸을 의탁하고자….”

“무슨 선제의 글월이라도….”

“네, 수찰 한 장이 있읍니다.”

“하지만 공주께서는 너무 얼굴이 어여쁘십니다. 여자의 얼굴이라 어여뻐야만 하는 게옵지만, 너무 어여쁜 것도 인생 행로에 많은 지장이 생기는 것이올시다.”

“얼굴에 못하지 않은 무술을 닦달했읍니다. 이런 운명이 오리라고 닦달한 무술은 아닙지만….”

“무술이란 잘못하다가는 되레 몸을 해치는 일이 있는 게니깐, 공주 내내 명심하시옵소서. 유(柔) 능히 강(剛)을 이깁니다. 공주께서는 장차 무슨 고 난을 만나실지라도 먼저 무(武)를 앞세울 생각은 마시고, 오로지 강을 제하 실 궁리를 하시옵소서.”

국향이는 머리를 숙여 고요히 고맙게 들었다.

국향이는 그 태수의 집에 한 열흘간 묵었다. 몇 달 간에 지친 피곤이 다 삭도록 푹 묵었다.

한 열흘 묵어서 피곤을 다 삭이고 길 떠날 때에 태수는 국향이에게 말을 한 필 제공하였다.

“공주께서 넉넉히 부리실지?”

하면서 제공하는 말은 ‘돌궐’산의 아주 사나운 말이었다.

그 말에 가볍게 올라 타고 또 장안으로 길을 떠날 때, 태수는 십여 리를 따라오며 바래 주었다.

그 길에서 국향이는 고구려나라의 부력과 통치력에 마음껏 멱감았다.

휑하니 넓은 포도는 백 리 천 리를 그냥 곧게 뻗어 있고 그 길에 십 리마다 이정표(里程標)가 서 있고 이정표에는 ‘서울까지 몇 리’라 정확히 새겨져 있고, 삼십 리에 한 군데씩 중화처(中火處)가 있어서 거기는 물이며 땔나무 의 준비까지 되어 있고, 그곳을 지키는 관원들은 아주 친절스럽게 모든 편의를 보아 준다. 한 오십 리마다 밤 쉴 곳이 있고, 이 모든 것은 나라에서 경영하는 바이라, 거저 만성의 편의를 보아 주는 것이다.

관원들은 극진히 만성을 헤가린다. 만성들은 모든 것을 관원에게 탁 믿고 의뢰한다.

고구려는 인구 사천만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사천만이란 것은 사천만이 한 덩어리가 된 단 한 뭉치의 덩어리요, 임금의 한 마디 분부라면 사천만이라는 덩어리가 하나로 되어 그 분부에 복종할 성질의 것이었다.

이것으로 보아서 고구려는 능히 천하에 그 강성을 자랑할 만하였다.

제각기 제 잘난 맛에 살아 가는 사람의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었던가?

-이러하니까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는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다.

아아, 나도 어디서 한 번 마음 놓고서 나는 고구려인이로라는 호통을 하여 보면 얼마나 유쾌할까?

고구려의 재상 을지 승상이 이 내 몸을 용납해 주시기만 하면- 그리고 나 더러 ‘아내여’하기만 하여주시면, 나는 천하에 고구려인으로 호통을 하며 횡행할 수 있으련만-.

해가 벌에서 떠서 벌로 지는 요서의 평원을 돌궐 말에 높이 앉아서, 이런 생각을 뇌면서, 국향이는 장안 서울로 장안 서울로 길을 더듬고 있었다.

장안 서울이 여기서 몇 백 리 몇 천 리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진나라 서울서 여기까지의 만리길을 걸어서 온 국향이로서는, 지금 마상에 높이 앉아 흥그러이 가는 길은 다만 마음 흥그러울 뿐이었다.

절기로 따지자면 봄, 이월경일 것이다. 그 사이 혹한의 절기를 잠자리 하나 변변치 못하게 남의 집 집모퉁이의 굴뚝 틈에서 몸을 쉬면서 만리 길을 온 것이다. 이제는 절기는 양춘에 가깝고 탈 말도 있고, 게다가 고구려땅은 아무데를 갈지라도 길손 먹일 준비는 나라에서 마련하고 있다.

오리내도 지났다. 오리내를 지나서도 아직 오백여 리를 더 가야 장안 서울 이라 하지만, 국향이는 서울 안뜰에 들어선 듯 이제 장안에 다 온 것으로 여겼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을지 승상 댁이 어디쯤 됩니까?”

고 물어서,

“승상 댁은 장안에 있다오. 아직 오백 리를 더 가야지요.”

하는 대답에 오히려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 사이 온 만리길에 비기건대, 이제 남은 오백 리라는 것은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며칠을 더 가야 되는 길이다.

지금껏 요동 칠백 리의 무연한 벌판만 오다가, 오리내 넘어서니 올롱졸롱 한 산과 골짜기다.

그래도 장안 서울이 가까운 증거로는, 사람들의 성품이 차차 더 어질고 질박해 간다.

날을 물어보니 벌써 양춘삼월이라 한다. 논밭에는 무럭무럭 양춘의 김이 떠오르고 길에는 말똥구리가 말똥을 굴려 가고 있다.

아버지의 대궐을 망명한 것은 벌써 반 년 전인 작년 가을이다. 그 사이 겪은 고생을 다 쌓으면 태산같이 높을 것이요, 당한 욕도 부지기수다. 그것을 참아 가면서 모진 목숨 그냥 유지해 가는 것은 장차 무엇을 바라고?

부왕모후를 비롯해서 모든 동기들도 모두 참화를 보고, 지금뎅그렇게 외톨이로 살아 남은 자기다.

장차는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뢰하고 살아가랴?

‘고구려의 을지문덕이라는 대신을 찾아가서 네 장래의 운명을 맡겨라.“ 하던 아버님의 유명을 받아 나는 열일곱 해 기른 이 몸을 을지문덕이라는 고구려인에게 바치려고, 만리길 멀다 하지 않고 을지가 산다는 장안 서울을 찾아간다.

을지라니 몇 살이 난 사람일까? 과히 늙은이는 아닐까? 몸이 승상이라니 괄괄한 젊은이는 아니겠지만 꼬부라진 늙은이는 아닐까? 고구려 지역에 들면서 내내 경험한 바이지만, 고구려 사람은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 모두가 한 사람같이 을지 대신께는 최상의 경모의 정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듯 을지 승상은 온 고구려인의 숭앙의 사람이다. 지금 부왕의 글월을 지니고 가지만, 을지 대신은 그 글월로 이 몸을 용납해 줄 것인가?

고구려 사천만 인의 어버이-.

열일곱 살 처녀 국향이의 가슴에 떠오른 동이 사천만의 아버지로서의 을지 문덕을 목표로 길을 가면서도, 국향이의 마음에는 용납하려는가 안 하려는 가의 일말의 불안은 지울 수가 없었다.

준마의 빠른 걸음으로 하루를 가고 이틀을 가고 사흘을 가서 장안성 밖까지 이르렀다.

한 채찍만 더하면 넉넉히 성 안에 들어갈 것이로되, 국향이는 성 밖 주막에서 그 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이제는 다 왔다 하는 안심의 탓도 있겠지만, 꽤 느지막이까지 자고 일어나서, 오늘은 승상을 뵙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소세 단정히 하고 주막집을 나섰다.

이 큰길로 곧장 가면 스물 몇 골목 지나서 큰 솟을대문 달린 집이 승상 댁이라는 말을 목표로, 시원하고 넓은 큰길을 골목마다 세면서 갔다.

스물 몇 골목 지나서 과연 큰 대문이 있었다. 국향이는 서슴지 않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 보매 그곳도 무슨 큰 일곽 같지 개인의 집 같지 않았다. 그냥 말을 타고 그 엉성한 가운데를 동서로 헤매었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 곽 내를 편답하다가 지나가는 하인 하나를 붙들어서 사정을 통하였다.

“승상은 지금 입궐해서 댁에 안 계시고 마님께라도 여쭈랍니까?”

국향이는 사실을지 부인께 먼저 뵈옵고 싶었다.

“그럼 마님께라도 여쭈어 주십시오.”

“이리 오세요.”

이리하여 국향이는 을지 부인의 앞으로 인도되었다.

친척인지 하인배인지는 모르나, 많은 여인들과 마주 무슨 담소를 하고 있 던 을지 부인은 국향이 편으로 향하였다.

“내가 을지의 아내요, 승상을 뵙겠다고?”

“네….”

“승상께서는 정무 다단하시어 좀체 뵈옵기 힘드는데 무슨 사단으로 뵙겠 다는지?”

한 국가의 승상을 그리 쉽게 뵈오리라고는 국향이는 생각하지 않았던 바였다. 그래서 품에서 부왕의 글월을 꺼내었다.

“진(陳) 천자의 소개하는 글월이 여기 있읍니다.”

그 사이 반 년간, 한 품에 품고 오느라고 구겨지고 더렵혀진 부왕의 글월을 국향이는 품에서 꺼내어 승상 부인 앞에 내어놓았다.

“지아비에게 오는 글월을 먼저 본다는 것은 부여의 여인의 안 하는 바요.

승상 들어오시거든 드릴 터이니 여기 맡겨 두시오. 그리고 보아하니 매우 피곤하신 듯한데, 저 후당 방 하나 내어 드릴께 가서 편히 한잠 주무시 지.”

“아이, 잠은 실컷 잤읍니다.”

국향이가 사양하건 말건 승상 부인은 하인 하나를 불러서 후당을 깨끗이 치울 것을 분부하였다.

동탕한 국향이의 얼굴을 승상 부인은 탐나는 듯이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참! 손님 나이 몇 살이요?”

“열일곱 살이옵니다.”

“열일곱? 우리 자식두 살아 있으면 금년 열일곱이로구먼- 열 일곱이며 저렇게 장발하는 걸 홑 일곱 살에 죽여 버리고….”

×

후당으로 인도받아서 거기서 몸을 쉬는 국향이는 자기의 기구한 열일곱 해의 생애를 띄엄띄엄 추상하면서, 자는 듯 깬 듯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기는 부왕의 소개로 이 댁에 들기는 하였지만 승상은 자기를 용납하려는 지? 승상 부인은 한 마흔 살 되었을까 말았을까 한 아낙이었지만, 대고구려 국을지 승상의 아내라는 긍지가 그 미우에 차고 넘치듯 나타나 있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상냥하고 친절하였다. 진나라 공주라는 국향이의 신분을 알고도 그냥 친절할지 어떨지는 모르되, 지금껏 본 바로 아주 상냥한 아낙이었다.

“이 근처(후당) 일대는 손님이 묵어 계실 동안은 손님 혼자만이 쓰실 곳이니까 그리 아시고 마음대로 쓰십쇼. 이 근처의 하인들도 손님 홀로 쓰실 하인입니다.”

승상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하인 몇 명을 남기고 돌아갔다.

승상께 뵈올 일 밖에는 다른 일은 없는 국향이는 문갑에 가려 있는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책상에 기대어 책을 폈다.

유기(留記)였다. 방적 제일관(防狄 弟一關) 태수의 집에서 그 첫머리를 얼마간 읽던 국향이는 여기서 그 다음 줄거리를 읽기 시작하였다.

고구려라는 위대한 나라를 세운 조상들이 나라와 만성을 애호한 그 기특한 사실이 줄줄이 사무쳐 있는 기록이었다.

-이렇게 고심하고 이렇게 애써서 이 나라를 세웠고 키웠느니라- 하는 지나간 날의 현인들의 고심 기록이 국향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유기에 침혹되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읽고 있었다.

국향이는 거기서 민족 종족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이 민족의 한 영주(英主)엿던 평안 호태왕(平安 好太王) 시절에 이 고구려 민족과 조상을 같이한 신라라는 나라가 남쪽 바다 건너 왜에게 침노를 받을 때에, 호태왕은 오만 명의 고구려 장졸을 이끌고, 수륙 이천여 리를 신라까지 달려가서 왜 족을 쳐 쫓은 일이 있다. 고구려 임금 평안 호태왕은 무슨 까닭으로 내 나라 장졸 오만여 명을 이끌고 신라까지 갔던가? 왜는 어디 감히 고구려는 건드릴 염도 못 내고 도리어 방물을 바치며 왕녀를 바쳐서 고구려에게 아첨만 하거늘, 호태왕은 무슨 까닭으로 내막하오만여 명을 멀리 신라까지 데리고 가서 숱한 인명과 숱한 국탕을 소모하여 왜를 때려 쫓았는가?

여기 종족이라는 것이 고마운 것임을 볼 수 있었다. 한 옛날 단군 왕검이라는 선인(仙人)에게서 흘러내린 같은 피의 종족으로서, 호태왕은 신라의 수난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본 것이다.

같은 종족끼리 서로 천자가 되려고 죽이고 죽이는 중국 종족으로서는 좀 이해하기 곤란한 일이었다.

- 이러하였으니까 고구려는 흥하고 크게 됐구나! 아아! 이 고구려나라를 운영하시고 지도하시는 을지문덕승상이시여!

국향이는 마음 초조히 기다렸다.

지난날 현인들이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우고 키운 기록에 국향이는 열중하였다. 자기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떤 환경에 있는지도 잊고, 유기에 열중 하여 유기를 탐독하고 있었다.

문득 시야의 한편 구석에 무엇이 움직이는 바람에 그리로 주의를 돌렸다.

보니 거기에는 웬 사람의 발이 한 쌍 눈에 띄었다. 국향이는 펄떡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자기가 어떤 환경에 어떤 곳에 있는지 전후를 가릴 수가 있었다.

그 발에서 차츰 더듬어서 가슴으로 얼굴로 눈을 옮겼다.

거기는 한 사십 살로 볼 수 있는 웬 한 장년이 발을 멈추고 국향이를 굽어 보고 있는 것이었다.

평복-편복(便服)으로 차린 사람이었지만, 온화스러운 그 얼굴에 천하를 위압하는 기개가 감추여 있었다.

국향이는 이 인물이 누구임을 알 수 있었다. 뜻하지 않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 인물에게 향하여 넓적 절을 하였다.

“승상님, 문안드리겠읍니다.”

“국향 공주라구?”

그 인물은 이렇게 말하며 그 자리에 자리잡고 앉았다.

“네- 국향이올시다.”

“폐하의 수서는 보았소, 폐하가 공주를 떠나보내신 뒤에 어떤 일을 당하셨는지 공주는 아시는지요?”

“산동을 지날 무렵에 약간 풍문으로 들었읍니다.”

“폐하께서는 공주의 일신을 내게 맡긴다고 하오셨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 지 이해하시오?”

국향이는 미처 대답치 못했다. 제 일신을 장차영구히 보아 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염치에 나오지를 못했다.

“좌우간 공주는 하늘 아래 혼자 남은 신세니까, 이 내 집을 진궁(陳宮)으로 알고- 내 처를 어머니로 여기고 나는 아버지로 여기고, 마음 놓고 여기 계시오. 고구려 재상 내 집에 묵어 계시면 하늘 밖에는 공주를 범할 자인 세상에는 없을 게요.”

고구려의 만성이 자기는 고구려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는데, 고구려의 대 재상이 어찌 그 신분을 자랑치 않으랴.

하늘 밖에는 그대를 범할 자 없느니라. 내 집에 묵어 있는 동안은… 이런 말을 감히 외칠 수 있는 그 신분에 대하여 국향이는 만강의 경의를 표하였다.

“사람의 팔자란 칠전팔기- 공주 팔자 기박하여 지금 이 동이의 범부에게까지 굴해지내시지만, 장차 우리나라 나랏님께서 공주의 앞에 절하 오실 날이 없으리라고 장담 못할 일이오. 그러니까 고요히 팔자 돌아올 날을 기다립시오. 여기 내 집에 푹 마음 놓고 계시면서-.”

“승상님이 두어 주시기만 하면….”

이리하여 국향이는 을지 승상의 보호 아래 승상 댁에 몸을 두기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국향이를 위하여 고구려 처녀의 옷이 국향이에게 제공되었다.

고구려 혼[편집]

“사십이 불혹이라는데….”

“봄날인 탓일까?”

발 뒤축을 도로 짚고 저편 북쪽을 넘겨다보았다.

몇 개의 지붕마루를 넘어서 그쪽에는 분명 불빛이 뜰에 비치고 있다.

“밤도 꽤 깊었는데 아직 아니 자는가?”

을지는 잠깐 넘겨다보다가 도로 바로 섰다.

그리고 관심이 가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고 창피하였다. 내 나이 사십에 비 기건대 딸뻘도 안 되는 소녀 국향이에게 관심이 가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웠다.

진제(陣帝)가 국향이를 자기에게 부탁하는 그 편지투로 보아서, 분명 진제는 국향이의 장래 운명을 자기에게 부탁함일시 틀리지 않았다.

삼천의 후궁이 국향이의 앞에는 무색하였다는 진나라 국색(國色)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콧매, 입매, 눈매, 능히 육척 남자의 간장을 녹일 만한 국색이었다.

게다가 국향이는 오직 나만을 믿고 의지하러 만리길을 여기까지 오지 않았 는가?

그러나 나이가 마흔 고개에 올라 선 을지 문덕으로서는 차마 염치에 딸같은 소녀에게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을지 자기의 부인은 여러 번을지에게 제이 부인으로 간택하기를 권하였다. 시집온 이듬해에 한 아들을 낳았다가 일곱 살에 죽여 버리고 이래 생산을 못하는 부인은 을지가(家)의 가문을 위하여 한 소부인을 취하기를 권고 해 마지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구려 사천만의 신앙의 표가 되어 있는 을지로서는, 이십 년 함께 늙어 온 아내 이외의 여인을 가까이 할 생각은 염치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웃어 넘겨 오던 것이었다.

그런데 진제가 제 딸을 부탁하면서, '만약 내 딸 국향이에게서 그대의 가문을 이을 사자(嗣子)라도 생기면, 이야말로 진나라 제실의 다행으로 보노라.' 고 제 딸을 부탁한 것은 분명 내게 시집보낸 것이다.

말하자면 제명(帝命)이요, 칙명이다. 게다가 동탕한 국향이의 체격은 사내 의 품에 안기어 꼭 좋을 만큼 발육되었다. 이를 물리치는 것은 제명에 위배 되는 것이며, 또한 천리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을지는 제게 좋을 대로 생각을 해오다가, 또 한번 지붕들을 넘어서 국향이 의 거처하는 후당 쪽을 넘겨다보았다.

고구려의 교육은 부인― 아낙네의 질투를 강짜라 하여 천하게 보는 한편,사내의 부당한 욕심을 천박한 행사로 멸시하는 것이다.

고구려 만성의 표지인 을지문덕답지 못한 생각에 스스로 얼굴을 붉히지 않 을 수가 없었다.

“?”

그때에 무엇이 걸핏 을지의 시야 한귀퉁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홱 그쪽으로 눈을 돌리니, 분명 한 사람의 그림자가 후당 쪽으로 살그머니 더듬는 것이었다.

―수상한 놈!

그 모퉁이를 돌아가면 거기는 후당 밖에는 없다. 후 당 근처에는 튼튼한 하인들이 둘러 있으니까 잡히는 밖에는 없다.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인물일까?

승상은 내내 의아하여 발돋움하며 후당 쪽으로 주의하였다.

벌깃벌깃 무엇이 이리 번적 저리 번쩍 하더니, 이놈 잡아라,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인들이 한쪽으로 모여들며, 그 모여드는 쪽에서는 웬 한 괴한이 뛰쳐 솟아서 자빠질 듯이 도망친다.

그 도망치는 괴한은 을지가 서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을지는 잠깐 비켜 주었다. 집 위로 감추였다 나타났다 하는 괴한은, 종내 승상의 가슴 한가운데 들어와 안겼다.

가슴으로 들어와 안기는 괴한을을지 승상은 가벼이 쳐들어서 집안으로 옮겼다.

뒤를 쫓아온 하인들이 차례로 뜰안에 대령하는 것을 승상은 내가 맡았으니 걱정 말라고 모두 물리친 뒤에, 숨이 턱에 닿아서 씩씩거리는 괴한을 고요 히 굽어보았다.

“너는 뭐냐?”

괴한은 승상의 비교적 온화한 음성에 눈을 들어 승상을 보았다.

뜻밖에도 자기가 승상과 단둘이 마주 대하고 있는 현실에 깜짝 놀란 듯,

“아이, 승상님!”

하며 앉은 걸음으로 뒤로 물렀다.

“그래, 내가 을지로다.”

“승상님, 제발 소인의 처를 소인께 돌려 주십쇼.”

“네 처? 을지는 사십 평생 남의 처를 빼앗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데….”

고구려의 승상으로 앉아서, 왜며 한이 공녀로 바치는 여인들도 다 처치를 못하겠거늘, 인처까지 빼앗아서 무얼 하랴. 같지도 않은 소리라 승상은 고 소하며 머리를 돌이켰다.

“승상님께서 모르고 하신 일인지는 모르겠읍니다만, 소인의 처가 이을지 궁에 잡혀 와 있습니다.”

“그래, 네처를 빼내려고 여기 숨어 들었더냐?”

“소인이 말해 봐서 가겠다고 대답이 나면 데리고 가려고․…….”

“그래서 이 엄중한 을지의 집에 숨어 든단 말이냐?”

“아내를 찾는 사내의 심정은 무엇으로든 막지 못합니다.”

“네 처는 그래 누구냐?”

“진국향이라는― 고구려 넓다 해도 다시 없을 미녀입니다.”

국향이라면 진의 천자가 이 나 을지에게 하사한 미녀다. 열일곱 살의 아직 시집 안 간 처녀다.

그런데 ‘처’란 웬말이며,‘내 처’란 웬말인가?

승상의 머리에는 문득 의혹이 무럭무럭 일어났다.

“네 이름은 뭐냐?”

이렇게 묻는 승사의 어조에는 평소에 볼 수 없던 증오가 현저히 나타나 있었다.

“이름은 장량이라 하옵니다.”

“장량이라, 장자방이냐?”

“자방은 아닌 장량이올시다.”

“그래, 국향 공주와 내외가 된 지 몇 해나 되느냐?”

“하루도 함께 살지는 아직 못했습니다.”

“그럼 부모가 정하신 게냐?”

소위 장량이는 주저하지 않고 곧 대답하였다. 그러나 말은 좀 더듬으면서,

“국향 공주가 만고절색이라는 소문이 하도 높길래, 소인이 담―궁장너머로 잠깐 엿보고 그 이래 신명께 축원드렸읍니다. 저런 아낙을 제 처로 줍시사고, 그래서 제 처 올시다.”

승상은 고소하였다.

“맹랑한 녀석! 그리고 그 아내 뒤를 쫓아서 만여 리 길을 오단 말이냐?”

“네―……․”

“그리고 내 집에 잘못 들어오다가는 붙들리면 당장 박살을 당하느니라.

그걸 무릅쓰고 삼동을 노숙하며 만리 타국엘 온단 말이냐? 어이없는 녀석이 다. 한인다운 생각이로다.”

“승상님, 그래두 소인의 이십대 조(租) 인가 삼십대 조인가 삼한서 건너 온 이라고― 그래 소인도 한씨 성을 쓴답니다.”

“삼한이고 백제이고 간에, 단군님 후예로는 너 같은 멍청한 놈은 없어져!

국향이는 진제가 내게 하사하신 처녀야. 내 나이 사십에 딸 같은 처녀를 맡아 무얼 하랴마는 내게 아직 후사가 없거든. 그래서 좋은 밭이 생기면 거기 종자 뿌려 후사라도 얻을까 해서 맡아 둔 바인데, 한 소녀를 뒤따라 만여리고행을 한 제 정성으로 보아서는 제게 주고 싶은 생각도 난다마는, 너 같은 멍청한 녀석에게 주기는 국향이가 아까와.”

“승상님! 제발 소인께 주세요. 만여 리라 합지만, 내 여러 가지 생각하 는 바가 있으니, 장차 국향의 의견도 따져 보고서 좋도록 처리하마.”

“만여 리 길을 굶으며 삼동에 한데서 자며 아내를 찾아 예까지 왔읍니 다.”

“너희 진나라에 나라를 위해 그만치 정성 쓴 사람이 열 사람만 되었던들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을… 야, 자방이라고?”

“자방아닌 장량이올시다.”

“응, 야 장량아! 진장에 감춘 호구는 도적해 낼 재간이 없느니라. 국향이는 수십 명 호위 아래 진궁보다 더 깊이 감추였으니, 네 재간 따위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딴 생각낼 염도 말고 내 집에 방 하나 내어 줄 터이니, 거기 나가서 쉬노라면 내 잘 생각해 보아 좋도록 주선해 주마.”

“네, 잘 생각하셔서 제발 국향이를 소인께 주십사― 소인도 여편네 데리고 살아 보고 싶습니다.”

“여편네는 얻어 주마.”

장량이는 협실로 내보내서 묵게 하였다.

그 지위로든 나이로든 청춘 남녀의 수위 사랑 문제에서는 초월하였을을 지 승상이었다. 그러나 소위 장량이라 하는 젊은이의 죽은 소리 한 마디 산 소리 한 마디 하는 말의 ‘국향이는 내 처’라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걸리어 적지 않게 불쾌하였다.

그 자체로 보아서 대국 공주이며 인물 똑똑하고 영리하여, 씨암탉감으로는 한 군데 나무랄 데가 없는 국향이에게 대하여 승상도 아주 무관심하던 것이 아니었다. 더우기 승상 부인이 나이 사십으로 이젠 단산할 나이요, 을지 가 문의 뒤를 이을 자식을 아직 갖지 못한 을지 승상으로서는, 가문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씨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우기 나이 사십에 아직 강장한 사나이로서 여인 몇 개 넉넉히 건사할 만한 승상이었다.

죽은 소리 한 마디 산 소리 한 마디 하는 장량이의 말을 일일이 관심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무관심할 수 없는 승상은 얼마간 불쾌한 기분으로 그 밤을 보내고, 이튿날 소상하게 국향이에게 따져 볼 심산으로 조반 뒤에 국향이를 불렀다.

춘광(春光)이 유난히도 명랑한 날씨였다. 문 열어 젖히고 볕 잘 드는 방에 호상(胡床)을 내다 놓고 호상에 걸터앉아, 뜰에 돋아나는 나무 움을 굽어보며 국향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국향이가 들어서는 모양이었다.

“부르셨어요? 승상님―.”

을지는 약간 자리를 비켜 앉아 국향이가 앉을 자리를 내면서 거기 앉으라고 가리켰다.

“네, 공주를 좀 뵙고 싶어서….”

그러나 국향이는 감히 가리키는 자리까지 오지 못하였다. 승상이 앉아 있는 호상 맞은편에 읍하고 서 버렸다.

“공주는 혹 장량이라는 젊은이를 아십니까?”

“장량이란? 사람의 이름입니까?”

“사람은 중국 사람이고, 그 사람 말로는 진나라 국향 공주의 남편이라던데요?”

“소녀의 남편이라고요? 소녀는 부왕께서 지정해 주신 남편 밖에는 남편을 모르겠읍니다.”

“미친 녀석의 미친 수작을 일일이 신빙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장량이라는 젋은이는 공주를 사모해서, 공주 떠나신 뒤를 좇아서 만여 리 길을 고구려 장안까지 뒤따라 왔답니다.”

“여기까지요? 그 장모라는 사람은 그래 지금 어디 있읍니까?”

“내게 제발 아내를 돌려달라고 조르고 조릅니다. 공주! 지성이면 감천이 라는데 그 지성에 감천은 못한다 할지라도 감인도 안 되리까?”

“승상님, 그 장모를 소녀에게 한 번 보여 주세요. 소녀를 그토록 따르다니 한 번 보고 싶습니다.”

“보여 드리지요. 좌우간 이리 좀 와서 앉으세요. 자리가 기다립니다.”

승상은 국향이 앉으라는 자리를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호상으로 돌아와 걸터앉는 국향이를 승상은 팔을 펴서 고요히 끌어안았다.

국향이는 온몸을 승상께 기대며 손을 들어 자기를 안은 승상의 양손을 잡았다.

“공주, 나를 위해서 내 집 후사가 될 아이를 낳아 주시오.”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이는 이말에 대하여 국향이는 손을 힘껏 잡으며 작은 소리로,

“―네…….”

하고 응하였다.

“치만 이 나라에서 장가를 들려면 먼저 나랏님의 칙허가 있어야 됩니다.”

“딸을 내어 주시는 천자도 칙허하셨는데 나랏님께서 안 하실까요?”

승상은 자기의 손 안에 잡힌 국향이의 손을 폈다 오므렸다 만지작거리며 잠깐 생각한 뒤에 말을 꺼낸다.

“공주 ! 딸을 내어 주는 이는 내어 주기만 하면 그뿐이니까 쉽지만, 그 딸을 받아오는 사람으로는 그리 간단하지 못합니다. 그 딸이 내가풍에 맞을는지 좋은―우수한 자식을 낳을는지, 모든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내어 주는 사람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게다가 공주, 나랏님의 칙허도 칙허려니와 내 집안 을지 부인의 허락도 또한 있어야 할 겝니다.”

“…….”

“을지 부인으로 말하면 열여덟 살에 을지 가문에 시집을 와서 곧 요행 자식을 낳았지만, 그 자식을 일찍 잃은 이래 아직 생산을 못합니다. 게다가 나이도 이제 단산할 나이가 됐습니다. 여인이 어느 가문의 상속자를 낳지 못한다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그래서 을지 부인도 제 죄를 대속할 만한 사람을 물색중이지만, 그러니만치 아무나 허투루 골라 내지 못할 형편이라, 을지 부인 자신을 대신할 만한, 인격으로건 지식으로건 부족이 없는 사람을 고르는게 그의 소망일 겝니다. 그러니까 을지 부인의 의향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일 겝니다.”

“승상님!”

국향이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도록 작았다.

“저는 승상님께 좋은 아드님을 꼭 낳아 드리고 싶은데요―어떤 자식이 좋 은 자식일까요?”

“나라에 충성되고 부모께 효성 있고 형제 우애하고 용감하고 의롭고―말하자면 고구려 젊은이로 추호 부끄러운 데가 없을 아이라야 좋은 자식이라 할 수 있을 겝니다.”

“저는 그런 자식을 꼭 승상 가문에 낳아 드리겠어요. 승상님이 볼 것 없는 소녀를 용납해 주세요.”

승상은 잡고 만지작거리던 국향이의 손을 놓고, 팔을 펴서 국향이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승상의 품안에서 국향이는 그의 아리따운 눈을 푹 내리뜨고 고요히 있었다. 그의 눈썹과 입술만이 흥분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좀 거닐어 볼까요?”

이리하여 승상과 공주는 함께 뜰로 나섰다.

“공주께서는 기승(騎乘)에 꽤 능하시다고.”

“진궁에서 약간 기승을 배웠읍니다.”

공주는 이상한 소리를 내어 제 말을 불렀다. 저편 뒤에서 무슨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마부 서넛이 외치며 야단하는 틈으로 국향이의 타고 온 호 마가 사람들을 머리로 헤치며 이쪽으로 달려온다. 달려온 말에 공주는 가벼이 올라 앉았다.

그 올라타는 격식이며 올라 앉은 자세를 관찰한 승상은 내심 혀를 둘렀다.

“기승은 얼마나 닦으셨소?”

“일곱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꼭 십 년을 닦았읍니다.”

승상의 애마도 등대되었다.

승상과 국향이는 말을 몰아 대문 밖으로 나섰다. 대문 밖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좌로 우로 내왕하는 것이었다.

“승상님, 장성하는 고구려의 모습은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공주!”

말을 천천히 거닐면서 승상의 말하는 어조에는 약간 창연한 기색이 있었다.

“쇠운으로 향한 고구려입니다. 삼사십 년 전 내가 소년 적의 일을 생각해도, 고구려에는 한길에 나서면 반드시 젊은 아낙네는 한 아이를 손목을 끌고 한 아이를 등에 업고 뱃속에 한 아이를 밴, 아이 수두룩한 여인이 한길에 가득히 있었읍니다. 아이가 많은 것은 만성이 늘어나 가는 증거요, 이야말로 고구려 흥성의 증거였는데, 근년에는 이처럼 손목 끌고 등에 업고 뱃 속에 넣은 여인이 쉽지 않습니다. 고구려는 분명 쇠운에 들었읍니다.”

“그것을 깨칠 도리가 없으리까?”

“하늘이 아니면 무가내하겠지요. 이 나라의 승상부터가 겨우 한 자식을 낳았다가 그나마 기르지도 못하고 죽여 버린걸!”

하늘을 우러르며 길이 탄식하였다.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새 목숨이 많이 나고 안 남으로 결정이 되는겝니다. 이 나라 창성할 시절― 평안 호태왕과 장수왕의 두 명군 시절에, 이 나라 만성 사천만이라는 게 결정이 된 그 이래 더 늘지 않는 건, 성운이 다하고 쇠운이 이를 증거―이 쇠운 시절에 승사의 임에 앉은 내 책임은 중대합니다. 장차 이 나라가 기울면 기운 책임과 욕은 죄 이 을지에게 돌아올 겝니다. 이 나라 만성의 기상도 줄어서, 예전에는 아낙들이 아이 업고 지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더니, 지금은 그걸 창피스럽다고 아이 보는 애를 두고 하인을 두고 아이 업기를 꺼립니다그려! 사천만 인을 팔천만으로 일억만으로 끌어 올리려던 을지의 고심은 죽어 버리고, 몇 십 년째 사천만 그대로 잦아 버리니 한심한 일입니다.”

그들은 말을 거닐어 골짜기를 건너고 언덕을 타고 넘어 을밀대(乙密臺)까지 이르렀다.

“이 골짜기를 말 탄 채 건너겠소?”

“승상님이 건너시면―.”

을밀대의 큰 구렁텅이 같은 골짜기를 굽어보며, 승상은 말을 교묘히 움직 여 건너편에 건너 섰다. 국향이 역시 진실로 교묘하게 말을 다루어 승상의 뒤를 따랐다. 건너 서 보매 거기는 굉장히 찬란한 무슨 전각이 너저분히 벌이어 있는 것이었다.

“여기도 대궐― 별궁이오니까?”

“절간이오. 대궐 원당이오.”

그 절에는 수천 명의 승려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중국에도 이런 거찰은 쉽지 않겠는데요.”

“고구려는 중국보다 오히려 더 큰 줄을 아시오.”

부벽루까지 이르렀다. 감감하게 굽어보이는 대동강에는 고구려 만성들의 봄을 즐기는 뱃놀이들이 벌어져 있었다.

“뱃놀이도 많기도 해라!”

“고구려는 중국과 달라서 지아비에게는 반드시 지어미가 따르는 법이라, 부부가 쌍쌍이 노니까 곱으로 보일 게요. 그러나 예전에는 꼭 뱃속에 아이, 등에 업은 아이 해서 아이의 패거리가 많았는데, 이 근처의 경개가 너무 미려하기 때문에 고구려 만성의 기개가 죽어져서 아이 없는 놀이들을 하고 있 는 형편이외다.”

인생 사십에 아직 한 자식을 못 가진 승상은 자식이 무척 그리운 모양으로 사사에 자식 문제를 꺼낸다.

영명사 일대를 휘돌아서 차차 도로 내려오는 동안 승상을 알아본 고구려 만성들은 승상과 동반한 한 아리따운 처녀에게 주의를 던지며, 그 처녀의 능란한 말타기에 모두들 경이의 눈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뭇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서 승상에 배행하여 장안 서울 북쪽 끝을 한 바퀴 돌 동안 국향이는 고구려의 크고 작은 가멸음을 충분히 보았다. 그 세우는 전각이며 건물들의 웅대함은 물론이요, 길에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벌써 강건하고 경첩함을 주삼아 만든 것으로서 모두들 깨끗이 희게 차렸다.

이 나라 이만성이 한 번창을 잡고 칼을 들고 일어나는 날이면, 천하가 그의 아래 굴할 것은 그 걸음걸이며 몸 동작의 기개를 보아서도 알 수 있었다.

아아, 가면 나라의 효용한 종족이여! 이 종족에게 어버이로 알리운 사람은 얼마나 큰 사람일까? 천하의 나라 진나라 황녀(皇女)로도 넘볼 수 없는 대고 구려의 굳셈과 부력에 국향이는 내심 한없이 감탄하였다.

소위 장량이는 승상의 의견으로 석다산(石多山) 석굴(石窟)에 있다는 석다 선인(石多仙人)에게로 수양을 보냈다.

석다선인이란 예전을지 승상이 소년 시절에 십 년간 사사(師事)한 일이 있는 이 동방의 큰 도인(道人)이었다.

며칠 뒤 승상은 둘째 아내를 맞겠노라는 뜻을 임금께 아뢰어 칙허를 얻었다.

“승상도 또 아내가 쓸데 있소?”

“소신도 사내인 이상 여인이 쓸데 있읍니다. 소신의 가운이 불운하와 국가의 죄인이 되었읍니다. 그 봉창으로 새 아내를 맞으면 백천의 자식을 볼까 하옵니다,”

“진국향이라면 진나라 삼천 궁녀를 압도하던 진나라 만고절색이라는 소문은 짐도 들은 법한데….”

“약간 예쁘옵니다.”

“아직 열 소리 하는 소녀를 사십 승상이 넉넉히 감당할까?”

“고구려 사천만 만성을 담당하는 을지로소이다. 소녀 여남은 명은 아직 넉넉히 감당하오리다.”

군신은 서로 마주 보고 미소하였다.

“그저 우리 승상 다복하지! 어떻게 진제가 만 리 밖 동이 고구려 승상에 게 제 딸을 줄 생각을 했을까?”

“나랏님의 다복하심이 넘치시어 소신께까지 흘러내렸읍니다.”

“새 아내를 맞아서 승상보다도 부여 혼이 넘치는 자손을 많이 낳으시오.

평안 호태왕 같은 성운을 짐의 대에서도 한번 만들어 봅시다.”

승상은 뒤에, 부인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보았다.

부여의 아낙으로 질투라는 데서 완전히 해탈되어 있는 부인은,

“일찍부터 그런 생각이 있어서 제가 공주의 몸을 유심히 보고 어루만져 보고 했는데, 아이 잘 낳게 생기고 몸 튼튼해서 소임 넉넉히 감당할만합지만, 부여의 씨가 아니라서 약간 주저하던 바이옵니다.” 한다.

“부여의 정신만 가진 자면 문제 없을 게고, 내 손고 K 부인의 손 아래서 부여 정신만 길러 주면 그만이 아니겠소?”

“좋도록 하세요. 전 생산치 못한 죄인이 무슨 말을 하리까?”

그로부터 국향이는 고구려의 아내로서의 훈련과 수련이 주입되었다.

고구려의 아낙― 본시부터 무척 벼르고 부러워하던 일이다. 비상한 열성으로써 수련하고 훈련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구려의 아내로서의 아무 부족이 없도록 쌓아 올렸다.

그해 가을, 길일 받아서 진나라 공주 국향이는 고구려 승상의 제이 부인으로 영입이 되었다.

그 결혼식에는 임금까지 거둥하고, 고구려 만성들은 제 집안 일같이 기뻐서 경축하였다.

이리하여 국향이는 고구려 대승상 을지문덕의 제이 부인으로 승상께 좋은 아들을 낳아 드리려는 결의로써 을지 가문의 작은 여주인으로 들어 앉게 되 었다.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하늘의 소관사다. 하물며 좋은 자식 나쁜 자식은 사람의 관여할 바 아니다.

국향이의 커다란 야망은 달성이 될 것인가?

을지 승상에게서 석다산 석다선인께로 전갈 편지와 함께 석다선인께로 수도차로 와 있는 장량은, 얼마 있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을지 승상이 진나라 공주 국향이와 이 가을에 혼인한다는 소문이 들었다.

장량이에게는 이 소식은 청천의 벽력이었다.

장량이는 아직 국향이의 얼굴조차 본 일이 없었다. 진궁 삼천 궁녀를 압도 하는 천하 일색이라는 소문만 듣고, 한 번 보면 하여 누차 담 틈으로 엿보았지만, 진궁의 제도가 황녀 국향이를 손쉽게 엿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제의 침입을 받아 지궁이 엉망진창이 되는 그 찰나에 이런 때 마다 잠깐 엿보이려고 소란의 진궁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공주는 부왕의 글월을 받들고 동이의 나라 고구려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어차피 망한 나라에 있느니 공주를 따라 고구려로 가려고, 그 길로 고구려로 떠난 것이다.

반 년―남아의 멀고 고된 길이었지만, 장량이는 그야말로 일편단심으로 국 향이의 뒤를 쫓아 만리 길을 왔다. 오면서도 고구려 장안에는 진인이라고는 자기와 국향이 밖에는 없으려니, 좀 더 국향이와 가까워진 것 같아서, 국향 이는 이제는 내 아내거니 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뒤를 따르는 가련한 남편이 로라는 심경으로 그냥 따랐다.

국향이가 을지 승상 댁에 몸을 잠근 것을 알고, 승상 댁에 잠입해서 아내를 찾고자 하다가 하인들에게 붙들렸다.

발악을 하여 승상께 아내를 돌려 달라고 떼를 썼지만, 승상은 만나게 해주마 하고는 그 약속은 이행하지 않고, 뚱딴지 석다선인께로 귀양을 보낸 것이다.

국향이를 만나면 어떻게 한다는 아무런 안(案)도 없었다. 사고무친한 동이 의 나라에서 국향이와 만나면 그래도 향인(鄕人)으로서의 정분이 서로 통하리라, 남보다야 그래도 향인이 정답겠지, 그러면 서로 의사 통하는 데도 있겠지―이만한 배짱으로 승상께 내 처를 돌려 주십사고 떼쓴 것이다.

그랬는데 승상은 나를 슬며시 따서 귀양 보내고, 내 처 빼앗아서 제이부인 이란 그게 웬말이냐?

기회 보아 석다 석굴을 탈출하여 승상께 달려가서 따져 보고자 결심하였다. 멀리 동이의 나라까지 달려온 것은 석다산 석굴 속에서 더러운 늙은이와 함께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자의 나라 진궁에서도 첫손가락 꼽는 아리따운 색시를 뒤따라 ―온 것이다. 그랬는데 을지라는 늙은이는 제가 그 소녀에게 마음 두고 나를 이 더러운 석굴로 정배를 보냈구나!

이번 다시 을지에게 가면 기묘하게 국향 공주에게 숨어 들어가서, 공주께 이 내 구슬픈 사정을 직소하여 공주의 처분을 기다리리라. 사고무친한 만리 타향에 와 있는 공주는, 이 내 사정 하소연하면, 여자의 나약한 마음으로 그래도 무슨 응답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서 장량이는 이 석다굴을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벼르는 동안에 한 기회가 이르렀다.

석굴에서 성 안으로 무슨 심부름을 갈 일이 생겼다. 장량이는 이 심부름을 자진하여 맡았다.

이번 가면 꼭 공주를 만나 보리라는 비장한 결의로, 장량이는 조반을 일찍 기 먹고 성 안으로 길을 떠났다.

이튿날 조반상을 방금 물릴 때쯤 장량은 승상 앞에 나갔다.

“너는 석다 도장에서 수양하고 있을 사람이 어떻게 여기 왔느냐?”

승상은 장량을 보고 의외의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네, 사처증이 지극하와 잠깐 아내를 보고자 왔읍니다.”

“너 도망해 왔구나?”

“아니옵니다. 이 고구려 천하에서 도망하면 어디를 갑니까? 승상께서도 그때 약속하신 바, 제 아내를 자깐 만나게 해줍시사.”

“네 이름이 장량이가 아니고 소진이랬으면 좋겠다. 그래 꼭 진 공주를 만나 보고야 말 심산이냐?”

“네이!”

“그래도 공주의 말은 장량이란 사람은 듣도 보도 못했다는데?”

“……네, 아마 그럴 겝니다. 그래도 소인은 만나 보겠읍니다. 소인의 아내올시다.”

“아내가 남편을 듣도 보도 못했단 웬일일까?”

“…….”

“게다가 장량아! 똑똑히 듣거라. 네가 네 아내라고 연해 말하는 진의 국 향 공주는, 자기 아버니의 승낙으로 나 을지와 혼약을 한 사이다. 그러니까 이제 네가 만날 사람은 네 아내가 아니요, 승상 부인이란 말이다.

승상 부인이니만치 소홀함이 있었다가는 고구려 만성이 용서치 않는다.“승상은 하인을 시켜 공주를 잠깐 나오라 하였다. 그리고 승상이 마주나가서 공주에게,

“공주의 남편이로라는 장량이가 좀 뵙겠답니다.”

고 알렸다.

공주가 방에 들어서자 장량은 한순간 힐끗 공주를 우러러보고는 황홀한 듯 그 자리에 넓적 엎드렸다.

“네가 장량이라는 진아(陣兒)냐?”

공주가 장량이에게 대한 태도는 그야말로 진천자의 황녀가 한 개 서민에게 대하는 태도였다.

“네이…….”

“네가 내 남편이로라고?”

“황공무지하옵니다.”

장량은 몸둘 곳을 모르는 모양으로 그저 머리만 조아렸다.

“나를 아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천자와 고구려 나랏님께 칙허를 받은 을지 승상 밖에는 세상에 없을 게다. 네가 어쩌면 감히 내 남편이로라고 공언을 하느냐?”

“공주님, 죽여 주십쇼, 마는 공주님 뒤를 사모하와 만리길을 뒤쫓아온 사람입니다.”

“그 정성은 고맙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무엄한 소리는 말렸다!”

이 호령에 장량이는 기가 질린 듯 잠담하여 버렸다. 국향이의 앞에 꿇어앉은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만 비오듯 하였다.

저편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승상은, 이 자리에서 몸을 피해 주는 뜻으로 살며시 뜰로 내려섰다.

잠깐 잠잠하였던 장량이는 다시 국향이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공주님! 그것은 그렇다 할지라도, 그러면 진나라 오 세의 사직은 공주의 대에서 끊어지고 맙니다. 진나라 몇 천만 적자는 어버이 찾을 길이 없으오리까? 진실의 혈통은 아주 없어지고 맙니까? 이것이 하늘의 섭리오니까?”

“내게는 한 형이 있었는데…… 사내동생들은 다 참화를 보았겠지만, 내형은 무사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선화(宣華)공주 말씀이오니까?”

“그래!”

“말씀 마십쇼. 그 분은 수궁(隋宮)에 영입해 수제(隨帝) 견(蜸)이의 총애를 받고 있답니다. 장차 수제의 아니나 더럭더럭 낳겠지요.”

정량이는 사뭇 더럽다는 듯이 외면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형 선화는 수제의 아이를― 그러면 나는 고구려의 자식을― 이리하여 진실은 아주 끊기는건가?

국향이는 창연한 얼굴빛으로 장량을 굽어보았다.

“장량이라고! 망국의 유민은 아예 될 게 아니다. 그저 다 망국민 된 탓이니 하늘이나 원망할밖에…….”

“그러기에 민은 공주를 대하옵고 망한 나라 진을 회복할 꿈을 꾸는 바로 소이다.”

“네가 나를 아내로 삼고 진제가 되어 보고 싶단 말이냐?”

“공주를 동이 을지에게 주기는 과연 아깝습니다.”

“그렇지만 야, 을지라는 이는 인걸이니라, 여자로 태어나서 인걸을 남편으로 맞아서 그 자손을 몸으로 받아 본다는 건 한 번 해볼 만한 일이니 라.”

“진나라 몇 천만 유민은 누구를 믿고 의지하고 살리까?”

“새 임금 수제, 견이를 믿으면 그만이 아니냐?”

“수제를…….”

“내 형이 수제에게 시집을 갔으랴? 내가 동이에게 시집을 왔으랴?

하여간장량이 그대는 이목도 번거롭고 하니, 내 언제 조용한 기회에 그대를 조용히 찾을 테니 오늘은 물러가라, 석다선인께 가 있으면 수양도 되고 할 테니, 선인께 가서 좋은 세월을 기다리고 있으라. 내 잊지 않을 테니…….”

저편으로 돌아갔던 승상이 차차 이편으로 도로 왔다.

“공주, 이야기는 대강 끝났소?”

장량이가 맞받아 대답하였다.

“승상님! 잠깐만 더…….”

“더 피해 달라고? 그래…….”

승상은 다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장량은 꿇어앉은 채 약간 국향이에게 가까이 오며 말하였다.

“공주민, 진실의 혈통을 잊지 말아 주십쇼.”

국향이는 팔을 늘여 나앉은 장량이에게 손잡힐이만큼 가까이 내밀며,

“장 서방! 진국향이는 이미 죽었소이다. 지금 진국향이 대신을지 부인이 있을 뿐이외다.”

그리고 슬며시 손을 펴서 장량이의 손을 잡았다.

엄엄하여 감히 잡을 생각도 못하던 공주가 자진하여 장량이의 손을 잡아 주니 장량이는 그 손을 잡아 제 얼굴에 문지르며,

“공주님! 진의 혈통을 잊지 마시옵소서! 길지 못한 진의 사직은 오직 공주님께 달려 있읍니다.”

한다.

국향이는 소리를 좀 높여,

“승상님, 이리 와 주세요. 우리들의 이야기는 다 끝났읍니다.”

하였다.

승상은 다시 천천히 앞으로 돌아왔다.

국향이는 을지 승상께 보이지 않게 장량이의 손을 꼭 쥐며,

“장 서방이라고? 국향이는 부왕의 처분으로 을지 부인이 되었으니 국향이 의 남편은 오직을지 승상뿐이오.”

하면서 장량이의 손을 더 힘껏 쥐었다.

“국향 공주, 부왕의 일년상이나 지낸 뒤에야 시집가고 오고 할 게니까, 아직 몇 달 더 있어야 을지 부인이 될 게요.”

국향이는 장량이의 손을 얼른 놓고 승상 쪽으로 나아갔다.

“아직 몇 달―지루도 해라!”

그리고는 진나라 말로 장량이에게 말하였다.

“옛말에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했소. 장 서방도 좋은 세월을 좀 기다리오,”

무슨 의미가 있는 듯한 이 말을 들은 장량이는, 국향이의 말을 좇아서 좋은 세월 기다리기로 내심 작정한 모양이었다.

“승상님, 공주를 만나 뵙게 해주셔서 감사 만만하옵니다. 소인은 성안에 서 볼일 좀 더 보고 석다선인께로 가겠읍니다.”

“응, 가려느냐? 공주는 내 아내니까 네 처란 생각은 아주 버려라. 그리고 선인께 가거든 내가 문안드리더라고 여쭈어 다고.”

“네, 소인은 물러가겠읍니다.”

“오오!”

이리하여 장량이는 석다산서 성 안에 달려와서 그의 목적인 공주와의 회견을 달성하고 다시 석다산으로 갔다.

출가(出嫁)[편집]

국향이는 장량과 작별하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다.

무슨 언쟁을 하든가 싸우든가 한 바는 아니었지만, 몸이 나른한 것이 맥이 하나도 없었다. 장량이와 마주 잡았던 손이 아직껏 뜨끈뜨끈 장량이의 압력이 그냥 남아 있는 듯싶었다.

돌이켜 생각건대, 장량이는 나를 뒤따라 만여 리의 어려운 길을 이 고구려까지 왔다 한다.

만여 리― 말로는 쉽다, 그러나 자기도 겪어 본 바 결코 녹록한 길이 아니다. 자기는 장차 을지 승상을 찾거니 하는 예정이나 있었거니와, 저장량이는 보도 듣도 못한 국향 공주를 뒤따라, 거절당할는지도 모르는 임을 사모 하여 만여 리라는 어려운 길을 왔는가?

장량이는 수차 진나라 사직, 진나라 혈통을 운운하였지만, 사람의 애국심이라든가 애족심이라는 것이,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고도 강행할 만한 용기 가 생기는 것인가?

한패공의 명신 장량이는 황석공의 병서를 얻고자, 황석공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냥 따라서 종내 목적했던 병서를 입수했거니와 진나라 말신(末臣) 장량이는 무슨 약속을 기대하고 만여 리 멀고먼 길을 동이의 나라 고구려까지 뒤따라 왔는가?

이 지극한 정성이 국향이의 마음에 폭폭 들어박혔다. 자기로서는 잠깐 손을 마주 잡아 준 뿐에 지나지 못하지만, 장량이의 이 정성에 무슨 다른 보응이 없지 못할 것이다.

더우기 장량이는 누차 진나라 혈통을 운운하였다. 진나라 제실의 지친 들이 모두 남편맞이에 급급하여, 큰 공주는 수제의 후궁으로 작은 공주는 동 이의 씨받이로 시집가기에 급급하거늘, 장량이는 진나라 혈통을 그냥 운운 하니 그런 정성이 어디 있으랴?

자기는 이미 고구려 승상 을지문덕에게 마음을 허락한 바니,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부정(不貞)이라 하여 꺼리는 바이지만 그래도 장량이에게 무슨 보응이 없지 못할 것이다. 장량은 꾸준히 국향 자기를 ‘내 아내’‘내 처’라 공언한다 하니, 보도 못한 아내를 사모하는 정이 능히 만리길 어렵게 알지 않고 여기까지 뒤따라 오게 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정성을 무엇으로 보응하나?

고국 진나라 처지로 볼지라도 나는 진나라 황녀요, 저는 한 서민이거나 말직의 미미한 존재요, 고구려의 처지로 볼지라도 나는 승상 부인이요, 저는 한 외국 망명인에 지나지 못하는― 저와 나와의 사이에는 감히 접근치 못할 만한 간격이 있다.

석다산 석굴이라는 데는 듣는 바에 의지하면 거기서 몇 해 수련을 하면 인간의 색욕이며 물욕 등 온갖 잡욕에서 초월하여 아주 그런 욕망에서 절연된다 한다. 장량이 지금 석다산으로 갔으니 장차 어떤 정도의 수련을 할지 모르지만, 제발 그의 철천의 욕망만은 달성시켜 주고 싶다.

국향이에게는 장량이에 대한 동정심이 가속도로 늘어갔다.

국향이에게는 어서 시집갈 날을 기다리는 것만이 지금의 유일한 일이었다.

그해 가을에 들어서 부왕의 탈상, 길복 등의 절차를 치르고서 국향이는 드디어 좋은 날 받아서 을지 문에 들기로 되었다.

화려한 고구려 색시의 옷을 입히고서 승상 부인은 국향이에게 향하여,

“공주! 어디 돌아서 보세요!”

“이번은 또 이편으로―…….”

이렇듯 좌우 편으로 공주의 몸집을 살피고서,

“영감님께는 너무 젊은 색신데…….”

혼잣말같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남자들은 젊은 색시라야 좋아한답디다 뭐―.”

길복 갈아입는 자태를 곁에서 손돕던 한 노파가 이렇게 말했다.

“좋기야 하겠지만 몸이 당하나?”

“공주께서는 승상을 아껴서 모십시오.”

그 뒤에는 국향이에게는 음담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한두 마디의 이야기가 있고서 깔깔 웃어 대고는 승상 부인은 국향이에게,

“내 진정 말이지, 공주는 승상을 아끼십시오. 우리 고구려의 지보 기둥이외다. 아무리 무얼 한 대두 꼭 아껴 주십시오. 그리고 공주! 좋은 아기를 낳아 주십시오. 공주에게서 아기만 낳게 되면 내 죄는 탕감을 받습니다.”

“인물이 저렇게 예쁜데 좋은 아기 못 낳겠어요?”

“아니, 내 말은 예쁜 아기 낳아 달라는 게 아니고, 튼튼하고 훌륭한 아기를 낳아서 나라에 긴히 쓰여 달라는 말이외다.”

“승상님도 천하 일색을 취하시니 원 푸셨군!”

“난 그래 박색이요?”

부인이 항의하였다.

“부인께서야 그저 큰집 맏며느리감이시지…….”

“그래 나도 젊었을 적엔, 뒤따라다니는 사람도 많았다우. 호호호호!”

“젊었을 적에 한두 번 오입도 못한 연놈이 어디 있을까?”

“난 그래도 오입은 못했어―.”

“멍텅구리지…… 아하하하!”

“호호호호! 멍텅구리 될까?”

이 귀부인들이 기탄없이 지껄이는 농담에, 국향이는 옷매무시만 만지면서 고즈너기 서 있었다.

자기도 바야흐로 이 고구려 부인이 되려고 그 준비에 한창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며칠만 지나면 자기도 버젓이, ‘고구려 아낙!’ ‘부여의 아낙!’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이 장래에 대한 희망이 나날이 커 가고 무거워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국향이의 마음 한편 구석에 문득 일어서 국향이를 괴롭게 하는 생각은, ‘진나라 혈통은 공주뿐이외다,’ 하던 장량이라는 젊은 진아의 일이었다.

장량이는 좋은 세월 기다리라고 석다산으로 보냈으니 석다산 가서 가만 박혀 있기나 한지?

자기를 사모하여 만여 리 멀고 고생스러운 길을 왔다 하는 것이 좀체의 일이 아니었다.

‘젊은 연놈치고 젊었을 때는 한두 번 오입 안 한 자 없다.’고 외치던 부인도 있지만, 자기도 그 지성에 무슨 보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향이의 마음이 문득 장량이에게 향하여 움직이는 것은 스스로도 그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기는 기위 승상께 마음을 허락했고 몸도 허락할 결의도 있고, 이는 또한 부왕과 고구려 국왕의 칙허까지 있는 정정당당한 일이다.

하늘과 땅에 부끄러울 데가 없는 정당한 인륜상의 결합에 대하여, 국향이 로도 사소의 불만도 없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량이나는 웬 딴 그림자가 마음 구석에 뛰쳐드는가? 만약 장량이라는 인생에게 대하여 마음이 건 몸이건 허락한다 하면, 이는 천륜과 인륜에 벗어나는 일로서, 국향이의 아직껏 받은 교양에 배치되는 바이다.

그러나 국향이 자신이 내밀어 주어 장량이에게 잡혔던 손에, 이상하고도 자릿자릿한 촉감과 압력이 그냥 남아서 국향이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웬 까 닭인가?

‘진실의 혈통은 오직 공주께 남아 있을 뿐이외다.’ ‘진나라 천만 유민의 희망을 끊지 맙소서.’ 정열에 들떠서 울부짖던 장량이의 부르짖음이 국향이의 마음을 움직였나?

고구려 팔백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비기건대, 진실 오 세 삼십삼 년간이라는 역사는 진실로 초라하고 짧은 것이나, 그러나 요순의 자손의 전통을 계승하고 한민족의 역사를 계승하는 원줄기의 꼭지가, 이 열일곱 살 나는 소녀 국향이의 몸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진나라 제실과는 아주 관련이 없는 장량이라는 소년에게 계승되어, 역시 고구려땅 석다산 석굴 안에서 인간도를 닦고 있는 것이다.

이 내 몸을 고구려 승상 을지문덕에게 바쳐서 진나라 망민의 소망을 아주 끊어 놓을 것이냐? 장량이라는 젊은이를 청하여 진실의 명백을 어떻게든 살려 볼 일을 도모할 것이냐?

자기의 자유로 선택할 수 있는 이 갈림길에서 국향이는 어느 길을 택할지 망설이었다.

한쪽 길은 바로 성사만 되는 날이면 대국의 여제(女帝)가 되는 길이었다.

그리고 또 한쪽의 길은 동방의 웅국인 대고구려 국 승상의 내실…―승상의 후계자〔子孫〕의 생친(生親)이 틀림없이 될 것이었다.

제실의 공주로 태어나서 아직 세상 경력을 모르는 국향이는 여기서 스스로 헤매었다.

한편 쪽은 부명(父命)이요 천명이었다, 그리고 다른 쪽은 의리의 명령이 요, 본능의 명령이었다.

국향이는 종내 천명을 좇기로 하였다. 천명은 겸하여 황명이요, 부명이었다.

부여의 풍습에 의지하여 친부모가 없는 관계상 대리의 어머니라도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임금님이 승상을 위하여 국향이의 의붓아버지 되어 주기를 승낙하였다. 그래서 습의(習儀)도 할 겸 해서 국향이는 대궐에 들어가 있다가 을지 가문으로 시집오기로 하였다.

부여의 풍습은 사내가 장가왔다가 아내 된 자 아이를 낳아서 좀 자란 뒤에야 남편의 집으로 가지, 그 전까지는 그냥 친정에 있는 법이다. 그러나 국향이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곧 승상 댁에 들기로 하였다.

대궐에서는 왕후가 손수 국향이이의 손을 잡고 고구려 풍습을 가르쳐 주었다. 국향이는 무엇보다도 우선 좋은 아들을 낳을 것을 목표로 성심 다하여 고구려 풍습을 익혔다.

이리하여 길복 바꾸어 입은 반달 뒤에 국향이는 기러기 붙안은 을지 승상을 맞게 되었다.

두고두고 사모하던 승상의 품에 안겨서, 훌륭한 자식 들기를 축원하면서 함께 잘 때, 국향이는 흥분되어 밤을 잘 자지를 못하였다.

한 열흘 그냥 대궐을 친정삼아 있다가 승상 댁으로 들었다.

승상 댁에서 국향이를 반갑게 맞아 준 이는 승상 부인이었다.

장차 한 남편을 섬겨야 할 두 아낙이었다.

“공주, 제발 승상을 아껴 주시오. 그리고 나라에 유익하고 을지 가문을 빛나게 할 좋은 아드님을 낳아 주시오.”

이러는 동안 국향이는 장량이라는 젊은이의 일을 아주 잊었다. 그리고 어서 을지 무엇이라는 튼튼하고 영특한 아이를 얻으려는 일념만이 젊은 아낙으로서 국향이의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다.

남녀의 길에는 승상이고 졸부이고 다름이 없는 모양으로, 그렇게 점잖던 승 상도 국향이와 단둘이 될 적에는 단지 한 개의 사내에 지나지 못하였다.

“공주! 나를 위하여 튼튼한 아들을 낳아 주시오.”

“승상님! 공주 공주 부르시면 남남 같아서 싫어요. 마누라, 하고 한번 불러 주세요.”

“마누라라? 요런 젊은 색시를 사십 늙은이가 마누라라고 부르기는 너무 아깝단 말이지!”

“그럼 제가 승상님을 영감님, 영감님 하고 부르리까?”

“공주가 나를 여보, 하고 한 번 불러 보구려!”

“여보!”

“왜 그러세요?”

“자!”

승상이 팔을 편다. 그리고는 거기 말려 들어가서 힘있게 붙안기며, 공주는 아아! 세상에 이런 낙도 있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어서 튼튼하고 훌륭한 아이를 낳아서 을지가문에 바쳐서,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승상을 모시는 국향이의 마음은 늘 긴장하였다.

산과 바위를 섬기는 부여 종족의 풍습을 좇아서, 후원에 큰 바위에 제단 하나를 뭇고, 국향이는 늘 그 제단에 좋은 아들 점지해 주시기를 빌었다.

여인이 한 달에 한 번씩 겪는 생리적 이상이 안 보여야 된다 한다. 국향이 가 승상께 시집온 첫 달에 그 과정을 또한 겪고 국향이는 내심 실망하였다.

그런데 둘쨋달은 건넜다. 삼사 일간은 몹시 긴장된 마음으로, 아침 깨면 자리를 검사하고 힘든 일을 피하고 하여서 오륙 일이 지나도 여전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국향이는 내심 만세를 불렀다.

“승상님, 저는 보일 것이 보이지 않아요.”

“보일 것이?”

“네…….”

“보일 것이란?”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것이 매달 초승께 있었는데 이 달은 벌써 중순이 아니에요? 그런데 보이질 않아요.”

승상의 얼굴은 비로소 기쁜 듯 빛났다.

“경사인가 보구료!”

“그런가 봐요.”

“고구려 아낙이지! 남편 맞았으면 으례히 있어야지!”

“승상님 저두 이제는 고구려 아낙이랄 수 있을까요?”

“고구려 승상 을지문덕의 아내가 고구려 아낙이 아니면 누가 고구려 아낙이란 말이요?”

고구려 아낙! 고구려 아낙! 국향이가 평생 두고 남에게 외쳐 보고 싶던 이 명사였다. 이것을 나도 이제부터는 큰 소리로 외칠 자격이 생겼구나!

그것이 분명 임신한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입덧까지 났다. 입에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구역이 나고 군침이 질질 흐르고 모든 냄새에 예민하게 되고― 이리하여 국향이가 분명 아이를 배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한동안 승상 부 인도 국향이를 자주 찾아서 위로해 주었다.

“내 죄를 공주가 속죄해 주시는구료!”

뱃속의 어린애가 펄떡펄떡 움직일 때에, 국향이는 겉으로 고요히 쓸어 보며, 이 애가 승상 댁 가문을 계승할 자이며, 겸해진나라 제실의 유일한 혈 사인가? 귀하고도 기특하였다.

입덧의 고약한 시기를 지나서는 몸이 무겁고 배가 차차 불렀다.

커 가는 배를 어루만지며 장차 온 동방을 뒤흔들 큰 인물이 생겨납소서 한 없이 축원하였다. 국향이가 시집올 때, 양어머니가 되어 준 이 나라 왕후 도 국향이를 찾아 주었다.

“요 속의 놈(년이 될지 모르지만)이 장차 나면 무슨 엉뚱한 짓을 하려는 가?”

하며 왕후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 해도 지나고 이듬해 초가을 잡히면서 국향공주는 몸을 풀었다.

사내애였다. 그런데 그 갓난애의 머리에 뿔이 있었다.

먼저 갓난애의 사타구니를 만져 보고 거기 불알과 자지가 달린 것을 알고 만족하여 물러앉았던 승상 부인도, 머리에 뿔을 보고는 약간 섬사 해서 미 소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린애의 아버지 되는 승상은 그것을 보고,

“요놈, 두각(頭角)이 났구나!”

하며 기쁜 듯이 씩 웃었다.

그러나 승상 자신은 내심 꺼림칙하기는 하였던 모양으로 언제 조용한 기회에 아내 국향이에게 은근히,

“진나라에는 뿔 나는 아이도 있소?”

하고 물어 보았다.

“망측두 하시어! 진나라라고 뿔 난 애가 있겠어요?”

“그럼 이 뿔은 뉘 혈통일까?”

그 뿔은 출생 때의 무슨 고장이었던 모양으로, 그 뒤 때때로 국향이가 쓸어주고 어루만져 주니까 차차 사라지고 말았다.

여하간 국향이는 마음으로 흡족하였다. 여자는 남편을 맞아서 아이를 낳아야 그 본분이 다하여진다. 자기는 지금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였다. 천하에 내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지아비의 아이를, 그것도 옥 같은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뒤채고 일어나 기고 하며, 정당하게 자라는 동안, 국향이는 그저 그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것이 을지 승상의 아이, 더우기 기다리고 기다리던 을지 가문의 뒤를 이를 아인가 하면 마음 송구하도록 기뻤다.

비교적 젖도 풍부하였다. 아이가 품에 안겨서 일심불란히 젖을 빨고 있는 모양을 국향이는 감격된 기분으로 굽어보고 하였다.

그러나 국향이의 마음에 때때로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장량이라 하는 진 나라 젊은이의 일이었다. 무슨 죄를 지은 듯 스스로 죄송스런 기분에 눌리고 하였다.

‘진실의 명맥은 오직 공주님께 달렸읍니다. 그 점을 잊지 말아 주십쇼.’ 감격된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하던 장량이,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옛날 성현이 가르쳤으니, 석 다산 석굴에 가서 기다리라.’ 고 하였더니, 적적한 얼굴로 석다산으로 향하여 발길을 돌이키던 장량이, 만여 리 길을 오직 공주를 사모하여 뒤따라 온, 정열의 젊은이 장량이!

―진실(陳室)의 명맥!

자기는 지금을지 가문의 뒤를 이을 아이를 낳아 드렸다. 그러나 진실의 명맥을 이을 자, 오직 자기뿐이어늘, 자기가 몸을 을지가문에게 바쳐 놓으 면, 진나라 몇 천만 생명의 명맥을 보전해 줄 진실의 명맥을 이을 자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 제 삼십삼 년에 진실의 혈통은 자기 탓에 끊어지는구나! 이것이 국향이에게는 괴로운 문제였다.

아이의 이름을 ‘바위’라 지었다.

이 아이가 설 때에, 바위에 정성들이고 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위처럼 튼튼하고 장수하라는 어버이의 뜻을 포함한 것이었다.

아이는 백일이 지나고 돐이 어느덧 지났다.

‘또 한 놈 생겨야 할 텐데…….’ 마치 국향이는 아이 낳는 기계인 것처럼, 승상은 아내와 대하면 이 사정이었다. 국향이도 될 수만 있으면 한 달에 하나씩이라도 낳아 드리고 싶었다.

이 꽤 긴 기간 동안 국향이는 세사의 온갖 다른 문제는 잊고, 오직 어린애의 무사히 자라는 데만 정신을 기울였다. 다른 모든 일은 국향이에게는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린애의 돌이 방금 지난 어떤 날, 국향이의 처소에 승상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동안에 문득 이런 이야기가 나기 시작했다.

“공주의 남편 ― 소위 부마로라는 장량이― 생각 나오?”

“네…….”

대답은 하였지만 국향이는 왜 그런지 가슴이 철썩 하였다.

승상에게서 무슨 뒷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녀석이 정신이 멀쩡하오?”

“제가 알겠어요? 왜― 무슨 일이 생겼어요?”

“생긴 게 아니라, 일전 석다선인한테서 사람이 왔는데, 그 장량이 녀석이 혼이 빠진 것 같대…….”

“혼이 빠지다니?”

“남 알아듣지 못할 진나라 말로써 혼자 중얼중얼하며, 정신나간 사람처럼 군다거든…….”

정신이 바뀌었다? 만약 장량이로서 정신이 바뀌었다 하면, 너무도 골똘하게 생각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장량이로서 정신이 바뀌도록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내 몸이든가, 진나라 혈맥을 위해서일 것이다.

고구려 칠팔백 년의 사직에 비기건대, 오 제 삼십삼 년의 짧은 진나라 사직이었지만, 그래도 한 민족의 전통을 이을 천자의 줄기다. 그 명예 있는 사직의 줄기가 오직 이 내 몸에 걸려 있다. 그 사직을 두호하고자 정신 이상 이 생긴 젊은이도 있다.

이렇게 생각한 때에, 국향이는 그 장량이를 그냥 버려 두지 못할 의무감을 느끼었다.

“승상님! 그 장량이라나 하는 사람을 의관 보내서 한 번 진맥해 보면 어떨까요?”

승상은 무겁게 국향이를 굽어보았다.

“공주는 아내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남의 일 같지 않우?”

국향이는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휙 눈을 들어 승상을 우러렀다. 눈에는 원망하는 기색이 다분히 들어 있었다.

“승상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제가…….”

푹 머리를 숙였다.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으로서의 설움이 국향이에게서 복받쳐 올랐다.

[편집]

그 밤을 국향이의 방에서 묻고 이튿날 나라에 들어갔다가 나오매, 승상 댁에서는 국향이가 바위를 업은 채 종적이 없어졌다고 불끈 뒤집혀 돌아간다.

주부로서 가모로서 중대한 사고의 책임자인 승상 부인은 눈이 뒤집혀 하인들을 독려하여, 여기를 찾아 보아라 저기를 찾아 보아라 지휘하고 있다.

“아이를 잃다니? 바늘이나 숟가락을 잃는다면 모르거니와, 아이와 아이 업은 아낙을 잃다니, 어디 잘들 찾아 보아라.”

두루 찾아 본 결과 국향이는 아이를 업은 채, 대문 밖으로 하여 한없이 북쪽으로 가더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석다산으로 간 게 아닐까?”

승산부인이 이런 말을 하였다.

승상은 이 말을 듣고 뜨끔한 모양이었다.

“석다산이란? 어째서 석다산 생각이 나오?”

“글쎄요, 공주가 오늘 아침 끈끈하게 석다산 가는 길을 묻던데요.”

“이 팔월 염천에 돐이 된 아이를 업고 석다산 육십 리를…….”

“바위 낳은 지 돐이 지나서 얼굴이 보오얗게 피더니 바람이 났나 봅니다 그려.”

“원, 바람이 났는지!”

그러나 승상에게는 쿡 가슴에 찔리는 일이었다.

장량이라 하는 젊은이가 공주더러 진나라 혈맥은 공주로서 끊어지느냐고 그냥 호소하고 힐난하더니, 젊은 아낙의 마음에 이 말이 박혀서 오늘날 등에는 을지 가문의 혈자를 업고 석다산 장량이를 찾아감이 아닐까?

만약 사실 그렇다 하면 유유한 문제였다. 정열의 여인이 정열에 들떠서 하는 일은 하늘도 지휘하지 못한다.

공주의 정열로써 ‘혈맥이라는 한 가지의 생각으로써 장량이라는 사람에게 몸을 내어맡겨, 을지가문에 생자하는 아낙의 피를 흐려 놓으면 큰 일이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연약한 여인의 몸이라, 곧 뒤쫓으면 국향이가 장량이 의 품에 들기 전에 뒤 및 게 될는지도 알 수 없다.

“내 자식의 어버이 되는 내게 맡기고 안돈들 하시오. 내 공주 더위에 지치기 전에 사람 보내 찿아 올께.”

승상은 사람들을 대강 안돈시키고 스스로는 사랑으로 나왔다.

사랑으로 나와서는 연파대를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파대더러, 국향공주와 진나라의 장량이라는 젊은이의 사연을 상세히 설명하여 주고, 그 국향이 가 장량이를 따라 출분한 듯싶으니, 그대가 뒤쫓아 가서 만나거든, 좋도록 말하여 도로 이를 무사히 펴 보라고 부탁하였다.

향산서 산삼을 캐다가 을지 승산을 따라와서, 지금껏 승상 댁에 기거하며 승상 댁 책을 마음대로 읽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던 연파대는, 여기서 처음으로 승상의 제이 부인 국향 공주를 데려오는 데 임무를 띠고, 석다산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다.

×

잔서(殘暑) 아직 꽤 따가운 팔월의 어떤 날, 고구려 장안 서울의 교외를 한 아낙이 터벅터벅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완전히 포도 장치가 된 기분 좋은 길이었다. 아낙도 길 걸이에 꽤 숙련된 사람인 모양으로, 등에는 한 아이를 업은 모양이었지만, 아주 가벼운 발걸 으로 길을 가고 있었다.

을지 승상 댁에서 뛰쳐나온 국향이었다.

“응, 착하지 착해!”

등에 업은 아이를 연해 달래며, 주저 없이 북쪽으로 북쪽으로 간다.

지난해 엄동에 만여 리 길을 걸어온 경력이 있는 국향이었다. 지금 목표가 겨우 수십 리― 지난해에 비기건대 겨우 누워서 다리 조금 움직이는데 지나지 못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한 아낙이 몸을 푼다는 위대한 사업을 겪고 나면 기력이 한 풀 꺽이는 모양으로, 몇 걸음 걷지 않아서 다리가 약간 푸들푸들 떨렸다.

장량이를 만나 보고자, 장량이로 하여금 한 아이를 벌고자, 하마터면 끊길 뻔한 이 내 몸에 흐르는 진나라 혈맥의 계승자를 낳으려는 단 한 가지의 기 대로써 석다산의 장량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자기는 부왕의 명에 의지하여 을지 가문에 출가하여 끊겼던 을지 가문의 후계자를 낳았다. 그러면 이번은 하늘의 분부대로 진나라 혈맥을 이을 자를 낳을 큰 의무가 남아 있다.

이 천직을 이행하기 위하여 자기는 승상을 배반하고 젊은 사나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진나라 천만 적자의 희망은 오직 공주의 몸에 걸려 있읍니다.’ 연전에 자기가 팔을 늘이어 장량에게 잡혀 줄 때, 장량이는 손을 잡고 몸을 떨면서 국향이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을지 승상에게, ‘국향이라는 하늘이 주신 내 아내요.’ 하고 사뢰던 정열의 사나이― 진경(陳京)서 고구려 서울까지 몇 만 리의 길을 오직 국향 자기의 뒤를 사 모하여 따라온 정열의 사나이에게 국향이의 관심을 꽤 깊은 것이었다.

“곧장 북쪽으로 그냥 가노라면 뿌주다리가 많은 산이 나타납니다. 거기가 석다산입니다.”

이러한 막연한 지시로써, 사람이 설마 못 찾으랴 하고, 돐 된 바위를 등에 업고 을지 댁을 나선 국향이는, 뿌중다리 많은 산을 목표로 북쪽으로 북쪽으로 한없이 걷는 것이었다.

“석다산이라는 데가 여기서 몇 리나 됩니까?”

“이제 이십 리입니다.”

“십 리만 더 가시오.”

십 리 이십 리 길은 지난 겨울 만여 리 길에 비기건대 코앞이나 일반이었다. 그러나 생산이라는 큰 역사를 겪어서, 몸의 기력이 한 풀 꺽인 국향이에게는, 더욱이 독 같은 아이를 진 몸이라 한량없이 멀어 보였다.

그날 황혼에 석다산 십 리를 남긴 채, 국향이는 어떤 주막에서 한 밤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향이가 피곤한 몸을 하룻밤 편안히 쉬고 이튿날 꽤 해가 늦어서야 깨었다.

―여자의 해산이란 것이 그렇게도 큰 일인가? 일 년 전 경험만 보더라도 하룻밤 자고 깨어서는 이튿날은 백여 리의 길을 걷고 했는데, 지금 단 하루 걸은 데 지나지 못하거늘 이다지도 몸이 고달픈가? 이러다가는 아이 셋, 넷 만 낳으면 몸이 아주 죽어 빠질 것 같다.

일어나 몸을 가누로라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일어나 영창을 열었다. 그랬더니 밖에는 꽤 수다한 남녀가 안의 국향이의 일어나기를 기다리던 모양이었다. 국향이가 영창을 더르륵 열자, 꽤 여러 사람이 영창 쪽을 향하여 공손히 국궁례를 한다.

그 가운데 한 스무남은 난 젊은이가 덥석덥석 국향이의 영창 앞으로 가까이 왔다.

“지금 기침해 계시오니까? 소인은 연파대라는, 승상 댁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옵니다. 승상의 분부를 받자와 공주를 모시러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그리고는 댓돌을 덥석 짚고 올라서서 영창 안으로 들어왔다.

국향이는 파대가 들어오기를 기다려 영창을 도로 고요히 닫았다.

“승상께서 몹시 걱정하시지요?”

“걱정 여부가 있읍니까? 소인더러 어서 달음박질로 가서 공주를 모셔오라고 호령호령 하시어, 소인은 어제 내내 달음박질로 달려왔읍니다.”

그래도 나는 장량이를 만나서 진나라 혈맥을 이을 혈자를 하나 구해야겠다는 이 커다란 책무감을 지닌 국향이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곁에 내려놓은 바위의 머리만 고요히 쓸어 주고 있었다.

“공주님! 공주님의 몸은 지금 이 나라에서는 여간 귀하신 몸이 아닙니다.

을지 승상의 부인이라는 공주의 몸은 온 고구려 사천만 만성의 촉망과 기대가 지워져 있는 몸이옵니다. 자중합소서! 공주의 몸 한 번 실수하시면 사 천만의 노염이 공주께 향하오리다. 이 연파대의 주먹이 결코 공주님을 용서치 않으오리다. 장량이라나 하는 되놈은 어제 연대파가 한 주먹으로 박살을 하려다가 잔명만은 그냥 남 경외(境外)로 내칠 작정입니다.”

국향이는 내심 일변으로 차차 무겁게 떠오르는 희열을 느끼었다. 아차 잠깐 실수했더면, 고구려 사천만의 노염은 둘째두고, 여인으로서의 씻지 못할 과실을 범했을는지도 모르는 자기를 여기서 이렇듯 꽉 억류해 주는 튼튼한 힘이 있었기에 자기는 과실을 범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한다면 장량이는 과연 가긍하기 한이 없었다.

만여 리의 먼 길을 나를 뒤따라 예까지 왔거늘, 한 번도 따뜻이 붙안아 주 지도 못하고 경외에 내친 바가 되려는가?

“공주님, 장량이를 잠깐 보시렵니까?”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승상 부인이시라, 추호라도 소홀함이 있었다가는 용서치 않는다.”

이러한 주의와 함께 장량이가 이 방으로 인도되었다.

국향이는 눈을 굴려 들어오는 장량이를 보았다.

국향이가 장량이를 처음 본 것은 지난 해에 잠깐뿐이었다. 그러매 그얼굴 생김이며 몸매며 조금도 기억에 없다.

그러나 지금 연파대에게 인도되어 이 방으로 들어온 장량이의 꼴은, 국향 이는 간신히 부르짖음을 참을 만큼 참혹한 것이었다.

일 년 전보다 제법 골격이며 체격이 장대하게는 되었지만, 누구에게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이 몸 사면에 멍이 들었고, 얼굴은 눈 근처에 한주먹 단단히 얻어맞은 양, 왼쪽 눈두덩이는 주먹만큼 부어 올라서, 눈이나 상하지 안았는가 근심될 지경이었다.

“이 녀석아, 부여의 주먹맛을 단단히 보았느냐?”

“예…….”

대답만은 진실로 고분고분하였다.

“그래 맛이 어때?”

“약간 아픕니다.”

“약간만? 좀 더 먹어 보련?”

“싫소이다.”

“공주님, 소인은 잠깐 저 방에 갔다 오리다.”

파대는 장량이를 남긴 채 이방을 물러 나갔다.

파대가 물러간 뒤에 국향이는 한 걸음 두 걸음 장량이에게 가까이 내려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장량이의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을 가만히 만져 주었다.

“아야!”

“아파요?”

“아프지 않겠나 보세요.”

“왜 이렇게 되셨어요?”

“연기라 하는 지금 그 녀석이 무심중 지끈 받는데, 고구려 놈의 대가리는 돌덩이입디다.”

“받쳤구료! 이 팔다리는?”

“거기는 두들겨 맞았지요. 공주님은 어떻게 여기를 오셨어요?”

“장 서방을 좀 보러―.”

“나 같은 건 봐서 뭘 합니까?”

“진나라 혈맥이 남은 자, 오직 이 몸과 장서방뿐 아니오? 그 진나라 혈맥의 뒤를 물려야 할 게 아니오?”

“으으ㅡ 공주님!”

“나는 을지 승상의 혈자를 낳아 드렸으니까, 이제는 진나라의 혈손, 내 아버지의 손자를 낳아 드려야지요.”

아프다 어떻다가 모두 거짓말이었던 듯이, 장량이는 이 말을 듣고는 몸이 흐늘흐늘 일어섰다.

그리고 양팔을 들어서 국향이를 얼싸안았다.

승상의 완숙하고 뻣뻣한 얼굴과는 마주 비벼 본 일이 있지만, 정열에 불붙은 젊은 얼굴과는 서로 마주 대어 본 일이 없는 국향이는 이 장량이의 정열의 입술이 자기의 얼굴이며 입술 근처에 뛰노는 앞에 고요히 자기의 얼굴을 정량이에게 맡기고 상쾌한 젊은 정열을 즐기고 있었다.

국향이는 장량이의 숨찬 소리와 그 호흡을 감각하면서, 두손을 들어 장량이 의 양볼을 붙안아 제 얼굴 위에서 그것을 떼어, 다시 정면으로 그 입을 자기의 입에 갖다 대었다.

볼을 붙안고 한참을 입을 맞대고 있다가 장량이의 얼굴을 다시 네댓치쯤 되는 거리에 떼어 치우고 국향이 역시 흥분된 음성으로,

“장서방!”

하고 불러 보았다.

“공주님, 소인의 아내가 되어 주십시오.”

“국향이는 언제든 진인(陳人)의 아내입니다.”

“진인 장량이의 아내가 되어 주십시오.”

“장서방, 장 서방 연모(淵某)에게 끌리어 내일은 경외(境外)로 나가게 됩니다. 장 서방께서 다시 석다산 가까이로 찾아올 재간이 있겠어요?”

“어어 싫습니다. 저 연가 놈의 눈에 들켰다가는 이번은 꼭 죽습니다.”

“나를 아내삼기 위해서도 연가가 무서웁니까?”

“죽은 뒤에 아내가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들키지 않고 묘하게 숨어 들어오지?”

“고구려 순라는 새 한 마리, 파리 한 마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국향이의 아이 바위가 태치듯 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국향이는 그것조차 괘념되지 않는 듯이,

“요게 왜 이리 야단이야!”

하면서 좀 떠밀어 버렸다.

바위를 떠미느라고 지금껏 붙안고 있던 장량이의 뺨을 놓으니까, 성적(性的)으로 미칠 듯이 흥분된 장량이는 국향이의 허리를 얼싸안으려 하였다.

그것을 가벼이 밀며,

“바위야, 엄마가 너를 떠밀던? 걸 왜 떠밀까? 내 새끼를…….”

하며 바위를 끌어당겨, 그 부드러운 입술에 제 입을 대고 쪽쪽 맞추었다.

“공주님!”

“왜 그러오?”

“소인의 입도 좀…….”

“지금껏 맞대고 있고도 부족하오?”

“해로동혈(偕老同穴)키 전에야 부족합지요. 게다가 공주님, 좀 쪽 소리가 나도록…….”

국향이는 탄식하며 바위를 다시 붙안았다.

“고구려 젊은이들은 이렇지 않더구먼! 진나라 혈맥은 그냥 내게 남아 있건만 국맥은 살아날 가망이 없구나. 아아 운재명재(運哉命哉)로다!”

“공주님, 진나라 국맥은 소인이 붙드오리다.”

“진나라 젊은이가 모두 연 서방의 주먹에 질겁을 해서 아내를 빼 내러 오지도 못하겠다는 장 서방 같아서는, 비록 국향이 있어도 진나라 명맥붙들 사람은 없소!”

“공주님, 소인이 승천잠지해서라도 다시 석다산 근처로 잠입을 하오리다.

공주님을 빼내고자…….”

“……장서방!”

국향이는 다시 손을 펴서 장량이의 뺨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자기의 뜨거운 입술을 장량이의 입에 한참을 대고 있었다.

그 날 해가 꽤 높아서 국향이, 연파대, 장량이, 이 일행은 석다산을 떠나서 다시 장안으로 회정을 하였다.

국향이와 바위를 위해서는 소교가 하나 준비되었다.

한 절반 내려오다가 어떤 여막을 잡아 하룻밤 쉬기로 하였다. 장량이가 걷기 힘들어하므로 장량이를 위하여 하룻밤 쉬기로 한 것이었다.

장량이는 어느 방에 쉬게 되었는지, 국향이와 연파대가 한 방에 묵게 되었다.

괴상한 인연으로 젊은 남녀가 같은 방에 묵게 되어서, 국향이로서는 마음의 경계를 꽤 하였으나, 저녁을 먹은 뒤에는 파대는 뜰로 나가고 말았다.

옷고름의 경계를 꽤 하였으나, 저녁을 먹은 뒤에는 파대는 뜰로 나가고 말았다.

옷고름 졸라매고 몸단속을 단단히 한 뒤에, 국향이는 먼저 자리에 들고 말았다.

국향이가 한잠을 풀낏자고 깨어보니 파대는 여전히 뜰에서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또한 잠을 자고 나니, 그때는 밤도 어지간히 깊은 모양인데, 파대는 여전히 뜰을 거닐고 있었다. 승상 부인이 침실을 경계하고 지키는 파수의 구실을 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이 밤은 왜 그런지 국향이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연해 깨고 하였다.

국향이가 세 번 잠에서 깰 때, 파대는 몸을 쉬느라고 방 툇마루 위에 걸터 앉아 있다.

국향이는 몸을 수습하여 파대를 불렀다.

“연ㅡ 서방이라고?”

“네, 연파대라 합니다.”

“좀 방에 들어가 쉬세요.”

“소인은 괜찮습니다. 공주님 더 주무세요. 아직 내일도 오늘만큼 길이 더 남아 있읍니다.”

“좌우간 좀 들어와 쉬세요. 내가 이야기도 좀 하고 싶고…….”

파대는 그리 사양치 않고 덥석 들어와 앉았다.

“공주님, 장량이라나 하는 되놈을 그렇게도 못 잊어 하십니까?”

“장 서방은 국향이의 남편이올시다.”

“공주님은 을지 상공의 부인이 아니세요?”

“상공 부인은 상공 댁에 계십니다.”

“저 바위 도령은?”

“바위는 승상 자제입니다.”

“승상 자제이자 또한 공주님 아드님이 아니오니까?”

“공주―국향이는 승상님께 아드님 하나를 낳아 올린 것뿐이지요.”

“당신네 진나라 부인네 생각은 그렇습니까?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말도 진 나라 성현의 말인 줄 아는데―.”

“저는 열녀가 아닙니다. 열녀가 되고자도 안 합니다.”

“공주님 생각은 고구려인의 생각과는 대상부동입니다. 저는 아직 총각입니다마는 이 총각이 거룩한 몸을 처녀 아닌 여인에게 더럽히기 싫어서 그냥 총각을 견지하고 있읍니다. 처녀로 적당한 짝은 아직 발견되지 않으니, 총각으로 늙을 밖에는 도리가 없겠읍니다.

파대는 천장을 우러르며 한 번 크게 웃었다.

국향이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뜻하지 않고 꾸벅 졸았다.

“공주님, 한잠 더 주무시지요. 밝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읍니다.”

또 밖으로 나가려는 듯 몸을 움직였다.

국향이는 바위를 고용히 내려 뉘며 자기도 곁에 다리를 뻗고 누웠다.

“연 서방도 게서 좀 다리 펴고 주무세요.”

“저는 나가서 이 근처를 살펴야겠습니다. 공주님, 주무세요.”

하면서 파대는 그의 묏더미 같은 몸집을 일으켜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파대와 장량이와 을지 승상, 이 세 사람의 이성을 마음속으로 막연히 비교하여 보며, 국향이는 또 잠의 나라에 빠져 들어갔다.

이튿날 이 일행은 무사히 장안 서울 을지 댁으로 돌아왔다.

그때 저녁상을 받고 있던 승상 부인은 달려나와 국향이에게서 바위를 받아 안았다.

“어딜 갔었니? 도로 왔구나! 아이구 내 새끼야!”

하며 마치 잃었던 자식을 찾은 듯, 늙어 가는 그의 눈가에서는 눈물까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여기서 국향이는 자기가 무슨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것을 무한히 만족하게 여기었다.

만약 자기가 얼굴을 들지 못할 무슨 실수를 하였더면, 지금 무슨 면목으로 이 댁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까?

하마터면 저지를 뻔하였다. 장량이의 뺨을 끌어다가 제 입술에 대고 마주 빨고 빨리울 때, 몸이 모로 쓰러지기만 하였더면 다시 얼굴 들지 못할 커다란 실수를 한 뻔하였다.

뿐더러, ‘나는 총각이오.’ 하며 파대가 자신의 신분을 자랑할 때, 국향이는 그 총각이로라는 파대의 몸을 끌어안아 보고 싶은 충동을 파대의 그 엄한 얼굴의 표정 때문에 물리쳤다.

그때에 파대가 약간의 수상한 행동만 취하였더라도, 국향이는 파대에게 몸을 내어 맡기기를 주저치 안았을 것이다. 아니 도리어 국향이 편에서 파대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국향이는 여인의 정조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가 쉬운 것인지를 알아차리고 몸서리쳤다.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도덕관을 깊이 마음에 새겨 두고, 한 남자 밖에는 절대로 보기를 피하여 오는 고구려 아낙들의 갸륵한 정조관을 생각하여 보면 진실로 감탄할 만 한 것이었다.

승상 부인에게서 바위를 받아 안고 제 방으로 돌아와, 마음의 괴로움이 무 엇에서 해방된 듯, 고구려 아낙의 정조관념에 깊이 감복하며, 그의 사랑하는 아들 바위를 힘있게 안으며 그 자리에 엎드렸다.

까닭 모를 눈물이 스르르 그의 눈가에 흘렀다.

“바위야, 우리 집에 왔구나!”

국향이는 바위를 힘있게 안았다.

국향이에게 있어서는 을지 승상을 뵈올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승상은 어떤 태도로 어떤 심경으로 자기를 대할는지, 거기 대하여 자기는 어떤 태도로 대하여 드려야 할지, 이것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승상은 이튿날 아침에야 국향이의 방을 찾았다. 무뚝뚝한 얼굴에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몸과히곤하지 않소?”

들어서면서 역시 무뚝뚝한 음성으로 승상은 이렇게 물었다. 거기 대하여 국향이는 싱겁게 씩 웃으며 조금 발치로 몸을 움직였다.

“요놈은 곯아떨여져 자는구나. 공주는 그래 장 서방을 만나 보았소?”

“네…….”

“을지의 품보다 장 서방의 품이 그립습디까?”

하고 어린 바위의 잠자는 머리를 쓸어 주며 말을 계속하였다.

“그렇지만 여보 공주, 진나라 풍속은 모르지만, 고구려 습관으로 한 여인 이 시집을 가면 친정이고 옛 인연을 온통 끊고 시집 사람이 되는 법이오.

천자의 칙허와 칙명으로 내게 시집은 이상은, 장 서방 무슨 서방 할 것 없이, 옛 인연은 죄 잊어야 하는 법이오. 공주는 지금 완전한 고구려 여인이 외다.”

“승상님, 그래도 소녀는 진나라 혈통을 잇는 자식을 천자 위해 낳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진나라 혈맥을 잇는 자, 오직 소녀 밖에는 없읍니다.”

“진나라는 오 제 삼십삼 년 밖엔 가지 못하고 공주 아버님에게 끊어졌읍니다. 공주는 고구려로 시집왔으니 고구려 사람이지, 공주의 몸에서 진나라 혈맥을 이을 자가 어떻게 나오?”

“그래도 저 장 서방은 진나라 혈맥을 살리려는 정신을 갖고 있읍니다.”

“계집의 뒤따라 만리길 오는, 허파에 바람 든 천하 부랑자 녀석이, 공주께서는 못 잊히오?”

“그래도 진나라….”

“진나라 뭐요? 젊은 놈의 품이 그리워 그러지! 그래 그 젊은 놈에게 붙안 겨 보기나 했소?”

문득 회상되었다.

바위의 아버지며 남편 되는 승상이 단 한 번이라도 그처럼 숨차게 자기를 붙안아 주면 국향이는 얼마나 기뻣을까?

승상은 자기를 사랑하기는 극진히 사랑한다. 그러나 승상의 사랑은 너무도 점잖고 정열과 힘이 없었다.

국향이의 나이 바야흐로 스무 살, 여인 스무 살이면 혼자 있을 때라도 그 몸은 정열에 불탈 듯한 한창의 시절이다.

반 아흔 살의 늙은이에게 시집와서, 이 내 청춘은 그저 썩지 않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에, 국향이의 마음은 적이 뛰놀았다.

‘장 서방이 그립고나!’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 날 국향이는 으레히 승상이 잠자리를 국향이 자기의 방에서 할 것으로 알고 몹시 기다렸으나, 승상은 대궐에 들어갔다 나와서는 사랑에 자리하고 서 자고 말았다.

승상이 들기만 하면 사뢰고 싶은 말, 호소하고 싶은 말, 사죄하고 싶은말, 가지가지의 천만 가지 사정이 가슴에 쌓이고 쌓였지만, 그것을 모두 삭이고 혼자서 지내자니 여간 마음 괴롭지 않았다.

그런데 승상은 어찌된 일인지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사랑에 자리하고 말았다 언젠가 한 번 승상의 소리를 듣고 국향이가 너무 반가와 마주 뛰어나 가려는데 승상은 돌아보며 빙긋이 웃으며,

“장서방댁, 장 서방 꿈이나 꾸었소?”

하며 지나가 버렸다.

국향이는 장 서방과 입맞춘 것을 연파대가 보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못 보았으리라고 보장도 또한 못할 일이다. 연파대의 입을 통화여 그것이 승상께 보고되지 않았다고 안심하지도 못할 노릇이다.

그 때문에승상은 이렇듯 냉담함인가? 사십 늙은이가 열 소리 하는 소녀를 아내로 맞았으면, 아내의 약간한 오입쯤은 묵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진나라 풍습은 아내의 부정(不貞)이 허용되는가?”

그때 승상은 몹시 불쾌한 듯이 오히려 노여운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국향이 자기의 그때 행동이 혹은 부정으로 될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국향 이는 자기딴에는 이것도 일단 망한 고국의 혈맥을 이어 보려는 가여운 애국 행동의 일단이다. 그것을 너그러이 용인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승상이, 국향 이에게는 오히려 딱하였다.

―서방에게 미쳐서 조국도 버려야 하는가?

고구려 사람에게 고구려의 애국심이 있을진대, 진나라 딸에게는 진나라의 애국심이 있을 것이다.

이것도 서방 때문에는 버려야 하는가? 승상 댁에서 국향이에게 대한 대접 이 석다산 다녀온 뒤에는 전보다 현저하게 달라졌다. 전에는 승상 부인도 무시로 국향이의 처소에 들러서, 바위를 어르며 한참씩 놀고 하더니, 이제 부인은 일체로 들르는 일이 없었다. 시녀를 시켜서 바위를 부인 처소로 데려가고 하였다.

시비들도 이심전심으로 이 기분을 알아채고, 국향이의 시종은 그리 시원히 하지 않는다.

을지 가문에 칙명으로 시집을 와서, 시집오자, 한 아들을 낳아 바친 그 시절의 국향이의 처지에 비기건대 과연 참담한 형편이었다.

장서방과 입 한 번 맞춘밖에는 더 나아간 허물이 없거늘, 그 일이 이 결과를 낳았는가?

바위가 종내 승상 부인 방에서 자기까지 하였다.

독수공방이라는 경험을 처음 한 날 밤, 국향이는 한밤을 한잠도 못 이루고 일어나 앉아서 울면서 새웠다.

국향이는 잊혀진 존재처럼 되었다. 아무도 그를 간섭하거나 눈여겨보는 이 가 없었다.

승상은 코끝도 볼 수 없을 뿐더러, 그 음성조차도 국향이에게는 다시 들을 기회가 없었다.

어머니의 배에서 세상에 떨어진 이래로 혼자 자 본 적이 없고, 하다못해 시녀의 시측이라도 받고야 자던 국향이는 비로소 독수공방이라는 것의 적적하고 아픈 것을 통절히 느꼈다.

바위 하나를 안고 자기가 용인되어 있지만, 그 바위도 간간 승상 부인께 가서는 도로 오지 않는 수가 흔히 있었다.

가을도 차차 깊어서 만물이 소슬한 절기에, 넓은 방에서 쪼그리고 혼자 자는 그 고통은 형언키 힘들었다.

이러한 때에 국향이에게 다시금 통절히 생각 나는 것은 정량이라는 진나라 젊은이의 정열의 품이었다.

장량이는 연파대라는 사람에게 끌리어 가서 경외(境外)에 내친 바 되었다.

그러나 아내(국향이)를 빼 내려 도로 잠입하기로 약속하였다.

‘잠입하다가 연 서방에게 들키면 매 맞아 죽어요.’ 겁에 질리어 이렇게 호소하던 장량이라, 믿음성 있는 약속은 아니었지만, 자기를 사모하여 만여 리 길을 온 정열로 미루어 그래도 국향이에게는 아주 잘라 버리지 못할 미련이 있었다.

자기의 입술에 맞대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던 정열의 젊은이, 그 정열의 뜨거운 입김과 힘찬 품이 국향이에게는 차차 그리워 갔다.

어린 바위를 힘있게 안고, 이것이 정량이거니 하는 생각으로 바위의 입을 빨아 주기도 여러 번이었다.

한 스무남은 살 되고 보니, 사람의 나고 죽는 의의(意義)의 엄숙하고 큼도 차차 짐작이 갔다.

부왕이 우물에 몸을 던져 죽음에 임하여, 국향자기를 동이(東夷)의 재상 을지문덕에게 부탁함은 오직 국향이를 살리고자 함만이 아닐 것이다. 천하를 웅시(雄視)하는 대고구려 재상에게 딸을 맡겨, 사라지는 진나라 피를 그래도 남겨 보고자 하는 고충이 아니었을까? 만약 부왕의 진의가 그렇다 할 진대, 자기는 을지 가문의 아이 낳는 지어미로만 종시하는 것은 부왕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장량이가 더욱이 애타게 그리웠다.

자기와 장량이와의 사이에 아이가 난다 하면, 그 아이야말로 순수한 진나라 아이일 것이다.

여상한 이론은 모두가, 요컨대 국향이가 이성의 품이 그리워서 생겨나는 억지의 이론이었다.

어떤날 밤, 국향이는 밤이 새도록 바위를 안고 운 뒤에, ‘소년은 부와의 유지를 계승합고자 오래 신세진 승상님 댁을 하직하나이 다.’ 라는 간단한 글 하나를 남기고서, 모후(母后)에게서 노자로 쓰라고 받은 패물들만 몸에 지니고 을지 댁을 빠져 나왔다.

승상 댁에서 뛰쳐나온 국향이는 우선 그 목표를 석다산으로 잡았다.

석다산 아래의 마을까지 이르러 알아보았으나, 여출일구로 석굴 사람은 석굴까지 가야 알지, 그렇지 않고는 모른다 하므로 험한 골짜기 바위을 건너고 넘어서 그 많은 석국을 모두 뒤져 보았으나, 장량이의 소식은 막연하여 알아볼 길이 없었다.

그날 저녁 여막으로 내려와 몸을 여막에 잠글 때는, 국향이는 온몸이 피곤 하여 호흡조차 순조롭지 못할 지경이었다.

몸이 피곤하다가보다는 마음이 피곤하고 앞이 딱 막혔다.

아무런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이 없이, 그저 막연히 을지 승상 댁을 뛰쳐나온 제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여 마지않았다.

개 새끼 한 마리, 벌레 한 마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치밀한 고구려 경찰력 (순라)에 국향이는 일말의 희망을 붙였다. 승상이 자기를 그렇듯 사랑하였으니, 승상이 자기의 출분을 알아채고 온 고구려의 힘을 동원해서 자기를 찾아 보지 않을까?

그렇다 하면, 자기는 거기에 붙들여 다시 승상 댁으로 돌아가서, 승상작은 마마로, 바위의 자친으로, 다시 고구려의 아낙으로 결코 딴 생각 품지 않고 안온하게 생애를 지내리라.

문밖에서 저벅저벅 사내의 발소리가 날 때마다 국향이는 몸까지 흠칫흠칫 놀라며 기다렸다. 연파대의 발소리가 아닐까? 연파대가 자기를 잡으러 오는 것이 아닐까?

아아 승상님! 국향이는 진실로 잘못하였읍니다.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시고 용납해 주시면, 차후에는 국향이 결코 다시 승상님을 배반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으리다.

그러는 일방 국향이는 젊은 사나이 장량이의 굳센 팔 힘이며 뜨거운 입맞춤 등이 또한 가슴이 메도록 그리웠다.

‘쪽 소리가 나도록ㅡ.’ 정열에 미칠 듯한 눈을 번득이며 국향이 자기를 힘있게 안고 그 입을 마주 비며 대던 정열의 젊은이가 국향이에게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국향이는 며칠 동안을 무위하게 석다산 아래 여막에 묶으면서, 행여연파대 나 승상 댁 심부름하는 누구가 오지나 않는가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 기대가 헛된 것을 깨닫고, 고구려 초동의 옷 한 벌을 준비하여 차리고 석다 산 아래의 여막을 떠났다.

‘우리 부모가 나를 동이의 여편네로 만들려고 낳아 기른 바는 아니겠지.

진국향이는 진나라 백성 노릇하자.’ 는 결으로써 오래 젖었던 고구려 재상가 아낙의 티를 벗어 버리고, 당분간 몸을 고구려 초동으로 차리고, 진나라 젊은이 장량이의 행방을 찾고자 정처 없는 길을 다시 떠났다.

‘장 서방을 경외(境外)로 내친다.’ 이 경외 경내의 접경지인 오리내(鴨綠江) 근처를 목표로 국향이는 다시 길을 떠났다.

석다산 아래를 떠나서, 다시 장안성까지 이르렀다.

성 밖에 사관하고 묵었다. 단 한순간이나마 바위를 보고 싶었다. 바위가 아니거든 을지 승상이라도, 을지 가문의 하인이라도, 옛 인연에 관련되는 누구든 잠깐 보고 싶었다.

뭇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매를 맞고 창피를 당하면서도, 다시 을지댁에 끌려갈 기회가 생기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차마 성 안에는 스스로 부끄러워서 들어가지 못하였다.

옛 인연 있는 사람에게 들킬 목적으로 사흘을 성 밖에 사관하고 성 밖을 배회하다가, 드디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또다시 길을 떠날 때에, 국향이 에게는 온 천하가 다 원수같이 보였다.

‘바위? 바위보다 돌멩이를 보리라. 을지 상공? 길가의 초동을 보리라, 나를 위해 만리길을 찾아온 장서방이나 만나리라. 아아! 그러나 장서방은 어디 있는가? 그 우악스러운 연 서방을 다시 만나서 욕이나 보지 않는가?

바위야! 바위야!

속으로 외치며 부르짖으며, 국향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장안성을 떠나서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장량이를 만나러 다시 길을 걸었다.


을지 승상 댁에서는 국향이가 나간 날, 꽤 늦게야 국향이의 실종을 발견하 였다. 승상 부인께 가서 밤을 자고 엄마를 찾아 아침에 왔다가, 텅빈 방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엄마, 엄마ㅡ 울며 부르짖기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알리우고, 승상 부인도 알려와서 국향이의 남긴 글월도 발견되고 하여 국향이의 실종이 알려진 것이었다.

승상은 그 사연을 듣고, 입맛이 쓴 듯이 두어 번 혀만 찼다.

“양호유환이라더니 공연한 것 기르다가 걱정만 남겼군. 바위는 이젠 부인 이 맡아서 기르시오. 어미 없는 아이니 그렇게 아시오.”

“바위 기르기야 누군들 걱정 있으리까마는 하여간 누구를 공주 찾아내보 내야지요.”

“내버려 두오. 철없는 애도 아니요 제 생각으로 나간 공주를 찾아오면 무러하오? 또 나갈걸 ㅡ 좌우간 바위나 잘 기르도록 합시다. 늙은이 싫다고 젊은 놈 찾아간 걸 불러야 쓸데 있소? 진나라 여인의 생각은 우리 고구려 사람으로는 잘 알지 못할 게야. 어느 서방이건 잘 섬기기만 하면 열녀라는 게 진나라 사람들의 생각이거든. 게다가 공주의 나이 이젠 스물이 아니오?

스무 살 여인이 저 하고 싶어하는 노릇은 하늘도 다시 잡지 못하는 법이오.”

“그렇지만 애처로와! 그 연약한 몸이 이제 나가서 몹쓸 세상에 부딪칠 생각을 하면, 더욱이 바위의 생모라 애처롭지 않습니까?”

“한 번 부딪쳐서 세상 맛 쓰고 단 걸 알고 들어오면 그때 받아 주지.”

승상은 아주 국향이를 내버리고 말았다.

승상 댁의 누구ㅡ 하다못해 하인배의 눈에라도 행여 뛸까 하여 며칠을 성 안 성 밖을 배회하다가 국향이는 종내 스스로 단념하고 자기의 길을 가려고 발 뗄 때는, 국향이의 마음은 통곡하고 싶도록 괴로왔다.

이제는 하릴이 없었다. 승상 댁 혈자를 받으려는 욕망을 버릴진대, 이제는 진나라 혈손을 받을 노력을 해야 하겠다. 장량이― 장 서방은 어디있는가?

연파대에게 두들겨 맞고 달아난 진나라 혈맥의 소유자, 장량이 는 어디 가 있는가? 다시 장량이의 소식을 찾으려고 국향이는 대동강 연변으로, 살수 연변으로, 향산, 의주 등 각 연변을 샅샅이 뒤지면서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꽤 세밀히 찾아 보았지만 석다산 이후의 장량이의 소식은 망연하여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초동으로 변복한 국향이는, 이르는 곳마다 장량이의 소식을 탐색하면서 오리내까지 넘어섰다.

장안을 상거하기 오백여 리ㅡ 연전 온 바의 만여 리에 비기건대 몇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가을의 짧은 해를 이용하여 가다 쉬다 하 는 길이라 국향이에게는 지루하고도 한없는 길이었다.

상하천여 리가 되는 오리내 연변을 샅샅이 오르내리며 뒤질 수는 없어서, 대국으로의 교통로의 연변만 뒤지면서 북상하면서도, 국향이는 장서방을 어디다가 내려뜨린 것 같아서 마음이 자꾸 뒤로 끌리었다.

오리내를 넘어서는 말갈 부락의 꽤 띄엄뜨엄 있었다.

국향이가 비록 고구려 승상의 아내가 되고 고구려의 가정에서 아니 낳고 살림을 하였다 하나, 그동안 익힌 것은 모두가 고구려의 상류 사회의 풍습과 언어들이었다. 말갈족과 부여족의 풍습과 언어가 뒤섞여 새로운 언어 풍습을 이룩한 이곳 풍습에는 아주 초면이었다.

이 초면인 풍습에 외국인 티를 내지 않고 어떻게든 무사히 뚫고 나가려고 국향이는 꽤 애를 썼다.

이렇듯 꽤 애를 쓰며 뚫고 나가다가 국향이는 드디어 병상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칠백 리 요동의 초입정에서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몸살쯤으로 여기고 심상히 알았는데, 하루 여막에서 쉬고 이튿날 길 떠나려 하니,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이 도저히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주인 마누라를 불렀다.

“주인 아주머니, 나 하루 더 쉬겠읍니다. 아이구 골치야!”

부여식의 구들을 놓아서 꽤 뜨뜻한 방에 국향이는 몸을 놉히고 앓기 시작하였다.

“총각 손님, 노독이 나셨구료.”

“노독인지 뭔지 아이구 골치야!”

“의원 불러 드릴까?”

“의원이 있으면 좀 청해 주세요. 웬 쫄쫄한 의원이 있겠어요?”

웅국 고구려에는 이런 촌락 시골에도 씀직한 의원이 있었다. 한 의원이 국향이를 위하여 초빙되어서 국향이의 맥을 짚었다.

국향이의 맥을 짚고서 한참을 위아래를 살피던 의원은,

“내 조용히 이 손님과 상의할 일이 있으니, 다른 이들은 잠깐 밖에 나가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다른 이래야 주인 마누라밖에 없지만 주인 마누라는 이 소청을 듣고 고요 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 뒤, 의원은 양손으로 국향이의 손을 들여다 보며, 손님은 부인네시지요? 아낙네시지요?

하고 묻는다.

의외에도 진실을 지적받은 국향이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방침이 서지 않아 한순간 머뭇머뭇 하였다.

“몸에 별 병환이 있는 바 아니고 노독 피곤에 겸한 회임이신데, 몸을 좀 안정히 쉬시면 별 탈 없으시리라.”

날짜로 따져 보아야 만약 이것이 회 임이라 할진대 틀림이 없는 을지승상의 제이자이다. 따지고 뭐고 할 것 없이 장량이라는 사람과 입을 접하여 본 밖에는 남자라는 것을 모르는 자기거니와, 회임이라는 것이 남녀가 살을 접하고 동침하고나서야 되는 것이라면 을지 승상 밖에는 자기와 더불어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장량이, 연파대 등 감정상으로는 여러 사내를 아는 국향이로서는, 회임이라는 의원의 말에 한순간 뜨끔하였으나, 천상천하에 을지 가문 밖에는 이것이 당신 아이요 하고 내놓을 곳을 못 가지고 있는 국향이로서는, 또 하나 생겼다는 일종의 희열을 무드기 느꼈다.

국향이는 의원한테, 자기는 양가의 처녀로서 양가에 출가를 했는데, 가정 사정상 시가를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하늘 아래 부끄러울 데가 없는 귀한 신분의 아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의원을 돌려 보낸 뒤에 국향이는 망연히 앉아 있었다.

자기는 을지 가문을 배척하고 뛰쳐나왔지만, 자기의 몸 속에는 그때 벌써 을지 가문의 씨가 들어 있었다.

나는 을지 가문을 배반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다. 을지 가문의 아이를 낳는 아낙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게 부과해 주신 사명이다.

부왕의 우지? 진나라? 아아, 하마터면 몸을 더럽혀 얼굴 들어 사람을 대하지 못할 한 신세가 될 뻔한 이 몸을, 그냥 여전히 곱게 유지하게 된 하늘의 처사에 국향이는 진심으로 사례하였다.

그러나 장차 이 뱃속의 아이가 세상에 나온 뒤에, 승상이 이것은 정녕 내 자식이오 하고 인정을 하여 줄까? 자기는 그 사이 승상 댁을 나온 이래 숱한 사내를 접하였다. 길 가는 농군, 초동과도, 날씨가 산산한 관계로 서로 품고 품기며 밤을 지내기도 여러 번 하였다.

생면부지의 사내와 서로 품고 하면서 그 따뜻한 체온이 자기에게 스며들 때에 스무 살 난 생산한 젊은 여인으로서의 정욕이 움직인 일도 없지 않았다.

이렇고 저렇고 나는 딴 사내를 모르는 을지문덕의 아내로다. 을지 가문의 장래 주인 될 바위 소년의 생모로다.

국향이는 여막 주인 마누라를 청하여 의원에게 한 말과 비슷한 말을하여, 자기는 임신한 것 같으니 뒷방 한 방을 깨끗이 치워, 자기가 몸을 풀기까지 있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여, 그는 몸을 뒷방으로 옮겼다.

의원의 말이 틀림이 없었던 듯, 국향이가 뒷방으로 몸을 옮기고 몸을 정양 하려 드러눕자, 입맛이 분명 달라지고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이 먹고 싶고, 냄새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고, 분명 뱃속에는 한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바위를 밸 때와 달라서, 온갖 것이 부족한 객지 생활에서 입덧이 나고보니, 이것을 이제 칠팔 개월 겪어야 할 일이 한심하였다. 늦가을에서 겨울에 걸친 시절이라, 음식물에 부자유를 느끼는 바는 아니었지만, 입덧난 특수한 입에 맞는 음식을 구해 먹기는 지난한 일이었다.

모든 부자유를 참고서 지낼밖에는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국향이는 지나간 두세 달 동안 장량이라나 하는 소년의 뒤를 쫓아서 석다산으로 장안으로 헤매던 광란의 몇 달의 생활을 회상하여 보았다.

자기는 자기 부모의 음탕한 성격을 유전받았음인지 왜 그렇게도 그때 마음이 들떴던가? 장량이라는 소년의 어디를 추려 내면 감히 을지 승상의 발 뒤꿈치엔들 비길 수 있으랴! 짐작컨대, 장량이라는 소년은 진궁(陳宮)의 음탕한 풍습에 젖은 모후(母后)의 한 총애하던 소년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 할진대, 그 장량이에게 자기가 입을 제공하여 입을 맞춘 것만 할지라도 이 고구려땅에서는 용서받지 못한 난륜의 죄악이다. 무게 있고 튼튼한 일국의 승상인 을지 공과 어디 감히 비길 수가 있으랴. 그 장량이를 그려 장량이로 하여금 진나라 혈맥을 이을 아이를 만들도록 하려고 을지 댁을 버리고 뛰쳐 나온 자기는, 모후에게서 유전받은 음탕한 피의 소치가 아니었던가?

을지 가문의 아들을 낳은 아내로서 흔들림 없는 튼튼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자기가 무슨 바람으로 그가 문을 뛰쳐나왔던가? 오직 젊은 사나이의 품을 그려 젊은 품에 안겨 보고자 하는 자기의 음심의 소산이 아니었던가?

이 때문에 바위라 하는, 내 몸을 아프게 하여 낳은 자식까지 버리고, 자기를 그렇게 귀여워하던 승상 이하 승상 부인이며 그 댁 하인배까지 모두 버리고 석다산으로 달려가지 않았던가?

고구려의 아낙은 남편 아닌 사내에게 음심이 생기면 몸을 부젓가락으로 지져서 스스로 음식을 삭인다고 들었다.

자기는 왜 부젓가락으로 몸을 지질 용기가 아니 났던가?

바위― 이제는 꽤 잘 걸어다닐 게다. 그 귀여운 바위까지 내어버리고 장량이의 뒤를 따라 을지 댁을 뛰쳐나오다니― 아아 과연 미쳤었구나!

이젠 쉬운 말은 제법 할 수 있을 사랑하는 아들 바위가 안타깝도록 그리웠다. 또한 자식 뱃속에 있는 것이 분명하니, 이도 또한 을지 가문의 둘째 아들이라, 제 형처럼 귀우운 것이 생기려는가?

국향이는 과거의 온갖 잡념에서 해탈되어, 오직 태교에 힘써서 좋은 둘째 아들을 얻으려고 노심하였다.

장래 계집애가 나올지, 사내가 나올지는 알 바이 아니지만, 분명을지승상과 진국향이라는 남녀의 사이에서 생겨난 자식이다. 그 진국향이는 이 아이가 뱃속에 든 뒤에 한때 바람이 나서 돌아다녔지만 그래도 이 아이만은 신성하고 깨끗한 을지 승상 을지문덕 공의 자식이다.

짐작컨대 모후의 총애하던 소년이었을 장량이라나 하는 소년을 사모하여 을지 댁을 배척하고 뛰쳐나온 제 어리석은 행동을 못내 뉘우쳤다.

남녀의 관계라는 것은 삼천 후궁을 자랑하는 진나라 궁실처럼 색욕만으로 될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는 음탕한 진나라 피를 물려받은 탓에 하마터면 이 내 몸을 망칠 뻔하였다.

을지 댁에 출가를 하여 승상 부인으로 고구려 아낙이라는 것을 자랑하고자 하던 자기가, 여전히 진나라 아낙의 뒤를 밟으려 하였던 것을 보면, 핏줄의 위대한 관련성에 다시금 느끼는 바가 없지 않았다.

이 여막 주인 여편네라는 사람은 순전히 부여에서 고구려로 전통이 흘러내린 고구려 아낙이었다. 여객들의 편의를 돌보아 주기 위하여 나라에서 세운 여막의 경영자로서, 일찍이 홀몸이 되어 이 여막 하나를 유지하면서 이십 년간을 살아 온 아낙이었다.

의지 굳건한 믿음성 있는 고구려 아낙이었다. 양가의 며느리로서 가정 사정으로 집을 뛰쳐나왔노라는 국향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사내란 다 바보야! 저런 이쁜 아낙을 놓아주다니! 그렇지만 색시,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보다 얼굴이 썩 못했소이다. 음식 거처 등이 맞지 않는 탓인지?”

하며 마주 나와 국향이의 손을 잡았다.

“내 집처럼 여기시고 마음 놓고 계세요. 무얼 자시고 깊은 것이 있거들랑 아무것이고 부르세요.”

“아이구 주인 아주머니두! 내 집에 있으면 별다르겠어요? 그저 밤에는 왜 그런지 좀 적적해 못 견디겠어요.”

“서방님 품을 떠나니 왜 적적치 않겠어요? 만날 꼭 품에 안겨 재롱이나 부려야 할 어린 색시가….”

“저의 서방님이라는 분은 나이 마흔다섯이 지난 영감인걸 뭐….”

“색신 스무 살이시라지?”

“네….”

“스무 살에 한 마흔아믄 나야 꼭 맞지. 색시 가장 귀염받으시댔겠구먼.

우리 영감도 살아 계시면 금년이 환갑이신가―.”

주인 마누라는 적적한 듯이 머리를 돌렸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뱃속의 어린애는 나날이 자라서 세상에 고함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이 차차 지남을 따라 국향의 배는 현저하게 불러 갔다.

배가 불러 감을 따라서 국향이의 마음을 차차 불안하게 하는 근심이 생겨서 커 갔다.

그것은 장차 이 뱃속의 애가 세상에 나온 뒤에. 애 아버지인을지 승상이 이것은 틀림없이 내 자식이라고 인정해 줄는지, 혹은 아비 모를 애라고 내 버릴는지, 여기 대한 근심이었다.

자기의 정조가 하늘 아래 부끄러울 데는 없는 바이지만, 마음의 정조는 온 전하다고 장당할 수 없는 국향이로서는, 더욱이 장량이와 마주 붙안고 입을 맞추었고 연파대와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지낸 경력을 가진 국향이는, 남의 앞에 버젓이 자랑할 정조는 되지 못하였다.

‘남에게 마음 흔들리었으면 이것이 벌써 정조가 깨어짐이라.’고 갈파한 옛 성현의 말씀은 있지만, 국향이는 이로써 뱃속의 아이에게 일말의 불안을 안 느낄 수 없었다.

이런 때에는 고구려 아낙의 특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주인 마누라가 국향이에게는 좋은 의논 상대자였다.

“주인 아주머니!”

“네?”

“좀 들어와 주세요”

“왜 그러우? 남 바쁜데.”

“잠깐만 들어와 주세요. 그렇지! 그렇게 다리 뻗고 누워 주세요.”

“이 색시가 왜 이러나? 서방님 생각이 나나 봐.”

“서방 생각도 납니다. 왜 안 나겠어요.”

하면서 국향이도 주인 마누라 곁에 눕는다.

“아주머니, 대체 아이라는 건 누구를 닮습니까?”

“부모를 닮지 동네 총각 닮겠어요?”

“부모라면 어미를 더 닮습니까? 아버지를 더 닮습니까?”

“내 짐작으론 아버지를 더 닮을 것 같습디다.”

오오! 하느님, 제발 그래 주면― 유난히 특징 많은 아버지 을지 승상을 닮아 주면 얼마나 고마우랴!

“왜? 색시, 동네 총각 닮을까 봐 걱정스러우?”

“걱정도 스러워요. 아이 들자 그 댁에서 뛰쳐나왔으니, 이건 나모르는 아 이라고 밀치면 어떻게 해요?”

“얼려 둔 동네 총각이라두 있수?”

“입쯤 맞춘 것으로는 닮는데 뭘 영향 없겠지요?”

“입맞춘 낭군은 있는 모양이군. 장안 총각 녀석들도 요런 이쁜 색실 그 저 둘 까닭이 없겠지.”

“아주머니두! 전 그런 거 없어요. 아무도 그런 사람 없어요.”

“괜히 발뺌하느라구 야단이군. 입 같은 건 천백 번 맞춰두 별 탈 없는가 봅디다. 그저 동침해야 아이가 되구 안 되구 하는 게지.”

동침이란 것에 대한 신비성에 국향이는 마음 깊게 울리었다. 자기와 동침 한 과거를 가진 사람은 을지 승상 밖에는 이 세상에 없다. 이 뱃속의 아이는 천하에 누가 무엇이든 간에 을지 승상의 씨다.

어떤 날 유난히 뛰노는 뱃속의 어린애를 어루만지며 국향이가 망연히 앉아 있을 때에,

“되놈이란 참, 저런 게 다 나락을 먹고 있으니까 되 땅에 나락이 모자라지.”

여막 주인 마누라가 투덜거리며,

“색시 있소?”

하면서 국향이의 방으로 들어왔다.

대체 고구려 사람은 고구려인이 아닌 인종은 통 몰아 ‘되놈’이라 하므로, 그 되놈의 한계를 잘 가릴 수 없어서 국향이가,

“되놈은 웬 되놈입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사랑에 일전부터 되놈이 하나 묵어 있는데, 나더러 자꾸 장가를 들여달라구 성화구료. 그래서 앞집 김서방 댁 암캐가 이즈음 암내가 일어서 야단 이기에 거기라두 중매를 해달라느냐구 물었더니, 암캐에게야 차마 어찌 장가들겠느냐고 하며, 이쁜 색시건과부건 사람의 종자에게 장가들고 싶으니, 꼭 중매를 서 달라는구료. 호호호호!”

주인 마누라는 쾌활하게 한 번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내 방엘 기어들었단 말이지. 그래서 내 이불귀를 들치고 내 자리에 뛰어든단 말이지.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깔구 앚았구료.

그랬더니 깽깽 하면서 자기는 진나라라나 양나라라나 하는 되 땅에서 색시를 따라 장안 서울까지만여 리를 왔다가, 겨누던 색시는 그만 남한테 빼앗기고 도로 제 나라로 가는데, 고구려까지 왔다가 색시 하나 얻지 못하면 면목이 서지 못하노라고, 그래 이 늙은 할미나마 건드려 보려고 그랬노라고, 손을 싹싹 빌지 않겠어요?”

진나라라나 양나라라나에서 만리길을 왔노란다는 그 되놈에게 대하여 국향 이는 아주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장서방 아닐까?”

“그래 그 되 사람은 아직 있읍니까?”

“장가들여 주기 전에는 죽어도 안 떠나겠노라는구료. 그래 마침 집에 머슴도 하나 구하려던 차이라 머슴 겸해 한동안 있으라고 그랬소,”

“그러다가 아주머니께 장가들 모양이구먼요.”

“설마 내가 장차 서방 생각이 나면 뒷집 수캐를 붙이지 되놈을 붙이겠소?

색시, 어떠우? 서방 생각 안 나우? 중매할까?”

“서방 생각이 나면 베개를 붙안고 자지요. 그런 추근추근한 되놈은 싫어요.”

“하기는 색시는 뱃속에 아기가 있으니 더 그리울이 없겠소.”

그날 낮 좀 기울어서 국향이의 방 앞에서 머슴을 뜰을 쓰는 소리에 가만히 열고 내다보았다.

거기서 국향이는 장량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연파대에게 맞아서 뚱뚱 부었던 눈시울은 다 도로 나았지만, 그 사이의 빈한 때문인지 초췌하게 여위고 마른 장량이가 뜰비를 들고 뜰을 쓸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편으로 머리를 돌렸다.

“장 서방!”

국향이의 입에서는 뜻하지 않고 속살거림이 나왔다.

장량이는 힐끗 머리를 들어 마주 국향이를 쳐다보았다. 국향이를 알아는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벽촌 구석에서 국향이를 발견한 그 의의를 이해 할 수 없는지, 잠시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야,

“공주님!”

한 소리 부르짖고 손에 들고 있던 비를 내던지고 국향이의 방으로 달려들어왔다.

“이 되놈! 어디라고 객실엘 뛰쳐드니?”

주인 마누라가 질겁을 해서 장량이를 도로 내쫓으려는 것을 국향이는,

“나 아는 사람이에요.”

하여 밀어 버렸다.

“색시 아는 이요? 그래도 색시 삼가시오. 내 지내 보니, 천하에 음흉하고 염치 없고 뻔뻔하고, 게다가 색시 미친광이입디다. 너 대체 어디 녀석이냐?

분명 고구려 사람은 아닌데, 대체 어디 녀석이야?”

“나요?”

“그래!”

“고구려 사람이오. 천하 절색이 색시의 서방이랍니다.”

“예끼!”

국향이와 주인 마누라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소리가 났다.

국향이로서는 한때 장서방에게 향하여 나는 장서방의 아내로라고 선언한 일이 있었지만, 주책없은 소리를 벙벙하여 일종의 색광으로 인정받은 장서방에게 아내란 소리는 차마 듣기 싫었다.

“이녀석, 김서방 댁 암캐나 불러다 주련? 살이 찌고, 엉덩이 퍼지고, 지금 한참 암내 일었더라!”

“아주머니도, 괜스레 남 장가 들려는데 훼방 놓으시네!”

“색시도 저런 색광을 너무 오래 대척 마시오!”

하며 주인 마누라는 저 볼일 보러 저편으로 가 버렸다.

주인 마누라가 간 뒤에 장량이는 국향이의 손을 덥석 잡고 정욕에 불붙은 시뻘건 눈을 국향이의 얼굴 근처에 헤매었다.

“장 서방은 어떻게 여기를 왔소?”

“연 서방 녀석에게 경외로 내친 바 되어서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죽는 한 있더라도 석다산으로 오마고 하지 않았소?”

“그게야 한때 입놀림이지요. 다시 연가 놈에게 들켰다가는 매 맞아 죽을 일을.”

아아 이것이 진나라 사상이었던가? 사랑하는 이에게 철석같이 맹세하였던 것을 한때의 입놀림으로 돌려 버리니 남자의 한 마디 말이 천금과 같다는 말은 모두가 허언이던가?

“나는 고구려 승상의 아내요. 이 몸에는 승상의 둘째 자식이 현재 들어 있소. 그러니 장서방은 좋은 규수 얻어 드릴 테니 거기 장가드시오!”

“암캐는 싫어요.”

“왜 암캐요? 한다 하는 고구려 색시를 중매해 주지.”

“공주만한 이가 고구려에는 없읍디다. 모두 우그렁 바가지 같거나 선머슴 같은 것뿐이지….”

“만성을 호하는 대고구려에 왜 일색이 없겠소? 국향이 따위는 발꿈치에도 못 미칠 자가 수두룩하리다.”

“아니올시다. 소인은 그저 공주님께 장가 들려고 전지신명께 맹세했읍니다.”

“그 공주께야 지난 가을에 장가드셨지?”

“아니올시다. 손목 한 번 잡아 본 뿐이지….”

“입은? 볼은?

“볼 좀 맞추어 보고 입 한 번 맞추어 보고….”

“그만했으면 되지 않소?”

“아닙니다. 한자리에 벗고 누워서 살을 대야 합니다.”

국향이는 내심 탄식하였다.

사내라는 동물은 왜 꼭 하필 여인과 동침을 하고야 만족하려 하는가?

동침을 하고야 아이도 생긴다 한다. 동침의 신비성과 기괴한 작용에 대하여 일종의 공포에 가까운 감상을 느끼며, 이러하니까 여인의 정조라는 것은 동 침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스러이 느끼며, 여인이 출가하여 한 사내의 혈통을 계승하는 자식을 낳은 이상은, 혈통의 순결성이란 것을 지켜야 할 것을 통절히 느꼈다.

“하여간 진나라 국향 공주는 부왕의 칙명으로 고구려 승상 댁에 출가한 몸이니까, 을지 승상 아닌 사람에게는 몸을 허락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장 서방은 적당한 색시를 골라서 장가드시오.”

“아아 진나라 혈맥은 끊겼구나!”

“진나라 혈맥은 붕왕에게서 끊긴 셈이오. 오 제 삼십삽년으로 남조(南朝)의 혈맥은 사라졌소.”

“공주님 살아 계셔도?”

“출가외인이라, 공주는 고구려 혈맥을 잇는 사람입니다. 공주를 빼내려 석다산으로 오리다던 장서방의 말을 곧이듣고, 신세 태산 같은 승상 댁을 배반하고 뛰쳐나온 국향이지만, 이 몸에 승상의 씨가 있는 동안은 승상의 부르실 날도 있을 겝니다. 이 몸에 고구려 만성이 한결같이 부모처럼 우러르는 을지 승상의 아내, 진나라 강아지(狗兒) 장 서방 같은 사람과 오래 상종할 신분이 아니니 물러 나가오! 내 이 댁 아주머니와 의논해서, 진나라에서 공주를 고구려에 준 대신, 이곡 색시를 하나 물색해 장서방께 드릴테니, 그 색시를 데려다가 잘 사오.”

“공주님!”

“이제부터는 승상 부인이라 부르시오.”

“승상부인! 승상부인! 진나라 공주가 고구려 승상 부인이란 웬말이십니까? 아아 진나라도망했구나!”

“망한 줄 이제야 알았소? 좌우간 한동안 이 댁에 기거하시오. 숙식비용은….”

“그 비용은 소인이 머슴살아 갚으오리다.”

“그럼, 좋은 색시를 하나 골라 둘 테니….”

이리하여 장량이는 이 여막의 한 식객으로 묵어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장량이는 손님도 아니요 하인도 아닌, 명색 분명치 못한 신분으로 그 여막에 숙식하고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 마누라는 장량이를 하인인 듯 막 부려 먹었다. 장량이는 또한 장량이로서, 아무리 부려 먹어도 탄하지 않고 예예 하며 성실하게 일을 보았다.

그러나 국향이로서 불안한 것은 일찍이 장량이가 밤중에 주인 마누라 방에 기어들었다가 쫓겨났다 하는 사실에 의하여, 또 그런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근심이었다.

이번에 장량이가 기어든다 하면, 그것을 결코 사십 줄의 주인 마누라 방이 아닐 것이다. 진나라에서부터 그리워 따라온 국향이가 한집에 있는 이상, 왜 하필 이를 버리고 노파의 방에 들랴!

“색시, 삼가세요! 저 되놈은 천하 음흉한 놈이니까ㅡ 색시 방에 기어들면 어떻게 해요?”

“한 번 겪지요. 처녀 아닌 이상에….”

“저런 소리 하다간 한 번 겪는걸.”

“아주머니도, 염려 마세요. 저는 고구려 아낙입니다. 고구려 아낙은 제 몸을 보호할 만한 재주는 일찍부터 배워 두었답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아주머니나 주의하세요.”

“내 방에 들었다가야 또 깔고 비벼 주지.”

“깔고 비비다가 영감님 생각이 나면 어떻게 해요?”

“나는 그런 생각 다 잊은 사람이오. 색시나 잘 삼가시오.”

사실 염치를 불구하고 암캐에게라도 덤벼들려는 장량이라, 신변은 보장할 수가 없었다. 부왕의 슬하에 있을 때, 여인으로서의 약간한 호신 무술을 익혀 둔 것이 있지만, 그 사이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느라고 통 버려 두었으 니, 이제는 호신할 자신이 없었다. 다만 마음으로만나는 고구려 아낙이거니 하고 버티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 벽촌의 여막은 겨울이 되면서는 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두 아낙과 장량이가 쓸쓸히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주인 마누라는 그동안 여러 번 국향이에게 한방에 거처하자고 하였으나,국향이는 ‘염려 마세요’의 한 마디로 거절하고, 불어 가는 배를 어루만지며 혼자서 단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해가 바뀌어 새해가 이르렀다.

그 새해 어떤 날, 국향이는 이 날따라 몹시 뒤숭숭하여, 저녁을 먹은 뒤에는 일찍이 자리하고 누웠다. 뱃속의 아이가 유난히 뛰놀아 몸도 적지 않게 불쾌하였다.

주인 마누라는 안방에서 잤다.

장량이는 이즈음 사귄 친구를 찾아 투전판에 나간 모양이다.

촛불까지 끄고 혼자 누워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고 있을 때에 문득 국향이의 방에 달린 부엌문이 뿌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 몸단속을 굳게 하는 국향이는 더욱 몸단속을 굳히며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 동정을 엿들었다.

국향이의 방문이 삐걱 하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국향이는 그 문 열리는 소리로 장 서방이 틀림없이 없는 것을 직각하였다.

방 안으로 풍겨드는 마늘 냄새는 둘째 하고, 장 서방 밖에는 국향이 혼자 있는 줄 다 아는, 이 방에 밤중에 숨어들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진나라에서 고구려까지 만리 길을 뒤쫓아 와서, 연 서방에게 그런 욕을 보 고 경외에 내친 바 되어, 그래도 그냥 사모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장서방의 경우를 생각하면 일변 측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변으로, 자기는 진나라 황녀요 저는 이름없는 한낱 초동에 지나지 못하거늘, 그래도 추근추근 뒤따르는 것은 또한 쾌씸하기 한량없는 것이었다. 더우기 고구려에 와서는 승상 부인으로 인처로 지위가 자리잡힌 나에게 그냥 전 생각을 계속한다니, 그 쾌씸한 마음보는 국향이에게는 한껏 밉게 보이기도 하였다.

‘요놈, 네 두고 보자!’ 국향이는 몸을 약간 움직여 자세를 바로 하고, 장차 이를 사변에 대처할 몸 위치를 준비하였다.

방 안에 들어온 괴한은,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은, 발소리를 감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성큼성큼 국향이에게로 두어 발자국 왔다.

그리고는 손을 놀려 국향이의 몸이 어디즘 있는지 짐작을 보고는, 한 발을 국향이의 몸 건너쪽으로 넘겨 짚고 국향이를 가로 타고나서는 차차 주저앉기 시작하였다.

괴한의 몸이 국향이에게 차차 덧얹히려 할 때에, 제 몸을 준비하고 있던 국향이는 몸을 벼락같이 일으키며, 괴한의 팔을 잡고 두 발을 들어 괴한의 배를 차며 한 번 나꾸어 찼다.

그 순간 괴한의 몸집은 한 번 공중으로 떴다가 영창을 짓부스며 뜰에 나가 떨어졌다.

만약 국향이로서 조금만 힘을 덜 들였더면, 괴한은 문턱에 걸려 허리가 부러졌을 것이다.

철썩! 하고 뜰 빙판에 나가떨어지는 요란한 소리에, 내실에서 자고 있던 주인 마누라가 놀라서 일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냐?”

옷을 주섬거리며 뜰로 뛰쳐나왔다. 나와서는 거기 장량이가 기다랗게 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되놈! 뜰에서 왜 자고 있니?”

“색시, 어디 다친 데 없소?

“다치긴 왜 다쳐요?”

“이 되놈이 색시방에 기어들지 않았소? 음흉한 놈이더니….”

“되놈이요? 문에 들어오기 집에서 뜰로 내쳤지요. 그게 되놈 장 서방입니 까?”

“색시 방 영창이 다 부러지고 했으니, 태중의 몸 어디 다치지나 않았소?”

국향이는 더듬더듬 촛대에 촛불을 켜 놓았다. 그러는 동안 기절에서 겨우 정신이 든 장량이를, 주인 마누라는 붙들어서 방 안에 들었다.

주인 마누라[편집]

국향이가 묵어 있는 여막의 주인 마누라에 비친 국향이는, 진실로 알고도 모를 색시였다.

처음에는 그 절묘하게 생긴 얼굴 모습에 마음이 끌려, 하루 저녁 묵어 가 기를 허락했던 그 초동(국향)이, 이튿날 몸에 탈이 나서 의원을 불러다 보이니까, 태중이라 하여 그 예쁜 초동은 사실은 사내가 아니요, 여인인 것이 정작 드러났지만, 대가집 며느리로라는 국향이의 말은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 몸가짐이며, 몸태도며 말씨며, 모두 대가집 며느리답게 똑똑하였다.

주인 마누라에게는 국향이는 딸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차차 정이 들었다.

그런데 이 여막에 되놈이 하나 와서 묵고 차차 머슴 비슷이 되자, 그 국향이라는 색시는 그 되놈과 본시부터 알던 듯, 국향이의 간청에 의지하여 되놈을 손님 비슷이 묵히게까지 되었다.

되놈이 뻔뻔스럽게 아낙네의 방에 숨어들고 한다고 주인 마누라가 주의시킬 때에 색시는 기위 처녀 아닌 이상에는 한 번 겪으면 어떠냐고 웃어 버렸다.

드디어 그 되놈이 국향이의 방에 기어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국향이의 몸에는 아무 탈 없고 백 근이나 될 그 되놈이 뜰 복판 가운데 딩굴어 넘어져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무슨 완력이랴!

“색시두 무슨 힘이 그리 세우? 백 근이나 될 되놈을 빈대집어 던지듯 뜰에 내던지니?”

“하느님이 사람을 내실 때에, 아낙이 제 몸 보호하고자 할 때는 백만 인의 힘을 낼 수 있도록 마련해 만드셨지요.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 되놈은 허리 안 부러진 게 다행이지. 괘씸한 놈 같으니!”

“사내가 여인을 보려면 또 목숨도 내걸기를 사양치 않는답디다그려!”

“여인이 시집을 간다는 것도 제 목숨이고 뭐고 사내에게 바치는 게 아니오? 더구나 아이를 낳는다는 건, 내 목숨 당신 댁에 바치오 하는 게 아니오?”

자기는 이왕 한 아이를 을지가문에 바쳤다. 그리고 이제 몇 달 안으로 둘째 아이가 나올 것이다. 그 첫아이를 낳을 때의 아픔이며 고통을 회상하면, 평생 다시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인된 도리로서 첫 아이를 낳으면 또 둘째 아이를 낳고 싶은 이 본능은 하늘이 여인에게 주신 귀여운 책무일 것이다.

“저 되놈은 색시더러 공주님, 공주님 하니 대체 어떻게 된 셈이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부른 버릇이 그냥 남아서 그런 모양이지요.”

“대체 색시허구 저 되놈허구는 어떻게 되오?”

“집안 하인이야요.”

“저런 괘씸한 놈 같으니! 그래 상전댁 소저를 겁간하러 들어간담?”

“상전댁 소저고 무에고, 자기는 사내요 나는 아낙이니까, 사내가 아낙 건드려 보려는 건 하늘의 분부겠지요.”

국향이는 그래도 장량이를 사사에 두호하였다.

주인 마누라에게 있어서는 국향이라는 색시가 장량이라는 되놈에게 어떤 심경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한 일이었다.

상식으로 생각하여 괘씸하고 밉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색시는 되놈을 그다지 밉게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국향이 자신이 뜰로 집어 팽개쳐서 하마터면 죽을 뻔한 장 서방을 색시는 다시 몸이 성하도록 성심으로 간호해 주는 것이었다.

그것뿐 아니라, 자기를 겁간하러 들어왔던 악한을 자기 방에 눕혀 두고 몸 추세도록 돌보아 준 것이었다.

내외지간이 아니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더러운 시중까지도 색시가 몸소 당해 나갔다.

그렇다고 장 서방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은 모양으로, 장 서방이 정욕에 흥분되어 무엇을 조르는 꼴을 주인 마누라는 여러번 보았다.

주종의 관계랄까 무엇이랄까, 색시는 그 한계(限界)를 엄하게 금그어서 그 것을 지키는 모양이었으나, 사내의 심정으로 장 서방은 그 한계를 지키기 힘들어,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적지 않게 꾀하는 모양이었지만, 색시는 그 한계에서 한 치〔寸〕도 넘어서지 못하게 엄수하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주인 마누라가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꽤 지켜 주었지만, 색시의 일정한 한계를 본 뒤에는 마음 놓고 색시의 자유에 맡겼다.

색시는 어떤 날,

“장 서방 장가들 만한 얌전한 규수를 하나 골라 보아 주세요.”

하는 부탁을 하였다.

“저 김 서방 집 암캐는 어떨까요?”

“암캐는 싫다던걸요. 주제에― 어느 고구려 색시가 서방 없어 장 서방 따위에게 시집가겠소? 그렇지만 하나 골라 보아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게 장가들겠다고 성화니까 귀찮아서….”

“색시 서방으로 맞아 보구료!”

“예끼! 되레 수캐를 맞지.”

“그럼 수캐만도 못하담? 수캐만도 못한 사내를 남편으로 섬길 고구려 계집 애는 없는걸!”

“말갈 계집애라도, 좌우간 당자가 암캐는 싫다 하니까 암캐 아닌 사람의 종자로 하나 제발 골라 보아 주세요.”

“색시 소청이니 내 골라는 보리다.”

이런 의논이 있은 며칠 뒤, 주인 마누라는 희색이 만면하여,

“여보 색시! 있소, 있소! 장 서방 마누라가음이 있소.”

하면서 들어왔다.

저 아무개네 집 딸인데, 얼굴도 모란꽃 같이 실하고 잘났지만, 웬 셈인지 그동안 세 번이나 시집을 갔었는데, 사흘이 못 지나서 소박맞고 돌아오고 한 소박데기 색시가 있다는 것이었다.

“얼굴은 씀직해요?”

“얼굴 생김생김은 떠오르는 달 같구 피려는 모란꽃같이 일색이지요.”

“사타구니에 ××야 있겠지?”

“그게야 있구말구.”

“그러면 됐지!”

이리하여 국향이도 부른 배를 움켜안고 그 색시가음을 가 보았다.

국향이와 함께 나선 주인 마누라로서는 국향이의 마음보를 당초에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자기를 사모하던 사내라 하면 여자된 마음에 아무리 해도 좀 아깝고 아쉬워할 것이다.

더우기 만여 리 길을 뒤쫓아 왔다는 장량이를 국향이로서도 그저 밉다고 볼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내를 딴 처녀에게 장가들 이기 위하여 벌떡 하여 앞장서 가는 국향이의 마음보는 주인 마누라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한 것이었다.

“색시 얼굴이 몇인지상(人之上)이나 됩디까?”

“십인지상은 될 것을 ― 소박을 맞았기에 말이지 판대기는 제법 잘생겼어요.”

“나하고 어때요?”

“만인지상인 색시와 야비교하겠소?”

진나라 삼천 후궁이 감히 비길 자 없었으니 만인지상이라 하는 것도 과히 과장된 칭찬이 아닐 것이다.

벌써 꽃 시절인 양, 들에는 온갖 화초가 만발하여 그 빛깔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색시는 그 장서방을 꼭 장가들여 주고 싶소?”

“그렇지 않으면 아주머니께나 내게 장가들자고 덤벼드는 걸 어떻게 해요?”

“색시 객고두 풀 겸 한번 들어 주구료.”

국향이는 몸을 떨었다. 이 내 몸에는 을지 승상의 씨가 들어 있다. 그 혈통을 더럽히는 행동을 하였다가는 고구려 만성의 성난 주먹에 이 몸은 아주 가루가 될 것이다.

“아주머니가 한 번 옹색을 푸시지.”

“에이 여보! 내가 온 색증이 생기면 김 서방네 수캐를 붙이겠소. 장서방도 그만하면 얼굴 판대긴 과히 흉물스럽지두 않아. 사내답게 서글서글하게 생겼지. 하는 짓이 수캐만도 못해 걱정이지만….”

한 말갈 부락을 지나서 본국인 부락의 초입에 색시네 집이 있었다.

색시는 마침 물 길러 나왔다가 국향이와 주인 마누라와 만났다.

“물 긷나? 또 선보러 왔는데.”

주인 마누라는 색시더러 이렇게 말하며 국향이에게 눈짓하였다.

색시는 마음대로 보라는 듯이 동이를 끼고 턱 버티고 마주 섰다.

국향이는 그 색시를 보았다. 십인지상은커녕 백인 천인지상은 될 만한, 눈이 어글어글하고 코 죽지 않게 생긴 색시는 수줍어하지 않고 국향이를 마주 보았다.

왜 세 번이나 시집을 갔다가 소박을 맞았는지, 장 서방에게 이 색시를 보이기만 하면 코를 질질 끌면서 어서 중매해 달라고 야단할 것이었다.

“색시 몇 살이요?”

“열여덟 살이오.”

“새서방가음을 한 번 마주 보려우?”

“서로 마주 봐야지요.”

“그럼 한 번 데리구 올께―.”

이리하여 국향이는 그 색시에게 만족하였다. 혼인은 곧 쉽게 결정이 되었다.

선을 보고 와서 국향이는 주인 마누라더러,

“색시색이 좀 과하게 생겼더군요.”

하였다.

“그럼 색 미치광이 장 서방 녀석하구 꼭 서로 맞겠네.”

이리하여 장량이더러 어떠냐고 물어 보았더니, 장량이는 춤추다시피 기뻐하며 그 색시 놓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부탁이었다.

이렇듯 서로 혼약은 성립이 되었다.

그러나 주인 마누라에게 있어서는 부젓가락으로 지진다고 장담은 하였지만, 사십 과부로서 젊은 남녀의 혼인에 아주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국향이는 모후의 유물(遺物)인 노리개를 혼인 축하로 제공하고, 부른 배를 부둥켜안고 동분서주하였지만, 주인 마누라는 이것을 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날 저녁 주인 마누라는 오월 훈풍 무르익은 과부의 살을 내놓고 주무르다가 장량이를 불렀다.

“장 서방 들어와서 내 허리나 좀 쳐 주게나.”

장량이는 들어와서 머리맡에 앉았다.

“여기요?”

“응, 허리에서 볼기짝 근처를 좀 골고루….”

국향이는 제 방에서 을지 상공의 씨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장량이는 이 흐무러진 과부의 육체를 손을 들어 두들겼다. 일찌기 이 과부를 한 번 건드리려다가 도리어 과부에게 깔려 봉변을 한 경험이 있는 장량이다. 겁이 앞서 딴 생각 먹지도 못하고 그 욕심 나는 육체를 고요히 두들기고 있었다.

주인 마누라는 속옷 한 벌만 입고 젊은 사내에게 허리를 두들기우고 있는 동안, 차차 기분이 상쾌하여 까마득히 잠이 들었다.

잠이 들다가 팔을 한 번 길게 펴며 몸을 뒤채었다.

팔을 폈다가 도로 가는 바람에, 장량이는 그 팔에 끌려 주인 마누라의 이 불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장서방 이 녀석, 너 그 색시한테 장가들면 나 같은 늙은이는 싫어지겠구나?”

“간간 오지요.”

“간간 와? 내가 널 놓아 주지 않겠다. 이 되놈아!”

이리하여 주인 마누라는 장량이를 힘껏 쓸어안았다.

이튿날 아침 주인 마누라가 하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국향이가 미심결로 건너와 보니, 주인 마누라는 장량이를 힘껏 껴안은 채 아직 정신 모르고 자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에 국향이는 기가 막혔다.

‘서방이 생각나면 부젓가락으로 지지지요.’ 하고 호언하던 주인 마누라가, 제 아들뻘이나 되는 젊은 사내를 끼고 세상 모르고 자는 꼴에, 국향이는 남녀간의 정사라는 것은 모든 이론이며 경우를 초월하여 진행되는 것이라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그 날 해가 꽤 올라서야 장량이와 주인 마누라는 일어났다.

주인 마누라는 일어나서 국향이더러,

“내가 그만 오입을 했구료!”

하고 호호 웃어 버렸다.

“아주머니 시집갔으면 한턱 내셔야지요?”

“하라면 하기야 하지만,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더니, 이십 년 수절 이 하룻밤에 썩었구료! 장차 지하에 가면 선군을 무슨 면목으로 뵈옵지?”

주인 마누라는 무연히 이렇게 말하고는 어이없는 듯이 허허 웃어 버렸다.

“고구려 아낙의 처신 버렸구료.”

이 말에는 지금껏 벗고 있던 웃통을 끌어당겨 입으면서,

“다시 씻지 못할 죄를 지었구나. 이 놈의 건 별 물건이라, 씻고 소금으로 닦아도 쓸데없고― 여보 색시, 저 장 서방 녀석을 어서 장가보냅시다.”

“그게요 날짜까지 받은걸, 이제 불과 한 달 남짓이 있으면 되지 않아요?”

그런데 장량이는 주인 마누라와 성욕의 도수가 꼭 걸맞았던 모양으로, 그 뒤에도 연방 주인 마누라 방에 들어가서는 허리 또 두들겨 드리리까 하고 싱글싱글 하고 하였다.

그러나 주인 마누라는 한 번 불붙은 성욕에 장 서방을 보기는 보았지만, 문득 떠오르는 자책에 못이겨서 늘 고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장차지하의 선군을 어떻게 뵈랴?

고구려 아낙의 신분을 더럽혔다!

고구려 사람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랴!

이런 몇 가지의 자책 때문에 늘 고민하는 양이 분명하였다.

주인 마누라는 늘 장량이를 피하여 국향이의 방에서 지냈다. 밤에도 이부 자리를 국향이의 방에 옮기고 국향이와 한 이불을 쓰고 지냈다.

장량이는 몇 번 주인 마누라를 조르다간 종내 뜻을 못 이루고, 하릴없이 어떤 날 제 약혼자를 찾아갔던 모양이었다. 거기서 사흘을 지내서 눈이 퀭하니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주인 마누라는 여간 화를 내지 않았다.

“장 서방 녀석, 너 그 집에서 자고 왔구나!”

“예”

대답이 시원시원하였다.

“색시 품고?”

“예….”

“이 녀석, 이제 며칠만 있으면 싫도록 품을 색시를 그 며칠을 참지 못해 미리 잔단 말이냐? 망할 녀석같으니!”

“그래두 우리 색시가 자꾸자꾸 끄는 걸 어떻게 해요?”

일찌기 자기가 자진하여 장량이를 끌어 품은 과거가 있는 주인 마누라는, 여기는 할 말이 없었다.

“너 좋았겠구나.”

“예 좋았어요.”

“또 갈래?”

“예, 이번두 놓아 주질 않는 걸 달아나왔는데요.”

장량이는 국향이에게 향하여,

“공주님, 참 고구려 색시는 좋아요.”

“장서방 한턱 하오.”

“예, 한 턱 아니라 열 턱이라두 하겠읍니다.”

초가을 어떤 날 장서방은 장가를 갔다. 부여 풍습에 의하여 새서방이 색시 집으로 장가를 가서 아이가 생겨야 아내를 맞이하는 습속을 따라서 장서방만 장가를 간 것이다.

그 혼인 날 국향이는 몸 뿌듯하고 말째서 집에 누워 있었고, 주인 마누라 도 웬 까닭인지 참석하기 싫다고 하여 장서방 혼자서 가기로 된 것이다.

주인 마누라는 역시 마음이 좋지 않은 모양으로,

“장 서방 녀석 오늘 참 좋겠다. 새색시 붙안고 자려면 참 좋겠다!”

누차 이런 말을 하였다.

사흘 만에 장서방은 옛 집으로 인사를 왔다.

와서는 국향이 더러,

“공주님, 참 고맙습니다. 좋은 마누라 얻어 주셔서….”

하고 인사를 하였다.

“장 서방 마음에 드오?”

“들구 말구가 있읍니까? 꼭 마음에 맞습니다. 공주님은 어떻게 그렇게 소인의 마음을 아시는지?”

“잘 되었소.”

“공주님만야 하겠읍니까마는 그래두 소인 마음에는 흡족합니다.”

곁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주인 마누라가 말 참견을 하였다.

“망할 녀석 같으니! 계집을 보면 오금을 못 쓰더니 꼭 좋겠군. 이봐요 색시, 색시 말이 새색시색이 세겠다더니, 장 서방 어때? 색이 세던가?”

“색은 과연 셉디다. 내가 남에게 그다지 지지 않는 편인데, 내가 겪기 어려운 정도던걸요.”

그리고는 어떠어떠하게 색이 세더라는 설명을 한참을 떠벌이는데, 국향이는 듣는 둥 마는 둥 뱃속이 불편하여 이리저리 몸을 비꼬며 있다가,

“아주머니, 내가 오늘 산기(産氣)가 있나 봐요.”

하고 호소하였다.

“장 서방, 임자는 어서 색시한테루 가게. 공주가 몸이 좀 불편한 모양이니―.”

“공주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뭐 과하진 않아. 아이 배야―.”

국향이는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혀서 몸을 꼬며 돌아갔다.

“소인 물러가겠읍니다.”

“잘 가오. 가서 잘 사오. 내 언제쯤 깨끗해지면 마나님과 함께 찾아 볼께.

신부 과히 부려 먹지 말고 잘 사랑해 주오.”

“공주님 은혜 감지덕지합니다. 몸조리 잘하세요.”

장량이는 물러갈 때 국향이에게 절을 너붓이 하였다.

국향이는 어머니다운 부드러운 심정으로 장량이를 보냈다.

장량이를 보내느라고 대문간까지 따라 나갔다가 들어오는 주인 마누라를 국향이는 마음 초조히 기다렸다.

“그 녀석 제법 사람답게 인사도 할 줄 아네. 장가들더니 철도 든걸.”

주인 마누라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들어올 때, 국향이는 괴로운 듯이 꼬며,

“아이구 배야―.”

하며 부르짖었다.

승상의 순시(巡視)[편집]

국향이는 또 아들을 낳았다.

을지 승상의 두 자식을 낳아서, 이제는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완전한 승상 댁 사람이로라는 자각을 가지고, 국향이는 이 두 번째의 아들을 들여다보았다. 그 두드러진 이마며 커다란 눈이며, 틀림없이 승상을 닮은 이 아이를 굽어볼 때에 국향이는 승상 댁에 버려 둔 바위를 생각하고 한 순간 기분이 흐려졌다. 지금은 토동토동 뛰어다니며 놀 귀여운 아들을 내버리고 석다산으로 달아났던 한때의 광란 심리를 못내 후회하였다.

국향이가 갓난애를 젖을 물리고 암담한 기분에 잠겨 있을 때에 주인 마누라가 이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실 터인데, 색시 잠깐만 피해 주어야겠는데….”

“몸푼 지 열흘도 못 돼서 어디로 피합니까?”

하면서 국향이는 기저귀 강보를 주섬주섬 추리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이 아니라, 일간 큰 손님이 오실 터인데 그때 말이오.”

“큰 손님이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나라 대승상을 지상공이랍니다.”

국향이는 가슴이 철썩 하였다. 승상이 어떻게 이런 곳까지 오시는가?

어떻게 아셨는가? 가지가지 의문이 국향이의 머리에 생겨났다.

“승상은 우리 집 돌아간 영강님과 가까우신 사입니다. 승상님이 이번온 고구려의 민정 민심을 순찰하시러 길어 오르셨는데, 이 앞을 지나가시는 길에 우리 집에 들르시겠다구….”

일찍이 을지 댁에 있을 때에 들은 일이었다.

민심 애국심 적개심 등이 얼마나 일었는지, 한 번 전국을 돌아 관찰해야겠다더니 지금 떠나는가?

처음 승상님이 오신다 할 때에 국향이는 자기 일 때문이가 가슴도 철썩 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사 때문이라 하매, 일면 마음도 놓였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막을 수 없었다.

여기서 국향이는 주인 마누라에게 비로소 자기의 신분이며 이 갓난애가 어떻게 된 것인지 등을 죄다 알려 주었다.

“그래도 난 승상님이 내 집에 들르시면 나더러 서방 맞이하랄 게 걱정이외다. 그 말씀 나시면 색시 좀 역성들어 주오.”

당시 고구려는 남녀 열일곱 살 이상이면 시집장가 갈 것이고, 아직 생산 시기에 과부가 되었으면 재가하여 나라에 자식을 낳아 바치라는 것이 엄하게 규정되어 있더니만큼, 주인 마누라의 풍만하고 건강한 육체는 아직 자식 두셋은 넉넉히 낳을 만한지라, 주인 마누라의 걱정도 헛걱정은 아니었다.

“아주머니 시집가시구료.”

“사실은 아이가 든 것 같아.”

“장 서방의?”

주인 마누라는 눈을 섬벅섬벅 하였다.

“거 경사구료!”

“아직 아무한테도 발설 말아요.”

주인 마누라는 당부하였다.

을지 승상은 예통이 있는 뒤, 한 열흘 지나서야 국향이 묵어 있는 동네에 이르렀다. 지나는 곳마다 그곳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 그 사상 관계며 훈련 정도를 검토하느라니까 이렇듯 길이 더딘 것이었다.

주인 마누라는 반겨 나가서 승상을 맞아 객실로 인도하였다. 국향이는 갓난애를 붙안고 내실에 가만히 박혀 있었다.

“마나님은 아직 홀몸으로 계시오?”

“네이, 선부 가신 뒤에 내내 혼자 늙습니다.”

“동네에서 재가하라고 권하지 않습디까?”

“권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읍지만, 이 늙은이가 이제 어디를 갑니까?”

“늙은이라고? 마나님 금년 몇 살이시오?”

“갓 마흔이올시다.”

“갓 마흔이면 아직 남편이 있으면 아이 두셋은 더 낳겠군. 재가하시오. 나라에서는 지금 홀몸으로 지내는 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재가하시오. 나라에 서는 지금 아이를 기다립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지금 사천만, 수(隋)나라 중국 인구에게 부족하기 천만입니다. 적어도 이천만은 더 낳아 길러야 할 처지입니다. 마나님 같은이가 앞장서서 재가를 하셔야지 ─ 나라의 분부에 따라서 아이를 낳으시오. 이것이 마나님이 나라의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주인 마누라는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승상님, 소인네 뱃속에는 한 아이가 있는 듯싶습니다.”

“시집 안 가고 아이가 있으면 그런 아이는 나라가 허락치 않습니다. 고구려 아무리 만성이 필요하다 해도 불순한 아이는 용납치 않습니다. 어서 시집을 가시오. 이 몸도 불행 아내가 단산했지만, 자식이 없어서 나랏님의 윤허를 받자와 한 처녀를 아내로 맞아서 한 아들을 보았지만, 그 색시는 남편 늙었다고 젊은 녀석 따라갔구료!”

국향이의 이야기일시 분명하였다.

“승상님, 소인네더러 시집가라기보다 승상님이 먼저 또 장가를 가셔야겠읍니다그려.”

“나는 내 젊은 아내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돌아오면 승상님 받아 주시겠어요?”

“죄만 범치 않았으면 ─ 피만 더럽히지를 않았으면 받고 말고요.”

“소인네가 승상님께 한 색시를 주선하오리까?”

“나보다 마나님이나 어서 좋은 낭군을 택하시오. 내야 언제든….”

“승상님을 위해서 승상님 둘째 아드님을 낳은 색시를 승상님께 추천하오리 다.”

“내 아들을 낳은 색시라? 나는 함부로 오입을 안 하는 사람인데?”

“승상님 작은마나님 국향 공주가 한 이십 일 전에 소인네 집에서 한 아드님을 낳았는데, 어찌도승상님을 닮았는지, 지금 저 후실에서 생전 처음 아버님께 뵙겠다고 기다리고 있읍니다. 승상님, 국향 공주를 용납해 주세요.”

“용납 여부가 있소? 공주는 내 아내요.”

주인 마누라의 부르는 소리에 응하여 기디리고 있었던 듯이,

“예!”

하는 소리가 응하며, 그 방으로 통하는 샛문이 사뿐히 열렸다.

그리고 그 문으로는 한 갓난애를 불안은 색시의 청초한 자태가 나타나며 승상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승상님, 오래간만에 인사 여쭙습니다. 국향이올시다.”

을지 승상은 이 갑작스런 변동에 대응할 마음의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아서, 다만 몸을 움질움질 물러앉으며,

“고놈 영악하게 생겼는데!”

하며 손을 내밀어 갓난애를 얼렀다.

“고놈 이름은 뭐라?”

“아버님을 아직 뵙지 못해서 이름은 아직 없읍니다.”

“제 형이 바위니 요놈은 조약돌이라고 이름지을까? 요놈 조약아! 아비가 좀 안아 보자.”

승상은 팔을 폈다.

주인 마누라는 이 내외의 단란한 장면에 있기가 거북스러웠던지. 슬그머니 자기 처소로 건너가 버렸다.

청초한 고구려 초가을 옷을 차리고 아이를 붙안은 국향이의 자세는 진실로 깨끗하고 청초하였다.

해산 후 한 달이 지나니, 산욕의 덜민 것도 다 씻기고, 스무 살의 젊은 여인의 아리땁고 청초한 모양에 을지 승상은 도취한 듯, 갓난애를 붙안으려고 길게 폈던 팔은 갓난애와 아울러 애 어머니인 국향 공주의 몸까지 쓸어안았다.

“공주! 객지에서 몸을 푸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소?”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히 보아 주셨어요.”

“참 주인 마누라 어디 갔나?”

“두어 두셔요. 당신 방에 간 모양이지요.”

“그 마누랄 알맞은 데 있으면 시집을 보내야겠는데, 자식도 셋은 아직 넉넉히 낳을 마누라가 과부로 지내면 나라에서는 손해나는 노릇인걸. 공주처럼 남편 집을 떠나려거든, 아이를 뱃속에 지니고 떠나는 게지. 참, 장량이라 하는 진나라 유민을 보았소?”

“장 서방을 고구려 색시께 장가를 들여 주었읍니다. 저하고 주인 아주머니하고 알선해서 ─.”

“공주께 장가들일 게지.”

“그렇지 않아도 제게 장가들자고 몇 번 조르는 걸 집어 팽개치고 했더니, 지금은 함박꽃 같은 새색시하고 의좋게 잘 사는걸요.”

“그 녀석도 함박꽃 같은 새색시하고 의좋게 잘 사는걸요.”

“그 녀석도 이사람이 서글서글한 게 자식을 낳으면 시원한 자식을 낳을걸.

아이 아직 없답디까?”

“장가 보낸 지 두 달밖에 안 되는걸요. 그동안 한 번 문 안 온 밖에 색시댁에 꾹 박혀 나지도 않아요.”

“좋은 세월에 태어났으면 한몫 볼 녀석인데, 그 녀석도 아까운 녀석이야!

그때 공주가 그 녀석 따라 내 집을 나간 것도 버려 두었구료!”

승상은 공주와 한방에서 묵었다.

오래 그리던 아내라, 갓난애의 존재까지 잊을 정도로 내외는 의좋게 서로 품고 잤다.

이튿날 아침 주인 마누라가 문안 들어오자 승상은 주인 마누라더러,

“마나님도 시집을 가시오. 나라의 분부외다. 내 마땅한 서방 하나 골라 드리리까?”

하였다.

“승상님도 당신 좋으면 좋았지, 애꿎은 수절 과부 괜스레 훼절시키려네.

나라에선 수절도 못하게 하십니까?”

곁에서 국향이가 역성을 들었다.

“승상님, 애꿎은 아주머니 그저 버려 두세요.”

“공주 그렇지 않아요? 게다가 나라에서 아이가 쓸데 있으면 시집 안가고라도 낳아 바치면 그만 아닙니까? 승상님이나 새 마나님 품으시고….”

“새 아내도 아니오. 혼인한 지 삼 년이오. 바위, 조약이 두 아이의 어머니요.”

“길이길이 복 누리소서. 애꿎은 수절 과부 훼절시키지 말아 주세요.”

“허허, 나라의 분부를 꺽으려는 마나님을, 공주, 어떻게 벌하잡니까?”

“그저 아주머니 뜻대로 버려 두세요.”

승상은 하루를 더 묵어서, 이튿날 길 떠날 무렵에 국향이를 데리고 떠나기로 하였다.

“참 마누라라는 물건은 없어도 불편하거니와 있어도 귀찮고 성가신 물건이 든. 요서(遼西)까지 돌아서 가얄 터인데 이천여 리 길을 아이와 여편네를 끌고 가야 한단 큰 짐이로군.”

“저는 전에 만리길을 삼동에 걸어온 사람입니다.”

“그때야 마음에 벼르는 일이 있으니깐 어려운 줄을 몰랐지.”

“이번은 승상님 모시고 조약 붙안고 가는 길이라, 십만 리라도 어려운 줄 모르겠어요.”

이러한 벽촌까지 승상이 다녀간다는 일은 개벽 이래 있어 보지 못한 일이라, 동네의 환송은 대단하였다. 몇 십 리 몇 백 리 밖에서까지 사람이 모여 들어서는, 우리 승상님’의 길을 축복하였다.

“내 회로에 여기 다시 들를 터인데, 그때마나님 새 낭군 맞아 사는 모양을 꼭 봅시다그려. 그렇지 않았다가는 내 병정이라도 마나님 방에 집어넣으리다.”

“승상님 언제쯤 회로에 오르셔요?”

“글쎄, 일 년이 될지, 이 년이 될지 예측치 못하겠소이다.”

“그럼 공주님 조약의 돐은 꼭 우리 집에서 지내세요. 기다리겠읍니다.”

“이 탯덩어리를 붙안고 일이 년을 벽지로 돌아다니자면 대체 돐을 볼수가 있겠는지?”

“고구려에는 아무런 벽지라도 상당한 의원이 있으니까 다름 염려야 없겠지 만서두 ─ 조약 도련님, 명년에 다시 뵙시다.”

이리하여 온 부락의 칭송을 받으며 승상 내외는 민정 시찰의 길에 디시 올랐다.

천하에 그 정교하고 탄탄함을 자랑하는 고구려 공예가, 그 수를 다하여 꾸민 수레가 국향 공주를 위하여 제공되었다.

완전히 포도된 큰길에 나서서 조약을 붙안고 포도된 한길을 달리는 정취는 또한 각별하였다.

길가에는 고구려 만성이, 그들의 애모하는 승상을 환송하기 위하여, 있는껏 아이를 업고 혹은 붙안고 혹은 손목 잡고, 줄을 늘어서서 만세를 부르며 승상을 환송하고 있었다.

“어제는 진씨네 땅이요, 오늘은 수씨(隋氏)의 땅이 되는 공주네 고국과 비겨 보아서 어떻소?”

그러잖아도 국향이에게는 그 대조가 통절히 느껴지던 즈음이었다.

“승상님, 저도 고구려 사람입니다.”

유시(劉氏)에게서 진씨(陳氏)로 수씨(隋氏)로, 끊임없이 변동되는 중국은, 명일 또 누구의 것이 될지 예측할 수 없는지라 천년지계 만년지계는 꿈에도 생각할 바 아니요. 십년지계도 십 년 뒤에는 누구의 땅이 될지 모르는지라 준비할 수 없다.

그러한 진나라의 황녀로 태어나서, 왕검님의 세상 천여 년, 고씨의 세월 천여 년 가까이를 한 왕실 밑에서 건전하고 고요하게 자라고 발전된, 이 고구려나라의 승상 댁 아이어머니로 있는 현재를 비교해 보자면, 과연 가슴에 깊이 느껴지는 바이 있었다.

“승상님, 저는 고구려인의 아낙입니다. 진나라와는 아무런 인연도 관련도 없는 동방인입니다.”

“그 고구려도 장차 말갈에게 눌릴 날이 있을 것 같구료! 지금껏 오면서 기상을 보니, 말갈의 기상이 아무리 해도 고구려 아이들보다 승하단 말이지.”

“우리 바위며 조약이도 바깥 아이보다 못하리까?”

“바위, 차돌, 모래의 문제가 아니외다. 한 종족이 흥하고 망하는건, 한 사람의 뜻이나 의사로 결정되는 게 아니외다. 내가 고구려 수상의 자리에 앉아서 극력 종족의 기상을 늘려 보려고 애썼지만, 하늘의 지휘하시는 걸 벗어날 수가 없단 말이지.”

“우리 바위의 대까지는 부강한 고구려를 누려야 할 터인데….”

“한두 대를 말함이 아니외다. 고구려 만년의 진흥을 위하여 나는 걱정하는 바이외다.”

그러나 진나라 오 대 삼십년 년간이라는 두꺼비 꼬리만한 역사를 겪은 국향이로서는 국가의 운명이라는 것도 진실로 보잘것 없는, 초로 같은 것이라는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구려로 보자면 지금 창성한 국운이 한창 팽창해 나가고 뻗어 나가는 나 라이지만, 한 발 실수하면 어디서 어떠한 차질이 생길는지 예측동 할수가 없을 것이다.

국향이는 품에 안은 조약이를 굽어보았다.

“조약아! 너도 장차 아버님께 지지 않는 큰사람이 되어라. 어미는 축수한 다.”

국향이는 머리를 숙여 조약이의 머리에 입맞추었다.

승상 을지문덕과 그의 아내 국향 공주는 조약을 붙안고 단출한 수원 몇 명을 거느리고, 잘 포장된 초가을의 도로를 상쾌한 기분으로 요서(遼西)로 달리고 있었다.

“공주 진나라 서울과 어때요?”

“승상님, 이젠 전 진인이 아니올시다. 고구려 아낙이 된 지 삼사 년, 조국 고향 잊은 지 오랜 사람이옵니다. 진나라 일은 묻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는 또한 귀여운 조약을 굽어보는 진국향 공주 ─.

“공주! 고구려로 투신한 거 참 잘한 일이외다. 지금껏 길가에서도 무수히 본 바처럼, 무수한 진나라 한나라 백성들이 구고려로 넘어와서 편안히 살고 있소이다. 제 나라에 있었더면 유리걸식할 무수한 백성들이….”

어떤 곳에서 그들은 한 노인을 보았다. 눈결보다도 흰 기다란 수염과 머리털을 초가을 바람에 휘날리며 농구를 들고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곁에는 아직 젖먹이 갓난애가 혼자서 싱글벙글 하고 있었다.

을지 승상의 국내 순시하는 것은 온 고구려에 알려진 소문이라, 노인도 그 점은 안 모양이었다. 노인은 승상께 공손히 절하였다.

“을지 승상님이시지요?”

“예. 노인 춘추가 어떻게 되시오?”

“금년에 여든 ─ 일곱인가 여덟인가 그쯤 되나 봅니다.”

“아직 튼튼하십니다.”

“장차 팔십 년은 더 살 듯하오이다.”

“저 아기는?”

“소인의 자식놈이올시다.”

“어이 장해라! 구십에 아드님을 보시니 참 장사시군. 마나님 춘추는 어떻게 되십니까?”

“소인의 아내는 아이를 열 개를 낳고서 사십 년 전에 죽었읍니다.

“저 아기는?”

“네 그래서 오십 홀아비로 지내노라는데, 나라에서 자식 낳을 만한 사내들은 재취하라고 하시기에 또 둘이나 얻었는데 다 죽어 버렸지요. 그래서 소인의 증손녀의 소꿉동무 되는 처녀 아이를 장난삼아 그런 노릇이 작년 에 저 아이가 났읍니다그려. 그래서 애지중지 기르는 중입니다.”

“노인 자제가 몇 분이나 되시오?”

“서른셋이라던 게 벌써 한 옛적이고 그 뒤에도 몇 개 또 낳았으니까 아마 마흔은 넘을 것이올시다.”

“모두 잘 자라시오?”

“맏이가 금년 갓 일흔 살인데 잘 자라지 않아 잘 늙습니다. 역시 아비를 닮아 건강합니다.”

“아아, 고구려 만성이 모두 노인 같으면 고구려 육천만은 문제가 없을 걸.

노인, 자식 많이 낳으셔서 나라에 보답해 주시오. 고구려는 지금 만성이 귀 합니다. 이 넓은 벌에 사람이 그득해지는 날을 우리 상감은 기다리십니 다.”

“아내가 한 아이를 낳고 다음을 또 낳으려면 삼 년의 세월이 걸리니 그게 딱한 일이올시다.”

“노인은 나라의 다산록(多產祿)을 받으셨겠구료?”

“그럼요! 열 놈째 낳았을 적, 처음으로 한 열흘갈이 땅을 다산록으로 받았 읍니다. 그 이래 연년이 받은 게, 이 근처 한 사십 리는 남의 흙 밟지 않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모두가 나라에서 하사하신 녹지입니다. 아내만 감당한다면 소인 같아서는 일 년에 오륙백 명은 낳을 수 있겠는데 여인이란 것이 남편 같지 못합니다그려, 허허허허!”

“일 년이면 삼백육십 일에 어떻게 오륙백을 낳으십니까?”

“이틀에 서너 번야 못하겠어요?”

“참 장하신 기개로군. 노인 자손이 몇 분이나 되시오. 모두가?”

“글쎄올시다. 연전에 천이 넘는다고 맏이가 말하더군요.”

“한 사람이 천 명 자손 ─ 몇 해만 그대로 나가면 한 나라가 되겠군요.”

승상은 곁에 가만 듣고 있는 국향이를 돌아보았다.

“공주도 다산록을 하사받아 보시구료! 공주가 내게 시집온 지 삼 년에, 노인의 말씀대로 치자면 일천 몇 십 명의 자식은 거느렸어야 할 터인데, 겨우 단 두 명이요? 그리고 이삼십 년 겪고는 단산해 버리고, 여인은 하늘의 명령을 감당치 못하거든 ─.”

국향이도 마음에 느껴지는 바이 있었다.

진궁(陳宮)에는 삼천의 후궁이 있다. 그 삼천이 모두 천자의 귀염을 받는가 하면 그것도 복불복이어서, 어떤 자는 동정(童貞)을 지닌 채 늙어 헛되이 청춘을 썩히는 자가 꽤 많다. 많이 낳고 못 낳는 것은 오직 여인에게 탓이 있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기로서니 남자가 여인을 삼백 번 거느렸으면 자녀 삼백은 낳도록 마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천여 번이나 거느려야 겨우 한 자식을 볼까 말까 마련되었으니까, 자식을 기다리는 남편은 작은댁 후실 등을 거느리는 것, 이것도 또한 하늘의 섭리에 다른 일이라, 여인 된 자로서는 하늘을 원망할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승상님, 이 아기를 유모에게 줍시다.”

“건 또 왜?”

“젖을 떼면 또 아이가 든다는데….”

“공주도 다산록에 욕심이 나오?”

“나라에 많은 자식을 바쳐야 하지 않겠읍니까?”

“하기는 난 아직 본전도 못했단 말이지. 한 사내에 두 아내면 자식 삼남매는 두어야 본전인데, 지금 겨우 형제 뿐이니 아직 본전 뽑지 못했어.

자, 우린 이제 우리 길을 갑시다. 그럼 노인, 더 많은 자제를 보셔서 나라에 바쳐 주십시오. 고구려나라는 지금 젊은이를 기다립니다. 나라에서는 자 손 많이 둔 분은, 자손두니만큼 대접도 해 드리니까, 만 명이라도 십만 명 이라도 자식을 많이 두십시오.”

“승상님, 차 한 잔 대접 못하구….”

“안녕히 계십시오.”

“많이 많이 창성하세요.”

이리하여 승상 내외는 이곳을 떠났다. 천여 명의 자손을 두었노라는 노인과 작별하여 다시 길에 올랐지만, 국향이의 마음은 왜 그런지 찌푸득이 시원치 못한 기분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승상님!”

“…?”

“이 조약이를 위해서 한 유모를 구해 주세요.”

“왜 젖이 부족하오?”

“젖은 철철 넘습니다마는….”

“젖은 넉넉하면 유모는 왜? 갓난애란 생모의 젖을 먹고 자라야 옳게 자라는 법이오. 유모는 아무리 해도 남이지 뭐야.”

“그래도 아이 젖먹이는 동안은 새 아인는 못 본다고 들었읍니다.”

“자식 생각이 또 나오?”

“저는 고구려의 아낙이올시다”

승상은 머리를 돌려 국향이를 굽어보았다.

“공주는 다산록(多産祿)이 생각 나는가 보구료? 대체 고구려의 아낙은 격식대로 아이를 낳아서 튼튼하게 길러야지, 송사리 벌레 떼처럼 한 배에 천 마리 만 마리 낳아서 쓸데없소, 개돼지처럼 한 배에 대여섯 마리씩 낳으면 수요야 늘겠지만 하늘은 사람에게는 한 배에 하나씩으로 정해주셔셔, 그 하나도 잘 넉넉히 자란 뒤에야 다음 아이가 들도록 정해 주신게니까, 공주가 내게 와서 삼 년에 아이 둘을 낳은 건 꼭 알맞은 수효외다. 그 이상 낳으면 감당치를 못하거니와 쓸데도 없소이다.”

“그래도 아까 그 노인은….”

“그 노인이야 짐승이지. 일 년에 오백 마리를 낳겠다니 ─ 그게 사람의 일이요? 거저리 작대기 천을 낳으면 뭘 하고 만을 낳으면 뭘 하오? 모두….”

승상은 공주의 품에서 조약이를 가만히 끌어당겼다.

“모두 요런 진짜 알맹이를 낳아야 하지 거저리 작대기를 만 개를 낳으면 무얼 하고 십만을 낳으면 뭘 하오? 나라에서도 영특하고 똑똑하고 건강한 놈을 구하시지 거저리 새끼를 구하는 바가 아니니까 ─.”

“승상님께서도 제가 낳은 것을 알맞다고 보십니까?”

“알맞고, 더 많이 낳는다면 나도 감당을 못하겠거니와, 공주의 몸도 감당치 못할 줄 아오.”

“전 감당하겠어요.”

“명년쯤, 조약이 젖 떨어질 때쯤 해서 또 한 아이를 낳아 봅시다. 이번은 꼭 딸아이를 만들어야겠는데 ─.”

국향이도 속으로 가만히 세어 보았다.

“그러면 제가 승상님 모시어 일생에 열댓 명밖에야 자식을 보겠어요?”

“한 내외에서 열댓 명은커녕 홑 댓 명이라도 충실한 것만 낳아서 완전하게 길러 내놓으면 완전히 국민의 책무는 다하게 될 게요.”

“대여섯 명은 제가 승상 가문에 낳아서 바치오리다.”

“고구려의 가을은 상쾌도 하다. 중국도 이런 좋은 날씨가 있소?”

승상은 유쾌한 숨을 들이키며 말하였다.

요동(遼東) 칠백 리의 무연한 벌에 이르는 곳마다 큰 성이요, 가득 찬 창고(倉庫)요, 거기 움직이는 시민들은 모두가 씩씩하고 건강한 젊은이였다.

“고구려는 과연 크고 훌륭한 나라입니다.”

국향이는 종내 승상께 진심을 토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되 땅과 어떻소?”

고구려인은 고구려 아닌 곳은 죄다 되라 한다. 중국 계통의 사람은 이말을 좋게 해석하여, ‘대국(大國)’이라 한다고 한다.

되놈이라 하고 되 사람이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 ‘되’라는 한 층 낮은 인종을 규정한 것일시 분명하였다.

과연 고구려인에게는 고구려인으로서의 긍지가 컸다. 그들이 같은 단군님의 후손이라 인정하는 계림(鷄林)이나 백제에 대해서는 계림 사람 백제사람이라고 사람 대접을 해주었지만, 고구려와 이웃해 살고 있는 말갈계통이 인종을 비롯하여 돌궐(突厥)이나 그런 오랑캐 종류이면, 중국 계통의 중국인까지 모두 되놈이라 하여 경멸하고 얕보았다. 그리고 오직 신선의 족속이로 라는 단군 백성만을 사람으로 꼽는 고구려인이었다.

이 요동 지역엔느 고구려인 아닌 인종이 꽤 많이 살고 있었다. 우선 중국 의 끊임없는 내란 때문에 중국을 피해 망명한 중국 망명인들이 소문에 듣던 낙토 고구려를 사모하여 넘어와서, 이곳 저곳에 중국인 부락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인은 또한 중국인이로라는 긍지가 있으므로, 다른 족속을 얕보는 천성 이 있지만, ‘메유파즈’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라, 이 고구려인의 존대심과도 넉넉히 융화가 되어 곧잘 살아 갔다. 아직 문화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 말갈 종족은 불함산 기슭에서 고구려 인종과 함께 차차 번식하였 지만, 아직 음식을 손가락으로 쥐어 먹으며, 뒷간과거처실의 구별이 없이 되는 대로 살아 가는 미개 인종이다. 고구려인의 예하에서 아무 불평이며 불만 없이 곧잘 심부름이라 하며 지내 갔다.

갖은 수모 시종 다하며 고구려의 예하에서 사는 인종들도, 워낙 고구려와 의 문화 정도가 차이가 큰 위에, 실력으로 감히 겨눌 수가 없으므로, 불평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고구려의 충실한 종으로 살아 간다.

어제는 양나라의 예하고, 오늘은 진나라의 예하고, 내일은 수나라의 예하 로 지내지 않을 수 없는 불안정한 주권 밑에, 한 인종으로서 고구려에 넘어 온 덕에 튼튼하게 ‘승상 부인’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향이는, 자기가 연전에 진나라 피를 유지해 보겠다는 철없는 생각으로, 장량이는 젊은 이를 쫓아 승상 댁을 배반하고 뛰쳐나왔던 지난날의 철없는 행동을 돌아보아, 요행 그 뛰쳐나올 때 승상의 둘째 아이가 뱃속에 들어 있었던 일을 못 내 다행히 여겼다.

“승상님, 저는 기쁘옵니다. 승상님의 아내로, 바위 조약이의 어머니로, 고구려의 아낙으로 굳어진 제 지위는 반석 같습니다.”

국향이는 승상을 우러르며 하소연하였다.

승상과 국향이가 고구려와 중국의 국경선인 방적 제일관(防狄第一關)에 이른 것은, 그 해도 다 간 연말에 가까운 때였다.

제일관 태수는 신을 거꾸로 신다시피 하면서 뛰어나와 승상을 맞았다.

“승상님, 먼 길 오시느라고 얼마나 고단하시옵니까?”

“태수도 방적에 얼마나 애를 쓰시오? 나 여기서 월동이나 할까 합니다.”

이리하여 승상은 제일관에 닻을 주었다.

연전에 진나라의 한 망명 소녀로서 부왕의 글월 한 장을 지니고, 이곳에 한동안 신세진 일이 있는 국향이는 감회가 무량하였다.

“태수님, 안녕하시오니까?”

“태수는 눈을 들어 국향이를 우러러 보았다. 옛날 한 망명 소녀로서 지낸 국향이를 처음은 언뜻 못 알아 보았다.

“태수님께서 주신 돌궐 말은 참 잘 닫던걸요.”

“아이, 부인 참 기승(騎乘)에 능하시던걸요. 그 돌궐 말은 좀체의 사람은 능히 타지 못했읍니다. 그 말이 부인의 앞에서는 머리 숙여 굴복을 했으니까요.”

승상이 가로 들어왔다.

“참 태수와 내 아내와는 초면이 아니겠구료?”

“이 관에 달포를 묵어 가셨읍니다.”

“참 부인께도 신세 많이 졌읍니다.”

“참 태수, 이즈음 신라나 백제 아이들이 자주 안 보입니까?”

“왜 안 보여요? 지금 여기 억류된 아이도 십여 명이 되는가 봅니다.”

“무론 수상한 아이들도 있겠지?”

“예사 사람은 그저 넘겨 주고요, 좀 수상한 아이들은 억류해 두었읍니 다.”

“그 아이들을 내가 좀 보고 싶은데….”

“그리 하시지요. 좌우간 이리로 들어오세요. 승상님 묵으실 방이 준비되어 있읍니다.”

장차 어떻게 되면 나랏님의 거둥을 볼 경우도 고려하여 꾸민 태수관이라, 승상이 묵을 만한 방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장안의 내집에 못지않은걸. 훌륭한 방이외다. 장차 경우에 따라서는 일이 년 묵어 갈지도 알 수 없소이다. 공주, 어떻소? 일이 년 묵게 되면 어떡할 테요?”

승상은 머리를 돌려 국향이를 돌아보았다.

국향이는 승상을 맞으러 달려나온 태수 부인과 만나서 벌써 이야기에 꽃이 피어 있었다.

“공주, 혹은 나는 이 태수와 바둑이나 두며, 일이 년 여기서 놀다 갈지도 모르겠는데, 공주는 어떻게 할 테요?”

“승상님 저는 언제까지든 승상님 모시고 승상님 가시는 데 따라가겠습니다. 저도 일이 년 여기서 놀지요.”

“부인도 이 근처 풍물이나 구경하며 승상님 계실 동안 그냥 계시지요.”

“아이고 방도 넓기도 해라!”

오래간만에 내 집 같은 편안한 기분으로 제일관의 밤을 보내고, 아침도 느직이 깨어서 우선 곁의 아내를 돌아보았다.

“잘 잤소?”

“세상 모르고 잤읍니다. 이 조약이가 밤새 얼마나 보챘는지─.”

“나도 정신없이 잤으니까 모르겠소마는 조약이도 잘 자던 모양이던데.”

승상은 준비된 조반을 얼른 먹고 공청으로 나가 보았다. 공청에는 태수가 보이질 않았다.

거기 일보는 사람더러 물어 보니, 태수는 별실에서 무슨 문초를 하고 있다 한다.

승상이 별실 문을 열며 틈으로 보매, 태수는 한 스무 살 난 소년과 마주 앉아서 무슨 의논성 좋게 이야기하고 있다가,

“승상님, 벌써 기침해 계십니까?”

하면서 인사를 한다.

승상이라 하는 벼슬은 중국에도 있다. 그러나 이 동방에는 고구려에서 그 머리 재상 을지 공을 승상이라 부르는 밖에 승상이 없다. 태수와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던 소년은, 황황히 머리를 돌리며 외면하여 버렸다.

“벌써 무슨 공무를 보시오?”

“네이, 그 계림 아이를 좀….”

“그게 계림 애입니까?”

“그렇습니다.”

승상은 허리를 굽혀 머리 돌려 외면하는 소년을 굽어 보았다.

“네가 계림 아이냐?”

“아니올시다. 소인은 하백의 외손이신 고주몽님의 나라 고구려 만성이 올시다.”

“저 애는 그냥 자기는 고구려 만성이로라고 우기고 버팁니다.”

태수가 곁에서 아뢰었다.

“이니올시다. 승상님께 직고하겠읍니다. 소인은 이번 낙양에 우연히 갔다가, 계림 동행을 만나 함께 오던 중이옵지만 소인은 훌륭한 고구려 소년입니다. 계림 아이란 소인께 억울합니다.”

승상은 태수를 바라보았다.

“생긴 모습은 고구려 계통인데 ─ 말 사투리도 추호도 틀림없는 고구려 사투리고….”

“한 떼 계림 아이들이 지나가는 걸 붙든 모양인데, 이 녀석 하나는 꿋꿋하고 믿음성 있음직해서 문초해 보는데, 자기는 고구려 만성이로라고 그냥 버팁니다.”

“태수, 이 애를 내게 주시오. 내가 알아서 좀 알아볼 터이니 ─.”

“승상님께서 이런 일을 직접 하시겠읍니까?”

“하여간 내게 맡기시오. 얘, 일어나 나하고 저리로 가자.”

“승상님은 고구려 대승상을지공이십니까?”

“오오, 내가 을지문덕이다.”

“아이고 이 제일관에 붙들린 덕에 상공을 직접 뵈옵다니, 소인의 집안말대까지 영광으로 생각하옵니다.”

“좌우간 나를 따라오너라.”

승상은 저버저벅 그 별실을 나왔다. 태수는 경호라도 뒤에 달아 드리고자 경호를 찾으며 뒤따랐다.

승상은 그 계림 아이라는 인물을 데리고 승상 처소로 구획된 곳으로 돌아 왔다.

소위 계림 소년을 데리고 승상이승상 방으로 돌아오니, 이곳 시녀들이 한창 소제에 바쁘고 있었다.

“공주, 저 하인들을 데리고 좀 다른 데로 피해주시오. 내 이소년과 좀 이야기할 게 있는데.”

하여 공주며 하인들을 모두 물리치고서 그 계림 소년과 마주 대좌하였다.

“네가 계림 아이냐?”

“아니올시다. 소인은 패수(浿水) 물에 멱감고 자란 고구려 아이올시다. 계림은 아직 가 보지도 못했읍니다.”

“그래서?”

“소인은 어려서 유기(留記)를 읽습고 우리나라 역사를 짐작하옵자, 승상님 의 그 굳세신 정책이 짐작되었읍니다. 그래서 소인은 낙양으로 자리를 옮겨 수(隋)나라의 동정을 엿보고 있었읍니다. 그동안에 낙양서 만난 동무가 저 계림 아이들입니다. 계림 아이들은 분명 계림의 큰 집 아이들이 모양으로, 수제(隋帝)와도 무슨 연락이 있는 듯하였읍니다. 그러다가 이번 갑자기 제 나라로 돌아간답기 무슨 수제의 밀서라도 품고 가는 듯 하옵기로, 소인은 그 애들과 동행하여 돌아가는 듯이 하다가 그 밀서가 입수되면 승상님께 바치고자 함께 돌아가던 중이올시다.”

수제의 밀서? 승상은 마음이 선뜻하였다. 수나라와 계림 혹은 백제의 사이 에 무슨 연락이 긴밀하게 맺어지고 계속되는 것은 짐작하는 바였다. 그런 일을 좀 조사해 보기 위하여 이곳에 일이 년간 묵어 가면서 알아보려던 것이었다.

수제가 계림국에 무슨 밀서가 있다 하면, 그것은 계림과 수의 공수 동맹에 관한 것이든가, 고구려 절벌에 힘을 아우르자는 종류의 것일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 그 밀서라는 것은 혹 네가 본 일이 있느냐?”

“없읍니다. 그 밀서를 품은 듯한 아이는 재빨리 몸을 빼쳐서 지금쯤은 한 백여 리더 가 있을 것입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저희들이 붙들릴 때 그 밀서를 가진 듯한 소년은 한사코 몸을 빼쳐서 도망쳐 버렸읍니다.”

“그걸 따라가 뺏아야겠구나.”

“제가 말을 한 필 주세요. 제가 따라가서 빼앗아 오겠읍니다. 그 달아난 아이놈은 무술도 꽤 통한 듯하와, 좀체의 사람으로는 당하지 못하오리다.”

승상은 당황한 기색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이곳 태수를 불렀다.

“태수, 여기 좀 걸음 빠른 말을 한 마리 구할 수 없겠소?”

“있읍니다마는 말이 좀 거세어서 잘 다룰 사람이 없는 듯하옵니다.”

“좌우간 좀 내어오오.”

태수가 하인들에게 분부하니까, 하인들은 저편으로 가서 한 마리의 말을 네댓 명이 호위하여 가지고 나왔다.

“이 말은 어떻겠읍니까?”

“공주 ─ 공주!”

승상은 말의 감정인으로 공주를 불렀다.

국향이도 이자리에 불리어 나왔다.

“공주, 좀 어려운 심부름을 하나 해야겠는데….”

“무에 오니까?”

“공주, 저 말을 넉넉히 타겠소?”

“그 말쯤이야 타겠읍지만, 그게 제게 시키실 심부름이오니까?”

“아니, 저 말을 타고 달려가서 좀 붙들어 와야 할 사람이 있는데….”

“조약이는 어떻게 하고요?”

“참….”

승산은 머리를 숙였다.

“하루쯤은 어미 없이 못 지낼까?”

“고구려의 아낙은 젖먹이 갓난애를 떼어 버리고 한때도 떠날 수 없읍니 다.”

“그 계림 아이놈을 좀 붙들어 와야 할 터인데….”

승상은 고구려 아이로라는 젊은이를 돌아다 보았다.

“자, 어떻게 하나?”

승상님, 제가 가서 잡아오리다.”

“네가 능히 당하겠느냐?”

“그 놈도 화랑인가 낭도쯤인 모양이지만, 소인도 묘향선이 문하에서 십여 년 닦달한 놈이올시다.”

“묘향선인? 너도 말 탈 줄 알겠구나.”

소년은 승상께 가볍게 인사하고 말 있는 쪽을 향하여 무슨 기이한 부르짖음을 내었다.

지금껏 네 명의 장정에게 호위되어 버둥거리던 말이, 한 번 고함치매 네 명의 장정 손에서 벗어나와 소년께로 달려와서 소년의 앞에 고요히 꿇어 앉는다.

소년은 그 안장도 없는 말께 한 손대는 듯하더니 어느덧 마상에 올라 앉았다.

“응, 그만했으면 쓰겠다. 그럼 다녀오너라.”

“승상님, 다녀오겠읍니다.

뭇 사람이 부르짖고 부르는 가운데서 말을 달려서 동쪽을 향하여 채찍을 쳤다.

“승상님, 무슨 일이오니까?”

국향이가 물었다.

“아니, 어제 문초처에서 도망친 계림 아이놈이 수제 견(隋帝 堅)이의 밀서를 품은 듯하단 말이지. 그래서 그걸 뺏아 오라고, 계림 주인에게 주는 밀서인 듯한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좀 보아야겠어….”

“그래 저를 보내실 작정이셨어요?”

“공주밖에야 그런 중대한 일에 믿음직한 사람이 어디 있소?”

“지금 쫓아간 사람은 어때요?”

“모르겠소마는 자기 말로는 패수(浿水)에 멱감은 녀석이라 하니 ─ 내가 패수에 멱감은 탓인지는 모르지만, 패수에 멱감은 인생치고는 그래도 너무 허탕한 놈은 없단 말이지.”

“견이의 밀서요? 그럼 제가 갈 걸 그랬어요.”

“화랑도로 닦달한 계림 아이를 공주가 당할 듯하오?”

“고구려 아낙의 일편단심은 화랑도로 천만 번 닦달한 아이라도 겁을 안 냅니다. 수제 견이는 공주의 부황을 시(弑)한 역적이올시다. 중국 오천만 적자의 원수입니다. 그 견이의 밀서를 지닌 자이면 공주가 꼭 붙들고 싶었읍니다.”

잠깐 다녀오마고 돌궐 말을 타고 나간 소년은 이틀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승상도 몹시 기다렸지만, 승상 부인인 국향 공주의 초조함도 또한 매우 컸다.

“그 녀석도 뺑소니친 모양입니다그려.”

“공주는 장량 기다리듯 기다리는구료. 제 올 날이 있겠지.”

“그 녀석 동행이 있다지요?”

“계림 아이 서넛이 동행이라고….”

“그것한테 알아보시지요?”

“글쎄….”

이리하여 승상은 미처 못 뛰고 붙들린 계림 애들을 불러 알아보았다.

달아난 녀석은 계림의 화랑이었다. 못 달아나고 붙들린 것은 그 화랑의 낭도들이었다.

낭도가 화랑의 일에 어찌 용훼를 하랴마는 무슨 꽤 귀중한 문건(文件)을 수제에게서 계림 임금께 전달하라고 맡은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승상으로서 놀라고 감탄한 것은 계림 위정가의 정치 방침이었다.

아이들에게 어렸을 적부터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과 반항심을 어린 뼈에 부어 넣도록 교육을 한다.

‘울면 강구가 잡아간다.’ ‘강구가 불알 짼다.’ 하여 고구려에서는 강구라 하는 한 무형물을 강조하여, 생떼쓰는 아이며 못 된 아이들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쓰거늘, 계림에서는, ‘요놈 고구려 놈 온다.’ ‘고구려 놈이 불알 까먹는다.’ ‘떼쓰면 고구려 놈한테 준다.’ 하여 어려서부터 고구려에 대한 공포심과 적개심을 길러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림 천지에서는 고구려라 하면 무섭고 잔학한 것으로 아주 인상 박혀 있다고 한다.

승상은 내심 깊이 감탄하였다. 같은 단군님을 조상으로 모신 계림과 부여 ─ 중간에 서로 갈라져서, 너는 계림인이라 나는 부여인이라, 서로 딴 나라를 이룩해 딴 살림을 한 지 일천여 년에, 오늘날 이처럼 원수가 된 까닭이 어디 있고 필요가 어디 있을까?

전하는 말에 의하건대, 고구려 광개통왕 시절에 계림이 왜종(倭種)에게 침 노를 받았을 때, 광개토왕 ─ 평안호태왕께서는 몸소 오만의 고구려 아이들을 이끌고 멀리 계림까지 가셔셔 그 왜종을 쫓아 내어 주었다 하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고구려는 계림을 지금껏 남같이 생각치 않고 꾸준히 그냥 그 뒤를 받들어 주거늘, 계림에서는 어린애 때부터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과 방 항심을 배양하고 있는가? 이것은 한심하고 딱한 일이었다. 고구려의 목민책임자로 앉아 있는 을지 승상으로서는 다시 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었다.

이제부터라도 고구려에서 역시 계림처럼 아동 교육 방침을 바꾸어 놓으면, 고구려 아동들의 괄괄한 성미로서, 계림은 고구려인에게 씨도 남지 않도록 부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승상으로선 같은 단군님의 후예인 계림을 잔멸시킬 마음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승상은 계림 아이들을 문초하다가, 계림서는 우는 애를 어르는 데도 고구려을 내세운다는 데 그만 어처구니 없어서 뒤를 계속하지 못하였다.

“계림서는 그렇듯 우리 고구려를 원수로 삼느냐?”

만약 그렇다 할진대, 고구려에서도 거기 대응할 방침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지금껏은 그래도 계림도 단군님의 한 후예로 여겨서 사사에 계림을 보호하고 아껴 왔거늘, 계림서는 소년 적부터 벌써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면, 장차 계림과 고구려는 종내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겠구나!

지금 바야흐로 수나라와 맞서서 국력을 양성하고 국민 정신을 기르는 이 비상 시기에 집안끼리의 그런 내분이 있으면 이를 어찌하는가?

더우기 계림은 고구려를 원수로 보니만큼, 고구려의 원수 되는 수나라와 까지라도 친선하며, 수나라의 한 변방 되기라도 사양치 않을 형세다.

아아, 단군님의 성역을 더럽히는 구나! 고구려로서 만약 벌하고자 하면, 계림쯤은 아주 허수로이 없애 버릴 실력은 넉넉하다. 그리고 배달 종족 발흥을 위해서는 반역자인 계림 따위는 없애 버리는 것이 종족 만년 지계가 될 것이다.

계림도 계림이려니와, 백제의 괘씸함은 또한 어찌하랴! 백제는 그 시조(始組) 고온조가 벌써 우리 고구려 시조 동명성주와 지친의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를 원수로 잡아, 상주적(常駐的)으로 사신을 보 내어, 중국 서울에 상주하는 그 사신을 통하여 늘 고구려에게 반역하는 외교 정책을 쓰고 있다.

한 할아버지의 자손으로 고구려는 늘 그들(계림과 백제)을 보호하고 북돋아 주었거늘, 그들은 조국에 반역 행동을 취하여 왔다.

“너희 계림에서는 조국을 모르는 구나.”

“조국이란 무에 오니까?”

“할아버지의 나라가 조국이니라.”

“소인의….”

아비는 누구요, 할아비는 누구요, 하여 그들은 고구려와 계림은 조손(祖孫)의 관계가 없다고 그냥 주장하였다.

“그렇게 꼽아서 백 대 가까지만 세어 올라가 보아라. 너희도 무두 부여에서 갈려 나간 아이들이니라.”

“소인의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사온데, 그런 말씀은 들은 일이 없읍니 다. 승상님!”

“네 할아버지는 금년 춘추가 어떻게 되시는냐?”

“예순셋으로 짐작하옵니다.”

“노인도 육십여 년 헛수고하였군. 불초한 자손 두시고 ─ 너희들 여기서 고구려 교육을 좀 받고 가거라. 계림 교육과는 다르다.”

이리하여 승상은 여기서 붙든 계림 소년들에게 성군 단군님께서 펴져서 온 동방에 가득히 찬 배달 종족의 거룩한 역사를 가르쳐 주려 하였다. 비록 서 너 아이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들만이라도 거룩한 민족의 역사를 알고 고구려의 사상을 알면, 차차 그것이 전파될 날을 예기하고서 ─ 승상의 분부로 이 제일관에는 한 개 서당이 즉시로 설치되었다.

삼국 아이, 중국 아이들의 교육을 목표로 한 서당으로서, 사오십 명의 소년을 모아 넣었다.

고구려의 건국 이념이며, 국가 운명의 목표인 온 동방 민족을 한 나라로 모으려는 고구려 사상을, 이 고구려인이 아닌 아이들에게 부어 넣어 주려는 목표에서였다.

“여기 왜갈보는 없소?”

“왜 없으리까? 수십 명 잘 될 줄로 믿습니다.”

대체 왜종은 아내 아닌 여인을 돈 주고 하룻밤씩 사서, 사내의 옹색을 펴는 풍습이 예로부터 있어서, 고구려 지역 안에도 무수히 왜갈보 동네가 있던 것이었다.

“대체 사내 녀석들이란 계집에게 마음이 들면 공부는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법이건든. 그 서당 아이들에게도 왜갈보를 한 마리씩 떼어 맡기지? 얼굴 판대기 곱살한 것도 있소?”

“소인은 가 본 일은 없지만, 말로 듣자면 꽤 씀직한 것도 있나 봅니다.”

“태수도 좀 오입을 해보시지?”

“소인은 집에 늙은 아내가 있읍니다.”

태수는 좀 오입을 해보시지?”

“소인은 집에 늙은 아내가 있읍니다.”

태수는 오입이란 천부당한 말씀이란 듯이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제일관에는 외국 청년들을 목표로 한 서당이 개설 되었다. 그리고 서당의 성년 된 청년들로서 객지의 옹색한 자들을 위해서는 왜갈보로서 한 명씩의 아내가 배분되었다.

제일관 관문을 통과하려던 몇 명의 계림 아이들도 이 서당에 수용하기로 되었다.

거기서 가르치는 바는 주로 고구려 건국의 역사였다. 단군님에서 시작되어 부여로 흘러내려오던 이 종족의 혈통이 어떻게 하여 삼한(三韓)으로 갈려 내려가서 백제며 계림, 가락 등이 생겼으며, 이 단군 후예가 모두 모이려면 어떤 방침 아래서 통합되어야 할지, 이 문제가 주요한 교수 재료였다.

이곳 검문을 피하여 도망치던 한 계림 소년을 쫓아가던 고구려 소년은, 쫓아간 지 반 삭이나 지나서, 그 놈마저 뺑소니쳤나 보다고 모두들 단념케 된 뒤에야 비로소 제일관으로 돌아왔다.

“승상님, 이제야 왔읍니다,”

“요녀석, 너도 도망친 줄 알았구나.”

“소인이 무슨 죄가 있어서 도망치겠읍니까?”

“그래 계림 아이놈은 붙들어 왔느냐?”

“네이, 그 놈 때문에 이렇듯 지체가 되었읍니다.”

“어디서 붙들었느냐?”

“여기서 한 이백 리쯤 가서 붙들었는데요, 영 어디 승상님께 도로 오려야지요. 그래서 묘향선인께 전수받은 선술로 좀 두들겨 잡아왔읍니다.”

“화랑도로 대항치 않더냐?”

“좀 꿈틀거립더이다마는 묘향선인께 받은 선술에야 제가 감히 대항하겠읍니까?”

“그래, 어디 있느냐, 그 녀석은?”

“저기 밖에 있읍니다.”

“이리 불러 들여라.”

계림 소년은 이 방으로 끌려 들어왔다. 보매 준수한 모습이었다.

“네가 계림 진골(眞骨)집 자손이냐?”

“말씀을 약간 고쳐 주십시오. 저는 계림 소년을 다시금 굽어보았다.

“자네라면 어떨꼬? 사십 장년이니 장유유서라는 것도 있어야겠지?

더우기 내 신분이 이 나라의 승상이니 어린 자네 따위를 자네라 불러도 무관하겠지?”

“승상이시라면을지공이시오니까?”

소년은 눈을 들어 숭상을 한참 동안 우러러보았다.

“노인이 강구를 부리신다는 을지 승상님이시오니까?”

“강구를 부려? 내가 ─ 을지문덕이?”

“고구려에서는 외국인을 붙들면 강구에게 내어주어 바작바작 깨물어 먹인다고 들었읍니다.”

“그래서 도망치댔구나?”

“…….”

“고구려의 아이들은 강구를 만나면, 그 강구를 잡아서 부려 먹는다.

계림 아이처럼 강구를 피해 다니지 않는다. 계림화랑은 강구를 무서워 하는구나?”

“이니올시다. 그러나 고구려 강구는 계림 아이 고기를 좋아한다고 들었읍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교육을 시켜서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을 배양하는 모양이었다.

“여보게, 잘 듣게, 고구려의 강구는 말갈 아이나 되놈의 아이나 잡아먹지, 단군님의 자손은 결코 해치지 않는다네, 그래서 고구려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다녀 보았지만, 그래 강구를 몇 번이나 만났는가?”

“요일전에 꼭 한 마리 만났읍니다.”

“자네는 이번 낙양까지 가서 수제도 만나 보고 왔는데, 무슨 전갈이라도 없던가? 전갈 글월이라도 ─.”

“없읍니다.”

이게 제 짐이올시다고 내놓은 그 손년의 짐이란 아무것도 없고 중국서 뜬 종이 한 권이 있을 뿐이었다.

“이게 수나라 다녀오는 기념이로구나.”

하면서 승상은 그 종이를 펴서 찬찬히 주의하여 보고서 한편으로 치워버렸다.

몸을 뒤지고 옷깃 속을 모두 뒤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이 종이는 수날 물건이라 고구려에서는 금제품이니 몰수한다.”

“노인님, 수나라 만여 리 다녀오는 기념물이오니, 단 한 장만이라도 소인께 내어 주십시오.”

“인정상 그럴듯하다. 한 장은 용서할 떠이니 네가 골라 내거라.”

소년은 종이권에서 한 장을 골라 내어 따로 치웠다.

승상이 조사해 보매, 아주 별다른 것이 아니므로 그냥 그 소년에게 내어 주었다.

승상은 그 계림 화랑이라는 소년도 새로 설치한 서당에 집어넣기로 하였다.

그러나 수제의 무슨 밀서를 지닌 듯한 혐의를 두었는데, 그것이 발견되지 않아서 온통 옷을 벗기고 이곳의 제복을 바꾸어 입히고 그 벗은 옷을 조사해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제 물건을 도로 내어주고 서당에 수용하였다.

그 서당에서 가르치는 학문이란 별다른 것이 없고 전혀 고구려학이었다.

단군님이 주인 없이 유랑하는 사람을 통 모아서 태고에 한 나라를 이룩하시고, 그것이 중국 족속의 침략 때문에 허리를 끊겨, 남쪽으로 삼한이 생기고 북으로 부여가 생긴, 이 종족 발기의 근원으로 시작하여, 이렇듯 두 토막이 된 이 종족을 다시금 규합하기 위하여 고구려나라를 이룩하고서, 다시 나아가서는 한 아드님은 남쪽으로 보내서 백제국을 세우고, 그러자 동남쪽 끝에서는 계림과 가락이 또 제 나라를 따로 세워서, 지금 고구려 계림, 백제, 세나라가 정립 형세이지만 단군님 시절과 매한 가지로 한 내 나라로 통합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고구려의 국시를 가르치는 ─ 말하자면 이 민족에게 고구려의 방침을 가르쳐서, 너희도 딴 생각 버리고 고구려 통합 운동에 돌아오라는 취지를 알리는 교육이었다. 이 고구려 민족과 중국의 갈 등도 가르쳤다.

이 사람의 세계에서 자기네만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중국인은, 중국인 도 아니 고구려의 발흥과 웅대를 꺼리어서, 유사 이래 고구려를 꺾으려는 침략의 손이 뻗은 것은 부지기수였으나, 중국의 힘이 도저히 고구려를 당치 못하여 할 수 없이 참고 지내왔지만, 지금 수나라가 중국민족을 통합한 그 여세로서 고구려를 둘러엎으려는 공작이 시작될 터이니, 고구려인 된 자 정신 바짝 차려서 외구의 침략에 대항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는 단군님의 후 손된 자, 계림이든 백제든, 모두 힘을 합하여 단군님 후손 방위의 큰 역사 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계림이라 백제라 작은 것을 다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단군님 종족 사회의 큰 문제다. 그러매, 장차 고구려가 수군(隋軍)의 침략을 받는 날에는, 계림도 백제도 땅을 들어 이 수군을 두들겨 주어야 할 것이다.

대략 이런 방침의 교육이었다.

그 교육을 받는 동안, 그 계림 화랑이라는 소년은, 누차 승상께 무슨 말을 할 듯이 움찔거렸다.

“자네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네이, 좀 조용히….”

“그럼 저 방으로 가세.”

이리하여 승상은 그 소년을 딴 방으로 데리고 갔다.

“무슨 말인가?”

“네이, 소인께 천자께서 계림 임금께 주시는 글이 있읍니다.”

이거야말로 승상이 찾고자 하던 물건이었다.

“그게 어디 있는가?”

“소인께 수나라서 만든 종이 한 권이 있는데 그 가운데 끼여 있읍니다.”

이리하여 그 소년이 따로 골라 내었던 한 장 종이가 앞에 등대되었다.

그것은 전일 승상도 자세히 검분한 일이 있는 수나라 종이 한 장이었다.

“이게 수제의 글월이란 말인가?”

“네이, 은혈로 쓴 글월이옵니다.”

당시 국제 정세가 미묘한 시절이라, 각 나라와 나라 사이의 비밀한 글월은, 비밀을 감추기 위하여 숨은 글씨로 쓰는 일이 흔히 있었다.

“은혈은 백반인가, 소금인가?”

“백반이올시다. 물에 감그면 글씨가 보입니다.”

“이렇듯 숨은 글씨의 글월까지 왕래할 필요가 있을까?”

승상은 하인에게 분부하여 냉수를 대야에 내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내어온 대야 물에 그 편지를 잘 펴서 한끝부터 차례로 담가 갔다. 담그는 데 따라서, 수나라 황제가 계림 주인에게 보낸 비밀 글월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 글에 의지하건대, 짐은 어느 달 며칠 날 몇 만 대군을 친솔하고 고구려를 칠 터이니, 너는 남쪽에서 고구려 어디를 엄습하여, 고구려로 하여금 남북으로 적을 받아 오금을 못 쓰도록 하여라, 하는 뜻이 꽤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수제와의 서신 교환은 있었는가?”

“늘 있었읍니다.”

“여기는 고구려 승상의 생명을 도모하자는 뜻의 글이 있는 모양인데, 고구려 승상이란 이 나를 가리킴인가?”

“네이, 상공이 계신 동안은 고구려를 침공키 힘들리라는 것이 수인의 고통된 의견이옵니다.”

“그럼, 자네가 한 번 내 목숨을 도모해 볼 생각은 없는가?”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없읍니다.”

“왜? 한 번 해보지?”

“승상님 소인도 단군님 후예이옵니다. 단군님 후예를 위해서 애쓰시는 우 리 승상님께 어찌 감히 딴 생각을 먹으오리까?”

“계림에 자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일만 명만 된다면 단군님 후손만 만세 할걸세.”

“소인이 계림에 돌아가거든 그렇게 힘쓰오리다.”

“자네는 수제 견이를 만나 보았다니, 견이의 인품이 어떻던가?”

“만용과 욕심이 남에게 곱 이상 되는 쉽잖은 영걸이옵니다.”

“그만하기에 오호십육군을 통합을 했지.”

“게다가 색을 즐겨해서 후궁이 한 사천여 명 되나 봅니다.”

“그 아들 광이도 보았나?”

“광이야말로 장차 말썽꾸러기인가고 보았읍니다.”

“그래?”

“색에도 야심에도 부황의 곱이 되는 인물이 아닐까고 보았읍니다.”

“자네 눈에 나는 어떤고?”

“승상님은 색에도 야심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한 천치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고 소인은 생각하옵니다.”

“바로 잘 보았네.”

조약이의 돐도 제일관에서 지냈다. 일찌기 요동 어떤 산촌에서 조약을 낳고, 그 뒤 승상과 함께 순시의 길을 떠날 때에, 여막 주인 마누라는 조약의 돐은 여기서 지내 달라고 간절한 부탁을 받은 국향이는, 마음에 그때의 주인 마누라가 저절로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주인 아주머니는 조약이의 돐은 꼭 여기서 지내 달라고 부탁하였더니….”

“참, 그 마님도 그때 태중이더니, 뭐나 낳았는지?”

“그 아주머니 말씀이 그건 장 서방 ─ 장량이의 아이라더군요.”

“그 장가놈이 그 마나님께 붙었소?”

“그런가 보아요.”

“흉한 놈에 흉한 마나님이지! 공주께 아이가 마나님께 헛들었는가 보오.”

“승상님도!”

국향이는 뾰로통해지며 외면하여 버렸다.

조약이도 돐이 되어 차차 젖도 덜 먹고 하여, 국향이는 얼굴이 보얗게 아주 혹할이만큼 예쁘게 되었다.

“그 마나님이 장가 녀석의 아이를 뱄다 하면 사람하고 되놈하고의 반종이겠구료!”

이것도 또한 국향이의 가슴에 걸리는 말이었다. 국향이의 양심에는 자기도 또한 되년이거늘, 그렇다 하면 저 바위도 조약이도 되년과의 반종에 틀림이 없었다.

“승상님은 왜 그리 독설이 심하시어?”

국향이는 외면한 채 머리를 숙였다.

자기가 지금껏 승상께 바친 적심은 하늘이 아시는 바이어늘, 그것도 되년 의 한 낮은 정에 지나지 못한다고 인정받으면 국향이에게는 억울한 일이었다.

“공주, 노여웠소?”

승상은 이윽고 공주를 돌아보면서 은근히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노여웠으면 내 공주께 절해서 사죄하지.”

하고는 거기에 장난하는 조약이를 굽어보았다.

“요놈, 조약아! 아빠가 이제 엄마께 사죄의 절을 할 테니 구경해라.

자, 공주! 고구려 천만 만성에게 절 받던 승상 을지문덕이 제 마누라 국향 공주께 하는 절을 받으시오.”

하면서 일어나면서 너붓이 절을 하였다.

“아이, 승상님도 망령되이 이게 무엇입니까?

“동이(東夷 )의 재상이 되나라 공주께 노염을 풉시사 하는 절 이외다.”

“되나라 계집애가 어디 감히 승상님께 노염이 무슨 노염이에요? 승상님 이 아이의 어미를 가긍히 보아 주세요.”

승상은 그의 유난히 기다란 팔을 펼쳤다. 그때 국향이는 홱 몸을 승상께로 돌렸다.

그리하여 승상의 벌린 품 안으로 국향이는 말려들어갔다.

“공주!”

“승상님!”

“공주, 우리 아이 또 하나 만들어 볼까?”

“이따가 밤에요.”

“노염을 풀었소?”

“되계집이 승상님께 노염이 무슨 노염이에요?”

“공주가 늙은 몸 내게는 과히 예뻐!”

고토 복귀(古土復歸)[편집]

영양왕(嬰陽王) 칠년과 팔년을 승상은 제일관에 닻 준 채 그냥 있었다.

국내는 통일된 팔백 년 사직 아래 흔들림 없이 튼튼히 자리잡혀 있지만, 국제 정세가 미묘한 관계로 제일관을 잘 지키는 것이 당면의 큰 일이었다.

제일관의 가장 큰 목표가 계림이나 백제의 수나라와의 밀통 여부 조사에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의 승상을지 공이 몸소 제일관을 지킨다는 소문이 차차 퍼지자, 백제, 계림 등의 간첩들도 제일관 통과를 피하고 돌림길을 해서 다니므로, 제일관을 파수하는 용무도 차차 적어졌다.

“공주, 우리 도로 장안으로 갈까?”

“저는 바위가 보고 싶구료. 얼마나 자랐는지….”

패수(浿水) 함박뫼〔牧丹峰〕 등의 경개는 아마 천하 으뜸이야! 다른데 다녀 봐야 내 고향 내 서울만한 데가 없거든.”

“참, 장안 패수에 배 띄우고 우리 조약이 낚시질 가르쳐 주지요.”

사실 승상에게는 이제 이 제일관의 살림도 염증이 났다. 계림인 백제인이 나 있으면 그래도 심심파적은 될 것이건만, 지금은 간첩 걸리는 일도 없는 이 제일관은 승상에게는 낮잠 자는 일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영양왕 구년 정월, 아직 정초의 기분이 가시지 않은 어떤 날 승상은 무료 히 조약이을 붙안고 집안을 거닐고 있다가, 무한한 일직선이 동쪽으로 뻗은 포도를 바라보았다.

“?”

곧 그 포도에는 무슨 한 새까만 점이 이쪽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게 무얼까?”

그것은 융복(戎服)으로 몸을 차린 한 사람일시 분명하였다.

말도 쉽지 않은 명마인 듯, 그보다도 그 말 탄 사람의 말 다루는 솜씨가 또한 쉽지 않은 명수였다.

일찌기 석다선인 문하에서 십여 년을 무술을 닦은 승상이라, 그 기승자의 쉽지 않은 기승법을 알아보았다.

화닥닥 화닥닥 달리는 말은 어느덧 제일관 영문 삼문 앞까지 이르렀다.

거기서 기승자는 쏜살처럼 달리는 말에서 탁 땅으로 내리뛰었다.

말은 타력으로 꽤 저편 앞까지 가서야 섰지만, 기승자는 내리뛴 그 자리에 정연히 섰다.

삼문의 수위졸들은 우르르 기승자에게 모여들었다.

“을지 승상께서는 어디 계시오니까?”

기승자는 모여드는 수위에게는 대척도 않고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다.

(저게 연 서방이로구나!) 그것은 과연 연파대였다. 일천 수백 리 밖 장안 서울에 있어야 할 연파대가 무슨 일로 이렇듯 달려왔는가?

“공주, 저 연 서방 좀 불러들이오. 연 서방, 연 서방!”

승상은 문을 열며 고함쳤다.

“승상님, 거기 계시오니까?”

“연 서방 이리 올라오게.”

“자, 들어오게.”

승상은 연 서방을 불러들였다. 들어온 연파대를 보매, 그 입은 옷은 금색이 찬연한 장군복이었다.

“소인은 이번 정서 장군을 배명하였읍니다.”

“장안은 나랏님이하다 무양하신가?”

“무고합니다. 나랏님께서는 이번이요서로 거둥하시옵니다.”

“요서로?”

“네이, 말갈인 만여를 이끄시옵고 요서를 평정합고자….”

“그래서 자네는 그 선성인가?”

“네이!”

“그럼 나랏님께서는 지금 어디쯤 계신지 아는가?”

“금명간 여기 도달하실 것이옵니다.”

“어어, 그럼 나도 나랏님 맞을 채비를 해야겠군.”

승상은 내실로 들어왔다.

“공주, 내 융복을 내어주시오.”

국향이는 승상의 분부대로 승상의 융복을 내어 바쳤다.

평복을 벗고 융복으로 바꾸어 입은 승상ㅡ 국향이가 승상께로 시집온 이래 처음 보는 승상의 위용이었다.

평소 부질없는 농담이나 육담을 즐기는 승상이 일단 융복으로 바꾸어 입자, 거기는 사람까지 바꾸어 놓은 듯, 동방을 호령하고 천하를 위압하는 고구려 국내 승상 을지문덕 공의 위연한 자세가 나타났다.

공주는 그 위엄에 위압되어 앞에 넓적 엎드렸다.

“장군님!”

그리고는 곁에 있는 조약이를 돌아보았다.

“조약아, 아버님을 쳐다보아라. 승상님 대장군님이시다. 너도 이 뒤 자라 거든 저런 위엄 있는 장군이 되어라.”

승상은 소매를 몇 번 떨쳤다.

“오래간만에 입었더니 몸을 결박한 듯 좀 빽빽한걸.”

가장으로 지아버님으로 모시기 오륙 년ㅡ 그의 벗은 몸을 쓸어안고 쓸어안겨서 애무하고 애무받기 무릇 수천 번ㅡ 국향이는 한 부랑자, 오입장이 을지문덕만을 알았다. 옷은 그 인격을 구성하는 큰 요소가 된다는 것을 국향이는 여기서 비로소 직접 목도하였다.

이 위용 아래 삼국의 일억만 인종이 승복하였던 것인가? 진나라 수나라의 온 중국 오천만 인종이 치를 떨던 것인가?

몸집도 보통 예사 몸집이요, 그 육담이나 잘하고 아이들과 희롱이나 좋아하는 작다란 몸집이 한 번 우렁차게 호령할 때에는 산천초목이 떨며 몇 억만 인종이 치를 떠는 고구려 대승상을지 공 앞에, 국향이는 비로소 그 위엄을 보고 자신의 지위의 무거움을 깨달았다.

“야, 조약아! 아비가 융복을 입으니까 무서우냐?”

“조약이만 아니라 국향이도 무섭습니다. 승상님!”

“공주도 이제는 나를 정서대 장군으로 부르오. 입즉 상(入則相)이지만 출즉 장(出則將) 을지문덕의 아내진국향 공주, 지아비를 아껴 섬기오!”

본시 이 땅에는 단군 왕검께서 흩어져 있는 만성들을 불러서 조선 왕국을 건설하였다.

불함산(不咸山) 기슭에 자리잡고 조선 왕국이 차차 자리를 튼튼히 잡는 동 안에 그때의 선진국인 중국에는 벌써 그 인종 특유의 천자놀이로 제각기 천 자 되려는 영웅이 배출하여, 민생은 어지럽고 살기가 곤란하여, 모두 동방의 단군의 성국으로 밀려들어와서, 일변 조선나라에 투화하고 일변 번식하였다.

이리하여 단군나라의 일부분인 요서 땅은 중국인으로 충일되게 되었다.

중국인의 수령 되는 자서여(子胥餘ㅡ기자)라는 사람은, 그 일당을 모으고 차차 더 살기 좋은 기름진 땅을 찾아, 더 동쪽으로 이동하여 평양지방까지 흘러와서 거기 낙랑군을 건설하였다.

남과 다투기를 싫어하고 지극히 평화적인 단군 민족은, 이 중국인에게 땅을 빌려 주며 후퇴하였다.

중국인은 그들이 침입한 어귀에 연나라라는 나라를 이룩하고, 단군조선땅 안에 차차 커 갔다.

이 연인 가운데 위만(衛滿)이란 사람이 조국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자서 여의 후예를 내쫓고 위만조선이라는 나라를 이루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단군 후예는 중국인의 이 침략에 뒤밀리고 뒤밀려서, 부여라는 나라를 따로 이룩해 가지고 한편 구석으로 밀려가 있었다.

이러한 때에 해모수의 아드님인 고주몽이 일어나서,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우고 단군 고토 회복의 기를 올렸다.

먼저 자서여에게 끊겼던 낙랑을 회복하여 단군 족속 통일을 꾀하였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중국인에게 활부리를 당겼다.

남쪽과 북쪽의 옛터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 서울을 옛날 자서 여의 침략 서울이었던 평양으로 옮기고 이를 장안이라 칭하고, 이제는 북쪽으로 요의 땅을 회복하는 큰 과제가 남았다.

요의 땅은 중국과 지경을 접했을 뿐 아니라, 그 인종의 대부분 중국인의 종자라, ‘연(燕)’ 이라는 관계로, 중국서는 이곳을 중국땅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은 이곳을 단군님의 옛터라 하여 내 나라 땅으로 인정하 는 곳이다. 비록 국적(國籍)으로는 중국에 소속된다 하나 그곳 백성이 모두 중국의 난리를 피해서 단군 선인의 나라로 망명해 온 사람들이라, 따라서 그 마음보다 단군의 나라를 사모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믿지 못하는 무리들이다. 그 태수, 도독 등은 중국서 임명하는 원관이라 하나, 그들부터가 제 조국을 믿지 못해, 신선의 나라 동방 성국으로 망명해 온 무리들이라, 참으로 믿음직하지 못한 무리들이었다.

고구려에서는 이 요서땅 포옹은 오랫동안 벼르던 일이었다. 성역(聖域) 복귀라는 커다란 깃발을 앞세우고 들이치면, 한 군사도 꺾이지 않고 내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오던 땅이었다.

임금도 볼일 이곳에 오신다고 연파대에게 들었으므로, 을지 승상은 밤에 옷도 풀지 않고 자면서 기다렸지만, 임금은 그로부터 이틀 뒤에야 이제일관 앞을 그저 통과하여, 한 삼십 리 밖 되는 벌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승상은 행궁까지 오라고 분부하였다.

왕정(王庭)을 하직한 지 이 년 가까이 멀리 되 땅에 와 있던 승상은, 왕정을 떠난 천 리 밖 되 땅에서 임을 뵙고자 수원 몇 명을 거느리고 행궁으로 달려갔다.

제일관성문 밖을 나서매, 무수한 만성들이 술과 고기를 들고 말갈병을 위 로하고자 연락부절이었다.

그 만성이라 하는 것은 고구려의 본종은 흔치 않고 대개가 중국 종족으로 동란의 중국을 망명하여 성국 고구려로 투화한 인종들이었다. 그 인종들이 말갈 병사들을 위로하고자 이렇듯 뒤끓는 것이었다.

단군님과 고주몽님의 두 거룩한 이름 아래 모인 말갈인과 중국인의 화목한 꼴에 을지 승상은 적이 감격하였다.

고구려 임금의 휘하에 말갈인이 이를 도와서 고토 회복에 협력하고, 중국의 귀화인이 또 이를 찬조하는 것은, 전혀 성인 단군님의 유덕에서 온다.

지난날의 거룩한 분들의 거룩한 땅을 물려받아 가지고 이를 옳게 바로 거느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오직 지금 사람의 부덕을 나타내는 것이라, 스스로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 이 말갈인과 중국인 이 서로 즐기는 모양을 곁눈으로 보며, 승상은 그 앞을 지나서 임금의 행궁까지 이르렀다.

왕궁을 떠난 천 리 밖에서 승상은 임금님께 뵈었다. 승상이 장안을 떠난 그때보다도 훨씬 완숙하고 건강하게 보이는 임금이었다.

“나랏님, 어떻게 이곳까지 거둥해 계시오니까?”

“단군님 옛터를 중국에 빼앗긴 지 천여 년, 아직 요서 땅은 고구려로 돌아 오지 않았기, 그것마저 찾고자 말갈 아이들을 이끌고 오는 길이외다,”

“왜 하필 말갈 아이들이오니까?”

“차마 고구려 아이들을 내 아이들이라 이런 데 내세우기가 민망하구료!”

실지 회복의 거룩한 일에도 고구려의 피를 흘리기를 아까와하는 임금의 심경에 승상은 감격하였다.

“말갈 아이도 사람의 종자올시다. 그들도 피도 있고 부모도 있는 사람의 종자올시다.”

“그러나 수제의 마음보가 사나와서 피만 흘리는 이상에는, 말갈은 의붓자식 같아서, 말갈의 피를 약간 흘려서 단군님 옛터를 찾으면 값이 덜 들겠기에….”

“그래도 말갈도 하늘의 자손이옵니다. 형아 아우야 할 우리 동포이옵니 다.”

“우리 승상의 마음보가 저렇듯 어지니까 계림이나 백제가 아직 그냥 숨을 쉬고 살지. 승상! 큰 것을 위해서는 작은 것은 희생하는 것이 왕자의 도리 외다. 게다가 위협상 말갈병을 이끌고는 왔지만, 가만히 시세 형편을 보니, 피 한 방울 안 흘리고도 일은 될 듯싶구료!”

“한 방울 반 방울 안 흘리고도 일은 될 것이옵니다.”

“승상, 이번 이 길의 길흉이 어떨까?”

“고주몽님의 유덕에 의지하와 하옵는 일에 길흉을 어찌 가리오리까?

길해도 하옵고 불길해도 결행하여야 하옵지….”

“내게는 자꾸 길한 결과가 있을 것으로만 생각되는구료!”

“단군성조의 옛터를 회복하는 일이오라, 조상님의 영도도우실 것이옵니다.”

이리하여 임금은 승상과 의논하고, 요서땅의 각 수령에, 방백 등 태수들에게 고구려 왕의 이름으로 피를 흘리지 말고 귀순하라는 글을 모두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온 요서의 만성에게 보내는 방을 또한 수백 장 써서 방방곡곡의 큰 길가에 모조리 붙였다.

이것은 큰 효과를 나타내었다. 벌써 고구려를 상국으로 섬기려고 마음먹고 있던 요서의 만성들은, 고구려 왕의 이 글에 모두 흔연히 지금껏 지배자이던 중국 계통의 방백들을 배격하고 모두들쳐 내고, 고구려 왕이 친명하는 지배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중국 천자님의 임명으로 이곳을 지배하던 방백들은, 모두 자기네의 본국인 중국을 배척하고, 새 주인 고구려의 임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양왕은 몸 소 을지 승상을 데리고 새로 돌아붙은 지역을 순시하며, 지방관을 임명하고 민심을 안돈시켜 이 지역을 위무하였다.

예로부터 중국족과 고구려인의 쟁패의 목표로 되어 있던 요서땅은, 이렇듯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고구려로 복귀가 되었다.

그 사이 천여 년간 고구려에서는 단군님의 옛터이니 마땅히 고구려땅이라 주장하고, 중국 측은 사람 사는 곳은 모두 천자의 땅이라 하여, 중국이 종 주권을 가졌노라고 주장하던 요서 천 리의 땅도, 고스란히 고구려로 복귀가 된 것이다.

“이것이 모두 우리 승상 위무의 덕이외다.”

“소신이 무슨 공이 있사오리까? 우리 조상님의 넓은신 헤가림의 덕으로 조상님 땅이 오늘날 복귀가 될 것이옵니다.”

“견(堅ㅡ 隋帝[수제])이가 가만 있을까?”

“수제의 심술로 보아서 가만 안 있으오리다. 반드시 무슨 거조가 있을 것 이라 소신은 생각하옵니다.”

“그러면 어쩌나?”

“우리들의 한 일은 천의를 따라서 한 일이오라, 천의를 거스르는 자는 자멸하는 것이 또한 하늘의 뜻이옵니다.”

“그러나 견이의 뜻을 막다가, 내만성 단 한 명이라도 상하면 그 또한 애석치 않으오?”

“애석하옵지만 또 하늘의 뜻이라면 무가내하한 일이올시다. 뒷일은 모두 소신께 일임해 주시면, 고구려 만성과 그 재물은 할 수 있는껏 다치지 않고 수제를 물리치도록 애써 보오리다.”

“일임하오. 그저 눈감고 뒷일은 승상께 일임합니다.”

“소신 죽기로 애써, 성은에 보답하도록 하오리다.”

“하여 간단군님 옛터, 주몽님부터 대대의 고구려 임금 된 이가 벼르고 벼르던 일을 달성했으니, 나는 그저 흡족하오, 이게 모두 천의겠지?”

“그러하옵니다.”

승상은 커다랗게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이번의 행동으로서 단군님 이래로 천여 년 간을 중국인에게 비워 주었던 옛터는 전부가 고구려로 복귀가 되었다.

이야말로 고구려 일천 년의 숙망이었다. 그리고 고구려 사천만 만성이 한결같이 바라고 그리던 일이었다. 고구려 건국의 목표요, 겸하여 고구려 국 시였다.

이 소식이 국내에 퍼지자, 온 고구려는 경축 기분으로 충일되었다.

가가호호에 모두 경축하는 깃발을 내어 걸고,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기쁩니다라고, 서로 인사를 사괴었다.

고구려 왕은 이번 개선할 때에, 이번의 공로자인 말갈병들을 서울 장안으로 이끌고 왔다. 고구려 처녀들은 지금껏 일종의 야만인으로 알고 있던 말갈병사에게로 흔연히 시집을 갔다. 그들은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는 뜻으로, 제 사 사 사정을 버리고 말갈인에게 출가하여 자기의 충성의 뜻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리하여 고구려 국내에 꽤 많이 들어와 있던 말갈 종족은, 완전히 고구려 만성으로 편입이 된 것이다.

한 임금의 유다른 시책은 종족 분포상으로도 적지 않은 변동을 일으켰다.

이때에 고구려로 편입된 말갈 인종은, 후일 금국(金國)을 세우고 청국을 이룩한 때에도, 옛날 조국 고구려를 남으로 보지 않고 끝끝내 친하게 지냈다.

단군님 이래로 화외의 사람(化外人)이라 하여 도외시하던 말갈인도, 이번의 이 거사로 고구려 내지인과 동등의 지위를 획득하고, 국가 공로자로 고구려에서 거기 적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일은 을지 승상에게 있어서는 적지 않게 불안을 느끼게 하였다.

‘내 세상도 다 갔구나! 하늘이 나를 내시기는, 내 나라 단군님 옛터를 도로 복귀시키려는 큰 사명을 지니었거늘, 단군님 고역이 복귀된 오늘에 있어서는 내 사명의 대부분이 달성된지라, 나는 이제는 세상에 할 일 다 하고 쓸데없는 걸레거니!’ 하는 일종의 쓸쓸한 회포가 일어남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떤날 저녁, 승상은 사랑하는 아내 공주와 자리에 누워 있다가 쓸쓸한 한 숨을 지었다.

“공주, 나도 이제는 죽을 날이 가까왔구료!”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사내 세상에 났다가 할 일 다 했고, 이젠 죽을 일밖에는 남자 않았구료!”

“할 일 다 하시다니요?”

“주몽님 건국 이래의 숙원이었던 고토도 다 복귀시켰고 수, 부, 귀, 다 남자가 인간의 복인데, 내 나이 오십이니 수 부족이 없고, 부귀 또한 고구려 사천만의 으뜸이니 더 바랄 것 없고, 이제 더 살다가 망신스런 일이나 당하면, 내 팔자 스스로 깨뜨리는 일이라 더 살아서 무얼 하겠소?”

“승상님, 장차 견이가 가만 있지 않으리다. 견이가 내침할 때에 견이의 광포스런 칼끝에서 고구려 사천여 만성을 보호하고 건져 낼 큰 역사가 승상님께 남아 있읍니다. 이 역사를 겪기 전에는 승상님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未完[미완])

(太陽新聞[태양신문], 1948.10.1 ~1949.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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