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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만필/이탈리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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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웃옷을 맵시나게 입은 파리의 젊은이들은 가벼운 발길로 초여름의 밤거리를 이리저리 소요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어느 카페를 가보거나 푸른 연기, 붉은 등불 아래에는 청춘 남녀의 웃음소리가 제철이나 만난 듯이 요란스럽게 흘러 나왔습니다.

나직나직한 정화(情話), 외로움을 하소연하는 남자들의 휘파람, 맥주잔이 서로 마주칠 때에 일어나는 아찔아찔하고도 기분좋은 음향……. 웃음과 말소리가 꽉 차 있는 이 카페에는 매일 밤 한 젊은 가희(歌姬)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 소녀의 이국적 용모도 확실히 일종의 매력을 가졌지만 그의 아름다운 노래야말로 깊어가는 밤과 함께 청춘의 피를 타오르게 했던 것입니다.

대체 어디 사는 여자일까?

한 번 이 소녀의 노래를 들은 사람치고 이 같은 의문을 품지 않은 이 없게 되어, 이 종류의 남자들은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서 이 카페의 문 안으로 발길을 급히 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필경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그 소녀의 뒤를 쫓아, 밤을 새워가며 이 카페에서 저 카페로 그림자같이 따르는 카페 순례자의 무리까지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소녀의 본색을 찾아내기 위하여 별별 수단을 다 써보았습니다만,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시원한 대답을 들어본 일은 없었습니다.

“나요? 베니스에서 왔어요. 뱃사공의 딸이구요. 이름이요? 이름도 성도 그런 것은 없어요.”

그 소녀는 언제나 쾌활한 음성으로 이같이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소녀! 뱃사공의 딸!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으레 잔잔한 강상(江上)이나 로맨틱곤돌라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다가 일종의 알지 못할 달콤한 공상조차 그려보곤 했습니다. 남쪽 나라의 한떨기 꽃송이에 그럴 듯이 알맞는 향기와 빛이 그 소녀의 몸을 싸고 도는 듯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던 때에 갑자기 한 큰 변사(變事)가 일어났습니다. 어느 카페에나 없어서는 아니 될 이 소녀의 노랫소리는 고별의 인사 한 마디조차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구슬을 굴리는 듯한 이 소녀의 노래가 들리지 않게 되자 젊은이들의 발그림자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고,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씩씩하던 맥주의 빛까지도 검은 구름이 낀 것 같았습니다.

『카페의 밤』은 마치 부슬비 뿌리는 그믐밤과 같았습니다. 누구든지 서로 만나기가 무섭게 첫인사가 반드시 이탈리아 소녀의 간 곳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계집애가 어떤 신사와 같이 가데…….”

“신사?”

“응, 신사치고도 아주 훌륭한 신사야. 그다지 젊지도 않데만, 또 그리 늙어뵈지도 않아.”

소문은 소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참 사실을 아는 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이탈리아 소녀는 어찌 되었노?…….”

남몰래 은근히 나오는 한숨과 함께 이 같은 의문이 몇백 몇천 번 되풀이되는 동안에 두서너 달의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모처럼 진정되어가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갑자기 다시 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카페란 카페의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있는 넋을 잃은 젊은이들의 입에서는 벼락이 떨어지듯이 아우성 소리와 기쁨의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페라 • 부파로 가자!”

“오페라 • 부파로!”

바람결에 불려서 몰려드는 모기떼와 같이, 이 “오페라 • 부파로!”란 부르짖음은 이 카페에서 저 카페로 때를 옮기지 않고 쭉 퍼져버렸습니다.

“오페라 • 부파”라고 하면 그 당시 —18세기 말— 전성의 절정에 있던 파리의 대가극장이었습니다. 첫여름 카페로부터 갑자기 모습을 감추자, 천만 사람이 모두 아까워하고 그리워하던 문제의 이탈리아 소녀가 돌연히 이 큰 극장의 무대 위에 나타나게 되었으니, 이 경이의 새 사실이 젊은이들의 뛰는 가슴을 어찌 사로잡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환호, 갈채, 열광. 전부터 이 소녀를 알던 사람은 다시 두말 할 것도 없거니와, 지금 처음으로 이 소녀의 노래를 듣게 된 사람치고도 어느 누가 놀라지 않는 이 없었고 칭찬하지 않는 이 없었습니다.

어제까지도 다만 이탈리아 소녀로, 또는 뱃사공의 딸로 알았던 이국의 표랑가녀(漂浪歌女)가 오늘에는 일약(一躍)하여 파리의 프리마 돈나가 된 것입니다.

그 여자가 카페로부터 몸을 숨기던 그날 밤의 일입니다. 그 소녀는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한 신사에게 붙잡힌 바 되었습니다. 그 신사야말로 오페라 • 부파의 지배인으로, 이 소녀의 희세(稀世)의 미성(美聲)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즉석에 극장으로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표랑의 소녀에서 파리의 프리마 돈나로 일약한 행운의 이탈리아 소녀! 그의 이름은 「반티 지오르기」 였습니다.


  • 「반티 지오르기」(Brigida Banti Giorgi)는 1759년에 롬바르디의 크레마란 곳에서 탄생하여, 1806년에 볼로나에서 죽은 가극 가수.
  • 프리마 돈나는 가극의 주역을 맡은 화형(花形) 여가수라는 뜻.
  • 오페라 • 부파는 불란서어로 희가극 명칭의 일종인데, 그 당시 파리에 있던 한 가극장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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