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변삼각형의 경우

사람이 평생에 몇 번이나 로맨스를 겪는지 만인의 경우를 알 바 없으나 비록 돈 환이 아니라도 로맨스 ─ 적어도 로맨스다운 것은 누구나 일생에 무수히 경험하리라고 생각한다.

철모르는 보통학교 시절에 같은 급 소녀와 단짝으로 몰려 동무들에게 놀리우던 기억 ─ 이것을 로맨스라고 부르긴 너무도 어리다고 하면, 자란 후 앞집 각시와 마을 뒤편 헛간에서 만나 황급하게 입술을 서로 스치던 이야기, 이것은 확실히 한 장의 로맨스일 것이며, 청년회 발기의 소인연극을 한다고 뒤끓는 판에 보통학교 교실 한구석에서 교장의 딸과 은근히 몸을 맞대이게까지 된 곡절 ─ 이것도 로맨스의 한 구절일 것이다. 이 정도의 것은 희미한 기억 속을 공들여 들치면 얼마든지(?) 나온다. 그러나 ‘피서지의’ 라는 제한이 있는 까닭에 여기서는 다음의 이야기쯤을 적을 수밖에 없다.

로맨스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서글픈 것일는지 모르나, 계절은 같은 계절의 기억을 부르는 탓인지 과제를 받고 문득 다음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사년 전의 이맘때 ─ 첫 여름이었다.

미흡하고 어리석은 일신상의 실책으로 인하여 주위로부터의 오해 험구 욕설을 받아 우울의 절정에 있을 때였다. 답답한 심사를 견딜 수 없어 쇠약한 건강도 회복할 겸 한약을 한 제 이어가지고 혼자 주을온천(朱乙溫泉)을 찾았다. 물론 그 길이 스스로 피서차도 되었던 것이다.

지금에는 조선 여관도 많이 섰으나 당시에는 거의 일본 여관뿐이었다. 온천에서도 으뜸가는 S각에 들게 된 것이 인연의 시초였다. 이것은 후에 들은 말이나, S각에는 주로 중앙에서 오는 소위 고관줄이 든다고 한다. 여관의 여급이 둘이나 다 손쉽게 내 차지가 된 것은 당시에 다행히 그런줄의 인물이 유숙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한 가지의 이유라면 이유일까. 이웃방에는 연대에는 온 군인이 몇 사람 들었고, 딴채에는 상인인지 실업가인지 한 중년의 사나이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키가 크고 살결이 희끔하고 허벅진 편이 ‘쓰야꼬’였다. ‘하루꼬’는 그와 반대로 얼굴이 작고 눈이 움푹 빠지고 새침한 여자였다. 나의 방을 맡은 이가 쓰야꼬임을 나는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하루꼬의 용모가 훨씬 나의 흥미를 끌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슬퍼할 것은 없었다.

그날 밤이 되기 전에 벌써 하루꼬는 나와 친밀해져서 내 방에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친밀하게 된 동기라고 할까 ─ 이야기가 조금 부정한듯하나 ─ 변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온천에 갈 때마다의 버릇으로 나는 소변소 출입이 잦았다. 그때마다 공교롭게 측간에는 하루꼬가 들어있거나, 혹은 들어오는 그와 마주치거나 하였다. 삼사차나 그러므로 나는 그 이유를 직각하고 마침 측간에서 나오는 그를 괴덕스럽게 가로막고, “이렇게 자주 드나들 젠 아마 그것인 게로군”하고 웃었다. 하루꼬는 얼굴을 붉히고 그러나 깔깔 웃으며 꾀바르게 나의 겨드랑 밑을 빠져 달아났다. 그날 밤이 되기 전에 그는 나의 방에 찾아왔다.

처음부터 하루꼬와의 관계만이 진전되어야 할 것을 이 역 처음부터 호의를 보이는 쓰야꼬가 쐐기같이 진덕스럽게 하루꼬와 나와의 사이를 틀고 들어왔다. 귀찮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냄새 진한 탕약도 두 사람이 번차례로 공들여 달여다 주었다. 물론 그 귀찮은 시중은 날마다의 비싼 숙박료가 시키는 것이었겠지만, 그러나 두 사람의 태도에는 정성스러운 것이 있었다.

쓰야꼬가 없을 때에는 하루꼬가 내 곁에 있었고, 하루꼬가 없을 때에는 쓰야꼬가 있었고, 때로는 두 사람이 한꺼번에 습격하여 왔다.

쓰야꼬 혼자일 때에는 그는 나에게 몸을 너무도 가까이 하고 숨결을 나의 얼굴에 끼얹었다. 어떤 때에는 허벅진 몸을 뒤틀면서 사춘기의 짐승과도 같이 노골적이었다. 그리고 주인 노파가 눈치를 채고 그를 불러가기 전에는 어느 때까지든지 나의 방을 나가지 않았다.

그의 태도가 진하면 진할수록 나의 흥은 엷어지고 마음은 도리어 하루꼬를 구하였다. 그러나 하루꼬와의 정서는 서로 은근할 뿐이었지 쓰야꼬의 눈치 밑에서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결국 십여 일을 유숙하고 있는 동안에 쓰야꼬의 쐐기 때문에 세 사람의 관계는 세 귀를 실로 팽팽하게 얽은 것과도 같이 움직이지도 아니하고 발전도 없는 균등하게 긴장된 것이었다.

이등변삼각형의 절정에 있는 나는 한편 실을 버티고 한편 실을 늦출 수는 없었다. 단정한 삼각형이 이지러지면 좋지 못한 결과를 일으킬까를 생각하였었다. 나는 나의 감정과 이지를 주장하여서는 안되었다. 그러므로 모처럼의 두 개의 능금을 앞에 놓고도 정지된 연애풍경이었다.

두 사람의 고향 이야기 일신상 형편 이야기를 들은 후이니까 아마 이튿날인가 보았다. 밤늦게 내가 이미 잠자리에 누운 후에 두 사람은 일제히 달려들었다. 쓰야꼬의 제의로였던지 두 사람은 한꺼번에 나의 이불 속으로 들어 와 한쪽에 한 사람씩 양편에 누워 버렸다. 하루꼬는 생리적 변화의 탓으론지 고요하고 점잖았으나 쓰야고는 말괄량이같이 껑충대면서 장난쳤다. 벗은 몸을 간지르며 문지르며 어린아이 모양으로 가댁질을 쳤다. 그러나 나는 똑바로 천장을 향한 채 어느 편으로 돌아누웠으면 좋을지를 몰랐다. 노파가 두 사람을 불러갈 때까지 나는 두 손을 한 사람에게 한편씩 준 채 부처님 같은 고집으로 똑바로 누워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한번은 목욕탕에 갈 때에 하루꼬가 수건을 들고 층층대로 된 복도를 따라 내려왔다. 옷 벗는 데까지 따라 들어온 그는 같은 목욕탕에 들어가서 나의 등을 밀어주기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는 쓰야꼬의 눈치도 눈치나 여윈 나의 전신을 보이기를 꺼린 까닭도 있기는 있었지만 이러한 소극적 태도가 하기는 안전하기는 하였다. 나의 건강에도 안전하였고 두 여자의 정의에도 안전하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두 여자의 서로 경계하는 듯한 게염스러운 눈은 나에게 똑똑히 알렸다.

며칠이나 지났던지 그날은 마을의 운동회라고 아침부터 여관이 떠들썩하였다. 쓰야꼬는 새옷을 갈아입고 기뻐하면서 경주에 상을 많이 타올 것을 언명하였다. 운동회는 시냇물 건너 언덕 뒤 솔밭 속에서 거행되었다. 나도 낮쯤해서 구경차로 시냇물의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오목한 솔밭에는 마을 사람이 남녀노소 백여 명이나 모였을까.

닫기 싫은 하루꼬는 나와 같이 풀 위에 앉아 운동회를 바라보았다. 쓰야꼬는 번번이 일등상을 탔다. 그는 여관방에서 내가 권하는 맥주를 사양하지 아니하고 들이키듯이 씨근씨근하고 남을 밀치고도 돌아보는 법 없이 잘 달렸다. 보고만 앉았기도 멋쩍은지 운동회가 반쯤 진행하였을 때에 벌써 하루꼬는 일어나서 나의 손을 끌었다. 우리는 쓰야꼬를 남겨둔 채 돌밭을 거쳐 마을로 건너왔다. 그러나 여관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기분을 가다듬었을 때에는 어느 틈엔지 쓰야꼬도 씨근거리며 쫓아와서 두 사람 틈에 끼었던 것이다. 수건 화장품 등속의 타온 상품을 자랑하면서 둔한 척하면서도 약빠른 눈치로 하루꼬와 나를 관찰하였다. 세 사람의 사이는 심히도 열없고 겸연쩍은 것이었다.

신문과 잡지에도 싫증이 난 나는 하루는 날이 흐린 것도 돌보지 아니하고 조금 먼 산보를 나섰다. 하루꼬와 쓰야꼬도 물론 동행을 자청하였다. 일신에 모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귀찮기는 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승낙하고 세 사람은 마을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아 깊은 골속으로 골속으로 들어갔다.

담담한 심경으로 자연 풍경을 관상하려던 나의 마음은 다시 인간관계로 돌아와서 앞서락뒤서락 하는 두 여자의 태도와 마음속을 관찰하고 살폈다. 양코스키의 별장지대를 지날 때에 밭 가운데에서 일하던 로서아 청년이 흘금흘금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지대를 훨씬 지나 산비알이 높게 솟은 험한 낭떠러지 밑을 걸어 그윽한 산 모양과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거의 십리 가량이나 산속으로 들어갔을 때에 흐린 하늘은 기어코 비를 뿌리기 시작하였다. 시남하게 솔솔 내리는 비는 도저히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세 사람은 길을 돌려 뛰어내려오다가 언덕 위 조그만 초가 처마밑에 들어서 비삠을 하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은 멀고 ─ 별안간 비가 오고 ─ 마음에 없지 않은 여자가 있고 ─ 으슥한 초가조차 있는데 ─ 소설적 조건은 온전히 구비되어 있으나 나열된 소재 그뿐이지 관계는 그 이상 더 발전할 수 없었다. ─ 사람이 셋인 것이다. 이때에도 역시 나는 이등변삼각형의 꼭대기에서 두 여자를 점잖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정지된 연애풍경이었다.

나의 욕망이 그다지 날카롭지 않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내가 온천을 떠날 때까지 십여 일의 여유가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미적지근한 관계 그뿐이었다. 온천에 묵는 마지막 날에 하루꼬는 세 사람이 사진을 같이 박기를 원하였으나 마을에는 마침 사진사가 없었던 까닭에 하는 수 없이 서울 가서 나의 독사진을 부쳐 달라는 그들의 간청을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물론 두 사람에게 똑같이 사진과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시침 떼고 아무에게도 보내지는 않았으나.

떠나는 날 그때는 새 손님이 들어 여관이 바쁠 때면서도 두 사람은 이십 리나 되는 정거장까지 나를 전송하기를 자청하였다. 마침 수중의 경제가 없는 관계로 두 사람에게 보낸 십여 일 간의 사례도 엷음을 미안히 여겨 나는 그들의 청을 굳게 사절하였으나 자동차 속에 앉았을 때에는 어느 틈엔지 몰래 차표를 사가지고 양편 곁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끝가지 변함없이 나에게 보여 주는 그들의 진한 애정을 너무도 고맙게 여겨 나는 여러 번 감사의 말을 주었다.

공교롭게 자동차 안에는 우리 세 사람뿐이었다. 일렬로 뽀듯이 앉은 나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보내는 균등한 애정의 표현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육체의 접촉면을 넓게 하여 필요 이상으로 몸을 흔들고 문지르고 거들거들 이야기하고 뒤슬뒤슬 웃고 하였다. 움직이는 풍경이며 상쾌한 바람이며 심히도 유쾌한 드라이브였다.

주을역 플랫폼에 우줄우줄하고 걷는 많은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만 쏠렸다.

이런 경우의 행운아는 좀 거북스러운 것 같다. 나는 열적어서 두 사람과 정답게 이야기하기보다도 도리어 항구로 나가는 양코스키의 일족인 듯한 로서아 미인의 초초한 자태를 바라보는 것이 더 흥미 있는 일이었다.

내 탄 차가 떠날 때에 두 여자는 이별의 눈물을 흘렸는지 어쨌지는 차창으로 확실히 알 수는 없었으나 그러나 차가 멀어질 때까지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선 것은 저무는 공기 속에 희끔히 보였다.

이러한 이등변삼각형의 경우를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나로서는 그렇게 밖에는 처리할 수 없었다. 그런고로 이 종류의 로맨스는 나의 즐기는 바가 아니다. 될 수 있다면 단 한 사람과 진득하고 면면한 로맨스를 가지고 싶다. 이런 로맨스도 앞으로 차차 경험하게 되겠지. 병상에서 금방 일어난 지금의 나의 원은 속히 건강이 왕성해져야 할 것, 좋은 글 많이 써야 할 것, 또 한가지 사치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지가지의 로맨스를 많이 많이 가져야 할 것 ─ 이 세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