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제100차 라디오 인터넷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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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제100차 라디오 인터넷 연설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제100차 특집 '희망국민과의 대화'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사회자(KBS 아나운서 조수빈) 라디오·인터넷 연설 100회 ‘희망국민과의 대화’. 안녕하세요. KBS 아나운서 조수빈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라디오·인터넷 연설이 오늘로 벌써 100회를 맞았습니다. 100번째 시간인 만큼 좀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 봤는데 가운데 계셔야 할 대통령께서 오늘은 시민 사이에 앉아 계시네요.


대통령 오늘은 국민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사이에 끼어 앉았습니다.


사회자 그렇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바로 국민인데요, 그래서 그동안 연설에서 이야기되었던 ‘희망국민’ 여러분을 이 자리에 함께 모셨습니다.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새소리도 들리고 감나무의 감이 빨갛게 익어 가고 있습니다. 정말 결실의 계절 가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 라디오・인터넷 연설도 오늘로 결실을 맞은 셈입니다.


지난 2008년 10월 13일 첫 번째 연설 주제가 ‘우리 앞에는 미래와 희망이 있다!’였는데 벌써 100번째를 맞았으니까 이 가을에 정말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게 아닌가 싶네요. 거기서 매우 많은 국민을 언급하셨는데 오늘 딱 보시니까 ‘아 누구다’ 하고 기억이 나시나요?


대통령 거의 알죠. 여기는 광주마이스터고등학교에서 왔고, 여기는 체육대학에서 왔고, 또 구리에서 오신 분도 계시고.


사회자 여기 모신 분들이야말로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희망의 아이콘, 희망의 상징이 아닌가 싶은데, 라디오·인터넷 연설의 진정한 주인공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100번째 연설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우리 대통령님의 짤막한 소감을 먼저 듣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처음 시작한 때가 금융위기를 맞이한 바로 그 2008년 10월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주에 한 번씩 하면서 벌써 100회가 되었는데, 그동안 많은 곳의 많은 분을 만났습니다. 사실은 위기를 두 번씩 맞이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분이 참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을 한 분 한 분, 많은 분을 만나면서 그 역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성공하시는 분들도 봤습니다. 그런 분들을 이번에 한번 초대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말씀을 해 주시면, 여러분은 스스로가 어려움을 극복했지만, 여러분의 이야기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포기하고 싶은 사람, 심지어 ‘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할 것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해서 여러분을 초대했습니다.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사회자 여러분, 박수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감사합니다.


사회자 라디오·인터넷 연설이 100회를 맞는 동안 정말 다양한 주제가 있었습니다. 서민경제 이야기도 있었고,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의 성공담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대통령께서는 그 100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한 가지만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대통령 그동안 좋은 일도 있었고, 참 어려운 일도 있었으며,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천안함 사태가 나서 우리 수병 46명이 안타깝게 생명을 잃어버린 일입니다. 제가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할 때 한 분 한 분 46명의 수병 이름을 부르는데 차마 못 부르겠더라고요. 그걸 지금도 잊지 못하지만, 아마 제가 일생 살아가면서, 아무 죄 없이 죽은 그들의 희생은 결코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저도 뉴스를 진행하면서 천안함 사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라디오·인터넷 연설에는 이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었고, 물론 기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 국민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라디오・인터넷 연설 100회를 맞이하는 동안의 기록을 영상으로 한번 모아 봤습니다. 먼저 함께 보시죠.


(영상물 시청 : ‘소통의 첫걸음’)


사회자 네,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군요. 대통령님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 계신,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희망국민’ 여러분도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듯한 그런 표정입니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님의 라디오・인터넷 연설은 100회를 맞아서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연의 주인공이 되었던 희망국민과 함께하고 있는데, 먼저 첫 번째 희망국민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어린 친구네요.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김신승 군(광주마이스터고등학교 3학년) 안녕하세요. 광주마이스터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신승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자리에 초청해 주셔서 긴장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저를 알아봐 주시니까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대통령께서는 젊은 친구들, 특히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에 관심이 굉장히 많으신데, 지난 3일에 방송된 KBS 프로그램 <스카우트>에 직접 출연하셔서 우리 마이스터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시간도 마련했었지요. 특히 “고졸 취업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은 77회 연설의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수혜자이기도 한 김신승 군, 마이스터고등학교 다니니까 어떤 점이 가장 좋아요?


김신승 군 제가 지금 마이스터고에 3년째 다니고 있는데, 처음에 마이스터고를 접하게 된 게 저희 어머니께서 신문에서 마이스터고가 개교한다니 가보지 않겠느냐 이러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1기이다 보니까 알려진 것도 없고, 또 전문계 고교라는 좋지 않은 편견도 있었고, 대학 생활도 즐기고 싶었는데, 그래도 요즘은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힘든 시기잖아요. 그래서 마이스터고에 가서 나만의 기술을 익혀서 남들보다 일찍 사회에 자리 잡아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입학했는데 벌써 졸업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아 많이 아쉽네요. 처음에 학교 들어왔을 땐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있었는데…….


사회자 두려웠죠?


김신승 군 네, 솔직히 학교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서 두려웠는데 정부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니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지요. 또 고졸 취업자를 더 밀어 주시기 때문에 많은 친구가 좋은 회사에 갈 수도 있었고, 정말 좋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어떻게 보면 뒤에 든든한 ‘백’이 있는 듯한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김 군은 정말 솜털이 보송보송한 친구인데 벌써 취직이 결정되었다고 들었어요. 자랑 좀 해 보세요.


김신승 군 1학년 겨울방학 때 벌써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에 합격을 한 상태고, 방학 때마다 총 세 번에 걸쳐서 회사에 가서 입사 전에 필요한 것을 배웠어요. 엄청 좋은 회사다 보니까 친척들도 좋아하시고,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시고, 그리고 대학생인 형 등록금도 제가 돕고 있어요.


사회자 정말요?


김신승 군 부모님의 부담도 많이 덜어 드리고, 친구들도 많이 부러워합니다.


사회자 정말 말로만 듣던 엄친아가 이 자리에 나왔는데 여러분 박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은 김 군이 말하는 것 들으시면서 꼭 손자 이야기처럼 뿌듯하실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대통령 내게 이만한 손자는 사실 없어요. 어떻게 하면 고등학교에서 1인 1기를 배워 나오면 대학 졸업한 사람 못지않게 일생 동안 안전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독일 같은 나라가 이런 걸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했는데 우리는 부모님들이 내 아이를 대학 못 보내고 고등학교만 보낸다, 이런 데 대해서 많이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김 군은 아마 1기로 들어갔죠?


김신승 군 네.


대통령 내가 지난번 이 학교를 방문했어요. 그때 많은 학생 중에 우연히 이 학생에게 어떤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남들이 친구들은 다 대학 간다고 말해 기가 죽어 있었는데 자기가 대한민국 최고의 직장에 졸업도 하기 전에 미리 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대학 가겠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이 아주 부러워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부모님도 내 아이를 이런 실업계 고등학교를, 특성화고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기가 죽을 것 없이 당당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선취업 후진학’, 그러니까 이렇게 취업해서 몇 년 일하고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학은 특별히 정원 외로 학생을 뽑아서 편의상 야간에도 수업해 주고 토요일에도 수업해 주면 졸업할 때는 똑같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취업으로 인해 공부를 더 하고 싶은 게 중지되는 것은 아니고 먼저 취업하고 난 다음 진학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특성화고를, 특히 마이스터고를 택한 사람은 굉장한 희망과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1기생 김 군을 초대한 것입니다.


사회자 이번에는 두 번째 희망국민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하시는데 열심히 살고 계신 분입니다. 박선자 씨, 안녕하세요! 박선자 씨가 지금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데, 사실은 평범한 가정이던 것이 갑자기 불행이 닥치면서 어려워지셨죠?


박선자 씨(기초생활수급자) 저는 14년 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서 이제는 가장이자 엄마이거든요. 7년 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을 두 번의 사기로, 4억~5억 원을 잃다 보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가 그 당시 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사회자 눈물이 그렁그렁하네요.


박선자 씨 아이들 때문에 제가…….


사회자 아이고, 괜찮습니다.


대통령 지금은 형편이 괜찮으니까 안 우셔도 되잖아요.


사회자 옛날 생각하시니까, 눈물이 나오는가 봅니다.


박선자 씨 아까보다 더 눈물이 나네요. 이상하게.


사회자 아이가 3명이죠?


박선자 씨 네, 그 당시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그런데 1학년 애가 “엄마,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죽지 말고 같이 살자.”고 하는 거예요.


사회자 정부에서 어떤 도움의 손길을 주진 않았나요?


박선자 씨 그 당시 제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을 알아서 수급자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던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그 기간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없으니까 복지관에서 쌀을 갖다가 애들 밥을 해 줬어요. 복지관 팀장님한테 며칠 지나서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도움을 주셨어요. 그때 막내가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래도 애가 3명이라서 지금까지 애들 때문에 이렇게 버텨 왔어요.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요양보호사 제도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만드셔서 4년 전에 국가고시자격증을 획득하도록 해 일자리 창출이라든지 그런 것을 해결한 거예요. 저부터도 가정주부다 보니까 노인요양 일하기도 좋고 가사, 간병이라든지 그런 게 하기가 손쉽더라고요.


사회자 지금 거처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박선자 씨 제가 1년 전에 거처가 너무 문제가 되어서, 남양주시에는 희망케어라는 것이 있는데 그곳에서 집을 해결해 주었어요. 나머지는 제가 알바도 하고 해서 부족한 부분을 많이 충당하고 있어요.


애가 3명이다 보니까 솔직히 기초생활수급비는 너무 적더라고요. 건강한 편이라서 일을 많이 해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저는 말씀을 들으면서, 불행한 상황이었지만,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야기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대통령 제가 남양주를 갔었는데, 그때 이분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지요. 이야기한 그대로입니다. 어쩌면 그 막내 아이가 아니었으면 정말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처지에 놓인 분들이 아마 여러 곳에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심지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어느 곳에 사시든지, 정말 이분같이 어려워서 힘들면 주민센터를 찾아가든지 구청을 찾아가든지, 시를 찾아가든지 하시면 복지와 관련된 기구가 많습니다. 무조건 찾아가시면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분은 다행히 일을 하고 계시고, 주택 문제도 해결하고, 그래도 빠듯하니까 아마 지금 노력을 많이 하고 계실 겁니다. 지금 보니까 웃기도 하시네요. 그러니까 마음에 여유도 조금 생기신 것 같은데, 같은 처지에 있으신 분들도 오늘 이야기 들으면서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박선자 씨 사연도 물론 정말 인간 승리 이야기입니다만 여기 또 대단한 분이 한 분 계세요. 황대로 씨, 안녕하세요! 보기에는 정말 말끔하신데 한때는 노숙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황대로 씨(전 노숙자, 직장인) 저희 나이 때에는 실업자가 많잖아요. 저도 그중에 하나였는데 운이 안 좋아서 취직이 안되다 보니까 저 자신도 모르게 노숙생활을 하게 되었거든요. 흔히 지나가다가 ‘저 사람들 왜 저렇게 생활하고 있을까’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저한테 현실로 다가오니까 죽고 싶기도 하고, 죽으려고 하면 집 생각도 나고 그러다 보니까 집이랑 연락도 끊고, 그렇게 되었죠.


사회자 그런데 저희가 알기로 한 번 노숙자가 되면 그 굴레를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하던데, 변화의 계기가 있었습니까?


황대로 씨 생활하다 보면 그 무리끼리 어울려야 해요. 안 어울리면 맞기도 하고 그러지요. 그 와중에 노숙인 쉼터라는 데에서 추천한 프로그램이 정부에서 하는 취업 패키지 성공 프로그램이었어요. 그걸 추천하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정부에서 하는 데 믿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믿어보자고 해서 참석한 게 계기가 되어 지금은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사회자 밑져야 본전 정도가 아니네요. 지금 다니는 회사는 어떤 곳인가요?


황대로 씨 인천 남동구에 있는 안테나 만드는 회사입니다. 월급도 어느 정도 부족하지 않게 받아 일부는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가끔 친척들 만나고 동생들한테 용돈도 주고 있습니다.


사회자 지금도 참 많은 분이 노숙생활을 하고 계세요. 어려움을 잘 이겨 낸 분으로서 조언을 하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황대로 씨 일반 사람들은 노숙생활을 불편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거든요. 너무 편하고 남의 시선을 못 느껴요. 그걸 떨쳐 버리고 한번 해 보겠다는 도전 정신으로 두드리면 될 것 같아요. 특히 주변 사람이나 아는 사람한테 도움을 청하는 것보다 지금 정부에서 하는 희망패키지 같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많으니 거기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고 시도해 보면 저와 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자 박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황대로 씨도 말씀하셨지만 정부에서 뭘 해 준다고 해도 ‘이것 정말 되겠어’ 이렇게 불신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 긍정적으로 생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숙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뭔가 알아보고 ‘내가 일어서야겠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면 길은 여러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노숙자 출신이신 분은 제가 노동부 업무보고를 받은 다음에 조금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바로 제 옆에 앉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숙생활을 하다가 노동부 산하에 있는 희망패키지에 들어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 정부에는 노숙자나 노숙자가 아니더라도 기술을 배워서 일자리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훈련하거나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이 많습니다. 노동부 산하에도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곳도 있고, 지식경제부가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군데 있기 때문에 그런 곳을 찾아가면 비용을 오히려 받으면서 교육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분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의 기술을 가졌고, 그것으로 회사생활을 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성공 사례를 평범하게 말했지만 굉장한 성공 사례입니다. 시간 나면 노숙자를 찾아가서 안내를 해서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분은 ‘한번 해 보자.’고 마음먹어 성공했기 때문에 선배 노숙자로서 이야기하면 아마 믿을 거예요.


사회자 약속하실 수 있죠?


황대로 씨 네. 쉬는 날 한번 나가서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대통령 그렇게 해 주세요.


사회자 이번에는 젊은 여성분을 만나 보겠습니다. 이아영 씨 안녕하세요?


이아영 씨(불법사금융 피해자, 대학생) 안녕하세요?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생 이아영입니다.


사회자 이아영 씨는 촉망받는 운동선수고 평범한 여대생이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불법사금융의 피해자가 되셨는지 사연부터 좀 들어야겠어요.


이아영 씨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역도를 시작했습니다. 역도를 해서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많이 했고, 한국체육대학교에 진학을 했죠. 저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러는 동안 집안에 많은 위기가 있었던 거예요. 저는 운동하니까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고, 집에서는 이런 어려운 일을 혼자 떨어져 있는 저에게 알리지 않아서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제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부모님께서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사회자 어른이 되었으니까.


이아영 씨 그동안 떨어져 있다 보니까 서로가 걱정 끼치기 싫어서 저도 아프면 부모님께 숨겼고 부모님도 아파도 말해 주지 않고 그러셨어요. 그러던 중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어요. 돈을 버시는 아버지가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지요. 저희 형제가 4명이에요, 큰언니, 둘째 언니, 저 그리고 남동생. 여섯 식구가 살려면…….


사회자 돈이 오죽 드는 게 아니죠.


이아영 씨 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가정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지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가 당뇨병이 생겨 눈 수술까지 받으셨어요. 저는 그걸 나중에 알게 되어서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런데 졸지에 사금융 대출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사회자 얼마를 받으셨어요?


이아영 씨 500만 원을 대출받았는데, 사실 말하기가 부끄러워요. 왜냐하면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500만 원이 가벼운 금액일 수 있지만 저에겐 큰돈이었거든요. 그리고 성인이 갓 된 나이였고, 일반 금융권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금융권에서 대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이자가 얼마 붙던가요, 500만 원에?


이아영 씨 40% 이상이었어요. 은행권이 아니다 보니까 이자도 높은데, 더 괴로웠던 것은 사금융권에서 독촉전화를 하는 것이었어요.


사회자 운동도 해야 하는데…….


이아영 씨 올림픽 때 보셔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운동선수들은 운동과 더불어서 휴식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휴식시간이며 자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전화가 정말 많이 와요.


사회자 무섭나요, 많이?


이아영 씨 네. 무서워요. 단계가 있거든요. 처음엔 공손하게 먼저 통지를 하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목소리가 좀 더 거친 사람이 전화를 해요. 그런데 그냥 거친 목소리로만 말하는 게 아니라 심적으로 많이 힘들 정도로 해요. 어린 나이인 제가 “돈이 있는데 안 드리는 것도 아니잖아요.”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추심을 받는 것조차 제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아서 나중에 아시고 어머니가 미안해하시더라고요. 사실 지금 여기 나와 있는 것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집이 너 때문에 힘들어진 게 아닌데, 네가 집이 가난하다는 게 뭐가 자랑이라고 나가느냐. 엄마가 부모를 잘못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그랬어요. “난 부모 잘 만났어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요.”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제가 오히려 더 죄송해요. 제가 더 빨리 더 잘해서 효도해 드리고 싶은데 아직까지 그럴 능력이 안되니까 죄송하지요.


그래도 제가 이렇게 힘내서 살 수 있는 건 그런 일을 계기로 부모 자식 사이에 끈끈한 정이 생겨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사회자 우리 이아영 씨는 다행스럽게도 잘 이겨 내셨지만 뉴스를 보면 많은 사람이 불법사금융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하고, 정말 끔찍한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런 불법사금융을 뿌리 뽑을 수는 없습니까? 정말.


대통령 사실은 정부가 올해 4월부터 불법사금융 피해 일제신고를 실시해 금융감독원・은행 관계 사람들・검찰・경찰・총리실 할 것 없이 종합해서 어디든 사채 신고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불안하고 겁이 나서 신고를 못한 분이 많아요. 혹시나 보복을 당하면 어떡하나 하고.


사회자 해코지 당할까 봐서요.


대통령 네. 그래서 하지 못하는데, 비밀리에 전부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2만 건 이상이 들어왔고, 지금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이분의 경우에도 정상적인 금융으로 바꾸어 줬기 때문에 이자가 정상으로 내려가서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었죠.


지금 사금융은 40%에서 심지어 100% 이자도 있습니다. 평생 갚아도 이자조차 못 다 갚는 거예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저도 개별적으로 피해자를 만나 보면 차마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단속할 것입니다.


오늘 이 방송 들으시는 분 중에서 나도 사채를 쓰고 있는데 불안해서 신고를 못했다 하는 분이 있으면 두려움을 갖지 마시고, 신고센터에 신고하십시오. 인터넷에 들어가 보시면 비밀리에 신고할 수도 있고, 아니면 연락만 하시면 관계자가 찾아가서 조용하게 법적으로 전부 처리해 드립니다. 안전합니다. 정부가 완전히 안전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받으면서 사채금융 쓰시는 분들이 신고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회자 이아영 씨 같은 경우는 정부에서 해 주는 바꿔드림론 혜택을 받으셨죠? 그래서 빚도 다 청산하고 지금 장밋빛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아영 씨 어머니가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하는 바꿔드림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저더러 한번 가보라 해서 본사까지 쫓아갔어요. 갔더니 정말 친절하게 잘해 줬어요. 제가 어린 나이라 금융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이자가 몇 %인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설명을 다 해 주시더라고요. 설명해 주는 대로 따라 했더니 사금융권에서 빌렸던 돈을 다 대신 갚아 주고, 제가 저금리 이자로 갚을 수 있도록 변경을 해 줬어요.


그래서 이로 인해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아 나가다 보니까 원금이 금방 줄어드는 게 보이면서 좋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덕분에 6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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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이번에 만나 볼 분은 지금 가을 날씨처럼 참 아름다운 분입니다. 이분이 고향이 가장 멀리 있는 분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바로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시집오신 분입니다. 맘포트라 스메이 씨! 안녕하세요! 아직 한국말이 익숙지 않아 밤새 연습하셨다고 들었는데 ‘한국에서 만든 희망 이야기’ 들려주세요.


맘포트라 스메이 씨(결혼이주자) 안녕하세요! 저는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맘포트라 스메이입니다. 제가 한국말을 요새는 곧잘 하는데, 방송에 나간다니까 너무 떨려서 어젯밤에 조금 써 왔습니다. 보고 읽어도 될까요?


대통령 네. 그렇게 하세요.


맘포트라 스메이 씨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고, 한국 국적도 취득했습니다. 한국 생활 적응을 위해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았고, 시부모님께서 한국문화를 많이 알려 주셔서 한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건강가정진흥원 1577-5432 다누리콜센터에서 캄보디아 상담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누리콜센터는 다문화가정을 위해서 생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곳입니다. 저와 같은 다문화가정을 위해 일하는 것이 정말 보람이 있습니다. 저는 딸아이가 몇 년 있으면 초등학교에 들어갑니다. 엄마가 결혼이주자라서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에 좋은 인식을 갖도록 인식개선 교육을 많이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사실 이런 다문화가정 엄마 입장에서는 자녀가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가장 걱정이 많이 되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 정부에서 그런 부분을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해 배려를 하려고 굉장히 노력합니다. 어머니께서도 다른 이에게 안내하는 좋은 일을 하고 계시니까 가끔 학교 선생님 만나셔서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하는지 등에 대해 상담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집에 와서 이야기를 못할 수도 있거든요. 선생님을 만나서 우리 아이가 잘하고 있는지도 가끔 물어보세요. 정부에서도 교육과학기술부가 그 점에 대해서 굉장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회자 정부정책도 중요하지만 사실 우리 국민 스스로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겠지요.


대통령 국민도 잘해야지요.


사회자 네. 차이가 있다고 해서 차별이 되면 안되니까 이런 부분이 많이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신 분입니다.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세균 선수 안녕하세요! 사실 우리 박세균 선수는 태어날 때는 비장애인이었는데 교통사고로 갑자기 장애인이 되셨어요. 처음에 그 충격이 어마어마했죠?


박세균 씨(장애인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제가 1989년 고등학교 다닐 때에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길이 캄캄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운동을 하게 되어서 지금은 좋아졌지만 그때는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는 자체도 그렇고, 세상에서 일반인이 장애인을 보는 시선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거든요. 그런 것들이 너무 힘들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좀 힘들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많이 하고 자랐어요.


사회자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박세균 씨 제가 재활차 병원에 갔다가 휠체어 농구팀이 운동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 저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시작한 게 휠체어 농구입니다.


정말 열심히 해서 시드니올림픽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운동이 힘들고 하다 보니까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다른 종목을 찾아보던 찰나에 장애인 사격이라는 종목이 있어서 전환했죠.


사회자 그때 정부에서 도움을 좀 받으셨습니까?


박세균 씨 제가 사격을 시작할 때 정부에 실업팀 창단 지원 정책이 있었어요. 청주시청에서 장애인 실업팀을 창단하면서 제가 거기에 입단하게 되었죠. 덕분에 생활고나 훈련비나 이런 부담이 없으니까 열심히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이번 런던 장애인올림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회자 대통령께서 장애인 문제에도 상당히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장애인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대통령 장애인이 할 수만 있다면 일을 하게 만드는 게 좋다고 봅니다. 사실은 장애인이 몸은 불편하지만 어떤 특수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법적으로 고용의 3% 정도는 장애인을 고용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청와대에 와서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공무원 사회도 그렇고 될 수 있으면 장애인에게 일을 하게 해서 희망을 주고자 합니다.


박 선수의 경우는 운동을 하지요. 운동을 해서 이번에 금메달 2개를 받았잖아요. 그거 대단한 거죠. 앞으로 지도자를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정부는 어떤 장애인이든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제도적·법적으로 보장하자는 방침을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장애인 운동선수들을 위해선 이천에 태릉선수촌 같은 시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도 이번에 올림픽 가기 전에 한 번 방문했지요. 그때 박 선수와 같이 사진 찍은 것 같은데…….


박세균 씨 네, 지난 8월입니다.


대통령 맞아요. 8월에 올림픽 가기 전에 찍었지요. 그곳에서 보니까 장애인들이 열심히 하더라고요. 패럴림픽에 우리나라 장애인이 참여한 역사도 짧고, 아직 사회적 제도도 완벽하지 않은데 이런 좋은 결과를 얻었거든요. 그래서 많은 장애인에게 큰 희망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사회자 박세균 선수, 앞으로도 응원 많이 하겠습니다.


박세균 씨 감사합니다.


사회자 이번에 만나 볼 분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남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저도 아기를 가져 일과 가정을 어떻게 병행할지 고민에 빠졌는데, 아기를 낳고 무려 10년 동안이나 일을 그만두셨다가 재취업에 성공하신 맹렬 엄마가 계십니다. 이남주 씨, 안녕하세요!


이남주 씨(재취업 주부)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적기업 오가니제이션요리에서 근무하는 이남주입니다. 저는 2002년 결혼과 동시에 임신, 그리고 출산으로 인해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힘든 일은 같이 겹친다고 아이 아빠가 조기 퇴직을 하고, 아프고 그래서 10년 동안 제가 집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취직을 계속 모색했는데, 그 전에 제가 갖고 있던 업무적인 능력은 인정되지 않고, 또 어디 취직할 수 있는 자리도 많이 없더라고요. 알아볼 수 있는 루트도 없고. 많은 고민을 하다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까 아이들의 음식에 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주위를 돌아보니까 제가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요리더라고요. 그래서 그쪽으로 10년 동안 그냥 있지 않고 노력을 했어요. 사실 취업의 문은 잘 열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 정부정책을 이야기할 때 사회적기업이란 말을 굉장히 많이 하잖아요. 제가 원래 그것에 관해서 관심이 있어서 사회적기업의 문을 두드렸더니 경력 단절이었던 저를 받아 주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많은 일을 하고, 또 그곳의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나누고, 희망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사회적기업이란 것에 대해서 요즘 많이 공부하는데, 얼마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경영대학에서 3개월간 공부도 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사회적기업이 얼마나 좋은 기업이고 착한 기업인지를 몸소 느끼고 있어요. 제가 사무 일도 같이 보면서 알게 된 것은 사회적기업은 좋은 일을 하지만 너무 힘든 상태라는 것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좋은 일하는 착한 기업들이 같이 살아 나갈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저희가 힘든 것을 서로 나누면서 같이 좋은 일하고,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잖아요. 그것을 같이 할 수 있는 것, 또 여자니까 할 수 있는 부분이 사회적기업에서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가정주부, 그러니까 집에서 저처럼 경력이 단절되고, 뭔가 하고 싶고, 사회적으로 엄마가 갖고 있는 인품과 능력을 나누면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제도화되고 잘 알려져서 저 같은 여성이 많이 사회로 나와서 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회자 이남주 씨 같은 경우는 혜택을 받았지만 사회적기업이라는 게 좋은 면이 많은 반면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여건이 열악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앞으로 이런 데는 어떤 지원을 하실 계획입니까.


대통령 제가 서울시장을 하면서 뜻있는 시민단체들이 소규모로 사회적기업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사회적기업 관련 정책을 시행했는데, 당시만 해도 전국에 50개 정도 있었습니다. 거기 종사하시는 분은 2,000명 조금 더 될까 하는 정도였는데, 그 이후에 우리 정부가 사회적기업을 국정의 중요한 정책의 하나로 채택해서 지금은 700개 정도 됩니다. 거기 종사하시는 분이 1만 8,000명 정도 됩니다.


어머니들이 모여 떡을 만들어 군부대에도 주고, 이렇게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또 무슨 행사가 있을 때 다들 과자 같은 것을 먹잖아요. 과자를 만들어 그런 데 납품하면, 사람들은 사회적기업에서 하는 걸 가능한 한 사 주지요.


정부는 5년 정도만 지원을 합니다. 같은 곳만 늘 지원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 새로 시작한 데를 지원하고, 이렇게 해서 한 5년까지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굉장히 성과가 있을 뿐 아니라 거기 종사하시는 분들이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지원을 늘려나가려고 합니다. 정부는 그동안 경력이 단절되었던 어머니들이 나와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이미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늘려나가면 아마 다음 정권, 다음 정권에도 계속해서 확대될 것입니다. 아주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엄마들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사회적기업에 계시는 사장님들, 지금 조금 힘드시겠지만 정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시는 거니까 많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나 볼 분은 저 멀리 부산에서 오셨습니다. 오혜점 씨,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혜점 씨(전통시장 상인) 안녕하세요!


사회자 전통시장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제31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의 주제가 ‘온누리상품권 활성화’였습니다. 이게 실제로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도움이 많이 됩니까?


오혜점 씨 저는 부산의 부전시장에서 온 오혜점입니다. 지금은 해산물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시장에서는 전부 다 장사 안된다, 안된다 하는데, 그래도 온누리상품권으로 인해 이번 추석은 우리 상인들이 좀 더 웃을 수 있었고, 더 많은 손님을 맞이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 경우 온누리상품권으로 하루 평균 40만~50만 원 정도 들어왔거든요. 그러니까 추석에 온누리상품권이 단단히 효자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사회자 매출이 얼마나 늘었나요?


오혜점 씨 온누리상품권에 의한 매출 40만~50만 원이 현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 10% 이상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혹시 전통시장 상인으로서 부탁드리고 싶다든지,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오혜점 씨 부탁드리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그전에 전통시장의 상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시장에서 장사만 하면 다 돈 버는 줄 알더라고요. 저도 힘들 때 새벽에 일찍 나가고 부지런히 하고 열심히 하면 돈 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제가 하고 있는 업종이 수산물이고 해산물 가게다 보니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변질이 안되어서 돈을 좀 벌어도 여름에는 날씨나 온도 때문에 상하고 변질되고 아침에 좋은 거 가져와도 저녁 되면 못 팔고 그래서 손해나고, 현상 유지도 못하고 해서 정말 장사 그만두고 싶을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2008년도에 정부에서 우리 상인을 교육시켜 주는 상인대학을 다니면서 몰랐던 마케팅 기법을 배웠습니다.


사실 이런 거 되게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쉬운 거더라고요. 그리고 장사 잘하는 비결, 상품 진열 방법은 물론 우리가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웃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는데, 사실 그게 상인의 기본이며 상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몫이더라고요.


지금은 장사 잘하고 있어요. 상인대학 덕분에 알게 된 건데, 전통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무조건 웃어야 장사가 잘되는 겁니다. 인상 쓰고 있는데 어디 손님이 오겠습니까? (일동 웃음) 정부의 교육 덕을 참 많이 봤습니다.


사회자 어떻습니까, 대통령님? 청와대 밥상에 오르는 식재료는 전통시장에서 사오나요?


대통령 그건 분명히 전통시장에서 옵니다. 제가 기업하시는 분들께 장사가 제대로 안되니까 온누리상품권을 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2009년부터 시작했는데 올해에는 대기업들이 협조를 많이 해 주어서 연간 한 3,700억 원어치를 사 주셨어요.


그것 쓰려면 백화점을 갈 수도 없고 마트에 갈 수도 없고 전통시장 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올해 연말까지 쓰이는 상품권이 4,000억 원은 될 텐데. 저의 욕심 같아서는 연간 5,000억 원씩만 기업들이 협조해 주면 좋겠다 싶어요. 5,000억 원이 큰돈인 것 같지만 더 많은 기업이 협찬하면 됩니다. 사실 이번에도 대기업인 모 기업이 1,000억 원 이상 사 주신 것도 있고 해서 그만한 금액이 된 거죠.


그리고 전통시장이 불편한 게 뭐냐 하면 주차장입니다. 마트에는 주차장이 있는데 여기는 주차장이 없습니다. 주차장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전통시장 주위에는 물건 사려고 차를 대더라도 경찰이 단속하지 않도록 하자고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명절에만 단속을 안했는데 평상시에도 좀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하면 손님이 더 많이 올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한 거지요.


요즘은 차 가지고 오는 사람이 많은데 댈 데 없으면 전통시장 손님 끊어지니까 상인들 교육시켜서 스스로도 잘하도록 하고, 그다음에 주차 시설도 좀 마련하고, 대기업이나 국민 중 여유 되시는 분들이 온누리상품권을 사 주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제 개인적으로도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사죠. 저는 항상 호주머니에 온누리상품권을 갖고 다니다가 전통시장에 들르면 그걸 씁니다.


우리 정부가 전통시장에 대한 배려를 최우선적으로 하는데, 사실 제가 과거에 전통시장에서 힘들게 일한 경험이 있어서 상인들의 심정을 잘 압니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해서 10년, 20년 전통시장이 제대로 경쟁력 가질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이 노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회자 사실 저희 같은 젊은 주부는 전통시장이 좀 낯선데 말씀 들으니까 온누리상품권을 기억해 뒀다가 선물로도 주고 저희도 장 볼 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 주차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사회자 네, 알겠습니다. 오늘 ‘희망국민과의 대화’를 직접 해 보셨는데, 대화를 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 제가 오늘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기 나오신 분들은 ‘역경에서 내가 해냈다.’는 분들이죠. 노숙자에서 벗어나신 분도 그렇고, 아까 어머니는 말씀을 안하셨지만 죽고 싶어서 죽으려고 하는 직전까지 가셨던 분을 남양주에 가서 직접 만난 기억이 있어요. 그때도 눈물을 많이 흘리셨는데, 그 심정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세계경제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나름대로 우리 한국에는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일도 많았습니다. 세계에서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7개국을 선정했는데, 우리나라가 첫째로 뽑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는 어렵지만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 희망을 본 거죠.


사실 국민에게 좋은 일도 많았지만, 우리 살림이 이게 뭐냐, 나는 정말 어렵다, 나는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도 없다, 이런 고민도 많잖아요. 물론 세계에서 평가를 하면 상대적으로 우리가 제일 낫지만 그건 평가에서 좋다는 것이고, 실제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저는 국정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정말 잠이 안올 정도로 고민스러운 일이지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제가 대통령으로 일한 지난 4년간 세계적인 위기를 두 번이나 만났지요. 물론 우리만 만난 게 아니고 온 세계가 만났는데, 그것이 마치 길고 깜깜한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깜깜한 터널에서 그냥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가면 터널의 끝에 밝은 빛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터널을 지나가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에서도 조금만 더 가면 터널의 끝엔 밝은 곳이 있고,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제가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께서도 당장 일자리가 없다,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의 신용등급은 온 세계가 줄줄이 떨어질 때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모두 올려 주어 일본보다 더 높습니다. 그러니 우리 국민 모두가 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힘들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힘이 불끈불끈 솟거든요.


그러니까 국민 여러분께서도 좀 힘드시겠지만 여기 와 계신 분들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대통령은 임기가 있지만 민생을 돌보는 것은 임기가 없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그런 심정으로 끝까지 일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같이 용기를 가지고 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실 여기 오면서 참 많이 걱정했습니다. 청와대라고 하니까 문턱이 높은 것 같고 혹시 일방적으로 이야기만 듣다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신 것 같네요. 많은 기대가 어떤 때는 짐으로 느껴지시겠지만 그만큼 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니까 남은 여정, 국민을 위해서 끝까지 힘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함께 만드는 길이 앞으로 역사가 됩니다. 오늘 우리의 만남도 앞으로 역사의 한 구절이 되지 않을까요. 이제 이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가 길을 만들어 가야겠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고 계신 국민 여러분 모두가 희망이고 우리의 미래라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인터넷 연설 100회 ‘희망국민과의 대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