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문학의 한 모
동양에의 반역
[편집]이상(李箱)에도 그 생전에 조금만 생각을 달리 먹었어도 보다 더 많은 독자를 얻었을 것이고 좀더 요란한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는 사실상 문학상의 상식이 가지고 있는 감수 능력의 범위를 적지 않이 벗어났던 것이다. 이 상식적인 감응(感應)에 적당히 타협하는 것―그것이 문학적으로 이른바 성공을 손쉽게 거두는 유력한 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는 이상의 문학은 상식의 손아귀를 좀 넘어선, 말하자면 지나친 데가 있었다. 그것을 우리는 일종의 동(東)에 드문 철저성이라고 말하여도 무방하겠다.
그런데 이 철저성이야말로 재래의 우리 문학이 불행하게도 갖추고 있지 못한 부러운 미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구라파(歐羅巴) 문학, 또는 구라파 정신에서 받는 유다른 감명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 철저성에 연유하는 모가 크다.
철저한 관찰―타협이 없고 미지근하지 않고 적당히 꾸민 것이 아니고 극도로 주관을 누르고 객관에 충실하려고 하는 태도와 방법을 철저하게 밀어 나가려는 것이 더 구라파의 리얼리즘의 안목이 아니었던가. 참된 생활을 찾아 어둠의 막다른 골목까지 파고들어가 마지않는 곳에 19세기 막판의 러시아 인도주의 문학의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는 투르게네프의 미적지근한 감상보다는 톨스토이의 끔찍한 사랑의 종교에 더 큰 매력이 있었고, 그보다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심각하기 짝이 없는 추궁력에 우리는 저도 몰래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야말로 더한층 구라파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관찰의 시선이 자기를 에워싼 객관적인 환경인 세계에서부터 돌려져서 거꾸로 사람의 내부의 세계―즉 의식의 부면으로 쏠려 그것을 철저하게 파고들어간 것이 이른바 심리주의(心理主義)의 문학이었다. 스탕달에서 길을 연 이 의식의 분석의 경향이 프루스트나 조이스에 무의식의 세계의 남김 없는 소탕에 이르러 끝마치는 경로는 구라파 정신의 철저성의 또 다른 발로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데 대체 우리 문학이야 언제 이러한 의미의 외부 관찰의 철저한 실현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내부 세계의 분석을 더 어쩔 나위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가 본 적이 있었던가. 언제 아찔아찔한 정신의 단애(斷崖)에 올라서 본 적이 있었던가. 이른바 영혼의 심연(深淵)에 마주서 본 적인들 있었던가.
그저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꾸려서 차려 놓은 것이 시요 소설이었던 그런 모는 없었던가. 가장 청신하고 탄력에 차 있어야 할 문학의 세계가 우리 경우에는 그러므로 너무 인습과 편의(便宜)에 찬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이상의 문학이 나타난 것은 분명히 큰 충격이었고 경외였고 어느 의미로는 한 타격(打擊)이었을 게 옳다. 구라파적인 의미의 철저성을 터득한 이채 있는 문학이었으며 그러한 모에서는 동양에 대한 반역이었다.
동양이 더 높은 인류적인 세계적인 역사의 단계에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번은 철저한 자기 반역이 필요하였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구라파적인 것의 철저한 파악과 소화(消化)가 한번은 꼭 필요하였던 것이다.
절박한 매력
[편집]이상을 가리켜 혹은 악덕의 시인, 데카당의 작가라 한다. 그가 그리는 세계가 주장 데카당적 생활면이요, 또 등장시키는 인물이 주로 여급(女給)이라든지 거기 붙어사는 생활력 없는 거미 같은 사람이라 해서 하는 소리일 게다. 그러나 그것을 언뜻 보아 눈에 띄는 표면이고, 하나하나의 작품을 지니고 있는 모럴의 핵심은 차라리 추한 현실과 데카당의 진흙탕을 넘어 애정과 인간성의 절대의 경지를 추구해 마지않는, 어찌 보면 청교도적인 면에 있는 듯하다. 그 작품에 가끔 매우 친절한 측광(側光)을 던져 주는 그의 수상(隨想) 등속에서 우리는 그의 참말 의도를 잘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자발적인 의사가 참여하지 않는 남녀의 형식뿐인 결합이야말로 매음(賣淫)이 아니고 무엇이랴. 진정한 사랑에 찬 빛을 쐬면서 오는 때에만 여성은 천사이나, 그밖의 경우에는 제아무리 혼인이라는 제약 때문에 되풀이하여 돌아들고 돌아든다 할지라도, 그것은 산 천사가 아니라 천사의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천사였다. 사람들은 이 무수한 천사의 시체에 사회적 위신이라는 옷을 입혀 놓고 다만 천사인 듯한 착각을 피차에 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상은 이 눈부신 옷을 벗겨 놓고 인간의 실체, 실사회의 정체를 들추어내 보이려는 듯했다. 그러므로 옷을 벗기우는 편으로는 그를 '악덕의 시인'이라고 불러 경계할 뻔도 하다. 그러나 그 자신으로서는 이러한 모럴은 도리어 구식이었으며, 19세기적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지도 모른다.
이상은 인간과 사회의 현실의 그늘을 손으로 눈을 가리며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의 속에 깃들여 있는 동양인은 그런 정도로 그저 지나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나, 그는 그러한 자신의 일면을 자꾸만 부정하려 한 듯하다. 그는 늘 그의 내에 두 개의 자기를 느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울에 비추어 대조해 보는 것이었다. 될 수만 있으면 자기 자신으로부터조차 도망치려 하였던 듯하다. 현실과 인간과 자기 자신조차를 모델만큼 떼어 놓고 샅샅이 뒤져 보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다닥친 것은 밑이 없는 절망의 구렁창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이 구렁창이를 넘어서지는 못하였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는 '절망의 시인'일세 옳다.
그러나 그는 이 절망을 절망 그대로 즐기려는 동양적인 감상가는 아니었다. 다만 그 절망의 실체와 의미를 더 철저하게 파헤치려 한 것이었다.
그가 자연 언제까지나 절망의 이편에서 망설이고 있었을까 않았을까는 그의 너무나 빠른 요절(夭折) 때문으로 해서 영원한 숙제로 남을밖에는 없는 문제가 되었다. 오늘의 세대가 이상에게 새 매력을 느낀다면 다름 아닌 그의 문학의 그 철저성 때문이 아닐까. 미적지근한 인습의 연장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가 사는 사계와 그곳에 처한 자기의 위치와 또 자신의 의미에 대한 철저한 추궁을 거쳐서만 새로운 생활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과 작가 사이에 세운 거리가 한낱 무의미한 공간의 토막에 그치는 게 아니라, 대상과 자기와의 불이 나는 교섭의 장소로서 팽팽해 있는 실례를 우리는 이상의 문학에서 유달리 구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상의 매력은 또한 이러한 절박한 긴장의 인력(引力) 그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