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간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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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간의 우정 ─ 와일드의 여드름 청년

이성 간에는 순수한 우정이 있을 수 없다는 와일드의 말을 한번은 수긍한 적이 있었으나 요새 와서는 반드시 옳다고 만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성은 언제나 애욕의 대상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우정의 대상이 됨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풋 청년기에는 이성은 온전히 애욕의 권화(權化)로 보이고 욕망의 덩어리로 어리우나 청춘기를 지남을 따라 차차 그런 유물적인 이유를 떠나 때로는 완전히 순결한 마음의 대상으로 비취이게 되는 듯하다. 이런 때 위의 와일드의 말은 반드시 진리가 아니며 여드름 청년의 하소연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성이란 이성이 죄다 아름다워 보이고 욕심이 나 보이고 연애의 대상으로 족해 보이고 결혼의 의욕을 북돋우고 하는 때가 있다. 뚱뚱하거나 가냘프거나 박색이거나 미모거나 교양이 풍부하거나 무지하거나 간에 다 같이 어느 정도로 일색으로 보이고 욕망을 가지게 한다.

첫사랑의 대상이 대개 그다지 훌륭하지 못하고 그와의 벼락 결혼의 결과가 흔히 신통하지 못함은 이런 실망적 초조감과 맹목적 무폭(無暴)에서 기인함이 큰 듯하다. 이런 시대에는 이성 간에는 동성 간에서와 같은 순수한 우정이 성립될 수 없으며 와일드의 말을 그대로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춘의 소모기를 지나서 생리에 안정감이 오는 때부터 초조감이 없어지는 대신 침착한 반성이 생기면서 이성에 대한 적확(適確)한 비평안이 서고 자기류의 표준율이 작정된다. 이성이라면 다 아름답거나 다 좋은 것이 아니라, 냉정한 단정과 기오(嗜惡)의 구별이 엄연히 갈라진다. 자기의 감식안에 비취어 아름다운 것만이 이성이지 아름답지 않은 것은 벌써 이성이되 이성이 아니다.

일종의 물건이요 목석일 뿐이지 따뜻한 체온으로 정감을 끄는 유기체가 못 된다. 아무리 의상이 놀라워도 아무리 화장이 사치해도 목석으로 밖에는 비취이지 않는다. 이런 때 이 아름다운 편에서는 연정과 때로는 우정을 느낄 수 있으나 아름답지 않은 편에서는 벌써 연정은 느낄 수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 우정의 싹틈이 있다면 있을 것이다. 물론 아름답다는 것은 순전히 주관한 채색인 까닭에 사랑의 눈이 여러 가지인 만큼 소위 박색도 그 어느 모에서 연정을 차지해 보기는 한다. 자연의 섭리는 이런 때 조금 공평한 척해 보인다.

사실 삼십 줄을 넘어서면 생리의 욕망은 퍽 담박해져서 늦은 봄의 야수같이 그렇게 욕심쟁이는 안 된다. 기호가 까다롭고 표준이 엄격해져서 거기에 는 만나는 이성의 아무나가 미인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술집에도 그렇게 흔히 눈을 끄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다시 지릅떠 보고도 싶지 않은 목석들이 많다.

그러기 때문에 벌써 사족을 못쓰고 열병을 앓으러 술집 출입을 안 해도 좋으며 가로에서 우연히 난데없는 베아트리체를 만나 지옥, 연옥(煉獄), 천국으로 고생고생 순례를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굳이 뽐내는 이성은 이를 도리어 경멸의 시선으로 물리칠 수 있으며 간곡히 청을 보내 오는 이성에게는 한줌의 맑은 우정을 보임으로 자기를 억제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을 가리켜 반드시 육체적 피곤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피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격정의 졸업이라고 함이 어떨까. 하기야 격정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는 것도 아닐 것이요, 목숨을 마칠 때까지 완전히 육체를 졸업할 수도 없을 것이기는 하나 적어도 초조감의 청산은 영륜(齡輪)을 따라 천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영대(齡代)가 일생 중에 있어서 행복스런 때인지 불행스런 때일는지도 일률로 말할 수 없으나 어떻든 안정의 때요, 우정의 때임은 사실이다.

이 여드름 시기를 벗어난 때부터 동성 간에서와 같은 맑은 우정이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야심과 욕망이 없는 깨끗한 정신적 거래의 예가 세상 그 어느 구석에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한편의 구름같이 한줌의 샘물같이 타기 없는 마음의 교섭이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참으로 있을 법하다.

나는 지금 그런 예를 설정해서 생각해 봄이 기쁘다. 가령 현대적 ‘로테’가 있어서 불쌍한 ‘베르테르’에게 마음만의 깨끗한 교섭을 오래도록 지속함이 피차를 구하는 도리라고 눈물로 역설할 때 ‘베르테르’는 반드시 자살하지 않고도 자기를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엘리사’와 ‘제롬’의 경우도 이와 같다. 와일드를 불러 외람히 여드름 청년이라고 하는 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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