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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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작별'은 슬픈 일이라 정하여 놓았다. 장차의 기꺼운 상봉을 약속하는 '작별'일지라도 그것이 작별인 이상은 슬픈 일이다. 장차의 상봉이 아무리 기쁜 일일지라도 그런 것을 타산할 수 없을이만치 '작별'이란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런 인간법칙을 무시하고 이즈음 매일, 경성역 역두에서는 환희의 작별, 웃음의 작별이 연출된다. 장차의 기꺼운 상봉을 약속하는 작별이 아니다. 기꺼운 상봉은커녕, 다시 만날 날이 있을는지 어떨지, 그것조차 기약할 수 없는 (보통의 상식, 보통의 인간정리로서는) 비통한 작별임에도 불구하고 보내는 사람이나 가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환희로 보내고 환희로 떠난다.

학병----학병을 보내는 사람.

붓을 잡던 손에 붓 대신 칼을 잡고 부르심에 응하여 용감히 정의의 대로로 나가려는 '우리의 젊은 용사'는 여기서 인간 정애의 마지막 겨레를 벗어던지고, 오직 '황군'이라는 단일한 칭호 아래서 나랏님 발 앞에 몸을 내어던지는 '신'과 '구'의 생활의 갈랫길의 그 분기점이다.

어제까지도 부모께는 불초자요, 동생들에게는 욕심장이요, 선배에게는 귀찮은 짐이요, 동무들에게는 떼꾸러기던 이 소년이, 여기서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을 때는 폐하의 충량한 신자요, 국가에는 튼튼한 간성이요, 사회에는 거룩한 질서 보호자가 된다.

그러기 위하여 그 겨레에 참예하기 위하여 여기를 떠나는 작별이니, 보내는 이, 가는 이, 한결같이 이 경사에 환희하지 않으랴.

전쟁을 겪고 있는 도회답게 강렬한 광선은 차단하여 약간 어둠침침한 정거장에 여기 한 패거리 저기 한 패거리 3~40명씩 뭉쳐 서 있는 이 군중들---손에는 한결같이 일장기를 표식으로 들고 흥분된 얼굴과 긴장된 태도로--- 아아, 이 무리의 중심이 되어 있는 한 씩씩한 젊은이가 오늘의 주인공이요, 기쁨의 작별, 환희의 작별을 하고 받으며 어마전(御馬前)에 육척신(六尺身)을 바치려 나가는 우리의 용사다.

침침한 가운데서도 뚜렷이 보이고 저어지고 흔들려지는 거룩한 표식인 '히노마루--- 히노마루 두르며 외치는 만세성은 세상이 떠나 갈 듯,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학병 만세"

"ㅇ ㅇ 전문학교 만세"

삼천리를 흔들 듯---2천 5백만을 대표한 이 만세성 아래서 히노마루의 큰 물결은 움직이며, 이 세기(世紀)의 명예를 진 청년들을 보내기 위하여 둘러선 사람들은 혹은 선배며, 혹은 동창 동기생, 혹은 후배들뿐이다. 그들에게 부모도 계실 것이고 동생들도 있을 터인데 어디 있는가 둘러보니 이 용사들의 육신의 친척들은 한편 모퉁이에 멀리 나가서 마치 남인 듯이 구경꾼인 듯이 서 있다.

떠나는 자식(혹은 형제)를 가까이서 손 마주잡고 작별할 기회는 얻었으나마 이 떠나보내는 친척들의 얼굴에도 나타나고 넘쳐있는 표정은 역시 환희였다.

"영광이올시다. 이렇듯 여러분께서 보내주시니 영광이올시다. 제게는 과한 영광이올시다."

팔을 두르며 자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젊은 용사의 음성은 어열상반(語咽相半), 그러나 물론 슬픔의 느낌이 아니요 감격과 환희의 느낌이었다.

일장기의 물결과 만세의 우뢰 가운데서 떠나는 젊은이.

그의 어께에는 2천 5백만의 신뢰와 기대가 지워져 있는 것이다. 이만 것은 넉넉히 감당할 만한 넓고 튼튼한 어께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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