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표의 공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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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쯤 해 학교로 전화를 걸고 다짐을 받더니 사퇴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가 바쁘게 건도는 자동차를 가지고 왔다. 끌어 앉히다시피 하고는 거리를 내려가 남쪽으로 훨씬 나가더니 뒷골목 한 집으로 다다랐다. 뜰 안의 초목과 조약돌은 저녁물을 뿌린 뒤라 푸르고 깨끗하다. 낯설은 집은 아니었으나 양실만이 있는 줄 알았던 터에 층 아래에 그렇게 조촐한 자시끼를 본 것은 처음이어서 안내를 받아 복도를 고불고불 깊숙이 들어가니 그 한 간의 푸른 자릿방이었다. 또 한 가지 나를 서먹거리게 한 것은 방으로 들어섰을 때 상 건너편에서 방긋 웃음을 띠인 한 송이 색채가 우리를 반기는 것이다. 그 역 낯선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날 저녁의 그 모든 당돌한 배치가 불시에 끌려나온 내게는 도무지 뜻밖의 일이었다. 건도의 그날의 목적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만쯤의 목적을 위해서는 지나치게 거창한 행사였다.

“만난 지 오래기에 하룻밤 얘기나 해볼까 해서.”

설매도 그와 같은 표정으로 웃어 보인다. 이 해의 유행인지 치잣빛 적삼이 철에 맞아 화려하다. 술이 자꾸 뒤를 이어 들어오고 요리가 그릇마다 향기를 달리한다. 웬만큼 술이 돈 때에야 비로소 건도는 부회의원 선거의 일건을 슬그머니 집어냈다. 선거기가 임박했다는 것, 심심파적으로 출마해 보겠다는 것을 말했을 때 나는 이미 나의 일표를 원하는 그의 심중을 응당 살피고,

“그까짓 내 뜻이 무어게. 오늘 저녁 대접은 과해. 몇 백 표를 얻는데

이렇게 일일이 턱을 썼다간 자네 봉 빠지게.”

“일일이야 낭비를 하겠나만─자네 혹시 다른 곳에 승낙하지나 않았나 해서.”

“한 번은 했네만.”

“거 다행이네. 놓치지나 않을까 해서 이렇게 조급히 서둔 것야.”

대체 선거라는 것부터가 내게는 귀설은 것이어서 선거권이 있는지 없는지도 당초에는 몰랐었고 있다고 해도 그 시민적 특권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다. 선거에 관한 주의서가 부에서 개인명으로 나오게 되어 동료의 몇 사람이 내 한 표의 뜻을 설명하며 친구들의 모모가 그것을 원한다는 말을 전했을 때 비로소 내가 이 고장에 온 지 몇 해며 일년에 바치는 세금이 얼마 가량이라는 것이 막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며 의원의 덕으로 부민에게 얼마나의 이익이 올 것인지는 모르나 차려진 의무는 차려진 대로 하는 것이 옳으려니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보자 속에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 있는지 몰라도 나로 보면 그 한 표쯤 아무에게 준들 안준들 일반인 것이다. 가까운 친구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야 어찌 알았으랴.

“자네가 출마할 줄 꿈이나 꾸었겠나. 내 한 표가 긴하다면야 두말 있겠나.”

그러나─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을 때 그도 민첩하게 그 표정 속에 숨은 출마는 해서 무엇 한단 말인가, 자네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던가, 하는 뜻을 눈치 챈 모양.

“자네 경멸할는지도 모르나─이것두 생애의 한 체험으로 생각하려네.”

하는 변명의 어조였다.

“체험. 파란 많은 자네 생애엔 벌써 체험도 동이 난 모양이지.─운동을 못해 봤나 교원 노릇을 못 했나 기자 생활을 안 겪었나…….”

기자 생활을 청산한 후로는 변호사 시험을 보아 오는 것이 몇 해 동안 실패만 거듭하고 있다. 시험에 성공한다면 그 자격으로서 또 의원의 자리를 바랄는지는 모르나 지금 같아서는 시험에 실격한 것이 출마의 원인일 듯도 싶다. 기자 생활을 버리고 변호사 시험을 원한 것부터가 그에게는 큰 생애의 변동이었고 이제 의원으로 출마하게 된 것은 다시 백보의 변동으로서 그 과정이 내 눈앞에는 억지 없이 차례차례로 나타나고 그의 심경의 변화해감도 짐작할 수 있기는 하다. 사상에 열중했을 때와 의원을 원하게 된 오늘과의 먼 거리를 캐서는 안 될 것이 시간의 거리와 변천의 고패에 착안함이 그를 충실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의 실마리일 듯싶으니 말이다.

“오늘 이 당장에 내게 그것밖엔 할 일이 무엇이겠나. 돌부처같이 가만히 있을 수 있다면 또 몰라두.─”

변화라는 것이 그에게는 몸에 지닌 철학이자 처세의 원리라는 듯도 하다. 도리어 반문하는 듯이 어세가 높은 그의 태도 속에 그가 지금까지 자기류로 살아온 모든 배포가 들여다 보인다.

“그게 이번 출마의 이유란 말인가.─하긴 자넨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활동객이니깐.”

“전에는 사상으로 행세했지만 지금에야 행세의 길이 달라지지 않았나.”

“거리에서 꼭 행세를 해야 값이 있단 말인가.”

“행세를 못하구야 또 산 값이 무어겠나.”

당초보다는 그의 생각이 퍽도 달라졌다. 사상으로 행세하던 때의 그의 입에서 나는 지금과 같은 말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는 벌써 그의 따지는 이치가 완고하리만치 굳은 듯하다. 속은 무르면서 겉만을 그렇게 굳게 무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기는 하다.

“어서 뜻을 얻어 마음대로 행세하도록 하게나. 내 표는 염려 말구.”

“북촌에서만두 근 이십 명이 출마를 했으니 적어도 이백 표는 얻어야 바라보겠는데. 요행 교원시대와 기자시대에 사귀여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의 말이 헛것이 아니라면 이럭저럭 희망이 있네만 사람이 말만 가지구야 믿을 수 있어야지.”

“설마 나까지야 못 믿겠나.”

“다 자네 마음 같은 줄 아나.”

“이렇게 야단스런 상을 받구야 턱값이래두 해야 하잖겠나.”

웃으니까 그도 따라 웃고 설매도 입을 열고 고운 잇줄을 구슬같이 내보인다. 이때까지 다른 술좌석에서 설매를 만난 일이 여러 번이었어도 그가 건도의 짝일 줄은 몰랐다. 익숙한 두 사람의 눈치로 보면 여간한 사이가 아닌 듯하다. 그 원앙 같은 쌍이 합심해서 내게 베푸는 정성을 생각하면 거나한 김에 마음이 따끈해지면서 나도 건도를 위해서 마음의 정성을 베풀어야 할 것을 가슴속에 굳게 먹게 되었다.

그날 밤 술이 과했던지 이튿날 개운치 못한 정신으로 교단을 오르내리면서 건도의 일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회의원─선거─한 표를 얻기 위한 그 극진한 대접─설매의 아슬아슬한 아첨─건도의 장황한 설화─의원이 되어야 면목이 서고 행세를 할 수 있다고 거듭 되풀이 하는 그의 조바심이 내 일만 같이 마음속에 살아 나왔다. 이날부터 내게도 뒤를 이어 오게 된 우표 없는 약속우편의 무수한 편지들 속에 건도의 것도 끼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여러 차례씩이나 비슷한 판에 박은 선거 희망의 서장을 보내오는 속에서 건도의 것도 그들과 다름없는 같은 격식 같은 내용의 것이었다. 그를 후원하는 후원회에서 보낸 추천장에는 십여 명의 후원자의 열 명 아래에 그의 학력과 경력과 인물을 세세히 적어 후보자로서 가장 적당함을 증명했고 그 자신이 보낸 서장 속에는 피선된 후의 포부와 계획을 당당 오륙천 자의 장황한 문자로 논술 설명해 왔다. 교육기관의 확충, 특히 초등교육의 충실, 시가지계획 위생시설, 사회적 시설, 산업조장 등의 항목을 들어 부의 행정 시설을 검토하고 장래 부세에 대한 설비를 계획해서 부정의 백년대계를 세우겠다는 위대한 기개였다.

수십 명이 차례차례로 보내온 비슷비슷한 글발을 뒤적거리면서 나는 그 자신들의 흥분과는 인연이 멀게 나중에는 지쳐서 하품이 날 지경이었다. 그들이 감언이설로 유혹하나 나는 첫째로 그들에게 부탁할 말이 없는 것이요 그들의 힘에 의지해서 부탁하고자도 않는다. 거리의 목마다 입후보의 흰 간판이 늘어서고 부민들이 선거의 화제로들 수물거린대도 내게는 선거라는 것이 도무지 경황없는 일로만 보이면서 흥분은커녕 마음은 차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 군소 정객에게서 받은 수십 매의 편지를 거리에 뿌려지는 광고지만큼도 긴히 여기지 않으면서 드디어 선거의 날을 당하게 되었다.

오월도 끝 무렵이라 날이 무더워 가는 때였다. 마침 일요일이었던 까닭에 나는 아침부터 뜰에 나서 꽃을 매만지고 있었다. 선거 투표는 오후 다섯 시까지였던 까닭에 조급히 집을 나서지 않아도 좋았던 것이요, 선거보다도 내게는 솔직히 화단의 꽃이 더 소중했던 것이다. 벌써 꽃피기 시작한 양귀비 포기를 만지며 물도 주고 잎사귀도 가지런히 추어주며 한가하게 속사를 잊어버리고 있는 동안에 어느덧 오정이 울렸다. 행여나 투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가한 마음을 깨워 주려는 듯이 뜻밖에 불쑥 들어온 것이 건도였다. 별반 필요가 없었던 까닭에 요정에서 만난 후 처음이었다. 가장 분주한 날일 텐데 웬일이냐고 물으니까 며칠 동안 들볶아친 판에 피곤도 하고 그날 특히 자기에게 맡겨진 일도 없기에 수선스런 선거사무소를 빠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마침 잘 왔다고 나는 차리고 나서면서 거리로 이끌었다. 일전의 호의에 대한 답례도 할 겸 투표까지의 시간을 함께 지우려는 것이었다. 그릴에서 점심을 먹고 맥주잔을 기울이노라니 놓이는 마음에 내게는 내 고집이 생기면서 그의 말에 맞장구만을 치지 않고 내 유의 반성이 솟기 시작해 자연 입이 허랑해졌다.

“자네 낯이 넓으니까 염려야 있겠나만 운동한 결과 낙자가 없을 것 같은가.”

“삼백 표를 약속 받았으니 반만 믿더래두 일백오십이 아닌가. 일백오십 표면야─.”

“그럼 내 한 표쯤은 부뚜막의 소곰 한줌 폭두 못되겠네 그려.”

“삼백분지일이니까 비례로는 적으나 그러나 자네 같은 정성이야 자네를 놓고야 삼백 중에서 또 누구에게 바라겠나.”

“정성─자네 부회의원 돼서 거리에서 행세 잘 하라는 정성 말이지……이 며칠 그 정성에 대해 조금 반성하기 시작했는데.”

단숨에 잔을 내고 다시 맥주를 받으면서,

“─자네 보낸 그 야단스런 포부두 읽구 계획두 들었네만─초등교육 문제니 인도교 가설 문제니 위생시설 문제니 그것이 왜 내겐 그림엽서나 포스터 속의 빛 낡은 선전문 같이만 보이는지 모르겠네. 좀더 알뜰히 생각해 보래두 맘이 자꾸 빗나간단 말야. 확실히 필요한 조목인데 두─자네들의 실력을 얕잡아보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터놓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친구의 비위를 건드리지는 않은 듯 그도 속임 없는 한 꺼풀 속 심경을 감추지는 않았다.

“……사실 나두 그게 격식이라기에 뭇사람을 본받아 흉내는 내봤으나 일을 하면서도 흡사 연극을 하고만 있는 것 같으면서 맘속이 텁텁해 못 견디겠어. 대체 무슨 큰 수가 있어서 그것을 하노 하구 피곤한 뒤에는 반드시 맘 한 귀퉁이가 피곤해. 내게 무슨 할 일이 없다구 그 짓을…….”

과는 달랐어도 함께 학문을 공부하고 학술을 연구한 그 동기동창의 솔직한 마음속일 듯싶었다. 삼십을 가제 넘은 젊은 학사의 속임 없는 하소연인 듯싶었다.

“의원의 하는 일이 불필요야 하겠나만 자네를 그 역할에 앉힌다는 것이 아무래도 희극이야. 양복을 입구 고깔을 쓴 것 같아서 격에 어그러저 뵈거든.”

“내 할 일을 내가 간대루 모르겠나.─”

동창의 얼굴은 불그레 물들고 눈은 온화하게 빛난다. 상 위에는 맥주병이 어느새 수북이 늘어섰다.

“─나이가 늦었다면 또 모르거니와. 적수공권의 알몸이라면 또 모르거니와.”

“그러게 말이네. 앞이 아직 훤한 우리가 무얼 못해서. 더구나 자네의 의기와 경제력을 가진다면야 앞날의 대업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차라리 값있는 일이겠구─.”

“시험에 성공했었다면 또 모르거니와 내게 무슨 계획인들 없었겠나. 제일 가까운 수로 만주나 동경으로 내빼려구까지 맘먹었었네. 그런 것이 차일피일 거리에 묵고 있는 동안에 이 궁리를 하게 된 것이라네.”

“망발이야. 아무리 생각해두 수치면 수치지 당선한댔자 영광은 못돼. 삼십 세의 소장법학사가 부회의원이라니. 의회 석상에서 부윤 이하 늙은이 의원들을 앞에 놓구 자네 웅변이 아무리 놀랍구 거리의 명성을 한 몸에 차지한다구 치더래두 자네 하는 역할이 희극배우 감밖에는 못돼.”

지나친 조롱이 그의 가슴을 호볐는지 동무는 자조의 웃음을 빙그레 띠이더니,

“섣불리 돈푼이나 있는 게 내게는 얼마나 불행인지 모르겠네. 무슨 계획을 세우든 미지근해서 배수의 진을 치구 부락스럽게 나서질 못한단 말야 그러나. …… 계획은 계획 눈앞은 눈앞, 일단 출마한 바에야 뒤로 물러서는 수야 있겠나.”

“당선돼야 한단 말인가.”

온화하던 눈망울이 긴장해지면서 결의를 보인다.

“암, 이겨야지. 근 반달 동안을 고생해 놓구 지금 내 앞에 남은 결과가 이기는 것밖엔 더 있겠나. 나선 바엔 성공해야지. 그 후에 또 다른 일을 계획하든 어쩌든 그건 이것과는 별문제거든.”

“자네 당선된다는 게 반가운 일 같지는 않어. 새옹마의 득실로 실패함으로서 참으로 큰 결의가 올는지 뉘 아나.”

“두구 보게. 성공하잖나.”

술병이 비인 것을 알고 나는 시계를 보았다. 이야기에 열중하노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는 동안에 오후가 훨씬 지나 투표도 앞으로 두어 시간을 남겼을 뿐이었다. 나는 내 의무를 생각하고 조금 급스럽게 자리를 일어섰다. 너무도 한가한 오찬의 시간이었다.

“나만큼 자네를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이. 어떻든 내 정성을 다하고 올게. 차차 또 만나세.”

가게를 나와 건도와 작별하고 홀몸으로 나의 소속된 투표장을 향했다. 북부(北部) 투표 분회장인 S소학교 강당까지 이르기에 술도 거나한 까닭이었지만 나는 유쾌하다고 할까 우습다고 할까 복받쳐 오르는 내 스스로의 유머를 못 이겨서 휘전휘전 정신이 없었다. 교문에는 순사가 삼엄하게 지키고 섰고 휑한 운동장에는 입후보의 간판이 일렬로 늘어선 앞으로 마치 입학시험의 마당같이 군데군데 몇 사람씩 성글게 모여 서서는 수군들 거리는 것이 모두 내 유머의 비밀의 배경을 이루어 내게는 유쾌한 것이었다. 도착 번호표를 받는다, 명부 대조소에서 승인을 받는다, 투표 교부소에서 주소 성명을 자칭한다─넓은 강당 이모저모에서 밟아야 할 절차가 단순하지는 않았다.

회장 한 모에 높은 단을 모고 그 위에 부윤 이하 칠팔 명이 회장을 향해 엄연히 앉아 있다. 투표용지를 들고 한구석에 이르렀을 때 집어든 붓대가 내 손끝에서 약간 떨렸다. 세모로 접은 복판 줄에다 나는 내 친구인 입후보자 박건도의 성명을 정성스럽게 적어야 하는 것이요, 그 목적으로 그곳까지 이른 것이다. 박건도의 획수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순간 몸이 움칫하며 붓끝이 종이 위를 달렸다. 일분이 걸려야 할 이름이 일초가 채 안 걸렸다. 달막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용지를 제대로 집어 들고 투표함 앞에 이르러 ‘정성의 한 표’를 넣었다. 내일로 내 경멸의 뜻을 알리라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거나한 눈으로 그들을 쏘아붙이고는 회장을 나왔다. 운동장을 나서 집으로 향할 때 그 지난 일초 동안의 유머가 나를 한없이 통쾌하게 했다. 감독관과 선거행위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던졌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동무 건도에게 대해서도 나는 내 마음의 정성을 다한 것이다. 반생 동안에 그렇게 통쾌한 유머와 풍자의 순간을 맛본 적이 없다. 다리가 비틀비틀 꼬이면서 행길 복판에서 목소리를 높여 웃고 싶으리만큼 즐거운 심정이었다. 세계 선거 역사상에 전례가 없을 특출한 순간의 걸작을 내놓은 그 선거의 하루가 내게는 오래 잊을 수 없는 독창적인 만족을 주는 것이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본회장에서 개표가 시작되었다. 신문은 선거의 기사로 전면을 채우고 따로 호외까지를 발행했다. 그 야단스런 거사가 별안간 엄숙하게 여겨지면서 나는 어제의 내 행동을 생각하며 마음이 어느 정도로 흥분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 건도의 하회가 어떻게나 되나 궁금해 하면서 사퇴한 후 저녁 거리에 나섰을 때 큼직한 목마다 세운 각 신문사 속보판(速報板)이 시간마다의 개표의 결과를 보도했다. 일렬로 늘어선 백여 명 후보자의 이름 아래서 숫자가 시시각각으로 경쟁을 했다. 건도의 이름 아래로 주의를 보낸 나는 기뻐해야 옳을는지 슬퍼해야 옳을는지 그의 성적은 상당히 우수한 편이어서 열 스물씩 오르는 것이 다른 후보자의 결코 밑을 가지 않았다. 나는 목구멍이 근실거리는 일종 야릇한 심정을 느끼면서 백화점에 들렸다 찻집을 찾았다 하다가는 다시 속보판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으나 건도의 성적은 단연 우수해서 뭇 적수를 물리치고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거의 백점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개표는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건도는 역시 거리에서는 상당히 유력한 편이로구나 부민들의 원이라면 그도 괜찮을 테지 생각하면서 냉정한 태도로 그의 성적의 발표를 주의하는 것이었으나 이날은 웬일인지 대단히 불리해서 낮까지에 일백삼십 표까지 오르고는 저녁때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다. 다른 후보자들이 거의 이백 표를 바라볼 때까지 그는 종시 일백 삼십에 머무르고 말았다. 물론 그것이 결코 적은 표수는 아니어서 그 아래로는 층이 많고 심지어 백 표에 차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반면에 그보다 윗수도 많아서 높은 것은 이백을 넘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저녁불이 들어올 때까지 거리에 머물렀으나 도무지 까딱하지 않는 건도의 고정수 일백삼십을 한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전날의 놀라운 성적에 비겨서 웬일인고 생각하며 나는 기쁜지 섭섭한지 거의 표정과 말이 없이 걸었다.

반달을 두고 끌어온 수선스런 선거의 행사는 그날로 완전히 끝난 것이었다. 이튿날 신문은 호외를 가지고 당선된 새로운 부회의원의 이름을 발표했다. 건도의 이름은 그 속에 없었다.

야릇한 것은 일백삼십 참으로 당락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일백삼십일 점부터 당선이요, 일백삼십 표가 낙선─건도는 하필 그 공교로운 분기의 숫자로서 낙선의 비운을 맞은 것이다. 일백삼십과 하나─한 표를 더 얻었더라면 당선이다. 한 표를 놓쳤기 때문에 낙선이다. 한 표, 운명의 한 표! 공교로운 한 표!

“건도 만세.”

신문을 들여다보는 동안에 너무도 신기한 생각이 나서 모르는 결에 속으로 외쳤다.

“한 표로 그대의 운명이 작정되다. 건도 만세. 낙선 만세!”

불운하게 당선이 되어서 부회의원이 된댔자 거리에서 행세를 한다고 휘돌아치다 소성에 안심한 채 몸을 버리기가 첩경 쉬울 뿐이다. 낙선이야말로 그에게 새로운 결심을 주고 새로운 길을 보일 것이다─이것이 나의 처음부터의 생각이고 그에게 대한 정성이었다. 그는 요행 낙선했다. 한 표의 부족으로. 그 한 표를 거절한 것이 참으로 나였던 것이다! 뜻하지 않은 그 공교로운 결과를 괴이한 것으로 여기면서 투표하던 날의 그 순간의 걸작을 나는 마음속에 되풀이해 그려 보았다.

건도의 표정은 지금 대체 어떠한 것일까. 불만의 표정일까 만족의 표정일까. 장차는 내게 얼마나 감사해야 옳을 것인가. 그의 낯짝을 구경하고 낙선턱을 우려내리라─고는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즉시로는 만나지 못하고 그가 찾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삼사 일이 지난 날 저녁이었다.

학교 동료들과의 조그만 모임에 있어 강을 내다보는 요정에서 마침 부른다는 것이 설매였다. 건도를 족쳐 낼 작정인 내게는 그 또한 다행한 일이었다. 붙들고는 첫마디가,

“건도 소식 들었나.”

설매도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첫날은 풀이 죽었더니.”

“다시 살아났단 말이지. 꼴 좀 보구 싶어.”

“이를 갈아 물구 결심이 단단한 모양예요.”

“턱을 톡톡히 받아야 할텐데.”

“낙선턱 말이죠.”

“아무렴.”

“만나면 말씀 전해 달라드만요.”

“전화나 걸어 볼까.”

든손 일어서려는 나를 설매는 붙들어 앉힌다.

“장거리 전화를 거실 작정인가요.”

“장거리는 왜.”

“동경으로 갔어요. 그저께 밤 부랴부랴 떠났어요.”

“동경으로, 흐음─.”

나는 마치 내 자신의 계획이 맞아떨어진 것같이 무릎을 칠 듯이도 쾌연한 심사였다.

“거리에 더 무죽거리구 있을 면목두 없는 터에 몇 해 공부를 하겠다구 급작스럽게 차려 가지구 떠났죠. 선생님두 만날 체면이 없는지 뵙거든 소식을 전해 달라구 신신부탁을 하면서.”

“잘했어. 바로 내 바라는 것야.”

결말을 들으면 간단한 것이나 건도의 심경을 생각하면 내 심중도 복잡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가면서도 한편 유연히 솟는 기쁨을 금할 수는 없었다. 동무를 한 사람 그런 방법으로 구했다는 것이 반드시 내 유의 독단은 아닌 듯하며 그의 경우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와 의견이 같을 것을 믿는다. 술을 마시고 잔을 설매에게 권하면서,

“설매두 건도가 이제야 옳은 길을 잡았다구 생각하잖나.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 오든 봉지를 떼어봐야 알 일이지만 의원이니 무어니 때꼽쟁이 감투를 쓰구 가들거리는 것보다는 수가 몇 층이나 윗길인가.”

“저두 잠시는 섭섭하지만 잘하였다구 생각해요. 젊은 양반이 괜히 똑똑하다구 거리에서 들추스르는 바람에 까딱하다간 사람 버리기 일쑤죠. 뚝 떠난 게 잘하구 말구요.”

“그래 그를 뚝 떠나게 한 게 누군 줄이나 아나─꼭 한 표로 낙선됐 는데 그 한 표로 그를 떨어트린 게 누군 줄 아나.”

무엇을 말하려노 하고 설매는 나를 바로 바라본다.

“나라나. 나.”

“선생님이라니요.”

“건도를 떨어트려 동경으로 떠내 보낸 것이 바로 나야.”

“승낙하신 한 표를 주시지 않았단 말인가요.”

“왜 주기야 줬지. 그러나 건도를 쓰지 않았어.”

“어쩌나.”

“이름을 안 쓰구 장난을 쳤어. 투표지에다 작대기를 죽 내려 그었어.”

“위반행위를 하셨군요.”

“그게 건도를 생각하는 정성이라구 생각했거든. 건도의 이름을 썼댔자 오늘의 건도가 났겠나. 어쩌다 그 한 표가 맞혔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단 말야.”

“그러니 약속하신 한 표를─.”

“아무렴 모두 내 공이야. 내 공이 커.”

설매는 천만의외라는 듯 놀라는 표정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기쁜 지 슬픈지 분간할 수 없는 눈매로 뚫어져라 하고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왜. 설매는 반댄가. 내 한 일이 그르단 말인가.”

“천만에요. 그르기야 왜. 잘하셨죠. 청춘 하나 살리셨죠.”

“건도가 있었더라면 얘기를 하구 한바탕 껄껄껄 웃으려던 것이 그만.”

“편지로래두 제가 일러드리죠. 그간의 곡절을.”

“편지는 나두 할 작정이야. 좀 장황하게 내 공을 자랑하구 요 다음 만날 때 톡톡히 예를 받아내게.”

“선생님두 원 못하는 것이 없으셔.”

설매는 내 심중을 터득하고 그제서야 활달한 웃음을 지었다.

“자, 우리 둘이 건도 만세나 불러 줄까.”

병을 들어 설매에게도 따라 주니 그도 나와 마주 잔을 대었다.

“건도 만세!”

“건도 만세!”

가느다란 목소리로 합창을 하고 술을 머금을 때 동료들을 무슨 일인고 하고 우리들을 빙그레 바라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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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