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의 이름
1
[편집]옛날 옛적 어느 시골에 구차하디구차한 나무 장사 한 사람이 어여쁘디어여쁜 딸 하나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골 산속으로 사냥하러 나오신 상감님 앞에 가깝게 있다가 상감님이 듣고 좋아하실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궁리궁리하다가 별로 신통한 이야기가 없으니까 공연한 거짓말로
“저의 딸은 재주가 신통해서 지푸라기에서 황금실을 뽑아 내인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상감님께서도 황금은 대단히 좋아하시는 고로,
“으응, 그것 참 신통한 재주로군! 그럼 내일 아침에 서울 대궐로 딸을 데리고 오게. 내가 시험을 해 보겠으니.”
하고 일렀습니다. 공연히 쓸데없는 거짓말을 했다가 큰일 생겼다고 크게 걱정하였으나, 오라 하셨는데 안 갈 수도 없고 하여 이튿날 아침에 그 어여쁜 딸을 데리고 갔습니다.
상감님께서는 지푸라기를 그뜩이 쌓아 놓은 방에 나무 장사의 딸을 들여보내시고 실 뽑는 한 채를 주고,
“자아, 여기서 황금실을 뽑아라. 내일 새벽까지 다 뽑아 놓지 못하면 거짓말한 죄로 사형 (죽이는 것)에 처할 터이다.”
하고는 방문을 밖으로 꼭 잠그고 가 버리었습니다.
큰일 난 것은 색시였습니다. 아버지가 당치도 않은 거짓말을 해 놓아서 이 지푸라기에서 황금실을 뽑아내지 못하면 꼭 죽게 되었으니 큰일 나지 않았습니까. 하는 수 없이 그냥 지푸라기 앞에 쓰러져서 훌쩍훌쩍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노라니까 방문이 부스스 열리면서 조꼬만 조꼬만 세 살 먹은 어린애처럼 조꼬만 하얀 수염 난 늙은 작은이가 들어와서 색시의 어깨를 치면서,
“어여쁜 아가씨가 왜 이렇게 우나?”
하고 정답게 묻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씻고,
“상감님이 이 지푸라기에서 황금 실을 뽑아 놓으시라는데 나는 황금실을 뽑을 줄을 몰라서 운답니다.”
하니까 작은이는
“그럼 내가 뽑아 줄 것이니 그 대신 나에게 무얼 주려나?”
합니다.
“그 대신 내 은목걸이를 줄게요.”
하고 벗어서 주니까 그것을 받더니 실 뽑는 틀 앞에 앉아서 빙글빙글 세 번 돌리니까 누런 황금실이 가뜩 감기고 또 세 번 돌리니까 또 한 테 가뜩 감기고 이렇게 해서 밤새도록 하니까 거기 쌓였던 지푸라기가 모두 황금실이 되었습니다.
다 해 놓고 작은이가 없어진 후에 이튿날 새벽 때 상감님이 오셔서 보시더니 방 안에 가뜩 쌓인 황금실을 보시고 깜짝 놀라시면서도 대단히 기뻐하셔서 그날 밤에는 전보다 더 큰 방에 지푸라기를 가뜩 쌓아 놓고 내일 새벽 안으로 모두 황금실을 만들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색시는 큰일 났다고 또 훌쩍훌쩍 울고 있으려니까 또 어저께 밤에 왔던 작은이가 왔습니다.
“내가 뽑아 주면 그 대신 무얼 주려나?”
“그 대신 내 금반지를 줄게요.”
하고 금반지를 주니까 그것을 받아 넣고 또 실 틀 앞에 앉아서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짚을 모두 황금실로 뽑아 놓고 갔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상감님이 와서 보시고 대단히 기뻐하시더니 이번에는 그중 크고 넓은 방에다 짚을 가뜩 쌓아 놓고,
“이번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이것을 모두 황금실로 뽑아 놓아라.”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또 상감님이 가신 후에 그 작은이가 또 와서,
“이번이 마지막인데 내가 뽑아 줄 터이니 그 대신 무엇을 주려나?”
합니다.
“그렇지만 인제는 줄 게 하나도 없어요.”
정말 인제는 색시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작은이는
“그렇겠지……. 이번에는 아가씨가 상감님의 아내가 될 터이니, 아내가 된 후에 맨 처음 낳는 아가를 나를 준다고 약속하면 지금 내가 황금실을 뽑아 주지…….” 합니다.
색시는 당장에 그 황금실을 뽑아 놓지 않으면 내일 죽게 되겠으니까 이담에 상감님의 아내가 되거나 아가를 낳아서 어쩌거나 그런 것을 생각할 사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은이의 말대로 ‘그리하마.’ 약속하였습니다. 그 약속을 듣고 작은이는 좋아하면서 그 많은 짚을 하룻밤 사이에 모두 황금실로 뽑아 놓고 갔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어 상감님이 와서 보시고 대단히 기뻐하시면서 곧 좋은 날을 골라서 잔채를 여시고 나무 장사의 어여쁜 딸을 아내를 삼으셨습니다.
그 후 일 년하고 또 반년이나 지나서 전에 일은 모두 잊어버릴 때쯤 되어 전에 그 나무 장사의 딸, 지금 왕비는 구슬같이 귀여운 아드님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상감님과 왕비는 물론이요 온 나라 사람이
“인제 우리나라 왕자님이 나셨다.”
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데, 아무도 모르게 넌지시 왕비의 방에 그때 그 작은이가 들어왔습니다.
《어린이》 2권 1호 (1924년 1월호)
2
[편집]왕비가 아드님 낳은 것을 알고 어디서 온 줄도 모르게 왕비의 앞에 나타난 작은이는,
“약속한 대로 그 아드님을 데리러 왔으니 어서 달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말을 듣고 왕비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때에 약속하기는 이 다음 일이야 아무려면 어떠냐고 우습게 알고 한 일이 이제 이렇게 귀중한 왕자를 빼앗기게 되었으니 큰일 나지 않았습니까.
얼굴이 새파래져서 부르르 떨면서 왕비는 좋은 보물을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줄 것이니 왕자 아가를 달라지 말라고 애걸애걸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은이는,
“아니오, 이 세상에 제일 좋은 보물보다도 나는 당신의 아가를 가져가야 해요.”
하고 듣지 아니하므로 왕비는 그만 어찌할 줄 모르고 그 자리에 쓰러져서 울었습니다. 울고 울고 어떻게 몸부림을 하고 우는지 옆에서 보기에도 측은스럽게 울므로 작은이도 미안히 여겨서 우는 것을 말리고,
“그럼, 내가 사흘 동안만 참아 줄 것이니 사흘 동안에 내 이름을 가리켜 내면 아가를 데려가지 않기로 하지.”
하고 휘적 가버렸습니다.
왕비는 한결 마음을 놓기는 놓았으나 그 날 밤새도록 잠 한잠 자지 못하고 작은이의 이름을 가리켜 낼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보통 사람과 다르니까 이름도 이상하고 괴상스러울 터인데 그 이상하게 괴상스런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넌지시 사람을 내어 보내서 이 세상에 이상스런 이름이란 있는 대로 모두 알아오라 하였습니다.
이튿날 작은이가 와서 내 이름을 알았느냐고 물으므로 그 때 왕비는 미리 알아 두었던 이상한 이름을 모조리 불렀습니다. ‘태팽이 김 선달’ ‘꼬맹이 꽁 생원’ ‘신출이 신 첨지’ 하고는 아는 대로 자꾸 불러 보았으나 작은이는 일일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아니 아니, 내 이름은 다른데.”
하고는 또 그냥 휘적 가버렸습니다.
이렇게 못 가리켜 내서는 큰 탈 나겠다고 왕비는 사람을 내어 보내어 어저께보다 더 많이 이상한 이름을 수소문하여 모아 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또, 작은이가 와서 내 이름을 알았느냐고 물을 때에, ‘개똥이’ ‘쇠똥이’ ‘밑동이’ ‘막동이’ 하고 여러 가지 괴상스런 이름을 한이 없이 자꾸 불러 보았습니다.
그래도 작은이는 웃기만 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흔들고,
“아니 아니, 내 이름은 다른데.”
하고,
“내일 한 번 더 올 것이니 이번에 또 못 가리켜 내면 아가를 데려갑니다.”
하고 또 휘적 가버렸습니다. 자아, 내일 또 못 가리켜 내면 정말 큰일 난다고 그 날은 밤이 깊더라도 꼭 이상한 이름을 알아 가지고 오라고 왕비는 또 사람을 내어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날은 밤이 깊도록 돌아 오지 않고 그 이튿날 새벽에야 돌아와서 하는 말이,
“오늘도 별로 신기한 이름을 구하지는 못하였는데 해가 지고 밤이 또 깊어서 산 속에 짐승들도 잠이 들었을 때 제가 혼자 깊은 산 속으로 가노라니까 그 산 속에 조그만 집 한 채가 있고 그 집 앞에 화톳불을 사르고 그 옆에서 아주 어린이같이 조그만 영감님 하나가 외다리로 춤을 추면서,
- 오늘은 이렇게 밥 끓여 먹고
- 내일은 왕자를 데려 온다네.
- 아무도 모르는 내 이름은
- 외발다리 쪽귀신 외발 쪽귀신.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왕비는 얼마나 기뻐하였겠습니까.
“옳지 옳지, 그것이 분명히 작은이다.”
하고 한없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작은이가 와서 이름을 가리켜 내든지 아가를 내든지 하라고 졸랐습니다.
“도깨비 아니야요?”
“아니요.”
“그러면 외, 발, 다, 리, 쪽, 귀, 신.”
“응? 요술쟁이가 가르쳐 주었군, 요술쟁이가 가르쳐 주었어.”
하고 작은이는 골이 잔뜩 나서,
“에에 다 틀렸다. 다 틀렸어.”
하더니 왼쪽 다리를 딱 버티고 서서 두 손으로 바른 발을 붙잡아,
“응!”
하고 쑥 뽑아 들더니 소리소리 지르면서 왼쪽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날부터 왕비는 다시 졸리지 않고 편안히 아가를 길렀습니다.
《어린이》 2권 2호 (192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