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 연주에 대한 이승학씨의 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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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부족을 말해 주는 사람에게 대하여 스스로 반성할 줄은 모르고 도 리어 거기 대한 변해를 한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이러한 줄을 번연히 아는 나로서 구태어 지금에 이 붓을 드는 까닭은 그 동기가 어느 다 른 점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군이 평한 나의 작품은, 전 부가 『조선 가요 작곡집』중에 있는 것이오 이 작곡집은 중앙, 경성, 두 보육학교 이외에 수 3학교에서 교재로 써 올 뿐만 아니라 중앙, 경성, 두 보육 학교에서는 다같이 화성학을 교수하는 관계상 만일 이군의 소설(所說) 에 오류가 있다면 이것을 정정하는 것이 음악 학도에게 참고도 될 것이오 동시에 두 보육 학교 학생의 의문도 풀어 주게 될 것이므로 나는 때늦은 오 늘에 본의 아닌 붓을 들게 된 것이요, 또 이왕 붓을 든 바에 당야(當夜)의 소감을 한 두 마디 쓰려는 것이다.

이군의 단평은 나의 <옛 강물을 찾아와>에서 시작되었다. 시에 대하여 리 듬과 악센트를 조금도 무시치 않고 잘 진행되었으나 선율이 좀 부자연하게 들리는 곳이 있으며 종지(終止)에 가서 '섬도미난테'의 화음이 소음(騷音) 임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군은 노래를 듣고 그의 인상을 말한 것 이 아니요 나의 졸작 『가요 작곡집』을 들추어 보고 결점을 찾아보려고 애 쓴 것이 분명하다. 만일 들어서 평할 소양이 있는 이라면 종지의 '섬도미난 테'의 소음 운운 했을리가 만무한 까닭이다. 왜 그런고하니 책으로 볼 때에 는 종경부의 저음이 그 음계의 제4음이므로 '섬도미난테'로 잘못 보기도 쉽 지마는 귀로 들을 때에는 이것은 '섬도미난테'도 아니요, 소음도 아닌 까닭 이다. 만일 중앙이나 경성보육학교 학생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자기네의 화성학상 지식을 가지고 능히 이것은 '섬도미난테'가 아니다, '도미난테'의 7화음의 제3전회(轉回)라는 것을 명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군은 적어도 남의 작품을 평하는데 있어서 7의 화음이나 화음의 전회법도 모르고 있었다 면 그것은 너무도 언어 도단이오 또 부주의해서 잘못 보았다치기로서니 '섬 도미난테'란 것이 본시 주화음의 1개로 가장 잘 조화되는 음류임에도 불구 하고 소음 운운한 것은 알수없는 망설이며 또 이것이 설혹 '섬도미난테'라 고 하더라도 이군은 어째서 '섬도미난테'에서 '토닉'으로 가는 반 종지형의 종결법이 있는 줄은 몰랐던지 의문이다.

다음에 선율이 좀 부자연 운운한 것은 그의 주관적 평이니까 나의 언급 할 바 아니지마는 이군은 필경 그 악곡에서 '3화음의 알페지오' 형식으로 연쇄 된 음의 일부를 발견했던 모양이다. 작곡학 초보에 있어서 3화음의 음을 알 페지오 형식으로 쫓아서 선율을 만드는 것은 부자연하다 하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곡법 첫 페이지를 이런 지식으로 남의 작품을 함부 로 평하는 등의 경거(輕擧)는 조심해야 할 것이니, 가령 화성의 법칙 상 연 속 5도나 8도는 엄금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작곡가는 이것을 고의로 사용 하는 것이나, 또는 작곡의 초보에서 주의시킨 점을 무시하고 이것을 임의로 사용한 거장의 작품을 보고도 군은 선율이 법칙에 위반되느니 부자연하느니 말할 용기가 있는가.

그 다음에 <장안사>에 대한 평 중에 '선율의 중복' 운운은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알고 싶다. 이러한 애매한 말로서 어물어물할 바에야 구태어 남의 작품을 저상(狙上)에 올려놀 의사가 왜 생겼는지? <장안사>란 악곡 19소절 중에 간주부 2소절을 빼고 나머지 17소절이 비록 한 소절이라도 중복된 것 이 있거든(중복되었다고 불가한 것도 아니지마는), 군은 지적해 주기 바란 다.

그 다음에, "씨의 작품을 총괄해 보면" 해놓고는 민요풍으로 된 선율에 대 하여 반주는 배치되는 감이 난다고 했다. 민요풍의 선율에 대한 반주법이 따로 있다는 말도 과분한 나로서는 일찌기 언급한 바 있거니와, 설혹 있다 기리로서니 어떠한 점이 배치가 되는지 알고 싶다. 이군이여, 그날 밤연주 회에 연주된 나의 작품 중에는 벽두의 <봄노래>가 제법 형식을 갖춘 역작이 오 또 연주 소요 시간도 5분 이상 걸리는 악곡인즉 군이 이왕 붓을 들었다 면 의당히 여기에 대하여 일언을 불석(不惜)했을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나의 그날 밤의 대표작인 줄은 아무나 다 짐작했겠거늘 이 악곡은 아직 출 판되지 않은 관계상 군의 안전에서 트집거리를 찾아낼 기회를 주지 못한 것 을 군은 유감으로 생각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군 ─ 미지의 악우 (樂友)여, 나는 결코 군을 반박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 대는 그대의 단평 첫 머리에 우리 작곡계의 권위 운운 해 놓고서 권위되는 그 사람이라면 설혹 일부의 부족한 점이 있다치고라도 이러한 망평은 아니 할 것이어늘 하물며 자기의 무지에 가까운 오견으로 큰 결점이나 찾아낸 듯 이 호언한 것에 대하여 군의 태도를 좀더 자중하라고 권하고 싶고 또 그날 밤에는 나의 작품만도 대소 12곡이나 연주되었음에 불구하고 그 중에서 최 소한도의 소곡으로 이미 출판된 2,3곡만을 운위하여 나의 작품을 총괄 운운 함은 이것이 비록 군의 고의나 악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찬사를 올릴만한 일 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당야의 나의 소감을 한 두 마디 부가하련다. 합창과 기악곡은 별문 제로 하고 그날 밤 연주된 수 십의 악곡이 전부 암송(暗誦) 연주(演奏)된 중에 공교히 3인의 독창자를 부른 나의 작품만은 악보를 들고 부르게된 것 이 당야의 일반 청중에게도 이양(異樣)의 감을 주었을 것이요 더구나 그 악 곡들은 거개 시조에 부한 작곡이요, 학교에서 교재로 쓰기 위하여 작곡한 관계상 될 수 있는대로는 전주나 간주를 넣지 않은 것이므로 대개는 16소절 로부터 32소절 이내의 소곡들이었다. 그런데 독창자가 똑같이 중간부에서 고장이 생겨서 자작의 즉흥곡으로 어물거려 버렸다는 것은 비록 연습의 부 족이 원인이라 치고라도 작곡자인 나의 심중에는 불쾌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속도 기호를 도외시한 점에 이르러서는 그 악곡의 치명상이 되고 말았으니 소곡이면 소곡일수록 작곡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이려고 한 것 인지 세심의 주의를 게을리 아니 해야 될 것이어늘 말하자면 그날 밤의 연 주는 연습 부족 이외에 음부(音附)의 장단과 고저를 구별하여 논데 지나지 않았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작품 발표 연주라면 그것이 자기의 것이거나 남의 것이거나 작자의 생명과 함께 작품의 생명이 그 연주에 따라 서 좌우되는 것을 음악가 된 사람은 누구나 다같이 명심하기 바라는 바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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