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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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둘째 아들이 매촌(梅村)이라는 산골에 장가를 간 후로는 그를 부를 때 누구든지 ‘매촌댁 늙은이’라고 부른다. ‘늙은이’라는 위에다 ‘매촌 댁’이라고 특히 ‘댁’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이 늙은이가 은진 송씨(恩津宋氏)인 고로 송우암(宋尤菴) 선생의 후예라고 그 동리에서 제법 양반 행세를 해오든 집안이 친정으로 척당이 됨으로서의 부득이한 존칭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존칭으로 ‘댁’자를 붙여 준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아무래도 ‘매촌댁 늙은이’하면 의례히 ‘더럽고 불쌍하고 남의 일 해주는 거지보다 더 가난한 늙은이다’하는 멸시의 대명사로 여기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요즈음에 와서는 ‘매촌댁 늙은이’라고 ‘댁’자를 쑥 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졌다. 그래도 늙은이는 그것을 노엽게 생각할 만한 양반에 대한 애착심이 낡아빠져서 아무런 생각도 느끼지 않았다.

몇 해 전 그가 늘 허드렛일을 해 주러 다니는 그 동리 면장의 집 아들이 장난말 끝에

“늙은이의 이름이 뭐요?”

하고 물었다.

“히힝, 내 말인가. 늙은이가 무슨 이름이 있어!”

“그래도 왜 없어요. 똥덕이었소, 개똥이었었소?”

하며 놀려대는 것이었다. 그는 젊은 놈이 당돌하게 늙은이의 이름을 묻는다는 것이 와락 분해져서

“왜? 나도 예전에는 다 귀하게 큰 사람이요. 우리 할아버지는 송우암 선생의 자손이요 글이 문장이라오. 내 이름도 할아버지가 귀한 딸이라고 귀남이라고 지었다오!”

하며 자기도 옛 세월 같았으면 너희들은 감히 나의 집에도 만만히 못 들어올 상놈들이다 하는 뜻을 암시하여 양반 자랑을 한 것도 지금 생각하면 다우스운 일이었다.

“돈 없고 가난하면 지금 세상은 이런 것.”

이라 하는 것만은 날이 갈수록 더 똑똑하게 알려질 뿐이었다.

가난하다면 이 매촌댁 늙은이보다 더 가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거의 맏아들은 오래 전에 죽어버린 자기 남편과 마찬가지로 ‘돼지’라고 별명을 듣는 멍청이었다. 모든 일에는 돼지같이 둔하고 욕심 많고 철딱서니 없고 소견 없는 멍청이면서도 술 먹고 담배 피우는데는 일당 백이었다. 그래서 남의 집에서 품팔이라도 하면 돈이 손에 들어오기 바쁘게 술집으로 쫓아가는 것이었으므로 몸에 입은 옷이라고는 자칫하면 감추는 물건이 벌렁 내다보일 지경이었다 그 동생은 . 스물여덟에 남의 집에서 고용살이로 모았던 몇 량 돈으로 매촌으로 장가를 들고 얼마 남은 것으로 형 되는 ‘돼지’도 장가를 들여주려고 했으나 눈 빠진 사람이 아니고는 그에게 딸을 내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못난이 ‘돼지’라도 사위를 보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스무 살이나 먹도록 시집 못 보내고 둔 벙어리 색시의 아버지다. 돼지는 벙어리라고 하므로 생각할 인물이 못되어 ‘계집 얻는다’는 것만이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넓적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장가를 들었다.

늙은이는 아들 둘을 다 장가 보내고 나니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장가를 보내고 나니 걱정은 더 많아졌었다. ‘돼지’는 한날 한시로 술만 찾아다니고 벙어리는 매촌의 아내와 같이 있는 늙은이에게 와서 배고프다고 우는 것이었다.

매촌이는 장가 든 후에도 고용살이를 하는고로 그의 아내는 늙은이와 날만 새이면 남의 집으로 돌아다니며 일 해주고 밥 얻어먹고 해야 살아오므로 고용살이로 받은 돈은 그대로 남겨두게 되었다. 남겨둔다 하더라도 일 년에 십 원 내외이나 늙은이는 백만 재산같이 귀중히 여겨 몸에 걸칠 옷 한 가지 바꾸어 입을 것이 없는 것은 생각할 줄도 몰랐다. 아주 옷이 없어지면 산골로 돌아다니며 무명베 짜는데 품팔이를 한다. 산골에서는 예전과 같이 아직까지도 제 손으로 옷감을 짜는 것이다. 한 필을 짜면 무명베 몇 척씩을 삯으로 받아가지고 며느리와 한 가지 자기 한 가지씩 옷을 해 입는 것이었다.

때로는 벙어리도 데리고 다니며 일을 거들어주며 밥을 얻어 먹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밥 한 끼 얻어먹는다는 것이 무슨 큰 품삯이나 받는 것 같이 그들 셋은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해 주고 돌아다녔으나 그래도 별 걱정은 없었다.

“어서 몇 백냥 모이게 되면 그것으로 남의 논이나 밭을 대지(貸地)로 얻어서 제 농사를 해 보리라.”

하는 것만이 매촌의 부부와 늙은이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매촌이가 장가 든 지 사 년 만에 이럭저럭 뼈를 깎아 모은 돈이 이 원 모자라는 육십 원이나 되었다. 매촌은 그 돈 중에서 십오 원을 떼어 일간 토옥 다 허물어져가는 것을 사 가지고 생전 처음으로 자기의 집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늙은이도 기뻐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남은 돈 사십삼 원으로 대지를 하기 전에 홀딱 날려 보내고 말았다. 동리에서도 똑똑하고 잘 하는 신용 있는 매촌이었으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쥐고 보니 가뜩이나 마음이 벙벙한 데다가 돈 냄새를 맡고 다른 동리 알부랑 노름꾼들에게 속아 넘어서 하루 밤에 후딱 날려 보내고 만 것이었다. 매촌은 두 눈에 불이 켜고 뼈가 녹은 것 같이 쓰라리게 아까워서 죄 없는 담뱃대만 힘껏 두들겨 부수었다.

손에 쥐인 것 같이 믿고 믿었던 농사하는 그들의 꿈은 그대로 애처롭게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게 되었으므로 늙은이는 온 밤이 새도록 아들을 조르며 죽는다고 목을 놓고 우는 것이었다.

“죽일 놈들 도적놈들 내 돈 사십삼 원을 그대로는 못 먹을 것이다.”

매촌은 딱 버티고 앉아 이를 갈았다. 그러나 한번 낚긴 돈이 아무리 간장을 녹인들 도로 제 손 안에 들어올 리가 없는 것이었으나 그래도 매촌은 제 돈 찾으러 매일같이 노름판에 드나들었다. 그러는 중에 그는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동리 알탕 노름꾼으로 변하고 말았다. 단순한 매촌이었었던 만큼 그의 변화는 쉽고 빠른 것이었다.

늙은이와 며느리는 태산같이 믿었던 매촌이가 그 모양이 되고 오직 하나 희망이었던 제 농사 짓는다는 것도 꿈으로 돌아간 후 죽지도 살지도 못할 판에 끼여 한결같이 남의 집에 다니며 입만은 살아갔다. 일 년 열두달 남의 솥에 익혀 낸 것만 얻어먹는 그들이라 비록 일은 해주고 먹는 것이라 해도 동리 사람들은 공밥을 먹이는 것같이 그들을 천대하는 것이다. 늙은이에게서 ‘매촌댁’의 ‘댁’자를 쑥 빼고 ‘매촌댁 늙은이’로 붙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큰아들 돼지나마 이제는 심을 채울 나이도 된지 오래였건마는 그는 술 한 잔이면 제 목이라도 베어줄 작자였으므로 죽도록 일을 해 주고도 술만 얻어 먹고 그대로 오는 것이었고 벙어리는 또 저대로 밥만 얻어먹고는 죽을똥 살똥 일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중에도 불행이 하나 더 덮쳐 돼지는 그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것은 몇 날 술을 먹지 못하여 못 살 지경에 이른 돼지가 한 꾀를 생각해 가지고 술집에 가서 술 한 잔만 주면 나무 한 짐 해다 주겠다는 약속으로 먼저 술 한 잔을 얻어먹었다. 그리고는 갖다 줄 나무가 없어 나무베기를 엄검하는 사방공사(沙防工事) 해 놓은데 같이 한 짐 잔뜩 버혀지고 내려 오다가 일꾼 대장에게 들켜 나뭇짐은 나뭇짐대로 다 빼앗기고 죽도록 얻어맞고 술집 마누라까지 무한 욕을 먹고 한 까닭에 그는 그 동리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그 길로 매촌에게 왔으나 매촌이 역시 알부랑 노름쟁이라 하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는 수 없이 오리(五里) 가량 떨어진 동리에 가서 남의 집 곁방살이로 들어갔다. 방세는 내지 않더라도 그 집의 바쁜 일은 거들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당장에 입에 넣을 것이 없었으므로 벙어리를 두들기며 밥 얻어오라고 하는 것이었으나 벙어리는 이미 당삭이 된 커다란 배를 가리키며 서럽다는 듯이 우는 것이었다 그래도 돼지는 . 어떻게든지 해서 양식을 얻어올 궁리는 하지 못하고 벙어리를 조르다가 지치면 그의 어머니인 늙은이가 무엇이나 가져다 주지나 않나! 하는 택없는 꿈을 꾸며 뒹굴뒹굴 하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따금 담배 생각이 나면 들에 나가서 ‘씰랭이’의 꽃을 따다가 대에 넣어가지고 쥐새끼 소리를 내며 빨아대는 것이었다.

벙어리는 자기 뱃속에서 꿈틀 꿈틀하며 태아(胎兒)가 놀면 몸서리를 치며 무서워했다. “빌어먹을 년, 어린애가 그러지 않냐 겁은 왜 내?”

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나 알아듣지 못하고

“끙끙…….”

하는 소리로 울며 자기 배를 쿡 쥐어지르는 것이었다. 하루 한 끼도 얻어 먹지 못하는 그들이라 벙어리의 커다란 두 눈은 쇠눈깔같이 험악하였다. 늙은이는 어느 날 밤에 큰 호랑이 두 마리가 꿈에 보이더라고 하며 그 이튿날 아침에 매촌의 아내를 보고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오늘 내일 간에 너희 둘이다 아들을 낳을라는가 보더라…….”

하며 신기하다는 듯이 며느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매촌의 아내도 벙어리와 같이 당삭 있다던 것이다.

“한꺼번에 둘이 다 해산을 한다면 이 일을 어쩔까 작은 며느리는 그래도 해산 후에 먹을 것이나 준비해 두었지마는 저 벙어리를 어떻게…….”

혼자 생각하다 못해 노란 것, 흰 것, 검은 것이 한데 섞인 몇 가락 안 되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감아서 꽁쳐 매고 누덕누덕 집은 적삼에 걸레 같은 몽당 치마를 입고 빨리 집을 나섰다. 그는 그 길로 바로 단골로 다니며 일 해 주는 집들을 돌아다니며 사정 이야기를 하고 얼마만큼만 꾸어주면 나중에 그만큼 일을 해주리라고 애원을 해도 한 집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모다 그 늙은이는 참 그런 이들을 자식이라고 걱정을 해 먹일 것도 없을 줄 알며 어린애는 왜 만들었어?”

하고 비웃고 핀잔 주고 놀려주고 할 뿐이었다. 늙은이는 이즈러지고 뿌리만 남은 몇 개 남지 않은 이빨을 드러내며

“히에 ─”.

하고 고양이같이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웃으면 곯아 비틀어진 우붕 뿌리 같은 그 얼굴에 누비질한 것 같이 잘게 깊게 잡힌 주름살이 피며 주름 사이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살이 받고 지운 것 같이 여기저기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러게 말이지. 자식 놈들이 몹쓸 놈이지. 그저 벙어리가 불쌍해서 그러는 거요…….”

하고는 다시 한 번

“히에 ─”

웃어 보이고 돌아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또 한 집에 들렀다. 오랫동안 천대받고 학대받아 온 늙은이라 남들의 냉정한 것을 슬프게나 원망스럽게 느낄 줄 몰랐다. 그리고 낙심할 줄도 몰랐다. 마지막 들린 집에서는 쉽사리 동정을 하는 것이었다.

“에구, 불쌍해라. 아이는 하필 저런데 가서 잘 테이거던…….”

하며 쌀 한 되, 보리 두 되, 장 한 그릇, 미역 한 쪽, 명태 한 마리를 별 말 없이 내어주는 것이었다. 밥 한 그릇에 온 전신이 녹도록 고맙다고 생각하는 이 늙은이라 이렇게 과분한 적선에는 도리어 고마운 줄 몰랐다. 그의 고마움을 느끼는 신경은 너무나 한도가 적었던 까닭이라 그의 신경은 모조리 감격에 차고 이 여러 가지에 대한 감사를 일일이 다 느끼기에는 그의 신경이 모자랐던 것이다. 늙은이는 채 머리만 절래 절래 흔들며 연방 혀 끝으로 콧물을 잡아뜯더니 닦았다. 아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는 여러 가지를 바구니 속에 넣어가지고 머리에 이었다.

그 집을 나와 한참 돼지 있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다가 그는 힐끔 한번 뒤를 돌아보고는 얼른 바구니에서 명태를 끄집어내어 품속에 감추었다.

“이것은 작은 며느리 해산하거든 주지.”

그는 벙어리만 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명태는 감추었다가 작은 며느리를 주려는 것이었다.

돼지가 있는 방 지게문을 덜컥 열어 젖히니 방안에서는 더운 짐과 퀘퀘한 냄새가 물씬 솟았다. 돼지는 혼자 방에 누웠다가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그것 뭐요. 배고파라!”

하며 힐끔 아래서부터 옆으로 늙은이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모양이 정말 돼지 같아서 늙은이는 속으로 쓴웃음을 쳤다. 방 안 모양도 돼지 우리 같았거니와 그의 느린 동작과 조그만 눈이 살그머니 흘겨보는 상은 병들은 돼지 그대로였다. 다만 한 가지 참 돼지처럼 살이 툭툭 찌지 않은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늙은이는 지긋지긋하게도 ○○ 망나니인 두 아들을 원망이나 미워하는 것도 이제는 그만 지쳐서 그대로 잠자코 방으로 들어갔다.

“그것 뭐요!”

입 가장자리가 뽀얗게 침이 타 붙은 것을 손등으로 슬쩍 닦으며 배고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재차 묻는 것이었다.

늙은이는 혼자 중얼거리며 연방 채머리를 절래 흔드는 것이었다. 작은 며느리는 해산하면 먹는다고 쌀 다섯 되 보리 한 말을 준비해 두기라도 했거니와 벙어리는 지금 당장에 굶고 있는 판이니 그 일이 난감하였다.

“무엇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젊은 것이 해산을 하면 무엇을 먹으려고 밤낮 이러고만 있어.”

늙은이는 목에 말라붙은 것 같은 적은 소리로 노하지도 않고 곱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일하려 갈라고 해도 배고파서…….”

“그렇다고 누웠으면 하늘에서 밥이 떨어지냐. 젊은 것은 어디 갔어?”

“뒷산에 나물 캐러 갔는가…….”

늙은이는 네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덕덕 긁으며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이것은 해산하면 먹일 약(藥)이다. 손도 대지 말아라!”

하고는 가지고 온 바구니를 윗목에 밀어놓고 밖에 나와 짚을 한숨 쥐어다가 그 위에 눌러 덮었다.

“정말 이것은 손을 대지 말아라. 아이를 낳으면 먹일 약이다.”

늙은이는 열 번 스무 번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음! 그래 웬 잔소리는…….”

하고 돼지는 온 몸뚱이의 껍질만 남겨두고 모든 정신이 그 바구니 속에 쏠리어 늙은이의 말은 지나가는 바람소리로만 여기는 것이었다. 늙은이는 돼지의 속마음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당부해도 그 말을 실행할 돼지가 아닌 것도 잘 알았으나 조금이라도 아껴 먹도록 하라는 뜻으로 자기도 몇 번이나 부탁만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 없는 ‘축신이’ 돼지라 할지라도 사십에 가까운 사나이에게 양식을 약이라고 말하는 자기가 서글프기도 하였거니와 그들에게 있어서는 양식이라는 것은 생명줄을 이어 주는 귀하고 중한 약이 아니고 무엇이냐. 밥을 약과 같이 먹어야 하는 너희들이 아니냐 하는 생각도 났으므로 늙은이는 다시 또 입을 닫지 않고 그 방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행여나 벙어리와 마주칠까 해서 명태 한 마리는 품에 숨긴 채 왼편으로 그 위를 누르고 빨리 돌아왔다. 작은 며느리는 일하러 나가고 없었으므로 부엌 한 옆에 구덩을 파고 넣어둔 쌀 항아리 뚜껑을 열고 명태는 쌀 속에 파묻어 두었다. 그리고 자기도 어디 가서 좀 일을 해주고, 점심을 때우리라는 생각으로 그대로 집을 나왔다.

그는 그 길로 면장의 집으로 갔다.

“늙은이, 어서 오소. 이 애가 웬일이요!”

하며 면장의 마누라는 세 살 먹은 계집애를 안고 마루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판이었다.

“왜? 어디가 아픈가?”

늙은이는 얼른 마루로 올라가서 익숙한 솜씨로 어린애의 이마와 가슴을 만져보았다.

“지금까지 뜰에서 놀던 것이 갑자기 이 모양이야!”

어린애는 정말 열이 나고 괴로운 울음을 우는 것이었다.

“별일 없어요. 어디 봅시다.”

늙은이는 어린애를 받아 안고 오므려진 입술을 더 오므려 가지고 가만가만히 가슴과 배를 만지는 것이었다. 평생에 하도 많이 남의 집을 들어 다닌 늙은이라 남의 앓는 것도 많이 보았거니와 고치는 것도 많이 보고 듣고 해 온 것이라 지금에 와서는 웬만한 병은 자기의 생각나는 대로 조약도 가르쳐 주고 ‘객귀’도 물어주고 채정도 내려주고 하여 신출내기 의원보다 동리에서는 더 믿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면장의 마누라도 늙은이에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는 것이었다.

과연 어린애는 이윽고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토하기 시작하더니 한참만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 늙은이는

“후 ─.”

한숨을 하고 툇마루로 나와 앉으며,

“한숨 포근히 자고 나거든 노글노글한 조당수나 끓여 먹이고 저녁도 먹이지 말고 그대로 재우면 별 일 없을 것이요.”

하였다. 마누라도 안심한 듯이 늙은이에게 줄 밥을 참견하였다. 늙은이는 밥과 반찬 찌꺼기를 얻어 가지고 툇마루 한 옆에서 씹지도 않고 묵턱묵턱 삼키기 시작했다.

“에구, 늙은이. 천천히 좀 먹으면 어떤가. 그렇게 막 삼켰다가 걸려 죽으면 어째…….”

마누라는 늙은이의 밥 먹는 양을 바라보다가 주의를 시키는 것이었다.

“히엥 ─.”

늙은이는 애교 있는 웃음을 웃고 간청어 꼬리를 뼈째로 모조리 묵턱 베어 우물우물하더니 입이 움쑥하며 꿀꺽 소리를 내고 삼키는 것이었다.

“에그머니, 뼈를 막 먹네.”

“히엥! 걱정하지 마소. 죽어도 먹다가 죽는 것은 복이 아니요?”

그는 그의 버릇인

“히엥”

하는 고양이 웃음 같은 소리로 한 번 더 웃어 보이고 연방 주먹만 한 밥 숟가락이 오르내렸다.

“저 늙은이의 창자는 무쇠로 된 것이야!”

마누라는 자기도 침을 삼키며 찬장에서 먹던 김치찌개를 더 내어주었다.

늙은이는 지금까지 먹으라고 주는 것을 사양해 본 적이 없는 판이라 주는 김치도 넙적 받아 국물부터 후루룩 삼켜 보는 것이었다. 그의 몸뚱이는 곯아 비틀어졌어도 오직 그의 창자만은 무쇠같이 억세고 든든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배앓이를 해 본 적이 없는 그이었다. 그 날은 이것저것 거들어 주고 저녁까지 얻어먹고 돌아 나올 때 마누라는 늙은이의 치마자락에 보리 두어 되를 부어 주었다.

“에구, 이것은 왜?”

하면서도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 보리를 가져다가 헌 누더기 조각에 싸 가지고 며느리 몰래 부엌 나무단 밑에 감추었다. 벙어리의 양식이 없어지면 가져다 주려고…….

그런지 며칠 만에 벙어리가 해산 기미로 누웠다는 통보를 듣고 부랴부랴 달려간 때는 오정이 훨씬 지나서이다. 방문을 덜컥 열어젖히니 벙어리는 죽겠다고 머리를 방구석에 틀어박고 끙끙하며 손으로 벽을 쥐어뜯고 있고 돼지는 조급한 듯이 연기도 나지 않는 담뱃대만 쪽쪽 빨며 쥐새끼 소리를 내고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저러냐?”

늙은이는 방에 들어가 앉으며 아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몰라요. 어제 밤부터 아직까지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네요!”

늙은이는 벙어리의 고통을 잘 알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이 없어 속히 어린애를 낳지 못하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자

“전에 가져다 준 것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뭐? 그거 다 먹었지.”

“뭐? 언제?”

늙은이는 기가 막혔다. 그까짓 쌀 한 되 보리 두되를 먹는다니 입에 붙일 것이나 있었으리요마는 미역까지 다 먹었다는 말에 와락 속이 상했다.

“빌어먹을 놈, 그것을 죄다 먹다니…….”

기운이 없어 아이를 속히 낳지 못하고 끙끙 하는 벙어리를 앞에 두고 늙은이의 가슴은 어리둥절하였다 . 우선 조금 남아 있는 장으로 솥에 찬물 한 바가지를 붓고 물을 끓여 벙어리에게 두어 숟갈 먹였더니

“아버바!”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방바닥에 새빨간 고깃덩어리가 떨어지며

“으아!”

하고 힘 있는 첫소리를 쳤다. 늙은이는 탯줄을 끊으려 해도 가위도 아무것도 없어 생각하는 판에 돼지가 달려들어 입으로 탯줄을 석컥 베었다. 방바닥이라 해도 문 앞에 다 떨어진 사리 자리가 손바닥만치 깔려 있을 뿐이었으므로 어린애는 맨 흙 위에 그대로 누어 새빨간 팔과 다리를 꼬물락거리며 입술을 오물락거리고 있었다. 늙은이와 돼지는 얼른 어린애의 다리 사이를 헤치고 보았다. 조그만 무엇이 달리어 사나이라는 것을 뚜렷이 증명하고 있었다. 늙은이는 갑자기 두 팔을 덜덜 떨며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하는 수 없이 손빠르게 자기의 치마를 벗어 어린애를 싸가지고 자리 위에 눕혔다.

벙어리는 죽은 것 같이 늘어져 누워 있었다. 돼지는 뜻도 없던 말소리를 혼자 분주히 중얼거리며 담뱃대를 쥐었다 놓았다 벙어리를 만져보았다 하는 것이었다. 늙은이는 잠시 가만히 앉아 예순셋에 처음으로 보는 손자라 그런지 그의 가슴은 감격에 꽉 차가지고 웬일인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연해서 안태(胎)를 낳자 그만한 피를 감당할 수 없어 떨어진 ‘가마니’ 쪽에다가 태를 움켜 담아 돼지를 시켜 뜰 한 옆에 가서 불사르라고 시켰다.

“저것을 무엇을 먹일까!”

늙은이는 자기 집 나무 밑에 감추어둔 보리 두 되가 생각났으나 지금 그것을 가지러 가려 하니 몸을 빼서 나갈 수 없고 돼지를 시키려니 작은 며느리에게 들킬까 걱정이 되어 자기 팔이라도 베이고 싶었다. 그럴 때 집주인 마누라가 이 모양을 알아채고 쌀 한 그릇을 주는 것이었다. 늙은이는 그것으로 밥을 지어 벙어리에게 크게 한 그릇 먹이고 남는 것은 바가지에 긁어 담았다.

“그 년 어린애 낳고 아프지도 않나베. 밥이야 억세게 먹어댄다. 나도 배고파 죽겠는데. 제 ─ 기.”

돼지는 뜰에서 태를 태우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늙은이는

“빌어먹을 놈, ‘축신이’같이.”

하며 바가지의 밥을 덜어서 돼지를 주고 자기는 손가락에 묻은 밥알만 뜯어 먹었다. 어린애도 만지고 벙어리 몸도 단속하는 사이에 해는 저물어 갔다.

그는 남은 밥을 벙어리에게 먹여놓고 차마 어린 것을 덮어 준 치마를 벗기지 못해 떨어진 속옷 바람으로 어둡기를 기다려 자기 집으로 보리를 가지러 가는 것이었다.

작은 며느리가 알면

“보리는 누구 것이요. 왜 숨기었다가 가져가요.”

하고 마음을 상할까 하여 그는 가만히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매촌이는 또 노름방으로 갔는지 며느리 혼자서 깜박거리는 호롱불을 켜고 옷끈을 끌러놓고 ‘벼룩’ 잡는다고 부시직거리고 있었다. 늙은이는 자취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나무 밑에 손을 넣어 살그머니 보리 꾸러미를 끌어내었다. 진작 도로 나오려다가 조금 멈칫 하고 생각한 후 재주 있는 ‘쓰리’와 같은 손짓으로 쌀 항아리 속에 손을 넣었다. 전날 쌀 밑에 감추어 두었던 ‘명태’가 쌀 위에 쑥 빠져나와 있었다.

“아이구, 며느리가 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얼른 항아리에서 손을 빼어 집을 빠져나왔다. 보리 뭉치만을 옆에 끼고 번개같이 달려가서 돼지에게 갖다 주고

“이것으로 죽을 쑤어 너는 조금씩만 먹고 어린애 어미만 먹여라!”

고 몇 번이나 당부하고 자기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텅 빈 뱃가죽은 등에 가 붙고 입안과 목안은 송정으로 붙인 것 같이 입맛을 다시면 찢어지는 것 같이 따가웠다.

“저까짓 보리 두 되로 몇 날을 지탱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의 두 다리는 가리가리 힘이 빠지고 돼지와 매촌이의 못난 것이 새삼스럽게 얄미웠다. 그러나 눈 앞에는 오늘 난 아기의 두 다리 사이에 사내란 또렷한 그 표적이 어릿어릿 나타나고 사라지고 하였다. 그는 이윽히 걸어가는 사이에 몹시 뒤가 마려워서 잠깐 발길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본 후 속옷을 헤치려다가 무엇에 놀란 듯 재빠르게 걷기 시작하였다.

‘사람은 똥힘으로 사는데…….’

하는 것을 생각해 내었던 것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들 밥 한 술 남겨 두었을 리가 없으며 반드시 내일 아침까지 굶고 자야 할 처지이므로 지금 똥을 누어 버리면 당장에 앞으로 거꾸러지고 말 것 같았던 까닭이었다.

그는 흘러내리는 옷을 연방 움켜잡아 올리며 코끼리 껍질 같은 몸뚱이를 벌름거리는 그대로 뒤가 마려운 것을 무시하려고 입을 꼭 다문 채 아물거리는 어두운 길을 줄달음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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