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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

무엇인지 모를 꿈을 훌쩍 깨면서 순애는 히스테리칼하게 울기 시작하였다. 꿈은 무엇인지 뜻을 모를 것이다. 뜻만 모를 뿐 아니라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검고 넓은 것밖에는 그 꿈의 인상이라고는 순애의 머리에 남은 것은 없다. 그는 슬펐다. 그는 무서웠다. 그 꿈의 인상의 남은 것의 변화는 이것뿐이다. 탁탁 가슴에 치받치는 울음을 한참 운 뒤에 눈물을 거두고 그는 전등을 켰다. 눈이 부신 밝은 빛은 방안에 측 퍼져 나아간다.

(아직 안 돌아왔을까?)

생각하고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맥난 손으로 짐작으로 풀어진 머리에 비녀를 지르고 두 팔을 무릎 위에 털썩 놓은 뒤에 졸음 오는 눈을 감았다. 그의 눈에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그러면서도 어떤 때에는 아무런 말이라도 순종하는 벌써 스물 둘이 되었지만, 아직 외도란 하여 보지도 못한 그의 오라비 동생의 네모난 얼굴이 나타났다.

「꼭 돌아왔다.」

그는 중얼거리고 눈을 떴다. 그에게는 밸은 좀 세지만 그렇게 정직하던 애가, 순애 그에게 말하라면 남자란 다—하면서도 또 차마 사람으로 나서는 못할 일—외도를 하리라고는 사실은 어떻든 생각은 안 하려 하였다. 남에게 눌러서만 살던 사람은 다 그렇거니와 순애도 무슨 일이든 사실보다 자기 본능에 대하여 자신이 더 많았다.

그러나— 여기도 순애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의 오라비 P의 이즈음 행동에 대한 한 점의 의혹이 있다.

P에게는 이즈음 알지 못할 벗이 흔히 찾아왔다.

그들은 모두 중절모를 빗쓰고 키드 구두 소리 부드럽게 순애 같은 가정의 여자에게도 한 번 보아서 건달인 줄 알 만한 사람들이었었다. 그들이 와도 집안에서 P와 무슨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고 언제든지 P를 더불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P도 이즈음은 모양 차림이 차차 심하여지며 어떤 때는 술이 잔뜩 취하여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

순애는 어떠한 사실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에는 역시 자기 본능이 나왔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치맛고름을 매면서 문을 열고 나섰다. 발은 달빛은 푸르게 적적히 어두운 뜰에 비치고 있었다. 순애는 짧게 비치는 검은 자기 그림자와 함께 발자국 소리 안 나게 가만히 걸어가서 건넌방 툇마루에 무릎을 꿇고 바늘구멍만한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안 돌아왔다.」

좀 있다 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오라비는 순애가 본 바와같이 아직 안 돌아왔다. 이십 사 촉의 밝은 전등은 빈틈없이 그 방을 비추고 있고, 순애 자기가 펴놓은 자리는 아직 그냥 적적히 방안에 벌려 있으며 그 머리맡에는 책상과 그 밖의 몇 가지가 규칙 있게 놓여 있으되, 그 방의 주인인 순애의 오라비는 아직 안 돌아왔다.

순애는 그 구멍으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전등빛에 반사되어 똑똑히는 안 보이지만 흐릿하게 시침이 Ⅱ와 Ⅲ 사이에 있으니 두 시는 지난 것이 똑똑하다.

그것뿐 아니라 거리에 웅웅하며 지나다니던 전차 소리도 없어지고 하늘을 쳐다보아야 하늘에 비치는 시가의 빛도 없으니 밤은 아무래도 깊었다.

그런데 그의 오라비는—한 번도 외박하여 본 일이 없는 그의 오라비는 역시 자기의 있을 곳에 있지 않다.

(어찌되었노?)

하다가 그는 화닥닥 악 소리를 내며 그 방—오라비의 방안에 뛰어들어가서 오라비의 이불을 훅 뒤집어썼다. 가슴의 뚝뚝하는 소리는 이불까지 들썩거리게 한다. 그는 자기의 치마를 누가 붙든 것 같아서 놀라 뛰어 들어온 것이다.

한참 뒤에도 아무 일 없으므로 그는 이불을 벗고 얼굴을 내어놓았다.

집안에는 중대문 밖에 행랑방에 노파 하나있는 것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순애가 있는 방에서는 이십 사 촉 전광이 빛나고 있었다.

문밖에서는 처량히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순애의 마음에는 무서움보다 더 떠오르는 끝없는 외로움을 깨달았다. 마치 언어 불통하는 나라에 혼자 온 객창의 첫밤과 같이 쓸쓸함과 외로움을 그는 마음껏 깨달았다. 그는 방을 둘러보았다. 먼지 하나 없이 말끔히 쓸어 놓은 방안은 전등빛과 함께 한층 더 방안을 쓸쓸하게 한다. 그는 일어나 불을 끄고 빨리 드러누웠다. 불을 끄니 좀 낫다.

높은 하늘에서는 남으로 기러기 소리가 이상하게 밤공기를 파동하여 떨리면서 날아온다.

(어찌되었단 말인고? 아직 안 돌아오구?)

그는 생각하였다. 이때에 순애는 P의 외도를 한 푼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단정하였다. 순애는 빛은 약하지만 수소(水素)와 맹열로써 가슴을 태우는 듯한 시기를 깨달았다. 자기의 자신, 믿음, 바람은 온전히 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거기 대한 태우는 시기를 깨달았다.

(남자란, 남자란……)

그는 남자란 할 수 없다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두 해 전에 죽은 자기 남편을 생각하여 보았다.

사회에서는 그의 남편이던 사람 S에게 대하여 일반 경의를 나타내었다. S가 동경서 어떤 학교를 마치고 귀국하매 어떤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S로 말미암아 한동안 경쟁까지 하였다. 그때 갓 시집갔던 순애는 물론 이것을 훌륭한 영예로 알고 자기 경우에 끝없이 만족하였다. 그뒤에 순애는 S가 여기저기 훌륭한 연회에 청대를 받고 신문 잡지에 S의 글이 나는 것을 보고 자기 벗들과 대할 때마다 나를 보라는 태도로 접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난 뒤에 순애의 본 S는, 가정 이라는 안경으로 본 S는 순애에게는 칭찬할 한푼의 가치도 없었다. S는 자기 몸이 약한 것도 돌보지 않고 순애에게 대하여 극도의 정욕을 요구하였다. 순애가 때때로 그를 위하여 거절을 할 때는 그는 성을 내며, 여자에게는 제일 큰 욕을 하며, 이러하니까 내게 거절을 당한다고 이론을 붙이고 하였다. 순애도 무론 S가 순애 자기의 품행이 정당한 줄 안다고는 믿었지만, 이런 소리는 극도로 온화하고 가정적인 순애에게는 참기 어려운 욕이었었다. 그는 때때로 몰래 울었다. S는 큰 말을 하면서도 실행을 못하는 사람이었었다. 이것도 순애의 S의 인격을 인정치 않는 한 점이다.

그렇지만 제일 순애가 S의 인격을 인정치 않는 점은 S도 역시 사나이. 예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여자—자기 소유로 완정(完定)된, 다만 한 여자에게 만족치 않는 S는—순애에게 철저적 육욕의 만족을 얻지 못한 S는 그의 속한 사회가 사회라 자연히 여러 여자에게 접하게 되었다.

(아 남녀란 왜 그렇단 말이냐.)

그는 생각하였다 가뜩이나 몸이 약하던 S는 차차 더하여 가다가 잊히지 않는 이 년 전 오월 열 하룻날, 갑자기 몸에 경련이 일기 시작하여 정신없이 사흘이 지나다가 사흘 뒤에 죽어 버렸다. 그의 병은 과도의 색에서 나왔다 한다.

그렇지만 순애에게는 잊히지 않는 말이 하나 있다.

「그 사이 당신에게 죄를 많이 지었읍니다. 염치 없긴 하지만 용서해 주셔요. 순애씨, 안심하고 죽어도 좋습니까?」

시들시들 입으로 한 이 한마디의 말.

아직껏 순애가 시집도 다시 안 가고 그에게 정절을 지킨 것도 그 말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남의 사정도 모르고 공연히 헛소리를 내기 좋아하는 세상 사람은 무어라든지, 임종의 S는 신성하고 정당한 순애의 남편이었었다. 이 한마디는 전의 잘못을 용서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일밖에 없다. 순애로서 보면 그런 남편의 병간호를 마음껏 지성껏 안 한 것이 후회까지 난다. 바보, 네게 네 남편을 원망할 자격이 있느냐.

이제껏 원망하던 그 꼴은 어떠냐. S와 같은 사람, 그래도 조선 사회에 얼마의 공헌이 있는 사람의 아내 될 만한 자격이 네게 있느냐? S가 그만큼이라도 네게 대접한 것이 황송치 않느냐? 순애에게는 결혼 당시의 재미있는 추억이 생각났다. 힘있는 붙안음, 단 키스, 속삭임—그렇다. 너는 넓은 바다의 조그마한 배와같이 고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외로이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 남편을 위하여 세상에서는 무슨 소리를 하든 지성껏 정절을 지켜서, 아니 어떻든 네 남편의 임종의 말, 그 한마디는 빛의 사정 모르는 세상이 어떻다하든 잊었다는 안된다. 살았을 때의 몇 만의 회개보다도 귀한 임종의 한마디 자복을 너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아까—뿐 아니라 이즈음 항상 네가 하는 꼴, 생전의 모든 죄를 다 씻고도 여유 있는 임종의 한마디의 말, 그것을 잊고 그렇게 참혹히 불쌍히 고민으로 안심치 못하고 세상을 떠난 네 남편을 아직껏 용서치 못하고 자꾸 그의 죄를 탐색하는 그 꼴, 네 꼴은 어떠냐?

임종의 순결한 네 남편을 너는 벌써 잊었느냐?

순애에게는 어렴풋하고도 똑똑히, 자기 남편의 모양이 똑똑히 보였다. 원고상에 향하여 앉아서 무거운 에보나이트 펜을 쥐고 왼손으로 갓 돋아나는 깔깔한 턱의 수염을 쓸면서 오른편 눈을 왼편 눈보다 곱이나 크게 뜨고, S에게 말하라면 〈모든 사색의 출발의 근원〉이라는 벽에 붙여 놓은 잿빛 가진주(假眞珠)를 들여다보는 S의 우아한 모양이 보였다. 그러나 여기도 순애는 S의 뒤에 있는 더러운 여성의 피를 보았다.

(그렇지만 아—남자란.)

시계가 세 시를 친다.

(세 시가 되는데 어쩌면 아직 안 돌아와?)

귀뚜라미 소리는 그냥 처량히 난다.

한참 뒤에 순애는 어느덧 잠이 들었다. 잘 동안에 꿈을 꾸었다. 어떤 큰 극장 같은 데다. 무대는 대단히 밝고 관람석이 끝없이 어둡다. 보이지 않지만 사람은 가득 찬 것 같다. 무대에는 어떤 별한 댄스가 시작되었다. 그 춤추는 사람 가운데는 순애의 오라비 P도 있었다. 역시 관람석은 어둡다. 좀 뒤에 댄스는 끝났다. 극장이 터져 나갈 만한 박수 소리가 난다.

한분, 두분, 두분 반, 세분, 다섯분, 십분, 박수 소리는 그냥 난다. 그때에 누가 조그마한 소리로, 그렇지만 똑똑한 소리로,

「손뼉칠 것이 무어냐?」

했다. 일제히 손뼉이 멎었다. 장내에는 어떤 알지 못할 무서움이 찼다. 사람은 다 없어졌다. 순애도 무서워서 밖에 나왔다. 밝은 하늘은 가을날보다도 더 밝으며 땅은 끝없이 어두웠다. 줄기줄기 밝은 빛은 내리비치되 땅은 역시 어둡다. 그는 무서워서 집으로 가려고 어딘지 모를 길을 한없이 한없이 걸었다.

곁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되 인적은 없다. 하늘은 점점 더 빛난다. 그는 무서워서 알지도 못하는 길을 이리 다녔다 저리 다녔다 한참 돌다가 저편에서 도우—하는 일본 두부장수 소리가 나므로 그리로 뛰어가려다가 훌쩍 깨었다. 온몸은 찬 땀으로 적시었다. 저편 길에서는 종소리와 함께 도우—하는 두부장수의 소리가 들리고 창으로는 검은 새벽빛이 비친다. 그는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났다. 새벽 첫 전차 소리가 웅하니—들린다.

2[편집]

사흘 뒤에야 P가 돌아왔다.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빨리 보면 P와 비슷한 사람이로다 하기 이상으로는 보기 힘들도록 변하여왔다. 붉은 빛은 안 보였지만 그래도 건강을 나타내던 P의 얼굴은 멀겋게 중병 앓은 사람같이 변하였고, 이전에는 그리 보이지 않던 광대뼈가 눈에서 급각도로 두드러져서 마치 P의 방에 걸려 있는 그림의 못 곁에 있는 봉오리와같이 되었다.

사흘 동안에 사람이 이와같이 변하는가 생각되도록 변하여 돌아왔다. P는 누구한테 들키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빨리 머리를 숙이고 순애의 방앞을 지나서 자기 방에 들어갔다.

순애는 P가 들어서는 순간, 우뚝 일어섰다.

문걸쇠를 잡았다. 그렇지만 종내 문은 못 열었다. P가 문을 닫는 소리 들릴 때에 순애는 유리에 이마를 대고 건넌방을 보았다. 그러나 P의 중하게 앓는 소리가 덜썩 날 때에 순애는 마지막 결심으로 문을 연 뒤에 더벅더벅 그 방으로 건너가서 이전에 아직 안나타내었던 엄정한 태도로 주저앉았다.

P는 이마를 책상에 대고 있다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잠깐 누이의 얼굴을 쳐다본 뒤에 도로 책상에 엎디어 버렸다.

(무얼 웃니?)

생각하면서 순애는 P가 자기를 쳐다볼 동안 억지의 웃음을 웃다가,

(꼴 봐라.)

자기를 비웃는 뒤에 속으로 무섭도록 엄하게 되어서 엄한 소리로 P에게 대하였다.

「그 사이 어디 갔었니?」

P는 맥나는 듯이 머리를 들고 순애를 쳐다본 뒤에,

「에—머리 아프다.」

하면서 다시 머리를 숙였다.

「머리가 왜 아플까?」

순애는 온화한 소리로 대답하였다. 순애는 속이 꿀떡꿀떡하여 왔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는 것도 속이 꿀떡거리지만 그에게는 온화한 소리로 대한 것이 더 꿀떡꿀떡거렸다. 이런 때에 온화한 소리가 어디가 필요 있을까? 좀 더 엄하게 책망을 하여야겠다. 그애도 사람이라면 이 년 전에 부모를 여읜 뒤에 아직껏 자기를 보호하여 준 내게야 설마 반대를 하랴. 그에게 대한 전 책임은 내게 있다.

순애는 좀 잔혹하게 P를 찔렀다.

「어떻든? 재미있었지?」

P는 또 잠깐 순애를 흘겨본 뒤에 머리를 다시 숙였다. 순애는 돛에 바람 받은 배다. 여기까지 와서는 일직선으로 이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두 P야, 못써! 아직 스물 소리 듣는 애가 장가두 가기 전에 그래서 쓰나? 너, 네 형님 못 봤니? 그러다 종내 세상까지 떠나구.」

「누님, 자리 좀 펴 주오. 머리가 아파서……」

P는 책상에 머리를 댄 대로 말한다.

「응, 깔아 주지. 그전에 내 대답 하나 해라.」

「무슨 대답이오?」

P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너 이담에두 그런 일 하겠니, 안 하겠니?」

「무슨 일이요?」

「외박.」

P는 무서운 눈으로 순애를 흘겼다. 순애는 머뭇머뭇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손 앞에 있는 종잇조각으로 새끼를 꼬기 시작하였다.

「외박이면 왜요?」

좀 뒤에 P는 물었다. 순애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 이르렀다.

「그래두 너의 형님두 보아라. 아버지두 그렇구, 모두 그런 일로 아버지는 오십 미만에 세상을 떠나시구, 너의 형님두 한창 좋은 나이에 없지 않았니?」

「자리나 펴 주셔요. 싫으면 내 깔지.」

하면서는 허둥허둥 일어서서 자리를 채어다가 확 폈다. 순애는 갑자기 눈이 어두워지면서 화닥닥 뛰어서 자리 위에 덜썩 올라가 앉았다.

「못한다 못해! 내가 펴주기 전엔 못해! 나는 너를 네 형님과 같이 안되게 하려구……」

「나도 형님 그 병장이와 같단 말이에요?」

P는 고함쳤다.

「무얼!」

순애는 숨이 딱 막혔다.

「동생네 집에서 얻어잡숫는 것만 해두 고마운 줄 알아 두소. 남이 아무 짓을 하든…… 치셔요.」

하면서 P는 순애를 밀쳤다.

순애는 온몸의 피가 모두 모이고 싸늘한 바람이 낯을 스치는 것을 깨달았다. 십여 초 뒤에야 피는 한꺼번에 아래로 내려 간다.

「네가 이런……」

「하구말구요. 나가 주셔요. 졸음 와요.」

순애는 정신없이 자기 방에 왔다.

(어느 틈에 이렇게까지 못되게 되었노.)

순애는 이상하도록 똑똑한 의식으로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그뒤는 온통 깜깜이다. 이상하게 얽힌 실로서 풀 바이 없었다. 일곱 색의 실이 범벅으로 이상하게 얽혀서 풀려야 풀려야 더 엉키기만 하였지, 풀 수가 없었다. 때때로 한꺼번에 풀어지는 듯하다가는 그것이 일제히 이상하게 도로 얽혀서 그뒤에 남는 것은 어두운 가운데 명, 암, 명, 암으로 반짝이는 이상한 불꽃뿐이다. 때때로 얼굴에 분 바르고 상스러운 교태로 남자를 끌려는 별한 여성이 보이고 번쩍 머리에 한 줄기의 번개가 지나가지만 여기까지 오면 다시 이상한 실은 더 이상하게 얽히어 수수께끼의 반짝이는 불만 남는다. 그는 멀거니 방바닥에 비친 네모난 햇빛을 들여다보면서 풀 수 없는, 수없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병장이, 더러운 여성, 외박, 이것이 모두 합하여 수수께끼가 풀어지려다가는 다시 조각조각 나서는 아무 뜻도 없는 문법상 〈명사〉로도 변하고 때때로는 여기서 이상히 얽힌 철리로 보이다가는 다시 헤어져서 거기 남은 것은 P의 네모난 얼굴이 되고 만다.

순애는 몇 시간을 이렇게 앉아 있었다.

3[편집]

전제자(專制者)—한참 뒤에 그가 겨우 얻은 해답은 이것이다. 일곱 색의 얽힌 실은 다 풀리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은 이 한 구로 풀어졌다. 가정의 폭군 S를 두고 봐라. 아버지를 두고 봐라. P를 두고 봐라. 내가 아는 남자를 다 두고 봐라. 남자란 가정의 전제자 아니고 무어냐. 그들의 눈에는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고, 또는 손위의 동기도 없고, 다만 있는 것은 밸뿐이다. 그들의 사랑은 다만 자기에게 만족을 줄 때만나고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을 때는 욕이라—매라—이혼이라, 자기보다 약한 자를 업수이 여기며 자기는 가정에 대한 지식이 한푼어치도 없는 꼴에 비단 의복을 내라, 찬이 나쁘다, 하는 것으로 학대를 받아서 머리 들 기운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의 재간을 다하여서 덮어 누르니 이 가정의 전제자가 아니고 무엇이냐? 그런 뒤에 자기의 트집을 조금이라도 말하여 주면 그만 성을 내어 마지막에는 혈속(血屬)까지 무시하니 이 가정의 전제자가 유일무이의 새 격언을 발명한 것같이 생각하는 내 꼴은 어떠냐? 옛일을 캐지 않으리라. 남의 일을 생각지 않으리라. 제일 가까운 내 일로 내가 부모에게 받은 그 학대, 남편에게 받은 그 학대, 이것뿐으로도 넉넉히 이만 것은 알 것이 아니었는가? 아! 마침내 남자는 가정의 전제자에 지나지 못하였다. 생각하다가 순애는 벌떡 일어섰다. 그는 화가 너무 나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자—어떻든지 가자.)

순애는 일부러 P에게 보이려고 뜰에서 치마 고름을 매고 집을 나섰다. 그의 가는 길은 아직 정하지는 안 했으되, 동창생이고 동무 과부인 혜감의 살림살잇집이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에 순애는,

「그러자!」

중얼거렸다. 그는 밤까지 안 돌아온다. P는 그때야 정신을 차리고 누이를 찾으러 다니다가 혜감의 집에서 만난다. 순애는 P의 놀란 꼴이 보고 싶었다.

이 생각을 할 때는 순애는 이상하거니와, P에 대한 성은 어느덧 없어지고 오히려 흥미를 가지고 생각하였다.

(사람이 있다.)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낮이다. 그리고 거리다. 사람이 있다. 사람이 있다.)

순애는 갑자기 뜻 모르게 되었다

(사람이 있다. 온다. 간다.)

역시 몰랐다.

(사람이 무엇이냐?)

또 몰랐다. 인생의 의의라는 큰 문제가 아니다.

말……명사인 사람이 무엇인지 순애는 모르게 되었다.

(사람이 있다. 전제자이다.)

일분 반이면 넉넉히 갈 혜감의 집이 순애에게는 집을 떠난 때가 한 옛적같이 보였다.

「순애 언니, 어디 가오?」

하는 소리에 좀 가다가 순애는 머리를 들었다. 방금 어디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혜감이 자기 딸과 함께 혜감 자기의 집 앞에서 순애를 부른다. 순애는 싱겁게 씩 웃은 뒤에 말없이 그리로 갔다.

「들어갑시다.」

혜감은 순애를 끌고 들어가서 자기의 딸을 나가 있으란 뒤에 마주앉았다.

「또 무얼 다투었구려?」

앉으면서 혜감은 말하였다. 순애는 맥없이 잠깐 그를 보았다.

「인젠 좀 그만두어요. 무얼 만날 작은 사람과……우리 두 늙은 사람은 아니지만.」

혜감은 쾌활히 웃었다.

「글쎄, 언니 내 말 좀 들어 보오. 화 안 나겠나?」

「말해요.」

「그애가 사흘을 나가 잤구려.」

「젊은 사람이 예사지. 그래 S씨는 안 그랬어요?

우리 집 영감두 그랬구.」

「바보!」

순애는 속이 꿀떡꿀떡하여졌다. 이런 바보에게 통사정하러 여기까지 온 바는 아니었건만, 너는 끝까지 넓은 바다에 뜬 조그만 배와 같이 외로이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 네 사정을 들을 만한 사람은 듣고 동정할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네 속은 네 혼자서 썩일 것이지 아무에게도 말할 바가 아니다. 빨리 죽어서 썩어져라. 그러면 그때에야 너는 처음으로 너와 남의 만족을 얻게 되리라……순애는 대답을 안 하고 가만히 섰다.

「그래서?」

혜감은 뒤를 재촉한다.

「말하기두 싫소.」

「언니! 노했어요? 노하라구 그런 바는 아니오.

언니 그러지 말구 말씀하셔요.」

「그래서.」

「그래서 무얼 그랬지!」

순애는 성이 풀어지지 않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냥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요.」

「말해야 그렇지. 그래 사흘이나 있다가 오늘이야 겨우 돌아왔겠지요. 그래서 좀 가서 말을 해주었지요.」

「듣나요?」

「글쎄 내 말을 들어요. 그러니까, 아, 그애가 성을 내면서 자기 집에서 얻어먹구 있는 꼴이 그런다구 나가라는구려. 언니 골 안 나겠소?」

순애는 잊었던 성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사람은 다 그렇다오.」

「그저 전제자야요.」

「무에?」

「사내가 말이야요. 저보다 약한 것을 억누릅니다그려.」

순애는 자기의 왼손의 결혼반지를 쓸면서 말했다.

「설마다 그렇겠소마는— 대개는.」

「다 그러—」

말하다가 순애는 뚝 그쳤다. 그에게는 혜감의 남편의 생각이 났다.

「이댁 같은 댁은 특별하지만……」

「언니 말 마오. 다른 사람에겐 그래 보여두, 나 혼자 속 썩일 때가 많았다오—」

「또 그런 소리를.」

순애는 억지로 웃었다.

「참말로는 순애 언니가 부러워.」

「내가 날 부러워하려면 저 고양이를 부러워하오.」

순애는 보이지도 않는 고양이를 가리켰다.

「그래두 한 번 가 보니깐, 아주…… 어찌 부러운지, 그 밤은 잠까지 못 잤었지요.」

「남 보기에야 그렇지.」

「글쎄 언니 들어 보오. 언니에겐 남은 재산이 있지요. 속상할 땐 위로받을 만한 자식이 있지요.

자식이 있으니까 장래 일을 생각할 때두 재미두 나겠지요. 부족이 무어에요.」

순애는 눈물 소리로 말했다.

「그것뿐으로 넉넉한 줄 압니까?」

「그런데 날 보구려, 나는, 난…… 난……」

순애는 쓰러졌다.

「먹을 만한 재산이 있소? 자식이 있소? 월급이 백 원이로다 얼마이로다 하던 것도 두 해 전 옛적 일이구, 지금은 그러지야요. 그저 그러지야요. 그 수모를 받으면서 동생네 집에서 얻어먹구, 또 그러지 않을 수도 없구려. 언니 이 꼴을 용서하셔요……내가 그애를 기른 생각을 하면…… 추우면 고뿔 들릴세라, 어머님이 일찍 세상 없으셔서 내가 업어 길렀구려. 두 해 전에 돌아와서두 그 지아버지나 닳지 않게 길렀지요. 그런 애가…… 그애가……」

「사내란 다 그렇지요.」

「아버지두 잘못했지, 딸자식은 사람이 아니야요.

딸에겐 왜 재산을 조금이라도 안 남겨요? 이것저것 생각하면 골이 나서…… 언니……」

「왜 그래요?」

「난 오늘밤에 죽을 테에요. 죽은 뒤에 불쌍히나 좀 여겨 주세요.」

「에?」

「죽어요.」

「언니두! 미쳤소?」

「미쳤지요. 미치지 않은 년이구야 그 수모를 받으면서 왜 아직껏 얻어먹구 있었겠소! 미쳤지요.」

맑고 큰 혜감의 눈에서도 동정의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그가 쥐고 있던 어린애의 모자 위에 떨어진다.

「언니! 나하구 함께 있읍시다. 오늘부터 형제가 되어 나하고 함께 있읍시다. 허락하셔요.」

순애는 아무 표정 없는 눈으로 잠깐 혜감을 쳐다보았다. 그는 전제자도 아니고 무정한 남편도 아니고 또는 생각 없는 아버지도 아니고, 이것과는 온전히 다른 얼토당토 않은 〈죽음〉—이제 이야기하여 가는 가운데 쑥 나온 〈죽음〉을 재미있게 생각하였다.

4[편집]

순애가 혜감에게 「돌아가서 P를 감독하라」는 말을 듣고 그의 집에서 나선 때는 서울 하늘은 저녁 내로 보얗게 되고 내를 끼고 봄하늘이 멀겋게 보이는 때이다.

순애는 자기 집에 이르러서 제일 먼저 아우의 방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P은 자리 속에 누워서 담배를 피우며 공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까 다툼은 꿈에도 안 생각하는 듯이 혼자 무엇에 만족하여 벙글벙글 웃고 있다. 이런 때에 말하면 효험이 있으리라, 아까같이 성은 안 내리라 생각하고 순애는 기침을 한 뒤에 문을 열었다. P는 힐끗 머리를 돌려서 이편을 본 뒤에 그가 순애인 것을 알고는 눈에 무한한 증오를 나타내었다.

「내 비녀가……」

하면서 순애는 한번 둘러본 뒤에 빨리 문을 닫고 돌아섰다.

「무얼 하러 들어와요!」

토하는 듯한 이 소리가 순애를 따라온다.

(무얼 하러 들어와? 참, 무얼 하러 들어왔을까?)

순애는 동자하는 것을 지휘하러 자기 방데가서 옷을 바꾸어 입고 부엌으로 나왔다.

(누구 때문에?)

채소, 고기, 모든 반찬이 맛있게 요리되되,

(이것은 누구 때문이냐, 누구를 위해서냐?)

순애는 아무 재미가 없었다. 자기가 손수 지휘하여 정성껏 모든 것을 맛있게 하되 누구를 위해서냐, 이것은 누가 먹을 것이냐? 순애는 남은 부스러기밖엔 아직 안 먹었다.

순애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할멈 이렇게 하게, 저렇게 하게 하며 돌아가면서도 순애는 끝없는 눈물을 떨어뜨렸다.

순애는 참다 못하여 방안에 들어와서 치마를 쓰고 누웠다. 어찌할까? 이 수모를 받고는 있을 수 없다.

어찌할까?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여야 이 집에서 떠나는 것밖에는 수가 없었다. 떠나며는 P는 눈이 벌개서 찾으리라. 복수도 된다.

(떠나자!)

순애는 흥분하여 일어섰다. 갈 곳은 혜감의 집이다.

(너한테 끝없는 업신여김을 받는 너의 누이는 네 행복을 빌면서 정처없이 떠난다.)

순애는 조그만 종잇조각에 떨리는 손으로 써서 보기 쉬운 곳에 놓은 뒤에 장품 하나도 안 가지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내일이나 모레 P에게 붙들리어서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올 작정이다.

옷을 갈아입은 뒤에 순애는 다시 한 번 방을 둘러보지 않을 수가 업었다. 의롱, 문갑, 둘러보다가 그는 문갑 위에 눈이 딱 붙었다. 거기는 푸른 빛 번쩍이는 칼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는 달음박질하여 가서 칼을 손에 쥐고 가슴으로 향하였다. 그 다음 순간, 자기 소리같지 않은 이상한 소리가 짧게 날카롭게 방안에 울리며 가슴에는 겨울 바람보다 찬 바람이 지나간다. 온몸이 차차 작아지며 차지다가 한순간 번쩍 한 뒤에 아직껏 보이던 벽이 없어지고 천장과 전등줄이 이상하게 보인다.

(죽는다!)

순애는 갑자기 무서워져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얼굴로 찬바람이 지나가고 앞이 답답하여지므로 순애는 그편을 향하였다.

「누님 이게 웬일이야요?」

거기는 P의 끝까지 놀랄 만름 흐릿하니 안개를 끼고 보는 것같이 보였다.

「우— 우—」

순애는 대답을 하려 했지만 대답 대신에 이 소리만 났다.

「왜 이랬어요, 누님 정신차리세요.」

「우— 우—」

「할멈! 의사 불러오게, 빨리!」

하는 P의 소리가 한 백 리 밖에서 나는 것같이 흐리게 들렸다. 순애는 P를 보았다.

P의 놀란 낮 복판 가운데에는,

「누님, 웬일이오니까? 잘못하였읍니다. 용서하셔요, 누님, 안심하여도 좋습니까?」

하는 표정을 얻어 보았다. 순애는 P에게 안심하라고 말하려 하였지만,

「우— 우—」

이상으로는 못하였다. 마지막 경련이 일어날 때 순애는 눈을 또 뜨고 P를 본 뒤에 필사의 힘으로 말했다.

「용— 우— 우— 용서…… 우—우— 용서한다. 우—」

전제자의 얼굴에 이전에 아직 보지 못한 기쁨과 만족과 감사가 떠올랐다. 순애는 이때에 처음으로 골육의 참 집착을 마음껏 깨달았다. 한 초 한 초죽음에 가까이 가면서 순애는 참마음껏 처음으로 삶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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