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집/밤 (산문)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우리 서재에는 좀 古典스런 양장책이 있음만치보다는 더 많이 있다고 - 그렇게 여기시기를.
그리고 키를 꼭꼭 맞추워 줄을 지어 엄숙하게 들어끼여 있어 누구든지 끄내여 보기에 조심성스런 손을 몇 번식 들여다보도록 서재의 품위를 우리는 유지합니다. 값진 陶器는 꼭 음식을 담어야 하나요? 마찬가지로 귀한 책은 몸에 병을 진히듯이 暗記하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음니다. 聖畵와 함께 멀리 떼워놓고 생각만 하여도 좋고 엷은 황혼이 차차 짙어갈제 서적의 密集部隊 앞에 등을 향하고 고요히 앉었기만 함도 교양의 심각한 표정이 됩니다. 나는 나대로 좋은 생각을 마조 대할 때 페이지 속에 文字는 文字끼리 좋은 이야기를 잇어 나가게 합니다. 숨은 별빛이 얼키설키듯이 빛나는 문자끼리의 이야기..... 이 귀 중한 인간의 유산을 金字로 表裝하여야 합니다.
레오 톨스토이가 (그 사람 말을 잡어 피를 마신 사람 !) 주름살 잡힌 인생관을 페이지 속에서 설교하거든 그러한 책은 잡조를 뽑아내듯 합니다.
책이 뽑히여 나온 부인 곳 그러한 곳은 그렇게 적막한 空洞이 아닙니다. 가여운 계절의 多辯者 귀또리 한 마리가 밤샐 자리도 주어도 좋읍니다.
우리의 교양에도 각금 이러한 문자가 뽑히여 나간 空洞안의 부인 하늘이 열리어야 합니다.
어느 겨를에 밤이 함폭 들어와 차지하고 있습니다. 『밤이 온다』-
이러한 우리가 거리에서 쓰는 말로 이를지면 밤은 반드시 딴 곳에서 오는 손니이외다. 겸허한 그는 우리의 앉은 자리를 조금도 다치지 않고 소란치 않고 거륵한 신부의 옷자락 소리 없는 거름으로 옵니다. 그러나 큰 독에 물과 같이 충실히 차고 넘침니다. 그러나 어쩐지 적막한 손님이외다. 이야말로 거대한 文字가 뽑히여 나간 空洞에 임하는 喪章이외다. 나의 거름을 따르는 그림자를 볼 때 나의 비극을 생각합니다. 가늘고 긴 희랍적 슬픈 모가지에 팔구비를 감어 봅니다. 밤은 地球를 딸으는 비극이외다. 이 淸 하고 無限한 밤의 모가지는 어드메쯤 되는지 아모도 안이 본 이가 없습니다.
비극은 반드시 울어야 하지 않고 사연하거나 흐느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로 비극은 默합니다.
그러므로 밤은 울기 전의 울음의 鄕愁요 움지기기 전의 몸짓의 森林이오 입술을 열기전 말의 풍부한 곳집이외다.
나는 나의 서재에서 이 默劇을 감격하기에 조금도 괴롭지 안습니다. 검은 잎새 밑에 오롯이 눌리우기만 하면 그만임으로. 나의 영혼의 윤곽이 올뺌이 눈자위처럼 똥그래질 때입니다. 나무끝 보금자리에 안긴 독수리 의 힌알도 無限한 明日을 향하여 신비론 생명을 옴치며 들리며 합니다. 서령 반가운 그대의 붉은 손이 이 서재에 조화로운 고풍스런 람프 불을 보름달만하게 안고 골방에서 옴겨 올 때에도 밤은 그대 불의의 틈입자에게 조금도 황당하지 않습니다. 남과 사필성이 찬란한 밤의 성격은 순간에 花園과 같은 얼골에 바로 돌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