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의 당위성 외/지도자가 할 일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감기가 있는 데다가 성대를 자꾸 썼더니 고장이 났습니다. 의사 말이 말을 가만가만히 하되 집에서도 성대를 쓰지 말고 종이에 써서 표시하라고 하나 오래 전부터의 부탁이고 오늘밤 시간을 약속하였음으로 오기는 왔습니다만, 목이 아파서 맘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은 크게 유감입니다.

다만 인사의 말이나 하려고 왔습니다. 집에서 좀 준비한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 청년들도 많이 왔고 하니 청년들에게 몇 마디 부탁이나 하겠습니다.

나는 성질이 별나서 남이 무서워하는 것은 무서워하지 않고 남이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흔히 권세를 무서워하지만 권세를 가지고 정당히 쓰지 않고 도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항하고 싶단 말이지요. 돈! 돈을 가지고 잘 쓰면 좋으나 못된데 쓰거나 잔뜩 움켜만 쥐고 있는 수전노! 즉 돈 지키는 종놈에게 머리를 숙일 게 무에냐 말이지요.

나는 다만 청년들이나 이 앞에 앉은 소년들 같은 사람을 보면 그만 겁이 나 어쩔 줄 모르겠습디다. 그들을 만나면 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나서 내 몸을 두루두루 살피는구려. 양복이나 똑바로 입지 않았나. 넥타이나 바로 매지 않았나. 그들이 나의 잘못을 본받지나 않을까 해서 두려워 못 견디겠단 말이요. 그저 나는 이 세상 아무것보다 청년들이 제일 두려워. 그리고 그들을 만나면 어쩐지 기쁘고 든든한 생각이 난단 말이우.

신문사에 있자니 하루에도 4,50명씩 손님들이 찾아오는구려. 그 중에도 청년들이 오는 게 나는 가장 반가워요. 그들이 오면 모두들 기운차게 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팔씨름도 하고 그리고 나면 그만 맘이 다 시원해진단 말이죠. 그들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달려가서 부둥켜안아도 주고 싶지만 밉살맞게 굴 때는 뺨이라도 한 대 때렸으면 좋겠어요.

나는 오랫동안 해외에 있다가 5,6년 전에 조선에 돌아와 우리 청년들을 대할 때 기쁜 생각도 나지만 한편 늘 섭섭한 생각이 나요. 그것은 조선의 청년들은 좀 씩씩하고 기운차지 못하고 헤벌어져 보인단 말이오. 좀 나가려는 힘이 없고 자존심도 없고 성질들이 나약해서 고종(故縱)이나 일삼고 비관들을 하는 것을 보니 내 눈에서 피눈물이 나와요.

여러분의 조상은 두뇌로나 육체로나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았던 겁니다. 옛날 중국 놈들이 조선을 가리켜 동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오랑캐라는 글자가 아니고 큰 활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夷)라고 한 거예요. 우리들의 할애비는 기운들이 좋고 용기가 있어 큰 활을 메고 북방 놈들을 쏘아 이겼던 거예요.

머리도 대단히 좋아 지략 많은 인물들이 많이 나서 요즘 체육계에 세계적 선수들이 자꾸 나는 것을 보니까 아직도 선조의 좋은 피가 그대들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이오.

그대들을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그대들은 저 희랍의 알렉산더의 한 말을 생각하오 아버지가 . “ 세상을 다 정복하면 나는 무엇을 정복하란 말이오” 하고 한탄하지 않았소. 보시오 만일 그대들의 사회가 순경(順境)에 있다면 일거리가 있겠소? 순경에 있는 그대들이기 때문에 할 일이 많지 않소. 그러므로 그대들은 할 일이 많은 것을 행복으로 여겨야 될 것이오.

작년 일인데 학생들이 밤이면 술집으로 카페로 많이 돌아다닌다기에 사실 그런가 하고 어떤 친구가 비용도 내므로 시내에 있는 카페를 모조리 토벌하였는데 머 기막히단 말이지요. 대부분 청년들인데 모두 술을 처먹고 눈이 새빨개져서 그야말로 눈에 술꽃이 피었더란 말이오.

한 사회의 성쇠를 짊어진 청년들이 이 꼴이니 우리 사회의 장래는 어떡하란 말이요. 한곳에 가니 밤 서너 시는 되었는데 사각모 쓴 학생들이 잔뜩 앉아 술이 취해 가지고 주정들을 대는데, 나는 술과 담배는 냄새만 맡아도 골치가 아프므로 우유나 달래 마시고, 그놈들의 노는 꼬라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 녀석이 “이 놈의 늙은이 술 먹으러 왔으면 술이나 먹지 왜 사람을 빤히 보는 게야.” 그걸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있어야지. 그만 어깻죽지를 부서져라 하고 후려갈겼더니 꼬꾸라지더군.

멱살을 바싹 잡아 일으키며 “학생, 이게 무슨 짓이요? 부형이 애써 보낸 돈으로 술을 먹어치우다니…….” “아! 여선생님이 아닙니까?” “글쎄, 나야 누구든 요다음엔 이런 짓 말아” 하니 “전들 왜 이 짓을 좋아하겠습니까, 참으로 말 못할 억울한 사정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런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술 깬 다음 내일이라도 나한테 와서 의논해주어” 하였더니 정말 그 이튿날 왔단 말이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참 술 먹고 화풀이할 만도 하더군요, 하하.

한번은 아메리카에 갔다 온 친구 부부가 한강에 배 타러 가자고 해서 수박을 몇 덩이 사가지고 배를 타고 있자니 저쪽의 일본 내지(본토) 애들은 저희끼리 배를 저으며 본 체 만 체 노는데, 이쪽의 조선 애들은 수십 명이 쭉 돌아서서 “얘 좋구나. 그 여자 상당히 이쁜데” 하면서 히야카시(희롱)를 하는 모양이여!

그 중의 사각모 쓴 몇 녀석이 배를 저어 우리 탄 배로 오더군. 그래 나는 얼른 배 밑에 머리를 숙이고 숨어 있자니 우리 배에 가까이 와서는 “배 좀 같이 탑시다 한단 ” 말이오. 그때 내가 선뜻 일어나니 이놈들이 “아, 여(呂)……” 하고 어쩔 줄 모르고 모두 꽁무니를 빼려고 한단 말이요. “이놈들아, 올 적에는 어찌 와서 가기는 왜 가느냐. 저기 일본 내지 애를 봐라. 부끄럽지 않나.”

“잘못했습니다.” “자, 이왕 왔으니 여기 와서 수박이나 먹고 가거라.”

“아닙니다. 좋습니다.” 갈려고 한단 말이오. “아니다, 너희들이 수박 한조각이라도 먹어야 가지 그전에는 못 보내겠다.” 그래 수박 한쪽씩 먹여 보낸 일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수송동 골목을 지나노라니 쬐그만 놈이 여학생을 둘러싸고 히야카시들을 한단 말이오. 그냥 지날 수 없어 이놈 모자 벗기고 저놈 모자 벗겨 주머니에 넣고 한 대씩 먹였더니 잘못했다고 하길래 모자들을 도로 주어 보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에는 어떻게 기분이 안 나는지 몰라요.

여기 앉은 청년들 그대들이 잘하면 조선 사회는 빛나고 그대들이 잘못하면 조선사회는 어두운 줄 모르느냐. 나는 그대들만 나무라고 싶지 않아.

여기 나이 먹은 이들도 많이 계시지만 청년들을 지도하려면 선진자(先進者)들부터 잘해야 되겠습니다. 자기들이 잘못하면서 아무리 청년들에게 말로만 잘하라고 해보시우 그들이 잘 듣는가, 양의 가죽을 입고 이리의 행동을 하는 위선자들……말로 글로는 잘 떠들지만 뒷골목에서는 별 고약한 짓을 다하는 놈들같이 가증한 것은 없어요.

지도자라는 것은 말로만 글로만 어떻게 하라는 것뿐이 아니고 자기가 친히 앞장을 서서 괴로우나 어려우나 앞길을 헤치고 나가는 게 참 지도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부터 이것을 생각하니 스스로 부끄러워요. 오늘 조선의 진정한 지도자가 있느냐 하면 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여기 앉은 청년들이 앞길이 얼마나 가여운지 몰라요.

내가 한번은 경성서 여럿이 청년지도 문제를 의논하는 회석에 가본 일이 있는데 모두들 청년들의 흉만 말한단 말이여. 가만히 있으니 “왜? 여선생은 말 한마디 안 하고 가만히 있소?” 하겠지요. “나는 보는 데가 당신들과 다르니 말하지 않는 게요.” “보는 점이 다르면 다른 점을 말하지요. 나는 당신들로부터 흉을 봐야 되겠습니까, 당신들이 청년들의 흉을 보지만 당신들부터 잘하고 그러우. 그러기에 우리들 선진자들부터 잘하지 않고는 도무지 될 말이 아니오.”

한 사람이 눈 위로 걸어가는데 자기는 뒤에서 올 사람을 생각하여 허투루 갈 수 없다고 해서 발을 조심조심해서 디뎌놓았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뒤에 오는 사람은 앞에 가는 사람의 발자국을 밟고 가는 것입니다.

선생은 잘못하면서 학생더러 잘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어느 학교 교무주임 송별회에 학생들이 회비 2원 50전씩 낸다고 하기에 나는 회비가 너무 많다고 하였더니 술도 마시고 기생도 몇 부르자면 그것도 부족하다는게야. 보시우, 교육계에서 이렇다고 하면 얼마나 가증한 일이오.

또 근래에 서울 시골 할 것 없이 거리에 되지도 않은 유행가가 어떻게 많이 퍼지는지 모르겠소. 노래 한마디 빛깔 하나가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아십니까? 더러운 노래 한마디 색채 하나로 청년의 기개를 꺾어버리는 줄 모르시오.

이 못된 유행가는 단연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얼마 안 있어 가두의 라디오나 축음기의 못된 소리는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조선의 형편을 본다면 청년 지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미혹에 들어 방황하기 대단히 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찌 할까. 그대들이 그대들의 지도자가 되어야 될 것이야. 무슨 말인고 하니 선진자라고 덮어놓고 따를 것이 아니고 그대들 가운데서 지도자가 나서 앞길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현금의 정세이란 말이오.

한걸음 더 나가 말하면 학생계의 지도자는 학생에서 나고, 공장의 지도자는 공장에서 나고 농촌의 지도자는 농사하는 사람이라야 되겠단 말이오. 생각해 보오. 양복이나 입고 글이나 쓰는 사람이 어떻게 농부의 실생활을 체험할 수 있겠느냐 말이지. 현지 체험 없이 어떻게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느냐 말이오.

나의 오늘 저녁 말한 요점도 여기 있소. 현금(現今) 조선에는 진정한 지도자가 없으니 청년들 스스로 판단해서 앞길을 헤치고 나가란 말이오.

그러다 보니 시간도 퍽 지났소. 부탁하는 것은 이 자리의 청년들! 좀 씩씩하며 기운차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만.

(―《삼천리》, 72호, 1936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