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메나리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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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부리가 어떠한 부리시냐

아득한 옛날 일이야 어찌 다 이루 가리어 알 수가 있으랴마는 그래도 만년의 기나긴 내력을 가진 거룩한 거레이다.

우리 아가 예쁜 아가
금싸라기같이 귀한 아가
신통방통 우리 아가

이것은 어머니가 어린 나에게 던져주시던 수수팥단지였지마는, 그래도 나를 얼싸안고 웃음과 눈물을 반죽해 부르시던 자장노래였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부르시던 고 보드라운 음조(音調)를 휘돌쳐 느끼고 있다. 내가 어찌 하기로서니 그것이야 설마 잊을 수가 있으랴.

아뭏든 우리가 어려서는 귀한 아기였었던지?

조선은 귀여운 아기를 많이 가졌었다. 그 아기들은 모두 훌륭한 보물을 퍽 많이 가졌었지. 자랑할 만한 그 보물, 이 세상에는 둘도 없는 그 보물!

그러나 그 보물은 감추어두었다. 아니 감추어두었던 것이 아니라 몇백년 동안 긴 난리, 긴 세월에 그만 아무도 모를 흙구덩이 속에다 넣고 파문어 이때껏 그냥 내버려두었었다.

그렇지만 파묻어두었다고 썩어 없어질 리는 없는 보물이니, 그것은 사그리 삭아 없어지는 것보다 금두꺼비처럼 무럭무럭 잘나는 거룩한 보물인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보물 구더이를 안다. 남들은 모두 몰라도…… 그러나 설사 남들이 그 보물 냄새를 맡고 찾아가 제아무리 죽을 힘을 들이어서 그 구덩이를 파뒤집어본다 한들 볼 수나있으며, 알 수나 있으며, 더구나 얻을 길이 있으랴. 다만 그것은 임자가 있는 보물이며 또 임자밖에는 도무지 안 체도 안하는 보물이니, 우리만 갖고 우리만 즐기고 우리만이 자랑할 신통하고도 거룩한 보물이다. 그 보물은 흙속에 파묻혀 있는 그 동안에, 도리어 땅 밖으로 싹이 트고 움이 돋고 줄거리가 자라고 꽃이 피고 또 열매까지도 맺혔건마는 우리밖에, 밉살스러운 그 남들은 도무지 그것을 모르는구나. 얼씨구 좋다. 요런 깨판이 또 어디 있으랴.

인제는 조선이 다 거지가 되었더라도 그 보물만은 어느때든지 거푸 자랑일 것이다. 또 다른 걱정이 무어랴. 그것을 가진 우리의 목숨은 살았다.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다. 다른 것이 모두 쪽박을 차게 되었을수록 그 보물만은 우리를 두굿겨주고 귀여워한다.

그러니 그 보물은 과연 무엇이냐. 무엇이 그리 자랑거리가 될 만한 보물이더냐.

그것은 우리로서는 아주 알기 쉬운 것이다. 싸고도 비싼 보물이다. 매나리라 하는 보물! 한자로 쓰면 ‘조선의 민요’ 그것이다.

그 보물은 어느때 어느곳에서 생겨난 것이냐.

메나리는 글이 아니다. 말도 아니요 또 시도 아니다. 이 백성이 생기고 이 나라가 이룩될 때에 메나리도 저절로 따라 생긴 것이니, 그저 그 백성이 저절로 그럭저럭 속깊이 간직해 가진 거룩한 넋일 뿐이다.

사람은 환경이 있다. 사람은 사람만이 사는것이 아니라, 그 환경이라는 그거와 아울러서 한데 산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환경은 서로서로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게 낯익고 속깊은 수작을 주고받고 하나니, 그 수작이 저절로 메나리라는 가락으로 되어버린다.

사람들의 고운 상상심(想像心)과 극적 본능은 저의 환경을 모두 얽어넣어 저의 한 세계를 만들어놓는다. 앞산 도령아 이리 오너라, 뒷내 각시 너도 가자. 날쌘 눈짓이 재빠르게 건너간다. 달콤한 이삭다니가 무르녹아진다. 여기에서 한 낱의 이상하고도 그윽한 전설이 저절로 이룩해지나니, 그 산과 그 물을 의인화해낼 때에, 그 가운데 쌓여 있는 이끼낀 바위나 곰썩은 고목까지라도 한마치의 훌륭한 재비를 아니 맡기어줄 수가 없으며, 거기에서 한바탕의 신화세계가 그럭저럭 이룩해 어우러진다. 그래서 늘어진 가락, 재치는 가락이서로 헝클어져 한마당의 굿놀이판이 어우러지나니, 등장할 재비꾼들은 제가끔 독백으로 몇마디의 메나리를 제멋껏 불러본다.

그 토지와 그 사건을 교묘하게 얽어뭉친 그 노래는 깊은 인상을 지니고, 뒷세상 오늘날까지 입으로 입으로 불러 전해내려왔다. 다만 입으로만 불러 전승해온 것이라, 묵고 오래인만큼 그 모양과 뜻이 바뀌어지고 달라졌을는지는 모르나, 그래도 그 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넋은 바꾸어넣으 수가 없으니까 조선이라는 한 붉은 땅덩이의 특색과 이취(異趣)는 어느때든지 그대로 지니고 있으리라.

또 노래라는 것은 입으로 부르는 것이요 글로 짓는 것이 아니매, 구태여 글씨로 적어내려오지 못한 그것을 그리 탓할 까닭도 없다. 더구나 남달리 우리의 메나리는 몇천대 몇백대 우리 조상의 영혼이 오랫동안 지니고 가꾸어올 때에, 그 시대마다 그 사람에게는 그대로 그것이 완성이 되었으리니, 그 줄거리가 시방도 한창 우리에게도 자라고 완성하며 있을 것이다. 무어 그리 글로 기록하고 말로 지껄이기야 어려울 것이 있으랴마는 억만고(億萬古) 그동안을 이 나라 이 사람에게로 거쳐 내려온 그것을, 우리의 넋을, 넋두리를, 이 세상 어느 나라 무슨 글로든지 도무지 옮기어 쓸 수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다른 예술도 그렇게 잘되고 많았던지는 모르나, 우리는 민요국의 백성이라고 자랑할 만큼 메나리를 퍽 많이 가졌다. 다른 것은 다 어렴풋해 보기가 어려워도, 메나리 속에서 산 이 나라 백성의 운율적 생활 역사는 굵고 검붉은 선이 뚜렷하게 영원에서 영원까지 길이길이 그리어 있다.

사람들마다 입만 벙긋하면 모두 노래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사내나 계집이나, 모두 저절로 되는 그 노래! 살아서나 죽어서나, 일할 때나 쉴 때나 허튼 주정·잠꼬대·푸념·넋두리·에누다리·잔 사설이 모두 그대로 그윽한 메나리 가락이 아니면 무어냐. 산에 올라 ‘산타령’, 들에 내려 ‘양구 양천’, ‘아리랑’타령은 두 마치 장단, 늘어지고 설운 것은 ‘육자배기’. 산에나 들에나 메나리꽃이 휘늘어져 널리었다.

뫼가 우뚝하니 섰으니 응징스럽다. 물이 철철 흐르니 가만한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수수께끼 속같이 곱고도 그윽한 이 나라에 바람이 불어, 몹쓸년의 그 바람이 불어서 꽃은 피었다가도 지고 봄은 왔다가도 돌아선다. 제비는 오건마는 기러기는 가눈구나. 백성들이 간다. 사람이 운다. 한 많은 뻐꾸기는 구슬픈 울음을 운다. 울음을 운다. 무슨 울음을 울었더냐. 무슨 소리로 울었더냐. 뼈가 녹는 시름? 피를 품는 설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聞慶어 세자넌 원 고갠고,
굽이야 굽이야 눈물이 나네.

우리는 간다. 고개를 넘는다. 굽이야 굽이야 산길은 굽이졌다. 굽이야 굽이야 눈물도 굽이친다. 아! 이 고개는 무슨 몹쓸 설움의 고개이냐.

하늘에는 별도 많고 시내 강변엔 돌도 많다. 한도 많다. 설움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거을 나타내기가 싫다. 할말도 많건마는 또한 할말도 없구나. 설움이 오거든 웃음으로 보내버리자. 사설이 있거든 메나리로 풀어버리자. 그러나 메나리 그것도 슬프기는 슬프구나. 슬그머니 내려앉은 가슴이 또다시 마음까지 앓게 되누나.

그러나 이것을 남들이야 알랴. 남들이야 어찌 그 마디마디 그 구슬픈 가락을 알 수가 있으랴.

도라지 캐러 간다고 요 핑계 조 핑계 하더니
총각 낭군 무덤에 삼우제 지내러 간단다.

이것은 강원도 메나리.

吉州明川 가는 베장사야, 첫닭이 운다고 가지 마소.
닭이 울면 정닭이냐, 孟嘗君의 人닭이라.

이것은 함경도 메나리.

쓰나 다나 된장 먹지
갈그이 사냥을 왜 갔읍나.

이것은 황해도의 메나리다.

가락이 길고 가늘고 무딜수록 저절로 설움도 있고 멋도 있나니, 그 멋이라는 것은 우리밖에는 느낄 이도 없고 자랑할 이도 없다. 또 앨 써 그것을 분해 설명할 필요도 없나니, 끝끝내 아무 보람도 없을 것이요, 아무 까닭도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의 넋은 저절로 그것을 느끼어 알고 있으니까.

이름있는 소리, 이름없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 해도 그 가지수가 이루 헬 수 없이 많으니, 메나리로서는 우리의 것이 온 세계에 가장 자랑할 만치 풍부하거나아 한가지 같은 소리로도 곳곳이골을 따라 그 뜻과 그 멋이 다르다. ‘아리랑’도 서울 아리랑, 강원도·충청도·함경도·경상도 아니랑이 다르고, ‘홍타령’도 서울 홍타령·영남 홍타령이 다르고, ‘산염불’도 서울 시골이 같지 않고, ‘난봉가’도 서울과 개성과 황해도 것이 다르고, ‘수심가’도 평양 수심가·충복 수심가·항해도 것이 다르고 같지 않은 멋이 있다. 무당의 ‘제석(帝釋)거리’는 13도 곳곳마다 다 같지 않다 한다. 또한 고전극 그대로를 아직껏 지니고 내려온 소리도 많으니 ‘심청전’‘춘향전’‘흥부전’‘토끼전’ 그런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들이 부르는 ‘염불’‘회심곡’(回心曲), 한 무당이 부르는 ‘풀이’나 ‘거리’, 장돌뱅이의 ‘장타령’, 재주바치의 ‘산디도감’(山臺都監), ‘꼭둑각시’, 무엇무엇 그것도 헬 수 없을 만치 퍽 많다. 가슴이 날뛰는 영남의 ‘쾌지나 칭칭 나네’도 좋다마는 뼈가 녹고 넋이 끊어질 듯한 평안도 ‘배따라기’도 그립구나. 화톳불 빛에 붉은 볼을 화끈거리며 선머슴이나 숫색시가 밤을 새워 보는 황해도 ‘배뱅이굿’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평안도 다리굿의 ‘아미타불’도 또한 한가닥 눈물이 있다. 김매는 ‘기음노래’, 베짜는 ‘베틀가’도 좋지 않은 것이 없으며 남쪽의 ‘산유화’, 북쪽의 ‘놀량사거리’도 진역(震域)에서는 가장 오랜 소리로 그 음조만으로도 우리의 넋은 힘있게 흐늘거린다.

메나리는 특별히 잘되고 못된 것도 있을 까닭이 없으니, 그것은 속임없는 우리의 넋, 넋의 울리는 소리 그대로니까.

우리의 메나리는 구박을 받아왔다. 어느놈이 그런 몹쓸짓을 하였느냐. 우리는 몇백년 동안 한학(韓學)이라는 그 거북하고도 야릇한 살매가 들리어 우리의 것을 우리의 손으로 스스로 푸대접해왔다. 아! 야속한 괄시만 받던 우리의 메나리는 그동안 얼마나 혼자 외딴길, 어두운 거리로 헤매며 속깊은 울음을 울었겠느냐.

그러나 할수없다. 우리의 넋은 우리의 넋 그대로인 것을 어찌하겠니. 메나리가 우리와 함께 났을 바에 우리가 살 동안까지는 늘 우리와 같이 있으리니 이 나라가 뒤죽바국이 되어 짚신을 머리에 이고 갓을 꽁무니에 차고 다니는 세상이 온다 할지라도 메나리만은 그 세상 그대로 없어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무디고 어지러워진 신경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메나리를 들을 때에 저절로 느끼는 것이 있다. 아무나 마음이 통하고 느끼미 같다. ‘좋다’ 소리가 저절로 난다. 대체 좋다는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의 마음의 거문고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울리어지는 그 까닭이다.

우리는 메나리 나라 백성이다. 메나리 나라로 돌아가자. 내 것이 아니면 모두 빌어온 것뿐이다.

요새 흔한 양시조, 서투른 언문풍월(諺文風月), 도막도막 잘 터놓는 신시(新詩)타령, 그것은 다 무엇이냐. 되지도 못하고 어색스러운 앵두장사를 일부러 애써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멋이 제 국으로나 놀아라. 앵두장사란 무엇인지 아느냐. 받아다 판다는 말이다. 양(洋)가게에 가서 일부러 육촉(肉燭) 부스러기를 사다먹고 골머리를 앓아 장발객(長髮客)들이 된다는 말이다.

넋이야 넋이로다. 이 넋이 무슨 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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