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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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판사를 시작한 이유 말씀이야요? 나이도 늙고 인젠 좀 편안히 쉬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사직했지요, 네? 무슨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글쎄, 있을까. 있으면 있기도 하고, 없다면 없고, 그렇지요. 이야기 해보라고요? 자, 할 만한 이야기도 없는데요.”

어떤 날 저녁, 어떤 연회의 끝에 친한 사람 몇 사람끼리 제2차 회로 모였을 때에, 말말끝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 전 판사는 몇 번을 더 사양해본 뒤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사법관이지 입법관이 아니었으니깐 거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법률이 어떤 범죄에 대하여 형을 과하는 것은 현명한 여러 입법관의 머리에서 얼마 동안 연구되고 닦달된 뒤에야 처음으로 명문으로 될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 사법관은 법률의 명문의 모호한 점을 해석하며, 법률의 명문에 의지해서 범죄를 다스리는 것이 직책이지, 그 법률의 근본을 캐어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권리에 지나치는 일이겠지요. 그러니깐, 나는 형의 비판이라든가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만 내가 재직 때에 당한 한 가지의 예를 들어서, 내가 판사라는 지위를 사직한 이유를 간단히 말해보겠습니다.

내가 복심법원 판사 때의 일이외다. 어떤 날 어떤 사형수의 공소재판이 있어서 그것을 내가 맡게 되었는데, 예비지식으로 피고의 공소 이유와 제1심의 기록 등을 대강 눈에 걸쳐보니깐, 사람 셋을 죽인 살인강도범이었습니다. 더구나 피살자 세 사람 가운데 하나는 아직 철모르는 어린애로서, 그런 철모르는 어린애까지 죽인 살인강도는 성질로 보아 흉포 무쌍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저 그만치 알아두었습니다. 대체 사형수라 하는 것은, 하여간 공소는 해보는 것이니깐…….

별로 신기하게 여길 사건도 아니므로, 그저 그만치 해가지고 공소 재판을 열었지요. 그리고 순서대로 주소, 성명, 연령, 직업, 전과의 유무 등을 물었는데, 스물세 살 났다는 젊은 사람이 전과 6범이었습니다.

열두 살 때에 소매치기를 비롯하여, 절도, 공갈, 강도, 등등 온갖 죄악을 다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경험이 아닐지라도 이만하면 벌써 피고의 성질이 짐작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마음으로는 벌써 공소해야 역시 사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만 규칙에 의지해서, 공소한 이유를 물었지요 그러면서도 피고가 . 무슨 핑계를 대거나 범행을 부인하는 말을 하려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피고는 뜻밖의 대답을 하지 않겠습니까?

피고의 말은, 자기는 사형이 싫어서 공소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는 제1심에서 자기의 과거를 한번 다 이야기해볼 기회를 얻지 못해서 그 기회를 얻으려고 공소한 것이지, 사형이 억울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그려.

자기의 범행은 죽어도 싸다고, 검사가 할 말까지 하겠지요. 그래서 나는 온화한 말로, 공판정은 범행을 조사해서 거기다가 형을 과하는 곳이지 피고의 경력 연구소가 아니니깐 그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거절해버리고 범행에 대 해서 조사를 하려니까, 피고는 한참 머리를 수그리고 있더니 그러면 공소를 취하하겠다고 그러겠지요.

그래서 공소는 그만 취하해버렸는데, 한 이삼 일 뒤에 문득 그 생각이 나서, 원 대체 자기의 경력을 이야기 못하면 사형을 달갑게 받겠다던 그 피고 의 경력은 어떠한 것인가……고, 호기심이 무럭무럭 나서, 어디 한번 알아 보자 하고, 한가한 틈을 이용해가지고 형무소로 찾아갔지요. 그리고 판사 대 피고의 지위가 아니요,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서 그 사람을 면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초췌한 얼굴로 기뻐서 내게 이야기한 바로서, 그 사람의 경력이 이런 것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홍찬도라 하였다.

비교적 미남자였고, 얼굴로 보아서는 아무 흉포한 점이 없었다.

그는 사람을 셋을 죽였다. 무슨 큰 원함이 있어서 죽인 바도 아니요, 돈을 뺏으러 들어갔다가 들켜서 그만 세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른 두 사람을 죽이고, 달아나려다가 그는 곁에서 날뛰면서 울고 있는 서너 살 어린아이까지 마침내 죽인 것이었다. 이것이 혹은 잔혹한 일 이라 할지 모르나, 이것은 그가 그 어린아이에 대한 자비심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이 그의 범죄 사실이었다.

그는 열한 살부터 벌써 죄를 짓기 시작하였다. 소매치기, 절도, 협박, 공갈, 강도, 이러한 모든 죄를 차례로 지으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범죄에서 감옥으로, 감옥에서 범죄로, 안정되지 못한 생애를 밟아오다가 마침내 스물세살이라는 지금에 세 사람을 죽였다는 무서운 죄악으로써 사형의 선고를 받은 것이었다.

그러면 그는 천성이 그렇게 못된 사람이었던가. 부모의 유전으로 그런 못 된 성질을 물려받았던가. 혹은 사귀던 친구가 나빴던가.

만약 친구가 나빴다 하면, 그런 못된 친구와 사귀는 것을 감독할만한 부모는 무얼 하였나 자식을. 감독할 줄을 몰랐나. 감독하려 하지를 않았나 또는 못하였나. 가령 못하였다 하면, 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는 어떤 운송조에서 마차를 끌어주고 그날그날을 보내는 온량 한 시민이었다. 그의 어머니도 역시 참한 여인으로서 남편을 공대하고 자식을 사랑할 줄 아는 온량한 아내였다. 이러한 부모 아래서 가난하나마 아무 부족한 불만을 모르고 그는 열한 살까지 자랐다. 그때 그는 보통학교 5학년 생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생활에 병집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전혀 모를 바였다. 이것은 하느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도록 주의시키려는 자비심에서 나온 것이지, 혹은 악마가 사람의 세상을 위협하는 수단에서 하 는 것인지는 모르나, 사람의 세상은 언제 어떤 곳에서 뜻하지 않은 괴변이 생길지 온전히 모를 바였다.

그의 아버지가 법률의 그물에 걸렸다. 일은 사소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일이었다. 어떤 날, 그의 부리는 말이 지나가는 자동차에 놀라서 구루마를 단 채로 거리로 달아났다. 놀란 말이 달아나서 돌아다니는데, 체면과 인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마차에 치여서, 몇 사람은 중상을 당하고, 몇 사람은 죽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즉사한 사람 가운데에는 불행히 그 지방의 장관이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커졌다. 놀란 말이 장관을 알아볼 리가 없고, 장관이라 한들 마차에 치이면 죽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관이 죽었다 하는 것은 그 사건의 결과를 좀 더 중대화하였다. 법률은 그를 꼭 벌해야 할 책임을 느꼈다.

그리고 육법전서를 편 결과, 형법 제211조에서,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여 사람을 사상死傷에 이르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혹은 1,000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이라는 조문을 얻어내고, 그에게 3년 동안을 형무소 안에서 지내기를 명하였다.

이리하여 비극은 마침내 이 집안에도 이르렀다.

인형으로서의 온공함과 얌전함은 배웠지만 아직 주부로서의 권리와 의무와 그것의 행사 방법에 대한 교육과 교양이 없는 찬도의 젊은 어머니는, 이런 일을 당하면 낭패할밖에는 다른 도리는 없었다. 어머니는 낭패하였다. 그리고 그 낭패에 대하여 아무런 방책도 생겨나지 않는 동안에 시간은 거듭하여 날이 되고, 날은 거듭하여 달이 되었다.

법률은 정당한 선고를 찬도의 아버지에게 내린 것이었다. 법률은 사회에서 대하여서나 찬도의 아버지나 모자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가려운 일이 없었 다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 위하여 찬도의 아버지에게 내린 선고는, 세상의 정신 못 차리려는 사람들을 정신 차리도록 하려는 한 경종으로서, 이것은 법률의 정당한 사명이었다. 그러나 그 법률이 잊어버린 사람의 축에 한 패의 가련한 모자가 있었던 것이었다. 처세학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한 때문 에 밥을 굶고 옷을 헐벗지 않으면 안 될 가련한 모자가 있었던 것이엇다.

그러나 하느님이 사람을 내실 때에, 사람으로 하여금 먹을 것이 없어서 죽게까지는 내지 않았다.

찬도는 어느덧 학교에 안 다니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못 다녔겠지. 그리고 단칸방에서 이런 아들과 젊은 어머니가 주린 배룰 움켜쥐고 며칠을 참은 뒤에 어떤 날, 어머니는 나가서 쌀과 나무를 사 왔다.

아직껏은 쌀과 나무와 옷감이라는 것은 하늘이 비를 주듯 때때로(어린 찬 도는 모르는 틈에) 내려주는 것쯤으로 알고 별로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던 찬도는, 이번 사건의 뒤에 처음으로 쌀과 나무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며, 그것이 돈을 주는 아버지가 없어졌으므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었다. 그랬던 것을, 어머니(며칠을 돈이 없어서 굶고 지내던)가 사왔다 하는 것은, 찬도에게는 뜻밖이었다. 웬 돈? 누가 돈을 벌었나? 무엇을 하여 벌었나?

어떤 날 아침, 좀 일찍 깬 찬도는 머리맡에 흩어져 있는 음식 그릇들을 보았다. 찬도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거기 남은 부스러기라도 고르려고 하 다가 갑자기 속이 불유쾌해져서 그만두고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아직껏 깨지 않았다. 그 어머니의 얼굴에는 분이 발려 있었다. 찬도는 속이 몹시 언짢아졌다. 자기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은 어머니도 잘 알 터인데, 밤에 혼자 사다 먹었다는 것은 찬도의 자존심에 거슬린 것이었다. 모반함을 받은 것 같은 분한 마음과 얄미운 어머니의 태도에 노염이 난 찬도는, 분김에 옷을 주워 입고 몰래 집을 나섰다. 그리고 노염과 분함이 차차 더해 가는 하루를, 굶으며 그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어머니가 자기를 찾아 나와서 변명하기를 기다리다가 밤 10시쯤 하여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웬 잔치가 있었다. 어머니는 웬 사나이와 마주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온종일 어디 갔었니. 얼른 자라!”

하고 한마디 꽥 소리를 지른 뿐이었다. 음식을 먹으란 말도 없었다. 배고프지 않느냐는 말조차 없었다.

찬도는 자리를 윗목에 내려 펴놓고 누웠다.

“좀 가만가만 펴지, 몬지 나누나.”

어머니는 또 나무람을 하였다. 분함과 노염과 주림으로 자리 속에 들어는 갔지만 찬도에게 졸음이 올 리가 만무하였다. 음식 냄새가 코로 몰려 들어 왔다. 그것은 몹시 좋은 냄새였다. 그러나 또한 몹시 역한 냄새에 다름없었다.

울고 싶은 마음, 아니 오히려 죽고 싶은 마음을 이를 악물고 참느라고 찬 도는 목덜미를 와들와들 떨었다. 신경, 더욱 귀의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행여나 ‘찬도야, 너도……’ 하기를 기다렸으나 그것은 헛바람이었다.

마침내 찬도는 일어났다. 그리고 몰래 이불 밖으로 기어 나와서, 문을 연 뒤에 문밖에 나섰다. 그리고 신을 신고 밖으로 막 뛰려 할 때에, 어머니가 따라 나와서 그를 붙들었다. 그리고 손에다 무엇을 쥐어주었다.

“50전이다. 뭘 나가서 사 먹어라.”

찬도는 욱하니 울었다. 아직껏 하루 종일을 참고 또 참았던 울음이었다.

“애도 울기는 왜…….”

어머니의 태도는 다시 쌀쌀해졌다. 이 한마디뿐, 어머니는 도로 들어가서 문을 절컥 닫았다.

아무리 어린 찬도일지라도 제 어머니의 하는 일의 의의를 알았다. 그것은 사람의 길에 벗어난 일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찬도에게는 그런 일을 하는 어머니가 천스러웠다.

그는 생활난과 정조라는 것의 가치를 비교할 만한 진보된 지식은 아직 못 가졌다. 하물며 제 어머니라는 사람과 생활난과 정조 관념의 삼각 관계를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수천 년간 그의 조상들이 신봉해오는 관념의 여파로서, 제 어머니의 하는 일이 지극히 천스럽고 부끄러운 일인 줄은 알았다. 그는 어머니를 경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자행한 바 법률의 처분은, 여기서 그 부산물로서 모자간의 이반이라는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일을 해놓았다. 그 뒤부터는 모자의 사이는 차차 벌어졌다. 아들은 제 어머니에게서 어머니의 행동에 대한 변명이 듣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들의 양해…… 묵인을 바랐다.

그러나 아들은 양해하지 않았다. 아들은 차차 어머니와 이야기하기를 피하였다. 그것을 갚으려는 듯이, 어머니도 차차 아들과 이야기를 피하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서로 ‘피하려’던 것이, 차차 어느덧 서로 ‘악의로써 대하게’ 되었다. 어미는 변변찮은 작은 일로도 차차 제 아들을 몹시 꾸짖는 일이 많아갔다. 할 수 있는 대로 이야기를 안 했지만, 하게 되면 그것은 꾸중이나 욕설뿐이었다.

그러나 제 어머니를 경멸하는 아들에게는, 그 꾸중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였다. 아들은 꾸중에 머리도 안 숙였다. 변명도 안 하였다. 대답조차 안 하였다. 못 들은 체하고 저 할 장난만 하였다. 이렇게 되면, 어머니는 더욱 성을 냈다. 그리고 발을 굴렀다. 그러나 아들은 제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무시하는 것으로 유일의 대항책을 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그렇게 미워서 그러하였나. 혹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하 여 그런 태도로서 아들을 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나. 이것은 알 수 없다.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이리하여 모자간의 정애가 차차 없어졌다는 것을 알면 그뿐이다.

아들은 차차 ‘집안’이라는 것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아침에 밖으로 나가서 어두운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차차 많아갔다. 그러나 찬도에게는 밤에나마 집에 들어오는 것은 할 수 없어서 하는 일이었다. 할 수만 있으면 안 돌아오고 싶었다. 이 사내 저 사내(대개가 노동자)가 이전의 찬도의 아 버지가 행한 노릇을 하는 광경은 찬도에게는 보지 못할 노릇이었다. 영업 (가령 찬도의 어머니가 하는 노릇을 영업이라 부를 수가 있다면)은 나날이 번성해갔다. 저녁때 사내의 그림자가 그 오막살이에서 뵈지 않는 날이 쉽지 않았다. 낮에는 웬 노파들이 많이 다녔다. 젊은 어머니의 이쁘장스러운 얼굴과 애교와 박리다매주의는, 오늘날 이렇듯 영업의 번성함을 보게 한 것이었다.

찬도는 대게 낮에는 어디 나가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갈 곳이 없어서 거리거리를 헤맸다. 그리고 공원에서 쉬었다. 점심은 대개 굶었다. 정 견딜 수가 없을 때에는, 제 집 부엌에 와서 도적질하여 먹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그도 어느덧 섞여서 같이 놀 만한 소년 그것조차 알지 못하였다.

그는 어느덧 소매치기의 첫 시험을 ‘축’으로 하여, 그전의 생활과 거기 관련된 온갖 군잡스러운 문제는 잊어버린 것이었다. 소매치기와 절도, 이러한 위태한 사다리를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올라갔다.

그러다가 열일곱 살 나는 해에 첫번 형무소의 맛을 보았다. 형무소 안에는 많은 동지가 있다는 것은 이 소년의 마음을 더욱 든든히는 하였을망정, 손톱눈만치의 후회도 일으키게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형무소는 이소년에게 범죄 방법을 가르치는 한 학교였다.

형무소에서 나온 그는 역시 그것으로 제 밥벌이(?)를 삼았다. 그것밖에는 다른 것을 취할 길도 몰랐거니와, 다른 길은 사회에서 그를 받아주지도 않 았다. 이리하여 범죄와 형무소, 이러한 행정을 밟으면서 소년기에서 청년기에 들어선 그는 마침내 살인강도라는 듣기조차 무서운 죄목 아래서 사형의 선고를 받게 된 오늘의 범행까지 지은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첫여름이었다 . 일없이 공원에 앉아서 낮잠을 자고 있던 그는, 누가 깨우는 바람에 상쾌한 졸음에서 깨었다. 깨어보니, 그것은 며칠 전에 찬도와 같이 출옥한 감옥 친구였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한 가지의 계획이 성립되었다. 즉 어떤 집에 강도로 들어가 자는 것이었다. 찬도도 아무 뜻 없이 쾌히 승낙하였다. 아직껏 해보지 못한 범죄라 하는 것은, 찬도에게는 매우 흥미 있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이튿날 밤이 깊어서, 어떤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기서 찬도의 뜻밖의 일이 생겼다. 공범자는 돈을 다 뺏은 뒤에 준비했던 칼로 주 인 부처를 죽였다. 그리고 유쾌한 듯이 칼을 휙 던져서, 담벽에 꽂아놓은 뒤에 휘파람을 불면서 나갔다.

여기서 물론 찬도도 그 공범자와 함께 달아나는 것이 옳을 것이었다. 그러나 찬도는 움쭉하지 못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피는 그의 온몸을 마비시켰다. 그는 마치 그 자리에 발이 붙은 듯이, 눈이 멀찐 멀찐 서 있었다. 공범자는 이런 일에 경험이 많았는지, 칼 맞은 사람은 찍소리도 못하고 한칼에 죽었다. 그러나 근육은 아직 흐물흐물하였다.

피! 그것은 과연 괴상한 물건이었다. 거기에 커다란 충동을 받은 찬도는 정신을 못 차리고 서 있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정신을 수습해 보려하였다. 그러나 애쓰면 애쓸수록 정신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10여 분이 지난 뒤에야 그는 펄떡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아직껏 불같이 울어대는 어린아이가 있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였다. 그는, 발로써, 그 어린아이를 힘껏 찼다. 그리고 도망하려 뛰어나왔다.

그러나 그는, 그 집 문밖에서 순사에게 잡혔다. 순사는 어린아이가 너무도 우는 것이 수상하여, 그 집 문밖에서 동정을 엿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그 찬도의 경력을 이야기해오던 전 판사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제 말과 같이(그 제 말을 나는 믿습니다) 공범이 있었는데, 예심 조서 이하초심 기록 아무 데를 보든 다 저 혼자 범행한 모양으로 됐지 공범의 이야기는 없거든요. 하기는 경찰서의 조사에는 잠깐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뒤부터는 늘 그것을 부인해왔어요. 그런데 그 이유로 그 사람이 제 입으로 내게 한 말을 듣자면, 자기는 아무 세상 철없는 순진한 어린애를 죽였으니깐 죽어도 싼데…… 자기는 어차피 사형될 터에, 공연히 남까지 끌어 넣어서 그 사람까지 죽이면 무얼하느냐고…… 그사람, 공범의 죄를 보자면 역시 열 번 죽여도 싸기는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처자 가 있는 것을 생각하니깐, 자기의 어렸을 때의 생각이 나서 차마 불어 넣지 못하겠다고요. ‘피’를 본다 하는 것은 과연 무서운 것이외다. 아직껏 아무 반성 없이 온갖 죄악을 범해오던 그 사람도, 뜻하지 않은 피를 보고 그만 양심이 일어서면서 동시에 그런 고찰도 생긴 모양이지요.

그 사람은 제 경력을 다 이야기하더니 쓸쓸하게 웃으면서, 이것은 결코 자기가 감형을 받고 싶거나 그래서 한 것이 아니고, 왜 그런지(허영심이랄지) 죽기 전에 한번 이야기나 해보고 싶어서 한 것이라고. 그러면서 마지막 말로 자기는 죽어도 뒤에 남는 가족이라는 것이 없으니 안심이라고 하면서 도 로 감방으로 끌려갔습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못 잤습니다. 더구나 그 찬도의 아버지에게 3년의 형을 선고한 것은 나였습니다그려. 내가지방법원에 재직할 때에 그 사건을 맡아 했는데, 내 생애 가운데 많은 과실상해죄를 처결했으니깐 기억에 없을 듯하나, 그 사건만은 그때에 이 지방의 장관이 마차에 치여 죽었다는 별다른 사건이었으므로 아직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리고 나는 거기 대하여 손톱 눈만치도 후회하거나 부끄럽게 생각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 일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가 나라에서 맡은 책임이요, 온 국민에게 맡은 의무인 이상에 무엇이 부끄럽겠습니까. 찬도의 아버지도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지 않았겠지요. 그는 공소도 안 했으니깐……. 그러나 우리가 생각도 안 해던 ‘이면’에는 이러한 참극이 생겨났다는 것을 어떻게 뜻이나 했겠습니까.

나는 그 이튿날부터 찬도의 감형 운동을 했습니다. 물론 내 경험에 의지해서, 그 운동이 효과가 없을 줄은 짐작은 했어요. 공범자를 드러내면 혹은 전 판결을 번복시킬지도 모르나 이것은 찬도의 의사가 아니니깐, 다만 찬도는 환경 때문에 못된 죄를 범했으나 잘 지도 하면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유일의 이유로 감형 운동을 했습니다그려. 그리고 그 운동이 실패하게 된 것을 핑계 삼아가지고 판사를 사직하고 말았지요.

분명한 숫자를 모르지만 내가 형을 선고한 죄수만 하여도 20여 년간에 수천 명이 될 터인데, 그 가운데서 우리가 온전히 모르고 뜻도 안 한 비극과 참극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생각하면 속이 떨립디다그려.

내가 사직한 후 사흘 뒤에, 찬도는 사형을 받았지요. 그때 입회하였던 검사의 말을 들으니깐 그 사람, 이름도 부르기가 별합니다, 찬도의 마지막 말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는 한마디뿐이었다고요. 그리고 그 검사는 그 말을 회개한 죄수의 말로 해석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나는 처자가 없으니깐, 죽어도 뒤가 근심되지 않는다.’나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말이니, 어디 가서 뜻을 판단해달랄 수는 없지만, 어떻습니까, 내 해석이 오히려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전 판사는 의견을 묻는 듯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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