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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자어류/권15 대학2 大學二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朱子語類卷第十五

  •   大學二

대학(2)

  •   經下

경(하)

  •  15:1 器遠問: “致知者, 推致事物之理. 還當就甚麽樣事推致其理?”

기원(器遠)[1]의 질문: 앎을 지극히 함(致知)이란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극치까지 밀고 나가는(推致) 것입니다. 응당 어떤 사건의 이치를 지극히 해야 합니까?

曰: “眼前凡所應接底都是物. 事事都有箇極至之理, 便要知得到. 若知不到, 便都沒分明; 若知得到, 便著定[2]恁地做, 更無第二著·第三著. 止緣人見道理不破, 便恁地苟簡, 且恁地做也得, 都不做得第一義.”

대답: 눈 앞에서 응접하는 모든 것이 물(物)이다. 사사건건에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그 이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죄다 분명하지 못하게 된다. 제대로 알면 반드시(決定著) 그렇게 실천하게 되니 제2책(第二著)이니 제3책(第三著)이니 하는 게 없다. 사람들은 다만 도리를 분명하게 간파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어설픈 것이다. 당장은 저런 식으로 해도 되겠지만 어떻게해도 최선책(第一義)은 해낼 수 없다.

曹問: “如何是第一義?”

조(기원)의 질문: 무엇이 최선책(第一義)입니까?

曰: “如‘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之類, 決定著恁地, 不恁地便不得. 又如在朝, 須著進君子, 退小人, 這是第一義. 有功決定著賞, 有罪決定著誅, 更無小人可用之理, 更無包含小人之理. 惟見得不破, 便道小人不可去, 也有可用之理. 這都是第二義·第三義, 如何會好! 若事事窮得盡道理, 事事占得第一義, 做甚麽剛方正大! 且如爲學, 決定是要做聖賢, 這是第一義, 便漸漸有進步處. 若便道自家做不得, 且隨分依稀做些子, 這是見不破. 所以說道: ‘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謂吾身不能者, 自賊者也.” 賀孫(62이후).

대답: '임금은 인(仁)에 머물고 신하는 경(敬)에 머물고 자식은 효(孝)에 머문다'같은 것들은 반드시(決定著) 이와 같아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예를 들어 조정에서 봉직할 때에는 반드시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내쳐야 하니 이것이 최선책(第一義)이다. 공이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시상하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주살해야 하니, 소인을 쓸 수 있다는 이치나 소인도 포용한다는 이치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인을 완전히 내칠 수 없다는둥 소인을 써도 되는 이치가 있다는둥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제2책이니 제3책이니 하는 것들이니 어찌하면 좋을까? 사사건건에서 도리를 완전히 밝혀내면 사사건건마다 최선책(第一義)를 점할 수 있으니 무엇을 하든 강건하고 방정하고 올바르고 당당하다(剛方正大). 학문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최선책(第一義)이니 (이렇게 하면) 점점 진보가 있게 된다. 만약 자기는 그렇게는 못하니까 일단 자기 분수에 맞게 조금만(依稀) 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3]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은 못한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자라는 뜻이다.

섭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卓錄云:

<황탁의 기록>

曹兄問: "格物窮理, 須是事事物物上理會?”

<조형의 질문: 격물궁리(格物窮理)는 사사물물 각각의 상황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曰: “也須是如此, 但窮理上須是見得十分徹底, 窮到極處, 須是見得第一著, 方是, 不可只到第三第四著便休了. 若窮不得, 只道我未窮得到底, 只得如此, 這是自恕之言, 亦非善窮理也. 且如事君, 便須是‘進思盡忠, 退思補過’, '道合則從, 不合則去'. 也有義不可得而去者, 不可不知.”

<대답: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궁리할 적에 반드시 100퍼센트 철저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탐구가 지극한 지점(極處)까지 도달하여 반드시 최선책(第一著)을 이해해야만 한다. 제 3책이나 제 4책 정도에 도달하고 그만두어버리면 안 된다. (제대로) 궁리하지 못하고서, 그저 나는 끝까지 궁리하지 못해서 이럴 수밖에 없었다느니 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변명이지 궁리를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반드시 '나아가면 충(忠)을 다할 생각을 하고 물러나면 잘못을 개선할 생각을'하고[4], '도가 맞으면 따르고 맞지 않으면 떠'나야[5] 하지만 의리상 떠날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몰라서는 안 된다.>

又云: “如‘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這皆是極處.”

<다시 대답: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같은 것들은 모두 지극한 지점(極處)이다.>

以下致知.>

<이 아래로는 치지(致知)에 관한 조목들>

  •  15:2 致知所以求爲眞知. 眞知, 是要徹骨都見得透. 道夫(60이후).

치지는 참으로 알게(眞知)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다(眞知)는 것은 뼛속까지 꿰뚫어 투철히 이해하려는 것이다.

  •  15:3 問: “致知莫只是致察否?”

질문: 치지는 그저 살피기를 지극히 한다(致察)는 것 아닙니까?

曰: “如讀書而求其義, 處事而求其當, 接物存心察其是非·邪正, 皆是也.” 㝢(61이후).

대답: 예컨대 책을 읽을 적에 그 의리를 구하고, 일을 처리할 적에 마땅하게 하기를 구하고, 사물을 접하거나 마음을 수습하여 보존할(存心) 적에[6]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살피는 행위가 모두 이것(치지)이다.

  •  15:4 因鄭仲履之問而言曰: “致知乃本心之知. 如一面鏡子, 本全體通明, 只被昏翳了, 而今逐旋磨去, 使四邊皆照見, 其明無所不到.” 蓋卿(65때).

정중리의 질문에 대한 답: 치지는 본심의 앎(本心之知)이다.[7] 예를 들어 거울은 본래 온전히 밝지만 흐린 것이 끼었을 뿐이다. 이제 점점 갈고닦아 사방을 모두 비추도록하면 그 밝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  15:5 致知有甚了期! 方(41때).

치지에 무슨 끝날 기약이 있겠나?

  •  15:6 致知工夫, 亦只是且據所已知者, 玩索推廣將去. 具於心者, 本無不足也.

치지공부는 역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의지하여 (그것을) 완미하고 확장해나가는 것 뿐이다. 마음에 갖춘 것은 본래 부족함이 없다.

  •  15:7 格物者, 格, 盡也, 須是窮盡事物之理. 若是窮得三兩分, 便未是格物. 須是窮盡得到十分, 方是格物. 賀孫(62이후).

격물(格物)에서 격(格)은 남김없이 다한다(盡)는 뜻이다.[8]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남김없이 다 파고들어야[9] 한다. 만약 2할이나 3할쯤 파고들었다면 격물이 아니다. 남김없이 파고들어 100퍼센트에 이르러야 격물이다.

하손의 기록.

  • <以下格物, 兼論窮理.>

<이 아래로 격물에 관한 조목들. 궁리에 관한 논의도 겸한다.>

  •  15:8 居甫問: “格物工夫, 覺見不周給.”

거보(서우)의 질문: 격물공부가 두루 미치지 않는 듯합니다.

曰: “須是四方八面去格.” 可學(62때).

대답: 사방팔방에 나아가 탐구해야(格) 한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9 格物. 格, 猶至也, 如‘舜格于文祖’之‘格’, 是至于文祖處. 芝(63때).

격물의 격은 이르다(至)와 같다.[10] 예컨대 '순임금이 문조의 묘에 격하여(舜格于文祖)'[11]에서의 '격'은 문조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0 問: “格物, 還是事未至時格, 事旣至然後格?”

질문: 격물은 사태가 아직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태가 이른 뒤에 '격'하는 것입니까?[12]

曰: “格, 是到那般所在. 也有事至時格底, 也有事未至時格底.” 芝(63때).

대답: '격'은 (자신이) 저것이 있는 곳으로 이르는 것이다. 사태가 이르렀을 때 '격'하는 경우도 있고 사태가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경우도 있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1 格物者, 如言性, 則當推其如何謂之性; 如言心, 則當推其如何謂之心, 只此便是格物. 砥(61때).

격물이란, 예를 들어 성(性)이다 하면 무엇을 성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하고 심(心)이다 하면 무엇을 심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격물이다.

지(砥)의 기록. (61세)

  •  15:12 窮理格物, 如讀經看史, 應接事物, 理會箇是處, 皆是格物. 只是常敎此心存, 莫敎他閑沒勾當處. 公且道如今不去學問時, 此心頓放那處? 賀孫(62이후).

궁리와 격물은, 예컨대 경서를 읽고 역사서를 읽고 사태와 사물에 접하고 대응하면서 각각의 경우에 옳은 지점을 헤아리는 것이 모두 격물이다. 그저 늘 이 마음을 간직해야지, 한가로이 일 없는 자리에 머물지 말라. 그대가 한 번 말해보라. 요즘 학문하지 않을 때에는 그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3 格物, 須是從切己處理會去. 待自家者已定疊, 然後漸漸推去, 這便是能格物. 道夫(60이후).

격물은 자신에게 절실한 지점에서부터 헤아려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선 자신의 마음이 안정된 다음에 천천히 밀고 나가야 격물이 가능하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 “格物”二字最好. 物, 謂事物也. 須窮極事物之理到盡處, 便有一箇是, 一箇非, 是底便行, 非底便不行. 凡自家身心上, 皆須體驗得一箇是非. 若講論文字, 應接事物, 各各體驗, 漸漸推廣, 地步自然寬闊. 如曾子三省, 只管如此體驗去. 德明(44이후).

격물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좋다. 물은 사건과 사물이다.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남김 없이 파고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는데 옳은 것이면 행하고 그른 것이면 행하지 않는다. 대개 옳고 그름을 자신의 심신상에서 모두 체험(體驗)해야 한다. 문자를 강론하고 사건과 사물에 대응할 적에 각각의 경우(의 옳고 그름)를 체험하며 점점 미루어 넓혀간다면 (자신의) 지평이 자연히 드넓어질 것이다. 증자(曾子)가 매일 세 가지 항목으로 반성한 것처럼[13] 그저 이렇게 체험해가야 한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15 文振問: “物者, 理之所在, 人所必有而不能無者, 何者爲切?”

문진(文振)의 질문: 물(物)은 이치가 있는 곳이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으며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절실합니까?

曰: “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 皆人所不能無者. 但學者須要窮格得盡. 事父母, 則當盡其孝; 處兄弟, 則當盡其友. 如此之類, 須是要見得盡. 若有一毫不盡, 便是窮格不至也.” 人傑(51이후).

대답: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 관계는 모든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배우는 이라면 더더욱 반드시 남김 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부모를 모실 때는 효를 다해야 하고 형제간에 지낼 때는 우애를 다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남김 없이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하지 못하면 끝까지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16 格物, 莫先於五品. 方子(59이후).

격물(格物)의 대상은 오륜(五品)[14]이 최우선이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17 格物, 是窮得這事當如此, 那事當如彼. 如爲人君, 便當止於仁; 爲人臣, 便當止於敬. 又更上一著, 便要窮究得爲人君, 如何要止於仁; 爲人臣, 如何要止於敬, 乃是. 銖(67이후).

격물(格物)은 이 사안은 이래야 하고 저 사안은 저래야 한다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멈추어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멈추어야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임금은 어찌하여[15] 인에 멈추어야 하는지, 신하는 어찌하여 경에 멈추어야 하는지를 깊이 탐구해야 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18 格物者, 格其孝, 當考論語中許多論孝; 格其忠, 必‘將順其美, 匡救其惡’, 不幸而仗節死義. 古人愛物, 而伐木亦有時, 無一些子不到處, 無一物不被其澤. 蓋緣是格物得盡, 所以如此. 節(64이후).

'격물(格物)'이란, 효(孝)를 격(格)하려면 '논어'에서 효를 논한 많은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하고 충(忠)을 격(格)하려면 반드시 '임금이 잘하는 것은 받들어 따르고(將順其美), 임금이 잘못하는 것은 바로잡아 제지해야(匡救其惡)'[16]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절개를 지키고 의로움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다(仗節死義).[17] 옛사람들은 만물을 사랑하여 나무를 베는 것에도 때가 있었다. 이 사랑이 도달하지 못한 곳이 조금도 없었으며, 이 은택을 입지 못한 사물이 하나도 없었다. 대개 격물을 완전하게 해냈기 때문에 이와 같았던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9 格物, 須眞見得決定是如此. 爲子豈不知是要孝?爲臣豈不知是要忠?人皆知得是如此. 然須當眞見得子決定是合當孝, 臣決定是合當忠, 決定如此做, 始得. 㝢(61이후).

격물(格物)할 적에는 결단코 반드시 이러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식이 되어서 어찌 효도해야 함을 모르겠나? 신하가 되어서 어찌 충성해야 함을 모르겠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해야 함을 안다. 그러나 자식은 결단코 반드시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결단코 반드시 충성해야 하며 결단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0 如今說格物, 只晨起開目時, 便有四件在這裏, 不用外尋, 仁義禮智是也. 如才方開門時, 便有四人在門裏. 僩(69이후).

지금 말한 격물의 경우, 그저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이미 네 가지가 바로 여기 있으므로 밖에 나가 찾을 필요가 없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바로 이 네 가지이다. 마치 (조금 전) 문을 열자마자 (여러분) 네 사람이 문 안에 있었던 것과 같다.[18]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1 子淵說: “格物, 先從身上格去. 如仁義禮智, 發而爲惻隱·羞惡·辭遜·是非, 須從身上體察, 常常守得在這裏, 始得.”

자연(子淵)이 말함: '격물'은 우선 자기자신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발현되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되는 것을 자기자신에게서 직접 관찰하고, 그것을 늘 속에 간직해야 됩니다.

曰: “人之所以爲人, 只是這四件, 須自認取意思是如何. 所謂惻隱者, 是甚麽意思? 且如赤子入井, 一井如彼深峻, 入者必死, 而赤子將入焉! 自家見之, 此心還是如何? 有一事不善, 在自家身上做出, 這裏定是可羞; 在別人做出, 這裏定是惡他. 利之所不當得, 或雖當得, 而吾心有所未安, 便要謙遜辭避, 不敢當之. 以至等閑禮數, 人之施於己者, 或過其分, 便要辭將去, 遜與別人, 定是如此. 事事物物上各有箇是, 有箇非, 是底自家心裏定道是, 非底自家心裏定道非. 就事物上看, 是底定是是, 非底定是非. 到得所以是之, 所以非之, 卻只在自家. 此四者, 人人有之, 同得於天者, 不待問別人假借. 堯舜之所以爲堯舜, 也只是這四箇, 桀紂本來亦有這四箇. 如今若認得這四箇分曉, 方可以理會別道理. 只是孝有多少樣, 有如此爲孝, 如此而爲不孝; 忠固是忠, 有如此爲忠, 又有如此而不喚做忠, 一一都著斟酌理會過.” 賀孫(62이후).

대답: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바로 이 네 가지 뿐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반드시 스스로 알아야 한다. 이른바 측은지심이란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 갓난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한다는 이야기를 보자.[19] 이 우물이 이토록 깊고 험하여 빠지면 반드시 죽게 되는데 어떤 아이가 빠지려 한다! 자신이 그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어떤 좋지 못한 일을 자기 자신이 했다고 한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부끄러울(羞) 것이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그를 미워할(惡) 것이다. 얻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그런 이익이 있거나, 혹여 비록 적절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다면 겸손하게 사양하여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20] 심지어 사소한 예절에서도(等閑禮數) 남이 나에게 베풀 때 분수를 넘어버리면 그것을 사양하여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 반드시 이렇게 한다. 모든 사건과 사물에는 각각 옳고 그름이 있다. 옳은 것은 자기 마음 속에서 반드시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내 마음 속에서 반드시 그르다고 말한다. (마음이 아니라) 사건과 사물쪽에 가서 보면 옳은 것은 반드시 옳고 그른 것은 반드시 그르다. 그러나 옳게 여기고 그르게 여기는 판단의 근거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이 네 가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하늘로부터 똑같이 받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요순이 요순이 된 이유 역시 이 네 가지일 뿐이다. 걸왕과 주왕도 원래는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이 네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만 비로소 다른 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효(孝)에도 그 양상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해서 효가 되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똑같이 했는데 불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충(忠)은 충인데, 이렇게 해서 충이 되는 경우도 있고, 다시 똑같이 이렇게 했는데 충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하나 모두 신중히 살펴보고 헤아려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22 問: “格物最難. 日用間應事處, 平直者卻易見. 如交錯疑似處, 要如此則彼礙, 要如彼則此礙, 不審何以窮之?”

질문: '격물'이 가장 어렵습니다. 일상 속에서 일에 대응하는 경우 중에서 평이직절한 것이야 보기 쉽습니다만 복잡하고 애매한 것들은 이렇게 하려 하면 저것이 장애가 되고, 저렇게 하려 하면 이것이 방해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탐구해야 합니까?

曰: “如何一頓便要格得恁地! 且要見得大綱, 且看箇大胚模是恁地, 方就裏面旋旋做細. 如樹, 初間且先斫倒在這裏, 逐旋去皮, 方始出細. 若難曉易曉底, 一齊都要理會得, 也不解恁地. 但不失了大綱, 理會一重了, 裏面又見一重; 一重了, 又見一重. 以事之詳略言, 理會一件又一件; 以理之淺深言, 理會一重又一重. 只管理會, 須有極盡時.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成四節次第, 恁地方是.” 㝢(61이후).

대답: 어떻게 첫 술에(一頓)[21] 그렇게 (완벽하게) 격물하려 하는가? 우선은 큰 줄기(大綱)를 보아야 한다. 우선 전체적인 틀(mould)이[22]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旋旋)[23] 세밀한 것을 해나가야 한다. 나무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우선 나무를 베어 여기에 쓰러뜨려 놓은 다음에 순서대로(逐旋) 한겹씩 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안쪽의 섬세한 부분이 드러난다. 만약 이해하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모두 일제히 헤아리려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할 수가 없다.[24] 그러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면서, 한 겹을 헤아리고 나면 그 안에 또 한 겹을 보게 되고, 그 한 겹을 이해하고 나면 또 다시 그 아래 한 겹을 보게 된다. 일의 자세함과 간략함으로 말하자면, (간략한 것) 한 건을 헤아리고 다시 (자세한 것) 한 건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치의 얕음과 깊음으로 말하자면, (얕은 것) 한 겹을 헤아리고 다시 (깊은 것) 한 겹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헤아리다 보면 반드시 완전히 남김없이 헤아리게 되는 때가(極盡時) 올 것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는'[25] 것이 네 단계의 절차를 이룬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3 或問: “格物是學者始入道處, 當如何著力?”

누군가의 질문: '격물'은 배우는 이가 처음으로 도(道)에 들어가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힘써야 합니까?

曰: “遇事接物之間, 各須一一去理會始得. 不成是精底去理會, 粗底又放過了; 大底去理會, 小底又不問了. 如此, 終是有欠闕. 但隨事遇物, 皆一一去窮極, 自然分明.”

대답: 상황을 만나고 사물을 접하는 사이에 각각 하나하나 헤아려야 한다. 설마하니 정밀한 것은 헤아리고 거친 것은 방치하며 큰 것은 헤아리고 작은 것은 탐문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하면 결국 무언가 빠뜨리게 된다. 다만 사물과 상황에 따라 모두 하나하나 끝까지 파고들면 자연히 분명해진다.

又問: “世間有一種小有才底人, 於事物上亦能考究得仔細, 如何卻無益於己?”

재질문: 세상에는 약간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상황과 사물에 대해 꼼꼼하게 연구할 수 있는데도 어째서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曰: “他理會底, 聖人亦理會, 但他理會底意思不是. 彼所爲者, 他欲人說, ‘他人理會不得者, 我理會得; 他人不能者, 我能之’, 卻不切己也.”

대답: 그들이 헤아린 대상은 성인도 헤아리지만, 그들의 (상황과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려는 의도(意思)는 (성인의 의도와) 다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나는 헤아린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고 타인이 말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절실하지 못하다.

又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聖人何事不理會, 但是與人自不同.” 祖道(68때).

다시 대답: '문왕과 무왕의 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남아있습니다. 현자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불현자는 그 작은 것을 기억합니다. 문무의 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26]라고 하였다. 성인[27]이 어떤 일이든 헤아리지 않았겠는가? 다만 (남들이 알아주기나 바라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히 다를 뿐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24 傅問: “而今格物, 不知可以就吾心之發見理會得否?”

부(傅)[28]의 질문: 이제 '격물'을 할 때,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 마음에서 발현하는 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는 것 아닙니까?[29]

曰: “公依舊是要安排, 而今只且就事物上格去. 如讀書, 便就文字上格; 聽人說話, 便就說話上格; 接物, 便就接物上格. 精粗大小, 都要格它. 久後會通, 粗底便是精, 小底便是大, 這便是理之一本處. 而今只管要從發見處理會. 且如見赤子入井, 便有怵惕·惻隱之心, 這箇便是發了, 更如何理會. 若須待它自然發了, 方理會它, 一年都能理會得多少! 聖賢不是敎人去黑淬淬裏守著. 而今且大著心胸, 大開著門, 端身正坐以觀事物之來, 便格它.” 蘷孫(68이후).

대답: 그대는 여전히 머리를 굴려 안배(安排)하려고 한다. 지금은 우선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격물해야 한다. 독서의 경우는 읽고 있는 글에서 격물하고, 남의 말을 들을 때는 그 말에서 격물하고, 사물을 접할 때는 그렇게 접한 사물에서 격물하라. 정밀하든 거칠든, 크든 작든 모두 격물해야 한다. 오래도록 이렇게 하다가 회통(會通)[30]하면 거친 것이 곧 정밀한 것이요, 작은 것이 곧 큰 것이다. 여기가 바로 모든 이치의 단일한 뿌리가 되는 지점이다.[31] 이제 (그대는) 그저 발현된 지점에서만 헤아리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놀랍고 두렵고 측은한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발현된 지점인데, 여기서 더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만약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일년 내내 몇 개쯤 헤아릴 수 있겠나? 성현은 사람들더러 (마음이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저 암흑 속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이제 가슴을 크게 열고, 문을 넓게 열고,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 다가오는 사태와 사물을 관찰하며 그것들을 격물하라.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25 世間之物, 無不有理, 皆須格過. 古人自幼便識其具. 且如事君事親之禮, 鐘鼓鏗鏘之節, 進退揖遜之儀, 皆目熟其事, 躬親其禮. 及其長也, 不過只是窮此理, 因而漸及於天地鬼神日月陰陽草木鳥獸之理, 所以用工也易. 今人皆無此等禮數可以講習, 只靠先聖遺經自去推究, 所以要人格物主敬, 便將此心去體會古人道理, 循而行之. 如事親孝, 自家旣知所以孝, 便將此孝心依古禮而行之; 事君敬, 便將此敬心依聖經所說之禮而行之. 一一須要窮過, 自然浹洽貫通. 如論語一書, 當時門人弟子記聖人言行, 動容周旋, 揖遜進退, 至爲纖悉. 如鄕黨一篇, 可見當時此等禮數皆在. 至孟子時, 則漸已放棄. 如孟子一書, 其說已寬, 亦有但論其大理而已. 僩(69이후).

세상 모든 것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으므로 모두 낱낱이 격물해야 한다. 옛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사물이 이치를) 갖추고 있음을 인식했다. 예를 들어, 군주를 섬기고 부모를 섬기는 예법, (중요한 의식에서) 종치고 북치는 절차, (의식에서 사람들이)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몸짓을 모두 눈으로 익히고 몸소 실천했다. 더 자라서는 그저 이 이치를[32] 깊이 연구한 데 불과하다. 이어서 나아가 점차 천지, 귀신, 일월, 음양, 초목, 조수의 이치까지 이른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쉬웠다.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예절(禮數)[33](의 전통이 모두 사라져서) 그것을 전혀 강습할 수가 없으므로 오로지 성인이 남긴 경전에 의존하여 저 홀로 유추하고 연구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격물(格物)과 주경(主敬)[34]을 가지고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마음에서 고대인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여 그 도리를 좇아 실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먼저 스스로 효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효심을 가지고 고대의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군주를 공경히 섬기는 것의 경우도 (먼저 그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인의 경전에서 설명하는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모두 깊이 연구하면 자연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꿰뚫게 된다. '논어' 한 권을 예로 들자면, 당시 문인제자들이 성인의 말과 행동, (중요한 의식에서의) 몸가짐과 동작,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지극히 상세하다. '향당(鄕黨)' 편을 보면 당시 이러한 예절(禮數)이 모두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맹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서히 버려졌다. '맹자' 한 권을 보면, 그 논의가 이미 완화되어,[35] 역시 거시적인 이치만[36] 논하고 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6 問竇從周: “曾看‘格物’一段否?”

선생이 두종주(竇從周)에게 질문: '격물' 한 단락은 읽어보았는가?

因言: 聖人只說“格物”二字,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且自一念之微, 以至事事物物, 若靜若動, 凡居處飮食言語, 無不是事, 無不各有箇天理人欲. 須是逐一驗過, 雖在靜處坐, 亦須驗箇敬·肆. 敬便是天理, 肆便是人欲. 如居處, 便須驗得恭與不恭; 執事, 便須驗得敬與不敬. 有一般人專要就寂然不動上理會, 及其應事, 卻七顚八倒, 到了, 又牽動他寂然底. 又有人專要理會事, 卻於根本上全無工夫. 須是徹上徹下, 表裏洞徹. 如居仁, 便自能由義; 由義, 便是居仁. “敬以直內”, 便能“義以方外”; 能“義以方外”, 便是“敬以直內.” 德明(44이후).

(선생이) 이어서 말함: 성인은 단지 '격물' 두 글자를 말했을 뿐이니, 이는 구체적인 사태와 사물에서 이치를 헤아리도록 요구한 것이다. 하나의 미미한 생각에서부터 온갖 사사물물에 이르기까지,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거처, 음식, 언어 등 사태(事) 아닌 것이 없으며, 각각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함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각각의 사태와 사물을 따라) 하나하나 점검해야 한다. 비록 고요한 곳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경건한지(敬) 방종한지(肆) 점검해야 한다. 경건하면 천리이고, 방종하면 인욕이다. 집에 있는 경우는 공손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하고, 일을 집행할 경우에는 경건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37]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寂然不動)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사태에 대응할 적에 오히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자빠져서(七顚八倒) 결국 자신의 그 고요한 것까지 뒤흔들어버리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사태에서 헤아리려 하고 뿌리가 되는 지점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위쪽으로도 아래쪽으로도[38] 끝까지 꿰뚫고, 바깥쪽으로도 안쪽으로도[39] 완전히 꿰뚫어야 한다. 인(仁)에 기거하면 저절로 의(義)로운 길을 걸을 수 있고, 의로운 길을 걸으면 곧 인에 기거하는 것이다.[40]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敬以直內)' 하면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義以方外)' 할 수 있으며,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 할 수 있으면 곧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41]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27 才仲問: “格物, 是小學已有開明處了, 便從大學做將去, 推致其極.”

재중(才仲)의 질문: '격물'은 소학의 단계에서 이미 개명(開明)된 것이 있고, 대학의 단계에서 (그 개명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나가서 극치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曰: “人也不解無箇發明處. 才有些發見處, 便從此挨將去, 漸漸開明. 只如一箇事, 我才發心, 道‘我要做此事’, 只此便是發見開明處了, 便從此做將去. 五代時, 有一將官, 年大而不識字. 旣貴, 遂令人於每件物事上書一名字帖之, 渠子細看, 久之, 漸漸認得幾箇字. 從此推將去, 遂識字.” 璘(62때). 

대답: 사람은 (기존에) 발명(發明)된 부분이 없을 수 없다[42]. 조금이라도 발현된 부분이 있으면 거기에서부터 밀고 나가 점점 열어 밝힌다(開明).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일에 대하여 발심(發心)하여, '내가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한다면 여기가 바로 발현된 부분이요 개명된 부분이니 거기에서 시작하여 해나가야 한다. 오대(五代) 때의 어떤 장수는 나이는 많은데 글자를 알지 못했다. 신분이 귀해진 그는 사람을 시켜 주변의 물건마다 이름표를 붙이게 하였다. 그는 그것들을 꾸준히 세심히 보았고, 점차 글자 몇 개를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밀고 나가서 마침내 글자를 알아보게 되었다.[43]

린(璘)의 기록. (62세)

  •  15:28 問: “格物則恐有外馳之病?”

질문: '격물'을 하면 바깥쪽으로 정신이 팔리는(外馳) 병폐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曰: “若合做, 則雖治國平天下之事, 亦是己事. ‘周公思兼三王, 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不成也說道外馳!”

대답: 만약 응당 해야 하는 것이라면 치국평천하의 일이라 할지라도 역시 자기 (내면의) 일이다. '주공(周公)은 세 왕[44]의 치적을 포괄하여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셨다. 혹여 (세 왕이 했던 것 가운데) 오늘날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거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낮에 이어 밤에도 계속하여, 다행히 무언가 터득하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앉아서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45] 설마하니 주공의 마음도 바깥쪽으로 팔렸다고 하진 않겠지?

又問: “若如此, 則恐有身在此而心不在此,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有此等患.”

재질문: 그렇게하면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기 있지 않아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는'[46]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曰: “合用他處, 也著用.”

대답: 그렇게 해야하는 경우에는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47]

又問: “如此, 則不當論內外, 但當論合爲與不合爲.”

재질문: 그렇다면 내면이냐 외면이냐를 논할 것이 아니라, 다만 응당 해야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논해야 할 뿐입니다.

先生頷之. 節(64이후).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29 若格物, 則雖不能盡知, 而事至物來, 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 雖不中, 不遠矣. 節(64이후).

'격물'의 경우, 비록 모두 완전히 알 수는 없다하더라도 일이 닥치고 사물이 왔을 때 큰 것은 조금 더해서 처리하고 작은 것은 조금 덜어내서 처리하면(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48] 비록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雖不中, 不遠矣).[49]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0 問: “格物工夫未到得貫通, 亦未害否?”

질문: '격물' 공부는 꿰뚫는(貫通) 경지에 이르지 못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曰: “這是甚說話! 而今學者所以學, 便須是到聖賢地位, 不到不肯休, 方是. 但用工做向前去, 但見前路茫茫地白, 莫問程途, 少間自能到. 如何先立一箇不解做得便休底規模放這裏了, 如何做事! 且下手要做十分, 到了只做得五六分; 下手做五六分, 到了只做得三四分; 下手做三四分, 便無了. 且諸公自家裏來到建陽, 直到建陽方休. 未到建陽, 半路歸去, 便是不到建陽. 聖賢所爲, 必不如此. 如所謂: ‘君子鄕道而行, 半途而廢. 忘身之老也, 不知年數之不足也, 俛焉日有孶孶, 斃而後已! ’又曰: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憂之如何? 如舜而已矣.’” 卓(미상).

대답: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금 배우는 이가 학문을 하는 까닭은 반드시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도달하지 않으면 그만둘 생각이 없어야 옳다. 다만 힘껏 앞을 향해 해나갈 뿐이다. 그저 앞길을 막막하게 보면서(茫茫地白) 어디까지 왔는지 묻지 말라(莫問程途). (계속 앞을 향해 나가면) 잠시 후에 저절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50] 어째서 해보기도 전에 '안 되면 그만둔다(不解做得便休)'는 한계(規模)[51]를 여기다 정해두려 하는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일을 해내겠나? 처음부터 100%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50-60%정도만 하게 되고 처음부터 50-60%를 하려고 하면 결국 30-40%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처음부터 30-40%를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또, 그대들이 그대들 집에서 건양(建陽)까지 오려면 건양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멈춘다. 건양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가면 건양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성현이 하는 일은 결코 이와 같지 않다. 예컨대 '군자는 도를 향해 가다가 중도에[52] 그만두면 자신이 늙었음을 잊고 앞으로 살 날이 부족한 것도 모르고 날마다 부지런히(孶孶) 몰두하다(俛焉)[53] 죽고 나서야 멈춘다.'[54] 고 하였고, 또 '순(舜)은 천하의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한데 나는 여전히 평범한 촌사람을 면치 못하는구나. 이런 것은 (군자가)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여 어떻게 하는가? 순처럼 할 뿐이다.'[55]라고 하였다.

탁(卓)의 기록.

  •  15:31 人多把這道理作一箇懸空底物. 大學不說窮理, 只說箇格物,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如此方見得實體. 所謂實體, 非就事物上見不得. 且如作舟以行水, 作車以行陸. 今試以衆人之力共推一舟於陸, 必不能行, 方見得舟果不能以行陸也, 此之謂實體. 德明(44이후).

사람들은 대부분 이 도리를 공중에 붕 뜬 물건으로 여긴다.[56] '대학'에서 이치를 파고들라(窮理)고 말하지 않고 그저 사물에 나아가라(格物)고만 말한 것은 곧 사람들더러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여 (도리를) 헤아리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란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들어 물 위를 가고, 수레를 만들어 육지를 간다.'[57]같은 경우 이제 시험삼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배를 육지 위로 밀어보면 결코 운행할 수 없을 것이니, 그제서야 비로소 배는 과연 육지를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다.[58]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2 問: “道之不明, 蓋是後人舍事跡以求道.”

질문: '도(道)가 밝지 못하게'[59] 된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도를 구할 때 구체적인 상황(事跡)을 도외시하기 때문입니까?

曰: “所以古人只道格物. 有物便有理, 若無事親事君底事, 何處得忠孝!” 節(64이후).

대답: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저 '격물(格物)'이라고만 하였다.[60] 사물과 상황이 있으면 (그곳에) 이치가 있다. 만약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긴다는 상황(事)이 없다면 충(忠)과 효(孝)(라는 이치를)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3 “窮理”二字不若格物之爲切, 便就事物上窮格. 如漢人多推秦之所以失, 漢之所以得, 故得失易見. 然彼亦無那格底意思. 若格之而極其至, 則秦猶有餘失, 漢亦當有餘得也.”

'궁리(窮理)'라는 두 글자는 '격물(格物)'이라는 표현이 친근하고 절실한(切)[61] 것에 미치지 못한다. 곧, 실제 사건과 사물의 현장에서 탐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 사람들이 진(秦)나라가 실패한(失) 이유와 한나라가 성공한(得) 이유를 많이 분석해준 덕에 (우리는) 그 득실(得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격(格)하는 정신은 없다.[62] 만약 격(格)하여 그 극한까지 이르면 진나라에는 기존에 들춰내지 못했던 실패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한나라에는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성공 지점이 있을 것이다.

又云: “格, 謂至也, 所謂實行到那地頭. 如南劍人往建寧, 須到得郡廳上, 方是至, 若只到建陽境上, 卽不謂之至也.” 德明(44이후).

다시 말함: '격(格)'은 '도달하다(至)'라는 뜻이다. 이른바 '실제로 가서 그 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검(南劍)[63] 사람이 건녕(建寧)[64]에 가는 경우 반드시 군청(郡廳)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도달한 것이다. 만약 건양(建陽)[65]의 경계에만 도달했을 뿐이라면 도달했다고 하지 않는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4 格物, 不說窮理, 卻言格物. 蓋言理, 則無可捉摸, 物有時而離; 言物, 則理自在, 自是離不得. 釋氏只說見性, 下梢尋得一箇空洞無稽底性, 亦由他說, 於事上更動不得. 賀孫(62이후).

'격물' 같은 경우, '궁리'라고 하지 않고 도리어 '격물'이라고 말하였다. 생각건대 그 까닭은 이치(理)라고 말하면 붙잡을 것이 없어서 사물이 때로 (이치를 논의할 때) 분리되어 버리지만, 사물(物)이라고 말하면 이치는 자연히 그 안에 있어서 본래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66] 석씨(釋氏)는 그저 '본성을 본다(見性)'고만 하는데, 결국 공허하고 근거 없는(空洞無稽)[67]본성을 찾는 것이다. 설령 그들의 말대로 한다 해도(亦由他說)[68] 현실의 사태에서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35 所謂窮理者, 事事物物, 各自有箇事物底道理, 窮之須要周盡. 若見得一邊, 不見一邊, 便不該通. 窮之未得, 更須款曲推明. 蓋天理在人, 終有明處. “大學之道, 在明明德”, 謂人合下便有此明德. 雖爲物欲掩蔽, 然這些明底道理未嘗泯絶. 須從明處漸漸推將去, 窮到是處, 吾心亦自有準則. 窮理之初, 如攻堅物, 必尋其罅隙可入之處, 乃從而擊之, 則用力爲不難矣. 孟子論四端, 便各自有箇柄靶, 仁義禮智皆有頭緖可尋. 卽其所發之端, 而求其可見之體, 莫非可窮之理也. 謨(50이후).

이른바 궁리(窮理)란,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 각각에 본래 그 사태와 사물 고유의 도리가 있으니 그것을 반드시 남김없이 완전히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을 보지 않으면 두루 통달했다(該通)고 할 수 없다. 아직 다 탐구하지 못했다면 더욱 상세하게 미루어 밝혀야 한다. 생각건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있으니 (우리 안에) 끝끝내 밝은 지점이 있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것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 밝은 덕이 있다는 뜻이다. 비록 물욕에 엄폐(掩蔽)되었다 하더라도 이 밝은 도리는 결코 민멸된(泯絶) 적이 없다. 밝은 곳에서부터 점점 밀고 나가서 궁극적으로 올바른 지점(是處)에 도달하면 내 마음에도 저절로 준칙(準則)이 있게 된다. 궁리(窮理)의 초반부는 마치 단단한 물체를 가공하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두들기면 힘쓰기가 어렵지 않다. 맹자가 사단(四端)을 논하여 각각 손잡이(柄靶)가 생겼다.[69] 인의예지(仁義禮智)에는 모두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頭緖)가 있다. 발현되어 나온 실마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우리의 인식 시야에 들어온 본체(可見之體)를 찾아나가면 탐구(窮)할 수 없는 이치가 없다.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36 格物窮理, 有一物便有一理. 窮得到後, 遇事觸物皆撞著這道理: 事君便遇忠, 事親便遇孝, 居處便恭, 執事便敬, 與人便忠, 以至參前倚衡, 無往而不見這箇道理. 若窮不至, 則所見不眞, 外面雖爲善, 而內實爲惡, 是兩箇人做事了! 外面爲善是一箇人, 裏面又有一箇人說道: “我不好.” 如今須勝得那一箇不好底人去方是. 豈有學聖人之書, 爲市井之行, 這箇窮得箇甚道理! 而今說格物窮理, 須是見得箇道理親切了, 未解便能脫然去其舊習. 其始且見得箇道理如此, 那事不是, 亦不敢爲; 其次, 見得分曉, 則不肯爲; 又其次, 見得親切, 則不爲之, 而舊習都忘之矣. 子蒙(미상).

'격물'과 '궁리'로 말하자면, 물건이 하나 있으면 이치도 하나 있다. 가장 깊은 지점까지 탐구하고 나면 사태를 만나고 사물에 접촉할 때마다 항상 이 도리와 조우하게 된다. 군주를 섬김에 있어서는 충(忠)이라는 도리와 조우하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효(孝)라는 도리와 조우하며, 거처할 때는 공손함을, 일을 집행할 때는 경건함을,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충실함(忠)을 (만나고),[70] 나아가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에 이르면[71] 어딜 가든 이 도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없게 된 것이다. 만약 가장 깊은 곳까지 탐구하지 못하면 보는 것이 참되지 않아서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악하게 되니, 이는 마치 두 사람이 따로 일하는 셈이다. 겉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 있고, 속으로 '나는 나쁜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또 있다. 이제 그 좋지 않은 사람을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 성인의 책을 배우면서 행실은 시정잡배일 수 있나! 대체 무슨 도리를 탐구했다는 말인가! 이제 격물과 궁리를 말할 때, 반드시 이 도리를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해야 하니, 구습을 곧바로 깨끗하게 벗어나는 것은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처음에는 우선 이 도리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저 옳지 않은 일을 역시 감히 하려고 하지 못한다. 그 다음으로는 이해가 분명해지면서 (그런 옳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하지 않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해져서 (옳지 않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아서 구습을 모두 잊게 된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37 不是要格那物來長我聰明見識了, 方去理會, 自是不得不理會.

'저 사물을 격물해서 나의 총명과 견식을 키워야겠다'하고난 다음에(方) 헤아리는(理會) 것이 아니다. 도저히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헤아리는(理會) 것이다.

  •  15:38 大學說一“格物”在裏, 卻不言其所格者如何. 學者欲見下工夫處, 但看孟子便得. 如說仁義禮智, 便窮到惻隱·羞惡·辭遜·是非之心; 說好貨好色好勇, 便窮到太王公劉文武; 說古今之樂, 便窮到與民同樂處; 說性, 便格到纖毫未動處. 這便見得他孟子胸中無一毫私意蔽窒得也, 故其知識包宇宙, 大無不該, 細無不燭! 道夫(60이후).

'대학'에서 '격물'을 언급하지만 격물하는 양상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배우는 이가 노력을 기울일 곳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맹자를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인의예지라면 곧바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깊이 탐구한다.[72]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고 용맹을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곧바로 태왕, 공유, 문왕, 무왕의 사례를 깊이 탐구한다.[73] 고금의 음악의 경우라면 곧 백성과 함께 즐기는(與民同樂) 측면을 깊이 탐구한다.[74] 본성(性)을 말할 때는 털끝만큼도 움직임이 없는 지점(纖毫未動)[75]을 깊이 탐구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그 어떤 사의(私意)도 맹자의 가슴 속을 가리거나 막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지식(知識)은 우주(宇宙)를 포괄한다. 큰다고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작다고 비추지도 않는 것도 없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39 居甫問: “格物窮理, 但理自有可以彼此者.”

거보(居甫)의 질문: 사물을 탐구하고 이치를 파고들지만, 다만 이치 중에는 본래 이쪽저쪽 상황을 보고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曰: “不必如此看. 理有正, 有權. 今學者且須理會正. 如娶妻必告父母, 學者所當守. 至於不告而娶, 自是不是, 到此處別理會. 如事君匡救其惡, 是正理. 伊川說‘納約自牖’, 又是一等. 今於此一段未分明, 卻先爲彼引走. 如孔子說‘危行言孫’, 當春秋時亦自如此. 今不理會正當處, 纔見聖人書中有此語, 便要守定不移, 駸駸必至於行孫矣. 此等風俗, 浙江甚盛, 殊可慮!” 可學(62때).

대답: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이치에는 정(正)[76]이 있고, 권(權)[77]이 있다. 오늘날 배우는 이는 우선 정(正)을 헤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아내를 맞이할 때 반드시 부모에게 고한다'는 것은[78] 배우는 이가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다. 알리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은 것이지만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에 관해서는 따로 헤아려야 한다. 군주를 섬길 때는 임금이 잘못하는 것을 바로잡아 제지하는(匡救其惡)것이 정리(正理)이다.[79] 하지만 이천(伊川)이 '약속을 창문으로 들인다'[80]에 대해 해설한 내용은 또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다. 지금 이쪽 부분을[81] 아직 분명히 알지 못했는데 저쪽 부분으로 먼저 끌려가서는 안 된다. 공자가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82]고 했는데, 춘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역시 당연히 이와 같다.[83] 지금 정당(正當)한 곳은 헤아리지도 않고 성인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자마자 그것을 꽉 붙잡고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에는 점차 행실마저 타협하여 낮춰서 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풍속이 절강(浙江)에서 매우 성행하니 큰 걱정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40 問: “格物之義, 固要就一事一物上窮格. 然如呂氏楊氏所發明大本處, 學者亦須兼考.”

질문: '격물'이란 물론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깊이 파고들라는(窮格) 것입니다. 하지만 여씨(呂氏)[84]와 양씨(楊氏)[85]가 밝힌 큰 근본(大本)이 되는 지점[86]도 배우는 이라면 역시 아울러 탐구해야 합니다.

曰: “識得, 卽事事物物上便有大本. 不知大本, 是不曾窮得也. 若只說大本, 便是釋老之學.” 德明(44이후).

대답: (도리를) 알고 나면(識得)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 큰 근본(大本)이 있다.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큰 근본을 알지 못했다면 아직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만약 오직 큰 근본만 말할 뿐이라면 그것은 석씨와 노자의 학문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41 致知·格物, 只是一箇. 道夫(60이후).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은 하나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以下致知·格物.>

<이 아래로 치지와 격물에 관한 조목>

  •  15:42 “致知·格物, 一胯底事.”

치지와 격물은 하나(一胯)[87]이다.

先生擧左右指來比並. 泳(66때).

선생이 좌우 손가락을 들어 병렬시켰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43 格物, 是逐物格將去; 致知, 則是推得漸廣. 賜(66이후).

격물은 각각의 사물을 하나하나 탐구(格)해나가는 것이고, 치지는 점차 넓게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다.

사(賜)의 기록. (66세 이후)

  •  15:44 剡伯問格物·致知.

섬백(剡伯)[88]이 격물과 치지에 관하여 질문.

曰: “格物, 是物物上窮其至理; 致知, 是吾心無所不知. 格物, 是零細說; 致知, 是全體說.” 時擧(64이후).

대답: 격물은 각각의 사물에서 그 지극한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치지는 내 마음에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격물은 구체적인 설명이고, 치지는 전체적인 설명이다.

  •  15:45 張仁叟問致知·格物.

장인수(張仁叟)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物莫不有理, 人莫不有知. 如孩提之童, 知愛其親; 及其長也, 知敬其兄; 以至於飢則知求食, 渴則知求飮, 是莫不有知也. 但所知者止於大略, 而不能推致其知以至於極耳. 致之爲義, 如以手推送去之義. 凡經傳中云致者, 其義皆如此.” 時擧(64이후).

대답: 이치가 없는 사물도 없고 앎이 없는 사람도 없다.[89] 예컨대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90]같은 경우부터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을줄 알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을줄 아는'[91]데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앎이다. 단지 아는 것이 대략적인 데 그쳐서 그 앎을 지극한 경지에 이르도록 밀고 나갈(推致) 수 없을 뿐이다. '치(致)'는 손으로 밀어낸다(推送)는 뜻이다. 경전에서 '치'라고 한 곳들은 그 의미가 모두 이와 같다.

시거(時擧)의 기록. (64세 이후)

  •  15:46 問: “知如何致? 物如何格?”

질문: 지(知)는 어떻게 지극히(致) 하며, 물(物)은 어떻게 탐구(格)합니까?

曰: “‘孩提之童, 莫不知愛其親; 及其長也, 莫不知敬其兄.’ 人皆有是知, 而不能極盡其知者, 人欲害之也. 故學者必須先克人欲以致其知, 則無不明矣. ‘致’字, 如推開去. 譬如暗室中見些子明處, 便尋從此明處去. 忽然出到外面, 見得大小大明. 人之致知, 亦如此也. 格物是‘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之類. 事事物物, 各有箇至極之處. 所謂‘止’者, 卽至極之處也. 然須是極盡其理, 方是可止之地. 若得八分, 猶有二分未盡, 也不是. 須是極盡, 方得.”

대답: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92]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앎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극한까지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욕(人欲)이 (그 앎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반드시 먼저 인욕을 극복하여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하니, 그렇게하면 밝지 않은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젖히는(推開) 것을 의미한다. 마치 암실에서 미약한 빛을 발견하여 그 빛을 따라 (출구를) 찾아 나가다 보면 홀연히 암실 밖으로 나와서 이토록(大小) 큰 빛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앎을 지극히하는 것도 이와 같다. 격물은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문다' 같은 것이다.[93] 사태와 사물마다 각각 지극한 지점이 있다. 이른바 '멈춘다(止)'는 것은 바로 그 지극한 지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 이치를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 비로소 멈출 만한 곳이 된다. 만약 80%는 되었는데 20%가 미진하다면, 그건 (멈출 지점이) 아니다. 반드시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만 한다.

又曰: “知在我, 理在物.” 祖道(68때).

다시 대답: 앎은 나에게 있고, 이치는 사물에 있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47 黃去私問致知·格物.

황거사(黃去私)[94]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致’字有推出之意, 前輩用‘致’字多如此. 人誰無知? 爲子知孝, 爲父知慈. 只是知不盡, 須是要知得透底. 且如一穴之光, 也喚做光, 然逐旋開剗得大, 則其光愈大. 物皆有理, 人亦知其理, 如當慈孝之類, 只是格不盡. 但物格於彼, 則知盡於此矣.”

대답: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낸다(推出)는 뜻이 있다. 선배 학자들이 '치'자를 이런 의미로 쓴 경우가 많다. 사람이라면 누군들 앎이 없겠나?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할 줄 알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애할 줄 안다. 단지 이 앎이 미진할 뿐이니 반드시 투철하게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빛도 빛이라고 할 수 있지만, 후벼파서(開剗)[95] 점점[逐旋] 크게 만들면 그 빛은 더욱 커질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있고 사람들도 그 이치를 알고 있으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애하고 효도해야 한다'는 등이 그것이다. 그저 탐구(格)가 미진할 뿐이다. 단, 저쪽에서 사물을 깊이 탐구하기만 하면 앎은 이쪽에서 남김없이 완전해지게 된다.

又云: “知得此理盡, 則此箇意便實. 若有知未透處, 這裏面便黑了.” 人傑(51이후).

다시 대답: 이 이치를 완전히 다 알게 되면 이 의지(意)[96]가 진실하게 된다. 만약 앎에 아직 철저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이 안쪽이[97] 캄캄해져버린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48 劉圻父說格物·致知.

유기부(劉圻父)[98]가 격물과 치지를 설명했다.

曰: “他所以下‘格’字·‘致’字者, 皆是爲自家元有是物, 但爲他物所蔽耳. 而今便要從那知處推開去, 是因其所已知而推之, 以至於無所不知也.” 義剛(64이후).

대답: 대학에서 '격(格)'과 '치(致)'라는 글자를 쓴 이유는, 모든 것이 본래 자신의 소유이지만 외물에 의해 가려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아는 곳에서부터 밀어 젖혀 나가야 하는데, 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밀고 나가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49 郭叔雲問: “爲學之初, 在乎格物. 物物有理, 第恐氣稟昏愚, 不能格至其理.”

곽숙운(郭叔雲)의 질문: 배움의 시작은 격물에 있습니다. 사물마다 이치를 가지고 있지만 (저의) 기질(氣稟)이 어리석고 어두워 그 이치를 다 탐구해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曰: “人箇箇有知, 不成都無知, 但不能推而致之耳. 格物理至徹底處.”

대답: 사람은 누구나 앎을 가지고 있다. 설마하니 아무것도 모르겠는가? 단지 밀고 나가서 앎을 지극하게 하지 못할 뿐이다. 격물은[99] 사물의 이치를 철저한 지점까지 탐구하는 것이다.

又云: “致知·格物, 只是一事, 非是今日格物, 明日又致知. 格物, 以理言也; 致知, 以心言也.” 恪(64때).

또 말함: 치지와 격물은 하나일 뿐이니 오늘 격물하고 내일 다시 치지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파악의 대상인) 이치 쪽에서 말한 것이고, 치지는 (파악의 주체인) 마음 쪽에서 말한 것이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50 問: “致知, 是欲於事理無所不知; 格物, 是格其所以然之故. 此意通否?”

질문: (일설에 의하면)[100] 치지는 사태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고, 격물은 (해당 사태와 사물이) 지금과 같이 된 이유(所以然之故)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통합니까?

曰: “不須如此說. 只是推極我所知, 須要就那事物上理會. 致知, 是自我而言; 格物, 是就物而言. 若不格物, 何緣得知. 而今人也有推極其知者, 卻只泛泛然竭其心思, 都不就事物上窮究. 如此, 則終無所止.”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이미 아는 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려면 반드시 실제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치지는 내쪽에서 말한 것이고 격물은 사물쪽에서 말한 것이다. 격물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앎을 얻겠나? 지금 사람들 중에서도 앎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막연히 자기 심사(心思)를 고갈시킬 뿐, 전혀 실제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끝내 멈출 곳(所止)[101]이 없다.

義剛曰: “只是說所以致知, 必在格物.”

나(義剛)의 말: 그래서 '앎을 지극히하는(致知) 것은 반드시 사물을 탐구하는(格物) 데에 달려있다'[102]고 말했습니다.

曰: “正是如此. 若是極其所知去推究那事物, 則我方能有所知.” 義剛(64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미) 아는 것을 지극히하여 저 사태와 사물들을 미루어 탐구할 때 자신에게 비로소 앎이 생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1 致知·格物, 固是合下工夫, 到後亦離這意思不得. 學者要緊在求其放心. 若收拾得此心存在, 已自看得七八分了. 如此, 則本領處是非善惡, 已自分曉. 惟是到那變處方難處, 到那裏便用子細硏究. 若那分曉底道理卻不難見, 只是學者見不親切, 故信不及, 如漆雕開所謂“吾斯之未能信”. 若見得親切, 自然信得及. 看得大學了, 閒時把史傳來看, 見得古人所以處事變處, 儘有短長. 賀孫(62이후).

치지와 격물은 물론 (배움의) 처음부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나중에가서도 이 (격물치지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배우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要緊)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求其放心)[103]. 만약 이 마음을 잘 수습하여 보존할 수 있다면 이미 70-80%는 (도리를) 이해한 것이다. 이와 같다면, 근본적인 지점(本領處)에서의 시비와 선악에 대한 이해가 이미 밝은 것이다. 오직 변칙적인 상황의 경우 대처하기 어려울 뿐이니, 그런 케이스들을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명확한 도리 같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단지 (그 도리에 대하여) 배우는 이의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칠조개(漆雕開)가 '저는 이것을 아직 믿지 못하겠습니다'[104]고 한 것과 같다.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하면 자연히 믿어진다. '대학'을 다 보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역사서의 인물전기를 읽어보면 옛사람들이 변칙적인 사태에 대처한 것에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현저함을 볼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52 人之一心, 本自光明. 常提撕他起, 莫爲物欲所蔽, 便將這箇做本領, 然後去格物·致知. 如大學中條目, 便是材料. 聖人敎人, 將許多材料來修治平[105]此心, 令常常光明耳. <按:“修治”字疑.> 伊川云: “我使他思時便思, 如此方好". 倘臨事不醒, 只爭一晌時, 便爲他引去. 且如我兩眼光𪰻𪰻, 又白日裏在大路上行, 如何會被別人引去草中! 只是我自昏睡, 或暗地裏行, 便被別人胡亂引去耳. 但只要自家常醒得他做主宰, 出乎萬物之上, 物來便應. 易理會底, 便理會得; 難理會底, 思量久之也理會得. 若難理會底便理會不得, 是此心尙昏未明, 便用提醒他. 驤[106](60·65때).

사람의 마음은 본래 광명하다. 항상 그놈을 일깨워(提撕) 물욕에 가리지 않도록 하여 이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은 후에 격물과 치지를 해야 한다. 예컨대 '대학'의 조목들은 재료이다. 성인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이 마음을 평안히 다스려(修治平) 항상 빛나게 하라고 가르쳤을 뿐이다<여정덕의 안(按):“수치(修治)”두 글자는 의심스럽다>.[107] 이천(伊川)이 말하길, '내가 내 마음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였을 때 (내 마음이) 생각을 하는 것, 이렇게 되어야 좋다'[108] 사태에 임하여 일을 처리할 적에 깨어있지 않으면 순식간에(只爭一晌時)[109] 저쪽에게 이끌려가버린다.[110] 예컨대 내가 두 눈을 부릅떠 안광이 번쩍번쩍하고 더군다나 백주대낮에 큰 길을 가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풀숲으로 끌고갈 수 있겠나? 나 자신도 혼침하고 또 어두운 곳을 가고 있으면 남에게 아무렇게나 끌려 가버리고 만다. 그저 스스로 늘 자기 마음을 깨워서 관리자[主宰]로 삼아, 만물의 바깥에 있으면서 사물이 오면 바로 대응하도록 할 뿐이다. 헤아리기 쉬운 것은 바로 헤아릴 수 있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도 심사숙고하면 헤아릴 수 있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헤아릴 수 없다면 이는 이 마음이 아직 어두워 밝지 못해서이니 그것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양(驤)의 기록. (60세 혹은 65세)

  •  15:53 問“致知在格物”.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에 관한 질문.

曰: “知者, 吾自有此知. 此心虛明廣大, 無所不知, 要當極其至耳. 今學者豈無一斑半點, 只是爲利欲所昏, 不曾致其知. 孟子所謂四端, 此四者在人心, 發見於外. 吾友還曾平日的見其有此心, 須是見得分明, 則知可致. 今有此心而不能致, 臨事則昏惑, 有事則膠擾, 百種病根皆自此生.”

대답: 지(知)란, 우리에게 본래 이 앎[111]이 있다. 우리 마음은 허명(虛明)하고 광대(廣大)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할 뿐이다.[112] 오늘날 배우는 이에게 어찌 한 조각의(一斑半點) 앎도 없겠나? 단지 이익과 욕심에 가려져서 그 앎을 지극히한 적이 없을 뿐이다. 맹자가 이른바 사단(四端)이란, 이 네 가지가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서 밖으로 발현된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吾友)[113] 평소에 (자신에게) 이런 마음[114]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본[的見] 적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사단을) 분명히 보아야만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 지금 이런 마음이 있는데도 (앎을) 지극히하지 못하여 일을 처리할 때는 흐리멍텅하고 큰 사건이 생기면 허둥지둥하는 것이니, 온갖 병폐의 뿌리가 모두 여기에서 생겨난다.

又問: “凡日用之間作事接人, 皆是格物窮理?”

재질문: 일상 속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모두 격물궁리입니까?

曰: “亦須知得要本. 若不知得, 只是作事, 只是接人, 何處爲窮理!”

대답: 역시 근본(要本)을 알아야 한다.[115] 근본을 알지 못하면 그냥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 것일 뿐이다. 대체 어디가 궁리가 되겠나?

  •  15:54 致知分數多. 如博學·審問·愼思·明辨, 四者皆致知, 只力行一件是行. 言致, 言格, 是要見得到盡處. 若理有未格處, 是於知之之體尙有未盡. 格物不獨是仁孝慈敬信五者, 此只是大約說耳. 且如說父子, 須更有母在, 更有夫婦在. 凡萬物萬事之理皆要窮. 但窮到底, 無復餘蘊, 方是格物. 大雅(49이후).

'치지'는 비중(分數)이 크다. 예를 들어,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이 네 가지 모두 치지이며, 역행(力行) 하나만 행(行)에 관한 것이다.[116] '지극히하다(致)'니 '탐구하다(格)'니 하는 것은 끝까지[盡處]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이치에 대항여 (끝까지) 탐구하지(格) 못한 점이 있다면 이는 '무언가를 안다'는 것의 본질(知之之體)에 있어 미진함이 있는 것이다. 격물은 인(仁), 효(孝), 자(慈), 경(敬), 신(信) 다섯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117] 이는 대략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부자(父子)'라고 말하면 그 안에는 필시 어머니도 포함되고 부부도 포함된다.[118] 무릇 모든 사태와 사물의 이치는 모조리 탐구해야(窮) 한다. 바닥까지 파고들어(窮) 남은 것이 없어야만 '격물(格物)'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55 致知·格物, 便是“志於道”. “據於德”, 卻是討得箇匡格子. 義剛(64이후).

치지와 격물은 바로 '도에 뜻을 두었다'는 것이다. '덕을 굳게 지켰다'[119]는 테두리[匡格子][120]를 마련한(討得)[121] 것이다.[122]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6 格物·致知, 是極粗底事; “天命之謂性”, 是極精底事. 但致知·格物, 便是那“天命之謂性”底事. 下等事, 便是上等工夫. 義剛(64이후).

격물과 치지는 매우 거친[粗] 일이고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는 것은 매우 정밀한[精] 일이다.[123] 그러나 치지와 격물이 곧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의 일이다. 하등의 일이 곧 상등의 공부(工夫)이다.[124]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7 曹又問致知·格物.

조(曹)[125]가 다시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此心愛物, 是我之仁; 此心要愛物, 是我之義; 若能分別此事之是, 此事之非, 是我之智; 若能別尊卑上下之分, 是我之禮. 以至於萬物萬事[126], 皆不出此四箇道理. 其實只是一箇心, 一箇根柢出來抽枝長葉.” 卓(미상).

대답: 이 마음이 대상[物]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인(仁)이고, 이 마음이 대상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은 나의 의(義)이다. 만약 이 일은 옳고 이 일은 그르다고 분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지(智)이다. 만약 존비(尊卑)와 상하(上下)의 구분을 분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예(禮)이다. 모든 사태와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네 가지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저 이 한 마음일 뿐이다. 하나의 뿌리[127]에서 나와 가지가 뻗고 잎이 자라는 것이다.

탁(卓)의 기록.

  •  15:58 蔣端夫問: “‘致知在格物.’ 胸中有見, 然後於理無不見.”

장단부(蔣端夫)[128]의 질문: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의 경우, (먼저) 가슴 속에 본 것이 있고 나면 (세상에) 보지 못하는 이치가 없게 됩니다.[129]

曰: “胸中如何便有所見? 譬如嬰兒學行, 今日學步, 明日又步, 積習旣久, 方能行. 天地萬物莫不有理. 手有手之理, 足有足之理, 手足若不擧行, 安能盡其理! 格物者, 欲究極其物之理, 使無不盡, 然後我之知無所不至. 物理卽道理, 天下初無二理.” 震(65때).

대답: 가슴 속에 어떻게 곧바로 본 것이 있게 되는가? 아기가 걷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오늘 걸음을 배우고 내일 또 걸어서 습관이 오래 쌓인 후에야 비로소 잘 걸을 수 있게 된다. 천지 만물에는 이치 없는 것이 없다. 손에는 손의 이치가 있고, 발에는 발의 이치가 있다. 손으로 들고 발로 걷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이치를 다할 수 있겠나?[130] 격물이란 그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남김 없게 하고자 함이니, 그렇게 하고 나서야 나의 앎이 다다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사물의 이치[物理]가 바로 도덕적 이치[道理]이니, 천하에 애초에 두 가지 이치가 없다.[131]

진(震)의 기록. (65세)

  •  15:59 問: “知至·意誠, 求知之道, 必須存神索至, 不思則不得誠. 是否?”

질문: '지지(知至)'와 '의성(意誠)'[132]의 경우, 앎을 구하는 방법으로는 반드시 '정신을 보존하여 지극한 지점을 찾아야[存神索至]'하니[133], 사려하지(思) 않으면 진실해질 수 없습니다. 맞습니까?

曰: “致知·格物, 亦何消如此說. 所謂格物, 只是眼前處置事物, 酌其輕重, 究極其當處, 便是, 亦安用存神索至! 只如吾胸中所見, 一物有十分道理, 若只見三二分, 便是見不盡. 須是推來推去, 要見盡十分, 方是格物. 旣見盡十分, 便是知止[134].” 震(65때).

대답: 치지와 격물을 어찌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겠나. 이른바 격물이란 단지 눈앞에서 사태와 사물을 처리하면서 각각의 경중을 따져 각각의 마땅한 지점이 어디인지 끝까지 탐구하는 것일 뿐이다. '존신색지(存神索至)'를 또 어디다 쓰겠는가? 예를 들어 자기 가슴 속에서 이해한 것[胸中所見]으로 말하자면,[135] 한 사물에 100%의 이치가 있는데 그 중 20~30%를 이해했을 뿐이라면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꾸준히 밀고 나가서 100%를 모두 이해해야 비로소 격물이다. 100%를 모두 이해하고 나면 '멈추어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안(知止)' 것[136]이다.

진(震)의 기록. (65세)

  •  15:60 或問: “致知須要誠. 旣是誠了, 如何又說誠意?" [137]

누군가의 질문: '치지(致知)'를 하려면 진실해야(誠)합니다. 그런데, 이미 (치지의 과정에서) 진실해졌는데 왜 다시 '성의(誠意)'를 말합니까?

"致知上本無‘誠’字, 如何强安排‘誠’字在上面說? 爲學之始, 須在致知. 不致其知, 如何知得! 欲致其知, 須是格物. 格物云者, 要窮到九分九釐以上, 方是格.” 謙(65때).

(대답): (대학에서) '치지' 앞에는 본래 '성(誠)'자가 없는데 어째서 억지로 '성'자를 앞에다 배치하고 말하는가? 배움의 시작은 반드시 치지에 달려있다. 그 앎을 지극히하지(致其知) 못하면 어떻게 (도리를) 알 수 있겠나(知得)? 앎을 지극히하려면 반드시 격물해야 한다. 격물이란, (도리를) 99%[138]이상 탐구해내야만 비로소 '격'이다.

겸(謙)의 기록. (65세)

  •  15:61 若不格物·致知, 那箇誠意·正心, 方是捺在這裏, 不是自然. 若是格物·致知, 便自然不用强捺.

격물치지(格物致知)하지 않으면 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은 이 안쪽에[在這裏][139] 억지로 눌러두는(捺) 것이니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격물치지하면 자연히 억지로 누를 필요가 없다.[140]

  •  15:62 元昭問: “致知·格物, 只作窮理說?”

원소(元昭)[141]의 질문: 치지와 격물을 그저 '이치를 탐구한다(窮理)'로 환원해서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曰: “不是只作窮理說. 格物, 所以窮理.”

대답: 궁리(窮理)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궁리의 방법(所以)이다.[142]

又問: “格物是格物與人. 知物與人之異, 然後可作工夫[143].”

재질문: 격물이란 사물과 사람을 '격'하는 것입니다. 사물과 사람의 차이를 알고 나서야 힘써 노력(工夫)할 수 있습니다.[144][145]

曰: “若作致知在格物論, 只是胡說! 旣知人與物異後, 待作甚合殺? 格物, 是格盡此物. 如有一物, 凡十瓣, 已知五瓣, 尙有五瓣未知, 是爲不盡. 如一鏡焉, 一半明, 一半暗, 是一半不盡. 格盡物理, 則知盡. 如元昭所云, 物格·知至當如何說?”

대답: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 (는 대학의 원문)으로 논하자면, (방금 자네의 말은) 그저 헛소리(胡說)일 뿐이다. 사람과 사물이 다르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장차(待) 어떻게(作甚) 마무리하려(合殺) 하는가?[146] 격물이란 이 사물을 남김없이 '격'하는 것이다.[147]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이 모두 열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다섯 조각은 알았지만 나머지 다섯 조각은 아직 알지 못한다면 이는 남김없이 다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거울이 있는데 반은 밝고 반은 어둡다면 이는 절반은 다하지 못한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완전히 '격'하면 앎은 남김 없이 완전해진다. 자네(元昭)의 말과 같다면 '사물을 다 탐구한 뒤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知至)'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148]

子上問: “向見先生答江德功書如此說.”

나(子上)[149]의 질문: 전에 선생님께서 강덕공(江德功)[150]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151]

曰: “渠如何說, 已忘卻.”

대답: 그가 뭐라고 했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子上云: “渠作接物.”

내(子上)가 말함: 그는 (격물을) '접물(接物)'로 풀었습니다.[152]

曰: “又更錯.” [153]

대답: 더더욱 틀렸구나.

  •  15:63 陳[154]問: “大學次序, 在聖人言之, 合下便都能如此, 還亦須從致知格物做起? 但他義理昭明, 做得來恐易[155].”

진(陳)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 순서는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역시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그래도 성인은 의리(義理)에 매우 밝으니 (격물치지)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曰: “也如此學. 只是[156]聖人合下體段已具[157], 義理都曉得, 略略恁地[158]勘驗一過. 其實大本處都盡了, 不用[159]學, 只是學那沒[160]緊要底. 如中庸言: ‘及其至也, 雖聖人有所不知不能焉.’ 人多以至爲道之精妙處. 若是道之精妙處有所不知不能, 便與庸人無異, 何足以爲聖人! 這至, 只是道之盡處, 所不知不能, 是沒緊要底事. 他大本大根元無欠闕, 只是古今事變, 禮樂制度, 便也須學.” 寅. [161]

대답: (성인) 역시 그렇게 배운다. 다만 성인은 애초에 뼈대(體段)[162]가 이미 갖춰져 있고 의리(義理)에도 모두 밝으니 대략적으로 그렇게 한 번 점검해보는 것이다. 사실, 큰 근본이 이미 다 되었으므로 더 배울 필요가 없다. 그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우는 것 뿐이다. '중용'에서 말하길, '지극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성인도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163]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극한 부분'을 도(道)의 정묘(精妙)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도의 정묘한 지점에 관하여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지극한 부분'은 단지 도를 남김없이 다 한 지점이요,[164]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일 뿐이다. 성인은 큰 근본과 뿌리에서는 부족함이 없으나, 고금(古今)의 사변(事變), 예악제도(禮樂制度)는 역시 배워야 한다.

인(寅)의 기록.

  •  15:64 子善問物格.

자선(子善)[165]이 '물격(物格)'[166]에 관하여 질문함.

曰: “物格是要得外面無不盡, 裏面亦淸徹無不盡, 方是不走作.” 恪(64때). <以下物格.> [167]

대답: 사물이 '격'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자면, 바깥쪽으로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안쪽으로도 역시 맑고 투명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여야 비로소 (마음이) 달아나지 않게 된다.[168]

각(恪)의 기록. (64세)

<以下物格.>

<이 아래로 물격(物格)에 관한 조목들>

  •  15:65 上而無極·太極, 下而至於一草·一木·一昆蟲之微, 亦各有理. 一書不讀, 則闕了一書道理; 一事不窮, 則闕了一事道理; 一物不格, 則闕了一物道理. 須著逐一件與他理會過. 道夫(60이후).

위로는 무극(無極)인 태극(太極)[169]에서부터 아래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미미한 곤충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각 이치가 있다. 책 한 권을 읽지 않으면 책 한 권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고, 사태 하나를 파고들지(窮) 않으면 사태 하나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며, 사물 하나를 탐구하지(格)하지 않으면 사물 하나어치의 도리를 결여하게 된다. 반드시 그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헤아려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66 叔文問: “格物莫須用合內外否?”

숙문(叔文)의 질문: 격물 공부는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170]

曰: “不須恁地說. 物格後, 他內外自然合. 蓋天下之事, 皆謂之物, 而物之所在, 莫不有理. 且如草木禽獸, 雖是至微至賤, 亦皆有理. 如所謂‘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自家知得這箇道理, 處之而各得其當便是. 且如鳥獸之情, 莫不好生而惡殺, 自家知得是恁地, 便須‘見其生不忍見其死, 聞其聲不忍食其肉’方是. 要之, 今且自近以及遠, 由粗以至精.” 道夫(60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사물이 '격'되고 나면 안쪽과 바깥쪽은 자연히 합치한다. 대개 천하의 모든 사태를 통틀어 '사물(物)'이라고 부르는데, 사물이 있는 곳에 이치가 없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어, 초목과 금수는 비록 지극히 미미하고 천하지만 (그들에게도) 역시 모두 이치가 있다. 예를 들어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171]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172]을 벤다'[173]는 말 처럼, 자신이 이러저러한 도리를 알고서 각각의 사물을 처리하기를 각자에게 적합하고 알맞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본능적으로(情) 모두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자신이 (동물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174]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해야'[175] 한다. 요컨대, 이제 가까운 데에서부터 먼 곳으로, 거친 것에서부터 정밀한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176]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寓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우(寓)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67 問: “格物須合內外始得?”

질문: 격물은 반드시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해야만 합니까?[177]

曰: “他內外未嘗不合. 自家知得物之理如此, 則因其理之自然而應之, 便見合內外之理. 目前事事物物, 皆有至理. 如一草一木, 一禽一獸, 皆有理. 草木春生秋殺, 好生惡死. ‘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皆是順陰陽道理. <砥錄作“皆是自然底道理”.> 自家知得萬物均氣同體, ‘見生不忍見死, 聞聲不忍食肉’, 非其時不伐一木, 不殺一獸, ‘不殺胎, 不殀夭, 不覆巢’, 此便是合內外之理.” 㝢(61이후).

대답: 안쪽과 바깥쪽은 애초에 합치하지 않은 적이 없다. 자기 스스로 이 사물의 이치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면 그 이치를 따라 자연스럽게 (해당 사물에) 대응하게 되니, (이렇게 되었을 때 여기서 우리는)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를 보게 된다. 눈앞의 사태와 사물에는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짐승 한 마리에도 모두 이치가 있다. 초목은 봄에 나고 가을에 죽으며, (금수는)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을 베는'[178] 것은 모두 음양의 도리를 따른 것이다.<지(砥)의 기록에서는 "모두 자연스러운 도리이다."> 자기 스스로 만물이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 받아 한 몸임을(均氣同體),[179] 알면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180]'하고, 적절한 시기가 아니면 나무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짐승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며, '새끼를 밴 것을 죽이지 않으며, 어린 개체를 죽이지 않으며, 둥지를 뒤엎지 않는다'.[181] 이것이 바로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砥錄略.>

<지(砥)의 기록은 생략한다.>

  •  15:68 “知至, 謂天下事物之理知無不到之謂. 若知一而不知二, 知大而不知細, 知高遠而不知幽深, 皆非知之至也. 要須四至八到, 無所不知, 乃謂至耳.”

지지(知至)란 천하의 사태와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나의 앎이 이르지(到) 않은 경우가 없음을 말한다. 만약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고, 큰 것은 알지만 작은 것은 모르고, 고원(高遠)한 것은 알지만 심오한(幽深) 것은 모른다면, 이는 모두 '앎이 이른(知之至)'[182]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방팔방에 두루 이르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르렀다(=지극해졌다)'고 할 수 있다.

因指燈曰: “亦如燈燭在此, 而光照一室之內, 未嘗有一些不到也.” 履孫(65때).

이어서 등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 이 등불이 여기 있으면서 그 빛이 실내 전체를 밝혀서 그 빛이 이르지(到) 않는 곳이 조금도 없는 것과 같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以下知至.>

<이 아래로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69 知至, 謂如親其所親, 長其所長, 而不能推之天下, 則是不能盡之於外; 欲親其所親, 欲長其所長, 而自家裏面有所不到, 則是不能盡之於內. 須是其外無不周, 內無不具, 方是知至. 履孫(65때).

지지(知至)로 말하자면, 어버이를 친애하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되[183] 그것을 미루어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이는 바깥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어버이를 친애하고 싶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고 싶은데 자기 안에서 (지극한 데까지)도달하지 못한 바가 있으면 이는 안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바깥쪽으로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안쪽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야만 지지(知至)이다.[184]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70 子升問: “知止便是知至否?”

자승의 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가 곧 '앎이 지극해졌다(知至)' 아닙니까?

曰: “知止就事上說, 知至就心上說. 知止, 知事之所當止; 知至, 則心之知識無不盡.” 木之(68때).

대답: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지지(知止)는 각각의 사태에 있어서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아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앎에 미진한 데가 없는 것이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5:71 知止, 就事上說; 知至, 就心上說, 擧其重而言. 閎祖(59이후).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각자 더 중점을 둔 부분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185]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72 問: “‘致知’之‘致’, ‘知至’之‘至’, 有何分別?”

질문: '치지(致知)'의 '치'와 '지지(知至)'의 '지(至)'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186]

曰: “上一‘致’字, 是推致, 方爲也. 下一‘至’字, 是已至.” <先著“至”字, 旁著“人”字, 爲“致”. 是人從旁推至.> 節(64이후).

대답: 위의 '치(致)'자는 밀고 나가는(推致) 것이니 곧 (어떤) 행위(爲)이다. 아래의 '지(至)'자는 이미 도달한(至) 것이다. <먼저 '지(至)'자를 쓰고 옆에 '인(人)'자를 쓰면 '치(致)'자가 된다. 사람이 옆에서 '지(至)'를 미는 것이다.>[187]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73 格物, 只是就事上理會; 知至, 便是此心透徹. 廣(65이후).

격물(格物)은 실제 사태에서 헤아리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이 마음이 완전히 투명한 것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5:74 格物, 便是下手處; 知至, 是知得也. 德明(44이후).

격물은 (공부에) 착수하는 곳이고, 지지(知至)는 (공부의 결과) 앎을 이룬 것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75 致知未至, 譬如一箇鐵片, 亦割得物事, 只是不如磨得芒刃十分利了, 一鍤便破. 若知得切了, 事事物物至面前, 莫不迎刃而解. 賀孫(62이후).

치지(致知) 공부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未至) 것은, 비유하자면, 쇠조각 하나를 가지고도 물건을 자를 수야 있겠지만 100% 예리하게 갈아낸 날카로운 칼날(芒刃)이 단번에 (물건을) 파괴하는 것만은 못하다. 앎이 절실해지고나면 온갖 사태와 사물이 면전에 도달하자마자 모조리 포정(庖丁)의 칼에 닿은 소고기처럼 해체되어버린다(迎刃而解).[188]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6 未知得至時, 一似捕龍蛇, 捉虎豹相似. 到知得至了, 卻恁地平平做將去, 然節次自有許多工夫. 到後來絜矩, 雖是自家所爲, 皆足以興起斯民. 又須是以天下之心審自家之心, 以自家之心審天下之心, 使之上下四面都平均齊一而後可. 賀孫(62이후).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知至) 못했을 때는 마치 용과 뱀과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하는 것 같다가도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오히려 이렇게 평이하게 해 나가게 된다.[189] 하지만 그 중간 단계들에는 자연히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나중에 혈구(絜矩) 부분에 이르면[190], 비록 자기 한 사람의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백성들을 흥기시키기에 충분하다.[191] 또, 천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자신의 마음으로 천하의 마음을 살펴서 상하사방이 모두 고르고 균일하게(平均齊一) 되어야만 한다.[192]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7 鄭仲履問: “某觀大學知至, 見得是乾知道理.”

정중리(鄭仲履)의 질문: 제가 '대학'의 지지(知至)를 살펴보고 건지(乾知)의 도리라고 이해했습니다.[193]

曰: “何用說乾知! 只理會自家知底無不盡, 便了.” 蓋卿(65때).

대답: '건지(乾知)'를 가지고 설명할 필요가 무엇인가! 그저 자신의 앎에 미진함이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78 知至, 如易所謂極深; ‘惟深也, 故能通天下之志’, 這一句略相似. 能慮, 便是硏幾; 如所謂‘惟幾也, 故能成天下之務’, 這一句卻相似. 蘷孫(68이후).

지지(知至)[194]는 '역(易)'에서 이른바 극심(極深)이다.[195]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천하 모든 것의 의지를 완전히 이해한다(通)'는 (계사전의) 구절과 대략 비슷하다. 능려(能慮)는 연기(硏幾)이다.[196]'사태의 기미를 세밀하게 살폈(幾)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계사전) 구절과 비슷하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79 問: “定·靜·安·慮·得與知至·意誠·心正是兩事, 只要行之有先後. 據先生解安·定·慮·得與知至似一般, 如何?”

질문: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197]과 지지(知至), 의성(意誠), 심정(心正)은 서로 별개의 일이고,[198] 단지 실천에 선후 순서가 필요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해석하신 바에 따르면, 안, 정, 려, 득과 지지(知至)가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199]

曰: “前面只是大綱且如此說, 後面卻是學者用力處.” 去僞(46때).

대답: 앞부분[200]은 단지 큰 얼개를 그렇게 말한 것뿐이고, 뒷부분[201]이 오히려 배우는 이가 힘써야 할 곳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5:80 致知, 不是知那人不知底道理, 只是人面前底. 且如義利兩件, 昨日雖看義當爲然, 而卻又說未做也無害; 見得利不可做, 卻又說做也無害; 這便是物未格, 知未至. 今日見得義當爲, 決爲之; 利不可做, 決定是不做, 心下自肯自信得及, 這便是物格, 便是知得至了. 此等說話, 爲無恁地言語, 冊子上寫不得. 似恁地說出, 卻較見分曉. 植(64때).

치지(致知)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도리를 알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 면전에 있는 것(을 알라는 것)뿐이다. 의(義)와 리(利) 두 가지를 예로 들자면, 어제는 비록 정의(義)를 마땅히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오히려 다시 '아직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사리사욕(利)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이해했으면서도 오히려 다시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이는 사물(物)을 아직 끝까지 탐구(格)하지 못했고, 앎(知)이 아직 지극해지지(至) 못한 것이다. 오늘 정의를 마땅히 실천해야 함을 이해했으면 결단코 그렇게 실천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이해했으면 결단코 추구하지 않아서 마음 속에서 기꺼이 스스로 믿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사물이 끝까지 탐구된(格) 것이요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학 본문에) 이런 말이 없기 때문에 책에는(冊子)[202] 쓸 수 없었다.[203] 이런식으로 설명하면 비교적 분명하게 이해되는 것 같다.[204]

식(植)의 기록.

<以下物格·知至.>

<이 아래로는 물격(物格),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81 問: “格物·窮理之初, 事事物物也要見到那裏了?”

질문:'격물(格物)'과 '궁리(窮理)'의 초기단계에서 모든 사태와 사물을 그런 수준까지(那裏)[205] 보아야합니까?

曰: “固是要見到那裏. 然也約摸是見得, 直到物格·知至, 那時方信得及.” 㝢(61이후).

대답: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런 수준까지 보아야 한다. 하지만 (초기단계에는 먼저) 큰 틀(約摸)을 보고, 물격(物格) 지지(知至)의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비로소 (이치를) 믿을 수 있게 된다.[206]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82 守約問: “物格·知至, 到曾子悟忠恕於一唯處, 方是知得至否?”

수약(守約)[207]의 질문: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증자가 '예(唯)'라는 한 마디로 충서(忠恕)를 깨달은 정도에 이르러야[208] 비로소 앎이 지극해지는 것(知至) 아닙니까?

曰: “亦是如此. 只是就小處一事一物上理會得到, 亦是知至.” 賀孫(62이후).

대답: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일사일물처럼 작은 곳에 나아가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역시 지지(知至)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83 或問: “‘物格而后知至’一句, 或謂'物格而知便至'. 如此, 則與下文‘而后’之例不同.”

누군가의 질문: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而后知至)'는 구절에서, 어떤 이는 '사물이 탐구되면 앎은 곧 지극해진다(物格而知便至)'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아래 문장에서 '이후에(而后)'를 반복하는 체제와 일관되지 않습니다.[209]

曰: “看他文勢, 只合與下文一般說. 但且謂之物格, 則不害其爲一事一物在. 到知, 則雖萬物亦只是一箇知. 故必理無不窮, 然後知方可盡. 今或問中卻少了他這意思.”

대답: 대학의 문장의 흐름을 보면 아래쪽 문장들과 일치하도록 ('이후에'라고) 말해야 한다. 다만 사물이 탐구되었다고(格) 한다면 (탐구된 것이) 한 가지 사태나 한 가지 사물에 그쳐도 된다. '앎'의 경우, 사물이 제아무리 많아도 앎은 그저 하나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탐구하지(窮) 않은 이치가 없어야만 앎을 다했다 할 수 있다. 지금 대학혹문에는 이 의미가 빠져 있다.[210]

  •  15:84 “大學物格·知至處, 便是凡聖之關. 物未格, 知未至, 如何殺也是凡人. 須是物格·知至, 方能循循不已, 而入於聖賢之域, 縱有敏鈍遲速之不同, 頭勢也都自向那邊去了. 今物未格, 知未至, 雖是要過那邊去, 頭勢只在這邊. 如門之有限, 猶未過得在.”

대학에서 사물이 탐구되고(格) 앎이 지극해진다는 지점이 바로 범부와 성인을 가르는 관문(凡聖之關)이다.[211] 사물이 아직 '격'되지 못하고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도(如何殺)[212] 범부이다. 반드시 사물이 탐구되고(格) 앎이 지극해져야만 순차적으로 중단 없이 계속 (전진)해서 성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入於聖賢之域). 민첩한가 둔한가(敏鈍)의 차이와 빠르냐 느리냐(遲速)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추세(頭勢)는 완전히 그쪽[213]으로 향해 간다. 지금 사물이 아직 탐구되지(格) 못하고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면 비록 그쪽으로 가고자 해도 추세(頭勢)는 이쪽을[214] 향해 있다. 문에 문턱이 있는데 아직 그걸 넘어가지 못한 셈이다.

問: “伊川云‘非樂不足以語君子’, 便是物未格, 知未至, 未過得關否?”

질문: 이천(伊川)이 '즐기지 못하면 군자라 하기에 부족하다'[215]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사물이 탐구되지(格) 않고 앎지 지극하지 못하여 관문을 넘지 못한 것입니까?

曰: “然. 某嘗謂, 物格·知至後, 雖有不善, 亦是白地上黑點; 物未格, 知未至, 縱有善, 也只是黑地上白點.” 伯羽(61때).

대답: 그렇다. 내가 일찍이 말했듯, 물격지지한 뒤라면 비록 불선(不善)이 있더라도 역시 흰 땅 위의 검은 점과 같고, 물격지지하지 못했다면 비록 선(善)이 있더라도 역시 검은 땅 위의 흰 점과 같을 뿐이다.

백우(伯羽)의 기록. (61세)

<以下論格物·致知·誠意是學者之關.>

<이하로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가 배우는 이에게 관문임을 논하는 조목들>

  •  15:85 格物是夢覺關. <格得來是覺, 格不得只是夢.> 誠意是善惡關. <誠得來是善, 誠不得只是惡.> 過得此二關, 上面工夫卻一節易如一節了. 到得平天下處, 尙有些工夫. 只爲天下闊, 須著如此點檢.”

격물은 꿈과 깨어남을 가르는 관문(夢覺關)이요, <격물을 해내면 깬 것이고 격물하지 못하면 꿈일 뿐이다> 성의(誠意)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善惡關)이다. <성의를 해내면 선이고, 해내지 못하면 악일 뿐이다> 이 두 관문을 넘어서면 그 위쪽단계의 노력(工夫)은 매 단계 더 쉬워진다. 평천하의 단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는 그저 천하가 너무 넓기 때문에 이렇게 (평천하 조목에서 제시하는 것들을 가지고 자신을) 점검해야 하는 것뿐이다.

又曰: “誠意是轉關處.”

다시 말함: 성의는 전환점(轉關處)[216]이다.

又曰: “誠意是人鬼關!” <誠得來是人, 誠不得是鬼.> 蘷孫(68이후).

또 말함: 성의는 사람과 귀신을 가르는 관문이다(人鬼關). <성의를 해내면 사람이고, 해내지 못하면 귀신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86 致知·誠意, 是學者兩箇關. 致知乃夢與覺之關, 誠意乃惡與善之關. 透得致知之關則覺, 不然則夢; 透得誠意之關則善, 不然則惡. 致知·誠意以上工夫較省, 逐旋開去, 至於治國·平天下地步愈闊, 卻須要照顧得到. 人傑(51이후).

치지와 성의는 배우는 이의 두 관문이다. 치지는 꿈과 깨어남을 가르는 관문(夢覺關)이고, 성의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善惡關)이다. 치지의 관문을 돌파하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넘지 못하면 꿈속이다. 성의의 관문을 돌파하면 선이고 넘지 못하면 악이다. 치지와 성의의 다음 단계의 공부(工夫)은 비교적 힘이 덜 든다. 순서대로 열어(開)[217] 나가서 치국 평천하에 이르면 그 범위(地步)가 더욱 넓어지므로 오히려 더 주의해야(照顧) 한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87 知至·意誠, 是凡聖界分關隘. 未過此關, 雖有小善, 猶是黑中之白; 已過此關, 雖有小過, 亦是白中之黑. 過得此關, 正好著力進步也. 道夫(60이후).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은 범부와 성인의 경계를 가르는 관문(關隘)[218]이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비록 작은 선(善)이 있더라도 여전히 검은 바탕 위의 하얀 점이다. 이 관문을 넘고 나면, 비록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역시 흰 바탕의 검은 점이다.[219] 이 관문을 넘고 나면 힘써 전진하기에 딱 좋다(正好).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88 “大學所謂‘知至·意誠’者, 必須知至, 然後能誠其意也. 今之學者只說操存, 而不知講明義理, 則此心憒憒, 何事於操存也! 某嘗謂誠意一節, 正是聖凡分別關隘去處. 若能誠意, 則是透得此關; 透此關後, 滔滔然自在去爲君子. 不然, 則崎嶇反側, 不免爲小人之歸也.”

'대학'에서 이른바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이란, 반드시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야 의지가 진실해질(意誠)[220]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배우는 이들은 단지 마음을 지키는(操存) 것만 말할 뿐[221] 의리(義理)를 강론하여 밝힐(講明) 줄 모른다.[222] (그런데 이렇게 하면) 그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니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예전부터 성의(誠意)의 단계는 성인과 범부를 가름하는 관문(關隘)이 되는 자리(去處)라고 했다. 만약 의지를 진실하게(誠意) 할 수 있으면 이 관문을 돌파한 것이다. 이 관문을 돌파한 후에는 도도(滔滔)[223]히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군자가 될 것이다. 돌파하지 못하면 길이 구불구불 험난하여[224] 결국 소인이 되는 걸 면치 못할 것이다.

“致知所以先於誠意者如何?”

(누군가의 질문): 치지가 성의에 우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致知者, 須是知得盡, 尤要親切. 尋常只將‘知至’之‘至’作‘盡’字說, 近來看得合作‘切至’之‘至’. 知之者切, 然後貫通得誠意底意思, 如程先生所謂眞知者是也.” 謨(50이후).

대답: 치지란, 반드시 남김없이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친근하고 절실해야(親切) 한다. 보통은 그저 '지지(知至)'의 '지(至)'를 '남김없이 다함(盡)'이라고 해설하나, 나는 요즘 '절실하다(切至)'[225]라고 할 때의 '지(至)'로 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앎이 절실해진 뒤에야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誠意)'는 것의 취지를 관통할 수 있다.[226] 정자(程子)가 말한 '참된 앎(眞知)'[227]이 바로 그것이다.[228]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89 論誠意, 曰: “過此一關, 方是人, 不是賊!”

성의(誠意)를 논하며 말했다: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사람이고, 도적(賊)[229]이 아니다.

又曰: “過此一關, 方會進.”

다시 말함: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전진할 수 있다.

<一本云: “過得此關, 道理方牢固.”> 方子(59이후).

<다른 책에서는 '이 관문을 넘어서야 도리가 비로소 견고해진다'라고 했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90 鍾唐傑問意誠.

종당걸(鍾唐傑)[230]이 성의에 대해 물었다.

曰: “意誠只是要情願做工夫, 若非情願, 亦强不得. 未過此一關, 猶有七分是小人.” 蓋卿(65때).

대답: 의성(意誠)이란 진정으로 원하여(情願) 노력(工夫)하려는 것이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면 역시 강요할 수 없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여전히 70%는 소인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91 意誠·心正, 過得此關, 義理方穩. 不然, 七分是小人在.

의성(意誠)과 심정(心正)의 경우, 그 관문을 넘어서야 의리(義理)가 비로소 안정된다. 넘지 못하면 70%는 소인이다.

又曰: “意不誠底, 是私過; 心不正底, 是公過.” 方子(59이후).

다시 말함: 의지(意)가[231] 진실하지 않으면 '사(私)'에서 잘못된 것이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공(公)'에서 잘못된 것이다.[232]

  •  15:92 深自省察以致其知, 痛加剪落以誠其意. 升卿(62때).

깊이(深自) 성찰하여 앎을 지극히하고, 통렬히 잘라내어 의지를 진실하게 하라.

승경(升卿)의 기록. (62세)

<致知·誠意.>

<치지와 성의에 관한 조목>

  •  15:93 知與意皆出於心. 知是知覺處, 意是發念處. 閎祖(59이후).

지(知)와 의(意)는 모두 마음(心)에서 나온다. 지는 지각(知覺)하는 곳이고, 의는 의념(念)이 일어나는 곳이다.[233]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94 致知, 無毫釐之不盡. 守其所止, 無須臾之或離. 致知, 如一事只知得三分, 這三分知得者是眞實, 那七分不知者是虛僞. 爲善, 須十分知善之可好, 若知得九分, 而一分未盡, 只此一分未盡, 便是鶻突苟且之根. 少間說便爲惡也不妨, 便是意不誠. 所以貴致知, 窮到極處謂之‘致’. 或得於小而失於大, 或得於始而失於終, 或得於此而失於彼, 或得於己而失於人, 極有深淺. 惟致知, 則無一事之不盡, 無一物之不知. 以心驗之, 以身體之, 逐一理會過, 方堅實. 僩(69이후).

치지(致知)는 털끝만큼도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멈춰야 할 최선의 지점을 고수하여 잠시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치지란, 가령 어떤 사안에 관하여 단지 30%만 알았다면, 알고 있는 30%만 진실이며 알지 못하는 나머지 70%는 허위이다. 선을 행하려면 선이 좋아할 만한 것임을 100% 알아야 하니, 만약 90%는 알겠는데 10% 미진하다면 바로 그 미진한 10%가 곧 (선을 행함에 있어서의) 모호함과 구차함의(鶻突苟且) 뿌리가 된다. 머지않아 '악을 행하는 것도 괜찮아'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곧 의지(意)가 진실하지 않아서이다. 그러므로 치지(致知)를 귀하게 여기니, 지극한 지점에 이를 때까지 탐구하고 파고드는 것을 '치(致)'라고 한다. 작은 것은 얻고 큰 것은 잃거나, 처음에는 얻고 나중에는 잃거나, 여기서는 얻고 저기서는 잃거나, 자신에게는 얻고 타인에게는 잃는 경우가 있으니, (앎에 있어서) 깊이의 차이가 지극히 크다. 오직 앎이 지극해야만 한 가지 사안도 남김없이 다하지 못함이 없고, 한 가지 사물도 남김없이 알지 못함이 없게 된다. 마음으로 체감하고 몸으로 체험하며(以心驗之, 以身體之)[234] 하나하나 헤아려나가야 비로소 견실하게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95 說爲學次第, 曰: “本末精粗, 雖有先後, 然一齊用做去. 且如致知·格物而後誠意, 不成說自家物未格, 知未至, 且未要誠意, 須待格了, 知了, 卻去誠意. 安有此理! 聖人亦只說大綱自然底次序是如此. 拈著底, 須是逐一旋旋做將去始得. 常說田子方說文侯聽樂處, 亦有病. 不成只去明官, 不去明音? 亦須略去理會始得. 不能明音, 又安能明官! 或以宮爲商, 以角爲徵, 自家緣何知得. 且如‘籩豆之事, 則有司存’, 非謂都不用理會籩豆, 但比似容貌·顔色·辭氣爲差緩耳. 又如官名, 在孔子有甚緊要處? 聖人一聽得郯子會, 便要去學. 蓋聖人之學, 本末精粗, 無一不備, 但不可輕本而重末也. 今人閒坐過了多少日子, 凡事都不肯去理會. 且如儀禮一節, 自家立朝不曉得禮, 臨事有多少利害!” 雉(미상).

배움의 순서에 대하여 말함: 근본과 말엽, 정밀함 부분과 거친 부분(本末精粗) 사이에 물론 선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제히 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치지와 격물 다음이 성의라고 해서 설마 '나는 사물을 아직 격하지 못했고 앎을 아직 지극히하지 못했으니 의지를 진실되게 하는 공부는 아직 할 필요 없다. 반드시 격물과 치지를 완수하기를 기다렸다가 의지를 참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할 참인가?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나! 성인도 단지 대강의 자연스러운 순서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자신이) 잡은 것을(拈著底)[235]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야 된다. 나는 늘 전자방(田子方)이 문후(文侯)가 음악을 듣는 것을 가지고 말한 곳에 병통이 있다고 말한다.[236] 설마하니 관리의 일에만 밝고 음악에는 밝지 않아야 한단 말인가? (음악) 역시 대강이라도 이해해야만 한다.[237] 음악에 밝지 못하면서 어떻게 관리의 일에 밝을 수 있겠나? 누군가가 궁(宮)을 상(商)이라고 하고 각(角)을 치(徵)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걸 무슨 수로 알아채겠나? 예를 들어, '변두(籩豆)의 일은 담당자(有司)가 있다'[238]는 말은 변두와 관련된 일을 전혀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용모, 안색, 사기에 비하여(比似) 다소(差) 느슨하다는(緩)[239] 것일 뿐이다. 또 관직 명칭(官名) 같은 것은 공자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 성인[240]은 담자(郯子)가 (관직 명칭의 유래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을 듣자마자 그에게 가서 배웠다.[241] (공자가 그렇게 한) 까닭은 성인의 배움은 근본과 말엽, 정밀함 부분과 거친 부분(本末精粗)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단지 근본을 경시하고 말엽을 중시하면 안 될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242] 날들을 일없이 앉아 보내면서 그 모든 사안들에 대하여 기꺼이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례(儀禮)의 한 절목(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도) 자신이 입조(立朝)했는데 (문제의 그) 예(禮)를 알지 못한다면 실무에 임하면서 득실(利害)이 대체 얼마나 많겠나?

치(雉)의 기록.

  •  15:96 吳仁甫問: “誠意在致知·格物後, 如何?”

오인보(吳仁甫)의 질문: 성의가 치지와 격물 뒤에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源頭只在致知. 知至之後, 如從上面[243]放水來, 已自迅流湍決, 只是臨時又要略略撥剔, 莫令壅滯爾.” 銖(67이후).

대답: 원천(源頭)은 치지에 있다.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는 마치 위에서부터 물이 흘러와서 이미(已自) 급류(迅流)가 둑을 터뜨리고 나온(湍決) 것과 같다. 그저 그때그때 (가로막는 것들을) 대충 제거하여 막힘이 없도록 해주면 될 뿐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97 問: “誠意莫只是意之所發, 制之於初否?”

누군가의 질문: 성의는 의지의 발현을 초기에 제어하는(制之於初) 것입니까?

曰: “若說制, 便不得. 須是先致知·格物, 方始得. 人莫不有知, 但不能致其知耳. 致其知者, 自裏面看出, 推到無窮盡處, 自外面看入來, 推到無去處, 方始得了. 意方可誠. 致知·格物是源頭上工夫. 看來知至便自心正, 不用‘誠意’兩字也得. 然無此又不得, 譬如過水相似, 無橋則過不得. 意有未誠, 也須著力. 不應道知已至, 不用力.”

대답: 제어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 반드시 먼저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을 해야만 한다. 앎(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그 앎을 지극하게 하지 못할 뿐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致知) 것이란, 안쪽에서 (이치를) 간파하여 바깥쪽으로 끝없는 지경까지 밀고 나가고, 바깥쪽에서 (이치를) 간파하여 안쪽으로 막다른 지점까지(無去處)[244] 밀고 들어가야만 비로서 성취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다. 치지와 격물은 원천에서의 노력(工夫)이다. 앎이 지극해지면 저절로 마음이 바르게 될 테니 '성의'라는 두 글자는 필요 없을 것도 같다(看來).[245] 하지만 '성의'가 없으면 또 안 된다. 마치 물을 건너는 것과 같아서 다리가 없으면 건널 수 없다. 의지에 진실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다시 힘을 써야 한다. 앎이 이미 지극하니 더 힘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15:98 知若至, 則意無不誠. 若知之至, 欲著此物亦留不住. 東西南北中央皆著不得. 若是不誠之人, 亦不肯盡去, 亦要留些子在. 泳(66때).

앎이 지극하면 의지는 진실하지 않음이 없다. 앎이 지극하면 이 물건[246]을 마음에 붙여놓으려(著)[247]해도 머물지 못한다. 동서남북과 중앙 어디에도 붙여놓지 못한다. 반면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사의와 사욕을) 기꺼이 모두 제거하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기려 한다.[248]

<知至·意誠.>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에 관한 조목들>

  •  15:99 問: “知至到意誠之間, 意自不聯屬. 須是別識得天理人欲分明, 盡去人欲, 全是天理, 方誠.”

누군가의 질문: 지지(知至)에서 의성(意誠)까지는 뜻(意)이[249]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습니다.[250]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분명히 식별하고 인욕을 모두 제거하여 오로지 천리만 있어야 비로소 진실해집니다.[251]

曰: “固是. 這事不易言. 須是格物精熟, 方到此. 居常無事, 天理實然. 有纖毫私欲, 便能識破他, 自來點檢慣了. 譬有賊來, 便識得, 便捉得他. 不曾用工底, 與賊同眠同食也不知!” 大雅(49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 일은 쉽게 말할 수 없다.[252] 반드시 격물을 정밀하고 숙련되게 해야만 여기에[253] 도달할 수 있다. 평소(居常) 특별한 일이 없을 적에 천리(天理)는 진실로 이러하다(實然).[254] 털끝만큼이라도 사욕이 있을 경우 그것을 바로 간파(識破)할 수 있는 것은 전부터(自來) (자신을) 점검(點檢)하는 데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255] 비유하자면, 도적이 오면 바로 알아차리고 체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평소 노력하지 않는 이는 도적과 함께 먹고 자면서도 알지 못한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100 周震亨問知至·意誠, 云: “有知其如此, 而行又不如此者, 是如何?”

주진형(周震亨)이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에 관하여 질문: 어떤 이가 이치가 그러함을 알면서도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此只是知之未至.”

대답: 이는 단지 그의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問: “必待行之皆是, 而後驗其知至歟?”

재질문: 반드시 그의 행동이 모두 옳게 된 다음에야 그의 앎이 지극해졌음을 확인(驗)할 수 있는 것입니까?

曰: “不必如此說. 而今說與公是知之未至, 公不信, 且去就格物·窮理上做工夫. 窮來窮去, 末後自家眞箇見得此理, 是善與是惡, 自心甘意肯不去做, 此方是意誠. 若猶有一毫疑貳底心, 便是知未至, 意未誠, 久後依舊去做. 然學者未能便得會恁地, 須且致其知. 工夫積累, 方會知至.”

대답: 꼭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256] 말하기를 그대의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고 해도 그대가 믿지 못하겠다면 우선 사태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格物窮理) 데에 힘을 써보라. 깊이 연구한 끝에 스스로 이 이치를 진정으로 이해하여, 이 선과 악을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 (악을) 행하지 않게 되면 이것이 바로 의지가 진실되게(意誠) 된 것이다. 만약 여전히 조금이라도 의심(疑貳)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면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 않은 것이고, 의지가 아직 진실하지 않은 것이니, 시간이 오래 지나면 도로 (악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이가 곧바로 그렇게 (의지가 진실되게) 될 수는 없으니, 우선 반드시 앎을 지극하게 해야 한다. 노력(工夫)이 쌓여야 앎을 지극하게 할 수 있다.

  •  15:101 “‘知至而后意誠’, 須是眞知了, 方能誠意. 知苟未至, 雖欲誠意, 固不得其門而入矣. 惟其胸中了然, 知得路逕如此, 知善之當好, 惡之當惡, 然後自然意不得不誠, 心不得不正.”

'앎이 지극해진(知至) 뒤에 의지가 진실해진다(意誠)'는 것은 반드시 진정으로 알아야 비로소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면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 해도 정말이지 문을 찾아 들어갈 방법이 없다. 오직 가슴 속에서 분명하게 길이(路逕) 이와 같음을 알고 선이란 좋아해야 마땅하고 악이란 미워해야 마땅함을 안 뒤에야 비로소 자연히 의지가 진실해지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이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因指燭曰: “如點一條蠟燭在中間, 光明洞達, 無處不照, 雖欲將不好物事來, 亦沒安頓處, 自然著它不得. 若是知未至, 譬如一盞燈, 用罩子蓋住, 則光之所及者固可見, 光之所不及處則皆黑暗無所見, 雖有不好物事安頓在後面, 固不得而知也.

이어서 촛불을 가리키며 말함: 비유하자면 방 한가운데 촛불을 밝혀두어(點) 그 빛이 사방에 미쳐 구석구석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면 설령 좋지 않은 것들을(不好物事) 가져오려고 해도 역시 놓을(安頓) 자리가 없으니 자연히 그런 것들은 여기 붙어있을 수 없다(著它不得).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한 것은 비유하자면 등잔(盞燈)을 등갓(罩子)으로 덮은 것과 같아서 빛이 닿는 곳이야 물론 볼 수 있겠지만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완전히 깜깜해서 보이지 않으므로 설령 좋지 않은 물건을 뒤에다 가져다 놓아도 정말이지 알아챌 도리가 없다.

<炎錄云: “知旣至, 則意可誠. 如燈在中間, 纔照不及處, 便有賊潛藏在彼, 不可知. 若四方八面都光明了, 他便無著身處.”>

<염(炎)의 기록: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의지(意)가 진실해질 수 있다. 비유하자면 방 한가운데 등불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빛이 비추지 않는 곳에 도적이 숨어들면 알아챌 수가 없다. 만약 사방팔방이 모두 밝아지면 도둑이 몸 붙일 곳이 없게 된다.>

所以貴格物, 如佛·老之學, 它非無長處, 但它只知得一路. 其知之所及者, 則路逕甚明, 無有差錯; 其知所不及處, 則皆顚倒錯亂, 無有是處, 緣無格物工夫也.”

그래서 격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부처와 노자의 학문은,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길 하나(一路)를 알 뿐이다. 그들의 앎이 미치는 곳에서는 길(路逕)이 매우 분명하여 잘못될 곳이 없으나 그들의 앎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모두 전도착란(顚倒錯亂)[257]하여 옳은 곳이 하나도 없다. 이는 격물의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問: “物未格時, 意亦當誠.”

누군가의 질문: 사물이 아직 탐구되지 않았을 때에도 의지는 응당 진실하게 해야합니까?

曰: “固然. 豈可說物未能格, 意便不用誠! 自始至終, 意常要誠. 如人適楚, 當南其轅. 豈可謂吾未能到楚, 且北其轅! 但知未至時, 雖欲誠意, 其道無由. 如人夜行, 雖知路從此去, 但黑暗, 行不得. 所以要得致知. 知至則道理坦然明白, 安而行之. 今人知未至者, 也知道善之當好, 惡之當惡. 然臨事不如此者, 只是實未曾見得. 若實見得, 自然行處無差.” 僩(69이후).

대답: 당연히 그렇다. 어찌 '사물을 아직 탐구하지 못했으니 의지는 진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나! 처음부터 끝까지 의지는 항상 진실하게 해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초(楚)나라[258]로 가고자 한다면 수레의 머리(轅)가 남쪽을 향해야 한다. 어찌 '나는 아직 초나라에 도달할 수 없으니 일단 수레 머리를 북쪽으로 돌려놓아야겠다'고 말할 수 있겠나! 그저 앎이 지극하지 못할 때는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 해도 그 길(道)을 따라 걸을 수 없을 뿐이다. 마치 사람이 밤길을 갈 적에 길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너무 어두워서 나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앎을 지극하게 해야(致知) 하는 것이다. 앎이 지극해지면 도리(道理)가 탄연명백(坦然明白)[259]하니 편안하게 나아갈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앎은 아직 지극하지 못해도 선은 마땅히 좋아해야 하고 악은 마땅히 미워해야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태에 임하여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저 (도리를) 진정으로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자연히 실천에도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02 欲知知之眞不眞, 意之誠不誠, 只看做不做如何. 眞箇如此做底, 便是知至·意誠. 道夫(60이후).

(어떤 사람의) 앎이 진정한지, 의지가 진실한지 알고 싶다면 그저 실천 여부를 보면 된다. 정말로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앎이 지극하고(知至) 의지가 진실한(誠意)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03 問“知至而后意誠”.

'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에 관한 질문.

曰: “知則知其是非. 到意誠實, 則無不是, 無有非, 無一毫錯, 此已是七八分人. 然又不是今日知至, 意亂發不妨, 待明日方誠. 如言孔子‘七十而從心’, 不成未七十心皆不可從! 只是說次第如此. 白居易詩云: ‘行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詩人玩弄至此!” 可學(62때).

대답: 안다는 것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아는 것이다. 의지가 진실해지면 (그 사람의 행동에) 옳지 않음이 없고, 그른 것이 없으며, 털끝만큼의 착오도 없다. 이는 이미 70-80%는 된 사람이다. 그러나 또 '오늘 막 앎이 지극해졌으니 (오늘은) 의지가 어지러이 발출해도 괜찮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의지를 진실되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일흔이 되고나서는 마음을 따라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260]는 말이 설마 일흔이 되기 전에는 자기 마음을 따라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겠나? 단지 순서가 그러하다는 것 뿐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행년 서른아홉, 세모(歲暮)의 해가 기우는 이때, 맹자(孟子)는 (마흔살이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261]라고 했는데, 시인의 말재주가(玩弄) 이정도 수준에 이르렀구나![262]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璘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린(璘)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104 舜功問: “致知·誠意是如何先後?”

순공(舜功)의 질문: 치지(致知)와 성의(誠意)는 어째서 선후가 이렇게 됩니까?

曰: “此是當初一發同時做底工夫, 及到成時, 知至而后意誠耳. 不是方其致知, 則脫空妄語, 猖狂妄行, 及到誠意方始旋收拾也. 孔子‘三十而立’, 亦豈三十歲正月初一日乃立乎! 白樂天有詩: “吾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此詩人滑稽耳!” 璘(62때).

대답: 이는 애초에 동시(一發同時)에 하는 공부(工夫)다. 다 완성된 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나서 의지가 진실해진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치지의 단계에서 헛소리를 하고(脫空妄語)[263] 미친짓을 하다가(猖狂妄行), 성의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서둘러(旋) 수습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서른에 홀로 섰다(立)'고 한 것이 어찌 서른이 되는 해의 정월 초하루가 되어서야 홀로 섰다는 말이겠나? 백락천(白樂天)이 시에서 '내(吾) 나이[264] 서른아홉, 세모의 해가 기우는 이때, 맹자(孟子)는 (마흔살이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라고 한 것은 시인이 재주를 넘은(滑稽)[265]것 뿐이다.[266]

린(璘)의 기록. (62세)

  •  15:105 學者到知至意誠, 便如高祖之關中, 光武之河內. 芝(63때).

배우는 이가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마치 한고조(高祖)의 관중(關中), 광무제(光武)의 하내(河內)와 같다.[267]

  •  15:106 問:“‘知至而后意誠, 故天下之理, 反求諸身, 實有於此.' 似從外去討得來”云云.

질문: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졌으므로 천하의 이치를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해보면 정말로 (자기 내면에) 다 있다.'[268]같은 경우, (천하의 이치를) 아마도 바깥쪽에서 마련해온 것 같습니다. (생략)[269]

曰: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厲聲言“弗思”二字.>

대답: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외부에서 내 안으로 녹아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270] <'생각하지 않을(弗思)' 두 글자를 강하게 말했다.>

又笑曰: “某常說, 人有兩箇兒子, 一箇在家, 一箇在外去幹家事. 其父卻說道在家底是自家兒子, 在外底不是!” 節(64이후).

또 웃으며 말함: 내가 늘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은 집에 있고 다른 아들은 밖에 나가서 가족의 일을 처리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아비가 집에 있는 아들은 자기 아들이고 밖에 있는 아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구나![271]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07 或問: “知至以後, 善惡旣判, 何由意有未誠處?”

어떤 사람의 질문: 앎이 지극해진 다음 선악도 이미 판별되었는데 무슨 연유로 의지에 아직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까?

曰: “克己之功, 乃是知至以後事.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一念纔放下, 便是失其正. 自古無放心底聖賢, 然一念之微, 所當深謹, 纔說知至後不用誠意, 便不是. ‘人心惟危, 道心惟微’, 毫釐間不可不子細理會. 纔說太快, 便失卻此項工夫也.” 銖.

대답: 극기(克己)[272]하는 노력은 앎이 지극해진 이후의 일이다.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273] 한 생각(一念)이라도 놓치는(放下) 순간 그 바름을 잃게 된다. 예로부터 마음을 놓치는(放心) 성현은 없었다. 하지만 각각의 생각은 은미하니 깊이 삼가야 한다.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를 진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바로 틀린 것이다.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274] 털끝만한 것까지 세심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충 빨리 하라고 말하는 순간 이 항목에서의 공부(工夫)를 상실하게 된다.

수(銖)[275]의 기록. (67세 이후)

  •  15:108 問椿: “知極其至, 有時意又不誠, 是如何?”

선생이 나(椿)에게 질문했다: 앎이 지극해졌는데도 종종 의지가 또 진실하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椿無對.

나(椿)는 대답하지 못했다.

曰: “且去這裏子細窮究.”

선생: 일단 이 부분을 세심하게 연구해 보아라.

一日, 稟云: “是知之未極其至.”

하루는 내가 말씀드렸다: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先生曰: “是則是. 今有二人: 一人知得這是善, 這是惡; 又有一人眞知得這是善當爲, 惡不可爲. 然後一人心中, 如何見得他是眞知處?”.

선생: 그 말이 맞기는 한데... 지금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이것이 선이고 이것은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이것이 선이므로 당연히 해야 하고 이것은 악이므로 당연히 하면 안 됨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眞知). 그렇다면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그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眞知) 알 수 있을까?[276]

椿亦無以應.

나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先生笑曰: “且放下此一段, 緩緩尋思, 自有超然見到處.” 椿(59때)

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이 부분을 내려놓고 천천히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초연(超然)히 깨닫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춘(椿)의 기록. (59세)

  •  15:109 誠意, 方能保護得那心之全體.

의지를 진실되게 하면(誠意) 비로소 이 마음 전체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以下誠意.>

<이 아래로 성의에 관한 조목들>

  •  15:110 問“實其心之所發, 欲其一於理而無所雜”.

'마음이 발하는 것(心之所發)[277]을 진실되게 하고, 그것이 한결같이(一)[278] 이치에 귀속하여 다른 것과 섞이지 않게하라'[279]에 관한 질문.

曰: “只爲一, 便誠; 二, 便雜. ‘如惡惡臭, 如好好色’, 一故也. ‘小人閒居爲不善, <止>[280]著其善’, 二故也. 只要看這些便分曉. 二者, 爲是眞底物事, 卻著些假攙放裏, 便成詐僞. 如這一盞茶, 一味是茶, 便是眞. 才有些別底滋味, 便是有物夾雜了, 便是二.” 蘷孫(68이후).

대답: "하나(一)면 순수하고(誠) 둘이면(二) 잡스럽다(雜). '악취를 싫어하듯이 악을 싫어하고, 호색을 좋아하듯이 선을 좋아'[281]하는 까닭은 하나(一)이기 때문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지낼 때 악을 행하고 (중략) 선함을 드러내'[282]는 까닭은 둘(二)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보아야 하는데, 보기만 하면 바로 분명히 이해될 것이다. 둘이란, 진짜 물건 안에다 가짜를 조금 섞어 넣은 것으로, 곧 사기와 거짓(詐僞)이 된다. 예를 들어 이 차 한 잔이 한결같이 차 맛만 난다면 이는 진짜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맛이 첨가되면 곧 섞인 물건이요 둘(二)이다.

  •  15:111 意誠後, 推盪得渣滓靈利, 心盡是義理. 閎祖(59이후).

의지가 진실하게 된 후에는 찌꺼기(渣滓)를 깨끗하게(靈利)[283] 씻어내서(推盪)[284] 마음이 전부 의리(義理)로 가득하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以下意誠.>

<이 아래로는 의성(意誠)에 관한 조목들>

  •  15:112 意誠, 如蒸餅, 外面是白麵, 透裏是白麵. 意不誠, 如蒸餅外面雖白, 裏面卻只是粗麵一般. 閎祖(59이후).

의지가 진실하다는(意誠) 것은 증병(蒸餅)[285]의 겉부분도 고운 밀가루로 만들었고 속으로 들어가도 고운 밀가루로(白麵) 만든 것과 같다. 의지가 진실하지 않은 것은 증병의 겉부분은 비록 고운 밀가루로 만들었더라도 속부분은 거친 밀가루로(粗麵)[286] 만든 것과 같다.[287]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113 “心, 言其統體; 意, 是就其中發處. 正心, 如戒懼不睹不聞; 誠意, 如愼獨.”

심(心)은 통체로(統體) 말한 것이고, 의(意)는 그 속에서 발출하는(發) 것이다.[288] 정심(正心)은 '(자신이) 보고 듣지 않는 바를 경계하고 두려워한다'[289]는 것과 같고, 성의는 '혼자만 아는 곳을 삼간다(愼獨)'[290]와 같다.

又曰: “由小而大. 意小心大.” 閎祖(59이후).

또 말함: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라. 의(意)는 작고 심(心)은 크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正心·誠意.>

<이 아래로 정심(正心)과 성의(誠意)에 관한 조목들>

  •  15:114 康叔臨問: “意旣誠矣, 心安有不正?”

강숙림(康叔臨)의 질문: 의지가 이미 진실한데, 마음에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습니까?

曰: “誠只是實. 雖是意誠, 然心之所發有不中節處, 依舊未是正. 亦不必如此致疑, 大要只在致知格物上. 如物格·知至上鹵莽, 雖見得似小, 其病卻大. 自修身以往, 只是如破竹然, 逐節自分明去. 今人見得似難, 其實卻易. 人入德處, 全在致知·格物. 譬如適臨安府, 路頭一正, 著起草鞋, 便會到. 未須問所過州縣那箇在前, 那箇在後, 那箇是繁盛, 那箇是荒索. 工夫全在致知·格物上.” 謙(65때).

대답: '성(誠)'은 '실(實)'이다. 비록 의지가 진실하더라도 마음에서 발출하는 것(心之所發)이[291] 각각의 상황에 정확히 온당하지(中節) 않은 경우가 있으면[292] 아직 여전히 바르지(正)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의심할 필요는 없고,[293] 핵심은 그저 치지와 격물에 있다. 만약 사물이 다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는 단계에서(物格知至) 소홀하면, 보이기는 작게 보여도 그 병폐가 크다. 수신(修身)의 단계 이후로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한마디 저절로 분명해진다.[294]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 어려워 보여도 사실은 쉽다. 사람이 덕(德)으로 들어가는 지점은 전부 치지와 격물에 있다. 비유하자면, 임안부(臨安府)[295]에 갈 적에 길이 정확하기만 하다면(一正)[296] 짚신만 신으면[297] 도달할 수 있다. 중간에 거쳐가는 주현(州縣) 가운데 어느 것이 앞이고 어느것이 뒤인지, 어느 것이 번성하고 어느 것이 황량한지 물을 필요가 없다. 힘 쓸 곳은(工夫) 전부 치지와 격물에 있다.

<以下論格物·致知·誠意·正心.>

<이 아래로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에 관한 조목들>

  •  15:115 問: “心, 本也. 意, 特心之所發耳. 今欲正其心, 先誠其意, 似倒說了.”

질문: 마음(心)은 뿌리(本)이고, 의지(意)는 그저 마음에서 발출하는 것 정도입니다. 지금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설명은 순서가 뒤집힌 것 같습니다.

曰: “心無形影, 敎人如何撑拄. 須是從心之所發處下手, 先須去了許多惡根. 如人家裏有賊, 先去了賊, 方得家中寧. 如人種田, 不先去了草, 如何下種. 須去了自欺之意, 意誠則心正. 誠意最是一段中緊要工夫, 下面一節輕一節.”

대답: "마음은 형체가 없는데,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탱하고있으라고(撑拄)[298] 해야 할까? 반드시 마음에서 발출한 곳에서 착수해야 하며, (거기서) 우선 수많은 악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예컨대 집에 도둑이 들면 우선 도둑을 없애야만 집안이 평온해지는 것과 같다. 예컨대 누군가 밭에 파종할 적에 우선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씨를 뿌릴 수 있겠나? 반드시 자신을 기만하려는 의지를[299] 제거해야 한다. 의지가 진실해지면 마음이 바르게 된다. '성의'는 일련의 공부 가운데 매우 중요한 공부이며, 그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가벼워진다.

或云: “致知·格物也緊要.”

누군가가 말함: 치지와 격물도 중요합니다.

曰: “致知, 知之始; 誠意, 行之始.” 蘷孫(68이후).

대답: 치지는 앎(知)의 시작이고, 성의는 행함(行)의 시작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116 或問: “意者心之所發, 如何先誠其意?”

누군가의 질문: 의지(意)는 마음(心)에서 발출하는 것인데, 어떻게 (마음보다) 의지를 먼저 진실하게 합니까?

曰: “小底卻會牽動了大底. 心之所以不正, 只是私意牽去. 意才實, 心便自正. 聖賢下語, 一字是一字, 不似今人作文字, 用這箇字也得, 改做那一字也得.”

대답: 역설적으로 작은 것이 큰 것을 끌고 갈 수 있다. 마음이 바르지 않은 까닭은 단지 사사로운 의지(私意)가 끌고 가버리기 때문이다. 의지가 진실해지는 순간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 성현이 구사하는 언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의미가 있으니, 요즘 사람들이 글을 쓸 때처럼 이 글자를 써도 되고 저 글자로 바꿔써도 된다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  15:117 格物者, 知之始也; 誠意者, 行之始也. 意誠則心正, 自此去, 一節易似一節. 拱壽(65때).

격물은 앎의 시작이고, 성의는 행함의 시작이다. 의지가 진실해면 마음이 바르게 되니, 그 다음부터는 매 단계 더 쉬워진다.[300]

공수(拱壽)의 기록. (65세)

  •  15:118 致知·誠意兩節若打得透時, 已自是箇好人. 其它事一節大如一節, 病敗一節小如一節. 自修(65때).

치지와 성의 두 단계를 투철하게 해내면(打得透), 이미(已自) 좋은 사람이다. 그 다음 단계는, 일의 스케일은 매 단계 더 커지지만, 병폐는 매 단계 더 작아진다.

자수(自修)의 기록. (65세)

  •  15:119 格物者, 窮事事物物之理; 致知者, 知事事物物之理. 無所不知, 知其不善之必不可爲, 故意誠; 意旣誠, 則好樂自不足以動其心, 故心正. 恪.[301]

격물이란 사사물물의 이치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고, 치지란 사사물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 모르는 것이 없어서, 선하지 않은 짓을 행해서는 절대로 안 됨을 알기 때문에 의지가 진실해진다. 의지가 성실해지면 좋아하는(好樂)[302] 것이 자연히 마음을 동요하지 못하게 되므로 마음이 바르게 된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120 格物·致知·正心·誠意, 不可著纖毫私意在其中. <椿錄云: “便不是矣.”> 致知·格物, 十事格得九事通透, 一事未通透, 不妨; 一事只格得九分, 一分不透, 最不可. 凡事不可著箇“且”字. “且”字, 其病甚多.

격물, 치지, 정심, 성의는 그 속에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의지(私意)도 두어서는 안 된다. <춘(椿)의 기록에는 '옳지 않다(便不是矣).'> 치지와 격물에 있어서 열 가지 사안 가운데 아홉 가지는 철저하게 이해했는데 한 가지는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는 괜찮지만, 한 가지 사안을 90%만 탐구하여 이해하고 나머지 10%는 철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불가하다.[303] 모든 일에 '일단은(且)'[304]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일단은'에는 병폐가 매우 많다.

  •  15:121 格物·致知·誠意·正心, 雖是有許多節次, 然其進之遲速, 則又隨人資質敏鈍. 履孫(65때).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비록 여러 단계가 있지만, 진전의 속도는 또 그 사람의 자질이 민첩하냐 둔하냐에 달려있다. [305]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122 大學於格物·誠意, 都鍛煉成了, 到得正心·修身處, 只是行將去, 都易了. 蘷孫(68이후).

'대학'은 격물과 성의에서 단련(鍛煉)이 모두 끝난다. 정심과 수신의 경우는 그저 쭉 나아가는 것 뿐이니 모두 한결 쉽다.[306]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123 致知·誠意·正心, 知與意皆從心出來. 知則主於別識, 意則主於營爲. 知近性, 近體; 意近情, 近用. 端蒙(50이후).

치지, 성의, 정심에서 지(知)와 의(意)는 모두 심(心)에서 나온다. 지는 식별(別識)을 주관하고,[307] 의는 영위(營爲)[308]를 주관한다. 지는 본성(性), 본체(體)에 가깝다. 의는 감정(情), 작용(用)에 가깝다.[309]

  •  15:124 敬之問誠意·正心·修身.

경지(敬之)[310]가 성의, 정심, 수신을 질문.

曰: “若論淺深意思, 則誠意工夫較深, 正心工夫較淺; 若以小大看, 則誠意較緊細, 而正心·修身地位又較大, 又較施展.” 賀孫(62이후).

대답: 깊이로 논하자면 성의의 노력(工夫)이 더 깊고 정심의 노력이 더 얕다. 크기로 보자면 성의가 더 긴밀하고 세밀하다. 정심과 수신의 영역은 더 크고 더 널리 펼쳐진다.[311]


  •  15:125 誠意·正心·修身, 意是指已發處看, 心是指體看. 意是動, 心又是該動靜. 身對心而言, 則心正是內. 能如此修身, 是內外都盡. 若不各自做一節功夫, 不成說我意已誠矣, 心將自正! 則恐懼·好樂·忿懥引將去, 又卻邪了. 不成說心正矣, 身不用管! 則外面更不顧, 而遂心跡有異矣. 須是“無所不用其極”. 端蒙(50이후).

성의, 정심, 수신의 경우, 의지(意)는 이미 발출한 지점을 지시한 것이고 마음(心)은 본체(體)를 지시한 것이다. 의지는 움직임이고, 마음은 움직임과 고요함을 다 포함한다.[312] 몸(身)과 마음(心)을 상대하여 말하면 마음이 바로 안쪽이다. 이렇게 몸을 닦을(修)[313] 수 있다면 안쪽과 바깥쪽이 모두 남김없이 완전해진다. 만약 각각의 단계에서 고유한 노력(功夫)을 별도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설마하니 '내 의지가 이미 진실하니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다!'라고 할 참인가? 그러면 두려움(恐懼), 좋아함(好樂), 분노(忿懥)[314]에 끌려가서 (마음이) 사특해져버릴 것이다. 설마하니 '내 마음이 바르게 되었으니 몸은 돌볼 필요가 없다!'고 할 참인가? 그러면 외면을 더는 돌보지 않아서 결국 마음과 행적에 차이가 생겨버린다. 반드시 '모든 일에서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315]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5:126 或問: “意者, 乃聽命於心者也. 今曰‘欲正其心, 先誠其意’, 意乃在心之先矣.”

누군가의 질문: 의지(意)는 마음(心)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하라'[316]고 하는데, 의지가 마음의 앞에 있게 됩니다.

曰: “‘心’字卒難摸索. 心譬如水: 水之體本澄湛, 卻爲風濤不停, 故水亦搖動. 必須風濤旣息, 然後水之體得靜. 人之無狀汙穢, 皆在意之不誠. 必須去此, 然後能正其心. 及心旣正後, 所謂好惡哀矜, 與修身齊家中所說者, 皆是合有底事. 但當時時省察其固滯偏勝之私耳.” 僩(69이후).

대답: '심(心)'이라는 개념은 포착하기 어렵다. 마음은 비유하자면 물과 같다. 물의 본체(體)[317]는 맑고 투명(澄湛)하지만, 바람과 파도가 그치지 않아서 물 역시 요동치게 된다. 반드시 바람과 파도가 멈춘 뒤에야 물의 본체가 고요해진다. 사람의 추악하고(無狀) 더러운 행실은 모두 의지가 진실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다. 반드시 이것을 제거한 뒤에야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 마음이 바르게 되고 나서 보면 (대학에서) 이른바 좋아함과 싫어함(好惡), 가엽고 불쌍히 여김(哀矜) 및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부분에서 말하는 것들[318]이 모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다(合有底事).[319] 다만 때때로 그 막히고 치우친 사사로움을 성찰해야 할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壯祖錄疑同聞別出.>

<장조(壯祖)의 기록은 동석에서 같은 말을 들은 듯하다. 별도의 조목으로 따로 배치했다.>[320]

  •  15:127 問: “心者, 身之主; 意者, 心之發. 意發於心, 則意當聽命於心. 今曰‘意誠而后心正’, 則是意反爲心之管束矣, 何也?”

질문: 마음(心)은 몸(身)의 주인이고 의지(意)가 마음에서 발출한다면 의지는 당연히 마음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대학에서는)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하니, 의지가 역으로 마음을 통제(管束)하는 꼴이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曰: “心之本體何嘗不正? 所以不得其正者, 蓋由邪惡之念勃勃而興, 有以動其心也. 譬之水焉, 本自瑩淨寧息, 蓋因波濤洶湧, 水遂爲其所激而動也. 更是大學次序, 誠意最要. 學者苟於此一節分別得善惡·取舍·是非分明, 則自此以後, 凡有忿懥·好樂·親愛·畏敬等類, 皆是好事. 大學之道, 始不可勝用矣.” 壯祖(미상).

대답: 마음의 본체가 언제 한 번 바르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마음이) 바름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사악(邪惡)한 생각(念)이 뭉게뭉게(勃勃) 일어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물로 비유하자면, 본래는 깨끗하고 고요하지만(瑩淨寧息), 파도가 거칠게 치솟으면(洶湧) 그 결과 물도 격동하게 된다. 더욱이 '대학'의 순서에서는 성의(誠意)가 가장 중요하다. 배우는 이들이 이 대목에서 선악과 취사와 시비의 분별을 명확히 할 수만 있으면 그 이후에 나오는 저 모든 분노(忿懥), 좋아함(好樂), 친애(親愛), 외경(畏敬) 등의 일들이 모두 좋은 일(好事)이다.[321] '대학'의 도는 이때 비로소 이루 다 쓸 수 없게(不可勝用) 된다.[322]

장조(壯祖)의 기록.[323]

  •  15:128 問: “心如何正?”

질문: 마음은 어떻게 바로잡습니까?

曰: “只是去其害心者.” 端蒙(50이후).

대답: 마음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5:129 或問正心修身.

어떤 사람이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에 관하여 질문.

曰: “今人多是不能去致知處著力, 此心多爲物欲所陷了. 惟聖人能提出此心, 使之光明, 外來底物欲皆不足以動我, 內中發出底又不陷了.” 祖道(68때).

대답: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치지(致知)에 힘을 쓰지 못하여 이 마음이 대부분 물욕에 함닉(陷)당하게 되었다.[324] 오직 성인만이 이 마음을 끌어내어(提出)[325] 밝게 만들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밖에서 들어온 물욕이 나를 움직이기 부족하고 안에서 발출한 것도 나를 함닉시키지 못하게 된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130 心纔不正, 其終必至於敗國亡家. 僩(69이후).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 가정을 파멸시키는(敗國亡家) 지경에 이른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31 "誠意正心章, 一說能誠其意, 而心自正; 一說意誠矣, 而心不可不正. 問[326]: 修身齊家亦然否?"

질문: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장은, 어디서는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만 있으면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고 하고, 또 다른 데서는 의지가 진실해졌어도 마음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327]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도 이와 같습니까?

曰: “此是交會處, 不可不看.”

대답: 이것은 두 단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니[328]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又曰: “誠意以敬爲先.” 泳(66때).

또 말함: 성의는 경(敬) 공부가 우선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132 或問: “正心·修身[329], 莫有淺深否?”

누군가의 질문: 정심과 수신에 깊고 얕은 차이가 있습니까?

曰: “正心是就心上說, 修身是就應事接物上說. 那事不自心做出來! 如修身, 如絜矩, 都是心做出來. 但正心, 卻是萌芽上理會. 若修身與絜矩等事, 都[330]是各就地頭上理會.”

대답: 정심은 마음의 레벨에서 말한 것이고 수신은 실제 사태에 대응하고 처리하는(應事接物) 레벨에서 말한 것이다. 무슨 사태가 됐든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수신과 혈구(絜矩)[331] 같은 것도 모두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정심은 (마음에서 막 틔워나온) 맹아(萌芽)의 레벨에서 탐구하는 것이고 수신과 혈구 같은 일들은 각각의 사례에 나아가 탐구하는 것이다.[332]

  •  15:133 毅然問: “‘家齊, 而后國治, 天下平.’ 如堯有丹朱, 舜有瞽瞍, 周公有管蔡, 卻能平治, 何也?”

의연(毅然)[333]의 질문: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했는데, 요(堯)에게는 단주(丹朱)[334]가 있었고, 순(舜)에게는 고수(瞽瞍)[335]가 있었고, 주공에게는 관채(管蔡)[336]가 있었는데도 오히려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고 태평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337]

曰: “堯不以天下與丹朱而與舜, 舜能使瞽瞍不格姦, 周公能致辟于管蔡, 使不爲亂, 便是措置得好了. 然此皆聖人之變處. 想今人家不解有那瞽瞍之父, 丹朱之子, 管蔡之兄, 都不須如此思量, 且去理會那常處.” 淳(61·70때).

대답: 요는 천하를 단주에게 주지 않고 순에게 주었으며, 순은 고수가 간사함에 이르지 못하게 했고(不格姦),[338] 주공은 관숙과 채숙을 주살하여(致辟) (주나라의) 혼란거리가 되지 못하게 했으니[339] 적절히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성인이 임기응변한(變) 경우이다.[340] 생각건대 지금 사람들은 고수와 같은 아버지나 단주와 같은 아들이나 관채와 같은 형이 있을 수 없으니[341], 전혀 그런쪽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고 우선은 (성인이) 상도(常)를 쓴 지점을 탐구하라.

순(淳)의 기록. (61세, 70세)

  •  15:134 “壹是”, 一切也. 漢書平帝紀“一切”, 顔師古注: “猶如以刀切物, 取其整齊.” 泳(66때).

'일시(壹是)'는 일체(一切)라는 뜻이다.[342] 한서(漢書) 평제기(平帝紀)의 '일체(一切)'에 대한 안사고(顔師古)의 주석에서 '마치 칼로 물건을 자른 것 같다는 뜻으로, 그 가지런하다는(整齊) 속성을 취한 것이다.[343]

영(泳)의 기록. (66세)

  •  15:135 李從之問: “‘壹是皆以修身爲本’, 何故只言修身?”

이종지(李從之)[344]의 질문: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345]고 했는데, 왜 그저 수신만 말합니까?

曰: “修身是對天下國家說. 修身是本, 天下國家是末. 凡前面許多事, 便是理會修身. ‘其所厚者薄, 所薄者厚’, 又是以家對國說.” 㽦(59때).

대답: 수신은 천하, 국, 가에 상대해서 말한 것이다. 수신이 근본이고 천하, 국, 가는 말단이다.[346] 무릇 (팔조목) 앞부분의 여러 일들은[347] 수신의 실천이다. '후하게 할 것을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할 것을 후하게 한다'는 것은 집안(家)[348]을 나라(國)[349]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다.

순(㽦)의 기록. (59세)

  •  15:136 問: “大學解: ‘所厚, 謂家.’ 若誠意正心, 亦可謂之厚否?”

질문: '대학'의 해설서[350]에서 '후하게 할 것은 집안이다'[351]라고 했는데, 성의와 정심 역시 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曰: “不可. 此只言先後緩急. 所施則有厚薄.” 節(64이후).

대답: 불가하다. 이는[352] 단지 선후와 완급을 말할 뿐이다.[353] 베푸는 바에는[354] 후하고 박하고가 있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37 問: “大學之書, 不過明德·新民二者而已. 其自致知·格物以至平天下, 乃推廣二者, 爲之條目以發其意, 而傳意則又以發明其條目者. 要之, 不過此心之體不可不明, 而致知·格物·誠意·正心, 乃其明之之工夫耳.”

질문: '대학'이라는 책은 명덕(明德)과 신민(新民) 두 가지일 뿐입니다.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평천하까지(의 여덟 조목은) 곧 이 두 가지를 확장하여 (이 두 가지를 위한) 조목으로 삼아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드러낸 것이며, 전(傳)[355]의 뜻은 다시 그 조목들(의 의미를) 밝힌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마음의 본체는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치지, 격물, 성의, 정심이 바로 그것을 밝히려는 공부(工夫)인 것에 불과합니다.

曰: “若論了得時, 只消‘明明德’一句便了, 不用下面許多. 聖人爲學者難曉, 故推說許多節目. 今且以明德·新民互言之, 則明明德者, 所以自新也; 新民者, 所以使人各明其明德也. 然則雖有彼此之間, 其爲欲明之德, 則彼此無不同也. 譬之明德卻是材料,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 卻是下工夫以明其明德耳. 於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之際, 要得常見一箇明德隱然流行于五者之間, 方分明. 明德如明珠, 常自光明, 但要時加拂拭耳. 若爲物欲所蔽, 卽是珠爲泥涴, 然光明之性依舊自在.” 大雅(49이후).

대답: 다 깨닫고(了得) 난 시점으로 논하자면 '명명덕(明明德)' 한 구절만 있으면 되니, 그 아래에 붙은 저 많은 것들이 다 불필요하다. 성인은 배우는 이들이 (명명덕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저 많은 단계들을 (두고 상세히) 설명한 것이다. 이제 먼저 명덕과 신민을 짝지어 말하자면, 명명덕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신민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자신의 명덕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냐 타인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덕을 밝히고자 하는 점에 있어서는(其爲欲明之德)[356] 서로 차이가 없다. 비유하자면 명덕은 원재료이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은 애써 노력하여(下工夫) 그 명덕을 밝히려는 것이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의 단계에서 항상 명덕이 은연중에 이 다섯 가지 사이에서 흐르고 있음을 보아야만 비로소 (우리의 이해가) 분명해진다. 명덕은 마치 밝은 구슬(明珠)과 같아서 항상 스스로 밝게 빛나긴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털고 닦아주어야 한다. 만약 물욕이 뒤덮어버리면(蔽),[357] 구슬은 진흙에 오염되겠지만, 그래도 저 빛나는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以下總論綱領·條目.>

<이하의 조목들은 대학의 강령과 조목들에 대한 총론>

  •  15:138 大學“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此三箇是大綱, 做工夫全在此三句內. 下面知止五句是說效驗如此. 上面是服藥, 下面是說藥之效驗. 正如說服到幾日效如此, 又服到幾日效又如此. 看來不須說效亦得, 服到日子滿時, 自然有效. 但聖人須要說到這田地, 敎人知“明明德”三句. 後面又分析開八件: 致知至修身五件, 是明明德事; 齊家至平天下三件, 是新民事. 至善只是做得恰好. 後面傳又立八件, 詳細剖析八件意思. 大抵閑時喫緊去理會, 須要把做一件事看, 橫在胸中, 不要放下. 若理會得透徹, 到臨事時, 一一有用處. 而今人多是閑時不喫緊理會, 及到臨事時, 又不肯下心推究道理, 只說且放過一次亦不妨. 只是安于淺陋, 所以不能長進, 終於無成. 大抵是不曾立得志, 枉過日子. 且如知止, 只是閑時窮究得道理分曉, 臨事時方得其所止. 若閑時不曾知得, 臨事如何了得? 事親固是用孝, 也須閑時理會如何爲孝, 見得分曉, 及到事親時, 方合得這道理. 事君亦然. 以至凡事都如此.

'대학'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 이 세 가지가 큰 줄기(大綱)이니, 실제로 힘을 쓰는(工夫) 것은 전적으로 이 세 구 안에 있다. 그 아래 '지지(知止)'로 시작하는 다섯 구는[358] 그 효험이 이와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위는[359] 약을 복용하는 것이고, 아래는[360] 약의 효험을 말한 것이다. 마치 복용한지 며칠이 지나면 효과가 이러하고, 다시 며칠 복용하면 효과가 또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만 보니 효험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복용을 시작하여 날짜가 차면 자연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단, 성인은 반드시 이 지점까지 설명하여 사람들이 '명명덕' 세 구에 대하여 잘 알게 하려고 한 것뿐이다. 그 다음 부분에서 다시 여덟 건을[361] 분석하는데, 치지에서 수신까지 다섯 건은 명명덕의 일이고, 제가에서 평천하까지 세 건은 신민의 일이다. 지어지선은 단지 (명명덕과 신민을) 잘 해낸다는 것이다. 그 뒤의 전(傳) 부분에서 여덟 건을 세워서 팔조목의 의미를 상세히 분석한다.[362] 대체로 한가할 때 절실히(喫緊) 헤아려서, 반드시 한 번에 한 건씩 주목하여 마음 한켠에 걸어두고(橫在胸中)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 투철하게 이해하면 실제 사태에 직면했을 적에 하나하나 다 쓸모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한가할 때도 절실하게 헤아리려하지 않고, 실제 사태에 직면할 적에도 기꺼이 심력을 다해 도리를 탐구하려하지 않으며, 그저 '한 번 쯤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저 천박하고 비루한(淺陋) 식견에 안주해버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끝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이는 대개 한 번도 마음의 지향점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여(立得志) 하루하루 헛되이 시간만 보내서(枉過)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멈출 곳을 안다(知止)' 같은 경우, 한가할 때 도리를 철저히 탐구하여 분명히 알아두어야만 실제 사태에 직면할 적에 비로소 그 멈출 곳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得其所止). 만약 한가할 때 이해해두지 않으면 실제 사태에 직면하여 어떻게 일을 제대로 처리할(了得) 수 있겠나? 부모를 모시는 데에는 물론 당연히 효(孝)의 도리를 사용하지만, 역시 한가할 때 어떻게 해야 효(孝)가 되는 건지 헤아려서 분명히 알아두어야만 실제로 부모를 모실 때가 되었을 때 이 도리에 부합할 수 있다. 임금을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다.

又問: “知止, 是萬事萬物皆知得所止, 或只指一事而言?”

재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 같은 경우, 모든 사태와 모든 사물에 있어 각각 멈출 지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한 가지 사안만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曰: “此徹上徹下, 知得一事, 亦可謂之知止.”

대답: 한 가지 일을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역시 '멈출 곳을 알았다(知止)'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又問: “上達天理, 便是事物當然之則至善處否?”

재질문: '위로 천리에 통달하고...(上達天理)'[363]는 바로 사태와 사물의 '당연(當然)한 법칙(則)'[364]이요 지극히 선한 지점(至善處) 아닙니까?

曰: “只是合禮[365]處, 便是天理. 所以聖人敎人致知·格物, 亦只要人理會得此道理.”

대답: 그저 예(禮)에 합치하는 지점이 곧 천리(天理)이다. 성인이 사람들에게 치지격물하도록 한 까닭 역시 그저 사람들이 이 도리를 이해하게 하려고 해서였을 뿐이다.

又問: “大學'表裏精粗'如何?”

재질문: '대학'에서 '바깥쪽 측면과 안쪽 측면, 정밀한 부분과 거친 부분(表裏精粗)'[366]은 어떻습니까?

曰: “自是如此. 粗是大綱, 精是裏面曲折處.”

대답: 말 그대로다. 거친 부분은 큰 틀(大綱)이고 정밀한 부분은 안쪽의 상세한(曲折) 부분이다.

又曰: “外面事要推闡, 故'齊家而后治國, 平天下'; 裏面事要切己, 故修身·正心, 必先誠意. 致知愈細密.”

다시 말함: 바깥쪽 일은 미루어 드러내야(推闡)[367] 하므로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하였다. 안쪽 일은 자신에게 절실해야 하므로 '몸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 앎을 지극히하는 것은 더욱 정밀한 작업이다.

又問眞知.

다시 '진정한 앎(眞知)'이 무엇인지 질문.

曰: “曾被虎傷者, 便知得是可畏. 未曾被虎傷底, 須逐旋思量箇被傷底道理, 見得與被傷者一般, 方是.” 明作(63이후).

대답: 호랑이에게 다쳐본 사람은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호랑이에게 다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차근차근 '호랑이에게 다침'의 도리를 잘 생각해서 호랑이에게 정말 다쳐본 사람과 똑같이 (호랑이의 무서움에 대하여 절실하게) 알게 되어야 한다.[368]

명작(明作)의 기록. (63세 이후)

  •  15:139 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 大學中大抵虛字多. 如所謂“欲”·“其”·“而后”, 皆虛字; “明明德·新民·止於至善”, “致知·格物·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實字. 今當就其緊要實處著工夫. 如何是致知·格物以至于治國·平天下? 皆有節目, 須要一一窮究著實, 方是. 道夫(60이후).

격물과 치지는 그 멈출 곳을 알고자하는(知其所止) 것이고,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그 멈출 곳을 얻고자하는(得其所止) 것이다.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그 멈출 곳을 안 것이고, 의성, 심정, 신수, 가제, 국치, 천하평은 그 멈출 곳을 얻은 것이다. '대학'에는 대체로 허자(虛字)가 많다. 이른바 '원하다(欲)', '그(其)', '이후에(而后)'는 모두 허자이고,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 치지, 격물,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실자(實字)이다. 이제 응당 그 중요하고 실질적인 지점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치지하고 격물하여 치국과 평천하까지 이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대학에) 모두 각각의 단계가 있으니 하나하나 착실하게 탐구하여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0 自“欲明明德於天下”至“先致其知”, 皆是隔一節, 所以言欲如此者, 必先如此. “致知在格物”, 知與物至切近, 正相照在. 格物所以致知, 物才格, 則知已至, 故云在, 更無次第也. 閎祖(59이후).

'명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에서부터 '...먼저 앎을 지극히해야 한다.'라는 구절까지 모두 한 단계 간격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369]고 (특이하게 말)한 것은 지(知)와 물(物)이 지극히 밀접하여 정확히 서로 조응하고(相照) 있기 때문이다.[370] 사물을 탐구하여 그로써 앎이 지극해지는 것이니, 사물이 탐구되자마자 앎은 이미 지극하다. 그래서 '~에 있다(在)'고 말하고 별도의 선후 순서가 없는 것이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141 大學“明明德於天下”以上, 皆有等級. 到致知格物處, 便較親切了, 故文勢不同, 不曰“致知者先格其物”, 只曰“致知在格物”也. “意誠而后心正”, 不說是意誠了便心正. 但無詐僞便是誠. 心不在焉, 便不正. 或謂但正心, 不須致知·格物, 便可以修身·齊家, 卻恐不然. 聖人敎人窮理, 只道是人在善惡中, 不能分別得, 故善或以爲惡, 惡或以爲善; 善可以不爲不妨, 惡可以爲亦不妨. 聖人便欲人就外面攔截得緊, 見得道理分明, 方可正得心, 誠得意. 不然, 則聖人告顔子, 如何不道非禮勿思, 卻只道勿視聽言動? 如何又先道“居處恭, 執事敬”, 而後“與人忠”?“敬”字要體得親切, 似得箇“畏”字.

'대학'에서 '명명덕을 천하에 밝힌다' 다음의 것들은 모두 (뚜렷하게) 등급이 나눠지는데 치지와 격물에 이르러서는 (양자 사이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더 긴밀하다.[371] 그래서 문세(文勢)가 달라지는데, '앎을 지극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사물을 탐구한다'고 하지 않고 그저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할 뿐이다.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의 경우, 의지가 진실해지기만 하면 마음이 곧바로 바르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기만과 작위가 없기만하면 곧 '진실(誠)'하다. (이에 더하여) 마음을 여기에 두지 않으면(心不在焉)[372] 바르지 않게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그저 마음만 바르게 하면(正心) 치지도 격물도 필요 없이 바로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성인이 사람들로하여금 이치를 탐구하게 한 것은 그저 (다음과 같은) 이런 말이다(只道).[373] 사람은 선악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여 때로는 선을 악으로 오인하고 악을 선으로 오인한 결과 선은 하지 않아도 무방하고 악은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성인은 사람들이 바깥쪽을 단단히 막아내고(攔截)[374] 도리를 분명히 보기를 바랐으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得心)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 있다(誠得意).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안자(顔子)에게 왜 '예가 아니면 생각하지 말라(非禮勿思)'[375]라고 하지 않고, 그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실행하지도 말라(勿視聽言動)'고만 말했겠나?[376] 왜 또 먼저 '집에서 기거할 적에는 공손하고, 나가서 집무할 때에는 경건하라(居處恭, 執事敬)'고 말한 뒤에야 '남과 교제할 적에 진심을 다하라(與人忠)'고 했겠나?[377] '경건하라(敬)'는 글자는 친근하고 절실하게 체득해야 한다. '두려움(畏)'[378]과 비슷하다.[379]

<銖記:先生嘗因諸生問敬宜何訓, 曰: “是不得而訓也. 惟‘畏’庶幾近之.” 銖云: “以‘畏’訓‘敬’, 平淡中有滋味.” 曰: “然.”> 榦(미상).

<수(銖)의 기록: 선생은 일찍이 '경'자를 어떻게 풀이(訓)[380]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이는 풀이할(訓) 수 없다. 오직 '두려움(畏)'이 가장 가까울 뿐이다'라고 하였다. 내가(銖) '경을 외로 풀이하니 담박한(平淡) 가운데 깊은 맛이 있다(滋味)'고 했다.[381] 선생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간(榦)의 기록.

  •  15:142 “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 <至>"致知在格物.” “欲”與“先”字, 謂如欲如此, 必先如此, 是言工夫節次. 若“致知在格物”, 則致知便在格物上. 看來“欲”與“先”字, 差慢得些子, “在”字又緊得些子. 履孫(65때).

'명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부터> '치지가 격물에 있다'까지에 관해서는, '하고자 한다면(欲)'과 '먼저(先)'라는 글자는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欲) 반드시 먼저(先)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공부의 단계별 순서를 말한 것이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같은 경우 치지가 바로 격물에 있다는 것이다.[382] 내 생각에 '하고자 한다면'과 '먼저'라는 글자는 (앞 조목과 뒷 조목을 연결시키는 정도가)[383] 조금 느슨하고, '있다(在)'는 글자는 그보다 조금 더 긴밀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143 大學言‘物格而后知至', <止>'天下平.’ 聖人說得寬. 不說道能此卽能彼, 亦不說道能此而後可學彼. 只是如此寬說, 後面逐段節節更說, 只待人自看得如何. 振(미상).

'대학'에서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 부터 '천하가 태평해진다'까지는 성인이 느슨하게 말하였다(說得寬). '이것을 잘 하면 저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고 '이것을 잘 하게 된 이후에 저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느슨하게 말해놓고 뒷부분에서는 순서대로 조목조목 다시 설명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스스로 어떻게 이해할지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그저 기다릴(待)[384] 뿐이다.

진(振)의 기록.

  •  15:144 蔡元思問: “大學八者條目, 若必待行得一節了, 旋進一節, 則沒世窮年, 亦做不徹. 看來日用之間, 須是隨其所在而致力: 遇著物來面前, 便用格; 知之所至, 便用致; 意之發, 便用誠; 心之動, 便用正; 身之應接, 便用修; 家便用齊; 國便用治, 方得.”

채원사(蔡元思)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을 만약 반드시 한 조목을 완전히 해내기를 기다렸다가 그 다음 단계로 점차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도 다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일상생활 중에 처한 상황에 따라 힘을 쏟아야 합니다. 어떤 사물과 조우하여 그것이 눈앞에 이르면 격물을 사용하고, 앎이 이르는 곳에서는 치지를 사용하며, 의지가 발출하면 성의를 사용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정심을 사용하고, 몸이 사태와 사물을 접하고 응대할(應接) 때면 수신을 사용하며, 집안에서는 제가를 사용하고, 나라에서는 치국을 사용해야만 됩니다.

曰: “固是. 他合下便說‘古之欲明明德於天下’, 便是就這大規模上說起. 只是細推他節目緊要處, 則須在致知·格物·誠意迤邐做將去”云云.

대답: 물론 그렇다. '대학'에서 (팔조목을 언급하는) 첫 시작을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전체적인 구조를 거론한 것이다. 단지 그 조목들 가운데 긴요한 곳을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반드시 치지, 격물, 성의부터 순서대로 해나가야 한다. (후략)

又曰: “有國家者, 不成說家未齊, 未能治國, 且待我去齊得家了, 卻來治國; 家未齊者, 不成說身未修, 且待我修身了, 卻來齊家! 無此理. 但細推其次序, 須著如此做. 若隨其所遇, 合當做處, 則一齊做始得.” 僩(69이후).

다시 대답: 국(國)과 가(家)를 가진 자가 설마하니 '집안이 아직 다스려지지 않았으니 나라를 아직 다스릴 수 없구나. 우선 가서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와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말할 것인가? 집안을 아직 다스리지 못한 자가 설마하니 '몸이 아직 닦이지 않았으니 우선 몸을 제대로 닦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와서 집안을 다스리겠다'고 말하겠는가? 그런 이치는 없다. 그러나 그 순서를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385] 일상에서 조우하는 상황에 따라 마땅한 것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모든 공부를) 일제히 수행해야만 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45 大學自致知以至平天下, 許多事雖是節次如此, 須要一齊理會. 不是說物格後方去致知, 意誠後方去正心. 若如此說, 則是當意未誠, 心未正時有家也不去齊, 如何得! 且如“在下位不獲乎上”數句, 意思亦是如此. 若未獲乎上, 更不去治民, 且一向去信朋友; 若未信朋友時, 且一向去悅親, 掉了朋友不管. 須是多端理會, 方得許多節次. 聖人亦是略分箇先後與人知, 不是做一件淨盡無餘, 方做一件. 若如此做, 何時得成! 又如喜怒上做工夫, 固是; 然亦須事事照管, 不可專於喜怒. 如易損卦“懲忿窒慾”, 益卦“見善則遷, 有過則改”, 似此說話甚多. 聖人卻去四頭八面說來, 須是逐一理會. 身上許多病痛, 都要防閑. 明作(63이후).

'대학'에서 치지부터 평천하까지 많은 일들이 비록 순서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일제히 힘써야(理會) 한다. 사물을 탐구한 후에야 비로소 앎을 지극히하러 가고, 의지가 진실해진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하러 간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의지가 아직 진실하지 못하고 마음이 아직 바르지 못한 때에는 집안이 있더라도 집안을 다스리러 가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이럴 수 있겠나! 예를들어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등의 몇 구절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386]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을 때 다시 백성을 다스리는 쪽으로 가지 않고 전적으로 벗에게 믿음을 받는 쪽만 신경써버리고,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때도 전적으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쪽만 신경써버려서 벗과의 관계는 완전히 방기하여 돌보지 않는다. 반드시 다방면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저 여러가지 단계들은 성인 역시 간략하게 선후를 구분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준[387] 것일 뿐이니 한 단계를 깨끗하게 해내고 나서야 다음 단계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대체 어느때 다 성취할 수 있겠나![388] 또, 기쁨과 노여움(喜怒)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옳다. 다만 역시 사안마다 돌봐야 하며, 기쁨과 노여움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389] '주역'의 손괘(損卦)에서는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는다(懲忿窒慾)'[390]고 하고, 익괘(益卦)에서는 '선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見善則遷, 有過則改)'[391]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말이 매우 많다. 성인은 온갓 방면(四頭八面)에 관하여 다 말하였으니, 하나하나 공을 들여 살펴야 한다. 일신상의 수많은 병통에 대하여 모두 방비해야 한다.

명작(明作)의 기록. (63세 이후)

  •  15:146 問: “知至了意便誠? 抑是方可做誠意工夫?”

질문: '앎이 지극해지면 의지는 바로 진실해집니까? 아니면 그제서야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曰: “也不能恁地說得. 這箇也在人. 一般人自便能如此. 一般人自當循序做. 但知至了, 意誠便易. 且如這一件事知得不當如此做, 末梢又卻如此做, 便是知得也未至. 若知得至時, 便決不如此. 如人旣知烏喙之不可食, 水火之不可蹈, 豈肯更試去食烏喙, 蹈水火! 若是知得未至時, 意決不能誠.”

대답: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것도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절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응당 순서에 따라 실천해야 한다. 단, 앎이 지극해지고나면 의지가 진실해지는 것은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다시 그렇게 하고 말았다면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앎이 지극해진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이미 오훼(烏喙)[392]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과 물구덩이와 불구덩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했을 때, 그가 어찌 다시 오훼를 한 번 먹어보고 물구덩이와 불구덩이를 한 번 밟아보려 하겠나?[393] 앎이 지극하지 못할 때 의지는 결코 진실해질 수 없다.

問: “知未至之前, 所謂愼獨, 亦不可忽否?”

질문: 앎이 지극해지기 전에도 이른바 '신독(愼獨)'[394]을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요?

曰: “也不能恁地說得. 規模合下皆當齊做. 然這裏只是說學之次序如此, 說得來快, 無恁地勞攘, 且當循此次序. 初間‘欲明明德於天下’時, 規模便要恁地了. 旣有恁地規模, 當有次序工夫; 旣有次序工夫, 自然有次序功效: ‘物格, 而后知至; 知至, 而后意誠; 意誠, 而后心正; 心正, 而后身修; 身修, 而后家齊; 家齊, 而后國治; 國治, 而后天下平.’ 只是就這規模恁地廣開去, 如破竹相似, 逐節恁地去.” 㝢(61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큰 틀(規模)에서는 원래부터 모두 일제히 해야 한다. 여기서는 배움의 순서가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요, 빠르게 설명하면 그렇게 번잡하지도 않으니 일단은 이 순서를 따라야 한다. 처음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다면'이라고 한 것은 큰 틀은 이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틀이 잡힌 다음에는 반드시 순서에 따른 공부가 있어야 한다. 순서에 따른 공부가 있으면 자연히 순서에 따른 효과가 있다.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며,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며,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이며, 몸이 닦인 이후에 집안이 다스려지며,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395] 단지 이 큰 구도(規模) 속에서 이렇게 확장해 나가야 한다. 마치 대나무를 쪼개듯이 각각의 마디를 따라 이렇게 해나가야 한다.[396]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147 說大學次序, 曰: “致知·格物, 是窮此理; 誠意·正心·修身, 是體此理; 齊家·治國·平天下, 只是推此理. 要做三節看.” 雉(미상).

'대학'의 순서를 설명함: 치지와 격물은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성의, 정심, 수신은 이치를 체득(體)하는 것이며, 제가, 치국, 평천하는 이치를 미루어 확장하는(推) 것이다.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치(雉)의 기록.

  •  15:148 大學一篇卻是有兩箇大節目: 物格·知至是一箇, 誠意·修身是一箇. 才過此二關了, 則便可直行將去. 泳(66때).

'대학'에는 모두 두 개의 중요한 단계가 있다. 물격지지(物格知至)가 하나이고, 성의수신(誠意修身)이 하나이다. 이 두 관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일직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149 物格·知至, 是一截事; 意誠·心正·身修, 是一截事; 家齊·國治·天下平, 又是一截事. 自知至交誠意, 又是一箇過接關子; 自修身交齊家, 又是一箇過接關子. 賀孫(62이후).

물격지지(物格知至)가 하나의 덩어리이고, 의성(意誠)과 심정(心正)과 신수(身修)가 또 하나의 덩어리이며, 가제(家齊)와 국치(國治)와 천하평(天下平)이 또 하나의 덩어리이다. 지지(知至)와 성의(誠意)의 교차점이 두 영역이 연접한 관문(過接關子)[397]이고, 수신(修身)에서 제가(齊家)의 교차점이 또 두 영역이 연접한 또 하나의 관문이다.[398]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50 自格物至修身, 自淺以及深; 自齊家至平天下, 自內以及外. 敬仲(62때).

격물에서 수신까지는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요,[399] 제가에서 평천하까지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경중(敬仲)의 기록. (62세)

  •  15:151 或問: “格物·致知, 到貫通處, 方能分別取舍. 初間亦未嘗不如此, 但較生澀勉强否?”

누군가의 질문: 격물과 치지는 관통하는 경지(貫通處)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시비선악을) 취사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공부의 초기에도 이렇게 (취사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상대적으로 생소하여 애써가며 해야하는 것 뿐이지 않습니까[400]?

曰: “格物時是窮盡事物之理, 這方是區處理會. 到得知至時, 卻已自有箇主宰, 會去分別取舍. 初間或只見得表, 不見得裏; 只見得粗, 不見得精. 到知至時, 方知得到; 能知得到, 方會意誠, 可者必爲, 不可者決不肯爲. 到心正, 則胸中無些子私蔽. 洞然光明正大, 截然有主而不亂, 此身便修, 家便齊, 國便治, 而天下可平.” 賀孫(62이후).

대답: '격물'의 단계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때이니, 이는 곧 (사물과 사태에 대하여) 처리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지지(知至)'의 단계에 이르면 이미 주체성(主宰)이 생겨 취사분별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간혹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거나, 거친 스케치만 보고 정밀한 디테일은 보지 못한다. 앎이 지극해짐(知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겉과 속, 거침과 정밀함을 모두) 알게 된다. 알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의지가 성실해질 수 있어서 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은 결코 하지 않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되면(心正) 가슴 속을 뒤덮은(蔽) 사사로움이 조금도 없어서 투명하게(洞然) 광명정대(光明正大)하며,[401] 칼로 자른듯이(截然) 주관이 있어(有主) 혼란스럽지 않게 된다.[402] 이에 몸이 닦이고, 집안이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해질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52 格物·致知, 比治國·平天下, 其事似小. 然打不透, 則病痛卻大, 無進步處.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這裏縱有未盡處, 病痛卻小. 格物·致知, 如“知及之”; 正心·誠意, 如“仁能守之”. 到得“動之不以禮”處, 只是小小未盡善. 蓋卿(65때).

격물과 치지는 치국과 평천하에 비하면 그 일이 작은 것 같지만, 투철하게 해내지 못하면 그 병통은 오히려 커서 진보할 수 없다. 치국과 평천하는 비록 스케일(規模)은 크지만 이 단계에서 조금 미진하더라도 그 병통이 오히려 작다. 격물과 치지는 '앎이 이른 것(知及之)'과 같고, 정심과 성의는 '인으로 지킬 수 있다(仁能守之)'와 같다.[403] '예로써 움직이지 않는다'[404]의 경우는 단지 선(善)하지 못한 부분이 소소하게 있다는 것뿐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方子錄云: “格物·誠意, 其事似乎小. 然若打不透, 卻是大病痛.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若有未到處, 其病卻小, 蓋前面大本領已自正了. 學者若做到物格·知至處, 此是十分以上底人.”>

<방자(方子)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함: 격물과 성의는 그 일이 작은 것 같지만 투철하게 해내지 못하면 그 병통은 오히려 크다. 치국과 평천하는 비록 스케일은 크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병통이 오히려 작다. 이는 (팔조목의) 앞쪽에 위치한 근본적인 부분(大本領)에서 이미 올바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가 만약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는' 데까지 이르렀으면 그는 이미 100%를 초과한(十分以上)[405] 인물이다.>

  •  15:153 問: “看來大學自格物至平天下, 凡八事, 而心是在當中, 擔著兩下者. 前面格物·致知·誠意, 是理會箇心; 後面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心之功用.”

질문: 제 생각에 '대학'은 격물에서 평천하까지 이르기까지 일이 모두 여덟가지가 있는데 마음(心)이 그 한가운데에 있으면서(當中) (앞과 뒤) 양쪽(兩下)[406]을 모두 지탱하고 있습니다. 앞쪽의 격물, 치지, 성의는 마음을 헤아리는(理會) 것이고, 뒤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마음의 효과(功用)입니다.[407]

曰: “據他本經, 去修身上截斷. 然身亦是心主之.” 士毅(미상). 

대답: 대학의 본경(本經)[408]에서는 수신(修身)을 기준으로 자른다.[409] 그러나 몸 또한 마음이 주재하는 것이다.

사의(士毅)의 기록.

  •  15:154 自明明德至於治國·平天下, 如九層寶塔, 自下至上, 只是一箇塔心. 四面雖有許多層, 其實只是一箇心. 明德·正心·誠意·修身, 以至治國·平天下, 雖有許多節次, 其實只是一理. 須逐一從前面看來, 看後面, 又推前面去. 故曰“知至而後意誠, 意誠而后心正”也. 子蒙(미상).

명명덕에서 치국, 평천하까지는 마치 아홉 층의 보탑(九層寶塔)과 같으니,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그저 탑의 중심축(心) 하나가 있을 뿐이다. 외면(四面)에 제아무리 층이 많이 있어도 실제로는 중심축 하나 뿐이다. 명덕, 정심, 성의, 수신에서 치국, 평천하에 이르기까지 제아무리 단계가 많이 있어도 실제로는 '이치(理)' 하나 뿐이다. 반드시 하나하나 앞에서부터 이해해나가야 한다. 뒷부분에 대한 이해도 결국 앞부분을 확장해(推)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고,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했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155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至‘致知在格物’, 詳其文勢, 似皆是有爲而後爲者.”

질문: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에서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까지, 문장의 흐름(文勢)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무엇을 한 이후에 무엇을 한다는 것 같습니다.[410]

曰: “皆是合當爲者. 經文旣自明德說至新民, 止於至善, 下文又卻反覆明辨, 以見正人者必先正己. 孟子曰: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 亦是此意.” 道夫(60이후).

대답: 모두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다. 경문에서 이미 명덕에서 신민과 지어지선까지 설명해놓고[411] 그 아래 문장에서 다시 반복해서 분명히 변론하여[412] 남을 바로잡으려는(正人) 이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바로잡아야(正己) 함을 보여주었다. 맹자가 말하길,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안에 있고, 집안의 근본은 자기 일신에 있다'[413]고 했다. 이것도 역시 같은 취지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56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 至‘致知在格物’, 向疑其似於爲人. 今觀之, 大不然. 蓋大人, 以天下爲度者也. 天下苟有一夫不被其澤, 則於吾心爲有慊; 而吾身於是八者有一毫不盡, 則亦何以明明德於天下耶! 夫如是, 則凡其所爲, 雖若爲人, 其實則亦爲己而已.”

질문: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에서 '치지가 격물에 있다'까지, 전에는 그것이 위인지학(爲人)[414] 같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인(大人)은 (생각의) 기준(度)이 천하인 사람입니다.[415] (대인은)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마음이 만족스럽지 못합니다(慊). 그런데 자신의 일신에 이 여덟 가지 조목 가운데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히 해내지 못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명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이와 같다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비록 위인지학(爲人)같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역시 위기지학(爲己)일 뿐입니다.[416]

先生曰: “爲其職分之所當爲也.” 道夫(60이후).

선생의 대답: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주자어류 15-156 그림

[417]

  1. 조숙원(曹叔遠). 기원(器遠)은 그의 자(字).
  2. 이 부분은 주자어류휘교의 교감을 따라 便決定著로 해석하였다
  3. 맹자4A:2
  4. 춘추좌씨전 선공 12년
  5. 예기 내칙
  6. 곧, 활동할 때나 혼자 묵상할 때나
  7. 이 부분은 문법적으로 애매하다. 치지는 동작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본심지지는 성질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지각하는 마음의 성질을 말한다.지금 본문처럼 쓰면 '동작=성질'과 같이 되므로 말이 순조롭지 않다. 차라리 '치지의 지(知)라는 것은 본심지지를 말한다'정도였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 조목 전체가 불교적 메타포와 어휘가 농후하지만 '본심'은 특히나 불교적 표현이다. 주희는 이 표현을 평소에 잘 쓰지 않는다. '본심지지'의 경우 어떤 내용성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능력 그 자체를 말한다. 말하자면 거울의 성질 가운데 밝게 비추고 투영하는 성질 정도를 지시하는 말이다.
  8. 주희가 격을 이렇게 풀이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아래 15:9에서처럼 '이르다'로 풀이한다.
  9. 궁(窮)은 대개 '궁구하다'라고 풀이하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다. 끝까지 탐구하고 파고들어 모조리 알고자하는 행위가 '궁구'이다. 여기서는 '파고들다'나 '탐구하다' 정도로 번역하겠다.
  10. 현실의 여러 사태와 사물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아 그것에 내재한 모종의 패턴을 파악해서 이해하는 것까지가 '격'이다. 그래서 격물의 '격'은 이르다, 탐구하다, 파악하다, 이해하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번역어들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고, 필요할 경우 '격하다'로도 풀이하겠다.
  11. 상서 순전
  12. 육아로 비유하자면 애를 낳기 전에 육아의 도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를 낳은 후에 탐구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13. 논어 1:4. '증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불충했는가? 붕우(朋友)와 더불어 사귐에 신실하지 못했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14. 오품(五品)은 다섯 가지 인간관계, 곧 오륜을 말한다. 상서 순전을 보라.
  15. 방법을 묻는 것인지 이유를 묻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16. 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장(將)은 소학집해에 의하면 받든다는 뜻. 광구(匡救)는 바로잡아 제지한다는 뜻이다. 일역판에서는 효경의 주석서 하나를 인용하여 장(將)을 행(行)의 뜻으로 풀이했다.
  17. 후한서 오한(吳漢)전. 장(仗)은 붙잡는다는 뜻.
  18. 마지막 문장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서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시 강론하던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빗댄 것일 수도 있다. 일역판에서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는 구체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풀이했다.
  19. 맹자 2A:6
  20. 감히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21. '일둔'은 한 차례, 한 번 등의 뜻이다. 주희는 종종 음식을 한 술 먹는 것을 '일둔'이라고 형용한다. 124:13 참조.
  22. 大胚模에 대해서는 14:6 참조.
  23. 선선(旋旋)은 차례차례 순서대로 조금씩 함을 말한다.
  24. 여기서 해(解)는 can과 같다.
  25. 중용 20장.
  26. 논어 19:22
  27. 직전 인용이 공자의 배움의 과정에 대한 것이므로 여기서 성인은 공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옳다.
  28. 일역판에서는 부정 傅定(자는 敬子)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15:21에서 질문한 자연(子淵)일 가능성도 있다.
  29. 마음에서 발현한 것을 면밀히 살피는 방식의 공부법은 당시 호남의 여러 학자들(예컨대 호굉)이 주장한 것으로 이른바 호상학파의 찰식단예(察識端倪)설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대한 이승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발찰식' 또는 '찰식단예'란 일상의 마음 씀씀이 가운데서 현행하는 의식의 흐름을 면밀하게 관찰하다가 '측은지심'과 같은 본성(性)의 실마리(端倪)가 문득 발현할 때 이를 즉각 포착하려는 자기직관의 수행법이다. '이발찰식' 또는 '찰식단예'의 수양법은 성품을 '기르는 일(涵養)'보다 본성을 '찰식'하는 일에 방법론적 우선성을 두는 전형적인 '선찰식후함양'의 수행법이다. '성품 기르기(涵養)'보다 '마음 관찰하기(察識)'를 중시하는 호상학의 수행법은 양구산과 사상채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이들 수행법은 다시 스승인 정명도의 '식인(識仁)'설에 근거를 두고 불교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이승환, 2009, "찰식에서 함양으로: 호상학의 이발찰식 수행법에 대한 주자의 비판")
  30. 회통은 융회관통(融會貫通)이다. 서로 달라 보였던 것이 녹아서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막혀 있던 것이 꿰뚫려 하나가 되는 지적 경험을 말한다.
  31. 현상적으로 우리가 보고 발견하는 인간세계와 자연세계의 패턴들은 그 양상이 다양하다. 그러나 그러한 패턴들이 공유하고 있는 패턴성 그 자체는 하나이다. 패턴의 이러한 다양성과 통일성을 주희는 자주 '리일분수(理一分殊)'라고 표현했다. '리지일본처(理之一本處)'는 패턴의 통일성, 곧 '리일'을 말한다.
  32. 사군사친, 종고갱장, 진퇴읍손에 내재한 의미를 말한다.
  33. 예수(禮數)는 숫자로 규정된 의식(ritual)의 절차를 말한다. 절을 두 번 하고 술을 세 번 따르는 등이 그것이다. 흔히 쓰는 '예절(禮節)'이란 말의 '절' 역시 이런 종류의 의식을 규정하는 절차와 단계, 참여자의 위아래를 나누는 등급 따위를 의미하므로 '예수'와 통한다. 일역판에서 예수를 예절로 번역한 것을 참조하여 따랐다.
  34. 주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1. 먼저 어려서 몸으로 익혀서 습관화하고 2. 나중에 머리로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캐묻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원하는 만큼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1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의 과정이 일종의 명상수련에 해당하는 '경(敬)'공부이다. '격물'은 '캐묻고 이해하는' 2번 과정이다.
  35. 예절을 굳게 지키고 실천하는 진지함과 엄격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36. 디테일은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
  37. 거처공, 집사경(居處恭, 執事敬)은 논어 19:19
  38. 하학과 상달을 말한다.
  39. 적연부동과 감이수통을 말한다.
  40. 맹자 7A:33
  41. 주역 곤괘 문언전.
  42. 해(解)는 can의 의미.
  43. 구오대사 권15 양서(梁書) 한건(韓建)
  44. 우, 탕, 문무를 말한다. 문왕과 무왕을 하나씩 세면 네 왕이지만 어째서인지 맹자는 셋으로 셌다.
  45. 맹자 4B:20. 우는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훌륭한 말을 좋아했다. 탕은 중도를 잡았으며 어진이를 세우되 그 부류를 따지지 않았다. 문왕은 백성 보기를 자기 몸의 상처 보듯 하였으며 도를 소망하면서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무왕은 가까이 있는 이를 편애하지 않고 멀리 있는 이를 잊지 않았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세 왕의 네 가지 일'이다.
  46. 대학 전7장.
  47. '著'는 '須著'의 뜻이다.
  48. 일역판의 각주에 의하면 이는 양팔저울로 무게를 재는 경우를 시각화해서 이해해야 한다. 큰 물건을 저울의 한쪽에 올려두면 다른 쪽 팔에는 좀 무거운 무게추를 더해주어야 균형이 맞다. 작은 물건을 올릴 경우엔 무게추를 덜어주어야 균형이 맞다.
  49. 대학 전9장.
  50. 10:31의 유사한 구절을 참조하라.
  51. 규모(規模)는 틀, 구조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미리 이러이러한 틀을 잡아서 한계선을 정해둔다는 뜻으로 쓰였으므로 이렇게 의역하였다.
  52. 본문은 반도(半途)이나 인용 출처인 예기 표기(表記) 쪽은 '중도(中道)'이다.
  53. '俛'에 관해서는 14:59 참조.
  54. 예기 표기(表記)
  55. 맹자 4B:28
  56. 공중에 붕 떴다는 말은 공리공담, 실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14:44에 유사한 구문이 있으니 참조하라.
  57. 주례 고공기
  58. 실체(實體)는 문자 그대로 옮길 수 없다.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ousia)'의 번역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주자어류에서의 실체는 경험적으로 검증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치를 말한다. 한편 요즘 세간에서 종종 사용하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표현에서 '실체'는 우시아보다는 주자어류에서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운 것처럼 들린다.
  59. 중용 제 4장.
  60. 직전 조목 참조.
  61. '절(切)'은 어떤 말이 무척 구체적이고 실감나서 우리 피부에 딱 와 닿는 느낌을 말한다.
  62. 주희에 의하면 격물은 각각의 사건과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이치를 철두철미하게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사람들의 탐구는 방향이 틀렸다기 보다는 그 정도가 못미쳤다는 것이다.
  63. 남송의 남검주.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연평구 즈음으로 복건 한가운데에 있다.
  64. 남송의 건녕부. 치소가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소속인 건구시(建瓯市)에 있다.
  65. 남송 건녕부 건양현. 건녕부 치소의 북쪽에 있다.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건양구. 남검주의 치소에서부터 걸어서 북상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먼저 도달하고, 여기서 더 북상하면 건양현에 도달한다. 물론 남검주의 서북쪽 끄트머리에서 출발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도달하기 전에 건양현 경내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역시 하나의 비유로서는 부자연스럽다. 건양을 '건녕'이라고 했으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66. 오늘날의 표현으로 치환하자면, 현실을 논하면 이론은 자연히 그 논의 속에 있지만 이론을 논하다보면 현실을 때로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67. 공동은 속이 빈 것이다. 이론만 있지 실질적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무계는 계고(稽考)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뿔달린 토끼나 날개달린 말처럼 현실에서 찾아내어 입증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68. 유(由)는 '따르다', 역(亦)은 '만일'로 풀었다.
  69. 착수할 지점,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70. 논어 19:19
  71. 논어15:5
  72. 맹자 1A:7
  73.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맹자 1B:5, 용맹을 좋아하는 일은 1B:3을 보라.
  74. 맹자 1B:1
  75. 주희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이란 우리의 마음이 발동하기 전의 상태(未發)를 말한다.
  76. 원칙이다.
  77. 상황윤리이다.
  78. 맹자 5A:2
  79. 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15:18 참조.
  80. 주역 감괘 육사효. 약(約)은 상대방을 속박하는 말이다. 이러이러한 것은 하지 않고 저러저러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등의 내용으로 군주를 제약하는 말이다. 문과 창문은 각각 큰길과 샛길을 뜻한다. 군주에게 윤리적 처방을 들일 때 정당하게 하는 것이 물론 좋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회를 틈타 측면으로 집어넣는 유도리를 발휘하는 게 좋다는 의미이다.
  81. 원칙을 말한다.
  82. 논어 14:4. 위(危)는 높음, 손(孫)은 낮음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도 행실도 높게 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주희는 이에 대하여 군자는 행실에 있어서는 타협할 수 없지만 무도한 상황에서 타협없이 말하면 위험하므로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83. 주희는 이를 상황윤리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이다. 일역판에서는 이것을 '원칙'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처럼 풀었는데 적절하지 않다.
  84. 이정의 제자 여대림이다.
  85. 이정의 제자 양시.
  86. 여대림이 희노애락의 미발(未發)의 영역에서 '중(中)'을 찾아서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구중(求中)'론이라고 한다. '큰 근본이 되는 지점(大本處)'이란 중용의 한 구절에서 '중(中)'을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지칭한 것을 암시한다. 이정유서 18:82를 보라. 양시 역시 마음의 내면에 초월적 영역을 설정해두고 그곳을 향해 깊이 침잠한 끝에 극적으로 어떠한 경지로 도약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주희가 중용혹문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87. 과(胯)는 개(個)와 같다. 수량사이다.
  88. 일역판의 주석이 자세하니 참조하라. 어류 및 여러 다른 문헌에서 공섬(龔剡), 공섬백(龔剡伯), 공염(龔郯), 공염백(龔郯伯)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89. 대학장구 격물보망장을 참조하라.
  90. 맹자 7A:15. 어류 14:92를 참조하라.
  91. 공자가어 왕언해
  92. 맹자 7A:15. 직전 조목 참조.
  93. 임금과 신하가 '물'이고 인과 경이 그 물에 내재한 도리이다. 사사물물에서 그것에 내재한 도리를 찾는 것이 격물이다. 14:104 참조.
  94. 황의강의 형 황의용(黃義勇).
  95. 개잔(開剗)은 작은 구멍을 날카로운 물건으로 깎고 파내어 크게 만드는 것이다.
  96. 의지에 관해서는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
  97. 의지(意)를 말한다.
  98. 이름은 자환(自寰)이다.
  99. 일역판은 고정연원록 하권 20의 구문을 근거로 格物理至徹底處 앞에 格物是 세 글자를 더하여 번역했다.
  100. 조선고사본에는 이 자리에 '일설(一說)' 두 글자가 있다.
  101. 사람이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지극히 선한, 최선의 지점을 말한다.
  102. 대학 본문의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을 풀어서 말한 것이다. 15:140을 참조하라.
  103. 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따라서 주희의 경학체계 안에서 구방심 공부는 '거경(居敬)' 공부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류 59:156, 160 등을 보면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제자들이 이미 질문하고 있다. 곽신환 역주 주자언론동이고(2002)의 137쪽을 보라. 高海波, "试论朱子对《孟子》「求放心」句的诠释"(2020)을 참조하라.
  104. 논어 5:5
  105. 조선고사본에서는 '治平'를 '持'로 적었다.
  106. 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
  107. 이부분의 교감은 의견이 갈린다. 현행본의 편자인 여정덕은 이 두 글자를 빼고 '평(平)' 하나만 남기는 쪽을 추천했다. 홍계희가 편집한 조선정판본은 '평(平)'을 작은 글자로 썼다. 이 경우 '평'은 그 바로 앞의 '치(治)'를 평성(平聲)으로 읽으라는 음주(音注)가 된다. 이의철의 고문해의는 조선정판본의 교감을 비판하였으나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주자어류휘교 쪽은 성화본을 추종하여 '평'을 주석으로 보았다. 일역판은 조선고사본을 따라 '수치평'을 '수지(修持)'로 바꿔서 해석했다. 어느쪽이 옳은지 알 수 없기에 여기서는 우선 저본 그대로 글자를 하나하나 풀어두었다.
  108. 이정유서 18:85. 이정유서와 비교해보면 글자에 다소 출입이 있다. 정이는 여기서 나의 통제를 벗어나서 마음이 제멋대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불안정한 상태와 내 통제에 따라 마음이 활발히 생각을 하기도 하고 평안히 안정되기도 하는 상태를 비교하고 있다.
  109. 晌은 수량사이다.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爭은 다투는 것이다. 촌각을 다투어 = 순식간에.
  110. 내가 사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나를 다루게 된다는 뜻이다.
  111. 도덕적인 앎을 말한다.
  112. '요당(要當)'은 '...해야한다.'
  113. 주희는 종종 제자들을 이렇게 불렀다.
  114. 여기서는 사단을 말한다. 사단 역시 모두 '....한 마음(心)'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115. 대학 전 4장에서 공자의 송사판결을 두고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한다(此謂知本)'라고 한 것을 참조하라.
  116. 중용 제 20장에 나오는 공부의 다섯 항목이다. 앞의 네 가지(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고)는 모두 이지적인 행위, 역행 하나만 몸소 실천하는 행위이다. 굳이 계산하자면 '치지'가 전체 공부의 80%를 차지하는 셈이다.
  117. 대학 전3장에서 열거한 다섯 덕목이다.
  118. 부친과 아들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는(e.g. 부자유친) 모친과 자녀, 부친과 모친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도 포함한다는 뜻이다.
  119. 이상 논어 7:6.
  120. 일역판에서는 광격(匡格)을 광곽(匡郭)과 같은 것이라고 풀었다. 그러나 현대중국어에서 광격(框格)이 네모난 프레임, 격자 등을 의미한다. '격(格)'자를 '곽(郭)'자로 임의로 바꿔서 풀이하는 것은 지나치다. 다만, '거어덕(據於德)'의 '거(據)'는 군사가 성곽에 의거(依據)하고 점거(占據)하여 버틴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한 의미를 살린다면 광격자(匡格子)는 성곽이나 울타리를 지시하는 말일 수도 있다.
  121. 토(討)는 물건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사올 수도 있고 어디서 주워올 수도 있지만 아무튼 없던 것을 찾아서 가져왔으면 모두 '토'이다. 14:161을 참조하라.
  122. 덕을 굳게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택할 수 있는 행위의 선택지들 가운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한 후 해야 할 것의 영역 안에 꾸준히 머무르며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주희는 이렇게 지와 덕을 마치 공격과 방어인 것처럼 형용할 때가 있는데, 예컨대 논어15:32의 "지가 미쳐도 인이 지키지 못하면 얻어도 반드시 잃는다(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에 대하여 해설한 14:109를 보라.
  123. 거친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세계, 일상의 공간에 속한다는 뜻이다. 정밀하다는 것은 질료적 감각이 없는 형이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124. 형이하의 세계를 관찰하고 파고들어 그것에 내재한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이 격물치지이다. 그러므로 하등의 세계에서 상등의 진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25. 아마도 조숙원(曹叔遠)인 듯하다. 자는 기원(器遠).
  126. 조선고사본에서는 '萬事'가 없다.
  127. 한 마음을 말한다.
  128. 인적사항은 자세하지 않다. 61:81에도 등장한다.
  129. 심중에서 어떤 깨달음에 이르고 나면 세상 만물 만사의 이치를 모두 알게 된다는 주장이다.
  130. 만물과의 구체적 접촉을 통한 앎의 확장을 의미한다.
  131. 물리와 도리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옮기자면 각각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다.
  132. 팔조목 가운데 치지와 성의를 수련한 결과를 말한다. 앎을 지극히 하는 공부를 하여 앎이 지극해진 상태,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하여 의지가 진실해진 상태이다. 의지에 관해서는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
  133. 양웅의 법언(法言) 문신(問神)편의 한 구절이다. 색(索)은 수색하다, 지(至)는 지극한 지점이다.
  134. 조선정판본에서는 '止'를 '至'로 썼다.
  135. 이 표현에 관해서는 직전 15:58을 보라.
  136. 조선정판본을 따르자면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知至)'이다. 애초에 질문자의 질문이 지지(知至)였음을 감안하면 조선정판본의 기록에도 일리가 있다.
  137. 성화본과 조선정판본에는 이 자리에 '왈(曰)'자가 있어서 여기서부터 주희의 대답임을 표시하였다. 지록에서는 '왈' 대신 '선생운(先生云)'이라고 적혀있다.
  138. '구분구리(九分九釐)'의 분과 리는 오늘날 '할푼리'라고 할 때의 푼과 리이다. 오늘날은 할이 1/10, 푼이 1/100, 리가 1/1000이지만 주희 당시에는 푼이 1/10, 리가 1/100이었다.
  139. 어류의 많은 조목들에서 '在這裏'는 '이 안쪽', '내면' 등을 의미한다. 일역판은 미우라 쿠니오의 선행연구에 따라 이 표현을 단순한 강조표현으로 풀이하고 있으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140. 예컨대,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도리의 경우, 왜 사랑해야 하는지 알아야(격물치지)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중단없이(성의정심)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어떠한 도리를 열심히 실천하려고만 한다면(격물치지 없는 성의정심) 이는 '억지로 눌러두는' 것에 불과하다.
  141. 서림(徐琳)의 자(字)이다.
  142. 격물은 구체적인 사태나 사물에 1)접근해서 2)자세히 관찰하며 생각하고 3)그러다 이치를 발견하고 4)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발견의 수준을 고도화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궁리(=이치를 탐구함)는 2번에서 4번까지의 의미로 쓰일 뿐 1번의 뉘앙스는 거의 없다. 주희는 '격물'이라는 말을 다소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한다. 1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4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고 3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1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는 식이다. 이 조목에서는 격물을 1번 뜻으로 사용했지만 15:59나 15:60에서는 4번 뜻을 강조하고 있다.
  143.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이 뜻이 꽤 타당합니다(此意頗切當)'가 더 있다.
  144. 격물을 1번~2번 정도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145. 조선고사본을 따르자면 이 단락 전부가 인용이며 마지막에 '이 뜻이 꽤 타당합니다'라고 평가하는 형태가 된다.
  146. 고문해의의 해석을 따랐다. 원소가 격물과 궁리(=치지) 사이의 관계를 이상하게 설정한 것에 화가 난 주희가 '그런 식으로는 치지가 격물에 달려있다는 경문을 해석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는 장차, '작심'은 어떻게, '합살'은 매조지함이다. 합살은 본래 악곡의 연주를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39:2에서 '如何合殺'이라고 말한 부분을 참조하라.
  147. 격물을 4번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148. 직전 질문에서 원소는 '격'을 1~2번 뜻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물을 모두 '격'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앎이 지극해지지는 않는다. 주희는 격물을 4번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대학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격물의 완료가 곧바로 앎의 지극함을 의미한다.
  149. 정가학(鄭可學)의 자이다. 조선고사본에 따라 본 조목의 기록자를 정가학으로 간주하고 이와 같이 번역했다.
  150. 강묵(江默).
  151. 회암집 권 44의 답강덕공 제 2서를 말한다. 此所謂‘格物而至於物, 則物理盡’者也. 物理皆盡, 則吾之知識廓然貫通, 無有蔽礙, 而意無不誠, 心無不正矣. 此大學本經之意, 而程子之說然也. 其宏綱實用, 固已洞然無可疑者 : 而微細之間, 主賓次第․文義訓詁詳密精當, 亦無一毫之不合. 今不深考, 而必欲訓致知以․窮理’, 則於主賓之分有所末安 : 知者吾心之知, 理者事物之理. 以此知彼, 自有主賓之辨, 不當以此字訓彼字也. 訓格物以‘接物’, 則於究極之功有所未明. 人莫不與物接, 但或徒接而不求其理, 或粗求而不究其極, 是以雖與物接, 而不熊知其理之所以然與其所當然也. 今曰一與物接而理無不窮, 則亦太輕易矣. 蓋特出於聞聲悟道․見色明心之餘論, 而非吾之所謂窮理者, 固未可同年而語也. 且考之他書, ‘格’字亦無訓‘接’者. 以義理言之則不通, 以訓詁考之則不合, 以功用求之則又無可下手之實地, 竊意聖人之言必不如是之差殊疎略, 以病後世之學者也.
  152. 격물을 1번 뜻으로 푼 것이다.
  153.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기록자를 '可學'으로 적시하고 있다.
  154.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글자가 없다.
  155.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耶'가 더 있다.
  156.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易'이 더 있다.
  157. 조선고사본은 '具'를 '其'로 썼다.
  158. 조선고사본은 '略略恁地'가 없고 '但'이 있다.
  159. 조선고사본에서는 '用'을 '要'로 썼다.
  160. 조선고사본에서는 '沒'을 '不'로 썼다.
  161. 기록자명의 경우 조선고사본은 淳, 성화본과 조선정판본에서는 '㝢',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寅'이다.
  162. 디테일은 몰라도 구조적 측면에서는 이미 다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비근한 번역어는 아마도 '와꾸'일 것이다.
  163. 중용 제12장.
  164. 주희는 이 '지극'을 문제의 핵심부나 산의 정상처럼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나중에 나오는 물건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자질구레하고 지엽적인 것들로 파악했다. 63:60을 참조하라.
  165. 반시거의 자(字)이다.
  166. 격물이 완성된 결과가 물격이다.
  167.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 여정덕이 붙인 주석일 것이다. 조선정판본에서는 물격을 '격물(格物)'이라고 적고 있어 다른 모든 판본과 다르다.
  168. 바깥쪽, 안쪽, 달아남 등의 키워드는 15:28, 66, 67, 69에서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15:66을 참고하라.
  169.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첫 구문이다. 주희는 이 부분을 '극 없는 위대한 극'으로 풀었다. 태극은 세계를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이치(理)인데, 그것이 이치라는 것은 형체와 질감 없이 순전히 이론적인 존재, 곧 형이상의 존재라는 뜻이다. 태극의 이러한 형이상자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표현이 바로 '무극'이다. 주희의 태극론에 관해서는 주광호(2020) 제 13장을 참조하라.
  170. 이치를 알고자하는 '안쪽'의 노력(즉, 인식)과 여러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려는 '바깥쪽'의 노력(즉, 실천) 양쪽이 모두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15:28, 15:69를 참조하라. 아래 15:67도 같은 내용이다. '안쪽과 바깥쪽의 합일(合內外)'이라는 표현은 이정유서 11:18이 유명하다. '경건함으로 안쪽을 곧게하고 의로움으로 바깥쪽을 바르게 하니 안쪽과 바깥쪽을 합일하는 도리이다(敬以直內, 義以方外, 合內外之道也.)'
  171. 산의 남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를 말한다.
  172. 산의 북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
  173. 주례(周禮) 지관(地官) 산우(山虞)
  174. 이것이 안쪽이고 가까운 곳이고 거친 것이다.
  175. 이것이 바깥쪽이고 먼 곳이고 정밀한 것이다. 출전은 맹자 1A:7
  176. 이치를 알고자하는 노력의 끝에 이치를 알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이치에 맞게 사태에 대처하게 된다. 말하자면 '안쪽'은 독립변수, '바깥쪽'은 종속변수이다.
  177. 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주광호(2020, 482)도 이 부분을 번역하고 유려하게 해설하고 있으니 참고하라.
  178. 직전 조목 참조.
  179. 여대림(呂大臨)이 극기명(克己銘)에서 만물일체를 주장한 부분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비록 상호 독립된 개체인 것처럼 보여도 그 구성물질은 모두 우주로부터 골고루 나누어받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실은 한 몸(同體)이다.
  180. 직전 조목 참조. 글자에는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
  181. 예기 왕제
  182. 지지(知至)의 지(至)는 '지극하다'라고도 풀지만 '이르렀다'고도 풀이한다. 지극(至極)이라는 말부터가 극점에 이르렀다는 뜻이니 사실 '지극하다'와 '이르렀다'는 서로 통한다. 본고에서는 문맥에 따라 두 번역어를 바꿔 쓰고 있다.
  183. 맹자 4A:11
  184. 안쪽과 바깥쪽에 관해서는 앞선 15:66과 67을 참조하라.
  185. 직전 15:70을 참조하라.
  186. 대학의 본문을 보면 팔조목을 순서대로 나열한 후 그것을 도치시켜서 역순으로 나열한다. 예컨대 격물(格物)에 대해서는 물격(物格)이라고 하고 성의(誠意)에 대해서는 의성(意誠)이라고 하는 식이다. 유독 치지(致知)만 지치(知致)가 아니라 지지(知至)라고 적혀있다.
  187. 이 파자해는 무척 이상하다. 우선 치(致)의 우변이 인(人)이라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주희에게 어떤 근거가 있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
  188. 14:80 참조.
  189. 고수나 달인의 도드라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일을 숨쉬듯이 평이하게 해낸다는 것이다. 온갖 애를 써가며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괴인들보다 평범하게 주먹 한 번 휙 휘두르는 사이타마가 훨씬 강한 것으로 묘사되는 '원펀맨'의 장면들이나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1년간의 훈련을 거치고 나온 손오공과 손오반이 초사이어인 상태를 평이하고 차분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묘사한 '드래곤볼'을 참조하라.
  190. 대학 전10장. 팔조목의 마지막 단계인 평천하(平天下)를 해설할 적에 평천하의 주체인 '윗사람(上)'이 마땅히 지녀야할 자세로 거론한다. 혈구는 곱자와 직각자이다. 물건의 치수를 잴 때 사용하는 툴이다. 윗사람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심사를 측정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심사를 헤아려(혈구) 통치하면 평천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1. 전 10장. 윗사람이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고 그 도덕성이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한 것이라면 아랫사람들 역시 윗사람과 똑같은 심사를 가진 사람이니만큼 금방 그것을 따라하여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윗사람이 자기 집안 노인을 잘 모시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효심이 흥하고 ......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서로를 져버리지 않는 마음이 흥한다.'
  192. 이 부분은 혈구를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평균제일(平均齊一)'이라고 한 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균질화라기보다는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간격이 균일해진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내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들면 나는 내 아랫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위에서 아래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위-아래' 각 마디가 모두 똑같이 '상호존중'이라는 동일한 간격으로 정렬될 것이다. 전 10장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을 참조하라.
  193. 주역 계사상전 1의 '건이 (세상의) 큰 시작을 맡고 곤은 만물을 완성시킨다(乾知大始, 坤作成物)'를 말한다. 주희는 이 '지(知)'를 담당하고 주관한다는 뜻으로 풀었으나 여기서 정중리는 '알다'라는 뜻으로 이해한 듯하다. 74:21 참조.
  194. 조선정판본은 '지(至)'가 '지(止)'여야 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주희는 여기서 주역 계사전의 '극심'과 '연기'라는 개념쌍을 대학의 '지지'와 '능려'라는 개념쌍과 비교하고 있는데 대학 본문의 체제상 '능려'와 짝이 되는 것은 '지지(知至)'가 아니라 '지지(知止)'이기 때문이다. 번역자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이 조목은 14:163과 사실상 같으니 함께 놓고 비교하는 것이 좋다.
  195. 주역 계사상전. 어류 14:146과 163을 참조하라.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196.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197. 사람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알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定), 안정되면 조용해지고(靜), 조용해지면 편안해지고(安), 편안해지면 심사숙고할 수 있게 되고(慮), 심사숙고하면 실제로 그 최선의 지점을 찾아 머물게 된다(得). 대학 경문에서 '멈출 곳을 안(知止)' 다음 일어나는 일련의 연쇄반응을 이렇게 묘사했다.
  198. 팔조목의 과정이다. 대학 경문에서 묘사한 인식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팔조목에서 묘사한 과정이 서로 별개의 프로세스라는 말이다. 주희는 이 두 프로세스를 나란히 놓고 이쪽의 이 단계는 저쪽의 저 단계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5:139에서는 '앎이 지극해짐(知至)'까지가 경문의 '지지(知止)'에 해당하고 그 이후의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여섯 조목은 경문의 정/정/안/려/득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14:174에서는 팔조목의 치지와 성의 사이에 정/정/안/려/득을 모두 배치했다. 14:157에서도 치지 뒤에 정/정/안/려/득을 배치했지만 성의가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199. 확신하기 어려우나 질문자는 정/정/안/려/득을 먼저 실천하고 성의/정심을 나중에 하는 것으로 파악한 듯하다.
  200. 경문의 정정안려득 부분이다.
  201. 팔조목 쪽이다.
  202. 대학장구 혹은 대학혹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203. 이 부분은 지시대명사가 많아서 직역만으로는 뜻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 '책자'를 주희 본인의 주석서로 본 것은 번역자의 추측이다.
  204. 이 조목의 대의는 28:19와 흡사하다.
  205. 후술하겠지만, 이치를 100% 이해하여 의심이 없는 수준을 말한다
  206. 28:25의 말미가 이 조목과 일치한다. 28:25는 논어 5:5의 해석에 관한 문답이다. 공자가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하게 하였는데 칠조개가 '저는 아직 이것에 대해 아직 믿지 못합니다(吾斯之未能信)'라고 답하니 공자가 기뻐한다. 여기서 '믿음'은 이치(理)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앎이 지극(知至)해지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면 이치를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된다.
  207. 이굉조의 자가 수약이다.
  208. 논어 4:15
  209. 대학 경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후에'를 반복하고 있다. 물격이후지지(物格而后知至) 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 의성이후심정(意誠而后心正) 심정이후신수(心正而后身修) 신수이후가제(身修而后家齊) 가제이후국치(家齊而后國治) 국치이후천하평(國治而后天下平). '이후에'라고하면 앞 단계와 뒷 단계의 선후가 명확하다. 먼저 앞 단계를 마치고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면 곧'이라고 쓰면 앞 단계가 완료됨과 동시에 뒷단계도 완료되므로 전자와 후자는 선후관계가 아니게 된다.
  210. 회암집 권46의 답황상백 제4서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논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211. 관문은 누군가는 통과시키고 누군가는 통과시키지 않는 군사요새이다. 예컨대 장안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함곡관(函谷關)을 넘어야 한다. 넘지 못하면 장안에도 못가는 것이고 넘으면 장안에 들어갈 수 있다. 후금의 군대가 북경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해관(山海關)을 넘어야 한다. 넘으면 천하를 차지하지만 넘지 못하면 거병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된다. 이처럼 'xx관'이라는 표현은 우리를 어떤 경지로 인도하는 잘 닦인 길이라기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이들을 돌려보내는 난관과 같은 이미지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212. 살(殺)은 살(煞)과 통한다. 현대 중국어 '셤머(什麽:무엇)' 정도에 해당한다.
  213. 관문 너머의 성현의 영역쪽
  214. 관문을 넘지 못한 범부의 영역쪽
  215. 이정유서 17:69. 글자의 출입은 있으나 대의는 같다. 논어집주 1:1에도 인용되어있다.
  216. 번역은 '전환'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에도 '관(關)'자가 쓰였음에 유의하라. 주희는 관문이라는 메타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217. 관문의 메타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218. 애(隘)는 험준한 곳에 설치된 요새이다. 기본적으로 '관'과 같은 뜻이나 여기서는 통과의 어려움을 약간 더 강조한 표현으로 보인다.
  219. 15:84를 보라.
  220.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
  221. 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공부, 일종의 명상 공부를 말한다. 여기서는 성의의 단계를 말한다.
  222. 지적 사유를 통해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공부이다. 여기서는 치지의 단계를 말한다.
  223. 황하나 양자강처럼 큰 물이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부단히 흐르는 모양이 '도도'한 것이다.
  224. 관문은 기본적으로 지세가 매우 험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통과가 용이한 지점에 설치하는 방어시설이다. 그러므로 여행자가 어떤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말은 매우 험하고 난해하고 비효율적인 우회로를 찾아가야 함을 뜻한다.
  225. '절지'는 18:6에서도 이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226. 정말로 자신의 실존에 호소하는 절실한 도덕인식은 자연스럽게 간절한 실천의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통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227.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
  228. 본 조목은 약간의 글자 출입을 제외하면 117:10의 후반부와 일치한다.
  229. 한 두 사람이 은밀히 돌아다니며 재물을 훔치는 경우 뿐만 아니라 수십수백명이 무리지어 유랑하며 마을을 약탈하는 것도 '도적(賊)'이라고 불렀다. 관문은 군대가 지키는 요새이니 도적떼는 통과하지 못한다.
  230. 원주(袁州) 평향(萍鄉) 사람이다. 주자문인(朱子門人) 354쪽을 보라.
  231. 의(意)는 도덕행위를 추동하는 속마음이다. 실천해야 마땅한 어떤 윤리원칙이 있을 적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끔 추동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를 '심(心)에서 발출한 것(心之所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가깝다. 지각(知覺)은 목전의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인지적 활동이다. 의(意)에 관해서는 김나윤의 "주자 도덕론에서 의와 성의의 함축"(2022)를 참조하라.
  232. 이 부분은 의미를 잘 모르겠다. 추후 보충하겠다. 16:131을 참조하라.
  233. 의(意)는 도덕행위를 추동하는 속마음이다. 실천해야 마땅한 어떤 윤리원칙이 있을 적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끔 추동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를 '심(心)에서 발출한 것(心之所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가깝다. 지각(知覺)은 목전의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인지적 활동이다. 의(意)에 관해서는 김나윤의 "주자 도덕론에서 의와 성의의 함축"(2022)를 참조하라.
  234. 양시(楊時)의 말이다. 구산집 권 12와 권 27을 보라. 어류 113:13도 참조하라.
  235. 아마도 그때그때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사태, 사안, 상황, 사물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고문해의는 이 '잡은' 것을 '요점을 잡아서 말해보자면' 정도로 해석했다.
  236. 전국책 권22 위책(魏策)에 보인다. 위문후와 전자방이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중 문후가 종소리의 높낮이가 맞지 않다는 것을 듣고 알아냈다. 전자방은 문후의 음감을 칭찬하는 대신 '임금이 밝으면 관리의 일을 즐기고 밝지 못하면 음악을 즐긴다'라고 충고했다.
  237. 여기서 주희는 음악을 '잡은 것(拈著底)'의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다.
  238. 논어8:4. 여기서 증자는 제사그릇(籩豆)의 종류와 그 각각에 무얼 담느냐와 같은 디테일한 사안은 그것을 담당하는 하급관리가 알아서 할 일이므로 고위 정무직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위 정무직이 신경쓸 일은 행동거지(動容貌)가 사납거나 태만하지 않게 하는 것(斯遠暴慢矣), 안색을 바로잡아(正顔色) 신실하게 하는 것(斯近信矣) 말하는 매너가(出辭氣) 비루하거나 도리에 위배되지 않게 하는 것(斯遠鄙倍矣)이다.
  239. 덜 중요하다는 뜻이다.
  240. 공자
  241. 이 이야기는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17년조에 보인다.
  242. '다소(多少)'는 종종 현대중국어 '얼마나(多麽)'와 같다. 여기서는 말의 앞뒤를 고려하여 평서형으로 풀었다.
  243. 판본에 따라 '面上'인 경우도 있다. 자세한 것은 일역판(2007)의 교감주를 참조하라.
  244. 직역하면 '더는 갈 곳 없는 지점'이다. 18:4, 18:72를 참조하라.
  245. '간래(看來)'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뒤집기 위해 적당한 추측을 미끼로 던진 것이다. 순서대로라면 격물-치지-성의-정심인데 치지의 결과 정심이 이루어지면 성의는 불필요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영문으로치면 'it seems...'와 같다.
  246. 사의나 사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247. 주자어류에서 '착(著)'이 이렇게 본래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15:101을 보라.
  248. 마지막 글자인 '재(在)'는 문장의 분위기를 단정적으로 만들어주는 허사이다.
  249. 여기서 '의(意)'자는 '의성(意誠)'의 '의'와는 다른 뜻으로 쓰였음에 주의하라.
  250. 내버려두어도 아래로 흘러가는 물처럼 두 단계가 이어지지 않고, 그 사이에 모종의 인위적 노력을 쏟아야만 이어진다는 말이다.
  251. 식별하고(別識) 모두 제거하는(盡去)등의 행위가 바로 앞에서 암시한 인위적 노력이다.
  252. 이 단계를 설명하기 난해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 단계를 쉬운 것처럼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다.
  253. 고문해의에 의하면 '의성'의 단계를 말한다.
  254. 고문해의에 의하면 '천리가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255. 고문해의에 의하면 위쪽에서 격물을 '정밀하고 숙련되게(精熟)'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익숙하게 점검하는' 노력이다.
  256. 여기서 '여(與)'는 현대 중국어의 '급(給)'처럼 '~에게' 정도의 의미이다.
  257. 넘어지고 헤매는 것이다. 길을 모를 때 여행자가 겪는 어려움이 보통 넘어지는 것과 길을 잃는 것이다.
  258. 남쪽지방의 대명사이다. 북쪽지방의 경우는 연(燕)나라.
  259. 앞길이 밝고 평탄한 것이다. 계속해서 도덕원칙을 길로, 그 원칙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밝기로, 그 원칙에 대한 의욕적인 실천을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음에 유의하라.
  260. 논어 2:4
  261. 시의 제목은 은궤(隱几)이다. 본래 '사십심부동(四十心不動)'인 걸 여기서는 '맹자심부동(孟子心不動)'으로 바꿔서 썼다. 이 시를 인용한 다른 조목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아 주희는 정말로 이렇게 외고 있었던 듯하다.
  262. 15:104와 140:32가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 백거이의 재치를 진지하게 비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263. '탈공'은 근거할 만한 실질이 없는 것이다.
  264. 본래는 15:103에서와 같이 '행년(行年)'이다.
  265. 활계 (혹은 '골계')는 순간적인 재치로 웃음을 유발하는 말재주를 말하기도 하고, 강남지방에서 유행했다는 일종의 곡예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기에 골계열전(滑稽列傳)이 있다.
  266. 15:103과 140:32를 참고하라.
  267. 관중은 오늘날 섬서성 서안(西安) 인근이고 하내는 하남성 심양(沁阳) 인근이다. 두 곳은 각각 한고조 유방과 후한 광무제의 근거지로 그 기반이 굳건하여 그들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치지와 성의 공부가 완성되면 이는 배우는 이의 굳건한 기반이 된다는 뜻이다. 자치통감 권61 헌제 흥평2년 윤5월조를 보라.
  268. 고문해의는 이 구문을 대학혹문의 초기 판본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측했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이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흡사한 구절이 있다. 혹문의 전 5장 8번째 조목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천하 사물을 다 탐구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내게 갖춰져 있는 것이요 외부로부터 얻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격물(格物)에 대하여 역시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면' 천하 사물이 내게 있지 않음이 없다'라고 말한 자가 있는데 이 또한 그럴싸하긴 하다.<양시의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다'는 것은 바로 '물격지지(物格知至)' 이후의 일이니, 이치에 대한 탐구가 지극하여 남김없이 다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저 모든 천하의 이치를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해보면 누구나 마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잡고 다리로 걷는 것처럼 완벽하게 자기 안에 갖추어져 있어서 털끝만큼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음을알 수 있다. 정말로 이러한 것을 바로 격물(格物)의 일로 여긴 것도 아니고, 또한 '단순히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하는 것에만 힘쓰면 천하의 이치는 저절로 모두 진실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又有以爲天下之物, 不可勝窮, 然皆備於我, 而非從外得也. 所謂格物, 亦曰反身而誠, 則天下之物無不在我者, 是亦似矣.〈楊中立說〉然反身而誠, 乃爲物格知至以後之事, 言其窮理之至無所不盡. 故凡天下之理, 反求諸身, 皆有以見其如目視耳聽手持足行之畢具於此, 而無毫髮之不實耳. 固非以是方爲格物之事, 亦不謂但務反求諸身, 而天下之理自然無不誠也.)" 주희는 여기서 시선을 내면에 고정해두고 (어차피 사물은 다 내 안에 있는 것 아니냐는 전제하에) 스스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배격하기 위해 격물이란 시선을 외부에 두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과 사태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용과 같은 주요 경전에서 말한 '반구저신(反求諸身)'과 같은 권위있는 표현을 존중해야 하므로 1. 먼저 나의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치를 탐색하고 탐구하여 알고 나면 2. 그 이치가 내 안에 앎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므로 3. 돌이켜 내 안에서 구해보면 다 거기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경전의 문구와 조화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놓고 나면 우리는 모두 이치를 외부에서 구해서 마련해 가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렇게 되면 이치가 본래부터 자신 안에 상존한다는 주희의 본성론에 위배되는 것 처럼 들린다. 본 조목에서의 질문의 취지가 바로 이것이다.
  269. 조선고사본에는 이 뒤로 다음과 같은 문답이 더 있다. 아마도 여기서 생략처리된 부분일 것이다.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무엇이 안쪽이고 무엇이 바깥쪽인가?' 내가 답했다. '치지격물이란 바깥에 가서 이치를 마련해온 뒤에 비로소 자신에게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깥에 가서 구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선생이 말했다. '먼저 이 이치가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이 모르게 된 것인가? (이치를) 알게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이치가 있게 된 것인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先生問節曰: "如何是内, 如何是外?" 節答曰: "致知格物是去外討, 然后方有諸己, 是去外討得入來." 曰: "是先有此理後自家不知? 是知得後方有此理?" 節無以答.)"
  270. 맹자 6A:6. '非由外鑠我也'의 '삭(鑠)'은 금속 등에 섞인 불순물을 녹여서 태워버리는 행위, 혹은 그렇게 녹인 쇳물로 무언가를 주조하는 행위를 이른다. 전자의 뜻으로 쓰일 경우 주희는 주로 '소삭(銷鑠)'과 같은 형태로 조합해서 사용한다. 쇳물을 (외부로부터 강제로) 내 안에 부어서 본래는 내게 없었던 '인의예지'라는 물건을 주조해낸다는 뜻인지, 아니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인의예지의 훈습을 통해 '나'를 녹여 없앤다는 뜻인지 확정하기 어렵다.
  271. 여기서 감절(甘節)은 치지와 성의 공부의 결과 내면에 확보하게 된 '이치'란 본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바깥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이치를 인식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객관적인 어떤 것, 나와 무관한 것을 가져와서 애써 내면화하는 작업, 남의 아들을 잡아와서 내 아들로 만드는 작업이다. 주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치는 물론 객관적이지만 동시에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 본유한다고 생각하므로 바깥에 있는 아들이나 집안에 있는 아들이나 다 자신의 아들이다.
  272. 논어 12:1
  273. 서경(書經) 주서(周書) 다방(多方)편 제 17장
  274.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제 15장
  275. 중화서국판에서는 록(錄)으로 오기했다.
  276. 이에 대하여 주희 자신은 15:102에서처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15:100에서처럼 행동을 보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대학장구 전6장에서는 이는 남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신독(愼獨)'해야 한다고 말한다.
  277. 주희에 따르면 이 네 글자가 바로 의(意)자의 사전적 정의이다.
  278. 이 형용사는 순수성과 일관성을 의미한다. 순수하고 일관되게 이치에 귀속한다는 뜻이다.
  279. 대학혹문의 경1장 부분에 "心之所發能一於理而無自欺矣"라는 말이 있다. 대학장구는 크게 두 종류의 통행본이 있는데 하나는 조선에서 유행했던 사서대전본이고 다른 하나는 오영(吳英)과 오지충(吳志忠) 부자가 교감한 가경 16년본(1811)이다. 가경본은 후에 중화서국판 사서집주의 저본이 된다. 대전본에서는 성의에 대하여 "欲其必自慊而無自欺也"라고 적은 반면 가경본에서는 "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라고 적고 있어서 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주희는 대학장구와 혹문을 매우 여러번 개수했기 때문에 이본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단지 어느쪽이 더 최신버전인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어류의 이 부분은 아무래도 통행본 대학혹문과 가경본 대학장구를 섞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두 버전보다 앞선 것인지 더 나중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쉬지아싱(許家星)의 "论朱子的诚意之学—以诚意章詮释修改为中心(2011)", 최혜미의 "大學章句 ‘誠意’의 주석에 대한 韓·中 학자들의 변석 양상 一考(2016)"을 참고하라.
  280. 긴 문장을 중간부분을 생략해서 인용할 적에 '~까지'라는 의미로 이 글자를 작게 쓴다.
  281. 대학 전 6장.
  282. 대학 전 6장을 축약한 것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지낼 때 불선한 짓을 하여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 그러다 군자를 본 이후에는 겸연쩍게 자신의 불선함을 가리고 선함을 드러낸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이다.
  283. 영리(靈利):남김없이 모조리 깔끔하게
  284. 우리말 '소탕(掃蕩)하다'의 '탕(蕩)'과 통한다. 남김없이 제거했다는 뜨이다. 일역판에서는 '눌러서 짜내다(押し出す)' 정도로 번역했는데 썩 만족스럽지 않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치약 튜브이고 찌꺼기는 치약이고 성의공부는 치약을 모조리 쥐어짜내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285. 쪙빙은 얇은 밀가루 피 여러겹을 마치 계란말이처럼 층층이 쌓아서 쪄낸 음식이다. 각 층 사이에 약간의 양념이 들어간다. 오늘날 중국에서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다. 재료와 형태만으로 따지자면 오늘날 한국의 카페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크레이프케잌과 비슷하다. 다만, 주희 당시에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쪙빙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 번역자는 자신이 없다. 일역판에서는 찐만두라고 번역했는데 맞지 않다고 본다. 16:87에서 동일한 비유를 들고 있으니 참조하라.
  286. 입자가 굵고 거친 통밀가루 같은 것을 떠올리면 좋다.
  287. 이 비유는 16:87에서도 반복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288.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모든 영역을 통틀어 통체로 지시하면 '심'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주희의 심(心)은 인지적인 기관(mind)과 정서적 기관(heart)를 하나로 합친 거에 가깝다. 이때문에 많은 영역자들이 습관처럼 '허트-마인드(heart-mind)'라는 신조어를 써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 의(意)는 그러한 '심'에서 솟아나는(發) 의지(will)나 동기(motive)에 가깝다. '마음'과 '의지'를 정의하는 조목들은 권5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5:88을 보라.
  289. 중용 제 1장의 '계신공구'부분을 패러프레이즈한 것이다. '(자신이) 보지 않는 바를 삼가고 경계하며 (자신이) 듣지 않는 바를 두려워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주희에 의하면 이는 미발(未發)의 상태에서의 자기수양의 노력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명상공부이다. 우리 마음의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부분이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활동하는 양상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했을 때 보다(睹)와 듣다(聞)는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마음의 적극적 활동을 말한다. 그런 활동을 중지하면 '계신공구'이다. 62:91, 62:79를 보라.
  290. 중용 제 1장에서 '계신공구'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이다.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주희는 계신공구를 미발단계에서의 공부, 신독을 이발단계에서의 공부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전자는 체인공부, 후자는 찰식공부이다. 62:92를 보라.
  291. 의지(意)를 말한다.
  292. 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엉망인 일들을 떠올려 보라.
  293. 성의 단계와 정심 단계 사이의 연결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294. 대학에서 제가, 치국, 평천하 부분은 파죽지세로 이해해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295. 오늘날 항저우. 당시 남송의 수도였다.
  296. 중국어에서 일(一)은 종종 조건(if)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도 문맥을 살펴 그렇게 해석했다. '한결같이'일 가능성도 있다.
  297. '착(著)'은 뒤에 신발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오면 '신발을 신다'가 된다. '기(起)'는 현대중국어에서 동사의 뒤에 붙어서 동작의 방향(주로 위쪽)을 표현하거나 그 동작이 시작됨, 그 동작의 가능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컨대 '칸치라이(看起來)'는 '내가 이렇게 보면...' 정도의 의미이고 '쭈어치(做起)'는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298. 탱주(撑拄)는 지탱(支撑)과 같다. 어떤 물건이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는 것이다.
  299. '자기자신을 기만함(自欺)'은 대학 전 6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주희는 이를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지만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다. 오늘날의 윤리학 용어로 '의지박약(Akrasia)'에 가깝다. 이찬의 '지행문제의 도덕심리학적 이해(2009)'를 참조하라.
  300. 15:115를 축약한 듯한 내용이다.
  301. 중화서국판에서는 기록자의 이름을 '格'이라고 적었으나 옳지 못하다. 조선정판본 등을 따라 恪으로 교감한다.
  302. 대학 전 7장에서 마음의 바름을 깨뜨리는 요소들 중 하나로 거론한다.
  303. 비유하자면, 열 문제를 공부하는 학생이 아홉 문제를 철저히 이해했으나 한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여 아직 건드리지도 못한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단 풀이에 성공한 아홉문제의 경우는 완전히 이해가 되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고 나머지 한 문제도 수험생의 철저한 성미로 볼 때 시간이 허락될 때 이해해낼 것이다. 반면에 한 문제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90%까지만 이해한 상태에서 그만두고 방치하는 학생이라면 '철저한 성미'가 없음을 알 수 있고, 풀었다는 그 문제 또한 정말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304. '일단은 이렇게'라거나 '우선 이렇게 해두고'라는 표현에는 대충대충의 혐의가 있다. 물론 주희 본인은 이 말을 종종 사용한다.
  305. 이 조목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질이 민첩하냐 둔하냐에 달려있다'는 말이 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을 구박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전진의 속도는 어차피 자질에 따른 것이니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15:84를 보라.
  306. 이 조목은 16:123과 매우 흡사하니 참조하라.
  307. 이치를 식별하는 일이다. 15:99에서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308. 의도를 가지고 개입하여 일을 처리함을 말한다. 1:18을 참조하라.
  309. 주희의 심리학 체계에 의하면 심(心)은 우리 정신영역을 통틀어 지시하는 말이다. 그 심의 생래적 퀄리티가 성(性)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래적 퀄리티가 현실로 발현된 모습이 정(情)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면, 보고 느끼고 슬퍼하고 우는 모든 일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心)이 보고 마음이 느끼고 마음이 슬퍼하고 마음이 운 것이니 모두 마음이 주관한 일이다. 이 슬픔은 마음이 타고난 어떤 성질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 발현된 것이다. 발현된 것이 감정이고, 원래 가지고 있던 성질 쪽이 본성이다. 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
  310. 주희의 삼남인 주재(朱在)이다.
  311. 넓고 크다는 것은 응용의 영역이 넓고 크다는 뜻이다. 예컨대 평천하의 공부는 치국의 공부에 비해 적용 면적이 넓고 크다. 다만 공부의 내용이 얼마나 정밀한가를 따지자면 치국이 평천하보다 정밀하다.
  312. 마음의 여러 측면을 이발과 미발에 배속한 것에 관해서는 5:71을 참조하라.
  313. '수(修)'는 대개 '닦다'라고 번역하는데, 어떤 기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컨디션을 올리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옷을 수선(修繕)하거나 차량을 수리(修理)한다고 할때도 이 '수'자를 쓴다. 늘 안경을 닦아 깨끗함을 유지하고 화장실의 거울을 닦고 거실 창문을 닦는 것도 '닦다'이다. 더 나은 번역어를 고민해보았으나 딱히 떠오르지 않아 우선은 '닦다'로 해둔다.
  314. 대학 전7장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되는 원인으로 두려움, 좋아함, 분노, 근심걱정을 꼽았다.
  315. 대학 전 2장.
  316. 대학 경 1장
  317. '체(體)'는 보통 '본체'라고 번역하는데 영역자들의 경우 '실체(substance)'나 '본질(essence)'을 선호한다. 여기서는 물의 본질적인 속성을 말한다.
  318. 대학 전 8장에서는 수신과 제가를 해설하는데, 감정적 치우침으로 인하여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황을 경계하는 문구를 길게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친애하는 감정에 치우쳐 편벽됨이 생기고 미워하는 감정에 치우쳐 편벽됨이 생기고 외경심에서 편벽됨이 생기고 애긍심에서 편벽됨이 생기고 거만함에서 편벽됨이 생긴다. 그런데 주희는 대학장구의 이 부분 주석에서 이러한 감정들이 '사람에게 있어 본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칙이다(在人, 本有當然之則)'라고 하여 한편으로 긍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감정들이 치우치고 함닉하여 수신과 제가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하긴 하지만 한결같이 부정적인 대학 본문의 엄격함에 비하면 주희의 주석은 확실히 한걸음 물러선 것이다.
  319. 대학장구에서 '본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칙이다(本有當然之則)'고 한 것과 상통한다.
  320. 바로 다음 조목이다. 15:115 또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참조하라.
  321. '모두 좋은 일'에 관해서는 15:126을 보라. 분노와 좋아함은 15:125를, 친애와 외경은 126을 보라.
  322. 그 응용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맹자 7A:23이나 7B:31을 보라.
  323. 장조가 주희를 사사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15:126의 원주가 사실이라면 역시 69세 이후에 들은 내용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24. 주희가 욕망이 마음을 '함'한다고 할 때의 주된 이미지는 사람을 깊은 물에 빠뜨리는(陷溺) 장면이다. 11:5와 13:23을 보라.
  325. 물에 빠진 사람을 붙잡아 끄집어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좋다.
  326.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문(問)'자가 이 조목의 제일 앞에 있다. 조선고사본 쪽이 더 합리적이므로 그쪽을 따라 번역한다.
  327. 전자는 성의의 완성과 함께 정심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말인 반면 후자는 성의 이후에도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 정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328. 성의단계와 정심단계가 교차하고 수신단계와 제가단계가 교차한다는 말이다.
  329. 매우 많은 판본에서는 '성의(誠意)'로 적혀있다. 다만 주희가 정심과 수신의 관계를 가지고 답변하는 만큼 질문도 정심과 수신이어야 말이 된다. 본 조목과 사실상 동일한 16:166쪽도 정심과 수신의 관계를 질문하고 있다. 전경당본(1876)에서 이러한 근거로 이렇게 교감했고 중화서국본도 이쪽을 따르고 있다.
  330. 직전 교감주와 마찬가지로 전경당본(1876)에서 却을 都로 교감했고 중화서국본도 이쪽을 따르고 있다. 다만 16:166은 却이다. 어느쪽을 택해도 큰 차이는 없으나 이 경우는 특별히 더 강한 근거가 없는 한 却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
  331. 대학 전 10장에서 언급한 혈구지도를 말한다. 15:76의 주석을 참조하라.
  332. 이 조목은 16:166과 거의 동일하다.
  333. 황의강(黃義剛)이다.
  334. 요의 아들로 불초자식의 대명사이다.
  335. 순의 아버지로 못난 아비의 대명사이다.
  336. 관숙과 채숙은 주공의 형제들이다. 못난 형제의 대명사이다.
  337. 고대의 성인들은 집안도 다스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냐는 질문이다.
  338. 서경(書經) 우서(虞書) 요전(堯典)
  339. 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蔡仲之命).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숙은 죽였고 채숙은 가택연금시켰고 곽숙(霍叔)은 서인으로 강등시켰다.
  340. '상(常)'은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적인 윤리이다. 반면에 '변(變)'은 원칙의 준수가 역설적으로 윤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칙을 뒤집음으로써(주로 정 반대 방향을 뒤집는다)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말하자면 '상황윤리'이다. 15:39과 51에서 정도와 상도를 구분한 것을 참조하라.
  341. '불해(不解)'는 cannot이다.
  342. 대학 경 1장의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라는 구문의 자구풀이이다.
  343. 다수의 물건의 크기와 모양, 배치 간격 등이 고르고 가지런한 모양을 말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한서 평제기 원문과 그에 대한 안사고의 주석은 원시(元始) 원년(元年) 춘정월 조에 보인다. 글자에 약간의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
  344. '주자문인' p.84 에서는 이덕지(李德之)의 오기로 본다.
  345. 대학 경 제 1장
  346. 위 인용구에 이어서 대학 경 1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그 근본이 어지럽고서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으며, 후하게(厚) 할 것을 박하게(薄) 하고 박하게(薄) 할 것을 후하게(厚) 하는 경우는 존재한 적이 없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이에 대한 주희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근본은 몸(身)을 말하고 후하게 할 것은 집안(家)을 말한다(本, 謂身也, 所厚, 謂家也).'
  347.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을 말한다.
  348. 후하게 할 것이다.
  349. 박하게 할 것이다.
  350. 대학장구를 말한다.
  351. 15:135를 보라.
  352. 격물부터 수신까지의 단계를 말하는 듯하다.
  353. 격물부터 수신까지는 시간적 순서와 시급성의 순서를 기준으로 이와 같이 정렬한 것일 뿐이다. '격물에게 후하게 베풀어주고 성의에게 덜 베풀어준다' 같은 말은 어색하다.
  354. 제가 이후부터는 수양의 결과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계이므로 '베푸는' 단계이다.
  355. 대학은 가장 앞쪽인 경 1장에서 팔조목을 대략적으로 소개한 후 그 뒤의 전(傳)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한다.
  356. 이 구문을 축자역하면 '그 밝히고자 하는 덕이 됨'이 된다. 직역으로 무난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으므로 일단 이렇게 의역해둔다.
  357. 통상적으로 이 글자는 '가리다' '가리워지다'로 번역한다. 하지만 '가리다'는 이 글자의 본래 이미지가 바가지나 이불 같은 것으로 휙 덮어버리는 것, 혹은 진흙 같은 것을 쏟아부어 뒤덮어버리는 것임을 잘 드러내주지 못한다.
  358. 정/정/안/려/득의 다섯 항목을 말한다. 권 14의 말미에 자세하다. 예컨대 14:157과 158을 보라.
  359. 삼강령이다.
  360. 정/정/안/려/득이다.
  361. 경 1장에서 설명한 격/치/성/정/수/제/치/평의 팔조목이다.
  362. 전 1장부터 10장까지에서 순차적으로 팔조목을 설명한 것을 말한다.
  363. 논어 14:37
  364. 법칙에는 두 가지 구분되는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만유인력의 법칙'의 경우처럼 어떠한 현상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게임의 법칙'의 경우처럼 우리가 어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룰을 말한다. 전자와 같은 의미를 주희는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라고 하고 후자와 같은 의미는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이라고 한다. 대학혹문 11장, 주자어류 17:43 등을 참조하라.
  365. 조선고사본은 '理'이다. 여기서는 '예'로 두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366. 대학장구 전 5장.
  367. 불명확한 도리를 추론하여(推) 명백하게 설명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는(闡) 것이다.
  368. 호랑이 이야기의 원조는 이정유서 2上:24이다.
  369. 팔조목 가운데 뒤의 일곱조목간의 관계는 모두 'ㅇㅇ하려면 먼저 ㅇㅇ한다'의 형식으로 서술하지만 마지막 두 조목인 치지와 격물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렇게 간단하게 서술한다.
  370. 소박하게 설명하자면 인식이라는 이벤트는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객체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러므로 격물(인식대상에 접근하여 탐구)과 치지(탐구의 결과 앎을 획득)는 동일한 이벤트를 각각 객체쪽과 주체쪽에서 해설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조목은 '지극히 밀접'하여 '정확히 서로 조응'한다.
  371. 이 부분은 직전 조목의 설명을 참조하라.
  372. 대학장구 전 7장. '마음이 여기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373. 여기서부터 '성득의(誠得意)' 까지가 궁리(窮理) 공부의 취지를 설명한 것이다.
  374. 뒤에서 언급될 '비례물시'의 경우처럼 행동거지를 잘 다스려 악을 멀리하고 도리를 견지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란절(攔截)은 길을 막아 적의 전진을 돈좌(頓挫)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375. 만약 이렇게 말했으면 공자는 안회에게 어떤 도덕심리상의 공부, 예컨대 성의나 정심 공부를 주문한 것이 된다.
  376. 논어 12:1. 이른바 '극기복례'장을 말한다.이는 모두 구체적인 행실과 행동거지의 레벨에서 악을 경계하라는 것이니 성의나 정심과 같은 도덕심리 레벨에서의 공부와는 범주가 다르다.
  377. 논어 13:19. 거처공과 집사경은 몸가짐을 다스리는 공부이고 여인충은 마음의 진실성을 점검하는 도덕심리 공부이다. 전자를 후자보다 우선했다는 주장이다.
  378. 일을 처리할 적에 경건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처리가 미칠 파장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처신함을 말한다. 이는 '두려움'의 정서에 가깝다.
  379. 이 조목은 전체적으로 두서가 없다. 주희는 어디선가 접한 잘못된 입장을 세운 뒤 그것을 공박하려고 한다. 이때 문제의 '잘못된 입장'은 도리에 대한 지적인 탐구와 이해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도덕의지와 정서, 정념 같은 심리적인 힘을 고양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스탠스로 보인다. 이러한 입장을 논박하려면 이지적인 탐구와 이해의 중요성, 즉 '궁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더니 금방 일상에서 몸가짐을 다스리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쪽으로 빠져버린다.
  380. 위에서 말한 것처럼 'A라는 글자는 B라는 글자와 뜻이 같다.'는 식의 글자풀이를 말한다.
  381. '평담(平淡)'은 맛으로 치면 물과 같은 것이다. '경' 같은 단어의 뜻은 특수한 학문적 맥락에 의존하고 있는데 반해 '외'는 일상언어에 가까우므로 그 평범성과 일상성을 물맛에 비긴 것이다. 다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입 안에 넣고 굴려보면 그 안에 비범하고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바로 '자미(滋味)가 있다'이다. 비슷한 표현이 26:93에 보이니 참조하라.
  382. 치지가 격물에 수반한다는 말이다.
  383. 이 부분은 일역판의 의견을 따랐다.
  384. 이 '기다린다'는 표현은 책을 저술해놓고 서문의 말미에 자주 사용한다. 자신이 할 일은 다 했으니 훗날의 독자가 내 저술의 취지를 제대로 알아줄지 말지는 내 손을 떠난 문제이므로 훗날의 일로 맡겨놓고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385. 격물치지부터 치국평천하까지의 정방향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
  386. 맹자 7A:12와 중용 제 20장에 비슷한 구문이 있다. 다음은 맹자에서 인용한 것이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데 길이 있으니,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믿음을 받는데 길이 있으니, 어버이를 섬겨 기쁨을 받지 못하면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데 길이 있으니, 몸을 돌이켜봄에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기쁨을 받지 못할 것이다. 몸을 성실히 하는데 길이 있으니, 선(善)을 밝게 알지 못하면 그 몸을 성실히 하지 못할 것이다(居下位而不獲於上, 民不可得而治也. 獲於上有道, 不信於友, 弗獲於上矣. 信於友有道, 事親弗悅, 弗信於友矣. 悅親有道, 反身不誠, 不悅於親矣. 誠身有道, 不明乎善, 不誠其身矣).' 팔조목을 치국부터 성의까지 역순으로 나열한 것과 비슷한 논조이다.
  387. 여(與)는 오늘날 중국어 'gei(給)'와 같다.
  388. 이 지점까지는 이전 몇 조목과 그 논조가 같으므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389. 화제가 기쁨과 노여움으로 옮겨간 것에는 어떤 대화의 맥락이 작용했음이 틀림 없으나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390. 주역 손괘 상전.
  391. 주역 익괘 상전.
  392. 각시투구꽃의 뿌리덩이로 초오(草烏)라고도 한다. 오훼 옆에 붙어있는 작은 덩이가 부자(附子)인데 아코니틴(Aconitine)이라는 알칼로이드 독성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사약의 주 성분으로 독성이 매우 강하지만 양을 조절하여 약용으로도 쓴다.
  393. 그렇게 하면 죽는다는 걸 지극하게 잘 알기 때문에 실제로 그걸 먹거나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100% 진심인 것이다.
  394. 중용 제 1장에서 '계신공구'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이다.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이는 일종의 성의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제자는 '격물치지를 완수하기 이전에도 성의 공부를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거지요?'라고 물은 것이다. 15:113을 참조하라.
  395. 이것이 순서대로 노력한 결과 순서대로 체감하는 효과이다.
  396. 대나무 쪼개기의 비유는 15:114를 보라. 여덟 마디가 있는 대나무를 세로방향으로 쪼개면 각각의 마디를 순서에 따라 파죽지세로 쪼개나가게 된다.
  397. 과접(過接)은 두 영역이 붙어있어서(接) 그 경계선을 통과(過)할 수 있는 지점이다. 68:28에서 봄과 가을을 겨울과 여름이라는 두 영역 사이의 '과접처'라고 설명한 것을 참조하라. 관자(關子)는 관문이다.
  398. 본 조목에서는 팔조목을 '공부형'(격물 치지 성의)로 쓰기도 하고 '완성형'(물격 지지 의성)으로 쓰기도 하는데 딱히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두 개의 관문을 소개할 적에 전자를 '지지와 성의의 관문'이라고 소개했으면 그 뒤쪽 관문은 응당 '신수와 제가'의 관문이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또 신수가 아니라 '수신'이라고 쓴다. 어째서 그런지 이유는 알기 어렵다.
  399. 15:124에서는 성의가 깊고 정심은 얕다고 했다.
  400. 숙련자가 힘을 빼고 하는 일을 초심자가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401. '뒤덮다(蔽)'에 대해서는 15:137을 참조하라. 덮고 있는 것이 없으니 마음 본연의 광명정대한 빛(곧, 명덕)이 밖으로 발산하는데 막힘이 없다. 이 빛은 휘황찬란하다기보다는 밝고 명료하고 또렷한 실내조명 같은 것이다. 불 꺼진 방은 어둑하여 사물의 윤곽이 흐려서 대강의 스케치만 보인다. 그러다 불이 켜지면 그 밝은 빛에 힘입어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고 명료하게 포커스가 잡힌다. 통연(洞然)은 그런 느낌을 형용하는 말이다.
  402. 사태와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게 보이므로 시비선악의 취사분별이 확고하여 혼란스럽거나 흔들림이 없다.
  403. 논어 15:32. '앎이 미쳐도 인으로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앎이 이른다는 것은 이지적인 사유의 결과 주어진 도덕원칙에 대하여 납득하는 것을 말하고 인으로 지킨다는 것은 그러한 도덕원칙을 몸으로 받아들여 그 원칙과의 싱크로율이 고조됨을 말한다. 이지적으로 납득하기만 하고 그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치 잘 만들어졌으되 그것을 실행할 리소스가 부족한 앱(App)처럼 '얻더라도 반드시 잃게' 된다.
  404. 논어15:32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앎이 미치고 인으로 지킬 수 있더라도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앎이 미치고 인으로 지킬 수 있고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임하더라도 (그들을) 예로써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선(善)하지 못하다(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예는 이치를 현실사회에서 드러내주는 구체적인 규칙들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주희는 여기서 '장중하게 임하고 예로써 움직이는' 것을 대학의 치국과 평천하 단계의 일에 비기고 있다.
  405. 마치 요즘 사람처럼 주희도 '100% 이상'이니 '200%'니 하는 과장법을 쓴다. 14:106을 참조하라.
  406. 이 다음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격/치/성 까지가 앞쪽이고 수/제/치/평이 뒤쪽이다.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앞쪽이 수기(修己), 뒤쪽이 치인(治人)이다.
  407. 배우는 이가 실제로 작업하는 지점은 '수기' 부분이고, 수기에서 열심히 작업한 결과가 '치인'이라는 말이다.
  408. 대학 경 1장을 말한다.
  409. 대학 경 1장.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410. 대학 경문에서 팔조목을 설명하는 대목은 'A를 한 이후에 B를 한다'와 같은 형태로 문장을 구성한다. 15:83을 참조하라.
  411. 삼강령이다.
  412. 팔조목이다.
  413. 맹자 7A:5
  414. 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 그런데 '대학혹문'에서는 이런 뜻이 아니라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정의한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
  415. 漢書 권 52에서 '무릇 성인은 천하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자입니다(夫聖人以天下為度者也).'라고 하였다.
  416. 천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치국 평천하가 모두 직분 내의 일이다. 그러므로 위인지학(직분 바깥의 일에 종사함)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위기지학(직분 안쪽의 일에 종사함)이라는 논리이다.
  417. 중화서국본 314쪽의 그림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