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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자어류/권16 대학3 大學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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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어류 016
대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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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장. '명명덕(明明德)' 해석(傳一章釋明明德)

[편집]
  • 16:1 問“克明德”.

'극명덕(克明德)'[1]에 관한 질문.

曰: “德之明與不明, 只在人之克與不克耳. 克, 只是眞箇會明其明德.” 節(64이후).

대답: 덕이 밝으냐 밝지 않으냐는 단지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능히(克)'는 진정으로 그 밝은 덕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2]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 問明德·明命.

'밝은 덕(明德)'과 '밝은 명령(明命)'에 관한 질문.[3]

曰: “便是天之所命謂性者. 人皆有此明德, 但爲物欲之所昏蔽, 故暗塞爾.” 㽦(59때).

대답: 이는 바로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性)'[4]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이 밝은 덕을 가지고 있다. 단지 물욕에 의해 어둡게 뒤덮혀(昏蔽) 깜깜하게 막혀버린(暗塞) 것뿐이다.

순(㽦)의 기록. (59세)

  •  16:3 自人受之, 喚做“明德”; 自天言之, 喚做“明命”. 今人多鶻鶻突突, 一似無這箇明命. 若常見其在前, 則凜凜然不敢放肆, 見許多道理都在眼前.

사람이 받았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명덕(明德)'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준) 하늘 쪽에서 말하자면 '명명(明命)'이라고 부른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흐리멍텅하니(鶻鶻突突)[5] 저 '밝은 명령'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만약 항상 그것이[6] 자기 앞에 있음을 본다면, 두려움에 감히 방자하게 굴지 못하여 저 많은 도리가 모두 눈앞에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又曰: “人之明德, 卽天之明命. 雖則是形骸間隔, 然人之所以能視聽言動, 非天而何.”

또 말함: 사람의 밝은 덕은 곧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 비록 육신이라는 간격이 있지만,[7] 사람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까닭이 하늘(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問:“苟日新, 日日新”.

'진실로 어느 하루 새로워졌거든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苟日新, 日日新)'에 관한 질문.[8]

曰: “這箇道理, 未見得時, 若無頭無面, 如何下工夫? 才剔撥得有些通透處, 便須急急躡蹤趲鄕前去.”

대답: 이 도리를 파악하기 전에는 단서가 없으니(無頭無面)[9] 어떻게 공부(工夫)할 수 있겠나? (물욕을) 도려내어(剔撥)[10] 조금이라도 통하는 구멍이 생기면 시급히 그 자취를 따라(躡蹤) 달려나아가야 한다(趲鄕前去).[11]

又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文王能使天下無一民不新其德, 卽此便是天命之新.”

다시 말함: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명(命)은 새롭다.'[12] 문왕은 천하에 한 사람도 그 자신의 덕을 새롭게 하지 않은 이가 없게 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명을 갱신한(天命之新) 것이다.

又云: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다시 말함: '하늘은 우리 백성을 통해서 보고, 하늘은 우리 백성을 통해서 듣는다.'[13]

或問: “此若有不同, 如何?”

누군가의 질문: 이것에 만약 차이가 있으면[14] 어떡합니까?

曰: “天豈曾有耳目以視聽! 只是自我民之視聽, 便是天之視聽. 如帝命文王, 豈天諄諄然命之! 只是文王要恁地, 便是理合恁地, 便是帝命之也.”

대답: 하늘이 어디 귀와 눈이 있어서 보고 듣고 하겠나? 그저 우리 백성들을 통해 보고 듣는 것이 바로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이다. 제(帝)[15]가 문왕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말의 경우도, 그게 어찌 하늘이 조잘조잘 간곡하게(諄諄) 명령했다는 것이겠나? 문왕이 하고자 한 것이[16] 곧 이치상(理)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이요, 그것이 곧 제(帝)가 명령했다(命之)는 것이다.[17]

又曰: “若一件事, 民人皆以爲是, 便是天以爲是; 若人民皆歸往之, 便是天命之也.”

또 말함: 예컨대 어떤 일을 백성들이 모두 옳다고 여긴다면 그게 바로 하늘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에게 백성이 모두 귀순한다면 그게 바로 하늘이 명했다(天命之)는 것이다.

又曰: “此處甚微, 故其理難看.” 賀孫(62이후).

또 말함: 이 부분은 매우 미묘하므로 그 이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4 “顧諟天之明命”, '諟', 是詳審, '顧諟', 見得子細. 僩(69이후).

'고시천지명명(顧諟天之明命)'[18]에서 '시(諟)'는 상세히 살핀다는 뜻이요[19] '고시(顧諟)'는 자세히 이해한다는 뜻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5 “顧諟天之明命”, 只是照管得那本明底物事在. 燾(70때).

'고시천지명명'은 단지 원래부터 밝은 저 물건을 잘 돌보는(照管)[20] 것이다.[21]

도(燾)의 기록. (70세)

  •  16:6 “顧諟天之明命”, 便是常見這物事, 不敎昏著. 今看大學, 亦要識此意. 所謂“顧諟天之明命”, “無他, 求其放心而已”. 方子(59이후). 佐同.

'고시천지명명'은 바로 이 물건을 항상 지켜봐서 어둡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제 '대학'을 볼 때도 역시 이 뜻을 알아야 한다.[22] 이른바 '고시천지명명'은 '다름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23]

방자(方子)의 기록. 좌(佐)의 기록도 같다. (59세 이후) [24]

  •  16:7 先生問: “‘顧諟天之明命’, 如何看?”

선생의 질문: '고시천지명명'을 어떻게 보는가?

答云: “'天之明命', 是天之所以命我, 而我之所以爲德者也. 然天之所以與我者, 雖曰至善, 苟不能常提撕省察, 使大用全體昭晰無遺, 則人欲益滋, 天理益昏, 而無以有諸己矣.”

대답: '하늘의 밝은 명령(明命)'은 하늘이 나에게 명령한 것을 내가 나의 덕(德)으로 삼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지극히 선하다고는(至善) 하나, 만일 항상 또렷한 정신으로 성찰하지(提撕省察)[25] 못하여 그 (밝은 명령의) 전체대용(大用全體)[26]을 남김없이 명료하게(昭晰) 하는데 실패한다면 인욕은 날로 불어나고 천리는 날로 어두워져서 자기 안에 (밝은 명령을) 간직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曰: “此便是至善. 但今人無事時, 又卻恁昏昏地; 至有事時, 則又隨事逐物而去, 都無一箇主宰. 這須是常加省察, 眞如見一箇物事在裏, 不要昏濁了他, 則無事時自然凝定, 有事時隨理而處, 無有不當.” 道夫(60이후).

선생의 말: 이것[27]은 지극히 선한(至善) 것이다. 다만 요즘 사람들은 일이 없을 때도 흐리멍텅하고, 일이 있을 때는 또 사건과 사물에 끌려가버려 주재하는 힘(主宰)[28]이 전혀 없다. 이것[29]을 항상 성찰해서, 마치 정말로 여기에 있는 어떤 물건 하나를 보는 것처럼 해서 그것[30]을 어둡고 탁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일이 없을 때는 자연히 고요하게 안정되고(凝定), 일이 있을 때는 이치에 따라 처리하여 마땅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8 “顧諟天之明命”, 古註云: “常目在之.” 說得極好. 非謂有一物常在目前可見, 也只是長存此心, 知得有這道理光明不昧. 方其靜坐未接物也, 此理固湛然淸明; 及其遇事而應接也, 此理亦隨處發見. 只要人常提撕省察, 念念不忘, 存養久之, 則是理愈明, 雖欲忘之而不可得矣. 孟子曰: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所謂求放心, 只常存此心便是. 存養旣久, 自然信向. 決知堯舜之可爲, 聖賢之可學, 如菽粟之必飽, 布帛之必煖, 自然不爲外物所勝. 若是若存若亡, 如何會信, 如何能必行.

'고시천지명명'에 대한 옛 주석에서 '항상 눈을 거기에 둔다'고 했는데, 이 설명이 매우 좋다.[31] 이는 눈 앞에 늘 어떤 물건이 있어서 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이 마음을 길이 간직하여 이 도리가 광명하고 어둡지 않음을 알라는 것이다. 이제 막 고요히 앉아 아직 사물을 접하지 않았을 때에도 이 이치는 물론 밝고 투명(湛然淸明)[32]하지만, 일을 만나 대응할 때에도 이 이치는 역시 가는 곳마다 드러난다. 사람들이 늘 또렷한 정신으로 성찰하여(提撕省察) 매 순간 잊지 않고(念念不忘) (이것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기르기만(存養)[33] 하면 이 이치가 더욱 밝아져서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게 된다. 맹자가 말했다: '학문(學問)하는 방법에는 다른 것이 없고, 그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34] 이른바 '잃어버린(放) 마음을 찾는다'는 것은, 그저 이 마음을 항상 간직하기만(存) 하면 된다.[35] 오래도록 간직하고 기르면 자연히 믿게 된다. 요순처럼 될 수 있고(堯舜之可爲)[36] 성현을 배울 수 있음을[37] 확신(決知)하기를 마치 밥을 먹으면 반드시 배부르고 옷을 걸치면 반드시 따뜻해지는 것처럼 (확실하게) 한다면 자연히 외물(外物)에게 패배하지 않게 된다. 만약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있었다 없었다하면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반드시 실행할 수 있겠나.

又曰: “千書萬書, 只是敎人求放心. 聖賢敎人, 其要處皆一. 苟通得一處, 則觸處皆通矣.” 僩(69이후).

다시 말함: '천 권, 만 권의 책이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라고 가르칠 뿐이다. 성현이 사람을 가르치는 요점은 모두 하나이다. 일단 한 곳이라도 통하면, 접촉하는 곳마다 다 통하게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9 問: “‘顧諟天之明命’, 言‘常目在之’, 如何?”

질문: '고시천지명명'에서 '항상 눈을 거기에 둔다(常目在之)'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顧諟, 是看此也. 目在, 是如目存之, 常知得有此理, 不是親眼看. ‘立則見其參於前, 在輿則見其倚於衡’, 便是這模樣. 只要常常提撕在這裏, 莫使他昏昧了. 子常見得孝, 父常見得慈, 與國人交, 常見得信.” 㝢(61이후).

대답: '고시(顧諟)'는 이것을 본다는 것이다. '눈을 둔다(目在)'는 것은 눈길을 거기에 둔다(目存之)는 말과 같으니, 항상 이 이치가 있음을 알고 있으라는 것이지 실제로 육안으로 보라는 것이 아니다.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본다'[38]는 것이 바로 이런 식(模樣)이다. 단지 항상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하여[39] 그것이[40] 어두워지지(昏昧) 않게 해야 한다. 아들은 항상 효성의 도리(孝)를 보고, 아비는 항상 자애의 도리(慈)를 보고, 나라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항상 신의의 도리(信)를 본다.[41]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0 問: '顧, 謂常目在之'. 天命至微, 恐不可目在之, 想只是顧其發見處.”

질문: '고(顧)는 항상 눈을 거기에 둔다는 말이다'[42]의 경우, 하늘의 명령은 지극히 은미해서 눈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그것이 발현된 지점을 보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曰: “只是見得長長地在面前模樣. ‘立則見其參於前, 在輿則見其倚於衡’. 豈是有物可見!” 義剛(64이후).

대답: 단지 그것이 항상 내 앞에 있음을 보라는 식(模樣)이다.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게 어찌 실제로 물건이 있어 볼 수 있다는 것이겠나?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6:11 問“常目在”之意.

'항상 눈을 둔다'의 의미에 관한 질문.

先生以手指曰: “如一件物在此, 惟恐人偸去, 兩眼常常 在此相似.” 友仁(69때).

선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함: 마치 어떤 물건이 여기에 있는데 누군가가 훔쳐 갈까 두려워 두 눈의 시선이 항상 거기에 있는 것과 같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43]

  •  16:12 問: “如何目在之?”

질문: 눈이 거기에 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44]

曰: “常在視瞻之間, 蓋言存之而不忘.” 㝢(61이후).

대답: 항상 시야에 두는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3 因說“天之明命”, 曰: “這箇物事, 卽是氣, 便有許多道理在裏. 人物之生, 都是先有這箇物事, 便是天當初分付底. 旣有這物事, 方始具是形以生, 便有皮包裹在裏. 若有這箇, 無這皮殼, 亦無所包裹. 如草木之生, 亦是有箇生意了, 便會生出芽櫱; 芽櫱出來, 便有皮包裹著. 而今儒者只是理會這箇, 要得順性命之理. 佛·老也只是理會這箇物事. 老氏便要常把住這氣, 不肯與他散, 便會長生久視. 長生久視也未見得, 只是做得到, 也便未會死. 佛氏也只是見箇物事, 便放得下, 所以死生禍福都不動. 只是他去作弄了.”

'천지명명'에 대해 설명하다가 말함: 이 물건은[45] 기운(氣)인데, 많은 도리가 그 안에 있다. 사람과 사물이 태어날 적에도 모두 먼저 이것부터 있으니 바로 하늘이 최초에 나누어준(分付) 물건이다. 이 물건이 먼저 있어야 비로소 형태를 갖추어 태어나고 껍질[46]이 생겨 그것을 감싸안게 된다. 만약 이 물건은 있는데 껍질이 없다면 역시 감싸안을 수 없다. 초목이 태어날 적에도 마찬가지로 먼저 생의(生意)가 있고 나서 싹이 나올 수 있고, 싹이 나와야 껍질이 생겨 감싸안게 된다. 지금 유자(儒者)는 단지 이 물건을 이해하여 성명의 이치(性命之理)에 순응하고자 할 뿐이다. 불교와 노장 또한 단지 이 물건을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노씨(老氏)는 이 기운(氣)을 항상 잡아두어 흩어지지(散) 않게 하여[47] 장생구시(長生久視)[48]하고자 한다. 장생구시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 이론상) 완벽히 해내기만 한다면 역시 불로불사할 수 있다. 불씨(佛氏) 역시 이 물건을 보고 (집착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사생화복(死生禍福)에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이 물건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을 뿐이다.[49]

又曰: “'各正性命, 保合太和', 聖人於乾卦發此兩句, 最好. 人之所以爲人, 物之所以爲物, 都是正箇性命. 保合得箇和氣性命, 便是當初合下分付底. 保合, 便是有箇皮殼包裹在裏. 如人以刀破其腹, 此箇物事便散, 卻便死.” 蘷孫(68이후).

다시 말함: 성인이 '각정성명(各正性命), 보합태화(保合太和)'[50]라는 두 구절을 건괘(乾卦)에 둔 것이 매우 좋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 사물이 사물인 이유가 다 이 (하늘이 부여해준) 바른 성명(性命)이다. 온전히 지켜냈다는(保合) 음양의 조화로운 기운과 성명은 바로 최초에 하늘이 나누어준(分付) 물건이다. 보합(保合)은 껍질로 감싸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칼로 배를 가르면 이 물건이 흩어져서[51] 죽게 된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4 而今人會說話行動, 凡百皆是天之明命. “人心惟危, 道心惟微”, 也是天之明命. 蘷孫(68이후).

지금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늘의 밝은 명령 때문이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52]는 것 또한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傳二章釋新民

[편집]

전 2장. '신민(新民)' 해석.

  •  16:15 “苟日新”一句是爲學入頭處. 而今爲學, 且要理會“苟”字. 苟能日新如此, 則下面兩句工夫方能接續做去. 而今學者只管要日新, 卻不去“苟”字上面著工夫. “苟日新”, 苟者, 誠也. 泳(66때).

'진실로 어느 하루 새로워졌거든(苟日新)'[53] 한 구절은 배움에 들어가는 입구이다. 이제 배움에 종사하려면 우선 '진실로(苟)'라는 한 글자를 헤아려야 한다. 진실로 어느 하루 이렇게 새로워질 수 있어야 그 아래의 두 구절 공부[54]를 연이어 해나갈 수 있다. 오늘날 배우는 이들은 그저 '일신(日新)'하려고만 하지 '진실로(苟)' 부분에 힘을 쓰려하지 않는다. '구일신'에서 '구(苟)'는 '진실로'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6 苟, 誠也. 要緊在此一字. 賀孫(62이후).

'구(苟)'는 '진실로(誠)'이다. 이 한 글자가 핵심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7 “苟日新”. 須是眞箇日新, 方可“日日新, 又日新”. 泳(66때).

'구일신(苟日新)'의 경우, 반드시 진정으로 어느 하루 새로워져야 비로소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 또 하루 새롭게(日日新, 又日新)'할 수 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8 舊來看大學日新處, 以爲重在後兩句, 今看得重在前一句. “苟”字多訓“誠”字. 璘(62때).

이전에 '대학'의 '일신(日新)' 부분을 볼 적에는 뒤쪽 두 구절에 중점이 있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첫 구절에 중점이 있음을 알겠다. '구(苟)' 자는 대개 '진실로'로 풀이한다.

린(璘)의 기록. (62세)

  •  16:19 “苟”字訓誠, 古訓釋皆如此. 乍見覺差異. 人誠能有日新之功, 則須日有進益. 若暫能日新, 不能接續, 則前日所新者, 卻間斷衰頹了, 所以不能“日日新, 又日新”也. 人傑(51이후).

'구(苟)'자는 '진실로(誠)'로 풀이하니, 옛 훈석(訓釋)도 모두 이러하다. 얼핏 보면(乍見) 두 글자가 다르다고 느껴질 것이다. 누군가 진실로(誠) 어느 하루 새로워지는 성취(功)가 있었으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매일 진보가 있어야 한다. 만약 잠시동안 그날 하루 새로워질 수 있었으되 그것을 지속하지 못하면 이전에 새로워졌던 것도 끊어지고 쇠퇴해버린다. 그래서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 또 하루 새롭게(日日新, 又日新)'하지 못하게 된다.

  •  16:20 “‘苟日新’, 新是對舊染之汙而言. ‘日日新, 又日新’, 只是要常常如此, 無間斷也. 新與舊, 非是去外面討來. 昨日之舊, 乃是今日之新.”

'구일신(苟日新)'에서 '신(新)'은 지난날(舊)의 오염의 반댓말이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은 그저 항상 그렇게 하여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新)이냐 구(舊)냐 하는 것은 바깥에서 가져오는(討)[55] 것이 아니다. 어제의 구(舊)가 오늘의 신(新)이다.

道夫云: “這正如孟子‘操存舍亡’說, 存與亡, 非是有兩物.”

내(道夫)가 말함: 이는 맹자의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진다(操存舍亡)'는 말에서[56] '있음(存)'과 '없음(亡)'이 두 가지 별개의 물건이 아닌 것과 꼭 같습니다.

曰: “然. 只是在一念間爾. 如‘顧諟天之明命’, 上下文都說明德, 這裏卻說明命. 蓋天之所以與我, 便是明命; 我之所得以爲性者, 便是明德. 命與德皆以明爲言, 是這箇物本自光明, 顯然在裏, 我卻去昏蔽了他, 須用日新. 說得來, 又只是箇存心. 所以明道云: “聖賢千言萬語, 只是欲人將已放之心約之使反覆入身來, 自能尋向上去, 下學而上達也.” 道夫(60이후).

대답: 그렇다. 단지 한 순간의 생각(一念間)에 (마음을 잡아서 간직하느냐 아니면 놓쳐버리느냐가) 달려있을 뿐이다.[57] 예컨대 '고시천지명명(顧諟天之明命)' 같은 경우 앞 뒤 문장의 표현은 모두 '명덕(明德)'인데, 여기서만 명명(明命)이라고 말한다.[58] 대개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밝은 명령(明命)이고, 내가 받아서 나의 본성(性)으로 삼은 것이 밝은 덕(明德)이다. 명령(命)과 덕(德)을 모두 밝다(明)고 수식하고 있는데, 이 물건은 본래 광명하여 명백히(顯然) 우리 속에 있으나 우리 스스로 그것을 (물욕으로) 어둡게 뒤덮어버렸기 때문에 날마다 새롭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결국 '마음을 간직한다(存心)'는 것일 뿐이다.[59] 그래서 명도(明道)[60]는 이렇게 말했다. '성현의 수많은 말은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놓쳐버린 마음을(已放之心) 붙잡아와서(約之)[61] 자기 안에 되돌려 놓음으로써(反覆入身來) 스스로 위를 향해 나아가(尋向上去)[62] '비근한 것을 익혀 고원한 것에 통달(下學而上達)'[63]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64]

  •  16:21 湯“日日新”. 書云: “終始惟一, 時乃日新.” 這箇道理須是常接續不已, 方是日新; 才有間斷, 便不可. 盤銘取沐浴之義. 蓋爲早間盥濯才了, 晩下垢汙又生, 所以常要日新. 德明(44이후).

탕(湯)임금의 '일일신(日日新)'에 대해[65] '서경'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것이 바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終始惟一, 時[66]乃日新).'고 했다.[67] 이 도리는 항상 이어져 끊임이 없어야만 비로소 '일신(日新)'이다. 잠시라도 끊어지면 안 된다. 탕 임금의 반명(盤銘)은 목욕(沐浴)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다.[68] 대개 아침에 다 씻어도 저녁이면 다시 더러워지기 때문에 항상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22 徐仁父問: “'湯之盤銘曰 ... 日日新.’ 繼以‘作新民’. 日新是明德事, 而今屬之‘作新民’之上. 意者, 申言新民必本於在我之自新也.”

서인보(徐仁父)의 질문: (대학 전 2장은) '탕(湯)임금의 반명(盤銘)에서 ...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日日新)'를 '스스로를 새롭게하려는 백성들을 진작시킨다(作新民)'[69]로 잇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日新) 것은 자기 덕을 밝히는(明德) 일인데, 이제 여기서는 '스스로를 새롭게하려는 백성들을 진작시킨다(作新民)'에 소속시킵니다.[70] 제 생각에는(意者) 백성을 새롭게 하는(新民)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새롭게 하는 것에(自新) 기반해야 함을 거듭 간곡히(申言) 말한 것 같습니다.

曰: “然. 莊子言: ‘語道而非其序, 則非道矣.’ 橫渠云: ‘如中庸文字, 直須句句理會過, 使其言互相發.’ 今讀大學, 亦然. 某年十七八時, 讀中庸大學, 每早起須誦十遍. 今大學可且熟讀.” 賀孫(62이후).

대답: 그렇다. 장자(莊子)는 '도를 말하면서 그 순서가 틀렸으면 이는 도가 아니다'[71]고 했고 횡거(橫渠)[72]는 '중용(中庸)의 글은 반드시 한 구절씩 순서대로 이해해 나가면서 그 말이 서로를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73]고 했다. 이제 '대학'을 읽을 때도 그러해야 한다. 내가 17, 18세 무렵 '중용'과 '대학'을 읽을 적에는 매일 아침 열 번씩 송독(誦)[74]했다. 이제 (여러분도) 우선 '대학'을 익숙해질 때까지 읽는 것이 좋겠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3 鼓之舞之之謂作. 如擊鼓然, 自然使人跳舞踴躍. 然民之所以感動者, 由其本有此理. 上之人旣有以自明其明德, 時時提撕警策, 則下之人觀瞻感發, 各有以興起其同然之善心, 而不能已耳. 僩(69이후).

'작(作)'은 사람을 고무(鼓舞)시킨다는 뜻이다. 북(鼓)을 치는 것과 같으니, 자연히 사람들을 춤추고(舞) 뛰게 만든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들을 일신하려고 고무하는 위정자의 노력에) 감격하여 움직이는 까닭은 그들에게 본래부터 이 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먼저 자신의 밝은 덕을 밝힌 뒤에 때때로 일깨우고 독려해주면(提撕警策) 아랫사람은 그것을 보고 감격하고 발심하여 각자 (누구나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그 똑같은 선한 마음을 일으켜 멈출 수 없게 되는 것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4 “周雖舊邦, 其命維新.” 自新新民, 而至於天命之改易, 可謂極矣. 必如是而後爲“止於至善”也. 僩(69이후).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명(命)은 새롭다.'[75] 자신을 새롭게 하고(自新)[76] 백성들을 새롭게 하여(新民)[77] 천명을 교체하는(改易) 일에 이르렀으니,[78] 지극하다(極)고 할 만하다. 반드시 이와 같아야만 '최선의 지점에 머무른다(止於至善)'[79]가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5 “其命維新”, 是新民之極, 和天命也新. 大雅(49이후).

'기명유신(其命維新)'은 신민(新民)의 극치로 천명(天命)조차도 새로워졌다는 것이다.[80]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傳三章釋止於至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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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3장. '지어지선(止於至善)'[81] 해석.

  •  16:26 “緡蠻黃鳥, 止于丘隅.” 物亦各尋箇善處止, “可以人而不如鳥乎”! 德明(44이후).

'면만(緡蠻)거리며 우는 황조(黃鳥)여, 깊은 산 모퉁이(丘隅)에 멈추었도다(止)[82].'[83] 사물들도 각자 좋은 자리(善處)를 찾아서 멈추거늘(止) '사람이면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84]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27 “於緝熙敬止.” 緝熙, 是工夫; 敬止, 是功效收殺處. 㝢(61이후).

'오! 계속 이어 밝히어 경건히 그치셨도다!'[85] '계속 이어 밝히다(緝熙)'는 노력하는 과정이다(工夫). '경지(敬止)'는 성취한 결과(功效)를 수확(收殺)하는[86] 지점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28 或言: “大學以知止爲要.”

누군가의 말: '대학'에서는 머무를 자리를 아는 것(知止)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曰: “如君便要止於仁, 臣便要止於敬, 子便止於孝, 父便止於慈. 若不知得, 何緣到得那地位. 只這便是至善處.”

대답: 예컨대 임금은 인(仁)에 머물러야 하고 신하는 경(敬)에 머물러야 하고 아들은 효(孝)에 머물러야 하고 아비는 자(慈)에 머물러야 한다.[87] 만약 (이러한 지점들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수로 저 지점들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이것들이 바로 지극히 선한(至善) 지점들이다.

道夫問: “至善, 是無過不及恰好處否?”

나(道夫)의 질문: 지극히 선한 지점이란 지나침도(過) 못미침도(不及) 없이 딱 알맞은 지점 아닙니까?[88]

曰: “只是這夾界上些子. 如君止於仁, 若依違牽制, 懦而無斷, 便是過, 便不是仁. 臣能陳善閉邪, 便是敬; 若有所畏懼, 而不敢正君之失, 便是過, 便不是敬.” 道夫(60이후).

대답: 이는 (과불급이라는) 두 영역 사이 경계선의(夾界) 아주 작은 부분이다. 임금이 인(仁)에 머무르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주변에 끌려다니며(牽制) 이랬다저랬다(依違)하며 우유부단한 것이 지나침(過)이고, 불인(不仁)이다. 신하가 능히 선을 개진하고(陳善) (임금의) 삿된 마음을(邪心) 막는 것이 경(敬)이다.[89] 만일 두려움을 느끼고 임금의 잘못을 감히 바로잡지 못한다면 곧 지나침(過)이고 불경(不敬)이다.[90]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9 問: “至善, 如君之仁, 臣之敬, 父之慈, 子之孝者, 固如此. 就萬物中細論之, 則其類如何?”

질문: 지극히 선한 지점이란, 예컨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비의 자(慈), 아들의 효(孝) 같은 경우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사만물의 세세하고 구체적인 경우에서 논하자면 그 (지극히 선한 지점의) 종류가 어떻게 됩니까?[91]

曰: “只恰好底便是. ‘坐如尸’, 便是坐恰好底; ‘立如齊’, 便是立恰好底.” 淳(61·70때). 㝢同.

대답: (과불급 없이) 딱 알맞은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시동(尸童)[92]처럼 앉으라'는 것은 앉아있을 때의 딱 알맞은 방법이요 '제사 모시듯 서 있으라'는 것은 서있을 때의 딱 알맞은 방법이다.[93]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우(㝢)의 기록도 동일하다.

  •  16:30 周問: “注云: ‘究其精微之蘊, 而又推類以通[94]其餘.’ 何也?”

주(周)의 질문: 대학장구에서 '그 정밀하고 은미한(精微) 깊은 뜻(蘊)을 탐구하고, 다시 유추하여 그 나머지 것들에 통한다'[95]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大倫有五, 此言其三, 蓋不止此. ‘究其精微之蘊’, 是就三者裏面窮究其蘊; ‘推類以通其餘’, 是就外面推廣, 如夫婦·兄弟之類.” 淳(61·70때).

대답: 큰 윤리(大倫)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 세 가지만 언급하고 있다.[96] (윤리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 정밀하고 은미한 깊은 뜻을 탐구한다'는 것은 언급된 세 가지의 깊은 뜻을 끝까지 파고든다는(窮究) 것이고, '유추하여 그 나머지 것들에 통한다'는 것은 바깥쪽으로, 예컨대 부부나 형제관계와 같은 윤리까지 미루어 넓히는 것이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謨錄云: “須是就君仁, 臣敬, 子孝, 父慈, 與國人信上推究精微, 各有[97]不盡之理. 此章雖人倫大目, 亦只擧得三件. 必須就此上推廣所以事上當如何, 所以待下又如何. 尊卑大小之間, 處之各要如此.”>

<모(謨)의 기록: 군주의 인(仁), 신하의 경(敬), 자식의 효(孝), 부모의 자(慈), 나라 사람들과의 신(信)이라는 지점에서 정밀하고 은미한 것을 탐구해야(推究) 하지만, 이것들 각각으로는 채 다하지 못한 이치가 있다. 이 장은 인륜의 큰 항목이지만 세 가지만 거론했을 뿐이다. 반드시 이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어떠해야 하고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은 또 어떠해야 하는지까지 미루어 넓혀가야 한다. 존비(尊卑)와 대소(大小)간의 관계에서도 각각 이렇게 처신해야 한다.>

  •  16:31 問: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此是詩人美武公之本旨耶? 姑借其詞以發學問自修之義耶?”

질문: '"자르고(切) 간(磋) 듯하다"[98]는 것은 배움을 말한(道學) 것이다. "쪼으고(琢) 간(磨) 듯하다"[99]는 것은 자신을 닦은(自修) 것이다.[100]'[101] 이것은 (시경 기욱편의) 시를 쓴 사람이 무공(武公)[102]을 찬미한 본래 취지입니까? 아니면 임의로 그 말을 빌려 학문(學問)과 수양(自修)의 뜻을 드러낸 것입니까?[103]

曰: “武公大段是有學問底人. 抑之一詩, 義理精密. 詩中如此者甚不易得.” 儒用(70때).

대답: 무공은 상당히 학문이 있는 사람이었다. 억(抑)[104] 편은 의리(義理)가 정밀하다. 시경 속에서 이런 것은 대단히 얻기 어렵다.

유용(儒用)의 기록. (70세)

  •  16:32 “至善”一章, 工夫都在“切磋琢磨”上. 泳(66때).

'지선(至善)' 장에서 힘 쓰는(工夫) 지점은 모두 '절차탁마(切磋琢磨)'에 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33 旣切而復磋之, 旣琢而復磨之, 方止於至善. 不然, 雖善非至也. 節(64이후).

자르고 나서 다시 갈고, 쪼으고 나서 다시 갈아내야 비로소 지극히 선한 지점에 멈춘 것이다(止於至善). 그렇지 않으면 비록 선하다곤 하더라도 지극한 것은 아니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34 傳之三章, 緊要只是“如切如磋, 如琢如磨”. 如切, 可謂善矣, 又須當磋之, 方是至善; 如琢, 可謂善矣, 又須當磨之, 方是至善. 一章主意, 只是說所以“止於至善”工夫, 爲下“不可諠兮”之語拖帶說. 到“道盛德至善, 民不能忘”, 又因此語一向引去. 大槪是反覆嗟詠, 其味深長. 他經引詩, 或未甚切, 只大學引得極細密. 賀孫(62이후).

대학 전(傳) 제 3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르고 간 듯하고, 쪼고 간 듯하다'이다. 자르기만 해도 선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시 또 갈아야만 비로소 지극히 선한 것이 된다. 쪼으기만 해도 선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시 또 갈아내야 비로소 지극히 선한 것이 된다. (기욱편) 제 1 장(章)[105]의 취지(主意)는 '지어지선(止於至善)'공부의 방법을 설명하려는 것으로, 아래의 '(백성들이) 잊지 못하네(不可諠兮)'라는 말까지 연결(拖帶)해서 설명하고 있다.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道盛德至善, 民不能忘)'[106]의 경우도 또 이 말[107]에서부터 곧바로(一向) 이끌어낸 것이다.[108] 이는 대체로 반복하여 영탄한 것으로 그 의미가 심장하다(其味深長). 다른 경서에서 시를 인용할 때는 딱 맞지(切) 않는 경우도 있는데, 오직 '대학'만큼은 극히 세밀하게 인용한다.[109]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35 魏元壽問切磋琢磨之說.

위원수(魏元壽)가 절차탁마에 관하여 질문.

曰: “恰似剝了一重, 又有一重. 學者做工夫, 消磨舊習, 幾時便去敎盡! 須是只管磨礱, 敎十分淨潔. 最怕如今於眼前道理略理會得些, 便自以爲足, 便不著力向上去. 這如何會到至善田地!” 賀孫(62이후).

대답: 마치 한 겹을 벗겨내면 또 한 겹이 있는 것과 같다. 배우는 이가 공부(工夫)하여 구습(舊習)을 갈아 없애는(消磨)데 언제쯤에나 다 제거하게 될까! 반드시 끊임없이 갈고 닦아(磨礱) 100% 정결하게 해야 한다. 지금 눈앞의 도리를 약간 이해했다고 해서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더 위로 나아가려 힘쓰지 않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지극히 선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겠나!

하손의 기록. (62세 이후)

  •  16:36 骨·角, 卻易開解; 玉·石, 儘著得磨揩工夫. 賀孫(62이후).

뼈와 뿔은 비교적 쉽게 잘라낼(開解) 수 있으나[110] 옥과 돌은 모두 갈고 닦는(磨揩) 노력(工夫)이 많이 필요하다.[111]

하손의 기록. (62세 이후)

  •  16:37 瑟, 矜莊貌; 僩, 武貌; 恂慄, 嚴毅貌. 古人直是如此嚴整, 然後有那威儀烜赫著見. 德明(44이후).

'슬(瑟)'은 긍지있고 장엄한(矜莊) 모습이고, '한(僩)'은 무인의 풍모(武)이며, '준률(恂慄)'은 엄숙하고 굳센(嚴毅)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줄곧(直是) 이렇게 엄숙하고 단정하였으니, 그런 뒤에야 비로소 저 위엄있는 몸짓(威儀)이 혁혁하게(烜赫)[112] 드러났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38 問: “解瑟爲嚴密, 是就心言? 抑就行言?”

질문: '슬(瑟)'을 엄밀(嚴密)로 해석한 것은 마음을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행동을 두고 한 말입니까?

曰: “是就心言.”

대답: 마음을 두고 한 말이다.

問: “心如何是密處?”

질문: 어떻게 해야 마음이 엄밀(密)한 것입니까?

曰: “只是不粗疏, 恁地縝密.” 㝢(61이후). 

대답: 거칠고 소략하지 않고 이렇게 세세하고 촘촘한(縝密) 것이다.

  •  16:39 “僩, 武毅之貌.” 能剛强卓立, 不如此怠惰闒颯. 僩(69이후).

'한(僩)은 무인처럼 굳센 모습이다.'[113] 강하고 굳건하게 우뚝 설 수 있어서 이처럼 게으르게 퍼질러 시들어있지(怠惰闒颯) 않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40 問: “瑟者, 武毅之貌; 恂慄, 戰懼之貌. 不知人當戰懼之時, 果有武毅之意否?”

질문: '슬(瑟)'은 무인처럼 굳센 모습이고, '준률(恂慄)'은 전율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입니다.[114]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이 전율하고 두려워할 때에 정말로 무인처럼 굳센 기상이 있습니까?

曰: “人而懷戰懼之心, 則必齋莊嚴肅, 又烏可犯!” 壯祖(미상).

대답: 사람이 전율하고 두려운 마음을 품으면 반드시 장중하고 엄숙해지니(齋莊嚴肅) 또 어찌 범(犯)할 수 있겠나![115]

장조(壯祖)의 기록.

  •  16:41 問: “恂慄, 何以知爲戰懼?”

질문: '준률(恂慄)'이 전율과 두려움을 뜻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曰: “莊子云: ‘木處, 則恂慄危懼.’” 廣(65이후).

대답: 장자(莊子)가 말하길 '나무 위에 있으면 준률(恂慄)하여 두렵다.'고 했다.[116][117]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6:42 大率切而不磋, 亦未到至善處; 琢而不磨, 亦未到至善處. “瑟兮僩兮”, 則誠敬存於中矣. 未至於“赫兮喧兮”, 威儀輝光著見於外, 亦未爲至善. 此四句是此段緊切處, 專是說至善. 蓋不如此, 則雖善矣, 未得爲至善也. 至於“民之不能忘”, 若非十分至善, 何以使民久而不能忘. 古人言語精密有條理如此. 銖(67이후).

대체로 자르기만 하고 갈지 않으면 역시 지극히 선한 곳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다. 쪼으기만 하고 갈지 않으면 역시 지극히 선한 곳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다. '장중하고 굳세면(瑟兮僩兮)' 진실함과 경건함(誠敬)을 마음 속에 간직하게 된다. (하지만) '혁혁하게(赫兮喧兮)' 위엄있는 몸짓과 광휘(威儀輝光)가 겉으로 드러나는데 이르지 못하면 역시 아직 지극히 선한 것은 아니다. 이 네 구절은[118] 이 단락[119]에서 매우 핵심적인 부분으로, 전적으로 '지극한 선함(至善)'만 해설하고 있다. 대개 이렇게[120] 하지 않으면 비록 선하더라도 '지극히 선한' 것은 될 수 없다. '백성들이 잊지 못하네(民之不能忘)'[121]의 경우, 만약 100% 지극히 선하지 않다면 어떻게 백성들이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할 수 있겠나? 옛사람들의 말은 이렇게 정밀하고 조리가 있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43 “民之不能忘也”, 只是一時不忘, 亦不是至善.

'민지불능망(民之不能忘)'의 경우, 단지 일시적으로 잊지 못하는 것뿐이라면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아니다.

又曰: “‘瑟兮僩兮, 赫兮喧兮’者, 有所主於中, 而不能發於外, 亦不是至善; 務飾於外, 而無主於中, 亦不是至善.” 銖(67이후).

다시 말함: '슬혜한혜, 혁혜훤혜(瑟兮僩兮, 赫兮喧兮)'의 경우, 내면에 주인으로 세운 것이(主於中)[122] 있어도 외면에 발현하지 못한다면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아니다. 외면을 꾸미는 데 힘써도 내면에 주인이 없으면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아니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44 問“前王不忘”云云.

질문: '전대의 왕을 잊지 못하네(前王不忘)'[123] (내용 생략).[124]

曰: “前王遠矣, 盛德至善, 後人不能忘之. ‘君子賢其賢’, 如堯舜文武之德, 後世尊仰之, 豈非賢其所賢乎! ‘親其親’, 如周后稷之德, 子孫宗之, 以爲先祖先父之所自出, 豈非親其所親乎!” 㝢(61이후).

대답: 전대의 왕이 (시간적으로) 멀리 있으나 그의 성대한 덕(盛德)과 지극한 선함(至善)을 후세 사람들이 잊을 수 없다. '군자는 전왕의 현명함을 현명하다 여긴다(君子賢其賢)'[125]는 것은, 예컨대 요임금, 순임금, 문왕과 무왕의 덕을 후세 사람들이 존경하고 우러러 본다. 이것이 어찌 그 현명함을 현명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겠나?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긴다(親其親)'[126]는 것은, 예컨대 주나라 후직(后稷)[127]의 덕을 그 자손들이 종실로 높여서(宗之)[128] 자신들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나온 곳으로 여긴다. 이것이 어찌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45 問“君子賢其賢而親其親.”

'군자현기현이친기친(君子賢其賢而親其親)'에 관한 질문.

曰: “如孔子仰文武之德, 是‘賢其賢’, 成康以後, 思其恩而保其基緖, 便是‘親其親’.” 木之(68때).

대답: 예를 들어, 공자가 문왕과 무왕의 덕을 앙모한 것이 '현기현'이고, 성(成)왕과 강(康)왕[129] 이후 문왕과 무왕의 은혜를 그리워하며 그들이 개창한 기업(基緖)을 지켜나가는 것이 '친기친'이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6:46 或問“至善”章.

누군가가 '지선(至善)' 장[130]에 관해 질문.

曰: “此章前三節是說止字, 中一節說至善, 後面‘烈文’一節, 又是詠歎此至善之意.” 銖(67이후).

대답: 이 장의 앞부분 세 단락[131]은 '멈춤(止)'을 설명하고, 가운데 한 단락은 '지극한 선함(至善)'을 설명하며,[132] 마지막으로 '열문(烈文)'편을 인용한 한 단락은[133] 다시 이 지선(至善)의 의미를 영탄(詠歎)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傳四章釋本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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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4장. '본말(本末)' 해석.

  •  16:47 問“聽訟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소송을 청문하여 판결하는 것은 나도 남과 다르지 않으나, 반드시 (백성들의) 송사 자체가 없게 하리라!'에 관한 질문.[134]

曰: “固是以修身爲本, 只是公別底言語多走作. 如云: ‘凡人聽訟, 以曲爲直, 以直爲曲, 所以人得以盡其無實之辭. 聖人理無不明, 明無不燭, 所以人不敢.’ 如此, 卻是聖人善聽訟, 所以人不敢盡其無實之辭, 正與經意相反. 聖人正是說聽訟我也無異於人, 當使其無訟之可聽, 方得. 若如公言, 則當云‘聽訟吾過人遠矣, 故無情者不敢盡其辭’, 始得. 聖人固不會錯斷了事. 只是它所以無訟者, 卻不在於善聽訟, 在於意誠·心正, 自然有以薰炙漸染, 大服民志, 故自無訟之可聽耳. 如成人有其兄死而不爲衰者, 聞子皐將至, 遂爲衰. 子皐何嘗聽訟? 自有以感動人處耳.” 僩(69이후).

대답: 물론 여기서 자신을 닦는[修身] 것을 근본으로 삼은 것이지만, 자네의 다른 말들은 대부분 본지에서 벗어난다. 예를 들어 (자네가) '평범한 사람들이 소송사건을 청문하여 판결할 적에는 굽은 것을 곧다고 여기고 곧은 것을 굽었다고 여기니, 그래서 (소송 당사자인) 사람들이 실상 없는 말(無實之辭)[135]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모든 이치에 밝고[理無不明] 그 밝음이 모든 곳을 비추므로[明無不燭] 사람들이 감히 실상 없는 말을 다하지 못합니다.’고 한 대목은, 그렇게 되면 오히려 성인이 소송 판결을 남들보다 잘하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인) 사람들이 감히 실상 없는 말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어 경(經)의 의미와 정반대가 된다. 성인이 여기서‘소송의 판결 수준은 나도 남과 다를 게 없다. 응당 판결해야할 소송 자체가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꼭 이렇게 말했다고 해야만 된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성인은) 마땅히 '소송의 판결은 내가 남보다 훨씬 낫다. 그러므로 실상 없는(無情) 자들이 감히 말을 다하지 못한다'고 했어야만 된다. 물론 성인이 사건을 잘못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성인이 (자기 지역에서) 소송이 없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소송 판결을 잘 하는데 있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진실하게 하고[意誠] 마음을 바르게 하여[心正] 자연히 백성의 심지를 물들여 감화시켜(薰炙漸染) 크게 감복시키는데 있다. 그래서 저절로 판결할 소송도 없게 되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성(成) 땅의 어떤 사람이 자기 형이 죽었는데도 최(衰)[136]를 입지 않던 자가 있었는데 자고(子皐)[137]가 부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최(衰)를 입었다.[138] (이 이야기 속에서) 자고가 언제 소송 하나라도 판결한 적이 있던가? 자연스레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48 使他無訟, 在我之事, 本也. 恁地看, 此所以聽訟爲末. 泳(66때).

사람들로 하여금 소송이 없게 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니 근본(本)이다. 이렇게 볼 때, 소송사건을 청문하여 판결하는 것은 말단[末]이 된다.

영(泳) 기록. (66세)

  •  16:49 “無情者不得盡其辭”, 便是說那無訟之由. 然惟先有以服其心志, 所以能使之不得盡其虛誕之辭. 義剛(64이후).

'실상 없는 자들이 말을 다하지 못한다[無情者不得盡其辭]'[139]가 바로 소송 자체가 없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오직 먼저 그들의 심지를 감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服其心志] 그들이 거짓된 말(虛誕之辭)을 다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의강(義剛) 기록. (64세 이후)

  •  16:50 “大畏民志”者, 大有以畏服斯民自欺之志. 卓(미상).

'백성의 심지를 크게 두렵게 한다[大畏民志]'[140] 는 것은, 백성들이 스스로를 속이려는 심지(自欺之志)를 크게 외복(畏服)[141]시킨 것이다.[142]

탁(卓)의 기록.

傳五章釋格物致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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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5장 '격물치지' 해석. [143]

  •  16:51 劉圻父說: “‘人心之靈, 莫不有知; 而天下之物, 莫不有理.’ 恐明明德便是性.”

류기보(劉圻父)가 말함: '사람의 마음은 영명(靈)[144]하므로 지(知)가 없는 경우가 없고,[145] 천하의 사물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다.'[146] 아마도 ‘밝은 덕을 밝히는 것(明明德)’이 곧 본성(性) 같습니다.[147]

曰: “不是如此. 心與性自有分別. 靈底是心, 實底是性. 靈便是那知覺底. 如向父母則有那孝出來, 向君則有那忠出來, 這便是性. 如知道事親要孝, 事君要忠, 這便是心. 張子曰: ‘心, 統性情者也.’ 此說得最精密.”

대답: 그렇지 않다. 마음(心)과 본성(性)은 본래 구분된다. 영명(靈)한 것이 마음(心)이며, 실질적인 내용으로 가득찬(實) 것이 본성(性)이다.[148] 영명함이란 곧 지각(知覺)[149]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를 대하면 효(孝)가 나오고, 임금을 대하면 충(忠)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본성이다.[150] '부모를 섬길 때 효도해야 하고 임금을 섬길 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知道)은 마음(心)이다.[151] 장자(張子)가 '마음(心)은 본성과 감정(性情)을 아우르는(統)[152] 자이다'라고 했는데, 매우 정밀(精密)한 설명이다.

次日, 圻父復說過. 先生曰: “性便是那理, 心便是盛貯該載·敷施發用底.”

다음 날, 유기보가 다시 같은 말을 하자 선생이 말함: 본성(性)이 이치(理)이고, 마음(心)은 그것을 가득 담고있다(盛貯該載)가 발산하여 작동시키는(敷施發用) 것이다.[153]

問: “表裏精粗無不到.”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表裏精粗) 모두 통달하지 않음이 없다'[154]에 관한 질문.

曰: “表便是外面理會得底, 裏便是就自家身上至親至切·至隱至密·貼骨貼肉處. 今人處事多是自說道: ‘且恁地也不妨.’ 這箇便不是. 這便只是理會不曾到那貼底處. 若是知得那貼底時, 自是決然不肯恁地了.” 義剛(64이후). 子寰同.

대답: 겉이란 바깥쪽에서 헤아려 이해(理會)할 수 있는 것이고, 속이란 자기 일신상에서 지극히 친근하고 절실하게, 지극히 은밀하게, 뼈와 살에 사무치는 지점이다. 요즘 사람들은 일을 처리할 때 대개 ‘이 정도만 해도 괜찮겠지’라고 중얼거린다. 이는 잘못이다. 이는 이해(理會)가 깊이 사무치는 지점까지 이른 적이 없는 것이다. 정말로 사무치는 지점까지 이해하면 자연히 결단코 적당히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자환(子寰)의 기록도 동일하다.[155]

  •  16:52 問: “‘因其已知之理推而致之[156], 以求至乎其極’, 是因'定省'之孝以至於色難養志, 因事君之忠以至於陳善閉邪之類否?”

질문: '이미 알고 있는 이치로부터 미루어 지극히 하여 그 극치에 이르기를 추구한다(因其已知之理推而致之, 以求至乎其極)'[157]이란, '저녁에는 부모님의 잠자리를 봐 드리고, 새벽에는 부모님의 안부를 살펴야 한다'[158] 같은 효도로부터 시작하여 안색을 부드럽게 하고(色難)[159]의향을 봉양하는(養志)[160] 효도에 이르고, 임금을 섬기는 충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선한 것을 진설하여 (임금 마음 속의) 삿된 것을 막아내는(陳善閉邪)[161] 충성에 이르는 등등을 의미합니까?

曰: “此只說得外面底, 須是表裏皆如此. 若是做得大者而小者未盡, 亦不可; 做得小者而大者未盡, 尤不可. 須是無分毫欠闕, 方是. 且如陸子靜說‘良知良能', '四端根[162]心’, 只是他弄這物事. 其他有合理會者, 渠理會不得, 卻禁人理會. 鵝湖之會, 渠作詩云: ‘易簡工夫終久大.’ 彼所謂易簡者, 苟簡容易爾, 全看得不子細. ‘乾以易知’者, 乾是至健之物, 至健者, 要做便做, 直是易; 坤是至順之物, 順理而爲, 無所不能, 故曰簡. 此言造化之理. 至於‘可久則賢人之德’, 可久者, 日新而不已; ‘可大則賢人之業’, 可大者, 富有而無疆. 易簡有幾多事在! 豈容易苟簡之云乎?” 人傑(51이후).

대답: 이 말은 다만 바깥쪽만을 설명했을 뿐이다. 반드시 겉과 속이 모두 그러해야 한다. 만약 큰 것을 해냈더라도 작은 것에서 미진하다면 역시 불가하다. 작은 것을 해냈어도 큰 것에서 미진하다면 더욱더 불가하다. 반드시 털끝만큼의 부족함도 없어야만 한다. 예컨대 육자정(陸子靜)[163]은 '양지양능(良知良能)'[164]을 설파하고 '사단(四端)은 마음에 뿌리를 둔다(根心)'[165]고 하는데, 이는 그가 이 물건을 가지고 장난치고(弄)[166]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 외에 응당 헤아려야 하는 것들을 그는 헤아리지 못하면서 오히려 남들이 헤아리려는 것을 금지한다.[167] 아호의 모임(鵝湖之會)[168]에서 그가 지은 시에서 '이간 공부가 끝내 장구하며 위대하다(易簡工夫終久大)'[169]고 하였는데, 그가 말한 이간이란 단지 적당히 하고(苟簡) 쉽게쉽게 가는(容易) 것일 뿐이요, 결코 (사물과 사태의 이치를) 자세하고 주도면밀하게 간파하지 못한다. '건(乾)[170]은 쉬움으로 주관하고(乾以易知)'[171]의 경우, 건이란 지극히 강건한(健) 것이니, 강건한 자는 해야 할 일을 곧바로 해버리므로 정말로(直是) '쉽다'. 곤(坤)[172]은 지극히 유순한 것이니, 이치에 따라 행하여 능하지 못하는 바가 없으므로 '간단하다'. 이는 우주의 생성변화(造化)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오래 지속될 수 있으면 이는 현인의 덕이다(可久則賢人之德)'[173]의 경우,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끝없이 날마다 새로워진다(日新)는 것이다. '크게 될 수 있으면 이는 현인의 사업이다(可大則賢人之業)'의 경우, 크게 될 수 있다는 것은 풍부하게 갖추어(富有) 끝이 없다는 것이다.[174] 이간(易簡)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담겨 있는가! 어찌 적당히 하고(苟簡) 쉽게쉽게 가자는(容易) 말이겠는가?

  •  16:53 任道弟問: “‘致知’章, 前說窮理處云: ‘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且經文‘物格而后知至’, 卻是知至在後. 今乃云‘因其已知而益窮之’, 則又在格物前.”

내 동생인 임도(任道)의 질문: 대학장구의 치지(致知)장의 앞부분에서 이치를 파고드는(窮理) 것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경문(經文)에서는 '사물이 다 탐구된(物格)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而后知至)'라고 되어 있어, 앎(知)이 지극해지는 것이 오히려 나중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파고든다'라고 한다면 이는 또 사물의 탐구(格物)에 선행하게 됩니다.[175]

曰: “知先[176]自有. 才要去理會, 便是這些知萌露. 若懵然全不向著, 便是知之端未曾通. 才思量著, 便這箇骨子透出來. 且如做些事錯, 才知道錯, 便是向好門路, 卻不是方始去理會箇知. 只是如今須著因其端而推致之, 使四方八面, 千頭萬緖, 無有些不知, 無有毫髮窒礙. 孟子所謂: ‘知皆擴而充之,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擴而充之’, 便是‘致’字意思.” 賀孫(62이후).

대답: 앎(知)은 본래부터(元)[177]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가서 살피고 헤아리는 즉시[178] 그 앎의 싹이 틔워나온다.[179] 만약 멍하니 아무 쪽으로도 관심이 향하지 않으면 이는 앎의 싹이 아직 나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일단 (어떤 대상에 대하여) 사유(思量)하기만 하면 그 즉시 (그 대상에 대한) 앎의 골자(骨子)가 싹터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잘못하였을 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이미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이지, 그제서야 비로소 앎(知)을 얻기 위해 헤아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180] 이제는 바로 이 (앎의) 싹(端)[181]에서부터 미루어 나가 지극히 하여(推致) 사방팔방(四方八面), 온갖 복잡한 것들(千頭萬緖)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것이 전혀 없으며, 털끝만큼의 막힘(窒礙)도 없도록 해야 한다. 맹자(孟子)가 말한 '(나에게 있는 사단을) 모두 널리 확장하고 가득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막 타오르기 시작하고 샘이 막 솟아나기 시작하는 기세와 같을 것이다(知皆擴而充之, 若火之始然, 泉之始達).'[182]에서 이 '확장하고 채운다(擴而充之)'는 것이 바로 '치(致)'자의 의미이다.

하손(賀孫)의 기록.[183] (62세 이후)

  •  16:54 致知, 則理在物, 而推吾之知以知之也; 知至, 則理在物, 而吾心之知已得其極也.

치지(致知)란, 사물에 있는 이치(理)를 나의 앎(知)을 미루어서(推) 파악하는(知)[184] 것이다. 지지(知至)란, 사물에 있는 이치에 대하여 나의 마음 속 앎(知)이 (그 이치의) 극치까지 터득한 것이다.

或問: “‘理之表裏精粗無不盡, 而吾心之分別取舍無不切.’ 旣有箇定理, 如何又有表裏精粗?”

누군가의 질문: '대학(大學)'에서 '이치의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내 마음의 분별과 취사가 모두 적절하지 않음이 없다'[185]고 했습니다. 이미 확정된 이치(定理)[186]가 있는데 어째서 다시 (이치들 사이에)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칠다는 차이가 있습니까?

曰: “理固自有表裏精粗, 人見得亦自有高低淺深. 有人只理會得下面許多, 都不見得上面一截, 這喚做知得表, 知得粗. 又有人合下便看得大體, 都不就中間細下工夫, 這喚做知得裏, 知得精. 二者都是偏, 故大學必欲格物·致知. 到物格·知至, 則表裏精粗無不盡.” 賀孫(62이후).

대답: 이치에는 본래 겉과 속, 정밀하고 거칠다는 차이가 있다. (이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에도 자연히 높고 낮고 깊고 얕다는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직 아래 부분의 이치만 잔뜩 이해할 뿐[187] 그 윗부분은[188] 전혀 간파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겉을 안다', '거친 것을 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큰 틀(大體)은 간파하지만, 그 중간에서 세세하게 노력(工夫)하는 것은 전혀 하지 않는다.[189] 이런 경우 '속을 안다', '정밀한 것을 안다'고 한다. 이 둘은 모두 편향되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물을 탐구하고(格物) 앎을 지극히(致知)하게끔 한다. 사물이 다 탐구되고(物格) 앎이 지극해지는(知至) 경지에 이르면 결국 겉과 속, 정밀하고 거친 것을 다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55 問表裏精粗.

'표리정조'[190]에 관한 질문.

曰: “須是表裏精粗無不到. 有一種人只就皮殼上做工夫, 卻於理之所以然者全無是處. 又有一種人思慮向裏去, 又嫌眼前道理粗, 於事物上都不理會. 此乃談玄說妙之病, 其流必入於異端.” 銖(67이후).

대답: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에 모두 통달'[191]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표면적인(皮殼) 부분에서만 공부(工夫)하는 바람에 이치(理)의 소이연(所以然)[192]에 관해서는 전혀 맞는 것이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思慮)이 오직 안쪽으로만(裏) 향하고 눈앞의 도리는 또 거칠다고(粗) 싫어해서(嫌), 실제 사태와 사물들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게 바로 현묘한 것만 읊어대는(談玄說妙) 병통이니 그러다 결국 이단(異端)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56 問表裏.

겉과 속(表裏)에 관한 질문.

曰: “表者, 人物之所共由; 裏者, 吾心之所獨得. 表者, 如父慈子孝, 雖九夷八蠻, 也出這道理不得. 裏者, 乃是至隱至微, 至親至切, 切要處.”

대답: 겉(表)이란 사람과 사물이 다 같이 따라가는(共由)[193] 것이고, 속(裏)이란 내 마음 속으로 홀로 얻은 것이다.[194] 겉이란, 예를 들어 아비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도하는 것은 그 어떤 오랑캐라 할지라도 이 도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195] 속이란, 지극히 은밀하고 지극히 미세하며 지극히 친근하고 지극히 절실한 핵심부분이다.

因擧子思云: “語大, 天下莫能載; 語小, 天下莫能破.”

이어서 자사(子思)의 말을 거론했다: '큰 것으로 말하자면 천하도 이를 싣지 못하며, 작은 것으로 말하자면 천하도 이를 깨뜨리지 못한다.'[196]

又說“裏”字云: “‘莫見乎隱, 莫顯乎微.’ 此箇道理, 不惟一日間離不得, 雖一時間亦離不得, 以至終食之頃亦離不得.” 蘷孫(68이후).

다시 '리(裏)' 자를 설명했다: '은밀한(隱) 것만큼 노출된(見) 것이 없으며 미세한(微) 것만큼 현저한(顯) 것이 없다'[197] 이 도리는 단 하루라도 이탈해서는 안 되고, 단 한 시진(一時)이라도 이탈해서는 안 되며, 심지어 한 식경(終食之頃)[198]조차도 이탈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199]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57 傅問表裏之說.

부(傅)[200]가 표리(表裏)의 해설에 관하여 질문.

曰: “所說‘博我以文, 約我以禮’, 便是. ‘博我以文’, 是要四方八面都見得周匝無遺, 是之謂表. 至於‘約我以禮’, 又要逼向身己上來, 無一毫之不盡, 是之謂裏.”

대답: '문(文)[201]으로 나를 넓혀주시고, 예(禮)로 나를 붙잡아(約)[202]주셨다.'[203]에서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문으로 나를 넓힌다'는 것은 사방팔방으로 모두 남김없이 두루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것을 겉(表)이라고 한다. '예로 나를 붙잡는다'의 경우는 다시 자기 스스로에게 절실하게 밀착하여[204] 털끝만큼의 미진함도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것을 속(裏)이라고 한다.

子升云: “自古學問亦不過此二端.”

자승(子升)[205]의 말: 예로부터 학문(學問)이란 역시 이 두가지 방면(二端)[206]에 불과합니다.

曰: “是. 但須見得通透.” 木之(68때).

대답: 그렇다. 다만 반드시 투철하게 이해해야 한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6:58 問精粗.

'정조(精粗)'에 관한 질문.

曰: “如管仲之仁, 亦謂之仁, 此是粗處. 至精處, 則顔子三月之後或違之. 又如‘充無欲害人之心, 則仁不可勝用; 充無欲穿窬之心, 則義不可勝用’. 害人與穿窬固爲不仁不義, 此是粗底. 然其實一念不當, 則爲不仁不義處.” 蘷孫(68이후).

대답: 관중의 인(管仲之仁) 같은 경우도 인(仁)이라고 한다.[207] 이것은 거칠게(粗)[208] 말한 것이다. 정밀(精)하게 말하자면, 안자(顔子)도 석달에 한 번 쯤 인(仁)을 어겼다[209](고 할 때의 '인'이다). 또, 예를 들어 '남을 해치려 하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인(仁)을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며, 담을 넘어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자신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의(義)를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다.'[210] 같은 경우, 남을 해치고 담을 넘는 것은 물론 불인불의(不仁不義)하다. 이는 (불인불의의)를 거칠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한 순간의 생각이라도 마땅하지 않으면 불인불의하게 된다.[211]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59 周問大學補亡“心之分別取舍無不切”.

주모(周謨)가 대학 보망장의 '마음의 분별과 취사가 모두 적절하지 않음이 없다'[212]에 관하여 질문함.

曰: “只是理徹了, 見善, 端的如不及; 見不善, 端的如探湯. 好善, 便端的‘如好好色’; 惡不善, 便端的‘如惡惡臭’. 此下須連接誠意看. 此未是誠意, 是醞釀誠意來.” 淳(61·70때).

이치를 철저히 꿰뚫으면, 선(善)을 보고는 정말로 (자신은 그에) 못 미치는 듯이 (분발)하며 불선(不善)을 보고는 정말로 끓는 물을 더듬는 것처럼 (기피)하게 되고,[213] 선을 좋아하기를 정말로 미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고 불선을 싫어하기를 정말로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게 된다.[214] 여기서부터는 '성의(誠意)'장과 연결시켜서 보아야 한다. 여기는[215] 아직 의지를 진실하게(誠意) 한 것은 아니고, 의지의 진실성을 준비하는(醞釀)[216] 단계이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謨錄云: “此只是連著誠意說. 知之者切, 則見善眞如不及, 見不善眞如探湯, 而無纖毫不實故爾.”>

<모(謨)의 기록: 이는 성의장과 연결해서 설명한 것이다. 앎이 절실해지면 선을 보고는 정말로 (자신은 그에) 못 미치는 듯이 (분발)하며 불선을 보고는 정말로 끓는 물을 더듬는 것처럼 (기피)하니, 이는 털끝만큼도 (자신의 의지가) 진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  16:60 李問“吾之所知無不切.”

이(李)가 '자신이 아는 바가 절실하지 않음이 없다'[217]에 관하여 질문함.

曰: “某向說得較寬, 又覺不切; 今說較切, 又少些寬舒意; 所以又說道‘表裏精粗無不盡’也. 自見得‘切’字, 卻約向裏面.” 賀孫(62이후).

대답: 내가 예전에 한 설명이 다소 느슨하고(寬) 또 긴절(緊切)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설명은 보다 긴절하지만 또 느슨함(寬)이 좀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겉과 속(表裏), 정밀하고 거친 것(精粗)에 다하지 않음이 없다'[218]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절(切)'자가 사람의 내면을 붙잡아준다는(約)[219]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62세 이후)

  •  16:61 安卿問“全體大用”.

안경(安卿)[220]이 '(마음의) 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221]에 대해 물었다.

曰: “體用元不相離. 如人行坐: 坐則此身全坐, 便是體; 行則此體全行, 便是用.” 道夫(60이후).

대답: 본체(體)와 작용(用)은 원래 뗄 수 없다. 사람이 걸었다 앉았다 하는 것과 같다. 앉으면 이 몸(身)이 통체로 앉으니, 곧 '본체(體)'이다. 걸으면 이 본체(體)가 통체로 움직이니, 곧 '작용(用)'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62 問: “‘格物’章補文處不入敬意, 何也?”

질문: '격물(格物)' 장의 보충문[222]에 경(敬)[223]에 관한 내용을 넣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224]

曰: “敬已就小學處做了. 此處只據本章直說, 不必雜在這裏; 壓重了, 不淨潔.” 㝢(61이후).

대답: 경(敬)은 이미 소학(小學)의 부분에서 다 한 것이다.[225] 이 부분에서는[226] 이 장(本章)의 본래 취지에 맞게 직설(直說)할 뿐, 다른 것을 여기다 섞어 넣을 필요가 없다. 억지로 쑤셔 넣으면 깔끔하지 못하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63 問: “所補‘致知’章何不效其文體?”

질문: 치지(致知)장을 보충하신 글은 왜 (대학의 다른 장들의) 문체를 모방해서 쓰시지 않은 겁니까?

曰: “亦曾效而爲之, 竟不能成. 劉原父卻會效古人爲文, 其集中有數篇論, 全似禮記.” 必大(59-60때).

대답: 모방해서 쓰려고 했는데 끝내 해내지 못했다. 류원보(劉原父)[227]는 옛사람의 문체를 잘 모방해서 그의 문집에는 '예기(禮記)'와 매우 흡사한 글이 몇 편 있다.

필대(必大)의 기록. (59-60세 무렵)

傳六章釋誠意

[편집]

전 제6장. 성의(誠意) 해석.

  •  16:64 “誠其意”, 只是實其意. 只作一箇虛字看, 如“正”字之類. 端蒙(50이후).

'그 의지를 성(誠)하게 한다'는 것은 그 의지를 진실(實)하게 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정말로(正)'의 경우처럼 (성이라는 글자를) 허자(虛字)[228]로 간주하라.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6:65 說許多病痛, 都在“誠意”章, 一齊要除[229]了. 下面有些小爲病痛, 亦輕可. 若不除去, 恐因此滋蔓, 則病痛自若. 泳(66때).

무수한 병통에 대한 설명이 모두 성의(誠意)장에 있다. (여기서 병통들을) 일제히 제거해버리고 나면 이 다음 단계에서 약간의 병통이 있다 해도 대수로울 것 없다(輕可).[230] 만약 (성의의 단계에서 완전히) 뿌리뽑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점점 불어나서(滋蔓)[231] 병통이 예전과 똑같이 될 것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66 問: “誠意是如何?”

질문: 성의(誠意)가 무엇입니까?

曰: “心只是有一帶路, 更不著得兩箇物事. 如今人要做好事, 都自無力. 其所以無力是如何? 只爲他有箇爲惡底意思在裏面牽繫.[232] 要去做好事底心是實, 要做不好事底心是虛. 被那虛底在裏面夾雜, 便將實底一齊打壞了.” 賀孫(62이후).

대답: 마음 속에는 길이 한 줄기(一帶路) 있을 뿐이니, 두 물건이 동시에 붙어있지 못한다.[233] 오늘날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전혀 힘이 없다. 힘이 없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저 악을 행하려는 생각이 속에서 끌어당기고 있어서일 뿐이다.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은 진실(實)하고 좋지 않은 일을 하려는 마음은 허망(虛)하다. 그 허망한 것이 마음 속에 끼어들면 진실된 것마저 함께 무너뜨려 버리고 만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67 詣學升堂云云, 敎授請講說大義.

담주(潭州)의 주학(州學)[234]에 가서 강당에 올랐다. (생략) 교수(敎授)[235]가 대학의 대의(大義)를 강의해 달라고 청하였다.

曰: “大綱要緊只是前面三兩章. 君子小人之分, 卻在‘誠其意’處. 誠於爲善, 便是君子, 不誠底便是小人, 更無別說.” 琮(65때記見).

대답: 큰 틀에서 중요한 부분은 앞쪽 두세 장이다.[236] 하지만 군자와 소인의 갈림길은 '의지를 진실하게(誠其意)'하는 지점에 있다. 선을 행하는 데 진심이면 군자요, 진실하지 않으면 소인이니, 그 밖에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종(琮)의 기록. (65세) [237]

  •  16:68 器遠問: “物格·知至了, 如何到誠意又說‘毋自欺也’?毋者, 禁止之辭?”

기원(器遠)의 질문: 사물이 탐구되고(物格) 앎이 지극해졌는데(知至) 어째서 성의의 단계에서 다시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毋自欺也)'[238]고 하는 것입니까? '말라(毋)'는 것은 금지하는 말 아닙니까?

曰: “物旣格, 知旣至, 到這裏方可著手下工夫. 不是物格·知至了, 下面許多一齊掃了. 若如此, 卻不消說下面許多. 看下面許多, 節節有工夫.” 賀孫(62이후).

대답: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부(工夫)에 착수할 수 있다.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졌다고해서 그 다음 단계들이 모두 일거에 해결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저 많은 (격물치지의) 다음 단계들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음 단계들의 저 많은 설명을 보면 단락마다 다 힘쓸(工夫) 부분이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自欺.>

<이 아래로 '자신을 기만함(自欺)'에 관한 조목들>

  •  16:69 亞夫問: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此章當說所以誠意工夫當如何.”

아부(亞夫)의 질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 이 장은 응당 의지를 진실하게(誠意)하려면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지(工夫當如何) 설명해야 합니다.

曰: “此繼於物格·知至之後, 故特言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若知之已至, 則意無不實. 惟是知之有毫末未盡, 必至於自欺. 且如做一事當如此, 決定只著如此做, 而不可以如彼. 若知之未至, 則當做處便夾帶這不當做底意在! 當如此做, 又被那要如彼底心牽惹, 這便是不實, 便都做不成.” 賀孫(62이후).

대답: 이 장은 물격(物格)과 지지(知至) 뒤를 잇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를 특별히 강조하여 말한 것이다. 만약 앎이 이미 지극하다면 의지는 진실하지 않을 수 없다. 앎이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하면 반드시 스스로를 기만하는 지경에 이른다. 예를 들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반드시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자. 만약 앎이 지극하지 않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부분에 당연히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섞이게 된다!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데 또 저렇게 하려는 마음에 끌려가 버리면 이는 진실하지 못한 것이니 전혀 그 일을 해내지 못하게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70 問: “知不至與自欺者如何分?”

질문: 앎이 지극하지 못함(知不至)[239]과 스스로를 기만함(自欺)[240]은 어떻게 구분합니까?[241]

曰: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只爲是知不至耳.”

대답:‘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가도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겸연쩍게 그 불선(不善)함을 숨기고 선(善)함을 드러낸다.'[242] 이는 단지 앎이 지극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243]

問: “當其知不至時, 亦自不知其至於此. 然其勢必至於自欺.”

질문: 앎이 지극하지 못하고, 이런 지경에 이르렀음을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그 형세상 반드시 스스로를 기만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曰: “勢必至此.”

대답: 형세상 반드시 그 지경에 이른다.

頃之, 復曰: “不識不知者卻與此又別. 論他箇, 又卻只是見錯, 故以不善爲善, 而不自知耳. 其與知不至而自欺者, 固是‘五十步笑百步’, 然卻又別.”

잠시후 다시 말함: 불식부지(不識不知)한 자는 또 이것과 구별된다. 그 경우를 논해보자면[244] 단지 견해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불선을 선으로 여기고도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나 앎이 지극하지 못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사람들이나 '오십보백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구별은 된다.[245]

問: “要之二者, 其病源只是欠了格物工夫.”

질문: 결국 양쪽 다 그 병의 근원은 격물(格物) 공부의 부족함입니다.

曰: “然.” 道夫(60이후).

대답: 그렇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246]

  •  16:71 問劉棟: “看大學自欺之說如何?”

류동(劉棟)에게 질문함: 대학(大學)의 '스스로를 기만함(自欺)'에 관한 설명을 어찌 보는가?

曰: “不知義理, 卻道我知義理, 是自欺.”

대답: 의리(義理)를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은 의리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스스로를 기만함'입니다.

先生曰: “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 知道善我所當爲, 卻又不十分去爲善; 知道惡不可作, 卻又是自家所愛, 舍他不得, 這便是自欺. 不知不識, 只喚做[247]不知不識, 卻不喚做‘自欺’.” 道夫(60이후).

선생이 말함: 스스로를 기만함(自欺)이란,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사람(의 태도)이다. 선이란 자신이 응당 행해야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선을 100% 행하지 않고, 악이란 행해서는 안 됨을 알면서도 스스로 좋아하여 버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부지불식(不知不識)은 그냥 부지불식(不知不識)이라고 부를 뿐 '스스로를 기만한다'고 부르지 않는다.[248]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72 或問“誠其意者毋自欺”.

누군가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249]에 관하여 질문함.

曰: “譬如一塊物, 外面是銀, 裏面是鐵, 便是自欺. 須是表裏如一, 便是不自欺. 然所以不自欺, 須是見得分曉. 譬如今人見烏喙之不可食, 知水火之不可蹈, 則自不食不蹈. 如寒之欲衣, 飢之欲食, 則自是不能已. 今人果見得分曉, 如烏喙之不可食, 水火之不可蹈, 見善如飢之欲食, 寒之欲衣, 則此意自[250]實矣.” 祖道(68때).

대답: 비유하자면, 어떤 물건이 한 덩이 있는데 겉이 은(銀)이고 속이 철(鐵)인 경우가 곧 '스스로를 기만함'이다. 반드시 겉과 속이 일치해야만 '스스로를 기만함'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도덕원칙의 당위성을) 분명하게 깨달아야만 한다. 비유하자면, 오늘날 사람들이 오훼(烏喙)[251]를 먹으면 안 되는 줄 알고, 물구덩이와 불구덩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 자연히 그것들을 먹지도 밟지도 않는 것과 같다.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여 자연히 멈출 수 없는 것과 같다. 만약 오늘날 사람들이 오훼(烏喙)를 먹으면 안 되고 물구덩이와 불구덩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수준으로 분명하게 깨달아서 선(善)을 보기를 마치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고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듯 한다면 그의 의지가 저절로 진실하게 될 것이다.[252]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6:73 自欺, 非是心有所慊. 外面雖爲善事, 其中卻實不然, 乃自欺也. 譬如一塊銅, 外面以金裹之, 便不是眞金. 人傑(51이후).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것(自欺)이란, 그 마음 속에서 통쾌하고 만족스러운[253] 상태가 아닌 것이다. 겉으로는 선한 일을 하지만 그 속은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함(自欺)'이다. 마치 동(銅) 한 덩이를 금(金)으로 감싼 것이 진짜 금(眞金)이 아닌 것과 같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74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注云: “心之所發, 陽善陰惡, 則其好善惡惡, 皆爲自欺, 而意不誠矣.” 而今說自欺, 未說到與人說時, 方謂之自欺. 只是自家知得善好, 要爲善, 然心中卻覺得微有些沒緊要底意思, 便是自欺, 便是虛僞不實矣. 正如金, 已是眞金了, 只是鍛鍊得微不熟, 微有些渣滓去不盡, 顔色或白·或靑·或黃, 便不是十分精金矣. 顔子“有不善未嘗不知”, 便是知之至; “知之未嘗復行”, 便是意之實.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254] 주석에서는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이 양으로는 선하고 음으로는 악하다면 그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모두 자신을 기만함이 되어 의지가 진실하지 않게 된다.'[255]라고 하였다. 지금 '자신을 기만함'이라고 하였는데, 아직 타인과 대화하기 전일 때라야 비로소 '자신을 기만함'이라고 부른다. 자기 자신은 선이 좋은줄 알아서 선을 행하고자 하나,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아주 조금이라도 중요성을 낮춰보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기만이니, 헛되고 거짓되어 진실하지 못하게 된다. 꼭 금과 같다. 이미 진금(眞金)이라 하더라도 제련(鍛鍊)상에 약간의 미진함이 있어서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찌꺼기가 조금 남아서 그 빛깔이 하얗거나 파랗거나 또는 노랗게 되어버리면 100% 정금(精金)이 아니게 된다. 안자(顔子)가 '불선이 있거든 알아채지 못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곧 앎의 지극함(知之至)이요, '불선을 알고나면 (그 잘못을) 반복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그 의지의 진실함이다(意之實).[256]

又曰: '如顔子地位, 豈有不善! 所謂不善, 只是微有差失, 便能知之; 才知之, 便更不萌作'. 只是那微有差失, 便是知不至處.” 僩(69이후).

다시 말함: '안자(顔子)의 경지에서 어찌 불선(不善)함이 있겠는가? 이른바 불선(不善)하다는 것은 다만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안자는) 즉시 자각할 수 있었고, 알기만 하면 곧 다시는 (그 잘못이) 싹터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 바로 앎이 지극하지 못한 지점이다.[257]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75 所謂自欺者, 非爲此人本不欲爲善去惡. 但此意隨發, 常有一念在內阻隔住, 不放敎表裏如一, 便是自欺. 但當致知. 分別善惡了, 然後致其愼獨之功, 而力割去物欲之雜, 而后意可得其誠也. 壯祖(미상).

이른바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것이란, 그 사람이 애초에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258] 단지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려는) 이 의지가 틔워나오는 족족[259] 항상 한 가지 생각이 내면에서 가로막아서,[260] 겉과 속이 일치하지 못하게 할 때가[261] 곧 '스스로를 기만함'이다. 오직 반드시 앎을 지극히하고 선악을 분별한 후에야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는(愼獨)' 공부의 효과를 성취할 수 있고, 섞여든 물욕을 힘써 잘라낸 후에야 그 의지를 진실하게(意可得其誠) 할 수 있다.

장조(壯祖)의 기록. (기록시기 미상)

  •  16:76 [262]只今有一毫不快於心, 便是自欺也. 道夫(60이후).

지금 자기 마음에 터럭만큼이라도 통쾌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곧 '자신을 기만한' 상태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77 看如今未識道理人, 說出道理, 便恁地包藏隱伏, 他元不曾見來. 這亦是自欺, 亦是不實. 想他當時發出來, 心下必不安穩. 賀孫(62이후).

내가 보기에 이제 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도리를 말할 적에는 이처럼 포장하고 감추려는 태도가 있는데, 그는 애초에 (도리를) 본 적도 없다. 이 역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요, 역시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내 생각에 그는 (도리에 관한) 그런 말들을 내뱉을 당시에 마음속이 틀림없이 불안했을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78 國秀問: “大學誠意, 看來有三樣: 一則內全無好善惡惡之實, 而專事掩覆於外者, 此不誠之尤也; 一則雖知好善惡惡之爲是, 而隱微之際, 又苟且以自瞞底; 一則知有未至, 隨意應事, 而自不覺陷於自欺底.”

국수(國秀)의 질문: 대학의 '성의(誠意)' 부분에는 제가 보기에 세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첫째, 내면에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진정성이 전혀 없으면서 오직 겉에서 덮어 숨기는(掩覆) 데만 급급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가장 진실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둘째, 선을 좋아하고과 악을 싫어하는 게 맞다고 알고는 있지만, 은밀하고 미묘한 지점에서 또 구차하게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瞞) 경우입니다. 셋째, 아직 앎이 지극하지 못하여 생각나는대로 사태에 대응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기만하는 데 빠지는 경우입니다.

曰: “這箇不用恁地分, 只是一路, 都是自欺, 但有深淺之不同耳.” 燾(70때).

대답: 이렇게 세 갈래로 나눌 필요 없이 그저 한 갈래 길일 뿐이다. (세 경우) 모두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다만 (기만의) 깊이가 서로 다를 뿐이다. [263]

도(燾)의 기록. (70세)

  •  16:79 次早云: “夜來國秀說自欺有三樣底, 後來思之, 是有這三樣意思. 然卻不是三路, 只是一路, 有淺深之不同.”

이튿날 아침에 말함: 어젯밤 국수(國秀)가 '자신을 기만함에는 세 가지 양상이 있다'고 설명한 것은, 그 후에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이 세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는 세 갈래 다른 길이 아니라 단지 한 갈래 길인데, 깊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又因論以“假託”換“掩覆”字云:‘假託’字又似重了, ‘掩覆’字又似輕, 不能得通上下底字.

다시 이어서 (국수가 말한) '엄부(掩覆)'[264]라는 표현을 '가탁(假託)'[265]이란 표현으로 바꾸는 방안을 논함: '가탁'은 너무 무거운 것 같고, '엄부'는 또 너무 가볍게 느껴져 앞뒤 글자들과 흐름이 잘 통하지 않는다.

又因論誠與不誠, 不特見之於外, 只裏面一念之發, 便有誠僞之分. 譬如一粒粟, 外面些皮子好, 裏面那些子不好. 如某所謂: ‘其好善也, 陰有不好者以拒於內; 其惡惡也, 陰有不惡者以挽其中.’ 蓋好惡未形時, 已有那些子不好·不惡底藏在裏面了.” 燾(70때).

또 이어서 진실함과 진실하지 못함(誠與不誠)을 논함: 겉으로 드러난 것 뿐만이 아니다. 내면에서 한 생각이 틔워나오기만 하면 곧바로 진실함과 거짓됨의 구분이 있다. 곡식(粟) 낱알로 비유하자면, 껍데기는 좋은데 안쪽이 좋지 않은 것과 같다. 내가 이렇게 말했었다. '선을 좋아하나 음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 안쪽에서 막아서고, 악을 싫어하나 음으로는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 안쪽에서 붙잡아 당긴다.'[266] 대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이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적에도 이미 (선을) 좋아하지 않고 (악을) 싫어하지 않는 마음이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  16:80 人固有終身爲善而自欺者. 不特外面, 有[267]心中欲爲善, 而常有箇[268]不肯底意思[269], 便是自欺也[270].[271] 須是要打疊得盡. 蓋意誠而後心可正. 過得這一關後, 方可進. 拱壽(65때).

사람 중에 정말로 평생 선을 행하면서도 자신을 기만하는 자가 있다. 겉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늘상 (선행을) 기꺼워하지 않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기꺼워하지 않는 생각을) 반드시 남김없이 거두어들여야(打疊) 한다. 왜냐하면 의지가 진실해야만 그 마음(心)이 바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문 하나를 넘어서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수(拱壽)의 기록. (65세)

  •  16:81 問“自慊”.

'자겸(自慊)'에 관한 질문.

曰: “人之爲善, 須是十分眞實爲善, 方是自慊. 若有六七分爲善, 又有兩三分爲惡底意思在裏面相牽, 便不是自慊. 須是‘如惡惡臭, 如好好色’方是.” 卓(미상).

대답: 사람이 선을 행할 적에, 반드시 100% 진실하게 선을 행해야만 비로소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다(自慊)'. 만약 60~70%만 선을 행하고, 악행을 하려는 생각 20~30% 정도가 있어 안쪽에서 끌어당긴다면 그것은 자겸(自慊)이 아니다. '악취를 싫어하듯, 미색을 좋아하듯'[272] 해야만 한다.

탁(卓)의 기록. (기록시기 미상)

<自慊.> 이 아래로 '자겸'에 관한 조목들.

  •  16:82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慊者, 無不足也. 如有心爲善, 更別有一分心在, 主張他事, 卽是橫渠所謂“有外之心, 不可以合天心”也. 祖道(68때).

'악취를 싫어하듯, 미색을 좋아하듯 해야 하니, 이를 일러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다(自慊)고 한다.'[273]의 경우, 여기서 겸(慊)이란 '부족함 없음'을 뜻한다. 예컨대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그와 별개로 또 다른 것을 주장(主張)하는 마음이 10% 정도 있다면[274] 이는 바로 횡거(橫渠)가 말한 바 '자기 밖의 타자를 상정하는 마음으로는 하늘의 마음에 합치하지 못한다'[275]는 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6:83 “‘自慊’之‘慊’, 大意與孟子‘行有不慊’相類. 子細思之, 亦微有不同: 孟子慊訓滿足意多, 大學訓快意多. 橫渠云: ‘有外之心, <蜀錄作“自慊”.> 不足以合天心.’ 初看亦只一般. 然橫渠亦是訓足底意思多, 大學訓快意多.”

'자겸(自慊)'의 겸(慊)자는 대의는 맹자의 '행하고서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바가 있으면(行有不慊於心)'[276]과 비슷하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역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맹자쪽에서는 겸(慊)에‘만족(滿足)'의 의미가 많으나 대학에서는 '통쾌함(快)'의 의미가 많다. 횡거(橫渠)가 말한 '자기 밖의 타자를 상정하는 마음으로는(有外之心)<촉록(蜀錄)에서는 자겸(自慊)>[277] 하늘의 마음에 합치하지 못한다.'도 처음엔 역시 (대학쪽과) 동일하다고 보았지만, 횡거도 결국 만족스럽다는 의미가 많고 대학은 통쾌하다는 의미가 더 많다.

問: “大學說‘自慊’, 且說合做處便做, 無牽滯於己私, 且只是快底意, 少間方始心下充滿. 孟子謂‘行有不慊’, 只說行有不滿足, 則便餒耳.”

질문: 대학에서 '자겸'을 해설하기를, 해야할 것을 바로 해버려서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에 붙잡혀 지체됨이 없다고 설명하니, (이런 경우) 우선은 단지 통쾌하다는 의미 뿐이지만 이윽고 비로소 마음 가득 만족스럽게 됩니다. 맹자가 말한 '행하고서 만족스럽지 못하면'은 단지 행함에 만족스럽지 못하면 '(호연지기가) 굶주린다(餒)'는 말일 뿐입니다.[278]

曰: “固是. 夜來說此極子細. 若不理會得誠意意思親切, 也說不到此. 今看來, 誠意‘如惡惡臭, 如好好色’, 只是苦切定要如此, 不如此自不得.” 賀孫(62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어젯밤 이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설명했다. 만약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誠意)'의 의미를 친근하고 절실하게 깨닫지 못했다면 (자네가) 이렇게까지 설명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보니 '성의'장의 '악취를 싫어하듯, 미색을 좋아하듯'처럼 그저 기필코 간절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렇게 진실하지 않으면 당연히 해내지 못한다.

하손(賀孫)의 기록.(62세 이후)

  •  16:84 字有同一義而二用者. “慊”字訓足也, “吾何慊乎哉”, 謂心中不以彼之富貴而懷不足也; “行有不慊於心”, 謂義須充足於中, 不然則餒也. 如“忍”之一字, 自容忍而爲善者言之, 則爲忍去忿慾之氣; 自殘忍而爲惡者言之, 則爲忍了惻隱之心. “慊”字一從“口”, 如胡孫兩“嗛”, 皆本虛字, 看懷藏何物於內耳. 如“銜”字或爲銜恨, 或爲銜恩, 亦同此義. 㽦(59때).

뜻은 하나인데 용법이 둘인 글자들이 있다. '겸(慊)'자는 '만족함(足)'이라고 풀이한다. 예를 들어 '내 어찌 부족하랴(吾何慊乎哉)'[279]는 마음속에서 타인의 부귀를 가지고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행하고서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바가 있으면(行有不慊於心)'[280]는 의로움이 마음 속을 가득 채워야(充足)하며 그렇지 않으면 (호연지기가) 굶주린다(餒)는 말이다. '인(忍)'자의 경우와 같으니, 용인(容忍)하며 선을 행한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분노와 욕망(忿慾)의 기운(氣)을 참아낸다(忍)는 뜻이 된다. 잔인(殘忍)하게 악을 행한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참아낸다(忍)는 뜻이 된다. '겸(慊)'자는 어떤 경우 '구(口)'자를 구성요소로 가지고 있으니 원숭이(胡孫)의 양쪽 볼주머니(兩嗛) 같은 경우가 그렇다.[281] 모두 본래 허자(虛字)[282]이니 어떤 물건을 안에 머금고 있느냐를 보아야 할 뿐이다. 예컨대 '함(銜)'자가 원한을 품다(銜恨)가 되기도 하고 은혜를 품다(銜恩)가 되기도 하는 것과 같다.

순(㽦)의 기록. (59세)


  •  16:85 “誠意”章皆在兩箇“自”字上用功. 人傑(51이후).

성의(誠意)장은 모두 이 두 개의 '자(自)'자[283] 부분에서 힘을 써야 한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自欺·自慊.>

<이 아래로 스스로를 기만함(自欺)과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러움(自慊)에 관한 조목들>

  •  16:86 問: “‘毋自欺’是誠意, ‘自慊’是意誠否?‘小人閒居’以下, 是形容自欺之情狀, ‘心廣體胖’是形容自慊之意否?”

질문: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毋自欺)'는 '의지를 진실하게 함(誠意)'이고,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러움(自慊)'은 '의지가 진실되게 됨(意誠)' 아닙니까?[284] '소인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小人閒居)'이하의 구문은[285]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정황을 형용한 것이고,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心廣體胖)'는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自慊)'다는 의미를 형용한 것 아닙니까?

曰: 然. 後段各發明前說. 但此處是箇牢關. 今能致知, 知至而意誠矣. 驗以日用間誠意, 十分爲善矣. 有一分不好底意思潛發以間於其間, 此意一發, 便由斜徑以長, 這箇卻是實, 前面善意卻是虛矣. 如見孺子入井, 救之是好意, 其間有些要譽底意思以雜之; 如薦好人是善意, 有些要人德之之意, 隨後生來; 治惡人是好意, 有些狼[286]疾之意隨後來, 前面好意都成虛了. 如垢[287]卦上五爻皆陽, 下面只一陰生, 五陽便立不住了. 荀子亦言: ‘心臥則夢, 偸則自行, 使之則謀.’ <見解蔽篇.> 彼言‘偸’者, 便是說那不好底意. 若曰‘使之則謀’者, 則在人使之如何耳. 謀善謀惡, 都由人, 只是那偸底可惡, 故須致知, 要得早辨而豫戒之耳.” 大雅(49이후).

대답: 그렇다. 뒤쪽이 각각 앞쪽의 말을 밝히고 있다.[288] 다만 이 부분은 매우 견고한 관문이다.[289] 이제 앎을 지극히할(致知) 수 있어서 (그 결과) 앎이 지극해지고(知至) 의지가 진실해졌고(意誠), 일상 속에서 의지를 진실하게 하였는지 점검해 보아도 100% 선하다고 하자. 단 10%, 좋지 못한 생각(意思)이 아무도 모르게 틔워나와(潛發) 그 사이에 끼어들면, 그 의지(意)는 틔워나오는 즉시 비뚤어진 길(斜徑)을 따라 점점 자라나서 결국 이쪽이 오히려 알맹이(實)가 되고 앞서의 선한 의지 쪽이 오히려 헛된 것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발견하고 구하려는 것은 좋은 의지이지만 그 사이에 칭찬을 받고 싶은 생각이 섞인다든가, 좋은 사람을 추천하는 것은 선한 의지이지만 그 사람이 내게 은덕을 입은 것으로(德之) 생각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뒤따라 일어난다든가, 악인을 징벌(治)[290]하는 것은 좋은 의지이지만 잔인한(狼疾)[291] 생각이 뒤따라 일어나면 앞서의 좋은 의지는 모두 헛된 것이 되어버린다. 마치 (주역의) 구(姤)괘에서 위의 다섯 효(爻)가 모두 양(陽)이고 제일 아래에 단지 음(陰)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도 다섯 양이 버티지 못하는 것과 같다.[292] 순자(荀子) 역시 '마음은 누우면 꿈꾸고, 흐리멍텅하면 제멋대로 움직이며, 시키면 꾀한다.'고 하였다 <순자(荀子) 해폐편(解蔽篇)에 보인다.> 여기서 '흐리멍텅하면'이란 것이 바로 이 좋지 못한 의지를 말한 것이다.[293] '시키면 꾀한다'의 경우, 그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선을 꾀하든 악을 꾀하든 모두 그 사람을 따른다. 단지 저 흐리멍텅함이야말로 미워할 만하니, 반드시 앎을 지극히하여 조기에 알아보고 미리 경계해야 할 뿐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6:87 或問“自慊”·“自欺”之辨.

누군가가 '자겸(自慊)'과 '자기(自欺)'의 차이를 물음.


曰: “譬如作蒸餅, 一以極白好麵自裏包出, 內外更無少異, 所謂‘自慊’也; 一以不好麵做心, 卻以白麵作皮, 務要欺人. 然外之白麵雖好而易窮, 內之不好者終不可揜, 則乃所謂[294]‘自欺’也.” 壯祖(미상).

대답: 예를 들어, 증병(蒸餅)[295]을 만들 적에 어떤 사람은 아주 곱고 좋은 밀가루(白麵)로 안쪽에서 바깥쪽까지 만들어서 안과 밖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하니, 이른바 '자겸(自慊)'이다. 다른 어떤 사람은 좋지 못한 밀가루로 속부분을 만들고서 고운 밀가루로 겉껍데기를 만들어 남을 기만하는데 힘쓴다. 하지만 겉부분의 고운 밀가루가 비록 좋다고 해도 금방 바닥나서(易窮) 안쪽의 좋지 못한 부분을 끝내 가릴 수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자기(自欺)'이다.

장조(壯祖)의 기록. (기록시기 미상)

  •  16:88 問: “‘誠其意者, 毋自欺也.’ 近改注云: ‘自欺者, 心之所發若在於善, 而實則未能, 不善也.’ ‘若’字之義如何?”

질문: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誠其意者, 毋自欺也).'에 대하여 최근에 개정하신 주석에서는 '스스로를 기만함이란, 마음에서 틔워나온 의지의 방향이 선 쪽에 있는 듯하지만(若) 실제로는 그렇게 해낼 수 없어서 불선하게 된다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약(若)'자는 어떤 의미입니까?[296]

曰: “‘若’字只是外面做得來一似都善, 其實中心有些不愛, 此便是自欺. 前日得孫敬甫書, 他說‘自慊’字, 似差了. 其意以爲, 好善‘如好好色’, 惡惡‘如惡惡臭’, 如此了然後自慊. 看經文, 語意不是如此. ‘此之謂自慊’, 謂‘如好好色, 惡惡臭’, 只此便是自慊. 是合下好惡時便是要自慊了, 非是做得善了, 方能自慊也. 自慊正與自欺相對, 不差毫髮. 所謂‘誠其意’, 便是要‘毋自欺’, 非至[297]誠其意了, 方能不自欺也. 所謂不自欺而慊者, 只是要自快足我之志願, 不是要爲他人也. 誠與不誠, 自慊與自欺, 只爭這些子毫髮之間耳.”

대답: '약(若)'자는 그저 겉으로만 흡사 모두(一似都) 선한 것처럼 했을뿐, 사실 그 마음속으로는 다소 좋아하지 않는(不愛)[298] 기색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전에 손경보(孫敬甫)의 서신을 받았는데 그가 '자겸'을 설명한 부분은 잘못된 것 같다.[299] 그의 뜻은, 선을 좋아하기를 '마치 미색을 좋아하는 것처럼'하고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는' 것처럼 분명해진 뒤라야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다(自慊)'는 것이다.[300] 그러나 경전을 보면 말 뜻이 그렇지 않다. '이것이 이른바 자겸이다(此之謂自慊).'[301]는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하는 바로 이것(此)이[302]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다(自慊)'는 말이다.[303]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당초의 시점에서부터 곧바로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선행을 한 다음에야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非是). 자겸(自慊)은 바로 자기(自欺)와 정확히 반대되는 것으로, 이 둘 사이에는 터럭만큼의 빈 틈도 없다(不差毫髮).[304]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誠其意)' 하려면 '자신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 뒤에야 그제서야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非是).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아서 통쾌하고 만족스럽다는 것은, 단지 자기의 심지와 의욕(志願)을 통쾌하게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이지 타인의 칭찬을 받으려는(爲他人) 것이 아니다.[305] 진실함과 아님(誠與不誠), 자기만족(自慊)과 자기기만(自欺) 사이의 간극은 털끝을 다투는 정도에 불과하다.

又曰: “自慊則一, 自欺則二. 自慊者, 外面如此, 中心也是如此, 表裏一般. 自欺者, 外面如此做, 中心其實有些子不願, 外面且要人道好. 只此便是二心, 誠僞之所由分也.” 僩(69이후).

다시 말함: 자기만족(自慊)은 하나, 자기기만(自欺)은 둘이다. 자기만족이란 겉이 이러한데 속도 이러하여 표리일관한 것이다. 자기기만이란 겉으로는 이렇게 하는데 속으로는 사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지만, 우선 겉으로는 남들에게 잘한다는 말을 듣고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두 마음이요, 진실과 허위가(誠僞) 나뉘는 분기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89 問“誠意”章.

성의(誠意)장에 관한 질문.

曰: “過此關, 方得道理牢固.”

대답: 이 관문을 지나야 비로소 도리(道理)가 견고해진다.

或云: “須無一毫自欺, 方能自慊. 必十分自慊, 方能不自欺, 故君子必愼獨.”

누군가 말함: 털끝만큼도 스스로를 기만함이 없어야만 비로소 스스로 통쾌하게 만족스러울 수 있고, 반드시 100% 통쾌하게 만족스러워야만 비로소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愼獨)'[306]한다.

曰: “固是. 然‘欲誠其意者, 先致其知’. 知若未至, 何由得如此? 蓋到物格·知至後, 已是意誠[307]八九分了. 只是更就上面省察, 如用兵禦寇, 寇雖已盡翦除了, 猶恐林谷草莽間有小小隱伏者, 或能間出爲害, 更當搜過始得.” 銖(67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는 자는 먼저 앎을 지극히해야 한다' 앎이 지극해지지 못했다면 무슨 수로 그렇게 (의지를 진실하게) 하겠는가? 대개 사물이 탐구되고(物格) 앎이 지극해진 후에는 이미 의지(意)가 80~90% 정도 진실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다시 위쪽 단계에서 성찰해야 하니,[308] 마치 병력을 사용하여 도적을 막을 적에 도적이 모두 소탕되었더라도 여전히 산골짜기 초목 사이에 소소히 잠복해 있다가 간혹 튀어나와 해를 끼칠까 우려되므로 다시 철저히 수색해야만 하는 것과 같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90 問: “‘知至而後意誠’, 則知至之後, 無所用力, 意自誠矣. 傳猶有愼獨之說, 何也?”

질문: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성실해'[309]진다고 하였으니, 앎이 지극해진 후에는 별도로 힘쓰지 않아도 의지는 저절로 성실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 6장에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愼獨)'하라는 말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知之不至, 則不能愼獨, 亦不肯愼獨. 惟知至者見得實是實非, 灼然如此, 則必戰懼以終之, 此所謂能愼獨也. 如顔子‘請事斯語’, 曾子‘戰戰兢兢’, 終身而後已, 彼豈知之不至. 然必如此, 方能意誠. 蓋無放心底聖賢, ‘惟聖罔念作狂’. 一毫少不謹懼, 則已墮於意欲之私矣. 此聖人敎人徹上徹下, 不出一‘敬’字也. 蓋‘知至而後意誠’, 則知至之後, 意已誠矣. 猶恐隱微之間有所不實, 又必提掇而謹之, 使無毫髮妄馳, 則表裏隱顯無一不實, 而自快慊也.” 銖(67이후).

대답: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 신독(愼獨)할 수도 없을 뿐더러 기꺼이 신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직 앎이 지극해진(知至) 사람이라야 옳고 그름을 진실로 간파하여 이처럼 (시비판단이) 명백하므로 반드시 전전긍긍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을) 매조지할 것이다(終之).[310] 이것이 이른바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愼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자(顔子)가 '이 말에 종사하겠습니다(請事斯語)'[311]라고 한 것과, 증자(曾子)가 생을 마칠 때까지 '전전긍긍(戰戰兢兢)'[312]한 것의 경우, 그들이 어찌 앎이 지극하지 않아서 그랬겠는가?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어서 그런 것이다.[313] 대개 마음을 놓치는(放心)[314] 성현(聖賢)은 없다. '성인이라도 생각하지(念) 않으면 미치광이가 된다.'[315] 터럭만큼이라도 삼가고 조심하지 않으면 이미 사사로운 욕망(意欲之私) 쪽으로 추락해 버린다. 이러한 까닭에(此) 성인이 사람들에게 철두철미하게 가르치는 것이 '경(敬)'이라는 한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316] 생각건대 (대학 경문에서)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성실해진다'고 하였으니, 앎이 지극해진 후에는 의지가 이미 진실해진 것이다. 그래도 은미한 틈새에 혹시라도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걱정되어 다시금 반드시 일깨우고(提掇)[317] 삼가하여 터럭만큼도 멋대로 치달려나감(妄馳)이 없도록 하면 겉과 속, 노출된 지점과 은미한 지점이 모두 진실하지 않음이 없어서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게 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愼獨.>

<이 아래로 신독에 관한 조목들.>

  •  16:91 問: “或言, 知至後, 煞要著力做工夫. 竊意致知是著力做工夫處. 到知至, 則雖不能無工夫, 然亦無大段著工夫處.”

질문: 누군가는 앎이 지극해진 후에도 매우(煞) 힘써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앎을 지극히하는 것이야말로 힘써 노력하는 지점이요,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비록 노력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힘써 노력할 지점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曰: “雖不用大段著工夫, 但恐其間不能無照管不及處, 故須著防閑之, 所以說‘君子愼其獨也’.”

대답: 비록 대단히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관리(照管)[318]가 미흡한 부분이 없을 수 없음이 염려되어[319] 반드시 방비해야(防閑)[320] 한다. 그래서 '군자는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愼獨)'고 말하는 것이다.

行夫問: “先生常言知旣至後, 又可以驗自家之意誠不誠.”

행보의 질문: 선생님께서는 항상 앎이 지극해진 후 또 자신의 의지가 진실한지 아닌지 점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先生久之曰: “知至後, 意固自然誠. 但其間雖無大段自欺不誠處, 然亦有照管不著所在, 所以貴於愼其獨. 至於有所未誠, 依舊是知之未眞. 若到這裏更加工夫, 則自然無一毫之不誠矣.” 道夫(60이후).

선생이 한동안 생각하다 말함: 앎이 지극해진 후에는 물론 의지가 자연히 진실하다. 다만 그 사이에 비록 자신을 크게 기만하여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야 없다 하더라도 관리(照管)가 전혀 안 되는 부분 역시 있다.[321] 그래서 신독(愼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만일 여전히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진정한 앎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지점에서 노력을 더한다면 자연히 한 점의 진실하지 못함도 없게 될 것이다.[322]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92 光祖問: “物格·知至, 則意無不誠, 而又有愼獨之說. 莫是當誠意時, 自當更用工夫否?”

광조의 질문: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면 그 의지에 진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인데 다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愼獨)'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지를 진실하게 할 적에 응당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曰: “這是先窮得理, 先知得到了, 更須於細微處用工夫. 若不眞知得到, 都恁地鶻鶻突突, 雖十目視, 十手指, 衆所共知之處, 亦自七顚八倒了, 更如何地愼獨!” 賀孫(62이후).

대답: 먼저 이치를 탐구하여 완전히 알고 나서도 다시 세미한 부분(細微處)[323]에서 노력해야 한다. 만약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眞知得到) 이렇게 완전히 흐리멍텅(鶻鶻突突)하다면 제아무리 열 개의 눈이 바라보고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켜(十目視, 十手指)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지점(衆所共知之處)[324]에서도[325] 역시 엉망진창으로 실패할 것이다(七顚八倒). 다시 어떻게 신독(愼獨)을 하겠는가?

하손(賀孫)의 기록.(62세 이후)

  •  16:93 “知至而後意誠”, 已有八分. 恐有照管不到, 故曰愼獨. 節(64이후).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진다'에서 이미 80% 정도 이루어진 것이다.[326] 관리가 미흡한 부분[327]이 있을까 염려되므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愼獨)'하라고 말한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94 致知者, 誠意之本也; 愼獨者, 誠意之助也. 致知, 則意已誠七八分了, 只是猶恐隱微獨處尙有些子未誠實處, 故其要在愼獨. 銖(67이후).

'치지'는 '성의'의 뿌리(本)이고 '신독'은 '성의'의 조력자(助)이다.[328] 앎을 지극히 하면(致知) 의지는 이미 70~80% 정도 진실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자기 혼자만 아는 은미한 지점(隱微獨處)에 아직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염려된다. 그래서 신독이 긴요하다.[329]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95 “誠意”章上云“必愼其獨”者, 欲其自慊也; 下云“必愼其獨”者, 防其自欺也. 蓋上言“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故君子必愼其獨”者, 欲其察於隱微之間, 必吾所發之意, 好善必“如好好色”, 惡惡必“如惡惡臭”, 皆以實而無不自慊也. 下言“小人閒居爲不善”, 而繼以“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者, 欲其察於隱微之間, 必吾所發之意, 由中及外, 表裏如一, 皆以實而無少自欺也. 銖(67이후).

'성의'장 위쪽에서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라(必愼其獨)'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自慊)'기를 바란 것이다. 아래쪽에서 (똑같이) '필신기독(必愼其獨)'이라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만하(自欺)'는 것을 방비한 것이다.[330] (경전의) 위쪽에서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미색을 좋아하듯이 함을 일러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의 취지는 사람들이 감춰진 미세한 틈새를 살펴 선을 좋아함의 경우에는 반드시 미색을 좋아하듯이 (철저히 진실하게) 하고 악을 싫어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악취를 싫어하듯이 (철저히 진실하게) 하여 자신이 틔워낸 의지(吾所發之意)를 반드시 완전히 진실하게 하여 조금도 통쾌히 만족스럽지 않음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아래쪽에서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라고 하고 이어서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고 말한 것의 취지는 사람들이 감춰진 미세한 틈새를 살펴 안으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겉과 속이 일관되어 자신이 틔워낸 의지(吾所發之意)를 반드시 완전히 진실하게 하여 조금도 자신을 기만함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96 誠意者, 好善“如好好色”, 惡惡“如惡惡臭”, 皆是眞情. 旣是眞情, 則發見於外者, 亦皆可見. 如種麻則生麻, 種穀則生穀, 此謂“誠於中, 形於外”. 又恐於獨之時有不到處, 故必愼獨. 節(64이후).

성의란 선을 좋아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듯이 하고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 하는 것이니, 모두 진실한 감정(眞情)이다. 이미 진실한 감정인 이상 겉으로 드러나는 것 역시 모두 (남들이) 볼 수 있다. 마치 마 심은 데 마 나고 곡식 심은 데 곡식이 나듯 하는 것을 일러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홀로(獨) 있을 때 (진실함에) 도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까 우려되므로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는(愼獨)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97 或說愼獨.

누군가가 신독(愼獨)에 대해 설명함.

曰: “公自是看錯了.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已是實理了, 下面‘故君子必愼其獨’, 是別擧起一句致戒, 又是一段工夫. 至下一段, 又是反說小人之事以致戒. 君子亦豈可謂全無所爲! 且如著衣喫飯, 也是爲飢寒. 大學看來雖只恁地滔滔地說去, 然段段致戒, 如一下水船相似, 也要柂, 要楫.” 蘷孫(68이후).

대답: 그대가 잘못 보았다.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미색을 좋아하듯이 함을 일러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한다.'는 이미 진실한 이치(實理)[331]이지만, 아래쪽의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는 말은 그와 별개로 한 구절을 들어 훈계한(致戒) 것이니 또다른 한 단락의 공부(工夫)이다.[332] 아래쪽 단락의 경우는 또 반대로 소인의 일을 말하여 경계한 것이다. 군자의 경우도 어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全無所爲) 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 역시 추위와 배고픔 때문이다. 대학(大學)이 비록 그저 이렇게 도도(滔滔)히[333] 강물이 흐르듯 설명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락마다 훈계하고(致戒) 있다. 마치 강물을 타고 내려가는 배라도 키를 잡고 노를 저어야 하는 것과 같다.[334]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98 或問: “在愼獨, 只是欲無間.”

누군가의 질문: '신독(愼獨)은 그저 간격이 없고자(無間)[335]하는 것 뿐입니다.'

先生應. 節(64이후).

선생이 긍정했다.[336]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99 問“誠意”章句所謂“必致其知, 方肯愼獨, 方能愼獨”.

성의장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에서 '반드시 그 앎을 지극히 해야만 비로소 기꺼이 신독(愼獨)하게 되고, 또 비로소 신독(愼獨)할 수 있게 된다'[337]에 대한 질문.

曰: “知不到田地, 心下自有一物與他相爭鬭, 故不會肯愼獨.” 銖(67이후).

대답: 앎이 일정 수준(田地)에 이르지 못하면 마음 속에 자연히 어떤 것이 있어 그 앎과 다툰다. 그래서 기꺼이 신독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100 問: “自欺與‘厭然揜其不善而著其善’之類, 有分別否?”

질문: 스스로를 기만함(自欺)과 '겸연쩍게 그 불선(不善)함을 숨기고 선(善)함을 드러낸다' 같은 것 사이에 구별이 있습니까?

曰: “自欺只是於理上虧欠不足, 便胡亂且欺謾過去. 如有得九分義理, 雜了一分私意, 九分好善·惡惡, 一分不好·不惡, 便是自欺. 到得厭然揜著之時, 又其甚者. 原其所以自欺, 又是知不至, 不曾見得道理精至處, 所以向來說‘表裏精粗’字[338]. 如知‘爲人子止於孝’, 這是表; 到得知所以必著孝是如何, 所以爲孝當如何, 這便是裏. 見得到這般處, 方知決定是著孝, 方可以用力於孝, 又方肯決然用力於孝. 人須是埽去氣稟私欲, 使胸次虛靈洞徹.” 木之(68때).

대답: 자기기만(自欺)은 이치에 대한 이해에 부족한 점이 있을 때 혼란을 일으키고 속여넘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리를 90%는 터득했으나 사적인 의념(私意)이 10% 섞여서 90%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지만 10%는 선을 좋아하지 않고 악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자기기만(自欺)이다. '겸연쩍게 불선을 숨기고 선을 드러내는 것'은 더욱 심각한 경우이다.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이유를 따져보면, 이는 다시 앎이 충분하지 않아서 도리의 정미하고 지극한 지점을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表裏精粗)'[339]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340] 예를 들어, '아들이 되어서는 효에 머문다(爲人子止於孝)'는 겉(表)이다. 반드시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효도는 응당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바로 속(裏)이다. 이러한 지점들을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결단코 효도를 해야 함을 알게 되고, 비로소 효도에 힘쓸 수 있게 되고, 또 비로소 기꺼이 결연히 효도에 힘쓸 수 있게 된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의 영향과 사욕(氣稟私欲)을 제거하여 가슴 속을 텅 비고 영묘하며 투명하게(虛靈洞徹) 해야 한다.[341]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以下論揜其不善.> [342]

<이 아래로는 불선(不善)함을 숨김에 관하여 논하는 조목들>

  •  16:101 問意誠.

의지가 진실해짐(意誠)에 관하여 질문함.

曰: “表裏如一便是. 但所以要得表裏如一, 卻難. 今人當獨處時, 此心非是不誠, 只是不柰何他. 今人在靜處非是此心要馳騖, 但把捉他不住. 此已是兩般意思. 至如見君子而後厭然詐善時, 已是第二番罪過了.” 祖道(68때).

겉과 속이 같다는 것(表裏如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겉과 속을 같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이 마음이 진실되지 않은 것은 아니요, 단지 그것(他)[343]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럴 뿐이다.[344] 오늘날 사람들이 조용히 있을 적에 이 마음이 달려나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요, 단지 그것(他)[345]을 붙잡지 못할 뿐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생각(意思)이 둘이다. 군자를 만나고 나서야 겸연쩍게 거짓으로 선행을 하는 것은[346] 이미 또다른(第二番) 죄과가 되는 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6:102 誠意, 只是表裏如一. 若外面白, 裏面黑, 便非誠意. 今人須於靜坐時見得表裏有不如一, 方是有工夫. 如小人見君子則掩其不善, 已是第二番過失. 人傑(51이후).

성의(誠意)는 단지 겉과 속의 일치(表裏如一)일 뿐이다.[347] 만약 겉은 하얀데 속이 검다면 성의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좌(靜坐)할 적에 반드시 표리가 일치하지 않음을 간파해야만 비로소 공부한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소인이 군자를 만나고서 자신의 불선함을 감추려는 것은 이미 또다른 과실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03 此一箇心, 須每日提撕, 令常惺覺. 頃刻放寬, 便隨物流轉, 無復收拾. 如今大學一書, 豈在看他言語, 正欲驗之於心如何. ‘如好好色, 如惡惡臭’, 試驗之吾心, 好善·惡惡, 果能如此乎? 閒居爲不善, 見君子則掩其不善而著其善, 是果有此乎? 一有不至, 則勇猛奮躍不已, 必有長進處. 今不知爲此, 則書自書, 我自我, 何益之有! 大雅(49이후).

이 하나의 마음(心)은 반드시 매일 일깨워서(提撕)[348] 항상 깨어 있게(常惺覺)[349] 해야 한다. 잠시라도 느슨히 풀어놓으면, 바로 외물을 따라 흘러가버려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된다. 지금 대학(大學)이라는 책을 보는 의의가 어찌 그 언어를 읽는 데 있겠는가? 바로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대학에서 말한 내용을) 점검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미색을 좋아하듯이, 악취를 싫어하듯이'라는 말을 자신의 마음에서 시험해보라.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이 과연 이와 같을 수 있는가?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다가 군자를 만나면 자신의 불선함을 감추고 선을 드러내는 일은, 과연 이러한 일이 있는가? 조금이라도 미진함이 있으면 용맹하게 떨쳐 일어나기를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성장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해야 함을 알지 못한다면, 책은 책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는(書自書, 我自我) 셈이니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6:104 問: “‘誠於中, 形於外’, 是實有惡於中, 便形見於外. 然誠者, 眞實無妄, 安得有惡! 有惡, 不幾於妄乎?”

질문: '속으로 진실하면(誠)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진실로 내면에 악이 있으면 외면으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350] 그러나 성(誠)이란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眞實無妄) 것인데, 어찌 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악이 있다면, 거짓됨(妄)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曰: “此便是惡底眞實無妄, 善便虛了. 誠只是實, 而善惡不同. 實有一分惡, 便虛了一分善; 實有二分惡, 便虛了二分善.” 淳(61·70때).

대답: 이것은 바로 악함 쪽으로 진실되어 거짓이 없으면(眞實無妄) 선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성(誠)은 단지 (특정한 쪽으로) 진실되다는 것일 뿐이니, 선악의 구분과는 다르다.[351] 실제로 악이 10% 있으면 선이 10% 사라지게 되고, 악이 20% 있으면 선이 20% 사라지게 된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  16:105 “誠於中, 形於外.” 大學和“惡”字說. 此“誠”只是“實”字也. 惡者卻是無了天理本然者, 但實有其惡而已. 方(41때).

'속으로 진실하면(誠) 겉으로 드러난다'의 경우, 대학에서는 '악(惡)'자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성(誠)'자는 그저 '실(實)'자의 의미일 뿐이다. 악이란 천리의 본연(天理本然)을 결여한 것이지만, 그래도 (악인의 마음 속에는) 진실로(實) 악이 있을 뿐이다.[352]

방(方)의 기록. (41세).

  •  16:106 凡惡惡之不實, 爲善之不勇, 外然而中實不然, 或有所爲而爲之, 或始勤而終怠, 或九分爲善, 尙有一分苟且之心, 皆不實而自欺之患也. 所謂“誠其意”者, 表裏內外, 徹底皆如此, 無纖毫絲髮苟且爲人之弊. 如飢之必欲食, 渴之必欲飮, 皆自以求飽足於己而已, 非爲他人而食飮也. 又如一盆水, 徹底皆淸瑩, 無一毫砂石之雜. 如此, 則其好善也必誠好之, 惡惡也必誠惡之, 而無一毫强勉自欺之雜. 所以說自慊, 但自滿足而已, 豈有待於外哉! 是故君子愼其獨, 非特顯明之處是如此, 雖至微至隱, 人所不知之地, 亦常愼之. 小處如此, 大處亦如此; 顯明處如此, 隱微處亦如此. 表裏內外, 精粗隱顯, 無不愼之, 方謂之“誠其意”. 孟子曰: “人能充無欲害人之心, 而仁不可勝用也.” 夫無欲害人之心, 人皆有之. 閑時皆知惻隱, 及到臨事有利害時, 此心便不見了. 且如一堆金寶, 有人曰: “先爭得者與之.” 自家此心便欲爭奪推倒那人, 定要得了方休. 又如人皆知穿窬之不可爲, 雖稍有識者, 亦不肯爲. 及至顚冥於富貴而不知恥, 或無義而受萬鍾之祿, 便是到利害時有時而昏. 所謂誠意者, 須是隱微顯明, 小大表裏, 都一致方得. 孟子所謂: “見孺子入井時, 怵惕惻隱, 非惡其聲而然, 非爲內交要譽而然.” 然卻心中有內交要譽之心, 卻向人說: “我實是惻隱·羞惡.” 所謂爲惡於隱微之中, 而詐善於顯明之地, 是所謂自欺以欺人也. 然人[353]豈可欺哉!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欺人者適所以自欺而已! “誠於中, 形於外”, 那箇形色氣貌之見於外者自別, 決不能欺人, 祇自欺而已! 這樣底, 永無緣做得好人, 爲其無爲善之地也. 外面一副當雖好, 然裏面卻踏空, 永不足以爲善, 永不濟事, 更莫說誠意·正心·修身. 至於治國·平天下, 越沒干涉矣. 僩(69이후).

무릇 악을 싫어함에 있어 진실하지 않고 선을 행함에 있어 과감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그런 듯하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고, 혹은 별개의 목적을 가지고 (선을) 행하고, 혹은 시작은 부지런했으나 결국에는 게을러지고, 혹은 90%는 선을 행하나 여전히 10%는 대충 넘기려는(苟且) 마음일 경우, 이는 모두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여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병환(患)이다.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겉과 속, 안과 밖이 철저히 모두 그러하여 티끌만큼도 대충 넘겨가며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爲人) 폐단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배고프면 반드시 먹고자하고 목마르면 반드시 마시고자 함이 모두 자신의 포만을 스스로 추구하는 것일 뿐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爲他人)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또 마치 한 대야의 물이 모두 철저히 맑고 깨끗하여 모래나 돌 한 점 섞이지 않은 것과 같다. 이와 같다면, 선을 좋아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진실로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진실로 싫어하여 단 한 점의 억지 노력이나 자기 기만도 섞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통쾌히 만족한다(自慊)'고 말한 것은 그저 자기만족일 뿐이니 어찌 외부에 의존함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는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니(君子愼其獨), 그저 노출된 곳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은밀한 곳, 남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역시 늘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다. 작은 곳에서 이와 같고, 큰 곳에서도 이와 같으며, 노출된 곳에서 이와 같고, 은밀한 곳에서도 이와 같다. 겉과 속, 안과 밖, 정밀함과 거침, 은밀함과 노출됨 그 어디에서나 삼가고 조심하지 않음이 없어야 비로소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남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을 확충한다면 인(仁)을 이루 다 쓰지 못할 것'[354]이라고 했다. 무릇 남을 해치려 하지 않는 마음은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모두 (남을) 측은히 여길줄 알지만, 실제 상황에 닥쳐서 이해관계가 생기면 이 마음은 곧 보이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금은보화가 한 무더기 있는데 누군가 말하기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에게 주겠다'라고 하면, 자신의 이 마음은 곧 다투어 빼앗고 다른 사람을 밀쳐 쓰러뜨리려고 하여 반드시 (그것을) 얻고 나서야 그만두려 한다. 또 예컨대 사람들은 모두 도둑질(穿窬)이 해서는 안 될 짓임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자라면 역시 하려 들지 않는다. 부귀에 눈이 멀어(顛冥)[355] 부끄러움을 잊거나, 혹은 정당성 없이(無義) 만종의 녹봉을 받는 경우는[356] 곧 이해관계에 얽혀 종종 미혹되어서 그런 것이다. 이른바 '성의(誠意)'란, 반드시 은밀한 것과 노출된 것, 작은 것과 큰 것, 겉과 속이 모두 일치해야만 가능하다. 맹자가 말했다.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惻隱)해하는 까닭은 (잔인하다는) 오명을 싫어해서 그러한 것도 아니요 어린아이의 부모(父母)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명성을 구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357] 그러나 마음속에 교분과 명성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남들에게는 오히려 '나는 진실로 측은히 여기고(惻隱) 수치스러워한다(羞惡)'고 말한다면 이는 이른바 은밀한 곳에서는 악을 행하고 노출된 곳에서는 선을 가장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스스로를 속임으로써 남을 속인다(自欺以欺人)는 것이다. 하지만 남을 어찌 속일 수 있으랴! '남들이 나를 보기를 마치 내 폐와 간을 보듯이 한다'[358]면, 남을 속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이다.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 (속이 어떠한가에 따라) 밖으로 드러난 안색과 몸가짐과 분위기(形色氣貌)가 각자 달라서(自別) 결코 남을 속일 수는 없고 그저 자신만 속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좋은 사람이 될 길이 없으니, 그에게는 선을 행할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의 외면적 요소가[359] 비록 멀쩡해 보여도 그 속은 오히려 공허하여(踏空) 영원히 선을 행하기에 부족하고 영원히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하니(不濟事), 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莫說).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에 있어서는 더더욱 관련이 없게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以下全章之旨.>

<이 아래로는 장 전체의 취지에 관한 조목들>

  •  16:107 問: “‘誠意’章‘自欺’注, 今改本恐不如舊注好.”

질문: '성의(誠意)'장의 '자기 기만(自欺)'에 대한 주석은 (대학장구) 개정본쪽이 구본만 못한 것 같습니다.

曰: “何也?”

대답: 어째서인가?

曰: “今注云: ‘心之所發, 陽善陰惡, 則其好善惡惡皆爲自欺, 而意不誠矣.’ 恐讀書[360]者不曉. 又此句, 或問中已言之. 卻不如舊注云: ‘人莫不知善之當爲, 然知之不切, 則其心之所發, 必有陰在於惡而陽爲善以自欺者. 故欲誠其意者無他, 亦曰禁止乎此而已矣.’ 此言明白而易曉.”

말함: 지금 주석에는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361]이 양으로는 선하고 음으로는 악하다면 자신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모두 자신을 기만한 것이 되어 의지가 진실하지 않게 된다.'[362]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 읽는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까 염려되고, 또 이 구절은 중용혹문(中庸或問)[363]에서 이미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옛 주석에서 '응당 선을 행해야 함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그 앎이 절실하지 못하면 그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364] 가운데 반드시 음으로는 악으로 향하지만 양으로는 선을 행하여 자신을 기만하는 부분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데는 다른 특별한 방법이 없다. 역시 이것을 금지(禁止)하라고 말할 뿐이다'라고 한 말이 명백하고 깨닫기 쉬운 것만 못합니다.

曰: “不然. 本經正文只說‘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初不曾引致知兼說. 今若引致知在中間, 則相牽不了, 卻非解經之法. 又況經文‘誠其意者, 毋自欺也’, 這說話極細. 蓋言爲善之意稍有不實, 照管少有不到處, 便爲自欺, 未便說到'心之所發, 必有陰在於惡, 而陽爲善以自欺'處. 若如此, 則大故無狀, 有意於惡, 非經文之本意也. 所謂‘心之所發, 陽善陰惡’, 乃是見理不實, 不知不覺地陷於自欺; 非是陰有心於爲惡, 而詐爲善以自欺也. 如公之言, 須是鑄私錢, 假官會, 方爲自欺, 大故是無狀小人, 此豈自欺之謂邪!

대답: 그렇지 않다. 본래 경전의 정문(正文)은 단지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만 했을 뿐, 애초에 '치지(致知)'를 끌고와서 겸하여 설명한 적이 없다.[365] 지금 만약 '치지'(의 취지)를 끌어다 중간에 놓으면 (그에 상응하는 본문이 없어) 어디에도 매달 수 없으니(相牽不了), 경전을 주해하는 법에 어긋난다. 게다가(況) 또 경문에서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한 말은 (논의의 스케일이) 극히 세밀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대략 이런 이야기인데,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진실하지 않거나 관리(照管)[366]하는 눈이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곧 자기기만(自欺)이 된다는 말이지, 아직 곧바로 '그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 가운데 반드시 음으로는 악으로 향하지만 양으로는 선을 행하여 자신을 기만하는 부분이 있다'[367]고 말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368] 이는 대단히(大故) 추악(無狀)하여 악행에 그 의도가 있는 것이니 경문의 본뜻에 어긋난다. 이른바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이 양으로는 선하고 음으로는 악하다'[369]는 것은 이치에 대한 이해가 진실하지 못해서(見理不實) 부지불식간에 스스로를 기만하는(自欺) 데에 빠진다는 말이지, 음으로 악을 행하려는 마음을 품고서 거짓으로 선을 행하여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네의 말 대로라면 반드시 사전(私錢)을 주조하거나[370] 지폐(官會)[371]를 위조하는 정도의 악행이어야 비로소 자신을 기만하는(自欺) 것이 되는데, 이는 대단히 추악한 소인이다. 이를 어떻게 자기기만(自欺)이라고 하겠나?

<又曰: “所謂‘毋自欺’者, 正當於幾微毫釐處做工夫. 只幾微之間少有不實, 便爲自欺. 豈待如此狼[372]當, 至於陰在爲惡, 而陽爲善, 而後謂之自欺邪! 此處語意極細, 不可草草看.”>

<또 대답함: 이른바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는 것은, 바로 지극히 미세하고 작은 부분(幾微毫釐)에서 하는 공부에 해당한다. 그저 아주 미세한 틈에 조금이라도 진실하지 않음이 있기만 하면 곧 스스로를 기만하는(自欺) 것이 된다. 어찌 이렇게 퇴락하여(狼當)[373] 음으로는 악으로 향하지만 양으로는 선을 행하는 지경에 이른 후에야 자기기만(自欺)라고 하겠나? 이 부분의 어의(語意)는 극히 세밀하니, 적당히 훑어서는 안 된다.>

此處工夫極細[374], 未便說到那粗處. 所以前後學者多說差了. 蓋爲牽[375][376]下文‘小人閒居爲不善’一段看了, 所以差也.”

이 부분의 공부는 극히 세밀하며, 그 거친 부분(粗處)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377] 그래서 고금의 학자들이 대부분 잘못 설명했다. 아래 문장의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한 단락과 연결하여(牽連)[378] 보아버렸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

又問: “今改注下文云: ‘則無待於自欺, 而意無不誠也.’ 據經文方說‘毋自欺’. 毋者, 禁止之辭. 若說無待於自欺, 恐語意太快, 未易到此.”

재질문: 지금 개정된 주석의 아래 문장에는 '...면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이 의지에 진실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경문에 의하면 이제 막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라(毋)'는 금지(禁止)하는 말이니, 만약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이'라고 하신다면 어의(語意)가 너무 장쾌하여(太快)[379]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曰: “旣能禁止, 其心之所發皆有善而無惡, 實知其理之當然, 使[380]無待於自欺, 非勉强禁止而猶有時而發也. 若好善惡惡之意有一毫之未實, 則其發於外也必不能掩. 旣是打疊[381]得盡, 實於爲善, 便無待於自欺矣. 如人腹痛, 畢竟是腹中有些冷積, 須用藥驅除去這冷積, 則其痛自止. 不先除去冷積, 而但欲痛之自止, 豈有此理!” 僩(69이후).

대답: 일단 성공적으로 금지해내서 그 마음에서 틔워나오는 것이 모두 선하여 악함이 없어서 진실로 그 이치의 당위성(理之當然)을 알게 되면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으니, 억지로 금지하지만 여전히 종종 (악의가) 티워나오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만약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의지에 조금이라도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 역시 결코 감출 수 없다. 일단 깨끗하게 정리해내서(打疊得盡) 선행에 대하여 진심이 되면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게 된다. 예컨대 사람의 복통은 필경 배 속에 냉적(冷積)[382]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반드시 약을 써서 그 냉적을 몰아내야만 그 통증이 저절로 그치게 된다. 먼저 냉적을 제거하지도 않고 그저 통증이 저절로 그치기를 바란다면,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나?[383]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08 敬子問: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注云: ‘外爲善, 而中實未能免於不善之雜.’ 某意欲改作‘外爲善, 而中實容其不善之雜’, 如何? 蓋所謂不善之雜, 非是不知, 是知得了, 又容著在這裏, 此之謂自欺.”

경자의 질문: '이른바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에 대한 주석에서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진실로 불선함이 섞임을 면치 못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진실로 불선함이 섞이는 것을 용인한다'라고 고쳤으면 하는데 어떨런지요? 대개 이른바 불선함의 섞임이란,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시 용인하여 마음 속에 두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를 두고 스스로를 기만한다고 합니다.

曰: “不是知得了容著在這裏, 是不柰他何了, 不能不自欺. 公合下認錯了, 只管說箇‘容’字, 不是如此. ‘容’字又是第二節, 緣不柰他何, 所以容在這裏. 此一段文意, 公不曾識得它源頭在, 只要硬去捺他, 所以錯了. <大槪以爲有纖毫不善之雜, 便是自欺.> 自欺, 只是自欠了分數. 恰如淡底金, 不可不謂之金, 只是欠了分數. 如爲善, 有八分欲爲, 有兩分不爲, 此便是自欺, 是自欠了這分數.”

대답: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시 용인하여 마음 속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384] 어찌할 수가 없어서 부득불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것이다.[385] 그대는 처음부터 (문제의 핵심을) 오인하여 계속 '용(容)'자만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렇지 않다. '용'자는 (심리적으로) 또 그 다음 단계의 일이다. 그것을[386] 어찌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용납하여 마음 속에 두는 것이다. 이 단락의 문의(文意)에 대하여 그대는 그 근원(源頭)[387]을 파악하지 못하고서, 그저 무리하게 그것[388]을 억누르려 하니까 잘못되는 것이다. <대략, 불선함이 극미량만 섞여도 곧바로 자기기만이 된다는 말이다.>[389]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것은 그저 스스로 함량이 미달한다는(欠了分數)[390] 것이다. 마치 순도가 낮은 금(淡底金)[391]도 금이 아니라고야 할 수는 없지만 그저 함량이 부족할 뿐인 것과 같다. 예컨대 선을 행함에 있어 80%는 행하려 하나 20%는 행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요 스스로 함량이 미달한 것이다.

或云: “如此, 則自欺卻是自欠.”

누군가의 말: 말씀하신 대로라면 자기를 기만한다는 것은 실은 스스로 (함량이) 미달한 것이군요.

曰: “公且去看. <又曰: “自欺非是要如此, 是不柰它何底.”> 荀子曰: ‘心臥則夢, 偸則自行, 使之則謀.’ 某自十六七讀時, 便曉得此意. 蓋偸心是不知不覺自走去底, 不由自家使底, 倒要自家去捉它. ‘使之則謀’, 這卻是好底心, 由自家使底.”

대답: 그대가 한번 살펴보라. <또 말함: 자기를 기만함은 그렇게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순자(荀子)는 '마음은 누우면 꿈꾸고, 흐리멍텅하면 제멋대로 움직이며, 시키면 꾀한다.'고 하였다.[392] 나는 16~7 세 때 이 구절을 읽고서 바로 그 뜻을 깨달았다. 대개 흐리멍텅한 마음은 부지불식간에 저혼자 멀리 가버리니, 자신이 부리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가서 잡아와야 하는 것이다. '시키면 꾀한다'는 것은 반면에 좋은 마음이니, 자신이 부리고 시킬 수 있는 것이다.

李云: “某每常多是去捉他, 如在此坐, 心忽散亂, 又用去捉它.”

이(李)가 말함[393]: 저는 매양 자주 그것을 잡아오는데, 예컨대 여기 이렇게 좌정해도 마음이 돌연 산란해져서 다시 그놈을 잡으러 가야 합니다.

曰: “公又說錯了. 公心粗, 都看這說話不出. 所以說格物·致知而後意誠, 裏面也要知得透徹, 外面也要知得透徹, 便自是無那箇物事. 譬如果子爛熟後, 皮核自脫落離去, 不用人去咬得了. 如公之說, 這裏面一重不曾透徹在. 只是認得箇容著, 硬遏捺將去, 不知得源頭工夫在.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此是聖人言語之最精處, 如箇尖銳底物事. 如公所說, 只似箇樁頭子, 都粗了. 公只是硬要去强捺, 如水恁地滾出來, 卻硬要將泥去塞它, 如何塞得住!”

말함: 그대가 또 잘못 말했다. 그대의 마음이 거칠고 성글어서(粗)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격물(格物)·치지(致知)한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진다고 말하는 까닭은, 안으로도 투철하게 알고 밖으로도 투철하게 알면 자연히 그런 일[394]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과일이 완전히 익은 후에는[395] 껍질과 씨앗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서[396] 사람이 깨물어 제거할 필요가[397] 없게 되는 것과 같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은 경우는 그 안쪽 껍질 한 겹을 아직 뚫고 들어가지(透徹) 못한 것이다.[398] 그저 (이 악의를) 용인하고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서 무리하게 억누르려 할 뿐 근원(源頭)[399]에서의 공부는 알지 못한다. '이른바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성인의 말씀 중 가장 정밀한 부분이니, 흡사 예리한 물건과 같다. 그대가 한 말은 그저 말뚝(樁頭子)같아서 모두 거칠고 성글다. 그대는 다만 무리해서 억제하려 할 뿐이니, 마치 물이 이렇게 분출하려 하는데 오히려 억지로 진흙으로 막으려 하는 것과 같다.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又引中庸論誠處, 而曰: “一則誠, 雜則僞. 只是一箇心, 便是誠; 才有兩箇心, 便是自欺. 好善‘如好好色’, 惡惡‘如惡惡臭’, 他徹底只是這一箇心, 所以謂之自慊. 若才有些子間雜, 便是兩箇心, 便是自欺. 如自家欲爲善, 後面又有箇人在這裏拗你莫去爲善; 欲惡惡, 又似有箇人在這裏拗你莫要惡惡, 此便是自欺. <因引近思錄“如有兩人焉, 欲爲善”云云一段, 正是此意.> 如人說十句話, 九句實, 一句脫空, 那九句實底被這一句脫空底都壞了. 如十分金, 徹底好方謂之眞金, 若有三分銀, 便和那七分底也壞了.”

다시 중용(中庸)에서 성(誠)을 논한 부분을 인용하여 말함: 하나이면 진실(誠)이요, 섞이면 거짓이다.[400] 마음이 하나이기만 하면 곧 진실(誠)이요, 둘이 되기만 하면 곧 자기기만(自欺)이다. 선을 좋아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듯 하고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는 것은 그저 철저히 마음이 하나라는 것이니, 그래서 스스로 통쾌히 만족한다고(自慊) 말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무언가 섞인다면 곧 마음이 둘인 것이요,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自欺) 것이다. 마치 자기는 선을 행하려 하나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여기에서 그대가 선을 행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과 같고, 악을 싫어하려 하나 흡사 또 다른 사람이 여기에서 그대가 악을 싫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自欺) 것이다. <이어서 근사록(近思錄)의 '마치 두 사람이 있어, 선을 행하려 하는데...'[401] 운운한 단락이 정확히 이 뜻이라고 인용함.> 마치 사람이 열 마디 말을 하는데, 아홉 마디는 진실하고 한 마디는 헛소리(脫空)라면, 이 한 마디 헛소리가 그 진실한 아홉 마디를 모두 망쳐 버리는(壞了)[402] 것과 같다. 순도 100%인 금 같은 경우, 철저히 좋아야만 진금(眞金)이라 하지, 만약 30%가 은이라면 나머지 70% 금까지도 망쳐 버린다.

又曰: “佛家看此亦甚精, 被他分析得項數多, 如云有十二因緣, 只是一心之發, 便被他推尋得許多, 察得來極精微. 又有所謂‘流注想’, 他最怕這箇. 所以潙山禪師云: ‘某參禪幾年了, 至今不曾斷得這流注想.’ 此卽荀子所謂‘偸則自行’之心也.” 僩(69이후).

또 말함: 이에 대한 불가의 이해 또한 매우 정밀하니 그들은 이를 여러 항목으로 분석해냈다. 예컨대 열두 가지 인연(因緣)[403]이 그저 한 마음의 발현일 뿐이라고 하는데(一心之發),[404] 그들은 이토록 많은 것을 추적하여 극히 정밀하게 관찰해낸다. 또 이른바 '흐르는 생각(流注想)'[405]이란 것이 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위산(潙山) 선사가[406] 말하기를 '나는 선을 참구한 지 몇 년이 되었으나, 지금까지도 이 흐르는 생각을 끊지 못했다'고 했다.[407] 이것이 바로 순자가 말한 '흐리멍텅하면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음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09 次早, 又曰: “昨夜思量, 敬子之言自是, 但傷雜耳. 某之言, 卻卽說得那箇自欺之根. 自欺卻是敬子‘容’字之意. ‘容’字卻說得是, 蓋知其爲不善之雜, 而又蓋庇以爲之, 此方是自欺. 謂如人有一石米, 卻只有九斗, 欠了一斗, 此欠者便是自欺之根, 自家卻自蓋庇了, 嚇人說是一石, 此便是自欺. 謂如人爲善, 他心下也自知有箇不滿處, 他卻不說是他有不滿處, 卻遮蓋了, 硬說我做得是, 這便是自欺. 卻將那虛假之善, 來蓋覆這眞實之惡. 某之說卻說高了, 移了這位次了, 所以人難曉. 大率人難曉處, 不是道理有錯處時, 便是語言有病; 不是語言有病時, 便是移了這步位了. 今若只恁地說時, 便與那‘小人閒居爲不善’處, 都說得貼了.” 僩(69이후).

다음날 아침에 다시 말함: 어젯밤 생각해 보니 경자의 말이 옳기는 옳다만 잡박하다는 흠이 있을 뿐이다. 나의 말은 (자기 기만 자체가 아니라) 자기 기만의 뿌리를 설명한 것이다. 자기 기만은 경자가 말한 '용인(容)'한다는 의미이다. '용(容)'자는 옳게 말했다. 이는 그 불선(不善)이 섞여들었음을 알고도 다시 이 흠결을 덮어둔 채로 행위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기 기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한 섬의 쌀이 있는데 실제로는 아홉 말뿐이고 한 말이 부족하다면, 이 부족한 것이 자기 기만의 뿌리이다. 스스로 이 흠결을 덮어두고 다른 사람에게는 한 섬이라고 큰소리치는(嚇)[408] 것이 자기 기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선(善)을 행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만, 자신에게 그런 지점이 있음을 말하지 않고 도리어 덮어두고는 자신은 옳은 행위를 했다고 강변하는 것이 자기 기만이다. 거짓된 선으로 진정한 악을 덮는 것이다. 나의 설명은 지나치게 고원해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 버렸기에[409]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대체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는 도리(道理)에 문제가 있을 때가 아니면 언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요, 언어에 문제가 있을 때가 아니면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만약 단순히 이렇게 말한다면, 저기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쪽과도 말이 완전히 부합한다(貼).[410]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10 次日, 又曰: “夜來說得也未盡. 夜來歸去又思, 看來‘如好好色, 如惡惡臭’一段, 便是連那'毋自欺也'說. 言人之毋自欺時, 便要‘如好好色, 如惡惡臭’樣方得. 若好善不‘如好好色’, 惡惡不‘如惡惡臭’, 此便是自欺. 毋自欺者, 謂如爲善, 若有些子不善而自欺時, 便當斬根去之, 眞箇是‘如惡惡臭’, 始得. 如‘小人閒居爲不善’底一段, 便是自欺底, 只是反說. ‘閒居爲不善’, 便是惡惡不‘如惡惡臭’; ‘見君子而後厭然, 揜其不善而著其善’, 便是好善不‘如好好色’. 若只如此看, 此一篇文義都貼實平易, 坦然無許多屈曲. 某舊說忒說闊了·高了·深了. 然又自有一樣人如舊說者, 欲節去之又可惜. 但終非本文之意耳.” 僩(69이후).

다음 날 또 말함: 어젯밤 말한 것도 역시 미진하다. 어젯밤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 부분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부분에 이어서 하는 말이었다. 이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기만을 금지할 때는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 해야만 된다는 말이다.[411] 만약 선을 좋아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듯' 하지 않거나,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자기 기만이다.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은 예컨대 선을 행하는데 약간의 불선한 의지를 가지고서 자신을 기만하는 경우, 곧바로 그 뿌리를 잘라 제거하여 진정 '악취를 싫어하듯' 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부분은 자신을 기만하는 부분인데, 그저 (선악의 순서를) 뒤집어 말한 것일 뿐이다.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한다'는 것은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 하지 않는 것이며,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겸연쩍게 그 불선(不善)함을 숨기고 선(善)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선을 좋아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듯'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편[412]의 문의(文義)가 완전히 현실에 부합하고(貼實) 평이(平易)하며, 일직선으로 탁 트여(坦然) 이런저런 굴곡이 없다.[413] 나의 예전 설은 지나치게 넓고 높고 깊게 설명했다. 그러나 또 예전 설에서 말한 것 같은 사람도 분명 있으니,[414] 예전 설을 삭제하고자 하면서도 또 아깝다. 그래도 결국 (나의 예전 설은 대학) 본문의 뜻은 아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415]

  •  16:111 看“誠意”章有三節: 兩“必愼其獨”, 一“必誠其意”. “十目所視, 十手所指”, 言“小人閒居爲不善”, 其不善形於外者不可揜如此. “德潤身, 心廣體胖”, 言君子愼獨之至, 其善之形於外者證驗如此. 銖(67이후).

'성의'장에는 세 단락이 있다.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해야 한다(必愼其獨)'가 두 단락, '반드시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必誠其意)'가 한 단락 있다.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十目所視, 十手所指)'는'소인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하는데, 그 불선함이 밖으로 드러나 감출 수 없음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德潤身, 心廣體胖)'는 군자의 신독(愼獨)의 노력이 극에 이르러 그 선함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의 증거가 이과 같다는 말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112 問“十目所視, 十手所指”.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十目所視, 十手所指)'에 관한 질문.

曰: “此承上文‘人之視己, 如見其肺肝’底意. 不可道是人不知, 人曉然共見如此.” 淳(61·70때).

대답: 이는 위쪽 문장인 '남들이 나를 보기를 마치 내 폐와 간을 보듯이 한다'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다. 남들은 모를 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다들 이처럼 분명하게 보고 있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十目所視以下.>

<'십목소시(十目所視)' 이하 부분에 관한 조목들>

  •  16:113 魏元壽問“十目所視”止“心廣體胖”處.

위원수(魏元壽)가 '십목소시(十目所視)'부터 '심광체반(心廣體胖)'까지 부분을 질문.

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不是怕人見. 蓋人雖不知, 而我已自知, 自是甚可皇恐了, 其與十目十手所視所指, 何以異哉?‘富潤屋’以下, 卻是說意誠之驗如此.” 時擧(64이후).

대답: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다'는 남들이 보는 것이 두렵다는 말이 아니다. 대개 남들은 알지 못해도 나는 이미 스스로 알고 있으니, 이 자체로 매우 두려운 일이다. 이것이 열 개의 눈과 열 개의 손가락이 보고 가리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반대로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富潤屋)' 이하 부분은 의지가 진실해졌을 때의 증거가 이와 같다는 설명이다.

  •  16:114 “心廣體胖”, 心本是闊大底物事, 只是因愧怍了, 便卑狹, 便被他隔礙了. 只見得一邊, 所以體不能常[416]舒泰. 僩(69이후).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心廣體胖).' 마음은 본래 광활한 물건인데 수치심(愧怍) 때문에 비좁아지고(卑狹) 끊어지고 막혀(隔礙) 버린다.[417] 한쪽 면만 보기 때문에 몸이 펴지고 편안할 수 없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15 伊川問尹氏: “讀大學如何?” 對曰: “只看得‘心廣體胖’一句甚好.” 又問如何, 尹氏但長吟“心廣體胖”一句. 尹氏必不會嚇人, 須是它自見得. 今人讀書, 都不識這樣意思.[418]

이천(伊川)[419]이 윤씨(尹氏)[420]에게 '대학을 읽어 보니 어떠한가'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그저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心廣體胖)는 한 구절이 매우 좋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라 하였다. 어떻게 좋냐고 재차 묻자 윤씨는 단지 '심광체반' 한 구절을 길게 읊기만 하였다. 윤씨는 분명 남을 속이지(嚇)[421] 못하므로 반드시 그 스스로 자득(自見得)한 것이리라.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을 적에 이런 의미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다.[422]

  •  16:116 問: “尹和靖云: ‘“心廣體胖”只是樂.’ 伊川云: ‘這裏著“樂”字不得.’ 如何?”

질문: 윤화정(尹和靖)이 말하길 '심광체반(心廣體胖)'은 즐거움(樂)일 뿐이다.'고 하자 이천(伊川)은 '여기에 락(樂)자를 쓸 수 없다'고 하였으니 어째서입니까?[423]

曰: “是不勝其樂.” 德明(44이후).

대답: 그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424]

  •  16:117 問“心廣體胖”.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心廣體胖)'에 관한 질문.

曰: “'無愧怍', 是無物欲之蔽, 所以能廣大.”

대답: '부끄러울(愧怍) 것이 없다'[425]는 물욕에 뒤덮힘이 없다는 것이니, 그래서 크고 넓을(廣大) 수 있다.

指前面燈云: “且如此燈, 後面被一片物遮了, 便不見一半了; 更從此一邊用物遮了, 便全不見此屋了, 如何得廣大!” 蘷孫(68이후).

전면의 등(燈)을 가리키며 말함: 예컨대 이 등의 뒷면이 무언가에 가로막혀서 (이 방의) 절반은 (우리가) 보지 못한다. 나아가 이쪽 면까지 무언가 가지고 와서 가로막아 버리면 (이 방) 전체를 전혀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크고 넓을(廣大) 수 있겠나?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18 問: “‘誠意’章結注云: ‘此大學一篇之樞要.’”.

질문: '성의' 장을 마무리하는 주석에서 '이것이 대학(大學) 한 편의 중추(樞要)[426]이다.'라고 하셨습니다.[427]

曰: “此自知至處便到誠意, 兩頭截定箇界分在這裏, 此便是箇君子小人分路頭處. 從這裏去, 便是君子; 從那裏去, 便是小人. 這處立得脚, 方是在天理上行. 後面節目未是處, 卻旋旋理會.” 㝢(61이후)

대답: 이는 '앎이 지극해짐(知至)'부분에서 '의지를 진실하게 함(誠意)'에 이르기까지 두 영역(兩頭截)[428]이 여기에다 경계선을 정해 두었다.[429] 여기가 바로 군자와 소인의 길이 갈리는 지점이다. 이쪽 길을 따라 가면 군자이고, 저쪽 길을 따라 가면 소인이다. 여기[430]에 발을 딛어야(立得脚)만 비로소 천리(天理)를 걷게 된다. 이 뒤쪽의 공부 단계들[431]에 있어 미진한 지점들은 천천히 헤아려도(理會)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19 居甫問: “‘誠意’章結句云: ‘此大學之樞要.’ 樞要說誠意, 是說致知?”

거보(居甫)[432]의 질문: '성의(誠意)' 장의 맺음말(結句)에서 '이것이 대학(大學)의 중추(樞要)이다'라고 했습니다. 중추가 성의라는 말입니까, 치지(致知)라는 말입니까?

曰: “上面關著致知·格物, 下面關著四五項上. 須是致知. 能致其知, 知之旣至, 方可以誠得意. 到得意誠, 便是過得箇大關, 方始照管得箇身心. 若意不誠, 便自欺, 便是小人; 過得這箇關, 便是君子.”

대답: (성의는) 위쪽으로는 치지격물(致知格物)과 관련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성의 이후) 너댓가지[433] 항목과 관련이 있다.[434] 반드시 앎을 지극히(致知)해야 한다. 앎을 지극히할 수 있어서 앎이 지극해진 후에야 비로소 의지를 진실히 할 수 있다(誠得意). 의지가 진실해지면 곧 큰 관문을 통과한 것이니, 비로소 몸과 마음(身心)을 돌볼(照管) 수 있게 된다.[435] 의지가 진실하지 않다면 자기기만이요 소인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군자다.

又云: “意誠, 便全然在天理上行. 意未誠以前, 尙汨在人欲裏.”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의지가 진실해지면 온전히 천리(天理)를 걷게 된다. 의지가 진실해지기 전에는 여전히 인욕(人欲)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20 因說“誠意”章, 曰: “若如舊說, 是使初學者無所用其力也. 中庸所謂明辨, “誠意”章而今方始辨得分明.” 蘷孫(68이후).

이어서 '성의' 장을 설명하며 말함: 예전 설(舊說)[436] 같은 경우는 초학자가 힘 쓸 곳이 없게 만든다.[437] 중용(中庸)에서 '분명하게 변석한다(明辨)'고 했는데,[438] '성의' 장은 이제야 비로소 분명하게 변석할 수 있게 되었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21 讀“誠意”一章, 炎謂: “過此一關, 終是省事.”

'성의' 장을 읽고서 내가(炎) 말함: 이 관문을 넘으면 결국 일을 덜게 됩니다(省事).

曰: “前面事更多: 自齊家以下至治國, 則其事已多; 自治國至平天下, 則其事愈多, 只是源頭要從這裏做去.”

대답: 앞으로(前面) 일이 더 많다. 제가부터 치국까지도 이미 일이 많지만 치국에서 평천하까지는 일이 더욱 많다. 다만 여기 근원(源頭)을 따라 해나가야 한다.[439]

又曰: “看下章, 須通上章看, 可見.” 炎(60·65때).

다시 말함: 아래 장을 볼 때는 반드시 위 장과 연결해서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염(炎)의 기록. (60세 혹은 65세)

傳七章釋正心修身

[편집]

전 7장 정심(正心)과 수신(修身)[440]해석.

대학 전 7장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자신을 닦음이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분노(忿懥)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두려워(恐懼)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선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걱정(憂患)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所謂修身, 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요),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  16:122 或問: “‘正心’章說忿懥等語, 恐通不得‘誠意’章?”

누군가의 질문: '정심'장에서 분노(忿懥) 등을 설명하는 어구는 '성의'장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曰: “這道理是一落索. 才說這一章, 便通上章與下章. 如說正心·誠意, 便須通格物·致知說.”

대답: 이 도리는 한묶음(一落索)이다.[441] 이 한 장을 설명하면 곧 그 위아래 장들과 통한다. 예를 들어 정심과 성의에 대해 설명할 경우 반드시 격물치지와 연결지어(通) 설명해야 한다.

  •  16:123 大學於“格物”·“誠意”章, 都是鍊成了, 到得正心·修身處, 都易了. 蘷孫(68이후).

'대학'은 격물과 성의 장에서 단련(鍛煉)이 모두 끝난다. 정심과 수신하는 단계의 경우 모두 한결 쉽다.[442]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24 問: “先生近改‘正心’一章, 方包括得盡. 舊來說作意或未誠, 則有是四者之累, 卻只說從誠意去.”

질문: 선생께서 최근에 '정심'(正心) 장 주석을 개정하셨는데,[443] 이제야 비로소 모두 온전히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구설에서는 '혹여 의지(意)가 진실하지 못하면 이 네 가지 얽매임[444]이 있다'고 하셨는데,[445] 이는 오히려 성의(誠意)로부터 설명하신 것입니다.

曰: “這事連而卻斷, 斷而復連. 意有善惡之殊, 意或不誠, 則可以爲惡. 心有得失之異, 心有不正, 則爲物所動, 卻未必爲惡. 然未有不能格物·致知而能誠意者, 亦未有不能誠意而能正心者.” 人傑(51이후).

대답: 이 일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끊어지고, 끊어지면서도 다시 연결된다.[446] 의지에는 선악 차이가 있으니, 혹여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면 악이 되어버릴 수 있다. 마음에는 득실의 차이가 있으니, 마음에 바르지 않음이 있으면 외물에 흔들리지만 그렇다고 꼭 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447] 하지만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해내지 못하고서 성의(誠意)를 해내는 사람은 없으며, 성의(誠意)를 해내지 못하면서 정심(正心)을 해내는 사람 역시 없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25 或問“正心”·“誠意”章. 先生令他說.

누군가가 '정심(正心)'과 '성의(誠意)' 장에 대해 질문하자 선생이 그에게 설명해 보라고 시켰다.

曰: “意誠則心正.”

(질문자가) 말함: 의지가 진실하면 곧 마음도 바르게 됩니다.[448]

曰: “不然. 這幾句連了又斷, 斷了又連, 雖若不相粘綴, 中間又自相貫. 譬如一竿竹, 雖只是一竿, 然其間又自有許多節. 意未誠, 則全體是私意, 更理會甚正心! 然意雖誠了, 又不可不正其心. 意之誠不誠, 直是有公私之辨, 君子小人之分. 意若不誠, 則雖外面爲善, 其意實不然, 如何更問他心之正不正! 意旣誠了, 而其心或有所偏倚, 則不得其正, 故方可做那正心底工夫.” 廣(65이후).

(선생이) 말함: 그렇지 않다. 이 몇 구절은 연결되었다가도 끊어지고 끊어졌다가도 다시 연결되니, 비록 서로 붙어 연결된(粘綴) 것 같지 않아도 그러는 가운데 또 서로 관통한다. 대나무 한 줄기로 비유하자면, 비록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줄기일 뿐이지만 그 중간에 또 자연히 여러 마디가 있는 것과 같다. 의지가 진실하지 않으면 전체가 다 사사로운 의지일 뿐이니 무슨 '정심'에 또 힘을 쓸 수 있겠나? 하지만 의지가 진실해졌다 하더라도 다시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의지의 진실성 여부는 곧 공사(公私)의 갈림길이며, 군자와 소인의 분기점이다.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면 겉으로는 선해도 그 속뜻은 진정으로 선하지 않은 것이니, 그의 마음이 바른지 어쩐지를 다시 따져봐야 무엇하겠는가? 의지가 진실해진 뒤에도 그 마음에 혹여 치우침이 있으면 바르게 될 수 없으므로 (이런 전제조건 하에서야) 비로소 저 '정심'하는 데 힘을 쓸 만하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6:126 亞夫問致知·誠意.

아부(亞夫)가 치지와 성의에 대해 질문함.

曰: “心是大底, 意是小的. 心要恁地做, 卻被意從後面牽將去. 且如心愛做箇好事, 又被一箇意道不須恁地做也得. 且如心要孝, 又有不孝底意思牽了. 所謂誠意者, 譬如飢時便喫飯, 飽時便休, 自是實要如此. 到飽後, 又被人請去, 也且胡亂與他喫些子, 便是不誠. 須是誠, 則自然表裏如一, 非是爲人而做, 求以自快乎己耳. 如飢之必食, 渴之必飮, 無一毫不實之意. 這箇知至·意誠, 是萬善之根. 有大底地盤, 方立得脚住. 若無這箇, 都靠不得. 心無好樂, 又有箇不無好樂底在後; 心無忿懥, 又有箇不無忿懥底在後. 知至後, 自然無.” 恪(64때).

대답: "마음(心)은 큰 것이고, 의지(意)는 작은 것이다.[449] 마음이 이렇게 하려고 해도 오히려 의지가 뒤로 당겨 끌고 가버린다.[450] 예를 들어, 마음이 어떤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만, 의지가 다시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 버린다. 예를 들어 마음은 효도하려고 하지만, 불효하려는 의지가 끌고 가버린다. 이른바 성의(誠意)란, 비유하자면 배고프면 밥을 먹고 배부르면 멈추는 것처럼 자연히 진심으로(實) 그렇게 하려는 것이다. 이미 배가 불렀는데 또 누군가의 식사 초대를 받아 다시 생각없이(胡亂)[451] 그와 밥을 조금 더 먹는다면 이는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진실해야만 자연스럽게 겉과 속이 같아지니, 남 보라고(爲人)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통쾌(快)[452]하기를 추구할 뿐이다. 마치 굶주리면 반드시 먹고 목마르면 반드시 마시는 것처럼, 조금도 진실하지 못한 의도가 없어야 한다. 여기 이 '앎이 지극해짐(知至)'과 '의지가 진실해짐(意誠)'이 만선(萬善)의 뿌리이다. 큰 기반이 있어야 비로소 발을 딛고 설 수 있다. 이 기반이 없으면 전혀 딛고 의지할 수 없다. 마음에 선호함(好樂)이 없어도 또 그 배후에는 선호가 없을 수 없다는 (의지가) 있고, 마음에 분노(忿懥)가 없어도 또 그 배후에는 분노가 없을 수 없다는 (의지가) 있다.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는 자연히 그런 것들이 없다.

각(恪)의 기록. (64세)

  •  16:127 敬之問: “誠意·正心. 誠意是去除得裏面許多私意, 正心是去除得外面許多私意. 誠意是檢察於隱微之際, 正心是體驗於事物之間.”

경지[453]의 질문: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의 경우, 성의는 내면의 여러 사의(私意)를 제거하는 것이고 정심(正心)은 외면의 여러 사의(私意)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성의는 은밀한 세미한 곳에서 스스로를 단속하는(檢察) 것이고, 정심은 사물 사이에서 체험(體驗)하는 것입니다.[454]

曰: “到得正心時節, 已是煞好了. 只是就好裏面又有許多偏. 要緊最是誠意時節, 正是分別善惡, 最要著力, 所以重複說道‘必愼其獨’. 若打得這關過, 已是煞好了. 到正心, 又怕於好上要偏去. 如水相似, 那時節已是淘去了濁, 十分淸了, 又怕於淸裏面有波浪動蕩處.” 賀孫(62이후).

대답: 정심의 단계에 이르렀으면 이미 상당히 좋아진 것이다. 그저 그 좋은 상태에도 다시 여러 치우침이 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의의 단계에서 바로 선악을 분별하는 데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 6장에서)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라고 중복해서 말한 것이다.[455] 이 관문을 돌파했으면 이미 상당히 좋아진 것이다. 정심의 경우는 그 좋은 상태에서도 다시 치우쳐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다. 물로 비유하자면 이 단계에서 이미 탁한 불순물을 제거하여 완전히 맑아졌지만, 그 맑은 상태에서도 다시 물결이 일렁여 동탕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28 問: “意旣誠, 而有憂患之類, 何也?”

질문: 의지가 이미 진실해졌는데도 걱정(憂患) 같은 것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曰: “誠意是無惡. 憂患·忿懥之類卻不是惡. 但有之, 則是有所動.” 節(64이후).

대답: 성의(誠意)는 악함이 없는(無惡) 상태이다. 근심(憂患)과 분노(忿懥) 등은 악이 아니다. 다만 있으면 (마음이) 동요할 뿐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29 意旣誠矣, 後面忿懥·恐懼·好樂·憂患·親愛·賤惡, 只是安頓不著在. 便是“苟志於仁矣, 無惡也”. 泳(66때).

의지가 이미 진실해졌다면 그 후의 분노(忿懥), 두려움(恐懼), 선호(好樂), 걱정(憂患), 친애(親愛), 혐오(賤惡)[456] 등은 그저 (마음이) 중심을 못잡은 것에 불과하다. 바로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면 악함이 없다'[457]는 의미이다.

영(泳) 기록. (66세)

  •  16:130 問: “心體本正, 發而爲意之私, 然後有不正. 今欲正心, 且須誠意否? 未能誠意, 且須操存否?”

질문: 마음의 본체는 본래 올바르며 그것이 틔워나와 사사로운 의지(意)가 된 뒤에야 바르지 못함이 있게 됩니다. 이제 마음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우선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합니까? 의지를 진실하게 하지 못했다면 우선 (달아난 마음을) 붙잡아 두는(操存)[458] 공부를 해야 합니까?

曰: “豈容有意未誠之先, 且放他喜怒憂懼不得其正, 不要管它, 直要意誠後心卻自正? 如此, 則意終不誠矣. 所以伊川說: ‘未能誠意, 且用執持.’” 大雅(49이후).

답변: 의지가 진실해지기 전에 기쁨, 분노, 걱정, 두려움이 그 올바름을 얻지 못하게 방치해 두고 돌보려 하지 않고, 그저 의지가 진실해지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바로잡힐 거라 기대만 하고, 어찌 (이런 태도를) 용납할 수 있겠나? 이런 식이면 의지는 끝내 진실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천(伊川)은 '의지를 진실하게 하지 못하겠거든 우선 (마음을) 붙잡고(執持)[459] 있어야 한다'[460]고 말했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6:131 誠意, 是眞實好善惡惡, 無夾雜.

'성의(誠意)'는 진실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여 (다른 의지와 의도가) 섞임이 없는 것이다.

又曰: “意不誠, 是私意上錯了; 心不正, 是公道上錯了.”

다시 말함: 의지가 진실하지 못함은 사의(私意)의 차원에서 잘못된 것이다. 마음이 바르지 못함은 공도(公道)의 차원에서 잘못된 것이다. [461]

又曰: “好樂之類, 是合有底, 只是不可留滯而不消化. 無留滯, 則此心便虛.” 節(64이후).

다시 말함: 선호함(好樂) 등등은 당연히 있는 것이니, 그저 체해서 소화시키지 못해서는 안 될 뿐이다. 체함이 없다면 이 마음은 비어있다(虛).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32 問: “忿懥·恐懼·憂患·好樂, 皆不可有否?”

질문: 분노, 두려움, 걱정, 선호 같은 것이 전혀 없어야 합니까?

曰: “四者豈得皆無! 但要得其正耳, 如中庸所謂‘喜怒哀樂發而中節’者也.” 去僞(46때).

대답: 어떻게 이 네 가지 감정이 전혀 없을 수 있겠나? 다만 그 올바르게 조절되어야 할 뿐이다. 중용(中庸)에서 말한 '희로애락이 틔워나와 절도에 맞다'[462]와 같은 것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6:133 心有喜怒憂樂則不得其正, 非謂全欲無此, 此乃情之所不能無. 但發而中節, 則是; 發不中節, 則有偏而不得其正矣. 端蒙(50이후).

마음에 기쁨, 분노, 걱정, 선호가 있으면 올바르지 못하다 것은 이러한 감정이 완전히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감정은 본래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틔워나올 때 절도에 맞으면 올바르고, 절도에 맞지 않으면 치우쳐 올바르지 못하게 될 뿐이다.

  •  16:134 好·樂·憂·懼四者, 人之所不能無也, 但要所好所樂皆中理. 合當喜, 不得不喜; 合當怒, 不得不怒. 節(64이후).[463]

좋아함, 즐거움, 걱정, 두려움의 네 가지 감정은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좋아하고 즐기는 대상이 모두 이치에 맞아야 한다. 기뻐하는 게 당연한 경우에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성내는 게 당연한 경우에는 성내지 않을 수 없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35 四者人所不能無也, 但不可爲所動. 若順應將去, 何“不得其正”之有! 如顔子“不遷怒”, 可怒在物, 顔子未嘗爲血氣所動, 而移於人也, 則豈怒而心有不正哉! 端蒙(50이후).

이 네 가지[464]는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감정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 만약 순리대로 반응해 나간다면 어찌 '올바름을 얻지 못'할 수 있겠나? 안자(顔子)가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다'고 함은, 화를 낼 사유는 (분노의) 대상 쪽에 있으므로 안자는 한번도 혈기(血氣)에 휘둘려서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긴 적이 없다는 것이다.[465] 그러니 어찌 화를 냄에 있어 마음에 올바르지 못함이 있겠나?

  •  16:136 正心, 卻不是將此心去正那心. 但存得此心在這裏, 所謂忿懥·恐懼·好樂·憂患自來不得. 賀孫(62이후).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이 마음을 가지고 저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다.[466] 그저 이 마음을 이 속에 잘 간직하고 있기만 하면,[467]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과 같은 감정들은 자연히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37 問: “忿懥·恐懼·好樂·憂患, 皆以‘有所’爲言, 則是此心之正不存, 而是四者得以爲主於內.”

질문: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은 모두 '...하는 바가 있으면(有所)'하는 형태로 표현됩니다. 이는 이 마음에 올바름이 부재하여 이 네 감정이 내면에서 주인노릇을 한다는 말입니다.

曰: “四者人不能無, 只是不要它留而不去. 如所謂‘有所’, 則是被他爲主於內, 心反爲它動也.” 道夫(60이후).

답변: 이 네 가지 감정은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마음에 체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른바 '...하는 바가 있으면(有所)'의 경우 같으면, 내면에서 그것들에게 주인자리를 빼앗겨 마음이 오히려 그것들에게 휘둘리는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138 大學七章, 看“有所”二字. “有所憂患”, 憂患是合當有, 若因此一事而常留在胸中, 便是有. “有所忿懥”, 因人之有罪而撻之, 才撻了, 其心便平, 是不有; 若此心常常[468]不平, 便是有. 恐懼·好樂亦然. 泳(66때).

대학 전 7장의 '...하는 바가 있으면(有所)'이라는 두 글자를 보라.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有所憂患)'에서 걱정이란 (사람에게) 당연히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걱정이) 항상 가슴 속에 체류한다면, 그것이 바로 (대학에서 말한) '있으면(有)'의 의미이다.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有所忿懥)'의 경우,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서 그를 처벌하고[469], 벌하자마자 자신의 마음이 곧 평온해졌다면 이는 '있(有)'지 않은 것이다. 만약 자기 마음이 늘 또 평온하지 못하다면 곧 '있는(有)' 것이다. 두려움과 선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泳) 기록. (66세)

  •  16:139 “心有所忿懥, 則不得其正.” 忿懥已自粗了. 有事當怒, 如何不怒. 只是事過, 便當豁然, 便得其正. 若只管忿怒滯留在這裏, 如何得心正. “心有所好樂, 則不得其正.” 如一箇好物色到面前, 眞箇是好, 也須道是好. 或留在這裏, 若將去了, 或是不當得他底, 或偶然不得他底, 便休, 不可只管念念著他. 賀孫(62이후).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분노는 원래 단순한(粗)[470] 감정이다. 화나는 게 당연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나? 다만 일이 지나간 다음에는 (마음이) 탁 트여야만 올바름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분노가 계속해서 내면에 체류한다면 어떻게 마음이 올바를 수 있겠나? '마음(心)[471]에 선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좋은 물건들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정말로 좋은 것이라면 역시 좋다고 말해야 한다. 혹여 (그 중 어떤 물건을) 마음에 담아두었는데 (누가) 그것을 가져가버릴 경우, 혹시라도 그것이 (내가) 가져서는 마땅치 않은 물건이라거나, 혹시 우연히 (내가) 그것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바로 포기하고 그만두어야지 계속해서 그것만 생각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40 問: “伊川云: ‘忿懥·恐懼·好樂·憂患, 人所不能無者, 但不以動其心.’ 旣謂之忿懥·憂患, 如何不牽動他心?”

질문: 이천(伊川)은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은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니, 다만 그것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472] 이미 분노하고 걱정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曰: “事有當怒當憂者, 但過了則休, 不可常留在心. 顔子未嘗不怒, 但不遷耳.”

대답: 당연히 화내고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다만 그 일이 지나가고 나면 그만 두어야지 마음속에 계속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안자(顔子)는 화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화를 다른 데로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473]

因擧樓[474]中: “果怒在此, 不可遷之於彼.” 德明(44이후).

이어서 그릇 속 과일을 집어 들고 말함: 여기에 있는 분노를 저기다 옮겨서는 안 된다(因擧柈中果: "怒在此, 不可遷之於彼.").[475]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141 心不可有一物. 喜怒哀樂固欲得其正, 然過後須平了. 且如人有喜心, 若以此應物, 便是不得其正. 人傑(51이후).

마음에 어떤 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희노애락의 감정은 물론 (그 감정의 발산 방향과 정도에 있어서) 올바르게 하고자 해야 하지만, (사태가) 지나가고 난 후에는 평정심을 회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 기쁜 마음이 있더라도 그 마음만으로 (여러 다른) 사물에 대처하면 올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42 看心有所喜怒說, 曰: “喜怒哀樂固欲中節, 然事過後便須平了. 謂如事之可喜者, 固須與之喜, 然別遇一事, 又將此意待之, 便不得其正. 蓋心無物, 然後能應物. 如一量稱稱物, 固自得其平. 若先自添著些物在上, 而以之稱物, 則輕重悉差矣. 心不可有一物, 亦猶是也.” 㽦(59때).

'마음(心)[476]에 기뻐하고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부분의 설명을 읽고 말함: 희노애락의 감정은 물론 (그 감정의 발산 방향과 정도에 있어서) 절도에 맞게(中節) 하고자 해야 하지만, 일이 지나간 후에는 평정심을 회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뻐할 만한 일이 있으면 물론 당연히 기뻐해야 하지만, 별개의 사태와 조우했을 때도 이 (기쁜) 감정을 가지고 대처하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다. 이는 마음 속에 사물이 없고 나서야(無物) 사물에 적절히 대응할(應物)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양팔저울(一量稱)[477]이 물건을 달 때 실로 자연스레 평형을 이루는 것과 같다. 만약 저울 (한쪽) 위에 미리 어떤 사물을 올려놓고 다른 사물을 달면 경중(輕重)이 모두 잘못되게 된다. 마음 속에 일물(一物)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역시 이 저울의 경우와 같다.

순(㽦)의 기록. (59세)

  •  16:143 “四者心之所有, 但不可使之有所私爾. 才有所私, 便不能化, 梗在胸中. 且如忿懥·恐懼, 有當然者. 若定要他無, 直是至[478]死方得, 但不可先有此心耳. 今人多是才忿懥, 雖有可喜之事亦所不喜; 才喜, 雖有當怒之事亦不復怒, 便是蹉過事理了, 便‘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了. 蓋這物事才私, 便不去, 只管在胸中推盪, 終不消釋. 設使此心如太虛然, 則應接萬務, 各止其所, 而我無所與, 則便視而見, 聽而聞, 食而眞知其味矣. 看此一段, 只是要人不可先有此心耳. 譬如衡之爲器, 本所以平物也, 今若先有一物在上, 則又如何稱!”

네 가지 감정(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은 마음에 (당연히) 있는 것이요, 다만 (그 감정들에) 사사로운 부분이 있게 해서는 안 될 뿐이다. 사사로운 부분이 생겨버리면 (감정이) 소화가 되지 않아 흉중에 막혀버린다. 예를 들어, 화나고 두려운 것이 당연한 경우들이 있다. 만약 이러한 감정을 결단코 없애려 한다면 죽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단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될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화가 나기만 하면 비록 기뻐할 만한 일이 생겨도 기뻐하지 않고, 기쁘기만 하면 화나는 게 당연한 일이 있어도 다시 화내지 않으니, 이는 사리에 어긋난(蹉過) 것이요,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이 물건(物事)[479]이 사사롭게 되면서 (다른 데로) 가버리지 않고 흉중에 계속 남아 요동치며(推盪) 끝내 소화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만약 마음이 태허(太虛)와 같다면 만사에 적절히 대응하여 각각이 다 마땅한 처분을 얻어서(應接萬務, 各止其所)[480] 나는 전혀 관여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면 보이고, 들으면 들리며, 먹으면 진정으로 그 맛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단락을 보면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이러저러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라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양팔저울이라는 기구는 본래 물건을 달아 평형을 이루는 것인데, 이제 만약 저울에 미리 어떤 물건을 올려두면 어떻게 평형을 이루겠나?

頃之, 復曰: “要之, 這源頭卻在那致知上. 知至而意誠, 則‘如好好色, 如惡惡臭’, 好者端的是好, 惡者端的是惡. 某常云, 此處是學者一箇關. 過得此關, 方始是實.”

잠시 후 다시 말함: 결국 이것의 근원(源頭)은 저 치지(致知) 쪽에 있다. 앎이 지극해지고 의지가 진실해지면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 하게 되는데, 좋은 것은 정말로 좋아하고, 나쁜 것은 정말로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이 부분이 배우는 이에게 하나의 관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진실하게 된다.

又曰: “某常謂此一節甚異. 若知不至, 則方說惡不可作, 又有一箇心以爲爲之亦無害; 以爲善不可不爲, 又有一箇心以爲不爲亦無緊要. 譬如草木, 從下面生出一箇芽子, 這便是不能純一, 這便是知不至之所爲.”

다시 말함: 나는 항상 이 부분이 매우 특별하다고 말했다. 만약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 비록 악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도 마음 한편에서는 또 '해도 무방하지'라고 생각하며, 비록 선한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도 마음 한편에서는 '안해도 대수로울 것 없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풀과 나무가 아래쪽으로도 싹을 내는 것과 같다.[481] 이는 순일(純一)하지 못한 것이요, 앎이 지극하지 못한 탓이다.

或問公私之別.

누군가가 공사(公私)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今小譬之: 譬如一事, 若係公衆, 便心下不大段管; 若係私己, 便只管橫在胸中, 念念不忘. 只此便是公私之辨.” 道夫(60이후).

대답: 작은 비유를 들자면, 어떤 일이 공중(公衆)에 관계된 것이라면 속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私己)와 관계된 것이라면 가슴 속에 걸려서 끊없이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공사(公私)의 차이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144 “忿懥·好樂·恐懼·憂患, 這四者皆人之所有, 不能無. 然有不得其正者, 只是應物之時不可夾帶私心. 如有一項事可喜, 自家正喜, 驀見一可怒底事來, 是當怒底事, 卻以這喜心處之, 和那怒底事也喜了, 便是不得其正. 可怒事亦然. 惟誠其意, 眞箇如鑑之空, 如衡之平, 姸媸高下, 隨物定形, 而我無與焉, 這便是正心.”

분노, 선호, 두려움, 걱정. 이 네 가지 감정은 모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요,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름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저 사물에 대응할 때 사심(私心)을 끼고 하면 안 될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뻐할 만한 일이 있어서 스스로 막 기뻐하고 있는 참인데 갑자기 화를 낼 만한 일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당연히 화를 내야 할 일임에도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대처한다고 하자. 화를 낼 일임에도 기뻐함이 바로 '올바름을 얻지 못한' 것이다. 화를 낼 만한 일도 마찬가지이다.[482] 오직 의지를 진실히 하여 진정으로 거울처럼 비어 있고 저울처럼 평평하여, 아름다움과 추함, 높고 낮음을 마주하는 사물에 따라 형태를 정하여 자신이 관여함이 없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심(正心)이다.[483]

因說: “前在漳州, 見屬官議一事, 數日不決, 卻是有所挾. 後忽然看破了, 道: ‘這箇事不可如此.’ 一向判一二百字, 盡皆得這意思. 此是因事上見這心親切.”

이어서 말함: 전에 장주(漳州)[484]에 있을 때, 속관(屬官)들을 만나 한 가지 일을 논의하며 며칠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는 (내가 사심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문득 이를 간파하고서 '이 일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단숨에 판결문 1~200 자를 써냈는데 모두 이런 취지였다. 이것이 실제 사태(事上)를 통해 이 마음을 친근하고 절실히(親切)[485] 안다는 것이다.[486]

<賀孫錄別出.>

<하손의 기록은 별개의 조목으로 배치함>

  •  16:145 先之問: “心有所好樂, 則不得其正.”

선지(先之)[487]가 '마음에 선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을 수 없고'에 관하여 질문함.

曰: “心在這一事, 不可又夾帶那一事. 若自家喜這一項事了, 更有一事來, 便須放了前一項, 只平心就後一項理會, 不可又夾帶前喜之之心在這裏. 有件喜事, 不可因怒心來, 忘了所當喜處; 有件怒事, 不可因喜事來, 便忘了怒. 且如人合當行大門出, 卻又有些回避底心夾帶在裏面, 卻要行便門出. 雖然行向大門出, 念念只有箇行便門底心在這裏, 少刻或自拗向便門去. 學者到這裏, 須是便打殺那要向便門底心, 心如何不會端正! 這般所在, 多是因事見得分明. 前在漳州, 有一公事, 合恁地直截斷. 緣中間情有牽制, 被他撓數日. 忽然思量透, 便斷了, 集同官看, 覺當時此心甚正. 要知此正是正心處.” 賀孫(62이후).

대답: 마음이 이 일에 있을 때, 다시 저 일을 끼고 와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신이 어떤 일을 기뻐했는데 다시 다른 일이 생겼다면 앞의 일을 내려놓고 평정한 마음으로 뒤의 일을 처리해야지, 앞에서 기뻐했던 마음을 끼고 이쪽으로 와서는 안 된다. 어떤 기쁜 일이 있을 때, 화난 마음 때문에 당연히 기뻐해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 되며, 어떤 화날 일이 있을 때, 기쁜 일 때문에 화낼 것을 잊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당연히 대문으로 나가야 하는데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에 끼고 있어서 옆문(便門)으로 나가려고 한다. 비록 대문으로 나가고 있지만 옆문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내면에 이어진다면 잠시 후에 혹 방향을 틀어 옆문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배우는 이는 이런 상황에서 옆문으로 가려는 마음을 단호히 제거해야 하니, 그러면 마음이 어찌 올바르게 되지 않겠나?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실제 사안을 통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전에 장주에 있었을 때 어떤 공무가 있었는데 바로 단호하게 이러이러하게 결단해야 했다. 하지만 속으로 감정에 얽매여 며칠 동안 흔들렸다. 문득 생각이 투명해져서 바로 결단을 내리고 동료들을 소집해 보여주었을 때, 그 당시 내 마음이 매우 바른 상태임을 느꼈다. 이런 것이 바로 정심(正心)하는 지점임을 알아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46 敬之問: “‘正心’章云: ‘人之心要當不容一物.’”

경지(敬之)의 질문: ‘정심(正心)’장에서 ‘사람의 마음은 하나의 물건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曰: “這說便是難. 才說不容一物, 卻又似一向全無相似. 只是這許多好樂·恐懼·忿懥·憂患, 只要從無處發出, 不可先有在心下. 看來非獨是這幾項如此, 凡是先安排要恁地, 便不得. 如人立心要恁地嚴毅把捉, 少間只管見這意思, 到不消恁地處也恁地, 便拘逼了. 有人立心要恁地慈祥寬厚, 少間只管見這意思, 到不消恁地處也恁地, 便流入於姑息苟且. 如有心於好名, 遇著近名底事, 便愈好之; 如有心於爲利, 遇著近利底事, 便貪欲.” 賀孫(62이후).

대답: 이 설명은 어렵다. 하나의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리면 마치 줄곧 전혀 아무것도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저 선호함, 두려움, 분노, 걱정 같은 여러 감정들이 (기존에 선행하는 다른 감정적 윤색 없이) 영점에서 발출해야지, 마음속에 미리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 몇 가지 감정의 경우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이러이러하게 하겠노라고 미리 안배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마음 먹고 이렇게 엄격하게 통제하려 하는데 한동안 계속해서 그렇게만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버려서 (부당하게) 핍박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마음 먹고 이렇게 느슨하게 풀어주려 하는데 한동안 계속해서 그렇게만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버려서 나사빠진 무사안일주의(姑息苟且)[488]에 빠지게 된다. 명성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경우에는 명성에 가까운 일을 만나면 더욱 좋아하게 되고,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경우 이익에 가까운 일을 만나면 탐욕스럽게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47 人心如一箇鏡, 先未有一箇影象, 有事物來, 方始照見姸醜. 若先有一箇影象在裏, 如何照得! 人心本是湛然虛明, 事物之來, 隨感而應, 自然見得高下輕重. 事過便當依前恁地虛, 方得. 若事未來, 先有一箇忿懥·好樂·恐懼·憂患之心在這裏, 及忿懥·好樂·恐懼·憂患之事到來, 又以這心相與滾合, 便失其正. 事了, 又只苦留在這裏, 如何得正? 賀孫(62이후).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아서 처음에는 아무런 상도 없지만 사물이 오면 그제서야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추어 준다. 만약 어떤 상이 거울 안에 미리 들어 있다면 어떻게 제대로 비출 수 있겠나? 사람의 마음은 본래 담담하니 텅 비고 밝아서(湛然虛明) 사물이 오면 그에 따라 감촉하고 대응하니 자연스럽게 (그 사물의) 높고 낮고 가볍고 무거움을 알 수 있다. (왔던) 일이 지나가고 나면 당연히 다시 이전처럼 텅 비어야 된다. 만약 일이 오기 전에 먼저 분노함, 선호함, 두려움, 걱정하는 마음이 하나라도 내면에 들어 있으면 분노, 선호, 두려움, 걱정할 만한 일이 실제로 닥쳐왔을 때 다시 (앞서 품고 있던) 그 마음과 (실제 사태가) 뒤섞여서 그 바름을 잃게 될 것이다. 일이 끝난 후에도 이 마음이 내면에 애써(苦)[489] 남겨둔다면 어떻게 바를 수 있겠나?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48 葉兄又問“忿懥”章.

섭(葉)형[490]이 다시 '분노(忿懥)'장에 관하여 질문함.

曰: “這心之正, 卻如稱一般. 未有物時, 稱無不平, 才把一物在上面, 便不平了. 如鏡中先有一人在裏面了, 別一箇來, 便照不得. 這心未有物之時, 先有箇主張說道: ‘我要如何處事.’ 才遇著事, 便以是心處之, 便是不正. 且如今人說: ‘我做官, 要抑强扶弱.’ 及遇著當强底事, 也去抑他, 這便也是不正.” 卓(미상).

대답: 이 마음의 바름은 마치 저울과 같다. 물건을 달기 전에는 저울이 평형을 이루고 있다가 무언가를 올리면 그 즉시 평형을 잃는다. 마치 거울 안에 미리 한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와도 비춰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 마음에 아직 무언가 들어있지 않은 시점에 먼저 어떤 주의주장을 가지고 '나는 이러이러하게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러다가 일이 닥치면 바로 그 마음으로 대처하게 되는데, 이러면 바르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제 어떤 사람이 '내가 관직을 맡으면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울 것이다(抑强扶弱)'고 말한다고 하자. 그러다가 강한 게 당연한 사람을 만나서도 그를 억누르게 되는데, 이 역시 바르지 못한 것이다.

탁(卓)의 기록.

  •  16:149 喜怒憂懼, 都是人合有底. 只是喜所當喜, 怒所當怒, 便得其正. 若欲無這喜怒憂懼, 而後可以爲道, 則無是理. 小人便只是隨這喜怒憂懼去, 所以不好了. 義剛(64이후).

기쁨, 분노, 걱정, 두려움은 모두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는 것들이다. 다만 기뻐할 만한 것에 기뻐하고 화낼 만한 것에 화내면 바름을 얻는다는 것 뿐이다. 만약 이러한 기쁨, 분노, 걱정, 두려움이 사라진 뒤에야 도(道)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럴 리(理) 없다. 소인은 단지 이러한 기쁨, 분노, 걱정, 두려움에 휩쓸려 가버리기 때문에 좋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6:150 問“忿懥”章.

'분노' 장에 관한 질문.

曰: “只是上下有不恰好處, 便是偏.” 可學(62때).

대답: 위아래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곧 기운(偏) 것이다.[491]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6:151 問忿懥.

분노(忿懥)에 관한 질문.

曰: “是怒之甚者.”

대답: 심하게 화(怒)[492]가 난 것이다.

又問: “忿懥比恐懼·憂患·好樂三者, 覺得忿懥又類過於怒者.”

재질문: 두려움(恐懼), 걱정(憂患), 선호(好樂) 이 세 가지에 비하면, 분노는 그 분류상 화를 넘어선 것처럼 느껴집니다.

曰: “其實也一般. 古人旣如此說, 也不須如此去尋討.” 履孫(65때).

대답: 실제로는 모두 같은 것이다. 옛 사람들이 이미 이렇게 말했으니, 굳이 이렇게 캐물을 필요는 없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6:152 問: “喜怒憂懼, 人心所不能無. 如忿懥乃戾氣, 豈可有也?”

질문: 기쁨, 화, 걱정,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에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분노(忿懥) 같은 경우는 삿된 기운인데 어찌 있어도 되는 것이겠습니까?

曰: “忿又重於怒心. 然此處須看文勢大意. 但此心先有忿懥時, 這下面便不得其正. 如鏡有人形在裏面, 第二人來便照不得. 如稱子釘盤星上加一錢, 則稱一錢物便成兩錢重了. 心若先有怒時, 更有當怒底事來, 便成兩分怒了; 有當喜底事來, 又減卻半分喜了. 先有好樂, 也如此; 先有憂患, 也如此. 若把忿懥做可疑, 則下面憂患·好樂等皆可疑.”

대답: 분노는 화보다 강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문세(文勢)의 큰 뜻을 보아야 한다. 이 마음이 먼저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그 다음 장면에서 바름을 얻지 못한다. 이는 마치 거울에 사람의 형상이 미리 들어 있으면 다음 사람이 와도 비춰 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는 마치 저울의 영점(定盤星)[493]을 1전(錢)[494]만큼 (왼쪽으로) 옮기면 1전짜리 물건을 잴 적에 무게가 두 배로 나와 버리는 것과 같다.[495] 마음에 먼저 화가 들어 있는 경우 화내는 게 당연한 일이 추가로 생기면 화가 두 배가 되어 버리고, 기뻐하는 게 당연한 일이 생겨도 기쁨이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먼저 선호함이 들어 있어도 이와 같고 먼저 걱정이 들어 있어도 역시 이와 같다. 분노를 가지고 의심할 수 있으면 (본문의 순서상) 그 다음 부분인 걱정과 선호 등도 모두 의심할 수 있다.

問: “八章謂: ‘五者有當然之則.’ 如敖惰之心, 則豈可有也?”

질문: 전 8장에서 '이 다섯 가지에는 마땅히 따라야 할 준칙이 있다'고 주석하셨는데 업신여기는(敖惰) 마음 같은 것이 어찌 있어도 되는 것이겠습니까?[496]

曰: “此處亦當看文勢大意. 敖惰, 只是一般人所爲得人厭棄, 不起人敬畏之心. 若把敖惰做不當有, 則親愛·敬畏等也不當有.” 淳(61·70때).

대답: 이 부분 역시 문세의 큰 뜻을 보아야 한다. 업신여김이란, 어떤 사람들의 행위가 남들의 혐오감(厭棄)을 사서 경외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한 것이다. 만약 업신여김을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면 친애와 경외 등 역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497]

순(淳)의 기록. (61세, 70세)

<寓錄略>.

<우(寓)의 기록은 생략.>[498]

  •  16:153 劉圻父說“正心”章, 謂: “不能存之, 則四者之來, 反動其心.”

류기보가 '정심' 장을 설명하며 말함: '(달아난 마음을 붙잡아 와서) 간직하지 못하면, 이 네 가지 감정이 발생하여 오히려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499]

曰: “是當初說時添了此一節. 若據經文, 但是說四者之來, 便撞翻了這坐子耳.”

대답: 당초에 (대학을) 해설할 적에 그 구절을 덧붙였다. 하지만 경문을 보면 단지 네 가지 감정이 발생하여 이 자리(坐子)를 뒤엎는다(撞翻)고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又曰: “只爭箇動不動.”

다시 말함: 그저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를 다툴 뿐이다.[500]

又曰: “若當初有此一節時, 傳文須便說在那裏了. 他今只恁地說, 便是無此意. 卻是某於解處, 說絮著這些子.” 義剛(64이후).

다시 말함: 애당초 이 구절이 있으려면[501] (대학 전 7장의) 본문 쪽에 이런 설명이 있어야 했다. 본문에서 이제 그냥 저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니 이런 뜻은 없는 것이다.[502] 내가 해석할 적에 이런 (관련성 없는) 내용들을 번쇄하게 말했을 뿐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503]

  •  16:154 今不是就靜中動將去, 卻是就第二重動上動將去, 如忿懥·好樂之類. 德明(44이후).

여기서는 고요한 상태에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층위의 움직이는 상태에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이는 분노(忿懥)와 선호(好樂) 같은 것들이다.[504]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155 敬之問“心有所好樂則不得其正”章, 云: “心不可有一毫偏倚. 才有一毫偏倚, 便是私意, 便浸淫不已, 私意反大似身己, 所以‘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경지가 '마음에 선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함' 장에 대해 질문함: 마음에는 조금도 치우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치우침이 있으면 곧 사의(私意)이니, 계속 젖어 들다 보면 결국 사의가 자기 몸보다 더 커지게 됩니다.[505] 그래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曰: “這下是說心不正不可以修身, 與下章‘身不修不可以齊家’意同, 故云: ‘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視聽是就身上說. 心不可有一物, 外面酬酢萬變, 都只是隨其分限應去, 都不關自家心事. 才係於物, 心便爲其所動. 其所以係於物者有三: 或是事未來, 而自家先有這箇期待底心; 或事已應去了, 又卻長留在胸中不能忘; 或正應事之時, 意有偏重, 便只見那邊重, 這都是爲物所係縛. 旣爲物所係縛, 便是有這箇物事, 到別事來到面前, 應之便差了, 這如何會得其正! 聖人之心, 瑩然虛明, 無纖毫形跡. 一看事物之來, 若小若大, 四方八面, 莫不隨物隨應, 此心元不曾有這箇物事. 且如敬以事君之時, 此心極其敬. 當時更有親在面前, 也須敬其親. 終不成說敬君但只敬君, 親便不須管得! 事事都如此. 聖人心體廣大虛明, 物物無遺.” 賀孫(62이후).

대답: 그 아래로는[506]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몸을 닦을 수 없다는 말이니, 다음 장의 '몸이 닦이지 않으면 집안을 다스릴 수 없다'와 의미가 같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악한줄 모르고 자기 묘(苗)가 큰 줄 모른다'고 했다.[507] 보고 들음은 신체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마음에는 한 물건도 있어서는 안 되니, 무수한 외부의 변화에 대응하기를 그저 모두 (각 대상 사물의) 개별적 특성(分限)에 맞추어 응대할 뿐, 자기자신의 마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게 한다.[508] 사물에 얽매이는 순간 마음은 그것에 의해 움직여져(=흔들려) 버린다. 사물에 얽매이게 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일이 오기 전에 자기에게 앞서 기대하는 마음이 있거나, 일에 대응하여 처리한 후에도 그것이 가슴에 오래 잔류하여 잊을 수 없거나, 일을 막 처리하는 중에 의향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서 그쪽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이들 모두가 사물에 얽매이는 것이다. 일단 사물에 얽매이고 나면 그 물건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다른 일이 눈 앞에 닥쳐왔을 때 대응에 차질이 생긴다. 그러니 어떻게 바름을 얻을 수 있겠나? 성인의 마음은 형연히 밝고 텅 비어(瑩然虛明) 조금도 (이전에 대응했던 사안의) 흔적이 없다. 일단 사물이 다가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크든 작든 사방팔방으로 각 사물의 (개별적 특성에) 따라 모조리 응대해내지만 그의 마음에는 애초부터 (응대해낸) 그 사물이 들어 있었던 적이 없다. 예를 들어, 공경하는 마음으로 임금을 섬길 적에 그의 마음은 지극히 경건하다. 그 순간 그의 면전에 자신의 어버이가 있어도 역시 어버이를 공경해야 한다. 결국 임금을 공경한다고 해서 단지 임금만 공경하고 어버이는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509] 모든 일이 이와 같다. 성인의 마음(心體)은 광대허명(廣大虛明)하여 어떤 사물도 (그 안에) 남겨두지 않는다(無遺).[510]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56 正叔見先生, 言明心·定心等說. 因言: “心不在焉, 則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정숙(正叔)[511]이 선생을 뵙고 마음을 밝히고(明心) 안정시키는(定心) 등에 관하여 말했다. 이어서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曰: “這箇, 三歲孩兒也道得, 八十翁翁行不得!” 伯羽(61때).

대답: 이건 세 살 짜리 아이도 말할 수 있지만 여든 노인도 실천하지 못한다.

백우(伯羽)의 기록. (61세)

  •  16:157 黃丈云: “舊嘗問: ‘“視而不見, 聽而不聞”, 只是說知覺之心, 卻不及義理之心.’ 先生曰: ‘才知覺, 義理便在此; 才昏, 便不見了.’” 方子(59이후).

황(黃) 어르신[512]이 말함: 예전에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는 지각하는 마음[513]을 설명한 것일 뿐 의리(義理)의 마음을 언급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질문하자 선생께서 '지각하면 의리(義理)가 곧 그 안에 있고 흐리멍텅(昏)하면 (의리를)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하셨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學蒙錄別出.>

<학몽(學蒙)의 기록은 별개의 조목으로 배치함>

  •  16:158 直卿云: “舊嘗問: ‘視之不見, 聽之不聞處, 此是收拾知覺底心, 收拾義理底心?’ 先生曰: ‘知覺在, 義理便在, 只是有深淺.’” 學蒙(65이후).

직경(直卿)이 말함: 예전에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부분은 지각하는 마음을 수습하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의리(義理)의 마음을 수습하라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선생께서 '지각이 있으면 의리(義理)가 있다. 깊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고 하셨다.

학몽(學蒙)의 기록. (65세 이후)

  •  16:159 夜來說: “心有喜怒不得其正.” 如某夜間看文字, 要思量改甚處, 到上床時擦脚心, 都忘了數. 天明擦時, 便記得. 蓋是早間未有一事上心, 所以記得. 孟子說: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者幾希.” 幾希, 不遠也. 言人都具得此, 但平日不曾養得, 猶於夜間歇得許多時不接於事, 天明方惺, 便恁地虛明光靜. 然亦只是些子發出來, 少間又被物欲梏亡了. 孟子說得話極齊整當對. 如這處, 他一向說後去, 被後人來就幾希字下注開了, 便覺意不連. 賀孫(62이후).

지난밤 '마음에 기쁨과 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514]에 대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내가 밤에 글을 보면서 어디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가도 침상에 들어 각심(脚心)[515]을 문지르다 보면[516] 그 수량을 모두 까먹어 버린다. 그런데 새벽에(天明) (기상하여) 문지를 적에는(擦時) 문득 기억해 낸다.[517] 이는 아침에 마음에 올려둔 일이 아직 하나도 없기 때문에 기억이 난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아침(平旦)의 기운(이 들어찬 상태)에서도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好惡)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근접한 부분이 (그나마도) 얼마 없다.'고 했다.[518] '얼마 없다(幾希)'는 (금수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不遠)'는 뜻이다.[519] 이는 이런 말이다. 사람은 모두 이것[520]을 갖추고 있지만 낮동안에는 길러내지 못하고 밤중에 일들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몇시진간 (마음을) 쉬고 나면 새벽에 막 깨어나서는 이렇게 허명광정(虛明光靜)하게 된다.[521] 그래도 역시 아주 조금 틔워나왔을 뿐이어서 잠시 후 다시 물욕이 억압하여 파괴해 버린다. 맹자는 (이 구문을) 지극히 가지런하게(齊整) 대구가 되도록(當對) 썼다.[522] 이 부분 같은 경우 맹자는 뒤쪽까지 쭉 이어 말하고 있는데, 후대 사람들이 '얼마 없다(幾希)' 밑에다 주석을 달아 (본문의 간격이) 벌어져서 (문장의 전체적인) 의미가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523]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60 問: “‘誠意·正心’二段, 只是存養否?”

질문: 성의와 정심 두 단락은 그저 존양(存養)[524]공부인 것 아닙니까?

曰: “然.” 㝢(61이후).

대답: 그렇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61 說“心不得其正”章, 曰: “心, 全德也. 欠了些箇, 德便不全, 故不得其正.”

'마음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함'장에 대해 해설하며 말함: 마음(心)은 완전한 덕(全德)이다.[525] 약간만 부족해도 덕이 완전하지 못하게 되므로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又曰: “心包體用而言.”

다시 말함: 마음(心)은 본체와 작용(體用)[526] (두 측면을) 다 포괄해서 말한 것이다.[527]

又問: “意與情如何?”

재질문: 의지(意)와 감정(情)은 무슨 차이입니까?[528]

曰: “欲爲這事, 是意; 能爲這事, 是情.” 子蒙(미상).

대답: 어떤 일을 하고자하는 욕구가 의지(意)이다.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감정(情)이다.

자몽(子蒙)의 기록.[529]

傳八章釋修身齊家

[편집]

전 8장. 수신과 제가 해석.

  •  16:162 忿懥·恐懼·好樂·憂患皆不能無, 而親愛·畏敬·哀矜·敖惰·賤惡亦有所不可無者. 但此心不爲四者所動, 乃得其正, 而五者皆無所偏, 斯足以爲身之修也. 人傑(51이후).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은 모두 없을 수 없고, 친애(親愛), 경외(畏敬), 애틋함(哀矜), 업신여김(敖惰), 혐오(賤惡) 또한 없을 수 없다는 측면이 있다. 그저 이 마음이 저 네 가지 감정에 의해 흔들리지 않아야 그 바름을 얻게 되고 저 다섯 가지 태도에 있어 전혀 편향이 없어야 자기 자신을 닦기에 충분하다는 것 뿐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63 或問: “‘正心’章說忿懥·恐懼·好樂·憂患, ‘修身’章說親愛·賤惡·畏敬·哀矜·敖惰, 如何?”

누군가의 질문: '정심' 장에서는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을 설명하고 '수신' 장에서는 친애, 혐오, 경외, 애틋함, 업신여김을 설명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是心卓然立乎此數者之外, 則平正而不偏辟, 自外來者必不能以動其中, 自內出者必不至於溺於彼.”

대답: 마음이 이 몇몇의 영향권 밖에 우뚝 서 있으면 치우침 없이 평정(平正)하여 외부에서 오는 것도 결코 그 안을 흔들 수 없고 내부에서 나오는 것도 그것을 함닉시키지 못한다.

或問: “畏敬如何?”

누군가의 질문: 경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曰: “如'家人有嚴君焉', 吾之所當畏敬者也. 然'當不義則爭之', 若過於畏敬而從其令, 則陷於偏矣. 若夫賤惡者固當賤惡, 然或有長處, 亦當知之. 下文所謂: ‘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此是指點人偏處, 最切當.” 人傑(51이후).

대답: 예를 들어 '집안에 엄한 부모가 있으면'[530] 내가 당연히 경외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그가) '의롭지 못한 경우에는 다투어야 하니',[531] 만약 지나치게 경외하여 그 (불의한) 명령에 따르면 치우침에 빠지게 된다. 혐오할 만한 (나쁜) 사람은 물론 당연히 혐오해야 하겠지만, 그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또한 알아 주어야 한다. 아래 구절에서 말하길 '좋아하면서도 그 악한 점을 알고, 싫어하면서도 그 훌륭한 점을 아는 자는 천하에 드물다.'고 했다. 이는 사람의 치우친 곳을 지적하는 것으로, 매우 절실하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64 心須卓立在八九者之外, <謂忿懥之類.> 而勿陷於八九者之中, 方得其正. 聖人之心, 周流應變而不窮, 只爲在內而外物入不得, 及其出而應接, 又不陷於彼. 蘷孫(68이후).

마음은 반드시 이 8~9 가지[532]의 영향권 밖에 우뚝 서서 <분노와 같은 것들을 말함.> 이 8~9가지에 함닉당하지 말아야 하니, 그래야 비로소 그 바름을 얻게 된다. 성인의 마음이 두루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면서도 다함이 없는(不窮)[533] 까닭은 (변화에 대응하는 주체인 마음이) 내면에 있을 때는 외물이 들어오지 못하고,[534] 나가서 (변화에) 응접할 때도[535] 상대측에 함닉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65 問: “七章·八章頗似一意, 如何?”

질문: 전 7장과 8장이 대체로 같은 뜻인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입니까?

曰: “忿懥之類, 心上理會; 親愛之類, 事上理會. 心上理會者, 是見於念慮之偏; 事上理會者, 是見於事爲之失.” 去僞(46때).

대답: 분노와 같은 것들은 마음의 차원에서 헤아리고 친애와 같은 것들은 사태의 차원에서 헤아린다. 마음의 차원에서 헤아린다는 것은 생각(念慮)이 치우친 지점에서 보라는 것이다. 사태의 차원에서 헤아린다는 것은 행위(事爲)가 잘못된 지점에서 보라는 것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6:166 正卿問: “大學傳正心·修身[536], 莫有深淺否?”

정경(正卿)의 질문: 대학 전(傳) 부분의 정심과 수신에 깊고 얕은 차이가 있습니까?

曰: “正心是就心上說, 修身是就應事接物上說. 那事不從[537]心上[538]做出來! 如修身, 如絜矩, 都是心做得[539]出. 但正心[540]是萌芽上理會. 若修身及[541]絜矩等事, 卻是各就地頭上理會.” 恪(64때).

대답: 정심은 마음의 레벨에서 말한 것이고 수신은 실제 사태에 대응하고 처리하는(應事接物) 레벨에서 말한 것이다. 무슨 사태가 됐든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수신과 혈구(絜矩)[542] 같은 것도 모두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정심은 (마음에서 막 틔워나온) 맹아(萌芽)의 레벨에서 탐구하는 것이고 수신과 혈구 같은 일들은 각각의 사례에 나아가 탐구하는 것이다.[543]

각(恪)의 기록. (64세)

  •  16:167 問: “‘正心’章旣說忿懥四者, ‘修身’章又說‘之其所親愛’之類, 如何?”

질문: '정심'장에서 이미 분노 등 네 가지를 설명했는데 '수신'장에서 다시 '친애하는 바에...'등을 설명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忿懥等是心與物接時事, 親愛等是身與物接時事.” 廣(65이후).

대답: 분노 등은 마음과 사물이 접촉할 때의 일이고 친애 등은 몸과 사물이 접촉할 때의 일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6:168 正心·修身, 今看此段大槪差錯處, 皆未在人欲上. 這箇皆是人合有底事, 皆恁地差錯了. 況加之以放辟邪侈, 分明是官街上錯了路! 賀孫(62이후).

정심과 수신은 지금 생각해 보니 대개 이 단계에서의 잘못들은 모두 인욕(人欲)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는 일들인데 모두 이처럼 잘못을 범하고 만다. 하물며 거리낌 없이 방종하기까지(放辟邪侈) 해버린다면 분명 대로에서도 길을 잃는 꼴이 될 것이다![544]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69 子升問: “‘修身齊家’章所謂‘親愛·畏敬’以下, 說凡接人皆如此, 不特是一家之人否?”

자승의 질문: 수신제가장[545]에서 말한 바 누군가를 친애하고 누군가를 경외하는 등의 구문은 집안 사람을 대할 때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타인을 대함이 모두 이러하다는 설명 아닙니까?[546]

曰: “固是.”

대답: 물론 그렇다.

問: “如何修身卻專指待人而言?”

질문: 어째서 '몸을 닦음(修身)'(이라는 제목을 달고) 오로지 타인을 대하는 일만 말한 것입니까?:

曰: “修身以後, 大槪說向接物待人去, 又與只說心處不同. 要之, 根本之理則一, 但一節說闊一節去.” 木之(68때).

대답: 수신 이하의 단계들은 대개 사물과 사람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설명해 가니 마음만 설명한 곳들과는 같지 않다. 요컨대, 근본이 되는 이치는 하나이지만, 매 단계 설명할 때마다 (논의의 범위가) 확장되어 나간다.[547]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6:170 第八章: '人, 謂衆人; 之, 猶於也.' '之其', 亦如於其人, 卽其所向處. 泳(66때).

제 8장의 주석에서 '인(人)은 중인(衆人)을 이른다. 지(之)는 어(於)와 같다.'[548]라고 했다. '지기(之其)'도 역시 '그 사람에 대하여'와 같으니 곧 그 (주체의 마음이) 향하는 대상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71 “之其所親愛”之“之”, 猶往也. 銖(67이후).

'자신이 친애하는 대상에게'에서 '지(之)'는 '왕(往)'과 같다.[549]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172 問: “大學, 譬音改僻, 如何?”

질문: 대학에서 비(譬)의 음을 벽(僻)으로 고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550]

曰: “只緣人心有此偏僻.”

대답: 사람의 마음에 이러한 치우침이 있기 때문이다.

問: “似此, 恐於‘修身在正其心’處相類否?”

질문: 그렇다면 (제 7장의) '수신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 부분과 너무 비슷할 것 같습니다.

曰: “略相似.” 㝢(61이후).

대답: 대체로 비슷하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73 問: “古注, 辟作譬, 似窒礙不通.”

질문: 고주(古注)[551]에서 '비(辟)'를 '비(譬)'로 쓴 것은 의미가 막혀서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552]

曰: “公亦疑及此. 某正以他說‘之其所敖惰而譬焉’, 敖惰非美事, 如何譬得? 故今只作僻字說, 便通. 況此篇自有僻字, 如‘辟則爲天下僇矣’之類是也.” 大雅(49이후).

대답: 그대 역시 의심이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나도 마침 그가[553] '업신여기는 대상에게 나아가 (그 대상이 가진 업신여김 당할 만한 지점을 헤아린 후 자기 자신과) 비교해 본다'를 설명한 부분을 보고서 업신여김은 좋은 일이 아닌데 어째서 비교가 되는 것일까 (의심했다). 그래서 이제는 '비(辟)'를 '벽(僻, 치우침)'으로 해석하는데, (이렇게 하면 의미가) 통한다. 하물며 이 책에는[554] 이미 '벽(僻)'자가 있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임금의 마음이) 치우치면(辟) 천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555] 등이 그것이다.

  •  16:174 親愛·賤惡·畏敬·哀矜·敖惰各自有當然之則, 只不可偏. 如人飢而食, 只合當食, 食纔過些子, 便是偏; 渴而飮, 飮才過些子, 便是偏. 如愛其人之善, 若愛之過, 則不知其惡, 便是因其所重而陷於所偏; 惡惡亦然. 下面說: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上面許多偏病不除, 必至於此. 泳(66때).

친애, 혐오, 경외, 애틋함, 업신여김에는 각각 마땅한 법칙이 있다. 그저 치우치지 않아야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굶주리면 먹는 것이 마땅하지만,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먹으면 치우친 것이 된다. 목이 마르면 마시는 것이 마땅하지만,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마시면 치우친 것이 된다. 타인의 선함을 사랑하되, 그 사랑이 지나치면 그 사람의 악한 면모를 알지 못하게 되니, 이는 그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하여 치우침에 빠진 것이다. 악함을 싫어하는(惡惡)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아래쪽 부분에서 '사람은 자기 자식이 악한줄 모르고 자기 묘(苗)가 큰 줄 모른다.'고 했다. 위쪽 부분에서 서술한 치우침에 관한 여러 병폐를 제거하지 못하면 반드시 이러한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75 “人之其所親愛而僻焉”, 如父子是當主於愛, 然父有不義, 子不可以不爭; 如爲人父雖是止於慈, 若一向僻將去, 則子有不肖, 亦不知責而敎焉, 不可. “人之其所賤惡而僻焉”, 人固自有一種可厭者, 然猶未至於可賤惡處, 或尙可敎, 若一向僻將去, 便賤惡他, 也不得. “人之其所畏敬而僻焉”, 如事君固是畏敬, 然“說大人則藐之”, 又不甚畏敬. 孟子此語雖稍粗, 然古人正救其惡, 與“陳善閉邪”, “責難於君”, 也只管畏敬不得. 賀孫(62이후).

'사람들은 자신이 친애하는 대상에게 치우친다.' 예를 들어, 아비와 아들 간에는 당연히 사랑이 주가 되어야 하지만 아버지에게 의롭지 못한 점이 있을 때 아들이 다투지 않아서는 안 된다. 남의 아비가 되어서는 물론 자애로움에 머물러야(止)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아들에게 못난 점이 있을 때에도 꾸짖고 가르칠 줄 모르게 되니,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에게 치우친다.' 사람에게는 본래 싫어할 만한 점들이 있지만, 아직 혐오할 만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아서 오히려 교정할 만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만약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를 혐오하게 되니, 역시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외하는 대상에게 치우친다.' 예를 들어,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물론 경외해야 하지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유세할 적에는 상대방을 가볍게 여겨라.'[556]는 말처럼 너무 심하게 경외하지는 말아야 한다. 맹자의 이 말은 다소 거칠지만, 옛 사람들이 (임금의) 악함을 바로잡기 위하여, 예컨대 '(임금에게) 선한 것을 아뢰어 (임금 마음 속의) 사특한 생각을 막으며', '임금에게 (도덕적으로) 어려운 수준을 요구'[557]했던 것처럼, 역시 쭉 경외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76 問: “‘齊家’段, 辟作‘僻’.”

질문: '제가(齊家)' 단락에서 '비(辟)'를 '벽(僻, 치우침)'으로 해석합니다.

曰: “人情自有偏處, 所親愛莫如父母, 至於父母有當幾諫處, 豈可以親愛而忘正救! 所敬畏莫如君父, 至於當直言正諫, 豈可專持敬畏而不敢言! 所敖惰處, 如見那人非其心之所喜, 自懶與之言, 卽是忽之之意.”

대답: 인간의 감정에는 본래 치우침이 있다. 친애의 대상으로 부모만한 것이 없지만 부모에게도 마땅히 완곡하게 간언해야(幾諫)[558] 할 경우가 있다. 어찌 친애의 감정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를 잊을 수 있겠나? 경외의 대상으로 군부(君父)만한 것이 없지만 마땅히 직언정간(直言正諫)해야 할 경우가 있다. 어찌 경외의 태도만을 고수하여 과감히 말하지 않을 수 있겠나? 업신여기는 대상의 경우, 예컨대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연히 그와 대화하는데 태만해지면 이는 그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問: “敖惰, 惡德也, 豈君子宜有?”

질문: 업신여김은 악덕인데 어찌 군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게 적절하겠습니까?

曰: “讀書不可泥, 且當看其大意. 縱此語未穩, 亦一兩字失耳. 讀書專留意小處, 失其本領所在, 最不可.” 㝢(61이후).

대답: 독서할 때는 (작은 부분에) 구애되지 말고 우선 그 대의(大意)를 보아야 한다. (나의) 이 말에 설령 온당치 못한 점이 있더라도 기껏해야 한 두 글자 정도 잘못되었을 뿐일 것이다. 독서할 때 작은 부분에만 주의를 기울이다 그 본령(本領)이 있는 곳을 잃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 될 일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77 問: “章句曰[559]: ‘人於五者本有當然之則.’[560] 然敖之與惰, 則氣習之所爲, 實爲惡德.[561] 至若哀矜之形, 正良心苗裔, 偏於哀矜不失爲仁德之厚, 又何以爲‘身不修, 而不可以齊其家’者乎?”

질문: 대학장구에서 '사람은 이 다섯 가지에 대하여 본래 마땅히 따라야할 법칙(則)이 있다'고 합니다.[562] 그러나 업신여김은 기질과 습관(氣習)[563]에서 나온 것으로 진실로 나쁜 덕성입니다. 애틋함이 드러나는 경우 같으면 정말로 선한 마음(良心)에서 나온(苗裔)[564] 것이니, 애틋해하는 쪽으로 치우친대도 여전히 인덕이 두터운 게 되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또 어찌하여 '몸을 닦지 않으면 집안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경우가 되는 겁니까?

曰: “敖惰, 謂如孔子之不見孺悲, 孟子不與王驩言. 哀矜, 謂如有一般大姦大惡, 方欲治之, 被它哀鳴懇告, 卻便恕之.”

대답: 업신여김은 예컨대 공자가 유비(孺悲)를 만나주지 않고[565] 맹자가 왕환(王驩)과 말을 섞지 않은 경우와 같다.[566] 애틋함은 예컨대 대단히 간사하고 사악한 자를 막 처벌하려 할 적에 그가 애처롭게 울부짖고 간곡하게 고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용서해줘 버리는 경우와 같다.

道夫云: “這只是言流爲姑息之意.”

내(道夫)가 말함: 그건 그저 원칙없는 관용(姑息)으로 흘러가 버렸다는 말일 뿐입니다.

曰: “這便是哀矜之不得其正處.” 道夫(60이후).

대답: 그게 바로 애틋함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한 경우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178 或問“之其所敖惰而辟焉”.

누군가가 '업신여기는 대상에게 치우친다'에 관하여 질문함.

曰: “親者則親愛之, 賢者則畏敬之, 不率者則賤惡之, 無告者則哀矜之. 有一般人, 非賢非親, 未見其爲不率, 又不至於無告, 則是泛然沒緊要底人, 見之豈不敖惰. 雖聖賢亦有此心. 然亦豈可一向敖惰他! 一向敖惰, 便是辟了. 畏敬·親愛·賤惡·哀矜莫不皆然. 故下文曰: ‘愛而知其惡, 惡而知其美.’ 如所敖惰之人, 又安知其無善之可愛敬! 所謂敖惰者, 只是闊略過去.” 高(65때).

대답: 친한 사람을 친애하고 현명한 사람을 경외하며 (일러 주어도) 따르지 않는(不率) 사람을 혐오하고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을 애틋해 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명하지도 친하지도 않고 따르지 않은 적도 없고 또 하소연할 데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다지 긴요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니, 그들을 만나볼 적에 어찌 건성이지(敖惰) 않겠나?[567] 비록 성현이라도 역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겠으나, 어찌 한결같이 상대방을 건성으로 대해서야 되겠는가? 한결같이 건성이면 곧 치우친 것이다. 경외, 친애, 혐오, 애틋함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다음 문장에서 '사랑하면서도 그 악한 면을 알고 싫어하면서도 그 훌륭한 면을 안다'고 했다. 건성으로 취급당한 사람들에게 또 사랑하고 경외할 만한 훌륭한 점이 없을 줄 어찌 아는가? 이른바 건성(敖惰)이란 그저 대충 대한다는(闊略) 것이다.

고(高)의 기록. (65세)

  •  16:179 問敖惰.

(타인을) 건성으로 대함에 관한 질문.

曰: “大抵是一種沒要緊底, 半上落下底人. 且如路中撞見如此等人, 是不足親愛畏敬者, 不成强與之相揖, 而致其親愛畏敬! 敖惰是人之所不能無者.”

대답: 대체로 중요하지 않은, 어중간한(半上落下) 사람들이다. 길에서 우연히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 그들은 친애하거나 경외하기에 부족한 사람들인데 설마하니 억지로 서로 읍하며 친애와 경외를 다할 참인가?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는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又問: “‘敖惰’二字, 恐非好事.”

재질문: '오타(敖惰)'라는 두 글자는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曰: “此如明鑑之懸, 姸者自姸, 醜者自醜, 隨所來而應之. 不成醜者至前, 須要換作姸者! 又敖惰是輕, 賤惡是重. 旣得賤惡, 如何卻不得敖惰? 然聖人猶戒其僻, 則又須點檢, 不可有過當處.” 履孫(65때)

대답: 이는 마치 밝은 거울을 걸어둔 것과 같다. 아름다운 자는 그대로 아름답게 추한 자는 그대로 추하게, 오는대로 그대로 대응한다. 설마하니 추한 자가 면전에 왔는데 아름다운 상으로 바꾸어 보여주어야 한단 말인가? 또 건성(敖惰)은 가볍고 혐오(賤惡)는 무겁다.[568] 혐오는 되는데 어째서 건성은 오히려 안 된다는 것인가? 그러나 성인도 이것이 치우치게 됨을 경계하였으니, 또 반드시 점검하여 선을 넘는 부분이 없도록 해야 한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6:180 蔡問“敖惰”之說.

채(蔡)가 건성(敖惰)을 설명한 대목을 질문함.

曰: “有一般人, 上未至於可親愛, 下未至於可賤惡, 只是所爲也無甚好處, 令人懶去接他, 是謂敖惰. 此敖惰, 不是惡德.” 淳(61·70때).

대답: 어떤 사람들은 위로는 친애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며 아래로는 혐오할 수준까지 이르지 않고, 단지 하는 행위들 또한 그다지 훌륭하달 것이 없어서 남들로 하여금 건성으로 대하게 만들 뿐이다. 이것이 이른바 '건성(敖惰)'이다. 건성은 악덕이 아니다.

순(淳)의 기록. (61세, 70세)

<文蔚錄云: “非如常人傲忽惰慢, 只是使人見得他懶些.”>

<문위(文蔚)의 기록에서는 이렇게 말함: '평범한 사람들이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그 사람의 훌륭하달 것 없는 행위 등등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접견함에 있어 조금 건성건성 하도록 만들 뿐이다.>

  •  16:181 或問: “敖惰是凶德, 而曰‘有當然之則’, 何也?”

누군가의 질문: 건성(敖惰)은 흉덕(凶德)인데도 '(거기에도) 마땅히 따라야할 법칙이 있다'[569]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古人用字不如此. 敖惰, 未至可賤可惡, 但見那一等沒緊要底人, 自是恁地. 然一向去敖惰他, 也不可如此.”

대답: 옛 사람들은 (이 두) 글자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건성(敖惰)'은 혐오할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단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접견할 적에 자연히 그렇게 된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한결같이 건성으로 대하는 것은 역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  16:182 問: “君子亦有敖惰於人者乎?”

질문: 군자에게도 남을 업신여기는(敖惰) 경우가 있습니까?

曰: “人自有苟賤可厭棄者.” 德明(44이후).

대답: 사람 중에는 본래 비루하여 싫어할 만한 자들이 있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183 問敖惰.

오타(敖惰)에 관한 질문.

曰: “敖便是惰, 敖了便惰. 敖了都不管它, 便是惰.” 義剛(64이후).

대답: 오만함이(敖) 곧 태만함(惰)이니, (심정이) 오만해지면 곧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태만해진다. (심정이) 오만해져서 타인을 전혀 개의치 않으면 그것이 곧 태만함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6:184 因學者問大學“敖惰”處, 而曰: “某嘗說, 如有人問易不當爲卜筮書, 詩不當去小序, 不當協韻, 及大學敖惰處, 皆在所不答.” 僩(69이후).

배우는 이들이 대학의 '오타(敖惰)' 부분에 질문한 것을 계기로 말함: 내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주역은 점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거나,[570] 시경에서 소서(小序)[571]를 제거해서는 안 된다거나, 협운(協韻)[572]법을 써서는 안 된다고 질문하거나, 대학의 '오타(敖惰)' 부분에 대해 묻는 경우 모두 답하지 않는다[573].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85 或問: “‘之其所親愛·哀矜·畏敬而辟焉’, 莫是君子用心過於厚否?”

누군가의 질문: '친애하고 애틋해하고 경외하는 대상에게 치우'친 경우들은 군자의 마음씀이 후한 쪽으로 지나친 것 아닙니까?

曰: “此可將來‘觀過知仁’處說, 不可將來此說. 蓋不必論近厚·近薄. 大抵一切事, 只是才過便不得. ‘觀過知仁’乃是因此見其用心之厚, 故可知其仁, 然過則終亦未是也. 大凡讀書, 須要先識認本文是說箇甚麽. 須全做不曾識他相似, 虛心認他字字分明. 復看數過, 自然會熟, 見得分明. 譬如與人乍相見, 其初只識其面目, 再見則可以知其姓氏·鄕貫, 又再見則可以知其性行如何. 只恁地識認, 久後便一見理會得. 今學者讀書, 亦且未要便懸空去思他. 中庸云‘博學之, 審問之’, 方言‘愼思之’. 若未學未問, 便去思他, 是空勞心耳!”

대답: 그 말을 가지고 '(그가) 잘못한(過)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인(仁)함을 안다'[574]를 해석할 수는 있겠으나 여기를 해석할 수는 없다. 후한 쪽에 가까웠는지 박한 쪽에 가까웠는지 따질 필요 없이 일체의 사안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지나치면(過)[575] 안 되기 때문이다. '(그가) 잘못한(過)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인(仁)함을 안다'는 곧 (그 잘못의 내용을) 통해서 그의 마음 씀씀이가 후함을 볼 수 있으니 그가 인함을 알겠다는 것이지만, 지나쳤다면(過) 결국 역시 옳지 못한 것이다. 대개 책을 읽을 때는 먼저 본문(本文)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인식(識認)해야 한다. 마치 처음부터 그 책을 전혀 알지(識) 못하는 것처럼 마음을 비우고 그 책의 한 글자 한 글자를 분명하게 인지(認)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으면 자연히 익숙해지고 분명히 알게(見)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을 막 만났을 때 처음에는 얼굴만 인식(識)할 뿐이지만, 다시 만나면 그 사람의 성씨와 고향을 알(見) 수 있고, 또 다시 만나면 그 사람의 성격과 행실이 어떠한지 알(見) 수 있다. 계속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인식(識認)하기를 오래도록 하다보면 (나중에는 처음 보는 사람도) 일견에 이해할(理會)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이들이 책을 읽을 때에도 역시 그 책에 대하여 곧장 추상적으로(懸空) 생각하려 해서는 안 된다. 중용(中庸)에서도 '넓게 배우고, 자세히 물어'본 뒤에야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배우기도 묻기도 전에 곧장 생각부터 하면 헛되이 마음만 수고로울(勞心) 뿐이다.

又云: “切須記得‘識認’兩字.” 時擧(64이후).

다시 말함: 인식(識認)이라는 두 글자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거(時擧)의 기록. (64세 이후)

  •  16:186 問: “大學釋‘修身齊家’章, 不言修身, 何也?”

"질문: 대학에서 '수신제가' 장을 해석할 때, '수신(修身)'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576]

曰: “好而不知其惡, 惡而不知其美, 是以好爲惡, 以曲爲直, 可謂之修身乎!” 節(64이후).

대답: (상대방을) 좋아하여 그 악한 부분을 알지 못하고 (상대방을) 싫어하여 그 훌륭한 부분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좋은 점을 악한 점으로 여기고 굽은 것을 곧은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걸 수신(修身)이라 할 수 있겠나?[577]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87 大學最是兩章相接處好看, 如'所謂修身在正其心'者. 且如心不得其正, 則“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若視而見, 聽而聞, 食而知味, 則心得其正矣. 然於親愛·敖惰五者有所僻焉, 則身亦不可得而修矣. 嘗謂修身更多少事不說, 卻說此五者, 何謂? 子細看來, 身之所以不修者, 無不是被這四五箇壞.

대학에서 두 장이 연결되는 부분들, 예컨대 '이른바 몸을 닦음은 그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다(所謂修身在正其心)' 같은 것들이 가장 볼만하다(好看).[578] 예를 들어, 마음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만약 보면 보이고, 들으면 들리며, 먹으면 그 맛을 안다고 하면 이는 마음이 그 바름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친애와 업신여김 등 다섯 가지 태도에 치우침이 있다면 역시 몸을 닦을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수신에 대해 더 많은 일들을 말하지 않고 딱 이 다섯 가지만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세히 살펴 보면, 몸이 닦이지 않는 것은 이 너댓 가지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닌 경우가 없다.

又云: “意有不誠時, 則私意爲主, 是主人自爲賊了! 到引惹得外底人來, 四方八面無關防處, 所以要得先誠其意.” 子蒙(미상).

다시 말함: 의지가 진실하지 않으면 사의(私意)가 주인이 되는데, 이는 주인이 스스로 도둑이 되는 꼴이다. 그 결과 바깥 사람들을 끌어들여 사방팔방에 방어할 수 있는 지점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하는 까닭이다.

자몽(子蒙)의 기록. (기록연대 미상)

  •  16:188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五者, 其實則相串, 而以做工夫言之, 則各自爲一事. 故‘物格, 而後知至; 知至, 而後意誠; 意誠, 而後心正; 心正, 而後身修’. 著‘而’字, 則是先爲此, 而後能爲彼也. 蓋逐一節自有一節功夫, 非是儱侗言知至了意便自誠, 意誠了心便自正, 身便自修, 中間更不著功夫. 然但只是上面一截功夫到了, 則下面功夫亦不費力耳.”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마음을 바로잡아야 하고,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하며, 의지를 진실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앎을 지극히 해야 하며, 앎을 지극히 함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579] 이 다섯 가지는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각 단계의 수행(工夫)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각각 독립된 사안이다. 그래서 '사물을 탐구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며,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인다.' 여기서 '이(而)'라는 글자는 먼저 이 것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而後) 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 각 단계마다 별개의 수행(工夫)이 필요하니, 단순히 앎이 지극해지면 의지가 저절로 진실해지고, 의지가 진실해지면 마음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몸이 저절로 닦이므로 그 사이에 수행이 필요치 않다고 뭉뚱그려(儱侗) 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앞 단계에서의 수행이 충분히 이루어지면 다음 단계에서는 힘이 덜 든다는 정도이다.

先生曰: “亦有天資高底人, 只頭正了, 便都正去. 若夾雜多底, 也不能如此.” 端蒙(50이후).

선생이 말함: 역시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 사람의 경우는 첫 단계(頭)가 바로잡히면 나머지 전부가 바로잡힌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불순한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6:189 問: “‘正心修身’章後注, 云‘此亦當通上章推之, 蓋意或不誠, 則無能實用其力以正其心者’云云.”

질문: '정심수신'장의 뒷부분 주석에서 '이 또한 윗 장과 연결지어 생각해야 하니, 의지가 진실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하 생략)[580]

曰: “大學所以有許多節次, 正欲學者逐節用工. 非如一無節之竹, 使人才能格物, 則便到平天下也. 夫人蓋有意誠而心未正者, 蓋於忿懥·恐懼等事, 誠不可不隨事而排遣也. 蓋有心正而身未修者, 故於好惡之間, 誠不可不隨人而節制也. 至於齊家以下, 皆是敎人節節省察用功. 故經序但言心正者必自誠意而來, 修身者必自正心而來. 非謂意旣誠而心無事乎正, 心旣正而身無事乎修也. 且以大學之首章便敎人‘明明德’, 又爲格物以下事目, 皆爲明明德之事也. 而平天下, 方且言先謹乎德等事, 亦可見矣.” 壯祖(미상).

대답: 대학이 여러 단계로 구성된 이유는 배우는 이들이 각 단계별로 힘을 쓰기를 원해서이다. 마치 마디가 없는 대나무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격물을 해내자마자 곧바로 평천하에 도달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의지는 진실하더라도 마음은 아직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은) 분노와 두려움 같은 일에 있어 진실로 그 (사태의 구체적) 정황에 맞추어 (분노와 두려움 같은 감정을) 조절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마음은 바르더라도 몸은 아직 닦이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태도에 있어 진실로 (접하는 구체적인) 사람에 맞추어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태도를) 절제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집안을 다스리는 것 이하의 경우도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각 단계별로 성찰하고 힘을 쓰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경문(에서 나열한) 순서에서(經序)[581] 단지 마음을 바르게 함은 반드시 의지를 진실하게 함으로부터 나오며, 몸을 닦음은 반드시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부터 나온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의지가 일단 진실해지면 마음을 바로잡을 일이 없고 마음이 일단 바르게 되면 몸을 닦을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또, 대학의 첫 장에서 곧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밝은 덕을 밝히'게 하였고, 다시 격물 이하의 조목들을 두었는데 모두 명명덕의 일이다. (마지막 조목인) 평천하에서 '우선 덕을 신중히 하라(先謹乎德)'[582]는 등의 일을 말하고 있는 데서도 (팔조목이 모두 명명덕의 일임을) 볼 수 있다.

장조(壯祖)의 기록. (기록연대 미상).

  •  16:190 大學如“正心”章, 已說盡了. 至“修身”章又從頭說起, 至“齊家治國”章又依前說敎他[583], 何也?蓋[584][585]節節去照管. 不成卻[586]說自家在這裏, 心正·身修了, 便都只聽其[587]自治! 蘷孫(68이후).

대학의 '정심(正心)' 장 같은 경우 이미 (해야) 할 설명을 다 했지만, '수신(修身)' 장에 이르러 다시 처음부터 설명하고, '제가치국(齊家治國)' 장에 이르러서도 이전에 했던대로 다시 설명하여 독자로 하여금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는데, 왜 그런 것인가?[588] 이는 각 단계를 하나하나 주의하여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589] 설마하니 자기 자신은 이 지점에서 마음이 바르게 되고 몸이 다 닦였다고 하여 나머지는 모두 사람들이(它)[590] 스스로 다스리도록 맡겨 두자고 할 참인가?[591]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91 說大學“誠意”章, 曰: “如今人雖欲爲善, 又被一箇不欲爲善之意來妨了; 雖欲去惡, 又被一箇尙欲爲惡之意來妨了. 蓋其知之不切, 故爲善不是他心肯意肯, 去惡亦不是他心肯意肯. 這箇便是自欺, 便是不誠. 意才不誠, 則心下便有許多忿懥·恐懼·憂患·好樂而心便不正. 心旣不正, 則凡有愛惡等事, 莫不倚於一偏. 如此, 如何要家齊·國治·天下平? 惟是知得切, 則好善必如好好色, 惡惡必如惡惡臭. 是非爲人而然, 蓋胸中實欲如此, 而後心滿意愜.” 賀孫(62이후).

대학 '성의'장을 해설하고서 말함: 지금 사람들이 비록 선을 행하고자 하여도 다시 선을 행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방해를 받게 되고, 비록 악을 제거하고자 하여도 다시 계속해서 악을 행하고 싶다는 의지의 방해를 받게 된다. 이는 그의 앎이 절실하지 못하여서 그의 마음과 의지가 선을 행하는데 기껍지 않고 악을 제거하는데도 역시 기껍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요 진실하지 못함이다.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면 마음속에 분노, 두려움, 걱정, 선호 등의 (감정적 편향이) 발생하여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친애와 혐오 등의 태도가 예외없이 한쪽으로 치우치에 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어떻게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하겠는가? 앎이 절실해지기만 하면 선을 좋아하기를 반드시 미색을 좋아하듯 하게 되고 악을 싫어하기를 반드시 악취를 싫어하듯 하게 된다. 이는 남 보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가슴속에서부터 진정으로 그렇게 하고자 한 뒤에야 마음과 의지가 통쾌하고 만족스럽게 되는 것이다.[592]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傳九章釋家齊國治

[편집]

전 9장, 가제(家齊)와 국치(國治) 해석.

  •  16:192 或問: “‘齊家’一段, 是推將去時較切近否?”

누군가의 질문: 제가(齊家) 단계에서는 (도덕적 앎의 적용 영역을 더 넓게) 미루어 나아갈 때 비교적 더 가깝고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曰: “此是言一家事, 然而自此推將去, 天下國家皆只如此.”

대답: 이 단락은 한 집안의 일을 말하고 있지만 거기서부터 (적용 영역을 더 넓게) 미루어 나아가고 보면 천하와 국가도 모두 이와 같을 뿐이다.

又問: “所畏敬在家中, 則如何?”

재질문: 집안에서 (누군가를) 경외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曰: “一家之中, 尊者可畏敬, 但是有不當處, 亦合有幾諫時. 不可道畏敬之, 便不可說著. 若如此惟知畏敬, 卻是辟也.” 祖道(68때).

대답: 한 집안에서 (위계상) 높은 사람을 경외하는 것은 좋지만 (그에게) 부당한 점이 있다면 역시 완곡하게 간언해야 할 때가 있다. '경외하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 만약 그처럼 경외할줄만 안다면 (그쪽이) 오히려 치우친(辟) 것이다.[593]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6:193 或問“不出家而成敎於國”.

누군가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라에서 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에 관하여 질문함.

曰: “孝以事親, 而使一家之人皆孝; 弟以事長, 而使一家之人皆弟; 慈以使衆, 而使一家之人皆慈, 是乃成敎於國者也.” 人傑(51이후).

대답: 효성으로 부모를 섬기면 집안의 모든 사람이 효도하게 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어르신을 섬기면 집안의 모든 사람이 공경하게 되며 자애로움으로 사람들을 부리면 집안의 모든 사람이 자애롭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라에서 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94 李德之問: “‘不出家而成敎於國’, 不待推也.”

이덕지(李德之)의 질문: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라에서 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594]는 미루기(推)를 기다리지 않습니다.[595]

曰: “不必言不待推. 玩其文義, 亦未嘗有此意. 只是身修於家, 雖未嘗出, 而敎自成於國爾.” 蓋卿(65때).

대답: 굳이 '미루기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 없다. 그 문장의 의미(文義)를 천천히 곱씹어 보면 역시 전혀 그런 뜻이 없다. 그저 집안에서 몸이 닦이면 비록 밖으로 전혀 나가지 않더라도 교화가 저절로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뿐이다.[596]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6:195 “孝者所以事君, 弟者所以事長, 慈者所以使衆.” 此道理皆是我家裏做成了, 天下人看著自能如此, 不是我推之於國. 泳(66때).

'효는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고, 공경은 어르신을 섬기는 방법이며, 자애는 사람들을 부리는 방법이다.'[597] 이 도리는 모두 자신의 가정에서 달성하는 것으로, 천하 사람들이 보고 자연히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내가 그것을 나라로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96 劉潛夫問: “‘家齊’章並言孝·弟·慈三者, 而下言康誥, 以釋‘使衆’一句, 不及孝弟, 何也?”

류잠부(劉潛夫)의 질문: '제가(齊家)' 장에서 효도, 공경, 자애 세 가지를 아울러 말했는데도[598] 아래에서는 '강고(康誥)'를 인용하여 '사람들을 부린다(使衆)'[599]는 한 구문만 해석하고 효도와 공경은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600]

曰: “孝弟二者雖人所固有, 然守而不失者亦鮮. 唯有保赤子一事, 罕有失之者. 故聖賢於此, 特發明夫人之所易曉者以示訓, 正與孟子言見赤子入井之意同.” 壯祖(미상).

대답: 효도와 공경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잘 지켜 상실하지 않는 이 또한 드물다. 오직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일 하나만은 잘못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성현이 여기서 특별히 사람들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여 가르쳐준 것이니, 맹자가 말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다는 예시와 꼭 같은 취지이다.

장조(壯祖)의 기록.

  •  16:197 “心誠求之”者, 求赤子之所欲也. 於民, 亦當求其有不能自達. 此是推其慈幼之心以使衆也. 節(64이후).

'진정으로 구하면'이란, 어린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여 답을) 구하는 것이다. 백성에게도 역시 그들 스스로 (윗사람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짐작하여 답을) 구해야 한다. 이것이 어린아이를 향한 자애로운 마음을 미루어 사람들을 부린다는 것이다.[601]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98 問“治國在齊其家”.

'나라를 다스림은 집안을 다스리는 데 있다'[602]에 관한 질문.

曰: “且只說動化爲功, 未說到推上. 後章方全是說推. ‘如保赤子’一節, 只是說‘慈者所以使衆’一句. 保赤子, 慈於家也; ‘如保赤子’, 慈於國也. 保赤子是慈, ‘如保赤子’是使衆.”

대답: 우선 그저 감화(動化)가 효과를 내는(爲功)[603] 것을 설명했을 뿐, (가정에서 나라 쪽으로) 미루어 확장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다음 장[604]에 가서야 비로소 전체가 다 미루어 확장함에 대한 설명이다. '어린아이를 보호하듯이'라는 대목은 '자애는 사람들을 부리는 방법이다'라는 대목에 대한 설명이다.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집안에서의 자애이고, '어린아이를 보호하듯이'는 나라에서의 자애이다.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자애요, '어린아이를 보호하듯이'는 사람들을 부리는 것이다.

直卿云: “這箇慈, 是人人自然有底. 慈於家, 便能慈於國, 故言: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㝢(61이후).

직경(直卿)이 말함: 이 자애란 것은 사람들 각각이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자애로우면, 나라에서도 자애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집안이 인(仁)하면 온 나라에 인한 기풍이 일어나고 한 집안의 겸양하면 온 나라가 겸양하는 기풍이 일어난다.'[605]고 하였습니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99 “一家仁”以上, 是推其家以治國; “一家仁”以下, 是人自化之也. 節(64이후).

'한 집안이 인(仁)하면'[606] 구절 이상(以上)은 그 집안(에서의 도덕적 성취)을 미루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고, '한 집안이 인(仁)하면' 구절 이하(以下)는 사람들이 저절로 감화되는 것이다.[607]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00 問: “九章本言治國, 何以曰‘堯舜率天下以仁而民從之’, 都是說治天下之事也? 至言‘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又似說修身, 如何?”

질문: 제 9장은 본래 치국(治國)에 대하여 말하는데, 어찌하여 '요순(堯舜)이 천하(天下)를 인(仁)으로써 이끌자 백성들이 그들을 따랐다'[608]고 했습니까? 이는 모두 천하를 다스리는 일[治天下之事]을 설명한 것입니다. '군자(君子)는 자신에게 선(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악(惡)이 없은 뒤에 남의 악함을 비난한다'[609]고 말한 부분의 경우는 또 수신(修身)을 설명한 것 같은데, 어째서입니까?

曰: “聖人之言, 簡暢周盡. 修身是齊家之本, 齊家是[610]治國之本. 如言‘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之類, 自是相關, 豈可截然不相入也!” 謨(50이후).

대답: 성인(聖人)의 말씀은 간략하고(簡) 막힘이 없으며(暢) 두루 포괄한다(周盡). 수신(修身)은 제가(齊家)의 근본이고, 제가(齊家)는 치국(治國)의 근본이다. 예를 들어 '한 집안이 인(仁)하면 온 나라에 인(仁)한 기풍이 일어나고, 한 집안이 겸양(謙讓)하면 온 나라에 겸양(謙讓)하는 기풍이 일어난다' 등등은 (수신, 제가, 치국의 내용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서로 관련되어 있으니, 어찌 뚝 잘라내어 서로 통하지 않게 할 수 있겠나?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去僞同.>

<거위(去僞)의 기록도 동일함.>[611]

  •  16:201 問“有諸己而後求諸人”.

'자신에게 선(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한다.'에 대한 질문.

曰: “只從頭讀來, 便見得分曉. 這箇只是‘躬自厚而薄責於人’, ‘攻其惡, 無攻人之惡’.” 卓(미상).

답변: (전 9장의) 첫 부분부터 읽어 내려오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자신을 책망할 때는 두텁게 하고 남을 책망할 때는 얇게 한다(躬自厚而薄責於人)'[612], '자신의 악(惡)을 다스리고, 남의 악은 다스리지 않는다'[613]는 뜻이다.

  •  16:202 問: “‘有諸己而後求諸人’, 雖曰'推己以及'人, 是亦示人以反己之道.”

질문: '자신에게 선(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비록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推己以及人]'[614]고 하셨지만 또한 스스로를 반성하는 도리[反己之道]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曰: “這是言己之爲法於人處.” 道夫(60이후).

대답: 이는 자기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法]가 되는 지점을 말한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03 吳仁甫[615]問: “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오인보(吳仁甫)가 '자신에게 선(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악(惡)이 없은 뒤에 남의 악함을 비난한다.'에 대하여 질문함.

曰: “此是退一步說[616], 猶言‘溫故知新而可以爲人師’, 以明未能如此, 則不可如此; 非謂溫故知新, 便要求爲人師也. <池本“不可”下云: “爲人師耳. 若曰‘有諸己而後求諸人’, 以明無諸己不可求諸人也; ‘無諸己而後非諸人’, 以明有諸己卽不可非諸人也.”[617]> 然此意[618]正爲治國者言. 大凡治國禁人爲惡, 而欲[619]人爲善, 便[620]求諸人, 非諸人. 然須是在己有善無惡, 方可求人·非人也.”

대답: 이는 한 걸음 물러서서 말한 것으로, 비유하자면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知新而可以爲人師)'라는 말은 이렇게 하지 못하면(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지 못하면) 곧 저렇게 할 수 없음(남의 스승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이지,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자마자 곧바로 남의 스승이 되기를 요구하라는 말이 아니다.[621] <지본(池本)에서는 '불가(不可)'아래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의 스승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일 뿐이다. '자신에게 선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한다'는 말은 자신에게 선이 없으면 남에게 요구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고, '자신에게 악이 없은 뒤에 남의 악함을 비난한다'는 말은 자신에게 악함이 있으면 남을 비난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뜻은 딱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治國者)을 위한 말이다. 대개 나라를 다스림이란 사람들이 악(惡)을 행하는 것을 금하고 선(善)을 행하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는 곧 남에게 선을 요구하고[求諸人] 남의 악함을 비난하는 것[非諸人]이다. 그러나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선(善)이 있고 악(惡)이 없어야만 비로소 남에게 (선을) 요구하고 남의 악함을 비난할 수 있다.

或問: “范忠宣‘以恕己之心恕人’, 此語固有病. 但上文先言‘以責人之心責己’, 則連下句亦未害.”

누군가의 질문: 범충선(范忠宣)[622]의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以恕己之心恕人)'는 말은 물론 병통이 있습니다만, 앞선 구절에서 먼저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는다(以責人之心責己)'고 말한 (것을 감안하면) 아래 구절도 나쁘지 않습니다.[623]

曰: “上句自好, 下句自不好. 蓋才說恕己, 便已不是. 若橫渠云: ‘以愛己之心愛人, 則盡仁; 以責人之心責己, 則盡道.’ 語便不同. 蓋‘恕己’與‘愛己’字不同. 大凡知道者出[624]言自別. 近觀聖賢言語與後世人言語自不同, 此學者所以貴於知道也.” 銖(67이후).

대답: 윗 구절은 그 자체로 좋고 아래 구절은 그 자체로 좋지 않다. 대개 '자신을 용서한다(恕己)'고 말하는 즉시 이미 옳지 않기 때문이다. 횡거(橫渠)가 말하기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면 인(仁)을 다하는 것이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으면 도(道)를 다하는 것이다.'[625]고 하였으니, 말이 벌써 다르다. 대개 '서기(恕己, 자신을 용서함)' 와 '애기(愛己, 자신을 사랑함)'는 글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도(道)를 아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이 절로 다르다. 근래에 성현(聖賢)의 말씀과 후세 사람들의 말을 살펴보니 절로 달랐다. 이것이 배우는 사람들이 도(道)를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204 “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是責人之恕; 絜矩與“己所不欲, 勿施於人”, 是愛人之恕.

'자신에게 선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악이 없은 뒤에 남의 악함을 비난한다'는 것은 남을 꾸짖을 때의 서(恕)이다. 혈구(絜矩)[626]의 도리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627]는 것은 남을 사랑할 때의 서(恕)이다.

又曰: “推己及物之謂恕. 聖人則不待推, 而發用於外者皆恕也. ‘己所不欲, 勿施於人’, 則就愛人上說. 聖人之恕, 則不專在愛人上見, 如絜矩之類是也.” 高(65때).

다시 말함: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을 서(恕)라고 한다. 그러나 성인(聖人)은 (의식적으로) 미룰[推] 필요 없이도 밖으로 드러나 작용하는 것이 모두 서(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은 남을 사랑하는[愛人]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의 서(恕)가 전적으로 남을 사랑하는 측면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니, 혈구(絜矩)같은 종류가 그것이다.

고(高)의 기록. (65세)

  •  16:205 問: “‘所藏乎身不恕’處, ‘恕’字還只就接物上說, 如何?”

질문: '몸에 지닌 바를 서(恕)하지 못하다'[628]에서, '서(恕)'자는 단지 타인을 응대하는[接物] 차원에서만 설명한 것입니까?

曰: “是就接物上見得. 忠, 只是實心, 直是眞實不僞. 到應接事物, 也只是推這箇心去. 直是忠, 方能恕. 若不忠, 便無本領了, 更把甚麽去及物! 程子[629]說: ‘“維天之命, 於穆不已”, 忠也, 便是實理流行[630]; 乾道變化, 各正性命”, 恕也, 便是實理及物[631].’”

대답: 타인을 응대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도리를) 볼 수 있다. 충(忠)은 단지 진실한 마음(實心)일 뿐이니, 그저 진실되어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타인을 응대하고 사안에 대처하는 때에도 역시 그저 이 (진실한) 마음을 미루어 나아가는 것 뿐이다. 충(忠)하기만 하면 곧 서(恕)할 수 있다. 만약 충(忠)하지 못하면 근본(本領)이 없게 되니, 다시 무엇을 가지고 타인에게 미치겠는가?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하늘의 명(命)이여,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도다'[632]는 충(忠)이니, 진실한 이치(實理)가 두루 작동하는(流行) 것이다. '건의 도리(乾道)가 변화하여 만물 각각의 성명(性命)을 바르게 한다'[633]는 서(恕)이니, 진실한 이치(實理)가 만물에 미치는 것이다."[634]라고 했다.

守約問: “恁地說, 又與‘夫子之道, 忠恕而已矣’之‘忠恕’相似.”

수약(守約)의 질문: 그렇게 설명하시니, '부자(夫子)의 도(道)는 충서(忠恕)일 뿐이다'[635]에서의 '충서(忠恕)'와도 비슷합니다.

曰: “只是一箇忠恕, 豈有二分[636]! 聖人與常人忠恕也不甚相遠.”

답함: 똑같은 충서(忠恕)일 뿐이니 어찌 두 가지로 나뉘겠는가? 성인(聖人)과 보통 사람의 충서(忠恕) 사이의 거리 역시 그다지 멀지 않다.

又曰: “盡己, 不是說盡吾身之實理, 自盡便是實理. <此處切恐有脫誤.> 若有些子未盡處, 便是不實. 如欲爲孝,[637] 雖有七分孝, 只中間有三分未盡, 固是不實. 雖有九分孝, <一作弟> 只略略有一分未盡, 亦是不實.”[638]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자기 자신을 다한다[盡己]는 것은[639] 내 몸의 진실한 이치(實理)를 다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다하는 것[自盡]이 바로 진실한 이치(實理)이다. <이 부분은 기록에 탈락이나 오류가 있는 듯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곧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효도를 하고자 할 때 비록 70%는 효성스럽다 해도 그 속에 30%의 미진함이 있다면 정말로 진실하지 못한(不實) 것이다. 비록 90%는 효성스럽다 해도(孝)<다른 판본에서는 '공경함(弟)'>, 대략 10%의 미진함이 있다면 이 또한 진실하지 못한(不實)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06 李德之問: “‘齊家’·‘治國’·‘平天下’三章, 看來似皆是恕之功用.”

이덕지(李德之)의 질문: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세 장(章)은 제가 보기에 모두 서(恕)의 효과(功用)인 듯합니다.

曰: “如‘治國’·‘平天下’兩章是此意. ‘治國’章乃責人之恕, ‘平天下’章乃愛人之恕. ‘齊家’一章, 但說人之偏處.” 蓋卿(65때).

대답: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 두 장은 그런 의미이다. '치국(治國)' 장은 남을 꾸짖을 때의 서(恕)이고, '평천하(平天下)' 장은 남을 사랑할 때의 서(恕)이다. '제가(齊家)' 장은 단지 사람이 치우치는 부분을 설명했을 뿐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때).

  •  16:207 仁甫問“治國在齊其家”.

인보(仁甫)가 '치국재제기가(治國在齊其家)'에 대해 질문함.

曰: “這箇道理, 卻急迫不得. 待到他日數足處, 自然通透. 這箇物事, 只是看得熟, 自然有條理. 上面說‘不出家而成敎於國’, 此下便說其所以敎者如此, 這三者便是敎之目. 後面卻是說須是躬行, 方會化得人. 此一段只此兩截如此.”賀孫(62이후). [640]

대답: 이 도리(道理)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 훗날 (집안을 다스리는 노력의) 시간이 충분히 쌓이면 저절로 (나라를 다스리는 단계까지) 훤히 통하게 될 것이다. 이 일(物事)은 그저 익숙하게 보기만 하면[看得熟] 자연스레 일관된 맥락(條理)을 파악할 수 있다. 윗부분에서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라에서 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고 했고, 그 아래에서는 그 교화의 구체적인 방법이 이러저러하다고 설명하였으니, 이 세 가지[641]가 바로 교화의 항목들이다. 뒷부분에서는 반드시 몸소 실천해야만[躬行] 비로소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化得人]고 말한다. 이 단락(一段)은 이렇게 이 두 부분[兩截]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642]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08 因講“禮讓爲國”, 曰: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自家禮讓有以感之, 故民亦如此興起. 自家好爭利, 卻責民間禮讓, 如何得他應! 東坡策制[643]‘敦敎化’中一段, 說得也好, 雖說得粗, 道理卻是如此. <“敦敎化”云“欲民之知信, 莫若務實其言; 欲民之知義, 莫若務去其貪”云云.> 看道理不要玄妙, 只就粗處說得出便是. 如今官司不會制民之産, 民自去買田, 又取他牙稅錢. 古者群飮者殺. 今置官誘民飮酒, 惟恐其不來, 如何得民興於善!” 淳(61·70때).

예(禮)와 겸양(讓)으로 나라를 다스린다'[644]를 강론하다 말함: '한 집안이 인(仁)하면 온 나라에 인(仁)한 기풍이 일어나고, 한 집안이 겸양(謙讓)하면 온 나라에 겸양(謙讓)하는 기풍이 일어난다.'[645] 자기 자신이 예(禮)를 지키고 겸양(讓)하여 백성을 감동시킬 수 있으므로 백성 또한 이와 같이 흥기(興起)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이익 다투기를 좋아하고 백성들에게는 거꾸로 예를 지키고 겸양하라고 요구하면서 어찌 그들이 (교화에) 호응하기를 바라는가? 동파(東坡)[646]의 책제(策制) '교화를 돈독히 함(敦敎化)'[647] 중 한 단락도 설명을 잘 했는데, 비록 거칠게(粗) 설명하긴 했지만 도리는 실로 이와 같다. <'돈교화'에 이르기를: 백성이 신의(信)를 알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말이 신실해지도록 힘씀만 한 것이 없고, 백성이 의리(義)를 알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탐욕을 제거하기에 힘씀만 한 것이 없다. (생략)> 도리를 볼 때는 현묘(玄妙)함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대략적인(粗) 차원에서 설명해 낼 수 있기만 하면 그만이다.[648] 예를 들어 요즘 관청(官司)은 백성의 생업 기반(民之産)을 마련해주지[制] 못하여[649] 백성들이 스스로 가서 밭을 사는데도 도리어 그들에게서 거간세(牙稅錢)[650]를 거두어들인다. 옛날에는 무리지어 술 마시는 자는 죽였는데,[651] 지금은 관서를 설치하여[652] 백성들이 음주하도록 유도하고 그저 백성들이 와서 안 마시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으니, 어찌 백성들이 선(善)한 기풍을 일으키기를 바라는가?

순(淳)의 기록. (61세, 70세)[653]

  •  16:209 問: “齊家·治國之道, 斷然‘是父子兄弟足法, 而後人法之’. 然堯舜不能化其子, 而周公則上見疑於君, 下不能和其兄弟, 是如何?”

질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의 도리는 단연코 '부자형제(父子兄弟)가 충분히 본받을 만한 뒤에야 사람들이 그들을 본받는다'[654]입니다. 그러나 요(堯)와 순(舜)임금은 자기 아들을 교화시키지 못했고,[655] 주공(周公)은 위로는 임금[656]에게 의심을 받았으며 아래로는 그 형제[657]들과 화합하지 못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聖人是論其常, 堯舜是處其變. 看他‘烝烝乂, 不格姦’, 至於‘瞽瞍底豫’, 便是他有以處那變處. 且如他當時被那兒子恁地, 他處得好[658], 不將天下與兒子[659], 卻傳與賢[660], 便是他處得那兒子好. 若堯當時把天下與丹朱[661], 舜把天下與商均, 則天下如何解安! 他那兒子如何解寧貼! 如周公被管蔡恁地, 他若不去致辟于商, 則周如何不擾亂! 他後來盡死做這一著時, 也是不得已著恁地. 但是而今且去理會常倫. 而今如何便解有箇父如瞽瞍, 有箇兄弟如管蔡. 未論到那變處.” 賀孫(62이후).

대답: 성인(聖人)은 그 원칙을 논한 것이고,[662] 요·순은 임기응변한 것이다. 순(舜)임금이 '(자기 아버지인 고수를) 서서히 다스려 간악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여'[663] 마침내 '고수(瞽瞍)가 행복해지는'[664]데 이른 것을 보면, 이는 그가 변칙적인 상황에 대처해낸 것이다. 또 그는[665] 당시 자기 아들에게 저런 일을 당하였는데도 잘 대처하여 천하를 자기 아들에게 주지 않고 도리어 현자[666]에게 주었으니, 이는 자기 아들에게 잘 대처한 것이다. 만약 요임금이 당시에 천하를 (자기 아들인) 단주(丹朱)에게 주고 순임금이 천하를 (자기 아들인) 상균(商均)에게 주었더라면 천하가 어찌 평안할 수 있었겠는가? 그 아들들이 어찌 안녕할 수 있었겠는가? 예컨대 주공은 관숙과 채숙에게 저런 일을 당하였는데, 만약 그가 상(商) 땅에서 (반란에 실패하여 체포된 관숙과 채숙 등)을 처형하지[致辟] 않았더라면 주(周)나라가 어찌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667] 그가 후에 죽음을 무릅쓰고[盡死] 이 한 수(這一著)를 두었을 때에도 역시 부득이하여 그렇게 했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우선 원칙적인 윤리[常倫]를 이해하도록 하라. 지금 당장 어찌 고수(瞽瞍)와 같은 아버지가 있으며, 관숙이나 채숙과 같은 형제가 있겠는가? 아직 변칙적인 상황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668]

傳十章釋治國平天下

[편집]

전 10장 치국평천하 해석.

  •  16:210 或問: “大學旣格物·致知了, 又卻逐件各有許多工夫在.”

누군가의 질문: 대학(大學)에서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한 다음에도 다시 또 각 단계를 따라 각각 많은 공부(工夫)가 있습니다.

曰: “物格·知至後, 其理雖明, 到得後來齊家·治國·平天下, 逐件事又自有許多節次, 須逐件又徐徐做將去. 如人行路, 行到一處了, 又行一處. 先來固是知其所往了, 到各處又自各有許多行步. 若到一處而止不進, 則不可; 未到一處而欲踰越頓進一處, 亦不可.” 璘(62때).

대답: 사물을 탐구하고(格物) 앎을 지극히하여(致知) 그 이치에 밝아졌다 하더라도 나중에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게 되면 또 각각의 단계에 따라 나름의 다양한 절차(節次)가 있으니, 모름지기 다시 각 단계별로 하나씩 천천히 해 나가야 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먼 길을 갈 적에 한 곳에 도달하고 난 다음에 다시 다음 장소로 가는 것과 같다. 물론 가장 먼저 최종 목적지[所往]를 알아야 하지만,[669] 각각의 중간 지점에 도착하는 데에도 또 각자 가야할 여정[行步]이 있는 것이다. 중간 목적지 한 곳에 도착한 뒤에 그대로 멈추고 나아가지 않아서도 안 되고, 도착하기도 전에 해당 중간 목적지를 뛰어넘어[踰越] 바로 다음 목적지로 나아가려[頓進] 해도 안 된다.

린(璘)의 기록. (62세)

  •  16:211 味道問“平天下在治其國”.

미도(味道)[670]가 '평천하재치기국(平天下在治其國)'에 관하여 질문함.

曰: “此[671]節見得上行而下效, 又見得上下雖殊而心則一.” 道夫(60이후).

대답: 이 (세) 구절[672]에서는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음을 볼 수 있고, 또 위와 아래가 비록 달라도 그 마음은 하나임을 볼 수 있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12 問“平天下在治其國”章.

'평천하재치기국(平天下在治其國)' 장(章)에 대한 질문.

曰: “此三句見上行下效, 理之必然, 又以見人心之所同. ‘是以君子有絜矩之道’, 所以以己之心度人之心, 使皆得以自盡其興起之善心. 若不絜矩, 則雖躬行於上, 使彼有是興起之善心, 而不可得遂, 亦徒然也.”

대답: 이 세 구문[673]은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 이치상 필연임을 보여주며, 또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모두 똑같이 여기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道)를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모두 각자 그 선한 마음을 온전히 일으킬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만약 혈구(絜矩)하지 않으면 비록 위에서 몸소 행하여 저들로 하여금 이러한 선한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그 선한 의사대로 (실제로) 성취하게 할 수 없으니 역시 헛될 뿐이다. [674]

又曰: “因何恁地上行下效? 蓋人心之同然. 所以絜矩之道: 我要恁地, 也使彼有是心者亦得恁地. 全章大意, 只反覆說絜矩. 如專利於上, 急征橫斂, 民不得以自養, 我這裏雖能興起其善心, 濟甚事! 若此類, 皆是不能絜矩.” 賀孫(62이후).

또 말함: 어찌하여 이처럼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가? 이는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혈구(絜矩)의 도리란, 내가 이렇게 하고 싶으면 똑같이 이러한 마음을 가진 저 사람 또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체 장(章)의 큰 뜻은 혈구(絜矩)에 대한 반복 설명일 뿐이다. 만약 위에서 이익을 독점하고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 백성이 스스로 봉양할 수 없다면, 내가 여기에서 비록 선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와 같은 종류는 모두 혈구(絜矩)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13 才卿問: “‘上老老而民興孝’, 恐便是連那老衆人之老說?”

재경(才卿)의 질문: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孝)심을 일으키고’라는 구절은, (윗사람 본인 집안의 노인만이 아니라) 여러 다른 집안의 노인들을 노인으로 대접한다는 설명[675]인 듯합니다.

曰: “不然. 此老老·長長·恤孤方是就自家身上切近處說, 所謂家齊也. 民興孝·興弟·不倍此方是就民之感發興起處, 說治國而國治之事也. 緣爲上行下效, 捷於影響, 可以見人心之所同者如此. ‘是以君子必有絜矩之道也’, 此一句方是引起絜矩事. 下面方解說絜矩, 而結之云: ‘此之謂絜矩之道.’ 蓋人心感發之同如此, 所以君子須用推絜矩之心以平天下, 此幾多分曉! 若如才卿說, 則此便是絜矩, 何用下面更絮說許多. 才卿不合誤曉老老·長長爲絜矩, 所以差也. 所謂‘文王之民無凍餒之老者’, 此皆是絜矩已後事, 如何將做老老說得!” 僩(69이후).

대답: 그렇지 않다. 여기서 노인을 노인대접하고(老老) 어른을 어른대접하고(長長) 고아를돌본(恤孤)다는 것은 바로 자기 몸에 가까운(切近) 지점에서 설명한 것이니, 이른바 집안을 다스린다[家齊]는 것이다. 백성들이 효(孝)심을 일으키고, 공경(弟)심을 일으키고, 서로 저버리지 않게 된다는 것은 바로 백성이 감발하여 흥기하는 차원에서 나라를 다스려 나라가 다스려지는 일[治國而國治之事]을 설명한 것이다.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 그림자와 메아리보다 빠른[捷於影響] 데에서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모두 똑같이 여기는 바가 이와 같음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道)를 가진다.’는 구절이 혈구(絜矩)의 일을 이끌어내고, 아랫부분에서는 혈구(絜矩)를 해설한 뒤에 ‘이를 혈구(絜矩)의 도리라고 한다’고 결론짓는다. 대개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감발하는 것이 이렇게 똑같으므로 군자는 반드시 혈구(絜矩)하는 마음을 미루어 천하를 평정해야 한다. 이 얼마나 분명한가! 만약 재경(才卿)의 설명과 같다면 이것[676]이 곧 혈구(絜矩)이니, 아랫부분에서 다시 군더더기처럼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겠나? 재경(才卿)이 적절치 못하게도 노노(老老)·장장(長長)을 혈구(絜矩)라고 오인한 것이니, 그래서 틀린 것이다. 이른바 ‘문왕(文王)의 백성 중에는 얼고 굶주리는 노인이 없었다’[677]는 것은 모두 혈구(絜矩)한 이후의 일이니, 어찌 이것을 노노(老老)의 사례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14 老老興孝, 長長興弟, 恤孤不倍, 這三句是說上行下效底道理. “是以君子有絜矩之道”, 這卻是說到政事上. “是以”二字, 是結上文, 猶言君子爲是之故, 所以有絜矩之道. 旣恁地了, 卻須處置敎他得所, 使之各有以遂其興起之心始得.

노인을 노인대접(老老)하면 효심(孝)이 흥하고, 어른을 어른대접(長長)하면 공경심(弟)이 흥하고, 고아를 돌보면(恤孤) (사람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는다[不倍]. 이 세 구문은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上行下效] 도리를 설명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를 가진다’는 정사(政事)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是以]’라는 두 글자는 윗글을 맺는 표현으로, 군자는 이러한 까닭으로 혈구(絜矩)의 도리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미 이렇게 되었다면, 모름지기 그들이 제자리를 얻도록 잘 처치(處置)하여 각자 그 일으킨 의사를 성취할 수 있게[遂其興起之心] 해야만 된다.

  •  16:215 所謂絜矩者, 矩者, 心也, 我心之所欲, 卽他人之所欲也. 我欲孝弟而慈, 必欲他人皆如我之孝弟而慈. “不使一夫之不獲”者, 無一夫不得此理也. 只我能如此, 而他人不能如此, 則是不平矣. 人傑(51이후).

이른바 혈구(絜矩)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구(矩)는 마음[心][678]이니,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679] 내가 (원껏) 효도하고 공경하며 자애롭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원껏) 효도하고 공경하며 자애로울 수 있기를 원한다.‘한 사람의 지아비라도 얻지 못함이 없게 한다[不使一夫之不獲]’는 것은, 한 사람의 지아비라도 이 이치를 얻지 못함이 없었다는 말이다. 단지 나만 이처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이처럼 할 수 없다면, 이는 불평(不平)한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216 問: “絜矩之道, 語脈貫穿如何? 久思未通.”

질문: 혈구(絜矩)의 도리는 말의 맥락을 어떻게 관통합니까?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는데도 통하지 않습니다.


[680]上面說人心之所同者旣如此, 是以君子見人之心與己之心同, 故必以己度人之心, 使皆得其平. 下面方說所以絜矩如此.” 賀孫(62이후).

대답: 윗부분에서 설명하기를,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원하는 바가 서로) 이정도로 똑같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군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자기 마음과 같음을 보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以己度人之心][681] 모두 균평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아랫부분에서 와서야 비로소 혈구(絜矩)하는 방법이 이러저러하다고 설명한다.[682]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17 問: “‘上老老而民興孝’, 下面接‘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似不相續, 如何?”

질문: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을 일으킨다’는 구절 아래에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를 가진다’를 붙이면 서로 연결되지 않는 듯한데 어째서 이런 것입니까?

曰: “這箇便是相續. 絜矩是四面均平底道理, 敎他各得老其老, 各得長其長, 各得幼其幼. 不成自家老其老, 敎他不得老其老; 長其長, 敎他不得長其長; 幼其幼, 敎他不得幼其幼, 便不得.” 㝢(61이후).

대답: 그게 바로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혈구(絜矩)는 모든 방면으로 균평한 도리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할 수 있게 하고, 각자 자기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할 수 있게 하고, 각자 자기 아이를 아이로 대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683] 설마하니 자기 집 노인만 노인으로 대접하고 남들은 자기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할 수 없게 하고, 자기 집 어른만 어른으로 대접하고 남들은 자기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지 못하게 하며, 자기 집 아이만 아이로 대접하고 남들은 자기 아이를 아이로 대접하지 못하게 할 셈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  16:218 仁甫問絜矩.

인보(仁甫)가 혈구(絜矩)에 관하여 질문함.

曰: “上之人老老·長長·恤孤, 則下之人興孝·興弟·不倍, 此是說上行下效. 到絜矩處, 是就政事上言. 若但興起其善心, 而不有以使之得遂其心, 則雖能興起, 終亦徒然. 如政煩賦重, 不得以養其父母, 又安得以遂其善心! 須是推己之心以及於彼, 使之‘仰足以事父母, 俯足以育妻子’, 方得. 如詩裏說大夫行役無期度, 不得以養其父母. 到得使下, 也須敎他內外無怨, 始得. 如東山·出車·杕杜諸詩說行役, 多是序其室家之情, 亦欲使凡在上者有所感動.”

대답: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고[老老],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며[長長], 고아를 돌보면[恤孤], 아랫사람들의 효심(孝)이 흥하고, 공경심(弟)이 흥하며, 서로 저버리지 않게 되니[興孝·興弟·不倍], 이는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 것[上行下效]을 말한다. 혈구(絜矩) 같은 경우는 정사(政事)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만약 단지 그 선한 마음을 일으키기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 마음을 이룰 수 있게[得遂其心] 해주지 않는다면 설령 흥기시킬 수 있었다 하더라도 역시 끝내는 헛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정사가 번거롭고 부세가 무거워 자기 부모를 봉양할 수 없다면, 다시 어떻게 그 (효도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684]을 이룰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충분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살리기에 충분하게[仰足以事父母, 俯足以育妻子]’ 해야 된다.[685] 예컨대 시경(詩經)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大夫)가 기약 없이 행역(行役)하면'[686] 그 부모를 봉양할 수 없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경우 역시 그들로 하여금 안팎으로 원망이 없게 해야 된다. 〈동산(東山)〉[687], 〈출거(出車)〉[688], 〈체두(杕杜)〉[689] 등 여러 시(詩)에서 행역(行役)에 대해 말한 것을 보면 그 가족의 정을 서술한 것이 많은데, 이 또한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느끼고 움직이는 바가 있게 하려고 의도한 것이다.

又曰: “這處正如齊宣王愛牛處一般: 見牛之觳觫, 則不忍之心已形於此. 若其以釁鍾爲不可廢而復殺之, 則自家不忍之心又只是空. 所以以羊易之, 則已形之良心不至於窒塞, 而未見之羊, 殺之亦無害, 是乃仁術也. 術, 是做得巧處謂之術.”

다시 말함: 이 부분은 제선왕(齊宣王)이 소를 아낀 이야기와 꼭 같다.[690] 소가 벌벌 떠는 것[觳觫]을 보고서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이미 여기에 드러났다. 만약 흔종(釁鍾) 의식을 폐할 수 없다 하여 도로 소를 죽였다면, 자기의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도 모두 헛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이니[以羊易之], (이렇게 되면) 이미 드러난 좋은 마음[良心]이 (바깥으로 통하지 못하고 마음속 어느 지점에서) 막혀버리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직접 눈으로) 본 적 없는 양은 죽여도 무방하니, 이것이 바로 인(仁)한 방법[仁術]이다. 술(術)이란 교묘하게 대처하는 것을 이른다.

又曰: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是兩摺說, 只以己對人而言. 若絜矩, 上之人所以待己, 己又所以待人, 是三摺說, 如中庸‘所求乎子以事父未能也, 所求乎臣以事君未能也’, 一類意.”

다시 말함: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영달하고자 하면 남을 영달하게 한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691]는 이중[兩摺]으로 설명한 것으로, 단지 자신과 남을 대립시켜 말한 것뿐이다. 혈구(絜矩)의 경우는 윗사람이 나를 대하는 방식을 (가지고) 내가 다시 (나의 아래)사람을 대하는 것이니, 이는 삼중[三摺]으로 설명한 것으로,[692] 중용(中庸)의 ‘(내가 내) 자식에게 요구하는 수준으로 아버지를 섬기지 못했고[所求乎子以事父未能也], (내가 내) 신하에게 요구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섬기지 못했다[所求乎臣以事君未能也]’는 것과 같은 취지이다.[693]

又曰: “晁錯言‘人情莫不欲壽, 三王能生之而不傷’云云, 漢詔云云, ‘孝心闕焉’, 皆此意.” 賀孫(62이후). [694]

또 말함: “조조(晁錯)가 ‘사람의 심정은 장수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는데, 삼왕(三王)은 능히 살려주고 해치지 않았습니다[人情莫不欲壽, 三王能生之而不傷]’ 운운한 것과,[695] 한서의 조서(詔書)에서 운운한 ‘이에 효심(孝心)을 결여하고 있다[孝心闕焉]’[696] 등이 모두 이러한 취지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19 問: “絜矩一條, 此是上下四方度量, 而知民之好惡否?”

질문: 혈구(絜矩) 조목은 상하사방(上下四方)을 헤아려서 백성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까?

曰: “知在前面, 這處是推. ‘老老而民興孝, 長長而民興弟, 恤孤而民不倍’, 這處便已知民之好惡與己之好惡相似. ‘是以君子有絜矩之道’, 便推將去, 緊要在‘毋以’字上.”

대답: 아는 것[知]은 그 앞부분에 있고, 이곳은 미루어 확장하는[推] 곳이다.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을 일으키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경심(弟)을 일으키며, 고아를 돌보면 백성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이미 백성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흡사함을 안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道)를 가진다'는 곧 미루어 나아가는 것이니, 그 핵심은 '~로써 ~하지 말고[毋以]'라는 표현에 있다.[697]

又曰: “興, 謂興起其善心; 遂, 謂成遂其事.”

다시 말함: '흥(興)'은 그 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이르고, '수(遂)'는 그 일을 이루는 것을 이른다.[698]

又曰: “爲國, 絜矩之大者又在於財用, 所以後面只管說財. 如今茶鹽之禁, 乃是人生日用之常, 卻反禁之, 這箇都是不能絜矩.”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나라를 다스림[爲國]에 있어서 혈구(絜矩)의 큰 부분은 또 재정(財用)에 있으니, 그래서 이 뒤로 계속 재물(財)에 대해 말한 것이다.[699] 오늘날 차(茶)와 소금(鹽)에 대한 금지조치[700] 같은 경우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도리어 금하였으니, 전혀 혈구(絜矩)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20 “上老老而民興孝”, 是化; 絜矩處, 是處置功用處. 振(미상).

'위에서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을 일으킨다'는 것은 교화[化]이고, (그 뒤에 이어지는) 혈구(絜矩) 부분은 (구체적인 조치를) 시행(處置)하여 효과(功用)를 보는 지점이다.

진(振)의 기록. (미상)

  •  16:221 問絜矩之道.

혈구의 도리에 관한 질문.

曰: “能使人興起者, 聖人之心也; 能遂其人之興起者, 聖人之政事也.” 廣(65이후).

대답: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일으키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성인(聖人)의 마음이고, 그들이 일으킨 선한 마음을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성인의 정사(政事)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6:222 “平天下, 謂均平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此與中庸所謂‘所求乎臣, 以事君未能’者同意. 但中庸是言其所好者, 此言其所惡者也.”

천하를 평정한다[平天下]는 것은 고르고 평평하게 함[均平]을 이른다.[701]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시키지 말며,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 이것은 《중용》에서 이른바 '(내가 내) 신하에게 요구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섬기지 못했다'[702]는 것과 같은 뜻이다. 다만 《중용》은 그 좋아하는 바를 가지고 말한 것이고, 여기서는 그 싫어하는 바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問: “前後左右何指?”

질문: 전후좌우[703]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曰: “譬如交代官相似. 前官之待我者旣不善, 吾毋以前官[704]所以待我者待後官也. 左右, 如東鄰西鄰. 以鄰國爲壑, 是所惡於左而以交於右也. 俗語所謂‘將心比心’, 如此, 則各得其平矣.”

대답: 비유하자면 관직을 교대하는 관리와 비슷하다. 전임 관리가 나를 대하는 것이 이미 좋지 않았다면, 나는 전임 관리가 나를 대한 방식으로 후임 관리를 대하지 말아야 한다. 좌우(左右)는 동쪽 이웃, 서쪽 이웃과 같다. 이웃 나라를 도랑[壑]으로 삼는 것은[705] 왼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오른쪽과 교류하는 꼴이다. 속담에서 이른바 '내 마음을 가지고 남의 마음과 비교해 본다[將心比心]'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각자 모두 공평함을 얻게 될 것이다.

問: “章句中所謂‘絜矩之道, 是使之各得盡其心而無不平也’, 如何?”

질문: 장구에서 이른바 '혈구의 도리란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자기 마음[706]을 원껏 다하여[707] 공평하지 않음이 없게[708] 하는 것이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709]

曰: “此是推本‘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須是留他地位, 使人各得自盡其孝弟不倍之心. 如‘八十者其家不從政; 廢疾非人不養者, 一子不從政’, 是使其各得自盡也. 又如生聚蕃息, 無令父子兄弟離散之類.” 德明(44이후).

대답: 이는 근본[710]을 미루어 확장하는[711] 부분이다.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을 일으키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경심(弟)을 일으키며, 고아를 돌보면 백성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는다.' 모름지기 그들의 자리[地位][712]를 남겨주어 그들이 각자 자신의 효심, 공경심,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다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80 세인 자는 그 집안 전체의 징용을 면제하며, 불치의 병에 걸려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부양하지 못하는 자는 아들 하나의 징용을 면제한다.'[713]같은 경우도 그들이 각자 (가족을 부양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다할 수 있게끔 해주려는 것이다. 또 예컨대 '자손을 많이 낳아[生聚蕃息] 부자형제간에 흩어지지 않게 하라'[714] 등도 같은 취지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223 “所惡於上”, “所惡於下”, “所惡於前”, “所惡於後”, “所惡於右”, “所惡於左”, 此數句, 皆是就人身切近處說. <如上文老老·長長·恤孤之意.> 至於“毋以使下”, “毋以事上”, “毋以先後”, “毋以從前”, “毋以交於左”, “毋以交於右”, 方是推以及物之事. 僩(69이후).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앞선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뒷선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오른쪽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왼쪽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이 몇 구절은 모두 자기 몸에 가까운 곳[人身切近處]에서 말한 것이다. <윗글의 노노(老老)·장장(長長)·휼고(恤孤)의 뜻과 같다.>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말며',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뒷선사람에 선행하지 말며, '앞선사람을 좇지 말며', '왼쪽사람과 교류하지 말며', '오른쪽사람과 교류하지 말며'[715]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루어 확장하여 타자에 미치는[推以及物]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24 問絜矩.

혈구(絜矩)에 관한 질문.

曰: “只把‘上下’·‘前後’·‘左右’等句看, 便見. 絜, 度也. 不是眞把那矩去量度, 只是自家心裏暗度那箇長那箇短. 所謂度長絜大, 上下前後左右, 都只一樣. 心無彼己之異, 只是將那頭折轉來比這頭. 在我之上者使我如此, 而我惡之, 則知在我下者心亦似我如此, 故更不將所責上底人之心來待下人. 如此, 則自家在中央, 上面也占許多地步, 下面也占許多地步, 便均平正方. 若將所責上底人之心來待下, 便上面長, 下面短, 不方了. 下之事我如此, 而我惡之, 則知在我之上者心亦似我如此. 若將所責下底人之心更去事上, 便又下面長, 上面短了. 左右前後皆然. 待前底心, 便折轉來待後; 待左底心, 便折轉來待右, 如此便方. 每事皆如此, 則無所不平矣.” 㝢(61이후).

대답: 그저 상하(上下), 전후(前後), 좌우(左右) 등의 구문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혈(絜)'은 측량[度] 행위이다. 정말로 저 직각자[矩][716]를 가지고 길이를 측량하라는 것은 아니요, 그저 자기 마음속으로 저것은 길고 이것은 짧구나 하고 조용히 재보는[暗度] 것이다. 이른바 '길이를 재고 크기를 헤아린다[度長絜大]'[717]는 것인데, (재본 결과) 상하전후좌우가 모두 똑같아야 한다. 마음은 남과 내가 다를 게 없으니, 그저 저쪽 편을 가지고 와서 이쪽 편에 대어볼 뿐이다. 내 위에 있는 사람이 나를 이렇게 부리는데 내가 그것을 싫어했다면 내 아래에 있는 사람의 마음 또한 나와 같을 것임을 알 수있으므로 다시는 내가 책망했던 윗사람의 그 마음을 가지고 내 아랫사람을 대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이 하면 자기 자신이 중앙에 있으면서 위쪽으로도 어느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아래쪽도 어느정도 자리를 차지하여 일정하게 네모반듯하게[均平正方] 된다.[718] 만약 (내가) 책망했던 윗사람의 그 마음을 가지고 내 아랫사람을 대한다면 위로는 길고 아래로는 짧아서 네모반듯하지 않게[不方] 될 것이다. 아랫사람이 나를 이렇게 모시는데 내가 그것을 싫어했다면 내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 또한 나와 같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책망했던 아랫사람의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내 윗사람을 모신다면 이것도 아래로는 길면서 위로는 짧아지게 될 것이다. 좌우와 전후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내가) 앞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와서 내 뒷 사람을 대하고, 왼쪽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와서 오른쪽 사람을 대하면 곧 네모반듯하게[方] 된다. 매사에 모두 이와 같이 하면 공평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225 “所謂絜矩者, 如以諸侯言之, 上有天子, 下有大夫. 天子擾我, 使我不得行其孝弟, 我亦當察此, 不可有以擾其大夫, 使大夫不得行其孝弟. 且如自家有一丈地, 左家有一丈地, 右家有一丈地. 左家侵著我五尺地, 是不矩, 我必去訟他取我五尺. 我若侵著右家五尺地, 亦是不矩, 合當還右家. 只是我也方, 上也方, 下也方, 左也方, 右也方, 前也方, 後也方, 不相侵越. 如‘伐冰之家, 不畜牛羊’.”

이른바 혈구(絜矩)라는 것은, 예컨대 제후(諸侯)로 말할 것 같으면 위에는 천자(天子)가 있고 아래에는 대부(大夫)가 있다. 천자가 나를 괴롭혀 내가 효제(孝弟)를 실천할 수 없게 한다면 나 또한 이러한 사정을 잘 헤아려서 나의 대부(大夫)를 괴롭혀 그들이 효제(孝弟)를 실천할 수 없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예컨대 자기 집에 (가로세로) 한 장(丈)[719]의 땅이 있고, 왼쪽 집에 한 장의 땅이 있으며, 오른쪽 집에 한 장의 땅이 있다고 하자. 왼쪽 집이 내 땅 다섯 척[720]을 침범했다면, 이는 네모반듯(矩)[721]하지 않는 것이니, 나는 반드시 그에게 소송을 걸어 내 땅 다섯 척을 찾아와야 한다. 내가 만약 오른쪽 집 땅을 다섯 척 침범했다면, 이 또한 규준(矩)에 맞지 않는 것이니, 응당 오른쪽 집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저 나도 네모반듯하고[方], 위도 네모반듯하며, 아래도 네모반듯하고, 왼쪽도 네모반듯하며, 오른쪽도 네모반듯하고, 앞도 네모반듯하며, 뒤도 네모반듯하여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얼음 캐는 집안은(伐冰之家) 소나 양을 기르지 않는다'[722]는 말과 같다.

亞夫云: “務使上下四方一齊方, 不侵過他人地步.”

아부(亞夫)가 말함: 상하사방(上下四方)이 한결같이 네모반듯하여 타인의 영역[地步]을 침범하지 않게 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曰: “然.” 節(64이후).

대답: 그렇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26 或問絜矩.

누군가가 혈구(絜矩)에 관하여 질문함.

曰: “譬之, 如左邊有一人侵我地界, 是他不是了; 我又不可去學他, 侵了右邊人底界. 前人行擁住我, 我行不得; 我又不可學他擁了後人; 後人趕逐我不了, 又不可學他去趕前人. 上下亦然.”

대답: 비유하자면, 왼쪽 사람이 내 땅의 경계를 침범했다면 이것은 그의 잘못이 된다. 내가 또 그에게서 배워서 오른쪽 사람의 땅 경계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 앞사람이 길을 막아 내가 앞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면 내가 또 그에게서 배워서 뒷사람을 막아서는 안 된다. 뒷사람이 나를 몰아붙이는 것이 (그의) 잘못이 된다면 (내가) 다시 그에게서 배워서 앞사람을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상하(上下)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椿云: “此一人卻是中立也.”

춘(椿)이 말함: 이 사람은 가운데 서 있군요.

曰: “是.” 椿(59때).

대답: 그렇다.

춘(椿)의 기록. (59세 때)

  •  16:227 絜矩, 如自家好安樂, 便思他人亦欲安樂, 當使無‘老稚轉乎溝壑', '壯者散而之四方’之患. ‘制其田里, 敎之樹畜’, 皆自此以推之. 閎祖(59이후).

혈구(絜矩)는, 예를 들어 자신이 안락함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 또한 안락함을 원할 것임을 생각하여, 응당 '늙은이와 어린이가 도랑에 굴러다니고',[723] '장정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는'[724] 환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토지를 구획하여 마련해주고, (식물을) 심고 (가축을)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것'[725]이 모두 이것을[726] 미루어 확장한 것이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6:228 問: “論上下四旁, 長短廣狹, 彼此如一, 而無不方. 在矩, 則可以如此. 在人則有天子諸侯大夫士庶人之分, 何以使之均平?”

질문: 상하사방(上下四旁)의 길고 짧음과 넓고 좁음[長短廣狹]이 피차 한결같아서 네모반듯하지 않음이 없다고 (대학에서) 논하는데, 직각자[矩]라면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사람의 경우에는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사(士), 서인(庶人)의 구분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균평(均平)하게 할 수 있습니까?

曰: “非是言上下之分欲使之均平. 蓋事親事長, 當使之均平, 上下皆得行. 上之人得事其親, 下之人也得以事其親; 上之人得長其長, 下之人也得以事其長.” 節(64이후).

대답: 상하(上下)의 신분 구분을 균평하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일을 균평하게 하여 상하(上下) 누구나 다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윗사람이 자기 어버이를 섬길 수 있다면 아랫사람 역시 그 어버이를 섬길 수 있고, 윗사람이 자기 어른을 공경할 수 있다면 아랫사람 역시 자기 어른을 공경할 수 있어야 한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727]

  •  16:229 問: “‘絜矩’六節, 如‘所惡於上, 無以使下’, 及左右前後, 常指三處, 上是一人, 下是一人, 我居其中. 故解云: ‘如不欲上之無禮於我, 則我亦不以無禮使其下.’ 其下五節意皆類此.”

질문: (대학 전 10장에서) '혈구(絜矩)'부분 여섯 구절, 예컨대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을 아래사람에게 시키지 말고' 및 좌우전후(左右前後)[728]를 보면 항상 세 지점을 가리킵니다. 위에 한 사람, 아래에 한 사람이 있고 자신은 그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해석에서 '만약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아랫사람을 무례하게 부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아래 다섯 구절의 뜻도 모두 이와 유사합니다.

先生曰: “見曾子之傳發明‘恕’字, 上下四旁, 無不該也.” 過(65이후).

선생의 대답: 증자(曾子)의 전승(傳)에서[729] '서(恕)' 자를 밝혀내어 상하사방(上下四旁) 모두를 포괄함을 볼 수 있다.

과(過)의 기록. (65세 이후)

  •  16:230 恕, 亦是絜矩之意. 振(미상).

서(恕) 역시 혈구(絜矩)의 의미이다.

진(振)의 기록. (미상)

  •  16:231 陶安國問: “絜矩之道, 是廣其仁之用否?”

도안국(陶安國)의 질문: 혈구(絜矩)의 도리(道)는 자기 인(仁)의 쓰임[用]을 확장하는 것 아닙니까?

曰: “此乃求仁工夫, 此處正要著力. 若仁者, 則是擧而措之, 不待絜矩, 而自無不平者矣.”

대답: 이는 인(仁)을 구하는 공부(工夫)이니, 바로 이 부분에 힘을 쓸[著力] 필요가 있다. 인자(仁者) 같은 경우는 혈구(絜矩)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올바른 정책을) 채택하고 시행하여 저절로 균평하지 않음이 없게 되는 자이다.

銖曰: “仁者, 則‘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不待推矣. 若絜矩, 正恕者之事也.”

내(銖)가 말함: 인자(仁者)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현달하고자 하면 남을 현달하게 하니[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730] 미루어 헤아릴[推]필요가 없습니다. 혈구(絜矩) 같은 경우는 딱 서자(恕者)[731]의 일입니다.

先生頷之. 銖(67이후).

선생이 고개를 끄덕임.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232 德元問: “‘我不欲人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與絜矩同否?”

덕원(德元)의 질문: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나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 한다'[732]는 혈구(絜矩)와 같지 않습니까?

曰: “然. 但子貢所問, 是對彼我說, 只是兩人; 絜矩則是三人爾. 後世不復知絜矩之義, 惟務竭民財以自豐利, 自一孔以上, 官皆取之, 故上愈富而下愈貧. 夫以四海而奉一人, 不爲不厚矣. 使在上者常有厚民之心而推與共之, 猶慮有不獲者, 況皆不恤, 而惟自豐殖, 則民安得不困極乎! 易‘損上益下’曰益, ‘損下益上’曰損. 所以然者, 蓋邦本厚則邦寧而君安, 乃所以益也. 否則反是.”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다만 자공(子貢)의 질문은 자신과 상대방을[彼我] 대립시켜 말한 것이니 양자간의 관계일 뿐이지만, 혈구(絜矩)는 삼자간의 관계이다. 후세에는 다시 혈구(絜矩)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오직 백성의 재물을 고갈시켜 자신의 풍족한 이득으로 삼기에만 바쁘니, 이익이 한 푼(一孔)[733]이라도 있거든 관에서 모두 가져가므로 위는 갈수록 부유해지고 아래는 갈수록 가난해진다. 무릇 사해(四海)를 가지고서 (군주) 한 사람을 봉양하니 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윗사람이 늘 백성을 후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미루어 함께 나눈다 하더라도 오히려 혜택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걱정해야할 판인데, 하물며 전혀 (백성의 사정을) 돌보지 않고 오직 자기 재산만 불리려 한다면 백성들이 어찌 곤궁하지 않을 수 있겠나? 《주역(易)》에서 '위를 덜어 아래를 보태는 것[損上益下]'을 익(益)이라 하고,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것[損下益上]'을 손(損)이라 하였다.[734] 이것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대개 나라의 근본(백성)이 두터우면 나라가 평안하고 군주가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득(益)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 반대로 (손해)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33 李丈[735]問: “盡得絜矩, 是仁之道, 恕之道?”

이 선배(李丈)[736]의 질문: 혈구(絜矩)를 다하는 것은 인(仁)의 도(道)입니까, 서(恕)의 도(道)입니까?

曰: “未可說到那裏. 且理會絜矩是如何.”

대답: 아직 거기까지 말할 단계가 아니다. 우선 혈구(絜矩)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라.

問: “此是‘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意否?”

질문: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나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 한다'[737]는 뜻 아닙니까?

曰: “此是兩人, 須把三人看, 便見. 人莫不有在我之上者, 莫不有在我之下者. 如親在我之上, 子孫在我之下. 我欲子孫孝於我, 而我卻不能孝於親; 我欲親慈於我, 而我卻不能慈於子孫, 便是一畔長, 一畔短, 不是絜矩.” 㝢(61이후).

대답: 그건 양자간의 관계이다. 반드시 삼자 관계로 보아야지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윗사람이 있고 아랫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어버이는 내 위에 있고, 자손은 내 아래에 있다. 자손이 자기에게 효도하기를 바라면서 자기는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못하고, 어버이가 자기를 아껴주기를(慈) 바라면서 자기는 자손을 아껴주지 못한다면 곧 한쪽은 길고 다른쪽은 짧은 것이니 혈구(絜矩)[738]가 아니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234 絜矩, 非是外面別有箇道理, 只是前面正心·修身, 推而措之, 又不是他機巧·變詐·權謀之說. 賀孫(62이후).

혈구(絜矩)는 외부에 어떤 별개의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대학) 앞쪽 부분에서 정심(正心), 수신(修身)한 것을 미루어 시행하는[推而措之] 것일 뿐이니, 저 기교(機巧)·속임수(變詐)·권모술수(權謀)의 설(說)과는 또 다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35 絜矩之說, 不在前數章, 卻在治國·平天下之後. 到這裏, 也是節次成了, 方用得. 道夫(60이후).

혈구(絜矩)의 설(說)이 앞의 여러 장(章)에 있지 않고 후면의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장에 위치한 것은, 여기에 이르기까지 순서에 따라[節次]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앞서의 공부를 미루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36 “君子先愼乎德”一條, 德便是‘明德’之‘德’. 自家若意誠·心正·身修·家齊了, 則天下之人安得不歸於我! 如湯武之東征西怨, 則自然有人有土. 賀孫(62이후).

'군자는 먼저 덕(德)을 삼간다'[739]는 대목에서 덕(德)은 바로 '명덕(明德)'의 덕이다. 만약 자기의 의지가 진실해졌고[意誠], 마음이 바르게 되었으며[心正], 몸이 닦였고[身修], 집안도 다스려졌다면[家齊] 천하 사람들이 어찌 자기에게 귀의하지 않을 수 있겠나?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동쪽을 정벌하면 서쪽에서 원망한 것과 같으니,[740] (이렇게 되면) 자연히 백성을 얻고 영토를 얻게 될[有人有土] 것이다.[741]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37 或問“爭鬭其民而施以劫奪之敎”.

누군가 '백성들과 (이득을 놓고) 투쟁함으로써 (그들에게) 서로 협박하고 빼앗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부분을 질문함.[742]

曰: “民本不是要如此. 惟上之人以德爲外, 而急於貨財, 暴征橫斂, 民便效尤, 相攘相奪, 則是上敎得他如此.” 賀孫(62이후).

대답: 백성들은 본래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윗사람이 덕(德)을 바깥으로(外) 취급하고 재물[貨財]에 급급하여[743] 난폭하게 징수하고 마구잡이로 뜯어가면 백성들이 곧 그 나쁜 것을 본받아[效尤] 서로 빼앗고 약탈하니, (이렇게 되면) 이는 윗사람이 그러라고 가르친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38 或問“爭民施奪”.

누군가 '백성과 다툼으로써 서로 빼앗으라고 가르친다.'[744]에 관하여 질문함.

曰: “是爭取於民, 而施之以劫奪之敎也. ‘媢疾以惡之’, 是徇其好惡之私.” 節(64이후).

대답: 이는 백성에게서 다투어 빼앗음으로써 (그들에게) 서로 협박하고 빼앗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시기질투하여 그를 미워한다'[745]는 자신의 사적인 호불호[好惡之私]를 따른다는 것이다.[746]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39 斷斷者是絜矩, 媢疾者是不能. “唯仁人放流之”, 是大能絜矩底人; “見賢而不能擧, 擧而不能先”, 是稍能絜矩; “好人之所惡”者, 是大不能絜矩. 節(64이후).

진실하고 한결같은[斷斷][747] 사람은 혈구(絜矩)할 수 있고, 시기질투하는[媢疾][748] 사람은 할 수 없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그들을) 유배보낸다'[749]는 것은 혈구(絜矩)에 매우 능숙한 사람이고, '현자를 보고도 등용하지 못하며, 등용하더라도 먼저 하지 못하는 것'[750]은 혈구(絜矩)를 조금 할 수 있는 사람이며, '남들이 싫어하는 바를 좋아하는 것'[751]은 전혀 혈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40 “擧而不能先”, 先是早底意思, 不能速用之意. 泳(66때).

'등용하더라도 먼저 하지 못한다'[752]에서 '선(先)'은 빠르다[早]는 뜻이다. 신속하게 등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241 “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平天下”一章, 其事如此廣闊. 然緊要處只在這些子, 其粗說不過如此. 若細說, 則如“操則存”, “克己復禮”等語, 皆是也. 僩(69이후).

'군자에게는 큰 도(道)가 있으니, 반드시 충(忠)과 신(信)으로 얻고, 교만함[驕泰]으로 잃는다.'[753], 평천하(平天下) 장(章)은 그 일(의 스케일)이 이처럼 광활하다. 그러나 긴요한 지점은 그저 여기 몇 대목[754]에 있을 뿐이니, 그 대략적인 설명이 이정도에 불과하다. 세밀하게 설명한 경우 같으면 '잡으면 보존된다[操則存]',[755]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간다[克己復禮]'[756]등의 말이 모두 그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42 趙唐卿[757]問: “十章三言得失, 而章句云: ‘至此而天理存亡之機決矣! ’何也?”

조당경(趙唐卿)의 질문: 제 10장에서 세 차례 득실(得失)을 말하고 있는데, 장구(章句)에서 '여기에 이르러 천리(天理)의 존망(存亡)이 판가름난다!'[758]고 하였으니 어째서입니까?

曰: “他初且言得衆·失衆, 再言善·不善, 意已切矣. 終之以忠信·驕泰, 分明是就心上說出得失之由以決之. 忠信乃天理之所以存, 驕泰乃天理之所以亡.” 㝢[759](61이후).

대답: 그것[760]은 처음에는 먼저 사람들을 얻느냐 잃느냐[得衆失衆]를 말하고,[761] 두번째에는 선(善)과 불선(不善)(에 따라 천명을 얻느냐 잃느냐를) 말하니 뜻이 이미 절실하다.[762] 마지막에 충신(忠信)과 교태(驕泰)로 마무리하니, 명백히 마음(心)의 차원에서 (앞선 요소들의) 득실(得失)의 이유를 설명해내어 (득실에 관한 의논을) 종결지은 것이다. 충신(忠信)은 곧 천리(天理)가 보존되는 이유이고, 교태(驕泰)는 천리(天理)가 사라지는 이유이다.[763]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243 問“仁者以財發身”.

'어진 사람은 재물로써 스스로를 일으킨다'[764]에 관한 질문.

曰: “不是特地散財以取名, 買敎人來奉己. 只是不私其有, 則人自歸之而身自尊. 只是言其散財之效如此.” 賀孫(62이후).

대답: 특별히 재물을 나누어주어 명예를 얻고 사람들을 매수해서[765] 자기를 받들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기가) 가진 것을 사유물로 보지 않으니 사람들이 저절로 그에게 귀의하여 자신이 저절로 존귀해지는 것 뿐이다. 그저 자기 재산을 나누어주는 일의 효과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44 “仁者以財發身”, 但是財散民聚, 而身自尊, 不在於財. 不仁者只管多聚財, 不管身之危亡也. 卓(미상).

'어진 사람은 재물로써 스스로를 일으킨다'는 단지 재물이 흩어지고 백성이 모여서 자신이 저절로 존귀해진다는 것 정도이지, (자신이 존귀해지는 사태가 필연적으로) 재물에 달린 것은 아니다.[766] 어질지 못한 자는 오직 재물을 많이 모으기만 할 뿐, 자기 일신이 (축재로 인하여) 위험해지는 것은 돌보지 않는다.

탁(卓)의 기록. (미상)

  •  16:245 蜚卿問: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 如何上仁而下便義?”

비경(蜚卿)[767]의 질문: '윗사람이 인(仁)을 좋아하는데 아랫사람이 의(義)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768]의 경우, 어째서 윗사람은 인(仁)인데 아랫사람은 의(義)입니까?[769]

曰: “這只是一箇. 在上便喚做仁, 在下便喚做義, 在父便謂之慈, 在子便謂之孝.”

답하다: (그 두 가지는) 하나일 뿐이다. 위에 있으면 인(仁)이라 부르고, 아래에 있으면 의(義)라 부르며, 아버지에게 있으면 자(慈)라 하고, 아들에게 있으면 효(孝)라고 한다.

直卿云: “也如‘孝慈則忠.’”

직경(直卿)[770]이 말함: 또 '효성스럽고(孝) 자애로운(慈) 것이 곧 충(忠)이다.'[771]는 것과 같습니다.

曰: “然.” 道夫(60이후).

대답: 그렇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46 “雖有善者”, 善, 如而今說會底. 閎祖(59이후).

'비록 잘하는 자가 있더라도'[772]에서, 선(善)은 지금 말하는 '잘하는[會底]'과 같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6:247 “國不以利爲利”. 如秦發閭左之戍, 也是利; 墮名城, 殺豪傑, 銷鋒鏑, 北築長城, 皆是自要他利. 利不必專指財利. 所以孟子從頭截斷, 只說仁義. 說到“未有仁而遺其親, 未有義而後其君”, 這裏利卻在裏面. 所以說義之所安, 卽利之所在. 蓋惟義之安, 則自無不利矣. 泳(66때).

'나라는 이득을 이득으로 여기지 않는다.'[773] 예를 들어 진(秦)나라가 마을 왼편(閭左)[774]에 사는 빈민들을 징병한 것도 이득(利)을 위한 것이었고,[775] 이름난 성곽(城)을 허물고, 호걸(豪傑)들을 살해하고, 칼날과 화살촉을 녹이고, 북쪽에 장성(長城)을 쌓은 것도 모두 자기 이익(利)을 스스로 추구했던 것이다.[776] 이득(利)이 꼭 재리(財利)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맹자(孟子)가 처음부터 (이득에 관한 모든 논의를) 딱 잘라버리고 그저 인의(仁義)만 설명했던 것이다.[777] 설명이 '인(仁)하면서 그 어버이를 유기하는 경우는 없었고, 의(義)로우면서 그 임금을 뒤로하는 경우는 없었다'[778]고하는 데 이르러서는, 역설적으로 그 안에 이득(利)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의리(義)상 편안한 곳이 바로 이득(利)이 있는 곳'[779]이라고 하였다. 대개 의리상 편안하기만 하면 자연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248 問: “末章說財處太多.”

질문: 마지막 장은 재물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曰: “後世只此一事不能與民同.” 可學(62때).

대답: 후세(後世)[780]에는 단지 그거 하나를 백성들과 함께하지 못한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6:249 第九章十章齊家·治國, 旣已言化, 平天下只言措置之理. 絜, 度也; 矩, 所以爲方也. 方者, 如用曲尺爲方者也. 何謂“是以君子有絜矩之道”?上面人旣自有孝弟, 下面民亦有孝弟, 只要使之自遂其孝弟之心於其下, 便是絜矩. 若拂其良心, 重賦橫斂以取之, 使他不得自遂其心, 便是不方. 左右前後皆然. 言是以者, 須是如此. 後面說民之父母, 所好所惡, 皆是要與民同利之一事. 且如食祿之家, 又畜雞豚牛羊, 卻是與民爭利, 便是不絜矩. 所以道“以義爲利”者, “義以方外”也. 泳(66때).

제 9장과 제 10장의 경우, 제가와 치국 부분에서 이미 교화[化]를 설명했고,[781] 평천하(平天下) 부분에서는 단지 조치(措置)[782]의 이치만을 말한다. 혈(絜)은 헤아림[度]이고, 구(矩)는 방형을 만드는 도구[所以爲方]이다. 방(方)이라는 것은 예컨대 직각자[曲尺]를 써서 사각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어째서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道)를 가진다'[783]라고 하는가? 위에서 이미 스스로 효심과 공경심(孝弟)이 있거든 백성 또한 아래에서 효심과 공경심을 가지게 되니, 그저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효제(孝弟)하려는 마음을 (사회의) 하층부에서 이룰 수 있게 해주려는 (지도자의 심정이) 바로 혈구(絜矩)이다. 만약 그 좋은 마음[良心]을 거슬러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함부로 거두어들여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효제하려는) 그 마음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면 곧 네모반듯하지 않은 것[不方]이다. 좌우전후(左右前後)도 모두 그러하다.[784] '이 때문에[是以]'라고 말한 것은 '응당 이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이어 백성의 부모 (가 된다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를 싫어한다)라고 설명한 것은[785] 모두 백성과 이익을 함께 하는[與民同利] 일 하나를 요구한 것이다. 또, 녹을 먹는 집안[食祿之家]이 다시 닭, 돼지, 소, 양을 기른다면, 이는 (백성과 이익을 함께하기는 커녕) 반대로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이니, 혈구(絜矩)하지 못하는 것이다.[786] 그러므로 '의로움(義)을 이득으로(利) 삼는다'[787]고 말한 것은 '의로움(義)을 가지고 바깥(外)을 반듯하게 한다[義以方外]'[788]는 것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250 問: “絜矩以好惡·財用·媢疾彦聖爲言, 何也?”

혈구를 '좋아하고 싫어함', '재용(財用)', '타인의 훌륭함을 시기함' 등을 가지고 설명한 것은 어째서입니까?[789]

曰: “如桑弘羊聚許多財, 以奉武帝之好. 若是絜矩底人, 必思許多財物, 必是侵過著民底, 滿著我好, 民必惡. 言財用者, 蓋如自家在一鄕之間, 卻專其利, 便是侵過著他底, 便是不絜矩. 言媢疾彦聖者, 蓋有善人, 則合當擧之, 使之各得其所. 今則不擧他, 便失其所, 是侵善人之分, 便是不絜矩. 此特言其好惡·財用之類, 當絜矩. 事事亦當絜矩.” 節(64이후).

예를 들어 상홍양(桑弘羊)[790]은 재물을 많이 모아 무제(武帝)의 기호에 맞추어 섬겼다. 혈구(絜矩)하는 사람 같았으면 반드시 '이 많은 재물은 틀림없이 백성의 것을 침탈하여 나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것이니, 백성은 반드시 싫어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재용(財用)을 언급한 것은,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이 한 고을에 있으면서 그 이익을 독점한다면 이는 그들의 것을 침탈하는 것이니 혈구(絜矩)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의 훌륭함을 시기함[媢疾彦聖]을 언급한 것은, 대개 훌륭한 인재[善人][791] 있으면 마땅히 그를 등용하여 각자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얻게 해야 하는데 지금 그를 등용하지 않는다면 곧 그가 제자리를 잃게 되니, 이는 유능한 사람의 직분[分]을 침탈하는 것이므로 바로 혈구(絜矩)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그 좋아하고 싫어함, 재용(財用) 등의 경우에 마땅히 혈구(絜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은 그밖의) 모든 일에 있어서 역시 마땅히 혈구(絜矩)해야 한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51 問: “自致知至於平天下, 其道至備, 其節目至詳至悉, 而反覆於終篇者, 乃在於財利之說. 得非義利之辨, 其事尤難, 而至善之止, 於此尤不可不謹歟? 不然, 則極天命人心之向背, 以明好惡從違之得失, 其丁寧之意, 何其至深且切耶?”

질문: 치지(致知)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그 도(道)가 지극히 갖추어졌고 그 절목(節目)이 지극히 상세하며 포괄적인데 (조금 놀랍게도) 마지막 편에서 반복되는 내용은 바로 재리(財利)에 관한 설명입니다. 이는 의로움(義)과 이로움(利)을 구별하는 일이 무척 어려우므로 지선(至善)에 멈추어 머무르는[至善之止] 공부를 이 부분에서 더욱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아닙니까?[792] 만약 (이상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면, (윗사람의 태도와 조치가)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을 배반하는가 아닌가를 극한까지 파고들어 (윗사람의) 좋아함과 싫어함, 따르고 어김[好惡從違]의 잘잘못[得失]을 밝힌 (대학 전 10장의) 그 간곡한[丁寧] 뜻이 어째서 이토록 지극히 깊고 또 간절한 것입니까?

曰: “此章大槪是專從絜矩上來. 蓋財者, 人之所同好也, 而我欲專其利, 則民有不得其所好者矣. 大抵有國有家所以生起禍亂, 皆是從這裏來.”

대답: 이 장(章)은 대체로 혈구(絜矩) 하나로부터 풀어낸 것이다. 대개 재물[財]은 사람들 누구나 좋아하는 바이지만 내가 그 이익을 독점하고자 하면 백성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자가 있게 된다. 대체로 자기 나라나 자기 집안을 보유하고서 화란(禍亂)을 일으키는 까닭은 모두 여기에서 기인한다.

道夫云: “古注, 絜音戶結反. 云結也.”

내가(道夫) 말함: 고주(古注)에 혈(絜)의 음은 호결(戶結) 반절(反)이라 하고,[793] (그 뜻은) '맺음[結]'이라고 했습니다.[794]

曰: “作‘結’字解, 亦自得. 蓋荀子莊子注云: ‘絜, 圍束也.’ 是將一物圍束以爲之則也.”

대답: '결(結)'자로 해석해도 된다.[795] 대개 《순자(荀子)》나 《장자(莊子)》의 주(注)에서 '혈(絜)은 둘레를 묶는 것[圍束]이다'라고 하였으니, 어떤 물건을 가지고 (다른 사물의) 둘레를 묶어 측량의 단위[則]로 삼는 것이다.[796]

又曰: “某十二三歲時, 見范丈所言如此. 他甚自喜, 以爲先儒所未嘗到也.” 道夫(60이후).

다시 말함: 내가 12~13세 때 범(范) 어르신[797]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스스로 몹시 기뻐하며 선유(先儒)들이 일찍이 도달하지 못했던 해석이라고 여겼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52 或問: “絜矩之義, 如何只說財利?”

누군가의 질문: 혈구(絜矩)의 도리(義)를 어찌하여 단지 재리(財利)만 가지고 설명합니까?

曰: “必竟人爲這箇較多. 所以生養人者, 所以殘害人者, 亦只是這箇. 且如今官司皆不是絜矩. 自家要賣酒, 便敎人不得賣酒; 自家要榷鹽, 便敎人不得賣鹽. 但事勢相迫, 行之已久, 人不爲怪, 其實理不如此.” 學蒙(65이후).

대답: 그것은 필경 사람들이 이것을 추구하는 경우가 비교적 많아서일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기르는[生養人] 것도, 사람을 해치는[殘害人] 것도 역시 이것 뿐이다. 또 예를 들자면, 오늘날 관청(官司)은 전혀 혈구(絜矩)하지 않는다. 관청 자신이 술을 팔고자 하니 남들이 술을 팔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소금을 전매하고자 하니 남들이 소금을 팔지 못하게 한다. 다만 사세(事勢)가 절박하고[798] (전매책이) 시행된 지 오래되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뿐이고, 기실 이치(理)는 그렇지 않다.

학몽(學蒙)의 기록. (65세 이후)

  •  16:253 因論“治國平天下”章財用處, 曰: “財者, 人之所好, 自是不可獨占, 須推與民共之. 未論爲天下, 且以作一縣言之: 若寬其賦斂, 無征誅之擾, 民便歡喜愛戴; 若賦斂稍急, 又有科敷之擾, 民便生怨, 決然如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장의 재용(財用) 부분에 대해 논하다가 말함: 재물이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이므로 본래 독점해서는 안 되며, 응당 (그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미루어 백성과 공유해야 한다. 천하를 다스리는 차원에서 논하기 전에 우선 현(縣) 하나를 다스리는 것으로 말해보자. 만약 부세[賦斂]를 너그럽게 하고 징발하고 처벌하는 소란[征誅之擾][799]이 없다면 백성들이 곧 기뻐하며 (현령을) 사랑하고 받들어 모실 것이다. 만약 부세가 자못 급박하고 또 할당액을 정해 부과하는[科敷] 소란이 있다면 백성들이 곧 원망을 품게 되니, (그 인과적 필연성이) 결단코 이러하다.

又曰: “寧過於予民, 不可過於取民. 且如居一鄕, 若屑屑與民爭利, 便是傷廉. 若饒潤人些子, 不害其爲厚. 孟子言: ‘可以取, 可以無取, 取傷廉; 可以與, 可以無與, 與傷惠.’ 他主意只是在‘取傷廉’上, 且將那與傷惠來相對說. 其實與之過厚些子, 不害其爲厚; 若才過取, 便傷廉, 便不好. 過與, 畢竟當下是好意思. 與了, 再看之, 方見得是傷惠, 與傷廉不同. 所以‘子華使於齊, 冉子與之粟五秉’, 聖人雖說他不是, 然亦不大故責他. 只是才過取, 便深惡之, 如冉求爲之聚斂而欲攻之, 是也. 僩(69이후).

다시 말함: 차라리 백성에게 주는 것[予民]이 지나칠지언정, 백성에게서 취하는 것[取民]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또 예컨대 어떤 고을에 살면서 만약 꼬치꼬치[屑屑] 백성과 이익을 다툰다면 이는 곧 청렴함[廉]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을 조금 넉넉하게 해주는[饒潤] 것 같으면 (결과적으로) 후(厚)하게 된다해도 무방하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취해도 좋고 취하지 않아도 좋은 경우에 취하면 청렴의 원칙을 손상시키고, 주어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은 경우에 주면 은혜의 원칙을 손상시킨다'[800] 고 하였다. 그의 주된 취지는 단지 '취하면 청렴의 원칙을 손상시킨다'는 데 있는데, '주면 은혜의 원칙을 손상시킨다'를 가지고 (구색을 맞춰) 한 쌍으로 설명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주는 것이 후한 쪽으로 조금 지나쳐서 후하게 되는 것은 무방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취하면 곧 청렴함을 손상시키니 좋지 못하다. 지나치게 주는 것[過與]은 필경 당장은 좋은 취지일 것이다. 준 다음 다시 생각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은혜의 원칙을 해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니, 청렴의 원칙을 손상시키는 경우와는 다르다. 그래서 '자화(子華)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염자(冉子)가 그에게 곡식 다섯 병(秉)을 주'[801]었을 때는 성인[802]이 비록 그의[803] 처사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잘못했다며 꾸짖지도 않으셨다. 단,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취하면 즉시 깊이 미워하셨으니, 염구(冉求)가 (계씨를 위해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과하게) 수탈하자 그를 성토하고자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804][805]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54 問: “‘平天下’章言財用特詳, 當是民生日用最要緊事耳.”

질문: '평천하(平天下)' 장에서 재용(財用)에 대한 설명이 특히 상세한 것은, 분명 백성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曰: “然. 孟子首先所言, 其原出此.”

대답: 그렇다. 맹자(孟子)가 가장 먼저 말한 내용은 그 근원이 여기이다.[806]

子升問此章所言反覆最詳之意.

자승(子升)[807]이 이 장(章)에서 말한 바가 여러번 반복되고 가장 상세한 이유를 질문함.

曰: “要之, 始終本末只一理. 但平天下是一件最大底事, 所以推廣說許多. 如明德·新民·至善之理極精微. 至治國·平天下, 只就人情上區處, 又極平易, 蓋至於平而已耳. 後世非無有志於天下國家之人, 卻只就末處布置, 於本原上全不理會.”

대답: 요약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뿌리부터 말단까지 이치는 하나일 뿐이다. 다만 평천하(平天下)는 (스케일이) 가장 큰 일이므로 미루어 넓혀서 많이 설명한 것이다. 명덕(明德), 신민(新民), 지선(至善)의 이치는 지극히 정미(精微)하다.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경우는 그저 인정(人情)의 차원에서 처리[區處]할 뿐이요 또 지극히 평이(平易)하니, (그래서 천하가) 평정(平)에 도달하고야 마는 듯하다. 후세에 천하와 국가에 뜻을 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로되, 도리어 말단[末處]의 차원에서만 조치[布置]할 뿐, 뿌리에 대해서는 전혀 헤아리려(理會) 하지 않았다.

因言: “莊子, 不知他何所傳授, 卻自見得道體. 蓋自孟子之後, 荀卿諸公皆不能及. 如說: ‘語道而非其序, 非道也.’ 此等議論甚好. 度亦須承接得孔門之徒, 源流有自. 後來佛氏之敎有說得好處, 皆出於莊子. 但其知不至, 無細密工夫, 少間都說得流了, 所謂‘賢者過之’也. 今人亦須自理會敎自家本領通貫, 卻去看他此等議論, 自見得高下分曉. 若一向不理會得他底破, 少間卻有見識低似他處.”

이어서 말함: 장자(莊子)는 어디에서 전수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도체(道體)를 스스로 보았다. 생각건대 맹자 이후로 순경(荀卿)[808] 등 여러 사람들은 모두 (장자의 경지에) 미치지 못한 듯하다. 예를 들어 '도(道)를 말하는데 그 순서에 어긋나면 도(道)가 아니다'[809]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의론은 매우 좋다. 생각건대 역시 분명 공문(孔門)의 제자들을 이어받은 것 같으니, (이처럼) 그 원류(源流)에 출처가 있는 것이다. 훗날 불씨(佛氏)의 가르침 중에서도 잘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은) 모두 장자(莊子)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만 그들의 앎이[知] 지극하지 못하고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어서 이윽고 설명이 모두 흘러버리니,[810] 이른바 '현명한 자는 지나치고'[811]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도 모름지기 스스로 헤아려(理會) 자기 본령(本領)[812]을 철저히 깨우치도록(通貫) 하고 나서 저들의 저러한 의론들을 살펴보아야 하니 (그러면) 저절로 높낮이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만약 한결같이 저들의 것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이윽고 반대로 저들보다 견식의 수준이 낮은 지점이 생기게 된다.[813]

因說, 曾點之徒, 氣象正如此.

이어서 증점(曾點)의 무리의 기상(氣象)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함.[814]

又問: “論語集注說曾點是‘雖堯舜事業亦優爲之’. 莫只是堯舜事業亦不足以芥蔕其心否?”

다시 질문: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 증점(曾點)을 '요순(堯舜)의 사업이라도 또한 넉넉히 해낼 것이다'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요순의 사업이라도 역시 그의 마음을 흔들지(芥蔕) 못한다 뜻 아닙니까?[815]

曰: “堯舜事業也只是這箇道理.”

대답: 요순의 사업 역시 이 도리(道理)일 뿐이다.

又問: “他之所爲, 必不中節.”

다시 질문: 그의 행위는 필시 절도에 맞지[中節] 않았을 것입니다.[816]

曰: “本領處同了, 只是無細密工夫.” 木之(68때).

대답: 본령(本領)이 되는 지점은 (성인과 그 수준이) 같았고, 그저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었을 뿐이다.[817]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6:255 人治一家一國, 尙且有照管不到處, 況天下之大! 所以反反覆覆說. 不是大著箇心去理會, 如何照管得! 泳(66때).

사람이 한 집안, 한 나라를 다스릴 때에도 오히려 관리가[照管] 미흡한 곳이 있거늘, 하물며 저 거대한 천하(를 다스리는) 경우에랴! 그래서 거듭 반복하여 설명한 것이다. 마음을 크게 먹고 살피지(理會) 않는다면 어찌 제대로 돌볼[照管] 수 있겠는가?

영(泳)의 기록. (66세)

주해

[편집]
  1. 대학 전 1장의 첫 구문이다. 원출전은 서경 주서 강고편.
  2. 이 조목은 진덕수의 서산독서기 권 22에서도 인용하고 있다. '問克明徳.曰: 徳之明與不明, 只在人之克與不克, 須是真个㑹明其明徳.'
  3. 역시 대학 전 1장이다. 원출전은 서경 상서 태갑편.
  4. 글자에 출입은 있으나 기본적으로 중용 첫 장의 '천명지위성'을 언급한 것이다.
  5. 단순한 흐리멍텅함 보다는 사리에 어둡고 시비선악에 어두운 것을 말한다.
  6. '명명(明命)'을 말한다. 대학장구 전 1장 참조.
  7. 사람의 밝은 덕은 육신 안에 있고 하늘은 육신 바깥에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8. 대학 전 2장.
  9. 여기서 두면(頭面)은 꼬인 실타래를 풀어갈 실의 '머리', 곧 실마리를 말한다.
  10. 이 표현에 대해서는 14:77 참조.
  11. 주희에 따르면 사람은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도리를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든 이미 아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배움의 시작은 바로 그 이미 아는 지점에서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14:19를 참조하라.
  12. 시경 대아 문왕편의 한 구문으로 대학 전 2장에서 인용했다.
  13. 본래 서경 상서 태서편의 구문으로 맹자 5A:5에서 인용했다. 여기서는 주나라가 천명을 얻었다는 신화적 언명을 '민심을 얻었다'는 평이한 언어로 해석한 것이다.
  14. 하늘이 본 것과 백성이 본 것이 같지 않으면
  15. 중국 고대(특히 상나라 시기)에 섬겼던 인격신이다. 후에 천제(天帝)나 상제(上帝) 등의 관념으로 진화한다. 주희는 이치(理)의 여러 속성 가운데 세상의 주인으로서 주재하고 주관한다는 점을 특별히 지시하는 낱말이라고 보았다. 1:21을 참조하라.
  16. 상나라 정벌을 말한다.
  17. 제명문왕 부터는 81:133과 거의 같다.
  18. 본래 서경 상서 태갑편의 구문으로 대학 전 1장에서 인용했다.
  19. 대학장구에서는 두 가지 다른 훈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이것(是)', 다른 하나는 '상세히 살핌'이다.
  20. 일역판에서는 '컨트롤하다'라고 풀이한 것은 조금 지나치다. 조관(照管)은 자신이 책임지고 담당한 물건이 잘못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관리해주는 것을 말한다.
  21. 문미의 재(在)는 강조표현이다.
  22. 6:82를 보면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마음을 찾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에 더하여 '이제 대학을 볼 때도...'라고 이어받은 것이다.
  23. 맹자 6A:11.
  24. 이 조목은 6:82의 후반부와 일치한다.
  25. 제시(提撕)는 본래 상대방의 귀를 붙잡고 끌어올린다는 뜻으로 자주 '각성시키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정(二程) 등 여러 도학자들이 거경(居敬) 공부를 설명할 적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26. 주희는 주로 '전체대용'으로 쓰는데 여기서는 앞뒤가 바뀌어있다. '온전한 본체'는 진리에 대한 체험적이고 불가역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말하고 '위대한 작용'은 그러한 이해에 힘입어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을 말한다. 번역의 경우 글자의 대의에 지장이 없으므로 '전체대용'이라고 풀이하였다.
  27. 밝은 명령
  28. 주재는 오늘날 말로 주인님, 마스터(master), 로드(lord) 정도의 의미이다. 여기서는 도덕원칙에 대한 확고하고 명징한 식견을 바탕으로 복잡한 사안 속에서 시비선악을 명쾌히 파악하여 상황을 주도하는 힘을 말한다. 주재하는 힘이 없어서 끌려가버리는 사람과 주재하는 힘이 있어 제대로 대응하는 사람의 대비에 관해서는 15:52를 참조하라.
  29. 밝은 명령
  30. 밝은 명령
  31. 여기서 고주는 공안국의 주석을 말한다.
  32. 모두 물로 비유한 것이다. 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불순물이 가라앉으므로 맑고 투명하다.
  33. 존양(存養)은 맹자7A:1의 '존기심(存其心), 양기성(養其性)'에서 따온 표현이다. 주희는 마음을 보존/간직한다는 것을 일종의 경(敬) 공부로 파악했다.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양성(養性)은 이러한 명상수련을 통하여 우리 내면의 선량한 부분이 두텁게 배양됨을 말한다. '기른다'는 메타포는 식물을 길러내는 데서 온 것으로 주희의 학문체계에서 매우 자주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규성("정자에서의 지식과 직관의 문제(2003)")이 이러한 점을 들어 성리학을 '정원사의 철학'이라고 부른 것은 적절하다.
  34. 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高海波, "试论朱子对《孟子》「求放心」句的诠释"(2020)을 참조하라.
  35.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
  36. 맹자 6B:2.
  37. 통서 제 20장.
  38. 논어 15:5
  39. '在這裏'는 강조표현이다.
  40. 밝은 명령(明命)
  41.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여 각각의 상황에 따라 자신이 견지해야 할 최선의 도덕원칙을 확고하게 인식한다는 말이다.
  42. 대학장구 전 1장.
  43. 이 조목은 비록 대의는 같으나 상황설명은 조선고사본 쪽이 더 자세하니 참조하라.
  44. 역시 조선고사본 쪽이 조금 더 자세하니 참조하라.
  45. 밝은 명령
  46. 사람의 경우는 신체가 껍질이다. 68:88을 보라.
  47. 주희 당시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각각의 물체는 공기처럼 편재한 어떤 희박한 에너지 입자들(곧, 기운)이 촘촘하게 모여서 생긴 것들이다. 이렇게 모인 상태가 취(聚)이고, 이 모임이 유지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것이 산(散)이다. 영어로 치면 산(散)은 '분해(disintegration)'에 가깝다. 앞서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밝은 명령'도 역시 '기운'이라고 했으니, 한 사람의 죽음 역시 이 기운의 흩어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모종의 수를 써서 이 분해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면 (주희 당시의 상식으로는) 그 사람은 당연히 불로불사할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48. 도덕경 제 59장. 오래 산다는 뜻.
  49. 장난(弄)이란 표현은 불교도들이 이상에서 설명한 이치를 모르고 있다는 비판이 아니다. 알기는 아는데 그것을 부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우리는 돈을 부적절하게 활용하는 사람을 두고 종종 '돈지랄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그 돈이 가짜라는 말이 아니다. 불교도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표현은 126:134에서도 보인다.
  50. 주역 건괘 단전. '건의 도리가 변하고 화하여 만물 각각의 본성을 바르게 하나니, 위대한 (음양의) 조화를 온전히 지킨다(乾道變, 各正性命, 保合大和)' 68:87과 88을 참조하라.
  51. 여기서도 일관되게 '흩어지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을 주목하라.
  52. 서경 상서 대우모
  53. 대학 전 2장. 탕왕의 세수대야에 새겨진 명문이다.
  54. 대학 전 2장.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日日新)'와 '또 하루 새롭게 하라(又日新)'이다.
  55. 토(討)는 돈을 주고 사거나 혹은 다른 수를 써서 무언가를 마련해온다는 뜻이다.
  56. 맹자 6A:8.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며 무시로 드나들어 그 향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두고 한 말이로구나!(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57. 15:107을 보라.
  58. 대학 전 2장을 보면 '고시천지명명' 직전 구문에서 '극명덕(克明德)'이라고 했고 직후 구문에서 '극명준덕(克明峻德)'이라고 써 놓았기 때문에 그 중간에 낀 '명명(明命)'이 튀어보인다.
  59. 16:8을 참조하라.
  60. 북송의 정호.
  61. 약(約)은 예법과 규범 등 객관화된 규칙으로 자기 자신을 단속함을 말한다. 놓치다(放)는 표현이 본래 개와 닭을 놓친 데서 유래한 것임은 앞서 16:8에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약(約)' 역시 되찾아온 짐승이 달아나지 못하게 제약하고있는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이 좋다.
  62. 진리를 이해하고 체화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말한다.
  63. 논어 14:37. 일상적이고 구체적이고 각자에게 절실한 차원에서의 인식과 실천을 통해 보다 비일상적이고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인식과 실천으로 나아감을 이른다.
  64. 이정유서 1:22
  65. 16:15 참조.
  66. 時는 是와 같다.
  67. 서경 상서 함유일덕 제 6장.
  68. 명(銘)은 물건에 새긴 글귀를 말한다. 자신이 자주 드나들고 기거하는 공간에 있는 물건에 새겨두고 매일 되새기는 글귀를 '좌우명(座右銘)'이라고 한다. 이때 새기는 글귀의 성격을 새기는 물건에서 취하곤 하는데, 예컨대 거울에 새기는 글귀는 밝음이나 비춤 같은 의미를 취하고 돌에 새기는 글귀는 견실하다는 의미를 취하는 등이다. 탕임금의 '반명'이란 '욕조(盤)'에 새긴 글귀이므로 몸에 붙은 오염을 씻어내어 스스로를 새롭게한다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반(盤)은 전통적으로 '세숫대야' 정도로 풀이하는데 실제로 출토된 서주시대 '반'들은 오늘날 세숫대야 정도의 크기부터 욕조 크기까지 다양하다.
  69. 원출전은 서경 주서 강고 제 7장. 대학 전 2장에서 탕임금의 반명에 이어서 인용하고 있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 부분을 '스스로 새롭게하려는 백성들을 진작시킨다(振起其自新之民)'라고 주석하였다. 조금 어색한 감은 있지만 주희의 주석에 따라 번역했다.
  70. 탕의 반명은 '수신'에 속하는 일이고 신민은 '치인'에 속하는 일인데 전자를 후자에 배속시킨 것이 어쩐지 이상하다는 문제제기이다.
  71. 장자 천하편
  72. 북송의 장재.
  73. 경학리굴 학대원(하) 13. 근사록 3:77에도 수록되어 있다.
  74. 소리내어 외웠다는 말이다.
  75. 시경 대아 문왕편의 한 구문으로 대학 전 2장에서 인용했다. 민심을 얻었으니 기존의 제후국 지위에서 벗어나 천하를 차지할 명분을 얻었다는 말이다. 16:3을 보라.
  76. 주나라 문왕이 자신의 명덕을 밝혀 스스로를 새롭게 하였음을 말한다.
  77. 그에 바탕하여 백성들은 고무하고 독려하여 일신했음을 말한다.
  78. 이에 힘입어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천자국이 되었음을 말한다.
  79. 대학 삼강령 중 세 번째이다.
  80. 화(和)...야(也)... 구문은 '~조차도'이다. 화(和)는 현대중국어의 련(連)과 같다.
  81. 지선(至善)은 각각의 사태와 상황에 있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리, 가장 훌륭한 스탠스를 말한다. 주희가 자주 드는 사례로 말하자면 자식된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스탠스가 효(孝)이고 어버이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스탠스는 자(慈)라는 식이다. 지(止)는 바로 그러한 스팟에 1)도달해서 2)멈추고 3)머무르는 일을 모두 지시할 수 있다. 사람의 수양을 여정으로 비유하자면 그러한 스팟에 도달하려고 열심히 길을 가는 것도 '지'이고, 그러한 스팟을 지나쳐가지 않고 딱 맞게 멈추는 것도 '지'이고, 그 자리에 멈춘 뒤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고 자리를 고수하는 것도 '지'이다. 이렇게 보면 동계 스포츠 '컬링'에서 득점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14:101, 108 등을 참조하라.
  82.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하는 모든 구문들은 '지(止)'자와 관련되어있음에 주의하라.
  83. 본래 시경 소아(小雅) 면만(綿蠻)편의 한 구절인데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했다. '면만(緡蠻 혹은 綿蠻)'은 새 울음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이다.
  84. 대학 전 3장. 공자의 한탄이다.
  85. 시경 대아 문왕편의 구문을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어(於)'는 '오'라고 읽는다. 감탄사이다. 시집전에 따르면 '집(緝)'은 계속하다, '희(熙)'는 밝히다, '경(敬)'은 경건히, '지(止)'는 어조사이다. 어조사라는 것은 강하고 구체적이고 단독적인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다만 대학의 저자는 이 '지(止)'에 '그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인용한 것이므로 우리가 시경이 아니라 대학을 해석할 적에는 역시 '그치다'라고 해석해주어야 한다. 대학혹문의 해당부분을 보면 주희도 이러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
  86. 살(殺)은 강조 표현이다.
  87. 대학 전 3장의 일부를 패러프레이즈한 것이다. 대학 전 3장에서는 16:27에서 다룬 시경 대아 문왕편의 '지(止)'자를 이렇게 해석하였다.
  88. 컬링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좋다.
  89. 맹자 7A:1
  90. 이부분도 맹자 7A:1의 취지와 부합한다.
  91. 예를 들어달라는 주문이다.
  92. 과거 제사를 지낼 적에 제사를 받는 귀신이 빙의할 몸 역할을 맡은 어린아이를 말한다.
  93. 좌여시와 입여재의 출처는 예기 곡례상이다. 이 조목은 14:104와 흡사하니 참조하라.
  94. 통행본 대학장구에서는 '진(盡)'이다. 대학혹문에서는 그대로 '통(通)'이다.
  95.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의 전 3장을 보라. 대학 원문에서 말한바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타인과의 교류할 적의 신(信)이라는 다섯가지 '지극히 선한 지점'에 대한 주석이다.
  96. 군신, 부자, 붕우, 부부, 형제관계 가운데 앞의 세 경우만 전 3장에서 언급했다.
  97. 성화본과 조선정판본은 '무(無)' 여기서는 다른 판본들을 따라 '유'로 해석했다.
  98. 절/차는 골각기(骨角器)를 만드는 과정을 형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큼직큼직하게 자르고 나중 단계에서는 표면을 문질러 연마한다.
  99. 탁/마는 석기(石器)나 옥기(玉器)를 만드는 과정을 형용한 것이다. 역시 처음 단계에서는 큼직큼직하게 쪼개고 나중 단계에서는 표면을 문질러 연마한다.
  100. '닦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15:125를 참조하라.
  101. 대학 전 3장에서 시경 위풍 기욱을 인용한 후 그 가운데 '절차탁마'라는 표현을 풀이하는 부분이다. 이 시는 논어 1:15에서도 인용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102. 춘추시대 위(衛)나라 무공. ?~BCE 758.
  103. 경전에서 시경의 시를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부연할 적에는 시경 본래의 문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그 문구만을 임의로 빌려오는 경우가 있기에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후자와 같은 방식으로 시를 활용하는 경우로 논어 3:8의 '회사후소(繪事後素)'장, 8:3 '전전긍긍(戰戰兢兢)'장, 9:30의 '당체지화(唐棣之華)'장 등이 있다.
  104. 시경 대아 억. 모씨에 따르면 위무공이 주나라 려왕을 풍자하기 위해 지은 시이다.
  105. 시경 기욱편은 총 3 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한 것은 그 중 제 1장이다.
  106. 대학 전 3장에서 시경 기욱편 제 1장의 '잊지 못하네(不可諠兮)' 부분을 이렇게 해설했다.
  107. '절차탁마'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108. 절차탁마는 학문과 자기수양 공부, 곧 '지어지선'을 성취하기 위한 공부의 방법이다. 그러한 노력으로부터 도출되어나오는 결과가 바로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이고, 이러한 훌륭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본 백성들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109. 기욱편을 장별로 분석한 것은 어류 81:59를 참조하라.
  110. 절차탁마의 '절차'를 말한다.
  111. '탁마'를 말한다.
  112. '훤(烜)'은 대학에서는 '훤(喧)'이라고 썼다.
  113. 대학장구 전 3장에서 주희가 쓴 말이다.
  114. 대학 전 3장에서 '슬'자를 '준률'의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115. 범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타인에게 개입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모욕주거나 비판하거나 기세를 꺾고 풀을 죽이는 등이다. 굳센 모습, 전율, 두려움, 장중함, 엄숙함 등은 모두 군대나 학교 등에서 중요한 행사에 참석할 적에 참가자가 취하게 되는 진지하고 엄격한 태도를 가리킨다.
  116. 오늘날 통행본 장자 제물론에서는 '木處, 則惴慄恂懼'라고 하였다. 대의에 큰 지장은 없지만 어쨌든 글자를 잘못 인용한 것이다.
  117. 17:57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
  118. 절차(切磋), 탁마(琢磨), 슬한(瑟僩), 혁훤(赫喧)을 말한다.
  119. 대학 전 3장을 말한다.
  120. 절차탁마, 슬한혁훤을 말한다.
  121. 전 3장의 마지막 구문이다.
  122. 맹자 6A:6에 대한 주희의 주석에서 '공손함이란 경건함이 외면으로 발현한 것이요 경건함이란 공손함이 내면에서 주인이 된 것이다(恭者, 敬之發於外者也, 敬者, 恭之主於中者也)'라고 하였다. '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주인으로 세웠다'라고 번역했다. 어류 6:146부터 150까지에서 이러한 표현이 반복되는데 해당 부분을 번역한 청계판(1998), 소나무판(2001), Bruce 영역판(1922), 성리대전판(권6, 440쪽), 왕샤오농 영역판(2018) 등을 참조할 만하다. 청계판은 '위주로 하다', 소나무판은 '마음속에 중점을 두다', 성리대전판은 '주장하다', Bruce는 '... is subjective', 왕샤오농은 'prevails in the inside'라고 했다.
  123.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한 시로, 본래는 시경 주송 열문편이다. 열문편은 주나라 종묘의 큰 제사 때 쓰이던 음악이다. 여기서 전대의 왕은 주나라 무왕을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모씨) 문왕과 무왕을 말한다고 하기도 한다(정현).
  124. '운운(云云)'은 이 뒷부분의 내용이 본래 있었으나 여정덕이 1270년판(통행본)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략했을 수도 있고 최초 기록자가 생략한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15:105 같은 경우는 여정덕의 생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조목은 어느쪽인지 알 수 없다.
  125. 대학 전 3장에서 '전왕불망'을 풀이하는 부분이다. 군자가 전대의 왕을 잊을 수 없는 까닭은 전대의 왕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126. 역시 전 3장의 말이다. 시경 주송 열문편의 음악을 듣고 있는 제사의 주체들은 주나라의 왕과 제후들이니 모두 문왕과 무왕의 후손들이다. 그들이 문왕과 무왕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첫째로 문무의 현명함 때문이고 둘째로 문무가 그들의 직접적인 조상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현기현'이고 후자가 '친기친'이다.
  127. 주나라 왕실의 전설적인 시조이다.
  128. 이 부분은 번역하기 어렵다. '종'의 객체가 되는 것이 후직이 아니라 후직의 '덕'이므로 '종'은 '높이다'가 되어야 적절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후직의 후손들이 후직을 혈통상의 조상으로 여기고 제사지낸다는 것이므로 '종'을 '종실로 삼다'나 '시조로 삼다' 정도로 풀이하는 것도 적절해 보인다.
  129. 문왕의 아들이 무왕, 그 아들이 성왕, 그 아들이 강왕이다.
  130. 대학 전 3장.
  131. 시경 상송 현조편을 인용한 단락, 시경 소아 면만편을 인용한 단락, 시경 대아 문왕편을 인용한 단락을 말한다. 첫 단락은 주자어류에서 다루지 않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16:26부터 30까지에 해당한다.
  132. 시경 위풍 기욱편을 인용한 단락이다. 16:31에서 43까지에 해당한다.
  133. 시경 주송 열문편을 인용한 단락이다. 어류에서는 16:44와 45까지에 해당한다.
  134. 대학 전 4장의 첫 구문이다. 논어 12:13에 같은 구문이 있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질문 내용이 생략되어있지만 아래 주희의 대답을 보면 그 얼개를 대강 짐작해볼 수 있다.
  135. 쉽게 말해 '거짓말'이다.
  136. 상복의 일종이다.
  137. 공자의 제자
  138. 예기 단궁 하
  139. 대학 전 4장에서 공자의 말을 해설하는 부분이다.
  140. 역시 대학 전 4장에서 공자의 말을 해설하는 부분이다.
  141. 상대방을 두렵게 하여 제압하는 것이다.
  142. '자기(自欺)'는 대학 전 6장 '성의'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개념이다. 대략 풀이하자면, 사람은 본성상 누구나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게 되어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데 실제로 실패했다면 이는 행위주체(agent)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본래의 소명(선한 본성)을 속이고 기만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서 '스스로를 속임'은 그리스 윤리학의 '의지박약(akrasia)'에 준한다.
  143. 본래 '대학'에는 이 부분이 없다. 주희는 대학의 '전' 부분이 '경' 부분을 남김 없이 부연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격물치지'에 관해서 만큼은 설명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본래는 이 부분이 있었으나 경전의 전승 과정에서 망실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자신의 학설에 근거하여 망실된 부분을 보충하는 챕터를 새로 써서 집어넣었으니 그 유명한 '보망(補亡)'장이다.
  144.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등의 의식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력을 '령(靈)' 혹은 '명(明)'이라고 한다. 오늘날 말로 가장 흡사한 것은 아마도 의식(Consciousness)일 것이다.
  145. '지(知)' 역시 그 의미가 령과 비슷하다. 세상을 감각하고 판별하는 능력이다. 주희는 종종 한 글자를 더 붙여서 '지각(知覺)'이라고 부른다. 물론 지가 감각하고 판별하는 대상은 감각기관의 감각대상인 실물들 뿐만아니라 형질이 없는 이치(理)까지 포함한다. 장원태 주희의 지각 개념의 연원 -지 개념과 관련된 논의를 중심으로-(2010)을 참조하라.
  146. 대학 전 5장. 일명 '보망장'
  147. 이 주장은 아래에서의 주희의 논박과 별개로 '명명덕'이 아니라 '명덕'을 '성'과 등치시켜야 말이 된다. '명명덕'은 동명사인데 '성'은 명사이기 때문에 등치시키기 어렵다. 일역판은 명덕과 본성의 관계에 관해서 14:65, 14:115, 5:44, 14:85 등을 비롯하여 한원진의 주자언론동이고 권2의 해당부분(곽신환 역주 기준으로 112쪽) 참조하라고 하고 있다. 한원진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명덕은 마음(心)이라고 결론짓는다.
  148. 실(實)은 실물(實物), 곧 실제로 존재하여 현실상에 임팩트를 끼친다는 뜻도 있고, 우리를 속이는 가짜(假)가 아니라 진짜 진품이라는 뜻도 있다. 과자 봉투를 열어봤는데 70%만 차있으면 실(實)하다고 할 수 없다. 100% 차있어야 실한 것이고 빈 공간(虛)이 있으면 허(虛)한 것이다. 누군가가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고 말한 뒤 실제로 그 물건을 가져와서 자신의 말이 사실(事實)임을 입증하는 것이 실증(實證)이다. 실증할 수 있는 물건만이 확실(確實)하다. 실증을 위해 들고와야 하는 물건은 구체적인 물건이므로 '실'은 구체성과 현실(現實)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희의 생각에 충이나 효 같은 이치들은 가장 현실적이고 실질적이며 구체적이고 확실하며 현실적인 임팩트를 가지는 진짜 이치이다. 우리의 본성은 이런 것으로 실(實)하게 가득차 있다. 반면에 우리의 마음(心)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작동하고 활동하는 존재이며 그 활동에 있어 어떤 도덕적 내용성은 없다. 그러므로 주희는 명덕(이는 주희에게 있어 심과 동의어인데)을 '비어있으나 영명하여 어둡지 않은(虛靈不昧)' 물건이라고 정의했다. '비어있다'는 내용성을 결하고 있다는 뜻이니 심의 작용이나 활동에 본질필연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속성이 붙어있지 않다는 말이다.이처럼 심=명덕=지각활동에 도덕적 내용성이 없음에 대해서는 주자언론동이고(2002) 138쪽을 보라. 98:43을 보면 짐승의 심장을 해부해 보면 모두 속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들어 마음(=심장)은 허(虛)한 물건임을 입증하려 하고 있다. 이는 '비었다'는 말이 도덕심리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물리적인 측면에도 적용되는 표현임을 시사한다. 또한 4:39, 5:14, 5:45를 참조하라.
  149. 위의 주석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의식(Consciousness)의 감각하고 판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20:94를 참조하라.
  150. 부모를 보면 우리 의식 속에서 효심이 솟아오르고 임금을 보면 충심이 솟아오르는데 이와 같이 되도록 미리 정해져있다고 한다면 그 미리 정해진 실질적인 내용이 곧 본성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는 죽을 위기에 처한 어린 동물을 보고 의식의 수면으로 측은해하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걸 보면 이와 같은 형태로 우리의 마음이 미리 인(仁)한 속성으로 세팅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리 정해진 속성을 본성이라고 한다. 5:14, 23을 참조하라.
  151. 마음(心)은 (자신의 본성 그 자체인) 실질적인 도덕원칙들을 헤아리고 구체적인 상황들이 제한하고 있는 조건을 헤아려서 최선의 판단을 내려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행위주체(agent)이다. 5:3을 참조하라.
  152. 통(統)은 포괄하고 아우른다는 뜻도 있고 통솔하고 제어한다는 뜻도 있다. 개념적으로 보면 마음은 본성과 감정을 모두 그 하위범주로 포괄하는 상위범주이다. 실제 작동하는 양상을 보면 우리의 의식은 도덕적 본성에 따라 도덕적이거나 그렇지 못한 감정을 발산하므로 마음이 본성과 감정 양측을 통솔하고 제어한다고 할 수 있다. 5:65를 보라.
  153. 저장과 발산은 5:48에 거의 같은 표현이 보이니 참조하라.
  154. 대학 전 5장. 격물치지에 꾸준히 힘을 쓰면 결국 만사만물의 이치에 모두 통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겉, 속, 정밀, 거침이 각각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16:54부터 57까지에 자세하다. 거칠다는 표현에 대해서만 조금 부연하자면 이는 표면이 거칠거나 성격이 거친 것이 아니라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의미에서의 거침이다. 우리는 그림을 그릴 적에 대개 먼저 대상을 '거칠게' 스케치한 뒤 정밀하게 다듬어나간다.
  155. 자환은 본 조목에서 질문하고 있는 류기보(劉圻父)의 이름이다. '기보'는 자(字).
  156. '致之'는 통행본 대학장구에서 '益窮之'라고 썼다. 14:88을 보라.
  157. 대학장구 전 5장.
  158. 예기 곡례 상. 14:81을 참조하라.
  159. 논어 2:8. 주희의 주석에 의하면 부모를 깊이 사랑하는 자식은 마음 속에 화기(和氣)가 있고, 화기가 있는 자의 얼굴에는 반드시 화색(和色)이 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 효성은 애써 흉내내기 어려우니 '어렵다'고 한 것이다.
  160. 맹자 4A:19. 맹자에 의하면 증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봉양할 적에는 식사 후에 아버지에게 먼저 '여분의 음식은 누구에게 주시렵니까'하고 물었고 아버지가 '여분이 있느냐'고 물으면 반드시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반면에 증자의 아들인 증원이 증자를 봉양할 적에는 누구에게 줄 것인지 묻지 않았고 설령 증자가 묻는대도 '여분이 없다'고 대답했다. 맹자는 증원의 봉양은 아버지의 입과 몸을 봉양한 것이고 증자의 봉양은 아버지의 의향을 봉양한 것이니 두 사람의 수준 차가 크다고 평가했다.
  161. 맹자 4A:1. 14:114를 참조하라.
  162. 이 글자는 이상하다. 현재 수중에 있는 모든 판본에서 일관되게 '근(根)'이라고 하지만 육구연의 평소 화법을 생각해 보면 본(本)이 더 어울린다. 우선은 그대로 둔다.
  163. 주희의 라이벌인 상산 육구연(陸九淵, 1139-1193)이다.
  164. 맹자 7A:15가 원출전이다.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이 양능이요,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 양지이다(孟子曰, 人之所不學而能者, 其良能也, 所不慮而知者, 其良知也).' 양(良)은 좋다는 뜻이다. 사람이 타고난 천연의 좋은 본성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후에 육구연과 왕수인이 중시하면서 이 개념의 특징과 지위가 달라지게 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본고의 범위를 벗어난다. 진래의 '양명 철학'(2003, 전병욱 옮김)의 288쪽을 보라.
  165. 인간이 도덕적일 수 있는 타고난 근거를 주희 같으면 본성(性)이라고 하겠지만 육구연은 꾸준히 본심(本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맹자가 말한 사단지심이야말로 인간의 '본심'이라고 주장한다. 진래의 '송명성리학(1997, 안재호 옮김)'275쪽을 보라. 근심(根心)이라는 표현은 맹자 7A:21에서 유래한다.
  166. '장난치다'는 표현은 상대방이 완전히 잘못 짚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무언가를 어느 정도 알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엇나갔을 때 보통 이 글자를 쓴다. 16:13을 보라.
  167. 주희의 육구연 비판은 어류 권 124의 여러 조목에 자세하니 참조하라.
  168. 주희와 육구연 형제가 여조겸의 중재로 1175년에 아호사에서 만나서 여러 문제를 토론했던 사건을 말한다. 진래의 '주희의 철학'(2002, 이종란 외 옮김) 428쪽, 수징난의 '주자평전'(2015, 김태완역) 상권 698쪽을 참조하라.
  169. 육구연은 자기네 육씨형제의 학문을 쉽고 간단한(易簡) 학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주희의 학문을 지리멸렬(支離)하다고 평가한다. 이주해와 박소정이 완역한 육구연집(2018) 제 3권 317쪽을 보라. 중화서국판 육구연집 기준으로 301쪽이다. 또한 '주자평전'(2015) 상권 708쪽에서 이 시의 전후맥락을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170. 팔괘의 하나로 하늘을 상징한다.
  171. 주역 계사상 제 1장. '건은 쉬움으로 다스리고 곤은 간단함으로 능하다(乾以易知, 坤以簡能).'
  172. 팔괘의 하나로 땅을 상징한다.
  173. 주역 계사상 제 1장. '(그 사람의 마음 속이) 쉬우면 (남들이 그 사람의 속을) 알기 쉽고, (그 사람이 하려는 바가) 간단하면 (남들이 그 사람을) 따르기 쉽다. 알기 쉬우면 친해지고 따르기 쉬우면 (서로 협력하여) 성취가 있다. 친하면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성취가 있으면 크게 될 수 있다.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면 이는 현인의 덕이요 크게 될 수 있으면 이는 현인의 사업이다(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 주희는 앞선 구절에서는 지(知)를 '주관하다'로 풀이하였으나 여기서부터는 같은 글자를 '알다'로 풀이한다. 74:22부터 48까지가 이 부분을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
  174. 주역 계사상 제 5장. '풍부하게 갖추었다는 것은 큰 사업을 말하고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성대한 덕을 말한다(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
  175. 대학의 경문에 따르면 격물이 치지에 선행해야 하는데 주희의 보망장의 표현은 마치 치지가 격물에 선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176. 조선고사본과 조선정판본에서는 '원(元)'이다.
  177. 혹은, '앎이란 무엇보다 먼저(先)'
  178. 격물을 말한다.
  179. 격물의 결과로서 치지를 말한다.
  180. 격물과 치지가 별개의 단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181. 질문자가 언급한 '이미 아는 이치(已知之理)'를 말한다.
  182. 맹자 2A:6.
  183. 하손은 이 조목의 질문자인 임도의 형이다.
  184. 이 문장에서 지(知)가 두 번 쓰였으나 뉘앙스는 다르다. 앞의 앎은 직전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했듯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다. 이 부분을 미루어 확장하여 아직 알지 못하는 이치를 간파하는 행위가 두 번째 지(知)이다.
  185. 이 부분은 통행본과 다르다. 통행본 쪽은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에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衆物之表裏精粗, 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 無不明矣).'라고 쓴다. 반면에 회암집 권 50의 답주순필 제 10서를 비롯하여 어류 16:59, 15:151 등에서는 이 조목과 비슷하게 쓰고 있다. 일역판의 역자들은 본 조목이 통행본 성립 이전의 미완성고를 인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186. 14:163을 참조하라.
  187.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188. 추상적이고 핵심적인 것들이다.
  189. 16:52에서 주희가 육구연을 비판한 내용과 같다.
  190. 대학장구 전 5장. 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191. 대학 전 5장.
  192. 어떤 현상을 그와같이 되게끔 해준 원인이 되는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현상이다. 어떤 법칙이 작용하였기에 사과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는가를 탐구한 끝에 찾아낸 '중력의 법칙' 같은 것이 '소이연지리(所以然之理)'이다. 문법적으로는 대략 'the law(理) by(以) which(所) it is so(然)'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
  193. 중용장구 제 20장에서 주희는 '공통된 도란, 천하고금이 함께 따라가는 길이다(達道者, 天下古今所共由之路).'라고 하였다. 유(由)는 정해진 길이 있을 때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않고 그 길을 따라 쭉 걸어간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맹자 7A:33에서 '유의(由義)'라고 할 때에도 분명 의를 하나의 길로 간주하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는 이미지를 시사하고 있다.
  194. 주희는 누구나 따라야 할 규범인 '도'를 종종 우리 앞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주어진 길로 형상화한다. 반면에 '덕'은 각각의 개체가 모종의 과정을 거쳐 획득한(得) 상태 같은 것이므로 각 개체에 국한된 구체적인 것이지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6:17에서 '도란, 사람들이 다 같이 따라가는 것이요, 덕이란 자신이 홀로 얻은 것이다(道者, 人之所共由, 德者, 己之所獨得).'와 비교해보면 본 조목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겉'은 '도'이고 '속'은 '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34:46에서도 유사한 표현이 보인다.
  195. 그만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이라는 말이다.
  196. 중용 제 12장. 다시 한 번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과 개체가 획득한 상태를 대비하고 있다.
  197. 중용 제 1장. 중용의 본래 맥락에서 이 부분은 자기 자신만 안다고 생각하는 어떤 마음 속의 악한 의념이 남들의 눈에는 명백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성경 구절 가운데 '자기 눈의 대들보' 운운하는 이야기와 같은 취지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이 인용구는 지금 이 조목에 딱 맞지 않다. 번역자의 생각에 이 구문을 본 조목의 흐름에 맞추어 해석하려면 은밀하고 미세한 것은 '속'을 말하고 노출되고 현저한 것은 '겉'을 말한다고 해야 할 듯하다.
  198. 논어 4:5. 밥 한 끼 먹는 시간이다.
  199. 이 역시 중용 1장을 레퍼런스 삼아 이해해야 한다. '도(道)란 것은 잠시도 이탈할 수 없는 것이니, 이탈할 수 있으면 도(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삼가며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한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보지 않는 바에도 삼가며 두려워하는 것은 '속'의 측면이요 '덕'의 측면이요 '은밀하고 미세한' 측면이다.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는 '겉', '도', '노출되고 현저한' 측면이다.
  200. 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201. 텍스트 뿐만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적 전승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말로 훌륭한 전통과 깊은 교양 등에 가깝다.
  202. 방종한 마음을 묶어주는 규범과 규약을 말한다. 16:20의 주석을 참조하라.
  203. 논어(論語) 9:10. 비슷한 표현을 논어 6:25, 12:15에서도 볼 수 있다.
  204. 16:51에서 '뼈와 살에 사무친다(貼骨貼肉處)'고 한 부분을 참조하라.
  205.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일역판은 조선고사본의 몇몇 곳에서 목지(木之)의 기록에 '형인 자승(子升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자승이 목지의 친족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06. 박학과 약례를 말한다. 대체로 전자는 지적이고 후자는 수행적이다.
  207. 논어 3:22, 14:17, 14:18을 보라. 공자는 관중이 인(仁)하냐는 문제에 있어 제한적으로 긍정하고 있다.
  208. 이 표현에 관해서는 16:52의 주석을 참조하라.
  209. 논어 6:5
  210. 맹자 7B:31.
  211. 이는 불인불의를 정밀한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212. 이 표현은 16:54를 참조하라.
  213. 논어 16:11
  214. 대학 전 6장.
  215. '마음의 분별과 취사가 적절'해지는 격물치지의 단계를 말한다.
  216. 온양(醞釀)은 술을 빚기 위해 곡식이나 과일 등을 발효시키는 작업이다. 격물치지의 끝자락에서 성의라는 술이 이미 차근차근 익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217. 통행본 대학장구에는 없는 구절이다. 일역판은 사서찬소(四書纂疏)에서 인용한 '황씨'의 기록을 근거로 이 부분이 대학장구 옛 판본의 문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일역판은 이 황씨가 황간(黃幹)일 수도 있고 황사의(黃士毅)일 수도 있다고 하나 지준호는 '『四書大全』黃氏 · 勉齋黃氏 註解 硏究(2002)'에서 황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18. 이 역시 통행본과는 다르다. 16:54를 보라.
  219. '약'에 관해서는 16:57을 참조하라.
  220. 안경이라는 자를 쓰는 제자가 둘인데, 여기서는 진순을 말한다. 이에 대한 고증은 일역판에 자세하니 참조하라.
  221. 대학장구 전 5장. 이 문구에 대해서는 16:7과 54를 참조하라. 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
  222. 앞서 설명했듯 대학 전 5장은 원문이 이미 망실되었다는 판단 하에 주희가 직접 써서 채워 넣은 것이다.
  223. 경건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주희는 '두려워하는 마음'에 가깝다고 풀이한다. 일을 처리할 적에 경건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처리가 미칠 파장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처신함을 말한다(15:141).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학문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를 거경(居敬) 혹은 지경(持敬)이라고 하고 후자를 궁리(窮理)라고 한다. 거경에 대해서는 16:8의 주석을 참조하라. 궁리는 대학에서의 격물치지 단계를 말한다.
  224. 거경과 궁리가 학문의 두 축인데 어째서 여기서는 궁리에 대해서만 설명하느냐는 질문이다.
  225. 다 했으니 더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주희가 여기서 '이미 다 한 것이다'고 말한 것은 '경'은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소학 단계의 과업이므로 그 일에 대한 설명은 소학용 교재에 다 써놓고 끝내는 것이 맞지 대학용 교재에까지 쓸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226. 대학 전 6장, 격물치지의 단계를 말한다.
  227. 류창(劉敞, 1019-1068). 자는 원보. 문집으로 '공시집(公是集)'이 있으며 현재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있다. 주희가 말한 예기의 문체를 모방한 글은 공시집 권 37에 보인다. 류원보의 글에 대한 주희의 평가는 어류 85:7, 85:10, 139:70을 참조하라.
  228. '이후에(而後)'나 '그...(其)' 처럼 문법적 기능을 하기 위해 놓인 글자를 말한다. 여기서는 성이나 실을 부사취급하라는 말로 보인다. 그 경우 현대어로는 조금 구어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진실로~' 상태로 한다' 정도가 되겠다. 15:139를 참조하라.
  229. 강희년간에 간행된 여유량본 이후 판본들은 모두 이렇게 '요제(要除)'라고 쓰지만 그 이전 판본들은 일관되게 '격물(格物)'이라고 쓴다. 조선정판본과 고문해의의 저자들은 옛 판본에서 '격물'이라고 썼음을 알고 있었으나 '요제'로 쓰는 게 옳다고 판정했다. 일역판은 '요제'로 쓴 판본 가운데 여유량본이 가장 오래되었음을 들어 여유량이 글의 의미를 고려하여 리교(理校)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다만 일역판의 생각대로 여유량이 문헌적 근거 없이 교감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문헌적 근거를 가지고 교감한 것인지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이상 예단할 수 없다. 여기서는 우선 '요제'로 풀이한다.
  230. 가볍고 사소하다는 뜻이다. 可에는 별 뜻이 없다. 비슷한 단어로 미가(微可)나 소가(小可) 등이 있다. 106:26을 보라.
  231. '자(滋)'는 식물의 생장을, '만(蔓)'은 칡넝쿨 같은 것이 무성히 뒤덮고 있는 이미지를 불러 일으킨다. 잡초를 뿌리뽑지 못했을 때 다시 자라나 논밭에 만연해지는 광경을 가지고 병통을 뿌리뽑지 못했을 때의 결말을 형용한 것이다.
  232.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又曰'이 있는데, 있는 쪽이 더 적절하다. 이 조목은 여기서부터 끝까지 부분이 13:90에서 반복된다.
  233.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은 길을 떠올려 보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두 사람이 그 길을 동시에 걸을 수는 없다.
  234. 당시의 공립학교는 행정단위마다 하나씩 있었다. 현에 있는 학교는 현학, 주에 있는 학교는 주학, 부에 있는 학교는 부학이다.
  235. 주학의 교원이다.
  236. 경문을 비롯하여 전 2~3장까지를 말한다. 삼강령을 다루고 있다.
  237. 106:40 쪽에 이 일에 대한 더 자세한 기록이 있으니 참조하라. 모두 주희가 담주(潭州)의 지주 겸 형호남로경략안무사(荊湖南路經略安撫使)로 부임했을 당시 담주 주학에 나아가 강의했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주희는 1193년 12월에 이 직위에 임명되었고 1194년 5월 5일에 부임했다가 8월에 환장각대제(煥章閣待制) 겸 시강(侍講)에 임명되어 임안부(臨安府)로 떠났다. 담주는 오늘날 장사(長沙), 형호남로는 호남(湖南), 임안부는 항주(杭州)이다.
  238. 자신을 기만한다는 것은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충분히 강하지 못하여 실제로는 악을 행하는 경우와 같이 내면의 의지가 나약하여 스스로 올바르다고 받아들인 도덕원칙을 위반하는 일을 말한다. 오늘날 윤리학 용어로 의지박약(Akrasia)이나 도덕적태만(Acedia)에 가깝다. 이러한 의지박약을 하필 '기만'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군주와 간신배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올바른 일을 하려는 내 귓가에 '아이, 귀찮은데 그냥 하지 말까...?'라고 속삭이며 유혹하는 목소리 또한 나 자신이다. 무엇이 옳은지 대강은 알고 있는 군주를 교묘한 말로 기만하여 잘못된 길로 끌고 가는 간신배처럼, 나를 기만한 것은 나 자신이므로 '자신이 자신을 기만한' 셈이 된다. 이찬의 '지행문제의 도덕심리학적 이해(2009)'를 참조하라. 또한 15:115를 참조하라.
  239. 치지 단계에서의 잘못이다.
  240. 성의 단계에서의 잘못이다.
  241. 주희는 종종 앎(知)의 미진함을 의지박약(Akrasia) 혹은 도덕적태만(Acedia)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런 말을 얼핏 들으면 치지와 성의가 서로 독립된 항목처럼 느껴지지 않으므로 이렇게 질문한 것이다. 16:59를 참조하라.
  242. 대학 전 6장. 이 뒤로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남들이 자신을 보기를 자신의 폐부(肺腑)를 보듯이 하는데, 그렇게 숨기고 드러내봤자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 誠於中, 形於外. 故, 君子必愼其獨也.)' 마지막 문장의 '신기독(愼其獨)'이라는 표현은 15:113의 주석을 참조하라.
  243. 제자가 질문한 두 가지 경우 중에 전자의 경우라는 말이다.
  244. 처음부터 잘 모르는 사람들, 불식부지한 사람들이다.
  245. 전자는 도덕적 무지, 후자는 의지박약이다.
  246. 이 조목을 비롯하여 '스스로를 기만함'에 관한 위아래 몇 조목은 이찬(2009)을 참조하라.
  247. 조선고사본, 성화본, 조선정판본에서는 '做'이다. 본 조목을 인용하고 있는 진덕수(眞德秀)의 사서집편(四書集編), 조순손(趙順孫) 사서찬소(四書纂疏)에서도 '주(做)'로 적고 있다. 만력본, 여유량본, 하서린본(류씨전경당본) 등은 '欺'이다. 아마도 만력본을 내면서 이 글자를 교감한 듯하다. 일역판은 이상의 근거를 들어 '做'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경부주 14-6에서 이 조목을 인용하고 있는데 역시 '做'이다. 심경주해총람 상권 541쪽의 논의를 참고할 만하다. 여기서도 일역판과 심경부주를 따라 번역했지만 저본을 따라 번역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도 주석에 남겨두었다.
  248. 부지불식(不知不識)은 그냥 '기만'이라고 부른다. 부지불식(不知不識)하면 차라리 '스스로를 기만한다'고 부르지 않는다(不知不識, 只喚欺, 不知不識, 卻不喚做自欺).
  249. 대학 전 6장.
  250. 조선고사본에서는 '自是'이다. 진덕수의 사서집편에서도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조선고사본과 같다. 의미상 차이는 크지 않다.
  251. 각시투구꽃의 뿌리덩이로 초오(草烏)라고도 한다. 오훼 옆에 붙어있는 작은 덩이가 부자(附子)인데 아코니틴(Aconitine)이라는 알칼로이드 독성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사약의 주 성분으로 독성이 매우 강하지만 양을 조절하여 약용으로도 쓴다.
  252. 이 조목에서 드는 비유들은 14:157, 15:146에도 보인다.
  253. 대학 전6장에서 자기기만이 없는 표리일관의 상태를 자겸(自謙, 혹은 自慊)이라고 한다. 주희는 이 글자를 쾌(快)와 족(足)이라고 풀이한다. 맹자2A:2(그 유명한 호연지기장이다)에도 '행하고서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바가 있으면(行有不慊於心)...'이라는 표현이 있다. 주희는 대학쪽의 '겸'은 통쾌함에 가깝고 맹자쪽의 '겸'은 만족스러움에 가깝다고 풀이한다. 16:83과 87에 자세하니 참조하라.
  254. 대학 전 6장.
  255. 통행본과 다르다. 예전 버전인 것으로 보인다. 16:88, 16:107, 16:108 등을 보면 주희가 이 부분의 주석을 여러차례 수정한 경과를 추적할 수 있다. 본 조목에 대한 일역판의 주석이 자세하니 참조하라.
  256. 이 두 인용구의 출처는 이정외서 2:65. 표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같은 책 5:14도 참조하라.
  257. 이 인용구의 출처는 이정외서 5:14이다. 여기서는 약간 축약된 형태이긴 하나 대의에 지장은 없다.
  258. 조선고사본 쪽에는 이러한 기조로 누군가가 발언한 것을 인용하는 말이 이 조목의 앞부분에 붙어 있다.
  259. 隨는 '하는족족'이다.
  260. 阻隔은 서로 다른 물건들이 만나려는 것을 중간에서 막아서는 것이다. 住는 행위가 계속되는 뉘앙스를 만들어주는 조사이다.
  261. 放敎는 사역표현이다.
  262. 조선고사본 쪽은 이 앞에 매우 긴 설명이 붙어있다. 질문: '이른바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의 경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切謂). 무(毋)는 금지하는 말이요 신독(謹獨)이 금지의 근거가 됩니다. 사람이 배움을 알고 나서는 선악 또한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므로 선을 선하게 여기고도 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그 악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욕망에 순종하는 것을 좋다고(美) 여겨 남 모르게 방종하고,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 즐겁다(樂)는 것을 알지 못하여 열심히 꾸며서 공개된 자리에서 스스로 (선함을) 드러내니, 이는 속에 있는 것이 반드시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 쪽이야 물론 반드시 기만한다는 보장이 없겠거니와 자기 쪽은 이미 (남을 기만하기에 앞서) 진실한 부분이 전혀 없게 됩니다. 이 어찌 '스스로를 기만함'이 아니겠습니까? 대답: 이는 대단히 낭패(狼狽)한 지경이다. (問: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切謂毋者, 禁止之詞, 而謹獨則又所以爲禁止之地. 人既知學, 其於善惡, 亦嘗有以識別之矣. 但知有未至, 故善善而不能進於善, 惡惡而不能去其惡. 見從欲之爲美, 而隂肆於幽隱之間, 未知循理之爲樂, 而勉強矯飾以自著於顯明之處, 殊不知有諸中, 必形諸外. 在人固未必可欺, 而在我者已先無實矣. 豈不爲自欺者乎? 曰: 此是大段狼狽處.
  263. 원나라 류인(劉因)이 편찬한 사서집의정요(四書集義精要)에서 이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 글자의 출입이 조금 있으니 참조하라.
  264. 덮어 숨기는 것이다. 직전 16:78을 참조하라.
  265.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다.
  266. 대학혹문 전 6장.
  267. 31:28에서는 '蓋有'
  268. 31:28에서는 '一箇'
  269. 31:28에서는 '思'가 없음.
  270. 31:28에서는 '也'가 없음.
  271. "不特外面, 有心中欲爲善, 而常有箇不肯底意思, 便是自欺也."는 성화본, 만력본, 여유량본, 류씨전경당본(=하서린본), 조선정판본, 화각본에서 모두 주석으로 처리했다. 성리대전 역시 이 부분을 주석처리했다(완역성리대전 7권 422쪽을 보라). 조선고사본에는 이 조목 자체가 없다. 이 부분은 확실히 "人固有終身爲善而自欺者" 부분을 부연하고 있으므로 주석으로 처리한대도 자연스럽다. 다만 31:28에서 이 부분을 거의 그대로 본문처리하여 반복하고 있고 또 조선고사본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도 본문으로 보고 번역했다.
  272. 대학 전 6장.
  273. 대학 전 6장.
  274. 여기서 '在'는 '있다'가 아니라 단정적인 말투를 표현하는 어조사이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
  275. 장재의 정몽 대심(大心)편에 나온다. 하늘은 지극히 커서 그 바깥(外)이 없으므로 하늘의 마음은 타자를 상정하지 않는다. 즉, 하늘의 눈으로 보면 만물이 자신과 일체이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마음이 지극히 커져서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를 상정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그 마음은 하늘의 마음에 합치한다. 반대로 자기 밖에 자기가 아닌 무언가가 있다고 보는 마음(有外之心)은 아직 만물일체관을 체득하지 못한 것이다. 대학 전 6장의 '스스로 만족스럽다'를 장재의 무외지심으로 설명한 것은 이정유서 11:147 쪽이 오리지널이다.
  276. 맹자 2A:2
  277. 판본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자면 통행본 주자어류는 여정덕이 1263년 1차적으로 출간하고 1270년에 증보해서 출간한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이다. 여정덕에 의하면 그의 대전본이 재료로 삼은 것들로 4록(錄)2류(類)가 있었다고 한다. 책 제목이 'XX어록'으로 끝나는 것은 각각의 기록자가 주희와의 대화를 기록한 것을 별다른 편집 없이 물리적으로 합쳐서 출간한 것이다. 책 제목이 'xx어류'로 끝나는 것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각자 출간한 어록을 모은 뒤 각각의 조목을 주제별로 '헤쳐모여'한 것을 말한다. 어류대전 이전에 어록이 4개 어류가 2개 있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어록이 지주(池州) 출간본인 '지록'이고(1215년 출간) 어류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황사의가 미주(眉州)에서 출간한 '촉류'이다(1219년 출간). 미주가 오늘날 사천성에 있고 사천성은 고대 촉(蜀)나라가 있던 자리이므로 이렇게 부른다. 촉류를 기초로 하여 업데이트된 버전이 휘주본 주자어류, 이른바 '휘류(徽類)'인데(1249-1252), 오늘날 큐슈대학 도서관에 소장중인 조선고사본이 바로 이 휘류의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한편 여기서 '촉록에서는 자겸'이라고 쓴 주석은 아마도 여정덕의 것으로 보이는데 촉록은 '촉류'라고 했어야 한다. 실제로 조선고사본에서는 '유외지심'이 '자겸'이라고 써 있으니 여정덕의 주석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고사본에는 '자겸' 아래에 '지본에서는 유외지심(池本作有外之心)'이라고 주석이 달려있다. 즉, 지본에서 유외지심이라고 쓴 것을 촉류에서 자겸이라고 쓰고 그것을 여정덕이 다시 유외지심으로 되돌린 것이다.
  278. 맹자에 따르면 호연지기(=거대한 기운)란 올바른 일을 오래도록 실천하여 마음 속에 부끄러울 게 없는 사람에게서 뻗어나오는 당당한 기세이다. 반면에 자신의 사적인 욕망이나 현실적인 다른 문제들 때문에 올바른 일을 실천하지 못하고 타협해버리면 그 순간 이 호연지기는 '굶주려'버린다. 어제까지 당당했던 사람도 한 두 번 이렇게 타협하다보면 어느새 기세가 사그라들고 겸연쩍고 옹졸해질 것이니 이런 현상을 '굶주렸다'고 형용한 것이다.
  279. 맹자 2B:2.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부유함은 내 따를 수 없거니와, 저들이 부유함으로 나를 대하면 나는 내 인(仁)으로써 대하며, 저들이 관작(官爵)을 가지고 대하면 나는 내 의(義)를 가지고 대할 것이니, 내 어찌 부족하랴(曾子曰: 晉楚之富, 不可及也, 彼以其富, 我以吾仁, 彼以其爵, 我以吾義, 吾何慊乎哉?)?' 이에 대한 주희의 집주는 다음과 같다. '겸(慊)은 한(恨)스러워하고 적다고 여기는(少) 것이다. 겸(嗛)이라고도 쓰는데, 자서(字書)에서는 '입에 물건을 머금은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겸(慊) 역시 그저 마음에 머금은 것이라는 뜻이니, 통쾌함(快)도 되고 만족함(足)도 되며 한스러워함(恨)도 되고 적다고 여김(少)도 되는 것은 사안에 따라 마음에 머금은 바가 달라서일 뿐이다(慊, 恨也, 少也. 或作嗛, 字書以爲口銜物也. 然則慊亦但爲心有所銜之義, 其爲快爲足爲恨爲少, 則因其事而所銜有不同耳).' 유사한 설명이 대학혹문 전 6장부에도 보인다.
  280. 맹자 2A:2
  281. 원숭이나 다람쥐가 입 안 가득 무언가를 집어넣으면 양쪽 볼이 부풀어오른다. 주희는 '겸(嗛)'은 그런 볼주머니를 말하며 나아가 '머금다'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82. '이후에(而後)'나 '그...(其)' 처럼 문법적 기능을 하기 위해 놓인 글자를 말한다. 여기서는 구체적 내용을 결한 글자라는 말이다.
  283. 자기(自欺)와 자겸(自慊)을 말한다.
  284. 전자가 노력, 후자가 결과라는 뜻이다.
  285.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가도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겸연쩍게 그 불선(不善)함을 숨기고 선(善)함을 드러낸다(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대학 전 6장. 또한 16:70을 참조하라.
  286. 성화본과 조선고사본에서는 '한(很)'이다.
  287. 조선정판본에서는 '구(姤)'이다.
  288. 질문자의 두 번째 질문을 긍정한 것이다.
  289. 성의 공부를 관문으로 비유한 것에 대해서는 15:84부터 91까지를 참조하라.
  290. 치(治)는 징치(懲治)의 뜻이다.
  291. '한질(很疾)'은 서경 주서 주고 11장에서 '질한(疾很)'이라고 썼다. 사납게 미워한다는 뜻이다. '랑(狼)' 역시 흉포하고 잔인하다는 뜻이 있으므로 성화본과 조선고사본 쪽을 따르든 통행본을 따르든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맹자 6A:14에 '랑질(狼疾)'이라는 표현이 있으나 이쪽의 경우 문자 그대로 빠르게 달리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이리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본 조목과 무관하다.
  292. 구(姤)는 여섯 효 가운데 초효만 음이지만 그 음의 기세가 막 태어나 장성하고 있기에 나머지 다섯 양을 위협한다.
  293. 좋지 못한 의지는 방심을 틈타 제멋대로 자라난다는 말이다.
  294. 다른 모든 판본에서는 '위(爲)'이지만 중화서국판에서 문맥에 맞게 리교(理校)한 것이다.
  295. 쪙빙은 얇은 밀가루 피 여러겹을 마치 계란말이처럼 층층이 쌓아서 쪄낸 음식이다. 각 층 사이에 약간의 양념이 들어간다. 오늘날 중국에서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다. 재료와 형태만으로 따지자면 오늘날 한국의 카페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크레이프케잌과 비슷하다. 다만, 주희 당시에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쪙빙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 번역자는 자신이 없다. 일역판에서는 '만두(マントウ)'라고 번역했는데 맞지 않다고 본다. 15:112에서 동일한 비유를 들고 있으니 참조하라.
  296.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장구나 혹문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장구의 옛 판본으로 보인다. 16:74를 참조하라.
  297. 다른 문헌적 근거는 전무하지만 이치상 이 글자는 본래 '시(是)'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직전 구문의 '非是...了, 方能...也'가 여기서 반복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98. '불애(不愛)'는 본 조목 마지막 부분의 '불원(不願)'이나 중간 즈음의 '지원(志願)'과 연결지어 해석해야 한다.
  299. 회암집 권 63의 답손경보 제 6서를 말한다.
  300. A를 완수하면 B가 된다는 구조인데, A와 B 사이에 시간차가 있어서 양자간의 연결이 우연적이고 느슨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301. 대학 전 6장.
  302. 대학에서 '차지위자겸(此之謂自慊)'이라고 했을 때의 '차(此)'가 가리키는 대상이 바로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이라는 말이다.
  303. A의 완수가 그 즉시 B를 의미한다. 양자간의 연결이 필연적이고 긴밀하다는 표현이다.
  304. 배중률(排中律)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중간에 걸친 영역 없이 양자가 깔끔하게 대치한다는 말이다.
  305. 답손경보 제6서에서도 타인의 칭찬을 갈구하는 태도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손경보가 보내온 편지에 그러한 혐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06.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15:113을 참조하라.
  307. 성화본에서는 '성의(誠意)'
  308. 격물치지로 90% 완수되었다 하더라도 성의라는 위쪽 단계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일역판에서는 '상면(上面)'을 위쪽 단계가 아니라 '성의단계에서(誠意上面)'와 같은 뜻으로 번역했다.
  309. 대학 경문.
  310. 주역 건괘 구삼효에서 '이를 곳을 알아 이르르고 ... 맺을 곳을 알아 매조지한다(知至至之 ... 知終終之)'라는 말로 각각 자신의 덕을 진전시키는 공부(進德)와 올바른 지점에서 떠나지 않고 자리를 고수하는 공부(居業)를 표현했다. 69:55를 보라.
  311. 논어 12:1에서 공자가 안연에게 극기복례와 비례물시/청/언/동을 가르치자 안연이 답한 말이다. 선생의 말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312. 논어 8:3에서 증자가 제자들에게 남긴 유훈의 일부이다.
  313. 안자와 증자는 앎이 지극해진 뒤에도 추가로 이상과 같은 '신독'의 실천을 통해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완수했다는 뜻이다.
  314. '방심(放心)'에 대해서는 16:8의 주석을 참조하라.
  315. 서경(書經) 주서(周書) 다방(多方)편 제 17장. 이 뒷부분은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惟狂克念作聖).'이다. 15:107을 보라.
  316. 일종의 명상법이다. 몸가짐을 단정하게 가다듬고 마음을 수렵집중하여 각성시키는 것이다.
  317. '제철(提掇)'은 '제시(提撕)'와 같다. 멍때리는 사람의 귀를 잡아 끌어 각성시키는 것이 제시(提撕)이다. 이정(二程) 등 여러 도학자들이 거경(居敬) 공부를 설명할 적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318. 유심히 잘 살펴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319. 이 부분은 문장은 조합이 좋지 않다. '공(恐)'은 가능성을, '불능무(不能無)'는 필연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니 한 문장 안에 섞이기 어렵다. 일단은 이렇게 풀어둔다.
  320. 막아 지키는 것이다.
  321. 여기서 '재(在)'는 단정하는 느낌의 어기사이다. '있다'는 '유(有)'를 번역한 것이다. '불착(不著)'이 동사 뒤에 보조용언으로 붙으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강조표현이 된다.
  322. 주희는 기본적으로 도덕원칙에 대하여 골수에 사무치는 완전한 앎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인격도야 차원에서나 선행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어떤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꺼려한다. 하지만 그러한 입장을 강하게 견지해버리면 대학의 팔조목 공부는 '치지' 단계에서 사실상 끝나버리고 이후 여섯 조목은 모두 췌언이 되어버린다. 철학자로서의 주희라면 몰라도 경학자로서의 주희는 이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때는 앎이 지극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다가도 다른 때에는 앎이 지극해진 뒤에도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며 갈팡질팡한다.
  323. 세미한 부분이란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 곧 '독(獨)'을 말한다.
  324. 앞서 말한 '세미한 부분', '독'과 동일한 지점이다.
  325. 대학 전6장에서 인용한 증자의 말이다.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무섭구나(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자기 내심의 사특한 생각은 자기가 보기엔 매우 은미하여 남에게 보일 것 같지 않으나 타인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나 명백히 보인다는 뜻이다. '신독(愼獨)'을 설명하는 구문이다.
  326. 16:89에 유사한 표현이 보인다.
  327. 나머지 20%이다. 관리미흡에 관해서는 16:91과 92를 보라.
  328. 치지, 성의, 신독의 관계에 대해서는 16:90부터 93까지의 설명을 참조하라.
  329. 내용이 대체로 16:93과 다르지 않다.
  330. 대학 전 6장에서 '필신기독' 네 자가 두 차례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자겸'에 뒤따라 나오고 다음에는 '자기'에 뒤따라 나오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331. 주희는 불순물 없는 진실성에 관한 이치를 종종 '실리'라고 표현한다. 21:19에서 충신(忠信)을 실리라고 하고 21:28에서 충(忠)과 성(誠)을 실리라고 부르고 있으니 참조하라.
  332. 이 문장은 크게 '이미(已是) ... 또다른(又是)...'로 짜여져 있다. '이시'로 묶이는 부분은 질문자와 주희가 동의하는 곳이고 '우시' 부분이 바로 주희가 반론하는 지점이다.
  333. 거스를 수 없는 무거운 기세로 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말한다.
  334. 주희의 대답으로부터 질문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질문자는 아마도 격물치지의 공부를 완수한 학습자가 이 단계에 이르러 추가로 힘써 노력해야 한다거나 혹여 잘못될까 계속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거나 하는 아이디어를 거부한 듯하다. 주자어류고문해의도 비슷하게 추측하고 있다.
  335. '무간(無間)'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틈이 없음을 말한다. 시간적으로 틈이 없다는 것은 일정 시간 동안 어떤 일이나 상태가 지속될 때에 중간에 끊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공간적으로 틈이 없는 경우는 말 그대로 벌어진 간격이 없다는 말이다. 대개는 시간적 의미로 쓰이나 여기서는 앞선 몇 조목에서 공간적인 간격 속에 삿된 생각이 잠복해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공간적인 은유로 해석했다. 정리하자면, 은미한 틈새에 삿된 생각이 잠복해있지 않기 때문에 겉과 속, 표면과 이면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336. 전경당본의 편집자 하서린은 이 조목이 불완전하다고 판단했다. '재(在)'자의 경우는 확실히 처리하기 난감하지만 번역자는 조목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337. 통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
  338. 조선고사본에는 '자(字)' 앞에 '저(底)'가 있어서 문세가 더 부드럽다.
  339. 16:54부터 60까지 이 표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340. 이 네 글자는 대학장구 전 5장, 곧 보망장의 구문이다. 그러므로 경전의 말이 아니라 주희가 '쓴' 표현이다.
  341. 허령불매에 관해서는 16:51을 참조하라.
  342. 거의 모든 판본에서 '論揜其不善以下'라고 쓴 것을 중화서국판에서 이렇게 교감했다.
  343. 악한 의지를 말한다.
  344. 다시말해, 고의로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과실로 저지르는 짓이라는 것이다. 주희는 자기기만(즉, 의지박약으로 인한 도덕행위 실패 현상)에 대하여 자주 '그걸 어찌할 수 없어서...(不柰何他)'라고 말한다. 16:108을 보라.
  345. 이 마음을 말한다.
  346. 이 구문에 대해서는 직전 16:100조를 참조하라.
  347. 직전 16:101조를 참조하라.
  348. '제시(提撕)'에 관해서는 16:7을 참조하라.
  349. '상성성(常惺惺)'은 이정의 제자 사량좌(謝良佐)가 '경(敬)' 공부를 해설할 때 사용했던 표현으로 늘 또랑또랑하게 깨어있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350. 실제로 대학 전6장을 보면 소인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 불선한 짓을 하다가 군자를 만나면 비로소 불선을 감추고 선을 드러내는데 남들의 눈에는 그 속이 뻔히 보인다는 구문에 바로 이어서 '이것을 일러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라고 말하고 있다. 문세대로 읽어 보면 질문자의 지적이 타당하다.
  351. 어느쪽으로든 순도가 100%가 되는 것이 '성'이니 선이나 악처럼 의지의 방향성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352. 마치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던 것처럼 주희도 기본적으로 선이 아닌 것을 악으로 본다. 선은 표준(standard)이며, 이 표준에 적중(中節)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벗어나서(過不及) 실패한 케이스들이 바로 악이다. 다만 주희는 경학적 난제 앞에서 종종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타협하곤 하는데, 여기서도 경학적으로 원만한 해석을 제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실유기악(實有其惡)'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김철호,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3.
  353. 성화본, 만력본, 조선정판본에서는 人을 又로 썼다. 정판본의 교감주에서는 이본에서 人이라고 썼다고 기록했고 주자어류고문해의는 이 교감주를 받아들였다.
  354. 맹자 7B:31.
  355. 본래 장자(莊子) 칙양(則陽)편에 나오는 표현이다.
  356. '종'은 곡식의 양을 재는 그릇으로 용량의 단위로 쓰였다. 춘추좌씨전에 대한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도량형을 기준으로 1종은 6곡(斛)4두(斗), 즉 여섯 섬 네 말이다. 한 섬은 열 말, 한 말이 열 되(升)인데, 한 되의 용량은 시대와 장소마다 다르다. 주희가 살았던 송대를 기준으로 하면 쌀 한 되가 592g 가량이므로 1종은 쌀 379kg이다. 송대에 검소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쌀 소비량이 하루에 한 되 정도였으므로, 640되(1종)의 곡식은 한 사람의 생활임금 정도가 된다. 그러므로 주희에게 만종의 봉록이란 대략 사람 1만명을 고용해서 부릴 수 있는 정도의 액수로 느껴졌을 것이다. 조복현, 중국 송대 가계수입과 생활비 (上), 신서원, 2016. 40쪽을 보라. 참고로 '만종'의 봉록과 의불의(義不義)를 연결시켜 설명하는 것은 맹자(孟子)에 빈출하는 화법이다. 맹자 2B:10을 보라.
  357. 맹자 2A:6. 글자의 출입이 많으니 인용이라기 보다는 맹자의 해당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358. 대학장구 전6장.
  359. 일부(一副)는 여러 다른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는 한 세트, 한 벌을 말한다. 사람의 외양에 대해서 쓰일 경우 외양 판단의 기준이 되는 여러 요소들의 종합이다. 직역하자면 '외모요소 한 세트...'가 될 것이나 여기서는 조금 더 부드럽게 의역했다. 당(當)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미우라구니오(2012, 410쪽)는 접미어일 것으로 추측했다.
  360. 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은 '讀書'를 '初讀'으로 썼다. 여기서는 초독으로 보고 번역했다.
  361. 의지(意)를 말한다.
  362. 통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 16:74를 참조하라.
  363. 이 부분은 대학혹문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용혹문 제 20장부분을 참조하라.
  364. 역시 의지(意)를 말한다.
  365. 질문자가 인용한 구주에서 '그 앎이 절실하지 못하면(知之不切)'이라고 한 부분이 치지와 관련된 지점이다.
  366. 유심히 잘 살펴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유사한 표현이 16:91, 93 등에 있으니 참고하라.
  367. 질문자가 인용한 구본 주석이다.
  368. 후자를 말한다. 전자는 이야기의 스케일이 섬세하고 미묘하고 후자는 단순하며 노골적이다.
  369. 질문자가 인용한 개정본 주석이다.
  370. 관의 허락 없이 사적으로 금속을 녹여 동전을 주조하는 행위를 말한다.
  371. 송대의 지폐를 '회자(會子)'라고 한다. 정해진 시일 안에 가져오면 금속화폐로 교환해준다는 약속이 적힌 종이문서인데,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지폐라기보다는 어음에 가깝다. 관회(官會)는 관에서 발행한 이러한 지폐를 말한다.
  372. 조선고사본과 조선정판본에서는 狼을 郎으로 썼다.
  373. 랑당(狼當) 혹은 랑당(郞當)은 곤궁하고 쇠잔해짐, 퇴락하고 영락함, 무능력함, 낭패함 등의 의미가 있다. 주자어류사휘연구 213쪽, 669쪽을 보라.
  374. 조선고사본은 '欺' 뒤에 '在'가 있다.
  375. 류씨 전경당본의 편집자 하서린이 이와같이 교감한 것이다. 다른 모든 판본에서는 '잠/렴(賺)'이다.
  376.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却'자가 있다.
  377. 세밀함이란 심리상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악의를 박멸하는 일의 미세한 스케일을 말한다. 거친 부분이란 사전을 주조하는 등의 단순하고 노골적인 악행을 말한다.
  378. 전경당본의 교감에 따라 번역하면 말이 잘 통한다. 하지만 여전히 왜 애초에 다른 모든 판본에서 잠(賺)이라고 썼는지, 그리고 그것을 교감한 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심경주해총람 상권 545-547쪽에서 이 글자를 여러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번역자가 보기에는 모두 납득하기 어렵다. 번역자는 賺이 자겸(自慊)이나 겸(謙)의 오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번역은 '자겸을 아래쪽 ...에 붙여서 보아버렸기 때문에'처럼 되는데, 대학 전6장 본문의 구조를 감안하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79. 묘사하고 있는 경지가 너무도 깨끗하고 완벽하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일역본은 논의의 진행이 너무 성급(性急)하다고 해석했는데 일리가 있다.
  380. 조선고사본은 '使'를 '便'으로 썼다. 재질문에서 '則無待於自欺'라고 했으니 여기서도 '便無待於自欺'라고 써야 말이 잘 통한다. 아래쪽에서 주희가 이 부분을 재삼 설명할 적에도 '便無待於自欺矣'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번역은 조선고사본을 따랐다.
  381. 여유량본은 '疊'을 '환(圜)'으로 썼다.
  382. 장내에 쌓인 차가운 기운을 말한다.
  383. 주희의 이 답변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질문자의 지적처럼 대학 본문에서는 분명 금지하는 말을 썼다. 그런데 금지하는 말이 담고 있는 '억지로 애써 틀어막는(勉强禁止)' 듯한 느낌을 회피하고 자연스러운 경지로서의 '자기 속임 없음'을 그려내려다 보니 금지를 자연스러운 금지와 억지 금지로 나누어 대립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난맥상 때문인지 통행본 대학장구에서는 자연스러운 금지라는 설명을 포기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틀어막는 쪽으로 주석의 방향이 바뀌었다. 또, 앞서 구주를 비판할 때 '치지'의 요소가 불필요하게 들어있다고 지적했으면서 이 부분의 첫 문장에서는 도리어 '實知其理之當然'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앞뒤가 상충한다.
  384. 악한 의지를 말한다.
  385. 고의가 아니라 과실이라는 뜻이다. 16:101에서 유사하게 표현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386. 기발생한 악한 의지를 말한다.
  387. 대학 8조목 공부에 있어서 '원두(源頭)'가 되는 지점은 격물치지의 단계이다. 15:96, 97을 참조하라.
  388. 악의를 말한다
  389.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을 본문으로 처리했다.
  390. 분수(分數)는 비율이다. 예컨대 24K의 금 함량이 100%라면 18K의 금 함량은 75%이다.
  391. '담(淡)'은 농도상의 희박함이다. 여기서는 금 함량이 낮다는 말이다.
  392. 순자(荀子) 해폐편(解蔽篇). 16:86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인용하고 있다.
  393. 이 조목 최초 질문자인 이경자를 말한다.
  394. 선을 향한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게 되는 일을 말한다.
  395. 격물치지의 공부가 난숙해진 후에는
  396. 악한 의지가 섞이지 않아서
  397. 무리하게 억누를 필요가
  398. 여전히 과일과 껍질의 비유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이와 같이 의역했다. 이경자는 도덕실천에 있어서의 정서적 추동력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주희의 진단은 도덕원리에 대한 인식의 철저성 쪽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399. 역시 격물치지를 말한다.
  400. 중용장구 제 20장에 유사한 언급이 보인다.
  401. 근사록 4:21. 원출전은 이정유서 2下:18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 속에 늘 두 사람이 있는 듯하여 선을 행하려 하면 악이 그 틈새에 끼어들고 불선을 행하려 하면 또 수오지심이란 것이 있는 듯하지만 본래 두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선과 악이 교전한다는 증거이다.(有人胸中常若有兩人焉, 欲爲善, 如有惡以爲之間, 欲爲不善, 又若有羞惡之心者. 本無二人, 此正交戰之驗也.)
  402. '괴(壞)'는 '무너진다' 보다는 현대 중국어 '화이(坏)'에 가깝다. 그르치다, 나쁘다, 망가지다, 망치다, 썩다 등을 의미한다.
  403.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12연기를 말한다.
  404. 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 '12 인연은 모두 한 마음이 지은 것이다(十二因緣皆一心作)'라고 했다.
  405. 끊임 없이 서로 이어져 흐르는 상념을 말한다.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 권 1. '그러나 여러 지위에서 지혜와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확고한 말씀의 뜻을 분별하고, 가장 훌륭하고 끝없는 선근을 성숙시키며, 자기 마음에 나타난 망상의 허위를 벗어나 숲에 조용히 앉아서 상ㆍ중ㆍ하의 수행을 닦으면, 자기 마음의 망상이 상속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餘地相智慧, 巧便分別, 決斷句義. 最勝無邊善根成熟, 離自心現妄想虛僞, 宴坐山林, 下中上修, 能見自心妄想流注.)' 번역은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통합대장경 서비스에서 재인용. 어류 21:13, 72:115에서도 유주상을 언급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406. 위산영우 (771-853)를 말한다.
  407. 이 말은 위산어록, 조당집 등 다른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408. '혁(嚇)'은 협박조로 사기치는 행위를 말한다. 좋지 않은 물건을 강매하는 광경을 떠올리면 적당하다.
  409. 격물치지라는 '원두처'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했다는 말이다.
  410. '첩(貼)'은 상응하다, 타당하다, 적합하다, 온당하다 등의 뜻이 있다. 현대 중국어 '티에(帖)', '투어티에(妥帖)'에 가깝다.
  411. 어떤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희가 16:108에서 이러한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무리하게 강제하는' 것이라며 거부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그의 입장이 정 반대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16:91의 주석에서 이미 한 번 언급했듯, 주희는 격물치지 이후의 단계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것들을 모두 격물치지라는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의 자연스러운 귀결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역시도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공부의 현장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갈팡질팡한다. 16:108에서 전자의 입장이었다면 본 조목에서는 후자의 입장이 된 것이다. 16:120에서도 이 부분을 회고하며 이러한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412. 대학 전 6장을 말한다.
  413. 탄연(坦然)과 굴곡(屈曲)은 모두 문장을 길에 비유한 것이다. 탄연은 평평하고 고른 길이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모습이고 굴곡은 커브길이다.
  414. 16:108에서 질문자 이경자가 처음 인용하는 주희의 주석 내용이 본 조목에서의 '예전 설'이다. 108을 보면 이경자는 자기기만 사태에 있어 각자의 고의성을, 주희는 불가피성을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예전 설에서 말한 것 같은 사람도...'는 불가피하게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 이들을 말한다.
  415. 16:106부터 여기까지 자기기만에 대해 논한 내용은 한원진의 주자언론동이고(곽신환역) 147-156쪽에서 자세히 논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416. 조선고사본, 성화본, 조선정판본에서는 '常'을 '得'으로 썼다. 통행본 대학장구에서 '항상 펴지고 편안하다(常舒泰)'고 했으니 '상'으로 교감하는 것에 근거가 없지는 않으나 '득'이라고 써서 안 될 것은 없다. 여기서는 '득'으로 처리했다.
  417. 모두 길로 비유한 것이다. 마음은 본래 폭이 넓고 잘 정비된 길인데 나쁜 생각이 섞이면 비좁고 중간중간 끊어지고 막히는 길이 되어버린다.
  418. 이 조목은 어류 97:88과 매우 흡사하다.
  419. 정이(程頤, 1033-1107). 호는 이천선생. 정씨 형제 가운데 동생 쪽이다.
  420. 윤돈(尹焞, 1071-1142). 자는 화정(和靖). 정씨 형제의 이름난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421. 97:88에서는 이 자리에 '만(瞞, 속이다)'자를 썼다. '만'은 진상을 덮어서 남이 알지 못하게 하는 느낌에 가깝다면 '혁'은 위협하고 윽박질러 속이는 느낌에 가깝다. 주자어류사휘연구 583쪽을 보라.
  422. 이 이야기는 이정집, 화정집에 보이지 않는다.
  423. 이 이야기의 원출전은 이정외서 12:68와 12:115이다.
  424. 윤화정의 말에는 의식적으로 안배하는 기색이 남아있다.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표현 쪽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 '불승(不勝)'은 '불감당(不堪當, 감당하지 못함)'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거나 그 양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425. 대학장구 전 6장. 주희의 주석에 있는 구문이다.
  426. '추(樞)'는 지도리이다. 여닫는 문이 회전하는 중심축, 혹은 그런 중심축이 되는 기둥을 세우는 움푹 파인 공간을 말한다.
  427. 이 부분은 통행본 대학장구에 보이지 않는다.
  428. 일역판은 '양두(兩頭)'를 한 단어로, '절정(截定)'을 또 한 단어로 읽었는데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양두절은 아마도 양두(兩頭)와 양절(兩截)이 합쳐진 형태일 것이다.
  429. 두 영역은 '지지'와 '성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 군자와 소인, 몽매함과 깨어남 따위를 말한다. 15:84부터 91까지 이와 흡사한 메타포를 구사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430. 군자의 길을 말한다.
  431. 정심에서 평천하까지 다섯 단계를 말한다.
  432. 제자 서우(徐㝢)의 자이다.
  433. 4~5라고 하면 4보다는 5에 가깝다. 어류에서 이처럼 두 숫자를 연용할 적에는 뒤쪽 숫자가 진짜인 경우가 많다. 일역판의 주석에서 이 점을 잘 지적해 냈다.
  434. 다섯 항목이란 정심부터 평천하까지를 말한다.
  435. 몸과 마음을 돌보고 관리하는 일이란 '정심'과 '수신'의 단계를 말한 것이다.
  436. 대학 성의장에 대한 주석은 매우 자주 바뀌었으므로 '구설'이라고만 하면 어떤 설인지 단정할 수 없다. 16:74, 88, 107, 108, 109, 110에서 주장한 것들 모두가 일종의 '예전 설'이기 때문이다. 고문해의에서는 예기정의의 주석을 말한다고 했지만 의심스럽다.
  437. 성의라는 단계가 격물치지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측면보다는 격물치지에 이어서 추가로 애써 노력해야 할 공부의 항목이라는 말이다. 16:108에서의 입장이 자연스러운 귀결에 가까웠다면 16:110에서는 애써 노력하는 항목 쪽에 가깝다. 이러한 특징을 감안하면 이 조목에서 말하는 '예전 설'은 16:108에서의 입장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438. 중용 제 20장.
  439. 주희는 대체로 팔조목의 순서상 먼저 나오는 것들을 전면이라고 부른다. 다만 여기서는 그렇게 보면 해석이 어려워진다. 15:85, 86, 118, 124, 152 등 여러 곳에서 주희는 팔조목은 나중으로 갈 수록 일 자체는 크고 많아진다고 말한다. 격물치지와 같은 초반 단계들은 세밀하지만 일의 스케일 자체는 작다. 반면에 치국평천하와 같은 후반 단계들은 정밀성은 떨어져도 각 사안의 규모와 그 적용되는 범위의 폭은 초반 단계들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다. 따라서 이 조목에서의 '전면'은 성의 단계를 마친 독자의 목전에 놓인 단계들, 곧 정심부터 평천하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목전에 놓인 단계들은 가면 갈수록 일이 많아져서 제가도 많지만 치국은 더 많고 평천하는 더 많다.
  440. '수(修)'는 대개 '닦다'라고 번역하는데, 어떤 기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컨디션을 올리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옷을 수선(修繕)하거나 차량을 수리(修理)한다고 할때도 이 '수'자를 쓴다. 늘 안경을 닦아 깨끗함을 유지하고 화장실의 거울을 닦고 거실 창문을 닦는 것도 '닦다'이다. '정(正)'은 물건이 똑바로 서서 중심을 잘 잡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정'의 반대말은 '편의(偏倚, 치우침)'이다.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441. '락(落)'은 '락(絡)'과 통한다. 줄로 꿰어 연결한다는 의미이다. '삭(索)'은 새끼줄이다. 송대의 동전 1개가 1 문(文)인데, 규모가 있는 거래에서는 1천개의 동전을 새끼줄로 연결하여 묶어서 사용했다. 이 묶음이 1 관(貫)이다. 일락색(一落索)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이미지는 이런 동전꿰미에 가까울 것이다.
  442. 이 조목은 15:122와 매우 흡사하니 참조하라.
  443. 여기서 말한 개정판이 통행본인지는 알 수 없다.
  444. 분노(忿懥), 두려움(恐懼), 선호함(好樂), 걱정함(憂患)을 말한다.
  445. 통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
  446. 다음 조목에 흡사한 표현이 나온다.
  447. 주희에 의하면 이 단계에서는 이미 의지가 진실하기 때문에 설령 마음이 올바름을 잃고 흔들린다 하더라도 그걸 '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누군가의 마음에 악함이 있다면 그건 '성의'의 단계에서 잘못된 것이지 '정심'의 단계에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448. 주희의 대답 방향으로 보건대 질문자는 정심이 성의에 자동적으로 수반하는 것처럼 설명한 듯하다.
  449. 주희의 표준적인 정의에 의하면 의(意)는 심에서 틔워나온 것(心之所發)이다. 그러므로 심이 먼저고 의가 나중이며 심이 크고 의가 작다고 할 수 있다. 15:113을 참조하라.
  450. 의지가 마음을 견인한다는 식의 설명은 15:116에도 보인다.
  451. '호란(胡亂)'은 어떤 행위를 조리없이 임의로 수행하는 태도를 말한다.
  452. '쾌(快)'는 전 6장의 '자겸(自慊)'을 풀이한 말이다. 온전히 순도 높게 선을 추구하여 실천했을 때 찾아오는 강하고 뿌듯한 자기만족감, 통쾌하고 상쾌한 기분을 말한다.
  453. 주희의 삼남인 주재(朱在)이다.
  454. 경지는 15:124에서도 성의와 정심에 관하여 질문하는데, 그 역시 이쪽과 동일하게 하손의 기록이다. 15:124쪽은 구체적인 질문의 내용이 누락되어 있다.
  455. 16:95와111에서 성의장(전 6장)을 '필신기독'을 기준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456. 앞의 넷은 전 7장, 뒤의 둘은 전 8장에서 거론하는 감정이다.
  457. 논어 4:4
  458. '조존(操存)'은 일종의 명상 수련이다. 15:88, 16:20 등을 참조하라.
  459. 위쪽의 '조존'과 같은 의미이다. 9:19, 119:40 등을 참조하라.
  460. 아마도 이정유서 19:5를 인용한 듯하다. '배우는 이가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거든 모름지기 자신의 심지를 붙잡아야 한다(學者未到不動處, 須是執持其志)'
  461. 이러한 논조는 16:127에서 경지가 성의와 정심을 각각 내면과 외면에서의 공부로 배당한 것과 비슷하다.
  462. 중용 제 1장. '중절(中節)'은 도리, 곧 각각의 상황이 요구하는 도덕 규범에 꼭 맞는 종류의 감정을 꼭 맞는 만큼만 발출한 경우를 말한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과녁의 한 가운데 적중했다는 의미이다.
  463. 조선고사본에는 본 조목의 머리에 '재정심자비시무(在正心者非是無)' 일곱 글자가 더 있다.
  464. 분노(忿懥), 두려움(恐懼), 선호함(好樂), 걱정함(憂患)을 말한다.
  465. 논어 6:2
  466. 주희를 비롯한 전통시대 사상가들은 자기수양에 관한 언어적 표현들의 재귀성(Reflexivity)을 종종 단호하게 비판한다. 회암집 권 67의 관심설(觀心說)을 참조하라. 주희에 앞서 불교인들, 예컨대 영명 연수(永明 延壽, 904-975)가 같은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다음을 참조하라. 존 메이컴 편집, 주희 철학사상의 불교적 뿌리(2024). 162-174쪽.
  467. '간직하다(存)'는 16:130의 '조존'이나 '집지'와 같은 의미이다.
  468. 하서린의 전경당본 이전의 모든 판본에서 두 번째 '常'은 '又'이다. 여기서는 다른 판본들 쪽을 따르겠다.
  469. '달(撻)'은 채찍질이라는 뜻이다.
  470. 여기서 '추(粗)'를 '거칠다'라고 번역하면 폭력적이라는 의미로 느껴져 적절치 않다. 추는 정밀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471. 대학 전 7장의 본문에서는 '신(身)'이다. 정이의 교감에 따라 주희는 이 글자를 '심(心)'으로 고쳐 읽는다. 대학장구의 해당부분을 참조하라.
  472. 이런 내용에 가장 가까운 문구는 이정유서 19:5이다. 의미는 비슷하나 문구는 사뭇 다르니 주의하라.
  473. 논어 6:2를 거론한 것이다. 16:135를 보라.
  474. 다른 모든 판본에서 '루(樓)'는 '반(柈)'으로 썼다. 여유량본(강희본)에서 교감한 이후 류씨 전경당본(하서린본)에서 받아들여 지금에 이르렀다. 이 경우 번역이 상당히 달라지므로 아래 주석에서 두 가지 번역을 다 제시하도록 하겠다.
  475. 여유량본을 따르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이어서 건물 안쪽을 거론하며 말함: 만약 분노가 여기에 있으면 저쪽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因擧樓中: “果怒在此, 不可遷之於彼.”)
  476. 16:139의 주석을 참조하라.
  477. 축자역하자면 한(一) 개(量)의 저울(稱)과 같은 형태일 것이다.
  478. 다른 모든 판본에서 '용(用)'이나 전경당본부터 '지(至)'로 교감했다. 문맥상 타당하므로 전경당본을 따라 번역하였다.
  479. 감정을 말한다.
  480. 밀려오는 주문을 정확히 처리해서 각각의 손님이 제 몫을 받아 제 자리에 앉게 만들어 주는 카페 알바생의 경우와 같다.
  481. 싹이 위쪽으로도 나고 아래쪽으로도 났다는 말인 듯하다.
  482. 반대로 1. 화를 낼 만한 일이 있어서 화를 내는 참인데 2. 기뻐할 만한 일이 생길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483. 거울이 비어있다는 말은, 요즘식으로 치면, 카메라에 필터가 없다는 뜻과 같다. 아름다운 사물이 찾아오면 아름다운 형태 그대로 보여주고 큰 사물이 오면 큰 형태 그대로 보여준다. 미리 정해진 견해나 방향성 없이 마주하는 사물에 따라 그 사물의 형태를 출력하여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거울의 비움이다. 저울의 평평함 역시 같은 취지의 비유이다. '자신이 관여함이 없다'는 것은 이 메카니즘이 무정하고 자연스러워 사심이 개입할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16:143에서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484. 오늘날 복건성 장주. 주희는 1190년 4월부터 1191년 2월까지 장주 지주직을 맡았다.
  485. '친절'은 피부에 와닿게 아는 것이다. 바퀴달린 의자를 딛고 섰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져본 사람은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친근하고 절실히 안다.
  486. 이 일은 다음 145조에서 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일역판은 128:25에서 묘사된 사안이 본 조목에서 언급한 사안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번역자가 보기에 128:25는 106:27에서 기백건의 소송을 처리한 경험과 더 비슷해 보인다. 주희의 장주시절 경험에 관해서는 106:22부터 39까지가 자세하다. 수징난의 주자평전 제 18장도 이 시점을 다루고 있어서 유익하다. 그밖에, 어류 3:43에서는 장주에서 처리한 어떤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본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487. 제자 황탁(黃卓)의 자가 선지이다.
  488. 고식(姑息)은 눈 앞의 편안함만 추구하는 것, 곧 기강이 풀린 것이다. 구차(苟且)는 근시안적인 방침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려는 무사안일주의를 말한다.
  489. 주희는 정심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감정적 편향이 부지불식간에 잔류해서는 안 됨을 주장할 적에 상류(常留)나 류체(留滯)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고류(苦留)라고 하면 억지로 잔류시킨다는 뜻이니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490. 직전조목의 기록자인 섭하손이다.
  491. '정(正)'은 물건이 똑바로 서서 중심을 잘 잡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정'의 반대말은 기울고 치우친 것이다. 목재나 석재 등을 이용해 어떤 구조물을 만들 적에 내가 방금 집어넣은 부품이 상하사방의 다른 부품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무언가가 기울어져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태에 대한 나의 대응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내 마음 어딘가가 바르지 못하고 기울어져있다는 뜻이다.
  492. 대학 전 7장의 '분치(忿懥)'는 일관되게 '분노'로, '노(怒)'는 화로 번역했다.
  493. 간칭(竿稱)의 양편이 균형을 이루는 영점을 말한다. 성(星)은 눈금이다.
  494. 무게의 단위. 약 4g이다.
  495. 간칭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유튜브 등을 검색하면 쉽게 영상을 찾아볼 수 있으니 참조하라.
  496. 다음 장인 전 8장에서 사람이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균형을 잃고 치우치는 경우를 다섯 가지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친애하는 태도가 치우치면 누군가를 부당하게 편애하게 될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 다섯 가지 태도에 관하여 '마땅히 따라야 할 준칙(當然之則)'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살피지 않기 때문에 치우치게 된다고 말한다. 질문한 제자는, 예컨대, 친애하는 태도의 경우에야 좋은 친애와 나쁜 친애가 있을 수 있으니 그 태도에 '당연지칙'이 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업신여기는' 태도의 경우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니 거기에 다시 좋은 오만함과 나쁜 오만함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16:176~183을 참조하라.
  497. 친애할 만한 이를 친애하고 업신여겨야 마땅한 이를 업신여기는 것이 '바름(正)'이다. 업신여김은 친애와 경외의 반대항이다. 그러므로 업신여김이 없어 마땅한 것이라면 친애와 경애 역시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논조는 대학혹문 전 8장 마지막 부분에 자세하니 참조하라.
  498. 조선고사본에서는 '問八章謂'부터 끝까지가 독립된 조목이며 기록자는 우(寓)이고 순(淳)의 기록 역시 동일하다고 주석해 두었다.
  499. 이 13 글자는 류기보가 주희의 주석의 어떤 구문을 직접인용한 것이다. 통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 주자어류고문해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정심장은 마음이 감정적 편향에 흔들리느냐 마느냐를 논하고 있을 뿐인데 주희의 이전 주석에서는 '불능존지'를 그 앞에 두어서 감정의 발동 이전에 마음을 붙잡아 간직하는 '정시공부(靜時工夫)'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시공부가 실제로 필요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주희의 이전 주석이 대학 정심장이 주장하는 범위를 벗어난 것임은 분명하다.
  500. 일역판은 유기보의 대사로 처리했으나 여기서는 주희의 말로 보았다. 대학 본문에서 마음이 움직이기 이전의 고요한 시점에 대해 말했으면 주희는 기존의 주석을 고수해도 된다. 만약 대학 본문에서 그런 시점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면 주희는 기존 주석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501. 고문해의에 의하면 여기서 '時'는 '則'의 역할을 한다.
  502. 본문은 감정이 마음을 흔드느냐 마느냐를 논할 뿐 그에 선행하는 정시공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503. 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의 기록도 동일하니 생략한다고 주석해 두었다.
  504. 대학 전 7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마음에서 분노 같은 감정들이 발출하여 주변 사물에 적용될 때의 잘잘못이니 모두 '움직임'의 상태에서 그 움직임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층위의 움직이는 상태에서 움직임'의 의미이다. 16:153에서 거론하고 있는 주희의 이전 주석은 이와 달리 마음에서 감정이 발출하기 이전의 '고요한' 상태를 논하고 있다. 본 조목은 직전 조목과 연결해서 보아야 이해하기 쉬우니 서로 참조하라. 고문해의 역시 이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505. 주자어류고문해의는 이를 '이득을 좇아 목숨을 잃는(徇利忘身)' 경우라고 해석했다.
  506. '보아도 보이지 않고...'를 비롯하여 그 이하의 구절들을 말한다.
  507. 대학 전 8장에서 인용하는 속담이다.
  508. 16:143의 주석에서 언급한 비유를 다시 들자면, 밀려오는 주문을 무심히 처리하는 카페 알바생의 마음가짐과 같다. 이정유서 2上:13의 표현과 흡사하니 참조하라.
  509. 이 사례는 납득하기 어렵다. 주희가 자신의 주장을 일관되게 펴려고 했다면 A에 대응하는 태도를 견지하다가 B가 나타나면 B를 대응하는 태도로 마음을 빠르게 바꾸는 케이스를 제시했어야 한다.
  510. 대개 '무유'는 빼먹지 않고 다 포괄한다는 뉘앙스로 쓰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는 앞서 성인의 마음을 '형연허명(瑩然虛明)하여 조금도 사물의 흔적이 없다(無纖毫形跡)'고 묘사한 것에 준하여 번역했다.
  511. 제자 여대아(余大雅)이다.
  512. 황간(자는 직경)을 말한다.
  513. 오늘날의 의식(Consciousness)에 해당한다.
  514. 대학 전 7장의 취지를 이렇게 요약한 것이다.
  515. 발바닥 가운데 움푹 들어간 지점을 말한다. 족심(足心)이라고도 한다.
  516. 주먹으로 발바닥 한가운데를 마사지하는 동작을 말한다. 소식의 양생결(養生訣)에서 이러한 동작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활인심방(活人心方)의 반쌍각족심(攀雙脚足心)에도 비슷한 패턴이 있다.
  517. 일역판에서는 달리 번역했다. 찰(擦)은 기본적으로 문지르고 마찰하는 동작을 가리키지만 여기서 파생되어 무언가에 아주 가까이 접근하는 동작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컨대 천찰량(天擦亮)이라고 하면 하늘이 밝음에 가까워진 것, 곧 새벽이 되었음을 말한다. 일역판에서는 천명찰(天明擦)이 천찰명(天擦明)과 동일한 표현이라고 보고 '새벽녁에'라고 번역했다. 이렇게 번역할 경우 본 조목 후반부의 '천명방성(天明方惺)'과 호응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글자의 순서를 바꿔 읽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다.
  518. 맹자 6A:8. "비록 사람에게 보존된 것에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냐마는 그 선량한 마음(良心)을 잃어버림이 또한 도끼가 매일 아침 나무를 베어 가는 것과 같으니, (이런데도 그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밤사이 자라나는 바(에 더하여) 아침(平旦)의 기운(이 들어찬 상태)에서도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근접한 부분이 (그나마도) 얼마 없는데, 낮에 하는 소행이 이것을 억압하여 파괴(梏亡)하니, 억압하여 파괴(梏亡)하기를 반복하면 야기(夜氣)가 충분히 보존될 수 없고, 야기(夜氣)가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禽獸)와 거리가 멀지 않게(不遠) 된다. 남들은 그 사람의 금수(禽獸) 같은 행실만 보고서는 애초에 좋은 자질이 없었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모습이겠는가?(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 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사람은 본래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삶 속에서 종종 이를 잃어버린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마음은 애초에 본래적인 것이어서 일상에서 벗어나 밤사이 휴식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자라나며 또 아침이 되어 내면이 청명하게 비어있을 때 조금이라도 발현된다. 다만 그 정도가 미미해서 '얼마 없다'고 하는 것이다. '호오의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근접한 부분'은 이 선한 마음을 의미한다. 이 선한 마음은 사람 모두에게 보편적인데, 그 보편성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케이스들을 보면 대개 극악무도한 일에 대하여 다함께 지탄(싫어함)하고 순선무악한 일에 대하여 다함께 찬탄(좋아함)하는 경우들이다. 그러므로 '호오의 취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519. 앞의 주석에서 인용한 구문에서 기희(幾希)와 불원(不遠)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라. 사람다운 부분이 얼마 없다는 말은 짐승과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말과 같다.
  520. 본래 타고난 선량한 마음이다.
  521. 구름 한 점 없는 새벽 하늘의 속성으로 마음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잡념이 없으므로 허하고 정하며 의식이 투명하게 세계를 비추고 있으므로 명하고 광하다.
  522. 사람다운 데가 '얼마 없다(幾希)'와 금수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不遠)'가 가지런하게 대구가 된다.
  523. 주희가 살던 당시 대중적인 맹자 주석서는 조기(趙岐)의 주에 손석(孫奭)의 소를 더한 맹자주소(孟子注疏)로 오늘날 십삼경주소에 포함되어 있다. 일역판의 역자들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송각본 맹자주(사부총간본과 고궁박물원장본)에는 실제로 '기희' 밑에 조기의 주가 달려있다고 한다.
  524. 존양에 대해서는 16:8의 주석을 참조하라.
  525. 이 부분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526. 16:7을 참조하라.
  527. 주희는 자주 심(心)의 본질적 특성(體)을 성(性), 실제 작동하는 양상(用)을 정(情)이라고 말한다. 5:65를 참조하라.
  528. 성의장에서 다루는 것이 의지(意)의 진실성이고 정심장에서 다루는 것이 감정(情)의 편향이기 때문에 이 두 개념에 대해 물은 것이다.
  529. 일역판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송시열은 주자언론동이고에서 이 조목의 진실성을 강하게 의심했다.
  530. 주역 가인괘 단전. 이때 엄군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을 지칭한다.
  531. 효경 간쟁장.
  532. 이렇게 숫자를 두 개 거론할 경우 뒤쪽의 숫자가 진짜이다. 전 7장에서 말한 네 가지 감정과 8장에서 말한 다섯 태도를 합한 것이다. 16:162에서 아홉가지 감정과 태도를 모두 열거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533. 궁(窮)은 에너지의 고갈 혹은 능력의 부족으로 막히거나 중단되는 사태를 말한다.
  534. 사태와 접촉하기 이전의 상태, 곧 정시(靜時)를 말한다.
  535. 동시(動時)를 말한다.
  536. 거의 같은 조목인 15:132에서는 '성의(誠意)'이다. 해당 조목의 교감주를 참조하라.
  537. 15:132에서는 '자(自)'
  538. 15:132에는 이 글자가 없음
  539. 15:132에는 이 글자가 없음.
  540. 15:132에서는 이 뒤에 '각(卻)'이 있음.
  541. 15:132에서는 '여(與)'
  542. 대학 전10장. 팔조목의 마지막 단계인 평천하(平天下)를 해설할 적에 평천하의 주체인 '윗사람(上)'이 마땅히 지녀야할 자세로 거론한다. 혈구는 곱자와 직각자이다. 물건의 치수를 잴 때 사용하는 툴이다. 윗사람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심사를 측정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심사를 헤아려(혈구) 통치하면 평천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5:76의 주석을 참조하라.
  543. 이 조목은 15:132와 거의 동일하니 참조하라.
  544. 가장 쉬운 사태에 대한 대응조차 잘못될 것이라는 말이다.
  545. 전 8장이다.
  546. 전 8장은 타인을 대할 때의 편향이 주제이다. 비록 장의 제목은 '수신제가'이나 가족 구성원을 대하는 원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 대한 일반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547. 14:21과 15:85에서 유사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548. 대학 전 8장에 대한 주희의 주석이다. 주석의 대상이 되는 원문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애하는 대상에게 치우치며(人, 之其所親愛而辟焉)'이다.
  549. 갈 지(之)의 기본 뜻은 '가다'이다. 어떤 대상에게로 마음이 '간다'는 의미로 이 글자를 풀이했다는 말이다. 직전 조목에서 어(於)로 풀이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현(鄭玄) 역시 지를 갈 적(適)자로 풀었다.
  550. 전 8장 해석의 핵심은 비/벽(辟)자이다. 예기의 판본에 따라 '譬'라고 쓰기도 하고 '辟'이라고 쓰기도 한다. 주희의 대학장구 이전에는 辟라고 써있어도 그 음이나 뜻이나 '비(譬)'와 같다고 보고 풀이했다. 이 경우 '人, 之其所親愛而辟焉'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애하는 대상에게 나아가 (그 대상이 가진 미덕을 헤아린 후 자기 자신과) 비교해 보다'가 된다. 주희도 처음에는 이러한 주석전통을 그대로 따랐으나 후에 포기하고 벽(辟)을 편벽됨/치우침(僻)으로 풀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551. 정현의 주석을 말한다.
  552. 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553. 정현을 말한다.
  554. 대학을 말한다.
  555. 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는 시이다. 본래는 시경 소아 절남산.
  556. 맹자 7B:34
  557. 맹자 4A:1
  558. 논어 4:18
  559. 조선고사본은 이 질문 부분이 훨씬 길다. "又問: '人之其所親愛賤惡畏敬哀矜敖惰而辟焉.' 章句曰:"
  560. 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竊謂: 則之爲言, 法也. 性之所固有, 事之所當然, 而不可易也."가 더 있다.
  561. 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非性之所有. 若比之四者而言, 則是性有善惡."가 더 있다.
  562. 통행본 대학장구의 문구는 약간 다르다. '이 다섯가지는 사람에게 있어 본래 마땅히 따라야할 법칙이 있다(五者在人, 本有當然之則).'
  563. 사람에게 있어 본성은 본래적인 것이고 기습은 비본래적인 것이다. 조선고사본을 보면 기록자가 이 말에 앞서 본성을 거론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기습을 거론한 것이 짝이 된다.
  564. '묘예(苗裔)'의 원래 뜻은 후예/후손이다. 애틋한 마음은 사람의 본래적 선한 마음에서 직접 나온 존재라는 뜻이다.
  565. 논어 17:20. 주희의 집주에 의하면 유비는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에게 사상례를 배운 적이 있다. 이때 분명 공자에게 득죄한 것이 있었는데 공자는 고의로 만나주지 않는 방식으로 그를 가르쳐준 것이라고 한다.
  566. 맹자 2B:6과 4B:27에 보인다. 왕환은 제나라의 대부이다.
  567. 오타(敖惰)는 오만함과 게으름이다. 누군가를 만나볼 적에 상대방을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 건성으로 대하며 정성을 다하지 않는 태도가 '오타'이다. 그 마음가짐 부분에 주목하여 번역할 때는 '업신여김'이 적절하고 그 태도에 주목하여 번역하자면 '건성'이 더 낫다. 지금까지 줄곧 업신여김으로 번역하였으나 여기서는 건성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하여 건성이라 번역했다.
  568. 전 8장에서 거론한 다섯 가지 태도 가운데 이 두 가지가 부정적인 태도이다. 건성은 그 중 가벼운 쪽이고 혐오가 훨씬 본격적이다.
  569. 대학장구 전 8장.
  570. 주역이라는 책의 본질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주역 연구자들의 견해는 크게 둘로 갈린다. 예컨대 정이는 주역에서 의리(義理)를 읽어내려 하였으나 주희는 이 책을 기본적으로 점치는 책으로 간주하고 그렇게 독해했다. 주광호(2020) 제 7장을 참조하라.
  571. 주희 이전에 가장 크게 유행했던 시경의 주석서는 한나라 때 두 명의 모(毛)씨가 붙인 것이다. 모시는 시경의 각 편 앞에 해당 시 해석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서문 두 종류를 붙여 두었는데 이를 대서(大序)와 소서라고 부른다. 대체로 이 시는 누구를 풍자한 것이라거나 누구를 찬미한 것이라는 등인데, 주희는 이런 해석을 싫어했다. 이 서문의 저자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확정된 설이 없으나 주희는 후한서 유림전의 기사를 근거로 위굉(衛宏)이 지은 것으로 간주한다. 더 자세한 것은 박소동역 모시정의(2021)의 해제를 참조하라.
  572. 시경이나 초사 등 고대에 만들어진 운문은 후에 각 글자의 음이 변하면서 운이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후대의 주석가들 가운데 이런 글자들의 운을 맞추기 위해 '이 글자는 써 있기는 A라고 써있지만 소리내어 읽을 때는 B라고 읽어야 한다'는 식으로 주석하는 이들이 등장했는데, 이러한 주석법을 '협운'이라 한다. 주희는 특히 협운을 선호했다.
  573. '재소부답(在所不答)'은 '답하지 않는 바에 있다.' 곧, 답하지 않는 질문들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574. 논어 4:7.
  575. 지나침(過)이 곧 잘못함(過)이다. 컬링을 할 적에 돌이 목표지점을 지나치는 것이 곧 잘못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576. 이 말은 주희더러 '수신'이라는 말을 주석에 넣지 않은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대학 제 8장의 본문 말미에서 장 전체를 해설하는 말에서 '수신'이라는 표현이 빠진 이유를 묻는 것이다. 제 7장과 9장의 본문 구성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다. 8장의 마지막 문구는'이를 일러 몸이 닦이지 않으면 그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한다(此謂身不修, 不可以齊其家)'인데 7장의 경우는 '이를 일러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고 한다(此謂修身, 在正其心)'이고 9장의 경우는 '이를 일러 나라를 다스림이 그 집안을 다스림에 있다고 한다(此謂治國, 在齊其家)'이다. 7장과 구장은 모두 팔조목을 긍정형(수신, 정심, 제가, 치국)으로 언급했으나 8장만 유독 부정형(신불수)으로 언급하고 있다.
  577. '수신'이 아니라 '신불수(身不修)'라고 적혀있는 까닭을 설명한 것이다.
  578. 호간(好看)은 아름답다는 뜻 이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 볼만하다, 체면, 풍광, 이해하기 쉽다 등의 뜻이 있다. 주자어류사휘연구 395쪽을 참조하라.
  579. 대학 경 1장.
  580. 조선고사본에 의하면 여기서 생략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제 생각에 사람의 마음이 분분히 소란스러워 그 허명한 본체를 상실하게 되는 까닭은 다름아니라 생각(念慮)이 선행에 대해 진실하지 못해서 매번 사사롭고 삿된 것들이 내면에 섞여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그것에 엮여서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앎을 지극히하여 시비선악을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어서 틔워나오는 하나하나의 생각(念)이 모두 진실하여 악함이 없게 된다면 마음의 본체가 어찌 찬란하여 모든 곳을 비추고 혼연히 크고 올바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간격은 극히 미세한 틈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 있는 이상 어디 다시 힘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切謂人之心所以膠膠擾擾, 失其虚明之本體者, 只爲念慮之間不誠於爲善, 毎毎雜得私邪在裏, 故心爲之累而不得其正. 今既能致其知, 判別得是非善惡分明, 一念之發, 誠實無惡, 則心之本體豈不光明洞達, 渾全正大? 其間直有毫芒之間耳. 然則意既能誠, 則復何所待於用力哉?)' 여기서 '그 간격은 극히 미세한 틈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其間直有毫芒之間耳)'는 해석하기 어려우나 아마도 치지/성의/정심이라는 세 단계 사이의 간격이 아주 좁다는 말인 듯하다.
  581. '경서'는 대학의 서문으로 볼 수 없다. 서문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장구의 서문은 주희 본인이 작성하였으나 그것을 '경서'라고 부를 수는 없다. 서문이 아니라 서두정도로 풀이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582. 대학 전 10장.
  583. 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록(池錄)에는 이 뒤에 '治它是' 세 글자가 더 있었다. 기록자의 이름으로 보아 지록 권 34에 있었을 듯한데 해당권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584. 역시 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록에는 이 뒤에 '是'가 있었다.
  585. 이 뒤에 '得'이 있었다.
  586. '卻'는 '只'였다.
  587. '其'는 '它'였다.
  588. 지록을 따라 번역했다. 현행본대로 번역할 경우 '...다시 설명하여 남을 가르치는데' 정도가 된다. 전 7장에서 9장까지의 내용이 대동소이한 이유를 두고 자문자답하는 것이다.
  589. 집안관리의 단계, 나라관리의 단계 등 관리하는 범주 별로 빼먹지 말고 잘 살펴보라는 말이다.
  590. 관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가장의 관리 대상이 되는 가족구성원이나 임금의 관리 대상이 되는 백성들 등이다.
  591. 대학에서 수신장 이후 부분은 어떤 관리직을 맡은 독자를 상정하고 있음에 유의하라.
  592. 의지가 진실해졌을 때 느끼게 되는 통쾌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에 대해서는 16:73 및 81~90등 본권 여러 곳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593. 16:176에 비슷한 논의가 있으니 참조하라.
  594. 대학 전 9장.
  595. 전 9장의 해당 문구만 보면 추가로 어떤 작업을 할 필요 없이 집안에서의 도덕적 성취가 더 넓은 영역에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느낌이 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596. 여기서 주희가 이덕지의 주장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았음에 유의하라. 16:193이나 195 등, '미루다(推)'라는 동사의 적극성이 문제가 될 때면 주희의 대답은 모호해진다.
  597. 대학 전 9장.
  598. 16:195를 참조하라.
  599. 이는 효도, 공경, 자애 가운데 자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600. 대학 전 9장에서 인용한 서경 강고 인용부는 다음과 같다. 강고에서 '어린아이(赤子)를 보호하듯이 한다.' 하였으니, 진정으로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답을) 구하면 비록 (어머니의 짐작이 완벽히) 적중하지는 않더라도 (정답에서 아주) 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사람은 없다.(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601. 강고 인용문에 대한 주희의 이러한 해석은 이정을 따른 것이다. 이정유서 2上-26, 대학혹문의 전 9장 부분을 참조하라.
  602. 전 9장.
  603. 일역판은 '공(功)'을 '공(工)' 정도로 보고 이 부분을 '노력하다(つとめる)'라고 번역했다. 비록 후대의 판본이긴 하지만 사서대전에서는 '위본(爲本)'이라고 쓰고 있으니 참고하라.
  604. 전 10장을 말한다.
  605. 전 9장.
  606. 전 9장.
  607. 문제의 구절은 전 9장의 가운데 부분이다. 주희는 그 앞부분과 뒷부분의 성격을 이와 같이 파악한 것이다.
  608. 전 9장.
  609. 전 9장.
  610. 하서린본 이전의 판본들은 모두 '又'로 썼다.
  611. 여기서 생략된 거위의 기록은 조선고사본에서 볼 수 있다. 글자의 출입이 있으나 대동소이하므로 반복하지 않겠다.
  612. 논어 15:14.
  613. 논어 12:21.
  614. 대학장구 전 9장에서 주희가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다.
  615. 조선고사본에서는 오인보가 아니라 '或'의 질문인데, 그 아래 '지본에서는 李仁甫라고 적혀있다'는 주석이 달려있다.
  616. 조선고사본에 의하면 지본에서는 이 밑에 '語意' 두 글자가 더 있다.
  617. 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본에서는 "如此; 非謂溫故知新, 便要求爲人師也. 然" 총 16글자가 없다.
  618. 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본에는 '意'자가 없다.
  619. 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본에서는 '欲'자가 아니라 '勸'자이다.
  620. 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본에는 '便' 뒤에 '是'가 있다.
  621. 정리하자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을 주희는 '한 걸음 물러서서....'라고 표현한 것이다.
  622. 범순인(范純仁, 1027-1101)의 시호가 충선이다.
  623. '連A亦B'는 'A도 B하다'이다. 해당 내용은 범충선공집 보편에 보인다. 주희가 편찬한 삼조명신언행록의 11-1에서도 인용하고 있다.(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苟能以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不患不至聖賢地位也.)
  624. 조선고사본에서는 '者出'을 '君子發'로 썼다.
  625. 정몽 중정편.
  626. 16:166을 참조하라.
  627. 논어 12:2.
  628. 대학 전 9장. '몸에 지닌 바'란 자기 자신에게 선함은 있고 악함은 없음을 말한다. 서(恕)는 자기 자신의 유선무악한 상태에 기반하여 남에게 선하기를 요구하고 남의 악함을 꾸짖음을 말한다. 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629. 조선고사본에서는 '程子'를 '伊川'으로 썼음.
  630.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여섯글자가 주석처리됨.
  631.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여섯글자가 주석처리됨.
  632. 시경 주송 천지명. 중용 제 26장에서 재인용.
  633. 주역 건괘 단전.
  634. 이정외서 7:2. 참고로 이정외서의 7:1에서 기록한 정호의 말은 이것과 약간 다르다. "명도가 말함: '하늘의 명이여,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도다'라 하니, 충하지 않은가? '천지가 변화하여 초목이 무성하네'라 하니, 서하지 않은가?(明道曰: 維天之命, 於穆不已, 不其忠乎? 天地變化, 草木蕃, 不其恕乎?)"
  635. 논어 4:15.
  636. 조선고사본, 성화본, 조선정판본에서는 '分'을 '樣'으로 썼음.
  637. 조선고사본은 여기서부터 이하가 다르다. '只略略有兩三分孝, 更有七分未盡, 便是不實. 略略有一分弟, 更九分以上未盡, 亦是不實'
  638. 조선고사본에서는 '雖有'부터 '亦是不實'까지를 지록에서 이와 같이 기록했다며 주석처리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통행본은 조선고사본의 본문을 주석으로 보내고 주석을 본문화한 것이다.
  639. 충(忠)에 대한 표준적인 설명이다.
  640. 조선고사본에는 이 뒤로 긴 주석이 달려있다. '道夫錄同而畧云: 仁甫問治國在齊其家一章. 曰: 上面說不出家而成敎於國, 此下便說其所以敎者如此. 這三事是敎之目, 後面却是說須是躬行, 方會化得人.'
  641. 효(孝), 제(弟), 자(慈)이다.
  642. 효, 제, 자를 설명한 부분 까지가 한 부분, 그 이후가 한 부분이다.
  643. 여유량본과 하서린본(전경당본) 이전에는 모두 '策別'로 썼다. '책제'는 정책제안문, '책별'은 그러한 정책제안문 가운데 소식의 문집에서 부록으로 처리된 부분이라는 뜻이다.
  644. 논어 4:13.
  645. 대학 전 9장.
  646. 소식(蘇軾, 1036-1101).
  647. 사고전서본 동파전집 권 47에 보인다. 곳에 따라 이 문장의 제목을 '숭교화(崇敎化, 교화를 드높임)'로 쓰기도 하는데, 이는 남송 광종(光宗)의 이름 '돈(惇)'을 피휘한 것이다.
  648. 앞서 소식의 거친(대략적인) 설명이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649. 경작지를 나누어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650. '아항(牙行)'은 중개사무소, '아인(牙人)'은 중개업자이다. 아세전은 이런저런 중개 업자들에게 중개면허를 발급하면서 수취하는 영업세의 일종이다. 일역판에서는 건염이래계년요록의 건염 2년조와 3년조의 몇몇 부문을 인용하여 여기서 주희가 말한 아인세란 부동산 매매시의 취등록세와 유사한 세목이었을 거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651. 서경 주서 주고.
  652. 주로 각고(榷酤)라고 부르는 술 전매제도를 말한다. 각은 전매를, 고는 술의 매매를 뜻한다. 송조의 술 전매에 관해서는 송사 식화지의 관련 조목을 참조하라.
  653. 이 조목은 26:114와 흡사하니 참조하라.
  654. 대학 전 9장. 시경 조풍(曹風) 시구(鳲鳩)편을 인용한 뒤에 붙인 코멘트이다.
  655. 요의 아들 단주와 순의 아들 상균은 못난 아들의 대명사이다.
  656. 주공은 섭정으로서 자신의 조카인 성왕을 보좌했는데 숙부가 조카의 왕위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657.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주공의 형제들로 주공을 의심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658. 조선고사본은 '他却處得那兒子好'라고 썼다.
  659. 조선고사본은 '他不將那天下與那兒子'라고 썼다.
  660. 조선고사본은 '後却傳與那賢'라고 썼다.
  661. 조선고사본은 '若使堯當時把个天下與丹朱'라고 썼다. 또, '堯'자 뒤에 빈 칸이 하나 있다.
  662. 대학 전 9장의 해당 구문을 두고 말한 것이다.
  663. 서경(書經) 우서(虞書) 요전(堯典)
  664. 맹자 4A:28.
  665. 요임금을 말하는 듯하다.
  666. 순임금을 말하는 듯하다.
  667. 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蔡仲之命).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숙은 죽였고 채숙은 가택연금시켰고 곽숙(霍叔)은 서인으로 강등시켰다.
  668. 15:133과 흡사하니 참조하라.
  669. 격물치지를 말한 것이다.
  670. 섭하손.
  671.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三'이 있다.
  672. 대학 전 10장은 '위에서 ㅇㅇ을 하면 아래에서 ㅇㅇ을 본받아 흥기하고'와 같은 구조를 세 번 반복하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세 구절'이라고 한 것이다.
  673. 노노(老老), 장장(長長), 휼고(恤孤)를 말한다.
  674. 선한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은 임금이 자기 가족에게 잘 하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자신도 자기 가족에게 잘 해야겠다는 의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지를 실천에 옮기려면 물질적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임금의 역할은 그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조건을 만족시켜주려는 동기는 타인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를 동치시키는 마음, 곧 공감과 연민에서 나온다. 이 공감과 연민이 바로 혈구의 도리이다.
  675. 맹자 1A:7에서의 설명과 같은 취지로 이해한 것이다. 맹자에서는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는 그 마음으로 남의 노인도 노인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 전 10장의 혈구지도의 취지는 이와 다르다. 윗사람이 자기 집안의 노인을 잘 대접하는 것을 보고 아랫사람이 역시 자기 집안의 노인을 잘 대접한다는 것이다.
  676. 노노(老老)와 장장(長長) 등.
  677. 맹자 7A:22.
  678.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자기 부모를 충분히 제대로 대접하고 아이들을 충분히 제대로 지원해주고 싶어하는 욕망을 말한다.
  679. 내가 내 아이를 지원해주고 싶은 만큼 남도 자기 아이를 지원해주고 싶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680. 조선고사본은 이 지점에 '선생은 자못 의아해 하며 "어째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워 하는가?"라고 말했다(先生頗訝以爲如何如此難曉).' 열 두 자가 더 있다.
  681. 여기서의 '마음'은 모두 욕망을 말한다는 것에 유의하라. 앞서 215조의 주석을 참조하라.
  682. 아랫부분이란 대학 전 10장의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아래사람을 시키지 말고...(所惡於上, 毋以使下)' 이하를 말한다.
  683. 이전 몇 조목에서 강조했듯이 이는 백성들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684. 여기서는 욕망이라는 뜻이다.
  685. 맹자 1A:7
  686. 시경 왕풍 군자우역편의 모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군자를 대부로 바꾼 것 이외에는 동일하다. 행역은 징집되어 군에 복무함을 말한다.
  687. 시경 빈풍
  688. 시경 소아
  689. 시경 당풍
  690. 맹자 1A:7
  691. 논어 6:28
  692. 나의 윗사람, 나, 나의 아랫사람이라는 3층구조이다. 앞서 논어 인용문의 경우는 나와 남이라는 2층 구조이다.
  693. 중용 제 13장.
  694. 조선고사본은 이 지점에서 한서의 조서 내용을 주석으로 제시하고 있다. '今天下孝子順孫願自竭盡以承其親,外迫公事,內之資財,是以孝心闕焉。朕甚哀之。 爲復子若孫,令得身帥妻妾遂其供養之事。' 내용은 통행본 한서의 기사를 축약한 것이다. '內之資財'의 '之'는 '乏'의 오기이다. 다음 주석을 참조하라.
  695. 한서 권 19 조조전. '詔策曰: 通於人事終始. 愚臣竊以古之三王明之. 臣聞三王臣主俱賢, 故合謀相輔, 計安天下, 莫不本於人情. 人情莫不欲壽, 三王生而不傷也.'주자어류의 인용구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
  696. 한서 권 6 무제본기 건원원년 하4월 기사(己巳) 조에 실린 조서의 내용이다. '詔曰:「古之立教,鄉里以齒,朝廷以爵,扶世導民,莫善於德。然則於鄉里先耆艾,奉高年,古之道也。今天下孝子順孫願自竭盡以承其親,外迫公事,內乏資財,是以孝心闕焉。朕甚哀之。民年九十以上,已有受鬻法,為復子若孫,令得身帥妻妾遂其供養之事。'
  697. 예컨대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을 아래사람에게 시키지 말고...(所惡於上, 毋以使下)'
  698. '흥'은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부모를 편안히 모시고 아이를 잘 품어주고 싶다는 소원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수'는 그런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수'자는 현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 대학혹문 전 10장 부분 및 어류 16:212, 214, 218, 221, 249 등 여러 곳에서 일관되게 이 글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장구의 예전 판본에서 쓰였으나 후에 개정하면서 삭제했을지도 모르겠다.
  699. 전 10장에서 논지를 전개하는 순서를 말한 것이다.
  700. 금지란 전면 금지가 아니라 사적 생산과 매매에 대한 금지조치이다. 두 가지 모두 근대이전 중원 제국들이 즐겨 전매했던 품목이다. 일역판은 송회요집고 염법10의 한 대목을 인용하여 주희 당시 국가 세입의 절반이 소금 전매에서 나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대의 차염 전매에 관한 자세한 논의로는 김영제, 당송재정사(1995), 180쪽을 참조하라.
  701. '平'은 물이 요동치지 않아 수면이 평평한 호수나 바다의 이미지가 있다. '평정한다'로 번역할 경우 온 세상이 마치 그러한 표면처럼 안정된 상태에 진입함을 말한다. 이러한 평평함은 각 개체간의 격차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됨을 의미하므로 '균평하다'나 '공평하다'로 번역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702. 중용 제 13장.
  703. 대학 전 10장에서 혈구지도를 설명한 부분은 화자의 위치를 중앙으로 상정하고 '내가 나의 앞사람에게 바라지 않는 것을 뒷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다.'와 같은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고 있다.
  704.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之'자가 있다.
  705. 맹자 6B:11. 도랑은 물이 나가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홍수가 났는데 이웃나라 쪽으로 배수되도록 물길을 트면 이웃나라를 도랑으로 삼는 것이니 혈구의 도리가 아니다.
  706. 소망, 소원 등의 의미이다.
  707. 원껏 효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그 소원을 만족시킨다는 의미이다.
  708. 모두가 원껏 효도한다는 의미에서 공평한 것이다.
  709. 통행본 대학장구의 문구는 이와 조금 다르다. '피아지간에 각각 자기 분수에 따른 소원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상하사방이 균등하고 방정해져서 천하가 평정될 것이다(使彼我之間, 各得分願, 則上下四旁, 均齊方正, 而天下平矣.).'
  710. 효심, 공경심, 동정심 등을 말한다.
  711. 자기 안에 존재하는 이러한 근본적 감정들을 보고서 백성들에게도 이러한 감정이 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다. 16:219의 유사한 표현을 참조하라.
  712. 백성들의 자리이다.
  713. 예기 왕제편. 인용문은 조금 다르다. 예기 쪽은 다음과 같다. '80 세인 자는 아들 하나의 징용을 면제한다. 90 세인 자는 해당 집안 전체의 징용을 면제한다. 불치의 병에 걸려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부양하지 못하는 자는 가족 한 명의 징용을 면제한다.(八十者,一子不從政,九十者,其家不從政,廢疾非人不養者,一人不從政.)'
  714. 출전을 알 수 없다. 일역판은 포효숙주의(包孝肅奏議集) 권 7에 실린 상주문 하나에서 '生聚蕃息'을 찾아 인용하고 있으나 뒷부분은 없다.
  715. 모두 대학 전 10장에서 혈구지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716. ㄱ 모양의 측정도구이다. 옛말로는 '곱자'이다.
  717. 한나라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의 한 구문을 인용한 것이다.
  718. 동일한 규격의 정사각형이 전후좌우로 연속적으로 펼쳐진 격자무늬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
  719. 약 3미터이다.
  720. 10척이 1장이다. 다섯 척은 약 1.5미터이다.
  721. 각자의 마땅한 몫, 지켜 마땅한 규범을 공간적으로 은유한 것이다.
  722. 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맹헌자(孟獻子)의 말이다. 벌빙지가(伐冰之家)란 지위가 경대부(卿大夫) 이상인 집안을 말하는데, 경대부 이상이어야 예법상 상례와 제례 등에 얼음을 쓸 일이 있기 때문이다. 불휵우양(不畜牛羊)은 소와 양 등을 길러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경우로 비유하자면 '대기업은 골목상권을 노리지 않는다' 정도가 되겠다.
  723. 맹자 3A:3
  724. 맹자 1B:12, 2B:4
  725. 맹자 7A:22
  726. 남들도 안락함을 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727.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조목의 앞 뒤로 문답이 더 붙어있다. 앞부분은 '질문: 천하를 평정함을 논하면서 재물과 이익을 언급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問: 論平天下, 而言財利者何也?) 대답: 천하가 평정되지 않는 까닭이 모두 그것 때문이어서이다.(曰: 天下之所以不平者, 皆因此也.)', 뒷부분은 '자복황후께서 (돌아가시지 않고) 매양 생일에 이르시니 대단히 장수하고 계시다. 하지만 어떻게 천하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각자 자기 분수에 맞는 수준에서 자기 어버이를 섬기고 어른을 섬길 수 있다는 취지이다.(如慈福皇后毎至生日, 上壽非常, 天下之人豈能此? 但各随其分, 得盡其事親事長之意.)'이다. 자복황후는 남송 고종의 두 번째 황후로 1197년에 사망했다(향년 83세). 황후 사망 후라면 이렇게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이 대화가 1197년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728. 16:223, 224 등을 참조하라.
  729. 주희는 대학의 저자가 증자라고 생각했다. 또, 논어에서 증자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핵심적인 도리가 '서(恕)'이므로 대학의 전 9장이나 10장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730. 논어 6:28
  731. 인자가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서자는 열심히 남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실천하는 사람이다.
  732. 논어 5:11
  733. 송대 돈거래의 최소단위인 1문(文)을 말한다. 아마도 동전 한가운데 구멍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734. 주역 익괘와 손괘의 단전.
  735. 성화본을 제외하면 모두 '文'이라고 썼다. 중화서국판은 성화본에 의거하여 '丈'으로 교감했다. 64:197, 90:31 등 李丈인지 李文인지 알기 어려운 조목이 많다. 윙칫찬의 '주자문인'의 '李文' 단락을 참조하라.
  736. 기록자가 질문자를 존칭으로 기록한 것이다. 일역판에서는 이당자(李唐咨)라고 단정했는데 그 근거는 알 수 없다.
  737. 논어 5:11
  738. 혈구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직각자를 활용하여 여러개의 정사각형을 그리다' 정도가 된다. 그려놓고 보니 직사각형이나 사다리꼴이라면 '혈구'라고 할 수 없다.
  739. 대학 전 10장. 덕을 삼간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냐는 질문에 대해 대학혹문 전 10장부에서는 격물치지부터 수신까지라고 답하고 있다.
  740. 사방의 군주가 자기 백성을 학대하고 있기 때문에 탕왕이나 무왕 같은 유덕한 군주가 (예컨대) 우선 서쪽 나라의 군주를 정벌하러 가면 동쪽 나라 백성들이 왜 자신들이 후순위가 되었느냐며 원망한다는 뜻이다. 정확히는 무왕이 아니라 탕왕의 정벌에 관한 일화로 상서 중훼지고 제 6장, 맹자 1B:11에 보인다.
  741. 백성과 영토를 얻는다는 표현은 대학 전 10장의 후반부에서 취한 표현이다.
  742. 대학 전 10장의 '爭民施奪'에 대한 주희의 주석이다.
  743. 대학 전 10장의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덕(德)은 근본(本)이고 재(財)는 말단(末)인데 근본을 바깥으로 취급하고 말단을 안쪽으로 취급하면 백성과 이득을 다투어 그들의 재산을 빼앗게 되고, 이러한 착취행위는 결국 백성들더러 서로 상대방의 재산을 탈취하라고 가르치는 셈이라고 하였다. 바깥쪽/안쪽이라는 대립쌍은 각각 부차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744. 대학 전 10장. 직역하면 '민(民)을 쟁(爭)하여 탈(취하라는 내용의 가르침을)을(奪) 베푼다(施).' 정도가 된다.
  745. 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서경 주서 태서편의 한 구문이다.
  746. 타인이 훌륭한 말을 했을 때 기뻐하며 받아들이는 사람과는 반대로 타인을 시기질투하는 사람은 남이 훌륭한 말을 하면 할수록 (상대방을 미워하는 나의 마음을) 따라 그 사람을 배척하게 된다.
  747. 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서경 주서 태서편에서 혈구를 잘 하는 사람의 품성을 형용한 말이다. 주희의 주석에서 '성일(誠一)하다'라고 풀었다.
  748. 16:238의 주석을 참조하라.
  749. 대학 전 10장. 타인을 시기질투하여 좋은 말을 할수록 배척하는 이가 있다면 이들은 나라를 망치는 자이니 이들을 결연히 내쫓는 것이야말로 어진 행위이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만이 (다른 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지공무사한 이유로) 이들을 확실히 내칠 수 있다.
  750. 대학 전 10장. 앞선 구절에 이어서 나오는 구문이다. 훌륭한 사람을 쓰기를 미적거리는 이유는 타인의 훌륭함을 질투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751. 대학 전 10장. 앞선 구절에 이어서 나오는 구문이다. 여기서 '싫어하는 바'란 단순한 테이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혐오감정을 말한다. 예컨대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싫어하는 바이다.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전혀 혈구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752. 대학 전 10장. 앞 조목을 참조하라.
  753. 대학 전 10장.
  754. 앞서 언급한 충신과 교태를 말한다.
  755. 맹자 6A:8. 자세한 설명은 16:20, 16:130 등을 참조하라.
  756. 논어 12:1
  757. 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아래 '여방(汝倣)'이라고 주석이 붙어있다. 조여방은 주희의 제자로 자(字)는 당경이다.
  758. 현행본 대학장구에서는 '기(機)'를 '기(幾)'라고 썼다. 기(機)는 전통적으로 '기틀'로 번역하는데, 요즘말로는 트리거에 가깝다. 천리가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를 판가름할 트리거가 여기서 당겨진다는 뜻이다.
  759. 조선고사본에서는 '지(砥)'로 썼다.
  760. 대학 전 10장을 말한다.
  761. 전 10장에서 시경 문왕편을 인용한 부분이다.
  762. 전 10장에서 서경 강고편을 인용한 부분이다.
  763. 역시 대학 전 10장의 말을 요약한 것이다. 직전 16:241을 참조하라.
  764. 대학 전 10장. 재물을 써서 사람을 얻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어질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소진하여 재물을 얻는다.
  765. 일역판은 '매교(買敎)'를 모두 사역동사로 처리했다.
  766. 이 부분은 해석하기 까다롭다.
  767. 주희의 제자 동백우(童伯羽).
  768. 대학 전 10장.
  769. 윗사람이 A라는 덕성을 갖추면 아랫사람이 그에 감화되어 역시 동일한 덕성을 갖추게 되는 경우를 상상한 것이다.
  770. 주희의 제자 황간(黃幹).
  771. 논어 2:20
  772. 대학 전 10장의 마지막 대목에서 나오는 문구이다. 여기서 '잘하다'는 기술적인 탁월함을 말하니 도덕적 품성과는 무관하다.
  773. 대학 전 10장.
  774. 진나라 때 마을 왼편(서쪽)은 빈민촌이었다.
  775. 사기에 의하면 해당 사건은 제 2세황제 원년 7월에 있었던 일이다.
  776. 가의의 과진론 상편에서 열거한 바 진시황의 정책들이다. 성곽을 허물고 호걸을 살해하고 병장기를 수거하여 녹이는 등은 모두 천하통일 이후 어수선한 내부통제를 위한 정책이었다. 장성축조는 흉노의 견제가 목적이다.
  777. 맹자 1A:1.
  778. 맹자 1A:1.
  779. 이정유서 16:3의 한 대목을 조금 변형한 것이다. 본래는 다음과 같다. '성인은 의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기니, 의리상 편안한 곳이 바로 이득이 된다(聖人以義爲利, 義安處, 便爲利.).'
  780. 삼대의 황금시대가 종료된 이후의 세상을 말한다.
  781. 윗사람이 효성스러우면 아랫사람도 효심을 일으킨다는 등의 설명을 말한다.
  782. 구체적인 정책결정과 실천을 말한다.
  783. 대학 전 10장. 첫머리에서 교화에 대해 설명한 후 바로 이어서 나오는 문구이다.
  784. 16:225와 228의 논의를 참조하라.
  785. 대학 전 10장에서 시경 소아 남산유대편을 인용하고 설명한 부분을 말한다.
  786. 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맹헌자(孟獻子)의 말을 요약한 것이다. 16:225를 참조하라.
  787. 대학 전 10장. 맹헌자의 말에 대한 결론이다.
  788. 주역 곤괘 문언전.
  789. 모두 대학 전 10장에서 혈구지도를 설명할 때 언급한 내용들이다.
  790. 전한 무제시기의 재무관료. 소금과 철 등에 대한 전매제도를 비롯하여 여러 재정정책을 설계했다.
  791. 대학 원문을 살펴보아도 이 경우 기능적 탁월함을 말하는 것인지 도덕적인 훌륭함을 말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중립적인 표현으로 번역했다.
  792. '得非'는 '...가 아닐 수 있겠나?'이다. 득(得)은 '...수 있다'와 같다.
  793. 반절(反切)은 전통시대 한문 문헌에서 낱글자의 음가를 표기하는 방법이다. '호결'에서 앞글자의 초성과 뒷글자의 중성과 종성을 합치라는 뜻이다. '絜'은 'ㅎ'와 ㅕㄹ'을 합쳤으므로 '혈'이 된다. 다만 현행본 예기정의에는 이와 같은 음주가 없다.
  794. 이 뜻풀이는 현행본 예기정의에 있다.
  795. '自得'은 '自行'과 같다. '된다', '좋다' 정도의 의미이다.
  796. 순자 비상(非相)편에 나오는 '혈(揳)'자에 대한 양경(楊倞)의 주에서 '혈(揳)은 혈(絜)과 같으니 묶는다는 뜻이다(揳, 與絜同, 約也.)'라고 했다. 어떤 물건을 밧줄 따위로 묶어보아 그 둘레를 측정하는 것이다. '호결반(戶結反)'이라는 음주 역시 순자 양경주에 보인다. 장자 인간세편의 '묶어서 측정해보니 백아름이나 되었다(絜之百圍)'에 대한 성현영(成玄英)의 소(疏)에서 '혈(絜)은 묶는 것이다.(絜, 約束也)'라고 하였다. 다만 순자와 장자의 주해서 어느 쪽에서도 '圍束'이라는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대학혹문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순자와 장자를 언급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797. '장(丈)'은 손윗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여기서 말하는 범씨는 범여규(范如圭, 1102-1160)이다. 해당 에피소드는 회암집 권 55의 답소숙의(答邵叔義) 제 2서에 보인다. 회암집 권 89에는 주희가 작성한 범여규의 신도비문이 실려있다.
  798. 관청이 재정적으로 타이트하다는 말이거나 백성들이 반성적으로 사유할 여유 없이 타이트하게 살고 있다는 말인 듯하다.
  799. '정주(征誅)'는 군사적인 정벌 혹은 부세를 징수하고 (미납자를) 처벌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는 천하가 아니라 현급 스케일에서의 통치행위를 말하고 있으며 또 뒷 구절에서도 일관되게 세무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정주(征誅)' 역시 세무정책으로 해석하였다.
  800. 맹자 4B:23.
  801. 논어 6:3. 공자는 곡식 6 말 4 되를 주라고 했는데 염구는 스승의 지침을 어기고 자의로 16 섬을 주었다.
  802. 공자를 말한다.
  803. 염구(冉求)를 말한다. 염자는 염구의 존칭이다.
  804. 논어 11:16.
  805. 맹자에 대한 인용부부터 끝까지는 어류 57:54와 거의 같다. 글자에 약간의 출입이 있으니 참조하라.
  806. 맹자 1A:1의 내용은 의로움과 이로움을 판별하라는 것이므로 이 말에 꼭 맞지 않다. 하지만 그 이후 1A:5까지 이어지는 양혜왕과의 대담 내용은 실제로 백성의 처지에 이입하여 민생을 돌보라는 것이므로 대학 전 10장의 취지에 부합한다.
  807. 16:57의 주석을 참조하라.
  808. 순자.
  809. 장자 외편 천도편. 얼핏 형이상학적인 직관처럼 보이지만 기실 이 부분의 취지는 기왕의 인륜질서에 대한 긍정이다. 군신이나 부자 등 인간사회의 '순서'들은 마치 자연세계에 춘하추동의 순서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마땅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도편의 저자는 만약 누군가가 도에 관하여 말하면서 이러한 인륜질서상의 자연스러운 순서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그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주장한다.
  810. 흐르는 말은 근거 없는 말이다. '유설(流說)'이나 '유언(流言)'은 모두 근거없는 허망한 소리를 말한다.
  811. 중용 제 4장. 주희의 주석에 의하면 현명한 자는 실천 쪽으로 지나치게 쏠려 있어서 앎을 지극히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812. 일역판은 본령이 '유가의 학문'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아래 이어지는 문답을 보면 그보다는 진리의 핵심적인 부분을 말한 것으로 풀어야 좋을 듯하다.
  813. 일역판을 따라 '사(似)'를 정도상의 비교열위를 나타낸 것으로 풀었다.
  814. 논어 11:25. 공자가 제자들에게 포부를 물었을 때 증점은 '늦봄에 봄옷이 다 지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아이 예닐곱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증점은 증자의 아버지이다.
  815. 현행본 논어집주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816. 그 말이 고원한데 비하여 행실은 법도에 구속되지 않아 종종 선을 넘었을 것이라는 것이 증점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정주학파의 통상적인 해석이다.
  817. 질문자의 의견에 동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