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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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를건너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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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가시면 방학때나 오시겠지요?』

『그럼오구말구. 그렇지만 올 여름에야 어떻게 오겠수. 겨 울 방학에나 다녀가게 되겠지』

『아무튼 일년에 한번씩은 만나게 되겠지요. 아아 일년에 단한번! 그렇지만 꼭 칠월칠석이 아니라두 견우(牽牛)처럼 나를 찾어 오시겠지요 네』

『아-니 왜 내가 데릴사위요? 겨을러서 일을 안허다가 하 늘 나라에서 쫓갸났수? 날더러 견우라구 그러게』

『흐흐흐 일테면 그렇단 말슴이야요. 일년에 한번씩밖에는 못만나게 되니깐요』

인숙은 별빛에 어리인 봉환의 얼굴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들여다보며 웃는다. 그 옷음은 다시 애달픈 이별의 설음으로 변하고 속눈섭에는 어느겨를에 다 시 이슬이 맞첬다가 방울 방울 떨어진다.

남편이 떠나는 전날밤 인숙은 밤늦도록 방문을 닫어걸고 앉어서 남편의 짐을 쌓다. 초저녁에 장집에 다녀서 이튼날 아침차로 떠나기로 마추고 돌아온 봉환은 연일노심초사를 해서 얼굴이 햇슥해 젔다.

『오늘은 맘놓구 일즉암치 주무서요.』

하고 인숙은 자리를 깔어 주었다. 그러나 봉환이가 비고 누은것은 벼개가 아니요 인숙의 무릎이었다.

도망군이라 무슨 행장이 부피랴만은 당장에 입고갈 옷도 만만치 않어서 야외로『사생』을 하러 다닐때 입든 학생복 과『스푸링코-트』에 떨어진 단추를 달고 화구를 넣는 나무 상자속에다가 는 그림제구를 빼어버리고 손가방 대신으로 얇은 속옷 두 벌과 손수건을 차곡차곡 개여넣었다.

『그림 그리러 나간다구 스케취 뻑쓰만 메구 나갈테요. 동 무들 허구 어느 절간으로 가는데 어쩌면 한 이틀밤 자구 올 는지두 몰른다구 엿줬으니까』

하고 담뇨 하나도 싸지못하게 하였든것이다.

인숙은 봉환의 머리무게에 무릎이 제리것만 그보다도 이밤 만 밝으면 지금 눈앞에서 숨결 보드랍게 잠이든 남편의 청 수한 미목을 적어도 삼백육십여일이나 보지 못할 생각을허 니 마음속까지 제려올르는 것을 느꼈다.

양복 속주머니가 해여저서 너털거리는것을 한땀 한땀씩 꼬 매다가 노자할것 삼십원만 남기고 남어지 오십원은 안포케 트 속에다 넣고 꼬매어 버렸다. 그리고는 사고무친한 객지 에서 단초 하나라도 떨어지면 뉘라서 꼬매주랴하고 떨어진 단초를 삼겹실로 얽고 또 얽고 하려니 바눌 끝은 단초 구녁 을 찾어서 꼬이지를 못한다.

(넉넉 하게는 못가도 좋은 길을 떠나는데 왜 내가 사위스 럽게 눈물을 흘닐가보냐) 하고 몇번이나 마음을 꾸짖어도 제무릎을 비고 누어서 곤 히 잠이든 남편의 얼굴을 나려다 볼때 저절로 눈두덩이 뜨거워지는것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밤은 저역시 고달푼 몸을 봉환의 품에 안겨서 폭은히 쉬었다.

이튼날 아침 인숙은 남편의 밥상머리에 앉어서

『아침이 일러서 깔깔 허시드래두 든든히 잡숴 두서요』

하고 한술이라도 더뜨기를 권하였다. 그날은 서방님이 절 간으로 그림을 그리러 간다고 일은 아침을 시켰든것이다.

그보다도 봉희가 대방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더니

『나두 오늘 원족을 간다우』

하더니 책보에다가 변또를 싼다.

(같은 차나 타게되지 않을까) 하고 봉환은 가슴이 덜렁해서

『넌 어데루 가니?』

하고 물으니까 봉희는 목소리를 나추어

『저-부산까지요』

하고 곁눈으로 할끔할끔 오라비의 눈치를 보며 의미 깊은 웃음을 웃는다.

(이를 어쩌나 조 약어빠진 계집애가 벌서 눈치를 챗나보다.

그럼 아버지 어머니두 내가 도망을 가려는것을 아섰겠구나) 하고 봉환은 눈이 휘둥그래서 인숙의 얼굴을 처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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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근 아씨는 가시는줄 알아요』

인숙은 안심하라는듯이 웃어보였다.

『나꺼정 속이면 되우? 안직 학교 시간이 일르니깐 언니 대신으루 정거장까지 나갈테야요』

하고 누의의 말에 비로소 봉환은 마음놓고

『얘 나와선 멀허니 그러다 나종에 아시면 너까지 혼난 다』

하고 셋이 솟발같이 앉어서 말을 주고 받는데 뜻밖에 늦인 아침때에야 일어나는 인숙의 자근 동서가 헐개늦인 매무새 를 고치며 대문으로 나온다.

『아, 어린애가 배탈이 나서 밤새도록 자반 뒤집기를 했는 데 누가 약이나 먹일생각을 해야지하고 치마끈을 다시 매느 라고 몸을 뒤흔들더니

『오늘은 무슨 조반이 이렇게 일러』

하고 혼잣말 하듯 하고는 잠을 못자서 핏발이 선 눈으로 세사람을 흘겨 보고 대방으로 들어간다.

『내 그저 아침 먹을 새가 없다니깐』

하고 봉환은 저까락을 탁놓고 일어 섰다. 인숙도 자근 동 서의 눈에 띠운것이 매우 재미가 적어서 (진작 상을 물닐걸) 하고 후희를 하였다.

봉환은 발끝을 절으며 사랑댓문으로 나가고 봉희는 안 뒷 문으로 빠저나갔다. 인숙은 작별의 인사도 변변히 못했다.

남편은 댓돌로 나려 서면서 『스케취빡쓰』를 받을때 저의 손을 잠간 쥐어 주었을뿐. 구두끈도 채매지 못하고 좌우를 도라다보며 허둥지둥 나가는 남편의 뒷모양을 분합유리창에 반쯤 몸을가리고 내어다보다가 남편의 그림자가 제 눈앞에 서 홀쩍 중문밖으로 살어지며 구도소리조차 멀어지자 (조금도 섭섭해 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으리라) 하고 이를 앙물며 참었든것이 가슴박차게 치밀어 올라서 속이 메시겨운것을 참는것처럼 두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제 방으로 나려갔다.

알엣목에 개켜논 이부자리에 이마를 부비며 흐드껴 울었 다. 밤새도록 두몸이 함께 덮다가 돌돌말어논 이불에서는 아직도 남편의 체온이 따스하게 제몸으로 옴겨드는듯 그 이 불을 끌어안고는 눈이 붓도록 울었다. 버젓하게 떠날 사람 을 도망군이처럼 빼어돌리고 정거장은 커녕 대문깐 까 지도 전송을 하지못한 생각을 할사록 제몸의 반쪽이 떨어저 다라 난것 같어서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어쩌자구 내가 이럴가. 어른들이 눈치를 채시면 어떡헐라 구) 하고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어나서 다시 분세수를 하고 전날 보다도 더 곱다라케 머리를 쪽찌고는 아침문안을 들이 러 산정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옴겨 놓았다.

정거장에는 장발이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용허게 빠저 나왔네 그려 난 나오다가 불잡힌줄만 알었 네』

하면서 활발하게 봉환의 손을 잡어 흔든다.

장발이도 교외로 사생이나 하러 나가는 모양을 차러고 나 왔다.

봉환이가 차표를 사가지고 오니까 봉희는 매점에 가서 오 라비가 좋아하는 설고와『초코랫』한 상자를 사들고 대합실로 와서

『차 속에서 잡수서요』

하고 내밀더니 금방 눈물이 앞을 가려서 교복 소매로 얼굴 을 가리며 돌아선다. 봉환이도

『이건 뭘 사왔니!』

하면서 여러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눈을 꿈 적이며 고개를 돌닌다. 어려서부터 툭하면 싸우다 못해 서 로 꼬집고 쥐어뜯기까지 하면서 자라난 남매간이엇만 그럴 사록 멀리 떠나는것이 섭섭해서 우애의 눈물이 저절로 솟아 올랐든것이다. 장발은 한참이나 서양여자 처럼 매끈하게 발 육이 잘된 봉희의 아래위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흘터보더니

『자네 매씬가?』

하고 봉희의 편으로 눈하나를 찌긋해 보이며 친구에게 물 어 본다. 봉환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야 평생 첨보는 미인인걸. 조선에두 저렇게 체격이 훌륭 한 여학생이 있는줄은 몰랐네』

하고 부르짖듯하고는 장발은 면구스럽도록 흘끔흘끔 곁눈 질을 허는데 개찰구가 열렸다.

기적이 울고 기찻 바퀴가 미끄러지듯이『프랱트, 폼』을 굴러 나간뒤 까지도 장발의 시선은전송하는 사람들틈에 끼 어서 손수건을 흔들고 선 봉희의 애런한 자태를 아득이 먼 데까지 껄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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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와 하관(下官)서 잘간다는 봉환의 엽서가 오고 동경 까지 무사히 도작해서 장발이와 같은 하숙에 들었다는 봉하 엽서가 왔다. 그러나 집으로는 통신을 할수가 없어서 떠나 기전에 복순이가 부처있는 집으로 편지를 하기로 약속을 하 였기 때문에 봉환의편지는 복순의 손을 거처서 인숙의 손으 로 들어갔다.

봉환이가 떠난지 사흘만에야

『이틀밤만 자구 온다든 애가 어째 그저 들어오지를 안느 냐』

하고 시보무는 며누리를 불러 세우고 물었다.

『전 몰으겠읍니다』

하면서도 인숙은 머리를 들지못하였다. 어른에게 해보지 않든 거짓말을 하는것이 양심에 괴롭것만 남편이 편지가 시 부모에게 즉접 오기 까지는 무슨일이 있든지 바른대로 말을 할수가 없섰다. 도망간것을 알게된 뒤라도 저하고 몰래 의 론을 한뒤에 둘이 공모를 하고서 떠나보냈다는것은 눈치도 보히지 않으리라 하였다. 더구나 로자를 변통해 주려고 별 별 궁리를 다하든 끝에 한달에 한번씩 저금을 시겨주는 봉 희의 저금통장을 둘려서 오십원이나 찾어 내고 저의 혼인때 에 시집에서 해준 순금비녀며 가락지를 복순을 시겨서 삼십 원에 전당을 잡혀다가 백원도 못채우고 간신히 팔십원을 만 들어 준 그비밀을 누구에게 말할것인가. 봉희 역시 오라비 의 사정보다도 올케가 입살이 타도록 돈때문에 애절초절을 하는것이 보기에 하도 딱해서 저의 사천을 선설히 내여놓은 것이다.

부모가 알기만하면 큰일이 날테이니 봉희와 인숙은 어떠한 경우든지 이 비밑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만 되였다. 봉환이 가 종적을 감춘지 나흘되는 날은

『이얘가 필시 인간두 없는 산속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봉 변을 한게로구나』

하고 자작은 아들이 호랑이에게나 물려가듯이 호동을하는 일변 집언이 발칵 뒤집혀서 서울근처의 절간으로 사람을 내 여보내며 한편으로는 경철서에 수색원까지 제출하였다.

별당노인은 영판이라고 일흠이 난 장님을 불러다가 점을 치느라고야단이고 찾으러 갔든 사람도 허행을 하고 경찰서 에서도 아즉 보고가 없다는 통기를 받은 시아버지는 몇번이 나 며누리를 불러세우고 담뱃대를 들먹어리며

『그래두 너는 알테지』

하고 역정을 내었다.

『나가는 날 아츰에 너허구는 밥상머리에서 무슨 이야긴지 허는걸 자근애가 봤다는데 어째 모른다고만 허느냐?』

하고 시어머니는 며누리 앞으로 밧삭밧삭 닥어앉이며 문초 를 한다. 인숙은 시어머니의 시선이 저의 얼굴가죽을 박박 긁어내는것 같것만

『제가 어떻게 압니까. 어느 절엔가 그림을 그리러 나간다 구 조반을 일즉 허라는 말만 들었읍니다』

하고 머리를 들지못허는것을 보다 못해서 옆에섰든 봉희는

『새언니가 알긴 뭘 안다구 그러서요. 오빠가 나가면 어딜 간다구 고해바치구 단겼나요』

하면서도 (왜 그저 편지가 안올가) 하고 속으로 오라비를 꾸짖었다. 시부모가 그렇게 인숙에 게다 의심을 들것이 아니지만 그날 아츰 자근 며누리가 봉 환의 내외가 수상하게 귀속까지 하는것을 보았다는것과

『서방님의 생사를 모르는 판에 유산태평으로 바누질을 허 구앉었으니 내외간에는 무슨 이야이가 있는게 빤허지 않습 니니까』

하고 입을 뽀쪽하게 놀였든 것이다.

인숙은 새중간에 끼어서 살점을 어여내는듯이 괴로웠다.

더구나 거짓말을 한것때문에 한층더 마음이 아펐다.

(사관까지 정하였으면 얼는 편지를 허지 않구……그동안 무슨 연고나 생기지 않었나) 하고 여간 애가 키이지 않었다.

그러자 동경서 편지가 왔다. 우표딱지를 셋이나 부친 두툼 한 편지가 봉희에게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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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를 보고 그제야 봉환이가 동경으로 간것을 왼집안 식 구들은 놀라는 동시에 비로소 안심을 하였다.

『내-개 그럴줄 짐작은 했다. 편지 사연은 능청스럽다 만……그러니 저 학비를 뭘루 댄단말이냐』

하고 자작은 의외로 아들이 도망한것은 걱정을 아니 하였 다. 무엇보다도 학비를 대어줄 생각을 하니 입맛이 쓴 모양 이다.

인숙의 시어머니는 반가운 김에 눈물을 다 흘리면서

『대관절 그애가 무슨 돈에 일본을 갔단말요?』

하니까

『사내 자식이 어디가 그만 돈이야 변통할 주변이 없어서 뭐세 쓰겠오. 다 아비헌테 삼태기를 씨울게지』

하고 여전히 입맛만 쩍쩍 다신다. 봉희는 오라비의 편지를 읽어 들리고 나서

『그것 보서요. 동경가서 앉인 오빠를 작구만 언니 더러 찾어 내라시니 될말이야요』

하고 오금을 박고는 그편지를 슬그머니 인숙에게로 가지고 갔다. 인숙은

『어디 봅시다』

하고 남편이 시아버지 내외에게 한 만지장서를 단숨에 읽 었다. 읽어보다가는 우슴이 터저 나오는것을 킥킥 하고 참 었다. 주옥같은 칠필글씨로 그동안 별당할머님과 량위분께 심려를 끼처 들여서 천만 죄송하다는 인사를 한바탕 늘어 놓구 나서 집안식구의 안부를 일일히 물은후

『큰형으로 하야 집안에 큰 걱정이 생긴것을 제눈으로 보 고 유학을 가겠다는 말슴이 인자의 도리에 참아 나오지를 안사와……』

하고 열서너장이나 쓴 편지 사연은 바로 아버지 제삿날 삼 청동 뒷산에서 일러 주든 고대로 외여 두었다가 볏겨놓았든 것이다. 봉희는 까닭도 몰으고 따러 웃으며

『나두 조마조마 해서 아주 혼이 났우. 인전 죽어두 거짓 말은 다시 않얼테야. 도적놈이 남의 물건을 훔치구 어떻게 사는지 몰라!』

하면서 혀끝를 회회 내둘른다. 그러나 인숙의 자근 동서가 어느틈에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와 남매의 등뒤에서

『뭐시 그렇게 재미가 나서 웃나? 어째든 인젠 맘들을 놓 겠군』

하고 입을 실룩거리며 (너이들이 인제두 날 속일려구) 하는 듯이 빈정거린다.

『웨 우리는 웃지두 못허우 자근 언인 웨 그렇게 서홉에 참견 닷곱에 참견요? 남의 말을 못하면 아마 몸살이 나나 봐』

하고 봉희 역시 그동안자근 오라범댁의 소위가 여간 밉쌀 스럽지 않든 차에 별르고 벌렀다가 한마디를 바로대고 쏘았 다. 인숙도 (그런 말을 들어 싸지) 하고 제속까지 후련한듯 하였다. 자근 댁은 무안에 취해 얼굴이 뻙애저서 개기름이 들으르하게 흘는 콧구녁을 벌릉 거리며 씨근거리더니

『뭬 어쩌구 어째요? 자근 아씨두 그게다 말이라구 허우?

남의 말을 못해서 몸살이 난다니 아 그래 서방님은 내 시둥 생이 아니란말요? 서방님이 몰래 떠나신 줄을 몰랐으면 그 날 아츰에 저댁이 무에 그렇게 별안간 설어서 눈이 붓두록 처울었어? 입은 빗뚜러젔어두 주라는 바로 불랬다구, 난 낯 이 간지러워서 어른 앞에 그렇게 가짓말은 못허겠읍디다』

하고 어깨로 숨을 쉰다.

『저야 울든 말든 형님이 그렇게 걱정되실게 뭬있어요?』

인숙도 빨끈해서 처음으로 손윗동서에게 불순하게 한마디 를 던젔다.

그뒤로 자근 댁은 인숙에게 대 극성스럽게 굴었다.

눈이 뻙개서 없는 험이라도 잡어내지를 못해서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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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XX여학교 고등과 일학년에는 보결생 하나가 들어왔다.

쪽젔든 머리를 틀어올린것이 어뜻 보기에도 눈에 서투르고

『자부라』를 둘를 짧은 치마 아래로 덩그머니 들어난 두다 리는 부끄럼을 타는듯 구두도 새로 마추어 처음으로 신은듯 볼이 끼어서 되뚝 되뚝 걷는것이 손가락으로만 건드려도 넘 어질것 같다. 책보를 누가 빼아서나 가는것처럼 끄러안고는 떠러트린 물건을 찾는사람 같이 땅바닥만 드려다 보면 걸어 다닌다. 상학하기전에 나이어린 동급생들은 이층 교실에서 행길을 나려다보며

『저것봐. 색시 학생이 잘독거리구 오는군』

『저렇게 구두코만 드려다 보면서두 길은 곳잘 찾어 댕겨, 그래두 시간은 역낙없이 대오거든』

『그래봐두 귀족의 며느리라지』

하고『색시학생』이란 별명을 지여가지고는 저이끼리 재절 거렸다.

그 여학교의 교장은 박복순의 소개로 특별이 그 학생을 보 결생으로 받을때

『그저 아명밖에 없다니 어디 됐다. 금년에 우등 첫지로 졸업헌 학생의 이름이 인숙인대 성이 다르니 상관없겠지.

이름이란 아무리나 지어 부르면 고만이니까』

하고 임시로 이름을 지어 출석부에 올렸다. 그리하야 이제 까지 방울이란 아명밖에 없는 윤자작의 셋재 며느리는 비로 소 이인숙이란 이름을 얻게된것이다.

시부모는 벌서 아들이 도망간것을 용서하고 마음이 훨신 풀려서 다달이 돈백원씩이나 학비를 보내주게 된뒤에 인숙은

『이제는 때가 왔아오니 쇠뿔도 단결에 빼야한다고 집안에 다른 걱정이 더 생기기 전에 학교다니는 일에 대하야 내외 분께 단단히 상서를 하여주소서』

하고 봉희에게 대서를 시켜 연통을 하고 떠나기전의 약속 을 이행해 주기를 재촉하였든것이다. 즉접으로 편지를 할생 각은 간절하였어도 어쩐지 저의 필적을 보이기가 새색시 처 럼 수집고 열적은 생각이 들어서 이제것 한번도 바로대고 편지러를 하지않었든것이다. 그런지 열흘뒤에 온 아들의 편 지를 본 자작 내외는

『온 나종엔 별소리가 다많구나. 시집살이 하는 여편네가 별안간 학교 공부란 어디 당현 소리냐. 자식이 미거 해두 분수가 있지』

하면 마누라는

『그래두 남허는건 봤구려. 보선본이 본이지 그런데 다 본 인가. 참다케 시부모 봉양허구 있는 여편네를 머리를 틀어 올려서 끌고 댕기구가 싶은감 남편이 나오면 자식이나 나서 길르다가 살림을 나면 고만이지 다늦게 학교공부란 다 뭐 야』

하고 혀를 차며 두말할 여지가 없이 반대를 하였다. 그들 보다도 시조모는 그말을 듣자마자

『그게 무슨 집안 망할소리냐. 난 죽어두 그런 꼴은 안보 겠다』

하고 펄펄 뛰었다. 그러자 봉환에게서는 두번 세번 연거퍼 서 편지가 왔다.

『제댁의 일은 본시 남편된 제가 알어서 처리할것이오니 부모님도 그다지 반대할 권리가 없으실것입니다. 그렇게 고 집을 하시다가 일후에 무슨 불행한 일이 생기면 내외분께서 그 책임을 지시겠읍니까』

하는 강경한것을 지나 사뭇 위협에 가까운 사연이었다.

한편으로는 복순이와 봉희가 들고 일어나든이

『그렇게 욱이시다가 동경 곁은데서 안목이 잔뜩 높아가지 고 와서 학식이 없구 이해를 못헌다구 소박을 허거나 심하 면 이혼을 허자고 달려들면 그땐 어떡 허실테야요?』

하고 어디 누구도 소박을 맞고 쫓겨갔고 아무개의 며누리 도 이혼을 당하였다는 일례를 들어서 며느리를 내놓기를 한 사코 권하였다. 그러면 인숙의 시어머니는

『설마 그애야 그럴리가 있나. 너무 의초가 좋아 걱정인 데』

하고 탄평으로 여기면 복순은

『설마가 사람을 죽이고, 믿는 남게 곰이 핀답니다. 하두도 열두번씩 변하는것은 사나히 마음 일걸요』

하고 열성을 다해서 관고를 하였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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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속에 가첬든 새는 놓여 나왔다. 아직도 나래를 펴고 그 립든 창공을 훨훨 날러 다닐 자유는 없으나마 어쨌든 두겹 세겹 철사를 얽어논 창살을 벗어 나와 울밖에 공기를 호흡 할수는 있게되었다.

몇십년 철창생활을 하다가 졸지에 옥문을 나선것처름 인숙 은 처음 대문밖을 나서자 모든것이 얼떨떨 하였다.

평생 보지도 못하든 뭇사람들이 어깨를 스치며 오고가는 틈을 부비고 큰길 거리를 걸어 다니랴면 천사람 만사람이 모다 제얼굴과 급히 꾸민 여학생의 어색한 제 모양만 눈여 겨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지나가는듯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남자의 구두 소리가 뒤를 바싹 따러만 와도 얼굴이 붉어지 고 발길이 잘 내키지 않었다. 얼마동안은

『새언니 내 아침마닥 데려다 죽게. 길을 잃어버리구 누구 한테 업혀나 가면 어떡허우』

하고 인숙이가 학교에 다니게 된것을 누구 보다도 기뻐하 는 봉희가 아침마다 올캐가 입학한 학교정문까지 바래다 주 었다.

『인전 고만두. 나혼자 댕길테니』

하고 인숙은 구지 사양을 해서 근자에는 혼자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시집의 대문밖을 하로 한번씩 벗어나서 혹시 일즉 파하는 날이면 상청동 친정에 잠시 들르고 학교 근처인 복 순의 사숙을 찾게되는 자유는 생겼으나 한번 단여만 들어가 면 틀어올린 머리를 쪽저 나리고 옷을 갈어 입은후에 층층 시하의 절제를 받고 전보다도 더 한층 며누리 노릇을 깍듯 이 해야만 하다. 더구나 얼맛동안은 시조모를 속이고 다녔 든것이다.

(동서들 헌테라도 학교엘 다니드니 전과 달러 젔다거나 마 음이 변했다 거나 하는 말을 들을가 보냐) 하고 매사에 주의를 거듭하였다. 그러지 않어도 맏동서는

『서방님이 허라구 허시는대두 헐밖에 도리가 있나. 나두 진작 학교에나 댕겼드면…』

하고『시앗을 둘씩이나 보지는 않었을지 모른다』는 말까 지는 참아 못하고 둘이어 인숙이가 학교에 다니게 된것을 찬성 하였다. 그러나 자근 동서는

『그러질 말구 아주 동경까지 따러가지. 나같으면 따러갈 테야. 누가 시켜서 서방님이 그런 편지를 헌줄 알어. 고 참 개 굴레 씨도록 약어빠진 새댁의 초사지. 떠나기 전에 벼겨 머릿 공사를 했거든 보지 않었어두 빤-허지 뭘』

하고는 어린애를 둘씩이나 끼고 앉어서

『학교엘 댕길테면 나처럼 생과부가 된 사람이 댕겨야 해』

하고 까닭없이 인숙이가 학교에 다니는것까지 거염이 나서 입을 삐죽거리며 저혼자 중얼대였다.

인숙도 그런 눈치를 채이지 못한것은 아니건만 그럴사록 말성을 부리지 않도록 입마금을 하느라고 어린애도 얼러주 며 전보다도 더 부침성이 있게 굴었다.

이래저래 인숙은 처신하기만 더 어려웠다. 학교는 봉희와 함께 몇햇동안 어깨 넘어로나마 보고 배운것이 큰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봉희가 열심으로 보다줄뿐아니라 (어린 학생들 헌테 떠러지면 그런 창피가 어디 있소) 하고 지악스럽게 뒤를 따러가고 번히 밤을 세워 가면서 눈 을 까뒤집다싶이 하고 복습을 하였다. 그러나 실지로 배워 보니 뜻밖에 고등과 학과가 힘에 부치고 그중에도 어학이나 수학같은 것은 벅차서 처음 얼마동안은 봉희와 꼬박이 밤을 새워가며 교과서와 씨름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났다. 어느날 인숙 은 심기가 불편하여서 하학종 치기를 간신히 기다려 집으로 돌아왔다.

(삼정동에 다녀 온지가 벌서 한주일이나 되었는데) 하고 친정편으로 저절로 발길이 돌아서는 것을 (아이 골치아퍼. 내일이나 가지) 하고 바로 돌아왔다. 쓸쓸한 제방으로 들어가 머리를 다시 빗고 옷을 갈어 입고는 잠간 누어있자니까 계집하인이 종종 걸음으로 들어 오더니

『새아씨 전화 받음쇼. 사랑에서 안으로 돌린걸 마님께서 받으섰는데 얼핏 나와 받으시랍니다』

『전화가 왼일이야. 누가 내게다 전화를 걸었서?』

하고 인숙은 피곤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발딱일어 났다.

『사내 목소린데 꼭 새아씨를 대달란대요』

하고 계집 하인은 쪼르르 나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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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서요? 네 네 나야요. 네 옵바가 웬일이서요?』

인숙은 말이 새어 나가기나 하는것처럼 수화기를 귀에다 꼭 대고는

『네? 아 언제버텀요? 밤새 그렇게 대단하서요?』

놀라움에 떨리는 손으로 전호통을 더 바싹 잡어 다리더니

『그럼 여쭤보고 곧 가겠어요』

하고 맧이 풀려서 전화를 끊는다. 어느 겨를에 두둔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가 밤새 병환이 더치서서 인사불성이시라구 오라 비가 전화를 걸었읍니다』

한마디를 하고 인숙은 시부모의 허락을 받을 사이도 없이 옷도 길어 입지 못하고 뒷문으로 급히 나갔다. 시어머니는 곧 하인하나를 뒤따러 내보냈다.

그동안 경직과 가치 사는 여자(뚝섬집이라고 불러 두자)가 또 당삭이 되여 배는 맹꽁이 부럽지 않게 부른데 해산 구완 은 커녕 조석을 끓여줄 사람이 없어서 사방으로 더부사리를 구하러다녔다. 그동안 드나든 더부사라가 늙은 사람 젊은 사람 할것 없이 거진 열아문이나 되것만 주인 여편네의 잔 말이 어찌 심한지 박여 나는수가 없고 제손으로 빨어야 할 더러운 빨래까지 시켜서 벅데기는 들오온지 며칠도 못되여

『팔자가 사나워서 남의 집을 살려니까 온 별 아니꼰 꼴악 선이를 다 보겠네』

하고 봇다리를 쌌다. 뚝섬집은 저의 친정집에도 데려다 불 일 만만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을 구하다 못해 『구리개』에 있는 직업소개소로 가면 안짬이고 더부사리고 간에 맘대로 골라잡을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남산만한 배를 안고 그리로 찾어겼다.

직업소개소 판장벽에는 지개꾼 같은 늙스구러한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어서 길바닥에서 주서서 모은 권연 꼬투리를 까 서 곰방대에다가 나누어 피우고 앉었다.

뚝섬집은 누구더러 물어보아야 할는지 몰라서 사무실을 기 웃거리다가 왜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인 엿장사 같은 젊은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앞으로 오는것을 보고

『저 어멈하나 구하러 왔는데 누구더러 물어봐야 허나 요?』

하고 물었다. 젊은 사람은 색주가 쇰직한 뚝섬집의 차림차 림을 훑어 보더니 갓지 않은 여편네의 되바라진 말씨가 아 니꼬은듯

『저리루 가보구려』

하고 턱으로 사무실 뒤에 집채를 가르치고는 침을 탁배았 고 돌아선다. 밤이면 노동자를 오전씩 받고 숙박을 시키는 대 여섯간쯤 되여 보이는 넓다란 마루 방에는 과연 이삽십 명이나 되는 젊은여편네 늙은 여편네들이 비좁게 뒤섞여 앉 었다. 뚝섬집은 (아이구 저렇게 우글우글하는걸 진작 와볼걸 그랬지) 하면서 종이로 발을 깨어진 유리창 구녁우로 철장에 가친 동물들을 들여다 보듯하다가 창밑에 쭈그리고 앉어서 훌쩍 훌쩍 우는 늙은 여편네를 보고

『저게 다 남의집 살려는 여편네들이요?』

하고 물었다. 늙은 마누라는 손가락으로 마루 바닥에다 코 를 힝 풀고는 안질이 난듯한 한눈을 찌끗 하고 뚝섬집을 쳐 다보더니

『참헌 계집애를 하나 데려갑쇼. 이게 내 손년데 시굴서 가지 올러왔어두 밥두짓구 빨래두 헐줄 안답니다』

하는데 곁에 쪼그리고 앉었던 머리를 땋어 느린 열서넛쯤 되여 보히는 계집애가 두눈이 새빨개가지고 힐낏쳐다본다.

『싫여, 그까진 계집앤 데려다 메세 쓰게』

하고 뚝섬집이 머리를 흔드는데 등뒤의 사무실 유리창을 왈칵 열어제치는 소리가 나더니

『고기서 말이 하논거시가 누구야 이리로 와』

하고 백통테 안경을 쓴 사무원이 소리를 빽 질렀다.

[편집]

사무원은 뚝섬집의 주소 성명을 적은후 해산 구완을 할 사 람을 구하려왔다는 말을 듣고 장부를 들추어 보더니

『삼원짜리가 오대 있나』

하고 머리를 흔들다가 종이쪽지에다 무어라고 두어줄 적어 서 급사를 준다. 사무원이 삼원짜리는 없다고 한 말은 사실 이다. 『옥상』이나『곤방와』같은 말을 몇마디 나마할줄 아는 이른바 오마니는 진고개 방면으로 필려간다. 그네들은 소불하 한달에 칠팔원을 받고 대관의 관저 같는데로 지시가 되면 십오육원까지 월급을 타는『오마니』로서의 고급자가 있다. 얼룩덜룩한 솜포대기에 어린애를 업고『게다』짝을 껄고 다니는 『기지배』만 하더라도 근자에는 금이올라서 오원육원은 의레히 받는다.

그러니 값비싼 사람이 뚝섬집의 차례에 올리가 없었다.

조금있자 한 삼십쯤 되여보이는 여자가 급사의 뒤를 따러 들어왔다. 문턱에가 멀찍암치 서서는 어릿어릿하고 사방을 둘러 본다. 뚝섬집은 제가 데려갈 사람의 아래우를 훑어본 다. 키는 멀숙하게 큰데 아무 특증이 없는 얼굴은 병든 누 에모양으로 누-렇게 들뜨고 눈두덩은 울고난 사람처럼 푸석 푸석하다. 뚝섬집은 첫눈에 들지를 않었다.

『하필 저렇게 거지 궁등이 같은게 걸렸어. 굼띠디 꿈띠게 생겨 먹었으니 저따위를 다려다가 속이 상해서 어떻게 부려 먹는담』

하고 마땅치 아너하는 눈치를 본 사무원은

『일이가 옵소까?』

하고 묻는다. 그러나 뚝섬집은 싫다는 말이 아니 나왔다.

관리(그는 직업소개소 사무원을 경관이나 무슨 관리로만 안 다)가 불러다 대여준 사람을 싫다고 했다가는 당장에 호령 이 나릴가보아 검이 낫고 또한편으로는 집에서 나올때부터 아랫배가 땅기고 뻐처서 (이러다 전차속에서 낳지나 않을가) 하는 판이라 그래도 말이나 시켜보고 데려가리라 하고

『전에 남의집 살어 봤나?』

하고 물었다.

『첨이야요』

하는 대답은 목구녁속으로 기어 들어가는듯 그러자 사무원은

『오서가 다른 일이가 바뻐쏘쟈 나이까』

하고 두여자를 쫓아 내듯 하였다. 더부살이감은 아무말없 이 옷보퉁이 하나를 끼고 뚝섬집의 뒤 따라섰다. 그저 아침 도 못 얻어 먹은듯 기신이 하나도 없이 흐느적거리며 배불 뚜기 여편네를 무장적하고 따른다. 월급이야 받건말건 위선 당장에 주린 창자를 채우기가 급한 눈치다.

전차에 간신히 기여 오르자 뚝섬집은 어린애를 비릇기 시 작한다. 얼굴이 흥당무가 되어서 전차 창살을 부뜰고 매달 렸다가 때굴때굴 굴러 나리려는것을 더부살이가 부짭어앉히 고 간신히 진정을 시켰다.

전차에서 나린 뚝섬집은 인력거를 불러타면서

『찬찬이 갈테니 따러 와』

하고 삼청동으로 올라갔다. 인력거가 아무리 찬찬이 간다 하여도 몇기나 곡기를 끊은 사람이 다름질을 해서 그 뒤를 쫓어 가기는 참으로 어려운 노릇이었다. 얼굴과 등어리에 진땀이 쭈르르 흐르고 아랫두리가 풀려서 쓰러질듯 쓰러질 듯 한것을 몇번이나 성벽을 짚고서서 진정하다가 죽을 힘을 다 내서 다시 먼발치로 인력거뒤를 따러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뚝섬집의 어머니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온 저런 길바닥에다 순산을 할번했구나.』

『남편이구 목뚜깨비구 어쩌면 당삭된 여편네를 혼자 내버 려두구서 며칠씩 안들어온단말이냐』

하고 말도 못하는 딸을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제야 허덕거리고 문지방을 넘은 더부살이는 줄줄이 흘러 나리는 얼굴의 땀을 소매로 씻고 조금 숨을 돌리더니

『찬 밥이라두 있거든 한술만……』

한마디를 간신히하고는 부억 문턱에가 턱 쓰러진다. 뚝섬 집의 어머니는

『사람두 귀허다. 어디가서 비렁방이를 데려왔구나』

하고 혀를 끌끌 차며 찬장문을 열고

『자. 아씨 대궁이니 요기나 해』

하고 반사발쯤 남은 찬밥과 외지쪽을 내주고 들어간다. 더 부살이는 정말 걸신이 들린 비렁방이처럼 찬밥덩이를 손으 로 움켜 목이 메도록 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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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죽겠네 애고머니-아이고오』

안방에서는 당장에 죽는 소리를 한다. 어린애가 금방 나오 는 모양인데 늙은 마누라 혼자 황급해서 혀둥지둥 하다가

『여봐, 어멈, 얼핏 이러좀 들어 오게』

하고 더부살이를 불러 들였다. 뚝섬집의 어머니는

『건넌방에석 멀허는 셈야. 이런때두 꿈쩍못허구 알어 누 울 지경이면 애진작 갈데루나 갈게지 자기 혼자 늙었나』

하고 건넌방으로 대고 입을 삐죽어린다. 실상 건넌방 노인 은 손여를 끼고 누은채 기항이 되여서 밖에서 굿을 하여도 몰을 지경이다. 가뜩이나 등신만 남은 늙은이가 제때에 미 음 한목음도 얻어 마시지를 못해서 아조 까무러친채 이틀이 나 지냈다. 손녀는 뚝섬집에게 구통이를 쥐여 박혀가면서 힘에 겨운 심부름도 하고 빨래하는것까지 거들다가 여름부 터 학질에 걸닌것을 금계람한봉지도 먹이지 않고 내버려두 어서 날마다 저녁때면 한축씩 떨고 알었다. 지친끝에 얻어 먹지도 못해서 아조 피골이 상접한 꼴은왔 참아 볼수가 없 게되였다. 인숙이도 이래 저래 근 열흘동안이나 들여다 보 지를 안어서 더 말슴들이 아니였든것이다.

더부살이는 찬밥 몇덩이에 기운을 좀 차린듯 안방으로 들 어갔다.

『게 앉어 아씨 손을 꼭 쥐어 주께』

하는 마누라의 명려에머리맡에가 앉이며 자반뒤집기를 하 는 뚝섬집의 손목을 힘껏 쥐어 주었다. 남의 집에 오자마자 그런일을 당한 더부살이는 비지땀을 뚝뚝 떨어트린다. 까땍 하면 두 생명의 생사가 달닌 일이라 겁이 더럭 났든것이다.

한 두시간 동안이나 뚝섬집은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사람 살유』

하고 입살을 깨물고 뱃가줄을 찢기는듯한 소리를 하며 더 부살이의 팔을 끌어 다리고 소매를 끌어뜯고 하더니 그제야 아이가 문을 바로 잡고 나오는지 마누라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하면서

『화병에 물쏟아지듯 합소사. 그저 화병에 물쏟아지듯 합 소사』

하고 축원을 한지 일분도 못되여서 공화고 마지막 힘을 쓰자

『으아-ㅅ』

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신통해라 삼신님 고맙습니다 고초자지를 점지 허 섰구나』

하고 이번에는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다가

『어멈은 나가서 어서 밥을 짓게 찬장에 미역이 있나보니 일변 국두 끓여야지』

하고 수선을 부린다.

더부살이도 어찌나 애가 키웠든지 시들은 호박꽃같이 누렇 든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였다가 부억으로 나려가며 후- 하고 숨을 돌렸다. 힌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여논지도 세시 간이나 되였것만 산모는 후산을 못해서 신음하는 소리는 더 욱 높아 간다.

『이를 어쩌나. 생사람을 죽이겠구나』

하고 마누라가 더한층 안절 부절을 못하는것을 보다 못해 서 더부살이가

『모발을 엎어 높고 걸터 앉이면 났는데요』

하였다. 더부살이 역시 몸을 풀고도 후산을 못해서 애를 써본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어디 모말이 있나. 없으면 됫박이라두 깔구 앉어 보지요』

하고 두주속에서 됫박을 끄내다가 산모를 일으켜 한쪽만 걸터 앉게하고 일변 박아지를 들고 돌어와서 무릎에다 씨워 가지고 산모의 알엣배를 슬슬 문질러 주었다.

그런지도 반시간만에 후산까지 무사히 하였다. 마누라쟁이는

『어멈이 않였드면 큰일날번 했지. 하마트면 죽을걸 살려 냈네 그려』

하고 더부살이등을 뚜드려주었다. 더부살이는 물을 데워다 가 바둥거리는 핏덩이를 씻겨뉘고 방안으로 하나를 휘질려 논 핏걸레를 뭉처가지고 나아가 수채에서 빨고나서는 태까 지 살르려고 장작을 집혔다.

그는 찬밥한술 얻어먹는 값으로 평생처음 보는 여편네의 비린내 나는 핏걸레까지 주물을수밖어 없었다.

그러자 안방에서 어린 애가 유난히 새되게 우는 소리를 그 제야 들은듯 건넌방 미다지가 힘없이 열니더니 경직의 어머 니가 뼈만 남은 얼굴을 내밀며

『순산 했다늬?』

하고 마당을 나려다 본다. 바로 마진짝 헛간 모통이에서 태를 살르느라고 부지깽이로 뒤적거리고 앉었든 더부살이의 눈은 건넌방 로인의 눈과 마조쳤다. 서로 한참이나 내려다 보고 치어다 보고 하면서 전기나 통한듯이 꼼짝도 못하더니 기연가 미연고 하면서도

『아 네가 누구냐?』

하는 경직의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래도 더 부살이는 꿈이나 꾸는듯한 표정을 하고치어다 보더니

『어머님!』

하고 벌덕 일어나 로인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편집]

경직의 댁은 전후를 돌아볼 사이가 없이 건넌방으로 뛰어 올려 갔다.

『네가 왼일이냐 응? 네가 어디서 알구 찾어왔니』

옛날의 싀어머니는 몽매간에도 잊지못하든 며누리의 손을 쥐고그 흑흑 느낀다.

『남의 집을 살러 왔는데……여기 계실줄은……꿈에두 몰 랐서요』

하고 지난날을 생각하고 복바처 올르는 울음을 참다가 경 직이 댁의 눈에 띠운것은 옷목에 처네자랄을 뒤집어 쓰고 짓처 늘어진 계집애였다.

그는

『아 이애가……』

하고 부르짖으며 두팔로 끌어안으며 눈도 뜨지못하는 얼굴 을 들여다보며 어렸을 때의 모습을 찾는다.

『그렇다. 그애가 네 딸이다. 일곱해 전의 네 자식이다!』

한마디를 간신히 하고 싀어머니는 픽 시러저 버린다.

일곱해만에 만나는 어머니와 딸! 그들은 서로 끌어 안고 말이 없다. 참아 내놀수 없는 것은 마음을 아귀가티 먹고 떼치고 갈때에는 능금빛 같든 두 볼이 지금은 여위다 못해 뼈만 불거저 옛날의 모습은 찾일길 없고 젖살이 올라 포당 포당하든 손등은 길바닥에 밟혀 죽은 개고리 발같지가 않은 가. 남들처럼 친부모의 그늘에서 자라는 아이같으면 벌서 학교에 들어가서 책보를 들고는 펄펄 뛰며 다닐 나이가 아 닌가. 음침한 방 한구석에서 햇빛도 쏘이지 못하고 송장이 다된 할머니의 곁에서 시들어 죽는 생각을 하니 경직의 댁 은 참을래야 참을수 없시 분하였다. 제뱃속으로 나은 소생 이라 핏줄이 켱긴다느니 보다도 (종없는 어린것을 이렇게 말려 죽여두 벼락이 나리지 않나) 하고 무심한 하늘이 야속하였다. 그동안 다만 하나인 혈속 이 그 얼마나 그리웠든가. 청미 공장에서 수건때기를 쓰고 온종일 쌀을 골르다가도 뭇득뭇득 어린것 생각이 나서 목판 우에 방울방울 떨어저 번지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윽개이기 를 멫번이다 하였든가. 오라버니 식구는 북간도로 거산을 한후 소식조차 곤처서 일갓집으로 찾아 돌아 다니며 소박댁 이 천덕군이 대접을 받고 연명을 하여오다가 막다른 골목으 로 더부살이 노릇이나 해보러고 직업소개소까지 찾어 갔든 오늘날까지 아침 저녁으로 이 딸 하나가 잘 자라기만 축원 을 하였다.

(어뒤서 뉘손에서 자라든지 친어미 괄시야 아니하겠지. 낯 설이 먹어 갈사록 철이 나면 어미 생각을 할테지) 하고 신세를 돌아보면 자결이라도 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로도 열두번돼이나 나는것을 지긋지긋이 참어 왔었다. 그 다지도 바라고 기다리든터에 오늘날의 이꼴을 대할때 어머 니의 눈에서 흘르는것은 눈물이 아니요 피였다. 구곡간장을 쥐어짜내는 피눈물이었다. 그는 두팔로 딸을 끌어안어 일으 키며

『얘야! 네가 어쩌다 이꼴이 됐니? 너를 버리구 간 어미의 죄는 열번 죽어두 싸다. 얘 간난아, 정신을 차려서 어미의 얼굴을 좀 찾어 보렴』

어머니는 눈물에 저진 뺨으로 딸의 얼굴을 부비며 손을 잡 어 흔들며 푸념을 한다. 그는 아직도 간난이란 일흠밖에 몰 랐든것이다. 간난이는 눈을 커다렇게 뜨고 눈물로 뒤발을 한 어머니의 얼굴을 정기 없이 바라보더니

『아이 배고파』

한마디를 간신히 하고는 다시 고개를 떨어 트린다. 그러자 안방에서는

『어멈, 아 태를 살르다 말구 그방엘 들어가서 뭘 허는거 야』

하고 소리를 질른다. 경직의 댁은 그제야 저의 몸이 한달 에 삼원에 팔려서 이집에 온것을 깨다른듯 딸을 내려 눕히 고 벌떡 일어나서 마루로 나갔다. 그는 힝나케 부엌으로 나 려가서 미억국에다가 힌 밥을 한대접이나 말어가지고 들어 왔다. 그는 안방에서 불러서 나간것이 아니라『아이 배고 파』한 딸에게 따듯한 국물이라도 한목음 마시게 해주고 싶 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였든 것이다.

『얘야 이걸 좀 마서라. 응 어서』

하고 딸의 억개를 잡어 흔드는데 대문소리가 요란히 나더니

『아 순산했나? 뭘 낳서?』

하는것은 경직의 목소리가 분명하였다.

十一[편집]

경직의 목소리를 들은 옛날의 안해는 들었든 국그릇을 떠 러 트릴번 하였다. 경직이와 마조친댓지 새삼스리히 놀라울 것도 없고 뚝섬집의 핏걸레까지 빨어준것도 운명의 짓구진 작란으로 돌니면 팔자 한탄이나 할밖에 없으렸만 자녀에게 대한 사랑앞에서는 압뒤를 살이지 안는 모성애가 간난이의 어머니로 하여금 참을수 없는 분로를 끌어 올렸다. 그는 입 살을 깨물고 그만 급하게 쉬고 앉었는데

『염체 어딜 들어와. 사면 나다니든 사람이 뭘보구 들어왔 는지두 모르는걸』

하고 일테면 장모쟁이가 구기를 하고 안방으로는 못들어가 게 하니까 경직은

『들어가면 어떠탄말요』

하면서도 갈데가 없어서 건넌방 문을 벌석 열었다.

경직은 방안의 광경을 살펴보더니 머리를 푹 숙이고 돌아 앉인 여편네를 보고

『누구요?』

하고 묻는다.

『…………』

경직은 딸의 입에 미역국 그릇을 대어 주는것이 더욱 이상 한듯

『아 누군데 말대답을 못해』

하고 재분참을 물으면서 허리를 굽혀 여자의 얼굴을 들여 다 본다. 간난의 어머니는 천천이 얼굴을 처들었다.

『아-니 이게!』

경직은 입을 딱 버리며 놀라서 한거름 물러 섰다. 세고에 찌들고 주림에 여위었었도 칠년전 안해의 얼굴을 알어보지 못하도록 경직의 눈이 무되였을리 없었다.

경직은 넘우나 의외읫 일에 어안이 벙벙해서 섯다가

『여길 뭐허러 왔오?』

하는것은 꾸짖는 어조다. 그러나 안방에서 들을가 보아 목 소리는 감히 크게 내지를 못한다. 간난이 어머니는 경직을 똑바로 쏘아보며

『해산 구완 해달래서 왔어요』

『뭐? 해산 구완을 허러?』

『나같은 사람이 무언 못허나요』

경직은 양미간을 잔뜩 찝흐리고 멀찍암치 떠러저 앉어서 한참이나 무슨 궁리를 하더니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지만 보다시피 이집에 더 있을 사 세가 못더니 산모가 알기전에 나가주 있는데만 알면 내 이 담에 찾으리다』

하고 주머니를 훔척훔척 하더니 해산준비로 변통해 가지고 들어온 돈 삼원을 끄내서 방바닥에다 밀어 놓는다.

간난이 어머니도 눈을 나려깔고 한참이나 생각을 해보더니 오장이 섞는듯한 한숨과 함께

『가라면 가지요』

하고는 물러 앉는다. 그러고는

『돈은 일없어요. 그걸루 어머님 약이나 지어다 들이서요.

난 아이 났는것 보아준 값으루 찬밥 한끼 얻어 먹었으니까 요』

하고는 일어 서랴다 말고

『얘야 나허구 같이 가자. 응! 정신을 좀 차려라』

하고 딸을 추슬러 업으려고 한다.

『그애를 어디루 데리구 간단말요?』

경직은 아비로서의 권리를 무시 당한듯이 펄쩍 뛴다.

간난이 어머니는 원한에 빛나는 눈초리로 경직을 흘겨보며

『즘승두 제 자식 귀여헐줄은 아는데 이 어린걸 생으로 굶 겨 죽이는 법이 어딨어요? 얘가 무슨 죄가 있길래 알어두 약한첨 안먹인 모양이니 그래 계집헌테만 눈이 어두면 자식 색기는 죽어두 괜찮탄 말슴이야요』

하고 악에 바처서 간난이를 일으켜 업고 일어서며

『내 자식 내가 데려가는데 말닐 사람이 누구야요. 길바닥 에가 쓸어지드래두 어미등에 업혀죽으면 저두 눈을 감겠 죠』

하고 헌털방이 처네 하나를 둘러가지고 나가려한다.

경직은 붓잡을수도 없고 아니 붓잡을수도 없어서 어쩔줄을 모르는데 벜을 향하고 돌아 누어서 혼몽히 잠이 든줄만 알 었는 어머니가 이상한 신음성과 함께 별안간 상체를 별덕 솟치더니 낭성거리로 덜컥 넘어 박힌다. 경직은 깜짝 놀라서

『어머니!』

하고 부르짖으며 어머니의 곁으로 달녀 들었다. 어머니의 숨은 벌서 끊였다. 사지의 온기도 싸늘하게 거첬다.

『아 이거 큰일났군!』

하고 경직은 밖으로 뛰어 나갔다. 『팔판동』까지 다름질 해 나려와서 어느 병원에가 전화를 빌어 인숙에게다 걸었든 것이다.

十二[편집]

기름이 말른 등잔이라 바람이 불지 안트래도 제절로 꺼질 터인데 일상 못 니처하든 며누리를천만 뜻밖에 맞난 경직의 어머니는 반갑다느니 보다도 몹시 놀랐고 지금의 집안 형편 을 생각하고 기가 꽉 막혀서 실낫같은 목숨을 고만 끓지고 만것이었다.

경직이가 전화를 걸러 나간 사이에

『어멈 오자마자 건넌방 구석에가 틀어 박혀서 멀 허는거 야』

하는 광목을 찟는듯한 목소리를 듣고도 지난날의 며누리는 차디찬 싀어머니의 손을 잡고

『괘-니 저때문에……』

하고 흐느껴 울다가

『저는 갑니다. 이 세상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제가 더 있으면 뭘허겠읍니까』

하고는 두손을 가슴에다 곱게 올녀놓고 이불 자락으로 얼 굴을 덮고는

『넌 나허구 가자. 죽어두 너구 나구 가치 죽자』

하고 뼈만 남은 딸의 것붓한 몸을 둘처업고는 발자국 소리 도 내지 않고 몰래 빠저 나갔다.

전화를 걸고 돌아온 경직은 모녀가 어대로 가고 없는것을 다행히 녁였다.

『더부살이가 밖으로 나왔는데 금세 어딜 갔어요』

하고 뚝섬집의 말에는

『알구보니 하필 먼촌으로 일가가 되는 여편네를 데려왔데 그려. 겔르기로 소문이 나서 가는데 족족 쫓겨나는 사람을 알구서야 둘수가 있나.

마침그애를 보구서 가엾다구 수양딸처럼 데려다 길르겠다 기에 돈원이나 줘서 업혀 보냈네』

하고 군색 하게 꿈여 대였다. 그러고는 바로 건넌방에서 어머니의 초상이 났다면 부정이나 탈가 보아 말도 못하고 저혼자 끝탕을 하였다.

인숙이가 허위단심으로 삼청동 개천을 끼고 올러 올때에는 벌서 해가 누엿이 넘고 북악산 그늘이 땅우로 덮여 나렸다.

인숙은 구멍가개의 추녀 밑으로 올러 오다가 계집애를 처 네 자락으로 윗두리만 푹싸 업고 가는 여편네를 바로 옷이 싯칠만한 거리에서 보았다. 인숙은 (어서 보든 사람같다) 하면서도 길것는 사람을 유심히 바라도 볼 경황이 없어서 그대로 지나첬다.

어머니의 림종까지 못한 인숙의 설음은 형용 할수 없었다.

넘우나 애통하든끝에 어머니의 시체곁에 쓸어진채 정신을 잃고 그날 밤을 지냈다. 외 아들의 마음이 변한 탓으로 노 래에 굶주리든 끝에 눈을 감겨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숨 이 지도록 내버려둔 생각을 하니 눈물도 나오지 않었다. 다 만 가슴 한복판에다가 못을 박는듯 곡그라진채 넋을 잃었든 것이다.

뚝섬집의 어머니는 방안에서 쩔쩔 매면서

『온 이를 어째. 늙은이두 쇠털같은 날에 하필 오늘 족는 담. 그러니 핏덩어리를 어떡하면 좋단말이냐』

하고 부정이나 타면 당장에 저의 딸이 죽기나 할듯이 소동 을 한다.

경직은 생각다 못해서 이웃집에 사정사정해서 방하나를 얻 어 산모와 어린애를 더려다 눕히고 나서 명색많은 고북 하 였다.

이제까지 여러번 초종을 칠어보고 누구보다도 열싸게 일을 분부하든 인숙이엇만 이번에는 얼이 빠지고 맥이 풀여서 어 머니의 얼굴을 떠들어보고는 울고 울고하다가는 그곁에쓸어 지고 할뿐 집안에 돈이라고는 새로 왔든 더부살이가 만저보지도 않고 간 삼원외에는 없었다. 경직은 이번에도 누의의 덕만 치어 다보는눈치나 인숙은 모르는체 할수밖에 없었다. 집을 그저 들어 있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한데 암사돈의 장사 비용까지 싀집에 기댈수는 없을뿐 아니라 자작이 호의는 있드래도 근 자에는 그만한 여유가 없는거야 어찌하랴.

경직은 제발에 떨어진 볼똥이 뜨거우니까 사방으로 구걸을 다녀서 몇십원을 간신이 얻어다가 뻬를 끊고 관까지는 겨오 하였다. 그러나 장삿날 쓸 비용이 없어 난감하든 차에 봉희 와 복순이가 조상을 왔다. 봉희가 제가 저금한것을 마지막 차진것과 어머니가 부조하는 돈을 전하였다.

그리하야 인숙의 어머니는 남편의 곁에는 눕지못하였으나 마 동대문밖 공동묘지의 한점 흙을 보탤수는 없었다.

十三[편집]

어머니의 장사를 지낸지 이틀만에 인숙은 시집으로 갔다.

과천집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들어 왔을때와도 달러서 남유 달리 자애가 깊든 어머니 마저 국기고나니 저의 몸은 무변 대해에 외따로선 나무와같이 바람이 조금만 부터도 넘어질 듯. 의지가지 없는 고단한 신세는 기대일곳이 없어 앉이나 서나 외롭고 애달픈 심회를 금키 어려웠다.

집안식구들이 다 잠이 든뒤에 그는 홀로 깨어 앉어서 가느 다란 초필 끝을 앞니로 자근 자근 풀어 간지 두루마지에다 궁체로 꼭꼭 박어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몇줄 쓰다가는 종이우에 떠러저 번지는 눈물 흔적을 지워가며 한줄 두줄 나려 썼다.

세월이 여류하와 집을 떠나신후 절기가 바뀌여도 일자 안 신조차 올리지 못하였아오니 불민함을 너그러히 용서 하실 줄 믿사오며 어느듯 금풍이 소슬하온데 객중 기운 강간하옵 시고 침식범절이 과히 불편치나 아니하시온지 주소 경경하 온 원념 침좌간에도 있자을수 없아오나 몽혼이 관산하해를 넘지 못하와 꿈에도 자서한 소식을 듣잡지못하옵고, 깊은 탄식으로 일월을 보내 오며 여기는 별당소절이 안녕하옵시 고 양위분 기후 일향 만강하옵시고 대곳 합내 태평하오니 다행이오며 아우님 통학 잘하고 공부 날로 진취하오니 기쁘 고 남매 의지하여 지내오든중 이곳은 죄얼이 심중하와 그동 안 편모 상사를 당하오니 일월이 무색한듯 천지가 아득하와 망극지통은 측량키 어렵사오며 상가 시일 덧없아와 초종을 치른지도 수일이 되오니 더욱 애닯고 서글픈 심회는 실로 일필난기이옵나이다. 선친 상사때에 우리 내외 참사하든 생 각 바로 어제런듯 간절하압고, 빙모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전까지도 어룰한 말슴으로 사랑하는 사위와도 사별키 쉬웁다 하시고 생전에 다시한번 보시기 소원이섰으니 자삭 된 마음이 어떠 하였겠압나이까 철천에 원한됨이 한둘이 아 니오라 비감한 심사 지향키 어렵사온중 장사후 집에 돌아오 자 양당 애홀하심이 날로 두텁사오니 종금이후로는 더욱 효 순코저 하오나 골육을 난오아주신 부모를 쌍망하니 혈혈단 신을 부칠곳이 전혀 없아와 다만 동녘하늘을 바라고 금의로 환향하옵시만 기다리자니 실로 앞날이 아득하오이다. 근자 에 념려하심과 양당의 처분이 바란 바에 지나 학교에 다니 게 되어 소원을 이루웠아오나 뒤늦인 터이라 부끄럼만 앞서 고 공부도 부실한중 봉진도 때에 믿지못할가 보아 매양 전 전 긍긍 하옵나이다. 오늘 밤은 동헌에 달이 유난히 밝사온 데 기러기 남으로 날고 은하난 서으로 기우오니 편모를 사 별하고 유정군자 마저 만리 타방에 떠나 보내어 생리사별에 눈물겨운 신세 부칠곳 없아오나 다만 간절히 바라압는것이 은 이곳의심사 산란할적 마다 한편에서는 학업이 더욱 진취 되시려니 허는 히망으로 스사로 위로하고 무색한 세월을 보 내오니 천금같으신 귀체를 삼가 보중하시고 공부 열심하오 서 회환하시는 날 기쁘게 맞기를 암측하옵고 두서없는 사연 을 이만 줄이어 아득히 은하 저편으로 건녀 보내오니 내내 객중 기운 여상하옵신 글월 반기옵기를 고대하오나 공부에 분망 하신터에 친필을 바라지 못하오니 아오님에게라도 안 부나 자조 들으면 심행이겠압나이다.

XX년X월XX일 죄인 윤인숙 소상장 인숙은 한발이나 되는 편지를 거의 단숨에 나려쓰듯 하고 도 가슴속에 첩첩히 쌓인 사연을 십분의 일도 그리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봉투에 접어 넣고 피봉까지 썼다. 남편에 게 필적을 보이기는 처음이라 획 하나라도 틀리면 흉을 잡 힐까 하는 처녀같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살짝 붉였다.

어느틈에 들어 왔는지 귀뜨라미 한마리가 쌍창 둣겁다지 틈에서 귀뜰거리며 인숙의 벼갯 머리를 밤깊도록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