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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탑/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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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幽靈의 집

중추원 참의 송춘식이네 집을 떠난 백진주 선생은 충복(忠僕) 배성칠(裵成七)이가 운전하는대로 자동차에 몸을 싣고 가회동 골목을 내려오자 외인편으로 커—브를 하여 돈화문 앞을 지나 창경원 긴 담장을 끼고 일로 혜화동을 향하여 부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성칠이, 이번 손에 넣은 저택이 혜화동에 있다지?』

『네, 혜화동 일대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저택이 올시다.』

『음, 군이 고른 집이니 내 마음에도 들겠지.』

만일 이 자리에 저 사냥꾼 신영철이가 있었다면 지금 배성칠이라고 불리우는 운전수의 얼굴이 저 황해바다 진주섬에서 신영철을 황홀찬란한 동굴속으로 안내하던 그 사나이와 똑 같다는 사실을 보았을 것이다.

이윽고 혜화동으로 접어든 자동차는 정원에 수목이 울창한 커—다란 이층 양옥 현관 앞에서 멎었다.

『선생님, 바루 이집이 올시다.』

배성칠은 먼저 운전대에서 뛰여내려 공손히 자동차 문을 열었다.

『음, 만족하지는 못하나 그만 했으면 쓸법하네.』

그때 자동차 소리를 듣고 안으로부터 아리(阿里)라고 부르는 충복이 또 한사람 뛰여나오면서 백진주 선생을 반가히 맞이하였다.

아리― 그는 벙어리였다. 그러나 이 중국인 아리는 비록 벙어리기는 하되 백진주 선생에게 있어서는 반시라도 없어서는 아니될 가장 영리한 충복이다. 산동성 쿠리—(苦力) 시대에 백진주 선생의 각별한 구원을 받은 후부터 아리는 이 주인이 만일 자기의 생명을 원한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바칠것이다.

백진주 선생은 반가히 맞이하는 아리에게 웃는 얼굴을 지여 보인 후에

『그런데 성칠이, 서대문 은행의 두취 장현도씨에게 내 명함을 보냈는가?』

『네, 제가 틀림없이 가지고 갔습니다.』

『음, 내일쯤은 장현도씨가 아마 나를 찾아 올테지!』

백진주 선생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그런데 성칠이, 아현정 별장은 어떻게 되였는가?』

그말에 성칠은 저도 모르게 후닥딱 놀래며

『네 네...... 매매계약은 무사히 되였습니다....... 그리고 원체 비여두었던 집이라, 오늘이라도 들을려면 들수는 있습죠만.......』

『음, 수고가 많었네. 그러면 어디 별장 구경을 한번 가 볼까?』

『네, 네.......』

어째 그런지 성칠의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알알이 떠올랐다.

『백선생님께서 명령하시는대로 그집을 손에 넣기는 했습니다만...... 백선생님이 쓰실 별장이라면 다른데두 있을법한데 하필...... 하필 왜 아현정 十八번지를.......』

성칠은 공포와 의혹이 깊이 서린 얼굴로 주인을 바라보았다.

『별장지대로는 서울에서도 아현정 고개가 그중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데,...... 아니. 내가 아현정 十八번지를 별장으로 산것이 자네에게는 불만이라는 말인가?』

『아, 아, 아니올시다. 그저...... 그저 공연히 무엇인가 마음에 걸려서.......』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해가 지기 전에 별장구경을 가 보세.』

그러면서 백진주 선생은 다시 자동차에 올라 탔다. 배성칠도 하는수 없다는듯이 운전대에 올라 다시 자동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이놈을 자백을 시켜야지! 그렇다. 직접 성칠의 입으로부터 내가 채 알지못한 비밀을 들어야 한다! 검사 유동운에 대한 무서운 죄악의 비밀을 상세히 들어야 한다! 유동운 검사의 죄악을 나는 아직 十분지 七八밖에는 모르고 있다. 남어지 十분지 二를 성칠의 입으로부터 직접 들어보자!」

부드러운 쿳숀에 깊이 파묻인 채 백진주 선생은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현정 고개에서 연희장으로 넘어가는 중턱에 굉장히 큰 구옥이 한채 있었다. 잔띠가 깔린 넓은 정원을 검은 널판자 울타리로 삥 둘러싼 구옥― 오래동안 비여둔 집이다.

어마어마 하게 큰 대문밖에서 자동차가 멎었을 때, 집지키 행랑 아범이 의아스러운 표정으로대문을 찌궁 열며 얼굴을 내밀었다.

배성칠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행랑아범에게 이집이 팔렸다는 말을 전하고

『이분이 오늘부터 이집 주인이요.』

하고 백진주 선생을 가리켯다.

『아, 그러신가요! 어서 들어 오십시요.』

행랑아범은 굽실하고 절을 하며 백진주 선생을 안으로 모시면서

『그럼 이집을 맡아 가지고 있던 김변호사와 매매계약을 하셨습지요?』

하고 백진주 선생을 처다보았다.

『나는 알수 없소. 모두 여기 있는 배군이 수속을 하였으니까.― 성칠이, 그랬던가?』

『네, 네...... 이 집 주인 오붕서(吳朋書)씨는 진남포에 계시는 분인데 계약은 이집을 맡아 가지고 있던 김 변호사와 하였습니다.』

『뭐, 오붕서?......』

하고 백진주 선생은 일부러 머리를 한번 기웃거리며

『오붕서라는 이름은 어디서 듣던 이름 같기도 한데.......』

『네네...... 나리로 말하면 시굴선 ᄶᅥᆼᄶᅥᆼ 울리는 분입죠. 정숙이라는 무남독녀 외딸이 한분 계셨는데 진남포서 유동운씨라는 검사 댁에 출가를 하시구.......』

『아, 나두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상 싶은데...... 아, 그 검사에게 시집을 갔던 따님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

『네네, 벌써 二十一년 전의 일입죠.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나리께서는 통 두문불출을 하시고 이집엔 그후 한두번 밖엔 발을 디려놓지 않으셨답니다. 모르긴 하겠죠만 따님이 돌아가신 원인이 암만해두 이집에 무슨 관계가 있는 모양 같습지요.』

『음, 검사대리 유동운 부인이 세상을 떠난 원인이 이집에 있다!』

백진주 선생은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힐끗 배성칠을 엿보았을 때, 배성칠의 얼굴빛이 백납처럼 핏기를 잃은것을 보았다. 그러나 백진주 선생은 그러한 배성칠의 공포에 떨고 있는 얼굴을 보고도 못 본척하고

『자아, 그러면 어디 안으로 들어가볼까?』

그러면서 벌써 어둑어둑 어두어진 정원을 께여 앞장을 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동안 비여두었던 넓은 대청에는 허—연 먼지가 자옥했고 그 대청을 사이에 낀 넓은 안방과 건느방이 모두 유령(幽靈)의 집처럼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다.

『아, 선생님!』

성칠이의 떨리는 목소리를 등뒤에 듣고 백진주 선생은 뒤를 돌아다 보았다. 배성칠은 그때 대청마루의 커다란 기둥에 몸을 기대고 좀처럼 발자욱을 떼지 못한다.

『아니, 자네 뭘 그처럼 두려워 하느냐 말이야, 응?』

성칠은 그어떤 무서운 과거를 회상하는것 처럼 물끄럼이 안방을 바라다보고 섰을 뿐이다.

『자네, 오늘은 정말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응?』

『싫습니다! 저는...... 저는 여기 서 있을텝니다! 아모리 생각해도 이런 악착한 일이 있을 수없습니다. 사람을 죽인 집...... 살인이 난 집을 선생님은 부러 골라서 사신것이 아니세요? 아아, 무서워요! 생각만 해두 무서워요!』

『아니 자네는 무슨 말을...... 그런 불길한 말을 왜 내앞에서 당돌하게 하느냐 말이야? 자아 빨리 이리 와서 앞장을 못서겠나?』

하고 백진주 선생이 꿰엑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성칠은 하는수 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에 채찍질을 하듯이 하며 앞장을 섰다.

『아아, 이 방!...... 무서운 방!』

그렇게 부르짖으며 성칠은 안방을 기웃하고 들여다 보다가 그만 넋을 잃고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그런 어린애 같은 쓸데없는 얘길랑 차차하고...... 자아, 그럼 이번엔 어디 뒷뜰안으로 한번 나가 볼까?』

싫다는 성칠을 앞장세워 가지고 백진주 선생은 폐허처럼 황량한 두란으로 내려가자 커—다란 앵두나무 아래서 발을 멈추고 우뚝 섰다. 그순,간

『앗! 선생님! 물러서세요! 빨리 앵두나무 밑에서 물러서세요! 그놈 이 그놈이...... 쓰러졌던 자립니다!』

하고 성칠은 미친듯이 외쳤다.

『아니 정말 자네가 미친게 아닌가? 쓰러지긴 누구가 쓰러졌다는 말이냐?』

백진주 선생은 도리어 냉정해 진다.

『그러나 선생님, 나는...... 나는 그놈에게...... 그놈에게 복수를 한것입니다! 복수를 하기 위하여 그놈을 죽인것입니다.』

『듣자니, 이집은 지방의 명망가 오붕서씨의 것이라는데...... 그럼 그대는 오붕서씨에게 복수를 했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고 극도의 광란을 이르키며

『아아...... 피할래야 피할수없는 이 무서운 숙명...... 선생님은 하필 왜 이집을 사시였습니까?...... 그것이 바루 내가 사람을 죽인 집...... 그놈이 쓰러진 바루 그 자리에 선생님이 서 계시고...... 그리고 지금 선생님이 서 계시는 바루 발밑에 그놈이 갓난애를 파묻었던 구멍이 있습니다! 아아, 이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라 하겠습니까?』

『뭐, 갓난애를?......』

백진주 선생은 또한번 놀랜다.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선생님이 입으신 외투가 그날 밤...... 그날밤 유동운이가 입었던 외투와 꼭 같기만 하다면.......』

『뭐, 유동운이라고?......』

백진주 선생은 부르짖는다.

『선생님, 그놈을 아십니까?』

『남포서 해주로 전근간 검사대리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오붕서씨의 사위!』

『그렇습니다.』

『법조계(法曹界)에서도 가장 청념결백하다는 말을 듣는 검사!』

『아닙니다, 선생님! 청렴결백하다는것은 표면 뿐이고, 아아, 사람의 가죽을 쓴 짐승입니다!』

『성칠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느냐 말이야?』

하고 꿰엑 소리를 쳤다.

『선생님, 정말입니다. 제가 왜 은인인 선생께 거짓말을 아뢰겠습니까?』

『음, 그러면 그대는 검사 유동운이가 사람의 가죽을 쓴 짐승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갖고 있습니다!』

『음, 그러면...... 정말 그렇다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니 한번 속는줄 알고 군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할까?』

『그럼 선생님께 모든것을 숨김없이 아뢰겠습니다!』

그러면서 배성칠은 한걸음 백진주 선생 앞으로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