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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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暗黑의 使者

아아, 마침내 악마의 제자가 되어버린 장현도와 송춘식이었다.

장현도가 꽁꽁 꽁지여 술상 밑으로 내던진 저 무서운 음모의 고솟장을 춘식이가 집어 얼른 주머니 속에 넣던 바로 그 이튼 날은, 인제 하로 밤만 무사히 지나면 삼천만 조선민중의 자유를 부르짖는 우렁찬 만세성이 삼천리 강토 방방곡곡을 떠나갈 듯이 뒤흔들 기미년 二월 二十八일 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날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봉룡이의 운명이 광명의 세계로부터 암흑의 구렁지 속으로 추락하는 무서운 날이기도 하였다.

비발도(飛潑島) 등대 밑에 오늘 따라 파도 소리가 유난히도 거세다.

그날 아침, 비석리 봉룡이의 오막사리 집에서는 조그만 예장짐이 한짐 대문 밖을 나서서 억낭틀 계옥분네 집으로 옮기어 갔다.

『봉룡이의 예장짐은 나 밖에 질 사람이 없대두 그래. 남포 바닥에선 제일 가는 효자야, 효자.』

그래서 예장짐은 박돌이가 지고 갔다.

박돌이는 어저께, 억낭틀 행길까 주막에서 곤드레 만드레 취해 넘어졌을 때, 장현도와 송춘식이가 주고 받던 무서운 이야기를 분명히 들은것 같기도 했지만 또 한편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가 잠든 사이에 꾼 꿈이야기 같기도 하였다. 하여튼 꿈이건 생시건 간에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러한 비밀을 알면서도 잠자코 있지 않으면 아니될 자기 자신이 한편 무섭기도 하고 한편 양심에 거리끼기도 하여서 조금이라도 발 뺌이 될까하고 봉룡이의 예장짐을 자청하여 진 영리한 박돌이었던 것이다.

부모가 없는 옥분이의 집에서는 이웃 집에 사는 춘식이 어머니가 예장 짐을 받았다. 예장 짐을 받고 나서 옥분이는 경대 앞에 조용히 앉아서 눈물을 흘렸다. 서글픈 눈물이기도 하였으나 또 한편 한량 없이 기쁜 눈물이기도 하였다.

「그렇다. 그이는 나의 남편인 동시에 나의 부모이기도 한 사람인데...... 아이, 내가 왜 울까?...... 기쁘면 웃음이 날텐데 왜 눈물이 날꼬?......」

옥분은 분홍색 명주 저거리 고름으로 눈물을 한방울씩 꼭꼭 찍어 냈다.

「그이는 오늘 밤 서울을 다녀 온다는데...... 서울을 다녀 오면 곧 식을 지난다는데...... 정말 내가 봉룡이의 색시가 되나?......」

옥분인 마음 속으로 그렇게 종알거려 보았다. 봉룡이의 색시가 된다는 것이 아모리 생각해도 꿈 같은 일이였으며 꿈 같은 행복이었다.

그러한 옥분을 박돌이는 참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는 옥분을 가엾다고 생각하면서 춘식이 어머니가 따라 주는 소주 몇잔을 드리키고는 비석리 봉룡이의 집으로 총총히 돌아 갔다.

그지음 봉룡이의 집에서는 간단한 주연이 벼풀러저 있었다. 장현도를 비롯하여 태반이 태양환의 선원들이었다.

그런데 이 초라한 연석에 선주 모영택씨가 참석하였다는 사실은 봉룡이에게 있어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일뿐 아니라 태양환의 선장은 틀림 없이 봉룡이가 되리라는 예측을 사람들에게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봉룡이의 늙은 아버지는 이 모영택씨를 하늘처럼 위하고 맞이하였다.

춘식이도 이 연석에 와 있었다. 그만 두겠다고 굳이 사양하는 춘식이를 장현도는

『춘식이, 자네가 않가면 도리어 수상히 생각하지 않겠나? 그래 자네는 봉룡이에게 무슨 상스럽지 못한 짓이나 한것이 아닌가?』

하고 협박조로 대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끌려 온 춘식이었다. 춘식은 술잔을 들면서 그 무엇을 두려워하는 눈초리로 대문 밖을 때때로 내다 보곤 하였다.

박돌이가 춘식이와 장현도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었을 때 모영택씨는 물었다.

『그래 신부가 얼마나 기뻐합디까?』

『네, 기뻐서...... 너무 기뻐서 울고 있었지요.』

봉룡이는 만족한 얼굴로 모선주를 쳐다 보았다. 박돌이는

『그러나 기쁜 일이 너무 한꺼번에 닥처오면 도리여...... 도리여 나뿐 일이 생긴다구들.......』

그때 옆에 앉은 장현도가 박돌이의 넙적다리를 힘껏 꼬집었다. 그리고 무서운 눈초리로 박돌이를 노려보았다.

바루 그때였다. 춘식이의 얼굴이 갑자기 해말쑥하니 핏기를 잃는것과 거의 동시에 자동차 멎는 엔진 소리가 들리자 일인 경부 한 사람이 무장을 한 네 사람의 경관을 이끌고 대문안으로 선뜻 들어 섰다.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의 얼굴을 무섭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봉룡이란 사람이 누구요?』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봉룡이에게로 쏠렸다. 봉룡은 몸을 일으키며

『저 올시다.』

무척 놀라면서도 또 한편 무척 침착한 대답이었다. 대답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두 사람은 총검을 겨누고 두 사람은 와닥닥 달려들어 봉룡이의 두 손목에 쇠수갑을 채칵하고 채웠다.

『대체...... 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체포하는 것이요?』

봉룡은 수갑 채운 손목에 힘을 주면서 역시 일본말로 물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가면 알겠지.』

『가기는 어데로 간다는 말입니까?』

『수갑을 차고 가는델 아직 몰라? 잔말 말고 어서 자동찰 타라.』

그것은 실로 일찰라의 일이었다. 늙은 아버지는 부들부들 떨면서 경부를 붙잡고 가진 호소를 다 하였으나 하등 소용이 있을리 만무하다.

마즈막으로 모영택씨가 명함을 내놓고 이봉룡 체포 이유를 점잖게 물었을 때

『아마 세관에서 무슨 수속이 잘못된 때문인것 같소.』

그러면서 경부는 봉룡을 자동차에 태웠다.

『아버지, 염녀 마세요. 무슨 세관의 수속이 잘못된 때문이라면 곧 석방이 될것이니까요. 아버지, 조금도 염녀 마시구 계셔요.』

그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동차는 떠나버리고 말았다.

『야, 봉룡아! 봉룡아!』

아버지는 행길 바닥에 펄썩 주저앉아서 아들의 이름을 미친듯이 불렀다.

『과히 염녀 마시구 들어가 게십시요. 내 가서 자세한 걸 좀 알아보구 오겠습니다.』

모영택씨는 그러면서 자동차의 뒤를 따라 당황히 걸어갔다. 그리고 송춘식이도 어느틈에 어물어물 없어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뫃였던 선원들도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박돌이와 장현도 두 사람 뿐이었다.

『흥, 난 꿈인 줄만 알았더니, 어저께 얘기가 바루 이것이었구나! 그러나 나는 저 불상한 노인과 가엾은 옥분이를 그대로 둘 수는 없어!』

하고 중얼거리는 박돌이의 손목을 장현도는 꽉 부여잡으며 낮으나마 힘있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입을 닫혀라! 영원히 닫혀라! 그렇지 않으면 너두...... 알지?』

바루 그때, 자동차의 뒤를 따라갔던 모영택씨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대합니다! 봉룡인 고소를 당했습니다.』

『고소라구요? 아니, 우리 봉룡이가 무슨 일루 고소를 당한단 말이요?』

『독립단의 한사람으로서 고소를 당했습니다.』

『오오!』

노인은 다시 땅바닥에 힘 없이 주저앉았다. 장현도는 박돌이의 손목을 한번 더 꽉 쥐면서 역시 낮은 목소리로

『봐라! 공연히 봉룡이의 편을 들다가는 박돌이 너두 봉룡이와 동진줄 알구...... 그만 했으면 알지?』

그 한마디는 소심한 박돌이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무서운 협박이였다. 생각만 하여도 눈 앞이 아찔해 지는것 같았다.

이윽고 남포 바닥에는 이봉룡이가 독립단의 한 사람으로서 체포당하였다는 소문이 쫙 돌았다.

『하여튼 좀더 자세한 것을 알아 봅시다. 잘은 모르지만 유동운(劉東雲)이라는 검사대리(檢事代理)를 내가 아는데, 그이를 좀 찾아 보구 오겠습니다.』

하고 모영택씨는 노인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박돌을 불러서 이 불의의 사실을 옥분이에게 알리도록 명령한 후에 장현도와 함께 해안통으로 걸어 가면서

『그런데 태양환의 선장이 없어서 큰일이요. 봉룡이가 언제 석방될런지 알수 없는 일이니까.』

『주인님, 과히 염녀할 것은 없습지요. 봉룡이가 나올 때까지 제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알고 보면 선장 노릇이란 별루 어려운게 아니니까요. 그리누라면 봉룡이도 석방될것이구.......』

『고맙소. 그러면 장군이 이번 배에는 책임을 지고 모든것을 실수 없이 지휘해 주시요.』

『주인님, 염려 마십시요.』

『그러면 나는 검사대리 유동운씨를 좀 만나 봐야겠수. 여기서 실례할테요.』

『네, 그럼 주인님, 다녀 오십시요. 전 배에 좀 나가 보겠습니다.』

거기서 모영택씨와 헤여진 장현도는 그때야 비로서 회심의 웃음을 마음 놓고 입가에 띠우면서

『만사는 뜻대로 됐다! 하여튼 임시선장(臨時船長)은 한자리 벌어놓구...... 저 바보 같은 박돌이 녀석만 입을 열지 않는다면, 임시는 왜 임시야? 진짜백이 선장이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지음 옥분이는 예장 깜을 장농에 차근차근 참겨 넣으면서 닥처 올 신혼생활의 이모 저모를 행복스럽게 머리에 그려보고 있었다.

「오늘밤 서울로 떠나기 전에 그이가 꼭 들려서 갈텐데.......」

그러면서 옥분이는 뒷문으로 해변 가를 내다보았다. 벌서 점심때가 가까웠다. 바다 위에 햇볕이 눈부시다.

옥분인 봉룡을 알면서부터 바다가 무척 무서워졌다. 언제 어느때 저 사정 없는 거센 파도가 봉룡일 집어 삼킬런지 알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분인 밤 자리에 누을 때, 아침 자리에서 일어날 때, 반다시 용궁님께 축원을 드리곤 하였다. 지금도 옥분인 장농 앞에 앉은 채 사르르 눈을 감고 용궁님께 축원을 드리는 것이다.

「감사하신 용궁님! 그이를 오늘날까지 무고하게 하여 주신 용궁님께 옥분은 또 한가지 원이 있삽니다. 그이는 오늘 밤, 무슨 피치 못할 일이 있어 서울을 다녀 온다는데, 그이에겐 서울이 초행이오니, 신령하신 용궁님! 그이를 서울까지 무사히 인도하여 주시옵고 다시 이 옥분이 옆으로 돌려 보내 주시옵기 간절히 비나이다. 간절히 간절히 옥분은 비나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바루 그때였다. 옥분이의 축원이 채 끝나기 전에

『아, 옥분이, 큰일 났어! 봉룡이가...... 봉룡이가.......』

하고 외치며 헐레벌떡 뛰여 들어온 것은 아침에 예장짐을 지고 왔던 박돌이가 아닌가.

『예? 봉룡이가...... 봉룡이가 어떻다구요?』

옥분인 참기던 옷감을 내던지고 장농 앞에서 발딱 일어났다.

『아, 저...... 저 봉룡이가 경관들에게 부뜰려 갔어!』

『경관들에게요?』

옥분은 눈 앞이 캄캄해 졌다.

『음, 저, 저 봉룡이가 독립단의 한 사람이라고 박숭을 지워 가지구...... 인제 방금 자동차루...... 아, 숨이 찬걸! 단숨에 뛰여 왔더니.......』

아아, 신령하신 용궁님은 무얼하고 계시는고?......

전신에 힘을 잃고 쓰러질려는 몸을 장농으로 의지한 계옥분은 무심하게 흐느적 거리는 황해 바다의 푸른 물결을 얼마 동안 오들오들 떨리는 눈동자로 쏘아보고 섰다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후닥딱 문밖으로 뛰여 나갔다.

『아 옥분이, 어델 가는가? 옥분이!......』

그러나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길게 따아 느린 머리채 끝에서 자주 갑사 댕기가 오쭐오쭐 춤추면서 멀리 조그맣게 조그맣게 사라진다.

봉룡이의 곁으로! 봉룡이의 옆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