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어 가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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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거의 울 때가 되었다. 이렇게 깊은 밤에 ─ 더욱이 넓은 들 한가운데의 외로운 마을에 사는 사람 기척이 있을 리는 없으나, 그래도 득춘(得春)은 귀를 기울여 사람 기척이 있나 없나 가끔가끔 바깥을 살핀다. 그러나 바깥은 한결같이 고요할 뿐이요, 다만 이웃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멀리 들릴 뿐이다.

득춘은 이와 같이 한참 동안이나 두 팔로 무릎을 에워싼 채 펑퍼짐하게 앉아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난 듯이 세운 무릎을 아래도 내려놓으며 조끼 호주머니에서 궐련 한 개를 끄집어낸다. 그것을 대물부리에 찔러 사기 등잔불에 대고 뻑뻑 빨기 시작한다. 대추씨만 한 석유 불은 궐련과 대물부리를 통하여 전부가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다지 밝지 못한 방 안이 더욱 어두컴컴해버린다. 그 궐련 끝에서 등불 빛보다도 더 붉은빛이 희멀건 연기 가운데에서 두세 번 반짝거리더니 꺼질 듯한 불이 다시 살아나며 방 안이 환하게 밝아진다.

득춘은 궐련을 한참 동안 뻐끔뻐끔 빨다가 등잔 밑에다 비비어 끄고 방 아랫목에 벽을 향하고 드러누운 아내를 부른다.

“여봐! 웬 잠을 그리 자?”

아내는 아랫목 벽으로 향하였던 얼굴을 남편 있는 편으로 돌이킨다. 그의 아내가 잠을 잘 리가 없다. 그다지 밝지도 못한 등불에, 더구나 담배연기가 꽉 차서 윗목에 쪼그리고 앉은 남편이 봄날 아지랑이 속에 들어있는 산처럼 희미하게밖에 아니 보인다. 조금 날카로운 소리로 대답한다.

“자기는 누가 자!”

득춘은 비벼 꺼버린 궐련에 다시 불을 붙여 들고, 조심성스러운 낮은 소리로

“잠만 자지 말고, 옷이나 좀 챙겨보지그래?”

아내는 이와 같이 조심스럽게 하는 말을 듣고는 몸을 일으키어 해진 치맛 자락으로 앞을 가리고 윗목으로 앉아서 걸어온다. 득춘 있는 곳까지 오더니, 그는 뒤에 내려진 머리를 다시 고쳐 쪽지며,

“챙겨볼 만한 무엇 하나 변변한 것이 있어야 하지!”

라 중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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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춘의 아내는 겨우 스물한 살밖에 아니 되었다. 그러나 언뜻 보면 스물사오 세나 되어 보였고, 거기에다 좀 더 에누리하면 거의 서른이 되어 보였다 그는 열일곱 살 되는 . 해에 득춘에게로 시집을 왔었다. 그때에 득춘은 스물두 살이었다. 두 사람의 혼인이 성립될 때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도 있었으나, 여자의 부모에게 득춘의 똑똑한 것이 다만 마음에 들어서 혼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믿음직한 똑똑도 그들에게는 아무러한 행복을 주지 못했다. 이 똑똑이란 것이 도리어 그들의 생활을 곤경으로 이끌어 넣는 일이 많았다.

같은 동리에서 돈푼이나 있는 사람 또는 땅마지기나 가진 사람, 다른 사람의 토지를 관리하여 세력을 부리는 마름, 세금 같은 것을 받으러 다니는 군청과 면청의 관리 양반들, 이러한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지 못하는 동시에, 자기 동무들 가운데에서도 돌려놓은 사람이 결국은 되고 말았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아온 일도 많았었다.

득춘은 결혼한 지 이태 뒤에 오랫동안 살아오던 황해안에 있는 D어촌을 떠나 조선서 제일가는 보고란 이름이 있는 전북 평야의 외로운 마을 C촌으로 이사 오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C어촌으로 이사하기를 결정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득춘이 여러 가지로 동리 사람들에게 아니꼬운 일을 당할 때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그 지방을 떠나갈까 하였으나, 첫째 삼 년 전에 죽은 어머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암만해도 살던 고장이 좋으니 이사는 무슨 일이냐?”

하며 반대하여왔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마음에 마땅치 못한 꼴을 당하면서도 바로 그곳을 떠나지 못하였었다. 그러다가 득춘이 결혼한 그 이듬해에 그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 뒤 얼마 아니 되어 득춘은 얼마 되지 못한 살림을 뭉뚱그려 가지고 오랫동안 잔뼈가 굵어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에 아내는 비록 어릴망정 시어머니의 삼년상이나 지난 뒤에 이사를 하자고 남편에게 권하였으나, 득춘은 이것을 당연히 거절하고 그대로 이사를 하여버렸다.

득춘이 이 C촌으로 오게 된 동기로 말하면 그의 팔촌 형 되는 이가 서울에서 유명한 어느 귀족의 마름이 되어 C촌 부근에 있는 토지를 관리하고 있는 까닭에 이것을 발연(發緣) 삼은 것이었다.

그러나 득춘은 오던 해에는 땅마지기도 변변한 것을 얻어 짓지 못하였다.

비록 좋은 땅마지기의 소작을 얻어 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득춘과 같이 타관에서 떠들어온 사람으로는 같은 마을이나 이웃 마을 사람들과 서로 도와 주는 사이가 될 수 없었다 . 더욱이 그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는 득춘이란 사람이 떠들어온 것이 큰 불안이었다. 득춘은 근방 토지를 관리하는 마름과 친척의 관계를 가졌으므로, 자기들 짓는 토지가 어느 때에 득춘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될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항상 득춘을 시기하고 위험성 있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첫해에 농사는 거의 자기 한 손으로 지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득춘은 이러한 눈치를 차리지 못한 것은 아니나, 억지로 그들과 사귀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은 너는 네 떡 먹고 나는 내 떡 먹는 셈이니. 서로 상관할 것 무엇이냐 하는 것처럼 서로 냉랭하게 지내었다. 또한 이렇게 서로 범 연(泛然)히 지내는 한편에는 득춘과 친하려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친하려는 그들은 대개가 득춘의 팔촌 되는 사람의 관리하는 토지를 소작으로 얻지 못한 이들이었다. 그들 심중에는 그 토지 마지기나 얻어 지어볼까 하는 것이 자연히 득춘을 친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득춘은 다른 사람이 위험스럽게 여길 만큼 넉넉한 토지도 가지지 못하였고, 다른 사람이 친하려는 그것만큼 토지에 대한 권리도 없었다. 다만 팔촌이란 친척 관계가 마름과 있을 뿐이었다.

득춘은 이러한 가운데에서 삼 년 동안을 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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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에 득춘의 근근이 지내어 가는 집에 큰 사건이 생기었다. 이것은 팔촌 되는 사람의 마름이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새로 나온 마름이 그 토지를 전부 관리하게 되었다. 득춘의 팔촌이 마름 노릇할 때에 토지를 여러 해 소작을 하여오던 작인들 사이에는 큰 공황이 일어 났다. 이 공황은 물론 득춘이 이사를 올 때에 여럿이 느낀 불안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불안을 그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였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불안을 느낄 처지에 있는 이는 전날에 마름과 특별히 친근한 관계를 두고 지내오던 사람들이었다.

득춘은 자기 팔촌의 마름 떨어졌다는 소문을 듣고는 인제는 또다시 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도 팔촌이 마름으로 있을 때에는 아무러한 시기와 질투가 자기에게 모여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의 생활을 직접으로 위험하지는 못하였으며, 또 한편에는 여러 가지로 자기를 위하여 편의를 도모하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므로 삼 년 동안을 무사히 생활하여온 것도 어쨌든 간접으로 팔촌 마름의 힘을 입었던 것이다. 득춘은 이 C촌으로 이사 올 때에 농사 밑천이란 것도 물론 없었다. 그러나 마름의 친척이라 하여 동리에서 다른 이들에게도 돈 십 원 색깔이섬 이 지방에서는 , ( 지주나 또는 조금 넉넉한 소작인들은 곡식을 변을 놓아 봄철이나 여름철에 곤란한 소작인들에게 꾸어주고, 그해 가을에 와서 한 섬에 대한 반 섬 혹은 한 섬씩 변을 쳐서 받는 곡식을 색깔이 라 함)이나 얻어먹기는 용이하였다. 그리고 가을에 와서 조금 기한이 지나도 갚을 날짜를 얼마만큼은 연기할 수도 있었던 터이다. 그러나 오늘 득춘에게는 물론 그러한 융통도 없어질 것이요, 그뿐만 아니라 이삼 년 동안 미루어 내려온 빚도 금번 가을에는 아니 갚고는 배겨낼 수 없을 형편이라 그동안 첫 살림하기에 걸머진 빚이 득춘의 한 해 농사진 것으로는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아무리 형편은 이러하다 할지라도 이 C촌에서 살려면 이 빚 마감을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에 대개는 빚으로 막아왔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빚을 막아야 할 곳은 많았으나, 막을 빚을 내어 올 곳은 하나도 없다.

그리하여 득춘 부부는 이러한 곤란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하여 여러 날을 두고 생각할 결과, 이 C촌을 슬그머니 도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에 작정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눈앞에 닥쳐오는 곤란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또는 그런 곤란을 어떻게든지 마감한다 해도 장래에 엄습하여 오는 생활 곤란을 방비할 계책이 막연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타산이 이 C촌을 도망하도록 결심하게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득춘은 농사지어놓은 것을 한꺼번에 매갈잇단에다 팔아버리고, 오막살이집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어 버리었다. 이렇게 전 재산을 바꾼 돈 이백 원이 그 푸닥진 호주머니에 깊이 들어 있었다. 세간 집물이란 것도 솥단지 몇 개와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 같은 것과 사기그릇 나부랭이뿐이었다. 이것이 득춘 떠난 뒤에 뭇 빚쟁이들이 나누어 갈 다만 하나의 재산이었다.

득춘이 이 일을 계획하면서도 처음에는 몇 번이나 주저하였다. 만일 자기들이 떠난 뒤에라도 도적놈이나 무지한 자니 하는 그런 소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을 생각하매, 참하 그 일을 실행할 수 없었다. 또는 이러한 것이 자기의 장래 일에도 큰 방해나 끼치지나 아니할까 하는 두려움 없는 것도 아니 었지만은, 그가 그대로 C촌에 머물러 있도록 할 희망과 믿음직한 것이 그에게로는 하나도 없었다.

또 한 가지 득춘으로 하여금 용단을 내어 결국 이 일을 실행케 한 것은 득춘이 방금 실행하려는 그러한 일 같은 것이 이 전북평야 지방에는 비교적 많은 것이었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도조(稻組)도 치를 수 없고, 다른 얻어 쓴 빚도 갚을 수 없어 집을 지니고 살 수 없는 경우이면 그대로 농사진 것을 얼마 되든지 뭉뚱그리어 가지고 다른 먼 지방으로 도망을 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집안 식구가 다 각기 흩어져 바가지를 들고 걸식을 하였다. 그것이 그들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계책의 하나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와 같은 정처 없이 유랑 생활을 하는 것을 자기네의 운명처럼 여기던 것이다.

평일에는 득춘이 이러한 무리를 볼 때에 한 경멸과 조소로 대하였었다. 그리하던 득춘 자신이 이러한 일을 자기 스스로 실행하게 되었다. 이것을 생각하매 이러한 파멸에 갇힌 운명에 우는 자기 자신을 동정하는 동시에, 평일에 없이 여기는 눈초리로 그런 유랑 가족을 대한 것이 도리어 부끄러운 생각이 난다. 그러나 부끄러운 생각만으로 이 계획을 중지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자기 같은 짓을 하는 이가 하나뿐이 아니란 생각이 도리어 이 일을 실행하도록 힘을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 저녁에는 이 계획을 실행하려고 밤이 깊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득춘의 아내는 남편 시키는 대로 방 윗목으로 나와 먼지가 보얗게 앉은 행담을 열고 의복을 집어내어 보로 싼다. 옷을 집어내는 손은 조금씩 떨리고, 눈에는 눈물이 괸다.

득춘은 아내의 그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도 민망하고 조급한 듯이,

“그렇게 꾸무럭거릴 것이 무엇이여!”

하고 재촉한다.

“별로 입을 만한 것이 있어야지……. 모두 걸레밖에 안 되는 것뿐인데…….”

하고, 아내는 다 해진 치마를 하나 끄집어내어 남편 앞에 펴 보인다.

“그런 것을 지금 보면 무슨 수가 있어? 그런 건 내버리고 가지.”

이렇게 득춘은 말을 하기는 하였으나, 몇 해 동안 같이 살면서도 의복 한 벌을 변변히 해주지 못한 것이 새삼스럽게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그가 시집올 때에는 그네들은 그렇게 값 많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장롱 속에서 옷을 내 입었다. 그리고 장롱 안에는 사철 입을 의복이 들 어 있었다. 또 C촌을 남몰래 떠나가는 오늘에는 두 식구의 의복이 부담상자 하나에 차지 못했다. 그리하여 상자에 들었던 의복이 다시 보따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을 생각할수록 오늘이 오히려 행복스러웠던 것이라 하였다. 장래에는 이보다도 더 불행하게 되면 그때에 자기네는 어떻게 될까하는 어떠한 호기심에 가까운 두려움도 일어났다.

“우리는 이보다 더 못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고, 아내는 눈물 머금은 눈으로 득춘을 바라본다.

“글쎄, 그런 말을 해서 무얼해……. 잔말 말고 행장이나 차려…….”

득춘은 미안한 듯이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가면은 어디로 간단 말이여?”

“잔말 말아! 다 작정이 있으니……. 여기서 굶어 뒤져도 부등가리살림만 붙들고 있으면 그만이람! 굶어 죽는데야 누가 쌀 한 알 줄 터이야! 빨가벗고 얼어 꼬드러진대야 누가 옷 한 벌을 줄 터이야? 잔말 말고 어서 참아보아! 내둥 간다고 하더니 지금 와서 앞이 어떻게 될 것을 물어서 무엇 할 터이야!”

하고, 옷 행담에서 옷 몇 가지를 가지고 방 아랫목으로 가서 갈아입기 시작한다.

떨어진 행주치마와 기름때에 묻은 저고리를 벗고, 분홍 명주 저고리에 옥색 명주 치마를 갈아입었다. 이것은 그에게는 깊이깊이 간수하여두었던 다 만 한 벌의 나들이옷이다. 동릿집 혼사 구경이나 또는 읍내에 볼일이 있어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입던 귀중한 의복이었다. 상의 옷 입은 그대로 이 밤중에 도망가게 되면 더운 행색이 수상하게 보일까 그것을 염려하여 아끼고 아끼는 다만 한 벌의 나들이옷을 입게 된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아내는 딴사람처럼 어여삐 보인다. 득춘은 저의 아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어여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어여쁜 아내의 얼굴을 본 적은 결혼한 지가 사오 년이나 되었으나, 열 손가락을 다 꼽지 못할 만큼 그 횟수가 적었다. 일 년에 한두 번밖에는 볼 수 없었다. 이것은 아내가 새 의복 입는 때가 한두 번밖에는 아닌 까닭이다.

득춘은 컴컴한 등잔불에 은근히 보이는 아내의 아름다운 태도에 취한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풀머리로 쪽진 것이며, 희멀건 얼굴 빛깔이며, 분홍 저고리며 옥색 치마며 모든 것이 빈틈없이 조화된 것 같았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며 ‘우리 여편네도 의복 치장이나 잘 시키고 화장이나 좀 하였으면 훌륭한 미인이 되리라.’ 하는 생각이 자기가 방금 어떠한 길을 떠나는지를 전혀 잊어버리게 한 것처럼 나온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에는 모든 불행에서 구원을 받은 듯 어떠한 행복을 느끼었다. 그리고 장가들던 시절의 모든 기억이 꿈결처럼 생각되었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하였다. 이러한 기억이 문득 지나가매 결국은

‘너도 남편을 잘못 만나 이런 밤중에 도망까지 하게 되었구나!’

하는 탄식만이 입가에 떠돌았다.

이렇게 곱게 보이는 아내의 얼굴에는 암만하여도 사오 년 동안을 두고 가난과 싸운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다만 얼굴의 고운 모습이며, 눈과 코, 입과 귀가 꼭 놓일 곳에 놓인 것만이 옛날의 아름다운 것을 변함없이 그대로 내어보일 뿐이다 어쨌든 . 보는 사람을 끄는 어떠한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넋을 잃고 아내를 바라보던 득춘은 그 앞으로 가까이 가서

“이슬 내리는 밤에 명주 치마는 그만두지!”

한다

“다른 입을 것이 있어야지!”

하고 아내는 잠깐 생각하더니, 입은 명주 치마를 벗고 해진 무명 치마 하나를 앞에 내어놓았다.

득춘의 집안은 부부의 말소리조차 끊기었다. 컴컴한 등불만이 고요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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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마을에서 울기 시작한 닭소리가 C촌까지 길고 가늘게 울리어 왔다. C촌의 모든 닭도 울기 시작한다. 득춘은 아내를 앞세우고 가만히 싸리문 밖으로 나왔다. 득춘의 뒷등에는 보따리가 매달려 있고, 그 아내의 머리 위에는 보퉁이가 놓였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마을 앞으로 통한 큰길로 나간다. 동릿집 개는 이상스러운 두 발소리를 듣고 짓기 시작한다. 몹시 짖던 개는 다 시 수상한 남녀 두 그림자를 보고 내달았으며 악착스럽게 짖는다.

득춘은 가슴이 덜렁하였다. 아내도 그러하였다. 득춘은 하다 못하여 내닫는 개를 보고 손을 치며 “쉬!” 나무랐다. 개들은 “쉬!”소리가 듣던 소리던지 짖던 것을 그치고 그대로 슬금슬금 제 집으로 돌아간다. 개와는 이만한 친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큰길 위에 서서 자기 집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때는 벌써 늦은 가을밤이라 찬 이슬은 곧 두 사람의 의복을 후 줄근하게 적신다.

찬 기운이 엷은 의복을 뚫고 사이로 숨어드는 듯하다. 몸이 절로 웅크러진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수없이 반짝거리는 별만이 밤의 한울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가던 발을 멈추고 다시 집을 돌아다본다. 그러나 컴컴한 지붕만이 무슨 괴물같이 보일 뿐이다. 마을 앞에 늘어선 포플러 나무의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괴물의 맘을 전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마치 그대로 저를 내버리고 간다 하여 원망함을 표시함이나 다름없이 생각된다.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어쩐지 걸음이 걸리지 않는다. 떼어놓은 발은 그 밑에다가 천 근이나 되는 납덩이를 달아논 것처럼 무거웠다.

그들은 생활에 시달리어 편한 날이 없이 이 땅에서 지낸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도망의 길을 떠나는 오늘 밤에는 전날에 상상치도 못하던 섭섭한 설움을 느끼었다 그대로 . 내버린 몇 개 아니 되는 살림 기구도 모조리 그들을 원망하고 있는 듯 생각난다. 그들의 흥분된 신경에는 그 원망한 소리가 확실히 들린다. 득춘은 몸을 떨었다. 아내도 몸을 떨었다. 그들의 마음은 몸보다 더 떨었다. 그들은 눈에 눈물을 머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눈에는 피가 괴었다. 그리하여 득춘의 아내는 몇 번이나 가던 발길을 다시 돌이켜 집으로 들어갈까 생각하였으나, 무서운 결심이 영영 그를 붙들어 매지는 못하고 말았다. 그들은 잘 걸리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걸었다.

삼 년 전의 D어촌을 떠나 올 때와도 확실히 그 느낌이 달랐다. D를 떠나 C촌으로 올 때에는 아무리 자기네가 잔뼈가 굵었으며, 부모의 뼈다귀가 묻힌 곳이라 할지라도, 그다지 섭섭하지는 아니하였었다. 그러나 오늘에는 눈물이 절로 흐른다. 이전 D를 떠날 때에는 잠깐 볼일이 있어 어느 곳에 다니러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이전에는 떠나가던 느낌이 있었으나, 오늘 밤은 다른 사람에게 쫓기어 가는듯한 느낌이 있다. 그 괴물 같은 지붕도 어느덧 어둠에 쌓여버리고 말았다.

찬바람에 움직이는 포플러나무도 흐르는 별빛과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인제는 틀림없이 자기의 집을 하직한 사람이 될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득춘은 아내를 돌아보며 말한다.

“인제는 집도 안 보이네……. 참 팔자를 잘못 타고나면 별 고생을 다해보는 것이야…….”

아내는 아무 말도 없다. 두 사람은 발밑만 찬찬히 굽어보며 걸어간다. 그들의 집을 떠나는 지독한 슬픔은 옮기어 가는 발자취를 따라 차차 엷어지는 듯하다. 그 대신에 그들의 마음에는 자기들의 수상한 행색이 아는 다른 이에게 들키면 어찌할까 하는 염려가 점점 깊어간다. 그들은 발밑을 주의하여 급히 걸음을 걸을 수 있는 대로 급히 걸어간다.

어두운 가운데에도 신작로만은 희미하게 비치어 보인다. 그러나 수레 지나간 우둘투둘한 자국과 가끔 가다가다 우뚝 솟은 돌부리에 그들 발부리가 툭툭 걷어차인다. 이러할 때마다 그들의 울렁거리는 가슴이 더욱 울렁거린다. 한참 동안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득춘은 허둥지둥한 아내의 팔목을 이끌어준다. 아내는 한편 팔에 힘을 주어 남편이 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끌리어 따라가는 아내는 자기의 한평생이 그이 손목을 붙들려 가는 것이나 다름없이 생각난다. 모든 장래에 대한 불안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우리는 장차 어떻게 되겠느냐?’ 물어보고자 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자기네의 뒤를 밞아 오는 듯하여 말을 끄집어내었다가도 멈추고 , 몇 번 이나 뒤를 돌아다 보았다.

이와 같이 동편을 향하여 허둥지둥 서너 시간을 걸은 뒤에야 비로소 동편 하늘이 밝아온다 처음에 . 남빛 유리를 대고 보는 듯이 모든 것이 여명이 푸른 놀에 쌓여 있다. 들 건너 희미하게 둘러서서 보이는 연산이 더욱 짙은 남색으로 보인다. 이러한 검푸른 하늘빛이 동편 하늘에서부터 차차 익은 수박 속같이 붉어온다. 호남선 선로가 눈앞에 달아난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정거장 구내의 신호등이 하늘의 약간 남아 있는 별과 함께 반짝거린다. 득춘은 이제야 숨을 겨우 내려 쉬었다. 여러 시간을 두고 밤길 걸은 것이 꿈결처럼 생각난다. 그러나 명랑한 일기를 미리 일러주는 것같이 들 가운데에서 서편으로부터 한편 구석이 안개에 잠기기 시작한다.

아침 해가 휠씬 올라왔을 때에 북행 열차는 K역에 당도하여 밤길 걷기에 온몸이 피로하여진 득춘 부부를 싣고 북으로 북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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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춘이 아내를 데리고 C어촌을 떠나 도망해 온 곳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접속하는 T역이었었다. 이곳으로 온 목적은 돈을 한 번 흠씬 모아서 고생하던 옛날을 말하여가며 잘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다만 그들의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큰 바람이었다.

그는 그러한 것을 꿈꾸지 않을 때가 별로 없었다. 그가 자기 고향에 있을 때에 다른 발이 넓게 돌아다니는 어느 친구에게서 이 세상에서는 돈벌이하는 데는 음식 장사가 제일이란 것을 들었고, 또 이런 장사를 하는 데는 철로의 승객이 많이 내리고 타는 정거장 근처가 가장 마땅하다는 것도 들었다. 그리고 여러 정거장 가운데에서 제일 유망한 것은 T역이란 것도 친구는 말하였었다. 그리하여 이 T역을 오게 된 것이다.

득춘은 T역에 도착하여 여관에서 수일을 머문 뒤에, 이 지방의 자세한 형편을 여관 주인에게 물었다. T여관 주인은 득춘을 볼 때부터 시골 농촌의 부부가 이러한 데 와서 머무르게 된 것을 심히 의심하였으나, 그들은 딴 사람끼리 몰래 도망하여 온 것도 같지 아니한 까닭에 그대로 두고 보던 터이라,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친절히 일러준다.

득춘은 C어촌에서 생각한 바와 같이 돈 모으기가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닌 것을 주인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그러나 한 번 내논 걸음이라 어찌할 수 없이 주인에게 부탁하여 정거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가게를 한 채세로 얻었다. 그 집 바로 앞에는 호남 지방으로 통하여 가는 일등로(一等路)가 놓였었다. 그 길에는 날마다 자동차, 짐차, 인력거, 말, 소 같은 것이 끊임없이 지나간다. 음식 영업을 하기는 참으로 좋은 장소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약간 살림 기구를 장만한 뒤에, 바로 그곳에 술 가게를 열었다. 영업 허가니 무엇이니 하여 여러 가지 절차를 차리느라고 며칠 동안은 그대로 보내었으나, 별다른 고장 없이 허가도 쉬이 나오고, 기구 같은 것도 손쉽게 손에 들어와 바로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하는 며칠 동안에는 손이 그다지 많지 못하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술꾼이 불어 왔다. 이것은 새로 술집이 생기었다는 소문을 듣고 술맛이 어떠한가 맛보러 오는 주객도 있었으나, 대개는 주모의 얼굴이 어여쁘다는 소문을 듣고 보러 오는 이들이었다. 물론 득춘의 가게에는 아직 양조 허가를 받지 못하여 다른 곳에서 사다 파는 술인즉 그 맛이 특별히 좋을 것도 없었고, D 같은 마을에서 자란 여자의 솜씨인즉 안주 맛이 별달리 맛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얼굴만은 이러한 주막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어여쁜 얼굴이다.

득춘은 자기 아내를 이러한 곳에서 술을 팔게 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불안을 느끼었다. 그리하여 여러 번 주저하였다. 첫째, 본인 되는 아내가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리고 큰 수치로 여기었다. 이것이 도리어 득춘으로 하여금 아내의 마음에 대하여는 안심하게 된 것도 사실이나, 술 먹으로 게걸대고 모여드는 중에는 사람다운 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때에 장래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어떤 위험과 불안을 아니 느낄 수 없다. 어떤 때에는 이런 짓을 그만두고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리어 좋지나 아니한가 하는 생각도 났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대로 C촌이나 예전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다. 그 런 것을 도무지 모른 체할 용기도 없다. 또는 이런 영업은 그만두고 다른 것이나 하여볼까도 하였으나, 그들 부부에 상당하다고 할 직업은 없다. 이 일 저 일 생각할수록 득춘의 마음은 미칠 듯싶었다. 그러나 기왕에 이 렇게 된 이상에는 일이 몇 년 동안 혀를 깨물고라도 참아보는 수밖에는 없 다는 부르짖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는 이따금 공중누각을 그려본다. 이것은 자기의 고향에다 좋은 토지 를 몇 섬지기 장만하여 두고, 그 토지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정결한 집을 지은 뒤에, 그 집에서 충실한 머슴이나 두엇 부리어 농사나 착실히 지어가 며, 아내와 함께 어떻게 재미스러운 날을 보내게 됨이라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만이 그의 마음의 전부일 때에는, 그는 뛰고 놀듯이 기뻤다. 이러한 공 상과 불안과 번뇌로 그들은 며칠 동안을 보내었다. 술꾼도 다 돌아가고 밤은 이슥히 깊었다. 이 밤이라야만 그들은 비로소 부 부답게 얼굴을 대하여왔다 . 이 밤은 그들에게 몹시 기다리는 것의 하나이었 다. 지금까지 밤이 이다지 그리운 일이 없었다. 그러나 술을 팔게 된 이후 로 참으로 밤이 그리웠다. 밤이라야만 자기네 천지에 노는 듯하였다. 그리 고 득춘은, 그 아내는 언제든지 자기의 것이란 의식이 이 밤에라야만 비로소 난다.

그러나 밤이 되면 더욱 적막한 생각이 났다. 아는 사람 없는 타관에 외로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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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판 지 그럭저럭 10여 일이 지난 뒤의 밤이다.

C촌을 떠나올 때보다 일기도 훨씬 추워졌다. 문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은 바 늘같이 사람을 찌른다. 득춘은 안방 아랫목에 목침을 베고 드러누워서 가만 히 생각하여보았다. 자기 신세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하였다. 그래도 자 기는 자기 고향에서 똑똑하단 말을 들었다…… 하는 조소가 한없이 귀에 울 리어 온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방 안으로 두루두루 걸었다. 가겟방에서 술 취한 사람의 탁한 목소리가 가끔 들린다. 그리고 너털웃음 소리도 가끔 들린다. 이따금 무엇이라 대답하는 자기 아내의 가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 는 가슴이 뛰놀았다. 다시 목침을 베고 드러누워 담배를 피웠다. 한참 지난 뒤에 손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내가 피곤한 기색으 로 들어온다. 그는 원망하는 듯한 얼굴로 득춘의 앞 가까이 와 앉는다.

“여봐요, 이런 짓은 인제 그만두고 바가지라도 들고 나서서 차라리 빌어라도 먹지!”

아내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말한다.

득춘은 아무 말 없이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연다.

“누가 이따위 짓을 하고 싶어서 허나! 참으로 창피한 일이지!”

“인제야 창피한 것을 알아……. 제 여편네를 끌고 와서 주막쟁이를 만들 생각이 날 때에는 그런 창피한 일이 있을 것도 짐작 못하였던 것이로구만…….”

이렇게 말하고는 아내는 눈물을 씻는다.

득춘은 오늘 저녁에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야? 말을 하고 울든지 불든지 하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내는 아무 대답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야! 조금만 참아보지. 정 하다가 할 수 없으면 달리 어떤 방략을 내보세. 그렇게 짜증만 낼 것이 무어야! 걱정 마소…….”

득춘은 이와 같이 아내를 위로한다.

“그런 말은 그만두어! 주막질을 해서 돈을 모으면 얼마나 모으며, 모은들 그 돈이 무슨 소용이 있다드람! 아무리 좀 뻔뻔한 생각을 가지고 장사를 해 보려도 되어야지 말이지! 나는 날이 새면 죽을 날이 가까운 것 같더만…….”

“그만 해두고 잠이나 자세! 주막질보다 더한 것이라도 해서 돈만 모을 수 있으면 모아보자는 것이지, 별수 있어? 주막질 한 돈이라고 주면 누가 안 받을 것인가? 별말 다 하네. 그저 일 년 동안만 눈을 찔끔 감고 이대로 가 보세. 그래서 논마지기나 밭 마지기나 장만할 수 있으면 그만 치워버리고, C촌이든지 어디든지 고향 가까운 곳으로 가면 그만 아니야? 그리고 C촌에서 못 살고 밤중에 도망하던 일을 좀 생각해보아요. 참, 기가 막히네…….”

득춘은 이렇게 아내를 위로하기 겸 말을 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가슴에 불덩이같이 뜨거운 무엇이 놀았다.

“그러면 일 년 동안만 견디어보지! 지금 어떻게 한 대도 별수가 없을 테니, 창피하지만 좀 참을밖에…….”

아내는 도리어 남편을 위로하듯이 대답한 뒤에 눈을 감았다. 그들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딴 곳을 바라본다. 한참 동안을 아무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가, 아내는 득춘의 무릎 위에 쓰러지며 컥컥 느껴 운다. 득춘 은 오늘밤에 심상치 않은 일이 난 것을 짐작하였다.

“여봐! 왜 그래! 말을 좀 해.”

하고, 득춘은 무릎에 머리를 처박고 우는 아내의 등을 가만히 흔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 대답도 없이 한갓 느끼어 울 뿐이다 득춘은 힘을 주어 등을 흔들며,

“말을 하우! 웬 까닭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하지.”

한다.

그래도 아내는 아무 말 없다. 득춘도 한참 동안이나 아내의 엎드러진 것을 굽어볼 뿐이다. 그리하다가 다시 묻는다.

“그래! 오늘 무슨 못 당할 일을 당하였단 말이야? 술꾼들이 무엇이라고 하던가? 응…… 대답을 좀 해…….”

아내는 그제야 머리를 남편의 무릎 위에서 들고 눈물을 씻는다. 그러나 눈 물은 역시 두 눈으로 흘러내린다. 그는 이런 말을 남편에게 하여 좋을는지, 그대로 두어 좋을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다. 이 말을 그대로 자기 가슴 에 넣어두는 것보다도 차라리 말하여버리는 것이 속이나 시원할 듯하였다. 그리하여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혀가 꼬부라지는 듯 하였다.

“어서 말을 하고 울든지 지랄을 하든지 해!”

이렇게 꾸짖는 듯한 말이 아내에게 말할 용기를 주었다.

“남부끄러워 살 수 없어!”

이 말을 들은 득춘은 가슴에서 무엇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 다음을 아 니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났다. 그러나 그 말을 그만두라 할 용기가 없다. 그대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가 짐짓

“주막장이야 남 보기 좋은 영업이 아닌 줄은 누가 모르나? 별안간 왜 그런 말을…….”

하고, 다시 아내의 얼굴빛을 살핀다.

아내는 자기가 말하기 부끄럽다는 뜻을 이만큼밖에 해설할 줄 모르는 남편 에게 다시 더 말을 하여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난다. 도리어 이만큼 말만 해두는 것이 남편의 속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요, 또는 자기네의 부부간 정의(情誼)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리어 유리한 것이 되리라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어찌하여 남부끄러운 이유는 말하지 아니하려 하였다.

“무엇이 그렇게 남부끄럽단 말이여?”

득춘은 이와 같이 또다시 헤쳐 묻는다.

아내는 다시 생각하였다.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 것이 사실보다 더 큰 의심을 도리어 남편에게 주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대답하였다.

“얼굴 검고 키가 후리후리한 자가 우리 가게 열던 그 이튿날부터 날마다 왔지! 그게 어떤 놈이여?”

득춘은 그자가 연해 며칠을 날 따라다니므로 좀 수상하여 밥해주는 머슴에 게 물어본 일이 있다. 머슴 말에는 건너 동리 사는 부잣집 서방님이라 하였 다. 과연 모양 차리고 다니는 것이 어려운 집 자식은 아니었다. 이러한 주 막으로 술 사먹으러 다니는 자로서는 땟물이 휠씬 벗었다. 명주로 위 아래 를 감아 입고, 인모 망건에 호박 풍잠을 딱 붙이었다. 어쨌든 이와 같은 시 골에서 젠체하는 사람이었다. 긴 담뱃대를 물고 신발을 질질 끌고 가는 것 을 볼 때마다 득춘은 아니꼬운 생각이 났다.

아내의 말을 듣건대, 그 사람이 분명히 그자이다.

“왜 그래? 그자가 어째서 무어라 욕설을 하던가?”

득춘의 생각에는 아내의 남부끄럽다는 것이 이 욕설에 지나지 않기를 마음 으로 바랐다.

“욕만 하면 좋게! 손을 붙들고…… 그리고 입을…….”

여기까지 말하고는 다시 남편의 무릎에 쓰러진다.

득춘은 무엇이라 대답하여야 좋을는지 알 수 없이 묵묵히 앉았다. 아내는 겨우 다시 얼굴을 들어

“그리고 주머니에서 지표(紙票)를 한 주먹 꺼내더니, 이것 봐! 나하고 오늘 밤에…….”

겨우 말을 꺼내고 그대로 느끼어 운다.

득춘은 마음이 쓰리었다. 그래도 자기는 제 고장에서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똑똑한 자식이 계집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게 해! 말아라. 어서 이런 것을 그만두고 차라리 빌어먹어라. 너는 계집을 팔아먹으려는 자이다. 이러한 꾸지람이 그의 마음 귀에 들린다.

“여봐요, 이런 영업은 그만 하고 얻어먹어도 우리 고장으로 가도록…….”

아내는 탄원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렇게 허지.”

득춘은 이렇게 대답하기는 하였으나, 이것을 그만두고 어디로 갈까 하는 작정은 물론 없다.

“모두가 내 잘못이여!”

또다시 중얼대듯이 말한다.

두 사람은 잠깐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바라보고 앉았다. 득춘은 무릎위에 놓인 아내의 손을 굽어보았다. 얼마 전에 그 얼굴 빛깔 검은 상투쟁이가 잡 은 손이다. 그리고 다시 발그스름하게 꼭 다문 입을 보았다. 그 입에는 술 에 썩어가는 그자의 수염이 스치적거리었을 것이다. 득춘은 주먹이 절로 쥐 어진다. 그리고 가슴이 벌떡거린다. 아내의 가엾은 생각이 전신에 사무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내를 껴안았다. 바깥은 고요하다. 다만 분노와 감사와 동정의 숨소리만이 득춘의 방에서 들릴 뿐이었다.

밤이 이슥이 깊었다. 득춘 부부는 겨우 잠이 들까 말까 하는 때였다. 그런 데 요란히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득춘은 처음에는 이웃집인가 하 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부르는 소리는 분명히 자기 집 문 앞에서 난다.

“아무나 없냐! 술 팔아! 이런 제기…….”

하는 부르짖는 소리도 들린다.

득춘은 짐짓 가만두고 하회(下回)를 보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지 않 고. 이번에는 발길로 문을 차는 소리가 들린다. 득춘은 할 수 없이 옷을 찾 아 입고 문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차는 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후리후 리하고 경골 빛 검은 부잣댁 서방님이 어떤 자 하나를 데리고 왔었다.

그는 빈정대는 소리로

“술 안 팔아! 벌써 돈냥이나 잡은 모양인걸!”

하며, 문 안으로 들어온다.

득춘의 가슴에서 무엇인지 치밀고 올라왔다. 그리고 두 주먹이 불끈 쥐어 진다.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좋을지 몰랐다. 이러하는 동안에 득춘의 아내 도 방문 바깥으로 나와 큰 소동이나 아니 날까 두려워 떨고 있다.

부잣집 서방님은 비틀걸음을 치며 안으로 들어온다. 득춘은 참았다. 내일 이라도 이런 장사를 그만두면 이런 꼴을 볼 이치가 없다. 술 취한 자를 가 리어 말하면 무엇 하나 하여 참았다.

그리하여 부드러운 소리로

“오늘은 밤이 깊어서 술을 팔 수 없소.”

하였다.

부잣집 서방님은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팔 수 없소? 팔 수 없소? 왜 팔 수 없어? 팔 수 없다니 하는 말은 모르는 모양인걸!”

하며, 득춘의 앞으로 대든다.

“밤이 깊어서 안 판다는데 무슨 잔소리여!”

득춘의 전신에 피가 뛰놀았다.

“이놈 봐라! 막한(幕漢)으로 꽤 번잡한 놈이다!”

하며, 술 취한 이는 비틀걸음으로 달려들어 득춘의 멱살을 붙들고 따귀를 한대 보기 좋게 부친다.

득춘은 정신이 아찔하였다. 두말할 것 없이 발길로 부잣집 서방님의 가슴 을 한 번 질렀다. 그자는 뒤로 나동그라진다. 이것을 보고 섰던 따라온 자 가 또 덤비었다. 그리하여 득춘의 집 마당에는 일대 격투가 일어났다. 득춘 은 몸을 빼서 부엌으로 들어가서 참나무 장작개비를 손에 들고 나왔다. 눈 에 보이고 손에 닥치는 대로 힘껏 두들기었다. 두 자는 쓰러져 누웠다. 득 춘은 가슴을 헤치고 헐떡이는 숨을 전정하여가며 부르짖는다.

“이놈들! 먹고살 수 없어 주막질을 해먹으니까 남의 여편네조차 뺏어도 관계없는 줄 아냐? 그래도 나는 내 고장에서는 내로라하는 임득춘이다. 돈 만 있으면 그만이냐! 좀 본때기를 해줄 터이나, 나도 내일부터 이 짓만 않 으면 그만이다!”

꺼꾸러진 자들은 또 덤빈다. 그는 또 장작개비로 후려갈긴다. 또 그들은 꺼꾸러진다. 이러한 동안 동리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술 취한 자들은 다른 동리 사람에게 붙들리어 바깥으로 나갔다.

득춘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 아내는 벌벌 떨고, 그 곁에서 남편의 소매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기를 권한다. 득춘은 지금까지의 자기의 살아가려고 애 쓰고 다른 사람에게 굴종한 것이 무엇보다도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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