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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돌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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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세력이 가장 높은 때의 일이다.

이 대원군께는 김세풍(金世豊)이라는 폐총(嬖寵)이 있어서, 당시의 대원군의 세력을 믿고 권문대가들을 놀려먹기를 예사로 하였다. 예컨대 권문거족이 대원군께 뵈려 오면, 먼저 김세풍이 대원군의 대신으로 나와서 대원군의 음성과 태도를 흉내내어 가지고 마치 대원군인 듯이

『그새 무양한가?』

하여 놀려대고, 권문들은 대원군을 저퍼하는지라 자연히 그 폐총인 김세풍을 건드리기를 꺼리어서 마치 대원군을 대하듯이 절하고 하였다. 어떤 날 대원군은 김세풍을 데리고 농담을 하던 끝에

『너 심암(心庵)을 놀려먹을 수가 있느냐?』

고 물었다. 심암이란 조두순(趙斗淳)의 호로서 근엄하기 짝이 없는 재상으로서, 당시 대원군이 유교(儒敎)를 탄압하는 데 불만을 품고 실직(實職)은 사퇴하고 있었지만, 만인에게 존경을 받고 있던 늙은 재상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위력을 믿는 김세풍은

『심암쯤이야 못 놀리겠습니까?』

고 하였다.

『그럼 네 심암의 앞에서 백구사(白鷗詞) 한마디를 부를 수 있느냐?』

백구사는 세풍의 특기였다.

『하구 말구오니까?』

『꼭 다짐 두겠느냐?』

『다짐 두겠습니다.』

『네가 못했다가는 대곤(大棍) 열 개를 맞을 줄 알아라.』

『알았습니다.』

이리하여 세풍은 운현궁을 지나서 조두순의 집으로 갔다.

세풍은 한미한 상민으로서 조두순 같은 재상을 뵐 염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심부름이라는 명목으로 대청에 들어가서 영외에 읍하고 섰다.

보매, 조두순은 마침 책안(冊案)을 대하여 무슨 글을 읽고 있는데, 사람이 왔는지 안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듯이 일심불란히 책만 보고 김풍 따위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김세풍은 영외에 읍하고 서기는 하였으나, 이 백발 재상의 무언(無言)의 위험에 눌리어서 움쭉을 못하고, 한참을 기다리다 못하여 마지막에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하였다.

헛기침도 두 번 세 번 하여 꽤 여러 번을 한 뒤에야, 백발 재상의 눈은 겨우 책에서 떠나서 김세풍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로 왔느냐?』

온화한 음성이었다. 아무 위엄도 띠지 않은 태도였다. 그러나 세풍은 이 위력에 눌렸다. 대답도 못 하고 그 대신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가슴이 서늘하였다.

『무슨 일이라?」

『네이……』

뒤가 나오지 않았다. 대원군께 약속한 백구사는 목구멍까지도 못 나왔다. 어름어름하다가 그냥 운현궁으로 도망하여 돌아왔다.

『그래, 백구사를 심암의 앞에서 불렀느냐?』

미소하면서 이렇게 묻는 대원군의 앞에 김세풍은 아직도 겁먹은 눈치로

『대감 마마, 대곤(大棍) 열 개가 아니라 백 개라도 맞겠습니다.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대원군은 웃어 버렸다.

조두순은 이만치 근엄하고 냉랭하기 때문에 찬물돌(寒水石)이라는 호를 대원군에게서 듣고 있었다.

청류 모(靑柳 某)며 국지 모(菊地某), 그밖 몇몇 조선 사람들의 저서(著書)에 조두순을 헌종대왕(憲宗大王)의 어머님 조대비(趙大妃)의 친척이라 하였으나 이는 엉뚱한 말로서, 성이 같으므로 그러려니 하는 짐작에서 나온 것이지 아무 친척 관계도 없는 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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