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변/하일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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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이삭들이 바람에 물결칠 때마다
어느 밭고랑에서 종다리가 포루룽 하늘로 오를 것 같다

논 도랑을 건너고 밭머리를 휘돌아
동구릉(東九陵) 가는 길을 물으며 물으며 차츰
산속으로 드는 낮은 그림 속의 선인(仙人)처럼
내가 맑고 한가하다
낮이 기운 산중에서 꿩 소리를 듣는다
당홍댕기를 칠칠 끄는 처녀 같은 맵시의 꿩을 찾다보면 철쭉꽃이 불그레하게 펴 있다

초록물이 뚝뚝 듣는 나무들이 그늘진 곳에 활나물 대나물
미일 때를 보며
―나는 배암이 무서워 칡 순을 따 머리에 꽂던 일이며
파아란 가랑잎에 무릇을 받아먹던 일이며
도토리에 콩가루를
발라먹던 산골얘기를 생각해 낸다

어디서 꿩알을 얻을 것 같은 산속
‘숙(淑)’은 산나물 꺾는 게 좋고 난 ‘송충(松蟲)’이가 무섭고―

한치도 못 되는 벌레에게 다닥드릴 때마다
이처럼 질겁을 해 번번이 못난이짓을 함은

진정 병신성스러우렷다
솔밭을 헤어나 첫째 능에 절하고 들어 잔디 우에 다리를 쉰다

천년 묵은 여우라도 나올 성부른 태고적 조용한 낮
내가 잠깐 현기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