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1권/18장
바람과 함께 사라진 사나이
[편집]1
[편집]「장 일수를 체포하였다!」
그렇다. 장 일수의 체포는 확실히 최 달근에게 있어서는 별 한 개의 승진은 넉넉히 기대할 수 있는 수확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쾌감을 한번 더 골돌히 맛보려는 듯이 심호흡을 두 번이나 하였다.
그리고는 장 일수가 쓰러진 정문 밖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상쾌한 기분을 통 가질 수 없는 최 달근이가 아닌가.
곰이나 호랑이를 쓴 포수처럼 그 승리감, 그 쾌감, 그 정복감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없는, 그 어떤 꺼림직한 불쾌감이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음을 어찌할 바가 없었다.
강도와 살인범을 쏘았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일종의 피의 항의가 최 달근의 쾌감을 자꾸만 흐리게 하였다.
「확실히 내가 졌나!」
하는, 그 불유쾌한 생각이 가슴 한복판에 엄연히 존재해 있었다.
그렇다. 체력으로도 최 달근은 졌다. 담력으로도 최 달근은 졌다. 그리고 인생관에 있어서도 아무리 허세(虛勢)를 펴 보았댓자 자기 편이 진 것만 같은 최 달근이었다.
다만 오늘날 최 달근으로 하여금 형식적이나마 승리를 갖게 한 것은 최 달근이가 지니고 있는 무기였다. 권총이었다. 아니, 그 권총 뒤에 존재해 있는 권력이 아니었던가.
「음 ──」
최 달근은 깊이 한 번 신음을 하면서 자꾸만 자꾸만 쓸쓸해져 가는 자기 자신에 채찍질을 하기 시작 하였다.
「그렇다! 출세의 층층대를 四[사]년 동안이나 기어 올라간 이 사다리를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차버릴수야 없는 일이 아닌가! 행복의 평가는 출세를 더디게 할 따름이다! 요! ─」
최 달근은 용기를 내어 장 일수가 쓰러진 정문 밖 어둠 속을 향하여 활발한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최 달근은
「앗!」
하고, 부르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도망을 쳤구나!」
분명히 왼편 다리를 쏜 최 달근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상처를 입은 장 일 수가 거기서 신음하고 있을 줄로만 믿었던 최 달근은 당황한 솜씨로 주머니에서 회중전등을 꺼내어 장 일수가 쓰러졌던 장소를 살펴 보았다.
「피다!」
장 일수의 흘린 시꺼먼 피가 한곳에 모이어 고여 있었다.
「놓쳤구나!」
최 달근은 확실히 행동의 평가가 출세를 더디게 한다는 산 증거를 눈 앞에 여실히 보는 것 같았다. 쓸데 없는 감상을 그만두고 좀더 속히 따라 나왔던들 장 일수를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곧 회중전등으로 처뚱처뚱 땅 위에 흘린 핏방울을 따라 장 일수의 뒤를 밟기 시작하였다.
「상처 받은 다리로 제가 갔으면 얼마나 갔을 것인가?」
두갈래 길 ── 하나는 아현동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이고 하나는 전차 길로 내려가는 길이다. 핏방울은 분명히 아래 길로 흘려져 있다.
최 달근은 마치 흥분한 사냥개처럼 피의 흔적을 따라 쏜살같이 아래 길로 뛰어 내려간다.
아아,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은 장 일수의 앞길에는 다만 하나의 기적을 바라는 요행이 있을 뿐이다.
2
[편집]최 달근은 회중전등을 휘저으며 핏방울을 따라 아현동 고개를 뛰어 내려 오다가 중턱에서 두 사람의 경관과 딱 마주쳤다.
「당신은 누구요?」
경관 편에서 먼저 소리를 쳤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요.」
최 달근은 「헌병오장 기므라, 다까오」라고 쓰인 신분증명서를 내 보이었다.
「아, 그렇읍니다?……실은 이 위에서 수상한 총소리가 나길래 뛰어 가는 길입니다.」
「아, 그 총은 내가 쏜 것이요. 중대 범인이 도망을 갔읍니다. 그런데 이리로 수상한 청년이 도망 하는 걸 보지 못했소?」
「수상한 청년 이라고요?」
「네, 안경을 쓴……」
「그리고 단장을 짚은 사나이가 아닙니까?」
「그렇읍니다.」
「그리고 길을 잘 못걷는 절룸발이가 아닙니까?」
「그렇읍니다. 그 놈은 다리에 총알을 맞았읍니다.」
「옛, 총을 맞았다고요?」
두 사람의 경관은 놀랐다.
「그렇읍니다. 본시부터가 절룸발이가 아니고 총을 맞아서 다리를 저는 것입니다.」
「앗, 그런 줄은 모르고 그놈을 그대로 보냈구나! 빨리 나를 따라 오시요.
아직 멀리는 못 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외치면서 비조처럼 언덕 길을 뛰어 내려가는 두 사람의 경관을 따라 최 달근도 달렸다.
밤거리의 추격전은 시작되었다.
이리하여 세 사람이 컴컴한 골목 길을 빠져 나와 환한 전차 길까지 다달았을 바로 그때였다.
「앗, 저기 가는 저 놈이다! 저 사나이를 잡아라!」
서대문 네거리를 향하여 쩔룩쩔룩 다리를 절면서 뛰어가는 사나이 한 사람이 있었다.
검은 외투에다 중절모자를 쓴 사나이 ── 그는 지금 발걸음을 멈추고 단장을 들어 지나가는 택시 ─ 를 황급히 멈추고 있지 않는가.
「앗, 저놈이 택시 ─ 를 멈추었다!」
「우리도 빨리 자동차를 잡아라!」
그러는 동안에 사나이의 자태는 후딱 자동차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저 놈이 자동차를 탔다!」
이윽고 사나이를 태운 자동차는 미끄러지듯이 밤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스톺!」
그때 경관 한 사람이 지나가는 자동차 한 대를 멈추어 놓았다.
「저기 저 앞에 가는 차를 따라라!」
세 사람은 불이나케 차에 뛰어 오르면서 외쳤다.
운전수는 눈이 동그래지며
「나리, 무슨 사건이 생겼읍니까?」
「잔소리 말고 저 차를 따라 가!」
최 달근의 벽력 같은 명령이다.
「네, 네.」
「저 차를 놓치면 너는 내일부터 밥 바가지가 떨어질 줄 알아라!」
「네, 네」
위잉하는 엔진소리와 함께 자동차는 한번 엉덩이를 들썩하면서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니, 흡사 이것은 그 어떤 탐정소설에 나오는 극적 장면의 한 토막이었다.
3
[편집]이리하여 쫓기고 쫓는 두 대의 자동차가 인기척 드문 겨울의 밤거리를 회오리 바람처럼 무섭게 달린다.
「앗, 저 놈의 차가 오른편으로 커 ─ 브를 했다!」
경관 한 사람이 외쳤다.
자세히 보니, 장 일수가 탄 앞 자동차가 서대문 네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꺾어져 일로 경성역 쪽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아나고 있었다.
「빨리 빨리! 저 놈을 놓쳐서는 큰 일이다!」
최 달근은 운전수의 어깨를 치며 고함을 친다.
가로등 밑을 지날 때마다 희뜩희뜩 마치 어둠 속을 누비는 듯이 쫓고 쫓기는 두 대의 자동차 ── 자동차와 자동차의 사이는 점점 좁아져 간다.
「앗, 이번엔 외인편으로 커 ─ 브를 했다!」
그렇다. 앞 자동차는 경성역 앞에서 외인편으로 꺾어져 남대문 쪽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점점 좁아지는 자동차와 자동차의 거리였다. 五[오]백미터에서 四[사]백 미터 ── 四[사]백 미터에서 三[삼]백 미터 ── 이윽고 앞 자동차는 남대문을 지나고 조선은행 앞을 지나서 명치동 입구에 다달았을 때였다.
쫓기던 자동차가 욱하고 멎자마자 사나이 하나가 차에서 뛰어 내려 명치동 입구에 있는 무슨 가개로 들어가 버리지 않는가. 그리고 손님을 내리운 자동차는 다시 욱하고 달아난다.
「앗, 조 놈이 할 수 없이 차를 내렸다!」
그러면서 최 달근도 명치동 입구에서 차를 멈추고 경관 두 사람과 함께 차에서 뛰어 내렸다.
「분명히 그 놈은 이 가게로 뛰어 들어 갔는데…」
그것은 아직 채 문을 닫지 않은 조그만 약방이었다.
「포대안에 든 생쥐 격이다!」
권총을 꺼내 잡은 최 달근은 경관 두 사람과 함께 약방 안으로 기운차게 뛰어 들어 갔다. 그때 손님에게 무슨 매약을 팔고 있던 주인이 후딱 머리를 들며 놀랜다.
「떠들지 말고 똑똑히 대답을 해라.」
「무……무슨 일입니까?」
주인은 얼굴이 새파레 진다.
「인제 방금 자동차에서 내린 손님 한 사람이 이리로 뛰어 들어 왔지?」
「자동차에서 내린 손님 이라구요?」
그러면서 주인은 지금 막 청심환 한 봉지를 사 들고 나가려는 청년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면서
「아, 바루 이 손님이 자동차에서 내린 분인데요.」
「응?」
최 달근은 휙 청년을 돌아다보며
「당신이 이제 방금 자동차에서 내렸소?」
「네 ──」
「…………?」
최 달근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이요?」
「자동차 운전숩니다.」
「뭐, 운전수?……」
「네……그런데 왈 그러십니까?」
「그 자동차에 탔던 절룸발이 사나이는 어디 갔어?」
「아, 그는 지금 밖에 있는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읍니다.」
「뭣이?……밖에 차가 어디 있어?」
「엣?……」
운전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가 보았다.
「앗, 자동차가 없어 졌다!」
운전수는 또 한번 깜짝 놀라면서
「아, 그놈이 올라 타자마자 밸이 끊어지게 아프다고 허리를 꼬며 청심환 하나만 좀 사오라고 하기에……」
그러면서 운전수는 펄펄 뛴다.
「으음, 자식에게 속았구나!」
최 달근은 주먹을 불끈 쥐며 발을 동동 굴렀다.
태양출판사로 신 성호를 찾아 온 최 달근은 이상과 같은 이야기 가운데서 자신의 불리한 대목은 쏙쏙 빼놓고 대강 한 줄거리만을 설명한 후에 대통령을 놓쳐 버린 것을 무척 분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