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1권/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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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의 역사[편집]

1[편집]

김 준혁은 무척 초조한 마음으로 아현동 고개를 내려오고 있었다.

「어떤 진실한 학생이 말하기를, 二[이]등 차만 타고 현해탄을 건너 댕기면 인생을 모른다구요.」

하던 경성역에서의 유경의 , 말이 마음에 자구만 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진실한 학생이란 물론 북행열차 三[삼]등 객실에서 유경이와 손을 내저으면서 헤여진 사각모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각모는 유경이가 수술실에서 헛소리로 고백을 한 백 영민이란 사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준혁은 오 창윤씨의 뜻을 배반하지 않도록 노력은 하겠다고 대답했을 따름이다. 그 노력이 과연 성공 할런지 또는 한 개 수포로 돌아 갈런지 ── 그것은 물론 알수 없는 일이다.

「봉첩이 넘나들기 전에 왜 미리 좀 손을 못 썼든고?」

하는 후회도 있었다.

오 창윤씨도 뜻을 절반은 알면서 남어지 절반을 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손을 댔다가 혹시 은인을 실망케 하지나 않을까 하고, 점잖게 취해 온 자기의 「슬로 ─ ㆍ 모 ─ 션」이 후회도 났다.

「그러나 아직 늦지는 않다.」

김 준혁은 힘있게 그렇게 외치며 광화문 자기 병원으로 돌아 왔다.

환자가 너더댓 명 기다리고 있는 대합실을 지나 진찰실로 들어갔다.

「아, 지금 돌아오십니까?」

하고, 유리창 너머 행길 밖을 유심히 내다보고 섰던 신성호가 적지 않게 긴장한 얼굴로 김 준혁을 맞이 하였다.

「신형, 언제 오셨소?」

「조금 아까……그런데 아현동엘 가셨었다지요?」

「네.」

김 준혁은 모자와 외투을 벗어 걸었다.

「장군에 대한 무슨 단서를 붙잡었답디까?」

신 성호는 들창 밖을 흘끈흘끈 바라보면서 묻는다.

「아직……그러니까 염려 말아도 좋아요.」

「그러나 안심은 안됩니다. 저걸 보시요. 지금 저 전찻길 건너 전선대 뒤에서 이편을 바라보고 섰는 사나이 ──」

그러면서 신 성호는 들창 밖을 눈으로 가리켰다.

「아, 저 국민복에다 캪을 쓴 애꾸눈이 말이요?」

「네, 저놈의 애꾸눈이가 자꾸만 내 뒤를 따라 댕겨서 귀찮아 못 견디겠어요. 저번 청량리 장군 있는 데를 갈 때두 저 애꾸눈이 때문에 두 시간이나 걸렸지요. 이리저리로 피해 가느라구요.」

「대관절 누굽니까?」

「헌병 앞잽이지요. 저번에 말씀드린 땅개의 앞잽입니다. 땅개는 내가 분명히 장군이 거주하는 데를 알고 있는 줄 믿고 자꾸만 앞잽이를 내세우지요.」

「그렇다면 좀 주의를 해야겠는데요.」

그때 간호부가 문을 방싯 열고

「저 환자가 기다리는데요 선생님.」

「아, 조금만 더 기다려.」

하고 간호부를 물리쳤다.

「그래 오늘 김 선생님을 찾아온 것은……」

하고 신 성호는 잠시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대단히 미안한 청입니다만 한 五[오]백원 가량 좀 돌려 주시었으면 하고요. 장군이 인젠 거의 다리도 나아가고 해서 기회를 보아 북으로 들어 가겠다구요.」

「음, 五[오]백 원……」

「물론 후일 제가 갚아 드리겠읍니다만……」

김 준혁은 잠깐 생각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금고 속에서 五[오]백 원을 취해 주었다.

「고맙읍니다.」

신 성호는 김 준혁의 손을 힘있게 잡았다.

「그런데 저 장군을 간호하는 파출부 ── 그이는 물론 신용할 만한 사람이겠지요?」

「절대적으로 신용하여도 좋습니다. 세상 사람의 전부가 이 김 준혁을 배반하여도 그이 만은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지(大地)의 안정성(安定性)을 믿는 것처럼 자신있는 대답을 김 준혁은 하였다.

2[편집]

김 준혁과 헤어져 진찰실을 나온 신 성호는 자기 뒤를 한사코 따라다니는 애꾸눈이가 그만 귀찮아 변소 옆으로 난 뒷문으로 나아가 당주동 골목으로 빠져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는 애꾸눈이는 그냥 전선대 옆에서 얼마동안을 주첨거리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신 성호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잠깐 동안 병원 문 앞에서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결심을 한듯이 호기있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선생, 계신가요?」

애꾸눈이가 지나가는 간호부 한 사람을 붙들고 그렇게 물었다.

「네, 지금 진찰실에 계시는데……어떻게 오셨어요?」

「잠깐 선생을 뵈려왔는데. ── 난 이런 사람이요.」

하고 애꾸눈이가 한 장의 명함을 간호부에게 내주었다.

「네, 네, 그러셔요?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리세요?」

간호부는 명함을 들고 분주스레 진찰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이런 분이 오셨는데요.」

김 준혁은 환자의 가슴에서 청진기를 떼면서 명함을 들여다 보았다.

「헌병 보조원(憲兵補助員) 박택 준길(朴澤俊吉) ── 들어 오라구 그래.」

이윽고 애꾸눈이는 대합실에 있는 환자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서 진찰실로 들어왔다.

「앉으시지요. 제가 김 준혁입니다.」

「헌병대 호 ─ 자왑니다. 분주하신데 미안합니다. 잠깐 여쭤볼 말씀이 있어서 들렸읍니다.」

애꾸눈이는 권하는대로 의자에 않아 담배를 붙여 물며 일어로 물었다.

「저 다른것이 아니라, 선생은 태양 출판사에 있는 신 성호라는 사람을 혹시 아는지요?」

「네, 잘 알고 있읍니다.」

「선생과 신 성호와는 대략 어떠한 사이입니까?」

「어떠한 사이라고……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읍니다만 사오 년래의 친구지요.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물으십니까? 신군이 무슨……?」

그러나 거기에는 대답이 없고 잠깐동안 방안을 휘둘러 보다가

「신 성호는 가끔 여기 놀러 오는가요?」

「가끔이라기 보다는 때때로 지나다가 들리군 하지요. 지금도 막 들려 갔는데요.」

「엣?……그럼 이 병원에 뒷문이 있는가요?」

「바로 변소 옆에 뒷문이 있지요.」

「흥, 야로오(자식) 뒷문으로 뺐군 그래!」

애꾸눈이는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린 후에 말 머리를 돌려

「입원실이 모두 몇 개나 되는가요?」

「열아문 된지요.」

「입원 환자는 몇이나 되는가요?」

「지금 여섯 명입니다.」

「미안하지만 입원실을 잠깐 보여 주실수 없을까요?」

「네, 얼마든지 ── 아, 경숙이, 이분을 모시고 입원실을 매방 안내해 드려요.」

「네에.」

애꾸눈이는 경숙이라는 간호부의 뒤를 따라 나가다가 얼마 후에 돌아 왔다.

「선생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실례하겠읍니다.」

하고 애꾸눈이는 병원을 나왔다.

박 택준길 ── 그렇다. 벌써 四[사]년전 일이다. 탑골동 태극령에 달빛이 흐르는 밤, 아아, 허무러진 과거여, 찢어진 이력서여! 허 운옥이가 수난의 노래를 눈물 젖은 마음으로 구슬피 부르며 태극령 고개를 넘으려 할 때, 야수처럼 달려든 박 준길을 은장도로 쓰러뜨린 기억을 독자 제군은 다시 한번 새롭히라.

허 운옥의 은장도는 박 준길의 생명을 빼앗는 대신에 눈깔 하나를 빼앗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