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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장/1권/5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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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

[편집]

유경은 어머니와 나란이 자리에 누워서 푸우 한숨을 쉬었다.

「너 정말로 꼭 그 사람이 마음에 드느냐?」

「어머니!」

「응?」

「나 준혁 오빠에겐 미안하지만……」

「글쎄 그만했으면 네 맘을 잘 알았다만………그래 사람은 똑똑하냐?」

「네, 그만한 사람두 쉽지 않을것 같아요.」

「하기야 네 맘에 들면 그만이지. 돈이 있으면 뭘 하구 지위가 있으면 뭘 하니? 여자란 그저 남편이 귀여워 해주구, 아껴 주고 하는 사람이 제일이지. 후우── 」

하고, 이번에는 어머니가 꺼질 듯이 한숨을 쉰다.

「너의 아버지만 해두 전에야 착실한 사람이었지만두……」

「왜 아버지가 뭐랬수?」

유경은 어머니 편으로 돌아 누었다.

「아니, 아무것두 아니지만 말이지.」

하고, 말머리를 돌리며

「그런데 너 전번 보다 얼굴이 까칠해 진게 무척 깠구나. 어디 앓았느냐?」

「아니요. 앓긴……」

하고, 이번에는 유경이 편에서 또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며

「어머니 신색이 정말 무척 나빠요. 어머니 어디 앓았수?」

「아아니, 앓긴……」

어머니와 딸의 물음과 대답이 똑같다. 유경은 생각한다. 자기두 어머니를 속이고 있지만 어머니두 무엇인가 자기에게 속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유경은 살살 물어 보는 것이다.

「어머니, 정말 중병 앓은 사람 같아요. 전보처럼 정말 위독했수?」

「흥, 맘이 편해야 신색두 좋지.」

그러다가 부인은 남편과의 약속도 잊어버린 듯이

「내가 널 오란건 그런 문제 보다두……」

「뭐 또 다른 문제가 있수?」

「그저 암 말두 말구 널 젤루 아껴 주는 사람한테 시집 가는게 제일이지.

돈 있으면 뭘하니? 남자란 돈이 생기면 엉뚱한 생각을 하는 법이니까.」

「왜 아버지가 뭐랬수?」

「후우──」

하고,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 쉬다가

「유경아, 너 같으면 어떡허겠니?」

「뭘 말유?」

「네 남편이 딴 여자를 보아 댕기면 말이다.」

그 말에 유경은 발딱 몸을 일으켜 자리에 일어나 앉으며

「어머니, 그게 정말이유?」

「정말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럴 리가 있어요?」

「그런 걸 어떡허니?」

「네에?……」

믿고 있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말을 듣는 순간 유경의 결백한 성품이 오들오들 치를 떤다.

유경의 인생관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성 전체에 대한 남성의 모욕을 유경은 전신에 느끼면서

「그래 여자는 어떤 이야요?」

「춘심이라는 기생이라는데 효자동에다 딴 살림을 채려 놨단다.」

「지금두 그리로 갔어요?」

「그럴테지」

「그래 어머닌 가만 보구만 있었수?」

「보구만 있지, 그럼 어떡허니? 남 부끄럽게 따라 댕길 수두 없는 일이 아니냐?」

「왜 남이 부끄러워요? 내 일을 내가 처리하는데 남이 뭐라구 그래요?」

「얘얘, 그래두 어디 그렇드냐?…… 그래 하두 속이 상해서 널 불러 내려는데 준혁이 문제가 생겨서……」

「가만 계세요. 어머니 그 집 아세요?」

유경은 발딱 일어나서 옷을 주어 입기 시작하였다.

얼굴이 새파래 져서 옷을 주어 입는 유경의 모양을 보고 어머니는 그만 눈이 둥그레 진다.

「얘얘, 너 이 밤중에 어딜 가려느냐?」

「그래 어머니두 밸이 빠진 사람이지, 그런 꼴을 보구두 그냥 내버려 두셔요? 내 당장 가서 아버질 끌고 올테야요!」

「아이구 이 철부지야.」

하고, 어머니는 딸을 만류한다.

「누가 철부지야요? 어머니가 철부지지! 그래 그런 모욕을 당하구두 가만 둬요?」

「그럼 어떡헌다는 말이냐?」

「당장 왜 못 끌구 와요?」

「흥, 끌구 오면 될줄 아느냐?」

「왜 안 돼요? 이 가정을 택하느냐, 그 가정을 택하느냐 ── 둘 중에 하나를 택하람 되잖어요?」

「아이구 그처럼 쉽사리 될 줄 아느냐? 어찌나 능청 맞은지,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슬슬 넘겨만 집는단다.」

「그거야 어머니가 받아 주시니까 그러지, 왜 처음부터 강경하게 못 나가요?」

「젊었으며 또 모르지만 이 나이에 그렇게야 또 할 수 있느냐?」

「그런 것이 다 탈이야요. 젊건 늙었건 부부의 길엔 두 갈래가 있을 수 없어요. 어머니가 그처럼 약하게 생각하시니까 아버지가 넘겨 잡는게 아냐요?…… 어머니 자아, 집 알으켜 주세요.」

「얘야, 글쎄 남 창피하게 이 밤중에 왜 그렇느냐?」

「어머니 집 모르세요?」

「난 모른다. 누가 가 봤느냐?」

약이 오른 고양이처럼 유경은 쌕쌕 숨결을 높이며

「준혁 오빤 알테죠?」

「준혁이야 알겠지만두……너 글쎄 어미 얼굴에 침 뱉으러 갈테냐? 이 밤중에……」

「전화로 물어 볼테야요.」

그러면서 복도로 나가려는 딸의 팔을 어머니는 꽉 부여 잡았다.

「너 정말루 나가거든 내일 아침에나 가거라. 에이구, 너같은 걸 다 사람이라구 동경서 불러낸 내가 잘못이지. 너 글쎄 생각 좀 해 보아라. 이 밤에 가면 간 사람의 꼴은 무엇이구 저쪽 꼴은 무엇이 되겠니, 글쎄?」

그 한 마디가 유경의 귀에 아프게 들려 왔다. 몇 달 전까지는 잘 알아 듣지 못했을 그 한 마디를 유경은 얼굴을 붉히면서 얼른 알아 듣는 것이다.

알아 듣는 그만큼 유경의 인생이 복잡해 졌다.

유경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주저 앉았다.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오들오들 떠는 것이다.

「낼 갈테야요.」

유경은 다시 자리에 누우며

「내일은 어머니, 막음 안돼요.」

「네까짓 것이 가면 끝장이 날줄 아느냐?」

「끝장이 나구 안 나는건 문제가 아냐요. 가만 보구 있느냐 안 있느냐가 문제죠.」

「보구 안 있으면 어떡허니? 누군 분한 줄 모른다드냐?」

「분한 사람이 그처럼 가만 보구만 있어요? 한 집에서 자구, 밥 먹구, 그래요?」

「너 같으면 그럼 어떡허느냐 말이다.」

「나 같음 얼굴에다 침을 탁 뱉구 다시는 보지 않아요. 영영 보지 않아요.

자기를 모욕하는 사람을 어떻게 봐요 사랑 아니라 사랑의 할아버지를 떠갖구 온대두 나는 그런 꼴 못봐요! 인격적으로 모욕을 하는데 사랑이 어디 있어요? 있담 그건 노예로서의 사랑이야요.」

「노예가 무엇이냐?」

「모름 마세요!」

유경은 홱 돌아 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