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3권/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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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변[편집]

1[편집]

결사적으로 탈출을 하려면 전연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것은 생명의 포기를 의미하는 최후의 모험이었다. 더구나 수송관의 감시가 한층 더 극심한 백 영민에게 있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좀 더 기회를 두고 보자는 것이 백 영민과 황 칠성의 합의된 의견이었다.

더구나 일선이 점점 가까와 짐을 따라 그것은 두 사람의 탈출 계획자에 있어서는 결코 절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한 줄기 광명을 의미하였다. 어디서 탈출을 하든지 간에 결국에 있어서 백 영민과 황 칠성은 일선을 돌파하여 중국군의 진지로 넘어 갈 수 밖에 없는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한 기회를 놓쳤다 하더라도 그것을 후회는 하였으나 끝끝내 후회하지는 않았다.

서주에서 진포선을 버리고 농해선(.海線) 기차로 갈아 타고 하남성(河南省) 상구(商邱)에 도착하였다. 상구는 귀덕(歸德)이라고도 불렀다. 상구에는 독립여단(獨立旅團)의 본부가 있는 곳으로 수륙의 편이 좋아서 성내에는 상업이 번성했다.

학병 五十[오십]명 중에 二十五 [이십오]명이 이곳 여단 본부에 배속이 되고 나머지 二十五[이십오]명은 이튿날 아침 트럭으로 탁성(拓城)에 도착하였다. 탁성에는 연대 본부가 있었다. 二十五[이십오]명은 또 두 패로 갈리어 최전선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한 패인 여섯 명은 제 二[이]중대에 배속되기 위하여 ○○를 향하여 출발하고 나머지 여섯 명은 제 四[사]중대(第四中隊)에 배속되기 위하여 훨씬 남쪽인 준양(準陽)으로 출발하게 되어 트럭 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백 영민과 황 칠성도 서로 갈라지지 않고 제 四[사]중대에 배속되어 회양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트럭 편은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그들은 아침 저녁 점호(點呼)에 나가는 이외는 별로 뚜렷한 임무라고는 없었기 때문에 매일처럼 방에서 딩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단념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낙천가인 야스다(安田[안전])라는 학생이 번뜻 나가 누워서 담배꽁초를 피우면서 하는 말이다.

「메이화아즈, 메이화아즈!(하는 수 없다. 하는 수 없다) ─ 중국인은 참으로 좋은 처세술(處世術)을 습득했거든.」

벌써 여러번째 하는 말을 야스다는 싫증도 안나는지, 되풀이하는 것이다.

야스다는 성대(京城帝大[경성제대]) 출신으로서 모 상사회사에 일 년 동안 취직을 했다가 끌려나온, 이 중에서도 제일 나이가 많았다.

「가나즈 상!」

들창 문지두리에 턱을 고이고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 보고 섰는 학생 하나를 불렀다.

가나즈 김진 라고 (金津[ ]) 불리운 그 학생은 몹시 신경질인듯 싶은 창백한 얼굴을 돌리면서 이마를 찌푸렸다.

「아무리 열심히 하늘을 쳐다 봐두 별 수 없소. 메이화아즈의 철학을 우리는 배워야 해요.」

「나는 당신과 이야기 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니 나에게 말을 건느지 마시요.」

가나즈라는 학생은 홱 돌아서면서 다시금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 나즈는 동경 청산학원(靑山學院) 영문과 재학중이다.

「하아· 고레와· 다이시따· 즈라요고시쟈!(하, 이건 대단한 체면 훼상인 걸) ─」

그리고 야스다는

「하, 하, 하, 하……」

하고 웃고 나서

「감정을 상했으면 미안합니다. 그러나 어째서 그처럼 감정이 상했는지, 나는 통 알 길이 없군요. 호의를 주고 악의를 받았으니 고레와· 고레와· 소로 방가· 아와네이야!(이건 정말 수지가 맞지 않는 걸) ─」

「나는 당신의 그 메이화아즈가 싫습니다. 나는 당신의 유창한 일어가 싫습니다!」

대답은 등 뒷사람에게 하였으나 가나즈의 창백한 얼굴과 가냘픈 몸은 여전히 먼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2[편집]

「왜들 그럽네까? 그러디들 말소구레. 이거 머 다 팔다가 사나와서 그렇디, 누구 하고파서 하는 노릇입네까?」

언어학적(言語學的) 쎈스를 전혀 갖지 못한 평안도 내기 데이하라(鄭原[정원])라는 학생의 둥글둥글한 얼굴이 한편 구석에서 어슬렁 어슬렁 일어 났다. 그도 역시 야스다처럼 누워 있었다. 평양서 일 년 전에 갓 올라온 연전(延專) 상과 일 학년이다.

「아, 글쎄 내가 뭐라고 그랬소? 이런 때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맘 편히 가지는 방법을 강구해야 되지 않소? 보아하니 가나즈 상은 항상 우울한 얼굴을 일고 있기에 동생처럼 생각하고 맘 편히 가지라고……」

나는 「 당신같은 사람의 동생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가나즈의 타협 없는 날카로운 대답이 또 튀어 나왔다.

「당신은 또 왜 그처럼 뾰족합네까? 호의에서 나온 말이라면 이 편에서도 호의를 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닙네까?」

데이하라는 웃는 얼굴로 가나즈를 바라보았다.

「야스다 상은 호의에서 일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악의로 밖에 더 들리지 않아요. 나는 나의 감정을 무엇보다도 존중해요. 나는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것 밖에는 해오지 않은 사람이요. 나의 사전(辭典)에는 메이화아즈라는 어휘는 있을 수 없는 것이요.」

「허어, 그 뭐 나폴레옹 이상입네다 그레.」

데이하라의 말이다.

「이상일는지도 모르지요.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어휘가 없었을런지도 몰라도 나폴레옹의 생활에는 불가능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나의 생활에는 메이화아즈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정말 하고 싶지 않는 것을 부득이 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경우에는 나는 언제든지 나의 생존권(生存權)을 내 손으로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요!」

일동의 얼굴이 긴장을 했다. 가나즈가 항상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가나즈는 분명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아· 소오· 고오훙· 시나산나!(뭐 그리 흥분하지 말아요) ─」

야스다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그 너무나 여유있는 말소리가가 나즈의 감정을 바늘로 또 찔렀다.

「당신의 말이 너무 유창해서 일본 사람과 꼭 같은 것이 내 비위에는 맞지 않아요. 조선 사람이면 조선 사람다웁게 약간이나마 서투른 일어를 사용해 주시요. 나의 감정은 그것을 당신에게 희망하고 있는 것이요.」

「스미마헨나!(미안 허우) ─」

이건 또 때때로 튀어 나오는 야스다의 오오사까 말이다.

「그만들 두시요. 오월동주(吳越同舟)라 했소. 밉건 곱건, 좋건 싫건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운명의 바다를 흐르고 있는 우리들이요. 둥글둥글 호박처럼 굴러가 봅시다그려.」

백 영민이 옆에서 샤츠의 이를 잡고 있던 황 칠성이의 만류의 말이다.

「그렇지 않소? 한 민족의 존엄성(尊嚴性)은 그 민족의 긍지를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요.」

황 칠성의 만류에 말을 막찔러 가지고 영민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오늘날 비록 위정 당국이 창씨를 강요하고 학병을 강요하고 우리 말을 말살하는 포악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흔연 자진(欣然自進)하여 그 실시를 환영하고 그 정책에 영합(迎合)할 필요는 없는 것이요. 창씨도 좋고 출정도 없고 일어 상용도 무방하오. 그러나 우리가 자진하여 민족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개인의 자존심을 스스로 배척할 필요는 없는 것이요.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능숙한 일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여 우리의 생명이나 생활이 위협을 받는 것은 아니요. 능숙한 일어의 사용을 우리는 아직까지 강요 받은 일은 없으니까요.」

「그만 둬요, 그만 둬!」

황 칠성이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백 영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누워 있던 야스다가 그때 천천히 일어났다. 별반 흥분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일종의 연민과 가느다란 비웃음이 그의 입가에 떠돌고 있다.

「그대들은 훌륭하오. 다만 이 자리에서 훌륭하지 못한 것이 나 혼자 뿐인 듯 싶으오.」

야스다는 까치다리를 하며 일견 달관적(達觀的)인 여유 있는 자세로 일동을 휘이 둘러 보았다.

3[편집]

「오해 마시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훌륭하다고 말 한 적은 없소.」

백 영민도 까치다리를 하였다.

「아니요. 당신네들이 지금까지 나를 공격한 그 말들이 대단히 훌륭하였소. 그러나 한 마디 하겠소. 내가 왜 당신네들 처럼 훌륭하지 못했던가? ─ 나는 그 이유를 말하고저 하는 것이요.」

「하시요.」

가나즈의 다짐이다.

「나의 약간 유창한 회화가 당신네 귀에 거슬렸다면 그것은 하는 수 없는 일이요. 그것이 나의 친일 정신의 발로라고 인정하여도 무방 하오. 아니, 솔직히 말하겠소. 나는 일어를 잘 해 볼려고 무척 애를 쓴 사람이요. 아니 애를 쓴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요. 아니 나는 될 수 있으면 일본 사람이 되어 볼려고 노력을 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요.」

다른 학생들은 일본말과 국어를 섞어 썼지만 야스다는 시종여일하게 꼭 일어만 썼다.

「내가 어머니 배에서 사파에 떨어져 나왔을 때 나에게는 하나의 어휘상(語彙上)의 조국은 있었으나 나를 인도하고 나에게 정신적인 양식을 준 정치적인 조국은 없었소. 二十六」[이십육]년 동안 나에게 조국의 역사를 살틀히 가르쳐준 교사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소. 내가 조국에 관한 약간한 역사적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모다 구비(口碑)나 전설에서 배운 단편적인 것 밖에는 없었소. 나는 조국의 역사 보다도 일본의 역사를 더 많이 알고 더 잘 아오. 철이 들어 十[십]여 세를 넘었을 무렵까지 나는 나의 조국이 일본인 줄만 알고 있었소. 그것을 나의 부모도 별로 탓하지를 않았고, 나를 둘러 싸고 있는 이 사회도 그것을 막아 주지를 않았소. 총독부의 하급 관리었던 나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기가 바쁘게 한 벌 밖에 없는 출근 양복을 벗어 놓고 유카다를 입고 게다를 신었소. 우리집에는 돈이 드는 한복을 작만 할 여유가 없는 탓도 있었겠지요. 당신네들은 조선말을 국어라 부르겠지만 나에게는 국어라면 곧 일어를 의미했소. 일어를 국어라고 부르는데 있어서 나의 감정은 조그만 항의도 없었고. 나의 부모는 가정에서도 일어를 사용했고 앉을 때도 까치다리를 하는 것 보다는 꿇어 앉는 것이 단정하다 하여 모다 꿇어 앉았소. 하여간 나는 아니 우리 부모들까지도 모다 하루 바삐 충실한 일본인이 되기를 꺼린다기 보다도 도리어 원했었소.

그것이 우리의 생활면에 있어서 항상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 왔기 때문이오. 나는 이 자리에서 솔직히 묻겠소. 우리 삼천만 가운데서 당신네들처럼 완고한 민족적 감정을 가지고 그날 그날을 민족의 이익과 번영을 위하여 살아 온 사람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는지 그것을 묻고 싶소.」

야스다는 거기서 일단 말을 끊었다. 야스다에게는 그 어떤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한 개연성(蓋然性)을 가지고 따지자는 건 아니요. 그러한 무의식 대중의 수가 많다고 해서 거기에 곧 추종하는 당신의 교양을 말하는 것이요.」

「나의 교양이라고요? ─ 나의 교양은 그러한 무의식 층에 속하기에 편리한 교육 밖에 받지를 못했소. 교육을 받으면 받을 수록 나는 좀더 속히 일본인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소.」

4[편집]

「당신이야 말로 철저한 친일파다!」

그때까지도 꾹 참고 있던 황 칠성이가 그 이상 더 묵과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소. 친일파라도 하는 수 없는 노릇이요. 그렇기 때문에 범중(凡衆)에 물들지 않고 민족의 존엄성을 항상 지키려는 당신네들을 나는 아까도 훌륭하다고 말했소 나는 조금도 . 허세없이 당신네들을 위대하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의 념을 품소.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특별히 말해 둘 것은 모두가 다 그처럼 위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오. 삼천만이 다 그처럼 쉽사리 훌륭해 질 수는 없는 것이요. 나는 그 훌륭하지 못한 범중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인하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는 중지하시요. 이 이상 더 논의할 필요는 없소.」

하는 가나즈의 말에

「가만 계시요. 한 가지만 더 물어 보겠소.」

하고 황 칠성이 역시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무엇이든지 물으시요.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대답을 하리라.」

야스다도 침착하였다. 야스다는 자신이 만만하다.

「우리가 이번 학병으로 출정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요?」

「어떻게 생각하다니, 좀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여 주시요.」

「야스다 상은 자진하여 지원을 했읍니까?」

「누구가 죽기를 원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 메이화아즈! 그것은 당신네나 내가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일본 사람이 되기를 그처럼 원한 사람이니까 당신의 조국인 일본을 위하여 자진해서 지원해야만 할 것이 아니요?」

「그런 서투른 질문을 왜 하는 거요?…일본인 자신들은 그럼 죽기를 원해서 자진 출정하는 줄로 믿습니까? 아니 그런 사람도 개중에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의 대부분은 모다 메이화아즈, 하는 수 없으니까 나가는 것이 아니요? 국가라는 하나의 강권에 대항 할 수 없으니까 나가는 것이지요. 나가 되, 같은 값이면 나라를 위하여 개체를 희생한다는 애국 정신을 자기 자신에게 고취함으로서 죽음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 뿐이겠지요.」

방안이 조용해 졌다. 야스다의 이 마지막 한 마디에는 누구 하나 이의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꼬운 친일파이긴 하였으나 그 공리적인 체념(諦念) 가운데는 백 영민과 황 칠성의 이상주의적 민족주의나 가나즈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로서는 그리 쉽사리 산출해 낼 수 없는 하나의 냉혹한 현실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당신이 이번 전쟁에 나가서 죽는데서 어떠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것입니까?」

백 영민의 물음이었다.

일본이 이번 전쟁에 이겨서 「 명실공히 동아의 맹주가 된다면 우리가 흘린 피의 댓가의 몇 분지 일이라도 요구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면 당신은 조국의 독립이라는 문제는 영원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영원이라는 말을 쓰면 어폐가 있겠으니 쓰지 않겠소. 그러나 당분간 나는 조국의 독립이라는 것을 단념한 사람이요.」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국력이 충실하지 못한 곳에 독립이란 있을 수 없소.」

「국력이 충실치 못하게 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이 된 때문이 아니요?」

「물론 그것도 있소. 그러나 국력이 충실치 못했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이 된 것이라고 나는 봅니다. 일본은 결코 큰 나라가 아니요. 그 조그만 일본이 광대한 중국을 침범하려 들었소. 일출을 모르는 대영제국(大英帝國)의 본국도 조그만 섬에 불과하오. 이것은 모다 국력의 비중(比重)에서 생기는 결과가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하여 피를 흘림으로서 조국의 독립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그렇소, 너무나 현실주의며 너무나 반민족적 행위가 아니요?」

「하는 수 없는 일이요!」

야스다는 실로 대담한 실로 대담한 한 마디를 서슴치 않고 하였다. 순간

「무엇이? 이 창자까지 썩어 빠진 위인아!」

영민의 옆에 있던 칠성이의 손길이 야스다의 뺨을 무섭게 후려 갈겼다.

「이거 정말 왜들 그럽네까?」

데하라가 나서서 두 사람을 만류하였다. 야스다는 손으로 자기 볼을 부비면서 이윽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입장이 바뀌어 진 것 같소. 이 자리가 어떤 판이라고 친일파인 나에게 손을 대시요? 군들 자중하시요! 그러나 나는 언제든지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감히하는 사람들을 존경할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나에게는 총뿌리를 꺼꾸로 댈 용기도 없고 적군이 나의 가슴을 겨누고 있을 때 나는 내 총뿌리를 하늘로 댈 용기도 없소. 나는 무서운 모험을 무릎쓰고 탈출할 용기도 없고가 나즈 상 모양으로 자살을 할 용기도 없소. 내가 상대편을 죽이거나 상대편이 나를 죽이거나 나의 취할 바는 이 두가지 중에 하나 밖에는 없는 것이오. 이러한 운명은 군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렇게 해서 죽는 내가 어찌 내 조국을 위하여 죽는다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있다는 말이요 이러한 죽음의 가치를 ? 억지로라도 발견해 보려면 훌륭한 내 선배들이 권하는 바와 나의 부모형제로 하여금 내가 흘린 피의 댓가라도 청구해 보라는 것 뿐이요.」

야스다는 그러면서 총총히 밖으로 나가 버리고 말았다.

친일파에도 여러가지 분류가 있다. 최 달근이 같은 출세를 위한 자도 있고, 박 준길이 같은 무지에서 오는 자도 있고, 오 창윤이 같은 일종 명예욕 때문에 그러한 이도 있는 반면에 이 야스다와 같이 확고한 인생관 내지 세계관 밑에서 움직이는 소위 의식적인 분자도 있었던 것이니 다른 분자들에게는 반성의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이 야스다에게는 도저히 그것이 있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