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예이론의 신전개와 그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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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近 文藝理論의 新展開와 그 傾向

─ 社會學的 及 文學史的 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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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二九年 以後부터 나는 나의 『카푸』에 關한 所謂 指導 理論에 若干의 懷疑를 갖기 始作하다가 同 三一年 東亞日報 新年號에 『藝術運動의 昨今』이라고 題한 論文을 發表하엿든바 權煥氏에게 右翼的 福田博士式이라는 『뿌랜드』를 찍힌 後에 뒤를 이어서 無數한 論客에게 一齊射擊을 받엇다─哲學 속으로 逃避하엿느니, 或은 無能力하니, 右翼的이니, 『인테리』化하느니, 或은 『小뿌르쥬와』니 하는 온갖 形容詞로─.

그리다가 同 三十二年 中에는 幹部를 辭任하고 以來 二, 三年 동안 무거운 沈黙 속에 잠기엇다가 三三年 十月 七日 드디어 카푸를 脫退하엿다─.

이것이 近年 나의 心境의 變化라고 보면 볼 수도 잇고 退却의 過程이라면 또한 그리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에 關한 新聞紙上의 報道에 依하면 나의 『退盟』은 無主張의 行動과 같이 말한 林和 씨와 나의 『談』이라고 하엿으며 또한 『카푸』의 紛糾라고 써서 잇엇다. 그러나 다 옳은 뜻을 表明해 주지는 못하엿다.

이 글을 쓰기 前에 나는 나의 脫退한 所爲를 披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것이 또한 이 論文에 重要하게 關聯되는 問題이며 또한 材料인 까닭이다.

사람의 一動一止가 決코 無意識的 行動은 없다. 『푸로이드』의 無意識論을 例外로 한다면─

나는 脫退하기까지 오랫동안 私事에 奔走하면서도 내 主張이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엿든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생각하든가? 그것은 眞實한 發展을 해야 할 文學이 그實 指導理論과의 懸隔한 差異와 이 差異로 생기는 理論의 猛走 또한 無定見한 理論, 相互의 撞着으로 생기는 混亂, 그러나 『포리티시안』的 氣質을 一種의 名門의 表徵으로 假裝하는 虛勢 속에서, 또는 時時로 命題를 創案하고 時時로 이것의 誤謬를 自己 스스로 指摘하는 그 反面에 온갖 良心 잇는 創作家는 政府當局의 行政的 指令狀을 손꼽아 기다리는 地方官廳과 같이 이 批評家의 온갖 『테─세』를 들고 쩔쩔매다가 沈鬱 落望 窒息하지 않으면 理論的 都市에서 頻繁한 主張과 綱領을 실고 다러나는 車馬 틈에서 進退維谷에 서 잇는 創作家도 볼 수 잇다.

指導者의 橫暴, 獨斷─創作의 無氣力, 無主張─이 現今까지 온 重大한 二個의 論題이엇다. 現實性을 떠낫으나 게급意識과 『띠아렉틱·매터리애리슴』을 가지고 自己의 權威를 세우려는 評者 指揮者가 잇는 그 反面에 現實을 보고 一定한 形象 속에서 描出한 自己가 옳기는 한듯한데 그렇게 하면 非게급的이고 非唯物論的이라는 데 氣分을 喪失한 良心 잇는 善良한 作家의 남모르는 悲哀... 이 틈에서 나는 생각해 보앗다.

지금까지의 『카푸』는 이 兩面을 完全히 所有한 一個의 勢力이엇다. 나는 이 勢力을 細密히 硏究해 보기도 하며, 或은 分析하여 보기도 하엿다. 내가 批評家의 한 사람으로 그것을 考察하기도 하엿으며, 내가 創作者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도 하여 보앗다. 그러나 내 自身이 한 權威 잇는 政治家로서 藝術을 생각해 본 일은 없다. 이것은 確實이 不幸이다. 『그러나 藝術에 關한 것은 藝術家만이 理解할 수 잇다』는 正當한 名言에 依하야, 藝術의 眞正한 進路를 찾기 爲하는, 나의 微力은 이 不幸을 代償하여 줄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그러나 너무도 明晳한 讀者, 燥急한 論客들은 上論한 것으로서 主觀的 解釋을 나려서는 아니 된다. 이것은 내가 말하려는 簡單한 序論에 不過하다. 나의 主張하는 具體的 見解는 이 글 全篇을 通하야 잇을 것이며 또한 글의 頭序를 따러서 發表코저 한다. 그러므로서 最近 文藝理論에 對한 한 個의 傾向을 말할 터이며, 그것에 添附하야 나의 退盟한 理由도 明白히 하려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讀者는 이 拙劣한 主張이 包含한 이 적은 글을 다 읽은 後에 그 眞否의 批評을 나리기를 기다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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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에서 文藝界를 回顧한다든가 或은 硏究하려면, 그것이야말로 難事中의 難事일 것 같다. 도모지 出版物의 刊行이 殆無한 듯한 이 現狀에서는 古典的 文獻은 말할 것도 없고 一年이나 二年前의 것을 살피어 보려도 큰 困難이다. 每日로 各 新聞의 學藝欄에 發表되는 數많은 作品, 달달이 發刊되는 各 雜誌에 發表되는 作品들이 한 번 新聞이나 雜誌에 번듯하고는 다시 나타나지 못한다. 어느 것은 數年後에 貧弱한 冊子로 나타나기도 하나 大部分은 永遠히 사라지는 모양이다. 그런 故로 이런 글을 쓰는 데도 實로 古物商과 같이 尨大한 新聞 뭉치와 雜誌 꾸럼이를 방이 좁게 느러놓고 머리를 앓고서야 可能한 事業이다.

이러한 까닭에 내가 이곳에서 論하고자 하는 것은 新聞이나 雜誌에 나타난 作品이나 評論의 全部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時代 앞에 서서 創作界 文學界의 指導的 意義를 가질 수 잇는 것에 限하야 論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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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三二年 冬期로부터 同 三三年 동안 한동안 氣勢가 없는 論壇은─論壇이라는 것은 카푸와 그에 關心한 諸氏와 그리고 若干의 非카푸人도 包含한다─更生하엿다. 論壇이 繁昌하면 항용 잇게 되는 論爭과, 甚하면 人身攻擊에까지 및는 이 勇勢를, 一般은 말하기를 論壇의 大混亂이라고 『S•O•S』를 打電한다. 그러나 一見 混亂無雙한 듯한 昨今의 論壇에서, 나는 이것을 混亂으로만 볼 수 없다는 말이다. 勿論 論하기에 無價値한 것이라든지, 또는 混亂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混亂과 複雜 中에도 連絡하야 一個의 論題를 提出하려 하며, 그것을 解決하려 하며, 그러므로 論爭하야 正當한 眞理를 發見하려 한, 努力과 足跡이 宛然이, 明確히, 보이는 바가 잇는 것이다.

(東亞日報 1934.01.02)

要컨대 이러한 正當한 眞理를 探究하는 데 얼마나 具體的인 活動이 잇엇느냐는 것이 아마 問題일 것 같다. 그러나 如何間 나는 昨年의 混亂된 文藝理論에서 一個의 統一을 抽出하야 낼 수 잇으며 甲論乙駁의 論壇으로부터 또한 뚜렷한 傾向을 쉬웁게 찾어 낼 수도 잇는 것이다. 이것은 特히 이러한 論文을 쓰는 나뿐만이 아니라 思慮 잇는 評論家는 한가지로 首肯할 만한 事實이다.

一九三二年의 해가 넘으려고 할 즈음에 『創作의 固定化에 對하야』 唯仁氏의 新提案이 中央日報 紙上에 나타낫고 또한 이어서 新階段 再昨年 十月號에 『藝術的 方法의 正當한 理解를 爲하야』라는 것이 發表되엇다.

뿐만 아니라 林和, 金南天氏와 金南天, 朴勝極氏 等의 論爭, 韓雪野氏의 月評 等이 잇는 그中에 白鐵氏의 活動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各 新聞, 各 雜誌에서 白鐵氏의 論文은 빠지지 않엇다. 따라서 그의 論題는 單純하지는 않엇다. 어느 때는 푸로 文學을 論하야 『파제─푸』 『고리─키』를 引用하다가 또한 『빨싹크』, 『소─라』를 語하기도 하야 이역 씨의 同志들에게 論難을 當하엿으나, 그러나 나는 씨의 이렇게 奔忙한 文藝的 近業에서 또한 무엇 하나를 찾어보려고 하엿든 것이다. 씨는 『맑스』를 論하고 『산 人間 描寫』를 提唱하며 『쏘시앨리스틱•리애리슴』의 倉卒한 紹介, 그 가운데서 또한 씨의 心境을 忖度하려고 한다.

먼저 唯仁氏의 論文 『藝術的 方法의 正當한 理解를 爲하야』에서 보면 그는 『文學의 藝術的 形象』을 力設하며 主題의 積極性에 言及하엿으니 曰─ 『文學이나 科學이나 作家나 科學者는 事物의 本質, 本質的 矛盾의 發展을 認識하며 이 課題를 諸 現象의 合法則性에서 闡明한 課題를 解決하려고 努力한다. 卽 文學은 科學이 아니고 藝術인 것이며 藝術 以外의 아무것도 아니다』라면 始作한 다음에 이에 該當한 『파제─프』의 所論을 길게 引用하엿다.

또한 그는 이러한 말을 하엿다. 『이렇게 文學은 非常히 廣範한 그러나 複雜한 自然과 社會의 一切의 모든 現象을 認識하고 闡明하면서 豐富한 藝術的 諸 작루─를 創作하여서 간다』─ 『그리고 모든 것을 代表하는 것 같은 그러한 少數의 事象에만 局限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文學은 無限히 展開되어 잇는 宇宙의 森羅萬象 모든 階級의 人間의 日常生活을 圍繞하여 일어나며 잇는 모든 社會的 現象을 自由로 廣汎하게 形象하여 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 푸로레타리아 文學은 憤怒하고 鬪爭할 뿐만은 아니다. 푸로 文學은 웃고 울고 슬퍼하고 懊惱하고 그리고 戀愛할 수 잇으며 또 蒼空에 빗나는 月色과 潺潺히 흐르는 河川의 물결을 노래할 수 잇고 봄날의 밭 우에서 우는 종달새의 소래에 귀를 기우릴 수가 잇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말이 잇다─ 『한 卷의 『뿌하─린』의 『唯物史觀』, 한 卷의 政治 敎程, 한쪽의 新聞 報道에 依하야 小說과 詩를 쓰려는 蠻勇은 인제 버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또한 韓雪野氏는 『辨證法的 寫實主義의 길로』에서 말하엿다.氏는 우리들의 作家가 創造的 過程에서 노동자 농민의 生活에 接近하야 그 內包한 것을 그리고 題材의 範圍를 넓히고 能動的 律動的 力學的 機械的인 액수니슴의 手法을 學習하라는 것을 力設하엿다.

또한 同氏의 朝鮮日報 昨年 十二月 創作評에서 이러한 細密한 分析을 시작하엿다.─ 『한 個性의 差異를 事實에 잇어서 發見하기 어럽지 않다. 그러나 강숙이와 정원의 지난 生活은 거지 말함이 없이 다만 물과 기름 같이 어울닐 수 없는 두 개의 性格만을 大寫하여 놓아서 實感이 稀薄하다. 한방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달포나 한마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氏의 創作에 關한 技術 問題에 對한 態度이다. 比較的氏는 評論家요 創作家이니만치 創作에 對한 技術 問題를 많이 생각하엿을 줄로 안다.

그다음 白鐵氏는 또한 力設하엿다. 그의 論文 『唯物辯證法的 創作 方法』에서─ 『藝術의 內容 問題 이데오로기 問題에서 한 걸음 나와서 눈을 技術에 轉向하라』고 하엿다.

그리다가 그의 昨年 八月頃 朝鮮日報에 文壇 時評 『人間 描寫 時代』에서 말하엿다. 人間은 『決코 外部 存在와 關係를 超越한 人間이 아니라』고 自論의 矛盾을 非常히 警戒하면서 말한다.─ 『文學에 잇어서는 人間 描寫 時代다!』라고─

그리하야 그는 지내간 온갖 名作을 人間 描寫의 部隊에 編入시키기에 努力하엿다.

여기 對한 林和氏의 駁文은 또한 適當하다고 볼 수 잇다. 林和氏는 一九三○年 六月에 그의 力作 『當面의 中心的 任務』 以後에는 創作問題에 關한 提案은 別로 없엇다. 그 代身 그는 創作으로서 그의 文學的 技術과 提案을 具體的으로 提示한 點에서 오히려 正當하며 그의 詩人的 用意를 窺視할 수 잇엇다. 이에 關한 細密한 考察은 뒤에 論할려고 한다.

그리고 우에서도 말하엿거니와 萩白氏의 論文은 取할 것이 많다. 그는 『랍푸』의 創作에 關한 것을 引用 對照하면서 朝鮮의 『랍푸』의 誤謬와 態度를 比較的 詳細히 論하엿다.

(東亞日報 193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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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上論한 論文을 再檢討하여 보려고 한다.

唯仁氏의 創作의 固定化 問題에 關한 新提安은 由來의 캅푸 論客들의 態度에 比하야 大膽한 感이 없지 않다. 事實上 創作家 自體의 優秀한 技術이 第一의 問題이겟지마는, 自己가 時代를 『리─드』하고 게급의 『참피온』으로의 名譽를 汚損할까 보아서 非常한 警戒를 하면서, 自己의 創作上 自由性은 完全히 喪失되며, 그러므로 落葉으로써 등걸만 남은 나무가지 모양으로, 骨子만 남은 『이데오로기』의 藝術的 假裝을 아니할 수 없게 되니, 이 所謂 뿌루조와 文士들이 論駁 화살을 던지는 『宣傳 삐라』 『新聞 記事』 政治家의 『프랫─폴』 等의 嘲笑를 받으면서 苦境을 걸어왓는 것이다.

아! 이 心境을 누가 알엇으리요!

그러나 眞理와 不平은 한 가지 隱匿할 수 없는 性質을 가젓다. 그리다가 不平과 不滿은 드디어 遼遠한 北方에 잇는 『랍푸』에서 터저 나와 그것이 『남푸』를 거쳐서 해를 거듭한 後에 우리들에게 나타낫다. 自己의 懷抱를 自己가 勇敢하게 터뜨리지 못한 未成年의 悲哀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自己의 智的 淺薄을 嘲笑해도 소용없는 일이며, 自己의 無勇氣를 自責하여도 소용없는 일이나 如何間 朝鮮에서도 이러한 不平이 한번 터지기 始作하자 이제부터는 짐짓 가슴을 어루만지며 큰 소리로 이 誤謬와 眞理를 한가지로 부르짖엇다.

唯仁, 韓雪野, 白鐵氏 等의 모든 論文은 多少 差異點이 잇기는 할망정 亦是 同一한 不平이 잇엇으며 同一한 絶가 잇엇다.

唯仁氏의 『한 卷의 政治 敎程, 한쪽의 新聞報道에 依한 蠻勇은 인제 버리자』라는 말은 옳은 소리라고 않을 수 없다.

온갖 社會의 現象, 사랑의 情緖的 활동이 壓縮되고 그 人間의 感情上 調和가 單純化하야 文學史上에 그 類例가 없을 만치 狹少하엿다. 그 反面에는 創作과 其他 文學的力의 政治的 社會的 緊急한 非常한 情勢를 爲한 그 奉仕的 心志야말로 貴여운 일이 아니면 아니 되며, 光榮의 일이 아니면 아니 된다. 그러나 心身의 넘치는 일이라면 아모 功績이 없이 消滅될 것이 아닌가?

이러한 意味에서 藝術은 無功의 戰死를 할 뻔 하엿다. 다만(• •) 얻은(• •) 것은(• •)이데오로기(• • • • •)() 상실한(• • •) 것은(• • •) 藝術(• •) 自身이엿다(• • • • •).

雪野氏의 『題材의 範圍를 넓히자』라는 말과 白鐵氏의 『技術을 배우자』라는 것과 唯仁氏의 『自然의 森羅萬象에 着眼하자』는 말이 다 한 가지 正當하다. 그러나 이 諸氏의 論이 다 短篇的이며 未完成된 것이 잇음을 遺憾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왕 남에게 배우는 신세니 不足한 것은 다른 데 사람에게서 補充하기로 하자.

이리고 본즉 白鐵氏의 『人間 描寫 時代』라는 글은 理解하기 어려우나 白鐵氏의 心境만은 잘 理解할 수 잇는 것 같다. 卽 人間의 感情과 情緖의 複雜한 活動이 壓縮되며, 거진 窒息된 데로부터 猛烈한 反撥作用에서 생기는 人間 描寫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지나간 名作이 人間 描寫만을 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白鐵氏가 確實히 그 鬱憫에 人間이란 外界의 影響을 받는다고 하면서, 그러나 人間 描寫를 해야 한다는 데 人間과 社會와의 關係를 忘却하엿다. 許多한 過去의 文人들이 人間을 描寫함에서 그 時代와 社會를 表示하엿으며, 그 社會를 描寫한 그中에서 生生한 個別的 人間이 描出되지 않엇는가?

(東亞日報 193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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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또한 萩白氏는 그 『創作 方法 問題의, 再討議를 爲하야』에서 무어라고 指摘하엿든가?

─ 『그러나 이 問題에 關하야 우리들은 如何한 幸福이 잇다 하드라도 아즉것 正當한 討論을 일으키지 않는 것 같다』고 上論한 諸氏의 論의 不充分을 感하면서 ─『그러나 重要한 것은 創作 方法의 『法典』을 各 作家에게 適用하는 데 잇는 것이 아니고 건설의 眞實한 形態를 作家들에게 挿出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論題를 進展시키면서 또한─ 『藝術家는 自己의 作品 中에 現實의 本質的의 方面 그 發展 傾向 目的을 深刻히 보다 正確히 具體化하면 할수록 그 作品 속에는 辨證法과 唯物論의 要素가 많어질 것이다.』 그 다음으로 林和氏의 集團과 個人에 關한 所論을 白鐵氏의 『人間 描寫』에 보내는 대로부터 引用하면 ─『文學이라는 것은 이 小論 初頭에 말하고 또 모든 文學者와 幾分間이라도 敏感的 論理에 依한 記錄 代身에 生生한 生活에 具體的 形象을 가지고 描寫하고 表現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그러나 푸로 文學은 個人的 存在의 複雜性 가운데에서 個人의 特性을 完全히 살리는 데 잇다』고 그 結論에서 말하엿다.

以上의 諸氏의 所論을 다시 要約하면

(一) 指導的 批評家가 創作家에 대한 要求와 創作家의 不調和된 實行에서 생기는 ─卽 指導部와 作家와의 離反.

(二) 그러므로 創作家의 眞實한 길은 偏頗한 狹路에서 眞實한 文學의 길로 救出할 것 ─卽 眞實한 意味에서 푸로 文學은 뿌르쥬와 文學의 믿을 만한 繼承者가 (• • • •) 될 것 (• •).

(三) 이것을 實行함에는 理論的 凍死 狀態에서 創作을 的 溫室 속으로 更生시킬 것 ─卽 創作의 固定化에서 救出할 것.

(四) 그리자면 지금까지 等閑히 생각하엿든 技術 問題에 論及하야 藝術的 本分을 다해야 할 것

(五) 또한 게급的 社會生活을 正確히 反映할 수 잇는 人間의 諸般 活動과 그 生活이 複雜性을 自由로 廣大한 領域에서 觀察한 것.

(六) 集團意識에만 억매이든 것을 揚棄하고, 集團과 個人의 圓滑한 關係에서 오히려 個人의 特性과 그 本性에 正確한 觀察을 할 것.

(七) 政治와 藝術과의 機械的 連絡 觀念의 粉碎.

(八) 따러서 『캅푸』의 再認識.

이것을 다시 한個의 커다런 名詞로 代表해서 말한다면 藝術의 『文學史的』 轉向이라고 말하고 싶다. 얼른 보면 文學이면 의례히 文學史的 意義가 잇는 것이지마는 上論한 게급藝術의 特殊性에서 보면 이 말이 決코 無意味한 말이 아닐 줄로 안다. 卽 뿌르쥬와 文學을 完全히 繼承해야 하는 史的 意味에서 藝術的 諸般 遺産을 正確히 整理하며, 攝政해야 할 것은 勿論이다. 文學界에 有力한 評論家 諸氏의 上論한 諸論은 確實히 文學的 完成의 길로 기우러지는 한個의 重要한 『傾向』이다. 나는 이러케 文學의 眞實한 形象의 探求와 文學이 가저야 할 모든 條件의 完備를 探索하는 最近의 이 傾向은 비로소 뿌르쥬와 文學을 完全히 繼承할 만한 用意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眞實한 文學의 길은 잇는 것이다.

그러면 固定化하엿고 生硬한 意識만을 表現하든 藝術品 그러나 한동안 『캅푸』에서 過大評價를 나리든 藝術的 作品은 어떻게 規定할 것인가 하는 問題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나는 藝術의 社會史的活動이라고 보고 싶다.

이러케 말하면 或은 社會史와 藝術史를 區分한다고 非難할는지 모르나 그것은 決코 그러치 않다. 從來의 『캅푸』의 評論家들이 社會史와 文學史를 同一하게 생각한 일이 없지 않엇다.

社會史와 文學史를 同一하게 생각한 까닭에 理論的 指導와 創作的 實行에 混亂을 가저왓으며 또한 創作的 活動을 社會運動의 一種으로 생각하엿든 것이다. 그 例證은 漸次로 論하려 한다.

이러한 見解는 朝鮮에만 잇는 것은 아니엇다. 그러나 그 實踐에 잇어서 誤謬는 朝鮮에 巨大하게 成長하엿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朝鮮에서만 過謬를 깨다른 것은 아니다. 우에서도 말하엿거니와 文化의 先進한 다른 나라에서도 論議되기 시작하엿다. 그러므로 朝鮮에서도 그들을 引用하여 가면서 自體의 誤謬를 論及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文化의 後進한 사람들의 悲哀이겟지마는 그다지 不名譽 될 것은 없다. 問題는 그들을 배우고 또한 引用하드라도 正當하게 適合하게 朝鮮 現實에 適應하게 하면 오히려 그 功이 클 것이다. 그러나 늘 生硬하게 消化되지 않게 不適하게 引用되는 것으로 問題를 일으키는 것이다.

論題는 다시 文學史에 옴기자. 그러므로 이 文學史的 硏究와 社會史的 硏究는 勿論 同一한 硏究로 取扱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文學史는 社會史의 가장 密接한 影響을 받는다. 人間의 社會生活의 不斷한 發展과 투쟁의 歷史는 社會史를 形成하고 人間의 個人 或은 社會的 生活에서 생기는 感情의 發展과 그 形象的 發現은 文學史를 形成하는 것이니, 前者는 經濟生活의 發展 記錄이오 後者는 情緖的 生活의 藝術的 發現인 것이다.

人間은 生活과 感情을 所有하고 잇다. 그러나 이 感情은 生活로부터 制約되고 規定된다. 이것은 아조 凡俗한 基本 原理다. 그러나 感情과 情緖는 곧 經濟的 生活은 아니다. 情緖의 活動과 發展은 이 情緖의 個別的 特殊的 性質을 硏究함에 잇다.

이와 한가지로 文學史는 社會史가 아닌 同時에 文學史는 文學의 個別的 特殊的 性質을 硏究함에 잇는 것이다. 一九三二年 三三年 동안 文壇의 評論家 諸氏는 文學의 特殊的 個別的 性質을 究明하려고 努力하엿다. 얼마나 完全한 結果에 왓느냐는 것은 이곳에서 論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文學的 硏究의 傾向, 이것을 나는 文學史的 傾向이라고 하더라도, 特別한 事情이 없는 以上 過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藝術의 社會史的 活動의 成果는 무엇이며 또한 어떠케 評價해야 할 것인가를 論할 것이다.

(東亞日報 1934.01.06)

藝術에 充分한 機能이 잇는 藝術家들만이 모이엿든 것이 『카푸』의 初期的 形態다. 이들은 藝術을 論하고 創作의 內容에 關하야 相議하엿엇다. 이러한 意味에서 決코 文學의 領域을 벗어나지 아니하엿엇다. 그러나 이 團體의 社會的 發展을 매우 急速한 템포로 上昇하엿으니 自體의 無批判的 發展은 最後의 自體의 桎梏을 만드는 結果를 가져왓다. 朝鮮의 社會運動이 華麗하든 때 藝術家 團體는 어느 때든지 藝術만을 論하고 잇는 것을 一種의 恥辱으로 생각하며, 따러서 이들은 漸次로 社會生活에 關心을 갖게 되며 또한 社會의 實際 運動에 關한 스로─간에 귀를 기우리기 始作하엿든 것이다.

自己가 社會人의 한 사람으로서 或은 게급人의 한 사람으로서 社會에 關한 實際的 活動에 加担하는 것은 勿論 妥當하다고 볼 수 잇다. 그러나 이러한 藝術家의 自己 藝術까지를 『포리티시안』에게 보내는 全的 鑄物로서 提供하엿든 것이다. 그러나 그後의 發展은 藝術家 自身이 벌서 『포리티시안』의 한 사람으로서 登場하야 藝術的 政策을 捻出하야 自己의 『스로─간』을 自己가 藝術的 創作에 適用하려고 하엿다. 이리고 보니 藝術家만이 모이는 것은 狹小함을 느끼엇다. 그리하야 門戶를 開放한 結果 나도 나도 하고 모디인 結果는 一個의 不滿足한 社會運動 團體를 形成한 感이 잇으니 地方에는 各各 支部를 設置하고 東部에서는 藝術的 論議를 떠나서 社會的 『스로─간』을 檢討하며 自己의 新『스로─간』을 討議하며 建議하엿으며 社會團體 協議會에 代表를 派遣할 것을 論議하엿든 것이다. 이것은 一九二六,七年 前後의 일이라. 이때의 金基鎭氏의 形式論은 『이데오로기』의 忘却이 아니라면 多分의 藝術的 領域에 잇엇다. 그리고 나의 內容論은 形式的 無視가 아니라면 藝術의 게급性을 論議하엿든 것이다.

이러는 反面에 藝術的 特殊的 個別的 性質을 硏究하는 것은 漸漸 멀어젓다. 自己들의 일에 奉仕하는 것이라면 宣傳 삐라도 좋다 報告書도 좋다는 데까지 이르럿다. 이 點에서 그 過誤에 責任은 내 自身도 多分히 저야 할 줄 안다. 目的意識性의 失敗에서부터 나는 退却을 始作하엿다. 一部 新進들에게 公式的이라고 指摘을 받고, 또한 그들도 藝術의 特殊性을 하엿으나 도모지 具體的 發展이 없엇다. 이것은 最大의 不幸이엇다.

上論한 藝術家의 社會的 實際的 進出은 朝鮮의藝術家들의 누구보다도 現實的 社會的 進出의 功勞가 빛나고 잇다. 그러나 그 代身 蝟縮, 固定된 것은 藝術이엿다.

(東亞日報 1934.01.07)

그러면 이 混亂은 어떻게 整理할가? 要約해 말하면 藝術과 政治家를 單一的으로 생각하엿고 그러므로 藝術家가 政治家가 될 때에는 藝術은 곳 政治라고 速斷하엿다. 한 사람의 人間이 藝術을 생각할 때에는 藝術家이지만, 同一한 그 사람이 政治를 經濟를 생각할 때에는 그는 政治家며 經濟學者가 되는 것이다. 따러서 同一한 사람이 精神的 여러 가지 勞作에 從事할 때에는 各各 相異한 怪質을 가진 그 部分의 特殊的 個別的 發展에 着眼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므로 上論한 데에 우리들의 重要한 矛盾은 單一的 觀察에서 兩面을 一面으로 解釋하며, 實行하려는 것이엇다.

그러나 事實로서 그 單一的 見解가 誤謬이엇으니, 創作 行動에 잇어서는 評者─(指導者)가 如何한 問題를 提出하드라도 創作은 오즉 生硬, 固定, 非藝術的 要素가 多分히 잇엇다.

슬픈 노래를 부르되 눈물 내지 아니하고, 피리를 불러도 춤추지 않는다는 말은 참으로 理論 指導部와 創作家 사이에 생기는 現象에 適應된다. 이 指導部의 理論은 如何하든지 創作에는 別로 이러다는 것이 보이지 않엇다.

目的意識을 論할 때나 一九二九年 三○年頃에 林和, 權煥, 安漠 等 諸氏가 非常한 左翼的 論題를 反覆할 때나 辨證法的 唯物論的 리아리슴을 論할 때나 社會的 리아리슴을 論할 때나 創作 行動에는 別 異狀이 보이지 않엇다. 이리고 본즉 眞理는 오즉 偉大한 創作家에게 잇는 것이다. 指導部에서 許多한 提案과 許多한 過謬를 淸算하면서 나온 結論은 무엇이엇든가?

그러나 問題는 이만큼 되면 讀者도 어느 程度까지 筆者의 眞意를 窺知할 줄로 안다. 그런데 내가 말하려는 것은 個人的으로는 現象이 이곳까지 이르럿는데 『카푸』의 指導部는 沈默 그대로를 가지고 잇다. 個個의 人員은 現今 文學史的 硏究와 發展을 論議하면서 『카푸』만은 아즉도 社會史的 見地에 立脚한 古殼 그대로를 가지고 잇다. 이것 때문에 筆者도 非公式으로 意見을 暗示한 바 잇엇으나 아모 效果 없이 沈黙하고 잇다. 筆者의 退盟의 第一 理由는 이곳에 잇다. 卽 『카프』는 眞實한 藝術的 集團이 될 수 없을 만치 되어 잇는 것을 革新하지 않으면 藝術家로서는 無意味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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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에서 또 看過하지 못할 것은 方法論일 줄로 안다. 그 方法論이라는 것은 讀者도 이미 期待하엿을 줄로 아는 辨證法이다.

아모리 그러한 過失과 誤謬가 잇다 하드라도 그것은 事物의 發展上 不可避의 것이며, 必然的이라는 斷案을 나리려는 傾向이다. 이것은 어느 程度까지 妥當치 않다는 것은 辨證法의 基本法則인 正•反•合의 表面的 公式만을 應用하여서는 不可하다. 辨證法은 固定하는 法則이 아니고 流動하고 變遷하며 合理에서 不合理를 揚棄하는 것이며 發展에서 矛盾을 찾어내는 것이라는 深刻하고 奧妙한 哲學的 眞理를 凡俗한 市場의 廉價物로 轉落케 해서는 아니 된다. 矛盾이란 어느 때든지 正當하고 妥當하고 眞理인 發展에서만 찾어낼 수 잇는 것을 問題삼은 것이며, 不合理의 揚棄라는 것은 어느 때나 混亂된 데서가 아니라 特殊的 個別的 統一的 觀念에서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出發點이 다르다든가, 或은 賦與된 發展에서 全혀 脫線하야 別個의 線路로 달아나는 것에 辨證法은 適用되지 못한다. 鷄卵에서 닭의 發展을 硏究하는 것은 妥當하다. 그러나 鷄卵에서 天文學을 硏究함은 不可하다. 다만 事物의 發展이라는 槪念만은 同一하다. 事物과 事物, 眞理와 眞理는 個別的이면서 相互의 關係에 對한 槪念은 또한 同一하다.

그러므로 文學史는 社會史의 影響을 密接히 받으며 어느 때 文學史는 社會史의 一部分의 硏究 素材를 提供하면서도 社會史는 아니다. 이것은 辨證法의 重要한 命題인 特殊性 個別性이다. 그러므로 過誤와 失敗의 總體的 責任을 辨證法的 法則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또한 不可하다. 藝術이 最高의 水準에서 政策에 奉仕되는 때는 社會의 非常時에만 限한다. 말하자면 藝術은 이러한 때는 겨우 生命만 保持하는 셈이다. 이러한 意味에서 『랍푸』의 誤謬는 一理가 잇다. 그러나 곳 藝術은 다시 藝術 問題로 돌아와야 한다.

(東亞日報 1934.01.08)

다만 뿌르주와 文學에서 푸로 文學의 出現만이 그 變遷과 發展을 唯物辨證法的 法則에서 觀察함이 妥當하다. 이러므로 푸로 文學은 뿌르주와 文學의 繼承者다. 그러나 藝術家가 社會的 『슬로간』 밑에서 創作的 失敗를 본 後에 다시 文學을 硏究하게 된 그 過程과 그 變遷을 全部 辨證法的 發展으로만 解釋함이 不可하다. 이것은 智的 不足과 藝術的 見解의 不充分에서 생기는 한 個의 失敗가 아니면 아니 된다. 또한 藝術의 粗雜, 硬固한 形式에서 論議되는 形象論의 그 過程을 辨證法的 發展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도 多幸히 『톨스토이』나 『유─고』나 『쉐익스피어』와 같은 偉大한 作家가 잇엇드라면 이러한 過程이 얼마나 不必要할 것인가를 곳 알 수 잇을 것이다.

또한 同一한 誤謬를 갖게 된 『랍푸』의 作家들이 아모리 窒息的 生活을 하엿다 하드라도, 우리들이 當面한 粗雜한 作品과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나의 淺學 薄識의 탓인지는 모르나 아즉것 그러한 作品은 읽지 못하엿다.

다만 評論家들이 인제서야 藝術的 見解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고 그간 硏究에서 智的 力量을 獲得한 데 不過하다. 이것은 좋은 現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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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의 例證이 잇는 것이다. 藝術運動 全過程에 잇어서 正當히 自己의 過謬를 깨달은 때가 잇엇으니 그것은 方向轉換이다. 그러나 이 方向轉換은 藝術의 圓滑한 進路는 되지 못하엿다. 從來의 것이 部分的이고, 分散的이고 經濟主義的이엇으나 全體的, 全面的, ×××으로 方向을 轉換하자는 社會團體의 『슬로─간』을 그대로 創作家에게 分與하고 强壓하엿다. 그런데 그 重要한 內容은 『내슈낼리슴』 『쏘씨앨리슴』의 統一, 그러나 『쏘씨앨리슴』의 勝利─ 이것을 創作 內容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엇다.

이러한 過分한 注文, 窒息할 듯한 雰圍氣에서 指導的 評論家들은 窮地에서 砂金을 發見하엿다.

『洛東江!』 푸른 물이 흐르는 洛東江!, 哀愁와 憤怒가 흐르는 洛東江! 抱石의 短篇인 이 『洛東江』이 第二期的 作品이라고 기뻐하며 즐거워 하엿다.

그러나 文學的 價値의 正當한 評價는 또한 어그러지고 말엇다.

抱石 自身도 일부러 『내슈낼리슴』을 應用하려고 努力한 痕跡이 보이며, 그러므로 그러한 『슬로─간』을 내어 걸어 논 評家들에게 認定되엇지만, 그러나 그實 重要한 點은 『洛東江』이 情緖的 方面에 着眼한 點에 잇다. 아모리 『슬로─간』에 合致되게 內容이 構成되엇다 하드라도 이 情緖的 方面에 着眼함이 없엇다 하면 이것 또한 粗雜 硬固한 木片으로 取扱되엇을 것이다. 아모리 이러한 『슬로─간』을 내어 걸기는 하엿으나 그도 人間인 以上 情緖가 잇엇고, 그리하야 이 作品의 情緖的 要素가 무엇보다도 그들의 心琴을 울리고야 만 것이다.

그러므로 이 『洛東江』의 價値評價는 一時代的 現象일 뿐이엇다.

오히려 曙海의 『紅焰』은 보다 더 優秀한 作品이엇다.

例는 이것뿐은 아니다. 林和氏의 『오빠와 火爐』가 그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 詩的 文學的 價値를 認定하엿다. 《캅푸 詩人集》을 읽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詩 한 篇을 愛讀하고 싶다.

이 作品은 『洛東江』이 가지고 잇는 情緖的 要素보다도 더 많은 充分한 抒情的 活動이 잇엇다. 評家들이 『洛東江』을 稱讀하고 『오빠와 火爐』를 優秀한 詩篇으로 認定함에 잇어서 다가치 情緖的 活動에서 이 作品들이 文學的 價値를 받으면서도, 評家들의 價値 標準은 亦是 前者와 後者 사이에 差異가 잇엇다. 前者는 依然히 社會史的 見地를 아조 脫却치 못하고, 文學史的 價値와 社會史的 價値가 混合된 그 속에서 結局 第二期的 作品, 目的意識的 作品이라고 命名하엿다.

조곰만 思慮 잇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容易히 理解할 수 잇는 것이다.

그러나 『오빠와 火爐』는 藝術的 形象 以外에 그 內容을 探索해 본다면 當面한 어떠한 『슬로간』이나 무슨 目的意識性的 用意에서 製作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萩白氏의 말과 같이 社會의 한 指導者의 生活을 藝術的 形象에서 描出한 것이다. 題材로서 본다면 다른 것에 比해서 오히려 微溫的이다. 그러나 이 作品은 그 自體 속에 이미 辨證法이 잇고, 唯物的 見解가 잇지 아니한가?

『톨스토이』는 藝術은 情緖的 感染이라고 하엿으나 만일 作品에 情緖的 活動이 없으면 情緖的 感染은 絶對로 不可能하다. 이 藝術的 形象과 人間의 情緖的 活動의 硏究─(美學)는 文學史的 硏究에 屬한다.

그 內容에 잇어서는 創作家 自身의 觀察力 如何에 잇다. 賢明한 作家, 思慮 잇는 作家는 現實主義, 寫實主義의 社會, 게급 其他의 正確한 것을 意識할 것이다. 眞正한 意味에서 말하면, 모든 寫實主義, 自然主義, 浪漫主義에 關한 智識은 評論家가 創作家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創作家의 創作에서 學習하는 것이다. 評家가 가진 것은 一個의 槪念뿐이나 作家의 作品에는 具體的 形象이 表現되어 잇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評家가 假令 寫實主義를 力說하고 作家가 寫實的으로 쓰지 않으면 價値를 인정치 않켓다고 하면서 그實 그 具體的 方法을 提示하지 못하는 것은 그 까닭이다. 作家만이 그 具體的 表現이 可能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 例外가 하나 잇다.

그것은 모든 것이 不充分한 文學靑年에게 限하야 評者가 그러한 無理한 指導를 할 수 잇다.

이제 結論은 簡單하다. 『캅푸』의 文學的 指導의 無意味한 것이다. 指導部와 社會史的 孤立과 그 文學史的 崩壞가 그것이다.

이것은 上論에서 主張하는 最近의 傾向에서 容易히 發見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내가 退盟한 第二의 理由이다.

(東亞日報 193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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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는 이곳에서 正當한 自己批判이 必要하게 되엇다. 社會史的 意義를 가젓든 『캅푸』의 光榮은, 文學史的 見地에서 본 罪過에 當面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것은 勿論 그 半分의 責任이 내 自身에게 잇으나, 그것을 어느 程度까지 알면서도 如前히 前轍을 밟고 가는 現在 指導部에도 그 半分을 分配하여야겟다.

『랍푸』 解消에 關한 批判文이 當時 『싸베트』 同盟의 雜誌 新聞에서 相當이 씻그러웟든 모양이다. 나는 어느 날 某 英文 新聞에서 『루이스•피스처─』라는 評論家의 『랍푸』 解消에 關한 論文을 보앗다. 이 글을 한 자 한 자 읽으면서 나는 많은 參考를 얻엇다. 그 사람의 글에서보다도 랍푸 解消 그 事實에서─

그러나 여러 가지 事情上 그 全文을 이곳에 譯載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가장 簡單한 數句에서 滿足하려 한다.

─ 만일 한 作家에게 『랍푸』가 낯을 찌푸리면 그 作家의 生涯는 망처진다.

─ 『랍푸』는 才能 잇는 人物을 沈黙 속으로 몰아넌다. 『랍푸』의 評家는 藝術的 性質에 關心하지 않엇다. (中略) 그들의 唯一한 標準은 政治이엇다. 그래서 만일 小說家가 눈굽 半머리 만치라도 그 傳統的 『파─티』에서 버서지면 곳 反××者라고 印을 찍어 버렷다. 數百 篇의 原稿가 出版局에 未發刊 그대로 싸여 잇엇다. 그것은 그 內容과 그 著者를 랍푸가 실혀한 까닭이다. (中略)

─ 『랍푸』는 檢閱官이엇다. 文學的 組織은 아니엇다. (中略) 싸베트 文學的 批評은 貧弱하엿다. 『랍푸』는 이 貧窮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아니 된다.

─ 저들은 作家들을 親切하게 敎示로서 指導하지 않엇다. 저들은 愚頓한 武器로서 惡意의 攻擊을 하엿다. 그들은 ××하엿다.

─ 文學, 씨네마, 劇場까지도 『랍푸』 支配下에서 痲痺되어 버렷다. 그러므로 『랍푸』 管理下에 잇는 週刊 『리터래투르나야•까세타』까지가 『正當한 創作的 雰圍氣를 作家를 爲해서 造成할 것이다』라고 부르지젓다. 其他 許多한 引用은 略한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文學의 社會史的 見地에 서 잇는 그들의 過誤가 아니면 아니 된다. 여기에 比하면 퍽 消極的이고 小規模라고 하겟지만 『랍푸』도 꼭 이와 같엇다. 回顧하면 이런 일이 얼마든지 잇다. 비록 時代가 다르고 境遇가 다르다 할지라도 文學의 社會史的 見地에서 同一한 僭越, 過誤를 犯하고 말엇다. 다른 사람은 모르겟으나 내 自身만은 나의 이런 所行의 文學上에서 보는 罪過를 이곳에서 한 가지 淸算하려 한다.

一九二八年 一月 朝鮮日報 紙上에 실린 『朝鮮運動의 特質』이라는 論文을 쓴 洪陽明氏는 卽時 『캅푸』에서 除名하엿다. 當時 洪陽明氏는 藝術的 著作이 없음에도 不拘하고 『캅푸』員이엇으며 그 政治的 見解가 다르다 하야 禍를 입엇다.

그 後에도 洪曉民氏 金東煥氏 安夕影氏 等이 順序대로 척척 除名 處分을 받엇다. 그 原因인즉 政見의 小小한 差異, 小뿌루的 言行, 『캅푸』의 批判的 態度 때문이다. 決코 非藝術家라고 하야 除名한 것은 아니엇다. 더욱 數年前 李赤曉, 閔丙徽의 事件과 亦是 除名 處分에 부친 것도, 藝術 問題와는 그 距離가 遼遠하엿다. 그러니 이 亦是 藝術團體는 아니엇다.

『캅푸』가 檢閱官이라기는 너무 過度한 말이엇으나, 自己 圈外의 作家에게는 注意하지 않엇다. 그 藝術的 才質을 無視하엿다. 排斥하엿다. 自體 스스로가 民衆에게 離反되엇엇다. 甚한 데 가서는 글만 여기저기 써도 곧 法規 違反者로 問題되고, 討議되고 究明하고 批判하야 눈물을 흘리며 謝罪하지 않으면 아니 되엇다. 特別히 藝術的 名作이 없으나, 最近의 『캅푸 作家集』 『農民小說集』 『캅푸 詩集』이 이 制限과 不自由 틈에서 피여 나온 『딱─플라워』다. 그러므로 그 글을 읽으면 그러한 粗雜한 痕跡이 明白이 드러나 보인다. 지금도 指導部의 意見은 亦是 『黨派性』의 擁護에 잇어 보인다. 다만 다른 것은 雜誌나 新聞이면 어느 것에나 어떠한 글이나 發表하는 것만 黙認된 모양이다. 『黨派性』에 어그러지면 自由主義者의 印을 찍히며 非게급的이라 하나 發表 制限의 撤廢, 內的 批判의 撤廢, 이것도 무서운 『리버래리슴』의 發現이 아니면 아니 된다. 이리고 보면 名實 共히 『파티─앤, 쉽』의 崩壞며, 다만 氣分的 『섹타리아니슴』의 空殼 뿐이다. 나는 이러한 零圍氣를 실허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脫出함이 내 退盟의 第三의 理由다. 朝鮮에서는 다른 나라에서와 같은 特殊한 創作上 技術家가 지은 것도 事實이려니와, 『캅푸』의 이 威勢 밑에서 全部가 去勢까지는 말이 되지 않으나, 『캅푸』 作家까지도 붓을 들 때에 恐怖와 躊躇를 마지않는 것도 事實이다. 이 點이 『캅푸』와는 多少 다른 點이다.

(東亞日報 1934.01.10)

現存한 作家들에게 君 等의 새로운 課題는 『농민과 노동자 속으로!』의 『슬로─간』을 내어 걸엇다. 이것은 나도 두어 번 使用한 말이엇다. 그러나 한 사람의 作家도 그러케 한 사람은 없엇다. 그 理由는...?

(一) 小設을 가지고 그들에게 읽히도록 한다는 뜻. 그리 하야 家家戶戶로 다니지는 않고 다만 智的 程度가 淺薄한 그들이 그 『이데올로기』를 理解하도록 하자. 그러니 그들이 읽기에 가장 平易하게 하자는 것이 그 政策論의 하나이니, 例하면 春香傳, 鄭乙善傳같이. 이것이 우리들의 敎養手段이니, 藝術의 完全한 形態도 아니며, 또한 發表된 藝術도 아니다. 이것이 創作家를 窒息케 하는 第一의 理由.

(二) 그들의 生活을 題材로 해야만 푸로 小說의 任務를 다할 터인데, 『小뿌르•인텔리겐차』가 그 生活을 알 까닭도 없고, 또한 그 氣分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을 體驗하도록 하기 爲하야 그 속으로 들어갈 것. 우리에게 이것이 그 얼마나 可能할 것이냐? 事實上 不可能하엿다. 그 속으로 간다고 해서 名作이 卽時로 나올 理도 없다. 힘것 하면 權煥氏의 『木花와 콩』 程度다. 이것이 作家를 窒息케 하는 第二의 理由.

(三) 조금 더 極端으로 나가면 全然히 小說이고 藝術이고 그것은 問題도 삼지 않고 『이데올로기』를 어떤 手段으로 傳하라는 것. 이것이 第三의 作家의 窒息될 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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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最近의 傾向은 漸漸 이러한 非藝術的 雰圍氣를 脫出하려는 것이다. 『리터래투르나야•까세타』의 所論과 같이 正當한 藝術的 雰圍氣를 만들어 作家를 爲하야 提供하려는 傾向이 多少 보인다. 自己批判과 具體的 提示가 없고 暗示的으로 或은 側面的으로 論하나 그 傾向만은 文學史的 見地에서 自體의 特殊的 個別的 事實을 成就하려는 努力이 보인다.

그것은 唯仁氏의 『辨證論』에서 白鐵氏의 『人間 描寫論』에서, 林和氏의 『形象論』에서 雪野氏의 『리애리슴』論에서, 萩白氏의 『創作 方法論』에서─.

더욱이 李箕永氏의 小說은 難澁한 古殼을 벗으려 하며, 制限과 拘束에서 脫出하야 참말로의 技術 잇는 創作家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보인다. 氏의 小設에 對하야 林和氏의 所論은 多少 情實에 기울어는지나 그다지 無理는 아니다.

이것은 한 가지 最近 文藝 傾向의 한 새로운 發展이면서도, 그實 그들에게 『멜랜코리』가 아니면 아니 된다.

그들이 도리켜서 『캅푸』를 도라다 봄에 限해서 옛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잇는 까닭이다. 그들은 二重 眞理에서 躊躇한다.

朝鮮日報 昨年 十一月 八日 特刊에 H生이라고 匿名生의 『唯物辨證法的 創作 方法의 再批判』이라는 倉卒한 短文이 잇엇다. 『唯物辨證法的 創作 方法이 採用된 以來로 批評에 잇어서 公式的 觀念的 官僚的 傾向을 들어내어 作家의 創意性, 個人的 傾向, 世界觀 등 複雜한 關係를 全然 無視하엿든 것은 이미 나타난 事實이니 어찌 햇든 새로운 方法이 代替될 것을 推測할 수 잇다. (略) 좋은 方法을 던저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국 『落伍』나 『失格』의 前提가 된다. 舶來品의 좋은 解決을 그때까지 턱을 고이고 기다리느니 우리로서 우리들에게 必要한 方法을 把持해 볼 勇氣는 없는가?』

이만한 眞意와 妥當한 意見을 匿名生으로 無責任 無價値하게 嘲笑하는 말처럼 取扱하기는 참으로 可惜한 感이 없지 않다.

H氏는 좀 더 勇氣를 내어 주엇으면 한다. 어느 때나 自己 自身을 批判하는 것은 괴로운 일의 하나이다. 그러나 過誤를 隱匿하고 理論化함으로 自己 自體를 放棄하는 것은 보다 더 괴로운 일이며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러한 情勢를 充滿히 內包한 『캅푸』는 그냥 崩壞하려는가? 意義 잇는 藝術的 創作에 功獻이 잇을 機關이 되지 않으려는가? 唯物辨證法의 錯誤된, 機械的 應用의 克服, 偏狹한 『파티─앤•쉽』과 憎惡할 만한 『섹타리아니슴』의 放棄 素朴한 政治意識의 揚棄를 實行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것은 『랍푸』와 『남푸』와 『캅푸』가 한가지로 實行할 問題다. 그中에도 아즉 남어 잇는 것은 『캅푸』다. 이러므로써 우리는 世界文學史의 繼承이 可能할 것이다.

우리들은 自己 스스로 選擇한 窮境과 險路에서 苦難의 巡禮를 하면서 잇엇다. 그러나 이제는 苦行의 巡禮는 終了되엇다. 藝術 殿堂에 到着하엿으며, 創作의 寺院의 鍾소리를 듣게 된 까닭이다.

온갖 疑懼와 躊躇를 끓어 버리자─ 『푸로미듀스』여 苦難의 밤은 밝어 온다. (끝) 一九三三, 二, 二○

(東亞日報 193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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