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면곡
춘면(春眠)을 느즛 깨야 죽창(竹窓)을 반개(半開)하니 [봄잠을 늦게 깨어 죽창(대로 살을 만든 창문)을 반쯤 여니]
庭花(정화)는 灼灼(작작)한데 가난 나뷔 머므난듯 [뜰의 꽃은 환하고 아름다운데 가는 나비가 머무는 듯]
岸柳(안류)는 依依(의의)하야 성긔 내를 띄워셰라 [강기슭의 버드나무는 가지가 늘어져 바람에 나부끼어 성긴 안개를 띠(帶)었구나.]
窓前(창전)의 덜고인 슐을 二三盃[1](이삼배) 먹은 後(후)의 [창 앞에 덜 익은 술을 두 세잔 먹은 후에]
浩蕩(호탕)한 미친 興(흥)을 부젼업시 자아내여 [호탕하고 미친 듯한 흥을 부질없이 일으키어]
白馬金鞭(백마금편)으로 冶遊園(야유원)을 찾아가니 [흰말과 금채찍(호사로운 차림)으로 술집(기생집, 요릿집)을 찾아가니]
花香(화향)은 襲衣(습의)하고 月色(월색)은 滿庭(만정)한데 [꽃의 향기는 옷에 스며들고 달빛은 뜰에 가득한데]
狂客(광객)인듯 醉客(취객)인 듯 興(흥)을 겨워 머무는듯 [미친 나그네인 듯 취객인듯 흥에 겨워 머무는 듯]
徘徊(배회) 顧眄(고면)하야 有情이 셧노라니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유정(풍치,風致)있게 서 있으려니까]
翠翠瓦欄(취취와란)[2] 놉흔 집의 綠衣紅裳(녹의홍상) 一美人(일미인)이 [비취빛 기와 난간 높은 집에 연두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은 한 미인이]
紗窓(사창)을 半開(반개)하고 玉顔(옥안)을 잠간 들러 [사창(여인의 방의 창)을 반쯤 열고 아름다운 얼굴을 잠깐 들어]
웃난듯 반기난듯(찡긔는듯) 嬌態(교태)하여 머므난듯 [웃는 듯 반기는 듯(찡그리는 듯) 교태(아양을 떠는 모양)를 부리며 머무는 듯]
추파(秋波)를 암주(暗注)하고 녹의금 [3]빗기 안고 [여자의 정을 나타내는 은근한 눈짓을 보내고 거문고 비스듬히 안아]
淸歌(청가) 一曲(일곡)으로 春興(춘흥)을 자아내니 [맑고 청아한 노래 한 곡으로 봄의 흥을 자아내니]
雲雨(운우) 陽臺上(양대상)에 楚夢(초몽)이 多情(다정)하다 [4][양대(지명) 위에서 선녀와 운우지정을 나누던 초나라 왕의 꿈이 다정하구나.]
사랑도 그지업고 緣分(연분)도 깁흘시고 [사랑도 그지없고 인연도 깊구나]
이사랑 이 緣分(연분)을 比(비)할데도 전혀업다 [이 사랑 이 인연을 비할 데도 전혀 없다]
두손목 마조잡고 平生(평생)을 言約(언약)함이 [두 손목을 마주 잡고 평생을 말로 약속함이]
너난 죽어 곳치되고 나는 죽어 나뷔 되야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가 되어]
靑春(청춘)이 盡(진)하도록 떠나사자 마자터니 [청춘이 다하도록 떠나서 살지는 말자했더니]
人間(인간)의 일이하고 造物(조물)조차 새암하야 [인간의 일이 많고 조물주조차 시기하여]
新情未洽(신정미흡)하야 애달을손 이별이라 [새로 서로 만난 애정이 가시지 않아 애달플 것은 이별이라]
淸江(청강)의 떳난 鴛鴦(원앙) 우러녜고 떠나는디 [청강에 떴는 원앙 울며 떠나는데]
狂風(광풍)의 놀난 蜂蝶(봉접) 가다가 돌티난듯 [세찬 바람에 놀란 벌과 나비 가다가 돌아보는 듯]
夕陽(석양)은 재를 넘고 征馬(정마)난 자조 울 제 [석양은 재를 넘고 나그네의 말은 자주 울 때[5]
羅衫(나삼)을 뷔여잡고 然(암연)히 여흰 後(후)의 [비단 옷 소매를 부여 잡고 섭섭하게(어둡고 침울하게) 이별한 후에]
슬흔노래 긴한숨을 벗을 삼아 도라오니 [슬픈 노래 긴 한숨을 벗으로 삼아 돌아오니]
이제 任(임)이야 생각하니 怨讐(원수)로다 [이제 임이야 생각하니 원수로다.]
肝臟(간장)이 다 셔그니 목숨인들 保全(보전)하랴 [간장이 다 썩으니 목숨인들 보전할 수 있으랴.]
一身(일신)의 病(병)이 되고 萬事(만사)의 無心(무심)하여 [한 몸의 병이 되고 온갖 일에 무심하여]
書窓(서창)을 구지 닷고 섬거이 누어시니 [서창을 굳게 닫고 나약하게(허약하게) 누었으니]
花容月態(화용월태)난 眼中(안중)의 (암암)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눈 가운데 가물가물 보이는 듯 하고]
粉壁窓(분벽창)은 枕邊(침변)에 依依(의의)하야 [분벽사창(아름다운 여인이 거주하는 방)은 베갯머리에 어렴풋하여]
花叢(화총)의 露滴(노적)하니 別淚(별루)를 뿌리는듯 [꽃떨기에 이슬 떨어지니 이별의 눈물을 뿌리는 듯]
柳幕(유막)의 煙籠(?濃연롱)하니 離恨(이한)을 먹음은듯 [버들가지가 휘장을 두른 듯한 속에 안개가 짙게 끼니 이별의 한을 머금은 듯]
空山夜月(공산야월)의 杜鵑(두견)[6]이 啼血(제혈)한제 [공산의 달밤에 두견이 피를 토하고 울 때에]
슯흐다 뎌 새소리 내말갓치 不如歸(불여귀)다 [슬프다 저 새소리 내말같이 불여귀[7]다.]
三更(삼경)에 못든 잠을 四更末(사경말)에 비러드러 [한 밤중에 들지 못한 잠을 사경(01시 - 03시)말에 비로소 들어]
相思(상사)하던 우리 님을 꿈가운데 邂逅(해후)하니 [그리워하던 우리 임을 꿈 속에서 우연히 만나니]
千愁萬恨(천수만한) 못다 닐너 一場蝴蝶(일장호접) 흐터지니 [시름과 한을 못다 말하여 한바탕 꿈 흩어지니(일장호접: 胡蝶之夢. 허무한 꿈이라는 뜻)]
아릿다온 玉 紅顔(옥빈홍안) 곁에얼픗 안잣는듯 [아리따운 여인의 젊은 얼굴 곁에 얼핏 앉았는 듯]
어화 恍惚(황홀)하다 꿈을 生時(생시) 삼고지고 [아! 황홀하다 꿈을 생시(잠자지 않은 동안. 현실)로 삼고 싶구나.] [8]
無寢噓 (무침허희)하야 바삐 니러 바라보니 [잠 못 들어 탄식하고 바삐 일어나 바라보니]
雲山(운산)은 疊疊(첩첩)하야 千里夢(천리몽)을 가려있고 [구름 낀 산은 첩첩하여 천리의 꿈을 가리었고]
晧月(호월)은 蒼蒼(창창)하야 向鄕心[9]을(의) 비취였다 [맑고 밝은 달(또는 흰 달)은 멀어서 아득하여 임을 향한 마음(또는 두 마음)을 비추었다.]
佳期(가기, 또는 가약)는 隔絶(격절)[10]하고 세월이 하도할사 [애인을 만나기 좋은 시절(또는 아름다운 약속)은 끊어졌고 세월이 많기도 많아(빨리 흘러가)]
엇그제 곳이 岸柳邊(안류변)의 붉엇더니 [엊그제 꽃이 강 언덕의 버드나무 가에 붉었더니]
그 덧의 훌훌하야 落葉秋聲(낙엽추성)이라 [그 동안에 세월이 빨리 지나가 잎 떨어지는 가을의 소리라]
새벽서리 디난달의 외기럭[11]이 슯히울 제 [새벽 서리 지는 달에 외기러기 슬피 울 때]
반가온 님의 消息(소식) 행혀올가 바라더니 [반가운 임의 소식 행여 올까 바랐더니]
滄茫(창망)한 구름밖에 뷘소리[12] 뿐이로다 [멀어 아득한 구름 밖에 빈 소리(비소리) 뿐이로다]
支離(지리)타 이 離別(이별)이 언제면 다시볼고 [지루하다 이 이별이 (끝나) 언제면 다시 볼까]
어화 내일이야 나도 모를일이로다 [아! 나의 일이야 나도 모를 일이로다.]
이리저리 그리면서 어이그리 못가는고 [이리저리 그리워하면서 어찌 그렇게 못 가는가] [13]
弱水[14]三千里(약수삼천리) 머닷말이 이런대를 일러라 [삼천리 멀다는 말이 이런 곳(것)을 말하는구나.]
山頭(산두)의 片月(편월)되야 님의 낯이 비취고져 [산꼭대기의 조각달 되어 님의 얼굴을 비추고 싶구나.]
石上(석상)의 梧桐(오동)[15]되야 님의 무릅 베이고져 [돌 위의 오동나무 되어 님의 무릎에 베이고(받침을 받고) 싶구나.]
空山(공산)의 잘새 되야 北窓(북창)의 가 울니고져 [빈 산에 잘새(宿鳥) 되어 북창[16]에 가서 울고 싶구나]
屋上(옥상) 朝陽(조양)[17]의 제비되야 날고지고 [집 위 아침 햇살에 제비 되어 날고 싶구나]
玉窓(옥창) 櫻桃花(앵도화)에 나뷔되여 날고지고 [옥창(여인의 방) 앵두꽃에 나비 되어 날고 싶구나]
泰山(태산)이 平地(평지) 되도록 錦江(금강)이 다 마르나 [태산(중국의 높은 산)이 평지 되도록 금강이 다 마르도록]
平生(평생) 슯흔 懷抱(회포) 어대를 가을하리 [평생의 슬픈 회포를 어디에다가 견주리오]
書中有玉顔(서중유옥안)[18]은 나도 暫間(잠간)들엇으니 [글을 부지런히 읽어 공부를 잘하면 아름다운 아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나도 잠깐 들었으니]
마음을 고쳐먹고 慷慨(강개)를 다시 내야 [마음을 다시 먹고 강개(의기)를 다시 내어]
丈夫(장부)의 功業(공업)을 긋긋이 이룬 後(후)의 [대장부의 공적이 뚜렷한 사업(입신양명)을 끝까지 이룬 후에]
그제야 님을 다시 맞나 百年(백년) 살녀하노라 [그제서야 임을 다시 만나 백년(한평생)을 살려 하노라.]
주석
[편집]- ↑ 一二三盃로 표기된 경우도 있음
- ↑ 취와주란(翠瓦朱欄)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음.
- ↑ 녹기금. 한나라 사마상여가 쓰던 거문고. 사마상여가 녹기금으로 '봉구황곡'을 연주해 탁왕손의 딸 탁문군을 꾀어내었다는 이야기가 전함.
- ↑ 초나라 양왕(襄王)이 꿈 속에서 선녀를 만났다는 전설을 인용한 것. 남녀간의 사랑의 행위를 비유하는 말.
- ↑ 말이 가자고 울며 재촉하는 모습.
- ↑ 두견: 감정이입
- ↑ 돌아감만 못하다의 뜻으로 두견[소쩍새]의 울음 소리를 의미
- ↑ 꿈에서 본 모습이 생시였으면 하는 소망이 투영된 표현이다. [2009년 1월 5일] 강승원: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 초판, 한국교육방송공사, 9.
- ↑ 향향심. 또는 '양향심', '님향심'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음
- ↑ '격절' 대신에 '묘연(渺然)하고'로 기록된 경우도 있음
- ↑ 감정이입된 소재
- ↑ '뷘소리' 대신에 '비소래'로 표기된 경우도 있음. '비소래'는 '빗소리'
- ↑ 임을 그리어 지내는 화자의 안타까움과 임과의 물리적 거리감을 형상화하고 있다. [2009년 1월 5일] 강승원: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 초판, 한국교육방송공사, 9.
- ↑ 약수(중국의 전설 속의 강. 아무리 가벼운 물건이라도 다 가라앉기 때문에 건널 수 없으며 강의 폭이 삼천 리나 된다고 함. 장애물의 이미지, 화자와 임과의 단절감을 느끼게 하는 소재
- ↑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기 때문에 오동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추정함.
- ↑ 화자가 감정을 토로하고 싶은 곳
- ↑ '조양' 대신에 '조량(雕粱)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음. '옥상조량'은 집 위에 아로 새긴 들보를 말함.
- ↑ 서중유옥안 - 송나라 제3대 천자인 진종황제의 '권학문'에서 인용된 듯. '장가가려는데 좋은 매파 없다 한하지 말라. 책 속에는 얼굴이 옥같이 예쁜 여인이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