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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은주(銀珠)야! 얘 은주야!』

춘성(春星)은 자기 집에 들어서며 댓바람에 계집종을 부른다. 부엌에서 행주로 그릇을 씻던 은주는 부엌 창살 틈으로 들어오는 춘성을 바라보더니 다시 본체만체하고,

『네』 대답을 하고 아무 말이 없다.

춘성의 시꺼먼 얼굴에는 취한 술기운이 올라와서 익히다 남은 간덩이같이 검붉은 데다 털 많은 얼굴을 맵시 내느라고 날마다 하는 면도 독이 시푸르뎅뎅하게 들었다.

그는 다시 마루로 올라가서 건넌방 미닫이를 열어젖히더니,

『은주야!』

하고 목청 질러 한 번 부르고서 답답한 칼라를 집어던지고서는,

『이 계집애가 귀가 먹었나? 에그 이게 무엇이냐? 방이 이게 무엇이냐! 이게 돼지우릿간이지 어디 사람 사는 방이냐? 얘 은주야! 은주야! 얘 목 아퍼! 은주야!』

일부러 대답을 안 하던 은주도 너무 떠드는 바람에 송구한 생각이 났던지,

『왜 그러세요!』

하고 발을 동동 구르듯이 부엌에서 뛰어나온다.

『왜 그러세요가 무어야! 너 오늘 종일 한 것이 무엇이냐? 왜 방 좀 치워 놓으라니까 안 치웠어? 빗자루는 두었다가 군불이나 때련! 그리고 너 하루종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흥, 너 요새 큰일 났더라, 큰일 났어!』

은주는 입을 쫑긋쫑긋하면서 눈살을 얄미웁게 찌푸리고,

『오늘 작은댁에 심부름 갔었어요』

하고서는 행주치마 속에다 두 손을 넣었다 꺼내어 입 속으로 남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무엇이라 종알종알 한다.

『심부름? 무슨 심부름을 가서 하루 종일 있어?』

은주는 아무 말이 없다. 뒷곁에 있던 춘성의 어미가 마루 뒷문에 나타나며,

『또 쌈한다. 오늘은 종일 어디 갔었니? 또 술 먹었구나. 그저 그렇게 일러도 듣지를 않아. 얘 어서 너는 상이나 보아라! 응』

하며 다시 은주를 흘겨본다.

춘성은 그래도 무엇이 미진한 듯이,

『꼭 나가면 들어올 줄 몰라! 야단났어! 야단!』

하며 두 볼이 퉁퉁 부어서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은주는,

『무엇이 야단났어요? 야단날 것이 무엇이예요?』

하면서 포달을 부릴 듯이 독살맞은 눈으로 춘성을 쳐다본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뒤를 돌아도 보고 멀거니 섰다가 은주의 목소리를 듣고서 쥐어박을 듯이 주먹질을 하면서,

『요 빌어먹을 것, 주둥이를 좀 다물어!』

하더니 다시 자기 아들에게는,

『글쎄, 이애야! 제발 좀 들어가서 자든지 해라. 왜 그렇게 점잖지가 못하냐! 엥』

하며 입맛을 다시나 춘성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냉수나 한 그릇 가져오너라! 어서!』

하고서는 방으로 들어가서 방바닥에 흐트러진 종잇조각, 먼지 북더기를 주섬주섬 치워 놓더니 그대로 아랫목에 가 쓰러졌다. 그러고서는 눈을 뜬 채 천장을 쳐다보았다.

공중에서는 무지개 한 끝을 자기 손가락에 홰홰 감아 삥삥 내두르는 모양으로 정신이 팽팽 내둘려 제 몸뚱어리가 그리로 몰려들어가는 것 같다. 그러고는 때때로 배 탄 모양으로 몸뚱이가 땅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 같고 또는 높은데서 떨어지는 것 같이 아찔하기도 한데, 사지와 몸뚱이가 척 구들장 위에 치받쳐 있는 듯하고 피곤한 사람이 축축한 땅 위에 그대로 자빠진 것 같이 편안하다.

그는 후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방안에 있는 것이 윤곽만 몽롱한 안개 속으로 보이는 듯하고 부질없이, 으슥으슥, 우쭐우쭐 넘치는 기쁨이 어깨춤을 추게 한다. 그는 혼자,

「그렇지 그래!」

하며 껄껄 웃었다.

「술 먹으면 웬일인지 일상 좋더라! 이런 때 영숙이나 있었으면 오죽 좋을라구. 떡 술이 취해서 들어오면 반가와 맞으면서 옷도 벗겨 주고 자리도 깔아줄 터이지. 그러고는 「어디서 약주를 이렇게 자셨어요? 저는 약주 잡수시면 싫어요. 에그, 보기 싫어!」 하고서 살짝 돌아앉지만, 허허 그렇지 나는 슬그머니 타이르느라고 「인제는 안 먹을께, 응! 이리와!」하고서 잡아다니면 「싫어요!」하고 톡 쏘는 얼굴에는 참지 못하는 웃음을 가리느라고 더욱 고개를 돌리렷다. 그러면 나는 거짓 항복을 하여 가면서 「글쎄, 안 먹는다니까, 안 먹어요, 안 먹어!」 그러면 영숙은 일부러 한참이나 있다가 「무얼 안 먹어? 제 버릇 개도 안 준다고 한 번 밴 버릇을 고칠 수 있나!」 하고 가만히 앉았으면 나는 슬그머니 그의 겨드랑이를 간질여 보자. 그러면 깜짝 놀래서 돌아앉으며 「왜 이래요」하면서 참았던 웃음이 툭 터지렷다. 그러면 나는 그의 두 팔을 꽉 붙잡고서 「이리 와, 이제는 술 안 먹을 테니!」 그러면 처음에는 팔을 빼려다가 제비같이 나의 가슴으로 달려들며 「인제는 약주 잡숫지 마세요, 네네?」하면서 간청을 할 터이지! 에그, 그저 고것을. 어떻게 하나! 그만 진저리가 치기도 어렵거든!」

하고서는 혼자 벙싯벙싯한다. 그러다가는 다시 웃옷을 벗고서,

「그렇지 그래」

하면서 옷걸이에다가 옷을 넣고서 다시 책상 앞을 지나려다가 책상 위에 있는 편지를 보았다.

「편지!」

의아한 듯이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한 손으로 피봉을 보고서는,

「영숙이가 편지를 했다」

하고 이리 뒤치고 저리 뒤집어 그 필적을 상고한 후에 고개를 갸웃하고서,

「참 이것은 의왼걸, 이제는 버릇 한 가지가 늘었다. 당초에 하지 않던 편지하는 버릇이 늘었어」

하고서는 전깃불을 켜고서 다시 아랫목 보료 위에 가 누우면서,

「어디 보자!」

하고서 구혼장을 받은 신랑처럼 기꺼운 눈으로 그것을 뜯었다. 그러다가,

「아니지, 아냐. 천천히 볼 일야! 너무 반가운 것을 그렇게 얼핏 지나쳐 버려서는 남용이야 남용!」

하면서 그것을 책상 한 귀퉁이에다가 다시 놓고 한참이나 있다가,

「무엇이라고 썼을꼬?」

하고서 다시 책상 위에 있는 편지를 들더니,

「인제는 그만 보자! 얌전하게도 썼다」

하고서 흡족히 여기는 듯이 칭찬을 한 번 하더니 편지 피봉을 뜯었다.

그러고는,

「그렇지 춘성 씨! 그러렷다」

하고서는 또 무엇이라 두어 줄 읽더니 두 눈이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그러다가는 두 눈이 놀라 죽은 눈처럼 멀건해져서,

「무어야. 눈물이 없읍니다. 눈물이 없으니까 사랑하여 주실 만큼 뜨거운 정이 없겠어요…. 더구나 눈물이 없으세요….」

춘성은 편지를 한 손에다 움켜쥐며,

「무어야? 눈물이 없으니까 사랑해 줄 만큼 뜨거운 정이 없다고?」

하면서 멀거니 있다가,

「어떻든 계집애들이란 여우야 여우! 싫거든 이냥실소할 것이지 눈물이 없으니까 사랑할 수가 없소란 무어야?」

하고서 화가 어디서 새삼스럽게 났던지,

「앵!」

하고 손에 쥐었던 편지를 심술스럽게 북북 찢으면서,

「그만두어라! 너 아니면 여자가 없다드냐? 되지 않은 것!」

하고서는 영숙이가 옆에 있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딱 감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분하고도 그래도 섭섭하고 연연(戀戀)한 뭉클한 정이 얽히어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다시 영숙이가 보인다. 그러고는 영숙이가 자기 앞으로 가까이 가까이 왔다. 그래서 속마음으로 설마 제가 나를 떼어 보냈을라고? 아마 내가 눈물이 없으니까 나의 눈물을 한 번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게지! 그렇지, 하고서 가까이 오는 영숙을 타이르고 타협을 하려는 듯이 빙그레 하면서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영숙은 자기에게로 아주 가까이 와서 놀려먹는 듯이 허리를 굽실하고 한 손으로 삿대질을 할 듯이 손을 들더니 지나간다. 그러고는 그대로 지나갔으면 오히려 좋으련마는 저만큼 가다가 어깨 너머로 돌아다보며 비웃는 듯이 생글 웃을 때 그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며 눈을 번쩍 뜨니까 암흑을 한 번에 깨뜨린 듯이 전깃불이 환하다.

「에, 무정한 년!」

그는 혼자 「눈물이 없으니까」하다가 멀거니 천정을 다시 쳐다보고 있다.

여덟 시나 되었다. 은주는 저녁상을 가지고 건넌방에를 들어왔다.

『진지 잡수세요.』

『………』

춘성은 대답이 없고 방안은 조용하다.

『상 가져왔어요.』

그러나 춘성은 아랫목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은주는 춘성을 무시무시 여기는 듯이 가만가만 흔들면서,

『일어나세요』

할 때 몸을 부시시 돌아누우면서,

『응 응』

하고 팔을 눈에다 대고서 엎드려서 자꾸자꾸 훌쩍훌쩍 운다. 은주는 눈이 똥그래지며,

『에그, 왜 우셔? 마님, 서방님이 우셔요』

하면서 안방으로 뛰어간다. 그리고는 불쌍해서 동정이나 하는 듯이 뒤를 돌아다보면서,

『마님, 어서 건너가 보세요』

하고서 가엾은 듯이 주저주저하고 서 있다.

『무어야?』

하고서 어머니는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춘성을 보니까 요 위에 엎드려서 훌쩍훌쩍 운다.

『이애야! 자다 말고 울기는 왜 우느냐? 무슨 꿈을 꾸었니? 미친 애로구나! 얘, 어서 일어나서 밥이나 먹어라.』

춘성은 들은 체 만 체 어린애처럼 자꾸 울 뿐이다. 은주는 어머니 등 뒤로 이 꼴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다.

『일어나! 어서어서!』

춘성은 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하면서 고개를 돌리며,

『밥요?』

하면서 어머니를 쳐다보고,

『밥이 무어예요? 이런 때 밥을 먹어요.』

『이런 때라니, 무슨 때 말이냐? 저녁밥 말야!』

『싫어요. 귀찮아요. 어서 건너가세요』

하면서 다시 돌아눕더니 또 울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울기는 왜 우니. 참 나중에는 별일이 다 많구나!』

춘성은 한참 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아녜요. 내 당장에 가 볼 테야요』

하면서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더니

『그래 그렇게 사람이 무정해?』

하고서 문으로 나가려니까 어머니는 일어서는 춘성을 어린애같이 붙잡으며,

『글쎄, 이건 잠이 덜 깼느냐? 귀신이 씌었느냐? 당최 심판을 알 수가 없구나. 가면은 어디를 갈 모양이냐?』

『아녜요. 당장에 가 보아요.』

춘성이 자기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영숙의 집에 왔으나 영숙은 없었다.

이틀 동안을 가도 보지 못하였다.

그전에는 으례 자기 올 때에는 반가이 나오며 웃어 주던 그를 세번이나 가도 만나지를 못하게 되매, 웬일인지 그 집 대문을 두드려 보고도 싶고 그 집 대문간에서 몸부림도 하여 보고 싶었다. 본래 마음 약한 춘성이 처음으로 이와 같이 섭섭함을 당하매 어떻게든지 영숙을 만나서 붙잡고서 하소연하며 울고 싶었다. 그러고는,

「그렇지. 언제든지 영숙을 만나거든 내가 꿈속에서 하던 것처럼 그렇게 울어 볼 터이다. 그러면 제가 내 눈물을 보고서 다시 나를 사랑치 않는다지는 못하렷다. 내가 왜 눈물이 없는 사람인가? 눈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저를 보면은 모든 것이 기껍고 좋아서 웃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나흘 되던 날, 춘성은 영숙의 집에 와서 문간에서 영숙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 대문에 서서 영숙을 기다리고 왔다갔다하는 것이 꿈속에 보던 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돌멩이 하나가 그 앞에 굴러 있는 것까지 똑같은 듯 생각이 난다.

조금 있다 하인이 나왔다.

『들어오시라구요.』

춘성은 속으로 여간 기쁘지 않았다. 「들어오라고? 그러면 편지가 참 희롱으로 한 편지였던 게지?」혼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으로 건너갔다. 건넌방 피아노 앞에 영숙은 맥없이 돌아앉아 있다. 그리고 때때로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빛이 차마 앞에 내어놓은 하얀 손가락이 꼼지락꼼지락하는 것을 보고서 알 수가 있다.

춘성은 겸연쩍고 공연히 떨리는 마음으로 마루 끝에서 구두를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너무 정적하다. 임종에 가까운 병자가 누워 있는 듯이 고요한데 흰 모시적삼에 흰 치마를 입은 영숙은 시름없이 앉아 있다.

춘성은 영숙의 뒤에서,

『에헴.』

가늘게 기침을 하나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시,

『영숙 씨!』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억지로 나오느라고, 생각하던 바보다는 목소리가 작으며 또는 가늘게 떨린다.

그때야 자다 깬 사람처럼 영숙은 고개만 살짝 돌려 춘성을 보더니,

『아이고, 언제 오셨어요!』

춘성은 기가 막혔다. 그리고 속마음으로 『아이고, 언제 오셨읍니까가 무엇이야! 그러면 들어오라고 한 사람은 누구람.』

영숙은 춘성이 자기가 앉은 의자 가까이 올 때까지 얼굴빛에 수심이 가득하더니 무엇을 깨달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 춘성을 보면서,

『춘성 씨!』

하였다. 춘성은

『네.』

하면서 흰 손가락으로 옆에 놓인 피아노를 두어 번 두드려보는 영숙의 희고도 매끈한 팔을 보았다. 영숙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저쪽 먼 산을 바라보더니 옆에 있던 수건을 든 손이 얼굴로 올라간다. 그러고서 구슬 같은 눈물이 가무잡잡한 속눈썹 사이에 괴었다.

춘성은 그것을 보고서 속으로 놀랐다. 그리고 웬일인지 영숙의 비애에 감염이 되는 듯이 저도 눈에서 눈물이 날 듯 날 듯하였다. 영숙은 한참이나 있다가 다시,

『춘성 씨!』

하고 춘성을 쳐다볼 때 두 뺨에는 어린애처럼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애소하는 듯한 정이 뭉치었었다.

『네.』

춘성도 입술에 묻은 찝찔한 눈물을 혓바닥으로 빠는 듯한 공연한 비애가 자기를 울릴 듯 울릴 듯하다.

『저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예요』

하더니 영숙은 건반 위에 엎드려서 느껴 운다.

춘성은 동정과 연민의 정이 무조건으로 일어나며 자기를 그 와중으로 미끄러뜨리는 듯하다.

『저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거니와 또는 의뢰할 사람도 없어요.』

춘성은 영숙의 달싹달싹하는 잔등이를 그대로 끼어 안고 같이 울고 싶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영숙은 퉁명이나 부리는 듯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어요. 나의 비애에 같이 울어 주는 사람도 없고 나의 고통을 조금도 동정해 줄 사람이 없어요.』

춘성은 한옆으로 자기를 몰라 주는 것이 야속하고, 또 한옆으로 자기는 영숙을 전 생명까지 바쳐서 사랑한다는 것을 변명하고 호소하고 싶었다.

영숙은 다시,

『한 사람도 없어요. 한 사람도 없어요.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어요.』

춘성은,

『영숙 씨!』

하며 영숙을 일으킬 듯이 가까이 가며,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영숙 씨는 참으로 저를 생각치 않으세요』

할 때 영숙은 고개를 번쩍 쳐들고서 한참이나 괴인 눈으로 자기를 보는 춘성을 보고서는 고개를 돌이키더니 눈물 나는 얼굴에 견디지 못하는 웃음을 웃더니 눈물을 고치고서 냉정한 얼굴로서,

『춘성 씨는 어째 우세요?』

춘성은 나오는 울음에 입술이 떨리는 것을 참으려는지 아랫입술을 흰 두 이 사이에 잠깐 깨물고 있다가,

『영숙 씨는 저더러 눈물이 없다 하셨지요.』

『………』

『저도 눈물이 없는 줄 모르지 않은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오늘에 비로소 눈물이 있는 것을 알았읍니다, 오늘에야.』

영숙은 그 검고 두꺼운 입술과 털난 얼굴이 비쭉비쭉하는 것을 보고서 싫은 생각이 갑자기 나고 또는 사내 얼굴에 눈물 흘리는 것이 비겁하고 약한 사람과 같이 보인다. 그러고서 춘성의 굵고 검은 배암의 껍질 같은 두 손이 바로 자기의 팔목을 붙잡을 듯이 있는 것이 근지럽고 싫었다. 그래서 그는 얼핏 몸을 비키면서,

『울 일이 생겨도 같이 울어 주기를 바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저는 불행으로 생각할 뿐예요. 그런데 춘성 씨는 왜 우셨어요, 네?』

춘성은 대답하기가 뻥뻥한 듯이 한참이나 주저주저하다가,

『저도 그것을 알 수가 없어요.』

영숙은 못난이를 보고서 웃는 듯이 눈물 괸 눈으로 염치없이 웃으면서,

『네? 모르세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어째서 우신 것을 모르시다뇨?』

춘성은 할 말이 없는 듯이 멍멍히 섰다가,

『그러면 영숙 씨는 어째 우셨어요?』

영숙의 눈에 눈물은 벌써 다 말랐다. 그러고서 매무시를 고치면서,

『저 운 것요?』

하면서 저고리끈을 내려뜨리고는,

『저는 울 이유가 있어 울었어요.』

『무슨 이유가 계세요?』

한참이나 있던 영숙은 책상 서랍에서 전보 한 장을 꺼내더니,

『이것예요』

하고서 춘성에게 준다. 춘성은 그것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까 영숙의 아버지가 상해서 돌아갔다는 통부(通訃) 전보이었다.

춘성은 그 전보를 영숙을 때릴 듯이 그에게 향하여 내던졌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제가 여태까지 운 것이 어리석기도 하고 또는 영숙의 짓이 얄밉고 분하였다. 그리고 속은 생각을 하매 당장에 그 눈깔과 주둥아리를 빼어 버리고 싶기도 하고 훑어 주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고서 마음 약한 여자인 영숙이가 당해 보지 못한 비애를 갑자기 당하고서 가슴 죄고 넘쳐 오는 슬픔을 하소할 곳 없어 혼자 속태우다 아무리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을 만나매 말로는 할 수 없으나 눈물로 써라도 그 비애를 하소한 것에 따라 운 것이 얼굴 붉어지도록 부끄럽게 어리석었다.

춘성은 혼자 속으로 기막힌 듯이 웃었으나 그 웃음은 쓸개를 빠는 것 같이 썼다.

『그러면 저에게 하신 편지는 진정으로 하신 것입니까?』

영숙은 고개를 끄덕끄덕할 듯이 멀거니 춘성을 쳐다보며,

『저는 남을 조롱할 줄 몰라요』

하고서 옷걸이 서랍을 잡아 빼더니,

『자, 가져가세요. 모두 가져가세요』

하며 춘성의 사진과 편지를 모두 내던진다.

춘성은 내쫓기는 것 같이 영숙의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혼자 걸어가며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 또는 누르락하여지며 혼자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였다.

그리고 창피한 듯이 얼굴도 들지 못하고 땅만 보고 걸어가다가,

『에라 술이나 먹자!』

하고서는 주머니에다가 손을 넣으며,

『그러나 보자, 돈이 얼마나 있나.』

손이 주머니에서 나오는 데 따라서 지전뭉치가 딸려 나온다.

『이만만 하면 오늘 밤새도록이다!』

그는 어떤 요리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친구 하나를 불렀다. 그 친구를 A라고 부른다 하면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스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때때로 웃을 때면 입만 조금 방긋하고 마는 사람이다.

춘성은 보료 위에 비스듬히 앉아서,

『여보게, 이런 분할 데가 있단 말인가!』

하며 A를 건너다본다. A는 담배를 재떨이에 털더니,

『무엇이?』

하고서 저도 드러눕는다.

『글쎄 여자란 모두 그 모양들이야』

『어째서?』

『영숙이한테서 편지가 오지 않았겠나.』

『그래.』

『편지에 무엇이라고 했는고 하니…』

『그건 좋은 이야길세.』

『내가 눈물이 없다고.』

『그래서 사랑할 수 없다는 말씀야!』

또 A눈 입을 삥긋삥긋 웃으면서,

『아따, 그러면 그 앞에 가서 엉엉 울게그려.』

『글쎄, 내 말 좀 듣게. 말하기가 창피하고 부끄러운 걸.』

『어떤가, 내 앞에 못할 말이 어디 있는가.』

『그래 사흘 되는 오늘 저한테를 가지 않았겠나.』

『가니까 무엇이라던가.』

『말하면 기막히네.』

『기막힐 거야 무엇 있나.』

『가니까 나를 보고서 운단 말야.』

A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춘성을 말을 듣더니 베개를 고쳐 베면서,

『울어?』

『그래, 그 우는 것을 보니까 말야, 나도 어째 눈물이 나네그려.』

『그래, 울었는가?』

『울었어.』

『그러면 영숙이가 사랑하겠네그려.』

『말 말게, 창피해서 사람이.』

『또 창피할 게 무어야』

할 제 채옥이란 기생과 설향이라는 기생이 들어왔다. 인사가 끝나자 A는 설향이라는 나이 어리고 인물 동그스름하며 때때로 웃을 적마다 두 눈에 쌍꺼풀 지는 기생을 차지했다.

그러나 채옥이란 소리 잘하고 춤 잘 추고 글씨 잘 쓰고 말 잘하고 마음 좋기로 유명하지마는 어쩐지 춘성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저만큼 띄어 앉아,

『오래간만일세.』

인사는 하였으나 그 기생을 부른 A를 속으로 슬며시 미웁게 생각하며 또는 설향이를 뺏어 간 것이 샘이 난다. 그리고 설향이와 좋아하는 A가 설향이가 좋아하는 채옥이를 불러 준 것이 마땅치가 않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꿀꺽 참는 수밖에 없었다.

A는 설향과 날마다 만나나 무엇이 그리 미진하였던지 귓속말을 소곤소곤하고 서로 웃기도 하고 서로 꼬집어뜯기도 한다.

채옥이란 나이 지긋이 먹고 갖은 설움을 다 당해 보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얼굴에 늙은 빛이 보이고 가리지 못할 수심이 보인다.

춘성은 그만하면 화류계에 권태도 깨달았을 것이며 또는 얼마나 무미건조함을 알았을 터인 A가 너무 치신없이 설향이를 가지고 딩구는 것이 보기가 싫어서 일부러 A와 붙어 앉은 설향을 부르면서 그의 손을 잡아당기었다.

『이리 와!』

그럴 때 채옥의 눈에는 깜짝 놀라면서도 시기하는 빛을 나타냈다가 사라뜨리고 말았다.

『왜 이러세요.』

설향도 춘성에게 가기는 싫어하여 앙탈을 하면서 손을 빼려 하니까,

『이리 오라니까.』

하면서 춘성은 무리로 설향을 잡아 끌면서 자기 손에서 설향을 놓치고 싶기는 싫으나 하는 수 없이 입맛만 다시고 앉아 있는 A를 곁눈으로 보았다.

『왜 A씨에게만 가 앉았어, 나는 보기가 싫은가?』

『왜 뵙기가 싫기는요, 날마자 뵙지 못해서 병이 잘 지경인데요. 그래서 이렇게 부스럼까지 났어요』

하면서 생긋 웃으면서 팔목에 뾰루지 비슷이 난 부스럼을 내보이더니 아주 말할 수 없이 아픈 듯이,

『스 ─』

하고 상을 찌푸리는 것이 춘성의 눈에는 어떻게 간사하고 얄미워 보이는지 알 수 없다.

채옥이는 머뭇머뭇하면서 저쪽 귀퉁이에 가서 혼자 앉았다. 그러면서도 춘성과 설향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감시를 한다.

A는 설향을 빼앗기고 매우 심심한 듯이 애꿎은 담배만 피우다가,

『그래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게그려』

하고서 춘성과 설향을 어떻게 하면은 조금 떨어지게 하나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지. 그러나 부끄러운 걸. 기생들은 귀 막아라, 듣지 말어!』

설향은 실없이 웃으며,

『무슨 이야긴데 귀를 막아요』

하면서 두 귀를 곱절하여 넷 없는 것이 한탄인 듯 달려들며, 채옥은 그래도 말이 말 같은 것을 알았는지 이면으로라도 두 귀를 가리면서 싱글싱글 웃었다.

『하하, 정말 가리네, 미친 애.』

설향은 채옥을 비웃었다. 그러나 채옥은 자기도 모른 바가 아닌 게 아니라는 듯이 귀에서 손을 떼면서,

『가리시라니까 가리지』

하며 다시 치마를 휩싸고 앉았다.

춘성은 다시 아까 하던 이야기를 이어,

『그래 영숙이가 울지를 않겠나! 그 우는 것을 보니까…』

채옥은 가엾은 듯이,

『누가 왜 울어요?』

하며 춘성을 쳐다본다. 그러나 춘성은 채옥의 입술을 보기가 싫어서 고개를 돌이키면서 그 말대답은 하지도 않고서,

『어째 나도 눈물이 나서 못 견디겠데그려』

할 제 말대답 없는 데 무참해 앉아 있는 채옥을 설향은 동정하는 듯이 곁눈으로 흘겨보았다.

A는 다시 설향의 손을 끌면서,

『그래.』

말은 뒷전으로 듣고서 정신은 설향을 어떻게 자기 옆으로 끌어 오려 하는 연구에 골몰이다.

『그래 한참 울었네그려. 그러려니까 영숙이가 한참 있다가 고개를 쳐들어 나를 보더니 왜 우느냐고 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러기에 나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내가 다시 영숙에게 그 우는 이유를 물으니까 말야, 하 기가 막혀! 이것 좀 보게! 상해 있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갔다는 통부 전보 한 장을 주지 않겠나…』

A는 전과 다르게 크게 웃었다. 그러할 제 상이 들어왔다.

『얘, 상이 너무 이르구나! 어떻든 먹고 볼 일야.』

술잔을 잡았다. 채옥이가 춘성의 술을 부으면서 정이나 주는 듯이 쳐다보고서 쌍긋 웃는다.

춘성은 술잔을 내던질 만큼 싫었다.

A에게는 설향이가 술을 부었다.

술이 반쯤 취했을 때 기생들은 장구를 갖다 놓고 소리를 할 제 채옥이는 춘성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고서는 가끔가끔 만지고 싶어 못 견디는 듯이 손이 춘성의 몸에 자주 대여지고 청치도 않았는데 무릎도 베어 준다.

그러나 춘성은 술이 들어가고 나니까, 설향이도 간다 봐라, 눈에 보이지 않고 채옥이는 보이지 않기는커녕 너무 반감이 일어날 만큼 추악해 보이고, 아까 영숙에게 당한 모욕이 어떻게 분한지 견딜 수가 없다.

춘성은 다시 술을 마시면서 웃옷을 벗어제치고,

『어떻든 여자라는 것은 간사한 거야…』

하니까 설향이가 귀여운 목소리를 몹시 긴장시켜서,

『어째서요?』

하며 덤벼들 듯이 묻는다. 채옥은 그래도 점잖게,

『그럴 리가 있나요, 다 그렇지는 않아요.』

술취한 춘성은 술김에 채옥의 허리를 껴안으면서,

『정말 그럴까?』

하고 정 있게 들여다본다. 채옥은 처음에는 몸을 빼려 하다가 가만히 있으면서,

『춘성 씨가 그렇게 생각하실 것은 없지요.』

『어째서?』

『춘성 씨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니까 말예요.』

가슴 덜렁덜렁할 호기심이 춘성을 몹시도 그 무슨 요행과 기대를 준다.

『누구야…』

춘성의 머리속에는 어떤 어여쁘고 얌전한 다시 말하면 자기의 이상(理想)하는 미인 하나가 보인다.

『누구든지요.』

『누구야, 알으켜 주어, 공연히 남을 감질만 시키지 마시고.』

『그런 사람이 있어요.』

『이런 제기, 누구야 글쎄.』

채옥은 춘성의 손을 잡고서 일어서더니,

『이리 오세요』하고서 저쪽 사람 없는 곳으로 나가서 춘성의 가슴을 껴안더니,

『이 채옥이 말씀예요』하고서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수그리며 춘성의 손만 단단히 쥔다.

춘성은 그것을 배척하기는 싫었다. 어떻든 많은 감사도 들었다. 그러고서 술 취한 눈에 어리어 보이는 채옥이가 아까보다는 미워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그러면요. 진정예요.』춘성은 기막혀 웃는 듯이 웃으면서,

『내가 채옥이 마음에는 제일 적당하고 만족해?』

채옥은 한참이나 있더니,

『세상에 사람이 어디 만족이 있어요?』

『그럼!』

『저는 여태까지 저의 만족히 여기는 사람을 많이 골라 보고 또는 참으로 그런 이의 사랑을 받아 보려고 해보기도 하였지마는 그런 이는 저에게 웬일인지 사랑을 주지 않아요.』

『그러면 나는 만족한 사람이 못 된단 말인가.』

채옥은 『네 네. 만족치는 못하여도 저의 애인으로는 가장 나을 것 같아요.』

『가장 나…』

춘성은 아무 말 없이 말을 채 못 마친 입도 다물지 않고 멍멍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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