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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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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경내에 이름난 산은 치악산이라.

명랑한 빛도 없고, 기이한 봉우리도 없고 시꺼먼 산이 너무 우중충하게 되었더라.

중중첩첩하고 외외암암 하여 웅장하기는 대단히 웅장한 산이라. 그 산이 금강산 줄기로 내린 산이나 용두사미라. 금강산은 문명한 산이요, 치악산은 야만의 산이라고 이름지을 만한 터이라.

그 산 깊은 곳에는 백주에 호랑이가 덕시글덕시글하여 남의 고기 먹으려는 사냥 포수가 제 고기로 호랑이 밥을 삼는 일이 종종 있더라.

하늘에 닿듯이 높이 솟아 동에서부터 남으로 달려 내려가는 그 산 형세를 원주 읍내서 보면 남편 하늘 밑에 푸른 병풍 친 것 같더라.

치악산은 병풍 삼고 사는 사람들은 그 산밑에서 논을 풀고 밭 일어서 오곡 심어 호구하고, 그 산의 솔을 베어다가 집을 짓고, 그 산의 고비고사리를 캐어다가 반찬하고, 그 산에서 흘러 내려가는 물을 먹고사는 터이라. 때 못 벗은 우중충한 산일지라도 사람의 생명이 그 산에 많이 달렸는데 그 산밑에 제일 크고 이름난 동네는 단구역마을이라.

치악산 높은 곡에서 서늘한 가을 바람이 일어나더니, 그 바람이 슬슬 돌아서 개 짖고 다듬이 방망이소리 나는 단구역마을로 들어간다.

달 밝고 이슬 차고 베짱이 우는 청량한 밤이라. 소소한 바람이 홍참의 집안 뒤꼍 오동나무 가지를 흔들었는데, 오동잎에서 두세 방울 찬이슬이 뚝뚝 떨어지며 오동 아래 단장 위에서 기와 한 장이 철썩 떨어진다.

달은 오동나무 그림자를 끌어다가 홍참의 집 건넌방 동창 미닫이에 들었는데, 서늘한 바람이 오동 그림자로 활동사진을 놀리더라.

창밖에 눈썹같이 좁은 툇마루가 있는데, 어떤 부인이 혼자 앉았다가 머리끝이 주뼛주뼛하고 겁나는 마음이 생겨서 미닫이를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나이 이십이 될락말락하고 얼굴은 시골구석에도 이런 일색이 있던가 싶을 만한 일색이라. 은조사 겹저고리에 세모시 대린 치마를 입고 서늘한 바람에 추운 기운이 있던지, 겁이 나서 소름이 끼쳤던지, 파사한 태도가 더욱 어여쁘더라.

(부인)“ 이애, 금홍아 금홍아…….”

금홍이는 옷 입은 채로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가 본래 영리한 계집이라, 자던 목소리로 대답하여 벌떡 일어난다.

(부인)“금홍이 잠들었더냐?”

(금홍)“어젯밤에 송편 빚느라고 늦게 잤더니…….”

하면서 동창에 달그림자를 보고 새 정신이 나는 모양이라.

(금홍)“아씨, 아씨께서 쇤네를 여러 번 부르셨습니까?”

(부인)“이애, 달이 아깝지 아니하냐. 이런 달밤에 잠만 잔단 말이냐.”

(금홍)“왜 어느새 들어오셨습니까. 또 달구경하러 나가시면 쇤네가 모시고 구경하겠습니다.”

(부인)“글쎄, 좀더 구경하다가 잘까. 내가 혼자 툇마루에 앉았다가 오동나무 밑에서 인기척이 있는 듯하여 무서워서 들어왔다.”

(금홍) “아직 초저녁인데 설마 도둑놈 들어올라구요.”

하면서 미닫이를 열고 나서는데, 나이 열다섯이나 열어섯쯤 되고,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어여쁜 얼굴이라. 만일 서울 돌구멍속에 있었던들 남의 종 노릇 아니하고 잘 되러 가고 싶은 마음이 벌써 생겼을 만하더라.

부인이 다시 툇마루로 나가 금홍이를 데리고 달구경을 하는데, 오동 가지는 의구히 흔드리고 달은 더욱 밝았더라.

부인이 나무 그림자를 피하여 앉아서 달을 쳐다보다가 혼잣말이라.

“저 달은 우리 어머니를 보겠지……. 우리 어머니를 보겠지……. 우리 어머니는 지금 무엇을 하시누. 아마 달 쳐다보며 내 말 하시렷다.”

(금홍)“아씨, 달밤에 친정댁에나 가시지요.”

(부인)“그렇게 가까우면 작히나 좋겠느냐. 교군을 타고 사흘에 왔으니, 우리가 걸어가려 하면 아마 한 달은 가지.”

(금홍)“저 달은 오늘밤에 서해 바다까지 갈 터이니, 아씨께서는 저 달만 쫓아가시면 오늘밤에 서울이야 못 가겠습니까.”

(부인) “하하하, 너는 주둥이를 빵긋하면 고따위 소리만 나오느냐. 내가 친정에 있을 때는 그런 소리를 듣기 좋아하여서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도록 하였으나, 이 댁에 와서는 누구 듣는 때에 그런 소리를 하면 너를 버릇없는 것으로 알 터이니, 내 모양이 수통치 아니하냐. 오냐, 아무도 없을 때는 아무 소리를 하여도 계관없다. 내가 근심이 있을 때에 네 말을 들으면 근심을 잊는다.”

(금)“상전부모라 하니, 쇤네가 아씨를 부모와 같이 믿는 고로 버릇없이 응석도 많이 하였으니, 이후에는 그런 일이 있거든 꾸짖으시든지 때리시든지 하여줍시오.”

(부)“하하하, 옆 찔러 절을 받는다더라마는, 꾸짖어달라 때려달라 하는 년은 너밖에 없겠다. 오냐, 네가 나를 부모같이 믿는다 하니 그 마음 변치 말고 있거라. 나는 이 댁에 와서 고생을 하든지 호강을 하든지 내 팔자이어니와, 너는 팔자에 없는 고생을 하니 불쌍하다.”

(금)“쇤네같이 펄펄 나다니는 년이야 근심이 되는지 고생이 되는지 무엇을 지내겠습니까마는, 아씨께서는 근심이 있든지 고생을 하시든지 홍참의 댁 건넌방 한 간 속에만 들어앉으셨으니 오죽 갑갑하시겠습니까.”

부인이 귀로 금홍의 말을 들으며 눈으로 달을 쳐다보며 말 없이 앉았다가 치마끈을 들어 눈을 씻으니, 금홍이가 하던 말을 그치고 마주 낙루하다가 부인 앞으로 다가앉으며 부인을 위로한다.

(금홍)“아씨, 그렇게 설워하지 맙시오. 이 앞에 좋은 때가 많습니다.”

(부인) “언제가 좋은 때란 말이냐.”

(금)“이애, 꿈 같은 말도 한다. 사십이 못 된 마님이 늙어 돌아가시려면 나는 그 동안에 늙지 아니하느냐.”

(금)“젊으신 때에 고생을 좀 하시다가 노래에 팔자 좋게 지내시면 좋지요.”

(부)“이 고생을 하면서 늙도록 살아 무엇하게. 나는 마님도 마님이어니와 제일 작은아씨는 얄미워 못 살겠다.”

(금) “글쎄 말씀이올시다. 이 댁 작은아씨는 아마 여우가 되다가 사람이 되었지, 나이 열한 살에 눈치는 어찌 그리 빠르던지. 귀신이 무엇을 먹고 사누. 고런 것을 아니 잡아가니…….”

(부)“요년, 목소리 좀 나직나직 하여라. 안방에 들릴라.”

(금)“그 소리 들리면 맞아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쇤네도 여기서 볶여 말라죽지 말고 진작 맞아죽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인과 금홍이가 서로 사정을 말하면 서로 위로를 하느라고 밤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는데, 안방 뒷마당에서 건넌방 뒤로 돌아오는 모퉁이에 달빛 없는 지붕 처마 그림자 밑에서 개가 컹컹 짖는다.

“이 개 이 개, 이 빌어먹을 개 들어가거라. 왜 따라나와서 짖느냐.”

하면서 은근히 개 쫓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는 그 집 작은아씨의 목소리라. 부인과 금홍이가 깜짝 놀라 벌벌 떨며 수군수군하다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미닫이도 아니 닫고 숨도 크게 쉬지 아니하고 앉았더라.

별안간에 안방에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야단이 난다.

“이애, 서울 재상의 딸은 시어미도 모르고 시뉘도 모른다더냐. 그런 변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애 네 오라비인가 무엇인가 그 빙충맞은 놈은 재상집 사위가 되어 부모·동생에게 욕을 먹이면서 그것을 아내라고 집에 둔단 말이냐. 아망위는 부마가 되었어도 기를 펴고 지냈단다. 오장육부가 남과 같이 있는 자식 같으면 그런 아내는 당장 교군을 거꾸로 태워서 쫓아보내고 사당에 고유하고 다시 장가를 들겠다. 너의 오라비 댁인가 태상노군의 딸인가 그것은 서울 재상의 딸이나 되는 고로 시어미와 시뉘를 몰라보려니와, 금홍이란 년은 재상집 종년이라고 시골 양반은 제 발샅의 때만치도 몰라 본단 말이냐. 이애, 사랑에 나가서 너의 아버지 여쭈어라. 금홍이란 년을 때려죽이겠다. 원주 사는 홍참의가 아무리 대단치 아니하여도 며느리 종년에게 그까짓 욕은 아니 먹을 터이다.”

하며 악을 쓰는 소리가 나더니 안마당에서 징 박은 신을 신고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나는데, 홍참의 딸이 홍참의를 부르러 나가는 모양이라.

금홍이가 발바닥으로 살짝 나가더니 사랑방 옆에 숨어 서서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것은 홍참의 딸이라.

“남순이, 왜 나왔느냐?”

하는 것은 홍참의 목소리라.

(남순)“어머니가 금홍이란 년을 때려 죽인댔어요.”

(홍참의)“금홍이를 왜 때려 죽인단더냐.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때려죽이 나!”

(남)“그년이 어머니더러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하고, 날더러 여우 되러 가다가 사람 되었다 하며 별소리를 다하여요.”

(홍)“그럴 리가 있느냐. 어서 들어가서 자거라.”

(남)“에그, 아버지두 참……. 내 귀로 들었는데…….”

(홍)“그래, 금홍이가 너의 어머니더러 어서 죽으라 하고, 너더러 여우 같다 하더냐?”

(남)“언니가 금홍이를 데리고 건넌방 툇마루에 앉아서 말하는 것을 내가 뒤꼍 모퉁이에서 들었소. 더 오래 서서 들었더면 별소리가 많았을 터인데, 그 못된 개가 딸라 나와서 오동나무를 쳐다보고 짖기 때문에 내가 개 쫓는 소리를 듣고 언니와 금홍이가 방으로 뛰어들어갔어요.”

(홍)“아서라, 이후에 다시는 남의 말 엿들으러 다니지 마라. 계집아이가 그리하면 사람 못 되느니라. 오냐, 금홍이란 년, 그년 고약한 년이다. 내가 내일 아침에 그년 불러 꽤 꾸짖겠다.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

(남)“어머니가 아버지 여쭈라셔요.”

(홍)“오냐, 밤들었다. 네나 들어가 자거라.”

(남)“아버지도 들어가셔요.”

(홍)“에고 고년, 들어가라 하면 얼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왜 바득바득 조르고 섰느냐 나이 열한 . 살이나 먹은 것이 저렇게 미거하여 무엇에 쓴단 말이냐.”

하면서 달그림자가 은은한 방 속에서 남창 미닫이를 열어놓고 가만히 앉아서 담배만 먹는다.

남순이가 핀잔을 보고 홀짝홀짝 울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어머니 되는 김씨부인더러 홍참의 하던 말을 낱낱이 말하니, 김씨부인이 그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야단을 친다.

(김)“이애, 만만한 년은 며느리에게 욕을 먹고 며느리 종년에게 악담을 들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구나. 오냐, 그만두어라. 우리 모녀 다 없어지면 홍씨댁이 잘될 터이다. 팔자가 오죽 사나운 년이 남의 후취댁이 되었겠느냐. 남순아, 너도 진작 뒈지거라. 너도 여북 팔자가 사나와서 남의 후실의 딸이 되었겠느냐. 네가 복을 많이 타고났을 것 같으면 남의 전설 마누라의 며느리 종님이 되었을 터이다. 너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의좋은 초취댁 죽을 때에 왜 돌아가시지 아니하였다더냐. 그래 역성을 하더라도 분수가 있지. 초취댁 며느리 종년까지 역성을 들고, 나 같은 년은 전실 며느리에게 소리 없는 총을 맞아죽어도 알은 체하여 줄 사람도 없을 터이로구나. 우리 모녀만 죽으면 이 집안에서 몇 사람이 춤을 출지 모를 것이다. 남순아, 너 주고 나 죽자. 그런 인생들이 살아서 무엇한단 말이냐. 오냐, 그만두어라.

오늘밤 내로 너를 쳐 죽이고 나까지 죽어서 여러 사람의 소원이나 풀어주겠다.” 하더니 남순이를 쾅쾅 두드리며 독살풀이를 하니 온 집안 사람들이 안방으로 구름같이 모여드는데, 홍참의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안으로 들어오다가 보니 금홍이가 안마당 섬돌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금) “마님, 작은아씨를 때리시지 말고 쇤네를 죽여줍시오. 쇤네가 죽을 때가 되어서 죄를 지었습니다. 철모르는 쇤네는 말을 함부로 하였거니와, 건넌방 아씨에게는 아무 말도 아니하셨으니 죄 있는 쇤네만 죽이시고 아씨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두시지 맙시오.”

하면서 빌고, 건넌방에서는 모기 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나는데, 그 우는 사람은 홍참의 며느리라.

본래 홍참의 초취부인의 성은 박씨니, 소생 아들 하나가 있고, 후취부인의 성은 김씨니 소생 딸이 하나가 있는지라.

초취부인 소생 아들의 아명은 백돌이요 관명은 철식이니, 일곱 살에 그 어머니가 죽고 여덟 살에 계모가 들어오고, 열네 살에 장가를 드니 신랑 신부가 나이 동갑이데, 그 신부는 서울 사는 이판서의 딸이라.

백돌이가 자랄 때에는 계모 솜씨에 고생도 많이 하였으나, 장난 몹시 하기로 유명한 아이라. 고생이 되는지 무엇이 되는지 모르고 자라나는 중에 도리어 그 계모가 성이 가시어 못 견딜 때도 많이 있었더라. 백돌이 자랄 때에 계모가 백돌이를 미워하던 마음이 일년 삼백육십 일에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모인 것이 치악산같이 쌓였을 터이나, 무형무적한 사람의 마음이라 남의 눈에 보이지는 아니하였더라.

백돌이 장가든 후에는 그 계모가 백돌이를 미워하던 마음으로 백돌의 아내에게 예물 주듯 옮겨주었더라.

금홍이는 이씨부인이 친정에서 데리고 온 종인데, 열 살부터 부인을 따라 와서 일곱 해가 되었는데, 이씨부인이 받는 미움을 같이 받고 있는 터이라.

이씨부인과 금홍이와 둘이 앉으면 안방 식구의 이야기를 하고, 안방 식구는 건넌방 식구의 흉만 하던 터이라.

그 날은 금홍이가 절명일이던지 말을 함부로 하다가 남순의 귀에 들어가서 그 야단이 났더라. 금홍이는 죽기를 결심하고 김씨부인에게 대죄하나 김씨 부인이 금홍이는 본체도 아니하고 남순이만 때리다가 홍참의를 보더니 별푸념을 다 하며 독살을 부린다.

홍참의가 두 볼이 축 처지도록 성이 나서 들어오더니 안방 한가운데에 장승같이 우뚝 서서 김씨부인을 물끄러미 보는 모양이 벼락이나 내릴 듯하더니 무슨 생각을 하고 눙치는지,

(홍) “허허허, 마누라는 종작이 없는 사람이자, 남순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고 저렇게 때려…… 며느리가 잘못하거든 며느리를 꾸짖고, 금홍이가 잘못하거든 금홍이를 꾸짖든지 때리든지 할 일이지, 어린 남순에게 분풀이를 하니 참 이상한 일이요. 남순아, 매맞지 말고 이리 오너라.”

하며 남순이를 부른다.

김씨부인이 남순이를 미워서 쳤던지 귀애서 쳤던지 아프기는 일반이라.

남순이가 홍참의 앞으로 달려들며 아버지를 부른다.

홍참의가 남순이를 데리고 안방 미닫이 앞으로 가서 앉더니 남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홍) “남순아, 울지 마라. 너의 어머니에게 맞은 매는 아프지 아니하니라. 허허허.”

하면서 실없는 소리만 하는데,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독살이 한층 더 나는 모양이라.

하면서 실없는 소리만 하는데,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독살이 한층 더 나는 모양이라.

(김씨부인) “ 여보, 그러지를 말으시오. 그래, 어미에게 뒈지도록 매맞은 남순이는 아프지 아니하고, 시어미더러 욕하고 악담하던 며느리가 내 소리이에 속이 아플까 염려가 되나 보구려. 내가 며느리에게 무엇을 그리 심히 굴어서 그런 소리를 하시오? 그래, 내 속으로 나온 자식은 매를 맞아도 애처로운 마음이 조금도 없이 그 어린 남순이더러 악담을 하고 있단 말이요. 남순이가 시집을 가서 며느리 볶는 시어미를 만나서 매보다 더 아프로 쓰린 꾸지람만 듣고 고생을 하면 영감 속이 시원하겠소. 나는 우리 남순이를 시집보낼 때에 계모 시어머니 있는 전실댁 며느리 될 곳으로 시집보내겠소. 남의 전실댁 며느리만 되면 계모 시어미더러 욕을 하기로 계관이 있소 ……. 요년 금홍아, 너는 무슨 요약으로 뜰 아래서 빌고 있느냐. 너의 아씨 같은 상전을 두고 아무 짓을 하기로 겁이 무슨 겁이냐.”

하면서 야단을 치는데, 홍참의는 본래 실없는 쇠 잘하는 사람이라. 김씨 부인의 하는 말은 들은 체도 아니하고 남순이를 데리고 허허 웃으면서 실없는 소리만 하다가 다시는 금홍이를 꾸짖는데 호령이 서리 같다.

“요년 금홍아, 네가 무엇이라, 하였누. 너 같이 요망한 년이 언감생 코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내일 밝은 날은 조년을 대매에 쳐죽일 터이나, 조년 어디로 달아나지 못하게 꼭 붙들어 두어라.”

하면서 윗목에 그뜩 들어선 계집종들에게 말을 이르다가 다시 그 종들까지 생핀잔을 주며 호령을 한다.

(홍)“이년들, 너희들은 무엇하러 다 이렇게 들어왔느냐, 무슨 구경 났느냐. 냉큼 나가거라.”

하며 종들을 내어쫓더니, 그 부인 김씨를 돌아다보며 가만히 하는 말아,

“여보, 남의 눈가림을 좀 하오. 며느리가 그런 일이 있거든 못 들은 체 하고 있다가 나더러만 말할 일이지, 밤중에 야단을 치며 나더러 들어오라 하니 어찌하잔 말이요. 이후에는 금홍이를 쳐 죽이든지 며느리를 쫓든지 하더라도, 이번에도 며느리와 금홍이를 불러서 대강 꾸짖고 그만 용서하여 주오.”

하며 허허허 웃고 하는 말이 솜씨도 있고 풍치도 있는지라. 부인의 성이 풀어졌던지, 그 밤은 다시 아무 일없이 지냈더라.

이씨부인이 그러한 시집에서 날을 보내고 해를 보내는데, 하루 열두 시로 때 마다 죽고 싶으나 살아 있는 것은 남편 하나만 믿고 세월을 보내더라.

김씨부인은 그 며느리를 달달 볶는 솜씨가 날로 늘고, 남순이는 그 어머니 귀에 오라비댁 흉보느라고 속살거리는 솜씨가 날로 늘고, 이씨부인은 고생을 할수록 내외 금슬이 깊어가는데, 그 남편 백돌이가 그 아내를 돌아다보는 체도 아니하면서 마음에만 간절히 불쌍히 여기더라.

하루는 백돌이가 그 부인의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씨부인을 물끄러미 보고 말없이 앉았으니,

(부인) “무슨 걱정이 있소? 왜 잠자코 앉으셨소. 에그, 나도 할 말이 많더니, 대하여 보니 말이 깍 막혀서 한 마디도 아니 나오구려.”

(백) “말을 들으면 젊은 놈이 마음만 상하지 유익한 곳 있소.”

(부인)“에그, 그렇게 마음이 상해서 어찌한단 말이요. 날 생각 마시고 서울이나 가시구려.”

(백)“내가 참 집에 있다가는 점점 마음만 좀스러지고 또 속이 상하여 견딜 수가 없어……어디든지 멀찍이 집안 일을 모르고 지낼 작정이요. 이왕 집을 떠날 터이면 아주 멀찍이 가지 서울은 아니 가서 있겠소.”

(부)“우리 집에 가서 계시면 우리 어머니가 범연히 대접하실 리가 있소.

우리 어머니는 아들도 없이 양자를 하시고,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 뿐인데 밤 낮으로 나만 생각하시던 터에 사위를 만나보시면 오죽 반가와 하시겠소.”

(백)“허허허, 장모도 딸만 아시면 양자 들어온 처남은 고생낱이라 하겠수.”

(부)“우리 어머니께서는 양자한 아들이라도 대단히 귀애하시고 며느리까지도 의뜻이 맞아서 귀애하신다오. 우리 어머니를 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이 다 그러하지, 누가 양자라고 푸대접하고 전실 소생이라고 미워하는 사람이 세상에 그리 흔하겠소.”하면서 눈이 눈물이 가랑가랑하니 백돌이가 그 눈치를 보고 다시 부인을 위로 한다.

“여보, 과히 근심말고 지내오. 사람이 살아 있으면 한때를 봅니다.”

부인이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가 그 남편의 처음 하던 말을 듣고자 하여 다시 웃는 낯으로 말을 묻는다.

(부인)“여보, 내 걱정은 마시오. 대장부 몸이 되어 처자에게만 구구한 마음이 있으면 무슨 사업을 하시겠소.”

(백)“허허허, 개화군의 딸이 다른 것이로구. 무슨 사업을 하는니 못하느니 하는 소리가 참 제법인걸. 나도 어서 신학문 공부나 좀 하여야 마누라에게 업신여김을 아니 보겠구.”

(부)“여보, 여편네라고 업신여겨서 놀림감으로 말씀하시지 마오.”

(백) “허허허, 놀리기는 누구를 놀려. 두메 구석에서 자라난 사람이 서울 사람을 놀려, 허허허”

웃으면서 부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니, 부인이 마주 방긋이 웃으면서,

(주)“에그, 아무렇게 말씀을 하시던지 듣기 좋소. 내가 시집에 온 후에 오늘같이 마음에 근심 없이 지내본 날이 없었소. 날마다 오늘같이만 세월을 보냈으면 다만 일 년을 살다 죽더라도 소원이 없겠소.”

백돌이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더니,

(백)“여보 마누라, 마누라는 집에서 고생을 참고 있어 보오. 나는 타궁에 가서 공부나 하고 있다가 고국에 돌아오거든 그때는 어찌하든지. 미리 말할 것은 아니나 마누라도 차차 기를 펴고 살살이 있을 터이니 부디 과히 근심마오.” 부인이 그 남편이 타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 하는 말을 듣고 얼굴에 근심하던 빛을 감추고,

(부) “여보시오, 그런 마음 있거든 하루바삐 서울 올라가서 우리 아버지께 말씀만 하면 아버지께서는 당장이라도 치행도 하여 주실 것이요. 몇 해든지 공부하실 동안에 학비도 넉넉히 대어주실 터이니 하루 바삐 떠나시오. 그러나 여기 아버님께서 허락을 하실라구…….”

(백)“허허허, 마누라는 개화한 친정 아버지를 자랑하는 말이오그려. 우리 아버지는 완고의 마음이시니 아들더러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말로만 하실 일이 아니오. 아버님께서는 머리만 깎는 것도 대기를 하시는 터에 그 아드님이 머리 깎고 타국 간다는 말을 들으시면 변으로 아실 듯하여 하는 말이요. 그 하루 삼시로 조석 먹으러 들어오는 것만 보셔도 보기가 싫어 못 견디시는 모양인데…….”

하면서 그 남편의 얼굴을 건너다보니 백돌이가 부인의 얼굴을 마주 건너다보다 서로 기색이 좋지 못하여 마주보며 말이 없다가 백돌이가 먼저 천연한 기색으로,

(백) “여보 마누라, 우리가 젊은 터에 구구한 생각을 둘 것이 아니라, 마누라는 내가 죽고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나는 마누라가 죽고 없는 사람으로 여겨서, 내가 몇 해 만에 고국에 돌아오는지 다시 만나는 날에는 죽었던 사람을 만나보거니 여겼으면 더욱 반가울 터이니 부디 서로 잊고 지냅시다. 내가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더라도 오늘같이 마누라를 생각하면 허다한 염려되는 마음으로 공부에 착심이 되지 아니할 터이니, 나는 내일 우리 집에서 떠나는 길로 부모도 없고 동생도 없고 아내도 없고 미실미가한 단독 일신 같이 마음을 먹고 나설 터이니, 내가 외국에 가서 몇 해가 되든지 편지 한 장 아니 부칠 터이닌 그리 알고 마누라도 내게 편지 부칠 생각을 마오. 옛적에 오기란 사람은 노 나라에 가서 증자의 가르침을 받아서 공부를 하다가 그 모친이 죽어도 분상도 아니하고 공부만 하오니 증자가 오기를 끊으셨고, 그 후에 노나라에 벼슬할 때에 노나라에서 제나라를 치고자 하여 오기로 장수를 삼고 싶으나 오기의 아내는 제나라 여편네라, 노나라 사람이 오기를 의심하니 오기가 그 아내를 죽이고 장수되기를 구하여 제나라를 쳐서 크게 공을 이루었으니, 어진 도덕으로 말할진대 오기를 옳다 할 수가 없으나, 나는 오기를 배울지언정 증자는 배울 마음이 없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 몸과 제 부모, 제 처자, 제 집, 제 재물만 중히 여기고 제 나라는 망하든지 모르는 사람들이라. 제 손으로 제 발등 찍듯이,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나라를 망하여 놓고 분하니, 절통하니, 남에게 천대받기가 싫으니, 먹고 살 도리가 없느니 하면서 저물도록 하는 것은 나라 망할 짓만 하니, 그렇게 미련한 일이 있소. 나는 하늘같이 중한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바다같이 깊이 정든 아내를 잊고 만리 타국에 가서 공부하려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하는 생각에서 나온 마음이요. 내가 타국에 간다 하면 우리 아버지께서는 필경 변으로 여기시고 못 가게 하실 터이니 나는 아버지 모르게 도망질하겠소. 날만 새면 갈 터이니 나 없는 동안에 부디 몸조심하여 잘 지내오.”

남편이 큰 뜻이 있어서 만리타국에로 공부하러 간다 하는 말을 듣고 좋은 마음도 한량없고, 자기는 남편 떠난 후에 계모 시어머니에게 무슨 설움을 받든지 그 설움을 알아줄 사람도 없는 것이 더욱 가련한 노릇이라. 그러나 남편에게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아니할 작정으로 남편의 위로될 말만 한다.

(부)“말씀은 다 좋은 말씀이오마는, 사람이 말과 일이 같기가 쉽지 못합니다. 오기 같은 영웅이 세상에 또 있기가 쉽소. 지금 하시던 말씀에는 집을 잊고 나라를 위하겠다 하시면서 나더러 조심하여 잘 지내라 하시니, 오기 같은 영웅이야 노나라에 공부하러 갈 때에 그 아내를 그렇게 못 잊어 하였을 리가 있소. 대장부가 일구이언은 못하는 것이니, 부디 날 생각 마시고 공부 성 취한 후에 고국에 돌아오시오. 나는 집안에는 여간 고생되는 일이 있더라도 고생을 낙으로 알고 있을 터이니, 내 걱정은 조금도 마시오.”

그렇게 서로 위로하며 작별을 하는데, 초저녁부터 시작한 말이 닭이 두세 홰를 울도록 그칠 줄을 모르더라.

금홍이는 건넌방 웃간에서 헛잠을 자고 드러누워서 소리 없는 눈물이 베개에 젖었으니, 그 눈물은 제 설움이 아니라 저의 아씨를 불쌍하여 우는 눈물 이러라. 그때 백돌의 내외는 달빛 없는 그믐밤에 불도 아니 켜고 앞뒷문 열어놓고 단 둘이 앉아서 내일 할 이별을 오늘밤에 미리 하느라고 이야기로 밤을 새우는데 백돌이가 , 말로는 그 아내를 조금도 생각지 아니할 듯이 큰 소리를 하나 마음에서 솟아나는 인정이야 어디로 갔을 것이 아니라, 연연한 생각이 한량없다.

부인은 그 남편이 집에 있어서 마음을 상하기보다 활발한 마음으로 외국에 공부하러 간다 하는 것이 실상 좋아서 간절히 권하였으나, 새는 날은 남편을 이별하는 날이라. 이별의 회포는 오장이 녹는 듯 스는 듯하여 이 밤이 새지 말고 백년 같이 길었으면 좋을 듯이 여기나, 세상 만사가 사람의 소원대로 되는 것 이 아니라. 그날 밤은 다른 날 밤보다 별로 짧은 것 같다.

적적한 깊은 밤에 안방 식구는 잠이 깊이 들었건마는 이씨부인은 안방 식구가 말이나 엿들으러 나왔을까 의심이 나서 한시 동안에 몇 번씩이나 마당을 내다 본다.

가을 밤 길다 하던 옛글도 거짓말이라. 어느 틈에 이 밤에 새었던지 주먹 같은 샛별은 동편 하늘에 높이 올랐는데, 하늘에 총총하던 자디잔 별들이 하나씩 둘씩 숨바꼭질하듯이 숨어 없어지고 밝은 기운이 차차 생기는데 그 빛은 오늘날 태양빛이라. 백돌이가 먼동 트는 것을 보더니,

(백)“여보, 날이 새었소. 나는 사랑으로 나가 있다가 아침 식후에 어디로 놀러 간다 하고 그 길로 떠날 터이니 그리 알고 잘 있으오.”

하면서 일어나서 사랑으로 나가는데, 부인이 그 남편 나가는 것을 보며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가 쌍창 미닫이 문지방 위에 고개를 푹 수그려 엎드리더니 소리 없이 우는데, 정신을 잃었던지 날이 활짝 밝도록 모르고 있더라.

“아씨 아씨, 일어납시오. 앞뒷문을 열어 놓고 여기 이렇게 계시면 못씁니다. 안방 마님이 일어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일어납시오. 문 닫겠습니다.

하면서 부인을 부르는 것은 금홍이라.

부인이 머리를 들어 금홍이를 보다가 앉은 채로 아랫목을 향하여 툭 쓰러지는데, 금홍이는 다 밝은 날 새로이 앞뒷문을 소리 없이 닫고 부인 앞으로 와서 앉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가 아니하고 눈물을 떨어뜨린다.

부인이 누운 채로 고개를 둘러 금홍이를 보면서,

(부인) “이애 금홍아, 서방님은 타국으로 공부하러 가신단다. 서방님도 아니 계시면 우리가 누구를 믿고 산단 말이냐.”

(금홍)“쇤네도 새벽에 잠이 잠깐 깨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 / 서방님께서 타국에 가시면 아씨께서 섭섭하신 마음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마는 아씨께서는 부디 근심말고 계십시오. 서방님이 이런 시골구석에 계시면 아씨께서 이 고생을 면하실 날이 없습니다. 뜻밖에 서방님께서 만리 타국에 가서 공부를 하신다 하니 서방님 내외분은 좋은 운수가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아씨께서 눈 끔쩍 몇 해 동안만 고생을 참고 계시면 이후에는 좋은 일만 있을 터이올시다. 서방님께서 귀히 되시면 세상 사람이 아씨를 쳐다볼 터이니, 그때는 마님께서도 아씨에게 그렇게 몹시 구시지 못합니다.”

(부)“오냐, 말은 좋다마는 나중 일이 어찌될지 아느냐. 지금 내 처지에 근심을 마자 한들 아니할 수가 있느냐. 이에 금홍아, 늦도록 잔다고 마님께 걱정을 들을라. 어서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일이나 하자.”

하면서 일어나서니, 근심할 새도 없이 분주하더라.

그날 아침에 홍참의 부자가 아침밥을 먹으러 들어왔는데 본래 홍참의 집 가 규가 그러하던지, 홍참의가 밥을 먹으려면 김씨부인의 고부와 백돌의 남매가 안방에 모여 있어서 홍참의 밥 먹는 것을 보다가 홍참의가 밥을 먹고 나간 후에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는데, 홍참의는 말이 드문 사람이나 밥상을 받으면 잔소리를 하는 위인이라.

(홍)“이애 백돌아, 너는 요새 글 한 자 아니 읽고 왜 편편히 노느냐?”

(백)“요새는 좀 보는 책이 있습니다.”

(홍)“응, 보는 책이 무엇이란 말이냐. 쓸데없는 책 보지 말고 다만 한자를 보더라도 경서를 읽어라. 그래, 네 소위 본다는 책은 무엇이냐?”

(백)“해국도지를 얻어다가 봅니다.”

(홍)“해국도지, 해국도지, 해국도지가 무엇이냐, 책을 보려 하면 우리 집에도 볼 만한 책이 그득한데, 해국도지를 빌려다가 본단 말이냐. 이애, 너도 개화하고 싶으냐. 어, 저 자식이 서울 몇 번을 갔다오더니 사람 버리겠구.” 하면서 그 부인 김씨를 건너다보니 김씨부인이 홍참의를 마주보며,

(김)“서울로 장가들었다가 그만한 처가덕도 못 보아서 쓰겠소.”

(홍)“서울 가서 장가들었다고 난봉이 되려면 서울 사는 사람들은 다 난봉이 되게……. 이애 백돌아, 집안에 못된 책 얻어들이지 말고 오늘부터 맹자를 읽든지 논어를 읽든지 하여라. 사람이 제 마음만 단단하면 어디를 가기로 계관이 있겠느냐마는, 너같이 중무소주한 것이 서울이나 자주 가면 마음이 들떠서 못 쓰는 법이니, 다시 서울 가지 마라. 아비의 말을 아니 들으면 집이 망하는 법이라. 조심하여라.”

(김)“에그, 영감은 별말씀을 다 하시구려. 집이 망하기는 왜 망해요. 개화한 아들 있겄다, 개화한 며느리 있것다, 집이 잘되지 망할 리가 있소. 나는 벌써 개화한 며느리 덕을 많이 보았소. 욕을 아니 먹을까, 악담을 아니 들었을까……여보, 개화한 며느리가 아니면 무슨 인기에 시어머니더러 욕하고 악담하겠소?”

하면서 입은 동으로 내리 실그러지고 눈은 서로 모두 떠 홍참의를 보는데, 검은 동자가 반은 웃눈까풀 속으로 들어갔다.

홍참의 잔소리가 좀더 나올 터이나, 김씨부인의 며느리 말을 내는 것을 듣고 민망한 마음이 생겨서 다시 말 없이 사랑에 나가더라.

아랫목에는 김씨부인이 남순이와 겸상밥이요, 그 옆에는 백돌의 밥상이요, 윗목에는 이씨부인이 밥상을 받고 앉았는데, 아무도 숟가락을 아니 들었으나 백돌이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범 본 놈이 창구멍 틀어막듯이 황황히 밥을 먹으니, 그렇게 급한 것은 어서 먹고 서울 길 떠나려는 마음이라. 그 마음 집작할 사람은 윗목에서 밥상 받고 앉은 이씨부인과 마루에서 왔다갔다 하는 금홍이라.

백돌잉가 숟가락을 치우고 선뜻 일어나더니 이씨부인을 언뜻 건너다보며 밖으로 나아가니, 이씨부인이 구슬 같은 눈물이 똑똑 떨어지며 고개를 윗목으로 돌이키고 앉았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여 일어나 나가더니 건넌방으로 건너가며 스르 죽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이애 금홍아, 내가 별안간에 가슴이 아파서 밥 먹을 수가 없다. 네가 들어가서 내 밥상 좀 치워라.”

하면서 건넌방으로 들어가다가 안중문간으로 나가는 백돌이를 돌아다보는데, 그 소식을 귀신이 전하였든지 백돌의 마음이 켕겨서 그러하든지, 백돌이가 선뜻 돌아다보다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제 가면 언제 볼지 모르는 이별이라. 그러한 이별이었으나 이별도 기를 펴고 할 수 없는 사정이라. 백돌이가 주저주저하다가 헛기침을 두 번을 하며 쑥 나아가니, 이씨부인이 건넌방 지게문고리를 붙들고 정신 없이 중문간만 바라보고 섰는데, 그 남편은 보이지 아니하고, 안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잠깐 들리거늘, 이씨부인이 돌아다보니 안방 미닫이에 붙인 유리에 시어머니 이마가 꼭 붙어서 내다본다. 며느리가 제 남편에게 미쳤느니, 아들이 그 아내에게 허기를 졌느니 하며 신이 나서 흉보는 시어머니 목소리가 귀에 펄펄 들어오나, 이씨부인이 그날은 그보다 더한 소리를 듣더라도 그까짓 소리로 근심이 될 것은 조금도 없고 정신이 그 남편에게만 있더라. 빈방에 혼자 있어 얼빠진 사람같이 우두커니 앉았다가 혼잣말이라.

“날개가 돋쳤으면 활활 날아 좇아가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백 리 가는 길에 동행 없이 가느라면 고생인들 오죽 될꼬. 원주에서 서울만 가려 하여도 그렇게 고생이 될 터인데, 만리타국을 가려 하면 그 고생이 어떠할꼬. 남편이 큰 뜻을 먹고 만리타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 하니 아내 된 이 내 마음에 좋기도 한량없건마는, 며느리를 원수같이 달달 볶는 계모 시어머니 솜씨에 내 목숨이 살아 있다가 남편의 얼굴을 다시 볼까.”

이씨부인은 그 남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백돌이는 남자의 마음이라. 안중문간에서 그 부인을 돌아다볼 때까지는 발길이 차마 돌아서지 못하 였으나 문밖으로 나서면서부터 그 부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없고 외국으로 가려는 경륜에만 골똘하더라.

떠난 지 수일만에 서울로 올라가서 그 처가로 들어가는데 그 처가는 집도 큼직하고, 문간에 하인 낱이나 있는 터이라. 앞뒤 모양새만 보는 사람 같으면 그런 집에 들어갈 때에 길목이나 빼고 새 버선이나 가아 신고 들어갔을 터이나, 활바랗고 숫기좋은 백돌이는 황토 묻은 길 짚세기 신은 채로 서슴비 아니하고 대문간으로 들어가는데, 비록 짚세기는 신었으나 그 집에는 별상 행차나 들어노는 듯이 온 집안이 떠들더라.

계집종들은 달음박질하여 안중문간으로 들어가며,

“마님 마님, 원주 새서방님 오십니다.”

하는 소리가 백돌의 귀에까지 들린다. 하인청에 있던 하인들은 백돌의 앞을 질러서 절을 꾸벅꾸벅하며,

“소인 문안드립니다.” 하더니, 일변으로 큰사랑 마당으로 앞서 들어가며 원주서방님 오신다고 노문을 놓는다. 백돌이가 큰사랑 마루 끝에 짚신을 벗어 놓고 황토가 뚝뚝 떨어지는 발로 큰 사랑으로 들어가서 주인 이판서에 절을 하니 주인 이판서가 그 사위를 그렇게 대단히 귀애하던지, 그 사위가 앉기도 전에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부인 박씨와 느런히 앉아서 사위를 데리고 이판서 내외가 돌려가며 말을 묻는다.

(이)“이애 홍철식아, 너의 아버지께서도 나같이 백발이 나셨느냐?”

(홍)“…….”

(박씨부인)“여보게, 자네도 딱한 사람일세. 자네가 오겠다고 편지만 하면 서울서 교군을 보냈지. 그 먼데를 걸어왔단 말인가. 그래 내 딸도 잘 있나. 자네가 하인도 아니 데리고 왔으니 내 딸이 편지도 못 부쳤겠네그려.

이 사람, 자네가 편지 좀 가지고 오기로 어떠할 것 무엇 있나. 아무리 없으니 말일세마는, 요새는 내 딸이 자네 안부모에게 귀염을 좀 받나”

하면서 눈물을 씻는다.

이판서가 그 부인의 모양을 보더니 또한 그 딸의 고생사는 생각을 하고 마음이 좋지 못하여 남창 미닫이를 열고 안석을 문지방 앞으로 바싹 다가 놓더니 머리를 들어 남산을 내다보며 말없이 담배만 먹고 앉았으니, 홍철식이는 그 장인 장모의 모양을 보고 일변으로 무안한 생각도 있고, 일변으로 장인 장모가 불쌍한 생각도 있고, 일변으로는 자기 집 가간사가 남에게 부끄러울 만한 일이니 홍철식의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터이라. 더구나 그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심히 구는 일로 며느리의 친정 부모가 가슴이 쓰려 하는 모양을 보고 무엇이라 말하리요.

그러나 그 어머니는 홍철식이도 원망이 철천하던 계모요, 그 아내는 홍철 식이가 정이 찰떡같이 들었던 아내라. 원주서 서울로 떠나올 때는 외국으로 유학하러 가려는 생각만 골똘한 중에 아내를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오히려 적더니, 그 처가에 와서 장인 장모의 모양을 보고 홀연히 없던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그 어머니가 기를 버럭버럭 쓰며 극성을 부리던 모양도 눈에 선하고, 남순이가 살살 돌아다니면서 말전주만 하던 일도 눈에 선하고, 그 아내가 밤낮 없이 수심이 첩첩하여 세상에 살아 있는 낙이 없이 지내는 모양도 눈에 선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향한 마음도 간절하다, 부부간에 깊은 정은 영웅 열사가 없는 터이라. 이판서의 내외가 그 딸 생각하는 마음은 일시에 그 사위를 만나보고 생긴 마음이어니와, 홍철식이가 그 아내 생각하는 마음은 운우 무산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마음이라 깊이 솟아나는 정이 부모된 이판서 내외보다 남편된 홍철식의 마음이 더욱 간절하더라.

집에서 이별할 때에는 무슨 마음으로 큰소리를 그렇게 하였던지. 아내를 단념할 듯이 말하였더니 이러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였던가 싶게 생각이 난다. 한 방에 세 사람이 입을 봉한 듯이 말없이 앉았다가 이판서의 부인이 그 사위 대접으로 먼 말을 하는데, 한 사람의 말문이 열리더니 말끝이 연이어서 이판서도 말을 하고, 홍철식이도 말을 하더니, 이판서 내외도 딸 생각을 잊고 홍철식이도 아내 생각을 잊었더라.

홍철식이는 백돌의 관명이라. 백돌이라 나이 사오 세 되었을 때는 원주가 감영도로 있던 옛 세상인데, 그때 강원 감사는 이판서라. 감사가 단구역 마을 홍참의 집에 나갔다가 홍참의 아들 백돌이를 보고 어찌 그리 기이하게 보았던지, 당장에 주인 홍참의더러 하는 말이, 내가 조만한 딸이 있으니 저 아이와 혼인을 정하자 하거늘, 홍참의는 지체가 이판서보다 낮건마는 이판서의 감사 바람에 사돈되는 것을 좋게 여겨서 입이 떡 벌어져서 대답하고 정한 혼인이라 그 후 . 십 년 만에 혼인을 지냈는데, 그때는 갑오경장 이후라. 개화를 좋아하던 이판서는 풀기가 점점 더 생기고, 완고로 패를 차던 홍참의는 먼지가 더욱 폴삭폴삭 나는데, 두 사람끼리 뜻이 맞지 아니하나 십년 전부터 면약한 일이라, 선뜻 받듯이 마지못하여 지낸 혼인이라. 그러나 이판서가 그 사돈에게만 마음이 복잡하였고, 백돌이를 귀해하던 마음은 사위 되기 전보다 십 배나 백 배나 더하여 그 사위를 외국에 보내 공부시키려는 생각이 도저하던 터이라.

뜻밖에 그 사위가 서울 온 것을 보고 아무쪼록 사위를 꾀어서 타국으로 유학시킬 마음이라. 이판서의 생각에는 그 사위를 여간 꾀어서는 아니 들으려니 하고 말을 냅뜨는데, 천리 행용에 묘 한 자리 생기듯이, 세상 이야기를 무수히 하다가 외국에 가서 공부하라고 권하는 말을 하니, 그러한 말은 홍철식의 귀에는 귀신에게 떡 소리 한 것 같은지라. 홍철식이가 대번에 응낙을 하며 그날 그 시라도 치행만 차려 주면 떠나겠다 하니, 말이 그날이지, 시골서 금방 온 사람을 그날이야 어찌 보내리요. 불과 수일에 홍철식이가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러 갔더라.

그때 원주 단구역마을 홍참의 집에서는 날마다 야단이 나는데, 그 야단은 김씨부인의 등살이 아니오 뜻밖에 홍참의 야단이라.

아들이 도망하였다고 하인을 사면으로 늘어놓아서 찾으러 나섰으나 아들의 간 곳을 몰랐더니, 그 후에 그 아들이 서울 갔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전인하여 이판서에게 편지하되, 내 자식놈이 서울 갔다 하니 곧 내려보내라 하였거늘, 이판서가 그 사위를 권하여 외국에 보냈다는 말은 아니하나 또한 오래 숨기지는 못할 일이라. 홍철이가 제 마음으로 일본 간 것같이 말을 만들어서 편지 답장을 하였는데 홍참의가 그 편지를 보다가 편지를 짝짝 찢으며 야단을 친다.

(홍) “왜 이가가 홍가의 집을 망하여 준다더냐. 백돌이가 돈 한 푼 없는 것이 제 장인이 돈을 대어주지 아니 하였으면 제가 어찌 간단 말이냐. 가령 철없는 아이들이 일본 가고 싶다 하였기로, 소위 사돈은 낫살 먹은 것이 철 없는 아이들 꾸짖을 일이지…… 가서 꾸짖지는 아니할지언정 돈을 주어서 가도록 하니, 아비 있는 자식을 사돈이 제 마음대로 못된 곳으로 보낸단 말이냐. 개화한 사람은 그따위 버릇을 한단 말이냐. 이애, 원주 구석에 사는 만만한 홍참의는 세력 좋은 사돈 솜씨에 자식 하나도 못 기른단 말이냐. 이 애 고두쇠야, 네 이 길로 다시 서울 가서 이판서 대감께 댁 서방님 찾아 보냅시사 하여라. 나는 편지하기도 싫다. 네가 가서 이판서 대감을 뵙고 지금 네가 듣고 본대로 한 마디 빼지 말고 말하여라.”

하면서 소리소리 지르고 당장에 서울로 전인하니, 아무리 사랑에서 야단이 났으나 그 야단은 온 집안이 소요한 야단이라. 김씨부인은 그 아들이 집안에 있지 아니하고 일본 간 것을 좋아하는 터이나, 홍참의가 그 사돈에게 틀려서 야단치는 것이 재미가 옥시글옥시글하여 홍참의가 안으로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앉았다가 홍참의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김씨부인) “영감, 영감께서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셨소?”

(홍)“…….”

(김)“영감께서 그런 일을 당해 싸외다. 자식 장가를 들이거든 무엇을 복고 배울 것 있는 집으로 보냈으면 그런 일이 날 리가 있소. 그러나 철없는 백돌이는 책망할 것도 없소. 사돈집에서 그런 법이 있단 말이요. 남의 외아들을 꾀어서 대강이를 깎아서 일본으로 들여보내는 그 심사가 무슨 심사란 말이요. 영감은 아무리 시골 사시고 이판서는 아무리 세력 좋은 재상이기로 명색이 사돈이면 그런 법이 있소. 나 같으면 내 집 종의 자식일지라도 제 어미 아비 모르게 대강이 깎아서 일본에는 못 보내겠소. 에그, 영감께서는 오늘 이때까지 요순같이 착하신 마음만 가지시고 개화 속 사람들의 살얼음판 같은 맹랑한 인심을 모르시고 지내시니 팔자가 좋으셨지요마는, 나 같이 팔자 사나운 년은 참 개화 속 사람들에게 설움이 많이 보았소.”

(홍)“…….”

(김)“영감도 참 딱하시오. 지금 영감께서 사돈에게 그런 업신여김을 보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나는 그 세력 좋은 이판서의 따님을 며느리님으로 모시고 있느라고 속도 많이 썩었소. 내 가슴속에 헤치고 보면 두엄자리가 되었을 것이요.”

하면서 홍참판의 턱 밑에 앉아서 사돈의 푸념을 하는 체 하고 며느리 푸념을 하더니 무슨 할 말이 또 있던지 남순이를 보며,

(김)“이애 남순아, 너는 상놈의 집으로 시집을 가더라도 시어머니 업신여기지 마라. 이애, 내가 양반 며느리를 얻었다가 참 아니꼰 꼴 많이 보았다. 나는 춘천 김생원의 딸로서 팔자 좋아서 양반 좋은 홍참의 집 후취댁이 되어 들어왔더니, 팔자 좀 더 좋으려면 양반의 서슬이 퍼런 이판서의 딸을 며느리 삼았다가 복에 겨워서 며느리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혼자 속만 썩였다. 춘천 김생원의 딸이 서울 이판서 딸에게 설움을 아니 받으면 되겠느냐.”

하며 물 퍼붓듯 하는 말이 어디서 그렇게 나오던지 거푸하는 말 한 마디 없이 새록새록 새 소리가 나오는데, 그 소리가 건넌방에 있는 며느리 귀에 낱낱이 들어간다.

이씨부인이 금홍이를 불러 앞에 앉히고 눈물이 비 오듯 하며,

(부인) “이애 금홍아, 세상에 이런 년의 팔자가 있단 말이냐. 내가 이 방구석에 숨도 크게 못 쉬고 들어앉았는데, 무슨 죄가 있어서 마님이 저렇게 나를 미워하시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은 죽기가 원통하여 아니 죽은 것이 아니라, 서방님의 정을 잊지 못하여 차마 죽지 못하였다. 이애 금홍아, 이제는 내가 믿을 곳이 없구나. 서방님은 언제 오신다는 작정도 없이 만리타국을 가셨으니, 내가 살아 있다가 어느 세월에 서방님을 또 만나 뵈옵겠느냐. 하루바삐 죽어서 이 고생을 아니하면 내 신세가 좋을 것이다. 내가 이 댁에 시집왔다가 내 고생도 많이 하고 부모에게 욕도 많이 먹였다. 이에 금홍아, 너는 대강 아는 일이지, 서방님께서 일본 가시기는 무슨 까닭이라더냐. 서방님 말씀에는 나라를 위하여 공부할 생각으로 가노라 하셨으나, 서방님이 계모어머니에게 설움을 조금만 덜 받으실 지경이면 당초에 집떠날 생각이 날 리가 만무하였을 터이다. 이 댁 마님께서는 그 전실 소생 아드님 한 분 있는 것을 원수같이 여겨서 아드님의 그림자만 보아도 미워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미워하니, 그 아드님된 서방님은 어디로 도망이나 하여 집에 있지 아니할 마음이 있은 지가 오랜 모양이다. 이 댁 마님은 아들을 구박하여 집에서 성을 거느려 있지 못하도록 하여 놓고, 우리 아버지께서 사위를 꾀어 일본 간 것같이 말을 하며 그 미안풀이는 모두 내게만 하니 이런 원통한 일이 있단 말이냐. 우리 댁 대감께서는 나 같은 불효의 딸 하나 두셨다가 사돈 마누라에게 욕만 잡수시구나. 이애 금홍아, 내가 계모 시어머니께는 다섯 해를 볶여 지냈으나 시아버니께서는 나를 귀애하시는지 미워하시는지 모르고 지냈더니, 오늘은 시아버니께 미움을 받나보다. 이 댁 영감마님께사 사돈에게 그렇게 틀려 화를 내시니, 그 미안이 어디로 가겠느냐, 죽을 년은 나뿐이다. 이애 금홍아, 나는 오늘밤 내로 죽어서 세상을 모를 터이니, 너는 이 댁에서 고생하고 있지 말고 어디든지 달아나서 팔자 좋게 잘 살아라.”

금홍이가 부인의 말을 다 못 듣고 눈물이 비 오듯 떨어지며,

(금) “아씨, 아씨께서 참 돌아가실 마음이오니까. 맙시오, 그런 마음 두시지 맙시오. 전정이 만리 같은 아씨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씀이 웬 말씀이오니까. 만일 아씨가 돌아가시면 아씨께서는 근심 없이 저승으로 가시려니와, 친정댁 마님께서는 무남독녀를 금옥같이 길러내셨던 그 따님이 자결하여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시면 그 마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가슴을 캉캉 두드리고 진지 몇 끼만 아니 잡수시면 마님께서도 돌아가시기가 쉬운 일이 올시다. 가령 돌아가시지는 아니하더라도 일평생 한이 되어 자나깨나 가슴이 아플 지경이면 돌아가시는 아씨 신세만 못하실 터이올시다. 맙시오 맙시오, 돌아가실 생각을 하시지 맙시오. 부모의 은혜를 갚지는 못할지언정 부모의 한될 일을 장만하여 드릴 수야 있습니까. 대감께서는 남정의 마음이 시니 일시에는 비창하시더라도 대범하신 마음이라, 오래되면 잊으실 터이오나 마님께서는 세월이 갈수록 그 따님 생각만 하실 것이니, 아씨께서 그런 어미를 잊으시고 어찌 돌아가십니까. 근심을 하셔도 아씨께서 하실 일이요, 고생을 하셔도 아씨께서 하시는 일이 옳소이다. 아씨 아씨, 아씨께서 참 돌아가실 터이오니까. 참 돌아가실 터이면 쇤네도 따라 죽겠습니다.”

하면서 폭 엎드러지더니 기가 막혀 우는데, 나오는 소리를 억지로 삼키고 흘흘 느끼는 소리만 난다.

(부)“이애 금홍아, 울지 말고 일어나가라. 네가 저러하면 내가 마음을 더욱 진정할 수가 없다. 오냐, 염려 마라, 네 말을 들으마, 내가 꼭 죽기로 결심하였더니, 네 말을 듣고 생각하니 죽기도 어려운 처지로구나. 이애 금홍아, 일어나거라. 네나 내나 타고난 고생이니 억지로 면하려면 되겠느냐. 내가 오늘부터는 이 설움보다 더한 설움이 있더라도 참고 있어보마. 살아 있으면 우리 어머니를 만나 뵈올 날도 있을 것이요, 서방님도 만나 뵈올 날도 있을 터이니, 고생을 주리 참듯 참아보자. 내가 우리 어머니를 뵈옵든지 서방님을 뵈옵든지, 네가 나로 인연하여 못할 고생 없이 하였다는 말을 하고, 네 몸 하나는 어떻게 하여 주든지 내 마음껏 하여 주겠다.”

하면서 부인이 자기의 마음만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금홍이까지 위로하고 달래더라.

부인과 금홍이가 아무 고생이라도 참고 세월을 보내자는 작정이라. 부인이 근심하면 금홍이가 위로하고, 금홍이가 근심하면 부인이 위로하려 서로 마음을 붙이는데, 세월이 갈수록 고생은 점점 더하더라.

본래 홍참의는 그 며느리를 불쌍하게 여기는 터이라. 그 후취부인이 방정을 떨 때마다 홍참의 마음에 김씨부인이 너무 심한 줄로 알고 있으나, 만일 홍참의가 며느리 역성하는 모양을 보이든지 며느리를 귀애하는 모양을 보일 지경이면 김씨부인이 세상에 다시없는 방정을 떨며 그날부터는 집안이 더욱 난가가 될 모양이라. 그런 고로 김씨부인이 무슨 방정을 떨든지 홍참의가 들은 체도 아니하던 터이라. 홍참의가 그 후취부인의 잘못하는 것을 그렇게 아나, 내외 금슬은 유명히 좋은 터이라.

후취부인에게 그렇게 정이 있으면 전취 소생 아들은 잊을 듯하나 그렇지도 아니한지라. 그 아들은 양대 독자인 홍참의가 끔찍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던 터이라. 백돌이 어디를 가든지 날이 저물도록 들어오지 아니하면 문에 의지하여 기다리던 터이라.

그랬던 터에 그 아들이 어디 간다는 말이 없이 일본으로 도망하여 갔다는데 그 장인이 돈을 주어 보낸 것을 홍참의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지 못하 였으나 본래 이판서는 , 개화를 좋아하던 사람이요, 젊은 사람을 보면 공부하라 권하기 잘하던 사람이라. 이판서가 아무리 그 사위가 일본 간 것을 모른다 하기로, 홍참의가 어찌 곧이들을 리가 있으리요. 홍참의 마음에는 그 사돈이 백돌에게 편지하여 서울로 불러다가 일본으로 보낸 줄로만 알고 사돈을 원수같이 알고 있는데, 그날부터는 그 며느리까지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눈치 빠른 김씨부인이 그 눈치를 알고 밤낮 속살거리며 며느리의 흉만 본다.

홍참의 마음에는 고두쇠가 서울 가서 자기가 야단치던 모양을 다 말하면 이판서가 백돌에게 편지하여 돌아오도록 주선하려니 여기고 있는 터이라.

며칠만 되면 고두쇠가 서울 들어가고, 며칠만 되면 이판서의 편기가 일본 동경 가고, 며칠만 되면 백돌이가 도로 서울로 오고, 또 며칠만 되면 백돌이가 원주로 내려오려니 여기고 있더라.

고두쇠가 원주서 떠난 지 이틀만에 서울로 들어가서 이판서 집으로 들어 가는데, 하인청에 늘어앉았던 하인들이 고두쇠 오는 것을 보고 무더기 인사가 간다.

(하인들)“장서방, 오시오.”

(하)“장서방, 평안하시오.”

(하)“장서방, 요새는 서울 자주 다니구려.”

(하)“장서방, 왜 또 올라오시오.”

그렇듯 여러 사람의 인사하는 소리가 여간 놈은 정신차릴 수가 없이 들어 오는데, 고두쇠는 미처 인사 대답할 새도 없이 호들갑을 부리면서 홍참의 댁에 야단한 이야기를 하면서 큰사랑 마당으로 들어가니, 이판서 부인은 어찌 몹시 놀랐던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몸이 벌벌 떨려서 이판서 들어오기만 기다리다가 갑갑증이 나서 신랑으로 계집종을 내보내는데, 이판서는 무슨 편지를 쓰는지, 고두쇠가 문안을 하려고 사랑뜰 아래 우두커니 섰으나 불러보지 아니하고 한참 동안을 세워두더니, 편지를 다 썼던지 고두쇠를 불러보니, 고두쇠가 홍참의 야단치던 몇 갑절을 보태서 말을 하였는데, 이판서는 그 말이 귀에 들어가는지 아니 들어가는지, 한편으로 고두쇠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방에 있는 사람을 대하여 무슨 말을 한다.

(이) “이 사람, 자네 아우가 몇 살 되었나?”

“…….”

(이)“어서 외국이나 보내서 공부나 시키게.”

“…….”

(이)“자네 어르신네가 아니 보내시거든 몰래 도망이라도 시키지. 완고의 늙은이는 다 어서 죽어야 나라가 되지, 쓸데없이 오래 살아서 젊은 사람에게까지 해가 적지 아니하여……. 어, 내가 실체하였네. 자네 어르신네 말을 하다가 그런 소리를 하여서 되었나……꼭 자네 어르신네를 두고 한 말이 아닐세. 나부터 완고이니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은 하루바삐 죽고 없어야 나라가 아니 망하느니…….”

그런 말을 하다가 새로이 미닫이 밖을 내다보며,

(이) “이애 고두쇠야, 네가 무슨 일로 서울을 또 와.”

(고)“…….”

(이)“그래, 너의 댁 영감께서 무엇이라 하셔. 허허, 너의 댁 영감은 딱히 말씀도 많이 하신다. 너의 댁 새서방님이 일본으로 가시든지 조선으로 오시든지 내가 알 까닭이 있느냐. 나더러 너의 댁 서방님을 찾아보내라 하시더라 하니 너의 댁 영감이 못 찾으시는 것을 내가 어찌 찾는단 말이냐.

그래, 너의 댁 서방님이 참 일본 가셨다느냐. 어, 그것 맹랑하구. 젊은 아이들의 싹이 저러해야 쓰겄다.”

하면서 미닫이를 툭 닫더니 다시는 내다보지도 아니한다. 가령 홍참의가 서울 와서 해거를 하더라도 이판서가 눈도 깜짝거리지 아니할 사람이라. 고두쇠가 전갈 하인 되어 쓸데없이 호들갑을 피우다가 뒤통수를 툭툭 치고 원주로 내려가며 생각한즉, 홍참의 성품에 그 사돈에게 열이 나서 만만한 이놈 더러 심부름을 잘하였느니 못하였느니 하면서 분풀이는 내게다 하느라고 볼기를 죽도록 맞을 지경이면, 원주서 서울까지 안팎 네 번을 다녀와서 노독도 아니 풀린 놈이 장독이나 나서 죽을까 겁이 나서 중로에서 도망이나 할까 생각한즉 젊은 계집을 내버리고 도망하면 어느 놈의 좋은 일을 할지 모르니 그도 분한 일이라.

단구역마을을 거진 다 와서 차마 못 들어오고 길가에 앉아서 무수히 생각하다가 싱긋 웃더니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나며 혼잣말로,

“오냐, 걱정 없다. 내가 이번에 우리 댁 영감께 썩 잘 보일 도리가 있다.” 하면서 단구역마을로 들어가는데, 만판 흉계 뿐이라.

석양의 빛은 치악산에 걸려 있고, 저녁 연기는 단구역마을에서 일어나는데, 고두쇠가 해 지고 어둡기를 기다리느라고 동구 밖 막걸리 집에 들어앉아서 돈은 감추어 두고 노자돈 떨어졌다 핑계하고 외자 술만 먹다가 날이 어둡는 것을 보고 슬며시 나가더니, 홍참의 집 행랑으로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행랑방 밖에서 목소리도 크게 못하고 가만히 하는 말이,

(고두쇠)“이 방에 아무도 없나?”

하는 목소리가 어찌 그리 은근하던지 방안에서 불도 아니 켜고 있던 고두쇠의 계집이 반색을 하며 대답하는 말이,

“거 누구요. 최서방이요?”하는 소리가 너무 은근하니, 고두쇠가 의심이 버썩 나서 아무 소리 없이 행랑 부엌 속의 컴컴한 곳으로 쓱 비켜서며 목소리는 아니 내고 빈 담뱃대를 부뚜막 이맛돌 위에 툭툭 떠니, 고두쇠 계집이 행랑 방문을 열며 가만히 하는 말이,

“거 누구요. 거 누구요, 최서방이지. 왜 아니 들어오고 숨바꼭질을 하여. 들어오기 싫거든 그만두지. 나는 문 닫아걸 터이야.”

하더니 문을 닫치려는 시늉을 하며 문은 닫치지 아니하니, 고두쇠가 열이 버썩 나서 문 앞으로 썩 나서며,

(고) “이년, 무엇이야. 최서방이 어떠한 놈이냐. 이년, 바로 대어라. 어름어름하다가는 당장에 뒈질라.”

그렇게 대드는 서슬이 당장에 사람을 쳐죽일 것 같은데, 고두쇠의 계집은 어찌 그리 안차던지 놀라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계집)“여보 요란스럽소. 목소리 좀 나적나적하시오.”

(고)“이년, 네 정신은 벌써 염라궁에서 빼앗아갔나 보구나, 요란스러운 것이 다 무엇이냐. 나를 종시 최가놈으로 알고 하는 말이냐. 나는 장고두쇠다. 이년, 두말 말고 최가가 어떠한 놈인지 그것만 말하여라. 서슴다가는 한 주먹에 맞아 뒈질라.”

(계집)“여보 답답한 소리말고 이리 좀 들어와서 조용히 말하시오. 내가 무슨 죄가 있는지 한 주먹에 쳐 죽이느니 두 주먹에 쳐 죽이느니 하니, 죽이려거든 조용조용히 쳐 죽이고 얼른 도망만 잘하구려. 사람을 쳐 죽이지 아니하더라도 우리 댁 영감께서는 날마다 벼르시는 말이, 이놈 고두쇠란 놈이 서방님을 못 데리고 오거든 이 넘을 쳐 죽인다 하시니, 이녁은 죽기는 일반이니 만만한 계집이나 쳐 죽이고 죽구려.”고두쇠가 그 소리를 듣더니 실쭉한 마음이 나서 계집에게 났던 분은 좀 잊었던지,

(고)“왜 영감께서 나를 쳐죽인다 하실 까닭이 있나? 서방님이 오시고 아니 오시기는 이판서 대감이 하실 탓이지, 내가 어떻게…….”

(계집)“영감께서는 이번에 정녕 서방님이 오실 줄로 알고 계신데, 서방님 오실 때까지 이녁이 서울 있다가 모시고 오지 아니하고 이녁만 혼자 오슬렁 어슬렁 들어오면 영감 성품에 오죽 대단하시겠소. 모르겠소, 이녁 마음대로 하구려. 그러나 나를 무슨 까닭으로 죽이느니 살리느니 하였소? 마음대로”

하더니 문을 툭 닫치니, 고두쇠가 본래 겁이 잔뜩 나서 들어온 놈이라. 다시 목소리를 크게 못하고 가만히 서서 들어온 놈이라. 다시 목소리를 크게 못하고 가만히 서서 생각을 한다.

‘조년이 나 없는 사이에 정녕 사잇서방을 얻은 것이로구. 최가, 최가가 어떠한 놈이고, 이 동네 최가라고 그런 듯한 놈이 없는데……. 조년을 좀 잘 달달하여야지 어름어름하면 조 여우년이 생시치미를 떼이렷다. 그러나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일이라, 섣불리 왁자지껄하다가는 계집을 초사도 못 받고 떠드는 소리가 영감 귀에 들리면 영감께서 필경 나를 잡아오라 하실 터인데, 조년이 만일 최가와 정이 들어서 나를 떼버릴 생각이 있을 지경이면 요때를 타서 아낙마님께 무슨 알소를 하여 나를 내쫓도록 말할 지경이면 나는 조년에게 분풀이도 못하고 내쫓길 터이라. 내가 어떻든지 천연한 기색으로 참고 있으리라.’ 그러게 생각을 정하고, 허허 웃으면서 계집을 달래는데, 맹세지거리 욕지 거리로만 말을 한다.

“이년, 이 망한 년, 서방이 어디 갔다 왔으면 반가운 마음도 없느냐. 문은 왜 닫느냐?”

(계집)“내가 닫고 싶어 닫쳤나. 어디 갔다 왔거든 천연히 들어올 일이지 왜 부엌 구석에 숨어 섰다가 남더러 죽일 년이니 살릴 년이니 하며 생트집은 왜 하여.”

(고)“요란스럽다. 나는 간신히 해지기를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그리 떠들어.”

(계집) “왜 대낮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어둔 때를 기다려 들어오기는……. 누가 사잇서방이나 끼고 있는 줄 아오.”

(고)“허허허, 고년 포달은 웬 포달이 그리 대단하여. 네가 서방을 끼고 누웠으면 그 꼬락서니를 그리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 꼴을 보러 온단 말이냐? 네가 그까짓 짓을 하면 너 하나 내버리고 어디로 가기로 계집 없겠느냐.” 하면서 문을 버썩 열며 들어오더니 새로이 은근히 묻는 말이,

(고) “내가 서울 간 뒤에는 이 댁에서 무슨 야단이나 아니 났나?”

서방이 딱딱 으르며 말할 때는 계집이 말대답을 잘 하더니, 서방이 농치는 것을 보더니 계집이 새로이 성이 나서 대답도 아니하고 싹 돌아앉는다.

(고)“이애, 요새는 네 뒷모양 어여쁘구나. 대강이에 웬 기름을 그렇게 쳐발랐느냐.”

(계집) “내 대강이에 기름을 바르든지 말든지 걱정이 무엇이야.”

(고)“너무 어여뻐 걱정이란다.”

(계집)“어여쁘면 누가 집어삼키는 줄 아나베.”

(고)“에그, 같지 아니한 것 다 보겠구. 너까짓 년을 어떠한 눈깔 먼 놈이 집어삼키려 하겠느냐. 나 같은 놈은 홍참의 댁 종노릇하기가 좋아서 너를 계집이라고 데리고 있지, 허허 허.”

(계집)“응, 인제 알겠소. 이댁 하인 되고 싶어서 나하고 살지, 나와 정이 있어서 사는 것은 아니로구려. 그런 계집은 진작 버리는 것이 제일이지 왜 데리고 사오.”

(고)“이애, 잔소리말고 이리 좀 돌아앉아라. 조용히 물어볼 일 있다.”

(계집)“물어보기는 무엇을 물어보아. 최가가 어떠한 놈이냐 물어보려고……. 주리를 틀며 초사를 받아보오, 누가 말하나…….”

(고)“빌어먹을 년 다 보겠구. 누가 너더러 최가 말을 묻느냐. 최가를 붙어 먹든지 박가를 붙어먹든지 강샘할 망할 놈 없다. 나는 오늘까지만 홍참의 댁 종노릇하고 내일부터는 이 집에 아니 있고 어디로 달아나겠다.”

계집이 그 소리를 듣더니 싹 돌아앉으며 고두쇠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방 속이 컴컴하여 고두쇠의 얼굴이 보이지 아니하거늘, 방바닥을 더듬더듬 더듬더니 성냥을 찾아 불을 켜고 고두쇠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보다가 생긋 웃으며,

(계집)“여보, 바로 말하오. 참 어디로 갈 터이요. 왜 남의 얼굴만 보오.

어서 대답 좀 하오. 참 무슨 의심나는 일 있소. 말 좀 시원히 하오. 나도 할 말이 있어.”

(고)“오냐, 너는 아무 걱정말고 다른 서방 얻어서 잘 살아라. 내가 어디로 가려 하는 것은 너를 싫어서 간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하인 노릇하기가 싫어서 가려는 것이다. 심부름을 죽도록 하고 무엇이 겁이 나서 대낮에 들어오지 못하고 어둡기를 기다려 들어와 생각하니, 이런 놈의 신세가 있단 말이냐. 어디 가서 빌어먹더라도 내 마음대로 살다간 죽겠다.”

(계집)“내 말만 들으면 남의 종노릇도 아니하고 잘 살 도리가 있지. 어서 발감개나 끄르고 부엌에 나가서 발이나 씻고 들어오…….”

하면서 방글방글 웃는 서슬에 고두쇠가 나중 일은 어찌 되든지 계집 웃는 눈으로 정신이 쑥 들어가며 갓, 망건을 턱턱 벗어 걸고 부엌으로 나가더니 웃통 활짝 벗어놓고, 아랫통 활활 씻고 걷고 활활 씻고 들어오더니,

(고) “오냐, 내일 경을 치더라도 오늘 좀 편히 쉬자.”

(계집)“왜 경은…….”

(고)“죄가 있고 경을 치면 누가 원통하다 하겠나. 그러나 그 동안에 영감께서 마음이 좀 풀리셨나? 내가 서울 떠나던 날 같으면 이 댁 하인도 배길 수가 없으려니와, 제일 건넌방아씨가 어디 살 수 있겠던가.”

(계집)“쓸데없는 남의 걱정은 왜 하고 있어. 내 걱정이나 할 일이지.”

(고)“내가 걱정을 하기로 무슨 별수가 있나?”

(계집)“별수가 있으면 하겠소.”

(고)“하다 뿐인가.”

그때 마침 밖에서 헛기침소리가 두어 번 나는데, 고두쇠 계집이 방문을 열어 내다보며,

(계집) “거 누구요, 최서방이요. 아무도 없소, 이리 들어오시오.”

하며 은근히 불러들이는 모양인데, 그 말이 뚝 떨어지며 어떠한 젊은 남자가 서슴지 아니하고 들어오는데, 나이 이십사오 세쯤 되고, 얼굴이 볕에 익어서 검붉은 빛을 띄었으나 남자의 얼굴로는 어여쁜 얼굴이라. 도래 좁은 통영갓에 갓끈이 어찌 좁던지, 서울 시체에도 너무 지나도록 맵시만 취한 모양이라. 철 찾아 입은 옷이 썩 조하게 입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남의 행랑방으로 돌아다니며 놀 사람은 아니라. 고두쇠가 웬 셈인지 알지 못하여 최가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아무 소리 없이 앉았는데, 고두쇠의 계집이 최가 더러 앉으라 하더니 먼저 말을 냅뜬다.

(계집)“여보 최서방, 마침 잘 오셨소. 우리 영감이 오늘 서울서 내려왔소. 두 분이 조용히 의논을 잘 하시오.”

하더니 고두쇠 옆으로 바싹 대들며 옆구리를 꼭 찌르고 귀에 말 두어 마디를 소곤소곤하니, 고두쇠가 입이 떡 벌어지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최가를 상전같이 대접하며 수작이 어우러지더라.

최가의 자는 치운이니, 송도 부자의 자식인데, 저의 부형의 돈냥이나 족히 없애는 사람이라.

두어 달 전 에 치악산 삼포에 인삼을 사러 내려왔다가 수 삭이나 무고히 단 구역마을에서 두류하는 자이라.

최치운의 마음이 어찌하여 그렇게 들었던지, 경가파산을 하더라도 소원을 풀 작정이라. 오늘 소원을 풀 지경이면 내일 죽더라도 한이 없을 줄로 생각한다.

그 소원을 풀고자 하여 홍참의 집 종 옥단이를 꾀되, 내 소원을 풀게 하면 돈을 몇 천 냥이든지 주어서 그 돈으로 속량하고 먹고 살 뒤까지 대어주마 하였는데, 그 원을 풀게 될지는 못 될는지 옥단이가 밤낮 애만 쓰고 있는 터이라.

본래 홍참의 집 건넌방 뒤에 오동나무가 있고 나무 밑에 담이 있는데, 지나간 달 팔월 보름날 밤에 홍참의 며느리가 마루에 앉아 달구경할 때에 오동나무 밑 담 위에서 기왓장 떨어지던 것은 최치운이나 불측한 마음을 먹고 홍참의 며느리 앉은 것을 넘겨다보다가 기왓장을 떨어뜨린 것이라.

최치운이가 이씨부인이 일색인 줄을 당초에 어찌 들었던지, 그날 저녁에 죽고 살기를 불계하고 양반의 집안 뒷담을 넘겨다보던 터이라. 최치운이가 눈요기를 잘할 수가 뻗쳤던지, 그날 밤에 이씨부인이 금홍이를 데리고 다루경을 하며 시집살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낱낱이 듣고 있다가, 남순의 뒤에 따라 나오던 삽살개 짖는 소리를 듣고 최치운이가 혼이 나서 달아났더라.

그 후로부터 자나깨나 눈에 삼삼한 것은 달 아래 은은한 오동 그림자 옆에 그림같이 앉아서 뼈가 녹는 듯이 설운 회포를 이야기하던 모양이 잊히지 아니한다.

생각이 골똘하면 궁흉극악한 계교가 생기는 것인지 최치운이가 아니 날 생각이 없었더라.

두밤중 가운데 시퍼런 칼을 빼어들고 담을 넘어가서 홍참의 집안 건넌방 문을 썩 도리고 들어가서, 내 말을 들으면 다행이요 아니 듣거든 칼로 푹 찔러 죽이리라 하던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고이한 놈의 마음이다, 사부가 부녀를 탐내서 이러한 마음을 먹으면 일도 마음대로 될 리도 없거니와, 내가 내 명에 죽지 못할 일이라 생각하고 오동나무 달그림자 밑에서 보이던 그 모양을 잊어버리자 하던 생각도 있었으나, 그 생각 마자 하던 그날 밤에 꿈을 꾸다가 홍참의 며느리를 만나서 사람을 살려 주오 죽여주오 하며 애를 무수히 쓰던 꿈을 깨서, 단념하려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연연히 헛생각만 난다. 항우가 장사이니 장비가 힘이 세니 하여도 이 세상에는 돈이 장 사이라. 최치운이가 돈을 물쓰듯하는 서슬에 옥단이는 최가가 죽어라 하면 죽고 살아라 하면 살게 되었더라.

운수 불행한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괴상한 일만 생기는지, 이씨부인의 남편되는 홍철식이가 일본으로 갔다 하는 소문이 나면서 최치운이가 춤을 덩실덩실 추며 옥단의 허리춤에 돈을 퍽퍽 집어넣는데, 옥단이가 저의 서방더러 감히 그 말을 못하였다가 그날은 고두쇠에게 수상한 눈치를 보이고, 잘못하다가는 제가 최가와 상관이나 있는 줄로 의심을 둘 듯하여 고두쇠에게까지 말하였는데, 고두쇠는 그때 신세가 막다른 곳을 당한 자이라, 최가 만나 것을 제 복으로 알고 대들더니, 세 손뼉이 맞으며 하룻밤 내로 별 계교가 생기더라. 사람이 욕심이 불같으면 담이 동이 덩어리같이 커지는 법이라 최치운의 욕심은 본래 , 사생을 돌아다보지 아니하게 된 것이라, 고두쇠와 다시 두 말 할 것 없고, 옥단이는 최치운의 일만 잘되고 보면 돈도 많이 얻어먹으려니와, 제일 속상하여 잘 살 도리가 있다 하는 그 소리에 비위가 어찌 동하였던지, 불인지 물인지 모르고 날뛸 판이라.

그날 밤에 최치운이와 고두쇠의 내외가 죽고 살기를 같이 할 줄로 상약하고 먼동 틀 때에 헤졌더라.

그 이튿날 식전에 옥단이가 홍참의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김씨부인을 보고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 아니하고 홀짝홀짝 울거늘 김씨부인이 핀잔을 준다.

(김)“요 방정맞은 년, 식전참에 계집년이 왜 쪽쪽 우느냐?”

(옥) “쇤네는 마님을 모시고 온 터이오니 죽어도 마님을 위하여 죽고, 살아도 마님을 위하여 살고, 울어도 마님을 위하여 우는 터이오니, 마님이 쇤네 마음을 알아주시지 못하면 쇤네는 죽어도 한을 못 풀고 죽겠습니다.”

하면서 김씨부인 앞으로 머리를 두르고 눈물을 씻으며 다시 고개를 윗목으로 돌이킨다. 본래 옥단이가 치마끈 끝에 고추가루 물을 들였다가 김씨부인 앞에 와서 그 치마끈으로 눈을 홈착홈착 씻으니, 눈에서 불이 나는 듯하며 눈물이 나는지라. 김씨부인이 처음에는 옥단이를 꾸짖다가 옥단의 말을 듣고 이상히 여겨서,

(부인) “이애 옥단아, 네가 무슨 일이 있어서 식전참에 들어와서 우느냐?”

(옥단)“쇤네가 이런 말씀을 아니하면 쇤네의 도리가 아니오, 이 말씀을 하고 보면 쇤네의 목숨은 어찌될지 모르는 터이올시다. 마님께서 쇤네를 보아 주실 터이면 쇤네는 아는 대로 말씀하겠습니다.”

(부인)“이애, 무슨 말이냐. 염려말고 내게만 말하여라. 무슨 말을 듣든지 들은 체도 말고 있으마. 이애 옥단아, 집안에 무슨 일 있니?”

옥단이가 문밖으로 나가더니 코를 푸는 시늉을 하다가 부엌으로 살짝 내려 가서 찬물에 눈을 씻으며 들어오는 눈이 통통히 부었더라. 부인이 의심이 버쩍 나서 안달을 하며 다그쳐 묻는다.

(부)“옥단아 옥단아,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냐, 내 귀에만 말하여라.

내가 네게 들은 체만 말마, 영감께서 요사이 읍내로 자주자주 놀려 가시더니 아마 첩을 두셨나 보구나.”

(옥)“아니올시다. 영감께서 첩을 두셨기로 그런 일이야 변될 것 무엇 있습니까.”

(부)“요 방정맞은 년, 보기 싫다. 식전참에 왜 들어와서 그런 소리만 하느냐 그래 네 마음에는 . , 영감께서 첩 두시는 것이 그리도 기쁘냐. 요년, 꼴 보기 싫다, 저리 나가거라. 네 요년, 무엇이든지 나를 속여만 보아라.”

하면서 입에서 찬 기운이 나고 눈에서 독기가 똑똑 떨어지도록 옥단이를 흘겨보는데, 여간 사람은 소름이 끼쳐서 그 앞에 앉았기가 어려울 듯하나, 옥단이는 겁내는 기색이 조금도 없이,

(옥) “마님, 마님께서 쇤네 말씀을 못 알아들으시나 보이다. 영감께서 첩을 두시느니 보다 더한 일이 있으니 쇤네가 말씀을 그렇게 아니하겠습니까.

마님 마님, 쇤네가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다가 죽더라도 마님을 위하여 죽는 터이니 한될 것 없습니다.”

하면서 부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거늘, 김씨부인이 아무리 보아도 옥단이 가 무슨 큰일이 있는 것 같은지라. 상전의 요약과 종년의 요약이 같이 모여 마주 요악을 부리는데, 상전은 종의 속을 쏙 뽑으려고 안달하고 종은 상전의 비위를 꼭 맞추려고 애를 쓴다.

(부)“오냐, 염려말고 말만 하여라. 내가 네게 들은 체만 아니하면 그만이지, 걱정이 무엇이냐.”

(옥)“마님, 이런 변이 있습니까. 쇤네같이 천한 년도 이때까지 그따위 행실은 없었더니, 양반의 댁에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부)“에그, 요년아 갑갑하다. 정작 긴한 말을 아니하고 왜 쓸데없는 설파만 하느냐.”

(옥)“여간 일 같으면 말씀이 쉬웁게 나오겠습니다마는 그런 일은 참 겁나서 말이 아니 나옵니다. 그러나 마님께야 무슨 말씀을 못 여쭙겠습니까.

마님 마님, 요사이 건넌방 아씨 일을 아십니까?”

(부)“응, 무슨 일……어서 말 좀 하여라.” 옥단이 가 남순이를 말끄름 보며,

(옥) “작은아씨, 철없이 이런 말을 옮기지 마오. 참 큰일나리라.”

하더니 김씨부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부인의 귀에 무슨 말을 소곤소곤 하는데, 김씨부인이 무엇이 그리 분한지 눈에 독살이 잔뜩 들고 숨소리가 색색 나면서 다그쳐 묻더니, 이를 악물고 며느리를 벼른다.

(부)“저런 망한 년 보았나. 저도 양반의 자식이지. 남의 집에 들어와서 그 따위 짓을 하고 남의 집을 망하여 주어. 그까짓 년이 재상의 딸이야. 제 남편이 일본 간 지 며칠 못 되었는데 벌써 서방 생각이 나서 못 견디던가 보구나. 오냐, 내가 그년을 약사발 안겨 죽이더라도 그년이 내 집을 망하여 놓던 분풀이는 하고 말겠다.”

(옥) “마님께서 말씀이 그러하시지, 약사발이야 어찌 안깁니까.”

(부) “너 같은 상년은 그러한 일을 대단치 아니하게 여기나보다마는, 소위 양반의 집에 그런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 며느리라고 그따위 년이 내 집에 들어와서 남의 가문을 더럽혀 놓으니 그것을 하루바삐 없애 버려야지, 살려두었다가 이 집안에 무슨 변을 또 저지를는지 알 수 있느냐. 이애, 두말 말고 사랑에 나가서 영감 여쭈어라. 며느리인지 무엇인지 그 망한 년을 당장에 불러 앉히고 비상이나 먹여 죽이겠다.”

본래 옥단의 생각에 이씨부인을 죽으려는 계교가 아니라, 김씨부인을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부인을 들랜다.

(옥)“마님, 그리하지 말고 쇤네 말씀을 들읍시오. 이런 말씀은 마님을 위하여 여쭙는 말씀이올시다. 이런 말이 온 세상에 벌어지면 홍참의 댁 망신이올시다. 아무리 분하시더라도 참고 계시면 좋을 도리가 있습니다.”

(부)“네 말이 옳기는 옳다마는 참을 일이 따로 있지, 그런 일을 어찌 참고 덮어 두느냐. 내가 본래 며느리와 뜻이 아니 맞아서 그것의 꼴을 보면 기가 버럭버럭 나던 터이다. 부르트는 김에 그것을 어떻게 처치하여 버리겠다.”

(옥)“마님께서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아씨가 죄는 죽어 싼 죄가 있으나, 이 댁에서 약을 먹여 죽이면 청춘의 몹쓸 귀신이 마님게 원수를 맺을 터이니 죽여서는 못 습니다.”

김씨부인이 옥단의 말을 듣다가 소름이 살짝 끼친다.

무엇이 겁이 나서 소름이 끼쳤는가. 부인의 마음에 이번에 핑계 좋게 며느리를 불러 앉히고 종들까지 불러 세우고 며느리의 행실 고약한 토죄를 하여 며느리 망신도 시키고 그 끝에 약사발을 안기자는 작정이 다 틀렸더라. 며느리를 어떻게 없애버리자는 마음이 골똘한 중에, 옥단의 말이 며느리가 원귀를 맺는다 하는 소리에 겁이 어찌 몹시 났던지, 등뒤에 며느리 귀신이 따라 선 것같이 싫은 생각이 난다.

며느리 죽이고 싶은 생각이 아무리 골똘하나, 제 몸에 원수를 갚을까 염려되는 마음이 생기더니 악독한 마음이 자라 목 움츠러지듯 오무라져 들어간다.

(부)“이애 옥단아, 내가 너더러 말이지, 건넌방 아씨인지 무엇인지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하여 살 수가 없겠다. 지금 그것이 그따위 짓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생각하니 이제는 그 원수의 년을 아니 볼 도리가 있겠다 하였더니 네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하니 난처한 일도 많구나. 내가 만일 며느리의 토죄를 하고 약을 먹여 죽일 지경이면 고 못된 년이 제가 죽을 짓 한 생각은 아니하고 내게다 원수를 맺어서 밤낮 없이 따라다닐 지경이면 내게 그런 두통이 있느냐. 이애 옥단아, 이것을 어떡하면 좋단 말이냐.”

옥단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김씨부인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이 짐작할 일이 있는지라. 좋아서 못 견디는 마음에 실눈이 되도록 웃으면서,

(옥) “마님 , 마님께서 쇤네 말씀만 들으실 것 같으면 며칠이 못되어서 마님께서 평생 소원을 푸실 터이오니 쇤네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부)“좋을 도리가 있으면 듣다 뿐이겠느냐.”

옥단이가 김씨부인의 눈치를 할금할금 보며 상긋상긋 웃으며 얼른 말을 아니하니, 부인이 갑갑한 생각이 어찌 대단하던지 옥단이를 눈이 빠지도록 꾸짖고 싶으나 내게 아쉰 일로 옥단의 꾀를 얻어들으려 하는 터에 핀잔을 주든지 꾸짖든지 하는 것이 부지러운 듯하여 옥단이를 살살 꾄다.

(부)“이애 옥단아, 내가 네 정성껏 나를 위하여 주면 나도 내 마음껏 너를 위하여 주마. 이애, 네 마음에는 건넌방 아씨 하는 일이 온당하게 생각하느냐. 이번에 그 일도 그 일이어니와, 이왕에는 고약을 작게 부렸다더냐, 시부모를 시부모로 알았다더냐, 시뉘를 시뉘로 알았다더냐, 시집 종을 사람 같이 여겼다더냐. 그것이 고약을 그렇게 부리더니 필경 내 집을 망하여 놓는구나. 글쎄 네 생각하여 보아라. 양반의 집에서 그것을 어찌 살려둔단 말이냐. 이애, 어떻게 내게 원귀 되지 아니하게 죽일 수 없겠느냐?”

(옥) “쇤네를 상급만 많이 주시면 마님께 원귀를 맺지 아니하도록 만들고 감쪽같이 잘 죽여 버릴 도리가 있지요.”

(부)“요년 앙큼한 년, 네가 전에는 그런 버릇없는 소리를 아니하더니, 그런 버르장이를 건넌방 아씨께 배웠나 보구나. 말을 하려거든 하고 말려거든 말려무나. 네가 무슨 일을 잘한 후에 내가 너를 기특히 여겨서 상을 주면 받으려니와, 네 입으로 나더러 상을 달라 한단 말이냐.”

옥단이가 부인의 꾸지람을 들으며 생각한즉, 본래 부인의 성품이 남의 공은 반푼 어치도 모르는 사람이라. 그런 사람과 같이 무슨 일을 하려면 미리 알아차려서 바싹 졸라대지 아니하면 나는 헛애만 쓸 터이라. 이번에 아주 단단히 언약을 하여 다짐을 받고 일을 시작하리라 하고 말을 냅뜨려 하다가 또 무슨 생각을 한다.

‘상전이라고 겁을 내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면 병신이지. 이번을 넘기면 요런 좋은 기회를 또 만날 수 있나. 마님이 암만 저렇게 날뛰셔도 내 소원을 아니 풀어주면 내가 좋을 도리를 아니 가르쳐 줄걸.’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눈을 깜작거리고 앉았는데, 부인이 제풀에 놓치며 옥단이를 달랜다.

(부) “글쎄, 네 들어보아라. 네가 무슨 이을 내 속이 시원하도록 잘하면 내가 너를 범연히 생각하겠느냐. 입던 치마 한 가지를 주더라도 그저 있을 리야 있느냐. 이애 옥단아, 어찌 되었던지 내 소원을 풀어줄 도리가 있거든 풀어다오. 네 욕심껏 상을 주마.”

옥단의 욕심은 입던 치마 가지에 있는 터이 아니라 부인의 하품 날 소리만 한다.

(옥)“상을 타면 타고 말면 말지요. 마님 입으시던 치마를 얻어 입고 있어요. 이런 큰일을 하면 마님께서 쇤네를 속량이라도 하여 주시고, 단구역 마을 앞뜰에 있는 보논을 다 주시더라도 아까울 것 무엇 있습니까. 마님께서 생각하여 봅시오. 그 일이 좀 큰일이오니까? 이댁 흥망이 달릴 뿐 아니라 마님께서 소원은 혼자 푸시고 나중에 아무 탈이 없이 될 터이니, 그런 재미있는 일이 어디 또 있습니까. 만일 나라를 위하여 그런 공을 이루면 이화대수장을 타고 대신을 할 것이올시다. 쇤네 같은 양반의 댁 종년은 상전을 위하여 큰 공이 있어서 속량이나 얻어 하면 일들 훈장이나 타고 대신이나 한 것과 다름없겠습니다..”

하며 사박스러운 옴팍눈으로 부인을 흘끔 건너다보는데, 김씨부인이 며느리 하나를 잘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에 옥단의 소원을 다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

(부)“이애 옥단아, 내나 네나 소원 풀기는 일반이지. 내 속 시원한 일을 하여 주면 나도 네 소원대로 속량은 하여 주마. 그러나 내가 단구역마을 앞뜰에 있는 보논을 말하니, 그것은 네가 소갈머리 없는 소리다. 네 생각하여 보아라. 내 임의로 어찌 너를 논 한 마지기를 줄 수가 있느냐.”

(옥)“쇤네가 논이야 참 바라지 아니합니다. 속량이나 하여 주시면 그런 상덕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옳지 그렇지. 우리 얼른 무슨 작정을 하고 일을 끝낼 도리를 하자.” 하더니 부인은 옥단에게 속량하여 줄 언약을 단단히 하고 옥단이를 건넌방 아씨를 없애 버릴 꾀를 한다.

(옥)“마님, 마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세히 들으시오. 건넌방 아씨를 치악산 호랑의 이빨로 버석버석 깨물어 먹게 하였으면 좀 좋겠습니까. 아씨가 범에게 물려 죽으면 원귀커녕 아무것도 아니 됩니다.”

(부인)“이애, 그 말 좋은 말이다. 그러나 치악산으로 보낼 수가 있느 냐.”

옥단이가 부인의 귀에 무엇이라고 소곤소곤하는데, 부인의 입이 딱 벌어지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라.

옥단이가 한참 소곤거리다가 남순이를 돌아보면,

(옥) “여보 작은아씨,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남)“그럼, 그것을 못 알아들어. 누구는 귀 없나. 남을 어린아이로 아 네.”

(부)“이애 옥단아, 너는 작은아씨가 무슨 말이나 옮길까 염려하여 하는 말인가보다마는, 네가 작은아씨를 그렇게 알았다가는 낭패하리라. 그 애가 너 보다 속이 깊다. 아무 염려말고 어서 말하여라.”

남순이가 저를 추어 주는 소리에 무던한 듯싶어서 옥단이를 흘끔흘끔 흘겨보며,

(남)“사람을 업신여기네. 내가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더러 그 말을 할 줄 아나베. 건넌방 언니라 하면 나부터 이가 갈려……. 나더러 여우 같다 하던 것이 누구라고. 언니가 금홍이를 데리고 한 말이지. 그런 소리하던 사람은 누구든지 치악산 호랑이에게 물려 뒈졌으면…….”

(옥) “응, 걱정 마오. 작은아씨더러 그런 소리하던 건넌방 아씨와 금홍이는 치악산 호랑이 밥이 되게 하여줄 터이니 누구더러 말만 마오.”

하더니 다시 부인에게 하던 말을 이어 하는데, 그 말을 다 마치기 전에 부인의 고개를 까딱 하더니,

(부) “오냐, 다 알아들었다. 나 할 일은 오늘내일 사이에 끝이 나게 할 터이니 너 할 일만 감쪽같이 잘하여라.”

마침 안중문간에서 홍참의 기침 소리가 나니, 부인이 손을 살살 흔들며,

(부) “영감 들어오신다. 아무 소리 마라. 이애, 너는 여기 앉았지 말고 이 뒷문으로 나가거라.”

그 말끝에 옥단이는 뒤창 미닫이를 살짝 열고 나가는데 홍참의가 앞문으로 들어온다.

김씨부인이 수심이 첩첩한 모양으로 말없이 앉았으니 홍참의가 그 부인을 흘끔 흘끔 건너다보다가,

(홍) “마누라, 무슨 걱정되는 일 있소?”

부인이 한숨을 쉬고 대답이 없거늘, 홍참의가 괴이쩍게 여겨서 다시 남순이를 돌아다보며,

(홍)“이애, 너의 어머니가 왜 말도 아니하고 앉았는지 네가 아느냐?”

(남)“나는 몰라요.”

(부)“그런 어린아이더러 물어보실 일이 아니오.”

(홍)“응, 그러면…….”

(부) “눈으로 보지도 말고, 귀로 듣지도 말고, 입으로 말도 말고, 하루바삐 죽어 몰랐으면 좋겠소.”

(홍)“응, 왜?…….”

(부)“내가 말을 하기로 영감께서 곧이들으실 리도 없고 내 입으로 말하기도 싫은 일이요. 영감이 그렇게 알고 싶으시거든 오늘밤에 일찍이 좀 들어오시오. 그런 것은 영감 눈으로 자세 보셔야 아시지.”

홍참의가 그 소리를 듣고 의심이 버썩 나서 부인을 물끄러미 다시 말없이 앉았다가 아침밥을 기다려 먹고 사랑으로 나가더라. 홍참의가 종일 궁금증이 나서 부인더러 묻고 싶으나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묻지 아니하였다가 그날 밤에 안으로 들어오더니, 또한 말도 묻지 아니하고 부인의 눈치만 본다.

(부인)“이애 남순아, 너는 일찍 누워 자거라.”

(남)“졸리지도 아니한 사람더러 왜 누워 자라 하여.”

(부)“어른이 일찍자라 하거든 잘 일이지 웬 말대답을 그리 하느냐.”

(남)“누구는 모르는 줄 아나베. 나도 벌써 알았어.”

부인이 한숨을 휘 쉬더니

(부) “하릴없다, 계집아이란 것은 어렸을 때에 제 집안에서 보고 배울 것이 많아야 쓸 터인데……. 네 눈에 그런 것을 보였구나. 오냐, 하릴없다.

집안에 운수가 좋으려면 그런 일이 생겼겠느냐.

여보 영감, 이를 어찌한단 말이요. 집안에 변이 났소그려.”

(홍)“응, 변은 무슨 변.”

(부)“영감, 내 말은 나중 들으시고 나와 같이 안뒤꼍으로 나가서 보실 일이 있소.”

홍참의 마음에 무슨 일인지 집안에 큰일 생긴 줄 아고 아무 소리 없이 그 부인을 따라 나서니, 부인이 홍참의를 끌고 안뒤꼍 건넌방 모퉁이로 돌아가려 하다가 다시 돌아서며 손을 살살 흔들더니 가만히 하는 말이,

“이리로 와서 안되겠소. 어렵지마는 나만 따라오시오.”

하더니 안방 뒤꼍으로 도로 돌아간다.

(홍참의)“왜 사람을 끌고 갔다왔다 하기만 하오?”

(부)“에그, 참을성도 없으시오. 오늘밤 내로 영감께서 다 아실 일을 그리하시오. 두 말 말고 이리 좀 오시오.” 하더니 안뒤꼍문을 열고 나가는데 홍참의가 따라 나간다.

본래 단구역마을 넓은 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동네인데 홍참의 집 뒷담 밖은 너른 들이요, 앞에는 단구역마을 대촌이라. 홍참의 집 안뒷담에 조그마한 평중문이 있는데 , 그 문을 열고 나가면 편한 벌판이요, 그 들을 건너가면 병풍 같은 치악산이라. 그때는 깊은 가을인데 농가에서 추수 다 하여 들인 후이라, 보에 물 뚝 떼고 논에 물 한 점 없는 때라. 김씨부인이 홍참의를 끌고 어디로 살살 가더니 어느 논둑 밑에 살짝 쪼그리고 앉으며,

(부인) “영감, 영감께서도 날과 같이 내 옆에 앉으시오.”

홍참의가 본래 음흉하다면 음흉하고 미련하다면 미련한 사람인데, 어떠하든지 진중하기는 진중한 사람이라. 부인을 따라서 논 둑 밑에 쭈그리고 앉으니, 그 맞은편은 홍참의 집 건넌방 뒷담에 오동나무 박힌 곳이라.

부인이 홍참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하며 이야기 시작을 하는데, 캄캄한 밤이 점점 적적하여지더니 웬 사람 하나 발자취 소리 없이 걸음을 걸어오더니 홍참의 집 안 뒤담 밑에 가서 가만히 섰다가 담을 넘겨다보는데, 그 담은 홍참의 집 안방 뒤꼍이라. 김씨부인은 말 없이 홍참의를 꾹꾹 찌르는데 홍참의는 고개만 끄덕거린다. 캄캄한 칠야이라, 담을 넘어다보면 사람의 전형을 알 수 없으나, 대체 상투 바람의 남자이라. 홍참의 생각에는 저놈이 저 담을 넘어가려고 넘겨다보는 줄로 알았더니, 그놈이 그 담을 아니 넘어가고 도로 내려서더니 건넌방 맞은편 담으로 돌아와서 오동나무 휘어진 가지를 붙들고 담으로 올라간다.

그때 오통나무 잎은 다 떨어지고 오동 열매만 동실동실 달여 있는데 그 남자가 오동 가지에 붙어 서서 오동 열매 하나를 따더니 어디로 던지는 모양이라. 조금 있더니 담 안에 무슨 돋음을 놓았던지 웬 여편네가 돋음을 디디고 올라서는데 그 여편네의 고개가 담 기왓장 위로 쑥 올라온다.

오동나무에 붙어 섰던 남자가 고개를 썩 숙여서 여편네 고개에 대고 무슨 말을 묻는지 들리지 아니하나, 그 여편네 대답 소리는 잠간 들린다.

(여편네)“여보, 마음도 급하기도 하지, 오늘은 너무 이른걸……. 금홍이가 아직 잠도 아니 들었는데…….”

하더니 그 뒤의 말은 어찌 가만히 소곤거리는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지라.

그때 마침 웬 사람 하나가 짤막한 담뱃대에 담배를 붙여 물고 논둑 길에서 길 잃은 사람같이 입맛을 다시면서 혼잣말로,

“이것이 길인가, 내가 어찌하다가 여기를 왔나.”

하며 홍참의 집 두의 오동나무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담 안의 넘겨다보던 여편네 목을 옴츠러져 들어가고, 담 위의 오동나무 낮은 가지 앉을 자리 편하게 된데 걸터앉았던 남자는 오동나무 등걸에 붙어 선다.

오동잎이 있을 때 같으면 그 나뭇가지에 사람이 있어도 어둔 밤에 남의 눈에 뜨일 리가 만무하나 , 그때는 엉성한 나뭇가지에 사람이 붙어선 것이 아니 보일 리가 없는지라.

담뱃대 물고 가던 사람이 그 담 밑으로 지나다가 흘긋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는 모양으로,

“에그, 이것이 무엇인고?”

하여 몸이 움츠러지는데, 오동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오동나무 가지를 놓고 담 위에 우뚝 서더니 담 밖으로 훌쩍 뛰어내려오거늘, 담뱃대 물었던 사람이 거 누구냐 소리를 하니 담 위에서 내려오던 자가 담뱃대 문 자를 발길로 걷어차는데, 담뱃대 물었던 자가 에쿠 소리를 하고 자빠지며 도둑이야 소리를 지르니, 담 위에서 내려오던 자가 나는 듯이 달아난다. 홍참의는 겁이 나서 떠는지 분한 마음에 떨리는지 벌벌 떨고 앉았는데, 김씨부인은 참 겁이 나서 못 견디는 모양같이 홍참의 앞에 폭 안긴다.

사람 사는 곳에 밤중에 불이야 소리가 나면 사람마다 튀어나오거니와, 도적이야 소리가 나면 다 각기 제 방에서 문을 꼭 닫고 나오기를 싫어하는 법이라. 원래 홍참의 집 뒷담 밖은 그 동네 사람이 오더라도 한참을 돌아나올 곳이라.

아무도 나오는 살마은 없는데, 담 밑에 자빠졌던 사람이 제풀에 툭툭 털고 일어나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 그것 괴상한 일이로구. 하마터면 큰일날 뻔하였구. 그러나 이 집에서는 나 아니더면 오늘밤에 도적 맞을 뻔하였지. 내 담뱃대는 어디 갔누.”

하며 다시 허리를 굽히더니 땅을 더듬더듬하며 담뱃대를 찾는 모양이라. 홍참의는 논 둑 밑에서 숨도 크게 아니 쉬고 가만히 앉았는데, 그 사람 지나간 뒤에 집으로 들어갈 작정이라.

그러할 즈음에 어이서 헛기침 소리가 거푸 나더니 홍참의 집 담 뒤로 웬 사람 하나가 돌아오며 혼잣말로,

“어디서 도적 튀기는 소리가 났누. 오냐, 내 손에 도적놈만 걸려라. 포도청에 갈 것 없이 이 몽둥이로 대번에 쳐 죽여 버리겠다.”

그런 헛장담을 하며 몽둥이를 끌고 오동나무 밑으로 향하여 나오는 것은 고두쇠의 목소리라. 오동나무 밑에서 담뱃대 찾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마주 기침을 하며 거 누구요, 소리를 하니, 고두쇠가 걸음을 멈추고 마주 거 누구냐, 소리를 하며 감히 썩 대들지 못하는 모양이라. 담뱃대 찾던 사람이 제가 도적 아닌 줄을 발명하느라고 황급한 목소리로 도적놈에게 발길에 채이던 말을 하니 고두쇠가 정작 도적놈은 달아난 줄 알고 새로이 산목을 쓴다.

(고) “저런 경칠 놈 보았나. 진작 나왔더면 그 놈을 붙들었을걸. 그래, 그 주릿대를 메일 놈이 어디로 달아났소. 여보, 그놈에게 과히 몹시 채이지 나 아니하였소? 그러나 댁은 웬 양반이요? 발씨 선 길에 길 잘못 들기가 예 사이지요. 처음 뵙는 양반이지마는 너무 가엾은 노릇이요. 나도 타도 타관으로 먼 길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 타관 양반이 저런 일 당하는 것을 보면 내가 당한 것 같습니다. 자, 어두운데 살펴 가시오.”

“평안히 계시오.”

하더니 담뱃대 찾던 사람은 어디로 가고 고두쇠는 몽둥이를 끌고 담 밑으로 다니며 순경을 도는 모양이라.

부인이 겁나던 마음이 진정이 되었던지 홍참의 무릎 위에 푹 엎드렸던 고개를 들고 가만히 하는 말이,

“영감 영감, 고두쇠를 부르시오.”

홍참의가 손을 설설 흔들며 또한 가만히 하는 말이,

“아무 소리말고 가만히 있어.”

그러할 즈음에 고두쇠는 담 밑으로 한 바퀴를 돌아서 돌아가는 모양이다.

홍참의가 부인을 데리고 뒤 중문으로 들어가는데, 그 문은 처음 나갈 때에 지쳐만 두었던 문이라. 그 문은 열 때면 소리가 좀 나는 문이라. 홍참의가 문을 여는데 도둑놈이 남의 집 문을 열 듯 아무쪼록 소리 아니 나도록 하느라고 얼른 열지도 못하고 조금씩 여는데, 문은 다시 열지도 못하고 소리만 나는지라. 고두쇠가 아니 들어가고 어디 있었던지 몽둥이를 끌고 헛기침을 하며 쫓아 나오는 모양이라.

홍참의가 고두쇠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려고 문을 왈칵 열고 쑥 들어서며,

“여보 마누라, 어서 들어오.”

부인이 급히 들어가다가 넘어진다. 홍참으 미처 문을 닫아걸기 전에 고두쇠가 문밖에 서서 거 누구냐 소리를 하니, 홍참의가 솜씨 있는 양반 기침을 하면서,

(홍) “고두쇠냐, 너 어찌하여 나왔느냐?”

고두쇠는 문밖에 섰고 홍참의는 문안에 섰으니 서로 보이지 아니하나 목소리는 분명히 서로 알아듣는 터이라, 고두쇠가 가장 무슨 장한 일이나 있는 체하고 호들갑을 부린다.

“오늘밤에 소인 아니더면 댁에서 도적을 맞을 뻔하였습니다. 아까 웬 도적놈이 담을 뛰어 넘어가다가 소인에게 쫓겨 달아났습니다. 소인이 오늘 밤에는 잠자지 말고 밤새도록 순경을 돌겠습니다.”

하는 라이 가장 홍참의는 ㅁ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사람같이 여기고 하는 말이라.

(홍)“오냐, 그만 들어가 자거라. 도적이 들어오려다가 쫓겨갔으면 설마 또 올 리가 있느냐.”

그때 부인은 혼자 일어나 앉아서 발목을 삐었느니 손목을 삐었느니 하면서 제 입으로는 고두쇠더러 말을 못 이르던지 홍참의더러 하는 말이,

“영감, 고두쇠더러 옥단이 좀 들여보내라 하여 주시오. 옥단이를 불러서 내 발목이 좀 주물러야 하겠소.”

(홍)“이애, 고두쇠야. 네 나가서 옥단이를 불러 들여보내어라.”

(고)“옥단이가 초저녁부터 가슴앓이가 일어나서 정신을 모르고 앓습니다.”

(홍)“오냐, 그만두고 나가거라.”하면서 중문을 닫아걸고 홍참의가 부인의 발을 주물러 주려 하니 부인이 그만두라 하면서 일어서더니, 한 발을 자축자축하며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홍참의가 따라 들어간다.

본래 안방에서 나갈 때 불을 끄고 나간 터이라, 부인이 방으로 들어가며 불을 켜고 앉으며 한숨을 쉬니,

(홍)“여보, 발목을 과히 다쳤소?”

(부)“발목을 좀 다쳤기로 그까짓 걱정이야 걱정될 것 무엇 있소.”

홍참의가 그 소리르 듣고 정신 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라. 남순이는 가려운 것을 참고 자는 체하고 드러누워서 어른의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

(부)“영감, 집이 이렇게 쉽게 망한단 말이요. 이런 일을 남이 알면 홍씨 댁 가문이 결판날 터이요, 이런 일을 덮어두면 이 집안이 무엇이 되오.” 홍참의는 담배를 붙여 물고 아무 소리 없이 담배 연기만 훅훅 뿜고 앉았더라. 그날 밤 일은 다 옥단의 꾀에서 나온 일이라. 오동나무 위에 올라섰던 사람은 고두쇠요, 담 너머로 내다보며 소곤거리던 계집은 옥단이요, 담 밖으로 지나가다가 도적 튀기던 사름은 최치운이라. 고두쇠가 담 위에서 슬쩍 뛰어 내려오며 최치운이를 아프지 아니하게 얼러 차고 달아는 시늉을 하다가 몽둥이를 끌고 기침하며 나온 것이요, 김씨부인이 넘어진 것도 부러 넘어진 것이요, 옥단이가 가슴앓이 앓는다는 것도 백판 거짓말이라.

양반 좋고 글도 많이 읽은 홍참의는 본래 옥단이 같은 천한 종년이야 사람으로 여기지 아니하였을 터이나, 그날 밤에 옥단의 꾀에 어찌 빠졌던지, 그 며느리가 행실이 부정하여 어떤 놈이 나드는 줄로만 알고 분이 어떻게 몹시 났던지 그날 밤 , 내로 며느리를 약 사발을 안겨 죽이고 싶은 생각이 버썩 들어가서 담뱃대를 탁탁 떨며,

(홍)“며느리가 들어와서 내 집을 망해 놓아. 그럴 변이 어디 있을구.여보 마누라, 사당에 고유하고 며느리를 비상이나 먹여 죽입시다.”

그 말 한 마디에 옥단의 꾀를 다 잘될 도리가 생긴다.

(부)“여보 영감, 며느리의 행실을 생각하면 약 먹여 죽여 싸지마는, 사람을 어찌 차마 죽인단 말이요.”

(홍)“응, 못될 말이지, 집을 망하여 놓은 것을 살려두다니…….”

(부)“여보, 나는 그 노릇을 못하겠소. 남의 자식을 몇 해를 데리고 있다가 내 손으로 죽인단 말이요. 영감, 며느리를 죽이시려거든 나는 우리 친정으로 나 쫓아보내 주시오. 남의 자식을 악착한 죽음을 시키면 나는 평생에 며느리가 눈에 밟혀서 이 댁에 못 있겠소.”

(홍)“마누라가 그럴 것 무엇 있소.”

(부) “여보, 딱한 말씀도 하시오. 이러니 저러니 하여도 며느리에게 잔정은 내가 더 들었지, 영감께서 며느리에게 무슨 잔정이 있을 수가 있소.”

(홍)“그는 그러하지. 그러면 저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부)“그런 일이야 영감이 조처하시지 나더러 물으실 일이요? 다시 잘 생각하여 보시오.”

홍참의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았다가 부인을 보며,

(홍)“여보, 그렇지 않소. 친정으로나 쫓아버립시다.”

부인이 홍참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부) “글쎄, 그것도 난처한 일이오그려.”

(홍)“응, 무엇이 난처하여.”

(부)“영감께서 어련히 깊이 생각하고 말씀하겠소마는 나중 일을 좀더 생각하고 말씀하시면 좋겠소.”

(홍) “응, 나중 일이라니…….”

(부)“이런 일을 남에게 알리고 보면 내 밑 들어 남 뵈기 같이, 홍씨댁만 망신이니 아무쪼록 소문 없이 조처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홍)“그것은 마누라의 말이 옳소.”

(부)“며느리의 행실 그른 것은 덮어두고 며느리를 친정으로 쫓으면 애꿎은 시어머니의 심하다는 소문만 나겠소그려. 내가 심하다는 시비를 듣는 것은 하릴없는 일이지마는, 누대봉사하는 아들을 장가들일 도리를 하고 쫓아야지, 무단히 며느리를 쫓고 아들 장가들인다는 수가 있소.”

홍참의가 그 소리를 듣더니 또 고개를 수그리고 앉았는데, 부인이 홍참의가 무슨 말이 나오도록 재촉을 한다.

(부)“그래 어떻게 조처하실 터이요?”

(홍)“글쎄 별 수 없어. 약이나 먹여 죽이든지 친정으로 쫓든지 두 가지 중에 어떻게 하든지 정할 터인데, 마누라의 말에 이것저것 다 불가한 줄로 여기니, 마누라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부)“내 마음에는 홍씨댁도 보전하고 사돈집도 성하게 보전하도록 조처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하는 말이요. 며느리를 친정으로 쫓으면서 시집에서 그따위 행실 하던 것이 친정에 가면 기를 펴고 서방질을 더할 터이니, 여편네 하나가 두 집을 망하여 놓겠소그려. 싸고 싼 향내도 나는데, 여편네 서방질하는 소문이 어찌 아니 나겠소. 영감께서는 오늘 처음 아시나, 우리 집 안에서는 그 눈치를 다 아는 모양이요. 옥단이가 모르나, 남순이가 모르나.

이때까지 모르고 있던 사람은 우리 내외뿐이지.”

(홍)“그래, 옥단이가 그 일을 아나?”

(부)“아는 체는 아니합디다마는 말하는 눈치가 아는 모양입디다.”

(홍)“옥단이 가 알았으면 소문이 아니 날 수가 있나. 벌써 일이 그렇게 되었으면 내 집이나 사돈 집이나 두 집 모양 좋도록 조처하기는 틀렸지. 마누라 하던 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야. 두 말 말고 오늘밤 내로 며느리를 불러 토죄하고 비상이나 먹여 죽여. 하루라도 더 살려두면 모양만 점점 더 수 통하지.”

하더니 옥단이를 불러라, 금홍이를 불러라, 며느리를 불러라 하며 방울 같은 눈이 두리두리하며 야단이 나는데 본래 골이 나면 걷잡을 수가 없는 홍참의라. 부인이 여간 말리는 소리는 귀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거조를 차리는데, 온 집안이 다 모여든다.

헛잠 자던 남순이는 머리를 갉죽갉죽하며 일어나 앉았고, 헛가슴앓이 앓던 옥단이는 누워서 비비대기치던 머리를 쓰다듬지도 아니하고, 가슴을 훔키 어 쥐고 윗목에 들어섰고, 단잠을 깨서 일어나는 금홍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겁이 나서 벌벌 떨고 마루에 섰고, 나무 끝에 앉은 새같이 조심으로 보내던 이씨부인은 밤중에 야단나는 소리를 듣고 안방으로 건너오며 아니 나는 생각이 없다.

“무슨 야단이 또 났누. 내가 이 댁에서 아무 때든지 생벼락을 맞으렷다.

열번 찍어 아니 넘어갈 나무 없다더니, 옛말 하나 그른 것 없구나. 아버님께서는 그렇지 아니하시더니 무슨 모해를 들으시고 저리 하시누. 소금에 절고 장에 절고 절을 대로 절은 이 몸이 왜 살아 있어서 이것을 겪누.”

하며 안방으로 건너오는데, 비록 근심에 쌓인 얼굴이나 그 모양이 더욱 아름다운 태도가 보인다.

며느리 얼굴이 일색이니 절색이니 시아비 눈에 걸린다는 말은 상스러운 망발이지마는 홍참의가 , 그 며느리를 흘금 보다가 열이 상투 끝까지 났다.

무슨 까닭으로 열이 더 났느냐 할진대, 홍참의 마음에,

(저것이 인물값을 하느라고 남의 집을 망하였지. 조런 요물은 없애 버려야지…….)

싶은 그 생각에 열이 버썩 더 난 터이라.

며느리 토죄를 한다 하던 위인이 토죄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이 만만한 옥단에게 큰소리만 한다.

“이년, 너는 부르면 즉시 들어오지 아니하고 무엇하느라고 인제야 들어 오느냐. 네 다락에 들어가서 비상 있는 것 찾아오너라.”

본래 홍참의가 비상 비상하는 것음 몇 달 전에 고두쇠란 놈이 어디서 옴을 올리고 들어와서, 비부장이 옴이 안마누라에게 오른다던 말이 맞느라고 고두쇠의 옴이 옥단에게로 옮아서 그 옴이 안방 식구에게 흡삭 옮아온지라.

그 옴들을 떼느라고 원주 읍내 장에 가서 비상을 어찌 무식하게 사왔던지, 집안 사람들이 옴은 다 떨어졌는데 비상은 평생 두고 옴만 올려도 그 비상만 가지고 넉넉히 떼일 만하게 있는 터이라.

그 비상이 아무데도 쓸데없이 안 벽장 구석에 넣어 두었는데, 홍참의가 그 비상은 쓸데없이 된 물건으로 여기고 있던 차에, 별안간에 비상 쓸 일이 생겨서 비상만 들쩍거리고 있는 터이라.

여우같은 김씨부인이 홍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여보시오 영감, 영감께서 비상은 찾아 무엇하시려오? 영감께서 내 말을 좀 들으시오, 왜 이렇게 과격히 하시오, 옥단아, 비상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 비상 먹고 내가 죽겠다, 며늘아, 너는 네 방으로 갔다가 있다가 오너라, 금홍아, 너도 건넌방으로 좀 가서 있다가 오너라, 옥단아, 너도 좀 나가거라, 남순아, 너는 언니와 같이 건넌방에 가서 놀다가 오너라, 어서 어서.

왜 알찐알찐하고 아니들 가느냐.”

하며 사람을 낱낱이 쫓아 내보내고 안방에는 홍참의와 김씨부인과 단 둘뿐이라.

(부)“여보시오 영감, 어찌하려고 이렇게 하시오, 이리하실 것 같으면 내가 먼저 그 바상을 먹고 죽겠소.”

(홍)“어, 마누라도 딱한 말도 하오, 그러면 이 일을 덮어두어야 옳단 말이요”

(부)“요란스럽소, 조용조용히 말씀하시오, 내 말만 들으시면 좋을 도리가 있으니, 제발 덕분 내 말을 들으시오.”

하더니 홍참의 옆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홍차의 귀에 대고 무엇이라고 그리 수군거리는지 소곤소곤하는 대로 홍참의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부인이 홍참의를 무슨 말로 어떻게 꾀었던지, 열이 상투 끝까지 나서 날뛰던 홍참의가 아무 소리 없이 천연히 일어나서 사랑으로 나가더라.

이씨부인이 홍참의가 사랑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안방으로 건너가서 윗목에 우두커니 서서 김씨부인이 무슨 말 있기만 기다리고 섰는 모양인데, 금홍이도 안방으로 들어와 섰으나 차마 무슨 말을 못하고 죄지은 사람같이 또한 김씨부인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옥단이는 의구히 가슴 아픈 모양같이 눈살을 아드득 찌푸리고 한 손으로 가슴을 만지면서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기운 없는 목소리로,

(옥) “마님, 영감께서 무슨 일로 그렇게 걱정을 하셨습니까. 쇤네는 오늘 밤에 가슴앓이가 일어나서 죽도록 앓다가 불려 돌아와서 무슨 죄나 당한 줄로 알았더니 마님께서 잘 말씀을 하여 주셔서 쇤네가 죄를 아니 당하니, 오늘밤에는 마님 덕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쇤네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있으니 마님께서 좀 일러주십시오.”

(부)“네게는 당치도 아니한 일이다. 뉘게 당한 일이든지 내가 아니더면 오늘밤 내로 참 큰일날 뻔하였다.”

하면서 며느리를 쳐다보는데, 며느리는 사시나무 떨 듯 전신이 벌벌 떨려서 말을 못하고 섰더라.

죽어도 옳은 일에만 죽으면 겁은 반푼 어치도 아니 나는 금홍이가 김씨 부인 앞으로 다가서며 .

(금) “마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영감마님께서 그런 걱정하시는 것이 여간 일은 아닌 듯 하외다. 밤중에 건넌방 아씨를 부르시고, 쇤네와 옥단이까지 부르시고 비상을 가져오라 하시니, 쇤네가 죄가 있어서 쇤네를 먹여 죽이려 시든지, 아씨가 죄가 있어서 아씨를 먹여 죽이시려든지 무슨 죄인지 자세히 토죄나 하여 주시고 한시바삐 죽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죽일 죄가 있는 사람이야 어찌 살기를 바라며, 죄 없는 사람이면 나라에선들 어찌 애매히 죽일 수가 있습니까. 마님, 말씀을 좀 하여 줍시오, 무슨 일이든지 큰일이 있나 보이다. 영감께서 그렇게 대단히 거조를 차리시다가 마님께서 말씀을 잘 여쭈신 고로 일시의 분을 참으셨으나, 진노하시던 그 일이야 잊어버리실 리가 있습니까. 영감께서 잠시 잠깐 참으시고 덮어두시는 것보다 차라리 이 밤으로 죄 주실 일은 결말을 지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님 …….”

김씨부인이 다른 때 같으면 금홍이를 죽일 년 잡도리 듯이 고런 괘씸한년 보았나 조런 쳐죽여 , 놓을 년 보았나, 조런 버르장머리 없는 년 보았나, 네가 뉘 앞에서 그런 포달을 부르느냐 하면서 팔팔 뛰었을 터이지마는, 그날은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순하여졌는지, 며느리 노주에게 격연한 일이 있는지 헤헤 웃으면서,

(부) “누가 아니, 영감께서 하시는 노릇을…….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 옥단아, 너도 그만 나가 자거라.”

옥단이가 대답을 하는데, 나비야 부르면 고양이 대답하듯 가량스러운 목소리로,

“네 ─.”

하더니, 이씨부인을 건너다보며,

“아씨, 아씨께서도 건너가 주무십시오 금홍아, 너도 건너가 자려무나.”

이씨부인이 하릴없이 건넌방으로 건너가는데, 금홍이도 다시 무슨 말 없이 이씨부인을 따라서 건넌방으로 건너가고 옥단이는 행랑으로 나가더라.

그날 그때는 밤이 반 밤은 지났으나 그 이후라도 잠을 잘 것 같으면 한잠을 늘어지게 잘 터이나, 그날 밤에 그 집에서는 아무도 잠자는 사람은 없고 생각으로 밤을 새우는데, 한 가지 일을 가지고 생각은 다 다르더라.

김씨부인의 생각에는 그날 밤 일이 마음대로 잘된 것이 신통하고 내일부터는 원수같이 밉던 며느리를 아니 보게 될 터이니 시원하겠다 싶은 생각을 하느라고 잠을 못 자고, 옥단이는 고두쇠와 둘이 상전 속일 공론하며 이야기하느라고 잠을 아니 자고, 홍참의는 내일 밝기를 기다려서 며느리 조처할 생각으로 잠 못 들고, 이씨부인은 금홍이를 데리고 앉아서 마주보고 울며 밤을 새우는데, 그 밤이 어느 결에 새었던지 단구역마을 뒤뜰에 개똥 삼태기 메고나선 사람이 갔다왔다 한다.

홍참의가 먼동 틀 때부터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가만히 하는 말이,

“여보 마누라, 어젯밤에 마누라 하던 말이 좋기는 좋으나 내 입으로 고두쇠더러 말하기가 창피한 노릇이오그려…….”

(부인)“글쎄, 그도 그러하오, 그러면 내가 영감 말씀으로 옥단이더러 일러서 고두쇠에게 이르도록 할 것이니 영감께서는 아무 말씀말고 편치 아니 하시다 하고, 사랑에 손님이 오더라도 못 들어오게 하고 드러누워 계시면 영감 마음에 맞도록 하여 드릴 터이니 걱정말고 나가 계시오.”

홍참의가 그 말을 어찌 다행히 여겨 듣던지 고개를 끄덕하면서,

“옳지 그것 좋은 말이요, 나는 사랑에 나가서 있을 터이니 마누라가 얼른 잘 조처하여 주오. 자 그 일 조처하기 전에는 내가 아침 먹으러 들어오 지도 아니하겠소.” 하더니 사랑으로 도로 나가서 드러누웠더라.

김씨부인이 옥단이를 불러들이더니 좋아서 팔팔 뛰는 듯하는 모양으로 손짓을 하며 가만히 하는 말이,

“이애 옥단아 옥단아, 일 잘되었다. 건넌방 아씨 조처한 일은 영감께서 내게 다 맡기셨다. 네 이 길로 나가서 고두쇠더러 일러서 어제 네 말대로만 되게 하여라. 이애, 이 일이 정작이다. 낭패 아니 되게 하여라.”

(옥)“염려 맙시오, 쇤네가 맡은 일이야 범연할 리가 있습니까.”

하면서 살짝 나가더니 어찌 마음이 급하던지 제 행랑방문을 미처 열기도 전에 입이 딱 벌어지며,

“여보, 업쇠 아버지.”

하며 문을 펄쩍 여는데, 고두쇠는 그 일이 어찌되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옥단이 얼굴빛을 보고 겉으로 흥에 띄어서 드러누웠던 놈이 벌떡 일어나며 얼굴이 벌개지면서,

“응, 무엇을 그리 하나, 일 다 잘되었나. 에끼, 넨장, 돈은 없지마는 식전에 나가서 숱이나 한 잔 먹고 오겠네,”

(옥)“업쇠 아버지는 걸핏하면 술 소리만 하네. 오늘은 술 먹지 마오, 일 낭패하리다.”

고두쇠가 까닭 없이 흥이 더욱 나서 짓거리가 난다.

“요 방정맞은 여편네, 업쇠 아버지는 일생 업쇠 아버지란 말인가, 오늘부터는 날쇠 아버지라 하여 주게.”

(옥)“무엇을 낳아야 날쇠 아버지라지. 건으로 날쇠 아버지…….”

(고)“못 낳는 것은 태 탓인가, 자네 탓이지. 자식 잘 낳는 사람 같으면 암탉이 알 낳듯이 하루 하나씩 날마다라도 났을 터인데…….”하면서 흥김에 딴 홍이 나는 줄 모르게 나서 지껄이는데, 옥단이가 손짓을 하며,

“여보,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어서 어디 가서 교군꾼이나 불러오오.”

(고)“응, 교군꾼. 그래, 교군은 불러다가 어떻게 할 터인가?”

(옥)“에그, 답답도 하오, 어제 내가 말 아니합더니까.”

(고)“그래, 참 그 말대로 똑 그렇게 되었나?”

(옥)“그럼, 내가 하는 일이 범연할라구. 땅 짚고 헤엄하기지. 어서 나가서 교군만 얻어오오,”

고두쇠가 곰방대 탁탁 떨어서 잎담배 한 대가 타 타기 전에 교군꾼 두 놈을 불러왔는데 원래 , 홍참의 집에서 교군꾼 쓸 일이 있으면 교군은 할 줄 알든지 모르든지 아무 놈이나 함부로 붙들어다 시키는 터이라. 만일 교군을 할 줄 아느니 모르느니 하며 꾀를 부리려 하다가는 엎어놓고 볼기 때리기가 전례가 되었는데, 어떤 놈일는지 매 맞기보다 교군 하는 것이 낫다 하여, 그 동네 백성들은 그럭저럭 교군 질빵 한두 번씩은 다 메본 터이라. 그날 아침에 교군꾼으로 붙들려온 놈은 그 동네 중에도 교군에 제일 서투른 놈이라. 고두쇠가 교군꾼을 부르러 나서는 길에 누구든지 눈에 보이는 대로 불러오느라고, 식전참에 개똥 삼태기 메고 나선 놈을 그 삼태기 메인 채 데리고 들어왔더라.

옥단이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안방 지게문을 달각달각 잡아당기거늘, 김씨 부인이 가만히 하는 말이,

“옥단이냐, 어서 들어오너라. 그 문 걸리지 아니하였다. 왈칵 잡아당기려무나.”

“옥단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마님, 이때까지 주무셨습니까. 쇤네는 벌써 교군까지 불러왔습니다.”

(김)“이애, 내가 어젯밤에 잠잔 줄 아느냐. 그래 교군을 불러왔으면 밥도 아니 먹여서 보낸단 말이야.”

(옥)“에그, 마님께서는 별 걱정을 다하십니다. 언제 밥을 먹이고 있습니까. 쇤네가 들어올 때에 고두쇠더러 교군을 데리고 술집에 가서 술국이나 뜨뜻이 먹여서 데리고 오라 하였는데, 벌써 술들 먹고 왔겠습니다. 어서 아 씨를 나서게 합시오.”

옥단이가 이씨부인을 부르러 건넌방으로 건너가는데, 제 입으로는 이씨부인더러 말하기가 싫던지, 금홍이더러 말을 한다.

“금홍아 금홍아, 아씨 일어나셨니. 마님께서 여쭈시니 얼른 건너옵시사고 여쭈어라.”

하더니 문을 톡 닫고 나가더라. 이씨부인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겁만 나는지라 한숨을 쉬면서,

(이) “오늘은 또 무슨 야단이 나누. 금봉아, 너는 이불이나 개고 방이나 쓸어 두어라.”

(금)“어느새 방은 쓸어 무엇하게요, 쇤네도 건너가 보겠습니다.”

하면서 금봉이가 먼저 나서더니 살같이 건너가서 안방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김씨부인은 그 며느리로 알고 쳐다본즉 금홍이라.

부인이 소리를 바락 지르면서,

“누가 너 불렀느냐?”

하는 서슬에 금홍이가 깜짝 놀라서 도로 나오려 하는 차에, 이씨부인이 들어오면서 그 시어머니 얼굴을 건너다보다가 시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더라.

(김)“이애, 너는 사람을 몹시도 본다. 네 눈살에 주눅들려 못 살겠다.”

이씨부인이 생트집을 만나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다시는 쳐다볼 생의를 못하는데, 김씨부인이 며느리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보고 앉았다가,

(김) “남순아, 너의 아버지께서 왜 안에는 다시 아니 들어오신다더냐?”

(남)“나는 몰라.”

(김)“그래도 까닭이 있지 공연히 그러실 리가 있느냐.”

(남) “어젯밤에 언니 때문에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것을 어머니가 말렸다고 그러시지…….”

김씨부인이 팔팔 뛰며 독살을 부르는데 금방 칼이라도 물고 엎드러져 죽을 듯이 날친다.

(김)“나는 며느리 하나 위하여 주려다가 남편에게 소박데기까지 되 눈구나. 그래, 너의 아버지께서도 야릇한 성품이시지, 사람이 죽을 죄가 있더라도 용서하는 맛이 좀 있어야지,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떠들어서 비상을 먹여 죽이려 들으시니 내가 그 꼴을 보고 이 집에 있어야 옳단 말이냐. 그만두어라, 며느리도 친청으로 보내고 나도 이 집에 아니 있을 터이니, 그 후에는 너의 아버지께서 안에도 들어오실 터이요, 속도 시원하겠구나. 이애 며늘아, 너 여기 있지 말고 너의 친청으로나 가거라. 낸들 어떻게 하느냐, 네가 아니 갈 터이면 내가 어디로 가겠다. 옥단아, 네 나가서 고두쇠더러 교군꾼 둘만 얼른 부르고 가마 내어놓라고 일러라. 옥단아, 요년, 너는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아니하고 우두커니 섰느냐.”

옥단이가 행랑으로 나가더니, 마친 등대하였던 교군꾼 두 놈이 오그랑 벙거지를 숙여 쓰고 가마 한 채를 메고 옥단이를 따라 들어오더니, 가마는 마루 앞에 내려놓고 교군꾼이 슬쩍 돌아서며 엄지손가락을 떡 벌리더니 좌우 옆 어깨 밑에 뚝 떨어뜨려 멘 교군 질빵을 지긋지긋 눌러 보는 모양이 당장에 교군을 메고 나설 것 같은지라, 이씨부인이 어찌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망단 중에 눈물이 비 오듯하며 섰는데, 옥단이가 재촉을 하느라고,

(옥) “마님, 교군을 불러왔습니다. 아니 쓰실 터이면 도로 보내랍시오.”

김씨부인이 참았던 방정을 나는 대로 다 떠느라고 소리를 바락 지르며,

“누가 너희들 데리고 어린아이 장난하듯 기롱하는 줄 아느냐.”

하더니 방정 끝에 진정 말이 나오느라고 그 며느리를 건너다보며,오냐 그만두어라 “ , , 내가 너와 한 집안에는 있을 수 없다. 네가 아니 갈 터이면 내가 어디로 가겠다. 그래, 지체 좋은 재상의 딸은 시어머의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아니한단 말이냐.”

하면서 웬 담뱃대는 그리 길던지, 제 키만한 담뱃대를 들고 발딱 일어서며,

“옥단아, 교군꾼더러 교군 갖다가 이 앞으로 놓으라 하여라,양반 며느리를 당할 수 없어서 내가 못 살고 쫓겨가겠다.”

하며 마루로 나서니, 이씨부인이 기가 막혀서 원통한 말 한 마디 못하고 버선발로 마당으로 내려가서 교군 속으로 들어가는데, 옥단이가 뜰 아래로 나려서며,

(옥)“교군꾼, 자 얼른 모시오, 업쇠 아버지, 어서 모시고 가오.”

교군꾼이 앞채를 끼고 일어서는데 금홍이가 뛰어내려오더니 교군채를 붙들고 울며,

“아씨, 이것이 웬일이오니까, 아씨께서 시집살이를 못하시고 쫓겨가시더 라도 무슨 죄로 쫓겨가시는 곡절이나 아시고 가시는 일이 옳지, 별안간에 이렇게 가실 수가 있습니까, 어젯밤에 걱정 나던 일은 예사의 일이 아닌 듯 하오이다. 필경 아씨께서 죽어 마땅한 일이 있은 후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오니, 죽어 마땅하신 죄가 있으시거든 어떻게 돌아가시든지 당장에라도 돌아가시는 일이 옳고, 백 번 애매한 일이어든 죄 없는 발명이 되는 것을 보고 계신일이 옳습니다. 어젯밤에 영감마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든지, 오는 아침에 마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든지, 아씨께서 세상에 용납지 못할 허물을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 허물을 쓰고 돌아가시더라도 이 댁에서 돌아가시고, 사시더라도 이 댁에서 사셔야지. 이렇게 창황히 가시고 보면 아씨 허물은 벗을 날이 없습니다.” 하며 악을 쓰며 우니, 김씨부인이 팔팔 뛰며,

(김)“저런 앙큼한 년이 있나, 저런 쳐 죽일 년이 있나, 조그마한 년이 어찌하면 저렇게 담대한구, 요년 금홍아, 너는 법 없이 자라난 년이냐, 조년을 저대로 내버려두어서는 못쓰겠다. 고두쇠야, 네 조년의 아가리를 짓찢어서 기둥 밑에 잔뜩 비끌어 매어 놓아라.”

고두쇠는 본래 금홍이를 미워 죽으려 하던 놈이라, 무슨 곡절로 그렇게 미워하였던고, 평일에 금홍이를 보면 침을 꽤 흘리고 쫓아다니는데, 꼴 갈지 아니한 놈이 어울리지 못한 말로 지분거려 볼 적마다 핀잔을 보고, 손을 대인즉 뿌리치는지라, 금홍이는 그렇게 내대나 고두쇠는 종시 무슨 여망이 있을까 여겨서 기회만 있으면 지분거리더니, 필경은 바람의 돌부처도 못 볼 듯한 생각이 있은 후로는 저년이 언제든지 내 손에 한 번만 단단히 걸렸으면 저 얄밉던 원수를 갚겠다고 벼르던 터이라.

김씨부인의 영이 뚝 떨어지면서 고두쇠가 왈칵 달려들어 금홍의 머리채를 잡아 동댕이를 치더니, 다시 달려들어서 주먹으로 쥐어지르고 발길로 안기는데, 금홍이가 입으로 피를 뿜고 마당에 동그라졌다.

이씨부인은 교군 속에서 금홍이가 맞아죽는 줄만 알고 나가면서 감히 울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때때 느끼는 쇠가 교군꾼의 귀에 들린다.

교군꾼의 앞에 서서 서울 가는 편 길만 바라보고 가는데, 고두쇠가 뒤에서 쫓아오며,

(고) “여보세요 교군, 길 잘못 들었네. 내가 앞을 설 터이니 나만 따라오게.”하면서 달음박질하여 쫓아와서 교군꾼을 쭉 지르더니, 사람 그린 지전 몇 장을 꺼내 보이며 눈을 끔적끔적하니, 교군꾼들의 입이 떡 벌어지며,

“어, 두말 말고 어디든지 자네가 앞만 서게.”

하더니 이마에서 비지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쉬지도 아니하고 달아난다.한 고개 두 고개 훌훌 넘어가서 산 깊고 골 깊고 길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이씨부인이 교군 틈으로 내다보다가 겁나고 의심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고두쇠를 부르는데, 이씨부인이 고두쇠더러 접어가 처음이라.

(부)“여보게 업쇠 아범, 어디로 가느라고 이 흉악한 곳으로 들어오나? 가는 곳이나 좀 알고 가세.”

하는 말이, 철 아닌 꾀꼬리소리가 달달 떨려 굴러 떨어진다. 고두쇠가 갈범 같은 목소리로,

“네, 조금만 더 가면 좋은 길이 나섭니다. 염려 맙시오, 여보게 교군꾼, 어서 어서 펄쩍 모시게.”

(교군)“이 사람, 이밖에 더 어찌 급히 가나. 좀 쉬어나 가세.”

(고두쇠) “쉬기는 무엇을 쉰단 말인가, 쉬지 말고 어서 가세.”

(교군)“여보게, 교군을 시키며 이런 험한 길로 끌고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해가 낮이나 되도록 술 한 잔 아니 먹이고 사람을 이렇게 고생을 시킨단 말인가, 우리는 교군 못 모시겠네.”

하더니, 교군꾼이 교군을 내려놓고 달아나니, 고두쇠가 쫓아가는 모양이라.

고두쇠와 교군꾼은 어디로 갔는지 소식이 없는데, 이씨부인이 기다리다 못하여 교군 밖으로 나서 보니, 첩첩한 산중에 물소리는 그윽하고 낙락장송 휘어진 가지는 이리 뻗고 저리 뻗어서 이 솔가지 저 솔가지가 서로 깍지 끼듯 되었는데, 그 산속에서는 해그림자를 얻어 볼락말락 하고, 머루, 다래덤불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서 그때는 낙엽된 후이언마는 산골은 머루, 다래 덤불로 거멀장식을 하여 봉한 듯이 수풀 천지라, 그 덤불 속에서 범이 기침을 하고 나오는 듯 나오는 듯하고, 머리 위에 솔 그림자 속에서는 귀신이 휘파람을 불고 내려오는 듯한데, 이 산중에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라. 나이 젊은 양반의 여편네는 죽어도 얌전한 체만 하지마는 , 사람 없는 천지에 가면 얌전이 무엇인지, 부끄럼이 무엇인지, 하늘이나 땅만 보고는 얌전도 아니 나고 부끄럼도 없나 보더라.

이씨부인이 무섭고 설운 마음에 목을 놓아 울며 생넋두리를 한다.

“하나님, 여기가 어디란 말이요, 죽어도 죽는 곳이나 알고 죽읍시다. 하나님,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기 와서 이렇게 죽습니까, 죄가 있거든 마른 하늘에 벼락을 자끈자끈 쳐서 죽여 주셨으면 내게는 그런 적선이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사람을 이렇게 몹시 죽이십니까. 하나님 하나님, 내가 전생에 무슨 흉악한 죄를 가진 짐승이 되었든지 두 발가진 새가 되었든지, 지렁이, 굼벵이 같은 더럽고 작은 벌레가 되었더라도 자유로 활동하여 하루를 살더라도 근심 없이 살다 죽는 것이 좋을 터인데, 어찌하여 나는 만물의 신령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간에 다시없는 고생을 다하다가 죽을 때는 이런 몹쓸 곳에서 죽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나를 왜 낳아서 일평생 시집살이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몹시 죽게 하시오, 아버지……. 어머니……. 나를 낳으시거든 첫마디 ‘응아’ 소리날 때에 나를 폭 엎어 죽이시지 아니하고 고생길로만 넣어 주시느라고 홍참의 집 며느리가 되게 하셨소, 에그, 원통하여라, 고 여우 같은 시어머니가 나를 무슨 애매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이 산주에 내다 버리게 하누.미련이 뚝뚝 듣는 시아버지는 여우 같은 후취의 속살거리는 말에 폭 빠져서 무죄한 며느리를 이렇게 원통히 죽게 하단 말인가, 어젯밤에 온 집안 사람을 불러 세우고 비상을 찾을 때에 필경 나를 죽이려고 그러한 것이니, 차라리 그때 비상이나 먹여서 죽였으면 내 방 구석에 편히 드러누워 죽었을 터인데, 고 몹쓸 시어머니가 별 요악을 다 부리더니 이러한 흉계를 꾸미느라고 그리하였구나. 에그, 하늘 밑에 이런 흉악한 곳도 있던가, 범이 있든지 곰이 있든지 무슨 짐승일는지 얼른 나와서 날 잡아먹어라. 한 시를 더 살면 무엇하리. 살아 있을수록 겁만 나고 간만 녹는구나.”

이씨부인이 분하고 원통하고 겁나고 설운 마음에 하늘도 원망하고 친정 부모도 원망하고, 시부모에게는 못할 소리 없이 욕을 하며 우는데, 별안간에 수풀 속에서 웬 사람의 소리가 나며 뛰어나오더니 이씨부인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한다.

“여보, 걱정 마시오, 사람 살 곳은 곳곳마다 있습니다. 부인이 여기까지 오시게 되는 것도 하늘이 지어 주신 일이요. 절처봉생으로 여기서 나를 만나 신 것도 하늘이 지어 주신 일이니 사람이 하늘이야 어찌 거스르겠소, 여보, 참 희한한 일이요, 만첩청산에서 단 둘이 만나서 동방화촉 인연을 맺고 나를 따라 내 곳으로 갑시다. 나는 송도 사는 최치운이요.”

하며 홍김에 저 혼자 거드럭거리느라고 남의 눈치를 조금도 아니 보고 제 말만 하는데, 이씨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차려서 귀로 말을 들으며 눈으로 눈치를 보며 속으로 생각을 한다.

‘이놈이 웬 놈인고, 귀신인가 사람인가. 이러한 깊은 산에 천년 묵은 여우가 있어서 재주를 발닥발닥 넘어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을 홀리느라고 이리하나.’

십분 의심이 날수록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차릴수록 의심이 난다.

암만 자세 보아도 귀신도 아니오 여우도 아니라. 말하는 눈치를 보고 보니 말건 계집에 상성한 놈이라.

적실히 사람으로 알고 보니, 이놈이 어찌하여 내가 오늘 이 산중에서 이렇게 될 줄 알고 쫓아왔누 싶은 마음이 있다가, 다시 생각하니 이놈의 흉계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실은 생각을 깨달았더라.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여도 이 산중에서 저 몹쓸 놈을 만나서 옴치고 뛸 수 없는 터이라. 날개나 돋쳤으면 날아서나 도망을 할까. 힘이 세었으면 저 몹쓸 놈을 쳐 죽여서 한풀이나 하련마는, 섬섬약질이 내 몸이 하릴없이 저 놈에게 욕을 보고 죽을 터이니, 이런 철천지한이 어디 있을까 싶은 마음에 잠시 잠깐이라도 그놈이 얼른 달려들지 아니하도록 꾀를 피느라고, 웃으며 말도 하고 마음에 없는 허락도 하는 시늉을 하며 아무쪼록 이 산에서 욕을 보지말고 저 놈을 속여서 사람 있는 곳으로만 데리고 가면 나는 죽어도 욕을 아니 보고 죽을 도리를 하겠다 싶은 생각이 있어서 최치운이를 꾄다.

(부인)“여보, 두말 마시오. 낸들 이렇게 흉악한 곳에 와서 짐승의 밥이 될지, 굶어 죽을지, 첫 추위에 얼어죽을지 모르는 터에 사람을 만나 살았으 니, 그 은혜를 어찌 잊어버리겠소. 나를 이 산중에 내버리지 말고 데리고 가신 후에 계집을 삼으시면 계집 노릇을 할 것이요, 종을 삼으시면 종노릇을 할 터이니 어서 바삐 나를 데리고 내려가시오.”

최치운이가 이씨부인의 말을 자세히 들었는지 건으로 대답만 하는지, 부인이 한 마디를 하면 최치운이가 대답을 두 마디 세 마디씩 하며 부인을 어르고 달래느라고 또 제 말만 한다.

(최)“여보, 말이 났으니 말이지 부인의 처지를 내가 아는 터이요, 홍ㅊ참의 집 며느리 노릇을 하지말고 감옥서에 들어가서 징역을 하면 오히려 편한 터인데 그 고생을 어떻게 , 하셨소, 옛말에 고진감래라 하였으니, 부인도 그 말과 같이 고생하던 운이 다 진하고 좋은 일만 생기느라고 나 같은 사람을 만났소그려. 사람이라는 것이 고생을 말고 살아야 사람인 듯싶으지, 인간 고생을 혼자 맡아 가지고 일평생을 지내면 주리 한 바퀴를 얼른 틀리고 마는 것이 차라리 편할 터인데, 내가 들으니 부인은 시집살이 고생이 허다한 중에 또 부인의 남편 되는 사람이 만리타국으로 갔다 하니, 청춘 세월에 독수공방하는 그 팔자는 무슨 팔자요. 여보, 두말 말고 나를 따라가면 일평생을 호강으로 지낼 터이요, 우리 집은 송도서 남들이 첫째 쳐준다는 부자라 하나, 실상이야 나만 못한 형세가 어디 있겠소, 그리하나 홍참의 집 산다는 소문을 들으면 참 부잣집 개만도 못하겠습디다. 좀 들어 보시려오, 원주 읍내 푸줏간에서 일 년 열두 달에 홍참의 집에서 고개 한 칼 사 가는 것 못 보겠다 하니, 설마 젯날이야 고깃점이나 맛을 얻어 보겠지마는, 그렇게 먹고사는 재미가 무슨 재미요. 우리 집에는 열두 마리 개가 종일 뼈다귀로 사오. 말이 뼈다귀지, 사람이 갈비를 구워 먹어도 침만 바르고 내어놓지 누가 그질긴 것을 그리 잘 먹소. 자, 이 산에서 이렇게 긴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운 연분을 맺고 내 고향으로 가서 삽시다.

저 산모퉁이만 나가면 교군꾼이 기다리고 있소.”

하며 당장 그 자리에서 겁칙을 하려 드니, 부인이 피하려도 피할 수 없고 죽으려도 죽을 수도 없을 지경이라. 부인이 하나님을 부르며 운다.

“하니님 맙시사. 내가 이 산중에 와서 이 몹쓸 놈에게 이 욕을 보고 죽게 하신단 말이요.”

최치운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오늘 이때까지 헛애 쓰던 일이 분하게 생각하여 제 욕심 채움이나 하고 볼 작정으로 와락 달려들어서 부인을 얼싸안으러 드는데, 별안간에 고목나무 뒤에서 총소리가 탕 나며 웬 포수 하나가 튀어나오니, 이씨부인이 사람 살려주오, 소리를 지르거늘, 최치운이가 겁이 나서 달아나니 포수가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산골이 울린다.

“이놈 게 있거라.네가 가면 어디로 가겠느냐, 이 총이 천보총이다 ……. 한 발자국 들여놓고 약을 재고 한 발자국 내어놓고 방아쇠를 그으면 노루, 사슴, 토끼, 범이라도 자국을 못 떼고 떨어진다. 네가 몇 발자국이나 가서 내 철환을 받을 터이냐. 날따 길따 네 어디로 갈따.”

하면서 약 한 방울 어느 틈에 재었던지 총을 번쩍 들고,

“이놈, 철환 받아라.”

소리가 나더니, 그 말끝에 총소리가 탕 나면서 앞에 달아나던 최치운이가 폭 거꾸러진다.

하늘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려면 첫 동네라 할 만한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누구냐 할진대 , 치악산 꼭대기에 사는 장포수라. 장포수는 성이 장가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하고 평생 포수 노릇만 하여 먹고 산다 하여 별호가 장포수라. 미련하기도 첫째 갈 만하고, 고지식하기도 첫째 갈 만 하고, 총 잘 놓기로는 첫째를 칠 터인데, 만일 조선 포수를 모두 모아 놓고 완고 선생님이 꼬늘 지경이면 가상지상에 알관주를 칠 터이요, 개명한 학교 선생님이 시험을 받을 터이면 우등상이 될 터이라. 나이 삼십이 되도록 장가도 못 들고 오십여 세 되는 어미 하나와 단 두 식구가 사는지라. 치악산 꼭대기에 집을 짓고 낙이 무엇이냐 할 지경이면, 문밖이만 나서면 먹을 것이 그득하다.

만학천봉에 펄펄 뛰어다니는 길짐승을 보면 신이 나서 설설 기어 들어가서 총 한 방만 탕 놓으면 맛 좋고 기름진 짐승을 잡아 들여오는 터이라.

일 년이 이밥은 몇 번을 못 얻어먹고 도토리밥이나 감자밥만 먹고 살아도, 고기는 어느 날 어느 때에 아니 먹는 날이 없더라.

긴 총대 둘러메고 좌우 남날개 뚝 떨어뜨리고 석양판에 제 집으로 어슬렁 어슬렁 들어오며,

“어머니, 오늘은 별 사냥을 하였소.”

(노파)“호호호, 너는 참 사냥도 잘한다. 어느 날이든지 빈속으로 들어오는 날은 없구나. 참나무 장작불 피워 놓고 어서 구워 먹자. 오늘 배고프겠다.”

하면서 뒷짐을 지고 허리를 꾸부정하고 포수를 등뒤를 보더니 무엇이 그리 좋던지.

“호호호, 네가 사냥하러 간다더니 어디 가서 계집을 얻어왔구나. 에그, 얌전도 하다. 어서 이리 데려오너라. 좀 자세 보자.”

하더니 제 며느리나 본 듯이 좋아 날뛰며 며느리를 부르다가 아들을 부르다가, 나중에는 누구더러 하는 말인지 갈피를 알 수가 없이 횡설수설한다.

“이애, 네가 내 며느리 될 사람이로구나. 이애 며늘아, 시어미 꼴은 이렇다. 이애 딱쇠야, 너는 어디 가서 저런 고운 계집을 데려왔느냐”

하며 쉴 새 없이 말을 하는데, 딱쇠는 장포수의 이름이라, 그날 장포수가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홍참의 며느리가 곤란 당하는 것을 보고 천진의 분한 마음이 있어서 최치운이를 총으로 놓아 죽이고 홍참의 며느리를 데리고 제 집으로 온 터이라.

이씨부인은 부모 동생이나 만난 듯이 반가와서 따라왔더니 장포수 어머니의 하는 말을 들은즉 , 범을 피하여 곰의 굴로 들어온 듯한 생각뿐이라, 기가 막히고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섰는데, 장포수는 천진으로 말을 한다.

“어머니는 알지도 못하고 그러네. 누가 장가들려고 데려왔나. 어떠한 몹쓸 놈에게 붙들려서 욕을 볼 지경이라고 하나님을 부르며 우는데, 내가 마침 노루 자국을 쫓아 들어가다가 그것을 보고 그 여편네가 불쌍한 고로, 저 여편네 붙들고 날뛰던 놈을 총으로 놓아 죽이고 저 여편네를 데리고 왔소 그러나 그 여편네가 단구역마을에 사는 양반이라던 걸…….”

호랑이 이야기를 들어도 눈도 깜작거리지 아니하던 장포수의 어미가 단구 역마을 양반이란 말을 듣더니, 실쭉한 모양으로 뒷짐을 지고 서서 그 여편네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그 아들을 보며,

(노파) “단구역 마을 누구라더냐?”

(장) “홍참의라든지 박참의라든지,무슨 참의 며느리가 된다나 봅디다. 어머니, 참의니 수박이니 하는 양반을 어떤 양반이요?”

(노파)“호호호, 가엾어라, 홍참의 댁 며느리 되는 아씨가 어찌하여 저렇게 되셨나. 아씨 어서 이리 들어오시오.”

하면서 이씨부인의 손을 붙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방 속인지 굴 속인지, 컴컴한 속으로 들어가는데, 아무리 나무 흔한 산골이기로 불을 어찌 그리 많이 때었던지 찌는 듯한 더운 기운에 사람이 앉아 배길 수가 없는 중에, 거적자리 흙벽에서 냄새는 무슨 냄새가 그리 나던지 욕지기가 날 듯한데, 그렇게 더운 방 아랫목에 앉히더니 노파는 방문 밖으로 나가면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 아들을 손짓하여 데리고 어느 구석으로 간다.

이씨부인 이 더운 방에 앉아 배길 수가 없어서 문 밖으로 나섰더니, 어느 모퉁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늘 부인이 의심이 나선 버선발로 가만가만히 쫓아가는데, 장포수의 모자가 안방에 목소리 아니 들릴 만한 곳에서 말을 하느라고 뒷골목에 큰 고목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뒤로 돌아가서 말을 하는지라. 사람은 보이지 아니하고 목소리만 들리니, 부인이 감히 가깝게 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그 말을 엿듣는데, 그때는 날이 차차 어둡는 때라. 부인이 자취 없이 숨어 서서 말을 듣는다.

(노파)“이애 딱쇠야, 그것 참 이상한 일이로구나. 홍참의 며느리가 무슨 까닭으로 혼자 이런 산중에 들어왔단 말이냐. 네가 그 게집에게 속았나 보다.”

(포수)“누가 알수 있소. 홍참의 며느리라 하니 홍참의 며느리로만 알았지.”

(노파) “그렇지 아니하다. 그 계집이 정녕 도망꾼이다. 그래, 어떤 놈이 붙들고 날뛰더라 하니, 그놈은 누구란 말이냐?”

(포수)“낸들 알 수 있소”

(노파) “네가 눈치가 없어서 그것을 몰랐구나. 그 계집이 서방을 마다하고 도망질을 하다가 본서방에게 붙들려서 아니 가려고 울며 야단을 치는 것을 네가 잘못 알고 그놈을 총을 놓아 죽였나 보다.”

(포)“…….”

(노파)“아니다. 네가 잘못 알았다. 그러나저러나 양반이고 무엇이고 계집이 저 지경이 되면 온전한 계집은 아니니라.”

(포)“글쎄, 어머니 말을 듣고 생각하니 그런 듯하오.”

(노파)“이애, 그 계집을 길이나 잘 들여서 네가 데리고 살면 어떻겠느냐?”

(포)“글쎄, 그리하면 좋지마는 만일 홍참의 며느리면 큰일나게.”

(노파)“계집의 마음이 솔깃하여 살면 그만이지 누가 알기나 하겠느냐.

그년이 만일 너를 너무 싫다고 왜장을 치거든 총으로 놓아 죽여 없애 버리려무나.” 장포수가 그 말을 듣더니 욕심이 불같이 생기던지 입이 떡 벌어져서,

(포)“걱정 마오. 독 안에 든 쥐 같지. 제가 이 산중에 들어와서 어디로 도망을 하겠소.”

이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다가 겁이 어찌 나던지 도망을 하려고 발자취 소리 없이 어느 구석에 숨어 섰는데, 장포수의 모자가 할 공론을 다하였던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이씨부인을 찾느라고 법석을 한다.

노파가 흉측을 부리느라고 아씨를 부르다가 앞뒤로 돌아다니며 찾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며,

(노파) “이애 딱쇠야, 그년이 어디로 갔단 말이냐. 너는 애만 죽도록 쓰고 헛일하였구나. 글쎄, 그년이 우리 말하는 소리를 들었나 보구나. 그런 망한년 보았나. 저를 일껏 데려다가 뜨뜻한 방에 들여앉혔더니 무엇이 부족하여 도망을 한단 말이냐.이애. 일이 분하지 아니하냐. 그물에 걸린 고기를 놓쳤구나.”

(포수)“그년이 달아나면 얼마나 멀리 갔겠소. 내가 나가서 찾아 데리고 들어오리다.”

하더니 총 한 방을 재약하여 들고 나가면서 혼잣말이라.

“고 배라먹을 년, 어디로 갔누, 고년을 붙들어서 만일 아니 오려고 앙탈을 하거든 당장에 총으로 놓아 죽여 없애 버려야, 오냐, 너 같은 계집은 고사하고 범강장달이 같은 사나이도 이 밤중에 이 산중을 빠져나갈 놈은 없다 발 한 번만 헛디디면 . 해골도 못 찾을 곳이 몇 군데가 되는지 모르는 터인데, 네 따위 년이 가면 어디로 가, 고 여우 같은 년, 내가 고년에게 속았거든……. 홍참의 며느리니 무엇이니 하는 서슬에 생으로 조심을 하였지……. 그렇지 아니하더면 고년을 그때 그 자리에서 당장에……. 어 참 절통하거든.”

하면서 이씨부인을 찾아다니는데, 그때 다행히 어둔 밤이라, 이씨부인이 어느 바윗돌 위에 꼭 붙어 서서 장포수의 목소리를 다 듣고 있으나 장포수의 눈에 띄지 아니하였는데, 장포수의 어미가 횃불 하나를 들고 나오더니, 이씨 부인 숨어 있는 바위 앞으로 향하여 온다.

만일 그 산에서 조금만 발씨가 익은 사람 같으면 숨바꼭질하듯 숨어도 찾기가 썩 어려울 터이지마는, 그 부인이 그런 험한 산은 이야기도 못 듣고 자라난 여편네라. 장포수 집을 피하여 도망할 욕심으로 뛰어 나서기는 하였으나 어둔 밤 험한 산에 어찌 달아날 생각을 할 수는 있으리요. 그러나 당장 붙들릴 지경에야 다만 한 발자국을 떼어놓다가 불들리더라도 달아날 수밖에 없는 터이라. 부인이 횃불 오는 것을 보고 기를 쓰고 달아나다가 횃불 든 노파의 눈에 띄었더라.

노파가 횃불을 번쩍 들고,

“예 있다, 저리로 달아난다. 딱쇠야, 얼른 가서 붙들어라.”

하며 소리를 지르는데, 부인이 제 정신이 있고 달아나든지 정신 없이 달아나든지, 여간 남자도 감히 발을 붙여 볼 생의를 못할 험한 곳으로 달음박질하다가, 그곳이 어떻게 된 곳인지 낭떠러지로 한 발을 헛디디며 내리굴러 떨어진다.

횃불 든 노파는 부인을 쫓아가느라고 제 앞만 보다가 부인 간 곳을 잃고 딴 데로 향하여 가다가 횃불을 들어 딱쇠를 주며,

“이애 이애, 그년이 저리 갔다. 네가 이 횃불을 들고 얼른 가서 붙들어오너라.”

딱쇠가 미처 대답할 새가 없이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으로 횃불을 얼른 받아들더니, 눈에 보이는 물건 집으러 가듯이 살같이 빨리 쫓아가는데, 원래 산에서는 다람쥐같이 날쌘 놈이라. 흥은 무슨 흥이 그리 나던지, 흥김에 정신을 잃었던지 한참을 달음박질하다가 횃불이 툭 꺼지며 지척을 불변이라.

딱쇠가 제깐에도 어림없는 짓 한 줄 알고도로 제 집으로 가려 하나 어디 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는지라. 처음에는 소리를 나직나직하여 어미를 부르다가 대답이 없으니 마지못하여 군호 소리를 크게 냅뜨다가 원래 짐승 많은 산중이라 겁이 더럭 나서 아무 소리 못하고 어림치고 제 집을 찾아가는 데 발길 돌려놓는 곳이 , 한 치만 틀려도 향하여 가는 곳은 어림없이 틀릴 터인데, 딱쇠 가는 발길은 여간 한 치만 틀려놓은 것이 아니라 사뭇 틀려놓은 모양이라.

아무리 산에서 잔뼈가 굵은 놈이기로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한 어둔 밤에 치악산 중에서 길을 잃고 겁이 아니 난다는 장사가 없을지라. 쳐다보면 하늘에 닿은 듯한 높은 산봉우리 봉우리요, 내려다보면 천 장 만 장 되는 구렁텅이 구렁텅이라. 갈 바를 알지 못하여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향방을 찾는 데, 어디서 더운 기운이 확 끼치면서 머리끝이 쭈뼛쭈뼛하여지는데, 딱쇠가 그런 겁결에도 제 장기대로 총 방아쇠에 화승불을 박아 들고 급히 숨을 곳을 찾다가 마른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면서 손가락이 방아쇠 걸쇠를 잡아 당겼는데, 방아쇠가 뚝 떨어지며 총소리가 탕 난다.

마침 그 옆에 범 한 마리가 엎드렸다가 사람의 발자취를 듣고 튀어나오려다가 바람결에 화승 내를 맡고 바위 돌 옆에 납죽 엎드리던 터이라 딱쇠의 헛총이 터지면서 공교히 그 철환이 범의 허리를 맞춘지라. 천 근 대호가 선불을 맞고 왈칵 달려들어서 딱쇠를 물어 죽였는데 치악산 중에 유명한 일방 포수가 호랑이의 밥이 되었더라.

강원도 금강산 백운사의 수월당이라 하는 중은 나이 칠십이 되도록 몸에 벼룩 한 마리 잡아 죽여 본 일없는 도승이라. 인간에 허다한 사람을 모아 놓고 제일 천진의 사람이 누구냐 할 지경이면 아마 수월당보다 더한 천진이 없는 터이라. 그러나 중의 정도로는 조금 무식한 축으로 가는 고로 이름은 높이 나지 아니하였으나, 제 마음에는 이생에 도를 닦아서 후생에는 정녕 부처님이 될 줄만 알고 있는 중이라. 산삼을 얻어먹었는지, 본래 기운이 그렇게 좋던지, 동지섣달에 눈이 길길이 쌓인 때 먼 길을 곧잘 다니는 사람이라. 십삼 도 강산을 문턱 밟듯 다니면서 구경을 하였는데, 나이 칠십에 또 무슨 구경을 하러 나섰던지 원주 치악산 구결을 들어갔더라.

사람이 수가 좋으면 여간 짐승 낱이나 있는 곳으로 쏘다녀도 관계치 아니 하던지, 수월당이 칠십 년을 산에서 늙고 산으로만 쏘다녀도 짐승 무서운 줄을 모르고 다녔는데 어림없이 믿는 것이 있더라.

힘이 세서 힘을 믿는 젓도 아니오, 짐승 제어하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라. 부처님 영험으로 짐승이 감히 못 덤비는 줄로 여기고 있는 터이라.

걸음을 걸으면서 염불에 골똘하여 길을 읽고 향방 없이 갈팡질팡하는데 석양은 말 없이 넘어가고 산은 만학천봉이다.

만일 범상한 사람 같으면 기가 딱 막혔을 터이지마는, 어림없는 수월당은 일생 믿는 부처님 영험을 믿고 겁은 반 푼어치도 아니 내나, 길 없는 험한 산에서 밤은 되고 날은 춥고 허기는 잔뜩 져서 어찌할 수 없는 터이라. 나무아미타불을 불러도 배는 배대로 고프고 날은 날대로 저물고 춥기는 점점 더 추워지더니 나중에는 염불할 경황도 없는지라. 가만히 앉아서 밤 지내기만 기다렸으면 좋으련마는, 앉으면 더 떨리는 고로 서서 어정어정 다니다가 어느 비탈에 내리구르는데 그 비탈은 과히 위태한 비탈은 아니오, 사태 내린 황토이라. 한 길쯤 되는 구렁텅이 속으로 굴러 들어가며 웬 여편네의 몸뚱이와 마주 부딪치며 마주 소리를 질렀더라.

그 여편네는 이씨부인이라. 부인이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질 때에는 죽는 줄만 알았더니, 그 속에 들어가 보니 아늑하기가 이를 것 없는데 몸도 다치지 아니한지라. 부인이 잠시 동안이라도 장포수에게 붙들리지 아니하는 것만 다행히 여겨서 그 구렁텅이 속에 가만히 웅그리고 앉았던 터이라.

중이 굴러 떨어지는 것을 이씨부인은 장포수로만 알고, 이제는 붙들렸다 싶은 마음에 설움이 북받쳐서 울음이 나오는데, 이씨부인 같이 얌전한 터에 그렇게 망측하게 악을 쓰며 울기는 뜻밖이다.

(부이)“애그, 이 몹쓸 놈에게 붙들렸구나. 이년의 팔자가 무슨 팔자란 말이냐. 충신과 열녀의 마음은 가마솥에 기름을 끓이고 그 속에 집어넣으며 항복을 받으려 하여도 못 받는 것이라. 나를 기름에 졸이든지 칼로 저미든지 내마음은 못 빼앗을 터인데, 이 몹쓸 놈이 내 마음은 못 빼앗고 내 몸을 빼앗으려 드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이냐. 이놈, 이 몹쓸 포수놈아, 네가 우악한 힘을 믿고 내 몸을 억지로 욕을 보이고 네 욕심 채움을 하려거든 그 자리에서 네 총으로 나를 놓아 죽여다오. 만일 그 자리에서 나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네 집에 있는 화약 뭉텅이로 너의 모자를 불씨를 묻게 할 터이다.”

하며 산골이 울리도록 악을 쓰며 우는데, 생불 같은 수월당이 그 소리를 들을수록 이상하다 하는 마음이 있어서 가만히 앉아 듣다가 염불을 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저물도록 하는 소리가 그 소리 뿐이라.

이씨부인의 마음에는, 저놈이 달려들어서 이 자리에서 나를 욕을 보이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제 집으로 끌고 가서 욕을 보이리라 싶은 생각뿐이라.

욕은 본 셈 잡고 설운 생각만 하고 우는데, 중의 염불도 그치지 아니하고 부인의 울음도 그치지 아니한다.양반이 대단한 것이니 무엇이 대단한 것이니 하여도 사람의 평생 공부한 심력같이 대단한 것은 없는지라. 수월당이 추운 것도 잊고 배고픈 것도 잊어 버리고 염불만 하는데, 밤이 새도록 그칠 줄을 모르는지라. 필경은 얌전하고 또 얌전한 양반의 집 젊은 여편네가 먼저 냅뜬다.

(부인)“여보, 웬 사람이요? 나는 포수가 나를 쫓아 들어온 줄로만 알았더니 포수가 아닌가 보구려. 누구요, 말 좀 자세하오.”

수월당이 그 소리를 듣는지 못 듣는지, 입에서 나오느니 나무아미타불 소리뿐이라.

부인이 도리어 이상한 마음이 나서 가만히 그 동정만 본즉, 대체 포수는 아니오, 늙은 중인 듯싶은지라.

(부인)“여보 여보, 말 좀 물어봅시다. 염불하는 소리를 들으니 아마 어느 절 대사인가 보구려. 관세음보살님이 인간에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려고 자비심 많고 도덕심 깊은 대사를 보내셔서 나를 살려주라 하시더니까.

나는 아무 죄 없이 사람이 겪지 못할 고생을 하다가 그 고생도 내게 과분하던지, 험한 산중에 들어와 이 고생을 하고 있소. 여보, 날 좀 도와주오.”

하면서 비는데, 수월당이 염불을 그치고 가만히 앉았다가 부인더러 자세한 말을 물으니, 부인이 일장 설화를 시작하는데, 그 말을 마치지 못하여 동방에 날이 새더라.

천하에 기이한 산은 우리나라 금강산이라.

희고 흰 산봉우리는 옥으로 빚은 듯이 결백한데, 그 속에는 아마도 신선이 있든지 생불이 있든지, 인간에 없는 것이 저 속에는 있거니 의심할 만하게 된 곳이라.

일만이천봉이 하늘에 닿듯이 높이 솟았는데 구름이지 산인지 그림인지 얼론 보고는 자세 알 수 없는 곳이라.

그 산에 구경이 좋다고 글 짓고 노래하고 술 먹는 구경꾼들이 어느 봉에 발자취 아니 간 곳이 없는 터이라.

그러한 명산 중에 근래 별 구경 하나가 생겼더라.

신선도 아니오 생불도 아니라, 새파란 젊은 여승 하나가 생겼는데, 어떠한 일색이던지 여간 돌중들은 그 승의 얼굴 한 번만 본 후에는 염불을 하여도 정신 없이 하고, 잿밥을 먹어도 맛 모르고 먹고, 잠꼬대를 하여도 승의 이야기를 하고, 경쇠를 치려면 법총의 대강이를 두드린다.

그러나 그 승은 사람이 옆에 지나가도 거들떠보지도 아니하는 승이라. 옛말에 승각시 하더니, 그런 쌀쌀한 승각시는 세상에 없는 터이라. 어떤 젊은 중놈들이 건으로 그 승을 보러 다니느라고 날마다 그 승방 우물 길 근처에서 빙빙 돌다가 그 승이 , 우물가에 나오는 것을 보면 동지섣달 추운 때에도 냉수 한 바가지씩 얻어서 벌커덕 먹고 가는데, 또 다른 중 한 놈은 그 승방 근처에 와서 돌기는 도나 정작 승이 우물가에 나오는 것을 보면 숫기가 좋지 못하여, 얼른 가서 먹을 물 좀 달라 소리도 못하고 남에게 발등을 디디어 빼앗기고 도리어 슬슬 피하여 간다. 냉수 바가지나 족히 얻어먹은 놈의 이름은 혜명이요, 냉수 한 바가지도 못 얻어먹은 놈의 이름은 강은이라. 혜명이가 냉수를 켤 때마다 강은이는 눈꼴이 틀려서 혜명이를 벼르고 가더니, 제 동무들에게 말을 내되, 혜명이 가 일색승년과 어우러져서 연놈이 죽자 사자 한다, 내 눈에 세 번이나 들켰다, 어제 저녁에 해지고 어스러할 때에 혜명이가 그 승년을 끌고 법당으로 들어가다가 내게 들켜서, 혜명이는 산으로 올라가고 승년은 판도방 부엌으로 들어가더라 하며, 보는 사람마다 그 말을 하였는데 세상에 그 소문같이 빨리 나는 소문은 없는 것이라. 한 입 건너 두입, 두 입 건너 세 입이라.

불과 며칠 동안에 금강산 모든 절이 들썩들썩하도록 그 이야기뿐이라. 변으로 알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거니와, 혜명의 일이 부러워서 침을 꽤 흘리고 말하는 중도 많이 있는데, 어찌하였던지 그 소문이 너무 왁자하여 해명이 있는 절에서는 혜명이를 벌을 주어 내쫓고, 그 승 있는 승방에서는 승을 벌을 주어 내쫓는데, 혜명이와 강은이가 무릎맞춤이 되어서 혜명의 발명이 되려니 하였더니, 그 몹쓸 강은이란 놈이 혜명이더러 하는 말이,

“이놈아,너도 사람이지, 그 승년이 우물에 갈 적마다 네가 쫓아다니던 것은 나만 보았느냐. 오냐,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소월당 스님 생신 날 그년이 소월당 스님을 뵈옵고 오는 길에 네가 그 승방 근처에 숨어 있다가 그년을 법당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하 밉살스럽기에 기침 한 번을 하였더니, 승년이 네가 붙든 손목을 뿌리치고 판도방 부엌으로 들어가며 눈깔이 흰 죽사발 같이 나를 흘겨보며 가고, 너는 산으로 비슥비슥 올라가며 나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다가 넘어지던 생각을 못하느냐. 에끼 못된 놈, 그까짓 것을 하다가는 아무 때든지 부처님께 벌역을 입을라.”

하는 소리 한 마디에, 혜명이는 무슨 말을 하든지 여러 중이 딱딱 으르며 꾸짖으며 경계를 하더니 필경은 내쫓겼더라.

하지도 못하고 무엇에 무엇 묻힌다는 상소리가 있더니, 혜명 같은 중은 헛소문만 떡 벌어져서 벌을 당하고 쫓겨가니 그런 원통한 일이 없을 터이나, 그러나 그놈은 제가 허덕거리던 죄나 있으니 불쌍할 것이 없거니와, 혜명이와 눈이 맞았느니 배가 맞았느니 하고 늙은 승, 젊은 승이 모여 앉아서 벌을 쓰고 내쫓는 것을 당하는 승의 사정이야 참 불쌍하건마는,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고 ‘그년 그년’하며 욕하는 사람뿐이라.

그 승의 이름은 수은이고 속성은 이가인데, 머리 깎고 승 된 지가 불과 수삭이라. 그 승의 가문이 어떠한지 사람이 어떠한지 대강 짐작하는 사람은 수월당 하나뿐인데, 대체 그 승은 원주 단구역마을 사는 홍참의 며느리라.

치악산에서 죽을 것을 수월당의 은혜로 살았다고, 수월당이라는 수자와 은혜은자로 이름을 지은 터이라. 얼음 같은 마음에 행실 부정하다는 말을 듣고 절에도 못 있고 쫓겨가는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죽고 싶은 마음뿐이라.

죽든지 살아서 어디로 가든지 수월당이나 마지막 가서 보리라 하고 수월당을 보러 갔다.

(승)“수월 스님, 소승은 죄 없이 죄명을 쓰고 소승이 승방에서 벌을 받고 쫓겨가는 길이올시다.”

(수월)“나무아미타불, 미련한 인간은 애매한 말을 하더라도 밝으신 부처님은 무죄한 줄 아실 터이니, 사람이 평생에 제 마음만 옳게 가지면 그만이지 무슨 걱정하시오.”

하면서 눈을 내리 감고 가만히 앉았는데, 수은의 마음에는 수월당을 보면 부모나 본 듯이 원통한 말을 하려 하였더니 수월당이 말이 불과 그뿐이라.

더 앉아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나, 수월당이 눈감고 앉았는 것을 보더니 더 앉았을 마음도 없는지라. 수은이가 그 길로 나서서 절 동구로 나가는데, 먹바지 먹저고리에 먹행전 돋우치고 바랑 짊어지고 송낙 수그려 쓰고 절 동구 밖으로 나가는 뒷모양은 중인지 승인지 언뜻 보며 모르려니와, 꽃 같은 얼굴과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어디로 가든지 여편네 태도를 감출 수 없을지라. 빈 산 그윽한 길에 갈 곳 없이 가는 수은이가 혼자 나서서 아장아장 걸어가며 걸음걸음 생각이라.

기막힌 팔자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오, 첩첩한 설움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오, 마디마디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둘은 속인이요, 둘은 중이라.

정이 들어 보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같이 미워서 생각이 난다. 속인은 최치운이와 장포수요, 중은 혜명이와 강은이라. 진저리가 부득부득 치이고, 이가 박박 갈리도록 생각이 나는데, 등뒤에서 그런 몹쓸놈이 쫓아오는 듯 오는 듯하여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겁이 나는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 혼자 나서서 어디로 가든지 그런 놈에게 필경 욕을 볼 것 같은지라, 차라리 진작 죽어서 욕도 보지말고 이런 고생도 아니하는 것이 편하다 생각하고 죽기로 결심하였더라.

물에 빠져 죽자 하나 산중에 깊은 물도 없고, 약을 먹고 죽자 하니 내 몸에 먹고 죽을 약도 없는지라 . 생각다 못하여 고목나무에 머리나 쾅쾅 부딪쳐 죽으려고 나무 밑으로 가 서서 생각하니, 한 번을 부딪쳐서 얼른 죽으면 좋으련마는, 아프고 지겨운 마음에 설부딪쳐서 얼른 죽지도 못하면 그 고생을 어찌하리 싶은 마음이 나서 부딪치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사면을 휘휘 돌아다보니, 산은 구름 같고 구름은 산 같은데, 바람결에 들리는 것은 먼 절의 종치는 소리라.

수은이가 쇠북 소리를 듣다가 눈물을 씻으며 혼잣말이라.

“에그, 그 소리야 한가도 하다. 불붙듯하는 이 내 간장이 저 소리 한 마디에 서느렇게 다 식는다. 원수를 맺고 맺어 가슴에 쌓인 원망 수미산같이 크던 것이 바람결에 구름 슬 듯 스러진다. 시어머니 원망말고 내 팔자 한탄할 일이로다. 나도 전생에 우리 시어머니같이 악한 마음을 먹고 악한 일을 많이 많이 하였기로 이런 죄를 받는 것이라. 미련한 인간이 제 죄는 모르고 하나님 원망하는 것이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이라. 오냐, 죽지말고 좀더 살았다가 고생을 더하고 전생 죄악을 다 벗은 후에 죽어서 연화세계로는 못 갈지라도 후생에나 복을 많이 타고 나고지고. 나무아미타불, 일월도 다 밝으신 부처님의 마음, 하늘보다 높으신 부처님의 도덕, 일체 중생을 크게 사랑하시고 크게 슬피 여기시는 부처님께서 소승을 도와주소서. 소승이 어디로 가든지 욕만 보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시면 이 몸이 이 생에 겁계를 지낼 대로 지내고 부처님 도를 닦을 대로 닦아 보겠습니다. (이 몸이 이 생에 착한 일을 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해에 이 몸을 건너보리 한 뜻이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소승이 이 절에서 애매히 쫓겨나서 부처님께 하직하고 다른 절로 갑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적막한 빈 산주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가만가만히 염불을 하면서 산을 내려가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깍깍 짖으며 빙빙 도니, 고생 많이 한 수은이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슈어 소리를 하다가 까마귀가 무엇을 뚝 떨어뜨려서 수은의 얼굴에 내려지는데, 얼굴이 선득하며 평생에 맡아보지 못하던 흉악한 냄새가 코를 칵 찌르는 듯하거늘, 수은이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손으로 얼굴에 떨어진 것을 집어 버리는데 무슨 썩은 창자이라.

수은이가 코를 찡그리고 진저리를 부득부득 치며 세수할 물을 찾아다니나 그 근처는 물도 그리 귀한 곳일는지, 한참을 돌아다녀도 물을 찾지 못하고 길 없는 깊은 골로 내려서서 갈팡질팡하는데, 그 고약한 냄새가 새로이 코를 칵 찌르는 듯하거늘 수은이는 제 얼굴에서 냄새가 그렇게 나는 줄만 알고, 걸음을 걸어도 얼굴에 창자 떨어지던 생각만 나서 한눈을 팔고 가다가 발 밑에 무엇이 물큰 밝히는데 ,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그것도 무슨 창자이라. 에그머니 소리를 지르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옆을 돌아다보니, 웬 송장 하나가 있는데, 까막까치가 오장을 파헤쳐서 끔찍하여 볼 수가 없는지라.

꿈에 보일까 겁이 나서 고개를 외로 두르고 달아나는데, 대체 언뜻 보아도 송장은 남자의 송장이라. 일부러 길을 찾으러 들었으면 애를 어떻게 썼을는 지 몰랐을 터이나, 정신 없이 가는 길에 길 바로 들어서 해동갑하여 가다가 개 짖고 연기나는 조그마한 동네를 찾아 들어가니, 몇 집이나 되는 동네인지 건성드뭇한 마을집이 띄엄띄엄 박혔는데, 어느 집일는지 이웃집 모르게 떡하여 먹기 좋을 만하게 된 집들이라. 수은이가 어느 집이든지 찾아 들어가서 하룻밤 잠이나 자고 아침, 저녁 밥 두 끼만 얻어먹고 갈 작정인데, 어느 집으로 들어가면 좋을지 몰라서 주저하다가 아무 집이나 들어갈 작정으로 어느 집으로 향하여 가다가 차마 못 들어가고 도로 돌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길 아래 웬 우물이 있는 것을 보고 우물가로 내려간다.

사람이 빠지더라도 반 길이 될락말락한 우물인데, 뒤턱은 높고 앞턱을 낮아서 낮은 편으로 물이 넘쳐서 밤낮 쉬지 아니하고 줄줄 흘러 내려가는 물이라. 수은이가 그 우물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세수를 하다가 우물을 내려보고 정신 없이 우두커니 앉았더니, 홀연히 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지며 혼잣말이라.

“에그 , 저것이 내 그림자인가. 내가 이 모양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꼬.

우리 아버지가 평안감사로 계실 때는 내가 어리고 철모를 때라. 내가 선화당에 눌러 나갔다가 영명사 중이 우리 아버지께 문안하러 온 것을 보고 내가 무서워서 울었더니 통인이 중이 내쫓던 생각이 지금도 의회하게 나는구나. 에그, 또 한 가지 생각나는 일 있다. 내가 평안 감영 선화당에서 꾀꼬리가 우는 소리를 듣고 저 꾀꼬리 잡아 달라고 아버지께 응석을 하며 떼거리를 썼더니, 아버지께서 통인을 돌아다보시면서, 저 꾀꼬리를 잡아다가 아기 주어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뚝 떨어지며 통인이 능청스럽게 ‘네’ 하며 나가더니 금세 다시 돌쳐 들어오면서 꾀꼬리를 잡으라고 일렀습니다 하더니, 그날 해지기 전에 눈이 또렷또렷하게 산 꾀꼬리를 잡아 들여왔는데, 우리 아버지께서도 꾀꼬리를 참 잡아올 줄은 모르셨다고 말씀하시던 그 생각도 나는구나. 그렇게 기구 있던 평안감사의 무남독녀로 있을 때에 내가 귀염은 어떻게 받았으며 호강은 어떻게 하였던고. 그렇게 자라나서 이렇게 되었으니, 세상에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라. 친정 부모에게 나같이 귀염받던 사람도 없을 것이요, 시부모에게 나같이 미움받은 사람도 없으렷다 단구역마을 홍참의 . 집 대문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을 교군에 담아서 그 흉악한 치악산에 갖다 버릴 때에 내 마음이 어떠하며 내 고생이 어떠 하였던고. 에그, 내가 겪은 일을 생각할수록 소름이 죽죽 끼치고 진저리가 부득부득 치이는구나. 오냐, 호강을 하였든지 고생을 하였든지 지낸 일은 꿈같이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이후에는 또 무슨 고생이 남았는지 생각을 할수록 그것이 근심이라. 에그, 앞일도 앞일이어니와, 오늘 저녁에 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뉘 집에 가서 잠을 잘꼬.”

수은이가 그 생각을 하다가 기가 칵 막혀서 목이 메어 울며 설운 사정이 새로이 나온다.

“고생도 분수가 있지. 내가 밥까지 빌어먹으러 다닌단 말이냐. 오늘 낮에 죽고 싶은 생각이 나서 죽으려다가 아니 죽은 것이 내 생각이 잘못 들었구나. 하늘이 죽어라 죽어라 하신 내 팔자가 아니 죽고 살아 있으니 무슨 고생을 아니하리. 오냐, 눈 꿈쩍 죽으면 이것저것 모르고 내 신세에 편할 것이라. 내가 죽어도 잊히지 못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라. 친정 부모의 은혜를 못 잊는 것도 아니오, 남편의 정을 못 잊는 것도 아니오, 시부모에게 야속한 마음을 못 잊는 것도 아니오, 최치운이와 장포수에게 겁나던 마음을 못 잊는 것도 아니오, 혜명이와 강은에게 미운 마음을 못 잊는 것도 아니라. 자나깨나 눈에 선하게 생각나는 일은 홍참의 댁 마당에서 고두쇠란 놈이 그 무지한 발길로 금홍이를 퍽퍽 걷어차던 그 모양이라. 불쌍하다 금홍이, 참혹하다 금홍이, 죽었는가 살았는가, 오냐, 살았으면 다향하고 죽었으면 저승에 가서 만나리라.”

하더니 웅그리고 앉은 채로 눈을 깍 감으면서 우물 속으로 뚝 떨어지는데 물 속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조선 천지에 사람 많이 사는 곳은 장안 성중이라. 체바퀴같이 둥그렇게 둘린 성 가운데 흩어진 바둑같이 총총 들어박힌 것이 사람의 집뿐이라.

고래등간이 큰 기와집도 있고, 달팽이같이 작은 초가집도 있고, 금의옥식을 주체 못하는 부잣집도 있고 생쥐 볼가심할 쌀 한 톨 없는 가난뱅이 집도 있는데, 대체 누구를 도와주려고 그리 따뜻하든지, 섣달 초승이 되도록 물 한 방울 아니 어는 겨울이언마는, 나무 비싼 돌구멍 속에 가난한 사람들 은 삼척 냉돌에 굶어 들어앉아서 얼어 죽느니 배고파 죽느니 하며 부잣집 사람을 보면 신선으로 알고 있더라. 돈이 자가사리 끓듯하고, 남종, 여비가 구더기 끓듯하고 , 청지기, 문객이 줄남생이 따르듯 하는 재동 이판서 집은 누가 보던지 저 집 지니고 있는 사람은 무슨 복을 타고나서 저런 호강을 하누 하며 부러워한다.

이판서 집 안방은 말이 안방이지, 허다한 사랑 꾸미듯 하였는데, 안주 수병 둘러치고 화류 문갑 나란히 놓고 갖은 문방 제구에 우리나라 물건과 서양 물건을 간간이 섞어 놓고, 매화분 위에는 파란 새 한 쌍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벽에걸린 자명종은 오후 다섯시를 땅땅 치는데, 아랫목 몽고 요 위에 앉은 부인은 주인 정부인이라.

그 부인은 평생에 호강만 하고 지낸 터인데, 언뜻 보면 젊은 부인 같으나 자세 보면 얼굴에 잔 살이 많이 잡힌 중늙은이라 대체 누가 보던지 저런 부인 이야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며 부러워하는 사람뿐이라.

그러한 그 부인이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울다가 기가 막혀서 까무러쳤는 데 온 집안이 눈이 둥그래지며 야단이라.

주인 이판서가 사랑에서 들어오는 길로 안방 한가운데 딱 서서 까무러친 정부인을 물끄러미 보니, 부인의 좌우 옆으로 지네 발 달리듯이 늘어 앉았던 계집종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윗목으로 나오는데, 이판서가 아랫목으로 들어가 앉으며 계집종 하나를 부른다.

“금홍아, 이리 가깝게 와서 이야기 좀 자세하여라.”

금홍이가 고개를 수그리고 눈물을 씻으며 윗간으로 나가다가 아랫간으로 돌쳐 들어오는데, 본래 금홍이가 밤벌레같이 살이 찌고 복사꽃같이 곱던 얼굴이러니, 중병을 치렀는지 벼만 남은 얼굴에 혈색이 조금도 없고 왼편 다리를 자축자축하며 걸어 들어오는 모양이 아무리 보아도 전에 보던 금홍이는 아니더라.

아랫목에 까무러쳐 누웠던 정부인은 청심환 효험인지 여러 종들이 다리팔을 주무른 효험인지 한숨을 휘 수며 돌아눕더니, 기운도 돌리고 정신도 나는 모양이라, 금홍이를 부르더니 금홍의 팔을 붙들고 일어 앉으며 새로이 우는데, 금홍이가 따라 운다.

(이판서)“여보 마누라, 울지 말고 금홍이에게 이야기 좀 자세 들어 봅시다.”

부인은 의구히 눈물을 흘리고 앉았는데, 금홍이가 눈물을 씻더니 고개를 수그리고 서서 말을 한다.

본래 홍참의 집에서 며느리를 죽을 곳에 보내려고 야단이 나던 날에 금홍이가 이씨부인의 교군채를 붙들고 바른말을 하다가 고두쇠 발길에 어찌 채이고 얻어맞았던지 한 달 동안을 몸져누웠다가 한 달 만에 겨우 일어나서 치악산에 갔던 교군꾼을 찾아보고 말을 솜씨 있게 묻기도 하였거니와, 교군꾼은 금홍이와 단 둘이 조용히 앉아 말하는 것이 용꿈이나 꾸고 선녀나 데리고 앉아서 말하는 듯한 흥김에, 본 대로 들은 대로 아는 대로 그린 듯이 낱낱이 형용을 하여 말하였더라.

대체 김씨부인의 일동일정을 옥단이 모르는 일이 없고, 옥단이가 아는 일은 고두쇠가 모르는 것이 없는 터이라.

고두쇠가 이씨부인을 치악산에 내버리고 들어온 후로 고두쇠가 치악산에 갔던 교군꾼과 한 가지 통정, 두 가지 통정, 차차 통정하는 친구가 되어 술 먹어 얼근하고 흥이 날 대로 나는 때에 술잔을 연하여 권하며 하는 말이,

“이애, 먹어라, 먹고 보자. 살아 생전 일배주라. 죽으면 못 먹느니라.

내가 요사이 돈푼이나 넉넉히 쓰고 지내는 것이 다 우리 동무네가 치악산에 가서 애쓴 덕이라. 만일 최서방 치운이가 살았더면 내가 돈더미에 올라앉고 너희들이 내 술에 곯아 죽었을 것이다. 자, 먹어라, 네 주량을 내가 안다, 엄살 말고 먹어라. 술 먹으며 할 이야기가 있다. 우리끼리 못할 말이 무엇 있겠느냐.”

하면서 제 계집에게 들은 말과, 오동나무 위에서 홍참의 속이던 궁흉극악한 일을 낱낱이 하며, 이런 말은 아무더러든지 말하지 마라 하였는데, 그 교군꾼이 제 계집에게도 말을 아니하고 참았던 말을 금홍에게 한 마디 빼지 않고 다 말하였는지라.

금홍이가 그 말을 듣고 끼었던 가락지를 팔아서 받은 몇 개와 딱성냥 몇갑을 사가지고 혼자 치악산으로 들어가서 향방 없이 쏘대다가 배가 고프면 흔한 삭정이를 주워서 화롯불을 질러놓고 인절미를 구워 먹고, 밤이 되면 화롯불을 질러놓고 인절미를 구워 먹고, 밤이 되면 화롯불 앞에서 앉아 졸다가 날이 새면 또 방향 없이 다니는데, 그때 금홍이가 이씨부인을 만나지 못하면 죽을 작정이라. 그렇게 이틀을 다니다가 하늘이 불러대었든지 귀신이 가르쳐 주었던지, 가느라 가느라고 연기 나는 것을 보고 쫓아가니, 그 집이 장포수의 집이라, 장포수의 어미가 장포수 죽은 후에 장포수의 대강이와 두 발목쟁이와 총과 화약 통만 주워다가, 대강이와 발은 땅에 묻고 총과 화약통은 방에 두고 보며 자식을 생각하고 청승으로 세월을 보내는데, 감자 섬 있는 것만 다 먹은 후에는 빌어먹으러 나갈 모양이라.

마음을 잘못 가진 고로 산신령님께 벌역을 입은 듯하여 후회만 하고 있는 중에 금홍이가 찾아 들어가니, 노파가 제 죄를 조금도 감추지 아니하고 낱낱이 말하는데, 수월당이 이씨부인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떠나갈 때 장포수 집에 들어와서 노파를 보고 경계하는 말이, 그런 몹쓸 마음먹으면 죄를 받으리라고 설법을 하니, 노파의 마음에 하늘에서 부처님이 내려오신 듯싶어서 소름이 작작 끼치면서 겁이 나서 빌었는데, 수월당이 데리고 가는 부인은 홍참의 며느리인 줄 알았거니와, 늙은 중은 어느 절 부처님인지 모르겠다 하거늘 금홍이가 그 , 말을 들은즉 이씨부인이 죽지 아니하고 승이 될 줄로 짐작하고 혼자 나서서 찾으러 다니는데 다른 고생도 허다하거니와 인물 어여쁜 계집아이라, 어디로 가든지 제일 겁나는 것이 남자이라. 금홍이가 사람을 보면 코먹은 소리를 어찌 솜씨 있게 하던지, 건달이 놈들이 얼굴만 보고 쫓아와서 지분거리다가 목소리를 들으면 돌아서 하는 말이, 아깝다고년, 인물값을 하느라고 벌써 종두를 넣고나 하며 달아난다.

이렇든지 저렇든지, 금홍의 고생은 한량없는 고생이라, 노자는 없고 발을 부르트고, 이씨부인의 종적은 바다에 돌을 집어넣은 듯이 알 수 없는지라, 하릴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하는데, 그것이 다 금홍의 이야기에서 대강 추려 나온 말이라, 이판서 내외가 그 말을 듣고 앉았다가 정부인은 아무 생각 없이 울기만 하고, 이판서는 천연히 앉아서 기침 한 번을 하고 일어서면서 금홍이를 부르더니, 안사랑 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쥐도 새도 못 듣게 무슨 말을 일러 보내니, 그 말은 정부인도 무슨 말인지 몰랐더라.

금홍이가 그날 그 시로 아무 말 없이 살며시 나가더니 종적을 알 수 없는지라. 정부인이 금홍이 나가던 날부터 때마다 기다리고 날마다 기다리면서 애매한 금홍의 어미 아비를 의심하여 도망을 시켰느니, 빼 팔아먹었느니 하면서 꾸짖고 달래고 어르고 벼르는데, 금홍 어미가 의심을 받을 만한 일도 있더라. 당초에 금홍이가 서울로 들어오던 날 정부인 앞에 서서 목이 메어서 홍참의 집 이야기를 하는데, 정부인의 경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눈 여린 계집종들이 눈물이 짤끔짤끔 흘리면서 이씨부인의 말만 하고 섰으나, 금홍어미는 제 딸 금홍의 고생하였다는 말에 뼈가 저려서 하는 말이, 남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많았더라.

“에그, 그런 몹쓸 놈이 있나. 그 무지한 고두쇠란 놈이 우리 금홍이같이 약한 것을 그렇게 몹시 쳤단 말이냐. 금홍이가 한 달만에 땅을 디디고 일어났다 하니 죽지 아니한 것이 이상하고 병신 아니 된 것이 의외이지. 내가 어찌하면 그놈의 원수를 갚을꼬. 에그, 우리 금홍이도 지각없는 것이지. 그렇게 얻어맞고 겨우 살아난 것이 서울로 즉시 오지 그 애를 쓰고 돌아다녀.

우리 금홍이는 명도 길지. 범이 개 끓듯 하는 그 산중에서 어찌 살아왔누.

올 겨울이 아무리 춥지는 아니하다 하였으나, 산에서 한둔을 하고 어찌 살아. 그나 그뿐인가, 치악산에서 내려와서 그 길로 또 다른 곳으로 나서서 아씨를 찾으려고 향방 없이 다녔다 하니, 저 혼자 나서서 찾기를 무슨 재주로 찾아, 저만 고생을 하여 싸지. 양반의 댁 종노릇하는 사람이 누가 금홍이 같이 제 몸은 죽든지 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고 상전만 위할 사람이 또 어디 있어 우리 금홍이는 . 그런 공로로 이 댁에서 속량이라도 하여 주실 만 하지.”

하면서 횡설수설한 말이 있었는데, 금홍이가 달아난 후에 여러 종들 입에서 그 말이 나기 시작하더니, 그 중에 남의 흉 잘 보고 입내 잘 내고 상전에게 긴한 체 잘하는 삼월이라 하는 년이 금홍 어미 하던 말을 정부인의 귀에 낱낱이 까바치면서, 금홍이는 정녕 금홍 어미가 돌려내었다 하니, 부인은 그 말을 꼭 곧이듣고 이판서더러 그런 말을 하며 금홍의 어미 아비를 조겨서 금홍이를 찾을 도리를 하자 하나, 이판서는 들은 체도 아니할 뿐 아니라 도리어 금홍의 어미 아비를 다른 하인보다 별로 귀애하는 모양이라, 그런 고로 금홍의 어미가 금홍이를 도망시킨 줄로 의심하던 사람들이 다시 이판서를 의심하여 수근거린다.

“정녕 대감께서 금홍이를 첩으로 들여앉히고 집 사 주어서 숨겨 두었나 보다. 옳지 그렇지, 우리도 그 눈치를 보았다. 금홍이가 어디로 가던 날 대감께서 안사랑 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시더니 썩 오랜 후에 내보내시더라.” 하며 , 금홍이는 정녕 이판서의 첩이 된 줄로 말이 퍼지더라.

그때 금홍이는 두 패 교군을 타고 배선달이 배행을 서서 치악산으로 들어가서 장포수의 집으로 가더니, 교군꾼은 밖에 세우고 금홍이와 배선달만 들어가서 장포수의 어미에게 당부할 만한 말을 다 이르고, 그 길로 장포수의 어미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더니 오막살이 집 하나를 사서 주고, 먹을 것입을 것도 넉넉히 대어 주고, 금홍이도 그 집에 있고 배선달은 하루 한 번씩 와서 금홍이와 무슨 은근한 의논을 하는데, 그렇게 지낸 지 한 달만에 금홍이는 배코를 살살 도리고 상투를 끌어올리더니 불치불검하게 남복을 하고 배선달을 따라 나섰는데 돈을 물쓰듯한다.

단구역마을 홍참의 집에서 그 며느리 없애 버린 후에는 그 집안에서 재미가 옥시글옥시글할 줄 알았더니, 며느리 없앤 후에는 무엇이 부족하여 김씨부인의 쨍알거리는 소리가 나는지 한 달 삼십 일에 웃고 지내는 날이 눈살을 아드득 찌푸리고 지내는 날보다 많지 못한 모양이라.

옥단의 마음에는 김씨부인의 비위를 맞추어서 이씨부인을 없애 버리면 그 공로로 제 소원이 다 잘 될 줄로 알았더니, 제가 바라던 마음과는 틀려도 여간 트리는 것이 아니라, 열 가지를 바랐으면 한 가지쯤 제 마음대로 될락말락하였더라.

대체 옥단이가 몇 가지 일을 바랐던지 아무것도 아니 되고, 다만 이씨부인의 입던 옷과 쓰던 그릇은 김씨부인이 생색쩍게 옥단이를 불러 내주며, 이것은 네가 다 가지라 하니, 옥단이가 그것을 받아 가지고 팔 만한 것은 팔아서 돈을 만들고 제가 가질 만한 것은 가지니, 그것도 작지 아니한 것이나, 그러나 김씨부인이 옥단에게 주고 싶어서 준 것이 아니라, 며느리 입던 옷과 세간에 며느리 귀신이 붙은 듯이 보기도 싫은 마음이 있어서 불에 살라 버리려다가 약은 꾀를 먹고 옥단에게 내주었는데, 옥단이는 이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아랫사람은 유구무언이라고 좋은 낯으로 받았더라.

대체 옥단이가 태산같이 바라던 최치운이가 죽었으니 최가의 돈 한푼 못 얻어먹고 헛공만 하고 냉가슴만 앓았고, 상전마님을 속량은 하여 주느니 마느 하더니, 일이 끝난 뒤에는 영감마님께서 허락을 아니하시니 좀 참아라 하며 요 핑계 저 핑계하고 날만 보내더니 오래된 뒤에는 말도 없이 그럭저럭 삭아졌더라.

옥단이가 아무리 골이 나나, 제 죄가 있는 일이라, 그 일은 소문도 낼 수 없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며 감히 포달 한 번 못 부리고 좋은 체하고 있더라.

그 이듬해, 정월 초하룻날, 옥단이가 김씨부인의 귀에 좋은 말을 하여 들릴 작정으로 ‘헤헤’ 웃으면서,

(옥) “마님, 마님께서 올해 설은 참 재미있게 지내십니다. 건넌방 아씨가 아니 계시니 앓던 이 빠지니보다 시원할 것이올시다. 쇤네가 공치사는 아니합니다마는 말씀은 바루 여쭙지, 쇤네가 아니면 그런 큰일을 하시겠습니까.”

하더니 다시 남순이를 돌아다보며,

“작은아씨, 작은아씨를 그렇게 미워하던 건넌방 아씨가 아니 계시니 시원하지요, 자, 그것이 다 내 덕인 줄이나 아오, 하하하.”

하면서 공치사를 하는데, 어떻든지 그 해 설은 훗훗이 잘 쇠는 모양이라.

짓독에 바람이 든다더니, 홍참의 부인과 옥단이가 그날 밤부터 눈이 휘둥그래지며 근심을 한다.

정월 초하룻날 밤에 건넌방 지붕 위에서 휘파람 소리가 휙휙 나니, 안방에 앉았던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머리끝이 주뼛주뼛하여지는데, 남순이가 부인 앞에 바싹 안기며,

“에그머니, 저것이 무슨 소리요, 건넌방 언니 죽은 귀신이 왔나베.”

하면서 눈이 둥그래지니, 부인은 그 소리를 듣고 소름이 더욱 쪽쪽 끼치며 무서운 마음이 나서 견딜 수 없는지라.

한참 동안은 괴괴하더니, 안방 뒷문 밖에서 휘파람 소리가 두세 마디 나며 안방 뒷문을 달각달각 흔드는데, 부인과 남순이가 에그머니 소리를 지르고 마주 끌어안고 발발 떨고 앉았더라.

(남순)“어머니 어머니, 그것이 무엇이요?”

(부인)“아무 소리말고 가만히 있거라.”

(남)“어머니 어머니, 우리들이 사랑에 나가서 아버지께 들어옵시사 여쭙시다.”

(부)“네가 밖에 나가도 무서운 마음이 없겠느냐.”

(남)“어머니와 둘이 나가면 무섭지 아니하여.”

(부) “그러면 나와 같이 나가서 옥단이를 부르자, 그러나 내일 너의 아버지 뵙고 이런 이야기 하지 마라.”

(남)“응, 알아들었소, 걱정말고 어서 옥단이나 부르러 나갑시다.”

남순이는 앞에 서고 부인은 뒤에 서서 옥단이를 부르러 나가는데, 마당 한 가운데로 막 나서니, 지붕 위에서 무엇이 모래를 끼얹는지라. 부인과 남순이가 간이 콩만 하여지며 정신 없이 행랑으로 나가서 남순이가 옥단이를 부른다.

“어멈 어멈, 어엄 자나, 어멈 어멈, 어멈 좀 들어와.”

고두쇠는 술로 설을 쇠었는데, 잔뜩 취하여 자는데, 코 고는 소리가 맷돌질하는 소리 같고, 옥단이는 본래 잠귀가 어두운 년이라, 또한 잠이 깊이 들어서 귀에 왕방울을 흔들어도 모를 지경이라, 남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옥단이는 아니 깨고 옆의 행랑에서 자던 춘심이 추월이가 일어나 나와서 옥단이를 부르니, 그럭저럭 온 집안이 다 깨었더라.

그 이튿날 밤부터 옥단이가 안방에서 상직잠을 자는데, 그날 밤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더라.

초사흗날 식전에 안방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아니하였는데, 춘심이가 안마당으로 들어오며 깜짝 놀라는 소리를 지르니, 부인과 옥단이가 급히 일어나서 나가본즉, 안방 지붕 위에 기왓장을 벗겨서 이리저리 늘어놓고 그 위에는 개 한 마리가 죽어 늘어졌는데, 그 개는 홍참의 집 개이라. 며칠 전에 그 개가 어디로 나가서 아니 들어온다고 동네 농군들이 때려 잡아먹었는가 의심하고 있던 터이라.

개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죽은 것을 보니, 이상한 일이니 괴상한 변이니 하며 온 집안이 수군수군하고 온 동네가 왁자지껄하더니, 단구역마을 아이들이 무슨 큰 구경이나 난 듯이 모여 들어와서 기왓장 늘어놓은 것을 보더니, 그 중에 글자나 배우는 아이가 쳐다보며 수군거리는데,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삽시간에 여러 아이들이 모두 떠들며 나가더라.무엇을 보고 그 아이들이 수군거리느냐 할 지경이면 별 것이 아니라 홍참의 집 안방 지붕 위의 기왓장을 활짝 벗겨 놓고 그 기왓장을 이상하게 늘어 놓았는데 망할 망자로 , 늘어놓은지라. 그날로 온 동네가 짝자그르 하고 떠드는 말이, 홍참의 댁은 망한다 하는 소리뿐이라.

그 후 이삼 일 동안은 홍참의 집에 아무 일도 없었더니 초이렛날 밤에 단 구역마을에서 이상한 구경이 있으나 사람 사람이 겁이 나서 여간 담대한 사람이 아니면 문밖에 나가서 보지 못하였더라.

개피떡같이 꼬부라진 초생달이 치악산 먼 봉우리로 넘어가고 밤이 적적한 데, 단구역마을에서 마주 보이는 치악산 밑에서 새파란 불빛이 있다가 없다가 하더니, 그 불빛이 차차 단구역마을을 향하여 오더니, 단구역마을 앞뜰에 와서 스러진다. 어디서 계집에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처량한 울음 속에 말이 절반이라.

“애고 애고, 이런 원통한 일이 있나. 내가 치악산 깊은 곳에 원통한 귀신이 되었으나 물 한 모금 떠놓아줄 사람이 없구나. 요년 옥단아, 내가 네 원수를 갚겠다, 너의 댁 마님 원수를 갚겠다. 새해에는 너의 댁에 좋은 일은 없으리라.”

하며 우는 소리는 누가 듣든지 소름이 쪽쪽 끼치는데, 그 중에 홍참의 집 사람들에게는 더욱 유심히 들리고, 홍참의 집 사람 중에도 안방에 있는 김씨부인의 모녀와 상직잠 자는 옥단이는 겁이 나서 죽을 지경이라.

고두쇠가 그날 어디서 공술 잔이나 푸근하게 얻어걸린 터이라, 얼근한 판에 장비(張飛)를 보더라도 씨름하러 대들 만하게 되었더라.

정월 초하룻날 밤부터는 옥단이가 안방 상직잠을 자는 터이라, 고두쇠가 빈 행랑방에서 심심하던 판에 그 앞뜰에서 울음소리 나는 것을 듣고, 고두쇠 마음에 정녕 건넌방 아씨가 죽어 원귀가 되어 우는 것으로 알고, 처음에는 실쭉한 마음이 있더니, 나중에는 헛기운니 나서 빈 방에서 혼자 큰소리를 한다.

“조 방정맞은 귀신, 제가 울면 누구를 어찌할 터인가, 제가 사람을 잡아 갈 수 있으면 벌써 와서 잡아갔지, 몇 달이나 지낸 뒤에 이제 와서 저들 밖에서 께께 울고만 있어, 오냐, 울대로 울어라. 네가 암만 울기로 누가 고뿔이나 들 줄 아느냐, 응, 무엇이고 무엇이야. 마님께 원수를 갚고 옥단에게 원수를 갚아. 치악산에 갖다버리기는 내가 갖다버렸다. 날더러는 감히 원수 갚는 다는 말이 없으니, 제깐에 고두쇠는 좀 딱딱한 것이로구. 대체 귀신이 다 무엇이며 도깨비란 것은 다 무엇인고. 내가 이때까지 내 눈으로 귀신도 못 보고 도깨비도 못 보았다. 술을 억병으로 먹고 캄캄한 그믐밤에 이 앞뜰로 몇 번을 지나다녀도 아니 보이더라. 에그, 저 방정맞은 귀신, 저런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참 뉘게 와서 붙기도 쉬운 것이라, 내가 쫓아나가서 복숭아 나뭇가지로 휘두르며 쫓아 버리겠다. 요것, 누구를 보채면 굿이나 하고 떡조각이나 있을 줄 알았느냐.고 배라먹을 여편네, 나는 고것을 송도 최서방에게 붙여 주려고 그 애를 써서 치악산 그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다가 나는 교군꾼을 데리고 어디 가서 슬쩍 숨고, 최서방은 교군 뒤에 멀찍이 따라오다가 최서방이 쓱 나섰으니, 그 깊은 산중에서 제가 옴치고 뛸 수가 있나. 일을 썩잘된 판인데, 웬 포수놈이 최서방을 놓아 죽이고 빼앗아가기에 정녕 그 포수의 계집이 된 줄 알았더니, 아아 또 방정을 떨고 말을 아니 듣다가 포수놈 솜씨게 죽은 것이로구. 그 포수놈은 어디 포수인 고. 최서방 죽던 때에 나와 교군꾼과 사람이 셋이나 숨어 서서 보면서. 그놈의 총이 무서워서 못 쫓아가고 도리어 도망질을 하였지, 내가 도무지 분풀이할 곳이 없더니, 오냐, 잘 왔다. 네가 내게 좀 대들어 보아라. 내가 왼발로 딴죽을 걸면 너까짓 것이 다 무엇이냐.”

하면서 쫓아다니다가 술김에도 딴 의사가 난다.

본래 고두쇠가 애만 쓰고 최치운의 돈을 얻어먹지 못한 것이 제일 분한 일이라. 당초 이씨부인이 아무 앙탈 없이 살며시 최치운이만 따라갔더면 옥단이와 고두쇠가 큰 수가 날 터인데, 그것이 마음대로 아니 된 것을 생각하니 열이 버썩 나서 못 견딜 지경이라. 그러나 그것이 다 욕심에서 나온 병이라. 새로이 욕심이 또 나는데, 그 욕심은 김씨부인에게 또 한번 잘 보이려는 흉계이라.

이웃 행랑방 앞으로 돌아다니며 춘심이, 추월이를 깨운다.

“여보 꾀쇠 어머니, 여보 점돌 어머니, 이것 큰일났소 말은 차차 하려니와, 두 분이 다 일어나서 나와 같이 아낙으로 좀 들어갑시다. 낮 같으면 내가 혼자라도 들어가겠소마는 밤이라 혼자 들어갈 수는 없소.”

하며 수선을 피워서 춘심이, 추월이를 일으켜서 아낙으로 들여보내고 뒤에 따라 들어가는데, 그때는 들에서 나던 울음소리가 처음보다 조금 멀찍이 들리는데, 다만 처량한 애고 소리뿐이라, 안방에서는 부인의 모녀와 옥단이가 겁은 다 같이 난 터이라, 이마에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사시나무 떨 듯 발발 떨며 눈이 동그래 앉아서 공론이 부산하다가 춘심이, 추월이를 보고 반색을 하는 판 이라, 고두쇠가 안마당에서 기침을 하며 마님께 여쭙는 말로.

“소인 고두쇠올시다. 저것 큰일났습니다. 건넌방 아씨께서 정녕 원귀가 되셨나 보이다. 마님께 원수를 갚는다 하니, 저런 탈이 있습니까. 그러면 마님뿐이겠습니까. 작은아씨께는 어떠할는지 알 수 있습니까. 본래 아씨께서 철천한 한을 맺고 돌아가셔서 그 한을 이 댁에 와서 다 푸실 지경이면, 황송한 말씀으로 이 댁은 쑥밭이 될 터이올시다. 그러하온즉 소인은 상전댁을 위하여 소인의 한 몸으로 그 죄를 다 받고 이 댁만 성하게 할 도리가 있으니, 마님께서든지 영감마님께서든지 소인이 이 댁의 충노인줄이나 알아주 시기를 바랍니다.”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귀가 반짝 띄어서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

“이애 고두쇠야. 네가 참 내게는 충노이다. 전년 겨울 그 일에 내가 애를 좀 썼느냐. 내가 네 공로는 다 알고 있다. 오늘 낮에도 영감마님께 네 말씀을 무수히 여쭙고 별 상급을 주기로 작정한 일도 있다. 이애 옥단아, 내가 너더러는 그 말을 하였지.”

(옥)“쇤네는 아무 말씀도 들은 것 없습니다.”

(부)“응, 내가 아직 그 말을 아니하였던가,오냐, 그 말은 천천히 하려니와, 이에 고두쇠야, 네 말을 좀 자세 듣자. 네가 도리가 있다 하니 도리가 무슨 도리냐?”

(고)“본래 아씨를 치악산에 버리고 오기는 소인이 한 일이올시다. 소인이 이 길로 저 원귀 우는 곳으로 혼자 나가서, 전후의 죄는 모두 소인의 죄로 말씀하고 빌겠습니다. 그러면 돌아간 아씨께서 원수를 갚아도 소인에게 갚을 터이오니, 이 댁에서는 아무 일 없을 터이올시다. 별 수 없이 소인이 혼자 얼른 나가서 죄를 받겠습니다.”

하면서 문밖으로 나가더니, 어디 가서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울음소리 나는 들로 나가는데, 본래 고두쇠가 겁도 없는 놈이어니와, 대체 술이 장사이라, 종시 얼근한 술기운에 두억시니가 들끓어 온다 하여도 시들한 마음이 있을 때라.

단구역마을 앞 넓은 들로 비틀비틀하며 걸찍한 목소리로 중얼중얼하며 나간다.

“귀신, 귀신이 다 무엇 말라죽은 것이냐, 오냐, 대들어라, 검낼 바색의 아들놈 없다. 저 방정맞은 요 귀신 쫓아 버리면 이번에는 우리 댁 마님이 우리 내외를 속량 아니하여 줄 수는 없지, 속량뿐이냐, 이번에는 참 수 난다. 저것 때문에 홍참의 댁이 망할 것을 나 때문에 성하고 보면, 우리 댁에서 나를 논 섬지기나 주어 살려 싸지. 내일부터는 굿은 하여 무엇하게. 날마다 굿에 쓰는 돈만 나를 다 주어도 나는 걱정 없이 살렷다. 오냐, 어찌 되었던지 수날 놈은 나 하나뿐이다. 산 양반은 무섭지마는 죽은 여귀 하나야 겁날 것 없다.”

하며 별안간에 홍이 나서 나가는데, 울음소리가 차차 멀어지거늘, 고두쇠가 기운이 한층 더 나서 울음소리 나는 곳으로 쫓아가다가, 고두쇠가 사람 살리라는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더니, 처량하던 울음소리는 뚝 끊어지고 파란 불만 반짝반짝하다가 스러지더니 들은 적적하고 밤은 깊었더라.

홍참의 집 하인이 동네 장정을 풀어 횃불을 들리고 앞 들로 나와서 고두쇠를 찾는다.

고두쇠는 들 가운데에 엎드러졌는데, 덜미에 멍이 시퍼렇게 들고 피를 퍽 퍽 토하고 죽었더라.

시골구석의 무식한 사람들이 귀신을 어찌 몹시 믿던지, 고두쇠란 놈은 홍참의 며느리 죽은 귀신에게 죽은 줄로만 알고 온 동네가 수군거리나, 고두쇠 죽기는 귀신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장사패의 손에 맞아죽었는데, 그날 밤에 단구 역마을 앞 들에서 울던 것은 금홍이요, 정월 초하룻날 밤부터 홍참의 집에서 도깨비 장난같이 하던 것은 장사패이다.

처음에 그 장상패가 금홍의 지휘만 듣고 홍참의 집에 들어가서 도깨비 장난을 할 때에, 도깨비 장난하기는 조금도 두렵지 아니하였으나 그 전에 미리 그 집 개를 없애느라고 애를 썼는지라. 장사패들이 낮이면 홍참의 집 근처로 돌아다니며 개에게만 눈독을 들이는데, 개가 절명일이 되었던지 홍참의 집 뒤 벌판에 나와 놀거늘 장사패가 맷돌 같은 뭉우리돌로 훔쳐 때려죽이고, 해진 후에 그 개 죽은 것은 치악산 골에 감추어 두었다가 두 번째 도깨비 장난할 때에 지붕 위에 얹었더라.

금봉이가 장사패들을 데리고 치악산 장포수 들었던 집에 있는데, 낮이면 장사패가 사냥총을 메고 뀡 마리나 잡아 가지고 단구역마을 막걸리 집에 가서 꿩을 굽고, 누구를 보든지 막걸리 잔이나 사 먹이고 까마귀 지껄이듯 하는 농군의 이야기를 듣기로 일을 삼으니, 그때 그 동네 사람들은 홍참의 집 이야기뿐이라. 홍참의 집에서 고두쇠가 죽은 후로는 날마다 무당만 불러들여서 점치고 굿하기로 세월을 보내는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평생에 읽고 세상에 유식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어니 여기던 홍참의도, 며느리가 죽어 원귀가 된 줄만 알고 굿을 하든지 지랄을 하든지 알은 체 아니하고 내버려두는 터이라. 무당들은 제가 들은 소문대로 영절스럽게 하는 말이, 건넌방 아씨가 원귀가 되었다고 원풀이를 하느니, 살풀이를 하느니, 귀신을 쫓느니, 귀신을 잡아 가두느니 하며 굿만 시키고 돈만 빼앗아 가는데, 그 귀신은 화수분인지 이제는 쫓아버렸다. 이제는 가두었다 한 후에도 치악산 밑에 귀신의 불은 밤마다 보이고, 들 밖에 귀신 우는 소리도 밤마다 들린다.

그 불은 장사패가 밤이면 파란 물들인 유리등에 불을 켜서 들고 감추었다 내들었다 하여, 단구역마을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 고두쇠 죽은 후에 동네 사람도 겁을 내는 터이라. 그 중에 홍참의 부인과 옥단이는 꿈을 꾸어도 이씨 부인의 귀신만 보이니 , 굿은 암만 하더라도 그 몹쓸 귀신 때문에 아무 때든지 집이 망하려니 여기고 있으면서 노주가 마주 앉아서 귀신 없앨 공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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