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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형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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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현상모집[편집]

발간한 지 일 년도 못 되어 거의 일만 부의 발행부수를 가지고 있다는 실로 놀라울 만큼 급속도로 발전해나가는 월간잡지 《괴인(怪人)》은 세상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추리소설 전문잡지였다.

“외국에서는 그리도 유행하는 추리소설, 독자의 마음을 꽉 붙잡고 최후까지 놓아줄 줄을 모르는 가장 흥미 있고 가장 대중적인 추리소설이 어째 우리 조선에는 아직 싹도 돋아나지를 못하였는고? 조선 민족성이 추리소설을 배척함인가? 추리소설에 애착의 감을 느끼지 못하리만큼 그들의 이지적 활동이 부족한 때문인가......? 아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이지(理智)를 사랑한다. 다만 저널리즘이 민감하지를 못한 탓이다!”

이것이 추리잡지 《괴인》을 주재하게 된 백상몽(白相夢)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 꿈은 창간호가 삼만을 거듭하였을 때부터 실현되었다. 《괴인》은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렸다.

듣건대 백상몽은 평북 사람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며 다년간 금광맥을 찾으려 조선 십삼도를 방랑하다가 만사가 뜻대로 못 되므로 그만 서울에 주저앉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한 모퉁이에 주저앉은 그는 매일같이 소년시대에 즐기던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재미있는 소설이 어째 우리 조선에는 아직까지 한 편도 없을까......?”

꿈꾸기를 즐겨하는 그는 몇 푼 남지 않은 주머니를 어루만지면서 소위 매너리즘에 시달리는 수백만 민중에게 훌륭한 선물을 하리라고 공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창작의 붓을 쥐는 한편 문단 제씨(諸氏)에게 조선 현상에 맞는 추리소설의 집필을 부탁하여 드디어 《괴인》이라는 추리잡지를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그는 벌써 예순에 가까운 늙은이다. 귀밑에서부터 아래턱까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도수 높은 근시경을 콧머리에다 올려놓은 그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사장실 팔걸이의자에 깊이 앉아서 창밖의 혼잡한 종로 네거리를 멍하게 바라보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던 어떤 날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초인종을 쳐서 사원 한 사람을 불러다가 앞에 세우고,

“그런데 군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 《괴인》은 마치 나는 듯이 팔리거든. 대중의 굶주린 독서욕을 우리들은 백 퍼센트까지 만족시켜준다. 범죄와 탐정....... 하하하, 얼마나 대중적이며 자극적인 잡지인가 말이야, 응!”

“네, 그렇습니다. 사장님의 말씀에는 조금도 과장이 없습니다. 사실 《괴인》에 대한 세상의 인기는 굉장합지요. 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 《괴인》은 어떠한 독자층에라도 파고드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머리를 싸매게 만들지요. 지금과 같은 스피드로 발전해나간다면 삼 년이 못 되어 십만의 독자를 획득할 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장은 수염을 한번 쓸어 만지며 가장 유쾌하다는 듯이,

“음! 군의 말에 틀림이 없겠지......! 그런데 이번 일주년 기념호에 무슨 재미있는 현상 문제를 하나 실어보면 하고 생각하는데, 군의 의견은......?”

“좋습지요.”

“한 삼백 원쯤 상금을 걸고......”

“삼백 원......?”

“왜, 좀 적은가?”

“아니올시다. 너무 많아서......”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과 정비례하여 《괴인》이 더 팔리면 그만이지.”

“하긴 그렇습지요....... 그런데 문제는......”

“문제가 조금 어려울 것 같아서......?”

“어려워서 맞추는 자가 없으면 삼백 원이란 상금은 그대로 굳겠군요?”

“하하....... 군도 미욱한 편은 아닌 듯싶어! 자아, 이것이 문제네.”

사장은 테이블 서랍에서 현상문제를 기록한 원고지를 꺼내어 사원에게 주었다.

이리하여 드디어 추리잡지 《괴인》 시월 호에는 다음과 같은 가장 흥미 있고 가장 추리적인 현상모집이 게재되었던 것이다.

출제자 백상몽의 말

본사에서 발행하는 추리잡지 《괴인》이 창간한지 일 년도 못 되어 이와 같이 훌륭하게 발전의 길을 밟게 된 것은 실로 애독자 제군의 두터운 후원과 성의 있는 편달의 산물로서, 사내 일동은 오직 감사의 마음 금치 못하는 바올시다.

그래서 본사는 《괴인》을 사랑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두터운 뜻을 고맙게 생각하여 오는 새해 신년호, 다시 말하면 《괴인》 창간 일주년 기념호에다 실릴 재미있는 현상모집을 하여서 비록 사소하나마 당선자에게 다음과 같은 상금을 진정코자 하나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려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현상문제는 소위 출제자의 상상적 문제가 아니고 경찰 당국에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유야무야하게 내버려둔 저 유명한 ‘김나미(金那美) 살인 사건’입니다.

이 유명한 살인사건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평양 한 모퉁이에서 일어난 잔혹한 살인극으로서 아직까지 누가 진정한 범인이며 또 어떠한 방법으로 살해하였는지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추리소설 애독자는 다시 말할 것도 없거니와 소위 명수사관이라고 자칭하는 제씨 및 강호 일반의 성의 있는 응모를 절망(切望)하오며 모집규정과 살인사건의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모집규정」

문 제 (A) 범인은 누구인고?

(B) 살인 동기는 무엇인고?

(C) 살인 방법은 어떠한고?

상 금 삼백 원

선 자 (選 者) 이 문제를 낸 《괴인》사 사장 백상몽

펜 네 임 자유. 그러나 원고지 첫 장에

주소와 성명을 기록할 것

마 감 시월 삼십일

발 표 19xx년 《괴인》 신년호

보 낼 곳 서울 종로2가 《괴인》 편집부

관 계 인 물 모현철(毛賢哲) (38) ― 소설가

김나미(金那美) (28) ― 모현철의 아내

유시영(劉詩影) (27) ― 신진 시인

식모 (51) ― 전신불수의 노파

이쁜이 (17) ― 식모의 딸. 하녀

살인현장의 상황

응모자 여러분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살인현장인 소설가 모현철의 문화주택을 극히 간단하게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북쪽은 행길, 동쪽은 행길을 건너 대동강을 바라보고, 남쪽과 서쪽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다른 집과 접해 있습니다. 돌담을 따라 포플러나무가 나란히 서 있고, 들에는 커다란 화단이 있는데, 먼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현관에서 복도를 따라 각 방으로 통합니다.

x 표시는 김나미의 시체 위치


이 이층으로 된 주택은 침실과 현관 바로 위층이 주인 모현철의 서재고, 층층대를 건너 바로 안방 위층이 시인 유시영이 기거하는 방인데, 김나미가 살해당한 곳은 현관에 딸린 아래층 침실입니다.

이제 이 침실의 현황을 대략 추려서 써보면 남쪽과 동쪽에 유리창이 몇 개씩 있는데 양편 다 물빛 커튼이 늘어져 있고, 그 동쪽 담 유리창 밑에 더블베드가 놓여 있으며, 베드 위에는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있는 《춘희(春姬)》 한 권이 반만큼 펼쳐져 있었습니다. 베드 옆에 한 개의 의가(衣架)가 서 있으며, 그 의가에는 피해자 김나미의 치마와 저고리 그리고 초콜릿 빛 양말이 한 짝 기다랗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침실 북쪽 담에는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쓴, 직경이 한자나 되는 둥그런 거울이 걸려 있는데 그 거울을 사이에 끼고 대[竹]와 매화를 그린 묵화가 두 장 붙어 있으며 시계, 부인잡지가 놓여 있는 테이블, 등의자 같은 것에 대한 위치는 위에 그린 그림을 참조하십시오.

그런데 모현철 씨의 사랑하는 아내 김나미의 시체가 쓰러져 있던 곳은 바로 침대 앞인데, 목에는 피해자의 소지품인 초콜릿 빛 양말이 잘쑥하니 매어 있고 그것은 의가에 걸려 있는 것과 한 켤레가 됩니다. 얼굴은 무섭게 충혈되었고, 약 오 분간의 질식사였습니다. 살해시각은 밤새로 한 시 이십오륙 분이라고 판명되었고, 피해자는 비교적 섬약한 편이어서 굳세게 저항한 흔적도 없고, 물적 증거로는 흉기인 양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금품이 분실된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정확을 도모하기 위하여 예심정에서 주고받고 한 신문조서에 기록된 바를 적당히 간추려보고자 합니다.

이쁜이의 진술

― 증인은 언제부터 모현철의 집에 있게 되었는가?

“이 년 전부터 어머니와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 모현철과 무슨 친척관계는 없는가?

“없습니다.”

― 유시영은 언제부터, 또 어떠한 이유로 모현철의 집에서 살게 되었는가?

“작년 정월부터 오셨습니다. 듣건대 유 선생님은 (이쁜이 이하 전부가 평안도 사투리로 ‘류(劉) 선생님’이라고 하였으나 편의상 여기서는 표준어를 쓰기로 합니다) 모 선생님의 제자라는데 유 선생님에게는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어서 모 선생님이 가엾게 생각하시어 같이 데리고 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

― 모현철은 언제든지 이층 서재에서 자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시는 때만 이층에서 주무십니다.”

― 그러면 그날 밤도 이층에서 잘 예정이었던가?

“네, 한 이삼일 전부터 소설을 쓰시기 시작하여서 대단히 분주하신 모양으로 늘 이층에서 주무셨습니다.”

― 김나미가 살해당한 날 밤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해보라.

“네, 그날 밤, 팔월 스무 닷샛날 밤입니다. 여섯 시쯤 해서 저녁을 먹고 열 시까지 어머니 옆에서 바느질을 한 후에 열 시 반쯤 해서 아씨가 계시는 침실로 가서 ‘대문을 걸까요?’ 하고 물었더니 걸라고 하시기에 대문과 현관을 건 다음에 제 방으로 와서 곧 잤습니다.”

― 그때 김나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침대에 누워서 무슨 소설책 같은 것을 읽고 있었습니다.”

― 음, 그 다음을 이야기해보라.

“네, 그 후 몇 시간이 지났는지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옆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저를 흔들어 깨우셨지요. 그래 눈을 떠보니 어머니는 무엇인가 대단히 걱정하는 얼굴빛으로 빨리 아씨가 주무시는 침실로 가보라고 하시기에 이상히 생각하면서 무슨 영문인가 하고 아씨의 침방으로 가보았습니다. 전깃불이 문틈으로 비치어 나오겠지요. ‘아씨, 아씨!’ 하고 두어 번 불러보았으나 아무 대답도 없기에 문을 방싯하고 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씨가 분홍빛 파자마를 입으신 채로 침대 옆 온돌 위에 반듯이 쓰러져 있지를 않습니까. 양말로 목을 졸라매고....... 아아, 무서워라. 그래서 저는 어머니한테 뛰어가서 세세히 말했더니, 어머니도 놀라면서 빨리 이층에 올라가서 선생님을 깨우라기에 저는 겁에 찬 발걸음으로 층층대를 뛰어 올라가 처음에는 모 선생님을 깨우고 다음에 옆방께 계시는 유 선생님을 깨웠습지요. 그리고......

― 가만있자! 그때 이층에는 전깃불이 켜 있었더냐?

“아니에요. 모 선생님의 방, 유 선생님의 방, 두 방 다 전기가 꺼져 있었습니다.”

― 모현철과 유시영은 누가 먼저 방에서 나왔던가?

“모 선생님이 먼저 뛰어나왔습니다. 모 선생님을 먼저 깨우고 유 선생님을 깨웠으니까요.”

― 그래서?

“그래서 모 선생님이 먼저 층층대를 뛰어 내려가고 저와 유 선생님은 그 뒤로 따라 내려갔는데 저희들이 침실로 뛰어 들어가자 모 선생님은 아씨의 시체를 안으면서 ‘숨이 끊어졌다!’ 하고 부르짖었습지요. 그때 유 선생님은 아씨의 시체 옆으로 다가가면서 아씨의 목에서 양말을 풀고 있는 모 선생님의 얼굴을 무서운 눈초리로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습니다. 네, 지금 생각만 하여도 그것은 몸서리쳐지는 무서운 광경이었습니다. 두 선생님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서로서로 얼굴만 쳐다봤지요. 무서운 얼굴로 금시라도 맞잡고 싸울 듯이....... 그리고 모 선생님이 아씨의 시체를 침대 위에 안아 올리려 하였을 때 유 선생님도 아씨를 안으려고 했기 때문에 두 분은 또다시 시체를 사이에 끼고 묵묵히 쳐다보기 시작하였지요. 그 후의 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곧 파출소로 달려갔으니까요.”

― 그때 현관은 잠겨 있더냐?

“아니요,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확실히 걸었었는데......”

― 대문은?

“대문은 걸려 있었습니다.”

― 유시영과 김나미는 퍽 친하게 지내던가?

“그런 것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 요즈음 밤중에 김나미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던가?

“없었습니다.”

― 모현철과 유시영은 평소 몇 시쯤 해서 자는가?

“두 분 다 열두 시쯤 되면 주무시곤 하였습니다.”

― 이번 살인사건에 무엇인가 이상스러운 점은 없는가?

“없습니다.”

식모의 진술

― 증인은 중풍환자라는데 전연 걷지를 못하는가?

“네, 작년 겨울부터 보시는 바와 같이 전신불수로 조금도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 모현철은 그의 아내 김나미를 사랑하고 있었는가?

“네! 사랑하시구 말구요.”

― 김나미는 그의 남편 모현철을 사랑하고 있었는가?

“네네, 둘이 다 서로 무척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 모현철은 유시영이 자기 집에 와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하던가, 나쁘게 생각하던가?

“글쎄, 그런 것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 유시영과 김나미는 무슨 정교(情交) 관계가 있는가?

“보시는 바와 같이 언제든지 누워만 있으니 그런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어야지요.”

― 그날 밤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보라.

“네, 이쁜이가 열 시 반쯤 해서 제 옆에 누워서 잠든 후 저는 졸리지가 않아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저는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일 뿐이지 밤에는 태반 잠을 못 이룹니다. 그러는 동안 글쎄요, 어느 때나 되었는지, 아마 새벽 한 시가 거반 가까웠을 때입니다. 아씨의 침방에서 수군수군하는 말소리가 들려오므로 아마 이층에서 원고를 쓰시던 모 선생님이 내려오셨나 하고 별로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더니......”

― 이야기의 내용은 들리지 않던가?

“제 방과 침실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므로 이야기 소리는 들려도 무슨 이야긴지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 그래서?

“그러는 동안에 한 십오 분쯤이나 지났는지 말소리가 점점 커지겠지요. 그때 아씨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남자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것은 결코 모 선생님은 아니었습니다.”

― 어째서?

“모 선생님의 음성이 아니니까요”

― 그래서?

“그래서 저는 유 선생님이 내려오셨나 하고 생각도 하여보았으나 이런 한밤중에 아씨 침방에 내려올 유 선생님도 아니겠고....... 그러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집에는 모 선생님과 유 선생님밖에 어디 남자라고야 있어야지요. 그러는 동안에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마디 두 마디 들리는 것도 같았으나 무슨 말인지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남자 편에서 무엇인가 아씨에게 무척 애원하는 것 같은 말소리더니 갑자기 음성이 커지면서 ‘하하하하!’ 하고 비웃는 소리가 들리겠지요. 그러고는 또 한참 동안 무엇인가 수군거리기에 이상도 하다, 이런 밤중에 대체 누가 왔을꼬?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하여 보았으나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부쩍 커지면서 ‘......애초 당신은 나를 왜 사랑했단 말이오....... 무슨 이유로 나를 ...... 했단 말이오...... 하며 무척 성을 낸 말씨로 달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귀를 잘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듣기가 어려웠지만....... 그래 저는 이상한 일도 다 보겠군...... 하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아씨가...... ‘유 선생! 나가요, 빨리 이 방에서 나가라는데. ......을 불러도 괜찮습니까....... 호호호호, 어리석은 사람!’ 하고 비웃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뭐야??’ 하고 남자의 고함치는 소리가 또 한 번 나더니 다음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래 저는 이상스럽기가 짝이 없어서 무슨 이유로 지금 유 선생님과 아씨가 싸울까......? 그리고 유 선생님과 아씨 사이에는 무슨 말 못할 비밀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제가 이런 자유롭지 못한 몸이 아니라면 곧 아씨 방으로 뛰어가서 보았을 것을....... 싸움도 인제는 그치고 해서 이쁜이를 깨울 생각도 안 하고 그대로 내버려둔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실수였습니다.”

― 어째?

“싸움이 끝난 지 한 십 분쯤 해서 현관 열리는 방울소리가 들렸으니까요. 그때야 비로소 깜짝 놀라 이쁜이를 깨우기 시작했습니다마는 어디 빨리 일어나야 말이지요. 응응, 하기만 하지....... 이쁜이는 누가 안아가도 모르는 잠보랍니다.”

― 누군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기색은 없던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 김나미는 확실히 “유 선생”이라고 불렀던가?

“네, 그것은 확실합니다.”

― 그리고 그 사나이는 틀림없는 유시영이었던가?

“아씨가 ‘유 선생’이라고 불렀으니까 그것은 뭐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 만일 그때 김나미가 “유 선생”이라 부르지 않았다면 어떤가? 그래도 그 사나이를 유시영이라고 생각할 텐가?

“글쎄요. 그런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마는 하여튼 저는 유 선생이라고 믿었습니다.”

― 그러면 증인은 유시영이 김나미를 죽였다고 생각하는가?

“아니요. 유 선생님은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퍽 온순한 분이지요. 그러나 아씨 방에 유 선생님이 계셨으니까......”

― 모현철이 죽였다고는 생각지 않는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모 선생님은 아씨를 퍽도 사랑하였습니다. 쥐면 터질세라, 놓으면 깨질세라......”

모현철의 진술

― 증인과 유시영의 관계는?

“아무런 친원(親怨) 관계도 없습니다.”

― 유시영과 교제한 것은 언제부턴가?

“유 군의 학생시절부터입니다.”

― 어떠한 교제인가?

“태반 문예상 교제였습니다. 유 군의 처녀작이 나의 추천으로 발표되었을 때부터요.”

― 증인의 아내 김나미와 유시영은 언제부터 교제하였는고?

“역시 그때부터요. 지금부터 삼 년 전 겨울, 유 군이 나를 찾아와서 자기의 시를 추천하라기에 그 시가 상당하므로 어떤 잡지에 소개하였는데, 생각건대 그때가 내 아내와도 처음 대면인 듯합니다.”

― 증인은 어떠한 이유로 유시영과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가?

“내 아내가 청하기에 같이 있습니다. 유 군은 아직 독신으로 빈곤할 뿐만 아니라 친척조차 없고 해서, 더구나 내 집에는 빈 방도 있고 해서 아내의 청을 들어주었을 따름이오.”

― 살해 당시 증인의 거동은?

“여섯 시에 저녁을 먹고 유 군과 아내와 나와 이 세 사람이서 아홉 시 반까지 아래층 안방에서 놀다가, 유 군과 나는 각각 이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열두 시까지 원고를 쓰고 그대로 서재에서 자다가 이쁜이가 깨워서 일어났습니다.”

― 그때까지 아래층에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는가?

“자기 바로 전에 화장실에를 내려 갔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침실로 가서 아내에게 잘 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 그때 김나미는 무엇을 하고 있던가?

“침대에 누워서 소설을 읽고 있었소.”

― 그때 김나미는 무슨 말을 했던가?

“먼저 자라고 말한 뒤에 자기는 지금 《춘희》를 읽고 있는데 나중까지 읽고 자아겠다고. 내 아내는 소설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 증인은 언제든지 서재에서 자는가?

“원고를 쓸 때만 이층에서 자지요.”

― 증인은 김나미의 시체를 앞에 놓고 유시영과 서로 싸울 듯이 흘겨보고 있었다는데 그것은 어떤 이유인가?

“흘겨본 것이 아니오. 나는 그저 멍하니 유 군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상한 이 살인사건에 대하여 머리에 떠오르는 가지각색의 의혹을 그 순간 가다듬어보려고 노력하였을 뿐이오.”

― 가지각색의 의혹? 자세히 말하면?

“자세히 말하면......”

― 자세히 말하면 어떤 의혹이었는가?

“그 무서운 의혹은 이쁜이가 파출소에를 갔다 와서 잠겼던 현관이 열려 있더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풀어져 버렸습니다. 그때까지는......”

― 그때까지 품고 있던 무서운 의문이란 대체 무언가 말이야?

“......”

― 그러면 그것은 그만두고 증인은 김나미를 결혼 당시와 같이 사랑했는가?

“그때보다 몇 배나 더 사랑하였소.”

― 김나미는 증인을 사랑하고 있었는가?

“네, 그러나 전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

― 언제부터야?

“......”

― 언제부터냔 말이야?

“......유 군이 우리들과 동거하게 되었을 때부터요.”

― 증인은 김나미가 유시영을 사모하고 있던 사실을 아는가?

“......아오.”

― 유시영도 김나미를 사모하고 있었는가?

“그렇소.”

― 그러면 증인은 김나미를 미워하고 있었을 테지?

“그렇소. 그러나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더 한층 굳세어졌던 것이오.”

― 유시영을 미워하였는가?

“미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무력을 더한층 미워했던 것이오.”

― 증인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래도 유시영을 증인의 집에 동거시켰던 것은 또 어떤 이윤고?

“아내를 나의 손에서 잃어버릴 것을 염려한 때문이오. 유 군을 쫓아버리는 것은 두말도 할 것 없이 아내를 쫓아버리는 결과를 맺으므로......”

― 유시영을 죽여 버렸으면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있습니다. 사실 이번 살인사건이 돌발하지만 않았던들......”

― 김나미를 죽일 생각은 안 했던가?

“그런 일은 없습니다.”

― 아니, 살인계획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던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편적으로 ‘에이, 죽여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얼핏 머리에 떠오른 적은 없느냐 말이지?

“그러니 말이지만 그런 적도 한두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서운 생각이 설사 떠오를지라도 아내를 볼 때마다 곧 염두에서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아내는 아직 나에게서 완전히 떨어져버린 것은 아니고 그저 어떡헐까 하고 마음으로 망설이고 있었던 때문이지요. 그것은 아내의 태도를 보면 잘 알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아내의 시체를 본 순간 품었던 이상한 생각....... 그것은 만일 이와 같은 형편에서 아내를 살해할 자가 세상에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나 자신일 것이다. 그런데 나미가 교살을 당했다? 이것이 그 순간 품었던 나의 의혹이었습니다. 누가 나를 무서운 모함에다 넣으려고......”

― 그러면 증인은 김나미 살해사건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말인가?

“...... 하여튼 내가 이 살인사건에 관계가 있든 없든 그것은 조금도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지금 나의 오직 하나밖에 없는 관심사는 내 아내, 사랑하는 나미의 죽음 그것뿐이오. 그리고 범인을 잡는 것은 당신들의 직분이겠고....... 나는 지금 당신들의 물음에 대하여 대답할 용기도 없을뿐더러 또 기력조차 없습니다. 나를 속히 돌려보내 주시오 피곤할 대로 피곤한 나의 몸과 머리는 지금 극도의 안정을 요구하고 있으니까......”

― 증인은 지금 감정을 낸 모양이나, 그러나 우리들은 충실히 사건을 심리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리고 권리도 가지셨고......”

― 아니, 물론 이런 때에 증인의 감정이 상한 것도 무리는 아니나, 그러나 우리들은 사법관으로서 대강이라도 사건을 심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또 심리를 진행시키려면 하는 수 없이 증인의 증언이 필요하니만큼 부인하면 부인한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어떤가? 그만한 도리는 증인도 잘 알 것 같은데......

“네, 조금 흥분되어서....... 나는 김나미를 살해한 일이 없습니다.”

― 그런데 이것은 식모의 신문조서인데, 증인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또다시 유 군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아내의 시체를 접하였을 때 이런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나미에 대하여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는 나와 유 군이오. 그러나 유 군은 나미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없습니다. 나미를 살해해야 할 동기는 도리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겠지요. 그래서 현관이 열리었다는 사실을 보아서 나는 혹시 강도가 들어오지나 않았나 하였으나......”

― 유시영이 죽였다고는 믿어지지를 않는가?

“사실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왜 죽였는가도 알 바가 없을 뿐더러 유 군이 사람을 죽이다니......”

― 그러면 증인은 김나미 살해 범인에 대하여 아무도 생각나질 않는가?

“네, 전연 모르겠습니다.”

― 증인과 피해자 김나미와는 연애결혼이었던가?

“중매결혼이었습니다.”

유시영의 진술

― 피고가 김나미를 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학생시대부터요.”

― 김나미와 맨 처음에 대면한 것은 어디선가?

“평양극장 뒷문이오.”

― 김나미는 배우였는가?

“가극배우였습니다.”

― 피고와의 관계는?

“연애관계였습니다.”

― 김나미는 어떻게 모현철과 결혼을 하였는가?

“나는 구차한 일개 서생이었으며, 모 선생은 집안이 넉넉할 뿐만 아니라 그때는 벌써 문단의 중견작가였던 때문이었습니다. 김나미는 나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였습니다.”

― 모현철을 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삼 년 전이오. 김나미가 결혼한 겨울 나는 나미를 다시 한 번 만나고자 작품 추천을 구실로 하여 모 선생을 방문하였고, 상금(尙今)까지 교제해왔습니다.”

― 그러면 피고가 모현철의 집으로 옮아오기까지 김나미와의 관계는?

“둘이의 사랑이 다시 계속 되었지요. 그러나 나미는 사람을 속이지 않겠다고, 이제 와서 또 모 선생을 속일 수는 없다고....... 사실 나미는 정숙한 여성이었습니다. 나와 그녀는 영혼으로 맺어져 있고, 모 선생과 그녀는 단지 육체적으로 맺어져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런 생활을 근 이 년이나 계속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속여가면서 우리들은 때때로 밖에서 만나곤 하였지요. 그러는 가운데 나미는 나의 구차한 생활을 차마 못 보겠다고 집에 빈 방이 있으니 같이 와서 살자고, 누나가 어린 동생에게 타이르듯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처음에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거절을 했습니다마는, 한 솥에 밥을 먹고 같은 지붕을 쓸 수 있다는 걷잡을 수 없는 유혹이 마침내 나로 하여금 그들과 같이 동거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 모현철의 집으로 와서도 김나미와의 관계는 깨끗했는가?

“그렇습니다.”

― 모현철은 피고와 김나미와의 그와 같이 깨끗한 관계를 알았던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을 오해하고 있는 듯한 태도가 보였습니다.”

― 피고는 모현철을 미워했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미안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피고는 그날 밤 이층에 올라가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이네의 시역(詩譯)을 하고 있었습니다.”

― 몇 시에 잤는가?

“열두 시 십오 분 쯤에 취침했습니다.”

― 그때 옆방에 있는 모현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생각이 안 나는가?

“안 납니다.”

― 아래층에는 한 번도 안 내려갔었는가?

“안 내려갔었습니다.”

― 피고는 김나미의 시체를 사이에 끼고 모현철과 한참 동안 서로 흘겨보고 있었다는데 그것은 어떤 이유에선가?

“모 선생이 죽였다고 생각한 때문이오.”

― 어떠한 까닭으로 그렇게 생각했는가?

“별달리 까닭은 없었지요. 시체를 본 순간 나는 그렇게 직감하였습니다. 자세히 말해보면 모 선생은 우리들을 오해하고 있었지요. 표면으로는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우리들을 극도로 미워했습니다. 나는 여러 번 자기의 마음을 피력하여 모 선생의 오해를 풀고자 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나는 선생이 무서웠습니다. 그 결과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선생은 성질이 결코 담백한 분이 아니고 음험한 분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만일 모 선생이랄 것 같으면 그렇게도 무관심한 태도는 도저히 취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선생은 나미에게도 단 한 마디 질투의 말조차 건넨 적이 없다고 하니 그것은 너무도 부자연스러운 태도입니다.”

― 식모의 증언을 피고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

― 살인 현장에 피고가 있었다는 식모의 증언을 피고는 대관절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이야?

“......네, 나는 그와 같은 허황무실한 증언에 대하여 어떻게 나 자신을 변명하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이쁜이가 나를 깨울 때까지 내 방에서 자고 있었으니까요. 자고 있던 내가 나미의 침방에 내려가서 나미와 수군수군 이야기를 하고 언쟁을 하다가 결국 나미를 교살했다는 말씀이지요? 내가 나의 이 양손으로 나미의 잘쑥한 목을, 그 새하얀 목을, 그 예쁜 목을 이렇게, 이렇게 눌렀다는 말씀이지요......? 거짓말이오. 식모는 거짓 증언으로 현명한 재판관 여러분을 꾀하려 하는 것이오. 생각건대 그 죽어가는 늙은이는 아마 꿈을 꾸고 있었던 것에 틀림이 없습니다. 나미를,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나미를 내 손으로 어찌 죽일 수가 있으며 또 무슨 이유로 죽였겠습니까? 재판관 여러분이여! 나는 지금 신명에 서약하고 다만 진실만을 여쭙고 있습니다. 대관절 그 늙은이는 나에게 어떤 원한이 있기에 그런 허공무실한 증언을 하였는지......”

― 식모는 피고를 미워하는가?

“그럴 리가 있겠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습니다.”

― 김나미는 피고와 모현철 중 누구를 더 한층 사랑했는가?

“물론 나지요. 나미는 모 선생을 사랑한다기보다 믿는 편이 더 많았습니다.”

― 피고는 모현철을 죽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절대로 없습니다.”

― 김나미는?

“나미는 나의 생명 그것이오.”

― 그러면 피고는 어디까지든지 김나미 살해사실을 부인하는가?

“......내가 부인하든 승인하든 결과는 마찬가지지요. 그 늙은이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당신들이 어떠한 심증을 얻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달갑게 상당한 형벌을 받겠소. 그러나 한 가지 말해둘 것은 나를 벌하는 당신들 자신이 무서운 범죄자가 될 곕니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바는 김나미가 살해를 당했다는 사실이 아니고 김나미의 죽음이라는 사실뿐입니다.”

― 피고는 아까부터 김나미를 죽일 동기가 없다고 말했지마는 피고에게도 살해동기가 충분히 있지 않은가....... 그날 밤 피고는 피해자 김나미에게 육체관계를 요구하였으나 김나미는 보기 드문 정숙한 여자였으므로 피고의 요구하는 바를 단 한 마디에 거절하고 커다란 소리로 사람을 부르려 했을 뿐만 아니라 피고를 조소하여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피고는 모욕을 참을 바 없어서.......

“말이라니 할 탓에 달렸다더니 참 그것도 그럴듯하오. 잠자고 있던 내가 벌떡 일어나서 자기도 모르게 나미의 목덜미를 눌렀을는지도 모르겠소.”

부기(附記)

이상이 소위 ‘김나미 살해사건’의 내용입니다. 이 범죄의 특징은 흉기인 피해자의 양말 이외에는 하등의 물적 증거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말하자면 완전범죄에 틀림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흉기인 양말이 피해자의 소지품이란 점으로 보아 이 범죄가 모살(謀殺)인지 고살(故殺) 모살은 계획을 세워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 고살은 계획 없이 즉각적 반응에 의해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에서는 차이를 두지 않으나 이 단편이 쓰인 삼십 년대에는 모살의 형이 더 무거웠다. 인지를 구별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재판소에서는 물적 증거를 잡을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재판소는 하는 수 없이 외부 범인설을 지지하여 그 이듬해 사월에 증거불충분으로 유시영 씨는 무죄방면이 되고, 한편 모현철 씨는 이듬해 십이월에 비관 끝에 부인의 뒤를 따라간다는 유서를 남겨놓고 해금강에서 투신자살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시영 씨는 지금도 평양에 있으며 동양신문에 〈조선 시조의 재음미〉라는 긴 논문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김나미 살해사건’은 아직까지 하나의 흥미 깊은 수수께끼인 채로 남아 있으나 우리들 추리소설 팬으로서 이 살인사건을 다시 한 번 고찰해볼 때 과연 그것을 한 개의 수수께끼인 대로 영원히 남겨두어야 할 것이겠습니까? 열성 있는 응모를 절망하는 바올시다.

19xx년 9월 9일

《괴인》사 경백

유시영 현상응모[편집]

평양 한 모퉁이에는 거의 침식을 잊어버리고 추리소설잡지 《괴인》 시월 호를 한 권 앞에다 펴놓은 다음에 꼭 삼 주일 동안을 비상히도 충혈된 눈동자로 매일처럼 뚫어질 듯이 노려보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의 해말쑥한 얼굴에는 무서운 긴장 끝에 습격하는 극도의 피로와 일분일초를 아까워하는 초조와 그리고 사상의 곤궁과......, 이런 것들이 서로 얽히고 사리어서 조금 과장하게 표현한다면 마치 종로 네거리의 교통과 같은 일대 혼잡을 이루고 있다.

그러다가는 또 미친 사람 모양으로 집지를 집어던지고는 방 안을 헤매는 것이었다. 헤매다가 기진맥진하면 그만 자리에 쓰러져서 핏줄기 뻗친 두 눈으로 머엉하니 천장을 쳐다보면서,

“내일이 마감 날! 내일 밤 열두 시까지는 아직도 서른네 시간이 남았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세 시를 친다.

“서른네 시간! 나머지 이 서른네 시간 동안에 나는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모현철 범인설을 세워야 한다! 모현철이가 김나미를 죽였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된다! 해야만 된다! 해야만 된다!”

이 염병환자의 잠꼬대같이 부르짖어 마지않는 사나이, 그가 바로 저 ‘김나미 살해사건’의 관계인물, 증거불충분으로 말미암아 무죄방면이 되었던 시인 유시영 그 사람이었다.

유시영이 잡지 《괴인》에 실린 현상모집 광고를 본 것은 벌써 삼 주일 전의 일이다. 자기의 성명을 (가명도 아니고 본명을) 그 불길한 살인사건에서 다시금 발견한 순간, 《괴인》사 사장이라는 놈의 목덜미를 잡아 쥐고 한참 동안 힘껏 두들겼으면 하는 충동을 억제해가면서 결국 그 밉살스러운 현상모집에 자진하여 응모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무서운 번민과 폭풍우와 같은 열정이 그를 휘덮어 눌렀던 것이다.

“...... 이 두 번 없는 기회를 이용하여 이제 다시 한 번 그 살인 사건을 생각해보자. 이 몸에 흐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무섭고도 저릿저릿한 혐의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리라. 김나미를 대신하여 복수하리라 적어도 나에게는 일반 응모자들에게 비하면 가장 유리한 특전이 있다. 관계인물 중 유시영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나 자신과 모현철과 그리고 김나미, 이 세 사람뿐이다. 그리고 모현철과 김나미는 죽었다.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유시영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해야만 된다.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그리고 억지로라도 모현철 범인설을 확립시키고 유시영 범인설을 말살시켜야만 된다! 마감날까지는 지금부터 삼주일 이상의 여유가 있다!”

그러나 그 삼 주일 동안이라는 시일은 어느덧 지나가고 마감날이 내일로 닥쳐온 시월 삼십일 오후 세 시로다.

“모현철, 모현철! 그 음수(陰獸)와 같은 모현철!”

유시영은 또다시 잠꼬대처럼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나는 잘 알고 있다. 김나미를 죽인 적이 없는 나 자신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나미의 하얀 목을 누른 자는 누군고......? 이쁜이? 이쁜일 순 없다. 식모? 그 전신불수인 식모가 어떻게......?”

그러다가는 “모현철, 모현철......” 하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잠가놓았던 현관이 열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나? 재판소의 의견과 같이 역시 범인은 외부에 있었던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는 만무하다! 나미를 죽인 자는 모현철! 모현철이 죽였다!”

유시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버와 모자를 되는 대로 주워 입고 주워 쓰고 휘청거리는 다리로 집을 나섰다.

그는 거기서 더 생각할 여유와 기력을 갖지 못하였다. 죽을 것 같았다. 찬 공기를 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을 셈으로 집을 뛰쳐나온 유시영은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정신을 마비시킬 셈으로 카페 모로코의 문을 열었다. 컴컴한 박스 한 모퉁이에서 그는 칵테일을 마셨다. 위스키도 마셨다.

잔뜩 취해서 모로코를 나선 때는 수많은 전등불이 매연 속에서 껌벅껌벅하였다. 갈지자걸음이다. 어디를 걷는지도 모르고 헤매는 듯이 걸었다. 자동차 운전수가 꽥 하고 고함을 치면서 지나갔다.

“...... 나미를 죽인 자를 모현철이라고 가정하면, 그는 대관절 어떻게 죽였을까......? 저 전신불수인 늙은이는 내가 그때 나미의 침실에 들어가 있었다고 증언했것다. 나미가 날더러 ‘유 선생, 나가 요. 빨리 이 방에서 나가라는데......’ 하고 고함을 쳤다고 그 미친 늙은이가 증언을 했것다! 그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모현철은, 모현철은 어떠한 수단으로 그와 같은......”

그는 그때 대신궁 옆 넓은 신작로로 해서 모란봉 쪽을 향하여 걷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일순간 우뚝하니 섰다가 담배를 붙여 물고 외투 깃을 세운 다음에 다시 휘청거리며 걷기를 시작하였다.

달밤이었다. 봉천 가는 급행열차가 보통벌을 북으로 내닫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시영 범인설은 성립되나 모현철 범인설은 성립이 아니 된다. 그러면, 내가 나미를 죽였는가......? 내가 죽이고 나도 모르는....... 앗! 몽유병......?”

그는 온몸이 떨림을 깨달았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렇고나! 내가 죽였나 보고나! 몽유병, 몽유병! 이 양손이 나미의 목을 눌렀고나! 그러고도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나!”

그는 우뚝하니 서서 양손을 달빛에 비쳐보았다. 떨린다.

“음, 그렇다! 그렇지 않은가? 유시영 범인설을 승인하는 순간, 모든 의문과 모든 모순은 순순히 해결된다. 저 식모의 증언도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나는 몽유 중에 나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나미에게 요구했던 것이로구나......”

세상에는 자기가 자기를 못미더워하는 것처럼 두려운 것은 없으리라. 달빛에 두 손을 비춰보면서 벌벌 떨고 있는 유시영의 공포도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대체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을밀대 난간에다 몸을 기대고 공포에 떠는 시선을 멀리 발밑 능라도에 던졌던 그때였다.

그것은 실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능라도 남쪽 줄거리만 남은 수양버들 밑에서 난데없는 두 줄기의 불빛, 마치 도깨비불과 같이 새파란 두 줄기의 불빛이 떨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불빛을 둘러싸고 시커먼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지를 않은가?

“뭘까......?”

유시영은 잠깐 호기심에 끌리어 바라보다가 자기도 알지 못하게 불현듯 발끝이 움직이는 대로 또 따라갔다. 기나긴 계단을 위태로운 걸음으로 비틀비틀 부벽루 쪽으로 내려갔다.

수도국 다리를 건너서 능라도에 들어서니 저편 남쪽 수양버들 아래서 검은 그림자들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양이 마치 꿈결같이 바라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이 밤중에 이런 곳에서 대관절 무엇을 하는고......?”

잠시 동안 그는 ‘김나미 살해사건’을 잊은 듯이 넓은 모래밭을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면서 그 이상스런 두 줄기의 불빛을 따라 걸어갔다.

“대체 무엇들을 하고 있느냐 말이야?”

그리 중얼거리면서 그는 불빛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사람들 뒤로 돌아가서 약간 키를 높이고 목을 늘여 넘겨다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첩첩이 싸여 잘 보이지를 않는다.

“뭘까......?”

유시영은 군중을 헤치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뭔가 했더니 야간촬영이로군.”

대동강변 부벽루를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한 장면이었다.

흰 줄이 박힌 학생모를 쓰고 망토를 입은 수일이가 두 줄기 광선을 얼굴에 받아가면서 천공에 걸린 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원망하는 것도 같고 저주하는 것도 같고, 만상(萬象)의 철리(哲理)를 자기 혼자만이 깨달은 듯한 얼굴이다.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이수일로 분장한 배우의 얼굴이 어딘가 임마누엘 칸트와도 같다고 느낀 유시영은 지나간 삼 주일 동안 잊어 버렸던 웃음을 그제야 찾은 듯이 “후후훗......” 하고 웃어버렸으니 채플린 수염을 기른 감독 씨에게 꾸지람을 들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또 한편 순애는 아주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흔들면서 쥐었던 손수건을 물어뜯는다. 유시영은 쭉 하고 찢어지는 명주 손수건이 너무나 아까워서 또 한 번 “후후후.” 하고 웃고 또 한 번 꾸지람을 받았다. 웃음이 아랫배에서 자꾸만 뛰노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는 모르는 일이건마는......

〈장한몽(長恨夢)〉은 점점 클라이맥스로 들어간다. 악귀와 같이 변해버린 이수일이 하늘의 달빛을 우러러 심순애의 변심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부여잡는 심순애를 탁 차버리고 “간부! 간부!” 하고 부르짖으며 달빛에 희미한 수도국 다리의 청루벽 쪽으로 사라지는 클라이맥스의 신이었다.

“순애야, 너와 같이 산보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너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는 장면은 순순히 잘 되었으나 마지막 장면인 “수일 씨! 내가 만일 그에게 시집을 간다면 수일 씨는 어떡헐 작정예요?” 라는 액션이 끝나자마자 극도로 격분한 얼굴로 수일이가 순애를 떠 밀치고 “음! 그러면 너는 결국 김중배에게로 시집을 갈 셈이로구나!” 하며 오른발을 들어서 심순애의 허리를 차는 양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 불행히도 채플린 씨가 고함을 쳤다.

“안 됐어, 안 됐어! 좀 더 힘껏 차! 힘껏! 자, 다시!”

명배우 제씨 면목이 없는 듯이 머리를 긁는다. 게다가 구경꾼이 많은지라 수일 군은 반항하려는 듯이 한 번 채플린 씨를 흘겨보았다. 울고 있던 순애 앙은 방긋 웃는다. 눈물을 흘리면서 수줍게 웃는 것이다.

유시영도 어이가 없어서 “허허.” 하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작!” 하고 채플린 씨가 명령한다. 수일 군이 조금 어색한 몸짓으로 다리를 들어 순애 양의 호리호리한 잔허리를 차는 액션을 하였을 때, 유시영은 그만했으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채플린 씨는 무엇이 마음에 맞지를 않는지 (아마 아까 수일 군이 한 번 흘겨본 것이 잘못인지),

“틀렸어, 틀렸어! 그게 뭐냔 말이야. 그러고도 제법 일류배우라고......? 세 번씩이나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일류배우를 쓰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걸! 좀 더 실감을 갖도록 차지를 못해? 연극과 같네 그려, 연극과 같애!”

채플린 씨의 입버릇도 사나웠으나 수일 군의 용기도 칭찬할 만하였다.

“물론 연극이죠! 당신은 영화감독이 아니고 살인감독인가 보구려!”

구경꾼들은 “하하.” 하고 웃었다.

그러나 유시영은 언제까지나 그들과 더불어 웃고 있을 수가 없었다. 모자를 벗어 쥐고 수도국 다리로 향하여 달빛이 낮과 같은 모래밭을 달음박질치고 있었던 것이다.

“살인감독! 살인감독!”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으며 단 한숨에 다리를 건너간 유시영은 지나가는 차를 잡아타고 소리를 쳤다.

“만세, 유시영 만만세! 모현철 범인설 성립! 만세!”

섣달 열 닷샛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조반도 먹을 사이 없이 집을 뛰쳐나온 유시영은 주먹을 부여 쥐고 눈보라 치는 거리를 비조(飛鳥)와 같이 달려간다. 지물상을 지나고, 양화점을 지나고, 과잣방을 지나고, 철물점을 지나고....... 그다음이 그의 목적지인 ‘광명당 서점’이다. 유리창을 드르르 열고 서점 안으로 들어선 유시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여보! 추리잡지 《괴인》 신년호는 아직 안 나왔어요......?”

하고 황급히 물으니, 안방에서 조반을 먹고 있던 늙은 주인은

“이제 방금 와 닿았습니다.”

하고 일어서면서 아직 짐도 풀어놓지 않은 소포꾸러미를 가지고 나온다.

늙은이가 소포꾸러미를 터치는 동안 유시영의 가슴은 자못 떨릴 뿐이었다. 그러나 늙은이는 그의 초조해하는 마음도 모르는 듯이 서투른 솜씨로 한참이나 우물쭈물하다가 드디어 꾸러미를 펼쳐놓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괴인》을 눈앞에 펼쳐놓을 용기를 갖지 못하였다. 그 가운데서 한 권을 덥석 잡아 쥔 다음에 대금을 지불하고 또다시 눈보라 치는 거리로 뛰쳐나왔다.

뛰쳐나와서 그는 부살 같이 자기 집을 향하여 달음박질을 쳤다. 달음박질을 치면서 불현듯 그의 양손이 《괴인》을 폈던 그 순간 그는 멈칫하고 걸음을 멈추었던 것이다.

당선...... 유시영씨!

“으와! 으와......!”

그는 미친 듯이 고함을 치고는 또 나는 듯이 달려간다.

한 시간 후, 유시영은 희열에 넘치는 얼굴로 앞에 놓인 《괴인》을 언제까지든지 들여다보고 앉았다.

선자 백상몽의 말

지난 시월 호에 모집한 추리현상 응모는 실로 궤상산적(机上山積)의 관을 이루었습니다. 하나하나씩에 대한 검토는 지면관계로 말미암아 할 수 없으나 개괄적으로 평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외부 범인설

이것은 대체로 당시 재판소에서 취하였던 의견과 같은 것인데 전신불수인 식모의 증언을 허위가 아니면 착각이라고 하고 따라서 절도나 강도의 범행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만, 이 외부 범인설을 취한 분은 대단히 적었습니다.

만일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안으로 자물쇠를 채웠던 현관을 어찌 외부로부터 열 수가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이 설은 만족한 해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2) 유시영 씨 범인설

이것은 유시영 씨의 증언을 허위라고 생각하는 한편, 만일 그의 증언이 진실하다고 가정하면 유시영 씨는 두말도 할 것 없이 몽유병자에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시영 씨는 자기도 모르게 아래층 침실로 내려가서 김나미와 언쟁한 끝에 의가에 걸려 있던 피해자의 양말로 목을 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유시영 씨를 몽유병자라고 하더라도 범행 후 이층으로 올라갈 때의 발자국 소리는 적어도 보통 시의 그것과 똑같을 것이거늘 몽유병자가 고의로 발자국 소리를 숨겨가면서 계단을 올라 갔다고야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그런데도 불구하고 식모는 그런 발자국 소리를 못 들었다 하니 이 점을 어떻게 해석할 텐가?

(3) 모현철 씨 식모 공범설

모살이라도 동기는 질투. 이상 두 개의 의견에 비하면 비교적 그럴 듯한 견해입니다.

그러나 비밀히 무서운 살인을 하고자 하는 자가 아무 관계없는 여자인 식모와 짝을 지어 이를 종범(從犯)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주범(主犯)의 입장을 위태롭게 하는가를 과연 그는 생각하지 못하였을까? 단독으로 죽일 생각을 못하였을까?

(4) 모현철 씨 단독 범인설

이상과 같은 점으로 보아 선자는 당선자 유시영 씨와 같이 모현철 씨 단독 범인설에 가담하는 바올시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가장 흥미 있는 사실은 당선자 유시영 씨는 문제의 ‘김나미 살해사건’의 관계자인 유시영 씨 그분이라는 것입니다. 사건 이래 동씨가 받고 있던 무서운 살인혐의가 이번의 이 응모로 하여금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선자는 믿는 바올시다.

그리고 유시영 씨는 일반 응모자 제씨에 비하면 어느 정도의 특전을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모집규정에 이분의 것을 채용치 않겠다는 특별규정이 없었으므로 당선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괴인》을 위하여 특별히 집필하여 주신 유시영 씨에 대하여 만폭(滿幅)의 감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유시영 씨의 해답 내용

“사실은 소설보다도 기이하다.”

필자는 이런 말을 전부터 들어왔습니다. 추리소설에 있어서는 제아무리 침착하고 용의주도한 범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어떤 실수를 하는 것이 보통이며 상식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범인으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실수를 시켜 그것을 독자라든가 수사관 같은 인물로 하여금 수사하여 발견시키는 수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우리들 독자로서는 추리소설을 안심하고 즐겨 읽을 수가 있을 것이며 나중까지 읽기만 하면 오리무중에 싸인 듯하던 착잡한 사건과 갖은 의문이 저절로 풀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를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규칙한 궤도를 밟고 있음을 우리들은 매일과 같이 목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소설보다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대신 어떤 것은 소설에서도 남겨두는 단 한 개의 실수까지도 남김이 없이 무서운 범죄를 수행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후자를 세상에서는 소위 ‘완전범죄’라고 부르고 있으니 필자가 체험한 이 ‘김나미 살해사건’이야말로 바로 그것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필자가 다음에 기술하는 바와 같은 방법으로 모현철 씨가 부인을 살해했을까 안 했을까? 그것은 필자도 알지 못하는 하나의 미스터리일 것입니다. 다만 그를 범인이라고 가정하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필자 개인의 공상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현철 씨와 동거생활을 한 지 일 년 반. 그는 선량한, 어느 편이냐 하면 재물에 그다지 동하지 않는 가장 침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침착한 그가 극도의 페시미즘에 사로잡힌 것은 사건이 일어나기 약 오 개월 전의 일이었습니다.

추측건대 그는 그때부터 자살할 생각을 가지지 않았던가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는 감연히 일어나서 나와 더불어 싸울 만한 기력을 갖지 못하였던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염세적 상태가 한 두어 달쯤 계속되더니 다시 전과 같이 침착한 그로 돌아갔습니다. 생각건대 그때부터 그는 부인 김나미를 살해하고자 결심한 것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부인 김나미를 죽였던가?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극히 간단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알고 보면 간단한 방법을 (모든 수수께끼, 모든 요술이 전부 그렇지만) 나는 꼭 삼 주일 동안을 불면불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사실을 독자 제씨에게 알려두나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한 막의 희곡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그것을 자신이 실연하였던 것입니다. 제목을 붙였는지 안 붙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편의상 ‘살인극’이라고 불러둡시다.

희곡 살인극(殺人劇) 1막

때 깊은 밤 새벽 한 시 전후

곳 대동강변 어떤 문화주택의 아래층 침실

인물 모현철 ― 소설가

김나미 ― 모현철의 아내

무대면

아래층 현관에 접한 침실. 동쪽 유리창 밑에 더블베드, 그 옆에 의가(衣架)가 서 있고, 김나미의 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초콜릿 빛 실크 양말이 한 켤레 기다랗게 늘어져 있는 것이 유달리 눈에 띈다. 북쪽 담에 대와 매화를 그린 묵화가 두 장 붙어 있고, 그 사이에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쓴 둥그런 거울이 걸려 있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시계가 열두 시 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하 현상 문제에 기록된 모현철 씨의 침실과 똑같은 장치이므로 생략함.)

분홍빛 파자마를 입은 김나미가 더블베드 위에 엎드려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그때 누군지 이층에서 내려와 화장실에 갔다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면서 모현철 등장. 나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피러 온 것이다.

현철 아직도 자지 않우.

나미 (머리를 들고 반만큼 웃으면서) 아아, 가엾은 여자! 여자의 사랑이란 이렇게도 굳세답니다.

현철 (침대로 다가가면서) 그게 무슨 책인데?

나미 《춘희》. 춘희가 지금 눈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사랑의 일기를 쓰고 있어요.

현철 벌써 열두 시가 넘었는데....... 또 밤을 새워서 읽을 테요? (의가에 기다랗게 늘어진 나미의 실크양말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나미 물론! 아직까지 원고?

현철 음, 내일까지 희곡을 한 편 써보내얄 텐데 어디 마음대루 돼야지.

나미 흥! 소설가가 희곡을 쓰려니 되겠소?

현철 못 쓰겠대두 《태양》 사에 있는 박 군이 자꾸만 쓰라고 졸라대기에 그만 맡아놨더니....... 야단났어! 내일이 마감날이라는데....... (도로 밖으로 나가면서) 너무 오래 있지 말구 빨리 자요!

나미 오라이! 노오 댕큐!

나미는 다시 독서를 시작한다. 층층대로 올라가는 모현철의 발자국 소리가 뚜렷이 들린다. 사십 분 후. 테이블 위에 놓인 시계가 한 시를 가리켰을 때 불현듯 문이 쑥 열리며 손에 원고지 같은 것을 쥐고 모현철이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면서 조심스레 들어온다.

현철 (낮은 음성으로) 아직도 안 자는구먼! 내일은 또 해가 낮 되도록 잘 테지.

나미 (머리를 들며) 지금 춘희가, 그 불쌍한 춘희가 애인의 환상을 눈앞에 그리면서 입으로 자꾸만 피를 토한답니다.

현철 (침대 옆으로 가까이 오면서) 벌써 한 시가 가까웠는데.......

나미 왜 또 내려오셨어요? (양미를 찌푸리며) 어서 올라가서 원고나 쓰세요.

현철 글쎄 그 원고가 말이지 어디 마음대로 돼야지. 큰일 났군!

나미 못 쓰겠으면 그만두면 그만이지 무엇을 그리 걱정하시우.

현철 (손에 쥔 원고지를 만지며 역시 낮은 음성으로) 그만두다니, 그만두면 되나! 어떻게 해서라도 오늘 밤에는 써 놓아야지. (침대 끝에 앉는다.)

나미 빨리 올라가서 쓰세요. (다시 독서)

현철 (의가에 걸린 나미의 양말을 힐끗 보며) 그래, 부탁이 한 가지 있어서 내려왔는데.

나미 무슨 부탁?

현철 (잠시 동안 우물쭈물한다.)

나미 무슨 부탁이에요? (현철이 쥐고 있는 원고지를 힐끗 보며) 원고에 관한 것?

현철 음, 원고에 관한 것인데 아무리 쓰려야 써지지를 않아. 실감이 나지를 않거든. 썼다가는 찢고 썼다가는 찢고. 이것이 초고(草稿)인데.......

나미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그렇게도 쓰기가 어렵소?

현철 글쎄, 그 내용이 이렇거든. 어떤 실업가의 젊은 부인이 낮에 혼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그때 뜻하지 않은 사나이가 한 사람 찾아온다. 그것은 부인의 옛날 애인으로서 지금은 어떤 레코드 회사의 문예부장으로 있는 사람인데, 그래 부인은 한편으로는 깜짝 놀라면서 하는 수 없이 응접실로 안내한다. 거기서 사나이는 자기를 속이고 실업가와 결혼한 것을 온순히 힐난한 후에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와 달라고 애원을 하였으나 부인은 박정하게도 잡아뗀다. 그러니까 사나이는 부인에게 매달려서 꿈에라도 잊을 수 없는 옛날의 즐거움과 도저히 끊어버릴 수 없는 자기의 애정을 호소하였으나, 부인은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임박하였으므로 우물거리지 말고 한시바삐 돌아가 달라고 이번에는 이편에서 애소를 한다. 그래도 사나이는 돌아갈 줄을 모르고 야단을 치므로 부인은 하는 수 없이 냉정한 어조로 빨리 나가라고 고함을 친다. 그리고 거기서 언쟁이 일어난 후에 결국 사나이는 돌아가고 말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고, 그때 젊은 부인의 태도가 문제란 말이지. 지금 내가 쓰지를 못해서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은 그 부인의....... (모현철, 물끄러미 나미의 안색을 엿본다.)

나미 그래서? (흥미 없는 듯이 그러나 침대 위에 일어나 앉는다.)

현철 그래서 그때 그 부인의 표정이라든가 액션 같은 것을 눈앞에 똑똑히 그릴 수가 없단 말이지. 아무리 고쳐 써도 실감이 나질 않고 무미건조해지는 걸 어떡허노! 나도 인젠 늙었단 말이야! (긴 한숨)

나미 그래, 부탁이란 뭐예요?

현철 (나미의 안색을 엿보며) 그때의 그 젊은 부인의 액션을 한번 실지로 해봐 달라는 말이오.

나미 내가? (흥미가 없지도 않은 것 같은 얼굴)

현철 왜, 흥미가 없소?

나미 그렇지두 않지만.......

현철 (반만큼 웃는 얼굴로) 왕년에 뽐을 내던 그 좋은 연기를 한 번 보여 주구료. 자, 시간이 가기 전에 빨리, 빨리!

나미 이제 곧?

현철 음, 시방 곧!

나미 내일했으면?

현철 (과장된 표정으로) 하하, 이 양반 귀가 먹었나 보다. 내일이 마감날이라는대두. 오늘 밤은 새워야겠다는대두. (채찍질하는 듯이 재촉하면서 침대에서 일어선다.)

나미 (하는 수 없이 책을 침대 위에 편 채로 엎어놓고) 그래, 어떡허면 좋소?

현철 어떡허다니, 이 초고에 쓰인 대로 한번 실연을 해보라는데. (원고지를 나미에게 내어주면서) 자아, 이것이 그 초고인데 될 수 있는 대로 참되게 그리고 실감이 나도록.......

나미 (원고를 받아 펴보며) 아이구! 이렇게 긴 것을 어떻게 지금 곧 하라구! 대사를 죄다 외워야 되지를 않아요?

나미 (힐끗힐끗 책상에 놓인 시계를 보면서 조급히) 뭘! 죄다 외지 않아도 괜찮아. 이쯤서부터 읽어보면 되지.

나미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러나 옛날의 찬란한 무대생활을 그리워하는 듯이 묵묵히 읽기를 시작한다.)

현철 (초조해서) 뭘! 그 젊은 부인의 대사만 외우면 되지. 자아, 내가 상대편 사나이의 역을 할 테니까.

나미 (머리를 숙이고 그 무서운, 저주받은 원고를 묵묵히 읽는다.)

현철 (방 안을 이리저리로 왔다 갔다 한다. 휙 둘러본다. 그리고 숙이고 있는 나미의 새하얀 목덜미를 뚫어질 듯이 내려다보다가 마침내 의가에 걸린 기다란 양말로 시선을 옮긴다. 악마의 웃음.)

한참 동안 무서운 침묵이 계속.

나미 (읽고 나서 머리를 든다.) 이다음엔 어떻게 됩니까? 그 레코드 회사의 문예부장과 이 실업가의 부인은 또 연애를 계속하게 돼요?

현철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래두 그런다. 그 실업가의 부인이 옛날의 애인을 그런 곳에서 대할 때에 과연 어떠한 태도를 취하겠느냐가 문제래두 그래.

나미 그런데 말이에요, 그때까지도 그 실업가의 젊은 부인은 첫사랑을 바쳤던 그 문예부장을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던가 말이에요? 사실로 그처럼 박정한 말을 했는가, 현재의 남편이 무서워서 그랬는가?

현철 아, 그것 말인가? 그것은 절반 절반이랄까, 그러니까 어렵다는 게지. 그러나 여자란 것은 현실에 뿌리를 박아놓으면 좀체로는 꿈꾸기를 무서워하니까 부인 자체로 말하면 현재의 남편을 더 사랑하고 있었을 테지. 또 사랑하였으니까 결혼두 하였겠고....... 하여튼 현재의 평화로운 가정을 사수하려는 충실한 하나의 아내로서의 태도라든가 마음씨를 그리고자 하는 게야.

나미 그러면 여기에 쓰인 부인의 대사는 너무나 과격하지 않아요?

현철 그렇기에 지금 내가 애타고 있는 게 아니우. 하여튼 그대로 한번 해보고 나서 적당치 못한 데는 나중에 다시 고치기로 하지.......

나미 의복은 이대로도 괜찮아요? 파자마를 입은 채로?

현철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부인의 대사를 외웠소?

나미 채 못 외웠는데, 이것을 보고 해도 괜찮겠지요, 뭐.

현철 아, 정말 그러는 것이 좋겠군! 보면서 해요 보면서. 당신이 부인 임정숙(任正淑)이가 되고 내가 문예부장인 유창식(柳昌植, 사실은 류창식이라 불렀다)이가 될 테니! (그렇게 말하고 조금 불안스러운 듯이 김나미의 얼굴을 엿본다.)

나미 (그 순간 류라는 발음에 약간 의혹의 빛을 보이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맨 나중의 석 장만 하면 되지 않아요? (침대에서 내려온다.)

현철 (같은 발음 ‘劉’와 ‘柳’의 난관을 벗어난 그는 후 하고 안심하는 빛을 보이며) 되구 말구, 석 장만이면 돼. 그리고 그 괄호 안에 쓰인 설명을 잘 주의해야만 되오. 알겠지? 특히 음성의 높고 낮음을 주의해서.......

나미 (처음으로 무대에 서는 사람처럼 퍽 어색해하며) 알아요, 알아요. 자아, 빨리 합시다. 누가 먼저 해요?

현철 내가 먼저 하지.

나미 그럼 빨리 하세요!

현철 괄호 안에 설명한 목소리의 높고 낮은 것을 잘 정신 차려서! (긴장한 얼굴빛)

나미 그래, 잘할 테니 너무 다지지 말아요. 너무 다지면 도리어 잘 안 된답니다.

현철 자아, 그러면 시작! (배우가 무대 위에서 하는 것처럼 온돌 위에 꿇어앉으며 양손을 나미에게로 뻗친다. 감격에 찬 굵고도 낮은 목소리로) 정숙 씨! 당신을 잃어버린 지나간 몇 달, 아아! 얼마나 적적하고 얼마나 쓸쓸하며....... 만나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정숙 씨! 당신의 행복을 위한다면 어떠한 일이든지 달갑게 하고자 하는 이 마음을 정숙 씨는 조금도 몰라주는 것 같습니다. (애달퍼 하는 표정 속에 잠긴 악마의 눈초리)

나미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이 그러나 은근한 목소리로)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현철 정숙 씨!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주십시오. 아아, 쓸쓸한 세상! 아아, 컴컴한 세상!

나미 (무엇을 결심한 표정. 낮으나 밑힘 있는 음성으로) 안 됩니다! 저의 행복됨을 원하시거든 저를 이대로 두어주시오. 유 선생님도 (나미는 그 순간 이층에 있는 유시영을 문득 연상하고 무엇인가 약간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고) 제가 남편 있는 몸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저는 이 평화스러운 가정을 사랑하며....... 이만하면 됐어요?

현철 아, 그만하면 되구 말구. 그러나 조금 더 참되게! 좀 더 사실처럼!

나미 유 선생님과의 관계는 벌써 옛날에 끊어졌습니다. 지금 와서 저를 힐난하는 것은 비겁한 짓입니다. 빨리 돌아가시오. (딴 곳을 본다.)

현철 (천치와 같은 머엉한 표정. 슬그머니 일어선다. 돌아서서 문 있는 쪽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나미 퍽 잘하셔요! 배우 이상이에요.

현철 (돌아도 보지 않고) 물론! 배우 이상이지! 자아, 그다음을 해! 허튼 말은 그만두고 음성의 고저를 주의해서 !

나미 (원고를 들여다보고 보통 음성으로) 자아, 빨리, 빨리. 주인이 돌아올 시간입니다. 발견되는 날에는 둘이 죄다 불행이. 빨리, 빨리 나가세요.

현철 (천천히 나미에게로 돌아선다. 바보와 같은 눈동자가 의가에 늘어진 실크양말을 거쳐서 나미의 얼굴 위에서 멎는다. 다시 시선을 옮겨 의가가 놓인 바로 위의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얼빠진 사람처럼 그리로 걸어간다. 걸어가서 의가에다 손을 올려놓고 획 하고 나미에게로 돌아선다.) 당신의 행복은 깨뜨리면 안 되고 나의 행복은 깨뜨려도 좋다? (그리고 하하하하, 웃는다. 그의 본음성이 아니다.) 음, 당신은 그래도 좋을는지 모르나 (완전히 음성이 변했다. 높은 목소리) 애당초 당신은 나를 왜 사랑했단 말이오? 무슨 이유로 나를 조롱했단 말이오? 그 이유를 들려주시오! (그 표정, 그 동작은 몸서리칠 만큼 현실미를 갖고 있다. 하나의 연극이 아니고 현실이다.)

나미 (남편의 너무나 참다운 연극에 어떤 불길한 암시를 받은 듯하여 일순간 주저하는 얼굴빛. 그러나 자기의 연기를 보일 때가 왔다는 듯이 공교로운 액션으로 문을 손가락질하면서 부르짖는 목소리로) 유 선생! 나가요 빨리 이 방에서 나가라는데! 사람을 불러도 괜찮겠어요? (다음 순간 갑자기 태도가 변하여 무척 요염한 웃음과 대사로) 호호호! 어리석은 사람....... (그리고 비웃는 듯이 어깨를 한 번 들썩이고 픽 돌아선다.)

현철 뭐야? (하고 소리를 치기가 바쁘게 의가에 걸렸던 양말을 한 짝 집어 쥐고 화살같이 빠른 솜씨로 나미의 등 뒤로 달려가서 그 섬약한 목을 힘껏 졸라맨다. 원고를 쥐었던 나미의 오른손이 공중에서 한참 동안 우쭐우쭐 춤춘다. 나미의 몸뚱이가 모현철의 품 안으로 쓰러진다. 그것을 온돌 위에 누인 다음에 원고지를 한 장도 남기지 않고 거머쥐고는 현관으로 나아가 문을 열어놓은 후에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면서 이층으로 올라간다.)

― 막 ―

이리하여 그는 이쁜이를 깨우는 식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악마와 같이 이층으로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식모가 밤에는 태반 자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전신불수인 사실, 이쁜이가 잠보라는 사실은 그의 살인계획 중 가장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현관을 열어놓았는가? 그것은 만일 혐의가 자기에게로 옮아올 때에 대한 도피공작입니다.

또 한 가지, 모현철 씨의 유서에는 부인 김나미를 연모한 끝에 그의 뒤를 따라간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로 되어 있으나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자책의 마음을 금치 못하여 자살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공포경(恐怖鏡)[편집]

눈보라도 자고 바람도 잔다. 알록알록한 햇빛이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듯이 들어온다.

《괴인》사에서 보낸 일금 삼백 원의 소절수(수표)를 책상 위에 펴놓고 시인 유시영은

“자아, 이것을 무엇에다 쓸 것인고?”

하고 수차 머리를 기울였다. 이삼백 원을 가지고 이것저것 시시하게 생활비로 쓴다는 것은 하도 무의미하게 생각되므로 여러 친구를 데리고 하룻밤에 일 전 일 푼도 남기지 않고 탕진하면 상쾌하리라.

아직 삼십 원도 술값으로 턱 내놓아본 적이 없는 빈곤의 시인 유시영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두 번 없는 기회라고, 양복을 주워 입고 시나리오 라이터 김준(金準)을 방문할 셈으로 집을 나섰다.

서문거리를 지나 대동문으로 나가서 스케이터들이 까마귀 떼 같이 밀려다니는 대동강을 오른편에 바라보면서 경제리를 향하여 올라가노라니까 저편에서 김준을 선봉으로 세우고 걸어오던 너댓 명의 동배가 일시에 손을 번쩍 들면서,

“유시영군, 만세!”

“삼백 원, 만세!”

“동일관, 만세!”

를 연달아 부르는 것을 보니 벌써 그들은 한바탕 먹을 셈으로 자

기를 찾아오는 길임을 짐작하고,

“자아, 동일관에서 한턱 살 테니 들어들 가세.”

하고 먼저 막지름(선수)을 쳤다.

“하하하, 이것 참 천만뜻밖이로군. 지금 우리들은 당선축하회라는 조그마한 미끼로 삼백 원의 소절수를 엿보고자 행차 중이었는데.”

하고 김준은 한 번 더 “하하하.”를 연발한다.

“먹는 군들도 즐겁고 먹이는 나도 기쁘니, 하여튼 동일관으로 가세.”

이리하여 그들이 동일관 이층 널따란 방을 차지하고 둘러앉은 것은 지기 쉬운 겨울 햇발이 어느덧 껌뻑껌뻑 서산을 넘으려 하였을 때였다.

요리가 들어오고 장구가 들어오고 가야금이 들어온다. 한 명씩 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한 기생이 십여 명.......

“그런데 유 군, 사실 모현철이 군이 생각해낸 그런 방법으로 김나미를 죽였을까 말이야?”

김준은 술잔을 들면서 물었다.

“글쎄, 나두 알 수 없는 일이지. 그러나 생각해보게나. 대체 사람이 사람을 죽이겠다고까지 결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 즉 살해동기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나미를 죽일 만한 사람은 모현철 이외에는 한 사람도 없었거든. 그리고 모현철을 범인이라 가정한다면 그러한 수단 이외는 취할 수가 없었다는 나의 공상이야, 공상.”

술추렴과 기생들의 노래가 한바탕 지나고 보니 좌석은 고요해졌다. 유시영과 김준의 대화가 무척 흥미를 끈 모양이다 기생들도 장구채를 놓고 귀를 기울인다.

“하여튼 추리소설 이상으로 묘한 수단인걸.”

“그날 밤, 나는 능라도서 〈장한몽〉을 촬영하는 광경을 보았는데 배우라는 존재가 어떻게나 인형적 존재며 어떻게나 감독의 지배를 받는지를 무의식중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또 한편 피해자 김나미가 본래 가극배우였던 것과 모현철이 소설가라는 사실 등을 역시 잠재적으로 의식하고 있던 그 순간, 채플린 감독에게 ‘살인 감독’이라고 대들던 이수일로 분장한 배우의 한마디가 번개같이 힌트를 던져주었단 말야.”

“음, 셜록홈즈 이상인데!”

“나미가 그날 밤 어째서 ‘유 선생’이라는 말을 입에다 담았는가? 아니, 나미로 하여금 어떻게 그렇게 부르도록 만들었던가......?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하여튼 거짓 없이 나는 꼭 삼 주일 동안을 침식을 잊고......”

그때였다!

유시영을 폭풍우와 같은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한 가지 일어났다. 아니, 사건이라기에는 너무나 사소한 일이었으나.......

그때 요릿집 담에 걸려 있던 둥그런 거울을 내려 들고 화장을 하고 있던 어떤 기생이 그만 실수를 하여 거울을 식탁 위에 떨어뜨려 버렸다. 거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이 깨졌다.

유시영은 그때까지 화장을 하는 그 기생의 호리호리한 몸맵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으나 그 거울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를 들은 그 순간, 유시영의 머릿속에 박혔던 과거의 인상이 한 줄기,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이 떠올랐던 것이다.

유시영은 이야기를 끊고 무엇을 회상하려는 듯이 의아한 빛을 띠면서

“음, 그래, 그래. 깨졌다! 깨졌다! 그러면......?”

그리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를 마지않는다.

“유군, 뭘 그리 생각하는 게야?”

사람들은 일시에 유시영을 쳐다보며,

“자아, 빨리 이야기를 계속하게. 그래, 꼭 삼주일 동안이나 침식을 잊고....... 그러고는 어떻게 되었느냐 말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그의 얼굴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무엇을 생각해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말을 하게나, 말을. 뭘 그래, 뭘?”

김준은 그러면서 유시영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아무것도 아니래두 그래....... 그러나 좀 조용하게, 떠들지들 말래두....... 음, 그런데....... 그리구....... 음, 그렇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어떻게 되나?”

잠꼬대하듯이 중얼거리면서 유시영은 깨어진 거울의 한 조각 한 조각을 머엉하니 바라보는 것이다.

“자아, 이 사람 미쳤나 보군. 어서 술잔이나 들어.”

그래도 유시영은 술잔을 받아 쥔 채로,

“잠깐만 잠자코 있어주게나, 잠깐만....... 하여튼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걸......! 아, 아, 그런가? 그런가......? 그렇던가?”

술잔을 쥔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점점 창백해지는 얼굴. 둥그렇게 부릅뜬 두 눈. 그것은 벌써 의아를 넘은 공포 그것이 아닌가?

“유 군, 유 군! 뭘 그리 생각하는 게야?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하느냐 말야? 응? 말을 해보게나, 말을......”

“그럴 리가 있을까? 이상한 일이다! 믿지 못할 일이다......! 그러면, 그러면 저것을, 저것을 어떻게? 저것을......”

“저것이라니, 대체 뭘 말이야? 뭘?”

“저것이다! 저것!”

유시영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깨어진 거울을 무서운 듯이 가리켰다.

“그게 뭐가 그렇게 무서워? 아까 홍란이가 내리쳐 깨뜨린 거울이 아닌가? 응? 뭘 그리 두려워하는 게야?”

“거울이다, 거울이다! 아아, 제군!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갈 테니......”

그리고 자리에서 우뚝 일어났다. 여러 사람들도 일시에 일어나면서,

“유 군, 마음을 진정시켜서 이야기를 해보게나. 거울이 대관절 어떻게 되었다는 말이야?”

그랬더니 유시영은 전신을 키질하듯이 떨면서,

“나는 지금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다! 그놈이, 그놈이 나를 죽일는지도 모른다! 그놈은 나의 거동을 어디선가 엿보고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혹은......?”

그리고 그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씩하나씩 조사하려는 듯이 돌아다보는 것이었다.

“그놈이라니......?”

하고 이구동성으로 물으니, 유시영은

“모현철! 김나미를 죽인 모현철!”

하고 부르짖었다.

“뭐, 모현철? 십 년 전에 자살한 모현철이 대체 어디 있다는 말야?”

“서울에 있다! 아니, 평양에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이 방 어느 구석에 있을는지도......?”

공포에 찬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유시영은 방 안을 한번 휘둘러보았다. 그러나 거기는 십여 명의 기생들과 너댓 명의 친구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김준은 벌벌 떨고만 있는 유시영의 팔목을 꽉 붙잡으며,

“유 군, 정신을 차리게. 군이 그처럼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그것이 단지 망상이라든가 혹은 착각......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네. 무슨 심각한 이유가 있는 것 같으니....... 자아, 그렇게 떨고만 있을 것이 아니고 자초지종을 찬찬히 이야기해보는 것이 어떤가?”

옆에 있는 친구들도,

“그래, 그래. 사실로 그것이 망상이 아니라면 군이 혼자서만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그 무서워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게나. 십 년 전에 해금강에서 자살을 한 모현철이 어디 있으며, 또 어떠한 이유로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단정하는지....... 응, 그렇지 않나, 유군?”

그러나 유시영은 잠자코 사람들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문을 열고 컴컴한 대동강을 무시무시한 듯이 몸을 움츠리고 내다보았다.

밤이 그리 깊지는 않았으나 휙휙 불어오는 모진 광풍이 암흑의 장막을 뚫고 휘 넘어든다.

공포에 극도로 흥분되었던 유시영은 그래도 차차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으며, 따라서 조금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군! 나는 지금 모현철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망상이었다. 십 년 전에 해금강에서 투신자살을 한 그가 지금껏 살아 있을 리가 만무한 일이다. 그러니 제군은 나의 부질없는 말을 이 자리에서 곧 잊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지금 몸이 대단히 고단하므로 먼저 집으로 돌아갈 테니 군들은 삼백 원에서 일 전 일 푼도 남기지 말고 놀아주기를 바란다.”

유시영은 그리고 김준을 불러 데리고 컴컴한 밖으로 나왔다.

“정말 몸이 괴로운가?”

차를 타면서 김준은 물었다

“잠자코 나를 따라오게.”

“어디로 가는 게야?”

“집으로......”

“군의 집으로?”

“으”

“가서 뭘 하게?”

“잠자코 있으래두.”

“그러면 역시 망상이 아니었던가?”

“집에 가봐야 알아. 그리고 그것이 만일 나의 헛된 생각이 아니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는지, 그 방침을 군과 더불어 강구해야만 하네. 당국에 보고를 해얄지 어떡헐지......”

“그렇다면 이제 방금 요릿집에서 망상이니, 잊어달라느니 한 것은......?”

“나의 실언을 카무플라주할 작정으로....... 모현철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유시영이 안다......! 그것이 만일 모현철의 귀에 들어가 봐. 그가 나를 어떻게 처리하고자 하겠는가를......”

“음, 무서운 일이다!”

“벌써 그의 귀에 들어갔을는지도 몰라.”

“그래두 그가 서울에 있다면.......

“음, 그는 분명히 서울에 있다. 서울 어느 집에 있는지까지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그가 평양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가 알아? 그리고 내 옆에서 나의 거동을 일일이 살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집으로 가서 어떡할 작정이야?”

“그의 생사를 판단할 열쇠가 나의 책상 위에 있거든. 그리고 만일 나의 생각이 틀림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객관화시키기 위하여 내일 아침 평양 복심법원을 방문해야 될 것이다.”

“복심법원에는 왜?”

“김나미 살해사건에 대한 검증조서를 참조하러......”

차가 눈 깔린 행길을 찌걱찌걱 깨물면서 멎었다. 유시영의 집 앞이다. 둘은 창황히 차에서 내렸다.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마자 유시영은 부리나케 책상으로 달려가서 그 위에 놓여 있는 추리잡지 《괴인》 시월 호를 펴놓았다. 그리고 현상모집이 실려 있는 페이지를 열고 ‘살인 현장의 모양’이라는 제목 아래를 단숨에 내려 읽는다. 김준은 얼빠진 사람처럼 머엉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유시영은 비상히도 긴장된 얼굴을 번쩍 들었다.

“김 군, 내 말이 맞았다! 모현철은 분명히, 분명히 살아 있다!”

또다시 흥분되기 시작하는 유시영의 손을 잡고 김준은 침착한 어조로,

“유 군, 그렇게 흥분만 할 것이 아니네. 하여튼 이야기를 해보게. 어째 모현철이 살아 있다고 단정하느냐?”

하고 물었다.

“음, 물론 이야기하마. 이야기를 하려고, 그리고 군과 의논을 하려고 군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이니까.”

이리하여 그들은 책상을 사이에 끼고 마주앉았다.

“자아, 내 말을 똑똑히 들어주게.”

유 시 영 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담배를 피워 들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조금 아까까지도 ‘김나미 살해사건’을 소위 완전범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범죄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계획한 바에 따라 추호도 실수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무결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범죄라고 생각하였다....... 아아, 그러나 모현철! 그도 역시 귀신이 아닌 한 사람이었다!

모현철, 그렇게도 자연스러운 답변을 한 그가, 그렇게도 침착한 태도로, 그렇게도 공교로운 수단으로 범죄를 실행한 그가, 아아, 드디어 자기 손으로 자기의 무덤을 파고야 말았던가!”

“감상은 후로 미루고 먼저 사실부터 들어 보세나.”

김준은 마침내 호기심을 억제할 바 없어 유시영을 재촉하였다.

“음!” 하고 유시영은 담배를 한 번 힘껏 빨았다가 후우 하고 내뿜으며,

“군도 이 현상모집에 나타난 ‘김나미 살해사건’의 내용을 여러 번 읽어보았으니까, 내가 인제 다음과 같은 힌트를 하나 던져줄 테니 그가 진정한 범인이란 것과 그가 현재 생존하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또 살아 있다면 어디서 살고 있는가를 한번 맞혀보게. 명민한 머리를 가진 자라면 반드시 맞힐 수가 있으니까.”

“어디 한번 말해보게! 그러나 나는 본래부터 머리가 명민치 못하여서......”

그러면서도 김준은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 나는 아까 요릿집에서 기생이 거울을 내리쳐 깨뜨리는 광경을 보고 나의 머릿속에서 그 순간까지 잠자고 있던 기억을 한 가지 연상하였네.”

“무슨 기억?”

“......어떤 날 아침,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뜰에 나가서 세수를 하고 있노라니까 그때 나미가 자기 침실에 걸려 있는 거울......,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쓰여 있는 둥그런 거울을 들고 나왔단 말이지.”

“그래서?”

“그래, 커다란 거울을 들고 마루 끝에 서서 부스스하게 얽힌 머리털을 빗으로 고르고 있었는데, 그때 어떻게 된 셈인지 그만 실수를 하여 거울을 돌 위에 내리쳤단 말이야.”

“그래, 깨졌다는 말이네 그려.”

“음, 아까처럼 다시는 쓰지 못하게 조각조각 깨졌다는 말이야.”

그리고 유시영은 무엇을 기대하는 듯이 김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준의 얼굴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모르겠나?”

“무엇을?”

“무엇이라니? 그만했으면 넉넉히 알 수가 있는데. 그리고 그날이 바로 나미가 살해를 당한 전날 아침이라는 것을 안다면 지금 모현철이 어디 있는가를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다는 말이야.”

그러나 김준은 묵묵하고 대답이 없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유시영을 쳐다볼 뿐이었다.

“모르겠나?”

“알 수 없는걸.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쓰인 거울이 그 전날 아침 파괴되었다....... 그것이 살인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이야?”

“중대한 관계가 있지! 아니, 지금 와보니 중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말이야. 다시 말하면 김나미가 살해를 당한 것은 팔월 스무 엿샛날 오전 한 시 이십오 분이라고 판명되었으니까 거울이 깨진 것은 스무 닷샛날 아침이었거든.”

“그런데......?”

“그런데라니, 아직 모르겠나?”

“나는 추리력이 없어서......

“그러면 한 가지 더 알려주마...... 그날 아침 그렇게 거울이 깨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난 사람이 하나 있거든......”

“누구?”

“모현철!”

“모현철?”

“음!”

“그것을 또 어떻게 알아?”

“아직 짐작 못하겠어?”

“글쎄 내가 명수사관이라면 모르거니와....... 속히 말을 하게나.”

“그러면......”

하고 유시영은 담뱃불을 죽이고,

“이제 말한 바와 같이 나미가 살해를 당하던 날 아침......, 정확히 말하면 그 전날 아침 침실 북쪽 담에 항상 걸려 있던 거울이 나미의 실수로 말미암아 깨져버렸다. 그러면 그날 밤에 일어난 살인현장......, 즉 침실 북쪽 담에 그 거울이, 걸려 있겠나 없겠나?”

“물론 다른 것을 다시 사다가 걸어놓지 않은 이상......”

“그렇지! 다른 것을 사다 걸어놓지 않은 이상, 그 침실 북쪽 담에는 거울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침실 그 북쪽 담에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쓰인 그 거울이 살인 당시에 아직도 걸려 있었다고 말하는 자가 이 세상에 한 사람 있다면......?”

유시영은 뚫어질 듯이 김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누굴까 말야?”

“그것은, 그것은 모현철......! 거울이 깨진 줄을 모르던 모현철! 그리고 항상 북쪽 담에 거울이 걸려 있던 사실만을 아는 모현철이다!”

“......”

“그렇다! 그는 살인현장에 그 거울이 전과 같이 걸려 있을 줄로만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살인사건이 있은 이듬해 해금강에서 자살을 했다고 세상에서는 전해왔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살인현장에 그 거울이 걸려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가 현재 있다면......?”

“음, 그것은 틀림없는 모현철이다!”

“그렇다! 모현철....... 자기 집 침실 어디에는 무엇이 놓여 있고 어디에는 무엇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모현철이 아니면 살인현장에 걸려 있지도 않은 거울이 어찌 그때에도 걸려 있겠다고 믿을 수가 있겠느냐 말이야. 그날 아침에 깨진 줄을 모르고 걸려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현재 이 세상에 있다면 그는 틀림없는 모현철이다.”

“그렇다! 그러면 현재 누군가 그것을 주장하고......?”

그때야 비로소 김준의 두 눈이 활기를 띠고 빛나기 시작하였다.

“누구냔 말이야? 누구가 그런 말을 하느냔 말이야?”

“군이 그처럼 둔감한 줄은....... 그런 것을 나에게 물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사건을 찬찬히 생각해보게나. 그러면 누가 모현철인지를 자연히......”

그 순간 김준은,

“앗! 그런가......?”

하고 불현듯 외쳤던 것이다.

“아, 그렇던가......? 그놈이, 그놈이 모현철이었던가......?”

여기는 서울 한복판.

번잡한 종로거리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회색 하늘에서 함박눈이 선뜻선뜻 내리기 시작한다. 종로서 전차를 내린 《괴인》사 사장 백상몽은 첩첩히 내리는 눈꽃을 한번 휘 둘러본 후에 덥수룩한 수염을 내려쓸면서,

“눈아, 눈아, 자꾸만 내려라 쌓이어서 서울 장안을 덮어 버리래두. 잘난 놈 못난 놈, 미운 놈 고운 놈, 선한 놈 악한 놈 할 것 없이 죄다 덮어버렸으면. 흥! 그놈의 눈, 잘두 내린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꾸부정한 허리로 단장을 뚜벅뚜벅 짚으면서 M 빌딩을 향하여 걸어간다.

M 빌딩 삼층이 《괴인》사다.

엘리베이터 걸이 해쭉하고 웃으면서,

“할아버지 수염에 꽃이 펴 있구먼요, 헤헤헤.”

하고 까치처럼 떠든다. 사실 예순이 가깝다는 백상몽의 굽은 허리는 충분히 할아버지라는 존칭을 받을 만도 하였다.

“얘, 여자란 웃음을 호호 하고 아주 수줍게 웃는 법이지 어디 너처럼 헤헤, 헤헤 하고 방정맞게......”

“호호......, 헤헤헤. 할아버지두 참......”

“얘, 너 참, 내가 정말 할아버지같이 보이니?”

“아 참, 할아버지 몇 살이세요?”

“그건 또 왜?”

“어느 땐 퍽 젊어두 보이구 또 어떤 땐 퍽 늙어두 보이구....... 그래 할아버지라구 불러두면 무방할 것 같애서....... 할아버지, 참 몇 살이세요?”

“내년이면 진갑이다.”

“거짓말! 아 참, 할아버지, 내리세요.”

삼층이다.

사원들의 인사를 머리로 받으면서 편집실 옆에 달린 조그만 방, 소위 사장실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 걸이 그의 연령을 의문시하고 있는 이 《괴인》사 사장 백상몽은 외투와 모자를 벗어 걸고 눈 내리는 거리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더니,

“후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쉰다.

“어떤 때는 젊어두 보이고 어떤 때는 늙어두 보이구......? 흥!”

그러고는 약방의 마크가 박힌 거울 앞으로 가서 자기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문득 무엇을 생각했는지 포켓에서 망짝 만한 커다란 회중시계를 끄집어내어 손톱으로 뒷등을 열었다. 등 뒤에는 얼굴이 콩알만 한 사진이 붙어 있다. 여자였다.

일가친척은 물론이요 처자권속 하나 없다는 이 독신주의자 백상몽이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다가, “흥흥!” 하고 콧구멍으로 웃는 것을 보니 무척 정다운 모양이다.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사진의 여자는 반만큼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하였다.

“토실토실한 양볼!”

백상몽은 사진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길고도 까만 속눈썹. 웃을 때는 눈부터 웃었것다.”

그리고 히쭉 웃어 보인다.

그때 문이 열리며 사원 한 사람이 편지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백상몽은 황급히 웃음을 걷어치우고,

“서신?”

하면서 망짝 시계를 집어넣는다.

“네.”

사원은 나가려고 하다가 도로 사장 쪽으로 돌아서며,

“이번 현상은 대인기입니다. 더구나 유시영 씨의 응모 그리고 당선....... 이 두 가지 사실이 세평을 어떻게나 돋우었는지......”

“음!”

사장은 별로 기뻐도 않았다.

사원이 나간 뒤에 백상몽은 편지뭉치를 뒤적뒤적하다가,

“응? 유시영?”

하고 한 장의 편지를 눈앞에 높이 들었다.

“무슨 편질꼬?”

‘지급친전’이요, 게다가 서류였다.

백상몽은 겉봉을 이리 뒤적 저리 뒤적하다가 머리를 기울이며 마침내 봉투를 뜯었다. 원고지로 이십 매나 되는 기다란 편지였다.

백상몽씨.

아직 면식도 한 번 없는 소생이 돌연 이와 같은 길고도 지리한 서신을 올림을 관서(寬恕)하시오. 그러나 소생이 무엇 때문에 이러한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가......? 그것은 이 글을 읽어감에 따라서 자연히 양해하실 줄 믿습니다.

백상몽 씨여! 소생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번 귀사에서 모집한 추리 현상모집에 대하여 만폭의 감사를 아끼지 않는 바올시다. 만일 이러한 기회가 나에게 없었달 것 같으면 소생은 영원히 저 무서운 살인범이라는 혐의, 법망에서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결국 김나미를 살해한 것은 유시영이 아닐까......? 하는 세상 사람들의 섬뜩한 눈초리를 당대 두려워하였을 것입니다.

아아! 그것은 사실 소생에게 있어서 천재일우의 찬스였습니다.

소생은 실로 통쾌한 복수를 하였습니다. 복수! 복수! 아아, 이처럼 유쾌한 복수가 또 어디 있으리오!

《괴인》사 사장 백상몽 씨여!

그러나 소생은 이번의 이 통쾌하기 짝이 없는 복수에 있어서 귀하의 성의 있는 도움을 어찌 꿈엔들 잊으리오. 귀하가 만일 소생의 의견 ‘모현철 단독범인설’에 가담을 아니 하였던들 이 다시없는 기회를 어찌 이용할 수 있었으리오. 귀하는 소생의 둘도 없는 은인입니다. 소생으로 하여금 복수를 하도록 전력하여 주신 은인입니다.

백상몽은 여기까지 읽고 나서 가장 유쾌하다는 듯이 한번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백상몽 씨여! 여기까지 읽고 난 귀하는 가장 유쾌하다는 듯이 한번 빙그레 웃고 싶지는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소생은 지금까지 어리석은 기쁨을 즐겨왔으니까요. 왜 그러냐 하면 소생은 단지 추리소설 애독자로서의 기쁨, 단지 관념의 유희에 성공하였다는 기쁨을 누린 데서 더 지나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귀하는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사실 어리석은 기쁨이었습니다. 관념의 유희에서 성공하여서 상금 삼백 원을 받았던들 그것이 어찌 소생의 복수가 될 리 있으리오. 그와 같은 방법으로 모현철 씨가 나미를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실지로 증명할 자가 과연 누구입니까? 모현철 씨도 죽고 김나미도 죽었습니다. 이 넓은 우주에 있어서 그 비밀을 아는 이는 단지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뿐, 그러나 그 고귀하신 상제께서는 우리들 비천한 무리에게 비밀은 말씀하지 않으니....... 아아, 상제가 아닌 일개 인간, 《괴인》사 사장 백상몽 씨가 그것을 아무리 증명한단들 하등의 가치가 있으리오....... 이리하여 소생에게서 어리석은 기쁨은 그만 사라지고야 말았습니다.

그 순간 백상몽은 또 한 번 빙그레 웃으면서,

“흐응! 내가 그 고귀하신 옥황상제인 줄을 모르는가 보군! 백상몽! 《괴인》사 사장 백상몽이 그것을 명확히 증명하였는데 뭣을 또 의심하는 게야!”

하고 수염을 내려쓸었다.

여기까지 읽은 귀하는 또 한 번 빙그레 웃을 것입니다. 그리고 “흥! 내가 바로 그 고귀하신 옥황상젠 줄을 모르는 모양이로군!” 하고 수염을(생각건대 귀하는 수염을 남달리 많이 길렀을 게요) 한번 내려쓸고 싶을 것입니다.

백상몽의 얼굴에는 점점 의아의 빛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자기가 하는 언어행동을 때맞춰 일일이 그리고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이 편지는 대관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무시무시하였다. 무슨 기적을 눈앞에 보는 것 같았다.

그는 하도 이상하므로 서너 장 펄럭펄럭 건너뛰고 두어 줄 앞질러 읽어보았으나 내용의 연락이 없어서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다음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귀하여! 귀하는 이 서신을 한번 손에 든 이상 아무리 지리하고 아무리 싫증이 나더라도 도중에 이 편지를 던질 용기는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제 방금 귀하가 이 편지를 읽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과 같이 귀하는 지상에 계신 옥황상제였으니까.

귀하여! 이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를 짐작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귀하가 《괴인》 신년호에서 단언한 바와 같이 실상에 있어서도 김나미를 죽인 자는 틀림없이 그의 남편 모현철이었습니다. 공상적 복수가 아니고 소생의 가슴은 지금 현실적 복수에 자못 떨릴 뿐입니다.

귀하여 ! 모현철은 사실에 있어서도 소생이 상상한 바와 똑같은 방법으로 김나미를 살해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귀하가 그것을 만천하에 증명하였으니까요! 그리고 귀하의 증명은 옥황상제의 그것보다도 적확할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말씀입니까......?

네, 대답하겠습니다. 귀하는 김나미가 그의 남편인 모현철 씨에게 무참히도 살해당하던 광경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목격하신 분이니까.

그 순간 백상몽은 “흑!”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편지를 탁 테이블 위에 접어놓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고......?”

덥수룩한 수염이 바르르 떨린다. 편지를 덮어 누르고 있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는 감히 손을 뗄 용기를 갖지 못하였다.

점점 해말쑥해지는 얼굴빛과 불덩어리같이 충혈되는 두 눈!

“대체 이것이 대관절 어떻게......?”

놀라움과 공포가 휘덮어 누른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나?”

그는 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다시 충혈된 눈동자를 편지로 옮기었다.

백상몽 씨여! 귀하의 창백한 얼굴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양손이 지금 소생의 눈앞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 놀라움, 이 두려움, 이 정체를 헤아릴 수 없는 공포는 지금 귀하를 꽉 누르고 놓아줄 줄을 모르는 듯이.......

백상몽 씨여, 아니 김나미의 남편이신 모현철 씨여!

귀하는.......

“악!” 하고 외치면서 백상몽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일인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고? 으으음......”

하고 길게 빼는 신음소리가 깊고 깊은 늪 속에서 솟아오르는 듯이 방을 울린다.

그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멀거니 서 있다가 구겨 쥐었던 편지를 황급히 펴본다.

귀하는 지금 절망적인 놀라움을 맛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공포를. 그러나 “무슨 이유로 나와 모현철을 동일한 인물이라고 부르는가......?” 라는 한마디의 항의, 즉 한 줄기의 희망이 귀하의 가슴에 떠돌고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 십 년 전에 자살했다고 전해오는 모현철은 추리잡지 《괴인》사 사장 백상몽이라는 가면을 쓰고 또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상몽의 안색은 점점 흙빛으로 변하여가고 이마에는 구슬과 같은 땀이 흐르고 있다.

“무슨 이유로, 무슨 이유로......?”

자아, 인제부터 귀하가 모현철 그 사람이라는 가장 흥미 있는 문제를, 추리소설 이상으로 매력 있는 이 문제를 풀어 드리고자 하나이다.

그러면 귀하여!

귀하가 끝없이 사랑하는 추리잡지 《괴인》 시월 호를 펴놓으시오. 펴놓았습니까? 거기는 귀하가 가장 흥미를 느끼면서 제출한 〈추리소설 현상모집〉이 게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귀하는 눈앞에 ‘살인현장의 모양’이라는 제목과 ‘증인들의 진술’이란 제목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 밑을 한 자 한 자 빼놓지 말고 읽어보시기를 바라나이다.

먼저 귀하는 ‘증인들의 진술’을 기술할 때는 사실의 정확을 도모하기 위하여 당시 재판소에서 기록된 신문조서 그대로를 실어놓으면서도 ‘살인현장의 모양’을 기술할 때는 역시 정확한 검증조서를 참조하지 않고 단지 귀하의 기억에 따라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았다는 사실을 귀하는 과연 부인할 용기가 있을까 없을까?

아아, 그것은 실로 어리석은 실책이었으며, 또 한편 너무도 무서운 착각이었습니다.

백상몽 씨, 아니 모현철 씨여!

귀하는 침실을 누구보다도 잘 일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치명적 실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귀하의 침실에 무엇이 놓여 있고 무엇이 걸려 있었던가를 귀하는 몰랐던 것입니다.

소생은 재작일 평양 복심법원을 방문하여 십 년 전에 기록된 ‘김나미 살해사건’에 대한 검증조서를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조사하여본 결과 소생은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였던가......? 무서운 사실, 범인은 어떠한 곳에서라도 한 번은 실수를 한다는 무서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고.......

검증조서에 의하면 살인현장인 침실 북쪽 담에는 대와 매화를 그린 묵화가 두 장 붙어 있을 뿐이오, 귀하가 《괴인》 지상에서 기술한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쓰인 커다란 거울은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귀하가 그 거울이 현장에 걸려 있다고 증명한 것은 어떠한 까닭인지.......

“없을 리가 있나, 없을 리가 있나?”

백상몽은 구겨진 편지를 번쩍 눈앞에 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모현철 씨여 ! 놀라지 마시오. 귀하는 그 거울이 항상 대와 매화를 그린 두 장의 묵화 사이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고, 귀하가 김나미의 가는 목을 초콜릿 빛 양말로 매던 그날 밤 그 거울은 붙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그러면 그 거울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이러한 의문이 귀하의 가슴을 붙잡고 놓아줄 줄을 모를 것입니다. 모현철 씨여! 거울은,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쓰인 그 거울은 바로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날 아침 귀하의 부인 김나미가 그만 실수를 하여 깨뜨려버렸던 것입니다.

“뭐, 깨졌어? 깨졌다구?”

이 불의의 한마디는 실로 《괴인》사 사장 백상몽 씨로 하여금 천 길이나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벼랑 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찔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게 하였다.

“깨지다니,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가 있나......? 아, 아아!”

벌떡 일어섰던 그는 기운 없이 도로 펄썩 주저앉으며 눈을 감는다.

“죽음, 죽음! 저 컴컴한 죽음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나를 들이 마시려고 다가오는구나! 아아...... 아아.”

궂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와들와들 떨리는 양손으로 그는 다시 그 무시무시한 편지를 잡아 쥐었다.

귀하여! 이 편지를 꽉 붙잡은 귀하의 두 손은 마치 중풍환자의 그것과 같이 떨릴 것이며, 귀하의 이마에서는 궂은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죽음은 지금 귀하를 맞이하러 가는 길입니다.

아아, 침실 북쪽 담에 항상 걸려 있던 그 거울이 그날 아침 깨졌을 줄이야 어찌 꿈엔들 생각하였으리오. 이 우연한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귀하로 하여금 무서운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귀하로 하여금 자기 무덤을 자기 손으로 파게 하였습니다. 귀하는 이번 현상모집에 있어서 ‘모현철 단독범인설’에 가담하였으며, 살인방법도 소생이 생각한 바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김나미를 죽인 것은 모현철이라고 모현철 씨 자신이 고백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아아, 천망(天網)은 회회(恢恢)하나 물샐 틈도 없다더니 그처럼 침착하고 그와 같이 자연스러운 진술을 한 귀하가 이와 같은 실책을 저질러놓았을 줄이야 감히 상상하였으리오!

모 선생이여! (십 년 전 소생은 이렇게 불렀습니다.) 재작일 우연한 기회로 그와 같은 사실, 백상몽과 모현철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소생은 소생의 신변에 절박한 그 어떤 위험을 깨닫고 자못 폭풍과 같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선생이 소생을 해하지나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그리고 찰나적인 공포였다는 것을 다음 순간에는 깨달을 수가 있었던 소생이었습니다. 모 선생이여! 선생이 부인을 살해한 것이 그 어찌 선생의 천성적 악질에서부터 나왔으리오. 선생은 가장 선량한 분이었습니다. 선량하신 선생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데는 실로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최상급의 고민을 맛보셨을 것이라고 믿는 바올시다. 소생은 이 편지 맨 처음에 복수라는 문구를 순간적인 흥분에 넘치어 여러 번 썼습니다마는, 아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복수리오. 우연히 김나미라는 한 여성을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선생과 소생의 기구한 운명을 저주할 법에 달렸지요.......

모 선생이여, 나미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소생이 한 가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바는, 선생은 대체 어떠한 동기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현상모집을 하셨는지요......? 자못 양해하기에 괴로운 바올시다. 그리고 선생이 발행하는 그 추리잡지의 이름을 하필 《괴인》이라고 붙인 것은 또 어떠한 이유에서부터인지요......? 그러면 모 선생이여, 소생은 이만하고 붓을 놓습니다. 아무런 위험도 느낌이 없이 내내 안녕하시기를 바라는 바올시다.

백상몽은 편지를 거머쥐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에다 쇠를 채워놓은 다음에 정신병자처럼 히죽하고 웃으면서 벽에 걸린 거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물끄러미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얼마 동안을 묵묵히 들여다보던 그는, “으음......” 하고 한 번 기다랗게 신음한 후에 무엇을 생각했는지 입을 쩍 벌리더니 이를 쭉 빼낸다. 틀니였다. 볼이 홀쪽해지는 것이었다. 다음에는 안경을 벗었다. 그 다음에는 귀밑에서부터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한 줌씩 떼어 냈다. 붙인 수염이었다.

그리고 굽혔던 허리를 쭉 펴고 망짝 시계를 꺼내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미야!”

하고 감격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도하의 각 신문지에는 추리 소설 전문잡지 《괴인》사의 사장 백상몽 씨가 돌연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기사가 일시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그가 자취를 감춘 이유에 대해서는 전연 암중모색의 범위를 넘지 못하였다.

그날 아침.

평양에 있는 유시영은 강원도 온정리의 스탬프가 박힌 무명의 편지를 한 장 받았다. 유시영은 잠깐 의아스러운 얼굴로 겉봉을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그것을 뜯었다.

“모현철!”

편지 맨 나중에는 모현철이라는 서명이 뚜렷이 박혀 있었다.

“모현철!”

유시영은 한 번 더 외치면서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유시영 군!

나는 잊어버렸던 옛날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찾아보기 위하여 옛날에 부르던 그대로 ‘군’이라는 칭호를 쓰노라. 모름지기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이 간단한 글월을 읽어준다면 이 이상의 만족은 없으리다.

유 군!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과거 십 년 동안의 소식을 군에게 찬찬히 전해주고 싶으나,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러한 여유 있는 마음을 갖지 못했노라. 이것 역시 관서하기를 바란다.

허나 한 가지 군에게 전해둘 것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자기 손으론 자기의 목숨을 끊을 수 없는 미련하고도 비겁한 인간이 세상에는 없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사실로 자살을 하려고 유서를 남겨놓고 해금강으로 갔었다. 그러나 나는 끝끝내 나의 목숨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아니 며칠 동안을 두고 나는 총석정 바위 위에서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경창파와 희롱하는 듯이 유유히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 머리 위에서 바람맞은 소나무 소리가 솨솨하고 들려온다.

내일도 바다는 푸르리라, 내일도 하늘은 푸르리라, 내일도 태양은 솟으리라, 내일도 사람들은 먹고 일하고 말하고 웃으리라. 그 동안, 아아! 나는 영원히 잠들고 있으리라.

유 군! 군은 이러한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바로 자기 옆에는 지금 굉장하게도 재미있는 사건이 일어나서 사람들은 저마다 좋다고 춤추고 떠들고들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지금 잠들어 있다는 의식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같이 떠들고 그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지 못한다는 초조한 마음을 맛본 적은 없는가......?

나는 죽기를 단념하였다. 쓰든지 달든지 살아서 맛보리라. 이리하여 나는 해금강을 등지었다. 해금강을 떠난 나의 발길은 자연히 도회지를 멀리 하였다.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광맥을 찾으러 전국을 답파하였으나 결국 그것은 꿈이었다.

이리하여 작년 정월에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어렸을 때에 즐겨 읽던 추리소설을 매일과 같이 탐독하는 사이에 나는 문득 추리 잡지를 발간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유 군! 내가 잡지 이름을 《괴인》이라고 붙인 것은 군이 상상하는 바와 같이 나 자신을 칭호함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현상문제에 ‘김나미 살해사건’을 가져온 것은 군이 이미 상상한 바와 같이 범죄자의 프라이드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리고 군은 나의 프라이드를 여지없이 꺾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러면 유 군! 영원히 잘 있으라! 이번에는 거짓 없이 나의 목숨을 저 해금강 푸른 물결에 던질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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