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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시대의 팔레스타인
예수께서 사시던 나라 팔레스타인의 면적은 25,899 정방킬루메터인데 우리 나라 강원도 만할까 말까하다. 이런 작은 나라이면서도 여기서 일어난 여러가지 사변 때문에 인류 역사에 실로 위대한 영향을 미치었다. 물도 적고 비도 잘 아니오는 곳이므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살 길을 열려 하는 연구력과 창작력이 매우 많다. 아세아와 아프리카를 나누는 사막의 한 끌에 있고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오는 구라파의 영향을 받는 팔레스타인은 옛날부터 아프리카, 아세아, 구라파의 여러 미족과 여러 문명이 접촉도 하고 또 그들의 전쟁마당도 되었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 땅이 한 통일한 나라로 되어본 적도 없고 한 단일한 민족이 살던 땅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이 땅은 몹시 고저와 기온의 차가 심하다. 그 상상봉에 사시 흰눈이 덮여 있는 해발 2,558메터의 헐몬산으로부터 해면보다도 208메터가 낮은 갈릴리호수와 또 해면보다 386메터가 낮은 사해에 이르기까지 고저와 기온과 또 다른 기후의 차이가 심하다. 지구 표면상 가장 심하게 빠진 골짜기(한자:분지)중 하나인 골짜기의 북쪽에 위치한 이 골짜기는 북쪽 레바논산과 헐몬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사해와 아카바만과 홍해를 거쳐 동아프리카로 빠졌다. 지금도 지진이 있고 화산 터진 자취를 많이 볼수 있다. 요단강 길이의 삼(한자:삼)분의 이(한자:이)는 해면보다 얕은 데를 흐르고 있다 북으로부터 남으로 흐르는 이 강은 헐몬산의 눈석이 물을 받아 갈릴리바다로 급하게 흘러들어가고 그 후에는 천천히 곧장 가면 104킬로 밖에 아니되는 거리를 320킬로나 되게 구불구불 흘러서 사해로 들어간다. 그 언덕까지 물이 넘치게 홍수가 지는 12(한자:일이)월 외에는 그 양쪽 물 많고 아무것도 아니되는 산들 사이로 푸르 언덕을 만들면서 그 좁은 강바닥을 어슬렁어슬렁 이리저리 흐르고 있다. 콘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은 거의 다 로마영지인 서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부분은 요단 골짜기와 해안을 따라 있는 좁고 낮은 땅으로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유다 세 구역으로 나위었다. 갈릴리는 그중에 가장 물이 많고 산이 적은 곳이다. 시내와 샘이 많고 감남과 포도와 밀과 보리와 과실과 가축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산과 밭이 어긋매 껴 있는 이 땅은 우리 주님의 어렸을 적에 지내시고 그 처음 전도를 하시던 땅이다. 그리고 그 열 두 제자 중 다수의 고향이다.
예 루 살 렘 예루살렘은 해발 약 778메터의 높은 곳에 있는 도시로 겨우 24킬로 떨어진 데 있는 사해보다는 1,174메터나 높다. 유다교인에게나 그리스도교인에게나 마호멧교인에게나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다. 그 뜻은 “평화의 성”이라는 것이나 여러 미족과 종교의 싸움터이었다. 예수께서 그 멸망을 예언하신 이후 적더라도 아홉 번을 그 지배권(한자:지배권)이 이 종교에서 저 종교로 번갈아 옮아갔다. 과거 300년간 적더라도 20번은 포위를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그러는대로 또 부흥 재건되었었다. 그러나 두번은 완전히 파괴된채 부흥되지 못하였었다. 한번은 주전 586년에 느부갓네살이(한자:이)세가 파괴한 후요, 또 한번은 주후 132년 하주리안황제가 파괴한 후였다. 주 예수의 시대의 예루살렘성이나 성전을 지금 그대로 완전복구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그후 그 골짜기는 메꾸어지고 언덕은 깍이우고 원수의 손에 거리와 건물은 무너지게 된 까닭이다. 예수께서 성전 파괴의 예언을 하신 것은 그 도시가 디도스황제에게 정복이 되어 성전과 그 성벽이 무너지게 된 주후 70년에 응하게 되었다. 주후 132년경 빠*코크바의 지도하에 반란이 있었으나 실패에 돌아간 후 로마황제 하주리안은 이 도시를 전보다도 더 심하게 무너놓았다. 옛 자취는 찾을 길도 없게 밭갈아 엎어졌고 폐허에는 이교도(한자:이교도)의 신전이 건축된 새 이교 도시 일리아*카피돌리나가 서게 되었다. 주후 326년 컨스탄틴황제가 희랍정교회 마카리우스 감독에게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과 그 장사한 곳을 찾으라 명할 때까지 거의 200년 동안 예루살렘은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었다. 두 큰 예배당이 서게 되었으니 하나는 지금도 그대로 서 있는
[사진] [성묘교회(한자:성묘교회)]요 타르하나는 그 자취도 찾을 수 없는 [십자가의 교회]다.
예루살렘은 주후 614년 파사인에게, 628년 해라클리우스에게 각각 정복 당하였고 그러고 8 년 후에는 마호멧교도에게 정복되어 십자군이 이 도시를 빼앗을 때까지 그 지배를 받았다. 십자군은 이 도시를 88 년간 보존하였었으나 1087년에 사라딘에게 다시 빼앗겼었다. 제일(한자:일)차대전 후 국제연맹은 팔레스타안을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두었는데 그 위임통치는 1949년에 끝나고 현재 예루살렘은 일(한자:일)부는 아라비아 사람에게 일(한자:일)부는 유대 사람에게로 통치되고 있다. 구시가를 둘러싼 현재 성벽은 1542년 술레이만대왕이 쌓은 것이다 1858년까지 예루살렘은 16세기에 쌓은 성벽 이내에 국한되었었으나 현재 성벽 밖에까지 뻗어나가는 신시가는 성벽 안의 구시가보다 훨씬 넒다. 691년 이래 저 유명한 바위 곧 솔로몬의 성전에도,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성전에도 있었다고 하는 그 바위는 [바위의 ]이라 고하는 마호멧교 예배당 안에 놓여 있게 되었다. 이 예배당은 주후 691년에 압드엘 말릭이 지었는데 그후 증축을 하였다. 예루살렘 성벽의 깨어진 돌들은 이(한자:이)천년 옛적에 우리 주께 향하여 부르짖은 것과 같이 오늘도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아직도 평화를 배우지 못하였다고 탄식할 것이다.
그림 누가복음 한글판 (한자:)일구오치년 발행 판권소유 부산시남해동일가오삼 대 한 성 서 공 회 Korean Illustrated St.Luke(B550P)ABS-1952-167m(1)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