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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와 전망/유럽과 혁명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1905년 6월 우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1848년 이래로 반세기 이상이 지났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세계 전역을 끊임없이 정복해 온 반세기였다. 또한 부르조아 반동 세력과 봉건반동 세력간의 상호협력의 반세기였다. 이 기간 동안 부르조아지는 지배하려는 광적인 욕망에 가득 차 있었으며 또한 이를 위해서 야만적으로 싸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영구 기관(외부로부터 에너지 공급을 받지 않고도 영구히 작동을 계속하는 기구로서, 실현 불가능한 상상의 기관-역주)을 발명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장애물과 마주치기 마련이며, 그는 이것을 극복할 목적으로 항상 새로운 도구들을 만들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르조아지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력과의 '초법적인' 갈등을 피해 가면서 자신이 장악한 국가 기구를 수정하고 재구성해 왔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영구기관을 발명하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마지막 장애물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르조아지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궤도 내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마지막 장애물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충돌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밖에 없는 계급 적대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나라들을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교역을 통해 서로 결속시켜 가면서, 자본주의는 전세계를 하나의 단일한 경제적 및 정치적 유기체로 전환시켜 왔다. 근대적인 신용 제도는 무수히 많은 기업들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결속시키고 있으며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이동성(mobility)을 자본에게 부여해 주고 있다. 이 이동성은 많은 사소한 파산들을 예방해 주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와 동시에 경제의 전반적 위기의 범위가 전례 없이 확장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모든 경제적․정치적 노력들, 자본주의적인 세계 교역, 엄청난 국채 제도, 모든 반동 세력들을 일종의 범세계적인 주식회사 형태로 결속시켜 주고 있는 개별 국가들간의 정치적 연합 등은 모든 개별적인 정치적 위기 상황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그러나 근원적으로 볼 때 이 모든 것들은 또한 전대미문의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부르조아지는 모든 불건전한 과정들을 깊숙이 은폐해 왔으며, 모든 난관들을 우회해 왔다. 또한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모든 심각한 문제들을 뒤로 미루어 왔으며, 모든 모순들을 얼렁뚱땅 넘겨 왔다. 요컨대, 부르조아지는 최종적인 결말을 뒤로 미루는 데 급급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부르조아 지배의 근본적인 청산이 세계적 규모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부르조아지는 게걸스럽게 모든 반동 세력들을 부여잡았다. 그 반동 세력들의 배출처가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말이다. 교황과 술탄조차도 그들의 친구에 속했던 것이다. 부르조아지가 중국 황제와 '우정'의 결속을 맺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그가 아무런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금고 속에 있는 돈을 줘 가면서 중국 황제를 자신들의 파수꾼으로 고용하기보다는 그의 영토를 약탈하는 것이 부르조아지에게는 훨씬 더 이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 부르조아지가 자신의 국가 체제의 안정을 전(前)부르조아적인 반동 세력의 불안정한 요새에 의존하게 만들어 버렸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사건들에다 국제적인 성격을 부여해 주며, 또한 폭넓은 시야를 열어 준다. 노동계급이 지도하는 러시아의 정치적 해방은 지금까지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이 계급을 부상시킬 것이다.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막강한 권력과 자원을 획득하게 될 것이고, 세계 자본주의를 일소하는 데에서 주창자가 될 것이며, 이것을 위해 역사는 모든 객관적 조건들을 만들어 냈다.(‘몰로뜨’(Molot:망치-역주)에 의해서 출판된 『F. 라쌀레의 배심원을 향한 연설』속에 들어 있는 저자의 서문을 참조할 것.-L.T.)


만일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일시적으로나마 권력을 장악한 후에 자신의 주도하에 혁명을 계속해서 유럽 지역으로 전파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럽의 봉건적․부르조아적 반동 세력들 때문에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러시아 혁명이 유럽의 낡은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할 방법들을 미리 규정하려 한다면, 그것은 한가한 짓일 것이다. 그러한 방법들은 전혀 예기치 않게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혁명적인 동유럽과 혁명적인 서유럽간의 고리로서 폴란드를 예로 들어보자. 물론, 이 예는 우리의 생각을 보다 잘 나타내기 위한 것이지 어떤 현실적인 예언은 아니다.

러시아 혁명의 승리는 폴란드에서의 혁명의 필연적인 승리를 의미할 것이다. 러시아가 통치하는 폴란드내의 10개 주(州)에 혁명 정부가 들어선다면 필연적으로 갈리치아(Galicia)와 뽀즈난(Poznan) 지방에서도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호엔쫄레른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부들은 폴란드 국경 쪽으로 군대를 급파함으로써 응수할 것이다. 그 군대는 물론 폴란드의 중심부, 즉 바르샤바로 진군해 들어가 혁명 세력을 진압할 목적인 것이다. 러시아 혁명이 자신의 서쪽에 위치한 혁명의 전위를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군대에게 짓밟히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은 아주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빌헬름 2세의 정부 및 프란쯔 요세프의 정부에 맞서는 전쟁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러시아 혁명 정부의 편에서는 자기방어의 행위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자기 나라의 군대들이 반혁명 원정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그들이 잠잠한 채로 숨죽이고 있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봉건적․부르조아적 독일과 혁명적 러시아간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독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유발시킬 것이다. 이러한 단언이 너무 낙관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독일 노동자들과 반동들로 하여금 서로 공개적인 힘의 대결을 벌이도록 강요할 가능성이 이보다 더 많은 역사적 사건이 있으면 어디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10월 내각(1905년 혁명 당시 짜르가 대중을 무마할 목적으로 내세운 정부, 준자유주의자 위떼가 수상으로 있었다. - 역주)이 갑자기 폴란드에 계엄령을 선포했을 당시, 그러한 조치는 직접 베를린으로부터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의 대단히 그럴 듯한 소문이 떠돌아 다녔다. 두마 해산 직전에 정부 기관지들은 베를린과 비엔나 사이의 협상에 관해 보도했다. 그것은 이 두 나라 정부가 반란을 진압할 목적으로 러시아의 내정에 무력적인 개입을 할 의도가 있다는 보도였으며, 물론 정부는 그것을 민중에 대한 위협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장관들이 아무리 그 사실을 부인해도 그것은 이러한 보도가 안겨 준 충격을 상쇄할 수 없었다. 서로 인접한 이들 세 나라의 궁전 안에서는 잔혹한 반혁명적인 복수의 음모가 획책되고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밖에 어떤 다른 것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혁명의 불꽃이 자기들 나라의 국경을 넘실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반봉건적인 군주 체제가 수동적으로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있었겠는가?

러시아 혁명은, 비록 그 때까지 승리가 요원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폴란드를 거쳐 갈리치아에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었다. 올해 5월 르보프(Lvov)에서 열린 폴란드 사회민주당의 회합에서 다신스끼(Daszynski)는 다음과 같이 외쳤던 것이다. "일 년 전만 하더라도 누가 현재 갈리치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예견할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거대한 농민 운동은 오스트리아 전역을 진동시켰던 것이다. 즈바라즈(Zbaraz)에서는 사회민주당원이 지방 의회의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농민들은 "적기"라는 이름의 일종의 사회혁명당적인 농민 신문을 간행하고 있으며, 3만여 명의 건장한 농민들이 참가한 대규모의 대중 집회들이 열리고 있고, 적기와 혁명가(革命歌)로 뒤덮인 행렬이 갈리치아 지방의 마을들을 활보하고 있다. 이 마을들은 이전에는 그토록 조용하고 냉담했건만‥‥‥. 러시아로부터 토지의 국유화를 요구하는 함성이 가난에 찌든 이 농민들에게 와 닿을 때,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2년 전 폴란드의 사회주의자 루스냐(Lusnia)와의 논쟁에서, 카우츠키는 러시아가 더 이상 폴란드의 발 밑을 위협하는 장전된 포탄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폴란드를 야만적인 모스크바가 지배하는 초원을 파고 들어가는, 혁명적인 유럽의 동부군(東部軍)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카우츠키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혁명이 전개되고 또 그 혁명이 승리하는 경우, "폴란드 문제는 다시금 날카롭게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루스냐가 생각한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그것은 폴란드가 러시아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대항하는 것이 될 것이다. 폴란드가 혁명의 대의에 봉사하는 한, 폴란드의 임무는 러시아에 맞서 혁명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확산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예언은 정작 카우츠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실현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인 폴란드만이 유럽 혁명의 유일한 출발점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위에서 부르조아지가 대내 및 대외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많은 심각한 문제들의 해결을 용의주도하게 기피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군대로 밀어 넣은 부르조아 정부들은 국제 정치의 복잡한 분규를 단칼에 해결할 능력이 없다. 전쟁에 국민들의 본질적인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나 아니면 지지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에 절망적인 최후의 몸부림에 빠져 있는 정부만이 오직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을 싸움터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정치문화, 군사기술, 보통선거, 징병제 등의 조건하에서는, 오직 정부에 대한 국민의 깊은 신뢰나 정부의 광적인 모험주의만이 서로 다른 두 국민을 충돌로 몰아넣을 수 있다. 1870년 보불전쟁 당시에, 한쪽에는 독일의 프러시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던 비스마르크가 있었으며, 다른 한쪽에는 파렴치하고 무기력하며 국민에게 경멸을 받고 있는 나폴레옹 3세의 정부가 있었다. 비스마르크의 정책은 결국 독일 민족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모든 독일인들은 그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었다. 한편, 국민의 신뢰를 잃은 나폴레옹 3세의 정부는 자신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모험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였던 것이다. 러일전쟁에서도 이와 동일한 배역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에는 일본 천황 미까도의 정부가 있었는데, 이 정부는 그 때까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로 극동에서 일본 자본의 지배를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이미 몰락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패배를 해외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만회하려고 애쓰는 전제적인 정부가 있었던 것이다.

노후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 '국민적' 요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하나의 전체로서의 부르조아 사회의 요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현재 지배하고 있는 부르조아지만이 그것의 수호자로 자처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영국, 독일 그리고 오스트리아 정부는 국민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 대중의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든가, 피압박 민족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든가, 또는 인접 국가의 야만적인 국내 정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등의 명분조차도 어떤 하나의 부르조아 정부가 해방적 및 그러므로 국민적 성격을 띠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 한편, 때때로 정부들을 부추겨서 세계를 상대로 요란한 군사적 시위를 하도록 교사하는, 자본가적 약탈에 관한 이해관계는 대중 속에서 아무런 반응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부르조아지는 국민적 전쟁을 선전포고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반국민적 전쟁이 어떠한 것으로 귀결될 것인지는 최근의 두 경험으로부터-남아프리카와 극동에서의 경험으로부터-명확히 알 수 있다.

영국에서의 제국주의적인 보수당의 참패는 궁극적으로는 보어전쟁(Boer War)의 교훈 때문이 아니다. 제국주의 정책이 맞이하게 될 훨씬 더 심각하고 위협적인-부르조아지에 대해서 -결말은 영국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정치적 자결권의 요구이다. 왜냐하면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의 결과가 러시아 정부에 끼친 영향으로 말하자면,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1905년 혁명-역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경험이 없었다 할지라도, 유럽의 정부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독자적인 입장을 내세우기 시작한 이래로 전쟁이냐 혁명이냐 하는 양자택일적인 상황을 프롤레타리아에게 제시하는 것을 언제나 두려워해 왔다. 프롤레타리아의 반란에 대한 바로 이러한 공포 때문에, 엄청난 예산의 군사비를 승인하면서 조차도 부르조아 정당들은 어쩔 수 없이 평화를 위한 엄숙한 선언문들을 발표하고, 국제사법재판소나 심지어 유럽합중국과 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졸렬한 선언문들은 결코 국가간의 적대관계나 군사적인 충돌을 일소할 수 없다.

보불전쟁 이후 유럽에서 출현한 무장된 평화는 일종의 힘의 균형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균형은 터키의 신성불가침성, 폴란드의 분할, 잡다한 민족들이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보존을 전제로 했다. 뿐만 아니라, 머리 끝까지 무장한 러시아의 전제주의를 유럽 반동 세력의 파수꾼으로 삼았다. 그러나 전제주의가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이러한 인위적으로 유지되어 온 균형 체제는 러일전쟁의 패배로 인해서 가차없는 타격을 받게 되었다. 러시아가 일시적으로 이러한 힘의 공조체제로부터 떨어져 나갔으며, 그 결과 힘의 균형이 깨어져 버렸다. 다른 한편, 일본의 성공은 자본가 부르조아지의 공격적인 본능을 자극시켰다. 특히, 현대 정치에서 대단히 큰 역할을 담당하는 주식 시장들을 자극시켰다. 유럽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 것이다. 이제 어느 곳에서나 분쟁의 위험이 절박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지금까지는 외교적인 수단들을 통해서 그러한 위험들을 완화시켜 왔다 할지라도, 이러한 수단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유럽에서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유럽에서의 혁명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러일전쟁 동안 프랑스 사회당은, 만일 프랑스 정부가 러시아 전제주의의 편을 들기 위해서 그 전쟁에 개입한다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에게 가장 단호한 행동들-반란까지도-을 취하라고 부추기는 셈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모로코를 놓고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 충돌 일보 직전에 있던 1906년 3월, 사회주의자 인터내셔널의 사무국은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전쟁의 궁극적인 위협 앞에서, 우리는 최상의 행동 방법을 동원해서 인터내셔널의 모든 사회주의자 당들과 조직화된 전체 노동계급이 전쟁을 예방하거나 또는 종결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단지 하나의 결의였을 뿐이다. 이 결의가 갖는 실제적인 의의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는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조아지는 그러한 시험을 회피할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지에게는 불행스럽게도 국제관계의 논리(국제적 이해관계-역주)가 외교의 논리(전쟁을 예방하려는 외교적 노력-역주)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다.

관료 집단에 의한 국사 운영의 누적된 잘못으로 인해서 파탄이 오든지, 아니면 혁명 정부가 구체제의 죄악에 대한 지불 정지를 선언함으로써 파탄이 오든지, 여하튼 러시아 국가의 파산은 프랑스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프랑스의 정치적 운명을 손에 쥐고 있는 급진주의자들은 직접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또한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모든 기능도 떠맡아 왔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의 파산으로 인해서 발생하게 될 재정적 위기는 그 즉시 심각한 정치적 위기의 형태로 프랑스에서 재현될 것이며, 프랑스의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만 그러한 위기가 종식될 수 있다고 가정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간에, 폴란드에서의 혁명을 통해서, 아니면 유럽 전쟁의 결과로써, 또는 러시아 국가의 파산으로 인해서, 혁명은 노쇠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유럽의 영토를 가로지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나 국가의 재정적 파산과 같은 외적인 사건들의 압력이 없다 할지라도, 혁명은 계급투쟁의 극단적인 첨예화의 결과로서 유럽 어느 한 나라에서 가까운 장래에 발생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어느 나라가 최초로 혁명의 길로 접어들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지금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이 한 가지는 분명한데, 그것은 근래에 와서 유럽의 모든 국가들에서 계급간의 모순이 아주 팽배해 있다는 사실이다. 준절대주의적인 헌법의 틀 내에서의 독일사회민주당의 엄청난 성장은 냉혹한 필연성에 의해 프롤레타리아를 봉건․부르조아 군주제에 대한 공개적인 싸움으로 인도할 것이다. 정치적 쿠데타에 맞서 총파업으로 대항한다는 문제는 작년에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정치 활동에서 핵심 문제들 중의 하나로 부각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권력이 급진주의자들에게 이양됨으로써 모든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 프랑스의 프롤레타리아는 민족주의 및 교권주의와의 투쟁에 있어서 오랫동안 어쩔 수 없이 부르조아 정당들과 협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지나간 혁명들이 남겨 놓은 불멸의 전통들을 풍부히 지니고 있는 사회당과, 급진주의의 가면 뒤에 자신을 은폐하고 있는 보수 부르조아지는 이제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1세기 동안이나 두 개의 부르조아 정당이 규칙적으로 의회정치의 시소게임을 벌여 온 영국에서도 모든 일련의 요인들의 영향을 받은 프롤레타리아가 최근 정치적 독자성의 길로 접어들었다. 즉, 이미 시작된 7개 단체의 동맹으로의 발전이 성취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도달하기까지 독일에서는 40년이 걸린 반면, 막강한 노동조합들이 있으며 또한 경제적 투쟁의 경험이 풍부한 영국의 노동계급은 단시일 내에 대륙의 사회주의자 투사들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 혁명이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그것은 유럽 반동 세력의 주된 힘인 러시아의 절대주의를 분쇄하는 것 이외에도 유럽 노동계급의 의식과 정신 속에 혁명을 위해 필요한 선행 조건들을 창출해 줄 것이다.

사회주의자 당의 임무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사회적 관계들을 혁명적으로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의식을 혁명적으로 만드는 일이었으며 또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대열을 조직하고 선동하는 작업에 일종의 내적 타성이 붙어 있다. 유럽의 사회주의자 정당들 내에서는, 그리고 특히 그들 중 가장 규모가 큰 독일사회민주당 내에서는, 보다 많은 대중들이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조직화되고, 훈련되어 감에 따라서 차츰차츰 일종의 보수적인 견해들이 성장해 오고 있다. 이 결과,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경험을 구현하는 조직으로서의 사회민주당은 어느 순간에는 노동자들과 부르조아 반동간의 공개적인 싸움에 직접적인 장애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 당의 임무를 사회주의 선전 활동에만 국한시키는 보수주의는 어느 시점에 가서는 권력을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직접 투쟁을 만류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지니는 엄청난 영향력 덕택에 그러한 유럽 사회주의자 정당의 판에 박힌 듯한 일상 활동과 보수주의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 반동간의 공개적인 힘겨루기의 문제가 당면 과제로 부각될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작센 및 프러시아에서 일고 있는 보통선거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러시아에서 발생했던 10월 총파업(1905년 혁명 당시의 사건-역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보다 첨예화되었다. 동구에서의 혁명은 서구의 프롤레타리아들을 혁명적 이상주의로 감염시킬 것이며, 그들에게 자신들의 적을 상대로 '러시아식으로‘ 응수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만일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단지 부르조아 혁명적인 요소들의 일시적인 결합으로 인한 우연한 결과였다면, 그들은 전세계 반동 세력들의 조직적인 적대 행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들로부터 조직화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자신들의 능력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게 고립될 경우,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농민이 그들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 어쩔수없이 반혁명에 의해서 분쇄 당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자신들의 권력의 운명과 그리고 나아가서 러시아 혁명 전체의 운명을 유럽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운명과 연계시키는 것밖에는 다른 어떤 대안도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부르조아 혁명적인 상황들의 돌발적인 결합에 의해서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에게 그 엄청난 국가 권력이 주어질 경우, 그들은 전세계의 자본주의에 대한 계급투쟁과 자신들의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쟁취한 국가 권력과 더불어서 그리고 배후의 반혁명과 전면의 유럽 반동 세력 사이에 위치해서,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는 전세계의 모든 동지들에게 이전부터 외쳐 온 구호를 전파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것이 최후의 공격을 위한 호소가 될 것이다: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