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의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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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사르 프랑크가 음악학교 1년생으로 있던 때의 일입니다. 입학한 지는 며 칠 되지 않았지만 技倆[기량]에 있어서는 상당한 자신을 가진 프랑크가 마 침 학교에서 개최한 피아노 경연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차례가 닥쳐오자 평소에 연습해 두었던 악곡을 훌륭히 연주했읍니 다. 그 다음에는 讀譜力[독보력]을 시험하기 위한 신곡의 연주가 있었읍니 다.

처음으로 대하는 악곡을 아무 준비나 아무 연습 없이 즉석에서 연주해야 되는 것인 만큼 그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아무리 현명하고 침착한 프랑크라 하지마는 그때 그의 나이가 겨우 14세였으니 이 약관의 소 년에게 그다지 큰 기대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프랑크는 그 신곡을 악보 그대로 연주하기에는 너무도 하잘 것 없 었던지 일부러 原譜[원보]보다 度[도]를 낮게 移調[이조]시켜 가지고 전곡 을 조금도 서슴지 않고 훌륭히 연주했읍니다.

교수들은 심중에 경탄하여 마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원곡 그대로를 치지 않고 마음대로 이조한 것이 규칙위반이란 조건 아래서 프랑크는 그만 낙선 되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老校長[노교장] 케르비니는 당연히 포상해야 될 일이라고 주장하여 특별히 名譽大賞[명예대상]이란 것을 만들어서 그에게 주었읍니다. 물론 이 명예대상이란 것은 그 전에도 없었으려니와 그 후에도 다시는 없었읍니다.

12년이 지난 후, 학교에서는 다시 풍금 경연 대회가 열렸읍니다. 생도들은 심판원이 제시한 테마(主題[주제])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소나타를 작곡하여 연주하고 다시 다른 테마에 의하여 푸가를 역시 즉흥 연주하게 했던 것입니 다. 다시 말하면 일개의 테마를 가지고 즉석에서 작곡을 해가면서 연주하는 것이니 이것이 결코 아무에게나 될 것은 아니었읍니다. 프랑크는 소나타를 즉흥 연주한 다음에 푸가를 연주하게 되었을 때 조금 전에 즉흥 연주했던 소나타의 테마를 한데 결합해 가지고 복잡 무쌍한 대곡을 즉흥했읍니다. 심 사원들은 그의 초인적 樂才[악재]에 驚嘆不己[경탄불기]했지만 이 역시 규 정 위반이라는 까다로운 조건 아래 일등상을 받지 못하고 심사원들의 합의 한 결과 2등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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