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공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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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언뜻 기울어
하늘엔 붉은 노을
버들잎 소리없이 지면
새의 꿈 어지러워
흰 모래 사뿐 밟고
끄으는 꼬리 무거워라

눈 부시는 비단 옷
곱게곱게 입고
암놈 수놈 다가서서
마주 보고 서로 놀라
모래 위에 어리인 그림자
바람 탄 양 흩날려라

버들잎 하나 집어 물고
수놈 꼬리 후두두 치면
무지개보다도 고운 빛으로
활짝 열리는 부챗살!
울안이 벅차게 부풀어
타는 햇살처럼 환해라

크고 고운 꼬리 끝에
빛이 자아내는 아지랑이
잔 털 스쳐 이는 바람
암노루의 배꼽내 풍기어
검푸르게 수놓은 허공엔
반짝이는 금별 은별…

아아 죄스러워라
아름다움에 겨워
암놈 짐짓 물러서서
빈 하늘 노리면
솨아… 미친 바람에
지는 잎 하나 또 하나…

꽃의 봄, 잎의 여름
때와 함께 다 보내고
찬 서릿바람 가을이다
두고 온 남녘 나라의 꿈에
나날이 맺는 시름은
고운 빛 가진 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