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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김정승과 단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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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승(金政丞)과 단천기(端川妓)

김우항(金宇杭)은 숙종대왕(肅宗大王)때의 유명한 정승이다.

그가 노년에는 일국의 정승이 되어 한사람 앞에서나 만명이 모인 앞에서나 삼천리 강산을 손에다 폈다 쥐었다 하며 서슬이 푸르게 되어 잘 지냈지만 소년 시절로부터 중년 시절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곤궁하기 짝이 없어 그야말로 세끼의 밥도 잘 얻어 자시지 못하고 집도 다 허물어진 삼간초옥(三間草屋)에 풍우를 가리지 못하며 옷은 또 현순백결(懸鶉百結)로 다 떨어져 살이 울긋불긋 하게 보이니 체면상 출입을 마음대로 잘 할 수 없는 때가 많았었다.

그러나 자녀는 남부럽지 않게 많아서 그들을 먹여 살리는데 여간 곤난하지가 않던 중 더구나 딸은 남유달리 오형제나 있어서 맏딸은 벌써 과년이 되어 어떤 친구의 아들과 약혼을 하였으나 집이 본래 너무 가난한 탓으로 금침이며 기타 혼구 범절을 아무것도 준비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혼인날에 새 옷 한 벌 해 줄 힘이 없었다. 그 일로 해서 밤낮 걱정을 하던 차에 문득 한 생각이 났으니 그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그때 마침 그의 이종사촌형(姨從兄[이종형])하나가 무관(武官)으로 단천부사(端川府使 〓 惑[혹]은 江界府使[강계부사]라 云[운]함)가 되어 임지에 가서 있는데 그 사람을 찾아 가서 그런 사정을 말하면 다소 일이 풀리게 되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그는 아는 친구에게 간청을 하여 약간의 노자를 변통하여 가지고 비루먹은 말 한필과 종하나를 세 내 가지고 머나먼 그 이종사촌이 있는 단천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그 부사는 본래 재물을 탐내며 몹시 인색한 인물인 까닭에 혹시나 자기의 궁한 친구나 가난한 일가가 찾아와서 노자돈이라도 뜯어 갈가 염려하고 도임 시초부터 관가의 하인에게 엄명하되

『어떠한 사람이던지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거던 허락 없이는 절대로 관아(官衙)에 들이지를 말라.』

하였으므로 김우항이 그 관아를 찾아도 엄격하게 거절하니 김우항은 할 수 없이 그 관아 근처에다 방 하나를 구하여 정하고 임시 체류할 수밖에 없이 되었다.

하루 묵고 이틀 묵고 사흘 나흘 내지 십여일을 묵어가며 날마다 관문을 두드렸으나 문 앞에서 어떻게 검사가 심한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직이놈에게 가진 모욕만 당하고 그대로 돌아 왔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럭저럭 가지고 갔던 노자는 다써서 없어지고 나중에는 세내어 타고온 비루먹은 말까지 팔아서 밥값을 다 주고보니 그제서는 오지도 못하고 있을 수도 없는 가위 진퇴양난의 궁극한 처지를 당하게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고보니 객주집 주인 까지도 그를 퍽 민망하게 생각하고 하루 아침에는 그를 보고 말하되

『여봅쇼. 서울손님, 좋은 수가 있오. 당신이 사또와 이종사촌이 되신다면 일껀 오셨다가 한번 면회도 못하시고 그와 같이 곤난을 당하시니 내 말대로만 꼭 하시오. 들으니 오늘 사또께서 사창(社倉)에 나오셔서 환자쌀(還米[환미])을 검사하신다니 아침 일찍기 삼문앞 길가에서 기다리시다가 사또가 지나시거든 고함을 쳐서 한번 만나도록 하시오.』

김우항은 그의 말이 그럴듯 하다고 생각하고 그날 아침에는 미처 조반도 먹지 않고 일찌기 삼문 앞 길가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과연 그날에는 틀림없이 부사가 그길로 지나갔었다. 그는 고함을 쳐서 부사가 탄 사인교를 멈추고 인사를 한 뒤에 또 자기가 와서 여러날이 되도록 만나지를 못하고 그대로 오랫동안 객주집에서 체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더니 부사는 아주 냉정한 태도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통인을 불러서

『네 ─ 이 손님을 안내하여 책방에 가서 기다리고 계시게 하여라…….』

하고는 하인을 재촉하여 그대로 가던길을 가버렸다. 김우항은 부사를 만나 보려고 그와 같이 천신만고를 하였으나 부사의 태도가 그렇게 냉정하고 보니 마음에 퍽 섭섭도 하고 분하기도 하였으나 원래 생각한 바가 있어서 간 까닭에 모든 감정을 다 죽이고 꿀꺽꿀꺽 참으며 통인의 뒤를 따라 책방으로 가서 부사가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 부사가 웬만큼 인정이 있고 체면을 차리는 사람 같으면 내아(內衙)에 기별하여 점심 대접이라도 하게하였겠지만 원래가 돈만 알고 인사체면은 도무지 물고하는 사람인 까닭에 내아에 아무 기별도 없고보니 내아에서도 그에게 점심 대접을 할리가 만무하였다. 가뜩이나 그날에는 부사가 일이 바빠서 그랬던지 중도에서 놀다가 오느라고 그랬던지 요새로 치면 밤 여덟 시나 훨씬 지나 돌아왔는데 김우항은 조반도 먹지 못하고 빈속으로 와서 그때까지 부사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배인들 여간 고팠으며 가깝하기는 여간 가깝하였으랴.

그러나 부사만 오면 잘 먹겠지 하고 눈이 감기도록 기다리고 있었더니 급기야 부사가 돌아온 후 저녁상을 내오는 것을 본즉 사또밥상으로는 가진 진수성찬을 상이 휠만치 잘 차린 것은 물론이고 꽃도 같고 달도 같은 기생들이 주위에 죽 둘러서서 반주도 따르고 권주가(勸酒歌)도 불르지만 김우항 상은 마치 남원부사 생일잔치에 이도령의 상모양으로 다 부서진 개다리 소반에다 반찬이란 것은 콩자반 콩나물 등이며 술이라고 주는 것은 좁쌀뜨물 같은 걸직한 막걸리 몇잔을 귀떨어진 헌 병에다 넣어다 주었다.

보통의 용렬한 사람같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이나마 배고픈 김에 감지덕지하게 먹었겠지만 그래도 장래 일국의 정승까지 할 인물이라 비록 배고픔과 추위가 뼈에까지 사무치지만 그러한 천대를 받을 리 만무하다.

당장에 변색을 하고 부사를 돌아보며 말하되

『여보 영감, 그래도 영감과 내가 이종사촌 간이 아니요? 비록 곤궁한 사람이나마 불원천리하고 여기까지 찾아온 터에 이런 푸대접이 어디 있단 말이요. 아무리 인사체면을 모르기로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하고 앞에 놓은 밥상을 번쩍 들어 부사의 밥상을 냅다 치니 밥상이 엎어지며 상에 놓았던 음식이 모두 흐터져서 부사와 옆에 있던 기생의 의복에 낭자하게 튀어묻었다.

부사는 청천에 벼락을 맞은 듯이 큰 봉변을 하고 노염이 머리끝까지 뻗혀서 김우항을 꾸짖어 호령하되,

『너같은 거지놈이 이종사촌이 다 무어냐. 그래도 특별 대접하여 한자리에 앉히고 술 밥까지 주었더니 너무나 과남해서 투정지랄을 하는구나, 이놈 그런 버릇을 누구 앞에서 한단 말이냐. 어디 경을 좀 쳐보아라…….』

하고 즉시 관료에게 명령하되

『네 ─ 이놈을 잡아내어 당장에 내쫓되, 만일 어느놈의 객주집에서라도이런 불량한 놈을 집에 붙쳐두고 잠을 재우거나 밥을 먹인다면 엄형에 처하리라…….』

하고 추상같은 호령을 하니 관료놈들이 일시에 달려들어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 채가듯이 잡아 끌어내려 덜미잡이를 시켜다가 큰 길가에다 내다버리고 일반 객주와 목노방에 엄달하여 그를 유숙시키지 말라고 하고 달아났다.

그때 김우항은 종일토록 밥을 굶어 기운을 차릴수 없는터에 그와같은 큰 봉변을 당하고 나니 날은 저물어서 어두운 객지에서 어디로 가야 될지 방향조차 알 수 없어서 마치 얼빠진 사람모양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정신없이 길가에 너머져 있다가 밤이 조금 늦은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돌아보니 밤은 아주 깜깜하고 인적이 고요한데 길건너편 산모퉁이에서 반짝 반짝하는 불빛이 보였다. 그는 그 불빛을 보고 반가이 여기어 기운을 차리고 억지로 찾아가니 그곳은 사람의 집이 아니라 옹기점인데 아무도 없고 다만 늙은 영감 하나가 옹기를 굽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 영감에게 사정을 하여 하룻밤 쉬어가는 승낙을 얻어가지고 옹기굴 한모통이에다 거적대기를 깔고 주린배를 움켜잡고 새우잠을 자게되었다. 그때까지는 몸이 하도 피곤한 까닭에 아무 정신없이 잤으나 한참을 자다 깨니 자기의 신세생각, 분한 생각이 다시 나기 시작하여 잠을 이루지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딩굴기만 하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있노라니까 저편으로부터 등불하나가 보이더니 자기 있는 옹기점으로 차차 가까이 오며 이상한 향내가 바람결에 코를 찔렀다.

그는 괴상히 여겨서 자세히 본즉 어떤 어여쁜 여자가 조촐하게 단장을 하고 아이에게다 등불과 음식상을 들려가지고는 마치 아는집 찾아 오듯이 바로 옹기점 앞으로 와서는 꾀꼬리 같은 목청으로

『여보 주인님 계시오. 오늘 밤에 여기에 어떤 손님이 와 계시지 않소…….』

한다.

주인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김우항이 먼저 앞장을 서서

『그 누구시요. 오늘밤에 여기 와서 자는 손님은 나밖에 없오.』

하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그 여자는 마치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이나 만난듯이 퍽 반가워하며 옹기 굴속으로 쑥 들어와서 그의 손을 꽉 잡으며

『얼마나 욕을 보시고 또 얼마나 시장하십니까…….』

한다.

김우항은 처음에 그 여자가 귀신인가 사람인가 잘 알 수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않고 그저 보고만 있었더니 그 여자는 그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귀에다 입을 가만히 대고 말하기를

『저를 모르세요. 아까 사또 밥상 앞에서 술을 붓던 기생이 올시다. 사또는 원래 문제도 되지않는 인물이지만 서방님께 대하여 그런 괄세를 하는 것을 보니 마음에 민망도 하였거니와 서방님께서 사또에게 밥상을 메어치는 것을 보니 여간 통쾌치 않았읍니다. 그리고 제가 비록 천한 계집이오나 사람을 많이 대한 까닭에 한번만 보면 그 인물을 대강 짐작하옵는데 오늘 서방님의 관상과 기백을 뵈온즉 결코 지금과 같이 영구히 빈곤하게 사실 분이 아니요, 장래 일국의 재상이 되실 기품이 있으시니 조금도 낙심마시고 자중자애 하시고 저를 또한 장래까지 사랑하여 주십시요. 그리고 여기서는 피차 자세한 말씀을 할 수가 없사오니 우선 가저온 음식으로 요기나 하시고 누추하나마 저의 집으로 같이 가십시다.』

하며 이어서 가지고 온 술상을 내려서 그에게 술이며 안주를 잘 대접한 후에 그 옹기점 주인에게도 술을 주며 손님을 잘 대접하여 고맙다고 인사한 후 다시 그를 안내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기생은 집에 가는길로 물을 데어서 그에게 목욕을 시킨 뒤에 새옷 한벌을 말쑥하게 새로 입히고 자기 침방으로 안내하여 다시 저녁밥과 술을 대접하여 모든 객지에서의 고생스러웠던 일을 위로하여 주고 또 그의 내력(來歷)이며 그가 어찌하여 부사를 찾아오게 된 동기를 물었더니 김우항은 또한 감격하여 전후 사실을 조금도 속임없이 다 대답하니 그 기생은 더우기 그에게 동정하여 일층 더 친절하게 대접하고 한편으로는 그도 모르게 가진 혼수 흥정을 다 하여 말에 실려서 집으로 보내 주었다.

김우항은 원래 그의 딸의 혼수 범절 때문에 그곳 부사까지 찾아가서 가진 괄세를 다 받고 그 목적을 달하지도 못하였지만 뜻밖에 은인(恩人)인 그 기생을 만나서 생전에 맛보지도 못하던 가진 호강과 가진 대우를 받게 되니 궁한 선비의 마음에 스스로 복덕방에 들어앉은 듯이 만족한 생각이 들어서 자기 가족들이 밥을 굶을 생각과 자기 딸의 혼례 일이 가까워오는 것을 돌보지도 않고 날마다 춘풍화기(春風和氣) 중에서 자기의 타고난 풍정(風情)을 한껏 발휘하며 질탕하게 놀았다.

그 기생은 얼마 동안은 그를 위로하여 주노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었으나 차차 날이 오래고 정이 두터워 가서 또한 기탄없이 자기 심정을 다 말할 정도에 이르렀다. 하루 밤에는 조용한 틈을 타서 그에게 말하되,

『서방님께서 나 같은 기생의 품속에서 일생의 단꿈만 꾸게 되시면 장래의 큰 사업이 문제이오니, 저를 사랑하여주시는 것은 고마우나 장래를 생각하시와 하루라도 바삐 서울에 가셔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하실 일을 하십시요.』

하였다.

김우항은 이 말에 더욱 감격하여 대답하되

『나도 그런 생각을 못하는 바는 아니나 원래 이곳에 온 목적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처자를 대할 면목이 없는 까닭에 오늘이나 떠날가 내일이나 떠날가 하며 그대로 있네.』

하니 기생은 생끗이 웃으며 또 말하되

『사내대장부가 그까짓 소소한 일로 걱정을 할 것이 무엇 있겠읍니까. 제가 벌써 그러신 사정을 잘 아는 까닭에 얼마전에 이미 그런 준비는 다하여 보내 드렸사오니 그런 걱정은 조금도 말으시고 하루라고 바삐 서울로 가셔서 소원성취나 하십시요.』

하고 그 이튿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조반 대접을 잘 해 올리고 마필(馬匹)과 그의 행구 여비 등을 준비하여 그를 보내니 김우항은 퍽이나 고맙게 생각하면서 그 기생을 차마 떨어질 수가 없어서 눈물을 흘리며 억지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럭저럭 며칠을 왔던지 마침내 집에 와서 본즉 과연 집안의 생활이 전보다 훨씬 났고 딸의 혼수도 한가지 군색한 것이 없이 다 준비되었다.

그때까지 집안 사람들은 물론 그것이 모두 단천부사(端川府使)의 덕으로 그리 된 줄만 알고 그에게 대한 찬사가 여간 아니었다. 그도 역시 그러하다고 대답하고 자세한 내용은 구태어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런지 몇해 후에 그에게는 과연 늦복이 터지기 시작하여 오십의 노령으로 처음 과거를 하고 이어서 옥당(玉堂)이 되었더니 숙종대왕의 특별한 권총(眷寵)을 받아 얼마 안에 또 함경도 어사(御使)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실로 평생에 잊지못할 원한을 품고 또한 단천기생과 반갑게 만나게된 천재(千載)의 좋은 기연(奇緣)이었다. 그는 배명(拜命) 즉시에 폐포파립의 나그네 행색을 차리고 어느곳 보다도 먼저 단천을 찾아 갔었다.

위선 전날에 은혜를 입은 그 기생이 그동안 무고하게 잘 지내고 또 자기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전과 같은가 아닌가를 한번 시험하여 보려고 남루한 의복중에도 가장 남루한 의복을 갈아입고 얼굴과 수족에도 더러운 검정칠을 하여 빌어먹는 거지 행색을 하고 그 기생의 집을 찾아갔다.

그 집의 사람들은 그저 보통 거지로 알고 문전에서 내쫓으려고 하였으나 유독 그 기생만은 그 음성을 알아 듣고 반가이 뛰어나와 맞아들였다.

그는 기생이 무슨 말을 묻기도 전에 먼저 말 하기를

『나는 원래 박복한 탓으로 그때 서울집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강도를 만나 행구며 노자 의복 등속을 전부 빼앗기고 적신으로 집에 들어갈 면목이 없어 그만 거지패를 차고 이곳 저곳으로 방랑을 하며 걸식을 하다가 염체없이 또 찾아왔네.』

하였다.

웬만한 기생같으면 전날에야 어찌보고 그리 후대를 하였던 다시 그 지경된 것을 본다면 의례 낙심하고 돌아보지 않을 터이나 원래 지감이 특이한 그 기생은 지난 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그대로 환영하여 위선 목욕(을) 시키고 새옷을 가라 입혔다.

그런데 그전에는 그가 새옷을 입으면 의례 헌옷은 벗어 버리더니 그때에는 새옷을 입고도 그 더러운 옷을 특별하게 잘 단속해 두었다.

기생이 일부러 그 헌옷을 문밖으로 내던지면 또 한사코 끌어들였다. 그렇게 여러번 계속하여 그렇게 하니 기생도 그제서는 눈치를 차리고 거짓 성을 내며

『남녀간에 그만하면 통사정을 할 터인데 그렇게 할 것이 무엇 있소.』

하니

김우항은 그제서야 그 기생의 귀에다 입을 대고 가만히 말하되

『그 속에 마패(馬牌)가 들었어…….』

하니 기생은 크게 반가워 하며

『그러면 그렇지, 내가 사람이야 잘 알아 보았지.』

하고 마치 이도령이 어사 출도할 때에 춘향모가 날뛰듯이 한참동안 뛰놀았다.

그리고 나서 다시 어사에게 말하되

『사또 대관절 이골 부사(府使)를 어찌 처치 하시렵니까?』

『글쎄, 나도 올때부터 그일로 걱정을 하는중이야 죄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봉고파직을 시켜야 옳지만 그래도 사정으로 이종사촌간인데….』

『그일은 아마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지요. 파직을 시킨다면 그가 아무리 잘 못하였더라도 사또가 전날 보복을 하느라고 그랬다 하기 쉽고 그대로 용서한다면 사정으로 공사를 폐하였다는 평을 듣기 쉬울 터이니 먼저 그의 죄과를 하나하나 명백하게 들어 가지고 그로 하여금 사죄사직시키면 모든 일이 다 원만하게 될 것이올시다.』

하고는 자필로 그 부사의 잘못한 행적을 명확하게 들어서 어사를 주고 그날 밤에 어사를 동헌으로 보내서 비밀히 만나보게 하였다.

그리고 기생은 어사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그 부사와 어사의 하는 행동을 엿보았다. 그것은 물론 그 기생도 전날 부사가 어사에게 대하여 너무도 천대하였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설분(雪憤)하는 광경을 한번 통쾌하게 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과연 전날에 그에 대하여 그렇게 괄세를 하던 그 부사는 별안간에 태도가 돌변하여 여간 우대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물론 그가 어사된 것을 미리 짐작하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때에는 김우항도 벌써 과거하고 사환을 하여 전날 몹시 궁할 때와 다른 것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그중에도 그가 거기에 오게 된 동기를 물을 때에 소매 속으로부터 마패를 내보일 때에는 별안간 등골에서 식은 땀이 쫙 흐르고 얼굴 빛이 아주 새파랗게 변하였다. 또 이어서 부사의 범행록(犯行錄)을 꺼내서 일일히 낭독함에 이르러서는 어느 사이에 땅에 엎드려서 백번천번 사죄 하며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광경은 옆에서 보는 그 기생까지도 여간 통쾌하지 않았다. 어사는 처음에 그렇게 부사를 한번 놀래주고는 기생의 지시하던 바와 같이 다 관대한 말로 일장의 훈화를 하되

『부사의 죄로 말하면 당연 봉고파직을 시킬 터이나 인정상 할 수 없고 또 그대로 묵과한다면 사정(私情)으로 공사를 폐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이 고을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가 없을 터이니 내일 아침에 사직서를 세 통 써서 내놓는 동시에 사직을 하라』

하니 부사가 감지 덕지하여 그대로 사직을 하게되고 어사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그 기생에게 말하되

『그대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당장이라도 서울로 데리고 가서 백년환락을 하겠으나 나의 박봉을 가지고는 아직 그대를 데려다 살 수가 없으니 당분간은 더 고생을 하고 기다려 주게….』

하니 그 기생은 그저 복종하며

『녜 ─ 녜 그저 처분만을 기다리겠읍니다….』

하고 서로 후일을 약속하고 작별하니 듣고 보는 사람들이 모두 그 기생을 칭찬치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후 숙종대왕께서는 그 소문을 들으시고 매우 기특히 여기사 어명으로 그 기생을 불러올려 김우항과 같이 살게 하시고 김우항은 또 그 후에 더욱 승작하여 노년에는 일국의 정승까지 되어 세상사람들이 모두 그의 만복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그의 성공은 그 기생의 덕이라고 하여 지금까지 미담을 전해 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