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바다의 전설
- 바다의 전설(傳說)
一[일], 대모(玳瑁)의 보은(報恩)
[편집]우리나라에서도 남쪽 바다 ─ 천리 만리 망망한 연파(烟波) 속에 외로이 자리 잡고 있는 섬 나라 제주도(濟州道)에는 옛날부터 해녀(海女)가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모슬포(摹瑟浦)라는 포구에 사는 고옥랑(高玉娘) 이라는 해녀가 어떤 따뜻한 봄날 전복을 따려고 나무잎 같은 쪽배를 저어 제주도의 남쪽 바다에 멀리 떨어져 있는 마라도(摩羅島)란 섬으로 갔었다.
- 이허도(島)러라 이허도러라
- 이허이허 이허도러라
- 이허도 가면 나 눈물 난다
- 이허말은 마러저 가라
- 서룬 어머니 날 배힐 적에
- 어느 바다의 메억을 먹어
- 바람 일 적 절(波[파]) 일 적마다
- 구을리며 못 사라서라
- 영해(瀛海) 바다 가없은 바다
- 어느 날 온갓이라살이
바닷가의 봄빛을 사랑하는 고옥랑은 청아한 목소리로 이와 같은 해녀의 노래를 부르며 모래사이로 한참 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한곳을 가니 뜻밖에 광채가 찬란한 대모(玳瑁) 하나가 바다 물결에 밀리어 해변에 나온 것을 발견하였다. 아무리 해물만 잡아서 생활을 하는 해녀일지라도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옥랑은 깊은 바다에 있던 그 대모가 육지에 나와서 죽게 된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어 한참 손으로 어루만지다가 다시 깊은 바다 속으로 넣어 주었다.
그 대모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듯이 머리를 쑤욱 내어 흔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한 뒤 어느 날이었다.
옥랑은 전과같이 다시 전북을 따려고 그 바다로 갔었다.
만경청파 위에서 오리 모양으로 이리로 떠다니고 저리로 떠다니다가 전북과 해삼을 따려고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 가니 난데없는 어떤 노파(老婆)가 반갑게 나와서 맞이하면서 말하되
『전날에 나의 사랑하는 딸이 잘못하여 육지에 나갔다가 거진 다 죽게 된 것을 당신이 구원하여 다행이 살게 되었으니 그 은혜는 참으로 백번 죽어도 잊지 못하겠읍니다.』
하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노파의 집은 그야말로 수중용궁과 같은 주궁패궐(珠宮貝闕)로 오색이 영롱(玲瓏)하고 음식도 모두 육지에서 보지 못하던 진수성찬들 뿐이었다.
옥랑은 그렇게 하루 동안을 훌륭한 대접을 받고 나오는데 주인 노파는 그가 떠날 때 광채가 찬란한 꽃 한송이를 주며 말하되
『이 꽃은 인간 사회에는 없는 꽃으로서 마마(痘疫[두역])하는 사람에게 이 꽃을 대며는 즉시 병이 낳을 것이니 이것만 가지면 당신도 평생에 마마를 하지 않을 것이며 또 다른 사람도 많이 보살펴 줄 수 있을 것이오.』
하였다.
그 해녀는 자기 집에 돌아와서 시험을 하여 보니 그것은 과연 백발백중으로 천연두에 큰 신효가 있었다.
그리하여 우두(牛痘)가 생기기 이전 옛날 천연두가 성행할 때에도 이 모슬포(摹瑟浦)란 곳에는 천연두에 걸린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아직까지 얼굴이 얽은 곰보란 구경도 할 수 없고 여자들도 모두 얼굴이 예쁘다고 한다.
그 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산호수(珊瑚樹)라고 하는 해물(海物)인데 원래 천연두의 신약이라고 하는 것이다.
二[이], 독용(毒龍)의 파선(破船)
[편집]이충무공은 수백 척의 싸움배를 진도군 벽파정(珍島郡碧波亭)으로 집중시키고 적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되어 주위가 잠잠한 틈을 타서 별안간 전군에 호령하여 모든 전선을 명량 바다 어구로 옮기고 군병에게 술과 안주를 많이 나누어 주고 마음대로 먹고 춤도 추며 노래를 부르게 하되 특히 한사람 한사람씩 단도(短刀) 한 개씩을 주면서 소리를 할적 마다 그 칼로 장단을 맞추어 뱃전을 치게 하고 밤이 새도록 질탕하게 놀도록 하였다.
여러 군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놀다가 날이 훤히 새인뒤에 보니 배 안에는 피가 가득히 괴이었는데 사람의 손이 무수히 짤라져 있고 또 전날에 진을 첬던 벽파정 부근에는 전파(全破)된 적선이 수백 척이나 물위에 떠 있었다.
군사들은 그것이 웬일인지도 모르고 깜짝 놀래어 이순신 장군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으니 장군은 빙긋이 웃으며 하는 말이
『장수의 용병(用兵) 하는 법은 반드시 병서(兵書)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의 시(詩) 한구 말 한마디에서도 배우는 것이 많으니 옛날 당나라 사람 시에
독용잠처수편청(毒龍潜處水便淸)
즉 독한 용이 숨어 있는 곳은 물이 항상 맑다는 글을 본 일이 있었는데, 내가 어제 벽파정을 보니 전선의 진터로는 매우 좋으나 물이 너무도 맑아서 옛 사람의 말과 같이 독용이나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여 이곳으로 진을 옮기었더니 적군이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가 진쳤던 곳에다 진을 쳤다가 밤 사이에 독룡에게 저러한 해를 입은 것이다.
또 뱃속에 떨어져 있는 사람의 손은 모두 적군의 잠수부(潛水夫)들의 손인데 그것은 적의 군사가 벽파정에 진을 치고 밤을 타서 우리 배를 전복시키려고 수영(水泳) 잘하는 잠수부를 보내서 우리 배에 올라가 불을 질르고 선창에 구멍을 뚫고 또 안심하고 춤추며 놀고 있는 병사들은 살해할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놈들이 몰래 배위에 올라올려고 손을 내밀어 뱃전을 붓잡은 것을 우리 군사들이 손에 쥔 단도로 춤 추는체 하며 모조리 그 손을 짤라버린 것이다』
하며 껄껄 웃으며 좌우를 돌아보았다. 이말을 들은 휘하 장병들은 또 다시 이장군의 지략에 감탄을 하였다.
三[삼], 동해의 전설
[편집]옛날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일이었다.
동해 바다에는 전에 보지 못하였던 큰 산(山)이 떠 내려와서 물결을 따라서 이리 가고 저리 가며 그 산(山)에는 대(竹[죽])가 있는데 낮에는 갈라졌다가 밤이면 도로 합해졌었다.
왕은 그러한 소문을 듣고 이상히 여기어 점치는 사람(卜者[복자])을 불러서 물어 보았더니 그 사람이
『그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니 왕이 만일 그 곳으로 거동을 하시면 반드시 큰 보배를 얻으시리다.』
하였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시며 즉시 동해변으로 거동을 하여 그 산(山)을 바라본즉 별안간에 천지가 진동하고 폭풍우가 일어나며 해와 달이 보이지 않고 아주 캄캄해졌었다.
그러한지 일주일이나 지나서 다시 바람이 잔잔해지더니 날이 맑게 개이었다. 왕은 친히 배를 타고 그 떠온 산속으로 들어갔다.
아무 인적(人跡)도 없는 길을 산속으로 한참 가니까 어떤 이상한 의복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왕은 그 사람을 불러서 물어보되
『이 산에 있는 대(竹[죽])는 어찌하여 낮이면 갈라졌다가 밤이면 도로 합해지느냐』
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되
『그것은 다른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비교해서 말한다며는 사람이 한쪽 손으로만 치면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손으로 마주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니 이것은 성왕(聖王)께서 소리로 천하를 다스리실 징조이니 왕께서 만일에 이 산에 있는 대(竹[죽])를 가져다가 저(笛[적])를 만들어 불으시게 하신다면 온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안도하게 잘 살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근신(近臣)으로 하여금 그대를 베어 가지고 산을 떠나 오니 그 말 하던 사람은 홀연히 간 곳이 없고 다만 오색의 구름만 떠올 뿐이었다.
왕은 국도(國都)에 돌아와서 그대로 저를 만들어 불게하니 소리가 청아하기 짝이 없고, 날이 가물고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때에 그 저를 한곡조 불면 별안간에 비가 와서 풍년이 들고 국내에 악병이 유행하여 백성이 많이 죽게 될 때에 그 저를 불면 악병이 자연히 없어지고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며 외국에 적병이 나라 안에 침입할 때에 그 저를 한번 불면 역시 저절로 쫓겨가므로 그 저를 이름지어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신라의 유명한 국보로 치던 물건이었다.
〈끝〉